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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5일 목요일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은 한라건설"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4-25일자 기사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은 한라건설"'을 퍼왔습니다.

지난해 14명 사망, "매년 2천500명 산재로 사망"


노동계가 오는 28일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지난해 가장 많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한라건설을 선정했다.

민주노총, 노동건강연대, 한국노총, 매일노동뉴스, 민주통합당 한정애 의원,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으로 구성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은 2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3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한라건설을 선정했다.

고용노동부의 '2012년 중대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한라건설이 원청으로 있는 사업장에서 지난 한 해동안 가장 많은 총 1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한라건설은 지난 해 12월 울산 앞바다에서 작업선 석정 36호가 침몰하며 12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의 원청업체로, 현재 해양환경관리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기소된 상태다.

건설업 분야에서는 한라건설에 이어 GS건설이 8명, 포스코건설이 7명, 태영건설과 대우건설이 6명으로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GS건설은 지난 2006년과 2010년, 대우건설은 2011년 각각 가장 많은 산재사망 노동자가 발생한 기업이었지만, 여전히 인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지난 해 8월 다이옥신 폭발 사고로 8명이 사망한 LG화학이 8명으로 1위를 기록했고, 구미 불산 유출사고로 알려진 휴브글로벌이 5명, 역시 폭발사고로 4명이 사망한 아미코트와 3명이 사망한 포스코가 뒤를 이었다.

공동캠페인단은 매년 산재사망자가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현장 부실관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고용노동부의 형식적인 감사를 지적하며 "원청기업에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우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원청 기업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산재통계가 작성된 지난 2001년부터 11년간 한국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8만6천여명에 달한다. 매년 2천488명이 현장에서 각종 사고로 사망하지만 현장 부실관리로 사망의 원인을 제공한 사업주는 고작 수천만원의 벌금형에 그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2008년 화재로 노동자 40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천냉동창고 사건은 최악의 산업재해로 꼽히지만, 사측 관계자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전무했다. 화재 원인은 현장 관리 부실이었지만 사업주는 벌금 2천만원을 내고 면죄부를 받았다. 2011년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LG화학 OLED 공장 사고 역시 사업주에게 물린 벌금은 3천만원에 불과했다.

두 사례는 그나마 피해 규모가 커지고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벌금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경우다. 질식사고로 4명이 사망한 이마트는 벌금 100만원과 기소유예, 3명이 사망한 삼호조선 사고는 벌금 50만원에 그쳤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솜방망이 처분은 사고 위험이 높은 업무에 집중 투입되는 하청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매년 노동부의 안전점검에서 90% 이상 사업장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고 있지만, 업체당 과태료를 평균 95만원 수준이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주최로 24일 국회에서 열린 산재사망의 책임자 처벌 및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중대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업체 사업주의 책임의 범위와 가중처벌을 적시하는 '산업재해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민변 노동위원회 강문대 변호사는 "특별법에 원청의 경영책임자 처벌을 포함해도 법을 운용하는 기관이 원청에 책임을 묻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일정한 유형의 사고에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명시해 법 운용기관이 함부로 법 적용 회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청업체의 산재예방조치 의무가 없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 요구도 거세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개정안은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원청에서 지정하도록 의무화했지만 대상사업을 제조업 등 7개 업종으로 한정했다"며 "당연히 모든 사업으로 확대하고, 임대, 위탁 사업 등에도 안전관리 의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성 기자 

2013년 4월 19일 금요일

진주의료원 환자, 이송 43시간만에 사망…“홍준표 사죄하라”


이글은 GO발뉴스 2013-05-18일자 기사 '진주의료원 환자, 이송 43시간만에 사망…“홍준표 사죄하라”'를 퍼왔습니다.
보건노조 “전원압력에 못견뎌”…김용익 “환자 몰지 말라 했는데”

진주의료원 일반병실에 남은 유일한 환자였던 왕일순 할머니(80)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 후 얼마안되는 시점에서 18일 오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그래도 강하게 일고있는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여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왕 할머니는 최근 ‘go발뉴스’가 진주의료원을 찾았을 당시 만난 환자이기도 하다.

▲ 故 왕일순 할머니 ⓒ go발뉴스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은 18일 ‘go발뉴스’와의 통화에서 “(왕) 할머니는 진주의료원에 있는 급성기 환자였는데 이틀전에 환자를 퇴원시킨 모양이다. 요양병원에 가서 바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라며 “지금 진주의료원 쪽에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상태로 그렇게 됐던 할머니라서 문제가 좀 심각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몇 번이나 환자를 몰아내서는 안된다, 환자가 있는데 의사들을 내보내서는 안된다고 몇 번 이야기를 했는데도 직원들까지 며칠전에 사표내게 하지 않았느냐”며 “이런 불상사가 생겨서 참 기가 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왕일순 환자는 2월 26일 진주의료원 폐업결정 발표 이후 계속 퇴원하라는 압력에 시달려왔다”며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경우 자칫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지난 16일 오전 전원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노인병원으로 옮겼으나 옮긴지 43시간만인 오전 6시 40분경 사망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한 명의 환자라도 끝까지 책임지겠다던 홍준표 경남지사는 강제전원당한 환자의 죽음 앞에서 무엇이라고 변명할 것인가”라며 “지금 진주의료원에는 20여명의 환자가 아직도 남아있다. 홍 지사는 환자의 죽음앞에 사죄하고 환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강제퇴원 종용행위를 중단하라”고 일갈했다.
이에 앞서 이상호 기자와 ‘go발뉴스’ 취재팀은 지난 9일 진주의료원 관련 취재를 진행하면서 뇌졸중으로 투병중이던 왕 할머니의 병실을 찾아 보호자 박광희 씨(경남 하동군)를 만난 바 있다. 당시 왕 할머니는 산소마스크를 쓴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당시 박씨는 인터뷰에서 “박 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환경좋고 시설좋고 저렴한데 당연히 (진주의료원에) 있어야죠”라며 모친을 진주의료원에서 계속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나타낸 바 있다.
아울러 박 씨는 “도에서는 전부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데 XX병원과 여기를 비교하면 거기는 여인숙이고 여기는 호텔이다. 당연히 호텔에 있지 왜 여인숙에 가겠나”라며 경남도 측의 의료원 폐업결정에 반대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문용필 기자  |  balnews21@gmail.com

2013년 3월 18일 월요일

잇따른 하청 노동자 사망, 목숨값이 고작 100만 원?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18일자 기사 '잇따른 하청 노동자 사망, 목숨값이 고작 100만 원?'을 퍼왔습니다.
"원청 책임 강화하고, '자율 안전 점검' 기조 재검토해야"

여수 산업단지에서 산재 사고가 일어난 것은 이번 '대림산업 공장 폭발'이 처음이 아니다. 1989년 10월 럭키화학 공장 폭발로 16명이 사망했으며, 2000년 8월에는 호성케멕스 공장이 폭발해 6명이 숨지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지난해(2012년)에는 실리콘 가스 누출로 49명이 트리클로로실란 독성 가스에 노출됐다.

그밖에 크고 작은 폭발이나 화재, 가스 누출 등으로지금까지 여수시에서만 200여 건에 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1000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생긴 것으로 집계됐다. 여수 산업단지뿐 아니라 다단계 하청 구조인 건설 현장에서는 매년 600-7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숨지고 있다.

사고가 생길 때마다 유관 기관은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부실 사례를 적발했지만,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원청 사업주에게는 안전 조치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한 경우 원청을 포함한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사업주가 안전 조치를 위반해 노동자가 숨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기업 가운데 사법 처리된 비율은 5%에 불과했다. 2010년부터 2012년 7월까지 발생한 2290건의 중대 재해에서 57.2%가 벌금형을 받았고,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2.7%인 62건에 불과했다.

실제로 2011년 7월 경기도 고양시 이마트 탄현점 기계실에서 냉동기 보수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4명이 질식사했지만, 원청인 이마트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이마트 법인과 탄현점 지점장에 부과한 벌금은 각각 100만 원에 불과했다. 노동·시민단체가 "사람 목숨값이 100만 원이냐"고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 냉동 창고 공사 현장에서도 불이 나 하청 노동자 57명 가운데 40명이 사망했지만, 원청업체 대표는 2008년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벌금 2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사망자 한 명당 50만 원어치의 벌금을 낸 셈이다.

노동계는 원청 업체들이 하청 노동자를 사용함으로써 '위험을 외주화'하고, 안전 관리를 미흡하게 해서 하청 노동자들이 숨져도 경고 조치, 벌금 등 가벼운 처벌을 받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1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림빌딩 앞에서 '여수 산업단지 화학 폭발 17명 사상 사고 대림산업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산재가 은폐되는 분위기 속에서 정부가 소위 '무재해 사업장'에 각종 혜택을 지원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표적인 혜택이 '안전 보건 지도 감독' 제외다. 그 결과 고용노동부의 '안전 보건 지도 감독' 대상 사업체 수는 2007년 5만여 건에서 2009년 1만7000여 건으로 급감했다.

일례로 지난 1월 불산 누출 사고로 5명의 사상자를 낸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 공장의 경우, 정부로부터 '녹색기업'으로 지정받아 유독물질 지도 점검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 화성 공장이 산업안전보건법을 2000건 가까이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산재가 대기업에서 많이 나는데, 노동부는 그동안 대기업의 안전 점검을 해당 기업에 맡기는 방식으로 갔었다"며 "정부가 기업의 '자율 안전 점검' 기조에 대해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청을 포함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최명선 노동안전국장은 "하청 노동자가 죽으면 원청의 최고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산재 사망 처벌 강화 특별법(가제)'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도 15일 논평을 통해 "노동자의 산재 사망을 막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특별 근로 감독 등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라"며 "국회 또한 산재 사망 기업을 강력히 처벌할 수 있도록 '기업 살인 특별법(기자 : 산재 사망 처벌 강화 특별법과 같음)' 제정을 더는 늦춰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6일 잇따른 화학 물질 누출 사고와 관련해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내정자에게 "원인을 파악해 근본 대책을 수립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김윤나영 기자 

2013년 3월 15일 금요일

"1000명 이주민 가운데 280명 줄줄이 사망"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3-14일자 기사 '"1000명 이주민 가운데 280명 줄줄이 사망"'을 퍼왔습니다.
[기고] 원전사고 2년, 日후쿠시마 피해자가 체르노빌에서 찾은 진실 (하)

2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들이 일본의 ‘미래’를 찾기 위해 1986년 원전폭발사고가 있었던 우르라이나 체르노빌을 찾아 원전사고의 심각성을 취재했다. 이 내용은 지난 10일 OBS에서 < 0.23 μSV - 후쿠시마의 미래 >라는 이름으로 방영됐다. 해당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이홍기PD는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을 오가며 현장을 담았다. 미디어오늘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2년을 맞아 2번에 걸쳐 그의 취재기를 싣는다.

조사팀이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도착해 제일 처음 찾은 곳은 우크라이나 국립 암 연구소 소아과 병원이었다. 이 병동엔 암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다. 무슨 이유로 이 어린 아이들이 암을 앓고 있을까? 혹시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후유증은 아닌지, 피폭당한 부모 때문에 생긴 유전은 아닌지, 조사팀은 그 점이 가장 염려스럽고 궁금했다.
부모들이 당한 원전사고가 아이들한테까지 대물림 된다면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병원의 원장인 크림시크 박사는 조사팀을 만나 그간의 사정을 솔직하게 고백해 주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건강 추적 조사 체계는 어떻게 되어있고 그것으로 질병이 발견되기도 하나요?”(후쿠시마 피해자 시바타씨)
“저는 그 당시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방사능 오염단계에 관한 자료의 대부분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덧붙이자면, 체르노빌 사고 이후에 인구가 대거 이동하면서 잠재적 환자나 이미 발병한 환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퍼졌습니다. 때문에 통계나 측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크림시크 박사)

쁘리퍄티유원지 놀이기구

원전사고 후유증은 피폭 여부를 증명하는 것도 힘들고, 다음 세대까지 오랜 시간동안 역학 조사를 하는 것도 힘들다. 때문에 후유증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누구도 그 전모를 완벽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일행은 그런 점이 가장 두렵고 불안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원전 사고 이후 백혈병 발병률이 증가했다고 확인된 사실 외에도 체르노빌 피해자에게서 발병한 백혈병이 더 악성임을 발견했습니다. 매우 공격적이기 때문에 치료하기도 어렵습니다.”(클레멘코 세르게이 박사, 국립의학 아카데미 방사선 의학 연구 센터)
2005년 UN보고서에 의하면 체르노빌사고 때 피해를 입고 갑상선암으로 숨진 사람은 9,300명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아동인구에서 갑상선 암 발병사례가 증가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고당시 쁘리뺘뜨 지역에서 대피 했던 성인에게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했죠. 이는 사고초기에 사고가 난 원자로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 방사능 노출량이 눈에 띄게 높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바지카 드미트리 박사, 국립 의학 아카데미 방사선 의학 연구센터)
후쿠시마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은 이번 조사의 핵심 과제였다. 조사팀은 우크라이나에서 유일하게 태아의 방사능 피해를 연구하고 있는 콘스탄틴 박사(국립 의학 아카데미 방사선 의학 연구센터)를 만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는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콘스탄틴 박사는 체르노빌 사고 때 피폭당한 아이들이 20대가 될 때까지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왼쪽 뇌의 손상으로 아이큐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것은 선천적인 저능아라는 뜻이 아니라 좌우 뇌의 부조화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좌뇌의 역할에 해당하는 수학과 언어능력이 정상인보다는 현저하게 뒤떨어지죠. 또한 우리 연구에 의하면 방사능에 노출 된 아이들이 감정적으로나 행동적으로 더 큰 장애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침착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하고 불안 증세에다 집중력도 떨어져 산만해진다는 뜻입니다.”

쁘리퍄티유원지멘홀뚜껑위 방사선 최악수치

조사단이 탄 버스는 키에프를 출발해 북쪽을 향해 달렸다. 버스 안엔 긴장감이 흘렸다. 아주 위험한 곳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원전에서 30km, 10km 떨어진 곳 두 군데에 검문소가 있었다. 경찰과 군 당국의 삼엄한 경비가 눈에 띠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사전 허가를 받았지만 통과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내부 사정이 어째서 이럴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하자 반경 30km 안에 있던 200여 마을에서 13만 5000명이 강제 이주 당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꺼라 믿었던 고향은 26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거주 금지 구역으로 되어있었다. 당시 이주지에 정착하지 못했던 고령자들 약 1,200명은 고향인 마을에서 숨어 지냈고 지금도 약 1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오염된 목조 가옥들은 흉물스럽게 쓰러져 갔고, 유치원건물에서는 두고 간 인형들과 낮잠을 재우던 침대 등이 있었다. 당시 다급하게 떠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검문소를 통과한지 20분 뒤, 조사단 손에 들려있던 측정기가 경보음을 다급하게 울렸다. 방사능이 높다는 소리였다.
20세기 말에 발생한 대 재앙의 진원지이자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재촉했다는 역사의 현장,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던 체르노빌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쿠시마가 감추고 있는 진실을 캐고 싶어 체르노빌을 찾아온 사람들이지만 두려워하면서도 결연했다.
26년 전 폭발했던 문제의 4호기 내부엔 아직도 250톤의 방사능 물질 남아 보이지 않는 죽음의 연기를 끝없이 내뿜고 있었다. 당시 화재 진압과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30대의 군용 헬기가 동원 됐다. 소방관을 포함한 1,100명이 보호 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방사능 더미 속으로 뛰어 들었다. 무모하기 짝 없는 진압 작전이었다. 56명의 소방관이 엄청난 피폭으로 사망했다.
“저는 현장을 목격했을 때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헬기의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 수백 수천 단위의 방사능 수치가 측정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난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삶에서 그 기간은 전쟁으로 기억될 것입니다.”(마카랭코 발레리 당시 우크라이나TV 기자)
조사단은 의사가운, 위생모, 고무덧신을 착용하고 원전의 심장부인 중앙제어실로 향했다. 좁고 어두운 복도가 수백 미터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시작된 비극의 현장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외국인에겐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했다. 한참 후에야 2호기 제어실이 나타났다. 똑바로 더 가면 3호기 제어실이 있고 더 앞으로 가면 막다른 곳이 나오는데 그 곳이 바로 석관으로 뒤덮인 4호기다.
엄격히 봉쇄된 2호기 제어실 내부로 들어가자 타임머신을 타고 온 느낌이었다. 모든 장비가 26년 전 그대로였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조사단이 가지고 들어간 선량계가 1.23 마이크로시버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는 평상시의 20배가 넘는 수치이며, 후쿠시마원전 사고 직후 후쿠시마현, 가와마타쵸, 미나미소마시, 가와우치마을 일부 지역의 방사능량과 비슷했다.
사고 당시 연쇄폭발 할 수도 있었던 2호기는 1991년부터 가동이 중지됐고 우크라이나는 소련연방에서 독립해 체르노빌 원전의 가동을 순차적으로 중지했다. 제어실 팀장인 알렉산드씨는 현제 2호기 해체작업에 참가하고 있다. 원전사고 이전부터 근무한 베테랑이지만 언제나 방사능의 위험 속에서 일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원전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말하는 데 어떻게 생각하세요?”(사쿠라다 아오모리 거주)
“그 문제는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있는 문제입니다. 실질적으로 현재까지 그 어느 나라에도 완벽한 제어시스템은 없습니다. 우라늄을 추출하는 모든 과정을 거쳐서 안전한 폐기물을 얻는다는 그런 기술은 아직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일본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닙니다.”(알렉산드 제어실 팀장)

우크라이나암센터 소아과병동에 입원중인 남아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4호기로 향했다. 석관에서 약 150m 떨어진 곳에 섰다. 다시 한 번 충격 속에서 떨어야 했다. 선량계가 13.0마이크로시버트를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쵠악의 수치였다.노후 된 석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셀터 건설현장이 바로 옆에 보였다. 새로운 셀터는 돔 형태로 폭 257.44m 길이 150m 높이 103.89m이다. 골칫덩이였던 4호기는 2015년까지 이 거대한 덮개로 완전히 밀봉된다. 석관 내부의 핵연료나 방사능 물질을 어떻게 추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그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고 한다. 덮개의 수명 또한 100년. 그 후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체르노빌 원전에서 3km 떨어진 ‘프리퍄티’ 지역. 26년 전만 해도 이 지역은 구소련이 꿈꾸던 첨단 도시였다. 그러나 번창했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특급 호텔과 화려했던 공연장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인구 5만 명의 도시가 유령처럼 사라졌을까? 프리퍄티는 소련이 만든 가장 쾌적하고 안전한 계획 도시였다. 젊고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체르노빌로 출퇴근했다. 하지만 원전 사고 이틀 후, 주민들은 1,200대의 버스에 실려 강제이주 당했다. 그게 이 도시의 끝이었다.
키예프에서 남동쪽으로 60km 지점에 있는 코바린 마을. 이 지역은 원전사고가 난지 6년 후. 피폭지역에 살던 주민 1,000명이 집단이주한 곳이다. 정부는 200평의 땅과 집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미하일 씨는 여기로 이사 오기 전까지 농사가 뭔지 거의 몰랐다. 그는 수학교사였고 부인은 협동농장 회계담당이었다.
부부는 원전 사고 때 피폭 당했다. 부인은 86년 12월에 갑상선 수술과 섬유근종 수술을 거푸 받았고 남편은 지금도 94년부터 심근경색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의 딸도 선유근종에 걸렸다. 게다가 손녀도 갑상선종이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죽음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이사 온 동네. 하지만 뜻밖의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무엇보다 원주민들의 텃세가 심했다. 오염지역 출신들은 위험하다며 가까이 하길 꺼렸다며 미하일 씨는 눈물을 흘렸다.이주한지 얼마 후부턴 수많은 이웃이 죽기 시작했다. 부부는 죽음의 공포가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 사정은 끔찍했다. 1,000 명의 이주민 가운데 280명이 줄줄이 사망했다. 의사도 속수무책이었다. “이주한지 1년 후부터 죽기 시작했어요. 심장마비나 뇌졸중, 암에 의한 죽음이죠. 이 세 가지가 이주민들의 주된 사망원인이었어요. 심지어 매주 장례식이 치러졌던 때도 있었어요. (다찌아나, 코바린 주민)체르노빌이 겪은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1세기의 첨단 과학은 원전사고의 후유증을 완벽하게 치유하는 데 그만큼 무기력했다.  

이홍기·독립PD | media@mediatoday.co.kr  

2013년 3월 5일 화요일

무상 의료 때문에 사망자 늘어? 제대로 알고 쓰자!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05일자 기사 '무상 의료 때문에 사망자 늘어? 제대로 알고 쓰자!'를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스태포드 병원 사태와 국내의 한 지방병원 사태

얼마 전에 국내의 주요 언론들이 영국의 스태포드 병원 사태를 소개하면서 영국 국영의료제도(NHS)를 대대적으로 비판했다. NHS에 대한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는 영국 국영의료제도가 부당하다거나 한계가 뚜렷하다는 등의 성토에만 그치지 않고, 한국의 의료 제도 개혁에서 무상 의료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소위 '무상 의료 무용론'으로까지 번졌다. 심지어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80% 이상으로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도 이어졌다. 그야말로 근거 없는 침소봉대다.

스태포드 병원의 높은 '초과 사망자 수'

스태포드 병원 사태의 핵심인 이 병원의 높은 '초과 사망자 수'는 영국 NHS의 규제 기관인 Healthcare Commission 자체 조사를 통해 2009년 처음 알려졌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2/2003년부터 실제 사망자 수가 기대 사망자 수보다 100명 이상 계속 많았다. 최근 국내의 주요 언론이 인용한 '프란시스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 사실 총 5회의 자체 및 외부 감사가 있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감사가 이뤄졌음에도, 환자 보호자들의 추가 증언들이 계속 나오고 피해를 본 환자 보호자들이 단체를 결성하여 종합적인 진상 조사를 계속 요구하자 2010년 캐머런 총리의 지시로 프란시스가 그 임무를 맡은 것이다.

필자가 영국에서 1년간 머문 2010-2011년 동안에도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계속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졌던 터였다. 한국에서 지금에야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2월 초에 프란시스 보고서의 최종본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 영국 스태포드 병원의 실제 사망자 수와 기대 사망자 수의 추이(1996-2008). 자료원 : Healthcare Commission 통계, 프란시스 보고서를 참고하여 재구성

프란시스 보고서

프란시스 보고서는 스태포드 병원 사태에 대한 종합적 감사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과거 수차례의 감사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이 지적되었음에도 스태포드 병원과 지역 보건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139일에 걸쳐 160명 이상으로부터 증언을 들었다. 이를 통해 환자가 꽃병에 든 물을 마셔야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비롯하여 환자들에게 적절한 영양과 음료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드러났다. 간호 인력 부족과 불성실한 간호가 그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간호사들이 생명 유지 장비를 적절히 다루지 못했거나 경험이 부족한 의사들이 중환자를 책임지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보고서가 나온 직후, 캐머런 총리는 "단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라며 현실에 안주하는 문화를 뿌리 뽑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보수당-자유민주당 연정이 추진하고 있는 NHS 개혁의 동력으로 이 보고서를 활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총선에서 장애아로 사망하였던 자신의 아들 사례를 들면서 영국 NHS 제도의 소중함을 이야기하였고, 총리가 되더라도 NHS 예산을 줄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총리가 되고 난 후, 캐머런 정부는 NHS에 대한 대대적 구조 개혁에 착수하였고, 그 핵심은 재임 기간 동안 200억 파운드에 달하는 지출의 삭감이었다. 지출 삭감은 당연히 인력 감축으로 이어지고, 환자의 안전은 더 큰 위협에 처할 것이 명백한 이치였다. 캐머런 정부는 이러한 우파 개혁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해야 했고,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조차 그러한 개혁의 부당성을 지적했었다.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NHS 제도 그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비롯됐다. 영국 노동당 정부의 NHS 개혁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대처 정부 당시 NHS 개혁을 통해 영국의 병원은 전문 관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고, 이러한 현상은 노동당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노동당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경쟁과 선택의 원칙'에 근거하여병원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2001년부터 스타 등급제(Star Ratings)로 불리는 병원인증평가 제도를 실시하였다.

이 평가 제도를 통해 높은 평가 등급을 받은 병원들에 대해서는 영국 정부가 NHS 파운데이션 트러스트(Foundation Trust)라는 지위를 부여해 주었다. 병원들이 파운데이션 트러스트로 전환되면 보건부 장관의 관리 감독으로부터 벗어나 별도의 기구인 모니터(Monitor)에 의해 규제를 받고, 재정과 병원 인력 운영의 자율성을 대폭적으로 보장받는다. 대신 모니터에서는 병원 간 경쟁을 위하여 계속적인 비용 절감 노력을 요구했으며,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기보다는 가시적인 목표를 달성할 것을 요구했다. 스태포드 병원 역시 파운데이션 트러스트이다.

▲ 파운데이션 트러스트(Foundation Trust) 지위를 받으면, 재정과 병원 인력 운영의 자율성을 대폭적으로 보장받는 대신 병원 간 경쟁을 위하여 계속적인 비용 절감을 요구받는다. 사진은 스태포드 병원 입구. 'NHS 파운데이션 트러스트'라는 문구가 보인다. ⓒ로이터=뉴시스

결국, 스태포드 병원은 비용 절감을 위하여 기존 인력의 축소를 감행하였고, 이를 값싼 의료 인력으로 대체하였다. 스태포드 병원의 실제 사망자 수가 기대 사망자 수보다 급증한 것이 2001년 2월(영국의 회계연도는 4월 1일부터이다)부터라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잘 반증해준다. 병원 경영진은 파운데이션 트러스트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의료진들의 필요하고도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였고, 외부 감사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프란시스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부정적인 NHS 조직 문화는 목표치 달성, 재정, 파운데이션 트러스트 지위의 유지 등과 같은 압력에 대해 NHS 하위 조직들과 병원 조직, 그리고 스태프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을 최우선에 두는 "NHS 조직 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 보고서가 NHS 제도 자체의 근본적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영국 NHS 제도의 핵심인 의료 이용 시점에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원칙이 스태포드 병원 사태의 원인이라는 지적은 보고서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영국 노동당 정부가 주도한 NHS 개혁의 어두운 한 단면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양적 성장을 위한 경쟁과 경영 효율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당 정부 기간 동안에 행해졌던 모든 NHS 개혁이 부정적이라거나 NHS 무용론으로까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고 잘못된 것이다. 예컨대,의학적 서비스를 통해 피할 수 있는 사망률은 노동당 집권 시기 동안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가파르게 감소하였다. NHS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 역시 노동당 집권 시기에 급증했다. 정권 이양 직전인 2010년에는 국민의 70%가 만족한다고 응답하여 영국사회조사가 이루어진 1983년 이래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들의 의료 체계를 주로 연구하는 미국의 커먼웰쓰 펀드의 2011년 조사에 의하면, 영국은 스위스와 함께 자국 환자들이 자국 의료 제도를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주된 이유는 영국의 노동당 정부가 NHS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함으로써 인력과 시설의 확충 및 현대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당 정부는 만성적인 대기 시간을 획기적으로 감축했고, 정기적으로 환자 설문조사 결과를 의료인들에게 환류하는 등 환자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과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뒷받침했다.

▲ 지난해 7월 영국 런던 북동부 리밸리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개막식 모습. 영국은 국가 무상 의료 시스템을 개막 행사의 주요 퍼포먼스로 연출했다. ⓒ연합뉴스

스태포드 병원 사태와 국내의 한 지방병원 사태

마침 며칠 전에 지방의 한 병원에서 의료기 판매업체 직원과 간호조무사가 1100여 차례에 걸쳐 수술을 해 왔다는 기사가 났다. 해당 병원장은 "병명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발병 원인을 질병에서 상해로 변경해 환자가 고액의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하면서 환자를 늘렸고, 고액이 보장되는 보험 상품에 가입하도록 한 뒤 아프지도 않은 사람에게관절염 수술을 시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은 보건당국이 아니라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수사 결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의 한 지방병원인 스태포드 병원 사태에 대해서는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NHS 무용론, 심지어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제한해야 한다는 식의 목소리가 대대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진작 국내의 지방 소재 한 병원의 사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종합적 감사가 필요하다거나 한국 의료 체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등의 목소리는 전혀 내지 않고, 단지 일회성의 사건 사고처럼 다루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병원 사망률을 비롯해 병원 의료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통계마저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침소봉대하는 것도 잘못이요, 드러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윤태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손가락밖에 못 움직이는 주영이, 불 속에서 얼마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29일자 기사 '"손가락밖에 못 움직이는 주영이, 불 속에서 얼마나…"'를 퍼왓습니다.

평생 두 발로 땅을 밟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1급 뇌성마비 중증장애를 앓았다. 하지만 25살 때부터 부모 품을 떠나 자립했다. 다른 장애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중증 장애인들에게 한글 등을 가르치는 야학교사로 활동했다. 2009년부터는 성동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자립을 원하는 중증장애인을 상담해주는 일을 했다. 지난 26일 새벽, 화재로 사망한 김주영(33) 씨 이야기다.

경찰의 말을 종합해보면, 26일 새벽 2시 40분께 6평 규모의 김주영 씨 원룸에서 불이 났다. 김주영 씨 집 2층에 사는 이웃주민은 펑 소리가 나서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김 씨의 집이 불타고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소방서 신고 접수 기록을 보면 최초신고 이후, 김 씨도 소방서에 구조 신고를 했다. 하지만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김 씨는 이미 화재 연기에 질식사한 상태였다.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는 김 씨는 리모컨으로 자신의 집 문을 열어놓았으나 이것만으론 연기를 피하기 어려웠다. 김 씨가 참사를 당한 장소와 출입문까지는 불과 몇 발작 거리였다.

불은 10분 만에 꺼졌지만 혼자서 전동휠체어에 앉을 수 없었던 김 씨는 밖으로 나오지 못해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 추모제. ⓒ프레시안(허환주)

김 씨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12시간밖에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최대 시간이다. 이날 활동보조인은 밤 11시 30분에 퇴근했고 참사는 그 이후 발생했다. 장애인단체는 하루 24시간 활동보조 서비스만 이뤄졌다면 김 씨가 그렇게 어이없이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는 29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추모제를 열고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평소 고인과 친했던 최진영 성동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왜 이렇게 장애인들이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손가락밖에 움직이지 않는데 화재 속에서 주영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24시간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게 해달라는 우리의 목소리를 지속해서 모르쇠로 일관했다"며 "그 결과, 지금처럼 한겨울 수도관이 터져 죽거나, 불이 나서 죽는 게 지금의 장애인이다. 이제라도 우리를 사람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눈물을 흘렸다.

 /허환주 기자

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엑스트라 일당 떼먹으며 만든 드라마 잘 보고 계십니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13일자 기사 '엑스트라 일당 떼먹으며 만든 드라마 잘 보고 계십니까'를 퍼왔습니다.
[최지연의 컬처노트] 각시탈 보조출연자 사망 이후, 달라진 것 없는 열악한 현실

얼마전 종영된 KBS 드라마 (각시탈)의 마지막회는 故 박희석씨에 대한 애도자막으로 시작하였다. 고 박희석씨는 (각시탈)의 보조출연자로 촬영을 위해 버스로 이동중 전복사고가 나면서 사망하였다. 다행히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로 인정받아 일부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이 결정이 고용노동부에서 방송 보조출연자에 대한 산재 승인을 한 첫 번째 경우라고 한다. 그동안 공단은 ‘보조출연자는 근로자가 아니다’는 고용노동부의 94년 유권해석으로 보조출연자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산재 보상과는 별개로 사고에 책임이 있는 방송사나 드라마 제작사 등은 책임 회피에 급급해서 유가족들이 보상을 둘러싼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보조 출연자, 흔히 엑스트라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다수가 동원되는 장면에서 병사, 주민, 관객 등 대사가 없거나 한 두 마디에 불과한 단역 배우들이다. 이들은 하루종일 일해도 일당 4만~5만원에 불과하며 촬영현장에서 형편없는 처우를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그나마도 지급이 늦어지거나 떼이는 경우도 많아 생계의 곤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와 계약한 외주 제작사 드라마 출연료 미지급 현황이 지난 8월까지 KBS, MBC, SBS 3사 총 16억 2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어느 드라마도 주연배우 몇 명을 제외하고는 출연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요즘 중고생들의 장래희망 일순위는 연예인이라고 한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화려한 스타가 되고자 하는 청소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순수예술이건 대중예술이건 인기와 부를 누리는 예술인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간한 (2009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활동 관련한 월평균 수입이 100만원 이하인 경우가 25.4%, 아예 수입이 없는 경우도 37.4%에 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예술인 10명 중 6명이 그들의 본업만으로는 월 100만원도 벌 수 없기 때문에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거나 다른 부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개의 예술인들은 어딘가에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일하기보다 프로젝트별로 계약하여 일하기 때문에 최후의 사회적 안전장치라 하는 4대 보험 가입률이 낮다. 위 보고서를 보면 건강보험을 제외한 국민연금,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률이 각각 59.2%, 28.4%, 29.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그래서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예술인의 복지 지원’을 위한 (예술인복지법)이 다음달 18일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설립 중에 있다. 참여정부 시절 ‘예술인 복지’가 문화정책의 주요 의제로 공식화된 이래 비로소 그 첫 결실이 이루어진 셈이다. (예술인복지법)이 구체화된 배경에는 지난해 1월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였던 고 최고은씨는 지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해 사망한 일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 직후 국회에서 예술인 복지와 관련된 법안이 발의되어 제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술인복지법)은 그 제정과정에서 고용노동부 및 기획재정부 등의 반발로 인해 처음 발의된 주요 사항들이 제외되거나 수정되어 버림으로써 유명무실한 법이 될 지경이다. 애초에 예술인에게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을 적용하려던 안에서 고용보험은 제외되었으며, 안정적인 재원 확보의 문제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내년도 사업예산마저도 제대로 책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과연 이 법에 의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인 얼마나 될지, 예술인들에게 제대로 된 복지지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한다. 물론 첫 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열악한 상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예술인들을 돌아본다면 그저 예술인의 지위 향상과 복지 증진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첫발을 떼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너무 슬프지 않은가?

거기다 힘겨운 예술인들을 더 힘겹게 만드는 것은 예술현장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관행이다.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작업의 결과물은 취하면서 그나마 계약된 비용마저도 제대로 예술인에게 지급하지 않은 ‘갑’들의 횡포로 인해 예술인들은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언급한 고 최고은씨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던 것은 받지 못하고 있던 ‘밀린 돈’ 때문이었다. 그 ‘밀린 돈’만 일찍 받았어도 그렇게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몰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 월요일 방영된 SBS (힐링캠프)에서 드라마 (골든타임)의 주연으로 인기를 모은 이성민씨가 출연하였다. 이성민씨도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기 전 대구 지역과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오랜 생활을 했는데, (힐링캠프)에서 그는 그 시절에 겪었야 했던 어려운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지금까지 나오신 분 중에 제일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던 그의 경험담도 가슴아픈 이야기였지만 그보다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가 또 많은 연극하는 후배들한테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불 운운하는 이 시대에 말이다.


최지연·문화평론가 | choi.jiyoun@gmail.com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KBS와 언론이 우릴 가족사기단으로 몰고 있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27일자 기사 ' “KBS와 언론이 우릴 가족사기단으로 몰고 있다”'를 퍼왓습니다.
[인터뷰] 각시탈 사망 보조출연자 아내 “‘추적자’ 주인공 된 기분”

“주위에서는 하나같이 원활하게 사후 처리가 됐을 것이라고 예상해요. KBS 드라마를 찍으러 가다 일어난 일이니까요. 하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공영방송이라는 한국방송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 4월 18일 새벽 드라마 촬영 장소로 향하다 버스 전복 사고로 숨진 보조출연자 박 아무개(49)씨의 부인이다. 부인 윤아무개(41)씨는 지난 5월 18일부터 3개월 넘게 KBS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7일 오전 시위 장소에서 미디어오늘과 만난 윤씨는 “지금 가만히 있으면 (세상을 떠난) 아빠(남편)를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가 사고 발생 후 한 달이 지난 후부터 1인 시위를 했던 이유는 모든 것이 잘 처리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력을 다해 사후처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KBS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유가족 당사자는 억울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고와 관련된 업체는 KBS와 드라마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 보조출연자 파견 업체 태양기획, 버스 회사 동백관광이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태양기획에서는 상해보험도 들어놓고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장례를 치르고 왔는데 처음이랑 너무 말이 달랐어요.” 

KBS <각시탈> 보조출연자 남편을 잃고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윤아무개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윤씨가 태양기획측에 상해보험 약관을 요구해 받아본 결과, 이 기획사에 소속된 보조출연자는 1000명이 넘는데 약관상 가입돼 있는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소속사측은 또 “보조출연자는 근로자가 아니다”며 산재처리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유가족에 따르면 사고 당일 박씨를 포함해 29명도 중경상을 당했지만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처리를 신청한 사람은 박씨 유가족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보조출연자를 근로자로 인정해 산재보험을 적용하라고 판결했었다. 이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이 항고하지 않아 현재로서는 확정 판결이다.

사망한 보조출연자 박씨는 사고 발생 전날 밤 11시께 집을 나섰다. 그와 30여명의 보조출연자를 태운 버스는 이튿날(4월 18일) 새벽 1시께 KBS를 떠났으나 새벽 5시30분께 버스가 합천의 논두렁으로 추락해 전복하는 사고가 터졌다. 윤씨는 오전 8시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사고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위독하다”는 말에 그는 합천으로 내려가려던 참에 남편이 숨을 거뒀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는 “사고 당일에도 마지막 가시는 분에게 예우를 안했다”며 “구급차도 아니고 승합차에 흰 천을 덮어서 집과 가까운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윤씨는 합천 인근 병원에서 집이 있는 수원까지 남편의 시신을 승합차 뒷자석에 싣고 올라왔다. 

윤씨는 특히 남편의 49제 때 난 언론 기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해당 기사에서 KBS 드라마국장은 “미망인을 다른 곳의 보조출연자로 취직을 시키든지, 아니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노력해 볼 수 있다. 딸아이를 자꾸 데리고 와서 시위를 하는데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현실적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윤씨는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며 드라마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윤씨의 남편은 보조출연자로 일한 지 불과 2개월 반 만에 사고를 당했다. 젊은 시절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거나 CF에도 출연한 적 있다는 박씨는 하던 일이 어렵게 되면서 보조출연자 일에 나섰다. “연예인 끼가 있는 딸을 위해 먼저 가서 길을 닦아놓겠다”는 각오에서였다.

윤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보조출연자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애기 아빠가 몇 개월 동안 사람대접 못 받고 일 했구나 라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며 “보조출연자의 열악한 환경을 나 몰라라 할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끝까지 싸울 겁니다. 돈 때문에 저런다며 가족사기단으로 몰리면서까지 싸우는 이유는 보조출연자들의 상황을 보니 도저히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입니다.”   윤씨는 사고 당일 남편 외에도 30명이나 사고를 당했는데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했다. 윤씨는 “KBS는 외주를 줬느니 하면서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하는데 남편은 각시탈을 구경하러 가다 사고가 난 게 아니다”라며 “KBS에 집합해서 촬영장으로 가기 위해 KBS가 대절해준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도 윤씨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태양기획으로부터 서류를 제출받아야 했는데, 몇 차례 요구 끝에 받은 서류에는 업체 직인조차 찍혀있지 않았다. 

“돈을 원한 적도 없습니다. KBS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라고 물은 적도 없습니다. 그래도 원청이면 적어도 하청 업체 책임자에게 압력이든 지시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핑퐁게임을 하는 동안 가족을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다니요. 나쁜 사람들입니다.”

KBS <각시탈> 보조출연자 남편을 잃고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윤아무개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유가족이 받은 돈은 장례비 2000만 원이 전부였다. KBS 등이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보험금 1억5000만 원과 사고 운전자측의 형사합의금 3000만 원 등은 KBS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유가족은 그러나 “KBS를 비롯한 제작사가 이런 부분까지 선심을 베푼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데 대해 분노한다”며 형사합의 할 의사를 접겠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KBS 등에 △김인규 KBS 사장과 이강용 태양기획 회장의 사과 △에 고인을 애도하고, 사후처리 미흡에 대한 사과 내용을 담은 자막 처리 △보조출연자들을 위한 대기실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유가족은 이런 요구사항만 받아들여진다면 바로 1인 시위를 접겠다는 입장이다. 

배재성 KBS 홍보실장은 이날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각시탈에 고인의 사망사고에 대한 유감의 뜻을 담은 자막을 내보내는 것은 사장님께서 적극 반영해주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각시탈 최종회에 자막으로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그러나 KBS가 각시탈 마지막 크레딧에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빈다’는 자막만 내보내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청자들이 정확한 내막은 모른채 그저 “KBS가 유족들에게 신경쓰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배 실장은 그러나 그 외의 요구조건에 대해서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KBS에 사후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은 탈법적인 요구”라며 “사태가 원만하게 마무리되도록 법적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에게 권유하고 독촉하고 있지만 KBS는 법률적 책임이 없다”고 강조했다. 배 실장은 연기자 수송 도중 벌어진 일인 만큼 1차적인 법률 책임은 버스 회사에, 2차 책임은 보조출연자가 속해 있는 소속사에 있다고 설명했다. 배 실장은 김인규 사장의 사과 표명 요구에 대해 “사과라는 것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고 이후 법적 책임 문제가 따른다”며 “보조연기자와 법률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KBS에 사과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다.
태양기획측도 마찬가지였다. 박현성 태양기획 이사는 “고인은 우리업체에 등록돼 있던 보조출연자가 아니라 우리와 거래관계에 있는 이준기획에 소속돼 있었다”며 “출연료도 그 쪽에서 지급하고 스케줄도 관리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대표자의 사과 표명 요구에 대해 “우리가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본인 의사에 따라 일을 하신 것인데 사과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회사차원의 애도는 전달됐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윤씨는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3~4일씩 이 사건을 취재해 간 한 언론사 기자가 윤씨에게 전화해 “위에서 취재를 막는다. 더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고 윤씨는 전했다. 지난 6월 초 KBS 등 4개 업체가 공식 입장을 내자 이를 받아 쓴 언론은 60여 개가 넘었으나 곧바로 유가족이 낸 반박에 대해 보도한 곳은 서너 곳에 불과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드라마 추적자 주인공 같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윤씨가 3개월 넘게 1인 시위에 나서면서 집안 살림은 엉망이 됐다.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딸이 있는 윤씨는 “너무 억울해서 자살했다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제 이해하겠다”며 “이젠 너무 억울해서 포기하지 못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자녀들은 아빠에 이어 엄마에게까지 무슨 사고라도 날까봐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윤씨는 “제가 지금 그만둔다면 아빠가 돌아가신 것, 아무 것도 없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며 “아이들도 엄마를 응원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저나 아이들이 시위를 한다고 해서 아빠가 돌아오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1인 시위 밖에 없기에 이것이라도 할 겁니다. 앞으로도 이런 사고가 안 일어나라는 보장이 없어요. 어차피 누군가는 사고를 겪어야 하고, 그 당사자라는 것이 저라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끝까지 싸울 겁니다.”

윤씨는 “각시탈이 종영돼도 지쳐 쓰러질 때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각시탈은 다음달 6일 최종회를 방송한다.

조현미 기자 | ssal@mediatoday.co.kr  

2012년 8월 8일 수요일

"'컨택터스 방관' 경찰서장, 촛불집회 당시 종로서장"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07일자 기사 '"'컨택터스 방관' 경찰서장, 촛불집회 당시 종로서장"'을 퍼왔습니다.
진선미 "하중근 사망 당시 특수기동대장…알고도 컨택터스에 동조?"

용역업체 컨택터스가 자동차부품업체 SJM노조를 폭력적으로 기습할 당시, 노조 조합원들의 계속된 신고를 받고도 이를 무시한 우문수 안산단원경찰서장의 지난 이력이 새삼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3일자로 대기발령 된 우문수 서장은 지난 2006년 포항 건설노조의 파업 당시 특수기동대장이었다. 포항 건설노조의 파업 중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노동자 하중근 씨가 사망에 이르렀는데, 이때 기동대를 책임진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또 우문수 서장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 당시 서울 종로서장을 맡고 있었다. 100일 넘게 이어진 촛불시위에서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수많은 시민이 부상을 당한 바 있다.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은 7일 이같은 사실을 밝히고 "우 서장은 집회 및 노사분규에 대한 과잉진압으로 계속 문제가 됐던 인물"이라며 "SJM에 대한 컨택터스의 폭력을 의도적으로 방관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우문수 서장, 2006년 포항건설노조·2008년 촛불시위 때 강경진압 당사자"

진선미 의원에 따르면, 우 서장은 지난 2006년 서울지방경찰청특수기동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해 7월 포항 건설노조는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본사 농성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들은 포항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고, 건설노조 조합원 하중근 씨 역시 이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머리와 가슴 등을 다쳤다. 뇌사 상태에 빠진 하 씨는 그해 8월 1일 사망했다.

당시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은 현장검증 등을 통해 "하 씨는 경찰이 공격하는 과정에서 방패에 찍혀 앞으로 쓰러졌고 그 상태에서 진격해 오던 경찰의 무리 속에 파묻혀 둔중한 물체로 후두부를 가격당해 숨졌다"고 밝혔었다.

관련 사건을 조사한 국가인권위원회도 하 씨가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해 사망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같은 판단을 근거로 포항남부경찰서장을 징계하고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장을 경고조치하라고 경찰청장에 권고했다. 인권위가 책임자로 지목한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장이 바로 우문수 안산단원서장이었던 것이다.

진선미 의원은 이어 "그뿐 아니라 우 서장은 어청수 전 경찰청장과 가까운 사이로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첫 종로경찰서장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진 의원은 "우 서장은 2008년 촛불집회 당시 평화적인 문화제에서부터 소화기를 난사하고, 물대포, 최루액 등을 동원해 폭력진압을 하는 등 과잉진압으로 논란이 됐었다"고 덧붙였다.

진 의원은 "우 서장은 과잉진압 외에도 2007년 성동경찰서장 재직시절 부하직원 폭행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2008년 종로경찰서장 재직시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차량을 검문검색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경찰, 7통의 구체적 신고 받고도 '폭력 상황 없다'고 판단?"

진 의원은 특히 이같은 이력이 컨택터스의 SJM 폭력 침탈을 방관한 것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진 의원은 "실제 단원경찰서는 노조원들의 신고를 통해 현장 도착 이전부터 SJM 폭력 상황을 잘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 도착해서도 수수방관했다"고 주장했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원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 경비업체 컨택터스와 이를 지시한 ㈜SJM, 폭력사태를 묵인한 안산단원경찰서를 검찰에 고소,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컨택터스가 노조원들에게 던진 자동차 부품을 기자회견장에 들고 나왔다. ⓒ연합뉴스

진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달 27일 새벽 4시 55분부터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5시 30분 사이에 경찰은 모두 7통의 신고 전화를 받았다.

신고 내용도 구체적이었다. "반월공단 SJM 회사에 깡패 300명이 몰려와 직원들을 몰아낸다", "용역들이 들어와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용역들이 있는데 경찰이 아무 조치가 없다", "깡패들이 쇳조각을 던지고 있는데 경찰관 몇 명만 와 있으니 병력을 더 보내달라"는 등의 신고를 받았던 것이다.

진 의원은 "노조 조합원들 뿐 아니라 제3자인 보안업체 에스원 직원까지도 용역에 의한 폭력침탈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세 차례 걸쳐 신고했는데도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경찰이 폭력상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진 의원은 "이는 경찰이 폭력행위에 일정 정도 동조한 것"이라며 "우문수 서장에 대한 대기발령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경찰 책임자 전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징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컨택터스의 폭력 사태를 묵인한 안산단원경찰서를 지난달 31일 검찰에 고소, 고발했다. 이후 우문수 서장은 지난 3일 대기발령 조치됐다. 경찰청은 이날 경기지방경찰청이 자체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우문수 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부실대응 여부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신임 안산단원서장에 고경철 경기지방결창청 수사과장이 임명됐다.

 /여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