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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삼성반도체 하청노동자도 백혈병…집단 산재 신청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16일자 기사 '삼성반도체 하청노동자도 백혈병…집단 산재 신청'을 퍼왔습니다.
반올림 "신식 라인, 하청업체도 안전하진 않아"

삼성전자 반도체를 만들다가 희귀병에 걸린 노동자와 유가족 5명이 또 다시 산재를 신청했다. 이들 가운데 3명은 최초의 삼성전자 협력업체 출신 희귀병 산재신청자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직접 일했던 3명은 비교적 신식 라인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다. 신라인과 하청업체도 안전할 수 없을 가능성이 제기된 셈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16일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에 반도체를 만들다가 희귀병에 걸린 노동자와 유가족 5명에 대한 집단 산재신청을 냈다.

산재 신청자 가운데 고 박효순(악성림프종), 고 이경희(폐암) 씨는 비교적 신라인인 6라인 이후에서 일했던 삼성전자 생산직 노동자들이었다. 김기철(백혈병) 씨는 사내 하청노동자였으며, 김0순(유방암), 김0정(유방암) 씨는 아웃소싱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신라인서 일했던 사내하청 노동자, 지난달 백혈병 판정

삼성전자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박효순(29)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2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6‧8‧9라인에서 포토베이 오퍼레이터로 근무했다. 2006년 건강 악화로 퇴사한 박 씨는 2010년 11월에서야 악성림프종 4기를 진단받고 지난 8월 숨졌다.

마찬가지로 삼성전자 생산직이었던 고 이경희(41) 씨는 1994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만 16년 동안 6‧7‧10‧13라인에서 건식식각공정 설비엔지니어로 일했으나, 2010년 폐암 말기를 진단받고 지난 5월 사망했다.

삼성반도체의 사내 하청업체인 (주)크린팩토메이션 소속 김기철(28) 씨는 2006년 말부터 6년 동안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15라인 클린룸에서 반도체 웨이퍼 자동반송장비를유지보수하는 일을 담당했다. 김 씨는 한 달 전 잇몸출혈로 병원에 갔다가 현재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은 상태다.

삼성반도체 공장의 라인 번호는 라인이 만들어진 시기 순서대로 정해진다. 6라인 이후는 비교적 신라인에 속하며 15라인은 가장 최신 라인에 속한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지금까지 피해자는 주로 5라인 이하의 오래된 라인에서 나온 경우가 대다수였다"면서 "최신라인이라고 해도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을 수 있으며, 아주 적은 발암물질로도 어떤 사람에게는 백혈병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2년 새 전체 노동자 20여 명 중 희귀병 환자 5명

사내하청뿐만 아니라 아웃소싱 협력업체에서도 희귀병 발병자가 나왔다. 김0순 씨와 김0정 씨는 경기도 용인 소재의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주)QTS에서 리볼 등 납 도금 업무를 담당했다. 이들은 납, 플럭스, 141B 등 유해물질을 사용하면서도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작업환경에서 일했다고 증언했다.

(주)QTS는 메모리반도체를 다루는 업체로 반도체 완성업체에서 납품받은 불량 납볼을 다시 작업하는 회사다. 이 회사에서 상시 근무하는 노동자 20여 명 가운데 지난 2010년부터 2년 동안 유방암 환자 4명과 폐암 사망자 1명이 발생했다. 전체 상시노동자의 1/4이 희귀병에 걸린 셈이다.

대부분이 40~50대 여성인 이들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으로 대부분 2~3개월짜리 단기계약직으로 일했으며, 수년 이상 일한 상시고용 노동자는 1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환기가 잘 되지 않는 환경에서 유기용제 등 유해 화학물질과 납을 썼다. 납은 발암물질이자 중추신경계에 이상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원청사가 위험을 외주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노무사는 "원청은 상대적인 약자인 납품업체가 단가를 낮추고 안전문제에 소홀하도록 하는 조건을 정한다"며 "노동자 안전 문제에는 원청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애플도 중국에 하청업체를 두고 있는데, 국제 사회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애플이 책임질 문제라고 한다"며 "권력 관계의 우위에 있는 원청의 실질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지금까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에서 반도체‧LCD 등을 만들다가 희귀병에 걸렸다며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29명(삼성전자 28명, 하이닉스 1명)이다. 이들 가운데 22명이 산재를 거절당했고, 1명은 산재 신청을 철회했으며, 10명이 소송에 들어갔다. 산재를 승인받은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김윤나영 기자

2012년 8월 5일 일요일

"우리에겐 증거가 아니라 존중이 필요"


이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08-01일자 제28호 기사 ' "우리에겐 증거가 아니라 존중이 필요"'를 퍼왔습니다.
노동과 삶 ● 산재 인정을 위해 싸우는 삼성반도체 노동자들

암과 백혈병으로 56명이 죽고 150명 이상이 발병했는데도 정부 당국은 수수방관이다. 피해자들은 거액의 회유를 뿌리치고 산재 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번번이 노동자 편이 아니었다. 노동자에게 수천 가지 화학물질과 관련된 산재를 직접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이선옥 르포작가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황유미씨의 추모기일인 지난 3월6일 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사망 노동자의 가족들. 뉴시스

지난 6월2일 문자가 한 통 날아들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빈혈로 쓰러져 13년간 투병해온 윤슬기씨의 사망 소식이었다. 열아홉의 나이에 병을 얻어 13년간 병과 싸우다 서른한 살에 죽음을 맞은 그녀의 삶이 너무 가여워 가슴이 먹먹했다.


열아홉, 부르는 것만으로도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들릴 듯한 나이. '재잘거림' '반짝임' '경쾌함' '맑음' '수줍음' 같은 싱그러운 단어가 따라붙을 나이에 그녀는 몹쓸 병에 걸렸고, 한 달에 한 번씩 수혈로 연명하다 서른을 넘겼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고통 속에서 보내다 결국 고통스럽게 죽은 젊은 여성. 그런 여성은 또 있다.


스러져가는 반도체 노동자들


윤슬기씨가 죽기 한 달 전에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투병하던 두 아이의 엄마, 이윤정씨가 숨졌다. 그녀 역시 서른둘밖에 되지 않은 젊은 여성이었다. 고 황유미, 박지연씨도 고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삼성에 입사해 일하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숨졌다. 그런 죽음이 벌써 56명이나 된다.


그러나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은 여전히 '개별 기업' 차원의 일로 취급될 뿐이다. 하필 그 기업이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초일류기업인 탓에 입법부, 사법부, 언론, 학계 모두 그 기업의 돈에서 자유롭지 못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은 점점 늘어만 간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의 활동가 공유정옥(산업의학 전문의)씨는 수년 동안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백혈병, 암, 희귀성 질환을 앓던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묘사하는 데도 몇 번씩 숨을 골라야 할 만큼 처참했다.


"이번에 윤슬기씨 돌아가실 때는 12시간 가까이 봤는데 피를 흘리면서 죽었어요. 재생불량성빈혈은 어디서 피가 터지면 안 멈추는 병이거든요. 갑자기 폐출혈이 온 거예요. 피가 안 멈추니까 폐에 피가 차잖아요. 물에 빠져 죽는 거랑 똑같아요. 내 피에 내가 빠져서 죽는 것…. 숨 쉴 때마다 계속 코와 입에서 피가 나와요. 몇 시에 죽느냐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계속 보다가 나오고, 보다가 나오고 그랬어요. 숨 한 번 쉴 때마다 피를 하도 많이 흘리니까…. 컨디션이 좋아지면 산재 신청하자고 그랬는데…. 하이닉스 김진기씨는 만성 백혈병인데 다른 암은 암세포를 떼어내지만 백혈병은 뼈 속의 골수 문제라 항암제로 골수를 다 죽인 다음에 남의 골수를 넣어야 해요. 백혈병 피해자들은 대부분 감염 아니면 이식 뒤 거부반응으로 돌아가세요. 1∼2년 투병하고 1억원 넘게 돈 쓰고 죽어요. 생존율이 절반밖에 안 돼요. 거부반응이 일어나서 피부가 다 벗겨지고 진물이 흐르고 온몸의 구멍에서 피가 다 나오고…, 그렇게 죽어요. 아내가 우리 남편 너무 불쌍하지 않으냐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 죽느냐고 묻더라고요. 다들 얼굴만 봐도 피울음이 날 정도로 처참해요. 박지연씨도 막판에 그 예쁜 처녀가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죽었고."


피해자들의 건강했던 생전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사연을 조곤조곤 말해준 다음에야 공유정옥씨는 내게 심호흡을 한 번 하라고 했다. 피해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줄 텐데 아마 놀랄 거고, 지금까지 본 사진 중에 가장 끔찍할 수도 있다고, 평소 공포영화를 못 보면 보지 말라고 했다.


차라리 보지 말걸, 그녀가 열어준 사진을 보는 순간 억 소리가 터져나와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의식을 잃은 채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몸의 모든 피부가 짓무른 모습으로 누군가 누워 있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파리하고 청순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죽어가는 드라마 속의 백혈병은 거짓말이었다. 그날 밤 내내 잠이 오지 않았다. 가난해서 병들고, 가난해서 죽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슬펐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진학 대신 공장에 들어간 아이들. 그래서 병을 얻었지만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힘없는 노동자라 개인의 질병으로 끌어안고 고스란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 가난해서 병에 걸리고, 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하고, 치료받느라 다시 가난해지는 악순환. 이 순환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서글펐다. 정말 가난이 죄인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건 천형인가.


노동자로 산다는 건 천형인가


삼성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은 지금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산재 인정을 받는다는 건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도 삼성이 제시한 개별 합의 대신 산재 인정을 받으려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산재 인정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삼성이 제시한 합의금보다 적을지라도 이들은 또 다른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재 신청을 포기하면 돈을 주겠다는 삼성의 회유를 거절하고 있다.


피해자들 스스로 서로 말린다고 한다. "힘들어도 조금 나중에 받자, 산재 인정 못 받게 하려는 돈이라 우리가 여기서 그 돈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계속 죽는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조금만 참자, 조금 나중에 받자." 그렇게 서로 다잡고 있다.


10억원을 주겠다는 삼성의 제안을 거절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자신이 몰던 택시 뒷자리에서 딸이 숨졌다. 너무 힘들어 퇴사하고 싶어도 그 말을 삼키고,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펑펑 울고 싶었다던 유미는, 백혈병 응급 치료를 마치고 강원도 속초 집으로 돌아오던 중 싸리재 고개에서 뜬 눈으로 숨을 멈췄다. 엄마는 죽은 딸의 눈을 감겨주며 오열했고, 아버지는 스물셋 꽃 같은 나이의 딸의 주검을 자신의 차에 싣고 울면서 속초까지 가야 했다.


감기인 줄 알고 찾아간 병원에서 바로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골수를 찾았을 때 "나 이제 살았구나!" 했다던 황민웅씨는 돌 지난 첫째아이와,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둘째아이를 두고 주검 모습이 제일 험하다는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 정애정씨는 건장했던 남편을 하루아침에 잃고 어린 두 아이와 덩그러니 남겨졌다.


한혜경씨는 온몸이 뒤틀리고 병들어 제대로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삼성의 더러운 돈을 받지 않겠다"고 절규한다. 그녀는 뇌종양 수술로 눈물샘을 잘라내 울 수도 없다. 이들 모두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암과 백혈병을 얻었지만, 삼성은 개인적인 질병이라 주장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의 변호사들을 앞세워 이들의 산재 신청을 기각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이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건, 연이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는 길은 이들의 병을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받아 작업환경을 바꾸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삼성이라는 기업에 정상적인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그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피해자와 반올림 활동가들은 입을 모은다. 산재 인정과 노동조합, 이 두 가지 과제를 위해 노동자와 그 가족은 초일류기업 삼성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조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병에 안 걸리는 건 아니겠지만 노조가 잘되면 현장통제력이 있잖아요. 파업도 할 수 있고. 예를 들어 기아자동차에서도 유해물질 사용 부서에서 계속 암 피해자들이 생겼어요. 그래서 노조가 발암물질 추방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믿을 수 있는 기관에 사용물질에 대한 성분 분석을 의뢰하고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을 촉구했어요. 유해물질로 의심되는 게 튀었을 때는 라인을 멈췄대요. 노조가 그런 힘이 있으면 작업중지권 행사가 가능하죠. 힘있는 노조가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면 결국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대체물질을 사용하게 하고, 과로 스트레스에 놓이지 않게 해서 병에 걸리는 노동자를 대폭 줄일 수 있어요."(이종란 노무사, 반올림 상임활동가)

중증재생불량성빈혈(백혈병)을 앓다가 지난 6월2일 숨진 삼성반도체 노동자 윤슬기씨 방의 자기 사진과 일본어 교재, 소설책. 한겨레 정용일

노동자를 위한 수칙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삼성은 여전히 무노조경영을 고집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산재 인정 과정은 개별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구조다. 불승인이 나면 심사 청구, 재심사 청구, 행정소송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포기하고 만다. 2008년에는 '업무상 요인에 의한 질병이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시행규칙이 삭제돼 노동자들에게 더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수천 가지 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조차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는데,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업무연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과 피해자 가족 23명이 제기한 산재 승인 청구에서 근로복지공단은 22명에게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대부분 암환자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노동자들이 화학물질의 성분이 얼마나, 어떻게 내 몸에 유해하고, 이게 내 업무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완벽하게 입증하기란 불가능하다.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계속 암에 걸려 죽어가고, 발병자 수가 제보된 것만 150명이 넘는다면, 이는 마땅히 해당 기업과 정부가 나서서 그 업무의 연관성을 밝히고 보상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노동자들에게 당신이 만지는 화학물질은 무엇이며, 그 물질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안전한 일터를 위해 이러이러한 조치를 취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기업의 마땅한 책임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삼성반도체 문제를 다룬 만화 (먼지 없는 방)(김성희 지음)과 (사람 냄새)(김수박 지음)는 '클린수칙은 있어도 안전수칙은 없는' 반도체 공장의 현실을 증언한다. 가장 청정한 산업으로 알려진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은 '화장을 하면 안 된다, 뛰면 안 된다, 3명 이상 모여 있으면 안 된다, 무스나 스프레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손톱을 기르거나 매니큐어를 바르면 안 된다'는 청정 수칙이 있다.
이는 모두 클린룸의 청정을 유지하기 위한 수칙이다. 노동자를 위한 수칙은 없다. '너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교육만 하지, '어떤 물질은 사용하고, 어떤 물질은 해롭다'는 교육은 하지 않는다. 이런 일터의 현실이 노동자를 죽이고 있다. 그 죽음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현실이 한시라도 빨리 바뀌어야 한다. 산재 문제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인식이 바뀌는 게 무엇보다 절실하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 발표가 있었는데, 최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서 반도체 회사의 조립·가공 라인 모두 벤젠, 포름알데히드, 비소 이런 물질들의 노출이 확인됐어요. 특히 혈액암을 일으키는 벤젠·포름알데히드·방사선 노출이 가공뿐 아니라 조립라인에서도 확인됐기 때문에 예전에는 반도체 산업의 산재는 무조건 불승인, '규명되지 않았다' '모른다'였는데 이제는 태도가 조금 바뀐 거 같아요. 저희가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게 행정소송 중인 뇌종양, 루게릭, 다발성 경화증이에요. 워낙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각종 희귀 질환이 많거든요. 이 질병의 원인을 노동자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업주, 특히 국가의 책임으로 보고 사회보험의 취지를 충분히 살려서 의심이나 개연성만으로도 충분히 인정해주는 판결을 기다리고 있어요."(이종란)

자본권력을 겨누는 화살은 어디에?

"산재는 근거가 전혀 없으면 불승인이고 아주 명확해야만 승인을 해주는데, 사실은 근거가 상당히 있어도 불승인을 당해요. 이게 무슨 사법 처리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보장인데 원인 불명을 이유로 기각하는 건 말이 안 되죠. 화학물질 중에 정보가 공개된 게 15%만 유해 정보가 있대요. 발암성 여부는 8만 종 중에 2%만 시험을 거쳤고, 98%는 연구를 안 했기 때문에 몰라요. 학자들은 돈이 없어서 연구를 못한다고 해요. 기업이 자기 이윤을 깎아먹는 연구에 당연히 돈을 대지 않죠. 기자회견을 할 때 그런 주장을 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증거가 아니라 존중'이라고. 반도체 노동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는다는 건 경제발전이 도대체 뭘 대가로 치르고 이뤄진 것인가 보는 거예요. 결국 노동자의 생명을 대가로 디지털 강국이 되는 거잖아요."(공유정옥)
지난 몇 년 동안 근로복지공단은 1조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해왔다.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률은 50% 미만으로 낮아졌다. 사회보험을 집행하는 비영리 국가기관이 기록한 1조원 넘는 흑자는 결국 노동자들의 사고와 질병을 방치한 결과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 손실은 18조원을 넘어섰다(고용노동부 집계). 교통재해의 1.4배, 자연재해의 15배 수준이라고 한다. 3시간에 1명씩 노동자가 죽는데도 우리 사회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너무나 둔감하고 무관심하다. 만일 대학생이나 청소년이 1년 내내 3시간에 1명씩 죽어나간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침묵하진 않았을 것이다. 삶에 계급이 있듯, 죽음에도 계급이 있다.
영화 (괴물)에 보면 미군이 한강에 버린 독극물 때문에 괴물이 만들어진다. 그 독극물이 바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작업 공정에 노출된 약품 중 하나인 포름알데히드다. 영화 속 포름알데히드가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를 만들었듯, 현실의 포름알데히드는 노동자들의 질병과 죽음이라는 괴물을 만들고 있다. 독극물이 만들어낸 괴물이 엉뚱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듯이, 반도체 산업에서 쓰는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도 오로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손을 담그고 냄새를 맡으며 일한 노동자들의 목숨을 뺏고 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불화살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 속 괴물을 향해 날아가던 불화살처럼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노동자의 건강권이 제대로 보장받는 세상을 만들 불화살은 어디에 있을까?
대선을 앞두고 부도덕하고 부패한 정치권력의 심장을 겨누는 화살이 되겠다는 정치인은 많은데, 죄 없는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괴물, 인간보다 이윤이 먼저인 자본권력을 겨누는 화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추모제를 치러야 할 노동자 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

namufree@daum.net

2012년 5월 31일 목요일

“반도체 노동자와 삼성의 실상 알리고 싶었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5-30일자 기사 '“반도체 노동자와 삼성의 실상 알리고 싶었다”'를 퍼왔습니다.

ㆍ‘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성균관대서 거리 강연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36·사진)가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성균관대 캠퍼스에서 거리강연 강사로 나섰다. 이 노무사는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직업병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반올림’에서 상임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다.

이 노무사는 30일 오후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앞에서 이윤정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본 삼성그룹의 근로실태와 노조 문제 등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윤정씨는 1997년부터 6년 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뇌종양 진단을 받고 지난 7일 숨졌다. 이 노무사는 “삼성은 아직도 이윤정씨가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된 악성 뇌종양이 개인 질병이라고 몰아가고 있다”며 “그러나 진짜 원인은 전자파와 불량품 찌꺼기를 만지면서 묻은 유해성 화학물질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거리 강연장에 시선만 보낼 뿐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학생은 1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노무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40분간 풀어나갔다. 이날 거리 강의는 이 대학 류승완 박사 강의박탈 학생·동문대책위가 마련했다.


강연이 끝나고 난 뒤 이 노무사는 삼성과 악연을 맺기 시작한 사건을 먼저 떠올렸다. 그는 2005년 삼성SDI에서 노조 설립을 시도했던 노동자들을 만나 위치추적 의혹 등 삼성 노무관리의 실상을 접했다. 그는 “이때부터 인생이 꼬인 거죠”라며 웃었다. 

이 노무사는 2007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고 황유미씨 사건을 다루면서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그는 “황유미씨의 부친께서 ‘삼성이 딸의 죽음을 산업재해가 아닌 개인 질병으로 몰아가려 하고 아무도 문제를 캐려고 하지 않았다’면서 한숨부터 쉬셨다”며 “‘삼성에 노조가 있었더라면 내 딸이 죽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할 때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후 이 노무사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삼성과의 긴 싸움에 발을 들였다. 대책위는 다음해 반올림으로 전환됐고 이 노무사는 이 단체를 5년째 이끌고 있다.

이 노무사는 삼성과 상대하면서 가장 힘든 점에 대해 “삼성은 항상 직접 협상에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정부기관을 앞세우는 방식을 쓴다”며 “또 피해자를 금품 등으로 회유하거나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 ‘삼성처럼 돈 많이 벌어다주는 회사를 왜 걸고넘어지느냐’며 반올림 등을 대기업 흠집내기만 하는 집단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반올림의 도움으로 김지숙씨(36)가 지난달 10일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근로자 중에서는 처음으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삼성전자 온양공장 반도체 조립 공정 등에서 5년5개월 동안 근무한 뒤 ‘혈소판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희귀병에 걸렸다. 근로복지공단은 김씨가 근무 과정에서 벤젠이 포함된 유기용제와 포름알데히드 등에 간접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고 1999년 퇴사 당시부터 빈혈과 혈소판 감소 소견이 있었던 점 등을 인정했다. 

이씨는 “반올림은 산업재해 인정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삼성뿐만 아니라 반도체공장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인권을 반올림하기 위해서 반발짝씩 앞서나가겠다”고 말했다.

박효재·이효상 기자 mann616@kyunghyang.com

2012년 5월 10일 목요일

[사설]노동자 두 번 죽이는 까다로운 산재 기준


이글은 경향신문 2012-05-09일자 사설 '[사설]노동자 두 번 죽이는 까다로운 산재 기준'을 퍼왔습니다.
나라 전체를 병영처럼 운영했던 군사독재정권 시절 생산현장의 노동자들은 흔히 ‘산업전사’로 통했다. 정부와 기업주는 이들에게 용맹하게 싸울 것만을 독려했을 뿐 정작 이들이 ‘전사(戰死)’했을 때는 나몰라라 하기 일쑤였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하던 중 악성 뇌종양에 걸려 투병하던 이윤정씨가 엊그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씨를 포함해 뇌종양, 백혈병, 유방암 등 업무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이 삼성반도체에서만 32명, 삼성의 다른 계열사까지 합치면 무려 55명에 이른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삼성 외에도 전국 곳곳의 사업장에서 병을 얻거나, 죽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을 운위하는 21세기 초반에도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작업 환경은 군사정권 시절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이번에 사망한 이윤정씨는 서울행정법원에 산재 불승인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이 온갖 까다로운 조항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산재 인정 기준을 내세우며 이씨의 산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도 지난해 9월 단 한 차례 열린 이후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고 하니 설령 나중에 법원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이미 망자(亡者)가 된 이씨에게는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직업병 중에서도 암환자로 인정받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전국의 사업장에서 매년 20만명 안팎의 암환자가 발생하지만 업무관련성을 인정받은 노동자는 2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령이 인정하고 있는 직업성 암은 방사선 피폭에 의한 혈액암, 벤젠에 의한 조혈기계암 등 7가지뿐이기 때문이다.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린 노동자가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이 풍비박산나기 십상이다.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재보험법이 규정하고 있는 산재 인정 기준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치밀한 역학조사도 실시해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질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진폐증의 경우 수십년 동안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1985년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환자들에게 빛을 던졌다. 사업주들도 작업환경 유해물질을 사전에 제거하는 등 직업병 방지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제2, 제3의 이윤정이 속출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12년 4월 15일 일요일

재생불량성 빈혈 산재인정, 의미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4-14일자 기사 '재생불량성 빈혈 산재인정, 의미 축소해서는 안 된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문웅·노무법인 산재 대표노무사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삼성반도체 근로자가 신청한 "혈소판 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위의 질병은 반도체공정에서 유발될 수 있는 벤젠(유기용제), 포름알데이드, 전리방사선 등에 의해 발병될 수 있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되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상 업무상 질병중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물론 산재법에서는 이에 대한 인정기준으로 일정농도 및 근무기간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한편, 산업의학계에서는 유해물질에 의한 직업병의 경우 반드시 법에서 정한 일정농도 또는 근무기간 이상을 미달하더라도 충분히 직업병에 이환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문웅·노무법인 산재 대표노무사

그러나, 유해물질 피폭 가능성이 추정되는 사업장 근로자들이 최초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법에서 정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은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 등 산재 불승인 이후 이의신청 절차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 스스로 최초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 것이라 그 의미가 크다.


판례는 2007년 6월에 이미 직업병과 관련하여 최초 결정기관보다 진일보한 판결을 한 바 있다.


“10여년 전 공사도중 노출된 석면이 원인이 되어 폐암이 발병되었거나 자연적인 진행 경과 이상으로 악화되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대법2005두517, 2007.06.01)이 그것이다.


즉, 판례는 업무상 질병에 있어 근로복지공단보다 폭넓게 인정하였으며, 그 결과, 근로자들은 소송에 가서야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사회·경제적 약자인 근로자들에게 시간과 경제적 비용을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편, 삼성은 "공단의 결정을 받아들인다"라고 하면서 "공단이 명확한 발병 원인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영향 가능성만으로 산재를 인정한 것으로 보상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에 따른 판정"이라며 그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판정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잘못된 해석으로 보인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등 전문기관이 역학조사 및 작업환경 측정 등을 통해 현재 및 과거에 노출되었거나 노출될 수 있는 유해물질의 존재여부를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산업의학적 측면의 '과학적 추정‘이 수반되며, 대법원 또한 이러한 기조에 의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은 그동안 지나치게 엄격했던 업무상 질병에 대한 기준에 대해 공단 스스로 유연성과 합리성을 더한 것 같아 진심으로 환영한다.


더불어, 이번 결정이 앞으로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쳐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 하고자 하는 산재법 본연의 목적을 이루는데 초석이 되길 바란다.

문웅·노무법인 산재 대표노무사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삼성반도체 노동자, 사상 첫 산재승인.."삼성 사과해야"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4-10일자 기사 '삼성반도체 노동자, 사상 첫 산재승인.."삼성 사과해야"'를 퍼왔습니다.
근로복지공단, 김지숙씨 '재생불량성 빈혈' 산재 인정


ⓒ김철수 기자 지난해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집단 백혈병에 대한 일부 산재인정 판결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인정에 불복하고 항소장을 접수한 것에 대해 유족들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의 산업재해 신청이 처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근로복지공단은 10일 지난 1993년 12월부터 1999년까지 삼성전자 기흥 공장과 온양 공장에서 총 5년5개월여간 근무했던 김지숙(37) 씨에 대해 '혈소판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 증세를 산재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재생불량성빈혈은 골수 손상으로 조혈 기능에 장애가 생겨 백혈구, 혈소판 등이 감소하는 질병으로 증상이 악화되면 백혈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김지숙 씨가 삼성전자 근무 과정에서 벤젠이 포함된 유기용제와 포름알데히드 등에 간접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고, 1999년 퇴사 당시부터 빈혈과 혈소판 감소 소견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 인과 관계를 인정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 빈혈 등으로 노동자는 22명이 산재를 신청했지만 산재 판정이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은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이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이 내려온 불승인 처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근로복지공단 스스로 인정을 한 셈"이라며 "김지숙씨의 산재승인을 통해 공단이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근로복지공단은 그동안 김지숙 씨와 동일한 작업환경에서 발병한 동일계통의 질환을 겪고 있는 송창호, 김은경, 유명화, 고 황유미, 고 이숙영, 고 황민웅씨 등에 대해서는 역학조사 결과 벤젠 등 발암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번번히 불승인 판정을 내려왔다. 

반올림은 "똑같은 직업병 피해를 당하고도 과거 산재신청이 모두 불승인 되고, 이후 힘겨운 행정소송 중에 있는 삼성반도체 다른 피해자들에 대하여도 이번 결정으로 인해 산재인정의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반올림은 "삼성은 계속 발암물질은 없고 직업병은 아니라고 속이기만 할 게 아니라 이번 김지숙씨의 산재승인 결정을 통해 다시한번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에 큰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직업병 피해자들 및 국민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그것의 첫 출발은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인정을 위한 행정소송에 삼성의 개입(소송보조참가신청) 철회"라고 강조했다. 

'반올림'의 공유정옥 활동가(산업의학 전문의)는 '민중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 배경에 대해 "처음에 비해 아무래도 삼성반도체 산재에 관한 많은 진실들이 알려졌다. 특히 지난 2월에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발표도 있어서 산재판정위원회 전문가들도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18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삼성전자 산재 노동자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이미경 민주통합당 의원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지난 2월 발표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결과에서도 삼성 반도체 공정 등에서 벤젠 등 발암물질이 검출된 만큼 산재 인정은 마땅하다"며 "뒤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미경 의원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 등은 행정법원에서 산재를 인정받고도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2심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나머지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도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 의원은 “무엇보다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작업환경 개선이 시급하고, 직업성 암의 산재 인정 기준이 합리적으로 조정돼서 억울한 직업성 암 피해자들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결정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이번 판정은 명확한 발병 원인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영향 가능성만으로 산재를 인정한 것"이라면서도 "근로자들의 보상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에 따른 판정으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유정옥 활동가는 "절대다수의 질병이 명확한 원인이나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게 예외적인 게 아니다"라며 " 명확한 발병원인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흠을 잡는다면 질병을 갖고 산재인정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공유정옥 활동가는 "생존과 인권을 보장하려는 것이 산재보험의 취지"라며 "국가가 노동자의 산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가 살 만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