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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8일 수요일

삼성 직업병 사망자 추모 방해한 검은 양복들…누구?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07일자 기사 '삼성 직업병 사망자 추모 방해한 검은 양복들…누구?'를 퍼왔습니다.

故 이윤정 추모 1주기…"산재 인정해야" vs "시끄럽다"


뇌종양으로 아내를 잃은 남편은 차분히 추모 편지를 읽어내려 갔다. 여기저기서 말 없는 흐느낌이 이어졌다. 바로 뒤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 10여 명이 섰다. "무분별한 집회 시위, 시끄러워 못살겠다"고 적힌 손팻말을 든 채였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뒤 뇌종양에 걸려 숨진 고(故) 이윤정(32) 씨의 추모 1주기 기자회견이 7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렸다. 같은 시각, 기자회견장 바로 뒤에서는 삼성전자 직원으로 추정되는 남성 10여 명이 "국민 기본권인 행복추구권 침해하는 부당한 집시법 개정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 7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고 이윤정 씨 추모 1주기 기자회견이 열렸다. 바로 뒤에서는 '국민 기본권인 행복추구권 침해하는 부당한 집시법 개정 촉구 결의대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기자회견 직전에는 삼성전자 경비 직원 10여 명이 본관 앞에 쇠문을 치고 채증을 하면서 유가족과 한때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기자회견은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추모사를 통해 "고인이 숨진 지 1년이 됐지만,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으면서 산재가 아니라는 삼성이나 아픈 노동자가 산재임을 증명하라며 2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는 현실의 벽이 견고하고 모질다"고 밝혔다.

고인의 남편 정희수 씨는 아내에게 보내는 추모 편지를 통해 "이번에도 엄마 없는 슬픈 어린이날을 보냈다"며 "딸아이가 '난 왜 엄마가 없느냐'고 물으며 병원에 있던 엄마 모습마저 그린다. 아내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 이윤정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해 6년간 고온테스트 업무를 맡았다. 이 씨는 고온에 탄 반도체 칩에서 발생한 미세 분진을 흡입했고,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퇴사 후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2010년 5월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이 씨는 2010년 7월 산재를 신청했지만 2011년 2월 불승인 처분됐다. 이에 불복해 2011년 4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이 씨는 같은 해 8월 첫 번째 변론에 참석하고 증상이 악화돼 이듬해 어린이날 이틀 뒤(2012년 5월 7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숨진 뒤에도 1심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 고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가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 공장의 불산 누출 사고는 새로운 사고가 아니"라며 "기흥공장 노후 라인에서는 10년 전에도 화학물질 누출이 수도 없이 일어났으며, 당시 노동자들은 천 마스크를 쓰고 (누출된 화학물질을) 걸레로 닦았다"고 주장했다.

황 씨는 "(삼성전자에서 화학물질을 다루다가) 희귀병에 걸린 제2의 이윤정 씨가 100명이 넘었는데도, 이건희 회장은 (희귀병이) 삼성전자와 관련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며 "이제 그만 죽였으면 한다. 삼성전자는 병에 걸리도록 한 화학물질 목록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도사가 끝난 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 씨의 영정 사진 앞에 헌화했다. 기자회견장에는 황상기 씨,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고 숨진 고(故) 윤슬기 씨의 어머니 신부전씨,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 등이 참석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기자회견에 앞서 삼성전자 본관 앞에 쇠문이 쳐졌다. ⓒ프레시안(최형락)


한편,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올해 3월부터 '삼성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에 나섰지만, 지난달 4일 별다른 성과 없이 대화는 중단됐다. 김시녀 씨는 "삼성전자 실무진들이 피해자 가족들이 너무 많이 왔다고 불쾌해 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며 "교섭 대상자 교체를 요청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대화의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언론에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며 "다시 만나자고 (반올림 측에) 이메일을 보냈지만 회신은 못 받았다. 실무진 교체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노후 라인에서 노동자들이 화학물질을 걸레로 닦았다는 주장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불산과 같은 위험한 화학물질이 누출돼서 걸레로 닦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위험한 독극물은 걸레로 처리하지 못한다. 걸레로 처리하는 화학물질들은 위험성이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집시법 개정 촉구 결의대회' 참석자들이 삼성전자 직원이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윤나영 기자,최형락 기자

2013년 4월 25일 목요일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은 한라건설"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4-25일자 기사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은 한라건설"'을 퍼왔습니다.

지난해 14명 사망, "매년 2천500명 산재로 사망"


노동계가 오는 28일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지난해 가장 많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한라건설을 선정했다.

민주노총, 노동건강연대, 한국노총, 매일노동뉴스, 민주통합당 한정애 의원,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으로 구성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은 2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3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한라건설을 선정했다.

고용노동부의 '2012년 중대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한라건설이 원청으로 있는 사업장에서 지난 한 해동안 가장 많은 총 1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한라건설은 지난 해 12월 울산 앞바다에서 작업선 석정 36호가 침몰하며 12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의 원청업체로, 현재 해양환경관리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기소된 상태다.

건설업 분야에서는 한라건설에 이어 GS건설이 8명, 포스코건설이 7명, 태영건설과 대우건설이 6명으로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GS건설은 지난 2006년과 2010년, 대우건설은 2011년 각각 가장 많은 산재사망 노동자가 발생한 기업이었지만, 여전히 인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지난 해 8월 다이옥신 폭발 사고로 8명이 사망한 LG화학이 8명으로 1위를 기록했고, 구미 불산 유출사고로 알려진 휴브글로벌이 5명, 역시 폭발사고로 4명이 사망한 아미코트와 3명이 사망한 포스코가 뒤를 이었다.

공동캠페인단은 매년 산재사망자가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현장 부실관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고용노동부의 형식적인 감사를 지적하며 "원청기업에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우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원청 기업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산재통계가 작성된 지난 2001년부터 11년간 한국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8만6천여명에 달한다. 매년 2천488명이 현장에서 각종 사고로 사망하지만 현장 부실관리로 사망의 원인을 제공한 사업주는 고작 수천만원의 벌금형에 그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2008년 화재로 노동자 40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천냉동창고 사건은 최악의 산업재해로 꼽히지만, 사측 관계자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전무했다. 화재 원인은 현장 관리 부실이었지만 사업주는 벌금 2천만원을 내고 면죄부를 받았다. 2011년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LG화학 OLED 공장 사고 역시 사업주에게 물린 벌금은 3천만원에 불과했다.

두 사례는 그나마 피해 규모가 커지고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벌금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경우다. 질식사고로 4명이 사망한 이마트는 벌금 100만원과 기소유예, 3명이 사망한 삼호조선 사고는 벌금 50만원에 그쳤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솜방망이 처분은 사고 위험이 높은 업무에 집중 투입되는 하청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매년 노동부의 안전점검에서 90% 이상 사업장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고 있지만, 업체당 과태료를 평균 95만원 수준이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주최로 24일 국회에서 열린 산재사망의 책임자 처벌 및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중대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업체 사업주의 책임의 범위와 가중처벌을 적시하는 '산업재해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민변 노동위원회 강문대 변호사는 "특별법에 원청의 경영책임자 처벌을 포함해도 법을 운용하는 기관이 원청에 책임을 묻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일정한 유형의 사고에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명시해 법 운용기관이 함부로 법 적용 회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청업체의 산재예방조치 의무가 없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 요구도 거세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개정안은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원청에서 지정하도록 의무화했지만 대상사업을 제조업 등 7개 업종으로 한정했다"며 "당연히 모든 사업으로 확대하고, 임대, 위탁 사업 등에도 안전관리 의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성 기자 

2013년 3월 18일 월요일

하청 노동자 잡는 위험 작업 외주화


이글은 경향신문 201-03-17일자 기사 '하청 노동자 잡는 위험 작업 외주화'를 퍼왔습니다.

ㆍ화학·조선 등 산재 많은 일터, 대부분 비정규직에 떠넘기기ㆍ기업들 안전 교육·관리 소홀… 사고 나면 처벌도 ‘솜방망이’

대기업의 산업재해 피해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유해하고 험한 작업을 하청업체에 넘기면서 일어나는 ‘위험의 외주화(하도급화)’이다. 인건비를 덜고 사용자 책임을 피하려는 하청업체로의 외주화가 고용 불안을 넘어 ‘목숨과 안전의 불안’을 낳고 있다.

지난 1월 삼성전자 불산누출 사고로 숨진 노동자 1명, 지난 14일 여수국가산업단지 폭발사고 때 목숨을 잃은 노동자 6명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산재로 숨진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3명 중 2명도 입사 2주~1개월밖에 안된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1990년대 성수대교·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빨리빨리 시방서’가 바닥을 드러낸 데 이어 여수·울산·구미 등에 집적된 중화학단지의 안전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대기업의 외주화는 안전관리에 구멍을 내고 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동일 사업장에서 원청 정규직은 안전교육을 받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대부분 안전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어떤 유해물질을 쓰는지에 대한 정보도 자세히 제공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신범 원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실장은 “안전작업의 외주화가 심각해 기계·전기 등 설비 보수를 지원하는 부서들은 최소한의 인력만 남겨놓고아웃소싱되고 있다”며 “사업장과 공정 내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와 일하고 교육이나 안전관리도 소홀해 사고가 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청의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요구, 하청노동자의 불안한 고용구조도 산재사고를 키우고 있다. 폭발사고가 일어난 여수의 대림산업은 공기단축을 위해 무리한 밤샘작업을 시키다 참사를 빚었다. 사고 발생 후 하청업체 노동자는 “동료니까 당신들이 구하라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고 밝혀 산업재해를 보는 대기업의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 

김신범 실장은 “원청은 공기를 단축해 가동중단 손실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저임금의 하청 노동자들은 계약을 빨리 끝내고 다른 사업장에 가서 일하기 위해 무리한 작업을 감수하게 된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비소·염화비닐·디클로로벤지딘 등 13종의 유해물질이 포함된 유해·위험 작업에 대해 도급(외주화)을 금지하고 고용노동부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2003년 13종이 지정된 후 유해물질은 한 차례도 추가되지 않았고 문제가 된 불산 등도 빠져있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화학물질 정보 제공 및 안전교육, 보호구 지급 등에 대한 원청 책임도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솜방망이 처벌’도 안전불감증을 낳고 있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사고로 40명의 건설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사업주는 벌금 2000만원을 무는 데 그쳤다. 2011년 이마트 냉동창고 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 4명이 죽었지만 벌금 100만원이 전부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 사망 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2010년부터 2012년 7월까지 발생한 2290건의 중대재해에서 57.2%가 벌금형이었고, 징역형은 2.7%인 62건에 불과했다.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은 “일터의 하청화가 진행되면서 비정규직 수가 급증하고, 어렵고 위험한 일들이 비정규직에 집중되고 있다”며 “위험의 외주화가 확산되고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사용자의 책임은 은폐되면서 문제가 재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2013년 2월 3일 일요일

삼성과 반올림, 어떤 대화를 나눌까?


이글은 한겨레21 2-13-02-04일자기사 '삼성과 반올림, 어떤 대화를 나눌까? '를 퍼왔습니다.
[초점] 백혈병 사망 등 산재와 무관 주장하던 삼성, 반올림과 대화 제의… 유족은 대화 앞서 사과 원해

2007년 백혈병과 힘겹게 싸우던 22살 황유미씨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빨리 돈 벌어 남동생을 뒷바라지하겠다’며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백혈병 진단을 받은 유미씨였다. 아버지 황상기(58)씨는 딸의 죽음 앞에서 ‘네 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될 때까지 싸우겠노라’ 약속했다. 삼성 직업병 문제를 알리기 위해 황씨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활동가들과 거리로 나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1년 서울행정법원은 백혈병을 앓다 숨진 황유미씨 등 2명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 지난 1월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주관으로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미사가 열렸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요지부동 삼성은 왜 변했나

유미씨가 세상을 등진 지 5년여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줄곧 백혈병 등의 질환 발생과 반도체 공장 작업 환경이 무관함을 주장하던 삼성이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반올림은 1월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의 대화 요청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말 삼성은 백혈병 산재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법적 조정을 받아보자는 구두 제안을 했고, 반올림은 ‘소송은 그대로 진행하되 대화할 수는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DS부문 김종중 사장은 “백혈병 발병자와 유가족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공식 문서를 보냈고, 반올림은 책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대표단 구성 등을 요구했다. 삼성이 지난 1월11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 합당한 대표단을 구성해 대화에 성실하게 임할 것을 분명히 한다”는 답변을 보내와 양쪽의 대화가 처음 성사됐다.
삼성의 태도 변화는 끊임없이 불거져나오는 직업병 논란을 외면하기엔 국내외에서의 기업 이미지 훼손 등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반올림 쪽에서는 전자산업 관련 삼성 계열사에서 일한 뒤 백혈병·뇌종양·유방암·자궁경부암·피부암 등이 발병했거나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제보를 해온 이가 160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에 대한 산재 인정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4월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5년5개월 동안 일한 뒤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는 노동자에 대해 산재를 인정한 데 이어, 12월엔 4년9개월 동안 근무한 뒤 유방암에 걸려 숨진 노동자에 대해서도 산재를 승인했다.
삼성과 반올림이 논의할 의제 범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산재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 등 법적 조처를 놓고 양쪽의 의견이 달라 원활한 협의가 진행될지 미지수다.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공유정옥 산업보건전문의는 “긴 세월 동안 힘겹게 싸워온 피해 가족들에겐 단 몇 명이라도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산재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의미”라며 “소송을 통해 산재가 아니라고 한 정부의 판단이 바로잡히는 걸 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피해 노동자 및 유가족과 근로복지공단 간 소송에서 정부 쪽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소송 등 법적 조처 중단이 대화의 전제 조건은 아니다”라면서도 “대화를 하다 보면 소송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공문에 ‘유감’은 사과가 아니다”

딸을 가슴에 묻은 황상기씨는 대화에 앞서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삼성으로부터 단 한마디의 사과도 들어본 적이 없다. “뒤늦은 대화 제의가 반갑긴 하지만 지금까지 워낙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왔던 사람들이라 어찌될지 모르겠다. 공문에 ‘유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회사 쪽은 그것을 사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 처지에선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실습고교생 다쳐도 성희롱도 “참고 견뎌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1-14일자 기사 '실습고교생 다쳐도 성희롱도 “참고 견뎌라”?'를 퍼왔습니다.

지난해 11월 현장실습 중 금형에 손가락을 짓눌리는 사고를 당한 박철우(가명)군이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사고를 당한 박군의 손가락. 김지훈 기자
특성화고 현장실습 현실
 기계에 손가락 끼여 “악!” 
실습학생의 끔찍한 산재 
회사도 학교도 외면했다 

육중한 철제 금형이 느리게 내려왔다. 박철우(가명·19)군은 소형 크레인에 매달린 가로세로 2m 길이의 금형이 제자리에 내려앉도록 조심스럽게 손으로 위치를 조절했다. 갑자기 손가락 끝에서 ‘우지끈’ 소리가 났다. “으악!” 왼손 검지와 중지 끝 1㎝가량이 금형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목장갑 끝으로 피가 번져나왔다. 의사는 “손가락이 터졌다”고 했다. 30여 바늘을 꿰맸다. 사고가 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손톱이 뭉뚝해져 자라지 않는다. 흉터가 가로세로로 서너 줄씩 나 있다. 가운뎃손가락 끝은 골무를 낀 것처럼 감각이 없다. 박군이 사고를 당한 지난해 11월8일은 또래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던 날이었다.경기도의 한 특성화고 금형디자인과 3학년인 박군은 지난해 9월부터 경기도 군포시의 한 공단에 있는 금형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회사는 병원비만 내주고는 “후유증이 확인되면 산재 신청을 해주겠다”며 차일피일 산재 처리를 미뤘다. 박군은 회사의 한 간부가 “그 새끼 회사 안 나오려고 일부러 다친 거래지?”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함께 현장실습을 나온 같은 학교 친구에게 전해들었다. 회사의 태도에 질린 박군은 산재 인정 받기를 포기하고 12월 초 실습을 그만뒀다. 박군은 오는 3월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지원서를 냈다.학교는 박군보다는 취업률을 더 걱정했다. 한 교사는 “산재 인정을 받으려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한다”며 실습을 그만두지 말라고 박군에게 종용했다. 그러나 이 교사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현행 규정상 업무 중 다친 노동자의 경우 회사에 다니든 안 다니든 사고 발생일로부터 3년 안에 산재 신청을 하면 근로복지공단이 조사해 장해급여를 준다. 지난 9일 기자가 박군을 만난 자리에서 설명을 해주자 그는 “회사를 그만두면 학교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인 취업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학교는 박군의 사고를 경기도교육청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회사는 박군에게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8시30분, 때로는 밤 10시30분까지 하루 12~14시간씩 일을 시켰다. 잔업이 거의 일상화돼 있었다. 주말 하루는 특별근무를 하도록 강요했다. 박군은 잔업과 특근으로 한 달에 법정 근로시간보다 50시간을 더 일하고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70만~90만원의 월급(실습수당)을 받았다. 회사와 박군이 서명한 표준계약서에는 주 5일, 하루 8시간 일하고 월 130만원을 받기로 돼 있다.교육과학기술부 통계를 보면, 전국의 특성화고는 475곳(지난해 4월 기준)이며, 이들 학교에 재학중인 고3 학생은 10만7000명에 이른다. 특성화고 3학년 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박군처럼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한다.

실습생들 하루 12시간 노동…여학생은 성추행 겪기도

잔업 위해 야근에 휴일 특근까지 
법정시간보다 주 50시간 더 일해 
월급은 계약서와 달리 70~90만원 
여학생들은 임원들이 성희롱 
울며 고민하다 퇴사 몰리기도

근로기준법상 청소년인 현장실습생은 본인 동의를 받더라도 하루 8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1주에 2일 이상 쉬도록 명시돼 있기 때문에 주말 특근도 위법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특성화고 현장실습 학생 1980명(251개 업체)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한 학생이 38.3%나 됐다. 야간에 일한 학생은 31.9%, 휴일에 일한 학생은 29.2%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업체 중 31곳은 실습생 120명에게 실습수당을 규정보다 평균 13만3000원씩 총 1606만원을 적게 준 것으로 드러났다.2011년 12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학생 김민재(당시 19살)군이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된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장실습 학생들의 열악한 현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지난달 14일엔 울산 앞바다에서 방파제 공사를 하던 선박이 뒤집히면서, 현장실습 중이던 특성화고 3학년 홍성대(사고 당시 18살)군이 숨졌다. 울산고용노동지청은 홍군에게 초과근무와 야간근무를 시킨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홍군이 일하던 ㅅ건설을 조사하고 있다. 기아차 광주공장의 김군도 주말 특근과 2교대 야간근무에 투입돼 일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현장실습 학생들의 몸을 위협하는 건 기계만이 아니다. 인천의 한 특성화고 3학년 ㄱ(19)양은 지난해 10월 한 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남자 임원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이 임원은 교육 중에 ㄱ양의 무릎에 손을 얹거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어깨에 손을 둘렀다. 놀란 ㄱ양은 혼자 울며 고민하다가 학교의 취업 담당 교사에게 얘기했고, 결국 교사가 대신 회사를 찾아가 ㄱ양의 퇴사 절차를 밟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실업교육위원회가 지난해 1월 104명의 특성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명이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36명은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하인호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은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교사들이 업체에 항의하지 못하고 오히려 학생에게 ‘참고 견디라’고 하는 경우가 많고, ‘실습을 중단하고 돌아오면 다른 업체로 현장실습을 보낼 때 순위를 제일 뒤로 돌리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학교에서 3년간 배운 전공 분야와 관련 없는 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가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한 공업계열 특성화고 자동차정비과 3학년 김원익(가명·19)군은 지난해 11월 경기도의 한 파이프 생산 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친구들은 9월부터 실습을 나가는데 자동차 쪽으로는 일거리가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김군이 하는 일은 주로 단순 작업이다. 파이프 수를 세거나 파이프를 기계에 넣었다가 빼는 작업, 화학약품으로 파이프 안을 닦는 일을 한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의 지난해 1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현장실습 업무와 전공이 관련이 없다’고 답한 학생이 38.5%나 됐다.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교육청 지원형 특성화고 사업’ 참여 학교 7곳을 대상으로 벌인 감사에서도 현장실습 관리의 문제점이 드러났다.(한겨레)가 유기홍 민주통합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서울시교육청의 ‘2012년 특성화고 운영 실태 정책감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ㄱ고교의 경우 지난해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 63명 중 교사가 사업체로 직접 찾아가 실습 상황을 점검한 학생은 17명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46명에겐 전화통화로 현장지도를 대신했다. 이 학교는 2011년엔 학생 133명 중 25명에게만 현장지도를 했다. ㅅ고교는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간 업체 41곳 중 12곳에서는 현장지도를 하지 않았고, 현장지도를 나간 사업체에 대해서도 관련 일지를 기록하지 않아 지적을 받았다.시교육청 감사관실은 “현장지도의 목적은 교사가 산업체를 방문해 학생의 근무조건, 임금, 건강 상태를 직접 점검하는 데 있기 때문에 반드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제2의 기아자동차 현장실습생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현장지도에 대한 교원의 책무성을 강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삼성, 반도체 피해자측에 대화 제안?…반올림 반발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17일자 기사 '삼성, 반도체 피해자측에 대화 제안?…반올림 반발'을 퍼왔습니다.
"국정감사 앞두고 산재 인정 않고 돈으로 무마하려 하나"

삼성전자가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자고 제안했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가 이에 응하기로 했다고 (한겨레)가 보도했다. 그러나 반올림 측은 삼성전자가 피해자에게 대화를 공식 제안한 바 없다며 즉각 반발했다.

(한겨레)는 "삼성 고위 관계자가 반도체공장 피해자보상 문제를 대화로 풀자는 대안을 피해자 가족의 소송 대리인을 통해 전달했다"며 "대화를 통해 (피해자들이) 소송은 취하하고 조정절차를 통해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1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반올림도 대화에 응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반올림 측은 즉각 반발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전자가 반올림에 공식적으로 대화를 제안한 적도 없었고, 피해자와 유가족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며 "삼성전자가 18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돈으로 무마하겠다는 뜻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맹비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했다가 2005년 백혈병에 걸려 2년만에 숨진 고 황유미(23)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또한 "삼성이 공식적으로 대화를 제의한다고 들은 바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황 씨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최초로 사회에 알린 제보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일부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을 통해 지난 8월부터 협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삼성이 보조참가인으로 참여 중인산재 소송에서 빠지는 것과 보상기준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피해자와 근로복지공단간의 산재인정 소송에서 '보조참가인'으로 관여하는 소송은 총 3건(피해자 9명)이다. 그러나 이 노무사는 "이미 소송이 몇 년째 진행되는 상황에서 삼성이 보조참가인에서 빠져도 실효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삼성전자는 또한 피해자들과 대화가 이뤄질 경우 지난해 마련한 '퇴직 임직원 암 발병자 지원 제도'를 기준으로 보상하고 여기에 맞지 않더라도 납득할 만한 경우라면 보상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삼성전자가 발표한 이 제도는 반도체·LCD 공장에서 1년 이상 일하던 임직원이 퇴직한 뒤 3년 이내에 삼성전자가 정하는 14가지 종류의 암에 걸리면 10년간 치료비를 지원해 주고, 암 치료 중 사망하면 위로금으로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에서 일했다가 암 등 희귀병에 걸렸다고 제보한 146명 가운데 이 제도의 자격조건에 해당해 지원을 신청한 사람은 3명에 불과하다. 퇴직 후 수년 뒤에서야 뒤늦게 암을 발견하거나 재직한 지 1년도 채 안 돼 발병한 경우, 14가지 암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등은 해당되지 않는 탓이다.

게다가 이 제도를 발표했던 지난해 8월 당시 삼성전자는 도의적인 지원임을 강조하면서 반도체와 LCD공장의 직업병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에도 삼성전자는 직업병을 인정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대화에 대한 제안은 현재 진행 중인 산재 소송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과학적으로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은 만큼 삼성전자가 직업병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 반올림이 고(故) 윤슬기 씨의 49재인 지난 7월 20일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산재 신청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삼성전자에서 일한 뒤 희귀병에 걸린 노동자는 올해만 해도 6명에 달한다. 지난 16일에는 추가로 2명이 올해 5월과 8월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 직업병 문제'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이에 반올림은 비상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노무사는 "삼성전자가 소송 취하 등 대화의 전제조건을 걸었는지 알아본 뒤, 피해자와 유가족들과 대화할지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며 "유가족 가운데는 삼성전자가 산재를 인정하고 사과하기 전까지는 대화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오는 18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 최우수 삼성전자 부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6년간 일하고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혜경 씨가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에서 일한 뒤 희귀병에 걸렸다는 제보자는 146명, 사망자는 58명(6명은 올해 사망)에 달한다.

 /김윤나영 기자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생활고 예술인 배제된 말만 ‘예술인복지법’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30일자 기사 '생활고 예술인 배제된 말만 ‘예술인복지법’'을 퍼왓습니다.
"소설가 원고쓰다 산재당할일 있겠나"…시행 앞서 ‘전면개정’ 주장

‘창피하지만 며칠 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_故 최고은 작가
촉망받던 최고은 작가의 생활고로 인한 죽음을 계기로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이른바 ‘최고은 법’)이 오는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문화예술인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4대보험 적용이 국회논의과정에서 무산됐고 예술인복지재단의 안정적 재원도 불투명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예술인복지법) 시행을 앞두고 벌써부터 “전면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씨가 남긴 쪽지 ⓒ민중의소리

“예술인복지법인데…대부분 예술인들은 해당사항 없다”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예술인복지법)이 통과됐다.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지지부진했던 해당 법 제정을 견인했다. 하지만 (예술인복지법)에는 ‘예술인의 업무상 재해에 관한 보호’(제7조)를 통해 산재보험만 포함됐을 뿐 나머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은 빠져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문화평론가 나도원 문화평론가는 30일 SBS라디오 (김소원의 SBS전망대)와의 전화연결에서 “최고은 작가가 산업재해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라면서 “스턴트맨 같은 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예술인들이 해당사항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소설가가 원고 쓰는데 컴퓨터가 폭발한다거나 음악인들이 감전당해서 쓰러지거나 이런 일은 굉장히 희박한데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면서 누가 가입 하겠냐”면서 “산재보험 자체도 문제다. 또 근로 계약이든 도급계약을 체결한 예술인이 선택적으로 가입하도록 돼 있는데 산재 보험료가 100% 본인 부담으로 돼 있어 사실 해택이랄 것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 18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예술인 지위와 관련한 법안(새누리당 정병국 의원, 민주통합당 서갑원, 최종원, 전병헌 의원)들을 살펴보면, 여·야를 떠나 “예술인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한다”며 4대보험 적용을 포함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직업 예술인들을 법적으로 근로자(또는 유사 근로자)의 신분을 보장해 줌으로써 국민 4대보험 가입 대상자로 편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 역시 2009년도 문화예술인실태조사를 근거로 “조사 대상자의 59.2%만이 국민연금 등 각종 공적연금에 가입했으며 고용보험은 28.4%만이 가입돼 있는 등 노후 대비나 실직에 대한 대책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며 “예술인의 건강보험과 고용보험 등에 있어서 특례적 가입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4대 보험 적용이 축소됐다.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18대 국회에서 경총과 환노위의 반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재보험의 경우에는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등을 특례로 인정해주는 사례가 있었으나 고용보험은 특례가 없었다”며 “예술인에 고용보험을 특례로 한다면 다른 취약 직종도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적용에 대해서는 “현행법으로도 예술인의 가입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사실상 고용보험이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문화부에서는 고용보험이 제도상 어렵다면 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을 통해 실업급여를 어느 정도 지원하는 방법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문화부는 355억 원의 예술인복지재단 예산을 신청, 기재부와 협의 중에 있다.

영화산업노조·문화연대 “예술인복지법, 전면재개정 해야”

그러나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및 문화연대 등은 (예술인복지법)과 관련해 사실상의 전면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 정도가 유일한 성과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홍태화 조직국장은 “(예술인복지법)에 근로자 의제에 대한 부분이 빠졌다”면서 “예술인들의 산재와 고용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전면개정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태화 조직국장은 “‘예술인’이라는 정의에서부터 법 취지와 어긋난다”며 “영화 쪽만 보더라도 예술인복지법을 통해 혜택을 받는 이들은 배우와 감독, 작가뿐이다. 촬영, 조명, 분장, 의상 등 현장 스태프들은 다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말 어려운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 역시 “예술인의 정의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예술인복지법)에서 사실은 예술인복지재단 설립이 유일한 성과”라며 “해당 법은 노동권이나 결사의 자유, 문화다양성 측면에서 완결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문화예술계와 내부 소통을 통한 전면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순택 기자  |  nanan@mediaus.co.kr

2012년 8월 5일 일요일

"우리에겐 증거가 아니라 존중이 필요"


이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08-01일자 제28호 기사 ' "우리에겐 증거가 아니라 존중이 필요"'를 퍼왔습니다.
노동과 삶 ● 산재 인정을 위해 싸우는 삼성반도체 노동자들

암과 백혈병으로 56명이 죽고 150명 이상이 발병했는데도 정부 당국은 수수방관이다. 피해자들은 거액의 회유를 뿌리치고 산재 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번번이 노동자 편이 아니었다. 노동자에게 수천 가지 화학물질과 관련된 산재를 직접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이선옥 르포작가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황유미씨의 추모기일인 지난 3월6일 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사망 노동자의 가족들. 뉴시스

지난 6월2일 문자가 한 통 날아들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빈혈로 쓰러져 13년간 투병해온 윤슬기씨의 사망 소식이었다. 열아홉의 나이에 병을 얻어 13년간 병과 싸우다 서른한 살에 죽음을 맞은 그녀의 삶이 너무 가여워 가슴이 먹먹했다.


열아홉, 부르는 것만으로도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들릴 듯한 나이. '재잘거림' '반짝임' '경쾌함' '맑음' '수줍음' 같은 싱그러운 단어가 따라붙을 나이에 그녀는 몹쓸 병에 걸렸고, 한 달에 한 번씩 수혈로 연명하다 서른을 넘겼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고통 속에서 보내다 결국 고통스럽게 죽은 젊은 여성. 그런 여성은 또 있다.


스러져가는 반도체 노동자들


윤슬기씨가 죽기 한 달 전에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투병하던 두 아이의 엄마, 이윤정씨가 숨졌다. 그녀 역시 서른둘밖에 되지 않은 젊은 여성이었다. 고 황유미, 박지연씨도 고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삼성에 입사해 일하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숨졌다. 그런 죽음이 벌써 56명이나 된다.


그러나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은 여전히 '개별 기업' 차원의 일로 취급될 뿐이다. 하필 그 기업이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초일류기업인 탓에 입법부, 사법부, 언론, 학계 모두 그 기업의 돈에서 자유롭지 못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은 점점 늘어만 간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의 활동가 공유정옥(산업의학 전문의)씨는 수년 동안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백혈병, 암, 희귀성 질환을 앓던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묘사하는 데도 몇 번씩 숨을 골라야 할 만큼 처참했다.


"이번에 윤슬기씨 돌아가실 때는 12시간 가까이 봤는데 피를 흘리면서 죽었어요. 재생불량성빈혈은 어디서 피가 터지면 안 멈추는 병이거든요. 갑자기 폐출혈이 온 거예요. 피가 안 멈추니까 폐에 피가 차잖아요. 물에 빠져 죽는 거랑 똑같아요. 내 피에 내가 빠져서 죽는 것…. 숨 쉴 때마다 계속 코와 입에서 피가 나와요. 몇 시에 죽느냐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계속 보다가 나오고, 보다가 나오고 그랬어요. 숨 한 번 쉴 때마다 피를 하도 많이 흘리니까…. 컨디션이 좋아지면 산재 신청하자고 그랬는데…. 하이닉스 김진기씨는 만성 백혈병인데 다른 암은 암세포를 떼어내지만 백혈병은 뼈 속의 골수 문제라 항암제로 골수를 다 죽인 다음에 남의 골수를 넣어야 해요. 백혈병 피해자들은 대부분 감염 아니면 이식 뒤 거부반응으로 돌아가세요. 1∼2년 투병하고 1억원 넘게 돈 쓰고 죽어요. 생존율이 절반밖에 안 돼요. 거부반응이 일어나서 피부가 다 벗겨지고 진물이 흐르고 온몸의 구멍에서 피가 다 나오고…, 그렇게 죽어요. 아내가 우리 남편 너무 불쌍하지 않으냐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 죽느냐고 묻더라고요. 다들 얼굴만 봐도 피울음이 날 정도로 처참해요. 박지연씨도 막판에 그 예쁜 처녀가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죽었고."


피해자들의 건강했던 생전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사연을 조곤조곤 말해준 다음에야 공유정옥씨는 내게 심호흡을 한 번 하라고 했다. 피해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줄 텐데 아마 놀랄 거고, 지금까지 본 사진 중에 가장 끔찍할 수도 있다고, 평소 공포영화를 못 보면 보지 말라고 했다.


차라리 보지 말걸, 그녀가 열어준 사진을 보는 순간 억 소리가 터져나와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의식을 잃은 채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몸의 모든 피부가 짓무른 모습으로 누군가 누워 있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파리하고 청순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죽어가는 드라마 속의 백혈병은 거짓말이었다. 그날 밤 내내 잠이 오지 않았다. 가난해서 병들고, 가난해서 죽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슬펐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진학 대신 공장에 들어간 아이들. 그래서 병을 얻었지만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힘없는 노동자라 개인의 질병으로 끌어안고 고스란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 가난해서 병에 걸리고, 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하고, 치료받느라 다시 가난해지는 악순환. 이 순환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서글펐다. 정말 가난이 죄인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건 천형인가.


노동자로 산다는 건 천형인가


삼성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은 지금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산재 인정을 받는다는 건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도 삼성이 제시한 개별 합의 대신 산재 인정을 받으려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산재 인정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삼성이 제시한 합의금보다 적을지라도 이들은 또 다른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재 신청을 포기하면 돈을 주겠다는 삼성의 회유를 거절하고 있다.


피해자들 스스로 서로 말린다고 한다. "힘들어도 조금 나중에 받자, 산재 인정 못 받게 하려는 돈이라 우리가 여기서 그 돈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계속 죽는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조금만 참자, 조금 나중에 받자." 그렇게 서로 다잡고 있다.


10억원을 주겠다는 삼성의 제안을 거절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자신이 몰던 택시 뒷자리에서 딸이 숨졌다. 너무 힘들어 퇴사하고 싶어도 그 말을 삼키고,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펑펑 울고 싶었다던 유미는, 백혈병 응급 치료를 마치고 강원도 속초 집으로 돌아오던 중 싸리재 고개에서 뜬 눈으로 숨을 멈췄다. 엄마는 죽은 딸의 눈을 감겨주며 오열했고, 아버지는 스물셋 꽃 같은 나이의 딸의 주검을 자신의 차에 싣고 울면서 속초까지 가야 했다.


감기인 줄 알고 찾아간 병원에서 바로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골수를 찾았을 때 "나 이제 살았구나!" 했다던 황민웅씨는 돌 지난 첫째아이와,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둘째아이를 두고 주검 모습이 제일 험하다는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 정애정씨는 건장했던 남편을 하루아침에 잃고 어린 두 아이와 덩그러니 남겨졌다.


한혜경씨는 온몸이 뒤틀리고 병들어 제대로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삼성의 더러운 돈을 받지 않겠다"고 절규한다. 그녀는 뇌종양 수술로 눈물샘을 잘라내 울 수도 없다. 이들 모두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암과 백혈병을 얻었지만, 삼성은 개인적인 질병이라 주장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의 변호사들을 앞세워 이들의 산재 신청을 기각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이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건, 연이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는 길은 이들의 병을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받아 작업환경을 바꾸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삼성이라는 기업에 정상적인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그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피해자와 반올림 활동가들은 입을 모은다. 산재 인정과 노동조합, 이 두 가지 과제를 위해 노동자와 그 가족은 초일류기업 삼성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조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병에 안 걸리는 건 아니겠지만 노조가 잘되면 현장통제력이 있잖아요. 파업도 할 수 있고. 예를 들어 기아자동차에서도 유해물질 사용 부서에서 계속 암 피해자들이 생겼어요. 그래서 노조가 발암물질 추방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믿을 수 있는 기관에 사용물질에 대한 성분 분석을 의뢰하고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을 촉구했어요. 유해물질로 의심되는 게 튀었을 때는 라인을 멈췄대요. 노조가 그런 힘이 있으면 작업중지권 행사가 가능하죠. 힘있는 노조가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면 결국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대체물질을 사용하게 하고, 과로 스트레스에 놓이지 않게 해서 병에 걸리는 노동자를 대폭 줄일 수 있어요."(이종란 노무사, 반올림 상임활동가)

중증재생불량성빈혈(백혈병)을 앓다가 지난 6월2일 숨진 삼성반도체 노동자 윤슬기씨 방의 자기 사진과 일본어 교재, 소설책. 한겨레 정용일

노동자를 위한 수칙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삼성은 여전히 무노조경영을 고집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산재 인정 과정은 개별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구조다. 불승인이 나면 심사 청구, 재심사 청구, 행정소송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포기하고 만다. 2008년에는 '업무상 요인에 의한 질병이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시행규칙이 삭제돼 노동자들에게 더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수천 가지 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조차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는데,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업무연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과 피해자 가족 23명이 제기한 산재 승인 청구에서 근로복지공단은 22명에게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대부분 암환자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노동자들이 화학물질의 성분이 얼마나, 어떻게 내 몸에 유해하고, 이게 내 업무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완벽하게 입증하기란 불가능하다.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계속 암에 걸려 죽어가고, 발병자 수가 제보된 것만 150명이 넘는다면, 이는 마땅히 해당 기업과 정부가 나서서 그 업무의 연관성을 밝히고 보상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노동자들에게 당신이 만지는 화학물질은 무엇이며, 그 물질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안전한 일터를 위해 이러이러한 조치를 취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기업의 마땅한 책임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삼성반도체 문제를 다룬 만화 (먼지 없는 방)(김성희 지음)과 (사람 냄새)(김수박 지음)는 '클린수칙은 있어도 안전수칙은 없는' 반도체 공장의 현실을 증언한다. 가장 청정한 산업으로 알려진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은 '화장을 하면 안 된다, 뛰면 안 된다, 3명 이상 모여 있으면 안 된다, 무스나 스프레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손톱을 기르거나 매니큐어를 바르면 안 된다'는 청정 수칙이 있다.
이는 모두 클린룸의 청정을 유지하기 위한 수칙이다. 노동자를 위한 수칙은 없다. '너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교육만 하지, '어떤 물질은 사용하고, 어떤 물질은 해롭다'는 교육은 하지 않는다. 이런 일터의 현실이 노동자를 죽이고 있다. 그 죽음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현실이 한시라도 빨리 바뀌어야 한다. 산재 문제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인식이 바뀌는 게 무엇보다 절실하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 발표가 있었는데, 최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서 반도체 회사의 조립·가공 라인 모두 벤젠, 포름알데히드, 비소 이런 물질들의 노출이 확인됐어요. 특히 혈액암을 일으키는 벤젠·포름알데히드·방사선 노출이 가공뿐 아니라 조립라인에서도 확인됐기 때문에 예전에는 반도체 산업의 산재는 무조건 불승인, '규명되지 않았다' '모른다'였는데 이제는 태도가 조금 바뀐 거 같아요. 저희가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게 행정소송 중인 뇌종양, 루게릭, 다발성 경화증이에요. 워낙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각종 희귀 질환이 많거든요. 이 질병의 원인을 노동자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업주, 특히 국가의 책임으로 보고 사회보험의 취지를 충분히 살려서 의심이나 개연성만으로도 충분히 인정해주는 판결을 기다리고 있어요."(이종란)

자본권력을 겨누는 화살은 어디에?

"산재는 근거가 전혀 없으면 불승인이고 아주 명확해야만 승인을 해주는데, 사실은 근거가 상당히 있어도 불승인을 당해요. 이게 무슨 사법 처리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보장인데 원인 불명을 이유로 기각하는 건 말이 안 되죠. 화학물질 중에 정보가 공개된 게 15%만 유해 정보가 있대요. 발암성 여부는 8만 종 중에 2%만 시험을 거쳤고, 98%는 연구를 안 했기 때문에 몰라요. 학자들은 돈이 없어서 연구를 못한다고 해요. 기업이 자기 이윤을 깎아먹는 연구에 당연히 돈을 대지 않죠. 기자회견을 할 때 그런 주장을 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증거가 아니라 존중'이라고. 반도체 노동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는다는 건 경제발전이 도대체 뭘 대가로 치르고 이뤄진 것인가 보는 거예요. 결국 노동자의 생명을 대가로 디지털 강국이 되는 거잖아요."(공유정옥)
지난 몇 년 동안 근로복지공단은 1조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해왔다.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률은 50% 미만으로 낮아졌다. 사회보험을 집행하는 비영리 국가기관이 기록한 1조원 넘는 흑자는 결국 노동자들의 사고와 질병을 방치한 결과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 손실은 18조원을 넘어섰다(고용노동부 집계). 교통재해의 1.4배, 자연재해의 15배 수준이라고 한다. 3시간에 1명씩 노동자가 죽는데도 우리 사회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너무나 둔감하고 무관심하다. 만일 대학생이나 청소년이 1년 내내 3시간에 1명씩 죽어나간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침묵하진 않았을 것이다. 삶에 계급이 있듯, 죽음에도 계급이 있다.
영화 (괴물)에 보면 미군이 한강에 버린 독극물 때문에 괴물이 만들어진다. 그 독극물이 바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작업 공정에 노출된 약품 중 하나인 포름알데히드다. 영화 속 포름알데히드가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를 만들었듯, 현실의 포름알데히드는 노동자들의 질병과 죽음이라는 괴물을 만들고 있다. 독극물이 만들어낸 괴물이 엉뚱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듯이, 반도체 산업에서 쓰는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도 오로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손을 담그고 냄새를 맡으며 일한 노동자들의 목숨을 뺏고 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불화살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 속 괴물을 향해 날아가던 불화살처럼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노동자의 건강권이 제대로 보장받는 세상을 만들 불화살은 어디에 있을까?
대선을 앞두고 부도덕하고 부패한 정치권력의 심장을 겨누는 화살이 되겠다는 정치인은 많은데, 죄 없는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괴물, 인간보다 이윤이 먼저인 자본권력을 겨누는 화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추모제를 치러야 할 노동자 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

namufre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