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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7일 화요일

뜬구름 '창조 경제', 복지국가가 충분조건이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07일자 기사 '뜬구름 '창조 경제', 복지국가가 충분조건이다!'를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의 기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취임식에서도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거듭 확인했다. 이러한 국민 행복 시대를 열 전략으로 제시된 것이 '창조 경제'다. 그런데 창조 경제가 무엇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장관이나 여당 국회의원들이 한마디씩 해석을 내놓지만 모두 제각각이고 뜬구름 잡는 식이어서 국민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래서 지난 4월 3일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창조 경제는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창의성을 우리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 기술과 ICT(정보 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창조 경제는 여전히 공허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무관심하다. 정부 여당의 주요 인사들이 창조 경제의 핵심을 미래창조과학부 중심의 과학 기술 및 ICT에 두고 좁은 시야로 창조 경제를 협소한 곳에 가두는 식의 해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역대 정부에서도 과학 기술과 ICT를 강조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연구 개발비 비중도 꾸준히 증가해왔다.
▲ 박근혜 대통령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지난 4월 22일 청와대에서 만나고 있다. ⓒ청와대


우리나라의 2011년도 연구 개발비는 50조 원으로 GDP의 4.03%인데, 이는 이스라엘의 4.26%에 이어 세계 2위다. 연구 개발비의 절대 금액도 미국일본중국독일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다. 과학 기술과 ICT 발전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현 정부의 굳은 의지에 반대할 국민은 없겠으나, 이는 지금까지 해오던 것이고 당연한 것이라서 새롭게 국민적 지지를 끌어낼 아무런 감동이 없다는 게 문제다.

박 대통령의 창조 경제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과학 기술과 ICT가 아니라 '창의성'이다. 우리나라는 양극화의 심화와 함께 창의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지난 15년간 지속된 시장만능주의로 인해 우리나라의 경제와 산업은 양극화되었고, 이는 일자리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그래서 10%의 좋은 일자리를 놓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의 높은 임금과 완벽한 회사 복지를 제공하는 10%의 좋은 일자리를 앞다투어 선택한다. 여기서 실패한 90%는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일자리 트랙에 갇혀 삶의 희망과 생기를 잃어간다. 창의성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높아지는 법이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간의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일자리 간 격차의 핵심은 임금과 복지의 격차이다.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는 임금이 높고 복지도 완벽에 가깝다. 반면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는 임금이 대기업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고 회사 복지는 거의 없다. 사람마다 적성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르므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자영업이든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 전체적으로 창의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적성이나 하고 싶은 일과 무관하게 입시교육의 성적 순서대로 10%의 좋은 일자리를 선택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높은 임금과 복지가 보장되고 직업 안정성이 높다는 이유로 의사나 판사가 된다면, 이는 본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에도 반하는 것이다. 여기서 창의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제조업농업서비스업, 관광과 의식주 문화 등 모든 산업 분야와 직종에서 창의성이 요구된다. 창조 경제가 성공하려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도전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라야 한다. 이게 복지국가다. 먼저 보편적 복지를 통해 생애 주기별로 필요한 보육, 교육, 의료요양 등의 사회 서비스와 소득 보장을 위한 사회보험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고, 직업 교육과 평생 교육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으로 누구나 원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회사별 복지는 국가의 보편적 복지로 대체되고, 복지의 격차는 없어진다. 다음으로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적극적 산업 정책과 대기업의 불공정과 횡포를 방지하는 경제 민주화 조치가 긴요하다.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통해 높은 수준의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축적한다. 여기서는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패자부활의 제도적 조건 덕분에 실패해도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누구나 새로운 꿈을 찾아 인생 이모작을 시도할 수 있다. 이런 나라는 곳곳에서 창의성이 분출된다. 결국, 복지국가라야 창조 경제가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박 대통령이 말한 '패러다임의 전환'일 것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2013년 3월 26일 화요일

홍준표, 박근혜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26일자 기사 '홍준표, 박근혜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다'를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진주의료원 사태의 진단과 올바른 해법

진주의료원은 공공보건의료기관으로서 공공보건의료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상남도가 설립·운영하는 병원이다. 한국의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공공보건의료기관은 국가·지방자치단체·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단체가 공공보건의료의 제공을 목적으로 설립·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공공보건의료란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홍준표 지사

 
▲ 홍준표 경남지사 ⓒ프레시안(최형락)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우리나라에는 지역·계층·분야에 따른 의료 이용 및 건강의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해결해야 할 보건의료의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이윤 극대화를목표로 운영되는 민간의료기관의 지나친 과잉과 이에 대한 정부의 방임이란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공공보건의료기관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운영되는 민간의료기관의 지나친 과잉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공보건의료기관이 이러한 정책 수단으로서 정책 효과를 확실하게 거둘 수 없었던 이유는 공공병원들이 지나치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다음 날인 2월 26일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는 그나마 부족한 공공병원을 하나 더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농어촌 지역의 공공보건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지역 거점 공공병원을 활성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대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시한 140대 국정과제에도 '지역 간 의료 이용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공공보건의료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기초·지역·권역별로 체계적인 의료 공급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자칭 박근혜 후보의 러닝메이트로서 보궐선거를 통하여 당선된 홍준표 도지사는 자신의 러닝메이트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하루아침에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제시한 진주의료원 폐원의 '근거 없는' 두 가지 이유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을 폐원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진주의료원의 적자와 부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전면 개정안에서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으므로 이제는 민간의료기관이 공공보건의료를 수행해도 된다는 것이다. 2011년 전국 지방의료원 경영 현황을 보면 전국 지방의료원의 총 적자는 656억 원이었는데, 이것을 기관 평균으로 하면 약 19억 원 정도 된다. 진주의료원과 같이 300병상이 넘는 규모가 큰 지방의료원들의 평균 적자는 이것의 두 배가 조금 넘는 40억 원에 해당한다.

전체 지방의료원의 65%가 100억 원 이상의 부채를 지고 있고, 300병상 이상을 운영하는 대형 지방의료원의 평균 부채는 261억 원이다. 지방의료원의 부채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퇴직급여 충당금으로 전체 부채의 30.9%이며, 그 다음은 지역개발기금 차입액으로 22.4%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시나 광역시와 같은 대도시에 위치하고 있는 지방의료원과 경기도의 지방의료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의료원의 경우에는 부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항목이 지역개발기금인데, 전체 부채의 31.2%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지방의료원들이 차입한 지역개발기금은 대부분 지방의료원의 신축이전·증개축·장비 확충과 관련해서 발생한다. 즉, 지역주민에게 더 양질의 공공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방의료원의 시설과 장비를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지방의료원들이 빚으로 떠안은 것이다. 그러나 지역주민에게 양질의 공공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며, 이는 지방정부의 예산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현재 지역개발기금 차입금의 원금 및 이자를 상환하기 위해 지출되는 비용은 지방의료원의 경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의 무책임 탓에 '수익성과 공공성의 딜레마'에 갇힌 공공의료


특히,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열악한 지역들은 대도시에 비하여 지방의료원의 공공적 역할이 더욱 중요시되지만, 이러한 경영 부담은 지방의료원들이 지역 거점 공공병원으로서 위상을 제고하는 데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방의료원들은 적정 진료,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 안전망 역할, 수익성이 나지 않지만 지역주민들의 건강 향상에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의 제공과 같은 공공병원으로서 공익적 역할들을 다양하게 수행하고 있으나, 이런 역할들은 잘하면 잘할수록 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방의료원들은 수익성과 공공성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적인 위기에 놓여 있다.

2011년 현재 진주의료원의 적자는 63억 원이며, 2012년 12월 말 현재 진주의료원의 총 부채는 279억 원이다. 진주의료원의 적자와 부채가 작다고 할 수 없으나 폐원을 결정할 만큼 재앙적인 수준은 아니다. 이조차도 의료 이용의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재의 부지로 옮긴 후 감소한 의료 수익에다가 신축 이전 과정에서 발생한 공사비, 장비구입비, 운영비 320억 원을 조달하기 위하여 차입한 지역개발기금, 공공병원으로서 위상을 제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적자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책임이 가장 큰 경상남도는 모든 잘못을 진주의료원과 노조에 전가하고 폐원을 정당화하고 있다.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원의 또 하나의 강력한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전면 개정안'이다. 올해 2월 2일부터 시행된 이 법률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는 공공보건의료의 개념 수정인데, 기존에는 공공보건의료의 수행 주체를 공공보건의료기관만으로 한정하던 것을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이라는 정의를 도입하여 민간의료기관들도 공공보건의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전면 개정안'의 취지조차 왜곡하는 홍준표 지사


이러한 법률 개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경영 상태가 좋지 않은 공공병원을 마음대로 폐원하고 민간의료기관으로 하여금 이 역할을 대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공공보건의료체계가 너무 취약하기 때문에 이러한 취약성을 민간의료기관이 보완하도록 함으로써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담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이 법률 개정안에서 민간의료기관이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는 영역에서도 공공보건의료기관이 신청한 경우에는 공공보건의료기관에 대한 지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공보건의료기관이 일차적인 공공보건의료의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시·도지사는 교육훈련센터·공공보건의료지원단을 설치·운영할 수 있으며, 이를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보건의료체계 내에서 공공보건의료기관 역할의 중요성과 광역지방정부의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책임을 그 이전보다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이 시행된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홍준표 지사는 새로운 법률에 따라 민간병원도 공공보건의료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공공병원을 폐원해도 된다는 논리로 진주의료원 폐원이 정당하다고 외치고 있다. 오만과 무지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해서 진주의료원이 폐원된다면, 우리나라의 34개 지방의료원들 중 폐원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지방의료원은 하나도 없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진주의료원의 폐원을 온몸으로 저지해야 하는 이유이며, 중소도시인 진주시의 사안이 들불 번지듯 전국적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이다. 진주의료원의 폐원을 막지 못하면 나머지 지방의료원의 폐원과 공공의료의 축소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타까운 것은 진주의료원 폐원 방침이 알려진 지 한 달이 지난 이 시점까지 보건복지부의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이 없다는 것이다.

▲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지난 12일 오전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남도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기로 한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 가운데 한 참석자가 삭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건복지부와 청와대의 책임 있는 자세가 긴요한 때

노무현 정부 이후 보건복지부는 전국의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을 지역 거점 공공병원으로 지정해 시설과 장비의 현대화에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고, 매년 지역 거점 공공병원 운영 평가를 실시해왔다. 이러한 조치들은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을 발전시켜서 우리의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경상남도 홍준표 지사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는 이 상황을 지금처럼 방관한다면 보건복지부의 공공의료 강화 정책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를 바 없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4대 중증질환 진료비의 전액 국가 부담을 공약했고, 이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조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취임 한 달도 안 되어서 이 공약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표현된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도 적지 않게 실추되었다. 앞으로 5년이 남았으니 공약을 지킬 수 있는 기회는 있고, 약속을 믿고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공공의료 강화 및 활성화 공약은 아직까지는 유효하고, 이 공약은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홍준표 도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원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또다시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모든 공약이 거짓말이라고 평가받기 전에, 보건복지부 장관과 청와대 등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신속하게 홍준표 도지사를 진정시키고 폐업을 철회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의료원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정책들을 실질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출범 초기, 국민의 신뢰에 기반을 두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이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정백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경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2013년 3월 5일 화요일

무상 의료 때문에 사망자 늘어? 제대로 알고 쓰자!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05일자 기사 '무상 의료 때문에 사망자 늘어? 제대로 알고 쓰자!'를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스태포드 병원 사태와 국내의 한 지방병원 사태

얼마 전에 국내의 주요 언론들이 영국의 스태포드 병원 사태를 소개하면서 영국 국영의료제도(NHS)를 대대적으로 비판했다. NHS에 대한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는 영국 국영의료제도가 부당하다거나 한계가 뚜렷하다는 등의 성토에만 그치지 않고, 한국의 의료 제도 개혁에서 무상 의료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소위 '무상 의료 무용론'으로까지 번졌다. 심지어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80% 이상으로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도 이어졌다. 그야말로 근거 없는 침소봉대다.

스태포드 병원의 높은 '초과 사망자 수'

스태포드 병원 사태의 핵심인 이 병원의 높은 '초과 사망자 수'는 영국 NHS의 규제 기관인 Healthcare Commission 자체 조사를 통해 2009년 처음 알려졌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2/2003년부터 실제 사망자 수가 기대 사망자 수보다 100명 이상 계속 많았다. 최근 국내의 주요 언론이 인용한 '프란시스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 사실 총 5회의 자체 및 외부 감사가 있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감사가 이뤄졌음에도, 환자 보호자들의 추가 증언들이 계속 나오고 피해를 본 환자 보호자들이 단체를 결성하여 종합적인 진상 조사를 계속 요구하자 2010년 캐머런 총리의 지시로 프란시스가 그 임무를 맡은 것이다.

필자가 영국에서 1년간 머문 2010-2011년 동안에도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계속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졌던 터였다. 한국에서 지금에야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2월 초에 프란시스 보고서의 최종본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 영국 스태포드 병원의 실제 사망자 수와 기대 사망자 수의 추이(1996-2008). 자료원 : Healthcare Commission 통계, 프란시스 보고서를 참고하여 재구성

프란시스 보고서

프란시스 보고서는 스태포드 병원 사태에 대한 종합적 감사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과거 수차례의 감사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이 지적되었음에도 스태포드 병원과 지역 보건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139일에 걸쳐 160명 이상으로부터 증언을 들었다. 이를 통해 환자가 꽃병에 든 물을 마셔야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비롯하여 환자들에게 적절한 영양과 음료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드러났다. 간호 인력 부족과 불성실한 간호가 그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간호사들이 생명 유지 장비를 적절히 다루지 못했거나 경험이 부족한 의사들이 중환자를 책임지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보고서가 나온 직후, 캐머런 총리는 "단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라며 현실에 안주하는 문화를 뿌리 뽑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보수당-자유민주당 연정이 추진하고 있는 NHS 개혁의 동력으로 이 보고서를 활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총선에서 장애아로 사망하였던 자신의 아들 사례를 들면서 영국 NHS 제도의 소중함을 이야기하였고, 총리가 되더라도 NHS 예산을 줄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총리가 되고 난 후, 캐머런 정부는 NHS에 대한 대대적 구조 개혁에 착수하였고, 그 핵심은 재임 기간 동안 200억 파운드에 달하는 지출의 삭감이었다. 지출 삭감은 당연히 인력 감축으로 이어지고, 환자의 안전은 더 큰 위협에 처할 것이 명백한 이치였다. 캐머런 정부는 이러한 우파 개혁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해야 했고,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조차 그러한 개혁의 부당성을 지적했었다.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NHS 제도 그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비롯됐다. 영국 노동당 정부의 NHS 개혁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대처 정부 당시 NHS 개혁을 통해 영국의 병원은 전문 관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고, 이러한 현상은 노동당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노동당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경쟁과 선택의 원칙'에 근거하여병원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2001년부터 스타 등급제(Star Ratings)로 불리는 병원인증평가 제도를 실시하였다.

이 평가 제도를 통해 높은 평가 등급을 받은 병원들에 대해서는 영국 정부가 NHS 파운데이션 트러스트(Foundation Trust)라는 지위를 부여해 주었다. 병원들이 파운데이션 트러스트로 전환되면 보건부 장관의 관리 감독으로부터 벗어나 별도의 기구인 모니터(Monitor)에 의해 규제를 받고, 재정과 병원 인력 운영의 자율성을 대폭적으로 보장받는다. 대신 모니터에서는 병원 간 경쟁을 위하여 계속적인 비용 절감 노력을 요구했으며,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기보다는 가시적인 목표를 달성할 것을 요구했다. 스태포드 병원 역시 파운데이션 트러스트이다.

▲ 파운데이션 트러스트(Foundation Trust) 지위를 받으면, 재정과 병원 인력 운영의 자율성을 대폭적으로 보장받는 대신 병원 간 경쟁을 위하여 계속적인 비용 절감을 요구받는다. 사진은 스태포드 병원 입구. 'NHS 파운데이션 트러스트'라는 문구가 보인다. ⓒ로이터=뉴시스

결국, 스태포드 병원은 비용 절감을 위하여 기존 인력의 축소를 감행하였고, 이를 값싼 의료 인력으로 대체하였다. 스태포드 병원의 실제 사망자 수가 기대 사망자 수보다 급증한 것이 2001년 2월(영국의 회계연도는 4월 1일부터이다)부터라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잘 반증해준다. 병원 경영진은 파운데이션 트러스트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의료진들의 필요하고도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였고, 외부 감사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프란시스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부정적인 NHS 조직 문화는 목표치 달성, 재정, 파운데이션 트러스트 지위의 유지 등과 같은 압력에 대해 NHS 하위 조직들과 병원 조직, 그리고 스태프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을 최우선에 두는 "NHS 조직 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 보고서가 NHS 제도 자체의 근본적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영국 NHS 제도의 핵심인 의료 이용 시점에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원칙이 스태포드 병원 사태의 원인이라는 지적은 보고서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영국 노동당 정부가 주도한 NHS 개혁의 어두운 한 단면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양적 성장을 위한 경쟁과 경영 효율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당 정부 기간 동안에 행해졌던 모든 NHS 개혁이 부정적이라거나 NHS 무용론으로까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고 잘못된 것이다. 예컨대,의학적 서비스를 통해 피할 수 있는 사망률은 노동당 집권 시기 동안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가파르게 감소하였다. NHS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 역시 노동당 집권 시기에 급증했다. 정권 이양 직전인 2010년에는 국민의 70%가 만족한다고 응답하여 영국사회조사가 이루어진 1983년 이래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들의 의료 체계를 주로 연구하는 미국의 커먼웰쓰 펀드의 2011년 조사에 의하면, 영국은 스위스와 함께 자국 환자들이 자국 의료 제도를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주된 이유는 영국의 노동당 정부가 NHS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함으로써 인력과 시설의 확충 및 현대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당 정부는 만성적인 대기 시간을 획기적으로 감축했고, 정기적으로 환자 설문조사 결과를 의료인들에게 환류하는 등 환자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과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뒷받침했다.

▲ 지난해 7월 영국 런던 북동부 리밸리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개막식 모습. 영국은 국가 무상 의료 시스템을 개막 행사의 주요 퍼포먼스로 연출했다. ⓒ연합뉴스

스태포드 병원 사태와 국내의 한 지방병원 사태

마침 며칠 전에 지방의 한 병원에서 의료기 판매업체 직원과 간호조무사가 1100여 차례에 걸쳐 수술을 해 왔다는 기사가 났다. 해당 병원장은 "병명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발병 원인을 질병에서 상해로 변경해 환자가 고액의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하면서 환자를 늘렸고, 고액이 보장되는 보험 상품에 가입하도록 한 뒤 아프지도 않은 사람에게관절염 수술을 시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은 보건당국이 아니라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수사 결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의 한 지방병원인 스태포드 병원 사태에 대해서는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NHS 무용론, 심지어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제한해야 한다는 식의 목소리가 대대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진작 국내의 지방 소재 한 병원의 사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종합적 감사가 필요하다거나 한국 의료 체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등의 목소리는 전혀 내지 않고, 단지 일회성의 사건 사고처럼 다루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병원 사망률을 비롯해 병원 의료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통계마저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침소봉대하는 것도 잘못이요, 드러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윤태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2013년 2월 28일 목요일

박근혜, 주류 보수의 품에 안길 것인가?


이글은 시사IN 2013-02-28일자 기사 '박근혜, 주류 보수의 품에 안길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줄·푸·세’를 외쳤던 박근혜와 복지국가를 말하는 박근혜가 있다. 중도층 공략 노선이 흔들릴수록 반공 보수·시장 보수 동맹이 압박을 강화한다. 박근혜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두 개의 박근혜가 있다. ‘줄·푸·세’를 외쳤던 2007년의 박근혜와, 복지국가를 말하며 증세까지 시사하는 2012년의 박근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내걸었던 2007년의 박근혜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2012년의 박근혜. 성장 만능론자 박근혜와 ‘성장에서 고용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들고 나온 박근혜. 2월25일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는, 두 박근혜 중 어느 쪽이 진짜인지를 겨루는 ‘보수의 내전’ 속에 닻을 올린다. 진보는 진보대로, 두 박근혜를 둘러싼 보수 내전에 어떤 식으로 참전할지를 두고 내부 논쟁이 한창이다. 

시계를 대선 전으로 돌려보면 보수 내전의 지형이 좀 더 선명히 보인다. 한국 보수의 양대 축이라 할 만한 ‘반공 보수’와 ‘시장 보수’의 눈에, 2012년 박근혜표 대선 공약은 지나친 좌클릭이었다. 대선 기간에도 ‘반란’ 시도는 몇 차례 있었다. 시장 보수를 대표하는 강성 시장주의자인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박근혜표 좌클릭을 상징하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여러 번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정체불명”이라며 아예 폐기론까지 들고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는 흔들리지 않았다.

ⓒ뉴시스 대선 기간에도 박근혜 후보의 ‘좌클릭’에 맞선 강경보수의 ‘반란’ 시도가 있었다. 2012년 10월23일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을 찾은 박근혜 당시 후보(왼쪽).

보수 내전은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불타올랐다. 박근혜 후보가 인혁당 발언과 정수장학회 문제 등 역사관 문제로 얻어맞으며 중도층 공략 노선이 휘청거리던 때였다. 박 후보가 취약해지자, 눌려 있던 반공 보수와 시장 보수가 기회를 잡았다. 박근혜호의 항로 쟁탈전이 벌어졌다. 

반공 보수는 북방한계선(NLL) 카드를 던졌다. 정문헌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록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 10월8일이다. 박근혜 캠프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이한구 원내대표는 곧바로 이를 “영토주권 포기 사건”으로 규정하며 이슈를 키웠다. 반공 보수와 시장 보수가 합작해 박근혜호의 항로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역사관 논란으로 취약해진 박근혜 후보는 이때부터 대선 기간 중 가장 우클릭한 캠페인으로 끌려들어간다. NLL 논란은 한 달을 끌었다.

곧이어 시장 보수도 움직였다. 한동안 경제민주화에 협조하겠다고 말하던 전경련은 10월25일 보도 자료를 내고 ‘경제위기론’과 ‘경제민주화 중단론’을 정면으로 던졌다. 박근혜 후보가 가장 취약해진 타이밍에 들어온 공세였다. 박 후보는 11월8일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재계 의견에 기운 발언으로 화답했다. 시장 보수는 최대 눈엣가시였던 김종인 위원장 축출에도 성공한다. 11월20일 경제신문 공동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김종인 위원장의 역할은 끝난 것인가?”라고 묻자 박 후보가 짧게 답했다. “네.” 박근혜 캠프는 이후 캠페인의 기조를 경제민주화에서 경제위기론으로 틀었다([시사IN] 제273호 기사 참조).

대선이 끝난 후에도 내전은 계속된다. 보수 진영에서는 “대선 공약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노골적인 공약 수정 요구를 내놓으며 ‘2012년의 박근혜’를 사실상 ‘선거용’으로 규정했다. 이한구 원내대표와 심재철 최고위원이 총대를 멨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이 비중 있게 받아썼다. 보수의 대표 논객인 조갑제 기자도 나섰다. 박 당선자의 대표 의료복지 공약인 ‘4대 중증질환 전액 보장’ 공약은 정부 출범 전부터 ‘비급여 항목 제외’로 후퇴했고, 보수 언론은 이를 합리적 판단으로 포장했다.  

“위기 땐 기존 보수의 품이 안락해”

반공 보수도 거들었다. 국회가 새해 예산안에서 국방 예산을 정부 제출안 대비 1% 삭감하자, 김관진 국방장관과 노대래 방위사업청장, 청와대 핵심 관계자 등이 앞다투어 “복지 예산을 올리기 위해 안보 예산을 삭감했다”라고 비판했다. 반공 보수의 주특기인 ‘복지 대 안보’ 프레임이 등장한 것이다. 국방 예산은 국회의 통상적 예산 심사 수준인 정부 제출안 대비 1% 삭감(전년 대비로는 4.2% 인상)되었을 뿐이지만, 복지 예산 때문에 안보가 크게 훼손된 것처럼 공세를 폈다.

대선 공약을 ‘선거용’으로 규정한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왼쪽)와 심재철 최고위원(맨 왼쪽). 중도파로 분류되는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오른쪽)과 안상훈 인수위원(맨 오른쪽).

박 당선자의 ‘반격’도 여러 차례 있었다. 당선자는 인수위 모두발언과 의원단 오찬 등 기회 있을 때마다 “대선 공약을 꼭 지켜야 한다”라고 반복했다. 단순한 당위론이라기보다는, 새누리당 등 보수 진영에서 나오는 공약 수정론을 맞받아치는 성격이 짙었다. 김종인 위원장은 배제했지만 인수위에 복지·고용 분야 전문가들을 중용하는 등 정통파 시장 보수와는 다른 색을 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박 당선자가 이런 포지션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박 당선자의 진보적 사회경제 공약의 뿌리 정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온정적 보수주의’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 보수의 주류 정서가 아니다. 한국 보수의 양대 축인 반공 보수와 시장 보수 동맹은 임기 내내 박근혜 정부에 지속적으로 우클릭을 요구할 전망이다. 

박 당선자가 이 반공·시장 보수 동맹에 맞설 수 있는 자원이 마땅치 않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유례없이 낮다. 박 당선자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지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오는 등, 직선제 대통령 중 최초로 절반 이하의 지지율로 정부 출범을 맞이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도 중도 실용과 강경 보수의 갈림길에서 촛불집회를 얻어맞고 지지율이 폭락하자 선명한 보수로 후퇴했다. 위기 국면에서 기존 보수의 품만큼 안락한 곳이 없다”라고 짚었다. 대중의 강고한 지지가 없는 국면이라면, 물질적·정서적 기반이 탄탄하고 결집도가 높은 주류 보수 블록에 기대고픈 유혹을 받는다. 박 당선자는 후보 시절이던 2012년 10월 이후에 이런 모습을 한 번 보여준 바 있다.

보수 적통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박 당선자의 정서적 뿌리가 진보적 공약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었다. 2월14일 인수위 고용복지분과 안상훈 위원은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당선자 공약인 창조경제를 시장경제를 넘어 사회적 경제로까지 확장시키겠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 공동체적 경제주체들을 활성화하겠다”라고 말했다.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주로 진보 진영에서 논의되던 의제들을 과감하게 차용하겠다는 의미다(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인 안상훈 위원은 스웨덴 복지모델 전문가다). 

보수 정권에서 보기 힘든 파격적인 내용이 나왔는데, 정작 화제가 된 것은 엉뚱하게도 ‘제목’이었다. 안 위원이 이날 발제 내용을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과잉 충성’ ‘역사 후퇴’ 논란이 벌어졌다. 시장경제를 넘어서는 사회적 경제라는 핵심 의제는 증발되어버렸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엉뚱한 코드 맞추기 때문에 나름 파격적인 의제가 완전히 묻혀버렸다”라는 평이 나왔다. 감성과 문화의 보수성과 정책의 진보성이 어색하게 뒤섞여 어느 쪽으로부터도 선뜻 지지를 받지 못하는 풍경. 박근혜 시대에 되풀이될지 모르는 장면이다. 

역설적이게도, 민주화 이후 가장 진보적인 사회경제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박근혜 당선자다. 박 당선자의 공약을 보면 의료 복지와 노인 복지를 강조하는 등 복지국가 건설을 명시적 목표로 내세우는 데다, 사실상 증세의 가능성까지 열어두었다. 

이 때문에 ‘2007년의 박근혜’와 ‘2012년의 박근혜’를 둘러싼 보수 내전은 야권에도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박 당선자 공약에는 야권도 기꺼이 동의할 수 있는 의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박 당선자가 보수 주류와 힘겨운 싸움을 이겨내야만 실제 집행이 가능하다. 야권이 받아든 선택지는 두 가지다. 첫째, 방관한다. 둘째, 보수 주류 동맹으로부터 2012년의 박근혜를 지킨다.

방관은 손쉬운 선택이다. 민주당 내부에는 박근혜 정부의 민심 이반이 상당히 빠를 것으로 예상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 운동권 출신의 한 재선 의원은 박근혜표 대선 공약을 ‘선거용’으로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을 지키기 힘들 것이다. 보수의 저항도 저항이지만, 당선자 본인의 철학에서 나온 공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의료복지 공약이 후퇴하고 있다. 대선 공약은 줄줄이 철회될 것이고, 민심 이반도 상당히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우리만 잘 준비하면 기회는 꽤 빨리 온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빠르면 2014년 지방선거 이전에 민심 이반이 두드러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반면 ‘박근혜 지키기’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옵션이다. 하지만 이 주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반사이익으로 정치하면 실패한다는 것을 이번 대선에서 뼈저리게 배우지 않았나”라고 반문한다. 보수 주류로부터 박 당선자의 진보적 공약들을 지켜내고, 공약의 각론과 구체적 집행 경로를 오히려 야권이 채워내면서 수권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수 주류에 포위된 박근혜의 활로를 민주당이 뚫어주자”라는 전략인 셈이다. 

민주당 일각, ‘박근혜 지키기’ 주장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박근혜 지키기’를 민주당 생존전략으로 내놓았다. 민 의원은 1월16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박근혜 정부가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지원하고 당론 발의까지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여야 공통 공약은 합의해 의제화하자”라고 제안했다.

복지국가로의 이행에 관심이 많은 한 민주당 정책통은 “복지정책 지지율이 가장 높은 층은 정규직 노동자인데, 그 이유는 이들만이 4대 보험을 통해 복지의 ‘맛’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박근혜표 복지정책이 제대로만 시행되면 자영업자와 비정규직도 복지 혜택을 보게 되고, 그럴수록 복지국가의 지지 기반은 공고해진다. 누가 집권하는가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보아도 ‘박근혜 지키기’가 손해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한 민주당 전략통은 “보수 내전을 이대로 놔두면 박 당선자가 보수 주류에 투항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민주당이 박 당선자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면서 오히려 원군이 되어준다면? 그때는 주류 보수와 정권 사이의 간극이 벌어질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는 유난히 신뢰를 강조하는 박 당선자가 가장 신경 쓰는 ‘약한 고리’다. 

정권은 보수와 진보라는 단순 구분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내부 갈등을 안게 마련이다. 김영삼 정부는 군부독재 세력과 영남 민주화 세력의 연합정권이었고, 집권 초기에는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청산 등 민주화 세력의 의제가 우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 역시 출범 당시에는 보수 주류와 중도실용파의 연합정권이었다. 두 정권 모두 임기 말로 가면서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강한 보수 회귀 성향을 보였다. 박근혜 정권 역시 ‘보수 적통’과 ‘진보적 사회경제 의제’가 어정쩡하게 동거하는 상태로 출범한다. 박근혜 시대의 항로가 궁극적으로 어느 쪽으로 향할지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좌우된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2013년 2월 16일 토요일

“복지국가 와도 보험회사 안 없어져”


이글은 레디앙 2013-02-15일자 기사 '“복지국가 와도 보험회사 안 없어져”'를 퍼왔습니다.
[타인의 삶] 두 번째 인터뷰: 운동권 출신 보험설계사

우리나라 생명보험 회사에서 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2011년 기준 15만6천여명이다. 남성 3만9천여명, 여성 11만6천여명이며 5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4만여명에 불과하다. 1년 미만 근무한 설계사는 5만5천여명으로 이직율이 높고 신입 비율이 높은 편이다.
손해보험업에 등록된 설계사는 2012년 3월 기준 전체 1만7천여명이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설계사를 동시 취득한 이들을 감안하면 전체 설계사 수는 17만명보다는 적겠지만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에 각각의 통계는 있지만 이중취득 현황을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금융감독원은 알겠지…)
두 번째 ‘타인의 삶’ 주인공은 외국계 생명보험회사에 설계사로 일한 지 5년차가 되는 인물이다. 전체 설계사 비중이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외국계는 남성이 훨씬 많다. 뒷조사(?)해 본 결과 해당 보험회사는 남성 설계사가 여성 설계사보다 3배 이상 많다. 신상 공개를 원치 않는 주인공을 위해 여기까지. 하지만 자기 소개에서 부터 이미 본인의 신상을 셀프로 털기 때문에 몇 다리 거치면 금방 털 수 있는 인물이다.(장여진)————————————
FC의 비밀

평소 기자와 친분이 있던 사이라 인터뷰는 편하게 진행했다. 정리도 심하게 편하게 했다.
장여진: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
김문수: 운동권 출신의 5년차 종합재무관리 전문컨설팅 김문수(가명)이다. 변절의 아이콘인 김문수로 적어달라. 분명히 이 인터뷰로 나를 욕할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어차피 욕먹을 거 김문수로 욕 먹겠다.
장여진: 명함 좀 줘봐. (명함을 보며) 어려운 말 써 있다? Financial Consultant? 그냥 설계사 아닌가?
김문수: 외국계 보험회사가 들어오면서 대학 나온 30대 남성을 전문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똑같은 보험을 팔더라도 기존 설계사가 ‘암 보험은 있어야죠’라는 멘트를 했다면 외국계 설계사들은 ‘당신의 인생 전체를 설계한다, 당신이 죽으면 가족들에게 얼마가 필요하고, 암에 걸렸을 때는 얼마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컨설팅을 하는 것이다.
처음 푸르덴셜 생명이 들어오면서 시작했다. 설계사를 전문직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보험회사의 욕구가 강하게 반영됐고, 이것이 전체 보험회사로 퍼지면서 지금은 플래너, 어드바이저, 라이프 플래너, 파이낸셜 컨설팅등 다양한 이름으로 발전했다.
결국 보험 파는거 맞잖아, 라고 하면 맞다. 보험 설계사가 투자도 권유하고 여러 자격증을 취득해 여러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설계 해주다보면 적금, 펀드까지 봐주는 경우도 많아지니깐.
내 명함에는 재무관리 컨설팅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컨설팅을 빙자해 조금 더 보험을 팔아먹기 위해서인 것이다. 할 말은 없다. ㅋ
장여진: 나름 학벌도 좋은데 보통 안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는 보험설계사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김문수: 진보정당 국회의원실에서 3년간 일했고, 이걸로는 밥벌이가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뭐 지금도 남아계신 분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어쨌든 일반적인 직장을 가려고 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미끄러졌다. 면접 볼 때 임원 중 한 명은 단 한 번의 예외없이 ‘진보적이냐’,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을 했다. 이게 반복되다보니 민간기업 취업은 어렵겠다 생각했다. 잠시 다른 일도 했지만 급여는 적고 노동시간과 강도는 쎄서 그만두고 우연히 보험회사 다니는 친구가 제안해 시작했다.
장여진: 같이 일하는 설계사들 중 원래부터 보험설계사가 꿈이었던, 취업의 목표였던 사람들 있나?
김문수: 음..글쎄…보자….아, 딱 한 명 있다.

고객과 통화 시도 중, 안받는다.

장여진: 하루 일과는 어떤가? 일단 특수고용직인데 어떤식으로 일하는지 궁금하다.
김문수: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전속사 소속이라 8시30분 정도에 회사로 출근한다. 일단 아침 조회를 하고 오전에는 통상 고객들에게 전화 돌리며 안부도 묻고 신규 계약 상담 약속도 잡다가 11시 정도 되면 밖으로 나간다. 고객들과 밥 먹으며 각종 서류도 전달하고 입원한 경우 병원도 가고 저녁시간대에도 약속 잡으면 상담하고. 약속이 가장 중요한데, 그날 약속이 없으면 백수다.

보험설계사에 대한 편견과 직업 전망

장여진: 처음 고객은 다 어디서 생긴 것인가?
김문수: 전통적이다. 첫 번째 고객이 친구, 내 보험, 가족, 와이프, 친적으로 시작해 넓혀 나갔다.
장여진: 일하면서 힘들었을 때나 허탈했던 적은?
김문수: 힘든걸 담아주는 성격이 아니라서 기억 안 난다.
장여진: 계약하기로 해놓고 계약 안 한 사람이라던가….
김문수: 아 한 명 있다. 한 아주머니가 딸 보험을 리모델링 하고 싶다는 소개가 들어와 상담했다. 그런데 딸이 크게 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 보험 가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고 관련 서류가 전화번호부보다 두꺼웠는데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설계했다.
그리고 보험 심사는 일단 계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단 회사에 계약서를 보냈다. 1회 보험료 납입해야 계약이 체결된다. 만약 회사가 계약을 거절하게 되면 보험료는 돌려받는다. (심사를 통과해 정식 체결되더라도 계약자가 15일 이내에 계약을 취소하면 보험료는 돌려받을 수 있다. – 기자 주)
워낙 큰 사고였기에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3일 뒤 회사에서 해당 계약을 인수하겠다고 해 정말 기뻤다. 뭔가 도움을 준 것 같아서 보람도 있었고.
그런데 그날 오후 전화가 오더니 그 아주머니가 대뜸 소리부터 지르더라. 첫회 보험료를 설계사가 내주는 거 아니었냐고, 왜 자기 딸 계좌에서 보험료가 나가냐고.
첫 회 보험료를 설계사가 내주는 업계 관행을 부정하는 건 아니고, 만약 첫 달 보험료를 내달라고 했으면 고민은 좀 됐었을거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돈에 눈이 먼 파렴치한 취급받으니 좀 억울했다. 결국 그 보험 취소하더라. 다음 날 아무렇지 않은 척 사고 서류를 갖다 줬는데 마음이 좀 그랬다.
장여진: 사람들은 보통 보험설계사는 다 도둑놈이다, 사기꾼이다, 이런 편견이 있다. 특히 설계사가 개입된 보험 사기나 심지어 살인까지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김문수: 설계사가 개입된 사기나 살인의 빈도가 높은 게 아니다. 요새 느끼는 건데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세일즈 업종에 편견이 있는 것 같다. 보험이나 제약회사 영업 등. 어떤 회사건 결국 영업하는 사람들이 월급을 제일 받아가는 스탭인데 제약회사 영업한다고 하면 ‘의사 시다바리’, 자동차 세일한다면 또 어쩌고 하는 말들이 많다. 세일즈라는 업 자체가 학벌이 좋지 않아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편견이 큰 것 같다.
장여진: 보험설계사라는 부정적인 인식 같은 거 때문에 당해본 건 있나?
김문수: 사람마다 다른 것 같지만 거지라도 서울대 나온 거지는 ‘그래도 나 서울대 나온 거지야’라는 자기 의미 부여를 한다. 루저라서 아니라는 자기합리화. 그런데 평소 못 느꼈는데 나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된 적이 있다.
후배 어머님 보험을 가입 시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머님이 입원해서 병문안 가서 ‘안녕하세요. **선배에요’라고 인사했더니 우리 동네 살았느냐, 우리 딸이랑 같은 중학교 나왔냐 자꾸 물어보시길래 대학 선배라 했더니 깜짝 놀라시더니 ‘아니 왜 그 좋은 학교 나와서 설계사를…’이라고 하시더라. 당연히 내가 대학 선배가 아니라 동네나 중고등학교 선배인 줄 알았다던데 그 때 스스로 자기합리화 많이 했다. ㅋ
장여진: 일하면서 가장 때려치고 싶었던 순간은?
김문수: 약속이 캔슬될 때. 특히 지방 갔는데 캔슬되면 답이 없다. 전화도 안 받고 문자 보내도 회신도 없고 난 여기까지 왔는데 차 돌려 가기도 애매하고. 한참 기다리다 다시 회사나 집으로 돌아갈 때 내가 뭐하나 싶다. 운이 나쁠 때 일주일 연속 그럴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주말에 내가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나 싶다. 약속 깬 사람은 세일즈 한 명 안 만나는거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게 생계니깐 약속 하나 깨지는 게 정말 힘들다.
장여진: 직업 전망은 있다고 보나?
김문수: 불투명하다. 설계사라는 직종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기도 하거니와 인터넷으로 가입하는 방법도 생겼고. 지금도 이 업게에서 3년이상 생존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한지 2년 지나면 60%가 그만둔다. 더 이상 만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 친척 다 가입해주고나서 계속 소개를 받아 넓혀가야 하는데 뚜렷한 솔루션이 없으면 2년차에서 거의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고소득층의 3대 보험 가입 이유

장여진: 고객 상담 전 어떤 준비들을 하는지?
김문수: 대부분의 고객 중 특별한 고객은 없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월급쟁이의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래 일하다보니 기계적으로 상황에 따라 적절한 멘트가 튀어나온다. 사전 준비는 고객의 경제적 수준과 나이, 가족관계 정도만 알고 나간다.
장여진: 상담할 때 제일 까다로운 사람은 누구였나?
김문수: 친동생이었다. 한의사였는데 그 많은 약관과 보장분류표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이건 왜 보장 안해주냐’, ‘이건 얼마나 어떻게 보장해주냐’고 물어보더라. 4시간 걸렸다. 차라리 감정적으로 싫다고 하거나 수익률이 낮다고 하는게 낫지, 한장 한장 뜯어보며 물어보니 제일 심란했다. 가입시켜놓고도 제일 찜찜했던 고객이 동생이다.
장여진: 의사들도 보험 가입 많이 하나?
김문수: 의사들이라고 딱히 일반 고객과 다른 점은 모르겠지만 의사를 포함한 고소득층 전문직종들은 보험 가입 이유가 조금 다르다. 고소득층자들은 일단 목표가 세금이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비과세혜택을 볼 요량으로 가입한다. 또한 고소득층들은 빚이 많은 편이다. 많이 버는 만큼 대출이 감당되다보니 빚이 많은데, 혹여나 자신이 죽을 때 그 빚이 가족한테 가니 종신보험을 많이 가입한다. 마지막으로 돈을 많이 버는 만큼 지출이 큰데, 현재의 소득 생활 수준을 은퇴 이후에도 영위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에 연금보험을 많이 가입한다.

보험가입시 유의해야 할 사항… “이모, 고모, 삼촌한테 가입한 게 제일 위험”

장여진: 가끔 보험 팔 때 양심 문제 같은 거 걸린 적 없나? 판매하는 보험에 다 단점도 있을텐데.
김문수: 난 우리 보험이 최고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느 회사나 보험은 다 똑같다고 말한다. 내가 일하면서 내린 결론은 어떤 회사 보험료가 정말 좋다면 보험료가 비싸다. 보험료가 싸서 좋다는 보험은 보장이나 수익률이 약하다. 그래서 보험업에 오래 계신 분들의 특징은 자기 회사 보험을 브랜드화하기 보다는 본인을 믿고 가입하게끔 만든다.
장여진: 어떤 설계사가 제일 위험한가?
김문수: 자신이 어떤 보험을 파는지 모르는 경우가 제일 위험하다. 납입한 지 20년이 지나도 원금이 안되는데 아이 교육비 차원의 저축보험이라 속여팔고 알고보니 종신보험이고. 증여 기능 없는데 아이 학자금 보험으로 파는 그런 경우이다. 실비보험 중복 안 되는데 중복시키고, 6살짜리 아이 보험에 부인과 질병 특약이 있는 등. 그런데 이런 경우 알고 사기친 것이라기보다 설계사도 진짜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터뷰 끝나고 상담 준비하는 모습

장여진: 보험 가입시 유의해야 할 것은?
김문수: 당신의 설계사가 100% 전문가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입사 1년차 미만 설계사한테 가입하는 건 안 좋다. 그 사람들의 말은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한다.
보험설계는 가족소득 최대 8%를 넘지 말라는데 정답은 없다. 납입기간 길거나 적거나 하는 등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내가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여유 수준, 경제 수준을 잘 따져봐야 한다. 보험 가입할 잉여자금이 없는데 좋다고 무작정 가입하면 안 된다.
아이들 보험을 너무 비싼 거 들지 말라. 어차피 아이가 크면 자기 보험은 자기가 하는 거지 엄마가 100세까지 해주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만 해주면 된다.
가장 든든한 보장은 국가가 해주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사회시스템에서 영리보험은 +@ 일뿐이다.
가장 중요한데 친척한테 가입한 보험은 한 번 더 검증해라. 특히 이모, 고모, 삼촌 등등 검증하고 또 검증해라.

좌파출신 보험설계사가 말하는 복지국가… “복지국가 오더라도 보험회사 안 망해”

장여진: 보험소비자 단체들이 보험회사의 문제점을 많이 지적하는데 가령 보험소비자협회에서 낸 책이라던가.
김문수: 읽어봤다. 그런데 가끔 말도 안 되는 문제제기도 있다. 보험회사는 영리를 추구하는게 맞는데 영리를 추구하지 말라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사람들의 논리는 국가에 대한 요구로 가야하는데 그렇지 않다.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것을 보험회사가 해주는 것이기에 그 영역을 국가에 해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험을 국가가 운영하면 1만원을 납입했을 때 2만원을 돌려주고, 보험회사는 1만원 내면 8천원 돌려준다고 도둑놈들이라며 2만원 돌려달라고 하는데 타격 대상이 잘못된거다. 그렇다고 보험회사의 마케팅이 좋다는건 아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합리적인 대응을 해야 하는데 보험 문제를 비판하는 입장에 계신 분들이 자본주의 자체의 생리를 무시하고 요구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
장여진: 대부분의 보험회사가 적극적으로 해당 보험의 위험성이나 낮은 수익률 등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가입자가 손해보는 경우가 많은데.
김문수: 내 영업 스타일일 수 있는데 나는 이야기를 다 한다. 만약 잘못되면 욕은 내가 다 먹으니깐 약관의 미세한 글씨까지 내가 먼저 꼼꼼히 읽어보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상황도 다 설명해주고 가입자가 낼 수 있는 보험료 형편에 맞춰서 조절해준다.
그런데 솔직히 보험파는 사람이 30만명 넘는다는데 과연 몇 명이나 자기가 파는 보험 약관 끄트머리까지 다 읽으면서 팔지는, 조금 부정적이다. 보험영업조직은 설계사가 보험의 안 좋은 점을 알면 보험을 잘 팔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굳이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설계사가 제대로 모르고 팔고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악순환은 반복된다. 여기서 회사의 손실은 발생하지 않는 구조다.
장여진: 박근혜의 4대 중증질환 국가 100% 지원 공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문수: 건강보험 급여에 대해 비급여부분까지 100% 해주는 건 한국 재정상 우파정권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당연히 박근혜 공약은 건강보험 급여에 대해서만 100%로 알아 들었다. 현재도 90%는 국가에서 지원해주니깐 100%는 충분히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비급여 부분을 100% 지원해준다고 생각하고 실망하는 것 같다.
장여진: 박근혜 공약 자체가 보험 회사 마케팅이랑 똑같이 느껴졌는데 그런 생각 안 들었나?
김문수: 그런 생각은 안 들었다. 다만 돈 많이 안드는 공약을 많이 들어있는 것처럼 포장은 잘했다는 생각은 들었다. 간혹 주변 설계사들도 해당 공약을 오해해서 ‘박근혜가 다 해주면 실비보험 고객 가입 줄어드는거 아니냐’고 하던데, 대체로는 보험회사 선수들은 박근혜 공약의 의미를 다 알고 있었을 것 이다.
장여진: 복지국가가 오면 보험회사가 사라질까?
김문수: 아니다. 왜 북유럽에도 보험회사가 건재하겠느냐. 다만 판매하는 상품이 다르다. 대부분의 북유럽은 종신보험이나 연금보험을 주로 판매한다. 이는 재무적인 관점에서 가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복지국가가 되면 더이상 ‘암 걸리면 가정이 풍비박산 난다’는 인식이 바뀔 것이다. 보험회사도 판매하는 상품도 종신이나 연금보험을 더 많이 취급할 것이다.
복지국가가 된다는 것 자체가 실질소득도 상승하고 세금도 더 많이내고 그렇게 되면 국민건강보험이 비급여까지 포괄해줄테니 고객들도 사보험에 가입하는 이유 자체가 재무적 관점으로 바뀔 것이다.
장여진: 정리하자면 의료보험은 줄어들지만 재무관리 상품이 늘어난다는 것?
김문수: 그렇다.
장여진: 보험회사에 쌍심지키는 좌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문수: 자신의 신념으로 보험회사를 반대하거나 가입을 반대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신념으로 팩트를 왜곡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령 암보험을 가입하는 것보다 그 돈으로 국가체계에에서 운영하는 것이 낫다고 하지만 현재 그 시스템이 없지 않나. 아이디어 측면에서 그런 주장은 옳지만 당장 그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보험가입 하지 말라는건 다소 공허한 이야기가 아닌가.
나도 영리기업이 하는 보험을 국가보험으로 가져가는 것을 찬성한다. 공적체계로 가는 게 맞으니깐. 하지만 도시가스 민영화 된다고 당장 도시가스 쓰지 말라는 이야기랑 똑같다.
장여진: 보험회사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문수: 고객들 현혹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보험의 스탠다드는 죽어서 보험금을 받든지, 병 나서 받든지, 30년 장기저축에서 받든지 셋 중 하나인데 근본적으로 이 3가지가 다 보장되는 건 없는데 마치 그런것처럼 현혹 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장여진: 마지막으로 그냥 한 마디.
김문수: 보험 필요하신 분은 장여진 기자한테 연락하시고, 가입한 보험 문제시 장여진 기자가 대신 맞겠습니다.
장여진: -_-

By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