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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3일 화요일

"노동 운동가 출신 회장, 외국계 '먹튀'보다 더 했다"


이글은프레시안 2013-04-22일자 기사 '"노동 운동가 출신 회장, 외국계 '먹튀'보다 더 했다"'를 퍼왔습니다.

[현장] 골든브릿지투자증권 파업 1년, 무너진 '다리' 세우려는 이들


증권회사에 다니는 송현지(33) 씨는 매일 오전 자취방에서 출근을 준비한다. 19일 오전에도 송 씨는 어김없이 집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나섰다. 회사에 도착하자 그는 대형 빌딩 숲 속에 자리한 천막 농성장에 들렀다. 정장 차림 대신 면바지에 배낭 차림이다.

송 씨는 1년째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3일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가 파업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당시 임직원 199명 가운데 92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아직도 매일 70-80명이 투쟁하러 회사로 나온다.

다른 파업 참여자와 마찬가지로 그도 1년째 월급을 못 받고 있다. 좋아하던 커피도 끊어야 했다. 주변에는 사무직 여직원들 한 무리가 커피를 들고 벚꽃이 핀 거리를 지나갔다. 송 씨의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와 친언니와 오피스텔을 구했던 그는 파업이 길어야 한 달, 아무리 길어도 석 달이면 끝날 줄 알았다. 1년이나 갈 줄은 모르고 계약을 연장한 오피스텔 월세가 60만 원이었다. 가족들에게 번번이 손을 벌리기 미안하다. "계약 끝나면 이제 다른 집 알아봐야죠."
▲ 송현지 씨 ⓒ프레시안(최형락)


외국 투기 자본 뒤에 들어온 '노동 운동가' 출신 회장

송 씨가 골든브릿지투자증권(당시 브릿지증권)에 입사한 때는 2004년 7월이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면 사회적인 시선이 좋아서" 부모님도 많이 좋아하셨다. 그의 연봉은 4200만 원. 금융계치고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먹고살기 부족한 금액도 아니었다.

불행히도 송 씨가 입사한 해는 영국계 사모 펀드인 BIH(브릿지 인베스트먼트 홀딩스)가 회사를 '먹고 튀려던' 즈음이었다. 회사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직원들이 '먹튀 방지' 싸움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외국계 투기 자본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유상 감자를 통해 투자 자금 2200억 원을 회수하고도 1000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철수했다. 50개가 넘던 지점이 20개 이하로 줄었다. 남은 직원들은 당황스러웠다.

외국계 자본이 녹록지 않다고 깨달을 무렵,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현 이상준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노동 운동을 했으며, 사무금융노조의 전신인 전국보험노조연맹 홍보국장을 지냈던 이력을 노조 측에 내세웠다. 이 회장은 노조 측에 '노사 공동 경영(ESOP : 우리 사주 신탁 제도)'을 제안했다. 노조는 "노동 운동가 출신으로 노동자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안다"던 이 회장을 받아들였다. 송 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이제 회사가 잘 풀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금융위 "골든브릿지증권, 회삿돈 빼돌려 계열사 불법 지원"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산산이 깨졌다. 조짐은 이전부터 있었다. '노사 공동 경영'을 위해 인수 당시 50억 원을 출연한다는 약속은 3년 뒤에나 이뤄졌다. 인사 이동을 둘러싸고도 노사 간 소소한 충돌이 있었다. 송 씨는 "대구 사는 사람을 회사가 부산으로 보내서 반발하니, 회사는 노조가 너무 간섭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직원들이 가장 분노하는 부분은 '계열사 부당 지원'이다. 경영진이 모회사인 골든브릿지 그룹에 수십억 원을 부당 지원해 부실 계열사인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을 지원하도록 도왔다. 노동조합은 "회삿돈을 빼돌려서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맞섰지만, '경영에 간섭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임직원들은 허탈해 했다. '노사 공동 경영'은 말뿐이었다는 것이다.

부당 지원을 둘러싸고 노사 공방이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17일 금융위원회는 골든브릿지증권에 '계열사 불법 지원'을 이유로 과징금 5억7200만 원을 부과했다. 파업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회사 측은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

송 씨는 회사의 '부실 경영'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압구정 지점에서 5년간 일했다가 강남 지점으로 갔는데 회사가 점포를 폐쇄했다"며 "이 회장이 사업을 벌이면서 차린 '금융 판매 회사'에서 손실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지점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오전 7시 반까지 출근해서 새벽 1-2시까지 수당이나 대체 휴가 없이 일하는 날이 잦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묵묵히 일했다.
▲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로비 앞 사무실의 빈 책상들. 파업 초기 노조원들은 사무실 출입을 두고 용역 직원들과 대치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노사 공동 경영' 파기하고, 창조컨설팅과 계약?

'노사 공동 경영'을 먼저 파기한 쪽은 사측이었다. 2011년 10월 회사는 노동조합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노조가 단협을 이유로 인사와 경영권에 관여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회사는 "정리해고 시 합의한다"는 단체협약 문구를 "협의한다"로 바꾸자고 했다. 노조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안이었다. 결국 노조는 지난해 4월 파업에 들어갔다.

사측이 '노조 파괴 전문 노무법인'으로 알려진 창조컨설팅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노조가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송 씨는 "돌이켜 보니 공격적으로 파업을 유도하고 용역을 투입한 과정이 유성기업이나, 한국쓰리엠 등 창조컨설팅이 투입된 다른 사업장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회사가 일부러 파업을 유도한 것도 창조컨설팅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회사 관리자들이 감사팀, 재무팀 등 비밀 관리 유지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 공문을 보낸 것도 도마에 올랐다. 급기야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지난해 11월 회사가 창조컨설팅과 공모해 '노조 파괴'에 나선 정황을 포착해 부당 노동 행위 혐의로 골든브릿지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파업 이후 소송전도 본격화됐다. 노조는 지난해 8월 이상준 회장과 남중정 사장을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노조는 이 회장이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것 외에도 회삿돈 수십억 원을 들여 사모 펀드를 조성해 제주도 리조트를 샀고, 이 리조트를 이 회장이 개인 자택으로 쓰고 있다고 고발했다. 노조는 또한 이 회장이 모친에게 회사 법인 카드를 쓰게 했다며 이 회장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외국계 투기 자본 피했는데, 국내 자본도 답 없다"

송 씨의 하루는 회사 앞 천막 농성장에서 시작했다. 회사 앞은 조합원 60여 명으로 가득 찼다. 부장급부터 막내 사원까지 다양했다.

김호열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 지부장은 19일 천막 농성장 앞에서 "금융감독원이 사측을 중징계하기로 한 원안을 통과시켰다"며 "이 회장이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고용 안정, 근로 조건 보장도 없다. 경영진·대표 이사·회장까지 기소·처벌되는 회사를 누가 우호적으로 보겠나"라고 반문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송 씨는 일정표를 받았다. 천막 농성장, 5층 사무실 앞, 로비 앞을 차례로 지켜야 한다. 송 씨와 함께 5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양복을 입은 사람이 타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송 씨는 "방금 탄 사람이 인사 경영 관리자"라며 "내가 내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니 나가라고 소리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송 씨는 "법적으로 파업 중인 직원이 자기 사업장에 들어갈 수 있는데도, 회사에서 못 들어가게 했다"고 토로했다.

송 씨를 따라간 5층 사무실과 로비 앞 복도에는 큰 화분이 놓여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손팻말을 든 송 씨가 자리 잡는다. 그는 "우리 보기 싫다고 얼마 전부터 회사가 복도 양옆을 화분으로 다 막아 놨다"고 설명했다. 피켓 시위를 하는 직원들은 저마다 책을 읽거나 휴대 전화로 웹서핑을 했다. 송 씨는 '바리스타 2급 자격증' 책을 꺼내 들었다. "파업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본사 5층 복도 양옆에 놓인 화분들. ⓒ프레시안(최형락)


▲ 송현지 씨는 "파업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파업하는 동안 회사에서 받은 상처도 많다. 용역이 투입돼 들려 나간 기억도 있다. 송 씨는 "얼마 전까지 하루 종일 같이 일하고 같이 점심 먹고 같이 생활하던 직원을 쫓아내고 용역을 투입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아찔하던 순간도 있었다.

"지난해 7-8월까지는 회사가 검정색 정장 차림의 용역 20-30명을 투입해서 조합원들을 들어냈어요. 6월쯤 로비에 있는 영업부서 정수기에 물 마시러 갔는데 용역이 막았어요. 용역이 들어가려는 조합원을 때리려고 쇠로 된 날카로운 무기를 손에 차는 거예요. 다행히도 (무기를) 꺼내다가 걸려서 우리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누가 그 쇠 무기에 맞았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파업 초기에는 동료들이 미행을 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몇몇 조합원들이 회사 맞은편 봉고차 안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발견했다. 쫓아가 사진을 보니 조합원들이 퇴근하는 사진, 회의하는 사진은 물론이고 담배 피우는 일상까지 다 찍혀 있었다고 했다. 노조 간부들이 서울 불광동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실에 가는 모습도 있었다. 노조는 사진 찍은 사람을 개인정보법 위반으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사진을 유포하지 않으면 합법"이라고 했다.

파업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서명한 임직원들에 대한 '부당 징계'도 구설에 올랐다. 회사가 지점장급 직원에게 4개월 이상 지하 창고에서 근무하게 하고 반성문 쓰기를 종용했다. 송 씨는 "회사는 징계한 사람들 일부를 전화, 컴퓨터도 없이 책상만 있는 지하 창고에 가둬놨다"며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맹비난했다.

"회장이 노동 운동가 출신이라 회사가 잘될 줄 알았는데, 외국계 '먹튀' 자본이 아니라 국내 자본이라 나을 줄 알았는데, 국내 자본도 답이 없어요."
▲ 골든브릿지지부 조합원들은 매일 돌아가며 로비, 5층 사무실, 천막 농성장을 지킨다. ⓒ프레시안(최형락)


"다리는 이미 무너졌지만, 다시 일으켜 세워야죠"

오전 10시에 모이는 노동조합 일정은 매일 오후 4시 반에 끝난다. 문화제가 있으면 밤 9-10시까지 일정이 빼곡하다. 그동안 다녀본 파업 사업장도 많다. 쌍용차 평택 공장, 재능교육, 코오롱,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부산 한진중공업도 갔다. 장기 파업 사태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영업 직원들도 영업 전단지 돌리는 것을 쑥스러워하고 싫어했는데, 지금은 다들 전단지의 달인이 됐어요. 부장급 직원도 '경영 정상화'를 알리는 전단지를 시민들한테 돌려요. 한번은 같은 금융계가 몰려 있는 여의도에서 전단지를 돌렸는데, 받아주지 않아서 섭섭해 했더니 부장님이 그러는 거예요. '우리도 옛날엔 그랬다.'"
송 씨는 "쌍용차 앞에서 장기 파업이라고 말도 못하지만, 파업 1년도 길다"며 "가정이 있으신 분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조심스레 털어놨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밝아보여도 속은 다 문드러져 있어요. 한 번 터지면 줄줄이 눈물이에요. 가정 문제나 경제 문제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내한테 이혼을 요구받는 남편도 있고, 집에 가면 아이들이 아빠와 눈을 안 마주친대요. '예전에는 정장 입고 출근했는데, 아빠는 왜 등산복 입고 나가?'라고요. 백일 된 아이 두고 파업 현장 나온 아이 엄마는 젖도 못 뗀 아이가 눈에 밟혀 울었어요."

송 씨는 "처음 파업을 시작했을 때 1년까지는 참아보자 했는데, 막상 1주년이 눈앞에 닥치니 금전적으로도 힘들고 주위 시선도 곱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티는 이유는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있고, 경영진의 비열하고 악질적인 모습을 보고서어느 회사에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송 씨의 하루가 저물 무렵, 회사 앞에는 "약속이 깨지면 다리(브릿지)가 무너집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그는 "다리는 이미 무너졌지만,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감시·감독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도 공공적인 원리로 운영돼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외국계 투기 자본의 탐욕도, 계열사 부당 지원도 제대로 감시·감독하지 못했어요. 검찰도 금융위 결과가 나오니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움직이고 있어요. 

저희 마음은 그렇지 않거든요. 빨리 파업을 끝내고 회사를 정상화하고 싶어요. 회사만 잘 살리면, 경영진이 회삿돈만 안 빼돌리면 잘 클 수 있는데, 일터로 복귀해서 다시 잘해보고 싶어요. 좋은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김윤나영 기자,최형락 기자

2013년 1월 23일 수요일

금속노조 “창조컨설팅, 만도에서 노조 파괴 개입”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1-22일자 기사 '금속노조 “창조컨설팅, 만도에서 노조 파괴 개입”'을 퍼왔습니다.

ⓒ민중의소리 지난해 9월 5일자로 작성돼 다음날 노조 게시판에 오른 만도노조와 회사측의 임단협 의견접근안 문서파일

금속노조가 지난해 직장폐쇄와 용역투입으로 논란을 빚은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 사태와 관련해 창조컨설팅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금속노조 "만도의 노조파괴 공작, 창조컨설팅이 진행"

금속노조는 22일 “직장폐쇄와 어용노조를 내세운 만도의 노조파괴 공작이 창조컨설팅과 노조파괴 전문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규약 및 단협 잠정합의안 작성자 확인으로 드러났다”며 “이는 만도노조 설립부터 운영까지 노조파괴 전문가가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9월 5일 금속노조 만도지부 간부들 해고 당시 ‘만도’는 기업노조인 만도노조와 교섭을 진행했다. 당시 만도노조가 잠정합의안 자료를 공개했는데, ‘2012년 임금교섭 보고 문건의 작성자가 창조컨설팅으로 기록됐다는 것이다.

또 만도노조 규약 파일의 문서정보에도 작성자가 홍모씨로 기록됐다. 홍씨는 2002년 대우그룹 노무팀 및 태광산업에서 노무관리 활동을 하면서 노조 탄압으로 이름을 알렸던 인물이라고 금속노조는 전했다.

ⓒ민중의소리 7월 30일 출범한 만도기업노조의 규약이 출범 이전에 외부인사에 의해 작성된 정황이 드러났다.

"만도노조 설립 자체가 노조파괴 전문가들의 개입 하에 준비"

앞서 ‘만도’는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소속인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파업에 들어가자 27일 직장폐쇄를 선언하고 용역을 투입했다. 이후 사흘만인 30일 ‘만도’에서는 복수노조인 만도노조가 설립됐으며 이후 만도지부의 세력은 급속히 약화됐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만도에 직장폐쇄가 선언 될 때부터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있다는 의혹을 받아왔지만 지금까지 사실로 확인되진 않았다.

금속노조 법률원 김태욱 변호사는 “창조컨설팅은 과거에도 노조를 파괴해온 기업으로 이 때문에 인가취소까지 받기도 했다”며 “창조컨설팅이 노사 교섭안을 작성했다는 것은 그간 노조가 사용자를 위한 허수아비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도 “홍모씨가 작성자로 돼 있는 만도노조 규약은 노조가 설립되기 전이자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막 거친 7월 6일에 작성된 것”이라며 “만도노조의 단협 체결을 비롯해 노조 설립 자체가 노조파괴 전문가들의 지배와 개입 하에 준비된 것”이라고 힐난했다.

그러나 만도노조는 창조컨설팅 등과의 관련성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만도노조 안한규 기획실장은 “두 문서 모두 제가 만든 것으로 만들 당시 노동부 표준규약 등 여러 문서를 참조하는 과정에서 덧씌워진 것 같다”며 “창조컨설팅과 홍씨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현재 기업노조 홈페이지에는 홍씨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규약 관련 문서는 삭제된 상황이다.

김대현 기자

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평범한 사람이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


이글은 이코노미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12-01일자 제32호 기사 '평범한 사람이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를 퍼왔습니다.
노동과 삶

지난 11월8일 파업 200일을 맞은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조원들이 ING생명·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충정로 본사까지 노조탄압에 항의하는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저러다 말겠지' 하고 스쳐 지났던 골든브릿지투자증권 파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200일을 넘겼다. 그것도 사무직 노조에 처음 들어온 노조파괴 전문집단 창조컨설팅에 맞서서. 노조원들을 지켜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노동자들은 기약 없는 장기투쟁의 준비에 들어갈 수밖에….
이선옥 르포작가
'머리 쓰는 일보다 몸 쓰는 일이 더 대접받는 게 진보한 사회다'라는 생각을 원칙처럼 가지고 있다 보니 주로 제조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더 마음이 쓰인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노동환경이 열악한 곳이 아직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할 때 밖을 쳐다보면 딴생각이나 한다고 창문이 없는 콜텍 공장, 점심 먹고 쉴 틈도 없이 기계를 봐야 하는 한국 쓰리엠(3M),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나는 개다"를 복창해야 하는 유성기업 등. 제조업 생산직 사업장은 여전히 노동 강도가 말도 못하게 셀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모욕이 적나라한 곳이 너무나 많다. 21세기 맞나 싶을 정도로 열악한 사업장의 얘기를 듣다 보면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나마 견딜 만한 싸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창조컨설팅과 싸워 버틴 200일

그래서 지난 봄부터 거의 일주일에 서너 번을 서울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이나 시청의 농성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들의 투쟁 모습을 보면서도 '저러다 말겠지, 사무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얼마나 오래갈까' 생각하면서 지나쳤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거리엔 벌써 노란 은행잎이 다 떨어져 이제 겨울인데 충정로 골든브릿지 본사 앞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벌써 6개월, 투쟁 200일을 맞는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혼자서 고통의 서열을 매기고 있던 편견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우리 투쟁이 중요한 게 사무직 노조에 노조파괴 전문집단인 창조컨설팅이 처음으로 들어왔어요. 다른 사업장은 어용노조가 들어서고 깨졌어요. 발레오기업,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영남대병원 등 거의 와해됐잖아요. 근데 우리는 민주노조가 아직 살아 있거든요. 버티고 있어요. 200일 살아 있다는 게 진짜 훌륭한 건데, 만약에 더 길어지고 우리가 깨지면 민주노조가 하나 더 깨지는 거잖아요. 창조컨설팅이 사무직 노조까지 깨려고 하는데 우리가 깨지면 다 깨져요.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이수창 수석부지부장)
파업 199일째인 11월7일, 89명 조합원이 6개월 동안 함께 행동하고 있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200일 기념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노조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최초의 사무직 노조. 이들은 그 의미를 무겁게 여기고 있었다. 우리가 지면 모두 진다는, 그래서 절대 질 수 없다는 민주노조로서의 의무. 늘 보면서도 볼 때마다 답답하고 숙연해지는 노동자들의 오지랖이다.
같은 사무금융연맹 소속의 ING생명 노동자들은 그날 파업 100일을 맞았다. 100일 간격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작한 파업. 먼저 당해본 선배로서 그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알기에 모두 참석하기로 했다. 몸짓패는 무대에서 위문공연도 할 참이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몸짓패 '몸치탈출' 소속 조합원 20여 명은 본사 앞 길바닥에서 저녁 공연 연습에 들어갔다. 5개 조로 나눠 교대로 농성을 담당하는 나머지 조합원들이 그들의 연습을 지켜보며 웃는다. 1개 조에 붙어 농성을 함께 경험해보는데 1시간을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볼은 시리고, 손가락은 굽어서 수첩에 메모를 할 수 없었다. 벌써 날씨가 이렇게 추워지는데 어떻게 겨울을 날까 싶어 걱정됐다.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고 미안하죠. 집행부 믿고 시작한 건데…. 저는 조합원들이 밝게 웃어도 그게 슬퍼 보여요. 날수가 쌓일수록 미안한 마음에 어깨는 더 무거워지고 부담이 되게 크죠. 일단은 미안해요. 처음에 조기 승리를 확신했고 약속했는데, 양치기 소년처럼 한 달, 석 달 지나니까…. 저는 2주 내지 한 달 정도면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겨울을 나나 못 나나, 그러고 있어요."(김호열 지부장)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은 규모는 작아도 자기자본금 2천억원을 가진 나름 탄탄한 증권회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시장에 투기자본이 속속 들어왔고, 그 가운데 영국계 사모펀드 BIH가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전신인 브릿지증권의 대주주가 되었다. 이들은 2005년에 멀쩡한 회사를 청산하고 마지막 이윤을 빼가려고 했다. 노조는 청산 반대 투쟁에 들어갔고, 다른 주주들을 설득했다. 경영을 할 인수자를 찾던 중 이상준 당시 골든브릿지캐피탈 대표(현 골든브릿지금융그룹 회장)를 만났다.

노동운동가 출신 회장의 행태

이상준 회장은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고, 보험노련의 홍보부장 경험도 있는 노동운동가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노조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ESOP(우리사주조합 신탁제도)를 도입하겠다 약속했고, 노조가 추천하는 사람을 등기이사에 임명하겠다고도 했다. 노사 공동경영의 모범 기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는 그에게 신뢰가 갔다. 어느 인수자보다 매력 있는 조건이었다. 2005년 7월 브릿지증권노조와 이상준 대표는 공동인수자로 약정서를 체결하고 브릿지증권의 공식 경영권을 인수했다. 자금력이 부족한 그를 노조가 선택하고 도와주었기에 가능했다. BIH는 주식을 팔고 떠났다. 투기자본의 공격을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막았을 뿐 아니라 노사 공동경영이라는 새로운 모범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허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은 "차라리 투기자본이랑 싸우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이상준 회장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다.
"처음에 ESOP 주식 50억 주를 직원들한테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을 안 지키더라고요. 우리가 요구를 하니까 2007년에야 줬어요. 무리하게 해외 사업을 벌이고 국내 사업도 계속 확장했는데 결국 재미를 못 봤죠. 2008년 겨울쯤에는 사업 실패에 책임진다며 사람들을 잘랐어요. 계속 문제제기를 하니까 노조를 걸림돌로 생각한 것 같아요. 2011년 갑자기 창조컨설팅 출신의 노무사를 인사팀 과장으로 채용해요. 인사팀장도 외부인으로 채용하더니 관리직 조합원 11명에게 공문을 보내서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고 협박했어요. 깜짝 놀랐죠. 그러더니 그다음 단계로 단체협약안 88개 중 28개 조항을 개악한 요구안을 내놨어요. 해고를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 활동 관련 조항을 축소하고, 유니온숍도 오픈숍으로 바꾸겠다고 하고…. 이건 완전히 도발이었고 노조를 와해하겠다는 태도였어요."(이수창)
조합원들은 분노했다. 특히 정리해고를 합의에서 협의로 바꾸겠다는 조항은 회사가 언제든 나를 해고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상준 회장은 노동조합을 '귀족노조'라 비난했다. 경영진은 사내 통신망에 "귀족노조가 무임 승차자들을 보호하고 철밥통 지키기를 하고 있다, 파업 지도부가 무리한 선택으로 직원들을 고용 불안에 내몰고 있다"며 노조를 공격했다. 그러고는 단체협약을 해지해버렸다. 공문 한 장으로 끝이었다. 26년 동안 쌓아온 노사관계와 1987년 투쟁으로 만든 민주노조의 자존심이 그 공문 한 장에 무너졌다. 하루아침에 보호 장치 없이 내몰린 직원들을 지키려면 파업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조합원 협박, 단협 개악, 단협 해지로 이어지는 이 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창조컨설팅의 계열사인 휴먼밸류컨설팅의 작품이었다. 자칭 노동운동가 출신이며 민주화운동 이력을 자랑하는 회장은 경영의 동반자가 되자고 했던 노동자들 대신 노조파괴 세력과 손잡았다. 그리고 그걸 정의로운 신념으로 여긴다고 한다.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저임금에 밤낮없이 일하는 구로공단의 불쌍한 사람들이 진짜 노동자지 고액 연봉에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노조는 진정한 노조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자기 민주화'만' 완결된 사람들이 흔히 갖는 신념의 폭력이다. 이 회장은 회사의 손실이 얼마가 되든, 설사 구속된다 해도 절대 타협은 없다고 공언했단다. 그 한 사람의 왜곡된 신념 때문에 90명이나 되는 조합원들이 월급 한 푼 못 받고 카드빚과 대출을 받아가며 여섯 달째 길에서 싸우고 있다.
파업 200일을 맞은 11월8일 아침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조합원들과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 소속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들이 오늘 여기 모인 이유는 금융회사의 파업이 장기화되는데도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는 금감원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금융회사는 고객의 돈을 맡아서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에 내부통제제도가 관리의 핵심이다. 그게 되지 않을 때 결국 위험과 손해는 고객에게 돌아간다. 경영진의 배임과 부당경영에 대한 제보와 고발을 충분히 했고, 이를 조사한 지 4개월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금감원은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의 정부와 산하 단체들은 이처럼 개입해야 할 일은 노사 문제라는 이유로 방관하고, 노사 간 협상을 만들어줘야 할 일에는 공권력을 투입해서 노동자들을 진압한다.
노조가 합법 파업을 벌이는데 회사가 불법 대체인력을 투입해 파업을 무력화해도 제재가 너무 미약하다. 불법으로 얻는 이익이 법 준수로 얻는 손실보다 큰데 어느 경영자가 법을 지키면서 노조를 존중하겠는가. 단체협약이라는 노동조합의 가장 큰 존재 근거도 회사가 일방 통보하면 6개월 이후 효력이 사라져버리는 현행 제도는 노동조합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이들은 그런 모든 악조건을 견디며 200일을 맞은 것이다.
이날 200일 결의대회에는 재능교육, 콜트·콜텍, 코오롱, 쌍용자동차, 한국쓰리엠 해고자들처럼 같은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사람들이 달려와주었다. 특히 전날 100일 결의대회를 마친 ING생명 노동자들이 많이 와서 쓸쓸하지 않게 대오를 채웠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신념화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감당하자고 달려오는 건 언제나 "내가 당해봐서 아는 사람들"이다.
이 파업에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이 싸움을 "노사 간의 대립보다 회장 1인 대 전 직원의 싸움"이라고 부른다. 보통 경영진의 직접 지시를 받기 마련인 지점장과 간부급 직원들까지 대부분 참여하고 있는 독특한 상황은 직원들이 얼마나 현 경영진을 불신하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정진수(가명)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지점장까지 한 고위 관리직 출신이지만 이 파업에 참여했다.
"직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회사를 살려보자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이 투쟁에 동참했어요. 합법이나 불법을 따지기 이전에 직원들의 권리가 너무 무시당했거든요. 미약하나마 저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근무 환경이) 좋을 때 일해봤는데 선배로서 우리만 좋은 시절을 겪고 끝낼 수는 없잖아요. 후배들도 우리가 선배들의 노력으로 받은 혜택이나 조건을 동일하게 유지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 말고도 간부급 예닐곱 분이 더 참여하고 있습니다. 파업이 길어지니까 대출로 생계를 이어가야 해서 아무래도 가족이 고생하죠. 그래도 제 자신이 즐겁고, 파업 투쟁에 조그만 역할이라도 맡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2009년 1월 임직원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충정로 본사에서 열린 골든브릿지 복합금융센터 개소식 모습. 뉴시스

이들뿐 아니다. 심지어 회사 건물 지하 1층에는 노사가 빨리 원만한 합의를 해달라고 사내 성명을 낸 팀장, 지점장들이 징계당해 유배돼 있다. 보직 해임과 무기한 정직을 당한 뒤 일감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창문도 없는 사무실에 하루 종일 그냥 앉아 있다. 용역 한 명이 붙어 출퇴근 체크를 하고, 회사는 반성문을 쓰라 한다. 이들은 그걸 거부하는 중이다. 최근 노조탄압 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욕주기와 고립시키기 수법이다. 노조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할 생각이다.
이들이 이런 모욕을 겪으면서도 파업을 지지하고 함께하고 있어 노조 집행부뿐 아니라 조합원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 김호열 지부장은 "평생 파업이란 걸 생각도 못해봤을 분들이 모두 회사 하나 바로잡자고 후배들 위해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놀랍고 고맙다"고 했다. 이들이 파업 현장을 함께 경험하면서 분노하고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때 '파업이야말로 노동자들의 학교'라는 말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정년을 앞둔 분도, 영업을 하던 분도, 심지어 인사팀장 출신도 모두 참여하고 있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파업은 그래서 져도 이미 이긴 싸움이다.

노동 없는 경제란 불가능

이날 결의대회가 끝날 무렵 충정로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본사 앞에는 하얀 천막 한 동이 생겼다. 그걸 치는 순간 정말로 장기투쟁에 돌입해야 하는 것만 같아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세운 천막이다. 지부장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음을 꼭 증명해 보이겠다고 약속했지만 날마다 피가 마른다고 했다.
그날 밤 비상투쟁위원들은 밤늦도록 천막 안을 지켰다. 지부장과 수석 부지부장의 첫날 밤을 외롭지 않게 하려고 술잔을 기울이며 많이 웃고 즐겁게 위로한다. 지나온 시간만큼,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앞으로 견뎌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 아무도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지만 그런 불안이 왜 없으랴.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천막을 나서며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디 견디시길, 이상준 회장의 왜곡된 신념과 89명의 조합원들이 가진 불안을 극복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한 그 힘으로, 무너지고 싶은 순간마다 다시 서게 해준 그 힘으로 조금만 더 버텨주시길. 이렇게 비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디 또 다른 희망의 근거가 되어주시길. 조합원들이 고개 끄덕이며 듣던, "평범한 사람들이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길이 옳기 때문"이라던 김호열 지부장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1년6개월 동안 이 지면을 채우면서 '노동'이 없는 경제란 성립될 수 없음을, 노동자가 고통을 감내하는 성장이란 결국 성장이 아니라 퇴행임을 말하고 싶었다. 발레오, KEC, 상신브레이크, 풍산, 국민체육진흥공단, 포레시아, 유성기업, 현대차 비정규직 등 절박하게 싸우는 현장의 이야기를 그때그때 다 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취재하고도 싣지 못한 동희오토 노동자들께 미안하다. 기륭전자의 복직이 완료되면 '복직 그 후 이야기'로 함께 담으려 했는데 기륭의 복직이 늦어지면서 결국 쓰지 못했다.
그동안 부족한 내게 취재를 허락해주고, 고통의 현장을 지켜보며 우는 나를 오히려 토닥거려준 노동자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모든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꼭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를, 부디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들에게 이 겨울이 승리의 계절로 남기를 간절히 바라며 부족했던 연재를 마친다.

namufre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