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7일 수요일
IFJ회장 "朴대통령, MBC-YTN 해직언론인 복직시키길"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4-16일자 기사 'IFJ회장 "朴대통령, MBC-YTN 해직언론인 복직시키길"'을 퍼왔습니다.
전세계 45만명 가입한 세계적 기자조직
세계기자대회 참석차 방한한 짐 보멜라 국제기자연맹(IFJ) 회장이 16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MBC와 YTN 해직언론인의 복직을 촉구했다.
짐 보멜라 회장은 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식의 성명서를 통해 “해직언론인들의 복직을 위해 나설 것”과 “배석규 YTN 사장의 퇴진과 MBC 후임사장 선출을 포함한 공영언론사의 투명한 사장 선출 시스템 확립으로 언론자유와 독립성을 회복하는 긴급한 조처”를 촉구했다.
국제기자연맹은 1952년 언론의 자유와 언론인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창립된 단체로 현재 104개국 45만명이 가입한 세계적인 국제조직이다.
민주통합당 정은혜 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IFJ회장의 성명을 거론한 뒤 "이 성명서를 통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와 독립성이 훼손되었다는 우려가 확인된 만큼,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 후진국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박 대통령은 해직된 언론인들의 복직과 YTN 배석규 사장의 퇴진, MBC사장의 공백으로 김재철 체제가 계속 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 타개를 위한 대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박정엽 기자
2013년 4월 16일 화요일
"해직 언론인들 절대 기죽지 말라"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4-16일자 기사 '"해직 언론인들 절대 기죽지 말라"'를 퍼왔습니다.
국제기자연맹 회장, MBC·YTN 해직언론인과 간담회... "즉각 무조건 복직돼야"

국제기자연맹 회장, MBC·YTN 해직언론인과 간담회... "즉각 무조건 복직돼야"

▲ 해직언론인 만난 국제기자연맹 회장 한국기자협회(회장 박종률) 주최 '2013 세계기자대회'에 참석중인 짐 보멜라 국제기자연맹(IFJ) 회장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MBC(박성호, 최승호)와 YTN(노종면, 조승호, 우장균 정유신) 해직언론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 권우성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서 안타깝다. 여러분의 해고는 여러분의 실수가 아닌 정치적인 의도에서 비롯됐다. 이 상황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무조건적인 복직이 즉각 실시돼야 한다."
짐 보멜라 국제기자연맹(IFJ, International Federation of Journalists) 회장이 한국 해직언론인들의 즉각적인 복직을 요구했다.
세계기자대회(World Journalist Conference)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보멜라 회장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내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한 해직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국제기자연맹은 현재 100여 개국 60여만 명의 언론인이 가입한 세계 최대의 언론인 단체다.
간담회에는 YTN에서 해직된 노종면·조승호·우장균·정유신 기자와 MBC 해직자인 박성호 기자와 최승호 PD가 참석했다. YTN의 해직언론인들은 2008년 10월 당시 구본홍 사장 선임 반대 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해고됐고, MBC의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MBC 파업 기간 동안 당시 김재철 전 사장에 의해 해고됐다. 이명박 정부 동안 해직된 언론인은 모두 19명이다. 보멜라 회장은 지난 2008년에도 한국을 찾아 YTN 해직사태를 규탄한 바 있다.
"기죽지 말라... 국제기자연맹이 곁에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 해직언론인 만난 국제기자연맹 회장 한국기자협회(회장 박종률) 주최 '2013 세계기자대회'에 참석중인 짐 보멜라 국제기자연맹(IFJ) 회장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MBC(박성호, 최승호)와 YTN(노종면, 조승호, 우장균 정유신) 해직언론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 권우성
해고 당시 YTN 노조 위원장이었던 노종면 기자는 보멜라 회장에게 "지난해 방송사 연대 파업으로 문제가 됐던 사장 중 배석규 YTN 사장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현 정부가 배석규 사장을 해임시키지 않으면 우리의 복직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성호 전 MBC 기자협회장은 "문제의 김재철 사장이 물러났지만 그의 체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며 "방송을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다든지 엉뚱한 곳에 배치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회장은 "방송문화진흥회가 사장을 절차대로 뽑기만 하면 되는데 후임 사장을 선정할 움직임이 전혀 없다"며 "현 부사장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보멜라 회장은 이들을 향해 "긴 시간이 걸려도 결코 실망하지 말라, 기죽지 말라"며 "국제기자연맹은 파업을 하든지 성명을 쓰든지, 여러 수단을 써서 여러분 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국제기자연맹은 이날 오후,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 해직언론인들 즉각 복귀 ▲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 준수 등을 골자로 한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2012년 12월 22일 토요일
해직언론인·쌍용차, 이건 반성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21일자 기사 '해직언론인·쌍용차, 이건 반성해야'를 퍼왔습니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보수가 보수에게|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
과거사 덫에 방향 잃긴 했지만
경제민주화와 복지 수용 등
박근혜 보수는 ‘진화된 보수’
언론자유·노동·환경 부분
보수는 지금껏 굉장히 냉담했다
북 인권에만 목소리를 높였다
교조주의에서 벗어나라
이념을 떠나 큰 그림 그려라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
이상돈(61) 중앙대 교수(법학)는 박근혜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왼쪽 측면에 서 있었다. 박 당선인에게 인혁당 유족을 만나고 유신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4대강 사업을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문화방송) 해고 사태의 매듭을 풀기 위해 박 당선인과 노조 사이의 메신저 구실도 했다. 그는 강성 보수 성향의 캠프에서 무게추 구실을 했다. 20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한시간가량의 인터뷰 내내 휴대전화는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으로 쉴 새 없이 울렸다.-한국전쟁 이후 보수 대 진보의 논쟁은 발전하지 않고 맴돌고 있다. ‘종북좌빨’, ‘보수꼴통’ 비난만 오가고 소통하지 않는다. 보수주의자 입장에서 보수는 진화했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인가?“보수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모든 보수가 다 진화했다고 볼 순 없지만 이제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의 중요성에 대해 상당히 공감한다. 그런 부분에서 보수는 진화했다. 교조적인 보수는 박근혜 정권의 주류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에 기초한 건전한 시장경제 정책을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이 앞으로 합리적 보수가 지향할 방향이라고 본다.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색깔론을 펴지 않았다. 선거 막판에서 엔엘엘(NLL) 수호 의지에 관해 언급한 정도다. 박 당선인은 매사에 진보, 보수를 나누지 말자고 했다. 박 당선인은 이분법에선 탈피한 사람이다.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9월 초까진 광폭 행보를 했다. 과거사 덫에 걸려 방향을 잃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선진통일당과 합당하고 보수를 자칭하는 호남 구세력과 합치며 보수로 불린 면이 있다. 하지만 박 후보는 4월 총선부터 경제민주화와 복지 같은 진보담론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출마선언에서도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를 약속했다. 강도 높은 검찰개혁 공약도 내걸었다. 경제·사회 정책은 보수와 진보 간 견해 차이가 있지만, 검찰개혁, 4대강 사업에 대한 검토 약속 등은 언론이 보는 것보다 법치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박 당선인을 만든 세력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이들보다 더 강경 보수, 구태 보수세력이란 비판이 있다.“당선 전후가 다를 것이다. 박 당선인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초기 10년 동안은 용인술이 굉장히 훌륭했다는 평을 들었다. 박 후보가 이 시대와 정부를 잘 이끌 새 사람을 발굴해서 기용할 것으로 본다.”-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을 표방한다. 막상 1년여 비대위원으로서 겪어본 새누리당, 보수주의자로서 바라본 새누리당은 어땠나?“새누리당의 구성원은 다양하다. 남경필, 김세연 같은 쇄신파 의원부터 시장경제에 몰입한 의원들까지 다양하다. 내가 보기에는 의원들이 의사 표현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다. 아직 초선 의원들이 많아 그런지도 모르겠다.”-이번 대선에서 세대별 투표가 고착화되었다. 보수주의자로서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나?“글쎄… 세대별 투표가 더 심해진 것 같지는 않다. 외려 박 당선인이 총선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그런 부분은 상당히 불식시킨 것 아닌가. 앞으로 박 당선인이 젊은층의 관심사인 일자리, 경제회복에 대해 업적을 내면 젊은층도 상당히 새누리당에 호응할 것으로 본다.”

-이번 대선은 ‘보수 대 진보’ 총결집 양상을 띠었다. 진보와 보수 쪽에 하고 싶은 말은?“민주주의, 언론자유, 법치 그리고 환경·여성·노동 등을 보수가 이념 문제로 봐선 안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새 정권과 새누리당이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한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역사를 보는 시각, 시장과 정부의 관계를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기득권 세력의 구태, 친일 잔재라는 식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수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서로 경쟁할 건 경쟁하고 대화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박근혜 당선인에게 당부하고픈 말은?“박 당선인은 전에 없이 깨끗한 경선과 대선을 해서 당선이 됐다. 빈 접시처럼 누구에게도 진 빚이 없다. 빈 접시다. 초심에서 큰 그림을 그려줬으면 한다. 인사문제를 포함해서 말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특히 듣기 거북한 말을 하는 그런 사람이나 집단의 의견을 더 경청해야 한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문만 열면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다. 집무실과 비서동이 멀다. 청와대의 물리적 환경이 소통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하는 면이 있는데 그런 부분은 유념해둬야 한다.”-새 정부에서 진보-보수가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풀어야 할 건가?“보수는 그간 북한 인권 문제엔 목소리를 높였으나, 국내 언론 자유나 노동·환경 문제엔 굉장히 냉담했다. 이것 역시 넓은 의미의 인권 아니냐? 해직언론인 문제, 쌍용차 문제 등도 마찬가지다. 이건 반성해야 한다. 진보는 이와 또 반대였다. 서로 이런 점은 탈피해야 한다.”-보수의 길을 묻고 싶다.“보수는 교조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 경제도 마찬가지고 사회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고 북한 문제를 푸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인 화해의 문제에 관해 좀더 마음을 열어야 한다.”-진보학자들과 함께 줄곧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해왔다. 반면 박 후보는 4대강 사업에 대해 평가를 미뤘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사업이 이제 끝나버렸다. 그러나 계속 논란이 있다. 앞으로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위원회 등을 꾸려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계속 부작용이 드러나고 안전성 문제 탓에 보수비용이 들고, 자전거길·공원 등도 황폐화된다면 사심없이 객관적 재평가를 하고 그야말로 ‘제로베이스’에서 어찌 할 것인지 중지를 모아야 한다. 4대강에 설치된 보 등 시설물 철거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이사람] “대선후보들 ‘언론장악 않겠다’ 선언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19일자 기사 '[이사람] “대선후보들 ‘언론장악 않겠다’ 선언해야”'를 퍼왔습니다.

김서중 교수
언론정보학회 차기 회장 김서중 교수
집권뒤 ‘공공성 강화’ 실천하도록
MB정부 해직언론인 복귀도 시급
‘특혜 종편’ 지상파와 동일규제를
“대선 후보들은 언론이 장악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한국언론정보학회 차기 회장으로 최근 선출된 김서중(52·사진)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18일 언론학자로서 대선 후보들에게 바라는 바를 이렇게 말했다.김 교수는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을 지내며 언론과 사회 개혁에 앞장서 온 중견 학자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지금까지 자행된 정권의 방송 장악 사례에 대해 실질적으로 평가하고, 후보들이 앞으로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말로는 ‘방송의 공공성 강화’를 역설하지만, 정권을 잡으면 언론을 ‘내 편’으로 만들려는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는 권력의 속성을 고려하면 지금 공개적인 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그는 또 “방송 규제기구의 장이나 방송사 사장을 선임할 때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는 ‘낙하산 인사’를 더는 해서는 안 된다. 언론의 공공성을 실현하고 내적 자유 보장과 정치적 외풍에 꿋꿋이 맞설 수 있는 사람을 사장으로 뽑아야 언론과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김 교수는 정권의 언론 장악에 저항하다 해직된 언론인들의 조속한 원상 복귀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정권의 눈치를 본 언론사들이 비정상적 방식으로 징계를 한 피해자들을 원위치시켜야 한다. 부당하게 해임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등도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그는 개국 1주년을 앞두고 있는 종합편성채널(종편)에 대한 특혜 문제도 해결 과제로 꼽았다. “지금처럼 종편에 의무송신 지위를 허용한다면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에 맞게 지상파 방송과 같은 수준의 규제가 행해져야 한다. 종편이 이를 받지 못하겠다면 그들에게 베풀고 있는 황금채널과 직접광고 등 모든 특혜를 거둬들여야 한다.” 그는 “지상파와 달리 광고 직거래를 하는 종편은 프로그램 단위가 아닌 기업 규모에 따른 광고비 총액제로 시장 질서를 깨뜨리고 있는데 이런 교란 행위에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며, 종편들이 조·중·동 신문 영향력을 내세워 기업들에 무리한 광고 요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2012년 8월 6일 월요일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결성과 활동 언론과 권력 (56)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8-06일자 기사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결성과 활동 언론과 권력 (56)'을 퍼왔습니다.

▲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현판식(1983년 9월 30일), 왼쪽이 김근태 의장, 오른쪽이 장영달 부의장.
전두환 정권은 언론 통폐합과 언론기본법을 통해 여론을 권력에 유리하게 조작하는 길로 치달았다. 그러나 제도언론을 장악한다고 해서 학생, 농민, 노동자, 빈민, 문화예술인 등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는 없었다. 특히 1980년의 5월 항쟁이 표면적인 패배로 끝난 뒤 많은 대학생들은 사회 변혁을 위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학생의 상징처럼 되어 있던 배지를 떼어 던지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단순히 기층민중을 계몽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면서 아픔을 나누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젊은이들이 대학가와 노동 현장에서 치열하게 일하면서 싸우던 1980년대 초반에 재야의 기성세대는 전두환 정권의 철권정치에 짓눌려 과거의 투지를 되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 해 넘게 계속되던 그들의 침묵은 1983년 9월 말에 깨어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결성이었다. 1960년대 후반에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반군사독재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중심 조직이 필요하다고 보고 뜻을 같이 하는 청년들을 모은 것이었다. 조성우, 이해찬, 이범영 등 진보적 청년들은 그해 9월 30일 민청련 창립대회를 열고 김근태를 의장으로 추대했다.
민청련은 당대의 현실을 ‘민족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으로 파 악했다. 또 민청련의 주체로서 민주청년들의 역사적 임무는 ‘민중운동의 흐 름 속에서 양심적인 지식인, 종교인, 정치인, 노동자, 농민들과의 연대를 강 화하면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새로운 사회 건설에 온몸으로 매진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212~213쪽)
민청련은 5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그 뜻을 이어받는 사업을 펼치는 한편 농민, 노동, 종교, 언론 등 부문운동을 함께 묶어 강력한 반군사독재 전선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1984년 3월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이하 협의회)’가 결성되었다. 1980년 여름 신군부의 언론인 대량 해직 때 현장에서 쫒겨난 김태홍, 노향기, 이경일, 홍수원, 정상모, 고승우, 현이섭, 이영일, 박우정, 표완수 등 여러 언론사 출신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뭉친 것이다. 1975년 3월 동아·조선일보사에서 해직된 언론인 145 명이 참여한 동아·조선투위에 이어 대규모 재야언론단체가 태어난 것이었다.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는 ‘창립선언문’에서 ‘민주화는 조속히 실현되어야 하며 언론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국민 각계각층의 침해당한 생존권에 대한 정당한 회복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부당해직된 언론인들은 즉각 원상회복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1989년 6월 22일자 2호에 1980년 해직언론인 명단을 싣고, 전두환 정권 시기에 본인의 의사에 반해 언론사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협의회는 8월 18일 실행위원회를 열어 회장에 최일남(전 동아일보 문화부장), 총무에 최형민(전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을 뽑고 부산·경남지회 등 전국 8개 지회의 집행부 명단을 발표했다.
협의회는 9월 8일 전국 지회장 회의를 열고 그해 정기국회 중 특별법 제정 을 위해 해직언론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허문도, 이상재, 이원홍, 권정달 등 해직원흉 5인을 해직언론인 전체의 이름으로 고소하기로 했다. 또한 특별법 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여·야당 총재와 원내총무, 그리고 국회 문공 위원 등을 직접 면담하고, 필요시 해직언론인 가족까지 동원하여 원상회복 촉구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후 최일남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협의회는 ‘해직언론인 원상회복 특별법 제 정 촉구 서명운동을 벌여 해직언론인 526 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어 협의 회 의장단은 여·야 당직자와 국회 문공위원장 및 위원들을 면담해 특별법 입법을 촉구했다. (·····)
협의회의 줄기찬 노력이 결실을 맺어 10월 23일 야 3당과 무소속 의원 165 명은 80년 해직언론인의 보상 및 복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국회 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당시 여당인 민자당의 반대로 상정되지 못 했고 이후 3당 합당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고승우, ‘6공하의 80년 협의회 투쟁’, , 224쪽)
협의회가 1990년 2월 19일에 발표한 성명서는 1980년 여름의 ‘언론인 대학살’ 이래 해직언론인들이 어떤 고난을 당하면서 어떻게 활동해 왔는지를 여실히 알려준다.
참으로 길고도 서러운 세월이었다.
1천 명이 넘는 언론인들이 전국의 신문·방송사에서 해직당한지 어언 10년, 그동안 우리들은 당국의 감시 아래 생존권을 짓밟혀 왔으며 몇몇 회원은 해직의 충격과 상처로 유명을 달리했다.
우리는 88년 11월 전두환 씨의 사죄와 노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원상회복 의 그날을 기다려 왔다. 그러나 공무원뿐만 아니라 정부 투자기관·은행·증 권회사 직원 등에 이르기까지 ‘해직공직자 특별법’에 따른 보상 절차가 완 결됐지만 우리 해직언론인들만은 아직도 7백 명 이상이나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정기국회 때 통과됐어야 할 ‘80년 해직언론인 복직·보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정부·여당의 억지논리에 부딪혀 빛을 보지 못했다. (·····)
누가 뭐라 해도 80년 언론인 대학살의 본질은 전두환 씨를 정점으로 한 5 공 핵심들이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저항세력을 제거하려는 첫 시도였다.
이 같은 사실은 국회 언론청문회에서 허문도를 비롯한 수많은 증인들에 의 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민정당은 해직사태의 책임이 언론사에 있 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았고 해직언론인은 사기업체의 피고용자이므로 정부 가 보상해 줄 수 없다며 억지논리를 펴고 있다. (·····)
민주사회는 언론자유의 확고한 보장 위에서만 존립한다. 모든 독재정권이 예외 없이 언론자유를 탄압하고 정의로운 언론을 박해하는 것은 언론이 자 유로우면 독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아·조선 사태 및 80년 해직언론인들의 원상회복은 잃어버린 언론정신의 회복이자 민주언론 실현의 시발점이다.
한국언론사에 오욕과 수치로 얼룩진 한 시대를 청산하고 참언론, 새언론의 이정표를 마련하자.
그때 한국언론은 거듭나고 조국의 민주화 기반도 튼튼해질 것이다.(앞의 책, 225~227쪽)
한국기자협회는 1991년 1월 17일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해직언론인 원상회복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추진위는 1차 사업으로 1970년대 이후 언론인 해직사태의 진상을 밝히는 백서 발간 작업을 시작했다.
1993년 4월 26일, 현역 언론인 5천여 명이 서명한 청원서가 국회에 제출 되었는데, 그 내용은 75·80년 해직언론인 복직 및 보상기준 등을 명문화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해직언론인 원상 회복을 위해 해당 언론사들을 상대로 중재를 하겠다고 약속한 뒤 성의 있 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1998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해직언론인 원상회복에 관한 법률은 제정되지 않았다. ‘민주 정부 10년’도 해직언론인들에게는 냉담하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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