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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5일 화요일

오늘도 빈곤 쳇바퀴…공공부조·복지 결합이 출구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3-04일자 기사 '오늘도 빈곤 쳇바퀴…공공부조·복지 결합이 출구다'를 퍼왔습니다.

지난해 12월2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소재 고물상 ‘한길자원’에서 한 노인이 실어온 고물을 내리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월3일,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 보금자리주택지구 안에 있는 철거민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을 한 철거민이 지나가고 있다. 구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3기획 격차사회를 넘어] 밀려난 삶의 공간 ⑧취재를 마치며

고물상·철거촌·사내하청 업체 등
양극화 현장 돌며 가슴 답답했다
취약한 공공부조탓 생계 위협받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데
약자에게 노동3권은 ‘먼나라 얘기’

정치권엔 복지 부문별 대변자 없고
제구실 못하는 노동조합도 큰 문제
결국 해결책은 우리사회 모두의 몫
사회안전망 확충에 다함께 나서야
‘희망의 새시대’는 과연 언제 올까오건호

(이하 오) 7회에 걸친 기획 시리즈를 읽는 동안 너무 가슴이 메었다. 기존의 르포 방식을 넘어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심층적으로 다루다 보니 입체적으로 조감한 듯하다. 임금 소득이 얼마라는 등의 수치로 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공간 즉 구조를 이해하다 보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그 좌절감을 간접체험할 수 있었다. 아쉬움도 있다. 기사는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느껴진 반면, 전문가의 진단이 너무 당위적인데다 구체적이지 못했다. 문제는 심각한데 제도 개선안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꼭지별로 다시 한번 짚어보자.

전종휘(이하 전) 첫회에서 고물상을 다뤘다. 현장의 폐지수집 노인들을 보면, 실제 벌이가 없어도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돈을 벌게 되면 기초생활수급비가 중단되거나 깎인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듬지 못하는 딱딱한 복지 시스템이다. 대부분의 고물상 노인은 “노느니 일한다”고 하지만, 고물일을 하지 않고는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오 어르신에게도 노동이 필요하지만, 취약한 공공부조 때문에 강제적으로 극한 생계로 몰린다는 게 문제다. 이들에게 적정한 기본생활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예산 확보는 자연증가분 정도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 어르신들 대부분 질병을 앓고 있다. 취약한 의료보장제도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노년층은 그들을 대변하는 집단이나 사람들도 없는 소수자 주변 집단이다.

이정국(이하 이) 두번째로 찾아간 곳은 경기 구리의 갈매마을 철거촌이다. 기사가 나간 1월8일 다시 철거용역이 들이닥쳤고 주민 4명이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왜 이런 문제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가.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주거에 대한 근본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엘에이치공사)가 적극 나서야 한다. 소유주나 세입자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정책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것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현장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잘 알고 있을 거다. 철거문제 해결을 위해선 공공주체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현대차 아반떼 생산라인 하청노동자 편도 흥미롭게 읽었다. 정규직 조합원의 항의는 없었나?

김선식(이하 김) 정규직 노조의 항의 전화를 여러차례 받았다. ‘(한겨레)가 노동자를 분열시킨다’는 항의도 들어왔다. 그런 쪽으로 읽힐 수는 있으나, 기사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기본적으로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현대차 회사 쪽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크다.

 예상보다 정규직 노조의 항의가 셌다는 건가?
 그렇다. 기사를 쓰면서 기대한 것은 ‘소수라도 이런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겠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마주보고 얘기하면 풀 수도 있을 텐데 안타깝다. 이번 기획 시리즈 가운데 현대차 하청노동자 편이 아픔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한 것 같다. 생생하게 다가왔다.
 직접 공장에 가보니 1990년대 후반에 공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당시 ‘사내하청’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다고 하더라. 10여년 사이에 비정규직 문제가 일상화돼버린 것이다.

지난달 19일 오후 오건호(오른쪽에서 둘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과 <한겨레> 신년기획 ‘격차사회-밀려난 삶들의 공간’을 취재한 기자들이 이번 기획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관계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넓게 보면 대한민국, 작게는 비정규직 문제를 의제로 삼는 정당·시민사회 등의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4회에서는 아동복지를 다뤘다.
 아이들이 버려지는 건 대부분 가난이라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경기북부 일시아동보호소에 있는 아이들 40여명 가운데 한두명 빼고는 대부분 경제적 최하층에 속했다. 더 큰 문제는 버려지고 난 이후다. 한번 밀려나면 원상회복이 힘들다. 당시 포털의 메인화면에 기사가 노출돼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 이른바 ‘선플’이었다.
 결국 부모의 문제다. 부모의 질병을 돌보고 일자리 제공을 하지 못하는, 두텁지 못한 사회안전망이 원인이다. 고물상 어르신들이 극심한 생계형 노동으로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사에 등장했던 혜진(가명)이의 경우도 이런 상황이다. 결국은 부모가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 복지의 손길이 제대로 미쳤더라면 혜진이의 두번째 버려짐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10년부터 ‘보편적 복지’ 논쟁이 인 뒤 모든 사회복지 이슈가 보편적 복지에 쏠리다 보니 공공부조 쪽이 방치되고 있다. 정치권에 각 복지 당사자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골고루 배치돼 있지 못하다 보니 정치적인 목소리를 못 낸다.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격차사회 기획을 진행하면서 생각한 전반적인 기조는 크게 두 가지다. 경제사회적 위치에 상관없이 공정한 출발을 할 수 있는 사회, 또 한번 넘어져도 패자부활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라는 두 가지 상이다. 5회에서는 패자부활이 막힌 사회를 택시라는 공간을 통해 보려고 했다. 사회구조도 문제이지만 제구실 못하는 노조도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구조다. 답답했다.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사회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시민들이 공유해야 한다. 택시를 줄여야 한다면 그 비용은 사회가 부담하는 게 옳다. 택시 노조 역시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청년 실업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서울 노량진 고시촌의 피시방에도 갔다. 대부분 불안정한 상황이다. 인터뷰한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은 ‘계획을 세우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불안정한 상황을 빨리 탈출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엿보였다.
 노동시장이 대단히 불안한 탓에 생기는 문제다. 좁은 문틈으로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도태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피시방에 취업준비생 등이 몰리는 건 노동시장 진입 구멍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풀기 위한 방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에 시달리는 하청업체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찾아간 곳은 서울 성수동 제화업체다. 상품권 강매와 어음 지급 관행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개 업체라도 단결을 해서 저항하고 정당한 요구를 하는 등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협상력을 내는 조직이 없다. 제화 노동자들도 노동자성을 확보해 4대 보험 가입, 산재 인정 등을 받아야 하는데, 노동자들도 많이 파편화된 상태다.
 7개 현장을 요약하자면, 탈출구 없는 구덩이 속에 빠져서 좌절과 분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출구를 넓혀주고 사다리를 놓아주어야 하는데, 한계상황 속에서 고통이 점점 세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불안과 파탄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에선 생애주기 복지를 얘기하지만 아동·청년·노동자·어르신까지 모든 계층의 생애주기 파탄 상태가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본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당사자들이 나서는 것이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당사자들이 해결에 나서기에는 문제가 너무 구조적이고 누적돼 있다. 해결책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공공부조와 보편복지가 결합해 최소한의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것이다. 이에 따른 제도개혁과 재정확충을 계속 논의해야 한다. 비정규직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 계약해지의 공포가 기다리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권이 보장돼야 노동권과 그에 따른 조직권을 주창할 수 있다. 노동의 권리를 온전히 주창하기 위해서도 복지가 필요하다. 이것이 노동과 복지의 결합이다.
전 두터운 복지로 사회 약자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돼 있지만, 그걸 행사했을 때 오는 경제적 불이익이 없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강한 복지가 강한 노동을 만든다. 노동시장에서 심각한 차별을 없애면 새롭게 진입하는 청년들이 좁은 하나의 산으로만 올라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대학입시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안정화와 격차 해소가 매우 중요한 이유다. 경제민주화도 다시 논의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실질적 결정권자는 기업이다.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핵심 권력인 시장을 정치의 힘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치의 힘을 빌려 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경제민주화다. 나락에 빠진 사람들이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출구를 만들어 나가는 해법이다.
 시장의 판단으로만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길 기다리는 건 힘든 상황이다.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시장의 폐허 속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복지로 메우려고만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 슬로건을 ‘희망의 새 시대’로 정했지만, 복지공약 수정을 봐도 두터운 복지와 거리가 있을 것 같다. 일자리 안정과 경제민주화 부분은 처음 공약부터 미흡했다. 조각 명단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프로그램을 봐도 성장을 기본 축으로 하는 기존 정책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 우려가 크다. 결국 세력의 문제라면, 격차사회 기획에서 다뤘던 주체들이 전부 나 자신과 이웃의 문제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서로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밀려난 사람들의 정치적 보수화도 되짚어 봤으면 한다. 피시방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어떻게 하든 노동시장에 진입하려 발버둥치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인 경우가 많았다. 기사의 주인공인 37살의 자칭 ‘고시폐인’은 좋아하는 정치인이 노회찬과 박근혜였다. 현실을 깨부수고 싶은 열망은 있는데 선택은 양극단이었다.
 고물상 기사에서 한 등장인물은 ‘민주화운동은 보상하는데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다 다친 나 같은 사람은 왜 아무런 보상 안 해주냐’는 불만을 제기했다. 피시방에서 만난 젊은이들도 ‘지금 기성세대들이 너무한다’는 반감이 많았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진보로 연결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진보든 개혁이든 하나의 사회를 바꾸는 설계가 보여야 한다. 이 설계도가 신뢰를 보이지 않게 되면 그들은 자신의 반감 속에 머무르거나 포퓰리즘적 정치인에게 기대게 된다.
 문제의 당사자들을 조직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조직화된 것은 정당·노조·엔지오·대책위원회 4개뿐이다. 시민사회는 너무 일반적이고 노동조합은 사실상 기업 안에 존재한다. 기존 조직화 방식은 매력이 떨어진다. 지역성과 함께 공유되는 의제를 가진 주체적 세력화가 필요하다. 유니언 형태를 주목해야 한다. 청년유니온이 대표적인 예다. 마을공동체나 협동조합의 경우도 보면, 지역적 동질성이 여러 주체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다고 본다. 지역조합·유니언 등의 세력화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기획은 밑바닥 현장을 들여다보는 탁월한 르포였다. 다음번에는 밀려난 사람들을 불러와서 직접 목소리를 내게 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어떨까. (끝)

전종휘 이정국 김선식 기자 symbio@hani.co.kr

2012년 12월 4일 화요일

경제민주화? 문제는 빈곤이야!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04일자 기사 '경제민주화? 문제는 빈곤이야!'를 퍼왔습니다.
[김윤태 칼럼](8) "보수세력 집권하면 복지국가 비전 사라진다"

세계 최초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조사한 나라는 어디일까? 1889부터 1903년까지 영국에서 빈곤에 관한 실태조사가 실시되어 (런던 시민의 생활과 노동)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막대한 돈을 들인 이 조사는 영국 정부가 실행한 것이 아니었다. 찰스 부스라는 리버풀 출신 성공한 기업가가 사재를 털어 실시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다

찰스 부스가 런던의 빈곤 실태를 조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인구조사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매우 정치적인 목적이다. 그는 당시 맑스주의자들이 모인 사회민주연맹(SDF)의 지도자 헨리 메이어스 하인드먼이 런던의 빈곤계층이 25%에 달한다고 주장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당대 최고로 부유한 도시로 꼽히던 도시 런던에 빈곤계층이 많다는 주장을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맑스주의자들이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조사의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1889년 발표한 첫 번째 보고를 보면 런던 동쪽 이스트앤드 주민 가운데 약 35%가 빈곤상태에 살고 있었다. 1891년 발표한 두 번째 보고를 보면 전체 런던 주민의 빈곤율이 31%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맑스주의자들이 주장한 비율보다 더 높았다.

찰스 부스가 고용한 조사원들은 질문지를 들고 런던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고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가구 당 한 달 수입과 가족의 수에 대해 묻는 한편, 식구들이 하루 동안 먹는 빵, 우유, 설탕의 양을 조사하였다. 부스의 보고서는 약 4-5인 정도의 한 가구당최저생계비를 가리키는 용어로 '빈곤선'(poverty line)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는 당시 화폐 단위로 10 내지 20 실링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뉴시스

높아만 가는 한국의 빈곤율

한국 정부가 '빈곤선'을 정기적으로 계측하기 시작한 시점은 1999년부터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엄청난 사회적 고통을 만들면서 빈곤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면서 빈곤선을 측정하는 지역과 대상이 서서히 확대되었다.

공식적 빈곤율의 측정을 위해 농어촌 지역이 포함된 시기는 2003년이었으며, 1인 가구가 포함된 시기는 2006년 조사가 실시 된 이후이다. 하지만 아직도 농어가 가구는 빈곤율의 측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빈곤의 실태를 완전하게 파악하여 시기별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전반적인 추이는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1997년 한국 경제를 강타한 외환위기는 2000년에 이르러 김대중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종료가 선언되었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극복 이후에도 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을 가진 인구를 가리키는 '상대적 빈곤율'은 예전에 비해 더 높은 상태로 남아 있다. 현재와 같은 빈곤의 범위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에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 빈곤율인 11.1%를 상당히 웃돌고 있다. 한국은 미국, 일본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한국의 빈곤율은 대륙 유럽 국가와 북유럽 국가의 2배에 이른다.

다른 한편 소득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 0.31을 약간 상회하였다. 지니계수는 가구당 소득을 측정하기 때문에 소득이 적은 노인 가구의 수가 많을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 노인 인구보다 적은 노인 인구를 가진 한국의 지니계수는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P90/P10 배율은 4.73으로 OECD 평균 4.16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특히 최상위와 최하위 소득 분위 사이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위 1%의 부의 집중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의 연 소득금액 1억원 이상을 가진 상위 1%의 인구는 약 18만 명 정도이며, 전체소득의 16.6%를 차지한다. 이는 미국의 17.7% 다음으로 세계 2위이다.

가난한 삶을 돕는 사회정책

19세기 말 영국의 찰스 부스는 사회조사를 실시 한 후 사회주의로 기울지는 않았지만,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1902-3년 발표한 찰스 부스의 세 번째 보고서는 '제한적 사회주의'를 위한 노령연금의 도입을 주장했다. 부스는 그러한 개혁만이 영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찰스 부스의 보고서는 엄청나게 커다란 반응을 일으키고, 런던의 빈곤층이 증가하는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커졌다. 결국 찰스 부스의 사회조사는 빈곤계층을 줄이기 위한 영국 정부의 사회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도 빈곤에 맞서 싸우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빈곤의 해결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립심, 가족의 지원, 사회적 신뢰와 상호부조, 기업의 고용 창출과 사회적 책임의 이행도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 차원에서 빈곤위험을 예방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제도를 설계하고 구체적 정책을 실행할 책임은 바로 국가가 가지고 있다. 빈곤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 결과이거나 게으르고 무능한 개인이 자초한 불행이 아니라 바로 사회 제도의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볼 때 국가의 적극적 역할은 사회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율은 약 8%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한국의 낮은 수준의 복지는 빈곤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취약집단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갈등의 비용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2009년 쌍용자동차의 2646명의 노동자의 정리해고에 맞선 파업 현장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참혹한 고통을 겪었으며, 그 후 수년 동안 22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애석하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도 있었다.

이들의 불행은 그저 기업과 노동조합의 책임이 아니다. 바로 국가와 우리 모두를 포함한 국민이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의 책임이다. 우리가 더 좋은 국가를 만들었다면 이들의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가 잘 만든 복지제도는 사회평화와 국민통합을 가능하게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모험에 도전하며 창의성을 발휘하고 더 많은 행복을 누리게 만들 것이다.

삶의 질을 높이는 공약이 사라진 대선

최근 한국의 대선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한반도 평화를 내세운 후보들의 공약이 가득하다. 그러나 거대담론이 난무하지만 구체적 법안과 재원 마련에 관한 계획은 분명하지 않다. 특히 대선 후보들이 빈곤율을 얼마나 낮추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이명박 정부는'747 공약'을 내걸고 경제성장율 7%와 1인당 국내총생산 4만 달러를 제시했지만 모두 사기극로 끝이 났다. 유럽의 미국의 선거에서 정치인이 성장률과 국내총생산을 내세우는 나라는 없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일자리를 몇 개 만들고, 사회보장예산 얼마만큼 늘리며, 실업율과 빈곤율을 어는 정도 줄일 것인지 아주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제시한다. 그러나 한국의 선거는 아직 그런 공약이 없다.

2012년 대선은 한국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의 자유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진행되면서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삶은 매우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앞으로 보수세력이 집권한다면 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국가의 비전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한국 복지국가 5개년 발전계획이 필요

진보세력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5년 이내에 고용율을 75% 수준으로 올리고, 빈곤율을 10% 이하 수준으로 낮추고, 연구개발투자를 2배 이상, 직업훈련 예산을 3배 증액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닥쳐올 경제위기를 대비하고 사회 대통합의 여정을 시작하는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2012년 대선에 진보세력이 집권한다면, 새로운 대통령은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취임 직후 대통령 직속 '복지국가위원회' 설치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와 대화를 통해 국회의 모든 정당, 시민단체를 포함한 초당적 합의 기구로 복지국가위원회를 구성하여 향후 10년 이내에 성숙한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사회협약 정치를 추진해야 한다. 노사정 3자의 사회적 협의 기구의 운영을 강화하고 교육, 의료, 복지의 개혁을 위한 노조와 기업의 상생협력과 사회평화의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진보정권이 집권 6개월 이내에 새로운 복지국가위원회가 '한국형 복지국가 5개년 발전계획'으로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민적 합의를 만드는 꿈을 생각해본다. 10년 후 2차 5개년 계획이 완성되어 성숙한 복지제도를 갖는 한국 사회를 상상해본다. 부디 내 꿈을 이루는 날이 바로 12월 19일이 되기를 간절하게 기대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진짜 대안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18일자 기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진짜 대안은?"'을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빈곤의 예방과 완화를 위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과제

왜 복지국가인가?

오늘날처럼 '노동'의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진 시대는 없는 듯하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과거 봉건시대 영주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노동력인 농노를 보호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제 노동자는 핵심인력 일부를 제외하고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d Bauman, 2004)이 지적한 것처럼 '소비주의' 시대에서 '근로 윤리'는 기만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언제고 잘릴 각오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성실성은 오히려 억울한 감정과 갈등만을 불러일으키는 불필요한 덕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은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아니라 돈을 번 수단이 어찌되었든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을 뽐내는 이들이다. 나머지는 그 유능한 몇몇 사람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배를 곪지 않을 수 있는 가련한 이들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민주주의의 권리는 몇 년에 한 번씩 선거가 있을 때만 잠깐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래서한국에서 복지국가는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노동의 가치와 인간성을 회복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에서는 적어도 땀 흘려 일을 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현실은 일을 해도 미래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아야 할 만큼 열악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자력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전임으로 학원 강사 일을 하는 친구는 졸업 후 3년 동안 열심히 일했음에도 수중에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상황은 중산층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임금을 비교적 많이 받아도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 교육, 주거, 의료 등의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이원화로 인해 패자부활이 힘들어 자신과 자녀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복지국가가 가장 발달한 스웨덴의 경우 교육, 주거,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를 모든 이에게 충분히 제공하므로 비교적 낮은 수준의 임금으로도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왜 보편적 복지국가인가?

빈곤의 예방 및 완화의 관점에서 보편적 복지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빈곤을 효과적으로 예방·완화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여 복지재정을 줄이고 빈곤을 완화한다는 식의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을 채택한 미국과 미국식의 복지국가 퇴보를 경험한 영국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 가정하고 있는 빈곤층에 대한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 미치는 정치적 효과가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첫째,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빈곤층을 빈곤층이 아닌 인구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수한 집단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즉, 빈곤층을 비빈곤층 인구와는 애당초 다른 특징(선천적 능력, 행동적 특징, 가족구조 등)을 가진 정태적 집단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빈곤에서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도 등의 발전도상국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통틀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빈곤층이 결코 정태적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Krishna, 2010). 빈곤으로의 추락과 탈피는 매우 흔한 현상이다. 빈곤위험이 일부 집단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일부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낮은 조세, 규제 완화, 작은 정부를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 3년 동안 OECD 국가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조사는 조사 이전에는 빈곤하지 않았던 인구의 5%가 매년 빈곤층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매년 빈곤인구의 50%는 빈곤 탈피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보다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복지국가가 매년의 빈곤인구뿐만 아니라 빈곤의 지속 역시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OECD, 2001).

결국 빈곤을 예방하는 기능이 있는 보편적 복지 정책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 빈곤층만을 '선별적'으로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이야기는 단기적인 대증 요법이 되기 십상이다.

둘째,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필연적으로 빈곤층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집중적' 지원의 본래 생각과는 반대로 빈곤의 예방과 완화에 투입되는 자원의 총량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1960년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에서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다.

현재 미국에서 '복지'(welfare)라는 단어는 마약에 중독된 흑인과 무책임하게 아이만 낳는 한모가구 등 일부 빈곤층만 수급 받는 '공공부조'와 같은 개념으로 매우 수치스러운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미국인의 심성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납세자와 수혜자가 명백하게 분리되는 시스템 하에서 납세자의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Skocpol, 1990).

아무리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라고 해도 그것은 임의적이고 일시적인 자선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 누군가의 지속적인 세금부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는 매년 7조 원이 넘는 예산이 조세에서 충당되고 있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제도가 발달하지 않은 조건에서 납세자는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여사보험에 가입하거나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려 할 것이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세금부담을 줄여 개인적으로 각종 위험에 대처하길 바란다.

그런데 적지 않은 세금부담을 짊어지는 중산층 납세자들은 공공부조와 같은 '선별적' 복지제도를 통해 이득 볼 게 없다. 따라서 선별적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가 낮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래도 전체 인구에 비해 선별적 복지제도의 수혜자들 가운데 한부모, 소수인종, 장기실업자들의 일부 집단이 과대 대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선별적 복지'에 대한 인식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선별적인 복지제도를 강조하는 국가의 복지 총량(사회보험, 공공부조, 복지서비스 등에 투여되는 자원의 총량)은 보편적인 복지제도가 발달한 국가의 복지 총량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오히려 빈곤층이 향유할 수 있는 자원도 적어지는 '재분배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Korpi and Palme, 1998).

빈곤을 예방·완화하기 위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과제

현재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5% 수준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 권에 속한다.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적 빈곤율'도 약간의 등락에도 불구하고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거칠게 추산하면 약 500만 명이 절대빈곤, 약 750만 명이 상대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그리고 상식과는 달리 소득이 아니라 자산을 기준으로 측정한 빈곤율은 더 높게 나타난다(남상호, 2007, 2011).

빈곤의 예방과 완화가 복지국가의 일차적 과제라 한다면, 이는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이다. 그렇다면 빈곤을 예방·완화하는 데 있어 역동적 복지국가가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주로 세대별 빈곤 위험의 전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현재 빈곤이 가장 심각한 집단은 노인이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이 늘어나고 고용상황이 악화되면서 자녀의 용돈에 의지하던 노인세대의 빈곤율이 급상승했다. 외환위기 극복 이후에도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열악한 상황은 개선되지 못 하고 공적 지원의 확대는 사적 이전의 감소에 상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현재의 근로연령세대 역시 상당수는 노인세대가 되어 빈곤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근로연령세대 인구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또, 120개월의 기여기간을 충족해도 납부액이 적어 충분한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도 빈곤율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은 근로연령세대의 빈곤위험과 노인세대의 빈곤위험이 악순환하는 데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급속한 노령화와 연금재정의 팽창 때문에 사후적 소득보장만으로 대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빈곤을 예방·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의 내실화와 함께 빈곤을 예방하는 사전적인 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는 여성의 고용률 제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강화,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제시하고자 한다.

일-가정 양립 정책을 통해 여성의 고용율을 높여야

첫째,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지금도 근로연령세대 가구의 빈곤을 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고용률은 OECD 국가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 하고 있다( 참조). 25~54세 여성의 고용률이 특히 낮은 것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성이 충분히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 가구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여성의 노후준비를 어렵게 만들어 노인빈곤의 가능성을 높인다. 현재 베이비부머(1955~1963년 생) 여성 374만 1천 명 가운데 10년 이상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이는 불과 49만 명(12.8%)에 불과하다. 그리고 1~9년 납부자가 176만 5천 명(47.2%), 그리고 납부 이력이 전혀 없는 인구가 149만 6천명(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베이비부머 남성의 54.3%, 34.8%, 10.9%와 대조적이다(국민연금공단, 2011).

그런데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7년이나 더 살고, 부부 연령차가 보통 3~4년이므로 평균 10년을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계속해서 이와 같은 여성의 '낮은 고용률-낮은 국민연금 가입률'이 지속된다면 노인 가구, 특히 그 중에서도 홀몸여성노인의 빈곤위험이 매우 높게 지속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더 많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무상보육과 같은 일-가정 양립 정책들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중요한 이유

둘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란 실업에 처한 이들이 괜찮은 일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 훈련, 취업알선 및 구직급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OECD, 2011). 그런데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교육·훈련을 경험한 이의 비율은 18.9%에 지나지 않았고, 평균 교육훈련 시간은 5.3 시간에 불과했다(김유선, 2011:96).

고용의 불안정과 저임금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교육·훈련이 필요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교육·훈련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자기 계발조차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세 자영업자 가운데 사업 정리 후 취업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조사 대상자 가운데 34.2%가 취업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전체 조사 대상자 가운데 66.8%가 정부의 교육 지원 정책이 존재하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중소기업청, 2010).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근로연령세대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은 노후의 창업 또는 유급노동 참여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통한 빈곤의 예방과 완화

셋째,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는 근로능력이 미약한 근로연령 인구와 재고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ㆍ고령 인구에게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원을 제공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2009년 현재 사회적 기업에 취업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각각 132만 원과 93만 원이다(이정봉, 2010). 이는 전체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 255만원, 120만원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지만, 1인 기준의 국민연금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의 평균 급여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의 제공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의 제공,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은 업무처리 능력의 향상, 대인관계의 향상 등 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사후적 소득보장정책에 비해 큰 장점을 가진다. 또한 사회적 기업은 총사업비의 약 65%를 자체 매출액으로, 약 28%를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2008년 기준)하므로 전적으로 정부의 조세에 의지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비해 재정 부담이 덜하고 납세자와의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장점을 가진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을 단지 한시적인 일자리 제공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관련 예산은 2009년 1,885억 원에서 2010년 1,487억 원으로 줄어들었다가 2011년 1,615억 원, 2012년 1,760억 원으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또, 현재 정부의 사회적 기업 정책은 지나치게 자립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재정 지원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두고 추진되어 사전적·예방적 빈곤정책으로서의 목적은 제대로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규창업 사업체의 절반이 3년 이내에 문을 닫고, 3분의 2가 5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사회적 기업이 본연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물론, 이상의 대안들은 소득보장에 치중한 것이다. 주거·의료·교육 등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적절히 향유하는 데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면 사전적·사후적 소득보장을 아무리 충실히 한다고 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다. 이는 다시 보편적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모든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의 확보가 필요할 것이다.

즉, 빈곤의 예방과 완화를 위해서는 혜택을 받는 대상자를 줄여 예산을 절감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 예산 조정과 감세의 원상복구,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점진적 증세를 통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구가 삶의 과정에 닥치게 될 사회적 위험을 성공적으로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서재욱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