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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평범한 사람이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


이글은 이코노미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12-01일자 제32호 기사 '평범한 사람이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를 퍼왔습니다.
노동과 삶

지난 11월8일 파업 200일을 맞은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조원들이 ING생명·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충정로 본사까지 노조탄압에 항의하는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저러다 말겠지' 하고 스쳐 지났던 골든브릿지투자증권 파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200일을 넘겼다. 그것도 사무직 노조에 처음 들어온 노조파괴 전문집단 창조컨설팅에 맞서서. 노조원들을 지켜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노동자들은 기약 없는 장기투쟁의 준비에 들어갈 수밖에….
이선옥 르포작가
'머리 쓰는 일보다 몸 쓰는 일이 더 대접받는 게 진보한 사회다'라는 생각을 원칙처럼 가지고 있다 보니 주로 제조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더 마음이 쓰인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노동환경이 열악한 곳이 아직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할 때 밖을 쳐다보면 딴생각이나 한다고 창문이 없는 콜텍 공장, 점심 먹고 쉴 틈도 없이 기계를 봐야 하는 한국 쓰리엠(3M),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나는 개다"를 복창해야 하는 유성기업 등. 제조업 생산직 사업장은 여전히 노동 강도가 말도 못하게 셀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모욕이 적나라한 곳이 너무나 많다. 21세기 맞나 싶을 정도로 열악한 사업장의 얘기를 듣다 보면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나마 견딜 만한 싸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창조컨설팅과 싸워 버틴 200일

그래서 지난 봄부터 거의 일주일에 서너 번을 서울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이나 시청의 농성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들의 투쟁 모습을 보면서도 '저러다 말겠지, 사무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얼마나 오래갈까' 생각하면서 지나쳤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거리엔 벌써 노란 은행잎이 다 떨어져 이제 겨울인데 충정로 골든브릿지 본사 앞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벌써 6개월, 투쟁 200일을 맞는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혼자서 고통의 서열을 매기고 있던 편견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우리 투쟁이 중요한 게 사무직 노조에 노조파괴 전문집단인 창조컨설팅이 처음으로 들어왔어요. 다른 사업장은 어용노조가 들어서고 깨졌어요. 발레오기업,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영남대병원 등 거의 와해됐잖아요. 근데 우리는 민주노조가 아직 살아 있거든요. 버티고 있어요. 200일 살아 있다는 게 진짜 훌륭한 건데, 만약에 더 길어지고 우리가 깨지면 민주노조가 하나 더 깨지는 거잖아요. 창조컨설팅이 사무직 노조까지 깨려고 하는데 우리가 깨지면 다 깨져요.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이수창 수석부지부장)
파업 199일째인 11월7일, 89명 조합원이 6개월 동안 함께 행동하고 있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200일 기념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노조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최초의 사무직 노조. 이들은 그 의미를 무겁게 여기고 있었다. 우리가 지면 모두 진다는, 그래서 절대 질 수 없다는 민주노조로서의 의무. 늘 보면서도 볼 때마다 답답하고 숙연해지는 노동자들의 오지랖이다.
같은 사무금융연맹 소속의 ING생명 노동자들은 그날 파업 100일을 맞았다. 100일 간격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작한 파업. 먼저 당해본 선배로서 그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알기에 모두 참석하기로 했다. 몸짓패는 무대에서 위문공연도 할 참이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몸짓패 '몸치탈출' 소속 조합원 20여 명은 본사 앞 길바닥에서 저녁 공연 연습에 들어갔다. 5개 조로 나눠 교대로 농성을 담당하는 나머지 조합원들이 그들의 연습을 지켜보며 웃는다. 1개 조에 붙어 농성을 함께 경험해보는데 1시간을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볼은 시리고, 손가락은 굽어서 수첩에 메모를 할 수 없었다. 벌써 날씨가 이렇게 추워지는데 어떻게 겨울을 날까 싶어 걱정됐다.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고 미안하죠. 집행부 믿고 시작한 건데…. 저는 조합원들이 밝게 웃어도 그게 슬퍼 보여요. 날수가 쌓일수록 미안한 마음에 어깨는 더 무거워지고 부담이 되게 크죠. 일단은 미안해요. 처음에 조기 승리를 확신했고 약속했는데, 양치기 소년처럼 한 달, 석 달 지나니까…. 저는 2주 내지 한 달 정도면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겨울을 나나 못 나나, 그러고 있어요."(김호열 지부장)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은 규모는 작아도 자기자본금 2천억원을 가진 나름 탄탄한 증권회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시장에 투기자본이 속속 들어왔고, 그 가운데 영국계 사모펀드 BIH가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전신인 브릿지증권의 대주주가 되었다. 이들은 2005년에 멀쩡한 회사를 청산하고 마지막 이윤을 빼가려고 했다. 노조는 청산 반대 투쟁에 들어갔고, 다른 주주들을 설득했다. 경영을 할 인수자를 찾던 중 이상준 당시 골든브릿지캐피탈 대표(현 골든브릿지금융그룹 회장)를 만났다.

노동운동가 출신 회장의 행태

이상준 회장은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고, 보험노련의 홍보부장 경험도 있는 노동운동가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노조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ESOP(우리사주조합 신탁제도)를 도입하겠다 약속했고, 노조가 추천하는 사람을 등기이사에 임명하겠다고도 했다. 노사 공동경영의 모범 기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는 그에게 신뢰가 갔다. 어느 인수자보다 매력 있는 조건이었다. 2005년 7월 브릿지증권노조와 이상준 대표는 공동인수자로 약정서를 체결하고 브릿지증권의 공식 경영권을 인수했다. 자금력이 부족한 그를 노조가 선택하고 도와주었기에 가능했다. BIH는 주식을 팔고 떠났다. 투기자본의 공격을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막았을 뿐 아니라 노사 공동경영이라는 새로운 모범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허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은 "차라리 투기자본이랑 싸우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이상준 회장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다.
"처음에 ESOP 주식 50억 주를 직원들한테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을 안 지키더라고요. 우리가 요구를 하니까 2007년에야 줬어요. 무리하게 해외 사업을 벌이고 국내 사업도 계속 확장했는데 결국 재미를 못 봤죠. 2008년 겨울쯤에는 사업 실패에 책임진다며 사람들을 잘랐어요. 계속 문제제기를 하니까 노조를 걸림돌로 생각한 것 같아요. 2011년 갑자기 창조컨설팅 출신의 노무사를 인사팀 과장으로 채용해요. 인사팀장도 외부인으로 채용하더니 관리직 조합원 11명에게 공문을 보내서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고 협박했어요. 깜짝 놀랐죠. 그러더니 그다음 단계로 단체협약안 88개 중 28개 조항을 개악한 요구안을 내놨어요. 해고를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 활동 관련 조항을 축소하고, 유니온숍도 오픈숍으로 바꾸겠다고 하고…. 이건 완전히 도발이었고 노조를 와해하겠다는 태도였어요."(이수창)
조합원들은 분노했다. 특히 정리해고를 합의에서 협의로 바꾸겠다는 조항은 회사가 언제든 나를 해고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상준 회장은 노동조합을 '귀족노조'라 비난했다. 경영진은 사내 통신망에 "귀족노조가 무임 승차자들을 보호하고 철밥통 지키기를 하고 있다, 파업 지도부가 무리한 선택으로 직원들을 고용 불안에 내몰고 있다"며 노조를 공격했다. 그러고는 단체협약을 해지해버렸다. 공문 한 장으로 끝이었다. 26년 동안 쌓아온 노사관계와 1987년 투쟁으로 만든 민주노조의 자존심이 그 공문 한 장에 무너졌다. 하루아침에 보호 장치 없이 내몰린 직원들을 지키려면 파업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조합원 협박, 단협 개악, 단협 해지로 이어지는 이 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창조컨설팅의 계열사인 휴먼밸류컨설팅의 작품이었다. 자칭 노동운동가 출신이며 민주화운동 이력을 자랑하는 회장은 경영의 동반자가 되자고 했던 노동자들 대신 노조파괴 세력과 손잡았다. 그리고 그걸 정의로운 신념으로 여긴다고 한다.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저임금에 밤낮없이 일하는 구로공단의 불쌍한 사람들이 진짜 노동자지 고액 연봉에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노조는 진정한 노조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자기 민주화'만' 완결된 사람들이 흔히 갖는 신념의 폭력이다. 이 회장은 회사의 손실이 얼마가 되든, 설사 구속된다 해도 절대 타협은 없다고 공언했단다. 그 한 사람의 왜곡된 신념 때문에 90명이나 되는 조합원들이 월급 한 푼 못 받고 카드빚과 대출을 받아가며 여섯 달째 길에서 싸우고 있다.
파업 200일을 맞은 11월8일 아침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조합원들과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 소속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들이 오늘 여기 모인 이유는 금융회사의 파업이 장기화되는데도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는 금감원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금융회사는 고객의 돈을 맡아서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에 내부통제제도가 관리의 핵심이다. 그게 되지 않을 때 결국 위험과 손해는 고객에게 돌아간다. 경영진의 배임과 부당경영에 대한 제보와 고발을 충분히 했고, 이를 조사한 지 4개월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금감원은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의 정부와 산하 단체들은 이처럼 개입해야 할 일은 노사 문제라는 이유로 방관하고, 노사 간 협상을 만들어줘야 할 일에는 공권력을 투입해서 노동자들을 진압한다.
노조가 합법 파업을 벌이는데 회사가 불법 대체인력을 투입해 파업을 무력화해도 제재가 너무 미약하다. 불법으로 얻는 이익이 법 준수로 얻는 손실보다 큰데 어느 경영자가 법을 지키면서 노조를 존중하겠는가. 단체협약이라는 노동조합의 가장 큰 존재 근거도 회사가 일방 통보하면 6개월 이후 효력이 사라져버리는 현행 제도는 노동조합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이들은 그런 모든 악조건을 견디며 200일을 맞은 것이다.
이날 200일 결의대회에는 재능교육, 콜트·콜텍, 코오롱, 쌍용자동차, 한국쓰리엠 해고자들처럼 같은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사람들이 달려와주었다. 특히 전날 100일 결의대회를 마친 ING생명 노동자들이 많이 와서 쓸쓸하지 않게 대오를 채웠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신념화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감당하자고 달려오는 건 언제나 "내가 당해봐서 아는 사람들"이다.
이 파업에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이 싸움을 "노사 간의 대립보다 회장 1인 대 전 직원의 싸움"이라고 부른다. 보통 경영진의 직접 지시를 받기 마련인 지점장과 간부급 직원들까지 대부분 참여하고 있는 독특한 상황은 직원들이 얼마나 현 경영진을 불신하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정진수(가명)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지점장까지 한 고위 관리직 출신이지만 이 파업에 참여했다.
"직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회사를 살려보자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이 투쟁에 동참했어요. 합법이나 불법을 따지기 이전에 직원들의 권리가 너무 무시당했거든요. 미약하나마 저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근무 환경이) 좋을 때 일해봤는데 선배로서 우리만 좋은 시절을 겪고 끝낼 수는 없잖아요. 후배들도 우리가 선배들의 노력으로 받은 혜택이나 조건을 동일하게 유지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 말고도 간부급 예닐곱 분이 더 참여하고 있습니다. 파업이 길어지니까 대출로 생계를 이어가야 해서 아무래도 가족이 고생하죠. 그래도 제 자신이 즐겁고, 파업 투쟁에 조그만 역할이라도 맡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2009년 1월 임직원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충정로 본사에서 열린 골든브릿지 복합금융센터 개소식 모습. 뉴시스

이들뿐 아니다. 심지어 회사 건물 지하 1층에는 노사가 빨리 원만한 합의를 해달라고 사내 성명을 낸 팀장, 지점장들이 징계당해 유배돼 있다. 보직 해임과 무기한 정직을 당한 뒤 일감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창문도 없는 사무실에 하루 종일 그냥 앉아 있다. 용역 한 명이 붙어 출퇴근 체크를 하고, 회사는 반성문을 쓰라 한다. 이들은 그걸 거부하는 중이다. 최근 노조탄압 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욕주기와 고립시키기 수법이다. 노조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할 생각이다.
이들이 이런 모욕을 겪으면서도 파업을 지지하고 함께하고 있어 노조 집행부뿐 아니라 조합원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 김호열 지부장은 "평생 파업이란 걸 생각도 못해봤을 분들이 모두 회사 하나 바로잡자고 후배들 위해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놀랍고 고맙다"고 했다. 이들이 파업 현장을 함께 경험하면서 분노하고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때 '파업이야말로 노동자들의 학교'라는 말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정년을 앞둔 분도, 영업을 하던 분도, 심지어 인사팀장 출신도 모두 참여하고 있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파업은 그래서 져도 이미 이긴 싸움이다.

노동 없는 경제란 불가능

이날 결의대회가 끝날 무렵 충정로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본사 앞에는 하얀 천막 한 동이 생겼다. 그걸 치는 순간 정말로 장기투쟁에 돌입해야 하는 것만 같아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세운 천막이다. 지부장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음을 꼭 증명해 보이겠다고 약속했지만 날마다 피가 마른다고 했다.
그날 밤 비상투쟁위원들은 밤늦도록 천막 안을 지켰다. 지부장과 수석 부지부장의 첫날 밤을 외롭지 않게 하려고 술잔을 기울이며 많이 웃고 즐겁게 위로한다. 지나온 시간만큼,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앞으로 견뎌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 아무도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지만 그런 불안이 왜 없으랴.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천막을 나서며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디 견디시길, 이상준 회장의 왜곡된 신념과 89명의 조합원들이 가진 불안을 극복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한 그 힘으로, 무너지고 싶은 순간마다 다시 서게 해준 그 힘으로 조금만 더 버텨주시길. 이렇게 비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디 또 다른 희망의 근거가 되어주시길. 조합원들이 고개 끄덕이며 듣던, "평범한 사람들이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길이 옳기 때문"이라던 김호열 지부장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1년6개월 동안 이 지면을 채우면서 '노동'이 없는 경제란 성립될 수 없음을, 노동자가 고통을 감내하는 성장이란 결국 성장이 아니라 퇴행임을 말하고 싶었다. 발레오, KEC, 상신브레이크, 풍산, 국민체육진흥공단, 포레시아, 유성기업, 현대차 비정규직 등 절박하게 싸우는 현장의 이야기를 그때그때 다 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취재하고도 싣지 못한 동희오토 노동자들께 미안하다. 기륭전자의 복직이 완료되면 '복직 그 후 이야기'로 함께 담으려 했는데 기륭의 복직이 늦어지면서 결국 쓰지 못했다.
그동안 부족한 내게 취재를 허락해주고, 고통의 현장을 지켜보며 우는 나를 오히려 토닥거려준 노동자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모든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꼭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를, 부디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들에게 이 겨울이 승리의 계절로 남기를 간절히 바라며 부족했던 연재를 마친다.

namufree@daum.net

2012년 10월 7일 일요일

우리 민주주의가 빚지고 있다


이글은 이코노미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10-01일자 제30호 기사 '우리 민주주의가 빚지고 있다'를 퍼왔습니다.
노동과 삶 ● 3년째 단체협상·해고자 복직 위해 싸우는 한국3M 노동자들

한국3M은 비인간적인 노조 탄압으로 노조를 와해하려 한다. 3M 최고경영자(CEO)인 조지 버클리. 뉴시스 REUTERS

600명이 넘던 3M의 노조원들은 3년 만에 160명으로 줄었다.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이란 이미지 속에서 벌어진 온갖 탄압을 견디고 남은 수다. 용역들은 생산라인까지 들어와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괴롭힌다. 밖에서 알아주는 이 없지만 누가 부여하지도 않은 의무감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선옥 르포작가
서울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옥쇄파업을 벌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경찰특공대의 잔인한 폭력에 대해 한 인권운동가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국민들이 용산을 참아주었기 때문에 그 폭력이 쌍차로 갔다. 언제까지 국가의 저런 모습을 용인하고 참아줄 것인가. 용산은 '아, 이 정도는 국민이 봐주는구나' 하는 아주 몹쓸 교훈을 남겼다."
지난 8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용역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의 증언자로 나선 금속노조 한국3M지회 박근서 지회장의 발언을 들으며 그 장면이 떠올랐다. 3M 노조가 당한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증언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용역들에게 무조건 맞았습니다. 2010년 6월17일에 저희가 고소를 해서 용역깡패들이 벌금을 문 사건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컨택터스였습니다. 만일 그 당시 저희가 (용역폭력에 대해) 호소했을 때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번에 SJM 사태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M에서 저지른 용역들의 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단호하게 '이런 폭력은 안 된다'고 했더라면, 2년 뒤 경기도 안산의 자동차부품업체 (주)에스제이엠(SJM)의 노동자들 머리가 터지고 살점이 파여 떨어지는 폭력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폭력은 그걸 용인해주는 순간 반드시 더 큰 폭력이 되어 다음 대상을 찾아간다.
특히 요즘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용역깡패의 폭력을 각오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맞거나 신체를 훼손당하는 건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드문 일이다. 사고나 재해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의 일이 노조 활동에서는 거의 100% 일어난다. 용역깡패들에게 폭행당한 조합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이런 폭력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다 큰 어른인 내가 남에게 두들겨 맞고 다칠 수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2012년의 노동자들은 이렇게 살고 있다. 특별히 대단하고 거창한 투쟁, 격렬한 싸움을 하지 않는 3M 같은 노조의 조합원들이 일상다반사로 겪는 일이다.
3M은 우리가 쓰는 포스트잇, 수세미, 방진마스크, 선팅지, 자동차 용품, 액정표시장치(LCD)용 필름 등 여러 생활용품과 소모품을 만드는 회사다. 미국 자본이 소유한 기업으로 한국·일본·중국·인도 등 세계 곳곳에 60여 개 공장을 가진 다국적기업이다. 2009년 노동조합이 생긴 뒤 이 다국적기업이 보여준 행동은 글로벌화가 얼마나 부질없는 구호이며, 해당 국가의 노동관이 천박한 이상 어떤 선진국 자본도 현지 수준으로 천박해진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깨끗하고 이미지 좋은 회사,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 뽑히는 한국3M에 왜 노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까? 3M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근무평가제라고 관리자가 평가를 해서 임금 인상과 진급에 반영하는 제도가 있어요. 단체회식에 가서 쇠고기를 먹으면 벌점 주는 식으로 완전 관리자 마음대로예요. 팀장 부인이 정수기를 팔면 사야 하고,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근무시간도 아닌데 화장실 청소하고, 휴게실 청소하고 그래요. 일하다 다치면 벌점을 받으니까 말도 못하고 혼자 치료해요. 모든 문제는 근무평가제였어요."(유선호·36·나주공장)

폭력·해고·고소로 이어지는 탄압

"3M이 월급을 많이 주고 사회봉사 활동도 많이 하는 이미지 좋은 기업이지만, 안에서는 좀 심했어요. 소모품 비용을 아낀다고 여름에도 동복 바지 입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생산성 높인다고 교대로 봐야 할 기계를 혼자 보게 하고, 휴식시간도 없이 밥 교대를 해야 하니까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몰라요. 주말에 결혼식에 간다고 하면 '왜 쉬냐'고 '청첩장 복사해와라' 그래요. 부당한 일이 있어도 따지면 찍히거든요. 다 근무평가에 반영되니까. 노조가 생기고 그런 게 바뀌었어요. 노조에 90% 이상 다 가입한 건 그런 게 너무 심했기 때문이에요."(백승철·35·화성공장)
그러나 3M 경영진은 노동자를 가장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평화롭던 공장에 용역깡패를 상주시켰고, 노조를 탈퇴하지 않는 조합원들은 힘들고 낯선 부서로 옮기고 탈퇴를 종용했다. 수백 명을 상대로 끝없이 해고와 징계, 고소·고발, 손해배상 가압류로 위협했다. 설마 회사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 꿈에도 몰랐던 노동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현장 라인에서 파트장까지 했던 고참 노동자는 그게 너무 억울했다. 그는 노조를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부의 신생 부서인 TPM(Total Position Maintenance)으로 옮겨졌다. 하루 종일 쓰레기를 줍거나 4만5천 평 공장 둘레의 풀을 베는 게 그의 일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땡볕에서 풀을 베면 입에 단내가 난다. 어떤 날은 예초기를 든 손이 덜덜 떨린다. 20여 일을 걸려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풀이 자라 있는 넓은 땅. 유배된 노동자 4명은 현장 조합원들과 격리돼 그렇게 형벌인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노조를 탈퇴할 수는 없단다.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고,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국3M이 상명하복 문화라 많이 힘들었어요. 현장에서 모멸감을 주죠. 이런 허드렛일을 시키면 분명히 탈퇴한다 생각한 거예요. 처음엔 모멸감보다 현장에서 여태껏 내가 쌓아왔던 경력이나 그런 것들을 회사가 분명 알 텐데, 노조가 생기든 아니든 내가 지금까지 (내 일을 사랑하는) 한결같은 마음이 있는 걸 분명히 알 거라고요. 여기서 이겨내려고 합니다."(진건수·41·나주공장)

한국3M 해고자들이 지난 9월7일 오후 서울 여의도 3M 본사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제가 입사한 지 18년이에요. 저도 파트장이었고 일에 대해서는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어요. 근데 미국 경제가 위기일 때 한국3M도 해고를 했어요. 능력을 인정받았어도 불안하죠. 출근하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감과 후배들한테 안전한 작업장, 할 말을 할 수 있고 노동자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현장을 물려주려는 생각에 노동조합에 가입을 했죠. 노동조합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습니다."(김범룡·43·나주공장)
TPM 부서의 노동자 4명이 땡볕에서 풀 베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박근서 지회장은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했다. 일 잘하고 현장에서도 신망받던 그들이 "우린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웃으며 말할 때마다, 해고자 처지라 현장에서 그들을 지켜줄 수 없는 현실, 노조를 만들자마자 겪고 있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2년 동안 설사를 달고 산다. 정말로 속이 썩어 문드러졌다.
"600명 넘던 조합원이 1년6개월 만에 500명이 빠져나가는데, 진짜 애간장이 녹아버리더라고요. 안에선 관리자들이 탈퇴 작업을 하고 있고. 나는 못 들어가니까. 나보다 더 선배인 고참 사원들이 2년 동안 풀만 베고 있어요. 숨도 못 쉬게 더운데 예초기 메고…. 그거 보고 있으면 눈물이 눈에서 흐르는 게 아니라 가슴속에서 막 흘러요. 돌아버려요. 15년 이상씩 근무한 최고참들이에요. 얼마나 쪽팔리겠어요. 모멸감을 주는 거예요. 잔업 특근 안 시키고 임금 인상 안 시키니까 임금도 적고 비참하죠. 근데 당당하게 버텨주니까 정말 너무너무 고맙죠."(박근서·39·지회장)
2009년 5월14일, 수십 년 된 공장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회장이 된 뒤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회사가 큰돈으로 유혹도 했고 금속노조만 탈퇴하면 다 들어주겠다고 회유와 협박을 하고 있지만 조합원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민주노총 총파업이 있던 날 전남 나주와 경기도 화성 공장에서 서울 여의도 본사 앞 결의대회를 위해 올라온 조합원들에게 그는 단호하게 다짐했다. "이렇게 남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저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지회장의 파업 지침을 받고 일제히 올라온 조합원들은 뜻밖에도 밝은 모습이었다. 온갖 탄압에 떨어져나가고 600명이 넘던 수에서 이제 160명만 남은 조합원들은 함께 견딘 3년 세월의 힘을 보여주었다. 지도부에 대한 신뢰와 서로에 대한 대견함이 보였고, 불안해하지 않고 해고자들을 걱정하는 모습에서 단단히 여문 속이 느껴졌다. "지금 남아 있는 분들은 그 자체로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 분들"이라고 해고자들이 입을 모았듯 공장 밖의 해고자들은 이들이 있어 버티고, 조합원들은 버티고 있는 해고자들을 보면서 공장 안의 수모를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노동자 1500명이 1조5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해마다 수천억원의 배당금을 미국으로 보내는 게 한국3M이라고 한다. 세계 공장들 중에서도 알짜배기에 노다지다. 같은 공장 안에 정규직과 다른 무기계약직 직군을 두어 저임금으로 여성들을 차별하고, 근무평가제로 옴짝달싹 못하게 쥐어짠 결과다. 이들은 노조를 만들어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직군을 없애 정규직화했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대의를 위해 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주로 아주머니인 여성노동자들이 같은 일을 하는데도 자신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에 상여금도 없고 진급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런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노동조합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대우를 받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정규직이던 한 해고자가 말했듯, 노동운동의 대의나 원칙은 아직 몰라도 상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했다.
정규직의 기득권만을 위해 싸운다는 비난은 가득하지만,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최우선으로 걸고 싸워서 이뤄낸 한국3M 노조 같은 사례는 알려지지 않는다. 금속노조를 두고 정규직 이익만을 위해 싸우는 강성집단으로 묘사하는 언론은 많지만 하루아침에 해고돼 생계가 막막한 노동자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조직임을 알리는 곳은 거의 없다.
"금속노조 아니었으면 저희 노조는 진작 끝났죠. 징계가 시작되면서 1년 넘게 한 달이면 50명씩 (징계자가) 나왔으니까. 끝나고 들어가면 수십 명이 또 나오고, 또 들어가면 또 나오고 그랬어요. 정말 징계가 무섭더라고요. 사람이 월급을 못 받고 6개월 동안 심사를 받는다고 하면 회사를 떠나야 가능하지, 임금 한 푼 안 받고 살 수 없잖아요. 이 사람들 다 어떻게 하겠어요. 그나마 금속노조가 신분보장기금을 주어서 살았어요. 우리 생계비로만 수억원을 썼어요. 아마 쌍용차 다음으로 우리가 돈을 많이 가져갔을 거예요. 솔직히 우리가 낸 조합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만약에 기업노조였다면 어떻게 버텼겠어요. 그런 지원이 없었더라면, 그런 연대가 없었더라면…."(박근서)
3년 내내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싸움인데도 한국3M은 장기투쟁 사업장 가운데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구조조정, 정리해고, 비정규직 같은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죽은 것도 아니고, 용역폭력은 아직 사회에서 관심도 받지 못할 때였다. 사회적 쟁점 없이 그냥 당사자들만 죽어라 힘든 싸움, 그게 바로 한국3M처럼 노조를 지키는 싸움이다. 지금 공장에는 용역들이 라인까지 들어와 노동자들을 감시하며 괴롭히고 있다. 회사는 노조파괴 전문가를 고용해 조합원들을 탄압하고, 단체협상 교섭장에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 협상 중이라는 이유로 조합원들의 임금만 3년째 동결하고 있다. 비조합원과 한 달에 7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참다 못한 해고자들이 간판도 없는 여의도 3M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 중이다. 오늘도 담담하게 이런 싸움을 이어간다.

한국3M 해고자들이 서울 여의도 3M 본사 앞 농성장 주변에 쳐놓은 펼침막들. 한겨레 김명진

가장 힘들고 지난한 노조 지키기 투쟁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과 힘듦을 표현하지 않는 싸움의 수고를 알아야 한다는 걸 한국3M의 투쟁은 보여준다. 수십 명이 죽어 나가지 않아도, 고공농성이나 단식이 없어도, 삼보일배가 없어도, 노동조합을 만들 당연한 권리가 이런 모멸을 받아야 하는 세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게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왜 사회적으로 필요한 존재인지도 이들은 입증한다. 하루아침에 해고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들을 지탱해준 건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아닌 금속노조였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떠드는 따뜻한 경제, 사회안전망 확충을 사실상 노조가 하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손 내밀 마지막 보루조차 무너진다면 이들의 현재와 미래는 누가 책임져줄까? 기약도 없는 재판을 7∼8년씩 기다리도록 하는 사법부가? 비정규직 양산과 정리해고를 법적으로 보장해준 입법부가? 입만 열면 정규직 귀족노조, 강성노조가 나라 망친다고 떠드는 행정부가? 교통 불편만 탓하는 언론이? 근로기준법조차 가르치지 않는 교육이? 과연 누가 이들의 구체적인 삶을 책임져주는가? 이 모든 곳이 노조 욕하기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 묵묵히 노동자를 조직하고 교육하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노동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면 백번도 더 망했어야 할 서구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왜 노동조합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제발 글로벌 기업이라는 곳들이 아는 날이 언제나 올 것인가?
'용역깡패들이 노조를 파괴하러 일터에 들어가선 안 되는구나'가 아니라 '용역깡패라는 존재가 있어선 안 되는구나' 하는 걸 더 늦기 전에, 선을 넘기 전에 막아야 하고,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고 3M 노동자들은 말하고 있다. 어디선가 한 번은 이 폭력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누가 부여하지도 않은 의무감을 붙들고 용역깡패의 폭력에 맞서고, 지난한 재판을 이어가는 이 작은 노조의 노동자들에게 우리 민주주의가 빚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아닌 우리인들, 알기는 아는 걸까.

namufre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