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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일 화요일

조국을 향해 침을 뱉은 장관 후보 Mr. Kim


이글은 프레시안 2013-04-01일자 기사 '조국을 향해 침을 뱉은 장관 후보 Mr. Kim'을 퍼왔습니다.
[기자의 눈] 조국에 대한 예의

전 벨연구소장 김종훈 씨의 (워싱턴 포스트) 기고가 화제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내정됐다 사퇴하고미국으로 돌아간 김 씨의 후일담이다.

그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나온 이 기고에서 "조국"을 향해서 거침없이 쓴 소리를 뱉었다. "정치권과 관료 사회의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과 특정 업계가 국적과 애국심 부족을 이유로 내가 장관 되는 것을 반대했다"고 원인을 분석한 데 이어서, "마녀사냥 같은 독기 어린 공격" "나는 (한국에서) 스파이였다" 등 언론의 각종 의혹을 상기하며 짜증도 냈다.

김 씨의 이런 반응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에서 최고 수준의 부자로 성공한 사업가 입장에서, 자신의 장관 임명을 두고 "조국"에서 벌어진 해프닝이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이었겠는가? 성공에 아무런 도움도 준 적이 없었던 "조국"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다니.

하지만 그런 마음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이번 기고는 부적절했다. 아니, 오히려 적절했다. 이번 기고는 김 씨의 사퇴가 본인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번 글은 김 씨처럼 국내외 곳곳에서 암약하는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같은 이들의 본질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 김종훈 전 벨연구소장. ⓒ뉴시스

김종훈 씨가 "사랑하는"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미국 땅 하와이가 아닌 케냐에서 태어났고, 출생 당시 부친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었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미국 헌법이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만 대통령으로 출마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 씨의 "우리"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11년 4월 27일 백악관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1961년 하와이의 한 병원에서 자신이 태어났음을 증명한 출생 확인 기록을 내놓았다. 그러고 나서도 의혹이 가라앉지 않자,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법원의 최종 판단까지 받아야 했다(2012년 2월 3일).

미국 우파의 얼토당토않은 오바마 대통령 흠집 내기를 굳이 들춘 까닭은 김 씨에게 역지사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 "미국 국적"의 성공한 사업가가 있다. 그런데 그는 한 때 국군의 정보 장교였다. 또 국가정보원에서 그 역할이 불분명한 자문 위원으로 이름도 올렸다. 십분 양보해서 그 일은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하기 한참 전이라고 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이 사업가를 장관으로 임명하는 게 김종훈 씨가 그토록 "사랑"하는 미국에서 가능할까? 설사 미국 국적을 획득한 지 한참 전이고, 미국에서 세금 꼬박꼬박 내는 사업가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려 하더라도, 공화당과 언론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김종훈 씨는 미국에서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한국에서 가능하지 않았다고 한국을 한참 덜 떨어진 나라라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일차적인 책임은 이런 사려 깊지 못한 제안을 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지만, 앞뒤 안 따져보고 덜컥 장관을 맡겠다고 승낙한 김 씨의 처신 역시 그가 "태어난" 대한민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다시 묻자. 김종훈 씨는 왜 미국에서도 불가능한 일이 한국에서 가능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일까? 혹시 김 씨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닐까? '선진국'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인 자신을 '후진국' 한국은 군소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우월의식 말이다.

김 씨는 "미국에 대한 깊은 사랑"에도 불구하고 "내가 태어난 나라도 항상 사랑해 왔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의 경제 기적이 자랑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이 대목에서도 삐딱한 생각이 꼬리를 문다. 만약 한국이 "경제 기적"에 성공하지 못한 아시아 변방의 후진국에 머물러 있었어도 그가 기꺼이 "조국"을 위해서 "봉사"하고자 장관을 승낙했을까?

지금 한국이 이룩한 "경제 기적"의 밑바닥에는 노동자의 피땀과 더불어 온갖 기득권을 버리고 "가난한 조국"을 위해서 "봉사"하고자 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수많은 과학기술자의 눈물이 쌓여 있다. 김 씨가 과연 그들과 같은 마음이었다면, 장관 자리에 앉는 것이 무산되었다고 이토록 "조국"을 향해서 악담을 퍼부을 수 있을까?

가끔 미국에 국적, 학적, 종교 등 각종 적을 둔 이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당황할 때가 있다. 그들이 얘기하는 "국익"의 의미가 기자가 아는 것과 달라서다. 그들에게 "국익"은 "한국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이다. 이를 따져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꾸한다. "미국의 이익이 곧 한국의 이익입니다!" 김 씨라고 얼마나 다를까?

기고에서 김종훈 씨는 "한국의 10대 재벌 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80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이들의 고용 규모는 전체의 6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등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다"며 "한국은 가격 경쟁력 유지 등을 위해 생산 시설을 외국으로 옮기고 있고, 대학 졸업자 실업률도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백 번 지당한 얘기다. 그럼, 김 씨가 "사랑하는" 미국은 어떤가? 미국의 시가 총액 1위회사 애플은 분명히 미국 국적의 기업이지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생산하는 수십만 명의 노동자 대부분은 중국 선전에서 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중국인이다. 설마 성공한 기업가인 김 씨가 이런 제조업 국외 '아웃소싱'의 원조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김종훈 씨는 "한국에서 과학, 통신 기술을 이용하는 세계적인 중소기업을 만들어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 했다"고 대한민국에서 좌절된 자신의 꿈을 언급했다. 감히 김 씨에게 당부하건대, 이제 그 꿈은 "미국이 베푼 축복에 영원히 감사"하며 미국에서 이룰 것을 권한다. 대한민국에 당신이 설 자리는 없다.


 /강양구 기자

2013년 4월 1일 월요일

美 돌아간 김종훈 글 '파문'


이글은 한국일보 2013-04일자 기사 '美 돌아간 김종훈 글 '파문''을 퍼왔습니다.
"한국 민족주의가 장관되는 것 막아"
김종훈 전 미래부 장관 후보자, 워싱턴포스트에 기고 논란
"정ㆍ관계 변화저항 세력과 특정업계가 반대" 주장
해명 없이 사퇴해놓고 "국민정서 탓으로" 비난 일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내정됐다 사퇴한 재미동포 사업가 김종훈씨가 3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민족주의에 좌절된 한국으로의 귀국'이란 기고문을 실었다. 김씨는 이 글에서 정치권과 관료조직의 변화 저항 세력 및 업계가 자신의 장관 임명을 반대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예고했다. 김씨는 2월 12일 미래부 장관에 내정된 뒤 자격 논란이 계속되자 3월 4일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간의 심경을 처음 공개한 이 기고문에서 김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을 장관으로 내정한 이유에 대해 "박 대통령이 나의 경험이 미래부에 적합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박 대통령과 함께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추진하려 했다고 밝혔다. 

장관직을 사퇴한 이유와 관련, 김씨는 "한국의 정치와 비즈니스 환경이 아웃사이더가 장관에 오르는 것을 방해하는 게 명백해져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치권과 관료사회의 변화 저항 세력과 특정 업계가 국적과 애국심 부족을 이유로 내가 장관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정치권ㆍ관료사회ㆍ업계가 자신을 반대했다는 것은 논란이 될 주장이지만 김씨는 더 이상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김씨는 인터넷과 언론의 지적을 '마녀사냥'에 비유하면서 명예가 훼손됐다고 억울해 했다. 그는 자신을 간첩으로 몰고 부인을 성매매와 연관해 비난하는 등 가족까지 사냥감이 된 것이 그런 경우라고 했다. 

김씨는 장관 내정에서 사퇴까지의 과정을 "아주 기괴한 경험"이라고 표현한 뒤 "사람과 자본, 이념이 국경을 넘나드는 세상에서 민족주의 가치에 대한 우려라는 교훈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한국의 민족주의에 희생됐다고 돌려 말한 것인데 이를 두고 개인 문제를 민족주의로 환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는 한국의 이면에 만성적 취약성이 숨어있다면서 10대 재벌이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차지하지만 고용 비중은 6% 미만에 불과한 점, 경제 기적의 지속성 문제, 대졸자의 심각한 실업률 등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경제모델로 이스라엘을 제시했다.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이스라엘의 개방성을 특히 높게 평가한 김씨는 "(개방성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국내와 해외의 벤처캐피털과 기업인들이 고부가가치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21세기에는 국적이라는 오래된 편견에서 벗어나야 성공한 국가와 경제가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가 한국인의 자랑스런 국가유산이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씨앗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2013년 3월 24일 일요일

국적의 두 얼굴


이글은 한겨레21 2013-03-18이일자 제952호 기사 '국적의 두 얼굴'을 퍼왔습니다.
[이슈추적] 북 3차 핵실험 이후 사퇴한 김종훈 장관 후보자의 이중국적 논란 계기로 살펴본 한국 국적 제도의 변화와 보편적 인권… ‘종족적 단일성’ 고수하다 국익 중심으로 복수국적 도입했지만, 이주노동자 등 실질적 난민에겐 차별적

1947년 10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법제사법위원회는 미군정의 요청으로 훗날 대한민국 국적법의 모체가 될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안’을 심의한다.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 실시를 앞두고 ‘국민’(조선인)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거주 외국인이 극히 적고 일본인은 대부분 본국으로 철수한 뒤였으니, 조선인과 외국인을 구분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쟁점은 조선인이면서 입양·결혼·혼외출산 등으로 일본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였다.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그들에게 불이익을 주느냐 마느냐

김구 계열(한독당)의 황보익은 몇 가지 실례를 들어가며 이들의 국적을 회복시키더라도 재산상의 불이익을 줘 민족정신 회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 사람 사위나 아들이 되어가지고 특별히 영광을 취했던 사람들 중엔 경성 안에도 수백만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이들을 조선 사람으로 만들어주면 (재산을) 적산으로 몰수되지 않을 게고 그러니 많이 힘써달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이하 )
하지만 이 주장은 만만찮은 반대에 부딪혔다. “조선인이 조선의 국적을 가지겠다고 하는데 친일파니 무엇이니 하면서 우리나라 사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안동선) 즉각 재반박이 나왔다. “그 사람은 정신상으로도 일본 사람입니다.”(이종근) 과거 일본인으로 살며 특권을 누렸던 사람을 해방된 조선에서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였다.
격론이 오갔지만 탈국적 수속을 밟으면 별다른 불이익 없이 조선인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으로 최종안이 확정됐다. 한민당과 독촉(이승만) 계열이 다수를 점했던 당시의 입법의원 분포를 볼 때 당연한 귀결이었다. 친일 인사의 처리 문제에선 의견이 갈린 것과 다르게, 국적법의 핵심 줄기를 이루는 원칙 한 가지는 무난히 합의됐다. ‘이중국적’은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 두 나라가 한 사람을 공유해서는 ‘온전한’ 국민을 얻을 수 없을뿐더러, 한 사람이 두 나라의 권리를 누리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데 입법의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이다.
하지만 법률적 불허에도 불구하고 ‘이중국적’ 문제는 최근까지도 뜨거운 논란거리가 돼왔다. 2000년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뒤엔 후보자 직계 가족의 국적 문제가 정권의 도덕성 시비로 번지는 일도 빈번했다. 이중국적이 대체로 외국 체류 경험이 있는 상류층 자녀의 병역 면탈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잦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실제 이명박 정부의 첫 국무위원 후보자가 대상이었던 2008년 청문회에서는 전체 29명 가운데 6명이 자녀들의 국적 문제로 논란에 휘말려 ‘귀족 내각’이란 비아냥마저 들었다.
최근엔 후보자 본인의 국적 문제가 논란이 됐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지난 3월4일 사퇴한 김종훈씨다. 미국 국적자인 그에게 후보자 지명을 앞두고 서둘러 한국 국적을 회복시켜준 것부터 특혜 시비를 불렀고, 1년 전 미 해군지 기고문에서 그가 “미국은 나의 진정한 조국”이라고 밝힌 것도 구설에 올랐다. 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진화를 시도했지만, 이번엔 미국에서 정보기술(IT) 분야 벤처기업가로 활동하며 미 중앙정보국(CIA)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증폭됐다.

국적 논란 바탕에 깔린 안보 문제

» 김종훈씨는 국무위원 후보자 개인의 국적이 문제가 됐다는 점에서 이전의 논란과는 성격이 달랐다. 그를 국무위원 후보자의 자격에서 밀어낸 건 그의 미국 중앙정보국(CIA) 경력이었다. 김씨가 2월4일 국회 정론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직 사퇴 회견을 마친 뒤 서둘러 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시스

민주통합당이 “미국 정보부와 깊이 관계된 인사여서, 국무위원의 무거운 책임을 맡기기엔 불안한 점이 많다”고 논평한 것을 시작으로, “전문성 있는 인재라도 ‘불신’이라는 사회적 비용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근주 이화여대 교수)이라거나 “미국의 안보 관련 정보를 접했을 가능성이 있는 그가 장관이 되면 한·미 정부 모두 불편한 상황을 겪게 될 것”(신율 명지대 교수)이란 우려가 잇따랐다. 완곡어법으로 예의를 갖추긴 했지만, 외국 정보기관과 연계돼 활동했던 인사에게 핵심 부처의 수장을 맡긴다면 기밀급 정보의 해외 유출로 이어질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이런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국제관계에서는 강력한 ‘맹방’끼리도 치열한 정보 전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인데, 1984년 미 해군 정보부에서 일하던 유대계 미국인이 이스라엘에 기밀 정보를 넘긴 사실이 들통 나 외교 마찰로 번진 조너선 폴라드 사건이 단적인 예다. 첨단산업 분야의 기술 정보와 관련해선 국가 간 동맹관계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중국적자나 귀화자의 요직 등용과 관련해선 국적법 제정 당시부터 엄격한 제한을 둬왔다. 문제의 싹을 없애기 위해 외국인 귀화 자체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강경론도 있었다.
1948년 12월 제헌의회의 국적법안 심사 과정에서도 ‘귀화’로 인한 안보 불안 문제가 쟁점이 됐다. 만 20살 이상 외국인으로 한국에 주소가 있는 자를 법무부 장관 허가를 통해 귀화시킬 수 있게 한 조항에 대해 조국현은 ‘위만 조선’의 선례까지 들어가며 반대 논리를 폈다. “2천 년 전에 위만이라는 연나라 사람이 귀화한다고 해가지고 결국 (고조선) 기준왕의 주권을 뺏어 70년 동안 우리를 통치했습니다. 어느 나라를 먹으려면 민족부터 개방해가지고 자기 민족을 성식(盛殖)시키려고 하는 것이 침략가의 본의입니다.”(이하 )
하지만 갓 수립된 신생국가가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려면 선진 제국이 지향하는 세계적 법률 사조를 따라야 한다는 다수 의견을 제압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논의 과정에서 “단일민족성을 우리 내부에서는 강조하지만 그것에 대한 신뢰성을 입증하기는 어려우니 너무 강하게 그것을 강조하지 말자”(권태의)는 의견도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발언 직후 회의장은 벌집을 쑤신 듯 소란에 휩싸였고, 결국 발언자는 자신이 경솔했음을 시인하고 공개적으로 발언을 취소해야 했다.
이처럼 법률 제정 당시부터 국적 문제는 ‘종족적 단일성’과 ‘안보’라는 프레임에 강하게 긴박돼 있었다. 이후 9차례의 개정 과정을 거치며 그 강도가 점차 약화돼왔지만, 최근 김종훈 파동이나 탈북자에 대한 엄격한 심사 시스템에서 드러나듯 ‘안보’는 국적을 둘러싼 논의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프레임이다. 문제는 국적 문제의 공론화가 특권층의 일탈 방지나 안보, 민족적 동질성의 보전이란 차원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국적 제도의 운영이나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지나치게 편협하고 폐쇄적인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국적을 부여하거나 박탈한다는 것은 국민과 비국민, 내부자와 외부자를 나눠, 국가가 제공하는 법적 보호와 시민적 권리의 향유 자격을 제도적으로 획정하는 일이다. 이 문제를 두고 각 나라들은 서로 다른 기준을 채택해왔다. 흔히 말하는 속인주의·속지주의·거주지주의가 기준의 세 유형이다. 어디서 태어나든지 부모가 그 나라의 국민이면 자녀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속인주의와 달리, 속지주의와 거주지주의는 부모의 국적이 어디인지와 상관없이 태어난 곳과 거주한 기간에 따라 시민권을 주는 시스템이다.

1990년대 이후 영주권, 이중국적 허용했지만

» 형식적 시민권의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상 제 나라에서 ‘비국민’으로 살아가는 존재는 많다. 이주노동자와 탈북자들이 그 예다. 지난해 12월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집회 중인 이주노동자 한겨레 김태형

대부분의 나라는 속인주의를 기본 원칙으로 삼되 속지주의나 거주지주의를 부분적으로 결합한 시민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국적법 제정 당시부터 속인주의 요소가 강했다. 7세기부터 통일왕조를 형성해온데다 20세기 전반기의 식민지 경험이 종족성과 혈통에 기초한 집단 정체성을 강력하게 지탱해왔기 때문이다. 1948년 국적법은 부계 혈통주의와 속인주의를 원칙으로 채택했고, 이중국적과 영주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화교의 경우 3세·4세가 대부분이었음에도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했고, 세금까지 차별적으로 부과했다. 재외동포에게도 배타적이었다. 거주국에 귀화할 것을 적극 권장했고, 1970년대 초반부터는 해외에 체류하는 내국인의 선거권마저 박탈했다.
이런 기조는 1990년대부터 바뀌기 시작됐다. 내국인만 누리던 다양한 권리를 외국인에게 보장하는 과정에서 2002년엔 ‘영주권 제도’를 도입했다. 재외동포에 대한 문호 개방의 폭도 크게 늘렸다. 2010년 9차 개정 때는 외국인이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하(했)거나, 이미 외국 국적을 포기한 내국인에게 이중국적 보유를 허용했다. ‘이중국적자’라는 용어에 덧씌운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려고 ‘복수국적자’로 용어를 바꾸기까지 했다. 이런 변화에는 △시장 개방에 따른 국제사회의 압력 △외국인 유입 인구의 가파른 증가 △이주노동자와 이민자의 권리에 대한 안팎의 보호 압력 강화 △외국인 투자와 외국인 노동력 확보의 필요성 증대 등이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안팎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맞게 시민권 정책을 변화시켜온 것은 이웃 중국에서도 확인된다. 배타적인 ‘혈통’ 중심의 국민 정체성을 발전시켜온 한국과 달리, 중국은 전통적인 다민족국가로 재외동포보다 자국 내 이민족을 포용하는 ‘국가’ 중심의 시민권 정책을 펴온 나라다. 국외의 중국인(화교)보다, 국내의 이민족을 우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도 1980년대 이후 화교에 대한 적극적 포용으로 정책을 전환한다. 화교가 중국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내국인과 다름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다른 외국인보다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자본과 전문 인력을 유치하려는 조처였다.
이런 상황들을 근거로 전문가들은 “한 국가의 시민권 정책은 국민 정체성이 혈통 중심적이냐 국가 중심적이냐 하는 문화적 요인보다, 정치·경제 구조와 그것에 의해 규정되는 물질적·관념적 이해관계를 통해 잘 설명될 수 있다”(최현 제주대 교수)고 말한다. 이 물질적·관념적 이해관계는 흔히 ‘국익’이란 말로 표현된다. 정부가 최근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과 혈통적 단일성에 대한 강한 선호에도 불구하고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한 데도 ‘국익’의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했다. 하지만 이 프레임도 정체성·안보 프레임과 마찬가지로 국적 문제의 근원적 차원을 간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적잖은 문제를 노정한다. 국적 문제를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과, 그것의 제도적 구현태로 여겨지는 ‘시민권’의 차원에서 살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해나 아렌트 그리고 이주노동자

» 귀화를 위한 필기시험을 치르는 외국인들 한겨레 박승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며,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권리를 지닌다는 관념(천부인권설)은 알려진 대로 근대적 인권의 사상적·철학적 기초가 됐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인간에게 실질적 권리를 보장한 것은 신도 하늘도 아닌 ‘근대국가’였다. 근대국가는 의무만 지닐 뿐 권리는 갖지 못했던 ‘신민’을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 바꿔놓았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이 시민권(국적) 제도였다. 국가는 시민권 제도를 통해 국민의 경계를 확정함으로써 조세와 병역 등 국민으로부터 통치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이 자원을 이용해 국가는 구성원들에게 권리(안전·기본권·참정권·교육·복지 등)를 보장했고, 이렇게 제공된 권리는 다시 국민이 국가에 대해 갖는 소속감과 충성심의 원천이 됐다.
하지만 근대국가라는 정치공동체는 특정 지역(영토 내부)에 사는 특정인(국민·시민)에게만 권리를 보장했을 뿐, 모든 인간의 권리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현실에서 인권은 오직 시민권의 형태로만 실현될 수 있었다. 소속된 정치공동체(국가)가 없는, 따라서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에게 인권이란 단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국적 문제의 근원이 ‘안보’나 ‘종족적 동질성의 보전’ ‘국익 증대’의 차원을 넘어, 권리를 보장받을 주체와 그렇지 못한 타자를 경계짓고 구분하는 일과 결부돼 있다고 봐야 하는 이유다.
국적, 다시 말해 자신을 보호해줄 국가가 없는 사람을 우리는 ‘난민’이라고 부른다. 난민에 대한 사유를 최초로 정교화한 사람이 해나 아렌트(1906~75)다. 자신이 난민이었던 시절 쓴 책에서 그는 말했다. “어떤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리를, 시대의 투쟁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잃어버린 인간은, 사생활의 영역에서만 명확하게 표현되는 특성만 갖게 되고, 공적인 모든 사안에서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단순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런 난민에게는 정치적 권리가 없다. 거주 이전의 자유는 물론 국가권력에 의해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자격마저 제한적으로 주어진다. 오직 허용되는 것은 동물적 생존을 이어갈 자유뿐이다. 말 그대로 “벌거벗은 삶”(조르조 아감벤)이다.
‘법적’ 난민은 대체로 내전이나 학살, 정치적 탄압 때문에 발생한다. 1951년 제정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은 난민을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난민이 과연 그들뿐일까.
이주노동자는 법적 난민이 아니면서도 실존의 상황이 난민과 다름없는 존재다. 특히 체류 기간이 지나거나 직장을 여러 차례 옮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폭력은 금지되지만,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처벌받는 경우도 드물다. 지위가 합법적인 경우라도 자신의 노동 환경이나 법적 지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어떤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말한 ‘공적인 사안에서 아무런 자격이 없는 단순한 존재’에 가깝다.

권리 없는 자들, 내·외부 난민들

파견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이들은 고용돼 있으면서도 고용되지 않은 것처럼 다뤄진다는 점에서 내부에 있는지 외부에 있는지를 구별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국가나 국민 전체의 생존(국익)이 위기에 처했다고 간주될 때 가장 먼저 희생을 요구받는다. 형식적 시민권의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상 제 나라에서 ‘비국민’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국가의 일원이지만 국민은 아닌 자들”(해나 아렌트)이다.
혈통주의와 안보 강박을 넘어, 국적 보유와 관련된 제한 조처들을 과감히 푸는 것은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국익을 위해서”라는 ‘국가의 말’은 공소하게 들린다. 국익을 위해 국민 자격의 제한을 감수해야 하는 ‘내부 난민’이 도처에 넘쳐나는 현실에선 더 그렇다. ‘내부 국민’과 ‘주변 국민’(비국민·내부 난민)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방치·양산하며 통합과 경쟁력을 외치는 목소리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 혈통주의·배외주의를 넘어, 국익 프레임마저 극복하는 국적 담론을 우리는 언제쯤 갖게 될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국가 시민권’을 넘어 ‘지구 시민권’마저 논의되는 이 글로벌한 21세기에, ‘선진’ 민주국가가 지녀야 마땅한 품격 아닌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박근혜 대통령, 공무원은 적이 아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20일자 기사 '박근혜 대통령, 공무원은 적이 아니다!'를 퍼왔습니다.
[데스크 칼럼](48)김종훈-황철주 사태와 '위인설법'

생각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공무원들의 생리를 잘 알 것 같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스물 넷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리했다. 국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누구보다 지근거리에서 관료들과 그들을 다루는 법을 보고 배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뒤 겪었던 일들도 아마 권력과 사람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 대표 등 정당을 운영할 때도 그의 용인술은 남달랐다. 사람을 고를 때 주위 사람에 의존하지 않았다.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지만, 한번 발탁해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계속 자리를 만들어줬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런 독특한 인사 스타일은 계속 유지됐다. '깜깜이 인사', '나 홀로 인사', '불통 인사' 등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직까지 변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초기 인사 실패는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닌 듯하다. 누구보다 공무원들의 생리를 잘 아는 그로선 초반 기세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공무원들을 다잡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인사다. 특히 '복지부동'이란 말이 으레 앞에 붙는 관성에 사로잡힌 이 배타적 집단에 '직방'인 게 바로 외부충격요법이다. 자진 사퇴하지 않았으면 사상 첫 미국인 출신 장관이 될 수 있었던 김종훈 씨(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주식백지신탁제도 때문에 자진 사퇴한 황철주 씨(중소기업청장 후보자) 등 기업인 출신을 파격적으로 발탁한 게 '외부충격'을 주고자했던 게 아닌가 싶다. 바깥의 인재를 중용하는 방식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닮았다는 풀이도 있지만 말이다.

ⓒ청와대

안타깝게도 두 인사 모두 자진사퇴했다. 김종훈 씨는 이중국적과 CIA 연루설, 뒤이은 미국내 행적과 재산형성과정 등과 관련된 루머가 퍼지면서 급작스레 자진사퇴했다. 그는 20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사퇴한 이유에 대해 "약 2주간 한국 사회 한복판에 있으면서 한국의 '한쪽 피를 봐야 하는 정치(blood sport politics)'와 뿌리 깊은 관료주의는 나 같은 외부인을 받아들여 새 부처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고 주장했다. 황철주 씨는 지난 18일 주식백지신탁제도를 이유로 전격 사퇴했다. 황 씨는 청장직을 수행하게 되면 자신이 창업한 '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전량매각해야 했기에 사의를 밝힐 수밖에 없다며 "'백지신탁'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 불찰"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당선 이후 김용준 총리 후보자에 이어 3명이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재정기획부 장관, 김병준 국방부 장관의 낙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도 초기 조각에서 3명이 장관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낙마했었다. 새 정부가 자리 잡는 초기 진통 과정 정도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인사 실패보다 더 큰 문제는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 이후 벌어지는 일들이다. 김용준, 김종훈 씨가 사퇴하면서 지적한 인사청문회의 문제, 황철주 씨가 지적한 주식백지신탁제의 문제를 정부와 여당이 나서서 뜯어고치겠다고 한다. 새누리당과 행정안전부 내에서 마치 충성 경쟁이라도 하듯 관련법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물론 법과 제도 중에서 시대에 맞지 않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고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문제 삼는 대목이 과연 그런 문제일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과연 다른 나라에 비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주식백지신탁제도가 현재 공직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를 외부에서 수혈하는데 지장이 될만큼 엄격한 제도일까?

객관적으로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문제를 지적한 현재의 인사청문회를 위장전입과 같은 '가벼운' 위법을 저지른 후보자도, 한달에 1억 원이나 되는 보수를 '전관예우' 차원에서 받은 후보자도 모두 통과했다. 주식백지신탁제도도 마찬가지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이 제도가 도입된 2006년 이후 2012년까지 단지 17.9%가 직무관련성이 있는 주식으로 인정됐다. 대법원, 검찰청, 경찰청, 외교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행정안전부 등의 고위공직자 소유 주식은 전부 '직무관련 없음'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박근혜 정부와 여당 내에선 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까? 이는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공직자'가 어떤 사람이냐는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여전히 국민 10명중 7명은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 전반이 투명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9일 현대경제연구원 발표). 여전히 우리나라가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70%에 달한다는 얘기다.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 곧 법과 제도를 만드는 한 주체가 공직자다. 때문에 현재 한국에서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다양한 경험과 능력일지 의문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특권'과 '불평등'을 바로 잡고 완화하겠다는 의지가 우선이 아닌가 싶다. 고위 공직에 있다 로펌에 취직해서 월 1억 원의 보수를 받는 게 당연하고, 그런 뒤 다시 장관직을 제안하면 아무런 갈등 없이 덥썩 받아들이는 '특권의식'에 가득찬 '능력자'들이 바람직한 '고위 관료'의 모습일까?

박 대통령은 '신뢰'와 '원칙'을 기반으로 '법치'를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그런데 집권을 하고 나서 자신이 발탁한 총리,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자 '법'을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 맞게 뜯어고치겠다고 한다. 사람에 맞춰 자리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서 사람에 맞춰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정부와 여당이 '위인설법'하면서, 국민들에겐 '준법'을 강조한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또 박 대통령이 그렇게 함께 일하고 싶은 장관 후보가 왜 꼭 기업인 출신인지도 의문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 운영과 공익을 추구하는 국가 운영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은 이미 이명박 정부 때 확인된 사실이다. 아무리 훌륭한 능력을 가졌더라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정부 정책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공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 차라리 공무원 중에 찾아보는 건 어떨까. 공직자 중에서도 훌륭한 인재는 얼마든지 많다. 정치성향 따지고, 출신 지역 따지다 보니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국민이 원하는 건 '수완' 좋은 일꾼이 아니라 '정직한' 일꾼이다.


 /전홍기혜 편집국장

2013년 3월 6일 수요일

새누리 김용태 "朴대통령, 야당을 궁지로 몰아서야"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3-05일자 기사 '새누리 김용태 "朴대통령, 야당을 궁지로 몰아서야"'를 퍼왔습니다.
"김종훈, 민주주의에서 여야 대립은 다반사인데 웬 사퇴"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5일 박근혜 대통령의 전날 대국민담화에 대해 "그 내용의 절박성은 제가 이해를 하지만 시기와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 유감을 표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쓴소리를 했다. 

여권내 '미스터 쓴소리'로 급부상한 김용태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한 뒤, "국회가 꽉 막혀있기는 하지만 여야 간의 물 밑에서 치열하게 협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대통령께서 그렇게 격앙된 모습으로 대국민 담화를 하는 것을 보고, 대통령의 절박성은 이해하지만 앞으로 향후 5년을 내다봤을 때 가장 중요한 협상 파트너인 야당을 향해서 너무나 급박하게 야당을 밀어붙이는 모습이 적절했느냐, 이런 문제의식은 좀 생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실 국회에서 여야 간의 협상이 거의 막바지, 99% 왔거든요. 물론 야당 입장에서는 모양새 때문에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거의 타결까지 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오늘 국회가 열려서 야당이 강한 비판을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통과시켜주는 모습을 내지 않겠는가 생각했다"며 "그런데 어제 대통령 담화 때문에 그것은 조금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다. 너무 강수를 두어서 야당을 궁지에 몰지 않았나, 이런 아쉬움은 있다"며 거듭 박 대통령에게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더 나아가 "예전하고는 국회 환경이 완전 바뀌었다. 예전에는 사실 대통령이 집권여당만 상대하면 되었던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국회 선진화 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야당의 반대가 있는 한 그 어떤 것도 입법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며 "따라서 대통령은 정치를 하시면서 집권 여당이 아니라 오히려 야당을 협상 파트너로 삼아서 정치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따라서 대통령은 앞으로 야당과의 관계를 풀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지금 출범한지 8일 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5년 남았는데 야당과의 관계 설정의 첫 번째 단추를 이런 식으로 꿰게 되면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보낼지 사실 좀 걱정"이라고 탄식하며 "따라서 조금 늦기는 했지만 대통령께서 이제 집권여당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 하는 것을 떠나서 직접 야당과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양을 잡아나가지 않고서는 앞으로 5년이 정말 힘든 세월이 될 것 같아서 걱정이고 대통령도 이 점 유의하셔서 새로운 정치 모델을 만들어 나가셔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의 전격 사퇴에 대해서도 "김종훈 내정자가 전격적으로 사퇴한 것은 모양새는 좋지 않았다"며 "왜냐하면 각 나라마다 정치 문화가 있고 국민들의 기대 수준이 있다. 김종훈 내정자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청문회에 나와서 그런 이야기를 소상하게 말씀하셨으면 아마도 청문회 통과는 무난하셨다고 생각한다. 정치 상황을 들어서 본인이 전격 사퇴해버리니까 김종훈 내정자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 조각 전체의 문제로 일이 커져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순조롭게 출범하는 것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라며 "김종훈 내정자께서 한국의 정치 상황에 환멸을 느꼈다고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여야 간에 이런 문제로 대립하는 것은 다반사다. 지금 제가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변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야 간의 극명한 대립은 다반사다. 이런 차원에서 정치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 특히 대통령께서 정치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지금 그런 부분에 대해서 미진한 것이 있어서 여야 간의 대립의 어떤 것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김종훈 내정자가 전격 사퇴하니까 여야 간의 문제가 더 꼬여버린 것 같다"고 탄식했다.

그는 무기중개상 의혹 등이 제기된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김병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그 분이 걸어왔던 길이나 인품으로 봐서 나쁘지는 않다고 이야기했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무기 중개업체에 근무한 적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아니겠나"라며 "이 문제에 대해서 국민들께서 잘 납득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일단 무기 중개업체에 근무했던 것 자체는 아마 국민들의 검증의 눈높이를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낙마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김동현 기자 

2013년 3월 4일 월요일

김종훈 전격사퇴, “조국 위해 헌신하려던 마음 접어”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3-04일자 기사 '김종훈 전격사퇴, “조국 위해 헌신하려던 마음 접어”'를 퍼왔습니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자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김 장관 내정자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했던 마음을 접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선종합방송(SO)과 IPTV 등 뉴미디어 정책·규제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에 대한 여야의 갈등으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 사의 표명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민중의소리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4일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으려 한다"며 전격 사퇴했다. 

김 내정자는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가 어려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운을 뗀 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어제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영수회담 무산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미국에서 일궈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저를 낳아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남은 일생을 바치고자 돌아왔다"며 "그 길을 선택한 것은 한국의 미래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창조경제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과학과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생산적으로 융합해서 새로운 일자리와 미래성장동력을 창출해야 미래를 열 수 있다"며 "저는 그 비전에 공감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한 대통령의 설득에 감명받아 동참하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는 움직이지 않고 미래부를 둘러싼 정부조직 개편안 논란과 여러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조국을 위해 바치려고 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김 내정자는 "마지막으로 한국과 국민의 미래를 위해 박 대통령이 꿈꾸는 창조경제가 절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부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와 국민 여러분이 힘내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한편, 김 내정자는 지난 달 17일 지명된 이후 이중국적 논란과 함께 미 중앙정보국(CIA)가 설립한벤처투자회사 인큐텔(In-Q-Tel) 창립에 관여하고 이사로 참여하고 CIA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한 전력이 드러나 'CIA 커넥션' 의혹이 제기돼 왔다. 

또한 과거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보답하기 위해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군복무를 통해 미국이 진정한 조국이며 나는 정말로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됐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정체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명규 기자 acrow@vop.co.kr

2013년 3월 2일 토요일

김종훈, 서울시 지원 수백억 받고도 특허등록 '0건'


이글은 노컷뉴스 2013-03-01일자 기사 '김종훈, 서울시 지원 수백억 받고도 특허등록 '0건''을 퍼왔습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MOU체결…미 당국 승인 없이는 기술 이전 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 달아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미국 벨연구소 사장 시절 서울시와 연구 협약을 맺으면서 수백억원의 예산 지원을 받았지만, 국내기업으로의 기술 이전이나 특허 등록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그는 미 당국의 승인 없이는 기술 이전을 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는데, 향후 한·미 간 국익이 충돌할 경우 김 후보자가 우리 정부측 입장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일 서울시가 민주통합당 우원식 의원과 박양숙 서울시의원에게 제출한 '세계유수연구소 지원현황'을 보면, 서울 벨연구소는 2008년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3개 국내 대학과 함께 R&D(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사업비 200억원을 받았다. 

또 서울시로부터 상암동 DMC 산학협력연구센터에 있는 입주공간도 제공 받았다. 2224㎡ 규모이지만, 연간 임대료는 3500여만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서울 벨연구소는 지난 2005년과 2006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김종훈 미국 벨연구소 사장과의 MOU(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서울에 유치한 연구소다. 

당시 서울시는 협약 내용을 토대로 "서울 벨연구소가 국내기업에 기술이전을 하고, 서울시가 지적재산권 지분의 30%를 갖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사업 시행 5년째를 맞도록 기술 이전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특허 실적도 미흡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벨연구소 이름으로 특허를 신청한 '특허출원'은 1건에 불과했고, 특허를 인정 받은 '특허등록'은 단 1건도 없었다. 벨연구소가 현재 3만 3천여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이처럼 '미흡'한 실적은 서울시 내부에서도 논란이 됐다. 서울 벨연구소에 수백억원의 예산을 퍼주고도 지적재산권 등 실효성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자성에서다. 

CBS가 입수한 지난해 11월 '수시평가' 자료를 보면, 총평에서 "특허 등 지적재산권 확보 차원의 노력이 추가적으로 요구된다"고 언급돼있다. 

2011년 보고서에서는 "원천기술 연구 미진, 지식재산권 확보전략 필요", 2010년 보고서에서도 "해외학술지를 포함한 연구논문 게재 미흡, 특허출원부분 미흡, 벨연구소의 기여도가 연구진행에 있어 많이 낮다고 판단"이라는 내용 등이 보완 사항으로 지적됐다.

이밖에도 "미국 벨연구소의 향후 현금출자 및 구체적 지원 요망", "연구성과금 및 연구관리 인건비가 연구실적에 의해 과도하게 계상"이라는 등의 지적을 받았고, 종합평점도 해마다 70점대의 낮은 점수에 그쳤다. 

이와 함께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미국의 입장이 충실히 반영된 MOU 조항이다. '2006년 서울시-벨연구소 MOU'를 보면 "본 협약과 관련한 특정한 제품, 소프트웨어, 기술 정보는…(중략)…반드시 적절한 미합중국 정부기관에 의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나와있다. 


"어느 품목이라도 미국 수출법과 규제에 부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 배포, 이전,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사실상 미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기술 이전이 가능하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놓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통상적으로 이런 조항을 반드시 넣진 않는다"며 "다만, 미국의 경우 북한에 IT 관련 핵심 부품이 넘어가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인 기업가로서 소속 국가의 입장을 대변하고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이런 경력을 가진 인물이 우리나라의 핵심 과학기술과 창조경제를 이끌 수장을 맡는 게 과연 적절한지를 놓고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 후보자는 '이중국적' 보유 사실과 미국 CIA(중앙정보국)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경력 등이 알려지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시의원은 "세계유수연구소라 하는 벨연구소를 수백억원을 들여 유치했는데, 실제로는 특허출원도 미흡하고 연구성과도 미미해서 시민의 혈세가 낭비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우 의원은 "자수성가한 벤처 사업가로만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의 행적들을 살펴보면 과연 김 후보자가 우리나라의 창조경제를 이끌어갈 수장으로서 적합한 인물인지 굉장한 의구심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200억원을 들여 벨연구소를 지원해줄 때는 그 연구소가 가진 기술력을 이전 받기 위함인데 애초부터 (기술 이전을) 기대할 수 없는 MOU를 체결해놓았다"며 "결국 김 후보자가 벨연구소 이름으로 서울시 예산을 거저 먹은 격"이라고 질타했다.

 CBS 김효은 기자

2013년 2월 23일 토요일

김종훈, '환란' 직후 강남에 수백억 부동산 매입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2-22일자 기사 '김종훈, '환란' 직후 강남에 수백억 부동산 매입'을 퍼왔습니다.
"벤처사업가가 환란때 집값 떨어지자 부동산투기라니..."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그의 친·인척들이 1997년 IMF사태 직후 한국에서 부동산투자를 시작해 서울 강남과 한남동 등에 수십억원에서 100억원대를 호가하는 빌라와 빌딩들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민주통합당 우원식 의원실이 조사한 결과 김 후보자의 부인 김신디아현주씨(53)는 1998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4층짜리 빌딩을 법원 경매를 통해 사들여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 빌딩은 대지면적 386.1㎡(약 116.79평)으로 부동산 업계에서는 시세가 140억원가량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빌딩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처남 정모씨(55)와 김 후보자의 장인으로 추정되는 정모씨(82) 등이 2003년 매입해 현재까지 공동 소유하고 있는 3층짜리 빌딩이 있다. 대지면적 526.3㎡(159.20평)인 이 빌딩은 지난해 공시지가가 111억여원이었다. 

김 후보자는 2002년 부인과 공동명의로 서울 한남동의 고급 빌라를 매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 빌라의 현재 시세는 42억~45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또 서울 청담동 소재 6층짜리 또 다른 빌딩을 사들여 2000년대 초반까지 보유하다 판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의 부인은 한때 국내 주소지를 이 빌딩에 두기도 했다. 이 빌딩도 가격이 100억원을 넘는다.

김 후보자 부인은 자신이 보유한 4층짜리 청담동 빌딩을 재건축하려다 입주해 있던 임차인들과 마찰을 빚어 법원에 명도소송까지 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김 후보자 측이 그동안 부동산 개발과 매매 등을 활발하게 해온 것이다.

김 후보자는 자신이 설립한 미국 내 벤처회사인 ‘유리시스템즈’를 1998년 10억달러에 매각했는데 이 자금으로 한국 내 부동산에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가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한 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당시 외환 부족에 시달리던 한국 정부는 해외 교포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투자 유치 활동을 벌인 바 있다.

우원식 의원은 (경향)에 “미국에서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알려진 김 후보자가 한국에서는 외환위기로 값이 떨어진 부동산이나 사 모았다는 것은 실망스럽다”며 “투자가 적법한 절차를 따랐는지, 납세 과정은 투명했는지에 대해 심도 깊은 검증을 하겠다”고 말했다.

최병성 기자

2013년 2월 22일 금요일

김종훈, 강남 등에 수백억대 부동산 보유


이글은 경향신문 2013-02-22일자 기사 '김종훈, 강남 등에 수백억대 부동산 보유'를 퍼왔습니다.

ㆍ우원식 “성공한 벤처사업가가 부동산만 투자해 실망”ㆍ미 부시 대통령 지시로 2001년 정보당국 개편도 참여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53·사진)와 그의 친·인척들이 서울 강남과 한남동 등에 수십억원에서 100억원대를 호가하는 빌라와 빌딩들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김 후보자 측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으며 그 당시 구입한 빌딩 중 일부는 이미 매각한 것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 우원식 의원실이 조사한 내용을 보면 김 후보자의 부인 김신디아현주씨(53)는 1998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4층짜리 빌딩을 법원 경매를 통해 사들여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 빌딩은 대지면적 386.1㎡(약 116.79평)으로 부동산 업계에서는 시세가 140억원가량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빌딩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처남 정모씨(55)와 김 후보자의 장인으로 추정되는 정모씨(82) 등이 2003년 매입해 현재까지 공동 소유하고 있는 3층짜리 빌딩이 있다. 대지면적 526.3㎡(159.20평)인 이 빌딩은 지난해 공시지가가 111억여원이었다. 김 후보자는 2002년 부인과 공동명의로 서울 한남동의 고급 빌라를 매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 빌라의 현재 시세는 42억~45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김종훈 소유 45억원대 고급빌라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53) 소유의 서울 한남동 고급빌라(242.92㎡·73.48평). 김 후보자는 2002년 이 빌라 3층을 부인과 공동 명의로 분양받았다. 서울의 대표적 부촌인 유엔빌리지에 위치한 이 빌라의 현재 시세는 42억~45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는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CEO), 외국계 기업 임원, 인기 연예인 등이 살고 있다. 1998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부자에 올랐던 김 후보자의 재산은 수천억원대로 추정된다. | 구교형·김경학 기자

김 후보자는 또 서울 청담동 소재 6층짜리 또 다른 빌딩을 사들여 2000년대 초반까지 보유하다 판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의 부인은 한때 국내 주소지를 이 빌딩에 두기도 했다. 이 빌딩도 가격이 100억원을 넘는다.

김 후보자 부인은 자신이 보유한 4층짜리 청담동 빌딩을 재건축하려다 입주해 있던 임차인들과 마찰을 빚어 법원에 명도소송까지 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김 후보자 측이 그동안 부동산 개발과 매매 등을 활발하게 해온 것이다.

김 후보자는 자신이 설립한 미국 내 벤처회사인 ‘유리시스템즈’를 1998년 10억달러에 매각했는데 이 자금으로 한국 내 부동산에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가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한 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당시 외환 부족에 시달리던 한국 정부는 해외 교포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투자 유치 활동을 벌인 바 있다.

우원식 의원은 “미국에서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알려진 김 후보자가 한국에서는 외환위기로 값이 떨어진 부동산이나 사 모았다는 것은 실망스럽다”며 “투자가 적법한 절차를 따랐는지, 납세 과정은 투명했는지에 대해 심도 깊은 검증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업무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2001년 5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지시로 정보당국 개편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김 후보자는 민간인 8명으로 구성된 ‘민간위원회(스코크로프트 패널)’에 정보통신(IT) 전문가로 참여했다. 이 위원회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가 위원장이었고, 전 중앙정보국 부국장 리처드 커, 전 국무부 정보담당 차관보 스테이플턴 로이 등 고위직을 지낸 인물들도 포함됐다. 

위원회는 미국 정보기관들의 공조체계와 21세기 새로운 안보환경에서의 정보기관의 역할 등을 연구하는 등 미 정보기관 강화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 후보자는 2007년부터 4년간 미 중앙정보국 자문위원회의 비상임위원으로 재임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박홍두·김경학 기자 phd@kyunghyang.com

2013년 2월 21일 목요일

김종훈 ‘CIA 이력’ 일파만파…“한-미 모두 불편한 상황” 지적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20일자 기사 '김종훈 ‘CIA 이력’ 일파만파…“한-미 모두 불편한 상황” 지적'을 퍼왔습니다.

2011년 9월 <한국방송(KBS1 TV)> ‘글로벌 성공시대’에 소개된 김종훈(53)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왼쪽 사진) 자신이 유리시스템즈 이사이던 월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대학 졸업뒤 7년간 해군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핵잠수함에서 찍는 기념사진. <한국방송> 글로벌 성공시대 화면 갈무리

계속 드러나는 ‘커넥션 의혹’
자신이 세운 벤처기업에
CIA 전 국장 울시 영입
페리 전 국방장관도 이사로
해군 연구소 근무 때부터
울시와 서로 알고 지내

전문가들 “양국이 선두 다투는
IT분야 수장으로 신뢰 주겠나”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및 군산복합체 핵심인물과의 긴밀한 관계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 국가의 과학기술 분야 등을 총괄하는 핵심 부서의 장관으로서 적절한지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의지가 담긴 핵심부처 수장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도 우려를 나타냈다.김 후보자가 자신의 벤처기업인 ‘유리시스템즈’를 상장하던 1997년 당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를 보면,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장과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이 회사의 이사로 올라와 있다. 울시 전 국장은 미 클린턴 행정부에서 1995년까지 중앙정보국장으로 활동했다. 중앙정보국을 그만 둔 이듬해 유리시스템즈에 합류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으로 일했던 윌리엄 페리도 1997년 1월 사임 뒤 곧바로 유리스템즈 이사로 합류했다. 울시 전 국장은 이 회사 이사로 일하면서 10만주의 주식을 받았다. 김 후보와 울시 전 국장은 모두 미 해군 출신으로, 김 후보자가 유리시스템즈 설립 전 미 해군이 설립한 연구소인 ‘얼라이드 시그널’에서 일할 때 서로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김 후보자는 1992년 유리시스템즈에서 멀티미디어 전송장비인 ‘유리박스’(ATM)를 개발하면서 페리 전 장관을 만났다고 한다. 걸프전쟁 당시 미군 전투기들이 데이터를 제대로 수신하지 못해 적 전투기를 놓친 것에 착안해 군사통신장치로 ATM장비를 개발해 미군에 납품했다. 유리시스템즈의 성공에 미군과의 긴밀한 관계가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김 후보자는 미 중앙정보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미 중앙정보국은 1999년 정보기관에서 쓰일 기술을 개발하는 벤처 발굴을 위해 투자 펀드인 ‘인큐텔’(In-Q-Tel)을 설립하는데, 김 후보자는 창립 당시부터 이사회에 참여했다. 또 중앙정보국은 2002년에는 한걸음 더 나가 자체적으로 필요한 각종 첨단정보 장비와 기술을 개발할 벤처기업을 직접 발굴·육성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인큐잇’(In-Q-It)’이라는 벤처캐피털(벤처투자사)을 차렸다. 김 후보자는 페리 전 장관과 함께 이 회사의 이사진으로 함께 참여했다.김 후보자의 미국을 향한 강한 애국심을 보여주는 발언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김 후보자가 박사학위를 받은 미 스티븐스대에서 졸업생 대표로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많은 기회를 준 미국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미 해군에 입대해 장교로 7년간 복무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계속 표시하는 차원에서 미 중앙정보국의 외부 자문단에서 활동했다는 점도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이근주 이화여대 교수(행정학)는 “정보기술(IT) 분야와 같이 우리가 세계시장을 두고 미국과 다투는 영역에서 김 후보자가 관련 부처의 장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장관이 된 뒤 최선을 다해도 국민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텐데, 경력이나 전문성이 있는 인재라고 해도 ‘불신’이라는 사회적 비용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도 “미국의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접했을 가능성이 있는 김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한·미 정부가 모두 불편한 상황을 겪게 될텐데 불필요한 외교적 긴장을 가져올 만한 인선을 꼭 고집할 필요가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희 엄지원 기자 hermes@hani.co.kr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朴정부 장관 내정자들 의혹은 무엇 (1)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2-19일자 기사 '朴정부 장관 내정자들 의혹은 무엇 (1)'을 퍼왔습니다.
현오석, 아파트 특혜분양·증여세 탈루 의혹
김병관, 증여세 미납 등 의혹만 10여가지
황교안, 17개월간 16억 보수로 전관예우 논란
김종훈, 이중국적 논란과 CIA 관계 해명해야 할 듯

20일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의 17개 부처 초대 장관 내정자들의 청문회가 줄줄이 이어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증여세 포탈과 병역 특혜, 부동산 투기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지고 있어 이같은 의혹들이 인사청문회에서 어떻게 검증될지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야당이 이번 청문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협상이 마무리되지도 않은 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전격적으로 장관 내정자를 지명한 것은 야당과 국회를 무시한 처사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당은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내정자 1~2명은 반드시 낙마시킨다는 각오로 현미경 검증을 예고하고 있다.
17개 부처 장관 내정자 가운데서도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와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 황교안 법무부 장관 내정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아파트 특혜 분양·증여세 탈루 의혹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

우선 현오석 내정자는 고가의 주상복합 아파트 특혜 분양 의혹을 받고 있다.
19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 따르면 현 내정자의 부인은 지난 2001년 경기 성남시 파크뷰 아파트(234.7㎡ ·71평형)를 분양 받았다. 문제는 현 내정자 부인이 당시 당첨자가 아니었음에도 당첨자 계약기간에 해당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는 것이다.
당첨자 추첨일은 3월 19일이고 당첨자 계약일은 3월 22일인데 예비당첨자인 현 내정자의 부인은 이 아파트를 3월 21일 계약했다는 것으로 분양대행사가 분양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게 의혹의 골자다.
이 아파트는 당시 분양가가 6억 원대로 알려졌으며 평균 수십대 일의 청약경쟁률과 거액의 분양권 프리미엄도 붙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현 내정자측은 "당시 파크뷰 아파트 분양은 26층 이상의 이른바 로얄층만 공개청약과 추첨에 의해 당첨자를 결정하고, 25층 이하는 선착순 수의계약으로 분양하도록 돼 있었다"며 "현 내정자는 당초 공개청약 물량인 26층 이상의 아파트를 분양 신청했으나 당첨되지 않아 선착순 미분양 물량인 6층 아파트를 이틀 뒤인 3월 21일에 계약했다"고 주장했다.
현 내정자는 딸에게 부동산을 증여하면서 세금을 덜 냈다는 증여세 탈루 의혹도 받고 있다.
현 내정자는 지난 2005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140㎡(약 42평형)의 아파트를 딸(34)에게 증여했다. 현 내정자는 증여 이틀 전 신한은행을 통해 3억3600만원의 담보 대출을 받았다.
이를 두고 부동산 업계에서는 현 내정자가 세금을 덜 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현 내정자가 자녀에게 증여한 아파트의 기준시가는 12억 원 안팎이었다. 약 2억8000여만 원의 증여세를 내야하지만 대출금이 있을 경우 약 1억7000여만 원의 증여세만 내면 된다. 1억 원 세금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업계는 이 같은 수법을 당시 전형적인 탈세수법으로 보고 있다.
또한 현오석 내정자는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뱅크런이 일어날 당시 솔로몬저축은행 등에 예금했던 2억 원을 영업정지되기 전 인출한 것이 쟁점화 되고 있다.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뱅크런을 막고 저축은행 예금자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자기 돈 2000만원을 예금하는 등 고위 경제 관료가 동분서주 할 때 한국개발연구원장인 현 내정자는 오히려 돈을 빼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민주통합당의 지적이다.
민주당은 현 내정자를 두고 "'뱅크런오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 내정자의 경제관도 검증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성장을 매우 중시하는 전형적인 시장주의적 경향이 강하다는 평이어서 민주당 측의 집중적 공세가 예상된다.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나 복지 확대 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질지 우려스럽다는 것이 민주당의 설명이다.
따라서 현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개인사와 경제관을 놓고 야당의원들과 치열한 공방을 벌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의혹만 10여 가지,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

김병관 내정자는 장관 내정자로 지명되자마자 증여세 미납 논란이 불거져 논란이 일었다.
그는 1986년 경북 예천군 용문면의 임야 2필지를 아내와 장남 명의로 매입했는데 매입 당시 김 내정자의 장남 나이는 8살에 불과했다. 김 내정자는 2006년 재산공개 당시 이 땅의 소유권이 모두 아내에게 있고 장남 소유의 부동산은 없다고 신고했으며 이에 대해 편법 증여와 허위 신고 의혹이 일자 내정된 직후 증여세를 부랴부랴 납부했다.
김 내정자는 배우자가 두 아들에게 노량진 아파트를 증여하면서 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증여 20일 전 은행에서 1억 2000만원을 빌려 증여액을 낮추는 방법으로 2400만원의 증여세를 내지 않은 의혹도 받고 있다.
전역 이후 한 무기중개업체의 고문으로 활동했던 이력도 문제가 되고 있다. 2008년 군복을 벗은 김 내정자는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무기중개업체에서 비상근 고문으로 일하면서 수억 원의 급여를 받았다.
또 이 업체의 대표가 1993년 이른바 '율곡사업 비리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적이 있어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비리를 저지른 업체에서 일했던 이력이 적절했는지를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김 내정자가 자신의 경력과 무관한 기업의 사외이사로 선임돼 부실 활동을 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김 내정자가 코스닥 상장사인 동양시멘트 사외이사를 맡으며 이사회에 거의 참석하지 않은데다 모든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거수기' 노릇을 하며 보수만 받았다는 지적이다.
동양시멘트 사외이사 근무 당시 주한미군 유지보수 공사를 동양시멘트가 수주했던 배경도 검증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사단장 시절 부하 장교 비리에 대한 처벌 경감, 종교 활동 강요 의혹, 대장 예편 후 건강식품 홍보, 부대 위문금 개인통장 관리 의혹 등이 있다.
가족에 대한 의혹도 불거지고 있는데 김 내정자 부인의 리튬전지 군납업체인 비츠로셀 주식 1000주 보유,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차남의 대한변호사협회 법학전문대학원 평가위원회 특혜채용 의혹, 장남의 군용 프로그램 납품 업체 근무 전력, 장남이 근무한 회사 2곳에서 국방부 대형 사업을 수주한 배경 등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미 김 내정자는 야당을 중심으로 자진사퇴가 제기되고 있으며 청문회가 진행된다면 가장 혹독한 청문회가 예상된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 17개월 동안 16억 원의 보수…전관예우 논란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

황 내정자는 2011년 부산고검장을 퇴임한 뒤 같은 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7개월간 근무하면서 수십억 원 고액 연봉을 받아 논란에 휩싸였다.
인사청문요청서 등에 따르면 황 후보자는 이 기간 동안 16억여 원의 보수를 받았다. 월 평균 1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어서 전관예우 논란이 예상된다.
황 내정자의 병역 문제도 여전히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황 내정자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77년에서 1979년 사이 재학생 신분을 이유로 징병검사를 연기했다가 1980년 알레르기성 피부질환인 만성 담마진을 사유로 제2국민역 판정을 받고 병역이 면제됐다. 담마진(蕁麻疹)이란 쉽게 말해 두드러기다.
황 내정자는 증여세 탈루 의혹도 받고 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황 내정자는 2008년 연말정산에서 배우자에 대한 부양가족 기본공제신청을 했는 데, 같은 시기 모 대학에 재직 중이던 배우자도 자신 몫의 기본공제를 신청해 이중으로 공제를 받았다.
황 내정자의 장남에 대한 증여세 탈루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황 내정자 장남은 2011년 7월 군에서 전역한 후 KT에서 연봉 3500만원(2012년 기준)을 받으며 근무를 시작했고 지난해 8월30일 76.3㎡ 규모의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10차아파트를 3억원에 전세 계약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증여세 납부나 채무 관계가 인사청문요청안에 나와 있지 않아 증여 의혹이 불거졌다. 증여세법에 따르면 직계존비속간 증여는 성인의 경우 3000만원 이내만 공제된다.
만약 황 내정자가 증여를 했다면 2억7000만원에 대한 증여세 납부기록이 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황 내정자는 배우자가 1999년 경기 용인시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을 놓고 부동산 투기 의혹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기독교 편향 종교관과 병역 면제, 안기부 X파일 떡값검사 봐주기 수사 의혹 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이중국적 논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김 내정자는 벨연구소 소장으로 선임된 지난 2005년 CIA가 설립한 '인큐텔'이라는 IT업체 창립에 관여했다. 이 회사는 CIA로부터 매년 3700만 달러가량을 지원받아 운영됐는데 김 내정자는 2005년까지 이 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했다.
김 내정자에게 벤처 신화를 안긴 유리시스템즈에는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이 이사로 참여했다. 이같이 미국과 CIA를 위해 일해 온 김 내정자가 기업의 신기술을 다뤄 보안·기밀이 필요한 미래창조과학부를 책임지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김 내정자는 지난 2009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문위원에 참가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따르면 2009년 9월 9일 당시 리언 파네타 CIA 국장(현 국방부장관)은 직원들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새롭게 구성된 CIA 자문위원회 위원들과 회동한 사실을 밝혔는데 여기에 김 내정자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 의원에 따르면 CIA 자문위원회 명단에는 김 내정자를 비롯해 메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아놀드 칸터 전 국무차관, 부시 정부에서 이라크전쟁을 지휘했던 리처드 마이어스 전 합참의장, 미국의 대표적 군수업체인 CSC의 해롤드 스미스 부사장, CIA 법무 자문을 했던 제프리 스미스, 부시대통령의 국토안보보좌관 프랜 타운센드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의원은 "김종훈 내정자는 1999년 CIA가 설립한 인큐텔 이사로 재직한 것에서부터 2009년 CIA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미국 CIA와 관련된 일을 해온 인물"이라며 "미국에 대한 깊은 애국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내정자가 장관에 취임했을 시 한미 간 국익에 관한 충돌이 생길 경우 어떤 입장을 취할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테마주에 대한 의혹도 일고 있다. 김 내정자의 손위 처남이 공동대표로 있는 회사는 지난 12일 제3자 배정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했다. 김 내정자가 지명된 이후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했는데 장관 지명 사실을 사전에 알고 기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김 내정자의 이중국적 문제도 논란인데 김 내정자는 지난 8일 국적회복 신청을 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기 3일전에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국적회복 신청 당시 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미국 내 절차가 진행되는 데만 3~5개월이 걸리고 김 내정자의 가족들은 국적회복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라서 적절성 시비가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