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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7일 화요일

뜬구름 '창조 경제', 복지국가가 충분조건이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07일자 기사 '뜬구름 '창조 경제', 복지국가가 충분조건이다!'를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의 기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취임식에서도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거듭 확인했다. 이러한 국민 행복 시대를 열 전략으로 제시된 것이 '창조 경제'다. 그런데 창조 경제가 무엇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장관이나 여당 국회의원들이 한마디씩 해석을 내놓지만 모두 제각각이고 뜬구름 잡는 식이어서 국민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래서 지난 4월 3일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창조 경제는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창의성을 우리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 기술과 ICT(정보 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창조 경제는 여전히 공허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무관심하다. 정부 여당의 주요 인사들이 창조 경제의 핵심을 미래창조과학부 중심의 과학 기술 및 ICT에 두고 좁은 시야로 창조 경제를 협소한 곳에 가두는 식의 해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역대 정부에서도 과학 기술과 ICT를 강조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연구 개발비 비중도 꾸준히 증가해왔다.
▲ 박근혜 대통령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지난 4월 22일 청와대에서 만나고 있다. ⓒ청와대


우리나라의 2011년도 연구 개발비는 50조 원으로 GDP의 4.03%인데, 이는 이스라엘의 4.26%에 이어 세계 2위다. 연구 개발비의 절대 금액도 미국일본중국독일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다. 과학 기술과 ICT 발전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현 정부의 굳은 의지에 반대할 국민은 없겠으나, 이는 지금까지 해오던 것이고 당연한 것이라서 새롭게 국민적 지지를 끌어낼 아무런 감동이 없다는 게 문제다.

박 대통령의 창조 경제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과학 기술과 ICT가 아니라 '창의성'이다. 우리나라는 양극화의 심화와 함께 창의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지난 15년간 지속된 시장만능주의로 인해 우리나라의 경제와 산업은 양극화되었고, 이는 일자리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그래서 10%의 좋은 일자리를 놓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의 높은 임금과 완벽한 회사 복지를 제공하는 10%의 좋은 일자리를 앞다투어 선택한다. 여기서 실패한 90%는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일자리 트랙에 갇혀 삶의 희망과 생기를 잃어간다. 창의성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높아지는 법이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간의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일자리 간 격차의 핵심은 임금과 복지의 격차이다.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는 임금이 높고 복지도 완벽에 가깝다. 반면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는 임금이 대기업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고 회사 복지는 거의 없다. 사람마다 적성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르므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자영업이든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 전체적으로 창의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적성이나 하고 싶은 일과 무관하게 입시교육의 성적 순서대로 10%의 좋은 일자리를 선택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높은 임금과 복지가 보장되고 직업 안정성이 높다는 이유로 의사나 판사가 된다면, 이는 본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에도 반하는 것이다. 여기서 창의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제조업농업서비스업, 관광과 의식주 문화 등 모든 산업 분야와 직종에서 창의성이 요구된다. 창조 경제가 성공하려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도전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라야 한다. 이게 복지국가다. 먼저 보편적 복지를 통해 생애 주기별로 필요한 보육, 교육, 의료요양 등의 사회 서비스와 소득 보장을 위한 사회보험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고, 직업 교육과 평생 교육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으로 누구나 원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회사별 복지는 국가의 보편적 복지로 대체되고, 복지의 격차는 없어진다. 다음으로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적극적 산업 정책과 대기업의 불공정과 횡포를 방지하는 경제 민주화 조치가 긴요하다.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통해 높은 수준의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축적한다. 여기서는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패자부활의 제도적 조건 덕분에 실패해도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누구나 새로운 꿈을 찾아 인생 이모작을 시도할 수 있다. 이런 나라는 곳곳에서 창의성이 분출된다. 결국, 복지국가라야 창조 경제가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박 대통령이 말한 '패러다임의 전환'일 것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기초노령연금 2배 약속, 어떻게 지키는 게 옳은가?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3-12일자 기사 '기초노령연금 2배 약속, 어떻게 지키는 게 옳은가?'를 퍼왔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고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현재 아버지 세대인 나는 지금 70대 중후반을 넘긴 할아버지 세대인 내 부모님 세대가 자식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40년대와 그 이전에 태어나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의 시기,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이고 어려운 시기를 살았고,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산업화를 이룬 대한민국 근대화의 주역이었던 현재의 할아버지 세대가 빈곤의 늪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높은 노인빈곤율이 세계 최고의 노인자살률 불러

노인빈곤율은 만 65세 이상의 노인 가구 중에서 중위 가구소득 절반 미만의 소득자 비율을 의미하는 상대빈곤의 개념이다. 2011년도 OECD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은 14.6%였고, OECD 30개 국가들의 상대빈곤율 평균은 10.6%였다. 양자 사이에 차이가 별로 크게 나지 않는다. 그런데 65세 이상 노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인 노인빈곤율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45.1%였고, OECD 30개 국가들의 평균은 13.5%였다. 3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즉, 우리나라와 OECD 평균을 비교해보면, 전체 상대빈곤율은 (14.6% : 10.6%)인데, 노인빈곤율은 (45.1% : 13.5%)였던 것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할아버지 1명이 자살할 때 우리나라 할아버지는 5명이나 자살한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노인자살률이 높은 것은 OECD 국가들 평균의 3배가 넘는 노인빈곤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난하고, 외롭고, 여기에 더해 장기적으로 몸이 아프면 점차 우울해지고,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경과를 밟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현대판 고려장을 겪는 노후불안이 극심한 나라가 되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사회에 노후불안에 대한 정치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고, 이것이 여야를 막론하고 ‘기초노령연금 2배 증액’ 대선 공약의 배경이 되었다.  

공적 노후소득보장 제도가 중요한 이유

누구나 늙고 언젠가는 퇴직을 하는데, 이때 근로소득의 상실은 일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은퇴 후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득원이 필요하다. 각 개인이 자산이나 저축을 통해 스스로의 노후를 감당하거나 가족이 부양을 떠맡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전자는 시장적 방식이므로 여기에서 성공한 노인의 비율이 그리 높지 않으므로 한계가 뚜렷하고, 가족구조와 경제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가족의 부양 또한 한계가 명확하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개인과 가족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국민연금(공무원과 군인 등의 경우에는 특수직역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이다. 이 둘이 우리나라의 공적 노후소득보장 제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공적 노후소득보장의 핵심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소중한 제도이다. 특히, 저소득 가입자에게 유리하도록 제도가 잘 설계되어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큰 자랑거리이다. 가령, 1999년 가입자들 중 월 소득 50만원인 사람은 ‘낸 보험료 총액 대비 받게 되는 연금총액’을 의미하는 수익비가 4인데 비해, 150만원인 사람은 수익비가 1.9이고, 360만원인 사람은 1.4이다. 

또, 우리의 국민연금은 후세대가 현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간 연대’의 정신을 제도에 충실하게 잘 반영하고 있다. 생명보험사의 보험설계사들도 자사의 연금보험 상품을 판매하면서 고객에게 국민연금이 가장 훌륭한 연금보험이라면서 먼저 여기에 가입하라고 권할 정도이다. 이렇게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높은 것은 ‘세대 간 연대’ 덕택이다. 가령,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들 중에서 1938년 출생자는 수익비가 4.54이고, 1948년 출생자는 수익비가 3.61이고, 1963년 출생자는 2.24이며, 1990년 출생자도 수익비가 2.02가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국민연금의 몇 가지 문제점들

국민연금은 몇 가지의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소득대체율이 낮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 당시 평균소득 40년 가입기준으로 70%의 소득대체율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기금고갈의 우려로 몇 차례의 개혁을 거치면서 1999년에는 60%로 낮아졌고, 2008년에는 50%로 낮아졌다. 2009년부터 매년 0.5%씩 낮아져 2028년에는 소득대체율이 40%로 떨어진다. 둘째, 국민연금의 미성숙으로 인해 아직도 65세 이상 노인의 약 66%는 공적연금의 수혜자가 아니다. 셋째, 국민연금 납부예외자의 비율이 전체 대상자의 약 30%에 달하여 사각지대가 매우 넓고,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보았듯이, 국민연금은 저소득층에게 유리한 재분배 효과를 내도록 제도가 설계되어 있고, 무엇보다 후세대로부터의 소득이전 효과가 매우 크다. 그런데 비정규직이거나 저임금인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아예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기간이 짧아서 넓은 사각지대를 형성한다면 국민연금이 이들을 제도적으로 더욱 소외시키는 것이 된다. 지금 가난한 사람들이 장차 노후에 국민연금의 혜택을 누리지 못함으로서 공적 노후소득보장에서 아예 벗어나 더욱 가난해지는 것이다.  

기초노령연금의 중요성과 인수위의 연이은 실수

우리에겐 단기간에 노인빈곤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일 비상한 대책이 요구된다. 공적 노후소득보장이 없는 노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노후를 위한 경제적 준비를 하지 못했거나 자녀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설사, 국민연금을 수령하고 있더라도 그 금액이 월 20만원도 안 되는 경우에는 개인적인 노후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이것만으로는 빈곤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기초노령연금이다. 기초노령연금은 노인빈곤율을 낮추는 데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급여수준(2012년 94,600원)이 너무 낮아 일생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애쓰신 어르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2013년에 (기초노령연금법)을 (기초연금법)으로 전환하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적 운영을 위한 (국민연금법)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기초연금은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중증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A값의 10%)를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게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인상 약속이다.

그런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몇 차례의 잘못을 저질렀다. 첫 번째 잘못은 “국민연금 보험료의 일부(약 10%)를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으로 사용”하겠다는 이야기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다.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하위 70%에게 2012년 현재 최고 94,600원을 지급하던 것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약 7:3의 비중으로 재원을 분담하였는데, 이를 조세로 조달하던 보편적 성격의 수당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에 필요한 재원 약 10조 원 중에서 3-4조 원 정도를 국민연금 보험료에서 가져다 사용하겠다는 이야기가 인수위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에 대한 국민적 반발은 거셌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을 천명하였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찬반의 논란이 있겠으나, 내가 단호하게 반대한 핵심적인 이유는 한 가지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의 훼손’이 그것이다. 2060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는 불안감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사회가 각별하게 노력을 기울이고, 그래서 국민연금의 사각지대가 최소화되도록 온갖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미래 적립금’에 대한 불안을 키우는 돌발적인 정책 제안은 잘못된 것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훼손되면 그만큼 민간보험에 대한 의존이 강화된다. 2012년 현재 국민연금의 총보험료가 28조 원인데 비해, 민간생명보험의 총보험료는 90조 원이라고 한다. 최근 수년 사이에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민간보험보다 높다는 인식과 국가가 국민연금의 급여를 책임진다는 사실이 점차 확산되면서 신뢰가 증대되고 있긴 하지만, 신뢰의 훼손은 한순간의 일이다. 이렇게 정치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으로 사용하지 않고 전액 조세방식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두 번째 잘못은 국민행복연금 도입방안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 가입여부와 가입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의 월 수령액에 차등을 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 수급자들에게는 기초연금을 적게 주겠다는 것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부추겼다. 기초연금과 관련한 인수위의 연이은 실책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훼손되었고, 실제로 이것 때문에 지난 2월 한 달간 임의가입자의 수가 7223명이나 감소하였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임의가입자 수는 2009년 약 3만6천 건에서 2012년 약 20만7천 건으로 7배나 증가했으나, 지난 달 탈퇴자 수의 급증으로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왜 이렇게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시키려고 애쓸까? 지난 대선 때 약속한대로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 원씩 지급하자니 재정 부담이 너무 심해서 그런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기초연금의 재정 부담을 국민연금에 전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만 훼손할 뿐 아무런 실익도 없다. 국민연금 가입여부뿐만 아니라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더 받는 식으로 가입기간에 따라 기초연금 지급액에 차별을 두는 것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을 가능성이 큰 비정규직 등 저소득층과 여성들에게 구조적인 불이익을 주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올바른 해법은?

박근혜 후보의 기초노령연금 관련 공약은 잘못된 부분이 있고, 결코 완전하지 않으므로 그대로 관철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보다 강행하겠다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고집 때문에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만 훼손되었고, 기초연금을 둘러싼 불필요한 정치사회적 갈등만 증폭시켰다. 잘못된 공약을 그대로 실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잘못된 공약이거나 또는 우선순위가 뒤떨어지는 공약임에도 문자 그대로 실천하라고 압박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공약의 취지는 충분히 살리되, 우선순위를 고려하여 현실적인 방식으로 공약을 수정하는 것이 옳다. 이에,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기초노령연금 2배 공약의 실천과 관련하여 어떠한 식으로든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손상시키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여금을 가져다가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버려야한다. 이에 대해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뿐만 아니라 초대 복지부장관도 약속하였으므로 반드시 조세를 통해 기초노령연금의 소요재원을 모두 마련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가입여부와 가입기간에 따라 기초노령연금 지급액의 차등을 두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65세 이상 노인을 소득하위 70%를 기준으로 나누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여기에 국민연금 가입여부가 끼어들 이유가 없다. 노인가구의 소득에는 국민연금이나 특수직역연금 등의 공적 노후소득보장의 소득뿐만 아니라 퇴직연금(5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퇴직연금 가입률이 86.5%임)이나 개인연금 등의 사적 노후소득까지 모두 포함하고, 여기에 사업소득이나 근로소득, 재산의 소득환산액까지 모두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포괄적 의미의 노후소득을 기준으로 소득하위 70%에게는 20만 원을 지급하고, 그 이상 소득계층의 일부에게는 약간의 금액을 차등으로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2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더라도 단기간 내에 이를 그대로 지킬 필요는 없다. 나는 상위 10-20%의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는 노인들에게까지 기초노령연금을 현금으로 지급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할 수도 있겠고, 하면 좋겠으나, 이는 우선순위가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확충하는 데 있어서 세금을 기초로 한 보편적 현금급여 보다는 현물급여인 사회서비스의 보편적 확충에 압도적으로 우선순위가 높게 주어져야 한다. 부유한 노인에게 지급할 현금은 보육과 의료 등 사회서비스의 실질적 보편주의를 구현하는 데로 돌려지는 게 옳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서 제시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적 운영은 관리운영의 통합에 그쳐야 한다. 현재의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이라는 공적 노후소득보장 제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 제도의 미성숙과 낮은 급여수준으로 인해 상대빈곤율이 OECD 국가들 평균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비정상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소득자산조사를 통해 70%의 노인을 선별하여 조세를 재원으로 지급하는 일종의 보편적 노인수당이다. 여기서 소득하위 70%를 선별하기 위한 소득자산조사는 국민연금 소득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적 소득이 다 포함된다. 

그러므로 기초연금의 지급대상과 지급금액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국민연금과 직접적으로 연관 지을 이유가 없다. 국민연금 소득은 노인가구의 전체 소득 중 일부일 뿐이며, 특히 고소득 노인가구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공단으로 넘겨서 관리운영을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겠고, 이를 “국민행복연금”이라고 명명해도 무방하겠으나, 어설프게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을 재정적으로 통합하거나 급여체계를 연동하려는 시도는 시대에 뒤떨어진 잘못된 생각이다. 

셋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장기형 공공임대주택 등 노인 주거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기초노령연금 2배 증액 공약을 여야 후보 모두가 내놓게 된 이유는 심각한 노인빈곤 때문이었다. 노인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소득보장의 측면에서 기초노령연금이 가장 중요한 정책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러한 소득에 비해 노인의 지출에서 의료와 주거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경제적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도 40%로까지 낮아질 것이고, 이를 높이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므로 올바른 해법은 의료서비스 등 보편적 복지의 강화를 통해 노인가계의 실질적인 지출을 줄여주는 것이다.

이상이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학교 교수

원문보기 :  www.welfarestate.net/

2012년 12월 4일 화요일

지금 보편적 복지가 중요한 이유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04일자 기사 '지금 보편적 복지가 중요한 이유'를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박근혜, '줄푸세' 한계 못 벗어났다"

나는 이번 대선은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을 얼마나 강화할 것인지를 둘러싼 대결 구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박근혜 후보보다 문재인 후보가 국가의 역할 강화에 더 적극적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시장은 정상이 아니다. 우리의 시장은 그동안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난 15년 동안 승자독식의 양극화를 낳는 구조적 문제를 확대해왔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실패한 시장을 적절하게 치유하는 국가의 기능, 즉 공공성의 확대이다. 1원 1표의 시장만능주의를 1인 1표의 민주주의로 교정하고 조정하는 경제사회적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그럴 때라야 양극화에서 비롯된 민생불안의 사회, 즉 격차사회를 해소할 단초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로 인해 초래된 격차사회는 시장임금과 회사별 복지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10%의 좋은 일자리는 높은 시장임금을 지급한다. 이들 일자리는 회사별 복지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 병원비며 대학등록금까지 거의 모든 복지를 기업이 부담해준다. 그래서 이러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복지국가 스웨덴이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반면에 90%의 나쁜 일자리는 비정규직 등의 불안정한 일자리이거나 저임금 일자리들이다. 회사별 복지도 형편없거나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 간 시장임금의 격차가 '100 대 50'이라면 회사별 복지의 격차는 심한 경우 '100 대 0'이다. 이건 순전히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양극화와 이동성의 제약이라는 이중구조로 고착된 데 더해, 국가의 복지 역할이 최소화된 탓이다.

이러한 격차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국가의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 먼저,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경제민주화 조치들을 입법하고 집행해야 한다. 다음으로 회사별 복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의 보편적 복지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 손에는 경제민주화를 통한 공정한 경제의 달성을, 다른 한 손에는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를 들고, 적극적 국가 개입을 통해 혁신적 경제가 펼쳐지는 새로운 시대인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이게 우리의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야의 대선 후보 진영은 모두가 복지국가 건설을 자임해왔다. 나는 지금 그것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에 드러난 바로는, 박근혜 후보 측의 복지국가 약속이 이전보다 다소 약해지는 것 같다.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민주화의 추진 의지가 4.11 총선 때보다 크게 약화되었다.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영입하였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배척되고 소외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빗대어 일부 언론은 "토사종팽"이라는 신조어를 타이틀로 뽑았다. 나는 이것이 복지국가의 한 축인 '경제민주화를 통한 공정한 경제의 건설'에 대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의 추진 의지가 약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추진 의지도 마찬가지인데, 새누리당 진영은 여전히 선별적 복지에 대한 강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그 이유를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과 '줄푸세' 노선으로부터의 전향적인 이탈을 감행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시장만능주의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박약했다. 사실, 이 일은 새누리당 같은 보수정당이 추진하기에는 애초에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용기를 냈다. 보편적 복지를 수용하였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하였다. 나는 보수정당의 이러한 전향적 노력에 대해서는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여당의 환골탈태를 위한 이러한 노력에 못 미쳤던 민주당을 비판하곤 했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여야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양극화 시대를 넘어 우리의 시대적 과제로 등장한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인 바, 이 일은 어느 한 정당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 정책 패키지는 재벌과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규제 정책이다. 패권적 질서에 의해 왜곡된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정부의 규제적 개입이다. 사실, 이건 최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더 나은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규제를 넘은지원과 조장 정책이 요구된다. 이게 바로 조세재정 정책이다. 재벌과 대기업에 비해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등이 기술개발에 성공하고 활발하게 성장하고 일자리를 만들도록 지원하고 조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률적 지원뿐만 아니라 기술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진보적 경제 산업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300인 이하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들의 생산력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이들 기업들과 대기업 간의 시장임금의 격차가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사실 더 큰 문제는 회사별 복지의 격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보편적 복지가 신속하게 제도화되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는 다음 두 가지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대상 인구 모두를 포괄해야 한다. 둘째는 해당 복지의 보장성 수준이 높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을 때의 보편적 복지를 마침내 '실질적 보편주의'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길은 쉽지 않은 것이다. 먼저, 국민적 동의와 지지가 필요하다. 이 일에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고, 국민들은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을 지금보다 더 많이 내야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정치권의 큰 결심이 요구된다. 잘못하면 표가 떨어지고 낙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길로 가야한다. 그래서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관철되는 '질 높은 민주주의'와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용기 있는 정치세력의 존재가 절실한 것이다.

 
▲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이 두 가지의 요건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일에 도움이 되고자 신간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를 출간하였다. 보통의 시민들이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적극 나서는 "깨어 있는 시민"으로 조직되지 않는 한 복지국가의 건설은 불가능한데, 나는 이 책이 이 일의 길라잡이가 되길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 보편적 복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0년 지방선거 때 정책 대결의 핵심이었던 무상급식 문제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무상급식 문제의 발단은 김상곤 경기 교육감이었다. 당시 김상곤 교육감은 무상급식을 실시함에 있어 한정된 예산을 감안할 때 두 가지의 방안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나는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의 일부를 인용하여 왜 보편적 복지가 중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방안은 저소득층에게 우선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이후에 이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었다. 이것은 마치 미국의 민주당 소속이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이 엄정하게 제약된 당시의 조건 속에서 1965년 빈자를 위한 공적 의료보호(Medicaid)와 노인을 위한 공적 의료보험(Medicare)을 실시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전체 국민에게로 확대하겠다는 구상과 유사한 방안이다. 김상곤 교육감이 이 방안을 선택하게 될 경우에는 당연히 저소득층이 아닌 학생들은 무상급식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는 소득수준에 따라 무상급식 대상자를 선별하여 급식을 제공하는 선별적 무상급식이다. 두 번째 방안은 전면적 무상급식을 실시하되, 저학년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실시하는 방안이었다. 이 방안은 소득을 기준으로 선별한 게 아니고 특정 연령대의 인구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특정 인구에 대해 보편주의가 적용된 것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두 번째 방안, 즉 학년별 보편적 무상급식을 선택했다."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189-192쪽)

나는 얼마 전에 행한 경북대학교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연간 200억 원이라는 제약된 예산으로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보편적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방안과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 학년에 걸쳐 가난한 학생들 약 15%를 선별하여 이들에게만 선별적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방안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응답한 학생들은 모두 선별적 무상급식을 지지했다. 나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한정된 재원으로 어려운 사람부터 돕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상곤 교육감은 그 상식을 뛰어넘는 결단으로 위대한 투쟁을 시작했다. 만약 2010년 연초에 그가 경기도 당국이 요구하는 대로 가난한 학생들을 선별하여 지원하는 선별적 무상급식을 실시했더라면 지금 무상급식 대상자가 계속 확대되고 있을까? 무상급식의 질은 더 높아졌을까?

린든 존슨 대통령 역시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이래로 미국에서는 뉴딜시대가 열렸지만, 의료보장제도 만큼은 한 치의 진전도 보지 못하였다. 전 국민 의료보장제도의 도입을 시도하였던 트루먼 대통령의 실패 이후, 미국에서는 유럽식 국가의료보장제도가 도입되지 못한 채 의료를 기업별 복지에 의존하는 시장주의에 맡겨 놓았던 것이다. 마침내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호제도(Medicaid)와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의료보험제도(Medicare) 도입하였다. 노인의료보험은 보편주의였지만, 의료보호제도는 전형적인 선별주의 복지였다. 이것을 기반으로 단계적인 확대 과정을 거쳐 언젠가는 유럽식의 국가의료보장제도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식코'의 시장주의 의료제도로 고통 받고 있다.

선별적 복지로 시작해서 보편적 복지로 나아간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하다. 3%의 빈곤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상자를 언젠가 10%로 확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선별적 복지는 그 성격이 애초부터 소득과 재산 조사(자산조사, Means test)를 통해 가장 가난한 일부 국민을 선별하여 이들에게 기초생계를 지원하기 위한 공공부조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급식을 공공부조 프로그램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예산의 제약을 뛰어넘는 게 그것이다. 세금의 대부분을 내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국민들이 기꺼이 세금을 더 내도록 하면 된다. 복지의 수혜자와 비용의 부담자를 일치시키는 전략이 그것이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실패한 보편주의를 김상곤 교육감은 해냈다. 이것이 내가 그를 찬양하는 이유이다.

요즘 일부에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전략적 조합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 말이 화자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기 때문에 정확히 무엇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싶다. 즉, 복지 프로그램은 그것의 '원래 성격'에 부합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큰 원칙을 지키자는 것이다.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소득보장을 위한 사회보험'은 대상자 모두를 포괄할 뿐만 아니라 소득대체율도 지나치게 낮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즉, 실질적 보편주의가 관철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출산, 보육, 교육, 의료, 요양과 같은 사회서비스도 보편주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또, 아동수당이나 장애인수당 같은 사회수당도 보편주의를 원칙으로 만들어진 제도들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러한 보편주의를 견지하더라도 늘 일부의 사람들은 추가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때는 자산조사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지원해주는 공공부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것이 선별적 복지이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이러한 관계를 나는 '전략적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재원의 한정으로 인해 처음에는 선별적 복지로 시작했다가 차츰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며, 이것을 전략적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의 맞춤형 복지가 이러한 기조인 것 같다. 그런데 이건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새누리당의 보편적 무상보육 방침을 매우 잘 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새누리당이 완고한 보수정당에서 현대식 보수정당으로 바뀌고 있다는 좋은 징조다. 보육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에서도 실질적 보편주의가 관철되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여기에서는 완고하게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부터 도와야 한다는 '온정적' 심성은 백번 이해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복지의 수혜자와 비용의 부담자를 일치시키는 일이다. 중산층 이상의 국민에게도 보편적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해주고, 그들에게 세금을 더 걷으면 될 일이다. 그래야 실질적 보편주의가 제도화되고, 회사별 복지의 격차사회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이 이러한 담론과 정책 경쟁의 장이 되길 온 국민과 함께 기대하며 촉구하고 싶다.

▲ ⓒ프레시안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