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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안철수 옆 이헌재 논란', 진짜 쟁점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23일자 기사 '안철수 옆 이헌재 논란', 진짜 쟁점은…'을 퍼왔습니다.
[기고] 민주정부 10년, 모피아가 득세한 이유는?

안철수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참여한 것에 대해 야권의 경제학계를 중심으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이들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야말로 '관치 금융'의 핵심 책임자였으며, '모피아의 대부'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근 에서 전개된 '한국 경제 성격 논쟁'에서 서로 날 센 대립각을 세웠던 김상조-정태인 그룹과 장하준-정승일 그룹은 참으로 오랜만에 이헌재 비판이라는 점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김상조-정태인 그룹과 장하준-정승일 그룹의 '의견 일치'

김상조-정태인 그룹과 장하준-정승일 그룹의 비판 지점은 약간 다른 것으로 보인다. 전자 그룹은 '관치 금융'에 비판의 초점이 놓여 있고, 후자 그룹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신자유주의'를 주도했다는 것에 비판의 초점이 놓여 있다.

먼저, 나는 이들 양자 그룹의 비판이 일리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금융 개혁의 과제는 금융 공공성을 강화하고, (금융)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금융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 양자 그룹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좋은 취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논란이 '올바른 논점'에 입각해서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소위 '이헌재 논란'은 세 가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둘러싼 관치(官治) 논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둘째, (선거) 캠페인 전략 차원에서, 이헌재 카드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셋째, 인적 카르텔의 의미를 갖는 '모피아'를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는 이헌재(왼쪽), 안철수. ⓒ연합뉴스

허공에 주먹질하기 : 관치(官治)라는 개념의 공허함
먼저, 관치 논란이 적절한 논점인지 살펴보자. 막스 베버는 근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을 '관료 체제'로 꼽고 있다. 나는 진보 진영의 경제학자들이 관료 체제, 그 자체의 타파를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볼 때, 나는 관치(官治)라는 개념 자체가 '허공에 주먹질하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모피아'라는 말로 바꿔도 매 한가지이다. 이 개념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는 '실천적' 관점에서 반문을 해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질문을 던져보자. '관치'의 반대말은 뭔가?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 관치가 잘못된 것이라면, 옳은 것에 해당하는 다른 개념은 무엇인가?

나는 관치(官治)라는 개념 자체가 (용어를 사용하는 분들의 선의와 무관하게)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용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관치의 반대 개념은 필연적으로 '시장 자율'(=자유 방임 시장)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계를 포함하여 진보 진영의 다수는 자유 방임형 신자유주의와 국가 사회주의 모두를 반대하는 '조정 시장 경제 체제'를 대안으로 합의하고 있다. 즉,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의 개입'을 용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가장 큰 특징은 '관료 체제'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시장 개입은 다른 말로 '관료의 시장 개입'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용인하면서, '관료 개입'을 배제하는 것은 마치 둥근 사각형처럼 논리적 형용 모순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관치 비판'은 필연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용어가 될 수밖에 없다.

관치라는 개념 자체가 박정희식 발전 국가에 대한 대항 담론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독해될 필요가 있다. 군부 독재 시절에 '관의 배제'를 주장하는 것은 군부 독재의 경제적 퇴장을 요구하는 맥락을 갖게 된다.

즉, 관치라는 개념 자체가 1970년대 재야 경제학계의 대항 담론의 일환으로 사용된 것이며, 조정 시장 경제의 지향과 양립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오늘날 '관치 비판'은 필연적으로 '국가 개입 비판' 그 자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관치(官治)'가 아니라 '정치(政治)'를 비판해야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적 행위자 집단을 편의상 시장-관료-정부로 구분해 보기로 하자. 1)시장은 기본적으로 자유 방임이 작동하는 민간의 영역이고, 2)관료는 국가에 복속된 공무원 체제를 의미한다. 3)정부의 가장 큰 특징은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조정 시장 경제 체제'를 지향한다면, 그것이 실제로 구현되는 프로세스는 1)선출된 권력이 2)관료 체제를 통해 3)시장에 개입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주체-수단-객체를 구분하는 것이다.

관료 체제는 엄밀히 말하면, '수단'에 불과하다. 관료 그 자체가 '최종 의사 결정'을 쥐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최종 의사 결정은 '선출된 권력'이 갖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 함께 했던 일부의 논자들이 "모피아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고 항변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이는 주객이 전도된 논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선출된 권력'이 관료 체제를 통제하는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출된 권력의 '무능함'을 방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논점의 핵심은 관치-관료-모피아 그 자체가 아니다. 선출된 권력의 통치 능력 유-무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관치-관료-모피아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올바른 논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치-모피아 때문에 정부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위기가 당 대표(혹은 당 지도부)때문이 아니라 '당직자'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헌재 카드' 활용에 대한 '정치적' 판단 지점
두 번째 질문을 던져보자. 선거 캠페인 전략 차원에서 볼 때, 이헌재 카드 활용은 적절한가? 원론적으로 살펴보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타깃 집단'을 어디로 설정하느냐와 맞물려 있다. 안철수 후보가 출마하기 전에,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중 하나는 "누구와 함께 하는지"였다. 이에 대해서 현재 두 번의 계기를 통해 드러났다.

[계기-1] 9월 19일 안철수 후보의 출마 선언식에 노출된 사람들 중에 '보수' 인사는 사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한명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대체로 진보 쪽의 인사들이었다. 그날 드러난 사람들이 약 15명이었는데, "1 대 14의 구도"였다.

[계기-2] 9월 21일, 박선숙 선대본 총괄본부장의 '캠프' 인선 발표에 의하면, 그 멤버들이 주로는 민주당-진보 개혁 쪽에서 있었던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겸비한 40대 그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위의 [계기-1]과 [계기-2]에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없었다면, 중위 투표자 집단의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들까? 일부의 사람들은 안철수 캠프가 '진보-40대'로 편향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요컨대, 이헌재 카드의 실질적 의미는 진보-40대 중심의 캠프를 보완-중화해주는 역할을 통해 안정감과 균형감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중도층은 견인하되, 이헌재는 멀리 하라?

이번 대선에서 소위 '선수'를 자임하는 분들 중에는 안철수 후보에게 중도층-무당파층을 견인하라고 주문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특히나 이분들이 이헌재 카드를 비판하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야말로 (실천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정치적 형용 모순'을 주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문이 왜 모순된 것인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철수 캠프에서 이헌재 전 경제 부총리같은 사람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과장된 비판이다. (중요한 것은 '지배적' 흐름. 즉, '헤게모니'를 읽어내는 것이다.)

둘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역할은 '중도층'에게 이념적-세대적 안정감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헌재 카드를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중도층 흡수를 포기하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다. (또는 '진보쪽 인사' 배치로만, 중도층 유권자를 설득하라는 다소 무리한 주문인 셈이다.)

셋째, '관치' 비판은 잘못된 논점이다. 문제의 본질은 '선출된 권력'이 정치(政治)의 기능을 제대로 작동시키느냐의 여부이다. 즉, 안철수 후보가 만일 대통령이 되면, '안철수의 생각'이 이헌재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이전의 민주 정부 10년이 그랬다고 해서, 현재 출마한 안철수-문재인 후보를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며, 근거가 희박한 주장인 셈이다.)

넷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아직 캠프에서 아무런 직책이 없다. 아직까지는 그냥 '멘토'일 뿐이다. 안철수 후보 캠프의 정책기획팀장은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이, 정책팀장은 김형민 (박선숙 의원) 보좌관을 역임했던 사람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그간 금융 공공성과 금융 안정성의 강화를 주장하던 사람들이다.

민주 정부 10년 동안 '모피아'가 더욱 성행했던 진짜 이유
셋째, 인적 카르텔을 의미하는 '모피아'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이다.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인 모피아라는 표현은 특히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확산되었다.

그렇다면, 한번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하필 '민주 정부' 10년 동안에 모피아가 활개를 치게 되었을까? 그것은 결론부터 말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인사 정책' 자체가 '신자유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경제와 정치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경제적 영역을 '민주적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는 경제적 논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거나 "경제는 경제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교리의 핵심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실제로 지난 민주 정부 10년 동안 경제 부처 장관직은 경제 부처 공무원 출신에게 의탁-위임해버렸다. '민주적 통제'가 사라진 자리에, 경제 분야 전문가들의 인적 카르텔이 형성된 것은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어쩌면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렇다면, 폐쇄적인 인적 카르텔을 의미하는 '모피아 문제'를 올바로 극복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경제 분야에 '민주적 통치' 원리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즉, 경제 부처 장관직은 우리 시대의 경제적 개혁 과제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정치인 출신'으로 채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이왕이면 기재위-정무위-지경위-환노위 등의 경제 분야 상임위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정치인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정책 노선, 통치 능력, 인사 철학이 검증의 핵심이어야
1원 1표의 시장 영역을,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로 통제하는 것. 바로 이것이 '경제 민주화'의 철학적 핵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민주화의 원리가 '인사 정책'에서 구현되는 방법이 바로 경제 부처를 선출된 권력이 통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지난 민주 정부 10년의 과오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볼 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소위 '이헌재 논란'은 잘못된 논점에 기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 올바른 토론이 되기 위해서는 1)다른 대선 후보를 포함하여, 안철수 후보의 (금융 분야) '정책 노선'이 무엇인지? 2)관료 사회에 대한 통치 능력은 어떠한지? 3)경제 부처 장관직에 대한 인사 정책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를 묻는 것이어야 한다.

위에 대한 대선 후보의 답변이 분명하다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멘토'를 하건 말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심지어 '보수적' 관료의 멘토가 '진보적' 개혁을 위한 매우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오히려 '이헌재 논란'이 금융 개혁의 방향성, 인사 정책의 원칙을 둘러싼 '본질적-생산적 토론'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최병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진짜 대안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18일자 기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진짜 대안은?"'을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빈곤의 예방과 완화를 위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과제

왜 복지국가인가?

오늘날처럼 '노동'의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진 시대는 없는 듯하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과거 봉건시대 영주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노동력인 농노를 보호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제 노동자는 핵심인력 일부를 제외하고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d Bauman, 2004)이 지적한 것처럼 '소비주의' 시대에서 '근로 윤리'는 기만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언제고 잘릴 각오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성실성은 오히려 억울한 감정과 갈등만을 불러일으키는 불필요한 덕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은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아니라 돈을 번 수단이 어찌되었든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을 뽐내는 이들이다. 나머지는 그 유능한 몇몇 사람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배를 곪지 않을 수 있는 가련한 이들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민주주의의 권리는 몇 년에 한 번씩 선거가 있을 때만 잠깐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래서한국에서 복지국가는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노동의 가치와 인간성을 회복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에서는 적어도 땀 흘려 일을 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현실은 일을 해도 미래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아야 할 만큼 열악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자력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전임으로 학원 강사 일을 하는 친구는 졸업 후 3년 동안 열심히 일했음에도 수중에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상황은 중산층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임금을 비교적 많이 받아도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 교육, 주거, 의료 등의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이원화로 인해 패자부활이 힘들어 자신과 자녀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복지국가가 가장 발달한 스웨덴의 경우 교육, 주거,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를 모든 이에게 충분히 제공하므로 비교적 낮은 수준의 임금으로도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왜 보편적 복지국가인가?

빈곤의 예방 및 완화의 관점에서 보편적 복지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빈곤을 효과적으로 예방·완화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여 복지재정을 줄이고 빈곤을 완화한다는 식의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을 채택한 미국과 미국식의 복지국가 퇴보를 경험한 영국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 가정하고 있는 빈곤층에 대한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 미치는 정치적 효과가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첫째,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빈곤층을 빈곤층이 아닌 인구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수한 집단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즉, 빈곤층을 비빈곤층 인구와는 애당초 다른 특징(선천적 능력, 행동적 특징, 가족구조 등)을 가진 정태적 집단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빈곤에서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도 등의 발전도상국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통틀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빈곤층이 결코 정태적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Krishna, 2010). 빈곤으로의 추락과 탈피는 매우 흔한 현상이다. 빈곤위험이 일부 집단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일부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낮은 조세, 규제 완화, 작은 정부를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 3년 동안 OECD 국가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조사는 조사 이전에는 빈곤하지 않았던 인구의 5%가 매년 빈곤층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매년 빈곤인구의 50%는 빈곤 탈피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보다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복지국가가 매년의 빈곤인구뿐만 아니라 빈곤의 지속 역시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OECD, 2001).

결국 빈곤을 예방하는 기능이 있는 보편적 복지 정책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 빈곤층만을 '선별적'으로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이야기는 단기적인 대증 요법이 되기 십상이다.

둘째,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필연적으로 빈곤층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집중적' 지원의 본래 생각과는 반대로 빈곤의 예방과 완화에 투입되는 자원의 총량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1960년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에서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다.

현재 미국에서 '복지'(welfare)라는 단어는 마약에 중독된 흑인과 무책임하게 아이만 낳는 한모가구 등 일부 빈곤층만 수급 받는 '공공부조'와 같은 개념으로 매우 수치스러운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미국인의 심성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납세자와 수혜자가 명백하게 분리되는 시스템 하에서 납세자의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Skocpol, 1990).

아무리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라고 해도 그것은 임의적이고 일시적인 자선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 누군가의 지속적인 세금부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는 매년 7조 원이 넘는 예산이 조세에서 충당되고 있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제도가 발달하지 않은 조건에서 납세자는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여사보험에 가입하거나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려 할 것이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세금부담을 줄여 개인적으로 각종 위험에 대처하길 바란다.

그런데 적지 않은 세금부담을 짊어지는 중산층 납세자들은 공공부조와 같은 '선별적' 복지제도를 통해 이득 볼 게 없다. 따라서 선별적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가 낮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래도 전체 인구에 비해 선별적 복지제도의 수혜자들 가운데 한부모, 소수인종, 장기실업자들의 일부 집단이 과대 대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선별적 복지'에 대한 인식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선별적인 복지제도를 강조하는 국가의 복지 총량(사회보험, 공공부조, 복지서비스 등에 투여되는 자원의 총량)은 보편적인 복지제도가 발달한 국가의 복지 총량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오히려 빈곤층이 향유할 수 있는 자원도 적어지는 '재분배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Korpi and Palme, 1998).

빈곤을 예방·완화하기 위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과제

현재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5% 수준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 권에 속한다.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적 빈곤율'도 약간의 등락에도 불구하고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거칠게 추산하면 약 500만 명이 절대빈곤, 약 750만 명이 상대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그리고 상식과는 달리 소득이 아니라 자산을 기준으로 측정한 빈곤율은 더 높게 나타난다(남상호, 2007, 2011).

빈곤의 예방과 완화가 복지국가의 일차적 과제라 한다면, 이는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이다. 그렇다면 빈곤을 예방·완화하는 데 있어 역동적 복지국가가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주로 세대별 빈곤 위험의 전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현재 빈곤이 가장 심각한 집단은 노인이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이 늘어나고 고용상황이 악화되면서 자녀의 용돈에 의지하던 노인세대의 빈곤율이 급상승했다. 외환위기 극복 이후에도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열악한 상황은 개선되지 못 하고 공적 지원의 확대는 사적 이전의 감소에 상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현재의 근로연령세대 역시 상당수는 노인세대가 되어 빈곤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근로연령세대 인구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또, 120개월의 기여기간을 충족해도 납부액이 적어 충분한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도 빈곤율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은 근로연령세대의 빈곤위험과 노인세대의 빈곤위험이 악순환하는 데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급속한 노령화와 연금재정의 팽창 때문에 사후적 소득보장만으로 대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빈곤을 예방·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의 내실화와 함께 빈곤을 예방하는 사전적인 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는 여성의 고용률 제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강화,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제시하고자 한다.

일-가정 양립 정책을 통해 여성의 고용율을 높여야

첫째,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지금도 근로연령세대 가구의 빈곤을 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고용률은 OECD 국가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 하고 있다( 참조). 25~54세 여성의 고용률이 특히 낮은 것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성이 충분히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 가구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여성의 노후준비를 어렵게 만들어 노인빈곤의 가능성을 높인다. 현재 베이비부머(1955~1963년 생) 여성 374만 1천 명 가운데 10년 이상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이는 불과 49만 명(12.8%)에 불과하다. 그리고 1~9년 납부자가 176만 5천 명(47.2%), 그리고 납부 이력이 전혀 없는 인구가 149만 6천명(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베이비부머 남성의 54.3%, 34.8%, 10.9%와 대조적이다(국민연금공단, 2011).

그런데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7년이나 더 살고, 부부 연령차가 보통 3~4년이므로 평균 10년을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계속해서 이와 같은 여성의 '낮은 고용률-낮은 국민연금 가입률'이 지속된다면 노인 가구, 특히 그 중에서도 홀몸여성노인의 빈곤위험이 매우 높게 지속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더 많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무상보육과 같은 일-가정 양립 정책들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중요한 이유

둘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란 실업에 처한 이들이 괜찮은 일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 훈련, 취업알선 및 구직급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OECD, 2011). 그런데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교육·훈련을 경험한 이의 비율은 18.9%에 지나지 않았고, 평균 교육훈련 시간은 5.3 시간에 불과했다(김유선, 2011:96).

고용의 불안정과 저임금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교육·훈련이 필요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교육·훈련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자기 계발조차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세 자영업자 가운데 사업 정리 후 취업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조사 대상자 가운데 34.2%가 취업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전체 조사 대상자 가운데 66.8%가 정부의 교육 지원 정책이 존재하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중소기업청, 2010).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근로연령세대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은 노후의 창업 또는 유급노동 참여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통한 빈곤의 예방과 완화

셋째,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는 근로능력이 미약한 근로연령 인구와 재고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ㆍ고령 인구에게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원을 제공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2009년 현재 사회적 기업에 취업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각각 132만 원과 93만 원이다(이정봉, 2010). 이는 전체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 255만원, 120만원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지만, 1인 기준의 국민연금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의 평균 급여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의 제공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의 제공,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은 업무처리 능력의 향상, 대인관계의 향상 등 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사후적 소득보장정책에 비해 큰 장점을 가진다. 또한 사회적 기업은 총사업비의 약 65%를 자체 매출액으로, 약 28%를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2008년 기준)하므로 전적으로 정부의 조세에 의지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비해 재정 부담이 덜하고 납세자와의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장점을 가진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을 단지 한시적인 일자리 제공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관련 예산은 2009년 1,885억 원에서 2010년 1,487억 원으로 줄어들었다가 2011년 1,615억 원, 2012년 1,760억 원으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또, 현재 정부의 사회적 기업 정책은 지나치게 자립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재정 지원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두고 추진되어 사전적·예방적 빈곤정책으로서의 목적은 제대로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규창업 사업체의 절반이 3년 이내에 문을 닫고, 3분의 2가 5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사회적 기업이 본연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물론, 이상의 대안들은 소득보장에 치중한 것이다. 주거·의료·교육 등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적절히 향유하는 데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면 사전적·사후적 소득보장을 아무리 충실히 한다고 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다. 이는 다시 보편적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모든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의 확보가 필요할 것이다.

즉, 빈곤의 예방과 완화를 위해서는 혜택을 받는 대상자를 줄여 예산을 절감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 예산 조정과 감세의 원상복구,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점진적 증세를 통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구가 삶의 과정에 닥치게 될 사회적 위험을 성공적으로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서재욱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연구원

2012년 6월 20일 수요일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20일자 기사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을 퍼왔습니다.
[강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네 번째

최근 경제민주화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주요 주제는 재벌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최하는 "정승일/이종태/장하준과 함께하는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의 네 번째 강연은 논쟁의 주제가 되는 재벌개혁에 대한 내용이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의 공동 저자인 정승일 박사가 강연하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에 관한 강의가 지난 6월 11일에 있었다. 강의 내용도 제목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다.

재벌개혁 - 죽 쒀서 개주면 안 된다

재벌개혁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논의되어온 주제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재벌 위주로 돌아간다는 방증일 것이다. 특히 재벌 가족들의 편법 상속이나 재벌그룹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같은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재벌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근의 중론이다.

문제는 재벌개혁이 잘못 진행될 경우 '아니함만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마구잡이 재벌개혁은 자칫 우리나라 최대기업들의 소유지배 구조를 뒤흔들어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와 투기자본들만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 잘못된 방향의 재벌개혁이 자칫 '죽 써서 개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11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로 정승일 박사가 강의하는 '한국경제와 복지국가' 네 번째 강연이 '재벌개혁'을 주제로 열렸다. 이번 강연에서 정 박사는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와 정승일 박사, 이종태 기자의 이라는 책의 내용에 대한 해설과 함께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수십 가지 방법

정 박사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1주일 전에 이병천 교수가 (프레시안) 지상에서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는 제목의 긴 글을 쓴 것에 대해 "재미있는 제목의 글을 쓰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전에 이병천 교수에 대해 장하준 교수와 정 박사가 '재벌가문(총수 일가)과 재벌그룹(제도)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반박하자, 이병천 교수는 재벌이라는 것은 재벌 총수가문과 재벌 그룹 기업들이 한 몸으로 엮인 것이므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재벌 총수를 재벌그룹으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재반박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정 박사는 자신이 재벌 옹호론자가 아님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으므로 이를 중언부언하지 않겠다면서, 이번에는 작정한 듯이 구체적으로 재벌 기업 집단과 재벌 총수 일가를 구분해서 개혁을 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파산한 대우그룹은 왜 그룹 체제를 해체해야 했나?

정 박사는 이병천 교수의 글 제목을 얘기하면서, "재벌 총수를 재벌 그룹으로부터 구별하여, 실효적으로 떼어놓는 데는 수십 가지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재벌그룹이 파산할 경우 당연히 재벌가족을 재벌그룹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재벌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통념이 강했다. 하지만 IMF 사태와 그에 따른 재벌개혁 과정에서 많은 재벌그룹들이 파산하고 해체되었다. 정 박사는 "1997년 이전에는 흔히 30대 재벌그룹을 말했다. 그렇지만 그 30대 재벌그룹 중 1/3이 그 이후 해체되었다. 실질적으로 온전히 생존하여 재벌그룹 형태를 유지한 것은 과거 30대 그룹 중 1/3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30대 재벌이 아니라 10대 재벌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어 통합진보당이 실질적인 재벌해체를 지난 3월 공약으로 제시한 데 대해서도 "재벌해체가 별로 진보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30대 재벌그룹 중 1/3가량이 해체되고 1/3가량은 형체만 남은 1998년 이후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는지 잘 생각해보면 된다"고 충고했다. 재벌해체의 결과 대우자동차가 GM에 매각되고 쌍용차는 상하이차에 매각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또한 딤채 냉장고를 만드는 위니아만도(과거 한라그룹)와 오리온전기(과거 대우그룹)는 투기적인 영미계 사모펀드에 팔려 조각조각 해체되어 청산되었거나 지금도 그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재벌 해체론자들이 원하는 것이 이렇게 재벌 기업들이 해체되어 산산조각 나서 외국에 매각되거나, 본래 기업이 가지고 있던 가치와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인지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고 한다.

정승일 박사는 "대우그룹, 쌍용그룹, 해태그룹 등이 부도난 후 채권은행들이 그 그룹 및 계열사들의 주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병천 교수의 표현 그대로, 재벌그룹으로부터 재벌총수 및 그 가족들이 생이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병천 교수 역시 그룹 체제가 갖는 장점은 인정한다고 한다. 단독의 독립 대기업 체제보다는 대기업들로 구성된 그룹경영 체제가 선진국 추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정 박사는 "채권은행들이 재벌 가족을 대신하여 그 그룹들의 대주주 노릇을 하면 된다. 그런데 왜 그것이 안 되는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금산 분리(은산 분리)와 은행의 산업자본 대주주 역할 금지

그러고 보니 그렇다. 왜 안 된다는 건가? 정 박사는 대우그룹의 예를 계속 들었다. 대우그룹의 경우 먼저 1단계에서 채권은행단을 대표하는 당시 산업은행과 제일은행이 대주주가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이다. 채권은행들은 대우그룹이 거느리던 계열사들을 하나둘씩 매각하기 시작하였다. 왜 제일은행이나 산업은행 같은 은행들은 재벌그룹의 대주주 역할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면 안 되는 걸까?

정 박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알려면 이른바 '금산 분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 분리의 역사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정부는 대공황의 원인으로 지적된 모건(Morgan) 은행에 철퇴를 내리는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상업은행은 일반기업(산업자본)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일반기업의 부실화 위험이 그대로 은행의 부실화 위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어벽 설치 차원에서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은산 분리(은행-산업자본 분리)는 매우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조치가 아니었을까?

정 박사는 이에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당시 스위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은 미국의 조치를 따르지 않았다. 예컨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경제위기 속에서 독일의 다임러와 벤츠 자동차가 파산하였고 도이체방크라고 하는 채권 은행이 이들 회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당시 무수히 많은 독일 기업들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도이체방크는 다임러-벤츠의 대주주 역할을 회사가 정상된 이후에도 계속 수행하였다. 그 이후 70년간 계속 수행했으며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다임러 그룹은 한국 재벌그룹처럼 대기업 그룹으로 성장해서, 자동차 사업만 한 것이 아니라 항공과 IT, 철도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다양한 계열사들도 가지고 있었다.

독일만이 아니라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도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은행들이 은산 분리 원칙이 매우 엄격한 미국에 비해 더 금융위기(은행위기)를 겪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금산 분리(은산 분리)라는 원칙이 지고지순의 절대 원리가 아니라는 증거다.

정 박사는 "글래스-스티걸 법과 같은 엄격한 은산 분리 원칙을 지키는 선진국은 미국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세력조차 미국식 제도를 우상처럼 숭배한다"고 힐난했다. 한국에는 미국의 글래스-스티걸 법의 원칙이 은행법에 들어와 있고 따라서 시중은행이 비부실 기업(워크아웃 등을 졸업한 정상 기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단,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 특수은행은 예외적으로 대주주 역할을 지속할 수 있다.

개혁 진보적 학자들은 왜 은행의 일반기업 대주주 역할을 반대할까?

그렇다면 한국의 개혁적 진보 세력은 이 문제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할까? 대표적인 진보개혁 경제학자인 김상조 교수는 "은행들이 산업기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이른바 '독일식 은행 자본주의'를 한국에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은행들은 독일·스위스 은행들과 달리 독자적인 기업여신 심사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의 은행들이 독일과 스위스의 은행들과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관치금융의 관행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한국의 진보개혁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한국 시중은행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깔려 있다. 즉 한국의 은행들은 여전히 관치금융의 성격이 강하고 따라서 부실화된 대기업들에 제공되는 구제금융에서도 여전히 관치금융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관치금융을 이유로 은행의 대주주 역할을 거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김상조와 유종일 등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요구한 조급한 은행 민영화와 그 결과인 은행들의 주주자본주의화로 인하여, 은행들에 있어 고객 기업의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평가하는 심사능력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은행이 고객 기업의 대주주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제대로 된 기업통제, 기업감독 역할을 수행하려면 제대로 된 산업전문가와 업종 전문가들이 은행 조직 내에서 조직적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처럼 단기수익성 위주의 주주중시 경영으로 은행들이 운영될 경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정 박사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관치금융 비판과 조급한 은행 민영화 요구야말로 우리 은행들에 있어 기업 대주주 역할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런데 단기수익성 위주의 경영은 모피아 경제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말의 외환금융위기로 정부가 부실은행들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국유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은행 국유화 체제를 영구화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당시 그 '민주정부'들은 은행 민영화에 주력했으며 민영화 가격을 높이기 위해 은행들의 주가 올리기에만 주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국유 은행들조차 부실 재벌그룹들, 예컨대 대우그룹의 대주주 역할을 계속 수행할 의지가 없었다. 단기수익성과 주가 띄우기에 방해가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은행계 지주회사가 재벌그룹의 대주주 역할 –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

그런데, 아무튼 지난 반세기도 넘게 유지되어온 은산 분리 원칙을 갑자기 한국에서 폐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정 박사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은행계 산업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시중 은행들이 보유한 대주주 지분을 그 산업 지주회사에 이전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예컨대 현재 워크아웃에 들어가 있는 건설업체와 조선업체들의 경우, 그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산업 지주회사를 신설하고 그 지주회사를 통해 정상화된 건설사 및 조선사들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때 우리은행이 그 지주회사에 대해 대주주 역할을 하는 데서 발생하는 은산분리 원칙 침해에 대해서는, 은산 분리에 관한 은행법에 예외 조항을 신설하여 은행계 지주회사에 한해 허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경우 그룹 계열사의 부실화 위험이 은행 부실화의 위험으로 전이될 위험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 박사는 "그런 위험 전이의 가능성은 그 중간에 있는 산업 지주회사가 제대로 된 차단벽 역할을 수행하도록 잘 설계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놀라운 것은 스웨덴 최대의 재벌그룹이며 한국 재벌의 개혁방향으로 흔히 거론되는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이 사실상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SEB라고 하는 은행이 설립한 은행계 지주회사(holding company)로 출발한 Investor AB라고 하는 지주회사가 발렌베리 그룹의 핵심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핀란드에도 이런 은행계 기업그룹들이 여러 개 있다고 한다.

재벌가족의 편법 상속 – 국가적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재벌 그룹 계열사들이 부실해져 파산하였을 경우이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우량 재벌그룹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삼성그룹이나 현대기아차 그룹 같은 우량 재벌그룹에서 재벌가족을 그 재벌그룹으로부터 구별하여 떼어놓을 수 있을까?

정 박사는 삼성그룹의 사례를 들면서 "삼성은 누가 보아도 편법적인 방식의 상속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5년경 이건희 회장의 재산이 4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재용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불과 16억 원만을 상속세로 냈다. 현행법상 상속재산의 50%인 2조를 냈어야 했다. 정 박사는 "이런 경우 '재벌과의 타협'은 있을 수 없으며, 이건희 회장은 몇 년간 감옥에 들어가 조용히 반성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 박사는 그렇지만 "만약 이건희 일가가 상속세를 법규대로 50% 납부한다면, 가뜩이나 쥐꼬리만 한 이건희 일가의 대주주 지분은 그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면서, "삼성그룹 전체의 결속력을 유지해온 대주주 지분이 이렇듯 더욱 줄어들게 될 경우, 국내외의 주식투자 펀드들과 투기자본들이 더욱 설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에 대해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그런 문제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시장의 논리'에 맡기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정 박사는 "이때 시장 논리란 바로 주식시장 논리와 M&A 시장 논리를 말한다"고 평했다. 또한 "주식시장과 M&A 시장은 주가 가치 극대화 논리를 따르는 법이며, 따라서 이 경우 삼성그룹을 쪼개고 해체하여 '매각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장 논리가 작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정 박사는 "이 경우 삼성전자 같은 초대형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이 국내 자본에게는 힘에 부치기 때문에 결국은 해외 자본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LG전자가 삼성전자를 인수하는 것 역시 독점 금지에 위배되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박사는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여타 계열사들은 과거 국민의 혈세로 육성한 기업들이다. 왜 이런 소중한 기업들을 해외 자본에 매각하려야 하는가?"라고 아울러 반문했다.

재벌가족의 상속 지분을 국가 소유로 관리하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삼성그룹 해체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의 편법 상속을 지금처럼 방치할 수도 없지 않는가? 이에 정 박사는 재벌가족들의 경영권 상속(대주주 지분 상속)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즉 지금처럼 이건희 일가가 국세청에 현물(주식) 형태로 납부한 상속세를 시중에 매각하여 현금화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그 현물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그 주식지분을 보유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지주회사를 신설하거나 또는 국민연금 특별계정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만약 이런 방안이 전면적으로 실시될 경우, 삼성그룹의 핵심 대주주는 이건희 회장 일가와 함께 국가(민주공화국)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으로부터 부분적이지만 생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재용으로부터 그 후손에게로 다시 상속될 때마다 국가는 상속세로 획득한 지분의 보유를 확대할 것이며, 따라서 언젠가 국가는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가 될 것이다. 즉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생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30대 재벌 특별법을 시행하여 이런 방식의 현물 상속세를 30대 재벌그룹에 적용하게 할 경우, 국가는 앞으로 수십 년 뒤 30대 재벌그룹의 최대 주주로서 그 재벌 그룹들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정 박사의 가설이었다.

정승일 박사는 "이와 같은 방안은 현재의 상속증여세와 여타 법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시행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즉 '국유화'라는 명칭에서 연상되는 엄청나게 급진적인 방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필요한 것은 국가지주회사 또는 국민연금 특별계정에 관한 법을 새로 제정하여 그 기관이 위와 같은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재벌 가족의 상속 지분을 공유재산으로 공익적으로 관리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방안은 대기업 그룹의 점진적 국유화라는 재계의 비난과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그렇다면 다른 방식을 타협안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재벌가족의 상속 지분을 국세청에 납부하지 않고 공익재단에 기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익재단의 지배구조와 운영을 해당 재벌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방식으로, 그야말로 공익적 인사들에 의해 수행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예컨대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는 이건희 가문에서 점진적으로 수십 년에 걸쳐, 그 공익재단으로 이전될 것이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이건희 가문이 점진적으로 생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정 박사에 따르면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이 현재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발렌베리 그룹 소유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최대 주주는 발렌베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그 지주회사의 최대주주는 여러 개의 공익재단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50년 전에 시작된 발렌베리 가문은 그간 5회가 넘는 재산 상속을 했는데, 그때마다 상속세를 납부하는 대신 여러 개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그 재단에 자신들의 상속 지분을 현물로 기부했다.

그 결과 오늘날 공익재단은 발렌베리 가문을 제치고 Investor AB의 최대 주주이다. 물론 그 공익재단의 수익금은 역사와 언어학 등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연구비로 쓰이고 있으며, 발렌베리 가문 일가에는 단 한 푼도 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다. 단, 그러한 기부에 대한 대가로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들은, 그룹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이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가족원들은 Investor AB에서 적은 지분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 경우, 경영 능력이 떨어지는 무능한 후계자들은 그 지주회사의 경영 일선에 CEO로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사장(chair man) 또는 한갓 이사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무능한 재벌 3세, 4세 경영'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정 박사는 아울러 설명했다.

기업집단법을 제정하여 '무책임 황제 경영'을 '책임 황제 경영'으로 바꾸자

마지막으로 정 박사는 한국의 경우 기업집단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정 박사는 "나는 2006년부터 이미 기업집단법의 필요성에 관하고 말하고 써왔으며, 요즘에는 김상조 교수와 정태인 원장 등도 그것에 동의하는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집단법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정 박사는 이미 지주회사(holding company) 체제로 전환한 LG그룹과 그렇지 못한 삼성그룹을 비교했다. "LG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의 최상위에 있는 지주회사인 (주)LG가 상법상 주식회사다"라면서, 따라서 "(주)LG는 상장회사인 까닭에 공시의무도 있고, 감사위원회와 사외이사 선임 의무도 있어 상당 정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삼성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 최상위에 있는 미래전략기획실이 아무런 법적 권위도, 법적 의무도 갖지 않는 임의 조직이다. 정 박사는 "따라서 미래전략기획실은 아무런 공시 의무도 없고, 그것을 감독하고 감시할 이사회도, 감사위원회를 구성할 의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래전략기획실은 투명성이라곤 전혀 없는 일종의 유령 조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에서 총수 황제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기업집단법은 이와 같은 기형적인 현실을 타개하여, 미래전략기획실과 같은 그룹 경영 조직에 아예 상법상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면서 양성화,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장점은 먼저 미래전략기획실로 대표되는 그룹경영 조직을 감시하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상법상 의무화되고 또한 공시 의무도 부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삼성그룹 최상위 조직의 내밀한 활동을 감시하는 장치들이 합법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 결과 삼성그룹의 편법 상속과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 등이 지금에 비해 매우 힘들어진다.

또한 현재의 공정거래법상 재벌규제가 모두 폐지되고 상법상의 재벌 규제로 대체되기 때문에 재벌들의 구명 로비가 매우 힘들어진다. 즉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의 재량권 여지가 많은 행정 규제가 아니라 사법부 판사의 판결에 따르는 상법상 규제로 재벌 규제가 획기적으로 재편되는 까닭에, 재벌 규제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대폭 향상된다는 것이 정승일 박사의 설명이다. 즉 사후적으로 계열사들에서 소액주주와 채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법부에 모기업 또는 미래전략기획실을 소액주주 또는 채권자가 고소·고발하고 그에 대한 판결을 공무원이 아닌 사법부에서 내리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기업집단법이 제정될 경우,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무능한 재벌 3세, 4세는 경영 일선(그룹 CEO)에 나서지 말고, 후선(그룹 이사회 이사장)에 머무르게 하는 '책임 경영'이 명확하게 된다고 아울러 말했다. 즉 지금처럼 이건희 회장이 북치고 장구 치고 자기 마음대로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자신이 삼성그룹의 CEO인지, 삼성그룹의 이사장(chair man)인지 본인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를 지속하는 것보다는, 미래전략실의 최고 경영자(CEO)는 최지성 씨가 맡고 예컨대 이재용은 미래전략실 이사회 이사장(또는 이사)으로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을 법률적으로 명확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업집단법이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 경우 재벌 가족은 재벌 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몇 발짝 물러나는 것이고, 그만큼 재벌가족과 재벌그룹의 생이별이 진행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경제력 집중 축소냐, 집중된 경제력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냐

정 박사의 강연을 들은 일부 청중은 기업집단법에 대하여 "그렇게 되더라도 삼성그룹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차라리 출자총액제한 등의 수단으로 계열사 확대를 저지하는 것이 더 낳은 대안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그렇다. 기업집단법은 재벌그룹의 계열사 확대를 저지하지 않는다"면서, "그렇지만 만약 삼성그룹이 항공산업과 제약산업 같은 미래첨단 제조업 쪽으로 신규 계열사를 만들고 그것의 육성에 전력을 다할 경우, 오히려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성원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항공이나 첨단 소재, 제약 같은 미래 산업의 경우 향후 5년, 10년간 대규모투자가 필요하며 더구나 그 기간 동안 흑자가 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그런 일에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거둔 혈세를 사용하느니, 이왕이면 삼성이나 현대차 같이 이미 돈 많이 벌고 있는 기업그룹들이 대신 해준다면 국민들로서는 얼마나 좋은 일이냐는 것이다.

이 경우 삼성그룹 또는 현대차 그룹으로 경제력이 더 집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집중된 경제력(기업집단)을 사회적·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정승일 박사는 "경제력 집중 그 자체의 긍정성과 효율성까지 약화시키는 장치들(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해)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은행이나 국가, 공익재단과 같은 여타 이해관계자들이 삼성과 현대차 같은 재벌그룹의 대주주 또는 최대주주로서 역할하게 하여 그 집중된 경제력(재벌그룹 권력)을 사회적·민주국가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경제력 집중의 방지·약화'(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한)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상의 내용과 함께 이번 네 번째 강연을 마쳤다. 정 박사의 이번 강연 내용에 따라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재벌개혁에 대한 논쟁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와 복지국가' 다섯 번째 강연은 6월 18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교육실에서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 노동 문제를 가지고 진행될 예정이다.

 /한창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경제민주화, 사회민주주의냐 진보적 자유주의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11일자 기사 '경제민주화, 사회민주주의냐 진보적 자유주의냐'를 퍼왔습니다.


[강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세 번째

최근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용어가 '경제민주화'다. 그런데 독재의 반대말인 정치적 민주화가 무엇인지는 금방 이해가 되지만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경제민주화는 어렵다.

그런데 요즘 경제민주화를 놓고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와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의 경제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라는 책이 나온 이후 경제민주화에 관한 논쟁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의 공동 저자인 정승일 박사가 강연하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박정희 체제'에 관한 강의가 지난 6월 4일 있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최하는 "정승일/이종태/장하준과 함께하는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의 세 번째 강연이었다.

'경제민주화'는 무엇인가?

요즘 언급되는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재벌개혁이다. 그렇지만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이에 정 박사는 "참된 경제민주화의 궁극적 목표는 평범한 사람들, 국민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는 복지국가의 구축으로 넓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재벌개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이 바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노동시간 단축, 청장년 실업자·미취업자 문제의 해결 같은 '노동민주화'라는 것이다. 또한 대학생이 직면한 살인적인 대학등록금 문제와 주거난 문제를 해결하고 600만 노인들의 노후 생존을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 역시 참된 경제민주화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시급한 일들에 비해 왜 재벌개혁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정 박사는 아울러 힐난했다.

더구나 정 박사에 따르면 "재벌개혁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는 바, 모든 개혁은 그 개혁을 통해 달성하려는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재벌개혁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가 미국 월스트리트 유형의 주주자본주의를 만들겠다는 건지 아니면 스웨덴 유형의 복지국가인지를 만들겠다는 건지를 분명히 해야 경제민주화의 뜻이 분명해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맥락에서 정 박사는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생디칼리즘 등이 모두 자기 나름의 경제민주화론을 펼쳐왔다"며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운위되는 경제민주화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민주화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왜 자유주의만이 유일한 경제민주화냐는 반문이다. 또한 자유주의는 결국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지향하는 사상이며, 따라서 신자유주의와 큰 차이가 없고, 이 점에 관한 한 이른바 '진보적 자유주의' 역시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한국 진보의 '선택' -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가 되어야

정 박사는 (선택)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등 다양한 경제민주화론 중에서 우리 국민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고 압축했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20년간 보수와 진보에서 모두 자유주의가 지배하여 왔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공병호와 전경련·모피아, 김영삼·이명박 정부로 대표되는 보수적 자유주의이고, 또한 김상조·정태인과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아울러 "진보적 자유주의로는 더 이상 한국 진보의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경제민주화의 프레임 즉,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한국 진보가 국민들에게 제시할 국가 비전으로 선택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민주화로써 그가 제시하는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스웨덴은, 한편으로는 사기업과 시장 경제가 인정되어 재벌계 대기업이 큰 역할을 하며 경제가 대외 개방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비와 생활비가 전액 무상이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여성복지와 노인복지, 건강·의료 복지 혜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동시간이 짧고 비정규직 문제가 거의 없다. 노동자 개인과 노동조합의 권리 수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소비자 협동조합과 주택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 역시 매우 발전해 있다.

 ▲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복지국가 - 노동과 자본, 두 차원의 경제민주화

정 박사는 정태인 원장과 이병천 교수 등이 복지국가를 '사회복지의 확대'로만 한정시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정 박사는 "사회복지의 확대(즉 보편적 복지의 확대)만으로는 복지국가를 말들 수 없다"며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큰 두 영역에서 진정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먼저 노동 영역에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며, 그 핵심 목표는 개인과 개성의 해방, 즉 실질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과 개성의 창조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보수적, 진보적 자유주의가 모두 강조하는) '자유 시장'이 아니라 적극적 국가개입 즉, 복지국가적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것이 바로 노동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두 축으로 하는 종합적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하지만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자본 영역의 경제민주화도 필수적인 바, 그 핵심 목표는 자본(금융과 산업·기업)으로 하여금 이기적인 수익성 추구와 사적 부의 축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와 기술혁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라며 자본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울러 강조했다. 이 점에 관한 한, 복지국가는 '자본을 국가적으로 통제한' 박정희 경제체제로부터도 많은 긍정적인 요소들을 배워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자본을 어떤 방법으로 통제할 것인가? 하나는 완전경쟁(공정경쟁) 시장을 만들어 '시장의 규율이 기업을 통제'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즉 대기업과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잘게 쪼개어 수만 개의 중소벤처기업, 수천 개의 독립 대기업을 만들어 그들끼리 치열하게 (무한)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 및 재벌기업의 대주주(오너) 소유 지분 역시 잘게 쪼개어(이른바 '자산재분배')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김상조·정태인·유종일 등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말하는 재벌개혁이다.

그에 반해 정 박사는 "우리나라가 미래형 첨단 제조업을 대규모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런 식으로 대기업과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잘게 쪼개고, 게다가 대주주 소유 지분 역시 잘게 쪼개어 '시장 규율과 주식투자자 규율이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보다는 '불완전 경쟁'의 존재와 대기업 및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의 존재 이유 및 이들의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사회적·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사회민주화의 원리에 맞는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 박사는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려면 노동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통해 서민들의 직업과 생계를 안정시키는 것도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자본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를 통해 민간 기업들이 왕성하게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나서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한편으로는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모방하여 친노동, 친서민적인 노동-복지정책을 대폭 강화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외환금융시장에 대한 국가적 통제와 주주자본주의 통제, 대기업 및 중소 벤처기업과 협력하는 선별적 산업정책과 같은 박정희 체제의 유산과 전통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신성시하는 '공정 경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공정경쟁을 사실상 완전경쟁 시장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만약 1970-1980년대에 완전경쟁 시장을 추구했다면 과연 지금처럼 준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박정희에서 노태우에 이르는 30년 동안 한국은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대한 수입 제한, 달러화 유출입 통제 등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자본과 시장에 대한 국가적 통제 정책)을 펼쳤는데, 이것은 사실상 불공정, 불완전 경쟁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즉 한국은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제시했다.

친노동, 친성장, 반시장 노선이 바로 복지국가 전략

그러면서 정 박사는 "복거일과 공병호, 안병직 같은 뉴라이트 논자들은 마치 박정희 체제가 자유주의 체제였던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만약 박정희가 뉴라이트 인사였다면 1970년대부터 FTA를 했을 것이고, 그 경우 오늘날의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또한 정 박사는 "박정희에서 노태우 대통령 시기에 이르는 반(反)노동, 반(反)시장, 친성장(성장지상주의)의 경제 정책 중에서 한국의 진보 세력이 앞으로 계승해야 할 긍정적 요소가 바로 '반시장, 친성장적인 국가의 통제'였다"고 재차 강조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관리와 통제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 역시 그러한 국가 통제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박정희식 경제체제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 박사는 "박정희식 경제체계의 두 축은 '반노동'과 '친성장' 저책이다"라고 분석했다. 우선 박정희 체제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로 상징되듯이, 철저한 반노동 체제였음이 분명하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정 박사는 자신과 장하준 교수가 박정희 체제의 반노동적 성격에 눈을 감았다고 비판한 이병천 교수의 지적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비판'이라고 아울러 덧붙였다.

하지만 박정희 체제의 친성장주의는 곧 '친자본'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박정희식 경제체제는 친성장 체제(성장 지상주의 체제)였지, 반드시 친자본 체제는 아니었다는 것이 정 박사의 평가다.

예컨대 1970년대 당시 현대그룹이 새로 진출한 자동차나 조선 같은 중공업은 통상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약 10년 정도를 필요로 하며, 이 기간 동안은 수익이 나지 않는 무모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박정희는 정책적으로 정주영 같은 재벌 오너들에게정책자금을 지원하면서 투자를 거의 반강제 했다. 자본주의 "기업"의 제1원리는 "이윤(수익성)"이지 "경제성장"이 아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10년 동안 수익도 나지 않을 대규모 투자를 국가적으로 강제하면서까지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목적으로 했던 반시장주의, 반자유주의 정부였던 것이다.

이에 정 박사는 "우리나라도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고 발전시키려면 기업들이 왕성한 설비투자와 기술투자를 지속해야 하고 수백만 개의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신규로 창출해야 한다"며 "만약 금융시장(증권시장)과 기업들이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이러한 일을 꺼린다면, 그들에게 '족쳐서라도(강제해서라도)' 그런 일을 하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 박사는 "우리가 에서 주장했던 것은 박정희 체제의 이런 일부 경제 정책 요소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지, 박정희 정권 그 자체를 찬양하거나 박정희 시기에 있었던 정책들을 모두 지지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자신들을 향해 많은 진보 인사들이 '박정희 체제를 찬양'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데 대하여, '헛다리짚고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 '한국경제와 복지국가'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20년간의 한국 자유주의는 무엇을 남겼는가?

그렇다면 경제민주화의 목표로 제시한 복지국가와, 민주화를 억압한 독재정권인 박정희 체제 사이에 그 무슨 친근성이 있다는 것인가? 정 박사는 스웨덴의 사례를 들었다. 사회민주당이 무려 70년 동안이나 장기 집권한 스웨덴은 전후 수십 년간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을 우리나라의 박정희식 경제체제와 같이 엄격하게 규제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후반에 이러한 규제를 대폭 폐지했다. 그리고 그 결과 부동산 거품이 크게 만들어지면서 1992년 대규모 금융위기를 겪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박세일 사단(자유주의 그룹)'의 의견에 따라 박정희식 경제체제를 대대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후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사령탑'인 경제기획원이 1994년 해체되고,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하면서 가입의 선결 조건으로 요구 받은 외환금융시장의 개방과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1997년 말에 외환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영삼 정부가 표방한 '자유주의(세계화 정책)'가 친노동이었던 것도 아니다. 박정희 경제체제의 핵심이 반노동과 친성장(반시장)이었다고 한다면, 김영삼 정부는(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인데) 반노동, 친시장(친자본)이었다. 게다가 정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에 이어 출범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반노동, 친시장(친자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부였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크게 활약한 이른바 '정운찬 사단(진보적 자유주의 그룹)' 역시 '박세일 사단'과 대동소이한 친시장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하여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이르는 20년간의 '자유주의의 시대'에 박정희 체제의 반노동적 성격은 그대로 유지된 반면, 박정희 체제의 '친성장주의, 반시장주의'의 요소들은 계속 파괴되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 오히려 민주정부 기간 동안 그 이전에 비해 경제 성장이 잘 안되고 빈부 격차는 군부독재 시절보다도 훨씬 심해졌다. 이런 식의 경제민주화를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계속하겠다고 하는 것이냐고 정 박사는 반문했다.

핀란드 복지국가 – 스웨덴식 복지국가와 박정희식 시장 통제의 결합

한국의 경우 북유럽, 특히 핀란드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박정희식의 은행 국유화와 선별적 산업육성정책, 대기업-재벌그룹(노키아그룹) 육성 등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라 불리는 요소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1960년대에 집권한 핀란드 사회민주당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냈다. 관치경제와 재벌그룹 등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우선 청산되어야만 비로소 그 바탕 위에서 복지국가 만들기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얼마나 헛다리를 짚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핀란드의 사례라고 정 박사는 말했다.

복지국가에서도 역시 소득의 단순 재분배(2차 분배)와 좁은 의미의 사회복지는 만능이 아니다.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를 통해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와 꾸준한 경제성장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복지국가의 유지에 필요한 엄청난 재정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에 정 박사는 "복지국가에 필요한 주요 재원인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도 자본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통제를 통해 달성되는 왕성한 생산적 투자와 경제성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친노동 복지국가는 친성장, 친생태 국가

하지만 경제성장을 옹호한다고 하여 그것이 반생태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이에 정 박사는 "경제성장과 함께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최고 수준의 복지가 달성되어 대다수 국민들이 당장 아등바등하는 삶에서 벗어나 훨씬 여유로워지면 독서와 문화, 교양을 통해 세상을 넓고 깊게 보는 것이 대폭 확산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생태나 환경이 인류 공동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태주의적 자각이 크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자력 발전소 폐기가 유별나게 스웨덴과 독일 같은 복지국가들에서 보수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크게 지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생태환경적 자각이 친노동 복지국가가 된다고 하여 저절로, 자동적으로 달성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복지국가 운동 역시 친생태 계몽운동과 함께 생태주의 운동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그는 덧붙였다.

 /한창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