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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0일 일요일

김용준 이어 정홍원도 아들 '병역 면제'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08일자 기사 '김용준 이어 정홍원도 아들 '병역 면제''를 퍼왔습니다.
허리 디스크 이유로 5급 판정…총리실 "문제 없다"

차기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정홍원(59)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의 아들이 김용준 전 총리 지명자의 두 아들과 마찬가지로 병역을 면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면제 사유는 허리 디스크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로 재직 중인 정 후보자의 외아들 정우준(35) 씨는 지난 1997년 첫 신체검사 당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대학원 재학 중인 2001년 재검을 받아 디스크(수핵탈출증) 판정과 함께 5급으로 병역 면제 처분을 받았다. 정 씨는 당시 척추 전문병원에서 디스크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은 뒤 수년간 치료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앞서 김용준 전 지명자가 두 아들의 석연치 않은 병역 면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만큼, 향후 있을 인사청문회에서 정 씨의 병역 문제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2월엔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이 허리 디스크를 이유로 병역 면제를 받은 것을 두고 '병역 기피 의혹'이 번지면서 박 시장의 아들이 기자들 앞에 '공개 신검'을 받아 면제 사유를 입증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정홍원 후보자는 "문제 없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실제 허리가 많이 아파 병원 세 곳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고, 병무청에서 직접 신검을 받았다. 증거 자료도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정 지명자 본인은 사병으로 군에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국무총리실도 이례적으로 입장을 내고 병역 면제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리실 청문회 준비팀은 이날 정 씨의 디스크 수술 기록 등이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 후보자 아들이 현직 검사인데, 병역에 문제가 있었다면 검사가 될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총리실이 총리 인선 당일 지명자 관련 의혹에 대해 해명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총리 지명자들의 아들 병역 문제가 연이어 도마에 오르면서 선제적 대응을 통해 '제2의 낙마 사태'를 막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재산은 19억 원…현금 보유만 9억 원

정 지명자의 재산에 대한 정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 지명자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11년 8월 당시 공직자 재산 공개 현황에 따르면, 정 지명자의 재산은 총 19억7300만 원으로 이 가운데 본인 및 배우자 명의의 예금(9억3900만 원)이 가장 많다.

부동산은 본인 명의로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40평가량의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파트 가격은 6억2800만 원으로 신고했다. 아파트 이외엔 경남 김해시 삼정동에 본인 소유의 대지 466㎡(141평)을 갖고 있어 취득 경위 및 목적이 관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명수 기자 

‘누나는 성폭행·아빠는 정신병원’ 살아남은 아이는 묻는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09일자 기사 '‘누나는 성폭행·아빠는 정신병원’ 살아남은 아이는 묻는다'를 퍼왔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의 생존자 한종선씨는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기 위해” 책 ‘살아남은 아이‘를 썼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시위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글쓰기를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경북 구미에 사는 한씨는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국회 앞에 선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사람과사회] 531명 폭행·암매장 당한 형제복지원, 지옥 같은 기억을 자서전 (살아남은 아이)
피해자 한종선씨… 1988년 “감금은 무죄”라고 판결한 대법원 재판장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에게 “올바른 판결이었냐” 묻고 싶었지만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취침시간 중 감금한 것은 사회적 정당성이 인정된다.”1988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대법원은 감금죄에 대해 이렇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장은 총리 후보자로 지목됐던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었다. 민주통합당 이언주 대변인은 “‘부산판 도가니’라고 불리는 이 사건에서 재판장이 ‘사회적 약자의 상징’인 김 후보자라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총리 후보자에서 사퇴한 다음날인 1월30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38)씨는 “김 위원장이 국회 청문회에 나오면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는데”라며 그의 사퇴를 아쉬워했다.

살해돼 해부용으로 팔려간 주검

987년 전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인 부산 형제복지원(수용인원 3146명)에서 직원의 구타로 수용자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 조사 결과 복지원이 부랑아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해 암매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굶어 죽거나 맞아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주검은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선 게 사건의 배경이었다.한종선씨는 1984년, 9살 때 12살인 누나와 함께 복지원에 끌려갔다. 그로부터 3년 뒤 복지원이 폐쇄됐지만 그는 짐승의 눈빛과 끔찍한 기억을 지닌 아이가 됐다. 한씨의 누나는 성폭행을 당해 정신분열증을 얻었고 구두닦이였던 아버지 역시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자다가 복지원에 끌려온 뒤 지금까지 정신병원을 떠돌고 있다. 이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지난해 11월 펴낸 저서 (살아남은 아이)에서 한씨는 지옥과도 같은 삶을 증언했다. “우리들의 의복은 하얀색 팬티와 러닝셔츠, 감색 추리닝 한 벌, 그리고 검정 고무신이 전부였다. 몸이 꽝꽝 얼어붙는 추위가 겨울 내내 이어졌다. 거의 모든 원생들의 손과 발이 퉁퉁 부어 동상에 걸렸다. 우리는 항상 새벽 4시에 기상했다. 식단은 언제나 꽁보리밥에 생선 썩은 전어젓과 소금 뿌린 깍두기. 우리는 매일같이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새벽부터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돌았다.”형제복지원은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군대였다. 장기 복무 헌병 부사관 출신인 박인근 원장이 중대장-소대장-총무-조장-소대원을 지휘했다. 언제든지 그들의 자리를 교체할 수 있는 박 원장은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군기를 잡기 위해” 조장은 매일 때렸다. “때리는 조장들은 아무 꼬투리나 잡아서 때린다. 맞는 소대원들은 왜 맞는지도 모른 채 맞는다.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복지원을 맴돌았다. 한씨는 죽어나가는 원생들을 서너 번 정도 목격했다.복지원은 어린아이건 어른이건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아왔다. 국고보조금이 사람 수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갇힌 이들 중에는 밤늦게 귀가하던 회사원, 바람을 쐬러 나온 여성, 자갈치시장의 노점상, 농촌에서 흘러든 일용직 노동자, 심지어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있었다. 자활 능력이 없는 사람은 10% 정도뿐이었다. 나머지는 멀쩡한 상태로 잡혀와 복지원에서 정신이상자가 되거나 지체장애인이 됐다. 한씨의 누나와 아버지처럼 말이다. 복지원은 운영자금 명목으로 1985년 18억원, 1986년 20억원 남짓을 중앙정부와 부산시에서 지원받았다.

박인근 한 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박인근 원장도 승승장구했다. 1981년 1월 장애자의 날 석류장을, 1984년 11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전두환 대통령에게서 받았고 전국부랑인복지시설연합회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던 1987년 1월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밝혀진다. 당시 울산지청 소속 김용원 검사(현 변호사)가 그해 1월16일 형제복지원을 압수수색했다. “교도소를 뺨치는 어머어마한 철문과 성곽 같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복지원의 원장실에서는 20억원이 넘는 각종 예금증서와 달러, 엔화가 쏟아졌다. 박 원장은 2년간의 국고보조금 39억원 가운데 11억원을 횡령했고 수용자들을 감금했음이 드러났다. 형제복지원은 폐쇄됐고 고아를 제외한 2천여 명이 한꺼번에 풀려났다. 인권유린의 피해자인데도 아무런 보상도, 재활 교육도 없었다.김 변호사는 1993년 펴낸 저서 (브레이크 없는 벤츠)에서 당시 외압에 시달렸음을 고백했다. 수사 검사는 원래 징역 20년을 구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검찰총장 등 ‘윗분들’은 징역 15년 혹은 징역 10년을 요구했다. 횡령 액수도 6억원으로 축소해야 했다. 1987년 6월 검찰은 박 원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6억원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징역 10년과 벌금 6억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박 원장의 형량이 점점 줄어들었다. 대법원이 감금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두 차례나 원심을 파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장은 1987년 11월 1차 항소심에서 벌금이 사라진 징역 4년을 선고받더니 1988년 7월 2차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88년 3차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한 사건이 일곱 번의 재판을 거치는 사이 원장에 대한 형량은 당초의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원장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감금한 행위는 대법원의 고집에 의해서 무죄로 확정됐다.”([브레이크 없는 벤츠]에서) “대법원의 고집”에는 김용준 위원장도 당연히 포함된다.한종선씨는 “감금은 폭행·살인을 증명하는 첫 단추였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그걸 무죄로 만드니까 폭행·살인죄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인권유린이 분명히 있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김용준 위원장이 청문회에 서면 ‘당시 무죄를 선고한 게 올바른 판결이었다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 대답마저도 이제 못 듣게 됐다.” 그는 또 당시 형제복지원의 감금이 불법이 아니었다면 정부가 왜 시설을 폐쇄하고 수용자를 풀어줬느냐고 반문했다.

지금도 복지재단 운영하는 박인근 일가

벌금도 선고받지 않고 2년6개월 만에 풀려난 박인근 원장은 재기했다. 법인의 이름만 수차례 바꿔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지원재단’이 됐다. 1929년생인 박 원장은 2011년 4월7일까지 형제재단의 이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3남 박천광(37)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박인근 원장은 2008년 8월 ‘대안학교’인 신영중·고교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2010년 12월 첫째딸에게 넘겼다.“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기 위해” 책을 썼다는 한종선씨가 말한다. “도가니 사건이 지금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부터 바로잡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법치국가라면 피해자가 겪고 있는 고통의 반만이라도 가해자가 죄를 씻을 수 있도록 벌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2013년 2월 4일 월요일

김용준 위원장 검증시스템 비판할 자격 있나


이글은 위키프레스 2-13-02-01일자 기사 '김용준 위원장 검증시스템 비판할 자격 있나'를 퍼왔습니다.


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언론의 검증 태도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기자들을 상대로 한 발표문을 통해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에 대해 상세히 해명자료를 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인수위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한 해명자료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는 쪽으로 비난이 확대돼 새 정부를 구성해 출발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발표문을 통해 김 위원장은 부동산 투기와 자녀 병역 문제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정면 반박하고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과 관련, 김 위원장은 "장남은 마른 체형이었던 데다가 대학시절 고시공부 등으로 인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게 됐다"며 "당시 징병검사 결과, 신장 169㎝에 체중은 44㎏으로 측정됨에 따라 관련 규정에 따라 병역 면제에 해당되는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제 가정은 물론 자녀들의 가정까지 파탄되기 일보직전으로 몰렸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추측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먼저 나라의 살림을 맡을 국무총리에 대한 검증 수준이 결코 가혹하지 않았으며 외국 사례와 비교해서도 전혀 과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김용준 위원장에 대한 검증은 간단한 서류검증 외에 별달리 진행된 것이 없으며 과거 박원순 시장의 아들 병역문제 검증 당시나 안철수 전 교수에 대한 언론의 검증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의 검증 밖에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점들이 드러난 상황에서 인수위원장 자리를 내놓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이어 김용준 인수위원장까지 이어지는 부적격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분노를 넘어 허탈하기만 하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지난 1월24일 저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하였음을 발표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그다지 나쁘지 아니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저의 두 아들의 병역 관계, 그들 소유의 재산에 관한 증여세 포탈 등에 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저에 대한 평가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급전직하했습니다.
주말이 끼어 있어서 제기된 의혹을 밝히는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희 내외는 물론 제 자식들, 심지어 어린 손자녀들까지 미행하면서 초등학교, 고등학교 등에 부정입학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고 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까지 가서 범죄인을 다루듯 조사하는 등의 일은 물론, 그 이외에 일일이 밝히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 저의 가족들은 차차 신경쇠약 등에 걸리게 되는 것은 차치하고, 당장 이런 저런 충격에 졸도하는 등의 사태가 일어나기까지 하였습니다.
저의 가정은 물론 자녀들의 가정까지 파탄되기 일보직전으로 몰렸습니다. 당하여 보지 않은 사람들은 추측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국무총리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되어 제기된 일체의 의혹에 대하여 해명하지도 못한 채, 지난 1월 29일 저녁 때 사퇴의사를 표명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대통령당선인이 저를 제대로 검증하지도 아니한 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하였다는 쪽으로까지 비난이 확대되어,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새 정부를 구성하여 출발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어서, 저와 관련된 의혹에 대하여 해명할 수 있는 것은 해명하여야 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먼저 두 아들의 병역에 관한 의혹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우리 나이로 세 살때 소아마비라는 병에 걸린 후유증으로 여러분들이 보시는 바와 같이 다리를 절게 되어 징병검사를 받은 결과 당시 병역법에 따라 정종 불합격처분을 받아 병역 의무가 면제되었습니다. 1965년 소아마비 후유증 정형수술을 받아 현재의 상태로 후유증이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그 당시부터 의사 친구가 저나 가족에게 당시의 의료 수준과 지체장애 증세를 감안할 때 시간이 지날수록 후유증이 악화되면서 40세가 지나면 걷지도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평소 건강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곤 했었습니다.
이런 저런 연유로 군에 입대하지 못한 것이 저에게는 한이 되었습니다. 저희 내외는 두 아들이 현역병으로 입대한 늠름한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저희 내외의 뜻대로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현역병으로 입대하고 싶어도 입대하지 못하고 죄인으로 취급받고 사는 국민들도 상당히 있는 줄 압니다.
[근 거 자 료]
1. 장-차남 병역 관련
가. 장남 병역 관련 ○ 병무청에 확인한 결과, 장남은 대학교 재학생('86-'88년) 신분으로 적법한 절차(병역법 제52조 1항)에 따라 징병검사연기를 하였으며, 그 후 졸업시점인 '89.8.29 징병검사를 받았음 ○ 징병검사 결과 신장 169㎝에 체중은 44㎏으로 측정되어, 관련규정에 따라 병역면제에 해당되는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게 되었음
※ 당시 징병신체검사등검사규칙(국방부령) 제10조 및 판정기준 별표1 : 5급 제2국민역 (신장 169㎝ 45㎏미만시) - 이는 원래 마른 체형이었던 데다가 대학시절 고시공부 등으로 인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게 된 것이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며, 일부에서 제기되는 고의 감량의혹은 사실이 아님 ○ 한편, 장남의 서울대학교 생활기록부 열람 결과, 몸무게가 기재되어 있는 내용이 없음을 알려드림.
나. 차남 병역 관련 ○ 차남의 경우는 '88.5.9 재수생 신분으로 징병검사시 2급 현역입영대상 판정을 받았으나, 대학교?대학원에 입학하면서 학업을 위해 현역 입영을 연기하였음 ○ 그 후 통풍이 악화되어 '94.4월 서울대병원과 서울백병원에서 진료 후 진단서를 발급받아 병무청에 재검을 요청함.
※ 진단내용 : 병명은 통풍성 관절염이며 발병원인은 선천성으로 高요산혈증 및 뇨증으로 영구적인 약물치료, 식이요법 등이 필요 - 이어 '94.6.21 대전국군통합병원 외래과 정밀검사 → '94.6.30 신체검사 판정 → '94.7.4 5급 제2국민역으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게 된 것임.
※ 당시 징병신체검사등검사규칙(국방부령) 제11조 및 평가기준 별표2 : 5급 제2국민역 판정(내과 대사 장애 질환 통풍 및 기타 확인된 대사질환시) ○ 통풍은 고등학교 재학시부터 느끼기 시작하였으나 통풍인 줄을 모르고 있다가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1990년경 병원에 내원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았음 - 지금도 통풍 관련 상비약을 구비하여 필요시 복용하고 있으며, 통풍이 느껴질 경우에는 보행이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음.
※ 후보자 본인도 통풍으로 인해 서울성모병원, 위더스내과 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지금도 통풍약(알로푸리놀)을 매일 복용중임.
2. 부동산 등 재산 관련
가. 안성 소재 임야
○ (구입 경위) 본인과 함께 근무한 사실이 있는 오 모씨가 안성등기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엽연초조합이 대출의 담보로 제공받은 토지를 압류하여 경매로 낙찰 받았는데 이 토지를 매우 싼 가격에 再매각한다며 함께 매수할 것을 권유하여 - 1974.6.25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배태리 산 45-1 번지 소재 임야 146,678㎡를 각자의 아들 명의로 하여 각 1/2의 지분으로 공동매수하였으며 - 1983.7.20 지분을 분할해 배태리 산 45-3,4,5 번지 73,388㎡를 현재까지 보유중임 ○ (자금출처 및 증여세 문제)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의사 친구가 본인에게 당시의 의료 수준과 지체장애 증세를 감안할 때 시간이 지날수록 후유증이 악화되면서 40세가 지나면 걷지도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평소 건강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곤 했었음 - 당시 상당한 재산을 갖고 계셨던 모친께서 손자들의 학자금과 생계비 등을 엄려하셔서 장손의 명의로 매입하라며 토지 구입자금을 주셨고, 매입금액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나 약 65만원 정도였음 - 이에 따른 장남에 대한 증여세 문제는 당시 증여재산 공제액 150만원에 미달하여 과세대상이 아니었음.
나. 서초동 소재 부동산
○ (구입 경위) 장남과 차남 보유 서초동 소재 부동산 674㎡는 고교동창 김 모씨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의 일부를 매입할 것을 권유하여 1975.8.1일 400만원(각 200만원)에 매입한 것으로 - 구입 당시는 서초동 산 165의 14번지 소재의 임야였으며 이후 1986.3.24일 구획정리가 완료되어 지목이 대지로 변경되었음.
○ (개발정보 사전 입수 여부) 위 부동산의 매입 당시 본인은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였는데 - 위 부동산의 매입 3일 뒤에 서울시가 '인구억제 시안'으로 서초동 일대에 법원과 검찰청을 이전하는 방안을 경제차관회의에서 논의하였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 당시 부장판사로서 서울시의 계획을 미리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혀 알지도 못하였으며 - 위 부동산은 매입 당시 군부대인 정보사령부 인근에 위치한 임야였으며 11년이나 지난 뒤에야 구획정리가 이루어진 것을 보더라도 개발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것은 아님.
○ (자금출처 및 증여세 문제) 위 부동산도 모친께서 종손들을 위해 매입 자금을 주셨는데 - 증여세 납부여부는 자세히 알지 못하여 청문회 준비를 위해 국세청에 확인한 바 너무 오래된 일이라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었음 - 다만, 부동산 등기부상 매매로 등재된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구입 당시 장남과 차남이 할머니로부터 증여받은 현금 각 200만원에 대한 증여세를 산출하면 장남 20만원(안성 임야 증여분 감안), 차남 6만원 정도로 추정 -따라서 위 부동산의 증여세 납부 문제는 세무전문가로 하여금 정확한 증여세액의 산출과 지금이라도 납부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국세청과 협의토록 하겠음 ○ (토지의 등기 지연 사유) 위 임야의 매입 이후 매도인(고교동창 김 모씨)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요구하였으나 매도인이 위 임야가 환지처분 예정이라는 이유로 소유권이전 등기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계속 거부하여 1983년에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83 가합 7771, 서울민사지법, 1984.3.22 선고)을 제기하여 승소, 이후 1986년 구획정리가 완료되었고 1991년 주택을 신축하기 위해 등기하였음.
※ 붙임 판결문을 보면 1975. 8. 1일 장남과 차남이 각 200만원에 매입한 사실과 매도인이 소유권이전등기를 거부해 등기가 지연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음.
○ (다가구주택 건축사유와 건축자금 등) 위 임야가 대지로 구획정리가 완료된 이후 1990년도에 '택지소유상한에관한법률'이 시행되었는데 - 나대지 상태로 계속 보유할 경우 장남과 차남이 부담해야할 택지초과소유부담금이 상당한데다 토지 관리상의 어려움도 있었으며 - 당시 정부에서 주택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임대주택업자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등 임대주택 건설을 장려하여 다가구주택(지층 1가구, 1층 4가구)을 신축하였음 - 다가구주택의 신축 자금은 건축 이후 5가구의 전세보증금 (총 1억 6,500만원)으로 충당하였으나, 주택 건축 이후 지금까지 세입자들의 전세금을 전혀 올리지 않는 등 어려운 세입자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림.
○ (택지초과소유부담금 환급 문제) 대법관 시절이던 1993년말 기준 재산신고 변동사항(1994.2.28일 관보)에 장남과 차남의 채무로 택지초과소유부담금 8,044만원 상당을 신고하였으며, 1994.7월 대법관을 퇴임하면서 신고한 재산신고 변동사항(1994.8.26일 관보)에 위 택지초과소유부담금(8,044만원 상당)의 부과취소로 채무감소를 신고함 - 이는 은평구청에서 1990년에 시행된 '택지소유상한에관한법률'에 따라 후보자의 장남과 차남 소유 서초동 택지가 200평을 초과한다는 이유로 택지초과소유부담금을 부과하였으나 - 장남과 차남은 위 택지에 주택을 임대하는 임대주택사업자로 위 택지에 초과소유부담금을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1994.2.4일, 중토위 행심(택) 93-144)에 의해 부과가 취소된 것임.
○ 다만, 은평구청의 1993년도 '택지초과소유부담금 부과 징수대장'의 부과현황에는 57,543,780원으로 기재되어 있고 같은 대장의 납부독촉대상과 중앙토지위원회의 재결서에는 당시 부과금액이 15,969,930원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후보자의 재산변동 신고금액은 8,044만원으로 기재되어 있어 금액이 일치하지 않으나 -당시 택지소유상한에관한법률이 1990년도부터 시행되었기 때문에 1991년 이후 매년 택지초과소유부담금이 부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은평구청에서 보존기간 경과로 인해 더 이상 관련 기록을 찾지 못하였음 - 이는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8,044만원의 세금을 납부하고 돌려받은 것이 아니라 당시 세금부과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체납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재산변동 신고서류에 국가에 대한 채무로 신고하였다가 이후 세금부과가 취소되어 채무감소로 신고한 것으로 - 자녀들을 위해 세금을 대납한 것이 아니므로 세금 납부액에 대한 증여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음.
다. 배우자 소유 마천동 토지
○ (취득 경위) 배우자가 취득한 마천동 59-4 소재 토지(1,759㎡)는 친한 지인과 함께 빌려 준 사인간의 채권을 변제받지 못하여 1974.12.30일 지인과 공동명의로 대물변제 받은 것으로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음.
○ (토지 사용 현황) 위 토지는 원래 그린벨트지역으로 묶어 있었고, 그 대부분인 1,361㎡는 도로로 수용되었으며 나머지 398㎡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주변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음 - 따라서 언론에서 투기목적으로 구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는 사실이 아님.
라. 신수동 주택
○ 본인의 배우자는 평소 친분이 두터운 지인과 함께 1978.5.29일 마포구 신수동 184-14번지 소재 주택(대지 70㎡, 건물 124.29㎡)을 각 1/2의 지분으로 구입하여 1993.6.15일 매도하였음. - 그런데 매도 이후 매입자가 위 토지의 건물이 미등기 상태로 남아있다며 등기해 줄 것을 요구하여 1996.8.29 소유권보존등기(최초 등기)를 마치고 바로 그날 소유권을 이전해 주었음 ○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위 부동산의 재산신고 누락의혹은 재산신고 기준일 이전에 이미 매도된 주택이기 때문에 재산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며, 건물의 소유권이전등기를 위한 불가피한 절차를 오해한 것으로 생각됨.
마. 인천 북구 북성동 대지
○ 본인은 1975년경 대한준설공사에서 준설후 매각되지 않던 미분양 토지(232.7㎡)를 36개월 할부로 매도하여 적금을 든다는 생각으로 매입하였음 - 이후 헌법재판소장을 퇴직하고 가진 재산을 정리한다는 차원에서 2007년초 장녀에게 증여하였으며 장녀가 증여세를 납부하였음.

위키데스크 (editor@wikipress.co.kr) 기자 

안철수의 공약, 김용준 '줄줄이 낙마'로 주목


이글은 미디어노늘 2013-02-03일자 기사 '안철수의 공약, 김용준 '줄줄이 낙마'로 주목'을 퍼왔습니다.
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재산권 침해 위헌 지적도

최근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가 가족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크게 불거져 결국 낙마하는 등 고위공직자들의 불투명한 재산형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한 가운데 공직자의 부동산을 국가에 맡기자는 지난 18대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가 제시한 '부동산백지신탁제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부동산백지신탁제는 고위공직자 후보자가 공직에 취임할 경우, 본인과 직계가족이 실제 살고 있는 ‘실수요 부동산’을 제외하고 공직자가 실수요임을 입증할 수 없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수탁기관에 백지신탁(대리인에게 맡기고 절대 간섭할 수 없게 하는 제도)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공직자는 퇴임 후에도 부동산이 아닌 신탁 당시 시세 또는 최초 취득가격의 원리금 중 낮은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고위공직자가 임기 중 지위를 활용해 취득한 정보로 부동산에 투기하는 등 부당이득을 취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으로, 고위 공직 취임 후 직무 수행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이다.
지난 18대 대선 때 안철후 대선후보가 관련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안철수 후보가 제시한 고위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도의 경우 공직후보자가 취임 시 실수요 외 부동산 백지신탁 의무뿐만 아니라, 퇴임 후 2년 동안은 실수요 목적 외의 부동산 취득을 금지해 재임 시 공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 김용준 전 국무충리 지명자는 가족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여론의 집중적인 포화를 받고 결국 사퇴했다. 한겨레 29일자 5면.

최근 청문회 등 일련의 사건 이후 고위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 도입을 주장을 다시 펼치고 있는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안철수식 백지신탁제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백지신탁)해당자의 범위가 좁고 실수요 범위는 넓어서 신탁자를 상당히 배려한 안”이라며 “과잉금지에 대한 공격 등 이론의 시비를 빗겨 갔다”고 평가했다.
이 처장은 이어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아주 가혹하게 말하면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실수요 외 불로소득은 반납하라는 말”이라며 “고위공직자 후보치고 부동산 투기 안 한 사람이 없는데 취임 후에라도 직무의 투명성과 공정성 담보해 이후 후보군에게도 미약하나마 경계 효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부동산 백지신탁이 공무원들의 합리적인 경제활동조차 불가능하게 해 헌법상의 기본권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제도라는 주장이다.
하창우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는 “공직 재직 중 부동산 담보 대출 등 합법적으로 부동산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사실상 막아 공무원의 재산권을 제약한다”며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 권리를 막기 때문에 위헌적 성격이 강하다”고 비판했다.
하 변호사는 대신 “공무원 부동산 취득 자체를 어렵게 만들도록 철저히 심사할 수 있는 별도 기구를 두고 사돈의 8촌까지는 부동산 취득을 반드시 신고케 해 제3자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만일 퇴임 후라도 제3자를 이용한 명의신탁이 밝혀지면 가중처벌함으로써 백지신탁이 아니고라도 얼마든지 악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부동산 백지신탁은 재산권의 제한이 아니라 공직자를 할지 말지에 대한 전적인 본인의 선택”이라며 “고위공직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재산권 제한은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공직자의 부동산 담보 대출에 대해서도 “신탁이 돼 있어도 등기부상으로 는 본인의 것으로 돼 있기 때문에 처분하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며 “신탁 부동산에 대한 원리금을 받을 수 있는데 어느 은행에서 돈을 안 빌려주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는 또 “불법성만 없으면 괜찮은 것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는 게 우리 국민들의 도덕감정”이라며 “부동산 이익은 생산 이익이 아닌데 누군가 땀 흘려 생산한 거를 가져가는 행위는 나쁘게 말하면 강도와 같다”고 힐난했다. 고위공직자 할 거면 부동산으로 투기성 돈을 벌지 말라는 얘기다.
한편 고위공직자가 부동산을 백지신탁을 하더라도 원리금과 함께 임대료는 가져갈 수 있다. 공직을 맡기 이전에 위법이 아닌 투기 이력이 있더라도 백지신탁을 통해 과거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 준다면 고위 공직자의 인재 풀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신탁 시점 이후의 부동산 값 상승 등에 따른 운용 수익은 국고에 귀속된다.

강성원 기자 | sejouri@mediatoday.co.kr  

2013년 2월 2일 토요일

사퇴 뒤 해명서... 언론과 싸우자는 건가?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2-01일자 기사 '사퇴 뒤 해명서... 언론과 싸우자는 건가?'를 퍼왔습니다.
[인수위일기] 박근혜 당선인은 '청문회법 고쳐라'... 여론전 시작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1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정무분과 업무보고에 참석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봄이 오는 2월의 첫째 날입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취재하는 기자들 분위기는 제법 쌀쌀합니다. 국무총리 후보자를 사퇴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내놓은 '해명서'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께서 저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는 과정에서 저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아니하였다는 비난은 근거가 없다는 것을 밝혀드리는 바입니다.

아들 병역 면제 과정과 부동산 취득과정 등을 밝혀놓은 이 해명자료에서 김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을 총리 후보자로 선택하면서 별다른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언론의 지적을 반박했습니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표하기 전에 검증을 거쳤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같은 해명자료에 있는 다음 문장을 보시죠.

주말이 끼어 있어서 제기된 의혹을 밝히는 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총리 후보자로 발표된 게 지난달 24일이고, 사퇴한 게 29일입니다. 토·일요일을 빼도 총리 후보자 지명 6일이 지나 재산 관련 자료들이 제시된 거죠. 총리 후보자 발표 전에는 대체 무슨 자료를 보고 검증을 했기에 해명자료가 이제야 나온 걸까요?

취재할 땐 해명 한마디 않더니, 사퇴한 뒤 언론 원망

이날 나온 해명서에서 김 후보자는 현재 시가 60억 원대 서초동 부동산이 1975년 아들들 명의로 등기된 부분에 대해, 사실상 김 후보자 모친이 미성년자인 손자들에게 땅을 사주려고 매입자금을 줬고 이게 사실상 매매가 아니라 증여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증여세가 납부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당시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분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검증을 하긴 한 걸까요?

언론이 궁금했던 것은 김 위원장 본인이 병역면제를 받은 사유는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장애를 얻은 것은 너무나 명확하니까요. 그러나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군 복무를 면제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 아들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다 병역을 면제받은 대목에 대해선 의구심을 가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런 의구심을 제기할 때에는 가만히 있다가 총리 후보자를 사퇴하고 난 뒤 해명을 내면서 언론의 취재 행태를 비난하는 이유는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언론이 취재할 때 해명서에 나온 대로 '장남은 고시 공부 때문에 몸무게가 적게 나갔다', '차남은 아직도 통풍을 앓고 있다'고 답변하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입니까?

이날 김 위원장은 '자녀와 손자들에 대한 미행', '졸도', '가정파탄'을 언급하며 언론을 원망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집요하게 취재한 언론이 있었다면 미안한 일입니다. 그러나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해명을 요구할 때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이제서야 '나는 결백하다'는 식의 일방적인 자료를 내는 것도 정상은 아니죠.

언론은 '잔인하게 불어뜯기만 하는 존재'?

후보자 사퇴 뒤 해명자료가 나온 상황에 대해 인수위를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지금 작정하고 언론과 싸우려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언론의 취재행태를 비난한 게 지금 박근혜 당선인의 행보와 관련이 깊다는 추측이죠.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달 30·31일 연속으로 여당 국회의원들을 만나 현행 인사청문회법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부동산 투기나 병역문제 같은 후보자 도덕성 부문에 대한 질의는 비공개로 하고, 정책 관련 부분만 공개로 하자는 구체안까지 제시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이 여당 의원들에게 법을 어떻게 고쳤으면 좋겠다고 '지시'한 셈이죠. 

왜 사면법을 같이 묶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새누리당은 당장 '사면법 및 인사청문회법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습니다. 급기야 새누리당의 권성동 의원은 과거 공무원 중 부동산투기나 위장전입을 하지 않은 이들이 아주 드물다고 공무원 전체를 깎아내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당장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야당이 세게 반대할 뿐 아니라 여당 안에도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이러는 걸까요? 

언론 전반을 '잔인하게 물어뜯기만 하는 존재'로 시민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여론전이 시작된 게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언론이 외면받게 되면, 이후 나올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 보도의 영향력도 그만큼 줄게 되니까요.

안홍기(anongi)

이상돈의 '작심 직언' "누군가 朴당선인에 잘못된 보고"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2-01일자 기사 '이상돈의 '작심 직언' "누군가 朴당선인에 잘못된 보고"'를 퍼왔습니다.
"김용준 해명 치졸하다", "집권했으면 일관성 있어야"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가 1일 작심한듯 여러 언론과의 연쇄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당선인에게 호된 쓴소리를 쏟아냈다. 박 당선인이 최근의 인사 파동 등으로 상당한 민심 이반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아무런 직언을 하지 않자 '나홀로 직언'의 길을 선택한듯한 모양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인 이상돈 교수는 이날 밤 JTBC (뉴스9)와의 인터뷰에서 박 당선인이 인사검증이 신상털기가 돼선 안된다고 말한 데 대해 "전혀 황당한 이야기"라며 "미국은 6개월씩 걸리고 그만두는 사람도 10명이 넘는다. 카터 대통령때도 CIA 국장도 그만두고 클린턴 때는 법무장관과 국방장관이 낙마했다. 요새 힐러리 전 장관 같은 경우는 납득하고 이의가 없는 사람들이어서 문제가 없어 정책을 물었던 것이다. 미국사회에서 공적분야로 가는 사람들은 사생활에 철저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이어 수십년전 일을 문제 삼아선 안된다는 박 당선인 주장에 대해서도 "오래 전 이야기를 꺼낸 건 물론 지나친 부분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사생활 꺼내 낙마시킨 건 한나라당이 오래 전부터 하던 것이다. 인재풀이 제한되다 보면 MB정권에서는 문제가 많은 사람을 많이 공직에 냈다. 그래서 국민 신뢰도가 떨어진다. 박 당선인도 마찬가지"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이날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두 아들 병역면제 등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을 한 것과 관련, "그런 말씀이 좀 안 맞는 것 같다. 판단력이 부족하신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흐려지시거나 공적 분야에 둔감하신 거 같다"며 "병역 의혹을 떠나서 보통 가정에서는 군대를 2명 이상 간다. 보통 집안에서 볼 때는 납득이 안되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그는 "그런 표현을 쓰신 것 자체가 치졸하신 것이다. 모든 것이 내 불찰이라고 하고 넘어가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그는 잇단 인사 실패의 원인에 대해선 "누가 박 당선인에게 인사 추천하면서 잘못된 보고를 한 것 같다"고 막후의 측근들을 정조준했고, "이번 인수위는 실무형으로 한다는 게 맞다. 그러나 과정에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인수위 대변인과 위원장을 많은 국민들이 보셨을 때 호감이 가는게 아니라서 인수위 인기도 하락했다. 또한 이동흡 지명자 낙마로 지금 헌재 권위도 흔들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 당선인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국민이 감동할 수 있는 인물을 세워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보기에 저 사람 같으면 박근혜를 뽑았던 것이 합당했다라는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다"며 향후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에 앞서 이날 오후 MBN `뉴스M`에 출연해 "인사청문회 제도가 강화된 것은 과거 한나라당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인사청문회 때, 지금에 비하면 사소한 하자로 후보자들을 낙마시켰다"며 "집권세력이 되고 나서야 인사청문회 제도를 비판한다면 국민들의 신뢰가 꺾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집권세력이 됐으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수아 기자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어그러진 박의 ‘첫 단추’… 새 정부 조각 지연 후폭풍 예고


이글은 경향신문 2013-01-29일자 기사 '어그러진 박의 ‘첫 단추’… 새 정부 조각 지연 후폭풍 예고'를 퍼왔습니다.

ㆍ김용준 총리 지명자 전격 사퇴 파장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가 29일 지명 닷새 만에 사퇴함에 따라 적지 않은 후유증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박근혜 정부 출범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내각과 청와대 인선도 늦춰지는 게 불가피해졌다. 김 지명자가 이끌어온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에도 힘이 빠지게 됐다.

김 지명자의 총리 인준은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라는 상징성과 함께 새 정부 출범의 첫 시험대로 여겨졌다. 박 당선인 측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인 그를 총리로 지명한 데 대해 박 당선인의 법치와 원칙,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등을 반영한 인선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인준을 낙관했다. 하지만 두 아들의 병역 면제와 부동산 투기 등 의혹들이 확산되면서 결국 ‘초대 총리 지명자 낙마’라는 불명예를 기록하게 됐다. 새 정부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실패함으로써 박근혜 정부는 출범 전부터 난관에 봉착한 셈이다.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지 5일 만인 29일 전격 사퇴한 김용준 지명자가 지난 25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1분과 업무보고에 참석하기로 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마중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무엇보다 새 정부 출범 초기 필요한 국민적 지지를 통한 개혁 동력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박 당선인의 ‘밀봉’ 인사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자칫 5년 전 이명박 정부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맥)’, ‘강부자(강남 땅부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내각 인선에 실패하면서 정권 출범부터 민심이 이반했던 때와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총리 지명자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도 박 당선인에게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 측에서 인사청문회의 무난한 통과를 자신했던 김 지명자가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못하고 조기 낙마함에 따라 인사청문회를 반드시 통과할 수 있는 인사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후임 총리 지명자 인선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내각이나 청와대 인선도 새 총리 지명과 인준 상황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 측은 당초 김 지명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뒤 헌법에 따른 장관 제청권을 행사함으로써 국무위원을 비롯한 부처의 수장을 임명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특히 다음달 25일 새 정부의 원활한 출범을 위해 다음달 초반까지는 국무위원 지명을 모두 마치고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차기 총리 지명자의 인준 여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데다, 내각 인선에 대한 검증 작업도 보다 철저히 할 수밖에 없어 조각(組閣)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인수위 활동도 타격을 입게 됐다. 총리 후보직을 사퇴한 김 지명자가 인수위원장직을 수행하는 것도 사실상 무리이기 때문이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김 지명자는 인수위원장 문제에 대해서는 박 당선인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그곳에서 513명이 굶어죽고 맞아죽었다 수사검사도 분노한 김용준 '형제복지원' 판결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1-29일자 기사 '그곳에서 513명이 굶어죽고 맞아죽었다 수사검사도 분노한 김용준 '형제복지원' 판결'을 퍼왔습니다.
김용원 전 검사, (브레이크 없는 벤츠)에서 "엉터리 전제 아래 무죄 판결"

 
▲ <브레이크 없는 벤츠>의 저자 김용원 변호사. ⓒ 구영식

민주화운동의 기점으로 평가받는 1987년은 '두 개의 사건'에서 출발했다. 하나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이었다. 1987년 새해 벽두를 뒤흔들었던 이 사건들은 '야만적인 5공 정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은 세상에 드러난 지 26년 만에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귀환했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았다가 국회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사퇴한 김용준 후보자가 대법관 시절 '부산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법전에는 이런 시설을 인정하는 법률이 없다"
  
▲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을 수사했던 김용원 전 검사의 저서 <브레이크 없는 벤츠>. ⓒ 오마이뉴스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은 우연한 기회에 '첩보'를 얻은 한 검사의 집념으로 일구어낸 대형사건이었다. 당시 울산지청 소속 검사로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을 수사했던 김용원 변호사(현 법무법인 한별 대표·59)는 지난 1993년 펴낸 저서 (브레이크없는 벤츠)에 당시 수사상황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김 변호사는 1986년 12월 울산에서 알게 된 한 사냥꾼으로부터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산 속에 이상한 작업장이 있다. 인부들이 산을 깎는 작업을 하는데 경비원들이 몽둥이를 들고 지킨다. 경비원들이 인부들을 개 패듯이 패는 것을 몇번 보았다. 커다란 개 여러 마리가 인부들을 지킨다."(13쪽)

'대한민국에는 그런 작업장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김 변호사는 바로 그 작업장(울주)으로 달려가 현장을 확인했다. 이후 경찰관들을 시켜 망원렌즈로 인부들이 작업하는 장면, 몽둥이를 든 경비원들의 모습, 쇠창살이 쳐진 인부들의 숙소 등을 촬영했다. 그리고 이곳이 부랑인 3000여 명을 수용한 부산형제복지원의 원장(박인근)이 벌이고 있는 작업장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러한 사실확인들을 통해 김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원장이 수용중인 부랑인들을 끌고와 강제노역을 시키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이어 형제복지원 원장을 조사하자 그가 "엄청난 거물"임이 드러났다.

"그는 1981년 4월 국민포장을, 1985년 5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통 상임위원에도 임명되어 있을 정도로 중앙정부에까지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형제복지원 등의 운영자금 명목으로 1985년 18억 원 가량을, 그리고 1986년에는 21억 원 남짓 되는 돈을 국가 및 부산시로부터 지원받았다."(15쪽)
 

김 변호사는 부산형제복지원을 직접 찾아갔다. 복지원은 "교도소를 뺨치는 어머어마한 철문과 성곽 같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김 변호사는 "내가 아는 법전에는 이런 시설을 인정하는 법률이 없다"고 기록했다. 

경찰이 "서울대생 박종철이 조사받다가 자기압박에 의해 충격사했다"고 발표한 다음날인 1987년 1월 16일, 김 변호사는 울주작업장과 부산형제복지원을 덮쳤다. 김 변호사가 압수수색을 위해 덮친 부산형제복지원은 "사회복지시설이 아니고 완벽한 감금시설"이었다. 원장실의 대형금고에서는 20억 원이 넘는 각종 예금증서뿐만 아니라 달러화와 엔화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복지원 핵심간부와 경비원, 수용자 등 100여 명을 조사한 끝에 "복지원 수용자들은 대부분 멀쩡한 사람들인데 납치되다시피 끌려와 감금되어 있으면서 노임도 받지 못한 채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의 신체적 자유란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장기간 감금당한 채 강제노동에 시달린다면 그것은 중대한 사건이다. 아무리 못난 인간이라도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지원이라는 이름의 감방 아닌 감방에 감금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18쪽)

▲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한종선씨가 그린 그림 ⓒ 문주출판사

"복지원은 하나의 왕국... 인민재판에서 공개적으로 구타 당해"

검찰수사를 통해 "작업에 동원된 수용자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구타해서 죽여버린" 사건과 박인근 원장이 "국고보조금 중 주식비, 부식비, 피복비 등을 마구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복지원이 설립된 1975년부터 1986년 사이에 복지원에서 사망한 수용자수는 513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굶주려 죽거나 맞아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게 확인된 부산형제복지원의 실체는 놀라웠다.

"형제복지원은 군대식으로 운영되는 하나의 작은 왕국이었고, 원장은 왕이었다. 수용자들은 군번 비슷한 수용번호를 부여받아 내무반 생활을 하였으며 소속 소대장과 중대장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했다. 수용자들은 주로 시래기국이나 해장국을 먹으며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각자 봉제공장, 목공소, 철공소 등의 작업장에 배치되어 쉴 새 없이 일해야 했다."(19쪽)

"도망치려 했거나 명령에 반항한 수용자들에게는 엄청난 형벌이 가해졌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열리는 이른바 인민재판에서 공개적으로 구타를 당한 뒤, 아오지탄광이라 불리는 7소대 또는 13소대에 배치되어 혹독한 시련을 받아야 했고, 독방에 감금되어 하루종일 꿇어앉아 있다가 잠도 꿇어앉아서 자야 하기도 했다."(20쪽)

"수용자들은 툭하면 얻어맞아 죽어갔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의사들은 얻어맞아 죽은 수용자들이 자연사했다고 진단서를 끊어주었다. 그들의 시체는 의과대학에 실습으로 팔려갔다고들 했다."(20쪽)

반면 박인근 원장은 2년간의 국고보조금 39억 원 가운데 11억여 원을 횡령했고, 3000여 명의 수용자들을 봉제공장과 목공소, 철공소 등에 무보수로 투입해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3000명이 넘는 수용자들의 고혈을 빨아 고급 아파트, 골프 회원권, 콘도미니엄 등을 소유하고 단자회사 등에 수십억 원의 예금을 가진 재벌 아닌 재벌"이 되었다.   

박 원장이 '어느 정도'의 인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도 있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1987년 5월 20일 전두환 대통령이 소년체전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 내려왔다. 부산시장이 "복지원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하자, 전 대통령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박 원장은 훌륭한 사람이오. 박 원장 같은 사람 덕분에 거리에 거지도 없고 좋지 않소."

전 대통령이 박 원장을 이렇게 치하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1981년 4월 10일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에게 "근간 신체장애자 구걸행각이 늘어나고 있다는 바, 실태파악을 하여 관계부처 협조하에 일절 단속 보호조치하고 대책과 결과를 보고해주기 바랍니다"라는 지휘서신을 내렸다. 이후 부산형제복지원과 같은 부랑인 보호시설이 급증했다. 당연히 그에 비례해 인권침해도 크게 늘었다. 김 변호사가 부산형제복지원사건을 '박 원장의 개인비리'로 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지원이라는 이름의 이 처절한 인간유린은 원장이 개인적으로 저지를 비리가 아니었다.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대통령의 정부 아래서만 저질러질 수 있는 비리였다. 복지원의 참상은 사회복지정책을 내실있게 추진할 아무런 계획도 없으면서 겉으로만 복지선진국인 양 행세하려고 한 전시행정이 빚어낸 것이었다."(30쪽)

▲ 김용원 전 검사는 "대법원이 엉터리 전제 아래서 원장의 행위를 적법한 행위라고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 오마이뉴스

검찰은 15년 구형했지만 '10년→4년→3년→2년 6월'

김 변호사는 원래 '징역 20년'을 구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검찰총장 등 '윗분들'은 '징역 15년' 혹은 '징역 10년'을 그에게 요구했다. 박인근 원장의 횡령액수도 11억여 원에서 6억여 원으로 축소해야 했다. 대검으로부터 "횡령액수를 7억 원 이하로 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원장이 10억 원 이상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밝혀내어 무기징역을 구형하고자 했다"고 적었다.

1987년 6월, 김 변호사는 박 원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6억여 원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징역 10년과 벌금 6억여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박 원장의 형량은 점점 낮아졌다. 

"원장은 1987년 11월 12일 1차 항소심에서 벌금형이 사라진 징역 4년을 선고받더니 1988년 7월 7일의 2차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1989년 3월 15일의 3차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한 사건이 일곱 번의 재판을 거치는 사이 원장에 대한 형량은 당초의 4분의 1로 줄어들었다."(35쪽)

민주화가 완성되지 않은 시기에 사법부의 정의는 이렇게 허약했다. 게다가 대법원은 지난 1988년 11월 8일 특수감금죄에 무죄를 확정해버렸다. 당시 재판장이 김용준 대법관이다. 김용준 대법관은 부산형제복지원이 부랑인들을 울주작업장에 수용한 것과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취침중 출입문을 잠근 것 등이 '감금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울주작업장이 부랑인 선도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형제복지원의 적법한 복지시설의 일부라면 피고인들이 이 사건 피해자들을 울주사업장에 수용한 조치는 법령에 근거한 정당한 직무수행행위라 할 것이고, 피고인들이 이들을 야간에 울주작업장의 숙박시설인 기숙사에 취침토록 조치한 후 취침 중 그들의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하여 그 출입문을 시정조치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상의 감금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판결문 중)

"부랑인들을 야간에 철장시설이 되어 있는 숙소에 가두어 취침하도록 하고 취침시간인 밤 10시부터 이튿날 아침 6시까지 출입문을 밖에서 시정한 행위는 그것이 비록 수용자들의 야간도주를 방지한 조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수용행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특수감금죄'를 인정한 원심의 판결조차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김용준 대법관은 울주작업장이 부산시의 승인과 지원 아래 추진됐고, 국고와 지방비 예산까지 책정되었다는 점을 들어 "적법한 수용시설의 일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피고인들이 수용중인 피해자들의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하여 그 취침시간 중 위와 같은 방법으로 조처한 것은 그 행위에 이른 과정과 목적, 수단 및 행위자의 의사 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사회적 상당성이 인정되는 행위라고 못볼 바 아니다"라고 결론내렸다.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한 구금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이 인정되는 행위"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엉터리 전제 아래 원장의 감금행위를 적법하다고 판단"

김용준 대법관은 유신정권 시절인 지난 1975년 12월 15일에 제정된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근거로 박 원장 등의 감금죄에 무죄를 확정했다.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을 가리킨다. 김 변호사는 이 훈령을 "걸인과 껌팔이 등 부랑인은 연고자가 나타날 때까지 복지원 같은 시설에 무기한 감금해둔다는 것"이라고 요약하면서 "부랑인이 아닌데도 부랑인 취급을 당해 감금된 사람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중대한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준 대법관은 인권침해가 충분한 훈령을 근거로 박 원장 등의 감금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김 변호사는 이렇게 꼬집었다.

"대법원은 원장이 오로지 순수부랑인들만 데려다 내무부훈령이 정한 넉넉한 대우를 다 해주었다는 엉터리 전제 아래서 원장의 행위를 내무부훈령에 따른 적법한 행위라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법관의 영장에 의하지 않고 멀쩡한 사람을 수없이 잡아가두더라도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35쪽)

한편 김용원 변호사는 지난 1983년부터 1992년부터 서울·울산·부산·수원지검 등에서 수사검사로 활동했다. 부산형제복지원 비리사건, 부산지하철본부 비리사건, 울산공단 공해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브레이크 없는 벤츠 검사'로 불렸다. 

8년 6개월의 검사생활을 마친 직후 펴낸 (브레이크 없는 벤츠)(1993년)는 20만 부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지난 2011년 3월에는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를 출간했다. 특히 그는 현행 명예훼손죄, 모욕죄, 허위사실 유포죄, 후보자 비방죄 등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제기해왔다.

구영식(ysku)

김용준, 5일만에 총리 후보직 전격사퇴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1-29일자 기사 '김용준, 5일만에 총리 후보직 전격사퇴'를 퍼왔습니다.
朴당선인과 오후 면담 뒤 사퇴결정, 초유의 사태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지 닷새만인 29일 저녁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새 정권 출범을 앞두고 초대 총리 후보가 도덕성 문제로 사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이날 저녁 삼청동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김 위원장이 총리 후보직을 사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윤 대변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여러분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드려 국무총리 후보자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이 기회에 언론기관에 한가지를 부탁드리고 싶다"며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도로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돼 인사청문회가 원래의 입법취지대로 운영되길 소망한다"고 자신의 여러 의혹을 보도한 언론에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이날 오후 사퇴 결심을 하기 전 박근혜 당선인에게 사전 면담을 통해 후보직 사퇴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그러나 인수위원장직 사퇴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윤 대변인은 이에 대해 "인수위원장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 당선인의 결심에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얘기"라고 전했다.

총리 후보자가 사퇴한 것은 이번이 역대 정권을 통털어 4번째이나,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초대 총리 후보가 사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깜깜이 인사' 비판을 받아온 박근혜 당선인에게 적잖은 정치적 타격이 될 전망이나,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청렴 인사들이 중용되는 등 인사 전반에 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낳고 있다.

김동현 기자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특별'사면보다 위험한 박근혜의 '특별'인사


이글은 미디어스 2013-01-28일자 기사 ''특별'사면보다 위험한 박근혜의 '특별'인사'를 퍼왔습니다.
[분석]헌재 '원리' 모르는 법치주의자를 보는 불안감

▲ 박근혜 당선인과 김용준 총리 후보자 ⓒ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함께 종종 게임을 완결짓는 ‘마법’같은 무엇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헌재의 결정을 사회의 심급으로 삼게 된 것은 이른바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결과적 결과물이다. 사회를 삼권분립의 민주적 명분으로 통제하는 이 방식은 그 자체로 체제에 권위를 부여하며, 권력의 권능을 만든다. 이것은 권력의 입장이 아니라 헌법의 결정이라는 체계는 헌재 결정 이후엔 갈등할 수 없단 일종의 불문율로 작동한다.
반대로 사면권은 여전히 남아있는 독재적 통치 구조의 산물처럼 보인다. 사면권 자체가 원래 그런 의미는 아니겠으나, 한국 사회에선 그렇게 작동한다. 체계적으론 권력을 견제의 원리로 분권하고, 헌법에 따른 지배 체제를 확립했지만 여전히 대통령에게 정치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한 수’를 남겨준 셈이다. 사면권은 종종 아니 대체로 그렇게 작동해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 사면권 행사는 사실 아무런 의미도, 특별한 당위도 없다. 그 흔한 ‘국민화합’ 차원이란 설명을 붙이기에도 겸연쩍고 그 외엔 다른 수사를 갖다 붙이기조차 남우세스럽다. 그저 ‘특정’한 측근들을 ‘특별’한 시기에 ‘특수’하게 내보내주는 것의 다름 아니다. 정권을 재창출하긴 했지만 임기 내 도덕성 시비에 휩싸였던 정부가 특히, 정권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핵심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공사’가 통째로 ‘부실’과 ‘부정’의 늪에 빠져버린 지금 대통령이 그나마 알량한 ‘권리’로서 사면권을 행사하려 든다는 것이 그저 꼴 사나울 뿐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제외하곤, 지금 이 사면에 우호적인 집단과 조직은 적어도 표면적으론 없어 보인다. 지금, 정부가 사면하려는 이들은 굵직한 기업인들도 아니고 이 정부에 반하는 입장으로 표적이 됐던 이들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를 가졌던 ‘친구’들을 내보내주려는 것이다. 이게 여론의 눈치가 보이니 엄하게 친박계 몇몇을 끌어들이고 친노계 이광재까지 폭을 넓힌 것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사회 운영 원리, 통치 체계의 근간이 많이 훼손됐단 지적이 높았는데 임기 말 특별사면은 이 훼손의 정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단 것을 가장 노골적으로 웅변하는 풍경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물론 특별사면에 반대한다. 본인 입으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에 뭐라 하는 것은 도의가 아니다”고 말했을 뿐이지만, 대변인들에 따르면 그렇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박 당선인의 의중은 언제나 이렇게 ‘대리’해 전해질 뿐이고, 그렇다는 ‘추정’이 건네질 뿐이다. 언론이 이 ‘대리’된 의중과 ‘추정’되는 입장들을 부지런히 옮기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박근혜=사면반대’의 기억이 남는데 정작 실질적으로 당선인은 특별사면을 막지도, 막으려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향후 박근혜 시대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특별사면’이 없을까?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약속하는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특별사면에 반대했던 당선인 시절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해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을 공산이 커 보인다. 단서는 박 대변인인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했단 사실에서 찾아진다.
앞서 말했듯, 헌법재판소와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통치 체계와 방식을 단적으로 설명해내는 2가지 핵심적 장치다. 헌재는 대통령의 통치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것을 헌법적으로 해석해내는 권한을 갖는다. 그래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마저 헌재에서 결정된다. 법에 의한, 헌법의 권위에 의한 사회 운영 체계이다. 반대로 사면권은 법치 바깥에 대통령이 존재하는 권력임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법의 결정도 대통령이 ‘의지’로 종료시킬 수 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헌재소장을 했던 이를 총리로 불러들였다.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체계의 훼손인데, 더 심란한 것은 이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별로 작동하지 않고 있단 점이다. 이에 대해 헌법학자인 이상돈 교수 같은 이는 “대통령이 준수해야 할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권한을 갖고 있던 헌재소장을 지낸 사람이 총리를 하는 것이 순리에 맞느냐”고 물으며 “이 부분이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의혹보다 더 큰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김용준 지명자의 비리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지만 헌재소장을 했던 이를 행정부 수장으로 ‘강등’시키는 것은 사회적 체계를 훼손하단 비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 당선인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오른지 이제 4개월 밖에 안 된 안창호 헌법재판관을 두고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 검증에 필요한 신상조회에 돌입했다. 물론, 안 재판관도 동의했다. 만약, 현직 헌재 재판관이 검찰총장이 된다면 이 역시 초유의 상황이다.
결국, 박 당선인의 인식론 속에 헌재의 기능이 별로 중요하게 각인되어 있지 않단 것 밖에 다른 설명이 안 된다. 대통령을 견제하는 사회 운영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현격하게 부족하단 것 밖에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헌재소장을 지낸 이를 국무총리로 쓰고, 헌재 재판관을 검찰총장 후보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 권력의 작동에 당사자들 역시 법관으로서의 존재의식보다는 ‘출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언론 역시 박 당선인의 이런 역행적 행보에 가타부타 말을 보태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말 특별사면은 욕하면 된다.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몰염치한 정부가 있을 수 있냐고 말해버리면 그 뿐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권력이고, 어쩌면 심판받을지도 모를 상황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문제는 다르다. 박 당선인은 헌법 체계를 무시하는 듯 한 일방주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87년 체제를 넘어서자’는 담론적 요구가 거셌는데, 박 당선인은 ‘87년 체제’의 정치적 지형을 무력화시키고 있지만 이에 대한 지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여야 인사 모두 "김용준 총리 지명 '부적절'"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28일자 기사 '여야 인사 모두 "김용준 총리 지명 '부적절'"'을 퍼왔습니다.
민주 "박근혜, '나홀로 인사' 벗어야"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로 지명된 김용준 총리 후보자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맡았던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28일 박 당선인의 총리 지명에 대해 "헌법재판소장을 했던 사람이 임명직 공무원을 한다면 헌법재판소의 권위와 지위에 상당히 흠을 입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을 탄핵 심판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대통령이 준수해야 할 헌법을 최종적으로해석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헌재소장을 지낸 사람이 총리를 다시 한다는 게 순리에 맞느냐"며 "그 부분이 (최근 제기된 의혹보다)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김 총리 후보자의 두 아들에 관한 의혹을 문제 삼았다.

그는 "총리 후보자 개인에 대한 비교적 좋은 평가에도 두 아들의 재산문제와 병역문제에 대한 의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청문회 전이라도 솔직히 밝히고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는 "김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박 당선인이 인선기준으로 제시한 법치와 원칙의 확립, 사회적 약자 보호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며 "적당히 넘어가려 한다면 큰 화를 자초할 것은 불보듯 훤하다"고 말했다.

이어 박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인수위 출범 이후 윤창중, 이동흡으로 이어지는 불통, 깜깜이 인사 때문"이라며 "철통보안도 필요하지만 사전검증 없이 부적절한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박 당선인은 나홀로 인사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검증을 거친 인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어리 기자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김용준, '부동산투기+거짓말 의혹' 급확산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128일자 기사 '김용준, '부동산투기+거짓말 의혹' 급확산'을 퍼왔습니다.
"개발정보 사전 입수해 부동산투기 의혹도"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부장판사로 재직중이던 1970년대와 대법관으로 임명된 1980년대 후반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일대의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TV조선)에 이어 (한겨레)도 부동산투기 및 거짓말 의혹을 제기했다.

28일 (한겨레)에 따르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3년 대법관이던 김 후보자는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의 아파트(180㎡)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단독주택(대지 241.3㎡)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대지 520㎡(지분 3분의 1)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밭 1757㎡(지분 2분의 1)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단독주택(대지 674㎡) △경기도 수원시 금곡동 임야 1만7355㎡ △경기 도 안성시 삼죽면의 임야 7만3388㎡ △인천 중구 북성동 잡종지 232.7㎡ △충남 부여의 임야 4만7983㎡ 등 9곳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한겨레)가 이들 9곳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곳은 충남 부여군 남면의 임야 4만7983㎡ 한 곳일뿐이었다. 

김 후보자의 부동산 구입은 유신시절이던 부장판사 때부터 시작됐다. 1974~75년 서울 송파·서초, 경기도 안성·수원 등 4곳의 부동산을 구입할 당시 김 후보자는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사법연수원 교수를 겸하고 있었다. 인천 땅을 구입한 1978년에는 서울남부지원 부장판사를 맡고 있었다. 김 후보자는 심지어 대법관으로 임명된 1988년에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땅과 용산구의 아파트를 사들였고, 1990년에는 은평구의 단독주택을 또 구입했다.

이 가운데 5곳은 김 후보자 본인 및 부인 명의로 구입했고, 서울 서초구의 단독주택과 경기도 안성시의 땅은 두 아들 명의로 구입했다. 구입 당시 두 아들은 6~8살에 불과해 사실상 김 후보자가 실제 구입자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후보자는 대법관으로 임명된 19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땅을 사들였고, 서울의 땅값이 역대 최고에 이른 2002년 이 땅을 팔았다.

또 1975년 매입한 경기도 수원시 금곡동 임야 및 1974년 매입한 서울 송파구의 밭을 사들인 뒤 공공용지로 수용된 것으로 드러나, 개발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 후보자와 가족들이 보유했던 부동산 대부분은 서울에 있었지만, 경기도 수원이나 안성, 인천 등 거주지와 무관한 지역의 땅들도 3곳이나 됐다. 김 후보자의 장남 명의로 1974년 6월에 매입한 경기도 안성의 임야 7만3388㎡를 시작으로 ‘비서울’ 지역 부동산 3곳을 모두 1970년대 중반에 매입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1970년대 중반은 서울이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강남구가 신설되는 등 ‘서울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수도권으로 퍼저나가던 때였다. 당시 서울시 성동구에 속해 있었지만 ‘외곽’으로 통했던 마천동 땅(김 후보자의 부인 명의로 1974년 12월 매입)까지 포함하면 김 후보자 가족들이 보유한 ‘비서울’ 지역 부동산은 4곳으로 늘어난다.

익명을 요청한 법원 출신 변호사는 “김 후보자는 총리 인준 과정에서 재산 문제가 가장 걸림돌이 될 것이다. 대법관으로 임명될 때에도 법원행정처가 재산을 적게 보이도록 액수를 맞추느라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김 후보는 1993년 재산공개때 부동산 보유분에 대해 대부분 모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십억원대 서초동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27일에도 총리실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 후보자가 지난 1993년 재산공개 당시 두 아들 명의의 부동산을 공개하며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계셨던 후보자의 어머니께서 손자들을 위해 매입해 준 것’이라고 이미 밝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부동산투기 붐이 본격적으로 불던 70년대부터 8곳의 부동산을 직접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는 부동산투기 외에 거짓말 의혹에까지 휩싸이면서 국민적 분노와 실망이 급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박태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