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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3일 토요일

김종훈, '환란' 직후 강남에 수백억 부동산 매입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2-22일자 기사 '김종훈, '환란' 직후 강남에 수백억 부동산 매입'을 퍼왔습니다.
"벤처사업가가 환란때 집값 떨어지자 부동산투기라니..."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그의 친·인척들이 1997년 IMF사태 직후 한국에서 부동산투자를 시작해 서울 강남과 한남동 등에 수십억원에서 100억원대를 호가하는 빌라와 빌딩들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민주통합당 우원식 의원실이 조사한 결과 김 후보자의 부인 김신디아현주씨(53)는 1998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4층짜리 빌딩을 법원 경매를 통해 사들여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 빌딩은 대지면적 386.1㎡(약 116.79평)으로 부동산 업계에서는 시세가 140억원가량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빌딩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처남 정모씨(55)와 김 후보자의 장인으로 추정되는 정모씨(82) 등이 2003년 매입해 현재까지 공동 소유하고 있는 3층짜리 빌딩이 있다. 대지면적 526.3㎡(159.20평)인 이 빌딩은 지난해 공시지가가 111억여원이었다. 

김 후보자는 2002년 부인과 공동명의로 서울 한남동의 고급 빌라를 매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 빌라의 현재 시세는 42억~45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또 서울 청담동 소재 6층짜리 또 다른 빌딩을 사들여 2000년대 초반까지 보유하다 판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의 부인은 한때 국내 주소지를 이 빌딩에 두기도 했다. 이 빌딩도 가격이 100억원을 넘는다.

김 후보자 부인은 자신이 보유한 4층짜리 청담동 빌딩을 재건축하려다 입주해 있던 임차인들과 마찰을 빚어 법원에 명도소송까지 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김 후보자 측이 그동안 부동산 개발과 매매 등을 활발하게 해온 것이다.

김 후보자는 자신이 설립한 미국 내 벤처회사인 ‘유리시스템즈’를 1998년 10억달러에 매각했는데 이 자금으로 한국 내 부동산에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가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한 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당시 외환 부족에 시달리던 한국 정부는 해외 교포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투자 유치 활동을 벌인 바 있다.

우원식 의원은 (경향)에 “미국에서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알려진 김 후보자가 한국에서는 외환위기로 값이 떨어진 부동산이나 사 모았다는 것은 실망스럽다”며 “투자가 적법한 절차를 따랐는지, 납세 과정은 투명했는지에 대해 심도 깊은 검증을 하겠다”고 말했다.

최병성 기자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김용준, '부동산투기+거짓말 의혹' 급확산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128일자 기사 '김용준, '부동산투기+거짓말 의혹' 급확산'을 퍼왔습니다.
"개발정보 사전 입수해 부동산투기 의혹도"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부장판사로 재직중이던 1970년대와 대법관으로 임명된 1980년대 후반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일대의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TV조선)에 이어 (한겨레)도 부동산투기 및 거짓말 의혹을 제기했다.

28일 (한겨레)에 따르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3년 대법관이던 김 후보자는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의 아파트(180㎡)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단독주택(대지 241.3㎡)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대지 520㎡(지분 3분의 1)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밭 1757㎡(지분 2분의 1)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단독주택(대지 674㎡) △경기도 수원시 금곡동 임야 1만7355㎡ △경기 도 안성시 삼죽면의 임야 7만3388㎡ △인천 중구 북성동 잡종지 232.7㎡ △충남 부여의 임야 4만7983㎡ 등 9곳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한겨레)가 이들 9곳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곳은 충남 부여군 남면의 임야 4만7983㎡ 한 곳일뿐이었다. 

김 후보자의 부동산 구입은 유신시절이던 부장판사 때부터 시작됐다. 1974~75년 서울 송파·서초, 경기도 안성·수원 등 4곳의 부동산을 구입할 당시 김 후보자는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사법연수원 교수를 겸하고 있었다. 인천 땅을 구입한 1978년에는 서울남부지원 부장판사를 맡고 있었다. 김 후보자는 심지어 대법관으로 임명된 1988년에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땅과 용산구의 아파트를 사들였고, 1990년에는 은평구의 단독주택을 또 구입했다.

이 가운데 5곳은 김 후보자 본인 및 부인 명의로 구입했고, 서울 서초구의 단독주택과 경기도 안성시의 땅은 두 아들 명의로 구입했다. 구입 당시 두 아들은 6~8살에 불과해 사실상 김 후보자가 실제 구입자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후보자는 대법관으로 임명된 19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땅을 사들였고, 서울의 땅값이 역대 최고에 이른 2002년 이 땅을 팔았다.

또 1975년 매입한 경기도 수원시 금곡동 임야 및 1974년 매입한 서울 송파구의 밭을 사들인 뒤 공공용지로 수용된 것으로 드러나, 개발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 후보자와 가족들이 보유했던 부동산 대부분은 서울에 있었지만, 경기도 수원이나 안성, 인천 등 거주지와 무관한 지역의 땅들도 3곳이나 됐다. 김 후보자의 장남 명의로 1974년 6월에 매입한 경기도 안성의 임야 7만3388㎡를 시작으로 ‘비서울’ 지역 부동산 3곳을 모두 1970년대 중반에 매입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1970년대 중반은 서울이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강남구가 신설되는 등 ‘서울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수도권으로 퍼저나가던 때였다. 당시 서울시 성동구에 속해 있었지만 ‘외곽’으로 통했던 마천동 땅(김 후보자의 부인 명의로 1974년 12월 매입)까지 포함하면 김 후보자 가족들이 보유한 ‘비서울’ 지역 부동산은 4곳으로 늘어난다.

익명을 요청한 법원 출신 변호사는 “김 후보자는 총리 인준 과정에서 재산 문제가 가장 걸림돌이 될 것이다. 대법관으로 임명될 때에도 법원행정처가 재산을 적게 보이도록 액수를 맞추느라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김 후보는 1993년 재산공개때 부동산 보유분에 대해 대부분 모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십억원대 서초동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27일에도 총리실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 후보자가 지난 1993년 재산공개 당시 두 아들 명의의 부동산을 공개하며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계셨던 후보자의 어머니께서 손자들을 위해 매입해 준 것’이라고 이미 밝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부동산투기 붐이 본격적으로 불던 70년대부터 8곳의 부동산을 직접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는 부동산투기 외에 거짓말 의혹에까지 휩싸이면서 국민적 분노와 실망이 급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박태견 기자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김용준, 부하직원과 함께 부동산투기 의혹"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1-26일자 기사 '"김용준, 부하직원과 함께 부동산투기 의혹"'을 퍼왔습니다.
(채널A) "판사가 부하와 투기할 땅 알아보고 아들 내세워"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판사 시절이던 1974년 경기도 안성의 토지를 사들인 과정에 부하직원이던 법원 서기와 함께 땅을 둘러본 뒤 각자의 미성년자 아들 명의로 토지를 나눠 사들였다는 의혹이 새로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26일 동아일보 종편
(채널A)에 따르면, 지난 1974년 김용준 후보자는 자신의 밑에서 일한 법원 직원 오 모씨와 함께 둘러본 뒤 각자 자신들의 아들 명의로 경기 안성의 땅을 사들였다.

당시 김 후보자의 아들은 7살, 오 씨의 아들은 12살에 불과했다.

김 후보자는 2만 2천여평이나 되는 땅을 매입했지만 경기도 안성에는 별다른 연고도 없었다.

오 모씨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김 후보자와의 관계에 대해 "법원에 있을 때 그 분이 판사했고, 나는 입회 서기했어요"라고 밝혔다. 

(채널A)는 "판사가 법원 직원과 함께 지방을 다니며 투자할 땅을 알아보고 각자의 미성년자 아들을 내세웠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9년 간 아들 명의로 땅을 갖고 있던 오 씨는 투기 열풍이 한창이던 83년, 이 땅을 팔아 차익을 챙겼다.

(채널A)는 "결국 사회 정의에 앞장서야 했던 판사가 부하 직원을 동원해 사익을 챙긴 사실이 밝혀졌다"며 "공동 매입자와의 관계가 드러난 이상, 당시 토지 매매 과정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도덕성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엄수아 기자

2012년 7월 14일 토요일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거세게 덮치는 의혹 '홍수'


이글은 미디어스 2012-07-13일자 기사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거세게 덮치는 의혹 '홍수''를 퍼왔습니다.

주민등록법 위반에 따른 ‘부동산 투기’의혹에서부터 ‘논문표절’, 아들 병역비리 등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둘러싼 개인비리 의혹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논문표절, 인사청문회 이번엔 통과할까?
먼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17편 학술논문 가운데 41%에 해당하는 7편의 논문에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현병철 위원장이 1989년도 2월에 발표한 ‘부당이득에 있어서의 유형론’은 최금숙 교수가 1986년 10월에 제출한 이화여대 박사논문 ‘부당이득에 관한 연구’를 그대로 가져온 사례다. 논문의 2장 부분을 문단 구분만 바꿔 자신의 논문에 그대로 게재했다. 두 논문을 비교하면 ‘Wilburg의 見解(견해)’의 총설 부분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 현병철 위원장이 1989년도 2월에 발표한 '부당이득에 있어서의 유형론' 논문으로 최금숙 교수가 1986년 10월에 제출한 이화여대 박사논문 '부당이득에 관한 연구'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샀다ⓒ진선미 의원실

현병철 위원장이 1998년 12월 저널에 게재한 ‘무효’ 제목의 논문은 2002년 제목과 문단 구분만 바꿔 2002년 ‘무효에 있어서 대항력의 문제’라는 논문으로 재탄생했다.
2002년 12월 한양대 학술 저널 에 게재된 ‘무효와 취소의 이중효와 상대적 무효’는 ‘무효와 취소의 이중효’(1986년)와 ‘무효’(1998년) 두 논문을 조합해 구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1991년 8월 에 발표한 ‘급부부당이득반환청구권’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박사학위 논문의 2장을 그대로 베꼈고, 1995년 발표한 ‘독일과 한국에 있어서의 부당이득법의 비교법적 연구’는 박사학위 논문 ‘부당이득법의 연구’ 4장을 대부분 베꼈다.
이 밖에도 현병철 위원장이 2000년에 발표한 ‘부당이득청구권의 범위’ 논문의 4장 1절은 94년도 ‘민법 제201조와 제741조의 적용상 문제’의 2장 1절 세 단락을 그대로 가져왔다. 1994년에 발표한 ‘불법원인급여에 관한 연구’ 서론의 한 단락은 1987년 논문인 ‘불법원인급여의 적용범위’ 서론을 그대로 옮겼다.
진선미 의원은 “현병철 후보자의 논문표절은 연구 업적에 반영돼 교수임용과 승진 수단으로 사용됐고 그 토대로 국가인권위원장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덕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부동산 투기, 현병철은 1평짜리 땅에 왜 ‘전입신고’를 했을까?
1983년 현병철 위원장이 왜 동대문구 장안동 203-21의 1평짜리 토지에 전입신고를 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땅투기 의혹이다.
‘현병철 위원장 초본 상 주소지 변경 내역’을 확인해보면 83년 6월 박 아무개 씨와 현 아무개 씨가 소유한 3㎡(1평) 토지에 전입했다. 당연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평수다. 또, 해당 토지는 도랑 근처로 확인됐다. 현 위원장은 전입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옆에 있는 롯데연립 환지를 받았고 그곳에서 4년간 거주했다. 당시 1평 땅은 부근 시영아파트와 함께 재개발 예정 지구였다. 알박기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관영 민주통합당 의원은 “토지대장을 떼어 지번을 확인해봤더니 한 평이기 때문에 그림에 나오지도 않는다”며 “살지도 않으면서 알박기를 위해 주소 이전했다가 18일 만에 빼면서 롯데연립주택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주권 매매를 했을 개연성이 크다”며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현 위원장은 당시 재개발 지역으로 1년 동안 다섯 차례나 이사하기도 했다”며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전면적으로 제기했다.

▲ 6월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제 12차 아셈 인권세미나에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병역기피, 아들 우석 씨…병역면제받기 위해 몸무게 늘렸나
오늘은 병역을 면제받은 현병철 위원장의 아들에 대한 ‘병역기피’ 논란이 불거졌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에서 공익근무하고 있는 현 위원장의 아들 OO씨가 공익근무로 빠진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다. 고3 100kg이던 OO 씨가 1년 후인 병역검사에서는 113kg으로 4급 판정을 받았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의원은 “의도적인 몸무게 늘리기”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4급 보충역 기준인 113kg에 고의적으로 맞춰다는 얘기다. 
현병철 위원장의 아들 OO씨 ‘병역기피’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 후보자의 국가인권위원장 취임 기간을 포함해 총 4차례의 병역을 연기한 OO씨는 지난해 4월에는 정보처리기능사 시험 응시를 이유로 연기했다. 로스쿨 재학 중에 정보처리기능사 시험을 응시했다는 자체가 의혹이다.
‘병역기피’ 논란의 중심에 섰던 MC몽에 대해 대법원은 공무원 시험 등을 볼 의사가 없었음에도 국가고시에 응시했던 것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현병철 위원장의 아들 역시 정보처리기능사 시험을 거짓으로 봤다면 ‘병역기피’에 해당될 수밖에 없는 판례다. 
MB 측근 김삼환 목사 명성교회에 로비성 기부 의혹도
현병철 위원장이 MB 측근으로 꼽히는 김삼환 담임목사가 재직 중인 명성교회에 2008년부터 연 1000만원이 넘는 헌금을 기부한 사실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의원이 입수한 ‘현병철 위원장의 명성교회 기부금 명세서’에 따르면, 현병철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 1년 전인 2008년부터 명성교회에 매년 1000~1500만원을 헌금한 사실이 드러났다. 2007년 교회를 포함해 각종 단체에 기부한 금액이 112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해 ‘로비성’ 기부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김삼환 목사는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곧잘 청와대를 방문해 예배를 집전하는 등 종교계 대표적 MB인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위장전입, 집주인의 위장전입 묵인했다?…‘알박기’ 의혹만 부인
현병철 위원장이 전셋집 주인과 ‘서류상 동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집주인의 위장전입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대두됐다.
우원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현병철 위원장의 전세계약서와 부동산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다. 집주인 ㅂ씨는 최근 5년간 현 위원장의 집에 위장 전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ㅂ씨는 와의 인터뷰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주소를 그쪽(현 위원장 집)으로 옮겨놨다”고 위장전입 사실을 인정했다.
현병철 위원장은 12일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현병철 위원장은 보도자료를 내어 ‘1983년 전입신고된 1평 땅’에 대해 “이미 82년도에 동대문구 장안동 203-21, 203-22, 203-23, 203-24의 4필지 위에 준공된 건물”이라며 “4필지 중 대표지번인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203-21로 전입신고를 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반면, 이날 같이 의혹이 제기된 논문표절 건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측은 와의 전화연결에서 “명성교회 기부금 관련해서는 답변할 필요는 못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논문표절 등 의혹에 대해서는 청문회에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주인집의 위장전입 묵인에 대해서는 “현병철 위원장은 그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당의 한 의원실의 관계자는 "현병철 위원장에 대한 또 다른 의혹 제기가 준비되어 있으며 다음 주초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혀 청문회를 앞둔 현병철 위원장에 대한 의혹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권순택 기자  |  nanan@mediaus.co.kr

2012년 1월 11일 수요일

‘딸 편법입학’ 박희태, 또 ‘부정부패’로 사퇴하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11일자 기사 '‘딸 편법입학’ 박희태, 또 ‘부정부패’로 사퇴하나'를 퍼왔습니다.
참 부끄러운 국회의장, 그의 과거를 아시나요…YS 시절 불명예 퇴진했지만 화려한 부활

“김영삼 대통령은 8일 오후 딸의 대학 편법입학으로 물의를 일으킨 박희태 법무부 장관과 부동산 투기로 말썽을 빚은 박양실 보사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 장관을 임명한다.”-동아일보
“딸의 대학 특례입학으로 물의를 빚은 박희태 법무부 장관이 7일 사퇴의사를 밝혔다.”-한겨레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1993년 3월 8일자 동아일보와 한겨레 1면에는 이런 기사 내용이 실렸다. 한겨레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로 뽑혔다. 한겨레는 3면에서 당시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2일 그의 딸이 2년 전 외국인 자격으로 이화여대에 편법입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적심사 관리 주무부서 장관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난이 잇따랐다. 미국 유학 시절 낳은 딸이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법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귀국 뒤에도 계속 이를 유지하고 있다가 지난 91년 외국인자녀 특례입학 혜택을 받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 자격으로 이화여대에 '정원외 입학'을 했다는 것이다. 박 장관 스스로 즉시 사실을 시인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사죄했으니 사회 기강 확립의 주무부서인 법무부의 장관이 '편법'이란꼬리를 달고 있는 한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지적이 거세지자 청와대 쪽은 경질을 심각하게 검토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겨레 1993년 3월 8일자 1면.

김영삼 정부 임기 초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희태 법무부 장관의 딸 편법입학 사건이다. 1993년 박희태 당시 법무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부정부패’ 사건으로 물러나는 불명예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박희태 당시 법무부 장관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지금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다. 이미 20년 전에 공직과 담을 쌓았어야 할 그가 어떻게 국회의장 자리까지 올랐을까. 박희태 국회의장, 그의 과거로 되돌아 가보자.
박희태 국회의장은 딸의 ‘편법입학’ 사건으로 사퇴한 이듬해인 1994년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인물이다. 법무부, 대검찰청, 서울지검, 부산지검 등 1966년 검사 임관 이후 20년 가량 검찰에서 몸담았던 검찰맨이다.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하동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원내에 진출한 이후 1992년, 1996년, 2000년, 2004년까지 연이어 5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4년 탄핵 역풍 당시 박희태 의원은 현재 경남도지사인 김두관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한 번 의원배지의 주인공이 됐다. 

2003년 한나라당 대표, 2007년 국회 부의장을 지내는 등 그는 당과 국회의 주요 요직을 두루 경험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경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현 정권의 실세 중 실세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 그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다시 한 번 수모를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2008년 7월 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다. 최근 ‘돈 봉투’ 사건의 논란을 빚은 바로 그 전당대회다.
조선일보는 2008년 7월 4일자 5면에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당선 소식을 전하면서 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 제목은 박희태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대표로 부활했지만, 국회의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텃밭인 경남 남해·하동 지역구를 떠나 2009년 10·28 재보선에서 경남 양산에 출마한다. 박희태 대 송인배 구도는 누가 봐도 ‘정치 거물’인 박희태 후보의 완승이 예상되는 승부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치 신인’ 민주당 송인배 후보가 34.1%를 득표하며 38.1%를 얻은 박희태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하는 진땀 승부였다. 당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지금의 박희태 국회의장 시대는 탄생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박희태 국회의장.

한나라당 대표와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등 ‘이명박 시대’ 박희태 국회의장은 권력의 정점을 경험했다. 그러나 20년 전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부정부패’ 의혹이 다시 그에게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중앙일보는 1월 11일자 1면에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돈 봉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아무개씨의 실명과 얼굴 사진 등을 공개했다. ‘돈 봉투’를 둘러싼 의혹은 박희태 국회의장의 턱밑까지 번진 셈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쪽에서는 박희태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20년 전 법무부 장관 시절 딸의 ‘편법입학’ 때도 그는 장관직을 사퇴했지만 결국 언제 그랬냐는 듯 화려화게 부활했다.
이번 사건 역시 한나라당 보좌관의 단독 범행이라는 황당한 결론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런다고 국민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는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다시 한 번 부정부패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국회의장 임기를 이대로 마무리하게 될까. 아니면 ‘보좌관 책임론’ 뒤에 숨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될까. 중요한 것은 단순히 국회의장에 사퇴하고 19대 총선에 나서지 않는다고 그를 둘러싼 의혹을 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의장이라 불리는 정치인 박희태, 그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2011년 11월 24일 목요일

[사설]내곡동 의혹, 이 대통령은 계속 ‘모르쇠’로 버틸 건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3일자 사설 '[사설]내곡동 의혹, 이 대통령은 계속 ‘모르쇠’로 버틸 건가'를 퍼왔습니다.
이른바 ‘내곡동 의혹’은 전형적인 부동산투기의 테크닉이 모조리 등장한 데다 청와대라는 국가권력까지 버무려진 한 편의 ‘엽기 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그린벨트 해제, 부동산 명의 신탁, 편법증여, 편법대출 등을 둘러싼 의혹이 전자라면 청와대의 국가예산 전용 의혹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대통령 퇴임 이후 사저 부지를 선정하는 문제에 이런 낯뜨거운 낱말을 입에 담아야 하는 사실 자체가 참담하기만 하다. 

진상을 밝히라는 여론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입도 꿈쩍하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 의혹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나왔다. 내곡동 논란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이 “이 대통령이 경호처에서 사저 후보지로 검토한 12곳 가운데 내곡동을 추천받은 뒤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승인했다”고 밝힌 것이다. “매입자금으로 이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 돈을 썼고 아들 시형씨 명의로 구입하자는 경호처 의견도 받아들였다”고도 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이 대통령이야말로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의혹의 몸통이자 꼭대기인 셈이다. 

김 전 처장에 이어 검찰 관계자는 엊그제 내곡동 의혹 사건과 관련해 “시형씨를 소환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권재진 법무장관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치적 고려 없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솔직히 대통령의 최측근 비서(민정수석비서관) 출신 법무장관의 언급인 만큼 그다지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다만 검찰이 예의 ‘면죄부 발급용’ 수사로 일관한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점은 재삼 강조하고자 한다. 
검찰 수사를 떠나 이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책임있는 해명을 해야 한다. 부지 매입과정을 직접 소상하게 밝힌 뒤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고개숙여 국민의 용서를 빌어야 한다. 지난달 1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 안타깝다”고 말했다는데 도대체 본의는 어떤 것이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이 대통령이 내곡동 의혹과 관련해서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