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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박 “김지태씨가 먼저 헌납” 실제론 “석달 가두고 회사 망하게 한다 협박”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22일자 기사 '박 “김지태씨가 먼저 헌납” 실제론 “석달 가두고 회사 망하게 한다 협박”'를 퍼왔습니다.

박후보 회견 사실왜곡 점철
 박 “김씨 부정부패 지탄받던 사람”
당시 중정 부산지부 “김씨 국가에 큰 도움”

박 “정수장학회는 새 재단” 
“부일장학회 재산이 재단 기본재산의 핵심”

박 “운영 문제없었다” 
“정수, 45년 3만8천명…부일, 4년 1만명 지원”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지난 21일 기자회견 내용은 ‘부정축재자 재산을 헌납받아 장학회를 만들었다. 다른 독지가들 도움도 받아 장학사업을 활발히 하고 산하 언론사들도 성장했으니 떳떳하다’는 입장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사실 왜곡과 아전인수로 점철된 주장임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헌납인가 강탈인가? 
 박 후보는 “김지태씨가 처벌을 면하려고 먼저 헌납의 뜻을 밝히고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주식 등을 헌납했다”고 주장했다. 또 “법원에서도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김씨 유족이 낸 소송에)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말했다가, 법원의 판단과 다른 것으로 확인되자 이를 번복했다.이미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는 2005년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구속 상태였던 김씨가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중앙정보부와 국가재건최고회의 쪽의 압력에 의해 기부승낙서를 작성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바 있다. 1962년 군사정부는 일본에 있던 김씨를 귀국시키려고 아내 송혜영씨를 구속했고, 김씨 측근에게 “살고 싶으면 부정축재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 좋다”고 위협도 했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사학과)는 “사람을 석 달이나 가둬두고 회사 망하게 한다고 협박했다면 ‘헌납이냐 강탈이냐’고 박 후보에게 역으로 묻고 싶다”고 말했다.

■ 김지태씨는 부정축재자? 
 박 후보는 “김지태씨는 부정부패로 지탄받던 사람이며 5·16 때도 부패 혐의로 7년형을 구형받기도 했다”며 김씨와 유족 쪽을 공격했다. 박 후보 캠프는 김씨가 일제강점기에 동양척식회사에서 일했다면서 ‘과거사 역공’까지 하고 나섰다.그러나 과거사위 보고서를 보면, 중앙정보부(중정) 부산지부는 김씨가 재구속당하기 전인 1962년 2월 보고서에서 그가 “부일장학회 장려로 국가에 큰 도움이 되고 학생 각자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김씨의 차남 김영우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 자금 500만환을 요구했지만, 아버지가 이를 거절하자 부정부패사범으로 몰고갔다”고 주장했다. 과거사위 보고서에도 이런 정황들이 나온다.군사정권은 1961년 5·16 직후에도 부정축재자라는 이유로 김씨를 구속하는 등 기업인 120명을 조사해, 결국 김씨는 5억4570만환을 납부했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따라서 1962년에 유독 김씨만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다시 구속한 것은 “특정 목적을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밝혔다. 범법사실이 있다면 그에 맞게 처벌할 일이지, 김씨만을 연속해서 구속하고 재산을 빼앗은 것은 짜맞추기 수사였다는 말이다.당시 고원증 전 법무장관은 김씨에게 적용된 외환관리법과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에 대해 “수사기록을 봤더니 중죄도 아니”라며, 거액을 “혁명정부”에 헌납까지 했으니 공소취소를 해야 한다는 건의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했었다고 국정원 과거사위에 밝혔다.

■ 부일장학회는 정수장학회 전신 아니다?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는) 국내 독지가와 해외 동포의 성금과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든 재단이었다”고 한 것도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박 후보 캠프의 이정현 공보단장은 나아가 “1962년부터 79년까지 11억3600여만원의 장학금이 조성됐고, 이 가운데 김지태씨가 헌납한 규모는 전체의 5.8%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철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22일 김씨가 헌납한 재산의 규모는 1962년 7월 출범 당시 기준으로도 정수장학회 자산의 5.8%에 불과했다며 또다른 주장을 했다.국정원 과거사위는 “5·16장학회는 설립 전후에 하와이 교포들로부터 1000만여환을 모금하고 당시 장학회 이사였던 이병철 전 삼성 회장으로부터 1억환, 김연수 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부터 3000만환을 기부받은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5·16장학회의 기본재산은 언론 3사의 주식과 토지 10만147평 등 김씨로부터 강제 헌납받은 재산으로 구성돼 있다”고 못박았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김씨가 석방된 뒤 군사정부가 이미 5·16장학회로 넘어간 사옥 신축 비용까지 그에게 떠넘긴 사실도 밝혀냈다. 또 당시 국민은행 등 3개 시중은행은 김씨가 빼앗긴 언론사 지분 평가액만 3억4875만환으로 평가했다. 이 단장과 이 대변인은 뚜렷한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이에 배치되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들끼리도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이다.한 교수는 “현재 정수장학회의 기본 재산(문화방송·부산일보 주식, 경향신문 터)만 봐도 부일장학회가 소유했던 자산이 핵심”이라며 “정수장학회 30년 책자에도 부일장학회와 5·16장학회 등의 법통을 이었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김영우씨는 “우리는 정수장학회의 기본 자산을 반환하라고 말하고 있다”며, 박 후보 캠프가 장기간에 걸쳐 조성·사용된 전체 장학금 규모를 강탈 자산 규모와 견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 정수장학회 운영 문제없었다? 
박 후보 쪽은 정수장학회 운영에 문제는 없었고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다고 밝히고 있다.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를 보면, 김씨가 세운 부일장학회는 1961년까지 4년간 1만2364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반면 정수장학회는 장학사업을 시작한 1966년 11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대학·대학원생 3만8000여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한 교수는 “김씨가 4년 동안 장학금을 지급한 숫자대로만 계속 지급했어도 지금까지 15만명쯤은 혜택을 입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던 10여년간 모두 11억3720만원을 섭외비 및 보수로 지급받은 점도 논란거리다. 서울시교육청은 2005년 정수장학회 감사 뒤 “이사장 연봉이 목적 사업에 비해 과다하다고 볼 수 있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박 후보는 이에 대한 탈세 논란이 일자 소득세 1억2000만원을 납부했다.

유선희 음성원 기자 duck@hani.co.kr

2012년 2월 8일 수요일

검·경 수사권 조정, 국민 눈으로 보면…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07일자 기사 '검·경 수사권 조정, 국민 눈으로 보면…'을 퍼왔습니다.
[금태섭 칼럼]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해법(2)

지난번 글(☞바로가기)에서 수사권 조정 문제의 초점이 빗나가 있다는 얘기를 했다. 즉 수사권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검찰과 경찰 중 누가 수사권을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한 논의는 없고 경찰이 검찰의 수사'지휘'를 어느 범위까지 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면 수사권 자체를 누가,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수사권 문제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먼저 필자의 의견을 결론적으로 밝힌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는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 경찰에서 전적으로 담당한다.둘째,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폐기하고(즉 중수부를 비롯한 특별수사 부서는 모두 폐지하고 형사부의 인지수사 기능도 없애고), 검찰은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에 대한 2차적, 보충적 수사만을 한다.셋째, 경찰이 범죄와 관련해서 하는 권한행사는, 그것이 내사이든 수사이든 전부 검찰의 지휘를 받는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 근거는 차차 자세히 밝히겠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알기 쉽게 그림을 통해서 현재 수사권이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지,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어떤 구상이 있었는지, 그리고 수사권 자체를 조정하면 어떻게 되는지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글은 논문이 아니고 수사권 조정 문제에 관한 모든 쟁점을 열거하거나 그에 대한 논박을 빠짐없이 열거하지도 않는다. 검찰과 경찰에서 주장된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고 대체적인 방향을 제시해보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보면 수사권 조정 문제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1. 현재의 상황


처리하는 사건의 숫자, 수사 인력 등 형식적인 면만 봤을 때 경찰과 검찰은 (그림1)과 같이 수사권을 나누어서 행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상적인 범죄 사건은 경찰이 수사한다. 음주운전, 단순 폭행 등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건들은 물론 살인, 강도, 성폭력 등 강력사건도 거의 모두 경찰의 손을 거친다. 수사 인력의 수로 보더라도 경찰과 검찰의 비중은 10:1 정도로 봐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검찰은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중요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경우가 많다. 고위 공직자의 뇌물 사건, 재벌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대형 경제사건 등은 대부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 등 검찰에서 인지수사를 한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체감하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행사 비중의 차이는 숫자로 보는 것만큼 크지 않다. 더구나 검찰은 경찰이 수사하는 사건에 대해서 수사지휘를 한다. 경찰에서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건은 한건도 없다. 모두 검찰로 송치해야 하고 지휘를 받아야 한다. 결국 훨씬 적은 인력과 사건 수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그림2)처럼 실질적으로 거의 경찰과 비슷한 정도의 수사권을 행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형사절차에서 검찰이 행사하는 권한은 수사권만이 아니다. 검찰은 기소권한을 독점하며, 재판에 관여하고, 유죄판결이 확정되면 형을 집행한다. 이러한 모든 권한을 종합해보면 검찰은 형사 사법에 있어서 실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경찰과 비교할 때 절대적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림3)이 그러한 현재의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2.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기존의 논의

수사권 조정 논의가 시작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위에서 본 것과 같이 강력한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자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찌된 연유에서인지 검찰의 직접적 수사권이 아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축소하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물론 중수부 폐지론 등도 주장되기는 했으나, 이것은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 논의된 것이 아니라 별도의 검찰 개혁 과제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수부로 대표되는 검찰의 수사권을 축소하자는 주장은 부정부패 척결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반박에 부딪히기 쉽다는 점, 그리고 오랜 기간 검찰에 눌려온 경찰이 '독자적인' 수사권을 행사하고 싶다는 염원을 실현하고 싶어 한 것 등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수사권 조정은 중대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즉 수사지휘권을 폐지 혹은 축소하는 만큼 검찰의 권한은 줄겠지만, 바로 그만큼 경찰의 권한은 강력해지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기관이 행사하는 권력의 총량에는 변화가 없고 행사의 주체만 달라지는 것이다.

만일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전면적으로 폐지한다면 (그림4)와 같이 된다(물론 현재 경찰도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완전히 폐지하자는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본 것이다).



(그림4)를 현재의 상황을 나타낸 (그림3)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검찰의 권한은 일부 줄어들지만, 그동안 검찰의 통제를(수사지휘를) 받던 경찰의 수사권은 훨씬 강력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지점이 바로 검찰이 수사권 조정 논의에 반대하는 논거가 된다. 즉 우리나라 경찰은 대부분의 외국의 경우와 달리 지역화, 분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단일조직으로 되어 있다. 15만 명의 경찰이 하나의 지휘체계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이 통제받지 않고 '독자적인' 수사권을 행사할 때 만일 권한의 남용이 이루어지게 되면 정말 커다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 흔히 나오는 말 중에 '경찰 파쇼보다는 검찰 파쇼가 그나마 낫다.'는 말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물리적인 힘으로 볼 때 검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경찰조직이 독자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것보다는 검찰이 수사에 관한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는 것이다(이런 말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에 나온 말이기도 하다). 검찰이 수사지휘권의 유지를 주장하면서 '인권보호'를 그 이유로 내세우는 것도 강력한 경찰 조직을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의 수사권 조정 논의는 커다란 진전이 없이 지지부진을 거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수사권 자체의 조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검찰의 지나치게 강한 권한을 축소하는 동시에 경찰의 권한 남용도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사권 자체의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림5)가 바로 그러한 조정이 이루어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림5)에서 검찰은 직접 수사권을 갖지 않는다. 즉 권한이 상당히 축소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경찰이 권한을 남용할 우려도 크지 않다.

앞에서 본 것처럼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경찰은 '견제'의 논리를 내세운다. 검찰과 경찰이 각각 수사를 함으로써 서로 견제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물론 순수한 의도에서 그런 주장을 한다고 믿지만, 검찰의 막강한 권한이 남용될 때 일어나는 부작용을 여러 차례 목격한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경찰마저 검찰처럼 '독자적인' 수사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소식은 별로 반가운 것이 아니다. 양쪽 기관 모두 '독자적인' 수사권을 행사하지 못 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다.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검찰의 논리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모순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경찰을 통제하지 않으면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도 검찰 스스로는 아무런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과거 검찰은 직접 음주단속까지 벌인 일도 있다. 법적으로는 지금도 검찰이 직접 음주단속을 할 수 있다. 경찰이 음주단속을 할 때는 지휘를 받아야 하는데, 왜 검찰이 할 때는 지휘 없이 독자적으로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검찰의 답변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수사권은 국가 권력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권한 중 하나이다.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크고 통제 필요성이 가장 절실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수사에 관한 권한을 직접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으로 나누어서 각각 경찰과 검찰에 배분하면 자연히 양 기관 사이에 견제가 이루어진다. 경찰은 명실상부한 수사기관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지만 검찰의 지휘를 받는 것이고, 검찰은 경찰이 하는 모든 수사(내사 포함) 활동을 지휘하지만 직접 수사권을 발동하지 못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이 수사에 관한 권력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회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수사권의 조정이 이루어지면 우리 경찰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고 권력기관이 수사기관을 장악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설명하고, 검찰이 행사하게 될 보충적 수사권의 범위 등 그 밖에 이와 관련된 문제들을 보려고 한다.

수사권 조정 논의가 가장 뜨거울 때 경찰이 내세운 구호는, "비리 검사에 대한 수사권만 넘겨주면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나머지 쟁점은 검찰의 입장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검찰은 검사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국민들의 심정적 지지를 얻지는 못 했다. 위에서 본 수사권 자체의 조정 방식을 채택하면 이 문제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다음 회에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한다.



/금태섭 변호사

2012년 1월 11일 수요일

‘딸 편법입학’ 박희태, 또 ‘부정부패’로 사퇴하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11일자 기사 '‘딸 편법입학’ 박희태, 또 ‘부정부패’로 사퇴하나'를 퍼왔습니다.
참 부끄러운 국회의장, 그의 과거를 아시나요…YS 시절 불명예 퇴진했지만 화려한 부활

“김영삼 대통령은 8일 오후 딸의 대학 편법입학으로 물의를 일으킨 박희태 법무부 장관과 부동산 투기로 말썽을 빚은 박양실 보사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 장관을 임명한다.”-동아일보
“딸의 대학 특례입학으로 물의를 빚은 박희태 법무부 장관이 7일 사퇴의사를 밝혔다.”-한겨레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1993년 3월 8일자 동아일보와 한겨레 1면에는 이런 기사 내용이 실렸다. 한겨레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로 뽑혔다. 한겨레는 3면에서 당시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2일 그의 딸이 2년 전 외국인 자격으로 이화여대에 편법입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적심사 관리 주무부서 장관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난이 잇따랐다. 미국 유학 시절 낳은 딸이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법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귀국 뒤에도 계속 이를 유지하고 있다가 지난 91년 외국인자녀 특례입학 혜택을 받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 자격으로 이화여대에 '정원외 입학'을 했다는 것이다. 박 장관 스스로 즉시 사실을 시인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사죄했으니 사회 기강 확립의 주무부서인 법무부의 장관이 '편법'이란꼬리를 달고 있는 한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지적이 거세지자 청와대 쪽은 경질을 심각하게 검토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겨레 1993년 3월 8일자 1면.

김영삼 정부 임기 초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희태 법무부 장관의 딸 편법입학 사건이다. 1993년 박희태 당시 법무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부정부패’ 사건으로 물러나는 불명예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박희태 당시 법무부 장관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지금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다. 이미 20년 전에 공직과 담을 쌓았어야 할 그가 어떻게 국회의장 자리까지 올랐을까. 박희태 국회의장, 그의 과거로 되돌아 가보자.
박희태 국회의장은 딸의 ‘편법입학’ 사건으로 사퇴한 이듬해인 1994년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인물이다. 법무부, 대검찰청, 서울지검, 부산지검 등 1966년 검사 임관 이후 20년 가량 검찰에서 몸담았던 검찰맨이다.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하동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원내에 진출한 이후 1992년, 1996년, 2000년, 2004년까지 연이어 5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4년 탄핵 역풍 당시 박희태 의원은 현재 경남도지사인 김두관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한 번 의원배지의 주인공이 됐다. 

2003년 한나라당 대표, 2007년 국회 부의장을 지내는 등 그는 당과 국회의 주요 요직을 두루 경험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경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현 정권의 실세 중 실세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 그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다시 한 번 수모를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2008년 7월 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다. 최근 ‘돈 봉투’ 사건의 논란을 빚은 바로 그 전당대회다.
조선일보는 2008년 7월 4일자 5면에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당선 소식을 전하면서 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 제목은 박희태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대표로 부활했지만, 국회의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텃밭인 경남 남해·하동 지역구를 떠나 2009년 10·28 재보선에서 경남 양산에 출마한다. 박희태 대 송인배 구도는 누가 봐도 ‘정치 거물’인 박희태 후보의 완승이 예상되는 승부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치 신인’ 민주당 송인배 후보가 34.1%를 득표하며 38.1%를 얻은 박희태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하는 진땀 승부였다. 당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지금의 박희태 국회의장 시대는 탄생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박희태 국회의장.

한나라당 대표와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등 ‘이명박 시대’ 박희태 국회의장은 권력의 정점을 경험했다. 그러나 20년 전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부정부패’ 의혹이 다시 그에게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중앙일보는 1월 11일자 1면에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돈 봉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아무개씨의 실명과 얼굴 사진 등을 공개했다. ‘돈 봉투’를 둘러싼 의혹은 박희태 국회의장의 턱밑까지 번진 셈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쪽에서는 박희태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20년 전 법무부 장관 시절 딸의 ‘편법입학’ 때도 그는 장관직을 사퇴했지만 결국 언제 그랬냐는 듯 화려화게 부활했다.
이번 사건 역시 한나라당 보좌관의 단독 범행이라는 황당한 결론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런다고 국민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는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다시 한 번 부정부패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국회의장 임기를 이대로 마무리하게 될까. 아니면 ‘보좌관 책임론’ 뒤에 숨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될까. 중요한 것은 단순히 국회의장에 사퇴하고 19대 총선에 나서지 않는다고 그를 둘러싼 의혹을 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의장이라 불리는 정치인 박희태, 그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몰락한 ‘폴리널리스트’, 한국언론 부끄러운 초상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28일자 기사 '몰락한 ‘폴리널리스트’, 한국언론 부끄러운 초상'을 퍼왔습니다.
[정치권으로 간 언론인들] 감시자에서 기생자로, 언론장악 첨병으로…

2011년은 언론인들에게 특히 부끄러운 일이 많았다. 권력을 쫓아 정치권으로 뛰어든 전직 언론인들, 이른바 폴리널리스트들의 부정부패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권력의 감시자였던 이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해 급속도로 부패하고 변질되는 모습은 이 땅의 언론인들에게 반면교사가 됐다. 쇠락해 가는 권력에 기생해 사리사욕을 채우려했다는 지적을 받았던 폴리널리스트들은 이명박 정부 시대를 사는 언론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지난 3월 서민의 피눈물을 쏟게 만들었던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3명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연루됐다.
김두우·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로비스트 박태규씨의 금품 청탁을 받고 부산저축은행그룹 퇴출을 무마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각각 중앙일보와 YTN 출신이다. 박씨는 김 전 수석이 중앙일보 정치부장 시절 때부터 알고 지내며 뒤를 봐줬다는 후문이 들린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김은혜 KT상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동관 전 청와대 언론특보,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 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 가나다 순.

동아일보 출신의 이동관 전 청와대 언론특보도 ‘박태규 리스트’도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동관 전 특보는 이를 폭로한 민주통합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다”는 문자를 보내 또 다른 입방아의 주인공이 됐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다르지 않았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한국일보·조선일보 기자 시절부터 공직에 오른 이후까지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임기말 부패의혹의 주인공들은 공교롭게도 언론인 출신이 적지 않다. 특히 김 전 수석과 이 전 특보는 MB와 임기를 함께 한다는 ‘순장 4인방’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이 중 이 전 특보는 얼마 전 TV조선에 출연해 “스스로 MB 아바타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정권을 향한 끝없는 충성심을 숨기지 않았다.
홍상표 전 수석 역시 언론장악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YTN ‘돌발영상’이 폐지되고 노종면 등 기자 6명이 해직되는 과정에서 YTN에 몸담았던 홍상표 전 수석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방송 장악을 하지 않기 위해 미디어법을 고쳐야 한다”는 자가당착적 말로 미디어법 처리에 앞장섰던 신재민 전 차관 역시 MB식 언론장악의 일등공신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대통령의 입’으로 활동했던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도 입방아에 올랐다. MBC 기자출신인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를 떠나 30대의 젊은 나이로 KT 상무로 옮겨가 ‘낙하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김 상무는 최근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는 과정에서 뉴세븐원더스 재단과 부적절한 협약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선정 기준이나 공신력도 문제였지만 공무원을 강제 동원하고 KT 전화비 200억 원을 체납해 선정 취소 논란이 제기되는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편파방송 논란과 함께 ‘종편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KBS 수신료인상과 KBS 도청 의혹 사건에는 MBC 아나운서 출신의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의혹의 시선을 받았다.
한선교 의원의 도청문건 논란으로 촉발한 이 사건은 KBS 김인규 사장과 그에게 충성하는 기자들, 그리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신료 인상에 힘을 쏟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찰은 한선교 의원과 도청 의혹을 받던 KBS 장아무개 기자를 무혐의 처리했지만 의혹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MB의 멘토로 불리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노골적으로 발 벗고 나서서 종합편성채널 4사에 특혜를 쏟아 부었다. 최시중 위원장은 동아일보 논설위원 출신이다. 개국 당시 제대로 된 편성표조차 내놓지 못하던 종편사들이 12월 1일 일제히 개국할 수 있었던 건 최시중 위원장의 역할이 컸다는 지적이다. 최시중 위원장은 의무 재전송을 강제하며 황금 채널 배정을 압박하는 등 전방위 특혜를 밀어붙였다는 지적을 받았다.대기업 광고 책임자들을 불러다 놓고 광고 압박을 한 정황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한나라당 해체 위기를 불러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테러 사건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홍보기획본부장으로 기용하면서 ‘스핀닥터’의 역할을 부여받았던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가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신태섭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불공정하고 탈법적인 정부이다보니 언론인 출신들만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더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면서 “언론계에서 자율적인 규제와 문화를 확립해 이런 일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