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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8일 화요일

철도, 전기, 가스, 물, 의료...박근혜 정부 총체적 민영화

[출처: 민주노총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전기, 상수도, 의료 등 민영화 추진 가속도
진주의료원 폐쇄 예고 등...“민주노총 총력투쟁 나설 수밖에”

전기, 상수도, 의료 등도 민영화 추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노조에 의하면 전력산업의 경우, 정부의 민영화 정책으로 민자 발전회사의 설비용량은 5개 화력발전 공기업 보유 대비 6.6%에서 19.3%까지 증가해 2013년 현재 화력발전 공기업 1개 규모에 이르렀다. 

설비 증가율에 있어서도 전체 설비용량이 44.2% 증가하고 5개 발전공기업이 31.6% 증가한데 비해, 민자 발전회사의 설비용량은 282% 늘어났다. 전력산업 민영화는 그동안 민자 발전 확대의 방식으로 꾸준히 진행되어 온 것이다. 

또한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하면 향후 2027년까지 민자 발전회사는 총 11,760MW 발전설비를 건설한다. 민자 발전은 복합 화력을 포함해서 석탄 화력까지 진출했고 삼성물산, 동양, 동부, 대우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에너지․건설 민간 자본이 대거 진입했다.

김동성 발전노조 정책실장은 “전력산업 민영화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며 “발전산업 공기업이 운전, 유지해 온 것이 민자 발전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노조는 먼저 지역 주민,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민자 발전 추진을 최소화하고, 정부가 민영화 정책을 폐기해 한전으로 통합해서 국가 관리, 사회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진주의료원 폐쇄 문제로 불거진 정부의 공공의료 민영화 추진에 대해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사무국장은 “홍준표 도지사가 진주의료원 재정 적자 운운하다가 이제 노조 존재 자체도 부정하고 있다”며 “공공병원 폐쇄는 서민과 환자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수도 민영화의 심각성을 제기한 이수현 공무원노조 사회공공성위원장은 “2001년 수도법이 개정되고 상수도 민영화에 민간, 외국계 기업도 참여하려고 하고 있다”며 “상수도가 민간위탁 되면 요금인상은 불가피하다”고 꼬집었다. 현재 전국적으로 수자원공사, 환경공단 등으로 상수도 민간위탁이 추진되고 잇는 가운데 2002년 경남 마산 지역을 시작으로 경북 안동․영주․상주, 전북 전주․남원, 충남 부여․당진․예산·․홍성, 충북 진천, 경기 광주 등 12개 지역에서 상수도 민간위탁 추진을 저지한 상황이다. 

이호동 민주노총 비대위원은 “지난 15년 동안 노동자들은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투쟁을 해왔고, 정부는 민영화를 강행해왔다”며 “공공부분을 자본의 이윤 추구 도구로 전락시키는 박근혜 정부를 보며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공공부문 민영화가 강력한 국민 저항에 부딪히자 정부와 자본이 우회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공공부문 민영화를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민주노총은 총력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재은 기자

2013년 5월 1일 수요일

노동이 부정되는 학교, 자본이 점령한 교육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01일자 기사 '노동이 부정되는 학교, 자본이 점령한 교육'을 퍼왔습니다.
[교육 살펴보기]
몇 년 전,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 걸렸다는 급훈 하나가 알려진 적이 있었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당시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씁쓸한 반응을 나타냈다. 단지 입시경쟁에 왜곡된 교육의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급훈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장을 가거나 미싱을 하는 노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을 천박한 것으로 규정하고,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는 교육.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와 노동이 언제 존중받아 본 적이 있었느냐만 되돌아 보건대, 교육영역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폄훼와 부정은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87년 6월 항쟁으로 헌법이 바뀌고, 곧이어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전국에서 노동조합의 깃발이 휘날렸고, 노동의 권리와 노동자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년 뒤, 교사들은 노조를 만들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출범. 정부와 보수 세력들은 어찌 신성한 스승이 스스로를 감히 비천하고 불온한 노동자라 주장할 수 있냐며, 1519명의 교사를 거리로 내쫓았다. “우리도 노동자요”라는 교사의 목소리가 부정되는 현실 속에 노동에 대한 교육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기는 어려웠다.
이런 현실에 맞서 교사들은 노력했다. 교육의 영역 속에 ‘참교육’이란 이름으로 노동에 대한 고민이 조금이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실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10년 만에 전교조의 합법화가 이뤄지고, 비로소 교사도 노동자라는 그 당연한 요구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었다. 노동을 보장하는 교육으로 향하는 길이 조금은 열렸다고 보았지만, 전경련 등 자본의 움직임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 차세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자본은 먼저 교과서를 분석했다. 그들과 뜻을 함께한 학자들은 사회와 경제, 역사과목 교과서의 내용이 빈부격차 등 시장경제의 한계를 과도하게 지적하고, 대기업의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해 기업가정신을 부정하는 등 반시장적이고 좌편향되어 있다고 규정했다. 헌법에서 규정한 노동3권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과서들을 두고 말이다.
이어진 건 교과서의 직접 개발. 그들은 2007년부터 (차세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등을 개발하고 일선 학교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교과서의 내용은 시장과 기업에 대한 찬양 일색일 뿐, 노동을 위한 자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노력의 대미는 2011년 발표된 ‘사회교육과정 개정시안’이었다. 중·고교 사회·경제 교과서의 집필 지침이 되는 시안은 앞서 전경련의 교과서 개발에 참여한 연구자가 주도한 것이었다. 시장의 한계와 정부 개입을 다룬 부분이 삭제되었다. 노동의 사회적 중요성, 노동자의 역할을 다룬 내용도 없어졌다. 노동과 노동자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건 개인금융과 자산관리의 내용이었다. 최종 고시에서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빚어졌기에 몇몇 내용들이 수정되었지만, 친기업적인 방향은 결코 수정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자본은 노동의 교육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하는 것 또한 항상 잊지 않았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노동인권교육 실시에 대한 뜻을 비쳤을 때, “계급적 성향의 교육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념노동운동가 양성을 꾀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비난했다. 이미 자본으로 교육의 영역이 기울어진 현실이지만, 노동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늘어나지는 않을까봐 온갖 생색을 부린 것이었다.
자본은 치밀하고 성실했다. 그러나 교육에서 노동의 가치를 옹호하려는 측은 어떠했나. 전교조는 전경련의 경제교과서가 논란이 되었을 때,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교과서를 제작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대의원대회 사업으로 통과시켰지만 어찌 된 이유에선지 교과서는 제작되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노동교과서에 들어갈 내용은 각론 혹은 단행본의 형태로 발표했다고 하나 자본의 모습과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편, 교육과정 내에서 노동이 부정되는 것과 함께, 교육현장인 학교를 유지하는 노동 역시도 그 존엄을 위협받고 있다. 정교사 수는 그대로인 채 어느새 기간제 교사의 수는 3년 내 50% 이상이나 증가했다. 행정실 등 학교 곳곳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만성적인 고용불안,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조건이 그들의 노동을 옥죄고 있다. 비록 이제 그 주체들이 조직화되고, 조금씩 저항들이 나타나고 있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또 이젠 전교조 역시도 합법화 14년 만에 정부의 탄압으로 법외노조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123주년 노동절인 지금 우리에게 놓인 난망한 현실들. 물론 교육이 사회와 분리된 것이 아니기에,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가 철탑에 올라가도,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꿈적 않는 반노동적인 사회의 모습이 교육에서도 자연스레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육이 사회를 유지하는 재생산기구이기에, 즉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지금 현실이 더 암담하다.
앞으로 반전이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오늘 전교조가 노동절을 맞아 공동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업의 내용으로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인권을 다룬다고 한다. 좋은 소식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지금은 단기적인 실천을 넘어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이 필요할 때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존중받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자본만큼 더 치밀하고 성실해져야 한다.



전누리  |  webmaster@mediaus.co.kr

2013년 4월 13일 토요일

전태일에게 꽃바치며 맹세했던 그녀는 어디로 갔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4-13일자 기사 '전태일에게 꽃바치며 맹세했던 그녀는 어디로 갔나'를 퍼왔습니다.
쌍용차 철거, 노동부 업무보고엔 ‘고용’만 가득…“박근혜 정부, 노동을 권리가 아닌 관리대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후보 시절 전태일 재단을 방문했지만, 전태일 재단 측의 거부와 쌍용차 노동자들 등에 의해 방문이 무산됐다. 이어 청계천변에 위치한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자 했으나 이 역시 쌍용차 노동자들에 의해 쉽지 않은 과정을 겪었다. 당시 박 후보는 전태일 동상 앞에서 “노동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어도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한문에 설치된 쌍용차 노동자 분향소가 지난 4일 강제 철거됐고 이에 앞선 지난달 27일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천막도 기습 철거됐다. 이와 함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화 움직임도 벌어지는 등 노동탄압 양상은 이명박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노동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대선 핵심공약으로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을 내세웠지만 여기에 노동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2013년 업무보고에는 이 같은 문제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총 62페이지의 업무보고에 노동계 최대 현안인 ‘쌍용차’는 불과 2번 언급된다. 그나마 해법도 아닌 현 노사관계 문제에 있어 “비정형적 노사분쟁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조율기제가 미흡했다”는 평가의 한 사례로 언급될 뿐이다.

고용노동부의 보고서는 전반적으로 ‘고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대립적 노사관계의 원인도 “대기업·정규직 노조의 단기적 이익 극대화 추구, 상급단체의 과잉 정치활동” 등 노조의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진단이 이러니 해법도 없다. 고용노동부는 ‘미래창조형 상생의 노사관계’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를 위한 방법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추진’이란 추상적 형태로 나타난다.

그나마 이번 업무보고에서는 최저임금과 임금체불, 불법파견에 대한 해결의지를 보였다는 점이 전향적이나, 사회적 의제가 돼 버린 쌍용차 등 노사관계 현안에 대한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8월, 서울 종로 청계천 6가 전태일 다리를 방문, 헌화를 하려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공통적으로 박 대통령이 노동을 권익의 문제가 아닌 관리의 대상 정도로 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최저임금 일부 인상 등에 대해선 성과가 나올 수 있지만 노동권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배제하는 전략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고용노동부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업무보고의 대부분이 일자리 문제였고 노사관계나 노동권 문제에 대해서는 업무보고의 비중이 너무 적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때문에 현안질의의 경우도 대부분 고용 쪽 비중이 높았다”고 말했다.

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부터 노동권 문제가 없었다”며 “전태일 동상 방문은 제스처였고 쌍용차 국정조사도 말 바꾸기를 했다”고 지적했다. 은 의원은 “노동자에 대해 ‘배려’의 관점에서 접근하지만 ‘권리’로 접근하는 관점이 없다”며 “때문에 노동권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획기적인 정책을 펼칠 것이란 기대도 없고, 다만 노동권에 입각해서 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는 두고 볼 문제”라고 말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명박 정부가 ‘반노동’이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무노동’이라고 얘기할 정도”라며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관점이 현저하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전교조 법외노조 논의나 민주노총을 배제하는 방식을 보면 노동을 홀대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이 눈에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노동을 사회의 중요한 주체로 구성하는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며 “국민대통합을 말할 때, 노동을 어떻게 포용할 것이냐 정당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이냐가 핵심인데 현재까지는 이명박 정부의 연장선에서 배제하고 홀대하는 정책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전향적인 반전이 있지 않는 한 오히려 노동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이 없다는 지적은 받았지만 고용과 노동은 사실 분리하기 어렵다”며 “고용노동부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나 사내하도급, 노사관계 등 노동분야가 업무보고에 포함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안사업장 문제는 업무보고에 쓰기 어렵다”며 “현대차 문제의 경우도 사내하도급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김미정 정책실장은 “결국 노동이 고용에 대한 하위개념으로 밖에 자리 잡지 못했다”며 “고용률을 높이는, 수치에 집착을 하면 노동권이 보장될 일이 없다”고 우려했다.

김 실장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관은 무시 수준이 아니라 노동기본권을 중심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전략”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창조컨설팅 문제 등 이미 노동을 탄압하고 방조하는 토대를 마련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 토대 위에서 반 노동정책이 구체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강훈종 대변인도 “지금 정부가 노사 관계보다는 고용 쪽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다보니 현장의 여러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려나 해결하려는 의도 크게 없어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강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관에 대해 “그건 좀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경제민주화나 고용률 70%, 중산층 70% 복원이 나쁜 말은 아니지만 정책 실현이 문제”라고 말했다. 강 본부장은 “하지만 아직 가시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조준호 진보정의당 대표는 “노동문제의 핵심은 노사 문제에 있다”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현대차 불법파견, 한진중공업의 손배 가압류 등이 사실은 한국사회의 주요 갈등요건이고 그렇다면 노동부가 정리해고를 방지한다거나 관리감독 철저히 하는 등 사전 예방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지금은 노동 없는 고용노동부가 될 것 같다는 우려가 된다”며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어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1500만 월급쟁이’라는 수준이 될 것 같다”며 “이 나라가 노동 없는 나라가 된다면 이명박 정부 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정상근 기자 | dal@mediatoday.co.kr  

2013년 2월 16일 토요일

"박근혜 인사, 박정희 '엔마초' 닮았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15일자 기사 '"박근혜 인사, 박정희 '엔마초' 닮았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노동과 복지 '페어'하게만 해달라"

엔마초(閻羅帳, '염라대왕의 수첩'이란 뜻의 일본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사(人事) 비망록을 그렇게들 불렀나보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서 '엔마초'를 연상한 건 그의 협소한 인재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널리 인재를 구하는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흔한 말이지만 인사가 만사다. 사람 쓰는 폭이 좁으면 사고가 난다. 낙마한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 정홍원 새 후보자 얘기 도중에 남 전 장관이 혀를 찼다. "총리는 상징성이 있는 자리인데 왜 전부 다 병역 기피인가?" "자식들 군 미필 사유가 합법적이라도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것은 다르다. 국민이 납득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직을 대행하거나 승계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겠나." 남 전 장관과의 인터뷰 뒤 정홍원 후보자는 위장 전입 사실도 시인했다.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세세한 평가는 말을 아꼈다. 다만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인사는 김장수 내정자의 이름을 굳이 언급하지는 않으면서도 비판적인 의견을 보였다. 개인 품평보다 군인 출신을 안보 책임자로 택한 박 당선인의 국가안보관이 더 거슬렸던 모양이다. "국가 안보에서 군사 분야는 종속적인 역할이니 주 역할인 국제 문제에 대해 안목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얘기다. 남 전 장관은 "주객이 전도된 잘못된 인사"라고 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복지공약 후퇴 문제에 대해선 개별 공약 하나하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면서 다만 "복지를 안 하려면 몰라도 하려면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남 전 장관은 "박근혜 시대에 복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위권까지만 가도 엄청난 것"이라며 "세금을 안 올리고 복지를 해결한다는 건 넌센스"라고 했다. 

북한 핵실험 정국과 관련해선 박 당선인에게 긴 안목을 당부했다. "북한의 핵실험이 잘못이고 당연히 규탄받아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규탄만 하고 끝나서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당장은 관여 정책이 제재론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북아 역학 상 미국의 대북 정책이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서다. 남 전 장관은 "박 당선인은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적도 있고,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 보다는 유연성이 더 있다고 본다"며 "박근혜 정부도 관여 정책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북한이라는 '궁한 쥐'를 몰아붙이기만 하면…"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공약으로 내놓긴 했지만 북한의 3차 핵실험 이전부터 '과연 그대로 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었다. 핵실험을 이후로는 보수세력이 초 강경 기조를 주문하고 있고, 박 당선인에게 기대했던 '이명박 정부보다는 유연한' 대북정책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많다.

남재희 :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전 세계가 규탄하고 있다. 중국도, 구 공산권도 핵실험 잘 했다는 나라는 없다. 이럴 때는 다른 얘기를 해서 속된 말로 '김새게' 할 필요 없다. 전 세계가 규탄 분위기니까 (우리도) 규탄을 해야 맞는 것이고, 시점상 다른 얘기를 하기는 어렵다. 다만 북한의 핵실험이 잘못이고 당연히 규탄받아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규탄만 하고 끝나서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역지사지의 발상이 필요하다. 북한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보면 그동안 진행된 6자회담의 문제가 상당히 중요하다. 6자회담은 이제까지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었고, 앞으로도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될 것이다. 남북과 미국, 중국이 주역이고 측면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끼는 이런 방식이 제일 바람직하고 앞으로도 해결이 된다면 이런 방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6자회담 방식에서 문제가 풀리려면 미중 간에 어떤 해결책이나 합의점의 모색이 있어야 한다. 지금 미중은 동북아에서 대립 코스다. 미국이 계속 동북아에서 군사적으로 강화하고 있고, 중국과의 화해가 아니라 중국을 압박하는 코스로 간다. 그러니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도 부차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미중 판(版) 데탕트가 오기는 오겠지만 아직은 요원하다. 이런 양상에서는 남북 문제도 해결을 낙관할 수 없다. 당분간은 비관적이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지금 독 안에 든 쥐다. 독 안에 든 쥐가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 자구책으로 핵무장을 하고 최후 발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상태에서 독 안에든 쥐를 계속 몰아붙이는 것이 해결책일까? 동양의 지혜는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궁한 쥐는 쫒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 몰아붙이면 돌아서서 사람을 문다. 그게 지금 핵무장 아닌가.

그러면 이걸 어떻게 풀어주느냐, 국제관계 원칙에서 '기브 앤 테이크'가 있어야 한다. 뭘 주고 받아야 한다.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반대급부가 포함돼 있다. 또 미국도 여러 가지 경제적으로 북한을 좀 '봐 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국교도 정상화해 주고 남북 간에 평화협정도 해 주겠다, 이런 것 아니냐. 그게 '기브'다.

그런 것이 이제까지 돼왔던 얘기인데 MB정권은 '비핵·개방·3000'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핵을 포기하면 원조를 해주겠다고 했다. 이게 문제가 있었다. 비유하자면, 권총강도에게 '권총을 치우면 돈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강도 입장에서는 치우면 돈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협상 원칙에 어긋나는 거다.

그런 면에서 MB 정부의 대북 제안은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 핵 포기와 원조 절차가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상호 신뢰가 점진적으로 축적되고 쌓여 나가면서 마지막에 가서 '권총'을 치우면 왕창 더 주고 해야 하는데, 중간의 절차가 전혀 없는 거다.

현재 북한이 핵실험을 한 걸 규탄해야 마땅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를 놓고 볼 때 핵을 해소하는 것과 북한에 '핵을 없애면 이런 경제적·외교적 이익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병행돼야 한다. 이걸 인게이지(관여. engage) 정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관여 정책을 안 했다. 그게 문제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 특히 존 케리 국무장관 지명자는 관여정책 쪽으로 갈 것으로 본다. 그런 성향을 공언하고 있기도 하다. 핵 포기와 정권의 시큐리티(안보)를 보장하는 절차를 병행해 진행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있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 봐도 그렇고, 또 그렇게 해야 중국도 납득하고 북한을 설득할 힘이 생긴다.

내가 만약 김정은이라면, 10년 20년 온갖 고생을 하며 핵을 개발했는데 (포기하려면) 뭔가 반대급부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물론 핵개발은 규탄받아 마땅하다는 전제 위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이거 잘못하면 나보고 또 용공이라고 한다. (웃음) 아무튼 뭔가를 주고 받고 하는 것이 국제관계상 관례였는데 이명박 정부는 포기하면 준다고 하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 5년을 보냈다. 그게 뭔가. 잘못한 거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배경에 대해) 막연히 짐작하는 것은 '북한이 곧 망한다'는 상정을 깔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한다. '망한다'는 전제로 시간낭비만 한 것 아니냐. 장기적으로는 망할 값이라도 그걸 전제로 정책을 수립하면 어떻게 하나.

"당장은 못 해도, 결국 북핵 해법은 개입정책 뿐"

프레시안 :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겠지만 '사실상(de facto)의 핵 보유국' 지위에 올랐다. 그런 면에서 남 장관이 강조한 6자회담 틀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남 장관 말씀대로 미중관계라는 독립변수에 남북관계가 종속변수인 현실을 인정하면 박근혜 정부는 운신의 폭이 훨씬 줄어들지 않겠나?

남재희 : 줄어들었지. 없어진 건 아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미중 간에 어떻게 대화가 풀리느냐가 문제다.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같다. 6.25 전쟁이라는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그러면 (미중이) 서로 간의 합의점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것은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원조일 것이다. 그 선에서 타협이 이뤄져야지, 그냥 무조건 포기하라는 것은 상식에 안 맞다.

프레시안 : 국제사회의 제재 조치가 조만간 가시화 될 것이다. 경제적 제재와 해상 봉쇄까지 거론된다. 한국정부가 국제적 제재에 동참한다고 해도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막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뭐가 될까?

남재희 : 그건 국내 민심이 있으니, 국민이 들고 일어나니 그 불안과 분노도 생각해 줘야 한다. '이렇게 됐으니 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북한 욕하고 규탄대회도 하고 그래서 풀어야겠지.

가이드라인은, 전쟁은 한국이 단독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상식의 문제다. 미국도 강경하게 제재는 할지 몰라도 전쟁은 안 할 것으로 본다. 미국이 전쟁을 한다면 북한보다 이란이 더 쉽고 더 급하다. 퇴임을 앞둔 리언 파네타 미 국방장관이 '이란과 북한, 두 곳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는데 두 곳 가운데는 이란이 더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로비가 미국 정부의 목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남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케리 국무장관 체제의 미국이 확실히 관여정책 쪽으로 갈 것으로 본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명박 정부 때보다 조건은 더 악화됐는데, 그것을 무릅쓸 만큼 박 당선인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확고하다고 보나?

남재희 : 나는 그렇게 본다. 박근혜 정부도 관여정책으로 가야지 어떡하나. 박 당선인은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적도 있고,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유연성이 더 있다고 본다. 하지만 당장은 국민 감정도 있고 하니 못 하겠지만, 몇 달 지나고 나면 가라앉을 것이니 관여정책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일각에선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대화의 문을 일단 열어야 한다는 입장인데?

남재희 :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개입정책이라는 기본적인 정책적 자세가 중요한 것이지, 특사가 무슨 효과가 있겠나. '쇼 비즈니스'(보여주기식)밖에 안 된다.

"국가안보실장, 잘못된 인사…그런데 총리는 왜 다 병역 기피냐?"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의 총리와 장관 후보자 일부가 발표됐다. 13일 현재까지 나온 것은 총리와 외교부, 국방부 등 6개 부처 장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비서실장 등이다. 어떻게 평가하는지?

남재희 : 장관은 상징성이 약하다. 그건 좀 더 지켜보자. 총리는 엄청난 상징성을 가진다. 하지만 사실 힘은 없는 자리다. 그런 면에서 '책임총리제'라는 얘기는 불가능하다. 넌센스다. 생각해 보라. 그 어려운 대선을 치르고 대통령이 됐는데, 아무 것도 안 한 사람한테 권력을 왜 나눠줘? 역학상 못 하는 것이고, 오히려 나눠달라고 하는 게 이상한 것이다. 다만 상징성은 있다. 대통령 유고 시 직을 대행해야 하는 자리다.

▲남재희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그렇게 상징성이 있는 자리인데 왜 전부 다 병역기피인가? 체중 미달 얘기도 있고 디스크 있는 경우도 나오는데, 국민들은 아마 다 '나이롱 환자'로 볼 것이다. 과거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떨어진 것도 병역 문제 때문 아닌가. 김용준 인수위원장도 뭐라고 하든 국민은 안 믿었다. 이명박 정부가 지하 벙커 회의를 했는데, 참석자 거의 전원이 군 미필인 것과 비슷한 것이다.

물론 (김용준, 정홍원 후보자의 경우) 자식들의 군 미필 사유는 합법적인 것이겠지만, 합법적이라는 것과 국민의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다르다. 국민이 납득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직을 대행하거나 승계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겠나.

그리고 경호실장을 육군참모총장 출신이 한다는 것은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기발한 인사라고 본다. 다만 박 당선인의 부모가 전부 비명에 갔고 그래서 박 당선인이 신변 안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면에서 나는 '그건 국민이 너그럽게 이해해 주자'고 하고 싶다. 그걸 문제 삼거나 갑론을박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국가안보실장 인사는 문제가 있다. 국가 안보, 즉 내셔널 시큐리티(national security)는 국제정치적 요소와 군사적 요소가 결합돼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역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안보 전문가가 누구냐, 국제정치 전문가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다. 부시 행정부 때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국가 안보라고 하면 군사 분야는 종속적인 역할이고 주 역할은 국제 문제에 대해 안목 있는 사람이 한다.

한국도 그렇다. 한국은 오히려 미국보다 국제관계의 중요성이 더 크다. 휴전선에서 북한하고 투닥투닥 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순수 군인 출신을 안보 책임자로 택했다는 것은 잘 된 인사는 아니다. 물론 그 내정자가 어떤 분인지 나는 잘 모른다. 대단히 유능한 분일 수도 있다.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겠으나, 평균적 인간이라고 가정하면 인사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원래 국가 안보는 국제정치가 주(主)이고 군사 문제는 종(從)인데 주객이 전도됐다.

프레시안 : 말씀을 듣고 보니 원래 한국도 외교안보 사령탑은 북한 전문가들 아니었나? 과거에는 부총리를 겸한 통일원 장관이 외교안보를 총괄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했다. 그렇게 보면 군 출신이 안보 사령탑이 되는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인데?

남재희 : 그렇다. 전례 없는 일이다.

프레시안 : 한편에서는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이 폐쇄적이라는 얘기도 있고,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나 법조인 출신을 선호한다는 세평도 나오고 있다.

남재희 : 육사, 법조인 선호라는 것은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 아직 몇 사람 안 나왔다.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슷해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인사에서 유명한 게 일본 말 '엔마초(閻羅帳)'다. 염라대왕의 수첩이라는 뜻의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기 수첩에 '누구는 쓸 만하다, 누구는 못 쓴다'라고 다 메모를 해뒀고 그것을 살펴서 인사를 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별명이 '수첩공주'인데 아버지에게 보고 배운 것 같다.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것일 수 있다. 자기가 경험한 것을 적어둔 것이니까.

다만 그렇게 하다 보면 인선의 폭이 아주 좁아진다. 현재 박 당선인도 인선 폭이 좁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널리 인재를 구하는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등용하란 것은 아니지만, 수첩에 적힌 사람만 가지고 하다 보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박 당선인은 대권이라는 보석을 손에 쥐고 아까워서 손을 펴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좀 펴도 괜찮은데. 새누리당은 뒀다 뭐 할 건가? 새누리당 사람들도 광범위하게 등용해야 한다. 다만 대통령이 정당에 너무 의존해도, 너무 소외시켜도 정치는 망한다.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묘미다.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증세 해야 한다…노사관계선 노동-자본 공정히 대해야"

프레시안 :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박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복지 강화 추세에 맞게 굵직한 공약을 내놨는데, 대표적인 것이 기초노령연금 20만 원과 4대 중증질환 국가 100% 보장이다. 그러나 둘 모두 공약 수정 논란을 빚고 있다.

남재희 : 그게 논란점인데, 공약에 대해 '다 지키라'는 논조도 있고 '취사선택하라'는 논조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대선 공약을 곧이곧대로 지킨다는 것은 무리고 재검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과했다 싶은 것은 솔직히 얘기하고 뒤로 미루자고 하면 되는 것 아니냐.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고 국민도 납득하리라 본다.

다만 복지는 세계적 조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하위권이다. 중위권까지는 가야 한다. 우리가 수출이 몇 위권이고 뭐가 몇 위고 하던데, 양적으로는 상위권인데 복지가 하위권이면 어떡하나. 수출은 무슨 7대 강국이라고 하면서 복지는 하위권이니 국민이 납득을 못 하는 것이다.

중위권 정도만 박근혜 정부 시대에 가도 엄청난 것이다. 개별 공약 하나 하나에 얽매일 필요 없이 취사선택하며 전반적으로 복지를 중위권까지 올리면 국민도 납득할 것이다.

또 박 당선인이 '세금 더 못 걷는다'고 하는데 더 걷어야지. 세금도 OECD 평균보다 낮다. 더 올려야 한다. (재원을) 지하경제에서 빼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도 지하경제 규모가 크다고 하는데, 어느 나라라고 그걸 그냥 두고 싶어 그냥 두겠나?세무 당국이 줄이려고는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지하경제를 줄이려고 노력은 하되 기본적으로는 세율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율을 안 올리고 복지를 해결한다는 건 넌센스다.

프레시안 : 증세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

남재희 : 해야지. 그건 국민에게 납득을 시켜야 한다. 복지를 안 하려면 몰라도 하려면 증세는 불가피하다. 미국도 하고 프랑스도 하는데 우리라고 증세를 안 하고 어떻게 복지를 해결하나? 그건 도깨비 방망이 놀음이지. 구체적인 얘기는 경제 전문가들이 수치를 놓고 따져야겠지만 기본 원칙은 그렇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노동 현안 문제도 좀 여쭤보겠다. 연초부터 '절망자살'이란 말이 나오고 있고, 쌍용차 사태도 한진중공업 사태도 막혀 있다. 그런데 정치에선 노동 문제가 배제된느낌이다. 밖에서는 날이 갈수록 절망적인 상황이 돼 가는데 문제를 풀려는 여야의 의지는 퇴행하는 것 같다.

남재희 : 노동은 기본적으로 법에 문제가 있다. 법에 세부조항, 비정규직 등의 문제가 있다. 그런데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같은 법도 집행하기에 따라 달라지고, (집행하는) 정권이나 검찰·경찰, 관(官)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노동 문제 가운데 노동부 소관인 것은 일부고, 더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은 행정관서, 특히 검·경이다. 노동자가 파업 한다고 잡아넣는 건 검·경이고 거기에 중형을 때리는 건 법원이다. 파업한다고 손해배상 몇십 억을 때리니 그런 게 들어오면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러니 자살하는 것이다. 검·경·지자체 등이 종합적으로 얽힌 문제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했는데, 밑(의 관공서)에서는 그게 '레이버 언프렌들리'(labor unfriendly)로 해석돼서 대통령 산하 모든 공공기관이 그렇게 처신을 했다. 그게 오늘날의 비극이다. 제일 가관인 것은 공권력의 사병화(私兵化)다. 용역이 노조를 때려잡는다. 깡패 집단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니 해결할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노조를 위한다'고 할 필요도 없다. '페어'(fair. 공정)한 태도만 취해 줘도 밑에서 다 알아서 한다. 그런데 정권이 '비즈니스 프렌들리'만 하니 법원도 몇백 억씩 때리고, 검찰은 툭하면 기소하고, 경찰은 잡아다 조지고, 노동부도 노조 사정을 안 봐주고 이런 것이 축적된 것이다. 내가 노동부 장관을 해 봐서 대강 짐작하는데, 정권의 태도 문제가 크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노동에 적대적으로 해왔다는 게 문제다. 어느 정권이든 '페어'하게만 해 주면 풀린다.

관청의 법 해석 문제가 중요한데,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굉장한 차이가 있다. 해석에 따라 백이 흑도 되고, 흑이 백도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장관 시절 모 기업의 노조가 어용노조였는데 그 때는 복수노조 허용이 안 되던 시절이라 다른 노조가 등록을 못 했다. 그러다 기존의 어용노조가 절차상 하자로 해산되게 됐는데, 그러자 진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세력이 노조를 구성해 설립신고를 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는가 하면, 노동부에서는 기존에 있던 노조에 해산 요건이 발생한 시점이 해산 시점이 아니라 관할 노동위원회에서 해산을 인정해서 선고를 해야 해산이 된 것으로 봤다. 그래서 등록이 안 된다고 했는데, 야당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서 '그럼 관청에서 사망신고 접수를 안 하면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거냐'고 했다. 양쪽 다 일리가 있다. 이렇게 해석 문제가 애매한 것이 굉장히 많다.

기본적으로 현행법만 가지고도 관이 적대적으로 나가느냐 우호적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천양지차가 생긴다. 그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이 정권의 의지인데, 이명박 정권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만 하다가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으로서는 모르겠고, 인사 하는 것을 봐야 알겠지.

만약에 박근혜 정부가 김종인 박사(전 박근혜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장)를 중용하면 좀 나아지겠지. 안 그런가? (웃음) 미국에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chairman of the Council of Economic Advisers)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자리다. 이런 자리가 한국에도 있다면 김 박사가 그 자리에 딱일 텐데….

프레시안 : 김종인 전 위원장이 최근 강연에서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꼽았다. 정권의 성패가 달린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남재희 : 그 얘기가 맞다. 복지는 재분배다. 노사관계는 분배다. 노사가 협상해서 빵 조각을 누가 얼마만한 것을 먹느냐 하는 것이 분배고, 재분배는 그게 된 다음에 결과적으로 불균형이 생기니 국가권력이 세금을 걷어서 하는 것이다. 당연히 분배가 국민 생활에 더 크고 중요한 문제다. 만약 노조를 탄압하면 분배에서 왜곡 현상이 생긴다. 재분배는 부수적인 것이고 기본이 분배다. 거기서 '페어'하게 해야 한다.

미국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의 '뉴딜 정책'에 대해 한국에서는 댐 쌓고 하는 공공사업으로만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다. 루즈벨트 행정부는 노동조합의 힘을 엄청나게 키워 줬다. 프랜시스 퍼킨스 노동부 장관은 루즈벨트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그 자리만 했다. 퍼킨스 장관은 법제를 통해 노조 설립도 보장해 주고 노동자들에게 계속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니 분배가 잘 된 것이다.

"대선 후 야당, 천박한 모습…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 큰절 투어냐?"

프레시안 : 야당은 여전히 대선 책임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당분간 야당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만들어지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남재희 : 대선 끝난 다음에 야당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천박하다. 뭐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다고 납작납작 땅바닥에 큰절을 하고 그러는데, 의젓하게 놀아야지 왜 그리 천박하게 노는지 모르겠다. 사실 대선에서 그만한 표면 어지간히 나온 거다. 참패는 아니다. 총선 때도 나는 '비겼다'고 했었다. 역사상 야당이 그렇게 많은 의석을 차지한 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참패를 한 것처럼 울고불고 '죄를 지었다'고 하더니 대선도 그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되돌아보면, 개혁적 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10년을 집권하고 난 후에 전 보수세력이 일치단결해 반격했지 않나. 그 사이클이 5년으로는 안 끝난다. 개혁세력도 10년 집권했는데 보수도 최소한 10년은 해야 하지 않겠나. 5년 만에 정권교체 되리라 생각한 사람이 성급한 거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그 형편없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두 번씩 하지 않았나.

정치라는 게, 민심이란 게 그런 거다. '죽일 놈들이다. 이제 지긋지긋하다' 정도 반응은 나와야지, '좀 잘못했네' 정도로는 정권 안 바뀐다. 이번에 야당이 정권을 탈환했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이변이지, 박 당선인의 승리가 이변이 아니다. 그런데 뭐 그렇게 동네방네 다니면서 천박하게 야단을 떠는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된다.

또 선거 책임론도 하려면 정확하게 해야지, 문재인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렇게 몰아붙이나. 그만하면 선전한 건데 일부러 트집 잡는 것 같다. 앞으로는 5년이라는 세월이 있으니 기존 지도층이 강화될 수도 있고, 새 지도부가 나올 수도 있다. 그건 모르는 거다. 단, 한두 달 새 되는 건 아니다. 국민들 뇌리 속에 몇 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는 거지 한 번에 성급하게 어찌할 게 아니다. 지금 '잘못했다'며 돌아다닌다 해서 국민이 용서할 것도 아니고 바뀔 것도 아니다. 좀 의젓하게 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미국에 가 있는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는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남재희 : 대권 후보로는 끝난 게 아닌가 한다. 유력한 정치지도자로서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그 둘은 다르다. 그런데 안 전 교수는 초반에 노선을 잘못 잡았다. 국민의 기성정치에 대한 엄청난 불만에서 방향과 노선 설정을 정확하게 해 줘야 (정치적 영향력이) 한 번이 아니라 몇 년도 가는 것인데, 노선 설정이 황당무계했다.

우선 중앙당 폐지가 황당무계하다. 의원 정수 축소도 황당무계다. 한마디로 '국회의원 나쁜 놈'이라는 건데, 의원의 특권을 줄인다는 것과 의원 수를 줄인다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다. 오히려 수가 줄어들면 더 타락하고 더 귀족 된다. 안 전 교수는 그걸 혼동했다. 또 중앙당을 폐지해서 어쩔 것이냐. 미국처럼 안정된 사회도 아니고 개혁할 게 얼마나 많은데. 정당이 토호들 집단이 될 수 있다.

안철수는 방향 설정에서 우리나라가 국가로서 갈 이상, 국정의 기본 테제를 제시했어야 한다. 복지국가면 복지국가, 이런 걸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꿈을 줬어야 한다. 돈 많은 사람들이 정치하는 문제, 이런 것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들고 나왔어야지 무식하게 의원 수 줄이고 중앙당 폐지하고 이게 뭐냐. 그러니 문재인도 단일화 과정에서 한 발도 양보를 안 하지 않나. 가장 국민한테 먹혀들어가기 좋은 것만 하다 보니 안철수의 정치철학은 작년으로 끝났다. 무슨 명분이 있나. 기성정치에 대한 반감밖에 없지 않나.

프레시안 : 지난달 신년 인터뷰에서 진보정당의 독자 세력화 전망에 대해 어둡게 보았는데, 결국은 미국식 양당제로 가는 게 아닐까 싶다.

남재희 : 진보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싹 망했다. 오히려 진보신당에 골수 당원들이 있는 것 같다. 홍세화 전 대표는 논설은 잘 쓰는데 한국의 '막걸리 정치'를 모르는 것 같다. 진보정의당도 망해버렸다. 유시민은 인기 위주이고, 심상정은 똑똑하지만 '상습 탈당파'다. 노회찬은 재판이 걸려있고. 약해도 진득하게 있는 게 정치지, 약세라고 탈당하면 어떻게 하나. 한두 번도 아니고. 통합진보당도 보수언론이 완전히 버려 놔서, 회복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또 그 당 주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상한 교조주의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왕 망한 김에 푹 썩어서 다음 총선까지 있어 보고 대오각성해서 단합한다면 또 모르지만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진보세력이 민주당 내 블록을 형성하는) 미국 모델로 갈 것 같다.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가 민주당에 입당한 것이, 제비 한 마리가 온 것이 봄을 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원내교섭단체가 됐으면 좋겠다. 그건 유럽 모델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는 요원한 것 같다. 싹이 노랗다.

미국 모델도 진보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미국 동부 워싱턴주(州), 오레곤주 같은 곳은 진보세력, 나아가 아나키즘 사상도 강하다. 서부에도 진보적 '리버럴'(자유주의자)들이 많다. 미국 민주당이 얼마나 복합적인 정당인가. 그러니 버락 오바마, 존 케리 같은 진짜 '강남 좌파'들도 나오는 거다. 미국 모델을 따랐다고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정말 신념과 소신, 강한 의지를 갖고 노력해야 한다. 혹시라도 의원 자리나 즐기고, 돈이나 먹고 다니면 미국 모델이고 뭐고 없이 그냥 민주당에 흡수돼서 소화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자기 주의·주장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는 지적 전통이 약해서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프레시안 : 대선 이후 개헌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있다. 장관님께서 정치개혁 문제에도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다.

남재희 : 감사원을 행정부에서 국회로 옮기는 것은 좋다고 본다. 그런데 보다 더 큰 포석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나는 아직은 한국에서 대통령중심제가 당분간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대통령제에 익숙해져 있다. 내각제 하자는 것은 당면한 지금으로서는 안 맞는 얘기 같다. 대통령중심제 뼈대는 놔두고 의회를 좀 강화하는 정도는 혹시 몰라도. 양원제 같은 것도 통일된 다음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의미가 없지 않나 한다.

의회 강화는 의원 수를 늘리고, 늘린 만큼은 전부 비례대표로 해서 여성, 노동 등 소수자 의견이 국회에 반영돼야 한다. 그게 '질적 민주주의'다. 또 대통령중심제를 하되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서 연립정부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이 2가지는 개헌 사항도 아니다.

프레시안 : 개헌이나 정치개혁은 국회가 주역으로 나서서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특히 정부 초반에는 정권의 의중과 엇나가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남재희 : 개혁이란 것은 원래 권력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여론전에서부터 밀고 나가야 한다. 기본적인 문제가 금권정치다. 솔직히 지금 돈이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의원들이 선거할 때 돈 필요하지 않나? 그 돈이 지지자들이 10만, 50만,100만 원씩 내서 되나? 안 된다. 몇천 만 원씩 줄 수 있는 것은 재벌이고, 그러니 의원들 대부분 재벌 손에 있다.

한국정치를 어떻게 거기서 해방시킬 것이냐? 혁명이나 쿠데타는 안 된다. 그러면 소수파를 키워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게 결선투표제이고 비례대표 확대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금권정치다. 진상을 들여다 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언론도 다수는 어용이다. 원래 자유언론이 다수일 수는 없고, 소수 언론이라고 해서 영향력도 소수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언론 문제도 비관적이다.


 임경구 기자,곽재훈 기자(정리)

2013년 1월 9일 수요일

서울대생들, 황창규 임용 반대 확산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1-09일자 기사 '서울대생들, 황창규 임용 반대 확산'를 퍼왔습니다.

“삼성 백혈병 책임있는 사람을
사회학 교수로 임용하는 것은
노동 버리고 자본 편 서는 것”

서울대 사회학과가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현 지식경제부 지식경제연구·개발전략기획단장)을 초빙교수로 임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에 이어 사회학과 대학원생들과 졸업생들이 반대 성명을 내는 등 학생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황창규씨 초빙교수 임용 반대 사회학과 대학원생 대책위’ 소속 학생과 졸업생 55명은 8일 성명을 내어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백혈병 등) 산업재해 피해에 분명한 책임이 있는 황 전 사장의 교수 임용 과정에서 학과 구성원들이 어떤 의견 표명 기회도 갖지 못했다”며 임용 반대 의견을 밝혔다. 또 이들은 “삼성전자 전임 사장을 초빙교수로 임용하는 것은 사회학이 노동을 버리고 자본의 편에 서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대학원생 문병준(26)씨는 “황창규 전 사장이 경영학·전자공학과 교수로 초빙되는 것에는 문제가 없으나 사회학과 교수로 초빙되는 것은 마치 서울대 사회학과가 반도체 백혈병 논란과 관련해 기업 쪽 입장에 서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이번 성명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지난달 24일에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 ‘산업재해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학생들의 모임’ 회원들이 황 전 사장 임용 반대 성명을 낸 바 있고, 사회학과 학부생들도 곧 반대 성명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대해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장은 “학생들의 반발 움직임은 알고 있으나 초빙교수 임용 문제를 두고 학생들과 상의한 전례가 없다. 특별히 재논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황 전 사장의 초빙교수 임용 절차는 서울대 본부 인사위원회의 심사만 남은 상태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2013년 1월 3일 목요일

노동자 죽음, 방송3사 심층 취재 기대 접어야


이글은 미디어스 2013-01-02일자 기사 '노동자 죽음, 방송3사 심층 취재 기대 접어야'를 퍼왔습니다.
가물에 콩 나듯 보도되는 '노동'…하종강 "노동기본권 근본 고민 필요"

기사수정 1월 2일 오후 11시 
겨우내 계속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과 대선 이후 잇따른 자살 등의 노동 이슈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지만 지상파 방송 3사 메인 뉴스의 보도는 파장에 비해 미미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디어스)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난해 10월 17일부터 1월 1일까지 방송 3사의 메인 뉴스를 분석한 결과, 노동자들의 고공농성과 죽음을 심도있게 다룬 보도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간 방송 3사가 '강남스타일의 빌보드 차트 순위 추이'를 일일이 보도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방송 3사의 노동 관련 보도는 초라한 수준이다.

▲ KBS <뉴스9>의 12월 30일자 리포트 <비정규직 대책은?>. KBS는 잇따른 노동자들의 죽음을 알렸지만, 보도의 방점은 박근혜 당선인의 비정규직 정책 공약에 찍혔다.

그나마 KBS가 상대적으로 우리사회가 직면한 노동 문제를 짚고자 했다. KBS (뉴스9)는 [비정규직 시행 5년…고용의 질 급락(2012년 11월 13일)], [대기업 사내 하청 만연…해법 있나(2012년 11월 19일)] 등을 통해 비정규직 법과 사내 하청 등 노동 현안을 다른 방송사보다 비교적 비중있게 다뤘다.
또, 지난해 10월 18일자 리포트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 2명 철탑 농성 돌입)에서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 돌입을 유일하게 보도했고 12월 30일자 리포트 (비정규직 대책은?)에서는 "지난 21일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데 이어 22일엔 현대중공업에서 이어 한국외대 소속 노조원이 2명이 잇따라 숨졌다"며 노동자들의 잇딴 죽음을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대선 이후 첫 죽음이 발생한지 일주일 넘은 시점에서야 노동자들의 죽음을 다룬 것이었으며, 이 마저도 리포트의 방점은 '박근혜의 비정규직 관련 공약'이었다.
KBS 간판 시사 프로그램 (추적 60분)은 [1년에 10만명, 정리해고의 그늘(2012년 10월 10일 방송)], [2012 대선 핵심쟁점 - 경제민주화(12월 5일 방송)], [송년기획 '돌아보다 2012'(12월 26일 방송)] 등을 통해 정리해고의 문제와 고공농성 노동자들의 현황에 대한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MBC의 메인 뉴스인 (뉴스데스크)는 (현장 M 출동 - 현대차 정규직화 놓고 극한 대치)(11월 4일), (잇따른 안전사고 사고마저 하청?)(12월 4일)을 통해 심층 취재를 했으나, 보도의 비율이 KBS보다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 지난해 12월 26일자 보도 ("고공시위vs무관심"…해법은?)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현대차 노동자, 그리고 용역폭력에 의해 노조가 와해된 유성기업 노동자의 농성을 소개했지만, 이들이 내려오기 위해서 어떠한 대책에 필요한지 심층 보도하기 보다 송전탑 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단순 소개하는 것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MBC (시사매거진2580)은 (철탑농성 이유는?)(11월 4일)을 통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의 문제점을 분석한 바 있다.
반면 SBS의 메인 뉴스의 경우, 심층 취재가 KBS와 MBC에 비해 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나마 간판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고공농성, 폭력을 가하는 용역 등 노동 현안을 분석하는 최소한의 성의만 보였다.

▲ SBS <8>의 31일자 리포트 <"철탑 위에서 맞는 새해">.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의 근황을 알리는 보도였으나, 이들이 내려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분석은 빠져있다.

조사기간 동안 SBS (8시뉴스)는 노동자들의 잇딴 죽음을 외면했고, 고공농성의 상황을 단 한 차례만 보도했다. 12월 31일자 리포트 ("철탑 위에서 맞는 새해")를 통해 50m 송전탑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는 최병승·천의봉 씨와 40일 넘게 철탑 농성을 하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 3명의 근황을 전했을 뿐이다.
하지만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12월 22일 '눈 먼자들의 도시' 편) 용역 경비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했던 SJM 노조원의 모습과 이를 외면했던 경찰의 직무유기를 알렸고,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조명했다.
사회적 중요도에 비해 노동 관련한 보도의 비율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언론의 근본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1일 (미디어스)의 전화 인터뷰에서 "언론에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도 노동문제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도를 했다"며 "출총제나 순환출자 규제 등 재벌에 대한 견제 장치들이 경제민주화의 전부인 것처럼 보도를 하다보니, (실제 생산 영역에서의) 노동기본권과 관련한 보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노동자들의 삶은 외면하면서 노동 관련 제도 개선만 떠들고 있는 정치권에 대해 한 번이라도 언론에서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없다"며 "노동을 천시하는 이데올로기가 언론 내부에 만연하기 때문에 보도의 양이나 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 학장도 1일 (미디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들은 노동자 죽음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 노동 자체에 대한 이해 수준은 매우 떨어진다"며 "이를 위해 노동자의 '죽음'에만 관심을 갖는 사회적 몰이해가 개선돼야 하고 그들이 절망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한국 노동의 상황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 학장은 또, "노동자 개인의 죽음에는 그나마 언론과 사회가 관심을 갖지만, 그보다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노동기본권"이라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한 사업장 내에서 많은 노동자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지, (언론과 우리사회의) 노동 문제에 대한 근본적 인식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은 아니었다. 언론과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도연 기자  |  riverskim@mediaus.co.kr

2012년 12월 22일 토요일

해직언론인·쌍용차, 이건 반성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21일자 기사 '해직언론인·쌍용차, 이건 반성해야'를 퍼왔습니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보수가 보수에게|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

과거사 덫에 방향 잃긴 했지만
경제민주화와 복지 수용 등
박근혜 보수는 ‘진화된 보수’

언론자유·노동·환경 부분
보수는 지금껏 굉장히 냉담했다
북 인권에만 목소리를 높였다
교조주의에서 벗어나라
이념을 떠나 큰 그림 그려라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

이상돈(61) 중앙대 교수(법학)는 박근혜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왼쪽 측면에 서 있었다. 박 당선인에게 인혁당 유족을 만나고 유신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4대강 사업을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문화방송) 해고 사태의 매듭을 풀기 위해 박 당선인과 노조 사이의 메신저 구실도 했다. 그는 강성 보수 성향의 캠프에서 무게추 구실을 했다. 20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한시간가량의 인터뷰 내내 휴대전화는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으로 쉴 새 없이 울렸다.-한국전쟁 이후 보수 대 진보의 논쟁은 발전하지 않고 맴돌고 있다. ‘종북좌빨’, ‘보수꼴통’ 비난만 오가고 소통하지 않는다. 보수주의자 입장에서 보수는 진화했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인가?“보수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모든 보수가 다 진화했다고 볼 순 없지만 이제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의 중요성에 대해 상당히 공감한다. 그런 부분에서 보수는 진화했다. 교조적인 보수는 박근혜 정권의 주류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에 기초한 건전한 시장경제 정책을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이 앞으로 합리적 보수가 지향할 방향이라고 본다.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색깔론을 펴지 않았다. 선거 막판에서 엔엘엘(NLL) 수호 의지에 관해 언급한 정도다. 박 당선인은 매사에 진보, 보수를 나누지 말자고 했다. 박 당선인은 이분법에선 탈피한 사람이다.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9월 초까진 광폭 행보를 했다. 과거사 덫에 걸려 방향을 잃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선진통일당과 합당하고 보수를 자칭하는 호남 구세력과 합치며 보수로 불린 면이 있다. 하지만 박 후보는 4월 총선부터 경제민주화와 복지 같은 진보담론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출마선언에서도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를 약속했다. 강도 높은 검찰개혁 공약도 내걸었다. 경제·사회 정책은 보수와 진보 간 견해 차이가 있지만, 검찰개혁, 4대강 사업에 대한 검토 약속 등은 언론이 보는 것보다 법치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박 당선인을 만든 세력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이들보다 더 강경 보수, 구태 보수세력이란 비판이 있다.“당선 전후가 다를 것이다. 박 당선인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초기 10년 동안은 용인술이 굉장히 훌륭했다는 평을 들었다. 박 후보가 이 시대와 정부를 잘 이끌 새 사람을 발굴해서 기용할 것으로 본다.”-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을 표방한다. 막상 1년여 비대위원으로서 겪어본 새누리당, 보수주의자로서 바라본 새누리당은 어땠나?“새누리당의 구성원은 다양하다. 남경필, 김세연 같은 쇄신파 의원부터 시장경제에 몰입한 의원들까지 다양하다. 내가 보기에는 의원들이 의사 표현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다. 아직 초선 의원들이 많아 그런지도 모르겠다.”-이번 대선에서 세대별 투표가 고착화되었다. 보수주의자로서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나?“글쎄… 세대별 투표가 더 심해진 것 같지는 않다. 외려 박 당선인이 총선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그런 부분은 상당히 불식시킨 것 아닌가. 앞으로 박 당선인이 젊은층의 관심사인 일자리, 경제회복에 대해 업적을 내면 젊은층도 상당히 새누리당에 호응할 것으로 본다.”

-이번 대선은 ‘보수 대 진보’ 총결집 양상을 띠었다. 진보와 보수 쪽에 하고 싶은 말은?“민주주의, 언론자유, 법치 그리고 환경·여성·노동 등을 보수가 이념 문제로 봐선 안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새 정권과 새누리당이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한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역사를 보는 시각, 시장과 정부의 관계를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기득권 세력의 구태, 친일 잔재라는 식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수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서로 경쟁할 건 경쟁하고 대화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박근혜 당선인에게 당부하고픈 말은?“박 당선인은 전에 없이 깨끗한 경선과 대선을 해서 당선이 됐다. 빈 접시처럼 누구에게도 진 빚이 없다. 빈 접시다. 초심에서 큰 그림을 그려줬으면 한다. 인사문제를 포함해서 말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특히 듣기 거북한 말을 하는 그런 사람이나 집단의 의견을 더 경청해야 한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문만 열면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다. 집무실과 비서동이 멀다. 청와대의 물리적 환경이 소통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하는 면이 있는데 그런 부분은 유념해둬야 한다.”-새 정부에서 진보-보수가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풀어야 할 건가?“보수는 그간 북한 인권 문제엔 목소리를 높였으나, 국내 언론 자유나 노동·환경 문제엔 굉장히 냉담했다. 이것 역시 넓은 의미의 인권 아니냐? 해직언론인 문제, 쌍용차 문제 등도 마찬가지다. 이건 반성해야 한다. 진보는 이와 또 반대였다. 서로 이런 점은 탈피해야 한다.”-보수의 길을 묻고 싶다.“보수는 교조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 경제도 마찬가지고 사회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고 북한 문제를 푸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인 화해의 문제에 관해 좀더 마음을 열어야 한다.”-진보학자들과 함께 줄곧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해왔다. 반면 박 후보는 4대강 사업에 대해 평가를 미뤘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사업이 이제 끝나버렸다. 그러나 계속 논란이 있다. 앞으로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위원회 등을 꾸려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계속 부작용이 드러나고 안전성 문제 탓에 보수비용이 들고, 자전거길·공원 등도 황폐화된다면 사심없이 객관적 재평가를 하고 그야말로 ‘제로베이스’에서 어찌 할 것인지 중지를 모아야 한다. 4대강에 설치된 보 등 시설물 철거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평범한 사람이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


이글은 이코노미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12-01일자 제32호 기사 '평범한 사람이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를 퍼왔습니다.
노동과 삶

지난 11월8일 파업 200일을 맞은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조원들이 ING생명·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충정로 본사까지 노조탄압에 항의하는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저러다 말겠지' 하고 스쳐 지났던 골든브릿지투자증권 파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200일을 넘겼다. 그것도 사무직 노조에 처음 들어온 노조파괴 전문집단 창조컨설팅에 맞서서. 노조원들을 지켜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노동자들은 기약 없는 장기투쟁의 준비에 들어갈 수밖에….
이선옥 르포작가
'머리 쓰는 일보다 몸 쓰는 일이 더 대접받는 게 진보한 사회다'라는 생각을 원칙처럼 가지고 있다 보니 주로 제조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더 마음이 쓰인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노동환경이 열악한 곳이 아직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할 때 밖을 쳐다보면 딴생각이나 한다고 창문이 없는 콜텍 공장, 점심 먹고 쉴 틈도 없이 기계를 봐야 하는 한국 쓰리엠(3M),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나는 개다"를 복창해야 하는 유성기업 등. 제조업 생산직 사업장은 여전히 노동 강도가 말도 못하게 셀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모욕이 적나라한 곳이 너무나 많다. 21세기 맞나 싶을 정도로 열악한 사업장의 얘기를 듣다 보면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나마 견딜 만한 싸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창조컨설팅과 싸워 버틴 200일

그래서 지난 봄부터 거의 일주일에 서너 번을 서울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이나 시청의 농성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들의 투쟁 모습을 보면서도 '저러다 말겠지, 사무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얼마나 오래갈까' 생각하면서 지나쳤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거리엔 벌써 노란 은행잎이 다 떨어져 이제 겨울인데 충정로 골든브릿지 본사 앞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벌써 6개월, 투쟁 200일을 맞는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혼자서 고통의 서열을 매기고 있던 편견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우리 투쟁이 중요한 게 사무직 노조에 노조파괴 전문집단인 창조컨설팅이 처음으로 들어왔어요. 다른 사업장은 어용노조가 들어서고 깨졌어요. 발레오기업,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영남대병원 등 거의 와해됐잖아요. 근데 우리는 민주노조가 아직 살아 있거든요. 버티고 있어요. 200일 살아 있다는 게 진짜 훌륭한 건데, 만약에 더 길어지고 우리가 깨지면 민주노조가 하나 더 깨지는 거잖아요. 창조컨설팅이 사무직 노조까지 깨려고 하는데 우리가 깨지면 다 깨져요.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이수창 수석부지부장)
파업 199일째인 11월7일, 89명 조합원이 6개월 동안 함께 행동하고 있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200일 기념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노조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최초의 사무직 노조. 이들은 그 의미를 무겁게 여기고 있었다. 우리가 지면 모두 진다는, 그래서 절대 질 수 없다는 민주노조로서의 의무. 늘 보면서도 볼 때마다 답답하고 숙연해지는 노동자들의 오지랖이다.
같은 사무금융연맹 소속의 ING생명 노동자들은 그날 파업 100일을 맞았다. 100일 간격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작한 파업. 먼저 당해본 선배로서 그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알기에 모두 참석하기로 했다. 몸짓패는 무대에서 위문공연도 할 참이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몸짓패 '몸치탈출' 소속 조합원 20여 명은 본사 앞 길바닥에서 저녁 공연 연습에 들어갔다. 5개 조로 나눠 교대로 농성을 담당하는 나머지 조합원들이 그들의 연습을 지켜보며 웃는다. 1개 조에 붙어 농성을 함께 경험해보는데 1시간을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볼은 시리고, 손가락은 굽어서 수첩에 메모를 할 수 없었다. 벌써 날씨가 이렇게 추워지는데 어떻게 겨울을 날까 싶어 걱정됐다.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고 미안하죠. 집행부 믿고 시작한 건데…. 저는 조합원들이 밝게 웃어도 그게 슬퍼 보여요. 날수가 쌓일수록 미안한 마음에 어깨는 더 무거워지고 부담이 되게 크죠. 일단은 미안해요. 처음에 조기 승리를 확신했고 약속했는데, 양치기 소년처럼 한 달, 석 달 지나니까…. 저는 2주 내지 한 달 정도면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겨울을 나나 못 나나, 그러고 있어요."(김호열 지부장)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은 규모는 작아도 자기자본금 2천억원을 가진 나름 탄탄한 증권회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시장에 투기자본이 속속 들어왔고, 그 가운데 영국계 사모펀드 BIH가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전신인 브릿지증권의 대주주가 되었다. 이들은 2005년에 멀쩡한 회사를 청산하고 마지막 이윤을 빼가려고 했다. 노조는 청산 반대 투쟁에 들어갔고, 다른 주주들을 설득했다. 경영을 할 인수자를 찾던 중 이상준 당시 골든브릿지캐피탈 대표(현 골든브릿지금융그룹 회장)를 만났다.

노동운동가 출신 회장의 행태

이상준 회장은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고, 보험노련의 홍보부장 경험도 있는 노동운동가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노조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ESOP(우리사주조합 신탁제도)를 도입하겠다 약속했고, 노조가 추천하는 사람을 등기이사에 임명하겠다고도 했다. 노사 공동경영의 모범 기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는 그에게 신뢰가 갔다. 어느 인수자보다 매력 있는 조건이었다. 2005년 7월 브릿지증권노조와 이상준 대표는 공동인수자로 약정서를 체결하고 브릿지증권의 공식 경영권을 인수했다. 자금력이 부족한 그를 노조가 선택하고 도와주었기에 가능했다. BIH는 주식을 팔고 떠났다. 투기자본의 공격을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막았을 뿐 아니라 노사 공동경영이라는 새로운 모범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허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은 "차라리 투기자본이랑 싸우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이상준 회장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다.
"처음에 ESOP 주식 50억 주를 직원들한테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을 안 지키더라고요. 우리가 요구를 하니까 2007년에야 줬어요. 무리하게 해외 사업을 벌이고 국내 사업도 계속 확장했는데 결국 재미를 못 봤죠. 2008년 겨울쯤에는 사업 실패에 책임진다며 사람들을 잘랐어요. 계속 문제제기를 하니까 노조를 걸림돌로 생각한 것 같아요. 2011년 갑자기 창조컨설팅 출신의 노무사를 인사팀 과장으로 채용해요. 인사팀장도 외부인으로 채용하더니 관리직 조합원 11명에게 공문을 보내서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고 협박했어요. 깜짝 놀랐죠. 그러더니 그다음 단계로 단체협약안 88개 중 28개 조항을 개악한 요구안을 내놨어요. 해고를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 활동 관련 조항을 축소하고, 유니온숍도 오픈숍으로 바꾸겠다고 하고…. 이건 완전히 도발이었고 노조를 와해하겠다는 태도였어요."(이수창)
조합원들은 분노했다. 특히 정리해고를 합의에서 협의로 바꾸겠다는 조항은 회사가 언제든 나를 해고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상준 회장은 노동조합을 '귀족노조'라 비난했다. 경영진은 사내 통신망에 "귀족노조가 무임 승차자들을 보호하고 철밥통 지키기를 하고 있다, 파업 지도부가 무리한 선택으로 직원들을 고용 불안에 내몰고 있다"며 노조를 공격했다. 그러고는 단체협약을 해지해버렸다. 공문 한 장으로 끝이었다. 26년 동안 쌓아온 노사관계와 1987년 투쟁으로 만든 민주노조의 자존심이 그 공문 한 장에 무너졌다. 하루아침에 보호 장치 없이 내몰린 직원들을 지키려면 파업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조합원 협박, 단협 개악, 단협 해지로 이어지는 이 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창조컨설팅의 계열사인 휴먼밸류컨설팅의 작품이었다. 자칭 노동운동가 출신이며 민주화운동 이력을 자랑하는 회장은 경영의 동반자가 되자고 했던 노동자들 대신 노조파괴 세력과 손잡았다. 그리고 그걸 정의로운 신념으로 여긴다고 한다.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저임금에 밤낮없이 일하는 구로공단의 불쌍한 사람들이 진짜 노동자지 고액 연봉에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노조는 진정한 노조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자기 민주화'만' 완결된 사람들이 흔히 갖는 신념의 폭력이다. 이 회장은 회사의 손실이 얼마가 되든, 설사 구속된다 해도 절대 타협은 없다고 공언했단다. 그 한 사람의 왜곡된 신념 때문에 90명이나 되는 조합원들이 월급 한 푼 못 받고 카드빚과 대출을 받아가며 여섯 달째 길에서 싸우고 있다.
파업 200일을 맞은 11월8일 아침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조합원들과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 소속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들이 오늘 여기 모인 이유는 금융회사의 파업이 장기화되는데도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는 금감원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금융회사는 고객의 돈을 맡아서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에 내부통제제도가 관리의 핵심이다. 그게 되지 않을 때 결국 위험과 손해는 고객에게 돌아간다. 경영진의 배임과 부당경영에 대한 제보와 고발을 충분히 했고, 이를 조사한 지 4개월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금감원은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의 정부와 산하 단체들은 이처럼 개입해야 할 일은 노사 문제라는 이유로 방관하고, 노사 간 협상을 만들어줘야 할 일에는 공권력을 투입해서 노동자들을 진압한다.
노조가 합법 파업을 벌이는데 회사가 불법 대체인력을 투입해 파업을 무력화해도 제재가 너무 미약하다. 불법으로 얻는 이익이 법 준수로 얻는 손실보다 큰데 어느 경영자가 법을 지키면서 노조를 존중하겠는가. 단체협약이라는 노동조합의 가장 큰 존재 근거도 회사가 일방 통보하면 6개월 이후 효력이 사라져버리는 현행 제도는 노동조합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이들은 그런 모든 악조건을 견디며 200일을 맞은 것이다.
이날 200일 결의대회에는 재능교육, 콜트·콜텍, 코오롱, 쌍용자동차, 한국쓰리엠 해고자들처럼 같은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사람들이 달려와주었다. 특히 전날 100일 결의대회를 마친 ING생명 노동자들이 많이 와서 쓸쓸하지 않게 대오를 채웠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신념화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감당하자고 달려오는 건 언제나 "내가 당해봐서 아는 사람들"이다.
이 파업에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이 싸움을 "노사 간의 대립보다 회장 1인 대 전 직원의 싸움"이라고 부른다. 보통 경영진의 직접 지시를 받기 마련인 지점장과 간부급 직원들까지 대부분 참여하고 있는 독특한 상황은 직원들이 얼마나 현 경영진을 불신하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정진수(가명)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지점장까지 한 고위 관리직 출신이지만 이 파업에 참여했다.
"직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회사를 살려보자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이 투쟁에 동참했어요. 합법이나 불법을 따지기 이전에 직원들의 권리가 너무 무시당했거든요. 미약하나마 저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근무 환경이) 좋을 때 일해봤는데 선배로서 우리만 좋은 시절을 겪고 끝낼 수는 없잖아요. 후배들도 우리가 선배들의 노력으로 받은 혜택이나 조건을 동일하게 유지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 말고도 간부급 예닐곱 분이 더 참여하고 있습니다. 파업이 길어지니까 대출로 생계를 이어가야 해서 아무래도 가족이 고생하죠. 그래도 제 자신이 즐겁고, 파업 투쟁에 조그만 역할이라도 맡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2009년 1월 임직원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충정로 본사에서 열린 골든브릿지 복합금융센터 개소식 모습. 뉴시스

이들뿐 아니다. 심지어 회사 건물 지하 1층에는 노사가 빨리 원만한 합의를 해달라고 사내 성명을 낸 팀장, 지점장들이 징계당해 유배돼 있다. 보직 해임과 무기한 정직을 당한 뒤 일감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창문도 없는 사무실에 하루 종일 그냥 앉아 있다. 용역 한 명이 붙어 출퇴근 체크를 하고, 회사는 반성문을 쓰라 한다. 이들은 그걸 거부하는 중이다. 최근 노조탄압 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욕주기와 고립시키기 수법이다. 노조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할 생각이다.
이들이 이런 모욕을 겪으면서도 파업을 지지하고 함께하고 있어 노조 집행부뿐 아니라 조합원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 김호열 지부장은 "평생 파업이란 걸 생각도 못해봤을 분들이 모두 회사 하나 바로잡자고 후배들 위해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놀랍고 고맙다"고 했다. 이들이 파업 현장을 함께 경험하면서 분노하고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때 '파업이야말로 노동자들의 학교'라는 말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정년을 앞둔 분도, 영업을 하던 분도, 심지어 인사팀장 출신도 모두 참여하고 있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파업은 그래서 져도 이미 이긴 싸움이다.

노동 없는 경제란 불가능

이날 결의대회가 끝날 무렵 충정로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본사 앞에는 하얀 천막 한 동이 생겼다. 그걸 치는 순간 정말로 장기투쟁에 돌입해야 하는 것만 같아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세운 천막이다. 지부장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음을 꼭 증명해 보이겠다고 약속했지만 날마다 피가 마른다고 했다.
그날 밤 비상투쟁위원들은 밤늦도록 천막 안을 지켰다. 지부장과 수석 부지부장의 첫날 밤을 외롭지 않게 하려고 술잔을 기울이며 많이 웃고 즐겁게 위로한다. 지나온 시간만큼,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앞으로 견뎌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 아무도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지만 그런 불안이 왜 없으랴.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천막을 나서며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디 견디시길, 이상준 회장의 왜곡된 신념과 89명의 조합원들이 가진 불안을 극복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한 그 힘으로, 무너지고 싶은 순간마다 다시 서게 해준 그 힘으로 조금만 더 버텨주시길. 이렇게 비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디 또 다른 희망의 근거가 되어주시길. 조합원들이 고개 끄덕이며 듣던, "평범한 사람들이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길이 옳기 때문"이라던 김호열 지부장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1년6개월 동안 이 지면을 채우면서 '노동'이 없는 경제란 성립될 수 없음을, 노동자가 고통을 감내하는 성장이란 결국 성장이 아니라 퇴행임을 말하고 싶었다. 발레오, KEC, 상신브레이크, 풍산, 국민체육진흥공단, 포레시아, 유성기업, 현대차 비정규직 등 절박하게 싸우는 현장의 이야기를 그때그때 다 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취재하고도 싣지 못한 동희오토 노동자들께 미안하다. 기륭전자의 복직이 완료되면 '복직 그 후 이야기'로 함께 담으려 했는데 기륭의 복직이 늦어지면서 결국 쓰지 못했다.
그동안 부족한 내게 취재를 허락해주고, 고통의 현장을 지켜보며 우는 나를 오히려 토닥거려준 노동자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모든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꼭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를, 부디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들에게 이 겨울이 승리의 계절로 남기를 간절히 바라며 부족했던 연재를 마친다.

namufre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