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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8일 화요일

5.18 왜곡방송 파시즘의 전조… 언론은 민주주의의 동지인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28일자 기사 '5.18 왜곡방송 파시즘의 전조… 언론은 민주주의의 동지인가?'를 퍼왔습니다.
[박래부 칼럼] 권-언이 한 몸 되는 현실, 자유의 공기가 희박해진다

얼마 전 한 언론학 교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끔 자기 친구나 학생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강한 보수·수구적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방향은 대조적이지만 경향·한겨레신문도 진보·개혁이라는 정파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즉 경향·한겨레도 피장파장으로 정파적 언론이 아닌가, 결국 언론에 정도란 없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다. 정파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따로 모인 무리’를 말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철학자 칸트의 유명한 ‘도덕률’을 떠올려 본다. 언론의 기본철학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경탄으로 마음을 채우는 기쁨이 있으니, 하나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률.’

지금 한국 언론은 흔히 진보·개혁 대 보수·수구 언론으로 구분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고유한 성격상 이런 분류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다. 한국 언론에서 진보·개혁과 보수·수구의 문제는 단순한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보도·공정보도라는 언론의 기본철학과 원칙에 부합하는가, 또한 민주주의적 이상에 충실한가를 짚어 보면 자명해질 문제다. 언론은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민주언론 대의를 저버린 비민주, 혹은 반민주 언론으로 구분될 수도 있다. 

언론은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공공에 봉사해야

역사적으로 언론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최대의 공로자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의 ‘신문 없는 정부를 택할 것이냐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냐 묻는다면,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라는 말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언론의 기능과 사명을 웅변해 주는 것도 없다. 대중의 신뢰를 바탕으로 언론은 사회에 책임의식을 갖고 공공에 봉사할 사명감을 갖는다. 이 신성한 ‘도덕률’을 지키지 못한다면 언론으로서 존재이유가 없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언론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질되고 타락해 있다. 신문은 재벌이 되면서 보수·수구화했고, 정파성으로 이명박 보수정부와 권언유착하면서 종편TV 수혜 등 비민주적 특혜를 누려 왔다. 언론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진실보도와 사회감시, 비판 등 국민의 알 권리와 관련된 저널리즘 기능이며, 다른 하나는 언론사 규모와 이윤 등 미디어산업이라는 측면이다. 이 중 저널리즘을 탄압하고 미디어 산업적 측면만 강조·지원함으로써 업적으로 삼고자 했으나 그마저 실패한 것이 지난 정부의 악의적인 언론정책이었다.


지난 13일 방송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화면 캡처.

지난 15일 방송된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화면 캡처.

신문이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가, 아니면 저널리즘은 팽개치고 자사의 산업적 이익에만 충실한가에 따라서 ‘모든 신문이 정파적인가’하는 문제 역시 쉽게 가려질 것이다. 최근에만 해도 수구언론 조선의 TV조선과 동아의 채널A 등 종편TV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헐뜯고 터무니없이 진실을 왜곡하는 저질방송을 내보냈다. 급기야 국민을 분노케 했고, 원로 언론인들까지 나서 그들의 패륜적 행태를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조중동의 보도 행태와 박근혜 새 정부의 정치적 지향을 보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한층 절박해진다. 지난 대선 때 노골적으로 새누리당 편에 섰던 조중동은 최근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경찰수사 문제에 관해서도 ‘내부 갈등’으로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했다. 많은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KBS MBC YTN 등 공영방송의 경영진은 공정보도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 정부 때 언론의 정도를 걸으려다 강제해직된 20명의 언론인도 복직이 안 되고 있다. 

지난 정부 때 변질된 언론정책, 현 정부는 더 우려스럽다 

현 정부의 보훈처는 광주의 5·18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격을 낮춰 부르게 하면서, 기념식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또한 국방부는 천암함 침몰원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극장 상영을 막고 있다. 많은 국민이 아직도 석연찮게 여기고 있는 천암함 침몰은 지난 정부 최대의 의문사건이다. 

사회에서 건강한 여론과 비판이 봉쇄되고 파시즘으로 가는 불길한 징조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착한 권력과 언론이 지난해는 선거의 해였기 때문에 반대여론을 의식해야 했으나, 이제는 여론을 조작하고 통제하기에 적기인 보수 재집권 첫해를 맞고 있는 것이다.

진부한 정의지만 현대는 매스미디어의 시대다. 미디어가 국민 생활과 정치 경제 외교 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이 전에는 엘리트나 정당이 하던 정치 의제설정과 정책토론, 검증, 평가 등을 대신하는 까닭이다. 본디 부당한 권력이나 언론은 그 자체가 두려운 존재다. 더욱이 권언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일 때 거기서 뿜어대는 악영향은 가공스러운 것이다. 그런 사회가 도래할 때 국가나 민족이 지니고 있던 순수한 이상이 왜곡될뿐더러, 국민의 민주적이고 성숙한 사유는 숨이 막힌다. 답답할 정도로 자유의 공기가 희박해져 있다.


박래부 새언론포럼 회장 |parkrb78@hanmail.net  

2013년 5월 24일 금요일

국제앰네스티, 3년만에 다시 “한국 언론자유 탄압”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23일자 기사 '국제앰네스티, 3년만에 다시 “한국 언론자유 탄압”'을 퍼왔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서 언론인권 침해 있을 수 없는 일… MB 5년 악화”

매년 전 세계 인권 상황에 대한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는 국제앰네스티가 지난 2010년 이후 3년 만에 한국의 언론 노동자들이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세계에 동시 공개된 ‘2013 국제엠네스티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며 “지난해 언론 노동자들이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항의해 파업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의 ‘대한민국’ 파트에서는 언론 노동자의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로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면서 MBC가 1월 파업에 들어갔다”며 “KBS와 뉴스 전문 채널 YTN, 뉴스통신사 연합뉴스가 잇따라 파업에 들어갔다”고 언급했다. 

보고서는 이어 “KBS와 연합뉴스가 6월 파업을 종료했으나 MBC는 역사상 최장기 파업을 기록하면서 7월까지 파업을 이어갔다”고 덧붙였다.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세계에 동시 공개된 ‘2013 국제엠네스티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국제앰네스티

앞서 국제앰네스티는 2010년 연례보고서에서도 2009년 3월 편집 독립권 보장을 요구한 YTN 소속 언론 노동자를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한 사례와 2009년 6월 검찰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사건을 소개하고 언론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변정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 팀장은 “언론의 자유가 위협받는 것은 사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문제”라며 “지난 2010년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의 언론 자유를 다룬 이후 3년 만에 언론사 파업을 다뤘는데 언론의 자유에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침해가 나타나 이번 보고서에 다시 등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변 팀장은 이어 “지난해 언론사 파업은 비단 한두 달 발생한 문제 때문에 파업한 것이 아니고 2008년 이후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축적된 언론 자유 제약이 파업으로 발현했다”며 “언론인권 상황은 지난 5년간 더욱 악화됐으며 언론 자유나 언론 독립권이 침해·제약됐기 때문에 언론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북한 당국은 계속해서 표현과 언론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했다”며 “권력 이양기 동안 정부에 대한 문제제기를 막기 위해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고 독립적인 시민사회 단체 및 정당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우리나라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모호한 조항을 가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상태에 있었던 사람은 구속기소를 포함해 41명이었다”며 “국가보안법 조항이 북한에 대한 온라인 토론을 통제하는 데 계속해서 이용됐다”고 강조했다.

집회시위의 자유 침해 분야에서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면서 많은 주민과 활동가가 민·형사상 고소·고발 및 기소를 당했다”고 서술했다. 아울러 5월 유엔 특별보고관들(UN Special Rapporteurs)은 공동서한을 통해 평화로이 집회·시위를 한 이들을 괴롭히고 위협하고 부당 대우 한 것을 언급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장기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쌍용자동차 사태도 노동권 침해 사례로 들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2600명은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었고 지난해 11월 노조 조합원 세 명은 평택 공장 인근 송전탑에 올라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171일째 고공 농성을 이어오다 지난 9일 건강이 악화돼 지상으로 내려왔다. 

전경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은 “인권은 정치적 고려의 대상이 아니며, 국가는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한 법 제도를 만들어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명과 재산, 신념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정책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나 많은 경우 사회적 약자에게는 자신의 권리 요구를 위해 주장하거나 협의할 기회가 없어 민주적 가치를 누리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2013년 5월 19일 일요일

"국가기밀이 악취 풍기며 나타날 때, 파시즘"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17일자 기사 '"국가기밀이 악취 풍기며 나타날 때, 파시즘"'을 퍼왔습니다.
[인권오름] 알 권리와 민주주의

"제프루더 필름(Zapruder Film)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왜? 검시결과와 엑스레이도 못 봤습니다. 왜? 이 사건의 많은 자료를 왜 공개 안 하고 있으며, 누군가가 원하면 왜 '국가기밀'이라면서 거부합니까? 누구를 위한 비밀이죠? 대체 무슨 비밀이 또 누구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막는 겁니까? 바로 그런 국가기밀이 악취를 풍기며 나타날 때 그걸 바로 '파시즘'(fascism)이라 부릅니다"

위의 말은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대통령 암살사건을, 짐 개리슨(Jim Garrison) 검사의 수사를 토대로 재구성한 영화 (J.F.K)(Oliver Stone, 1991)에서 나오는 개리슨 검사의 마지막 변론 장면 중 한 대목이다. 이 대목의 방점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대한 공식 보고서인 워렌 위원회(Warren Commission)의 보고서가 날조되고,증거가 사라지고 정보는 차단된 채, 주요 목격자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죽음에 대한 공포로 증언을 거부하는 상황, 즉 모든 진실이 사라진 자리에서 배심원들에게 국민의 '알 권리'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 장면에서 개리슨 검사는 정부의 기밀이 횡행할 때 '파시즘'이 도래한다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개리슨 검사는 알 권리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이 하필 왜 파시즘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파시즘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 특히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비합리성과 시민들의 자치를 파괴하는 엘리트 정치가 알 권리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효과로서 나타날 위험이 있다.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정보공개

위의 말을 좀 풀어보자. 우선 알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상황이라면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왜 그런가 하면, 알 권리는 어떤 사실관계를 인지 가능해야 충족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알 권리는 정보에 대한 최대한의 자유로운 접근을 추구한다. 정보가 닫히고 알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에서는 자유로운 표현과 의사소통에 왜곡이 발생한다. 사실관계를 인지할 수 있어야만 판단하고, 토론하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기능하며 생산된 온갖 정보들이 공개되지 않아 공론장에 정보가 부재한 상태, 즉 정보가 내부의 특정에 독점되거나 통제되는 상태에서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표현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하는 집단에 의해서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 즉 정보의 강력한 통제와 비공개는 일종의 은폐된 우민화와 맥이 닿아있다. 이런 경향은 자연스럽게 소수 엘리트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또는 특정한 목적에 때라 의사결정이 가능한 엘리트정치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즉 알 권리가 침해되고 사라지는 지점에는 언제든지 파시즘의 씨앗이 잉태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알 권리가 침해되고 정보들이 공개되지 않을 때 반드시 전면적인 파시즘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역사 속에서 사회가 진보해왔기 때문이다. 정부도 시민들의 알 권리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많은 국가들이 법률상으로도 명시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에는 알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일시적으로' 파시즘적 국면이 조성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한미FTA 부서들이 작성하고 보유한 공문서의 92%가 비공개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사례를 예로 들고자 한다. 최근 몇 년간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던 사건들이 존재한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와 천안함 침몰사건이 그렇다. 한국 정부, 특히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대부분의 정보를 비공개했다. 일례로 한미 간 협상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2006년 외교통상부에서 한미 FTA관련 업무를 맡았던 FTA 부서들이 작성하고 보유한 공문서의 92%는 비공개로 설정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다. 정부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타당성을 타진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연구용역을 발주하는데,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외교통상부가 발주한 한미, 한EU FTA와 관련된 연구 용역은 총 31건이었다. 이 31건의 연구용역의 책임자들은 대체로 FTA 찬성론자들로만 구성되어있고 31건 모두 비공개되었다.

외교통상부의 이런 밀실행정, 밀실협상 경향은 정보은폐이자 알 권리 파괴에 가깝다. 이런 일방적인 상황에서 정부는 한미 FTA에 대해 비판적인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들의 분석들을 괴담으로 낙인찍고 반미주의자의 선동으로 몰아세웠다. 이런 조건 속에서 시민-시민 간, 시민-정부 간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을 리가 만무하다. 정부는 2006년부터 무려 7년 동안 한미 FTA가 한국의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것처럼 미디어를 통해 홍보했고 2012년 11월 과반 여당인 새누리당은 한미 FTA를 날치기로 단독 비준했다.



▲ 한미FTA 정보공개 청구 결과

천안함 침몰사건 자료도 비공개

국가 전체에 큰 충격과 의혹을 남긴 천안함 침몰사건도 핵심 정보들도 모두 비공개투성이다. 천안함의 침몰 전 항해부터 침몰하는 전 과정이 포함된 열영상장비(ThermalObservation Device) 영상, 조타사 일지, 항적도, 해군 전술 데이터 시스템 자료, 대통령 보고서, 국방장관 보고서, 합참의장 보고서, 해군참모총장 보고서, 해군 교신기록, 해경 교신기록, 사고 전 천안함 수리기록, 천안함 파손 부분 사진 등 정부가 꾸린 합동조사단 외에 외부 전문가나 일반 시민이 판별할 수 있는 모든 일체의 정보는 비공개 되었다. 이런 채로 한국은 이 사건에 대해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그대로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로 결론지었다. 합동조사단 보고서 전문 역시 공개되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공개된 것은 대국민용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정도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은 사고수습과 수사 과정 그리고 결과발표까지 일관된 정보의 폐쇄성으로 각계에서 많은 의혹이 제기 되었는데, 이런 의혹을 주장한 반대론자들에게는 고소·고발이라는 대가가 따랐다. 또한 온라인상에서 천안함의 의혹을 제기했던 네티즌에 대해 국가정보원이 내사를 진행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남북관계는 3년이 지난 후인 현재까지 악화 일로를 걷다 최근 위기국면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정보 비공개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합리성 파괴

이 두 사건에 대해 파시즘적 국면이라고 주장한다면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이 두 사건의 정보가 보다 투명하게 공개되어 시민들의 알 권리가 온전하게 지켜졌다면 어땠을까? 아마 우리는 아직까지도 한미 FTA가 한국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토론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들과 시민의 감시를 통해 협상이 졸속으로 체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효율성은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적 합리성은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사건도 마찬가지다. 국방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없는 한 천안함 침몰에 대한 가능한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면, 그리고 합동조사단의 수사과정과 보고서 전문을 일괄 공개했다면 어땠을까?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천안함 침몰사건의 의혹들 상당 부분이 해소되었을 것이다. 반대론자들이 정부의 발표에 설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더 밝혀내야 할 진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고소·고발을 당하고, 일반 시민이 국가정보원에 불려 가 수사를 받는 비민주적·반인권적 상황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최악으로 치닫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 권리가 더 폭넓게 보장되고 정보공개가 이뤄지면 일시적인 파시즘적 국면이 작동할 여지가 더욱 좁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어쩌면 정보공개는 반(反)파시즘적 조건이자 도구이자, 행위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정보공개를 통해 보장되는 알 권리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실천하기 위해 전제되는 인권 안의 인권이다. 하지만 역사상 알 권리라는 말이 생겨난 후로 지금까지 정보에 대한 판단과 통제는 정부에게 일방적으로 맡겨져 있다. 이런 통제의 벽을 허무는 일은 정보공개에 대한 사람들의 보다 많은 관심과 정보은폐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끝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해 보도록 하자. 우리는 정부가 하는 일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알고 싶은가?, 그리고 얼마나 알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의 대답이 결국 우리가 파시즘과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 말해줄 것이다.

*이 글은 "[열려라 참깨] 천안함 사건과 한미FTA 정보는 누구를 위해서 비공개 됐나"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www.freeuse.or.kr을 찾아가면 됩니다.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2013년 5월 17일 금요일

광주+33, 민주주의는 다시 피가 필요하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17일자 기사 '광주+33, 민주주의는 다시 피가 필요하다'를 퍼왔습니다.
[장석준 칼럼] 20년마다 봉기가

민주주의에 대한 무서운 격언이 하나 있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토머스 제퍼슨이 했다는 말이다. 이 문장은 1787년, 그러니까 미국 독립 혁명이 승리한 지 4년 뒤 그리고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2년 전에 당시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이던 제퍼슨이 윌리엄 S. 스미스라는 옛 혁명군 동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보다 정확하게 인용하면, 이렇다.

"한 두 세기마다 발생하는 약간의 인명 손실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를 먹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 나무에 주는천연 비료입니다."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 차태서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2010년, 80쪽)

원문 그대로 보니 더 무시무시하다. 카를 마르크스나 블라디미르 레닌 같은 사람이 꺼낸 이야기라면, '피에 굶주린 좌익'의 생생한 사례로 즐겨 인용되었을 법하다. 그러나 우익 선동가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것은 미국 '독립 선언' 작성자의 발언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비조 중 한 명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니 나는 이 두려운 문장을 감히 진실이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5월도 절반을 넘어선 지금, 나는 한 노동 운동가가 쓴 동시대사 기록을 한창 독서 중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의 고참 활동가 이근원이 인터넷 매체 (레디앙)에 연재한 글들을 모은 (아빠의 현대사)(레디앙 펴냄)라는 책이다. 저자 이근원은 민주 노조 운동과 진보 정당 운동에서 늘 최전선에 서길 마다하지 않은 투사다. 그 최전선의 이야기가 (아빠의 현대사)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의 회고담이면서 또한 저자가 풀어놓는 지난 30여 년간의 민중 운동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출발점도 어김없이 1980년 5월이었다. "하필이면(?) 나는 그 해, 대학생이 된다"([아빠의 현대사], 23쪽)는 회고처럼, 이근원은 1980년 '서울의 봄'에 대학 신입생이었다. 그는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 10만 명의 학생들이 모여 "전두환 퇴진하라!"를 외치다가 무력하게 해산하고 만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자리에 그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3일 뒤, 광주에서 학살이 시작되었고, 항쟁이 뒤따랐다. 그 때 그는대학생 군사 훈련장에서 공수부대의 살기와 마주하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애국자들의 피가 뿌려졌다. 오직 애국자만이었다. 압제자들은 아니었다. 패배한 봉기였다. 그러나 성급한 판단이었다. 봉기는 다만 짧지 않은 휴지기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1980년대를 다루는 (아빠의 현대사) 제1장 '저항'을 읽으며 이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봉기의 풍문은 이근원 같은 수많은 어린 대학생들을 삽시간에 투사로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학살자 전두환 심판!"을 외치기 위해 밧줄에 몸을 매단 채 고공 시위를 벌였고, 감옥으로 향했다. 혁명 운동의 고전들을 등사본으로 탐독하기 시작했고,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장으로 향했다. 광주의 전투는 끝난 게 아니었다. 단지 확산되고 있을 뿐이었다.

7년 만에 첫 번째 거대한 승리가 있었다. 1987년의 6월 항쟁과 그 해 여름의 노동자 대투쟁이었다. 물론 이근원의 회고처럼, "노태우의 집권으로 인해 (…) 보수 집단은 후퇴할 시간을 벌었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1987년이 기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142쪽) '절반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래도 전투는 계속됐다. 1991년 5월 투쟁이 있었고, 1996~97년의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이 있었다. 민주 노조 운동이 전진했고, 진보 정당의 시도들도 끊이지 않았다. (아빠의 현대사) 2부와 3부가 전하는 투쟁담들이 20여 년간 지속됐다. 이 모두가 1980년 광주에서 폭발한 봉기의 여진이었다. 그래서 이근원은 말한다. '386 세대'가 아니라 '광주 세대'라고.

"'386 세대'가 언론이 붙여 준 이름이라면 나는 '광주 세대' 혹은 '5·18 세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벌어진 항쟁의 역사가 그 시대를 살아 온 모두를 짓누르고 있다. 그리고 그 '짓누름'은 아마도 우리 아버지 세대의 한국 전쟁의 무게만큼 우리 세대 전체에게 이어지고 있다." (19쪽)


▲ 우리의 5월은 광주의 5월일뿐만 아니라 촛불의 5월이기도 하다. 5년 전 촛불이 이 계절을 뜨겁게 달궜었다. ⓒ프레시안

그런데 가장 최근인 2000년대를 서술하는 (아빠의 현대사) 3부는 그 제목이 '혼돈'이다. 이 시기에 민주노총은 점점 더 무력해졌고, 한때 대안으로 등장하는 듯싶던 진보 정당은 짧은 절정기를 마치고 곧바로 혼란의 나락에 빠져들었다. 그 반대편에서 5월의 여진의 또 다른 계승자 노무현 정부는 '민주' 세력에 대한 환멸만을 남겨놓은 채 임기를 마감했다. 2012년 대선 결과는 이 환멸의 뿌리가 너무나 깊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현재 한국 사회 상황에 위의 제퍼슨의 경구를 대입해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의 나무의 양분이 소진하고 있다고. 5월 광주로부터 시작된 민주주의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 광주 세대는 벽에 부딪혔다. 그들이 어느덧 '386', '정규직' 등등으로 불리게 되면서 이런 장벽은 예고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이 대목에서 다시 제퍼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스미스에게 보낸 그의 편지는 위 인용문 바로 앞부분에서 이런 주장도 한다.

"봉기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채 20년 세월이 흐르는 것은 불가능하도록 신이 정해두었습니다. (…) 인민들이 저항 정신으로 무장해 지배자들에게 수시로 경고를 보내지 않고도 자유를 보존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 79쪽)

20년마다 봉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유를 보존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가 생명을 지속한다. '20년'이 무슨 공식은 아닐 것이다. 대략 한 세대를 말하려던 것 아닐까. 즉, 제퍼슨은 각 세대마다 자신들의 봉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세대의 봉기가 그 에너지가 소진될 때마다 다음 세대의 봉기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생명 법칙이라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5월은 광주의 5월일뿐만 아니라 촛불의 5월이기도 하다. 5년 전 촛불이 이 계절을 뜨겁게 달궜었다. 이근원의 (아빠의 현대사)는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형식을 취한다. 그의 딸 이은지는 촛불 세대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촛불 항쟁 당시 딸과 나누던 대화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제도 "'미래를 향한 회상'―광주 세대가 촛불 세대에게"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점이 마음에 든다. (아빠의 현대사)가 전하는 광주 세대의 찬란했던 순간들도 좋지만, 그보다도 이 책이 취하는 포즈가 더 끌린다. 이 책은 그 포즈를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이 착수해야 할 일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것은 미래의 궐기를 예비하고 그것을 앞당기는 일이다. 아직 분명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 주역들에게 말을 걸고 이들과 함께 모의하는 것이다.

촛불이 그런 궐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예행연습이었던 것은 아닐까. 광주의 5월이자 촛불의 5월에 우리의 또 다른 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장석준 진보신당 부대표

2013년 5월 4일 토요일

민주주의를 위하여... 촛불항쟁 5주년 기념 촛불집회


이글은 서울의소리 2913-05-03일자 기사 '민주주의를 위하여... 촛불항쟁 5주년 기념 촛불집회'를 퍼왔습니다.
정청래 '국정원 부정선거 옹호한 박근혜 책임지라!'



2일 저녁 7시 청계광장 한쪽을 촛불로 채운 시민 400여명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5주년을 기념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2008년 촛불집회 때 울려퍼졌던 노래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부르며 그날의 촛불항쟁을 기념했다.



이날 집회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과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 박원석 의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김희선 전 민주당 의원 등 야당 정치인들과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와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청계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손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실시하라’, '부끄럽다 부정선거', '원새훈 구속하라', 박근혜 당선무효'등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피켓이 주를 이뤘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국민이 승리한다’, ‘촛불아 모여라’ 등의 문구가 담긴 손피켓과 촛불이 들려져 있었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다소 빈자리가 눈에 띄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촛불’들이 자리를 메웠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의 시작을 연 것은 장호권 대표였다. 얼마전 장준하 선생의 사인규명과 겨레장을 치른 장 대표가 무대에 오르자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장 대표는 “촛불 여러분이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격려했다.
▲ 고 장준하 선생 장남 장호권 대표 ©서울의소리


정청래 “원세훈 즉각 구속수사해야…혼자라도 청와대 가겠다”
 
정청래 의원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 지난해 12월 14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긴급 기자회견문을 읽은 후 “‘터무니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문재인이 책임지라’고 박근혜 후보가 이야기했는데 그 말을 거꾸로 해보겠다”며 “너무나 터무니있는 진실과 실체가 밝혀졌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주장했다.
▲ 국정원 부정선거 옹호자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라 고 말하는 정청래 의원 © 서울의소리


정 의원은 “국정원 전체 인원과 예산을 밝힐 수는 없지만 어마어마한 인원과 국민의 혈세를 이런 곳에 불법적으로, 조직적으로 썼다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지금 당장 구속수사해야 한다”며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밀항 가능성까지 있다. 비행기 타고 가려다 실패했으니 이제 배타고 가려고 시도하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정 의원은 “민주당이 힘차게 투쟁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고 송구스럽다. 저는 하루빨리 청와대 앞에가서 눌러앉자고 저는 주장하고 있다”며 “박근혜 책임지는 모습, 사과하는 모습을 확보해야 하지 않겠나. 당이 이것을 주저한다면 저 혼자라도 가겠다. 민주당이 좀 더 투쟁할 수 있도록 압박을 가해달라”고 말했다. 시민들 사이에 환호성이 터졌다‘


5년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을 맡아 ‘촛불의 물결’을 이끌었던 박원석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른바 ‘황제테니스 논란’을 언급한 후 “그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더 이상 불체포 특권, 면책특권, 불기소특권이 없다”며 “감옥 보내야되지 않겠느냐.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함께 촛불을 들고있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만들어준 권력의 의미를 최소한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명박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보장과 남북관계 복원 및 평화유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한-미 FTA 재협상, 경제민주화 공약 즉시 이행 등을 요구했다.


광우병 전문가’인 우희종 교수는 “일본이 미국과 쇠고기수입협상을 했는데 몇 달전 일본과 미국이 맺은 수입조건은 30개월 미만인 조건”이라며 “정부나 이런데서 100억을 넣어야 노벨상 수상자를 만들 수 있다고 떠드는 상황인데 노벨상 수상자가 득실득실한 일본이 과학을 모르고 국제기준을 모르는 나라라서 30개월 미만을 수입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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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서 함께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마지막 발언자는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였다. 박 대표는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 처럼 또다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를 확대 도입하는, 그래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팔아먹고 온다면 촛불들이 모두 다 일어나 바로 식물대통령으로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외쳤다.
▲촛불5주년 집회에서 인티 이명박 초심 운영자는 "이명박 5년동안 촛불을 들고 개처럼 뛰어다니면서 노력했지만, 더 무서운 놈을 만난것 같다"며 울분을 토하고 "무덤까지 이명박을 심판하겠노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 서울의소리


‘촛불문화제’로 진행된 만큼 이날 집회에는 손병휘 씨와 우리나라 등 가수들의 공연도 이어졌다. ‘다시 광화문에서’, ‘헌법 제 1조’ 등 그간 촛불집회에서 울려퍼졌던 노래가 흘러나오자 시민들은 즐겁게 따라부르기도 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40대 남성 김 모씨(서울 금천구)는 “촛불의 의미가 앞으로 5년, 10년은 더 지속돼야 한다고 본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이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겠느냐”며 “예년에 비해 인원은 작지만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는 소감을 나타냈다.


백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이었다. 정부가 올해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식 공식식순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포함시키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자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이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함께 불렀다.
서울의소리

2013년 4월 30일 화요일

[최장집칼럼]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과 토크빌

이글은 경향신문 2013-04-29일자 기사 '[최장집칼럼]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과 토크빌'을 퍼왔습니다.

지난달 도쿄대 한국연구센터와 언론학부가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필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인 2세대 학자인 크라우스 오페 교수와 더불어 기조 발표를 했다. 그는 세계적인 정치사회학자이자 민주주의 이론가이다. 덕분에 우리는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과 문제들에 대해 토론할 수 있었다. 오페가 독일을 포함하는 선진민주주의 국가들의 경험을 토대로 말했던 것에 비해, 필자는 신생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말했다. 핵심은 필자가 ‘시민운동적 민주주의관’이라고 불렀던, 뉴미디어의 효능을 앞세운 운동 중심의 민주주의관과 그것이 가져온 정치적 결과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시각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 모두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이론가’로 평가되는 알렉스 드 토크빌을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오페의 주제는 현대의 민주주의가 기능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진단하면서 그에 대한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대한 실망 내지는 불만이 정치 불신과 냉소, 무관심 같은 반정치주의적 태도를 광범하게 불러오는 원천이 된다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과업은 ‘불만스러운 민주주의’와 그에 따른 탈정치화에 대한 민주적 투쟁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에서 이탈한 시민들을 어떻게 다시 정치영역으로 불러들여 적극적 참여자가 되게 할 수 있을까. 오페가 토크빌의 이론을 끌어들였던 것은 이 대목에서였다. 즉 어떤 조건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계몽적인 시민, 즉 ‘이념형적 민주시민’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가의 문제 때문이었다. 그가 사용한 토크빌의 텍스트는 (미국에서의 민주주의)였다. 토크빌의 요점은 이런 것이다. 미국사회가 민주주의의 원리인 평등의 조건을 실현했을 때 시민들은 평등이 가져온 평범함을 공유하고 다수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다수의 전제정’으로 퇴행할 수 있고, 시민들의 자유가 상실될 위험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자유를 실현코자 하는 시민들은 ‘자율적 결사체의 예술’을 통해 중앙집중화된 국가권력에 의존하지 않는 자치 정부를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토크빌이 볼 때 그 핵심은, 민주주의에 대한 깨우침 내지는 풍습을 가능하게 하는 시민의 덕(德)에 있었다. 여기에서 오페는 토크빌의 아이디어를 빌려 민주적 참여의 습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제도적 메커니즘을 발견하려 했다. 이 경우 공화주의적 전통에 따른 시민적 덕에 의존한다면, 시민에게 지나치게 도덕적 부담을 요구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시민의 참여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시민을 계몽적이게 할 수 있는 제도들을 그 자리에 대체한다는 발상이다. 오페는, 선거를 중심으로 한 정치참여만을 통해서는 시민들이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참여의 효능감을 가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정책결정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기존의 제도적 문제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그에 대응하여 시민성을 확대하고, 정치적 행위의 ‘가능의 공간’을 여는 여러 형태의 제도개혁이 필요했다. 통치엘리트에 대한 책임(성)의 강화와 시민의 의사와 선호 표출이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정치참여 내지 정치과정에서의 시민참여가 확대·개방되어야 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위한 제도의 도입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정당이나 정치인들에 의해 던져진 이슈들을 놓고 선거에서 찬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과 선호를 형성하는 최초 단계에서부터 이니셔티브를 시민들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민들이 선호를 형성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계몽된 시민이 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을 사례로 말하는 필자로서는,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 또는 위험에 빠트리는 상황을 진단하는 것 자체부터 오페와 달랐다. 우리의 경우는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그로 인한 정치적 무관심 내지 정치참여로부터의 철회가 중심 문제가 아니다. 토크빌이 나쁜 사례로 삼았던 당시의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중앙집중화된 국가권력과 허약한 자율적 결사체가 만들어낸 원자화된 개인이 마주 대하고 있는 상황, 즉 이 양자 간의 힘의 극심한 불균형 상태와 그것이 빚어내는 문제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강한 국가-허약한 시민사회 관계가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말한다. 따라서 처방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긴요한 것은, 국가-시민사회 간의 비대칭적 힘의 관계를 더 균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시민사회를 강화하느냐, 어떻게 자율적 결사체를 강화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렇기에 시민의 힘과 선호를 최대한 축약, 단순화해서 힘을 결집하고 조직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자 변화의 주체로서 좋은 정당을 만들고 강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오페의 문제의식이 시민참여의 확대와 그 효능에 두어진 사회학적 접근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때, 필자의 경우는 시민의 신념과 의사를 효과적으로 조직해서 정치적 동력을 창출하고 의미있는 결과를 만드는 것을 중시하는 정치적 접근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토크빌의 텍스트 가운데 (미국에서의 민주주의) 못지않게 (구체제와 프랑스 혁명)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핵심 아이디어는, 민주화의 효과를 두 수준으로 나누어보는 것이다. 하나는 국가권력의 구조변화를 중심으로 한 통치체제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과 태도, 가치, 권위의 위계구조와 같은 사회의 변화이다. 이를 통해 토크빌은 혁명이 가져온 격변적 정치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과도한 성장과 짝을 이루는 권력의 중앙집중화가 변화되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혁명 이후 권력구조는 구체제와 높은 연속성을 유지할 뿐 아니라, 대중 참여를 통해 정책과 법이 결정되는 민주적 성격 자체가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국가관료체제를 더 비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프랑스혁명을 전후로 한 시기 프랑스국가에 대한 토크빌의 분석과 한국의 민주화를 전후로 한 시기 국가권력의 구조변화에서 높은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국가와 경제영역에서 재벌의 독점적 지위는, 각각 더 강력해졌다. 시민사회는 운동의 정치화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 결과로 더 허약해졌다. 이 과정에서 결사체로서의 노동의 시민권이 배제되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것은 시민사회의 중추적 조직 기반이라 할 자율적 결사체의 허약함을 표징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권력구조를 그대로 둔 채 국가 밖에서 시민운동과 뉴미디어를 앞세우는 것만으로는 사회양극화와 노동소외를 개선하는 데 있어 이렇다 할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부여하는 모든 제도적 가능성을 소진시키면서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체제를 완성시킨 유럽에서는, 기존 민주주의의 제도적 경계를 확대하지 않고서는 시민적 참여의 동인을 끌어낼 수 없다. 그와는 달리 신생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적 조건에서는, 민주주의가 부여하는 제도적 자원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문제’(underutilization)가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더 핵심적인 요인이다. 시민참여의 열정과 에너지는 운동 형태로 또는 포퓰리즘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시민의 의사와 신념, 열정, 에너지들은 분산되고, 간헐적으로 표출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분산된 힘들은 압도적인 정치적 자원과 권력을 갖는 국가의 통제력 안으로, 또는 대기업의 경제적 자원의 수혜 범위 안으로 분자적으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뭇 전통적인 민주주의 제도로서 정당을 발전시키고, 국가-시민사회 사이의 관계를 좀 더 대칭적이 되도록 하는 조건을 형성하는 데 있다. 결국 우리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전통적인 제도로서 정당의 역할을 강화시켜야 하고, 동시에 현재 서구민주주의 국가에서 탐색되고 있는 시민참여의 새로운 제도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오페와 필자 사이에 문제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이 지점이었다.

2013년 3월 30일 토요일

“민주주의 지켜달라”…‘국정원 의혹’ 동영상 확산


이글은 GO발뉴스 2013-03-29일자 기사 '“민주주의 지켜달라”…‘국정원 의혹’ 동영상 확산'을 퍼왔습니다.
국정원-원세훈 의혹 관련 보도 5분 분량 요약·정리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불거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서부터 최근 제기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정치개입 지시 의혹을 요약, 정리한 동영상이 SNS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8일 동영상 전문 사이트 ‘유투브’(Youtube)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 원세훈게이트’라는 이름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아이디 ‘Moon Hy****’이 올린 이 동영상은 약 5분 남짓한 분량이다. 출처는 ‘여성시대’라고 명기돼 있다.
동영상에는 국정원 의혹과 관련, 그 동안 쏟아진 인터넷 기사와 방송 보도영상이 담겨있다. 아울러 지난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나온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공방전’과 방송토론에 출연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일갈’도 볼 수 있다. 지난 2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펼쳐진 시민들의 원 전 원장 출국 감시활동도 소개돼있다.
해당 동영상은 말미에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소개하면서 “여러분 민주주의를 지켜주세요”라고 호소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동영상은 끝을 맺는다. 자막이 나오는 동안 흘러나오는 ‘아리랑’이 인상적이다.
한편, 해당 동영상은 29일 오후 4시 현재 450 가량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문용필 기자  |  balnews21@gmail.com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세계화된 자본, 세계화되지 않은 민주주의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3-20일자 기사 '세계화된 자본, 세계화되지 않은 민주주의'를 퍼왔습니다.
[김병권의 한국사회의 창]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년이 지나면서 한 해 동안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입 실적을 두고 해석이 제각각이다. 세계경제 침체로 인해 지난 1년 동안 무역 신장률은 극히 저조했다. 그 와중에 대미 수출이 4.1%로 그나마 전체 수출 증가율을 상회한 것을 두고 정부는 한미FTA 효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반대로 FTA를 맺은 지 2년 가까이 된 EU의 수출이 -11.4%로 폭락한 것은 유럽 위기 탓이란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자의적 해석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정작 자유무역과 자유시장, 개방과 세계화가 정말 의심할 여지가 없이 우리 경제와 국민의 삶에서 늘 긍정적이기만 한 것인지 반성적으로 돌이켜 보려는 조짐은 전혀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되고, 이후에도 회복의 실마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세계화라는 요인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유럽 위기야 말로 통화동맹을 추진하며 내걸었던 ‘하나의 통화, 하나의 시장’이라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현실에서 실패로 돌아가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현재 세계경제는 과연 얼마나 ‘세계적’일까. 얼마나 한미FTA와 같은 자유무역이 일반화돼 있을까.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를 가진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일반적인 통념과 전문가의 대체적인 의견과 달리 국제경제의 통합은 놀랄 만큼 제한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상품무역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워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자본의 이동은 자유롭고 빠르게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이 점에서 가장 세계화된 것은 자본이 아닐까 싶다. 대니 로드릭은 가장 세계화된 자본조차도 일반적인 포트폴리오의 원리에 입각한 적정량보다 많은 양의 자산을 자국시장에 투자하고 있고 국가 간 금리차이도 여전하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그러나 자본의 세계화와는 정반대로 노동은 전혀 세계화돼 있지 않다. “대부분의 나라가 노동인력의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나라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각 국가들이 국경을 넘는 노동인력을 통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언어적·사회적·문화적 장벽으로 인해 국경을 넘어 취업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로존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자본은 금리가 높고, 임금이 싸며, 지대와 세금이 낮은 곳을 찾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노동은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찾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국경을 넘어 세계화되기 더 어려운 것도 있다. 바로 정치다. 행정권력·입법권력·사법권력은 국민국가라고 하는 국경을 한 발자국만 넘어서도 거의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유엔을 포함한 각종 국제기구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초국가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데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정치권력과 정치제도는 자본의 세계적 활동을 위해서는 장애요인일 수밖에 없다. 자본은 정치를 세계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예 각 국가의 정치영역을 축소시킴으로써 자본 세계화를 실현하고자 한다. 때문에 자본은 작은 정부라는 이름 아래 시장에 간섭하지 말 것을 각 국가에게 요구하거나 투자자국가제소권(ISD) 같은 제도를 동원해 각 국가의 고유권한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정치와 함께 세계화되지 못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민주주의다. 아직까지 인류는 국경을 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민주적으로 대의하고 민주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직을 세계시민이 민주적 투표로 선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1국1표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다못해 통화동맹을 맺은 유로존조차 유럽 집행위원회, 유럽 중앙은행 등 모든 유로기구와 대표들은 전혀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경제력이 막강한 독일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트로이카(국제통화기금·유럽중앙은행·유럽집행위원회)가 남유럽 국가들의 민주적 의사와 대립하는 긴축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는 의외로(?) 세계화돼 있지 않다. 오직 자본만이 상대적으로 높은 세계화를 달성하고 그 이익을 누리고자 할 뿐이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세계는 점점 더 빠르게 소통하고 점점 더 가까운 느낌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됐고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정보가 지구적 차원에서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서 사람들의 생활이 지구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지구 반대편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세상이 됐다고 해서 지구 반대편으로 실시간으로 이동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소리는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된 직장과 민주주의적 사회에 살면서 세계와 더 가깝게 소통하는 것이다. 오직 자본만의 세계화로 인해 일자리가 위협받고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그런 세계화의 세상에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세계화된 만큼 노동과 민주주의를 세계화시킬 수 없다면, 노동과 민주주의가 잘 보호받는 정도만큼 자본의 세계화 수준을 조절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005년까지 IT업계에서 엔지니어로 살아왔다. 새사연 창립을 함께 하면서 지금은 새사연 부원장으로 있다.

2013년 3월 6일 수요일

새누리 김용태 "朴대통령, 야당을 궁지로 몰아서야"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3-05일자 기사 '새누리 김용태 "朴대통령, 야당을 궁지로 몰아서야"'를 퍼왔습니다.
"김종훈, 민주주의에서 여야 대립은 다반사인데 웬 사퇴"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5일 박근혜 대통령의 전날 대국민담화에 대해 "그 내용의 절박성은 제가 이해를 하지만 시기와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 유감을 표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쓴소리를 했다. 

여권내 '미스터 쓴소리'로 급부상한 김용태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한 뒤, "국회가 꽉 막혀있기는 하지만 여야 간의 물 밑에서 치열하게 협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대통령께서 그렇게 격앙된 모습으로 대국민 담화를 하는 것을 보고, 대통령의 절박성은 이해하지만 앞으로 향후 5년을 내다봤을 때 가장 중요한 협상 파트너인 야당을 향해서 너무나 급박하게 야당을 밀어붙이는 모습이 적절했느냐, 이런 문제의식은 좀 생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실 국회에서 여야 간의 협상이 거의 막바지, 99% 왔거든요. 물론 야당 입장에서는 모양새 때문에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거의 타결까지 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오늘 국회가 열려서 야당이 강한 비판을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통과시켜주는 모습을 내지 않겠는가 생각했다"며 "그런데 어제 대통령 담화 때문에 그것은 조금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다. 너무 강수를 두어서 야당을 궁지에 몰지 않았나, 이런 아쉬움은 있다"며 거듭 박 대통령에게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더 나아가 "예전하고는 국회 환경이 완전 바뀌었다. 예전에는 사실 대통령이 집권여당만 상대하면 되었던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국회 선진화 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야당의 반대가 있는 한 그 어떤 것도 입법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며 "따라서 대통령은 정치를 하시면서 집권 여당이 아니라 오히려 야당을 협상 파트너로 삼아서 정치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따라서 대통령은 앞으로 야당과의 관계를 풀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지금 출범한지 8일 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5년 남았는데 야당과의 관계 설정의 첫 번째 단추를 이런 식으로 꿰게 되면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보낼지 사실 좀 걱정"이라고 탄식하며 "따라서 조금 늦기는 했지만 대통령께서 이제 집권여당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 하는 것을 떠나서 직접 야당과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양을 잡아나가지 않고서는 앞으로 5년이 정말 힘든 세월이 될 것 같아서 걱정이고 대통령도 이 점 유의하셔서 새로운 정치 모델을 만들어 나가셔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의 전격 사퇴에 대해서도 "김종훈 내정자가 전격적으로 사퇴한 것은 모양새는 좋지 않았다"며 "왜냐하면 각 나라마다 정치 문화가 있고 국민들의 기대 수준이 있다. 김종훈 내정자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청문회에 나와서 그런 이야기를 소상하게 말씀하셨으면 아마도 청문회 통과는 무난하셨다고 생각한다. 정치 상황을 들어서 본인이 전격 사퇴해버리니까 김종훈 내정자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 조각 전체의 문제로 일이 커져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순조롭게 출범하는 것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라며 "김종훈 내정자께서 한국의 정치 상황에 환멸을 느꼈다고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여야 간에 이런 문제로 대립하는 것은 다반사다. 지금 제가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변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야 간의 극명한 대립은 다반사다. 이런 차원에서 정치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 특히 대통령께서 정치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지금 그런 부분에 대해서 미진한 것이 있어서 여야 간의 대립의 어떤 것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김종훈 내정자가 전격 사퇴하니까 여야 간의 문제가 더 꼬여버린 것 같다"고 탄식했다.

그는 무기중개상 의혹 등이 제기된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김병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그 분이 걸어왔던 길이나 인품으로 봐서 나쁘지는 않다고 이야기했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무기 중개업체에 근무한 적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아니겠나"라며 "이 문제에 대해서 국민들께서 잘 납득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일단 무기 중개업체에 근무했던 것 자체는 아마 국민들의 검증의 눈높이를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낙마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김동현 기자 

2013년 2월 10일 일요일

‘이후’가 될 수 없는 일본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02-08일자 제53호 기사 '‘이후’가 될 수 없는 일본'을 퍼왔습니다.
- 3·11 사태 발생 2년

<골페 핵발전소 #3, #1029>, 2006-드니 올리비에

'3·11'(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뒤이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칭)은 약 2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후쿠시마현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역을 방사능으로 오염시켜 십수만 명을 피난민으로 내몬 대재난이었다. 지진과 쓰나미(해일)는 천재(天災)이지만 원전사고는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그때부터 '포스트 3·11'(3·11 이후)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런 대사건을 경험한 뒤에는 사회 구성원 다수의 문명관이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 사회 시스템상의 문제점이 철저히 까발리고 근본적인 변혁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런 발상과 행동양식이 무비판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재생이 아니라 갱생,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의식이 널리 공유된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3·11은 '문명론'적 충격이었다. 지진과 쓰나미라는 대자연의 경이 앞에 더욱 겸허해지고, 이윤 추구나 대량 소비를 무조건 긍정하는 문명의 존재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일본 사회의 가치관과 개인 삶의 방식이 자연과의 투쟁보다는 공존, 소비보다는 분수에 맞은 질박한 생활양식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했다.
또한 '원자력 마피아'로 대표되는 정(政)·관(官)·재(財)·학(學), 그리고 미디어(언론)까지 포함한 일본 사회 도처에 편재하는 유착과 상호 의존, 무책임 구조로 이른바 '일본형 시스템'과 결연하게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과제를 던졌다. 그러나 사고 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원전사고의 책임을 지지 않는 상태가 보여주듯 일본형 시스템과의 결별이라는 과제는 전혀 실현되지 못했다.

퇴행하는 일본, 일본인

3·11 이후의 갱생을 실현하려면 지금까지의 정치 구조를 바꿔야만 했다. 여론조사에서는 원전 반대가 절반을 넘었고, 총리 관저 앞 시위에 무당파 시민 수만 명이 집결하는 등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움직임도 나타났으나,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세력은 없었다. 그런 소리는 '제3세력'을 자칭하는 포퓰리스트 세력에 흡수되고 이용당했다. 그 결과 원전 유지와 재가동을 공언하는 우파 세력의 대두라는 최악의 형태로 귀착됐다.
저간에 유포된 언설 대부분은 도저히 3·11이라는 질문의 무게에 걸맞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이 사건을 더 넓은 시야로 좀더 긴 역사적 맥락에서 상상하는 힘이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다. 3·11 때문에 위축된 게 아니라 오히려 대다수가 현실을 외면하고 예전 그대로의 위축된 상태에 안주한다는 것이다.
3·11 발생 뒤 약 2년. 일본 사회는 이 경험에서 배워 갱생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3·11 이전으로, 나아가 '그 이전'(1945년 이전)으로 회귀하는 쪽으로 급속히 전락하고 있다. 대재난을 거쳐 역사가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넘길 수 없는 페이지가 또다시 펼쳐지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6일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역사적인 대패를 하고 3년 전 퇴장한 자민·공명 연립정권이 부활했다. 민주당은 소비세 증세라는 마이너스 유산만 남기고 '정권 교체'에 기대를 건 국민을 배반한 채 무참하게 자멸했다. 제3세력을 자칭하는 우파 정당이 약진하고, 리버럴 세력과 진보 세력은 크게 퇴조했다. 이른바 제3세력은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지닌 우파 세력이며, 구보수 세력과 기득권 배분을 다투고 있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구세력과 야합할 것이다. 탈원전을 부르짖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그 간판을 간단하게 내리고, 낡은 행태의 전형인 우파 정치가 이시하라 신타로와 손잡고 '일본유신회'를 결성한 것이 그걸 말해준다. 하지만 일본 국민 상당수가 현실적 선택지가 없는 가운데 이런 움직임에 어떤 새로운 걸 기대하면서 현혹당하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아사히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방위비 11년 만의 증액'이었다. 아베 신조 정권의 2013년 예산안에서는 방위비를 전년보다 400억 엔 증액할 것이라고 한다. 반면 생활보호비는 2013년부터 3년에 걸쳐 670억 엔 줄인다고 한다. 게다가 소비재 증세는 이미 정해진 대로 추진된다. 약자를 버리는 한편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이번 정권 교체의 의미가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탄생 직후 아베 정권은 '경제 재생'을 위한 2% 인플레 목표를 설정하고 적자 국채를 발행해 경기 호황감을 연출하려 한다. 그 때문에 주가 상승과 엔화 약세가 진행돼 '아베 버블'로 들뜬 분위기가 사회를 뒤덮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비세를 올릴 수 있는 환경 만들기를 위한, 또 올여름의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한 위험한 도박이며, 조만간 그 청구서가 국민 부담으로 날아올 것이다. 물가와 세금은 오르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고, 사회보장비는 삭감된다. 그런 길을 국민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 승리를 겨냥하면서 '안전 운전'을 계속하는 진짜 이유는 '헌법 개정'이 가능한 3분의 2 의석 이상을 중·참 양원에서 획득하기 위해서다. 아사히신문사와 도쿄대 대학원 다니구치연구실이 공동으로 실시한 당선자와 유권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당선 의원의 89%가 헌법 개정에 '찬성' 또는 '굳이 택한다면 찬성'한다고 대답했다([아사히신문] 2013년 1월 28일). 즉 현재 일본에서 '개헌파'는 이미 소수파가 아니라 당파를 초월한 다수파라는 것이다. 패배한 민주당 내부에서도 개헌파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헌법 개정이라지만 핵심은 물론 제9조 평화조항(교전권 포기)을 삭제 또는 수정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실현되려면 중·참 양원 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발의해서 국민투표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유권자가 딱 50%였다. 국회의원에 비하면 일반 유권자 쪽이 더 헌법 개정에 신중하다는 말인데, 그래도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빠듯하게 헌법 개정이 실현될 수 있는 수준이다. 1945년의 패전 결과 일본에 도입된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는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벼랑에 선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

앞서 얘기한 공동 조사를 보면, 당선자의 50% 가까이가 원전 재가동에 찬성했다(유권자의 찬성률은 30% 정도). 이 문제에서도 의원들의 의식이 일반 유권자들 이상으로 원전 유지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베 정권은 원전 문제에서도 민주당 정권이 내걸은 '원전 제로' 지향 방침을 백지화하고 원전 재가동과 유지를 공공연히 꾀하고 있다. 그것이 일본의 경제 재생에 필요불가결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들의 본심(혼네)은 그보다 오히려 군사적 동기에 있다는 건 명백하다.
원전은 모습을 바꾼 핵무기다. 그것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는 게 최근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속속들이 드러났다. 안전성이 전혀 없고 비용도 더 많이 드는데 원전을 유지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일본을 '일등국'으로 존속시키는 데 필요한 잠재적 군사력이기 때문이다. 사용 후 핵연료는 단순한 산업 폐기물이 아니라 핵무기 원재료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다. 그것은 여·야 정치가들이나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인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극우 정치가들도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다.
거기서 다시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전후(戰後·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평화주의가 진정한 평화주의인가, 평화주의와 전전(戰前) 사이에 있는 것은 단절인가 계속인가 하는 문제다. 잠재적 군사력으로서 핵을 유지하려는 욕망이 원전 유지의 이유라면, 이것은 잠재적 전쟁이라는 말이다. 일본은 '평화주의'를 표방하면서 잠재적 전쟁을 해온 국가이며, 이젠 그 표면적 간판마저 벗어던지고 전쟁 상태를 현재화하려는 단계를 맞는 것이다.
탈원전이라는 과제를 왜 동아시아 차원으로 문제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유는 일본, 한(조선)반도, 중국이 포진한 극동아시아라는 조밀한 지역이 세계 유수의 원전 밀집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이 지역 어딘가에서 다시 3·11 같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전 지역이 심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로 전 지구와 인근 지역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돼 있고, 사죄의 뜻도 거의 표명하지 않았다. 정부만 그런 게 아니라 일반 국민이나 지식인에게도 가해의 책임 의식이 없다. 국가 논리를 당연시하고, 일본의 복구와 부흥을 말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전쟁 책임이나 식민지 지배 책임에 관한 의식 구조와 정확하게 부합한다.
동아시아란 어디를 두고 하는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단지 지리적 개념으로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한자나 유교 등의 문화적 동일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완전히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동아시아란 근대에 일본이 침략한 지역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나 침략 전쟁이라는 가까운 과거의 각인이 깊게 박힌 지역인 것이다. 일본이 동아시아 멤버로 들어오려면 가해의 역사를 인정하고 주변 민족과 화해해야 한다.

'동아시아' 개념의 본질

현상이 잠재적 전쟁 상태인 이상 탈원전운동은 본질적으로 반전평화운동의 일환으로 실행돼야 한다. 원전에 반대하는 일본인이 중국이나 조선에 대한 일본의 국가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응용 문제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동아시아 차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하면 답은 명확하다. 일본의 국가주의를 고무하면서 동아시아에서 탈원전을 실현할 수는 없다. 탈원전은 국가주의와 결코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3·11 이후 2년간 일본 사회에서는 오히려 국가주의적·배외주의적 주장이 급속히 대두하고 있다. 독도 문제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 북조선 로켓 발사 문제 등이 일본국민의 위기감과 국가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과도하게 강조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전통적 보수파의 흐름을 조장하는 정치가이지만 앞선 선배들과 현저한 차이는 '네트우익'(인터넷상에서 노골적으로 차별적·배외주의적 주장을 되풀이하는 우익 세력의 약칭)과 적극적으로 손잡으려는 유치함과 경박성에 있다. 그만큼 종래 정치가들보다 위험도가 높다. 지난해 말 총선 때 아베는 네트우익의 성지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마지막 유세를 벌였다. 그의 선거 유세 차량을 많은 젊은이들이 에워싸고 히노마루(일장기) 깃발을 휘두르며 "일본 만세!" "조센징은 나가라!" 등을 연호했다. 차마 바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잡한 모습은 공공방송에 보도되지 않았고, 유튜브(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로만 떴다. 일본은 지금 이런 극우정치가들이 총리 자리를 차지하는 나라가 됐다. 이에 눈살을 찌푸리는 일본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흐름을 저지하기 위해 뭔가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1945년 패전은 일본이 갱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라는 극적인 사건으로 패전을 맞이하면서, 일본 근대 구도에 전쟁 이전과 전쟁 이후라는 구분이 성립하는 듯했다. 많은 일본인들은 "이제부터는 전후다. 민주주의 시대다"라며 페이지를 넘길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 페이지를 실제로는 넘길 수 없었다. 그때까지 어떤 페이지였는지, 그 페이지가 어떻게 넘겨졌는지, 아니 넘길 수 없었는지 깊은 질문과 대면하지 못했다. 최대의 문제가 천황제였다. 히로시마 원폭이 떨어진 뒤 불타버린 폐허를 쇼와 '천황'이 행차했을 때 피해자들은 이 전쟁 최고책임자에게 등을 돌린 게 아니라 오히려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자신의 손으로 민주적 새 헌법을 기초할 수 없었던 일본 정부에 점령군이 초안을 제시했다. 물론 그 초안은 전후 미국의 패권을 위한 것이었으나, 동시에 주권재민, 전쟁포기, 남녀평등, 삼권분립 등 민주주의적 기본 이념이 명기됐다. 다만 조선 사람 등 구식민지 출신자들의 인권은 주도면밀하게 배제됐다. 헌법 제9조(전쟁포기 조항)는 침략 전쟁을 벌인 가해국 일본이 세계에 제시한 국제 공약이다. 헌법 제9조의 변경은 국제 공약을 파기하는 행위이며, 필연적으로 중국·한국·북조선 등 아시아 피해 국가 간의 심각한 대립으로 가는 길이다.
자민당 등 일본 보수파는 전후 일관되게 이 헌법이 전승국에 의해 '강요당한 헌법'이라며 자주헌법 제정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현재까지 구체화되지 않았다. 구체화를 억제해온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일본 국민 다수의 염전(厭戰) 기분과 평화 지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 일본 재무장(특히 핵무장)을 경계하는 미국의 통제,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피해 국가들의 반발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의 보수 정당은 정치적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여서 속내는 어떠했든 그들의 주장을 구체화하는 데 신중했다. 그러나 3·11 이후는 이 구도가 바뀌어 억제 장치가 허물어지고 있다.
3년6개월 전의 정권 교체로 야당이 된 자민당은 야당의 홀가분함(즉, 무책임성) 덕에 여당 시절 이상으로 솔직하게 본심을 드러내게 됐다. 3·11이 일어난 지 약 1년 뒤인 지난해 4월, 그때는 아직 야당이던 자민당은 헌법 개정 초안을 책정했다.

올여름 참의원 선거가 분수령

헌법 제9조 2항을 삭제하고 '국방군'을 보유한다. 현재까지의 일본 정부가 헌법 해석상 금지해온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한다(즉, 미국에 대한 공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반격한다). 전전의 헌법같이 천황을 '원수'로 삼는다. '기본적 인권' 대신에 국민은 '공익 및 공공질서에 반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 책무를 명기한다. 그 외 모든 내용을 열거할 수 없으나, 현 헌법과 가치관을 완전히 달리하는 내용으로 종래 자민당의 주장조차 훨씬 능가하는 국가주의적이고 복고적이었다.
이 초안대로 구체화될 날이 오리라 자민당 의원 중 몇 명이 상상했을까? 초안 기초자들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재야의 입장인 네트우익적 무책임성에 기인한 극단적 주장을 늘어놓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일본 국민 다수는 지금도 이런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주장을 내세운 정당이 압도적 의석수를 지닌 여당이 된 것이다. 일본유신회 등 극우 세력은 '오른쪽'에서 압박을 가해 개헌을 밀어붙이려 한다. 올여름의 참의원 선거를 거쳐 그들이 중·참 양원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차지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들은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 평화주의를 내팽개칠 것이고, 동아시아 평화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일본은 패전 뒤 일관되게 미-일 안보 체제 아래 잠재적 전쟁을 벌여왔다. 지금 그것이 현재화할 위기를 맞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일본과 독일의 과거사 극복에서의 커다란 차이점을 어느 일본인 교수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쨌든, 일본은 한 번밖에 지지 않았으니까요."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는 거대한 희생(타자에게 가한 피해는 그 몇 배나 된다)을 치르고서야 비로소, 독일은 충분하지 않지만 지금 정도로 과거를 극복하려는 자세를 보이게 됐다. 하지만 한 번밖에 패전하지 않은 일본은 아직 절박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이런 견해가 옳은지는 지금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향후 노력에 달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견해가 옳을 경우 당사자 일본인들은 물론 주변 민족들, 더욱이 재일조선인 같은 일본의 '내부 타자'는 상상을 절하는 고난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바란다.
이 위기를 피할 수 있는 힘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까. 물론 일본 국민의 각성에 기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점에서 낙관적이지 못하다. 일본 국민 다수는 1945년 패전의 경험조차 '기적의 부흥'이라는 자기애(自己愛) 이야기로 만들어버리고 타자에게 가한 피해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쳐버렸다. 겨우 2년밖에 지나지 않은 3·11의 경험조차 지금은 경시하고 망각하려 한다. 아베 새 총리는 얼마 전 취임 뒤 첫 소신 표명 연설에서 '원전'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 때문에 큰 비판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이번에야말로 스스로 각성할 것이라 기대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정도는 '심각한 사고'(Severe Accident)로 분류된다. 이 사고는 글자 그대로 우리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어떤 것도 '이후'(포스트)가 될 수 없었던 일본의 근대, 바로 그 때문에라도 이번에는 어떻게든 이후가 돼야겠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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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재일 작가·저술가. 일본 도쿄경제대 교수. 1951년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한겨레)에서 '서경식의 일본통신'을 연재 중이다.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디아스포라의 눈) (나의 서양음악 순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평화·인권운동가 서승, 서준식의 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