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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1일 금요일

삼성병원 의사가 '삼성 직업병' 산재 신청 심사 논란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30일자 기사 '삼성병원 의사가 '삼성 직업병' 산재 신청 심사 논란'을 퍼왔습니다.
고 윤슬기 씨 산재 불승인…반올림 "공정성 심각하게 훼손"

'삼성전자 직업병'의 산재를 심사하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강북삼성병원 소속 의사가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29일 "근로복지공단이 고(故) 윤슬기 씨의 산재 심의에 강북삼성병원 소속 의사를 참여시켰으나, 판정위원 명단을 비공개해 유가족이 (판정위원) 기피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사건에 강북삼성병원 소속 의사 참여?"

유가족 대리인으로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가 출석한 가운데, 근로복지공단은 지난달 12일 고(故) 윤슬기 씨의 산재 신청에 대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첫 심의회의를 열었다.

이 심의회의에서 한 판정위원은 "삼성전자 사건을 다루는데 강북삼성병원 소속 의사가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자 당시 판정위원회 위원장은 "근로복지공단의 유권해석상 그러한 사유가 위원의 제척, 기피, 회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회의를 계속했다.

강북삼성병원 소속 의사가 참여한 사실을 유가족 측이 뒤늦게 인지한 상태에서 이날 판정회의의 결과는 3 대 3으로 가부동수가 나왔고, 윤 씨의 산재 신청은 재심의에 회부됐다.

반올림은 "강북삼성병원은 삼성전자와 같은 계열사이자, 삼성전자 LCD 공장과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병원"이라며 지난 9일 해당 판정위원의 이름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 측은 이를 거부했다.


▲ 반올림은 지난해 7월 20일 고 윤슬기 씨의 49재를 맞아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산재 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근로복지공단, 위원 명단 공개 거부

이종란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이 판정위원의 소속과 이름을 사전에 제공하지 않아, 산재 당사자의 법률상 권리인 '(판정위원) 기피 신청권'을 박탈했다"며 "유가족이 기피 신청권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산재 판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산재법은 '당사자는 위원에게 심리·재결의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위원 명단조차 당사자에게 공개되지 않아 해당 조항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지난 9일 판정위원에서 강북삼성병원 의사가 빠진 채 재심의가 열렸지만, 결과는 또다시 3 대 3 가부동수가 나왔다. 이에 운영규정에 따라 재심에서 판정위원장이 표결에 참여하면서 4 대 3으로 불승인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7일 유가족에게 발송한 불승인 통지서를 통해 "고인이 작업 과정에서 사용한 물질의 노출력과 노출량을 고려해야 하고, 원인물질에 노출됐을 것이라는 추정만으로는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종란 노무사는 "초심 판정 때 정당한 기피권을 행사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며 "근로복지공단이 당사자에게 정당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복지공단 "심의위원 본인도 사건 배정 결정 못해" 

윤 씨의 산재 판정에 강북삼성병원 의사가 참여한 것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관계자는 "해당 심의위원은 이미 2월에 배치됐으며, 어떤 사건을 심의하는지는 심의가 열리기 5일 전까지는 심의위원 본인도 모르는 상태"라고 말했다.

산재 판정의 공정성 논란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위원장을 제외하고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위원은 노동계와 경영계가 추천한 위원 동수로 구성한다"며 "게다가 재심 당시 강북삼성병원 의사는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산재를 심의할 때 청구인의 대리인, 역학조사 위원, 청구인의 주치의인 경우에는 공단이 미리 제척하지만, 삼성병원 의사라고 해서 제척할 근거는 없다"며 "홈페이지에 판정위원 100명의 직업과 이름은 공개하지만, 개별 사건을 담당하는 위원의 신원은 원칙상 비공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재생불량성빈혈' 산재 승인 전례 있다 

고(故) 윤슬기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9년 6월 삼성전자 천안공장(현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해 검정색 유리 재질의 LCD 패널을 자르는 일을 했다.

고인은 "바로 앞 공정에서 화학물질을 고온으로 처리해 LCD 패널에 발라서 넘기면 독한 냄새가 진동했고, 패널을 자를 때는 미세한 검정 유리 가루가 날렸다"고 증언했다. 반올림은 "고인이 열분해 산물로 나오는 벤젠과 방사선 검사로 인한 방사선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국소 배기 장치나 개인 보호구는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윤 씨는 2000년 1월 희귀병인 '중증 재생불량성빈혈' 판정을 받고 12년간 수혈에 의지해 투병한 끝에 지난해 6월 숨졌다(향년 31세). 반올림이 집계한 56번째 삼성전자 사망 노동자다. (☞ 관련 기사 : "삼성에서 하혈하다 죽어간 딸, 이건희 자식이었다면…")

앞서 근로복지공단은 1999년까지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2008년재생불량성빈혈 진단을 받은 고(故) 김지숙 씨에 대해 지난해 4월 산재를 인정한 바 있다.

한편, 반올림과 윤 씨의 유가족은 30일 오전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산재 판정에 삼성병원 의사 참여, 판정위원 비공개, 산재 불승인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북삼성병원이 삼성전자 LCD 공장과 반도체 공장 소속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병원이라는 주장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직원들의 집이 가까우면 강북삼성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기도 하지만, 강북삼성병원을 특수건강검진 실시 병원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김윤나영 기자 

2013년 3월 5일 화요일

"죽어가는 딸에게 삼성은 백지 사표를 요구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05일자 기사 '"죽어가는 딸에게 삼성은 백지 사표를 요구했다"'를 퍼왔습니다.
[황유미, 그리고 6년 ①] 故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

200여 명 그리고 80여 명.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지금까지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 희귀병에 걸렸다고 제보한 노동자 수와 사망자 수다. '삼성 백혈병' 문제가 아직 세상에 알려지기 전, 딸의 산재를 알리기 위해 언론과 국회의원, 시민단체 등을 백방으로 찾아다녔던 한 아버지가 있다. 바로 삼성전자 반도체기흥공장에서 일했다가 2007년 3월 6일 백혈병으로 숨을 거둔 고 황유미(사망 당시 23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다. 황유미 씨의 6주기 추모 기일을 맞아 황상기 씨로부터 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딸을 백혈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지 6년. 아버지 황상기 씨는 여전히 서울과 속초를 오간다. 지난 6년간 기자회견, 1인 시위, 집회 등 '삼성전자 직업병'과 관련한 행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만난 황 씨는 "속초에서 택시 운전하고 사는데 몇 푼 벌어서 이러고 살아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6일은 고 황유미 씨의 6주기 추모 기일이다. 황상기 씨에게 딸을 떠나보낸 시간은 고스란히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싸운 시간이었다. 회사가 부인하고 근로복지공단이 승인하지 않은 산재를 법원에서 인정받기까지 황유미 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6년(산재 신청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4년)이 걸렸다. 끝이 아니다. 2심, 3심이 끝나기까지 또 몇 년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 황상기 씨 ⓒ프레시안(최형락)

"희귀병에 걸린 딸…삼성은 백지 사표를 요구했다" 


고 황유미 씨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혈액암)' 진단을 받은 건 2005년 6월. 당시 나이 21세였다. 집안에 암 가족력도 없는데, 건강했던 딸이 갑자기 희귀병에 걸렸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오퍼레이터로 일한 지 1년 8개월 만이었다.


2005년 12월 유미 씨가 골수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기에 접어들 무렵, 유미 씨와 같은 공장에서 2인 1조로 일한 고 이숙영(사망 당시 30세) 씨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황 씨는 산재를 확신했다. 20대는 인구 10만 명당 1년에 4.2명(2010년 국가암등록통계)밖에 안 걸린다는 희귀병인데,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두 명이 백혈병에 걸렸다니 아무래도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회사는 산재를 인정하는 대신 사표를 요구했다.


"회사 관리자들이 속초에 있는 집까지 온 거예요. 유미 휴직 기간을 더는 연장할 수 없다고. 당장 사표를 써야 한대. 사표를 쓰기 전에 회사에 요구하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해서 유미가 치료받을 수 있게 산재를 신청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관리자가 나보고 '아버님이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습니까?'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못 이긴다고 했어요.


산재 말고 다른 걸 요구하라고 해서 유미 치료비를 지원해달라고 했어요. 관리자가 치료비 5000만 원을 지원해 줄 테니 당장 사표를 쓰라는 거야. 백지 종이를 반 접어서 유미더러 이름하고 주민등록번호만 쓰라는 거야. 그렇게 받아간 게 사표였어요."


2006년 11월 중순, '백지 사표'를 쓴 지 며칠 뒤 유미 씨에게 백혈병이 재발했다. 황 씨는 이때, "사표를 받아간 회사 관리자가 돈 500만 원을 가져와서 '이것밖에 없으니 이 돈으로 해결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황 씨는 삼성전자에서 일했다가 백혈병에 걸린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수소문 끝에 6명을 찾았다. 그러나 삼성전자 측은 '황유미 씨는 퇴사했으므로 삼성전자와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2007년 1월에 인사과 부장, 과장 등 4명이 집에 왔어요. 화학약품을 쓰고, 6명이나 백혈병에 걸렸는데 산재가 아니냐고 따졌죠. 그랬더니 자기네는 화학약품도 안 쓰고 백혈병 걸리는 물질도 안 쓴대. 도리어 '유미는 사표 쓰고 나가서 삼성 사람도 아닌데 왜 삼성에 이런 얘기를 뒤집어씌우냐'고 몰아붙이는 거예요. 4명이 몰아붙이니 대화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유미는 다 쓰러져 죽어 가는데, 그 사람들은 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물어보고 몰아붙이기만 했어요. 서러워서 눈물이 났어요."


"가까스로 나간 기사, 배포 즉시 회수당해" 


2007년 3월 6일 황유미 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황상기 씨는 딸의 노동 환경을 알리기 위해 국회의원, 방송사를 찾아 백방으로 뛰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2007년 6월, 유미 씨의 작업 환경과 화학물질에 관한 내용이 적힌 일기장을 토대로 (수원시민신문)에 기사가 나갔다. 같은 달 노동·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산재도 신청했다.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공장 앞에서 출근하는 사람들한테 유미 기사가 실린 신문을 돌리면 삼성 경비들이 와 가지고, 나눠주는 즉시 다 빼앗는 거예요. 그래서 수원역 터미널 신문 가판대에 꽂아놨는데, 신문을 꽂으면 건장한 사복 남자들이 쫓아다니면서 다 회수했어요."


2007년 9월 1일 '삼성전자 역학조사'가 시행됐지만, 황 씨는 그마저 엉터리였다고 주장했다. 평상시 공장의 상태를 불시에 측정해야 하지만, 미리 날짜를 통보해 회사 측이 역학조사에 대비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것이다. 황 씨는 "칸막이 없이 일하고 환기가 잘 안됐다는 딸의 증언과 달리, 역학조사 당일 공장은 서늘할 정도로 환기가 잘됐고 칸막이가 다 설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역학조사가 끝난 날 황 씨는 삼성전자 관리자에게 "10억쯤 해드릴 테니까 다른 사회단체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도 말고, 아무한테도 (산재) 얘기를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황 씨는 돈을 받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돈으로 무마하려는 가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삼성은 돈 준다고 하면 제가 문제 삼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겠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병에 걸렸다는 사람이 자꾸 나오잖아요. 내가 아는 것만 6명이었는데,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프레시안(최형락)

오랜 싸움 끝에 얻은 '작은 승리' 

황 씨의 노력 끝에 2007년 11월 20일 노동·시민단체 20여 곳이 모여 '삼성반도체 집단백혈병 진상 규명 대책위원회(이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으로 개명)'가 만들어졌다. 제보자들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비슷하게 황 씨가 2007년 6월에 신청했던 산재는 약 2년이 지난 뒤인 2009년 5월에 결론이 났다. 불승인이었다.

2010년 1월 황상기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 희귀병에 걸린 4명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를 인정해달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가 대형 로펌 변호사 6명을 동원해 '피고 보조 참가인'으로 소송에 관여했음에도, 2011년 6월 23일 재판부는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 등 2명의 산재를 인정했다. 산재를 신청한 후 1심에서 이를 승인받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황 씨의 승소에 힘입어 처음에 5명에 불과했던 '희귀병' 제보자도 급속도로 늘었다. '반올림'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자산업에 종사했다가 백혈병 등 희귀병에 걸렸다고 제보한 노동자와 유가족은 200여 명, 사망자는 80여 명에 이른다. 

"그 이전에 삼성에서 거짓말을 했거든요. 삼성에서 병에 걸린 사람이 5명이라고 했을 때 삼성은 부인하지 않았어요. 6명일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대책위를 꾸리니까 제보자가 2명 더 들어와서 8명이 됐고, 그러니까 삼성은 또 그만큼만 인정하는 거예요. 신고는 계속 들어오는데, 삼성전자는 새로운 제보자가 나오면 딱 그만큼만 인정했어요."지난해 2월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공장 생산 라인에서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비소, 전리방사선 등이 검출됐다고 공식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4월과 12월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재생불량성빈혈과 유방암을 각각 산재로 인정했다. 황 씨는 1심 승소와 두 차례의 산재 승인을 "반올림 활동하면서 가장 큰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사람 생명보다 영업권·돈이 더 우선인가요?"

황 씨가 이 '작은 승리'를 거두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처음에 이 문제를 알리려고 하는데 기자와 국회의원이 다 외면할 때, 지인들도 '삼성에 대들어서 이길 수 없다'고 만류할 때 많이 외로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서 받은 상처도 크다고 했다. 노동자가 죽어 기자회견을 하고, 1인 시위를 하고, 노제를 지낼 때마다 황 씨는 경비 직원들에게 여러 번 들려나갔다.

"이윤정 씨(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한 뒤 뇌종양 판정을 받고 지난해 5월 사망) 장례식 날이었어요. 삼성 본관 앞에 노제를 지내러 갔는데, 삼성 경비가 통과를 못 하게 막는 거예요. 경비 수십 명이 발을 걸어서 저를 둘러메치는 바람에 난 몇 달 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절뚝거렸어요. 자기네 회사에서 일하다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노제를 회사 앞에서 지내겠다는데, 그것마저 못하게 하는 삼성. 다른 피해자 가족들도 다 이런 상처를 안고 있거든요."그는 "노동자를 위해 일해야 할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가 오히려,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대들지 못하게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해줬다"며 정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산재를 신청할 때도 유미가 기흥공장 3라인 1, 22, 24, 3베이에서 일했다고 진술하니까, 담당 공무원이 삼성이 보낸 서류를 보더니 '황유미 씨는 다른 데서 스티커만 붙이다가 3베이에서 석 달만 일했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거짓말이라고 했더니 '삼성에서 몇 사람 죽었다고 거짓으로 말할 것 같아요?' 하고 저한테 성질을 버럭 내는 거예요.

역학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예요. '반도체 공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이 800-900종인데 확인된 건 10분의 1도 채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나머지 화학물질이 어떤 약품인지는 삼성은 '영업 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하고, 정부는 그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어요. 영업 비밀이 건강권 위에 있으면 안 되잖아요. 사람이 살기 위해서 첨단 기술도 있고, 영업 비밀도 있고, 돈도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이 하는 얘기는 사람 생명보다 영업권·돈이 더 우선이라는 거예요.""대들어서 이길 수 없다"는 만류를 뿌리치고 글로벌 대기업 삼성에 6년간 맞서면서 황상기 씨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

"저는 유미가 병나기 전에는 30년 넘게 속초에서 택시 운전만 하고 살았거든요. 그때도 노동자들이 정부에 당하기만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싸워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산재를 인정받으려고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까 노동자가 억울한 점이 너무 많은 거예요. 노동자도 좀 살게 해야 사회도 안전해지고 나라도 편해지는데, 힘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은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해요."

ⓒ프레시안(최형락)

황 씨는 "산재보험은 일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을 돕기 위한 사회 안전망"이라며 "역학조사는 불시에 시행하고, 기업은 화학물질을 공개하며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이 산재를 입증하도록 산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 2월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를 예로 들며 "정부가 두둔하고 기업도 자꾸 감추니 사고가 반복된다"며 "노동자들이 병들고 죽기 전에 정부가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미한테 약속한 게 있거든요. 병에 걸린 원인을 밝히겠다고, 산재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심에서 산재라는 게 밝혀졌지만, 유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걸린 병도 원인을 밝혀야 합니다. 딸한테 내가 약속 일부는 지켰지만, 아직 100%는 못 지켜서 지킬 거고요.

직업병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자동차, 조선소, 반도체 공장 등 화학약품을 쓰는 곳이 많은데, 관리가 제대로 안 돼요. 암 같은 병에 걸리는 노동자가 너무 많은데, 이들이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산재 인정 기준을 완화해야 합니다. 곧 유미 추모제가 돌아오는데, 이 일을 계기로 다른 아픈 사람들이 안 나오게끔, 나오더라도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겁니다." 

ⓒ반올림

/김윤나영 기자 

2013년 2월 3일 일요일

삼성과 반올림, 어떤 대화를 나눌까?


이글은 한겨레21 2-13-02-04일자기사 '삼성과 반올림, 어떤 대화를 나눌까? '를 퍼왔습니다.
[초점] 백혈병 사망 등 산재와 무관 주장하던 삼성, 반올림과 대화 제의… 유족은 대화 앞서 사과 원해

2007년 백혈병과 힘겹게 싸우던 22살 황유미씨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빨리 돈 벌어 남동생을 뒷바라지하겠다’며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백혈병 진단을 받은 유미씨였다. 아버지 황상기(58)씨는 딸의 죽음 앞에서 ‘네 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될 때까지 싸우겠노라’ 약속했다. 삼성 직업병 문제를 알리기 위해 황씨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활동가들과 거리로 나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1년 서울행정법원은 백혈병을 앓다 숨진 황유미씨 등 2명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 지난 1월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주관으로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미사가 열렸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요지부동 삼성은 왜 변했나

유미씨가 세상을 등진 지 5년여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줄곧 백혈병 등의 질환 발생과 반도체 공장 작업 환경이 무관함을 주장하던 삼성이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반올림은 1월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의 대화 요청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말 삼성은 백혈병 산재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법적 조정을 받아보자는 구두 제안을 했고, 반올림은 ‘소송은 그대로 진행하되 대화할 수는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DS부문 김종중 사장은 “백혈병 발병자와 유가족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공식 문서를 보냈고, 반올림은 책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대표단 구성 등을 요구했다. 삼성이 지난 1월11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 합당한 대표단을 구성해 대화에 성실하게 임할 것을 분명히 한다”는 답변을 보내와 양쪽의 대화가 처음 성사됐다.
삼성의 태도 변화는 끊임없이 불거져나오는 직업병 논란을 외면하기엔 국내외에서의 기업 이미지 훼손 등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반올림 쪽에서는 전자산업 관련 삼성 계열사에서 일한 뒤 백혈병·뇌종양·유방암·자궁경부암·피부암 등이 발병했거나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제보를 해온 이가 160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에 대한 산재 인정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4월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5년5개월 동안 일한 뒤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는 노동자에 대해 산재를 인정한 데 이어, 12월엔 4년9개월 동안 근무한 뒤 유방암에 걸려 숨진 노동자에 대해서도 산재를 승인했다.
삼성과 반올림이 논의할 의제 범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산재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 등 법적 조처를 놓고 양쪽의 의견이 달라 원활한 협의가 진행될지 미지수다.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공유정옥 산업보건전문의는 “긴 세월 동안 힘겹게 싸워온 피해 가족들에겐 단 몇 명이라도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산재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의미”라며 “소송을 통해 산재가 아니라고 한 정부의 판단이 바로잡히는 걸 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피해 노동자 및 유가족과 근로복지공단 간 소송에서 정부 쪽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소송 등 법적 조처 중단이 대화의 전제 조건은 아니다”라면서도 “대화를 하다 보면 소송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공문에 ‘유감’은 사과가 아니다”

딸을 가슴에 묻은 황상기씨는 대화에 앞서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삼성으로부터 단 한마디의 사과도 들어본 적이 없다. “뒤늦은 대화 제의가 반갑긴 하지만 지금까지 워낙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왔던 사람들이라 어찌될지 모르겠다. 공문에 ‘유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회사 쪽은 그것을 사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 처지에선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삼성반도체 하청노동자도 백혈병…집단 산재 신청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16일자 기사 '삼성반도체 하청노동자도 백혈병…집단 산재 신청'을 퍼왔습니다.
반올림 "신식 라인, 하청업체도 안전하진 않아"

삼성전자 반도체를 만들다가 희귀병에 걸린 노동자와 유가족 5명이 또 다시 산재를 신청했다. 이들 가운데 3명은 최초의 삼성전자 협력업체 출신 희귀병 산재신청자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직접 일했던 3명은 비교적 신식 라인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다. 신라인과 하청업체도 안전할 수 없을 가능성이 제기된 셈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16일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에 반도체를 만들다가 희귀병에 걸린 노동자와 유가족 5명에 대한 집단 산재신청을 냈다.

산재 신청자 가운데 고 박효순(악성림프종), 고 이경희(폐암) 씨는 비교적 신라인인 6라인 이후에서 일했던 삼성전자 생산직 노동자들이었다. 김기철(백혈병) 씨는 사내 하청노동자였으며, 김0순(유방암), 김0정(유방암) 씨는 아웃소싱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신라인서 일했던 사내하청 노동자, 지난달 백혈병 판정

삼성전자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박효순(29)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2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6‧8‧9라인에서 포토베이 오퍼레이터로 근무했다. 2006년 건강 악화로 퇴사한 박 씨는 2010년 11월에서야 악성림프종 4기를 진단받고 지난 8월 숨졌다.

마찬가지로 삼성전자 생산직이었던 고 이경희(41) 씨는 1994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만 16년 동안 6‧7‧10‧13라인에서 건식식각공정 설비엔지니어로 일했으나, 2010년 폐암 말기를 진단받고 지난 5월 사망했다.

삼성반도체의 사내 하청업체인 (주)크린팩토메이션 소속 김기철(28) 씨는 2006년 말부터 6년 동안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15라인 클린룸에서 반도체 웨이퍼 자동반송장비를유지보수하는 일을 담당했다. 김 씨는 한 달 전 잇몸출혈로 병원에 갔다가 현재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은 상태다.

삼성반도체 공장의 라인 번호는 라인이 만들어진 시기 순서대로 정해진다. 6라인 이후는 비교적 신라인에 속하며 15라인은 가장 최신 라인에 속한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지금까지 피해자는 주로 5라인 이하의 오래된 라인에서 나온 경우가 대다수였다"면서 "최신라인이라고 해도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을 수 있으며, 아주 적은 발암물질로도 어떤 사람에게는 백혈병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2년 새 전체 노동자 20여 명 중 희귀병 환자 5명

사내하청뿐만 아니라 아웃소싱 협력업체에서도 희귀병 발병자가 나왔다. 김0순 씨와 김0정 씨는 경기도 용인 소재의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주)QTS에서 리볼 등 납 도금 업무를 담당했다. 이들은 납, 플럭스, 141B 등 유해물질을 사용하면서도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작업환경에서 일했다고 증언했다.

(주)QTS는 메모리반도체를 다루는 업체로 반도체 완성업체에서 납품받은 불량 납볼을 다시 작업하는 회사다. 이 회사에서 상시 근무하는 노동자 20여 명 가운데 지난 2010년부터 2년 동안 유방암 환자 4명과 폐암 사망자 1명이 발생했다. 전체 상시노동자의 1/4이 희귀병에 걸린 셈이다.

대부분이 40~50대 여성인 이들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으로 대부분 2~3개월짜리 단기계약직으로 일했으며, 수년 이상 일한 상시고용 노동자는 1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환기가 잘 되지 않는 환경에서 유기용제 등 유해 화학물질과 납을 썼다. 납은 발암물질이자 중추신경계에 이상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원청사가 위험을 외주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노무사는 "원청은 상대적인 약자인 납품업체가 단가를 낮추고 안전문제에 소홀하도록 하는 조건을 정한다"며 "노동자 안전 문제에는 원청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애플도 중국에 하청업체를 두고 있는데, 국제 사회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애플이 책임질 문제라고 한다"며 "권력 관계의 우위에 있는 원청의 실질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지금까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에서 반도체‧LCD 등을 만들다가 희귀병에 걸렸다며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29명(삼성전자 28명, 하이닉스 1명)이다. 이들 가운데 22명이 산재를 거절당했고, 1명은 산재 신청을 철회했으며, 10명이 소송에 들어갔다. 산재를 승인받은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김윤나영 기자

2012년 7월 23일 월요일

"삼성에서 하혈하다 죽어간 딸, 이건희 자식이었다면…"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22일자 기사 '"삼성에서 하혈하다 죽어간 딸, 이건희 자식이었다면…"'을 퍼왔습니다.
[현장] 삼성전자 56번째 사망자 故 윤슬기 씨 산재 신청

근로복지공단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뒤를 경찰들이 둘러쌌다. 영정사진을 든 유족들이 체념한 듯 철문 밖에 섰다.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고(故) 윤슬기 씨(32)의 어머니 신정옥 씨가 따져 물었다. "산재 신청하러 왔는데 경찰까지 나서서 막을 이유는 없잖아요."

윤슬기 씨의 49재를 맞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유가족들은 20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윤슬기 씨의 산재를 신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인은 삼성전자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 각종 희귀병에 걸려 숨을 거둔 56번째 노동자였다.

 
▲ 반올림이 고(故) 윤슬기 씨의 49재인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산재 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닫힌 철문 뒤로 경찰이 배치됐다. ⓒ프레시안(김윤나영)

19살에 '재생불량성빈혈' 판정…13년째 수혈 연명하다 사망 

윤슬기 씨는 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9년 6월 삼성전자 LCD 공장에 입사했다. 그러다 화학물질이 묻은 LCD 패널을 자르는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공장에서 일하던 도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희귀병인 '재생불량성빈혈' 진단을 받았을 때 그의 나이는 만 18세였다.

윤 씨는 검정색 유리 재질의 LCD 패널을 자르는 일을 맡았다. 바로 앞 공정에서 화학물질을 고온에서 처리해 LCD 패널에 발라서 넘기면, 면장갑만 끼고 패널을 손으로 잘랐다. 그는 검정 패널을 고온에 처리하면 독한 냄새가 진동했고, 자를 때는 미세한 검정 유릿가루가 날렸다고 증언했다. 신정옥 씨가 뜻 없이 한 말이 의미심장했다. "슬기가 죽기 전에 사경을 헤매면서 '검정색 무서워'라고 헛소리를 했어요. 난 지금도 검정색이 뭔지 모르겠어요."

재생불량성빈혈 판정을 받은 뒤로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이뤄지는 수혈에 의존해 살았다. 골수이식을 해야 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렵고 맞는 골수도 없어서 연명치료를 했다. 지난 5월부터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양쪽 대퇴부 고관절이 70% 괴사했고, 온몸에 검붉은 반점과 멍이 들었다. 하혈이 멈추지 않았고, 산소마스크를 제대로 끼울 수 없을 정도로 입에서 피를 토했다. 방광은 물론이고 폐에까지 피가 들어찼다.

공단, 삼성전자 재생불량성빈혈 노동자 최초 직업병 인정


13년의 투병생활 끝에 윤 씨는 지난달 2일 숨을 거뒀다. 외동딸의 49재를 맞은 어머니 신정옥 씨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아픈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은 안 당해보면 몰라요. 차라리 내가 아프고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그러나 신 씨는 산재는 꿈도 못 꿨다고 덧붙였다.

"얘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두세 달에 한 번씩 헌혈한 애에요. 혈액 관련 질병이나 암 관련 가족력도 없고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건강했거든요. 그런데 아프고 1~2년쯤 후에 공단에다가 '산재 신청 돼요?'라고 물어봤더니, 공단이 '안 돼요'라고 했어요."

12년 간 산재를 단념했던 윤 씨 모녀가 다시 용기를 낸 계기는 고(故) 김지숙 씨의 산재 승인이었다. 1999년 4월까지 5년 4개월간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온양공장에서 일했던 김지숙 씨는 2008년 11월 병원에서 재생불량성빈혈 진단을 받았다. 윤슬기 씨와 같은 희귀병이었다.

지난 4월 근로복지공단은 김지숙 씨가 "발암물질인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에 간접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최초로 삼성전자에서 생긴 직업병을 인정했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공식 홈페이지에 "과거와 달리 산업재해 판정기준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에 따라 보상 범위를 넓힌 것 같다"며 "공단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지난 2월 고용노동부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반도체 제조 사업장 정밀 작업환경평가 연구'를 실시한 결과 "반도체 사업장에서 벤젠 등 1급 발암성물질이 부산물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화학물질에 고온의 열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화학작용으로 발암물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정부 연구가 발표된 것이다.

"그 전에는 슬기가 대기업을 어떻게 이기냐고 했어요. 그런데 올해 4월에 재생불량성빈혈로 산재 승인이 났을 때는 슬기도 적극적으로 신청하자고 했어요. 자기랑 똑같은 병이 산재 승인됐다고. '나도 산재 신청되겠네?' 그렇게 간 게 너무 억울하잖아. 한은 풀어줘야겠다…."

▲ 고(故) 윤슬기 씨. ⓒ신정옥

"이건희 자식들이 일하는 곳이면 그런 환경으로 만들었겠나"

기자회견이 끝나고 경찰과 공단 직원들은 철문 일부를 터줬다. 산재를 접수하는 길에 복도 양쪽에 일렬로 서 있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을 향해 유족들이 울분을 쏟아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 진단을 받은 한혜경(34)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는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언제까지 불승인을 남발할 거냐"며 "병 들어도 치료 받으면 덜 죽을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를 만들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고(故) 황유미(23)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불승인은) 이건희가 사람 죽이는 거 도와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신정옥 씨는 "슬기가 죽기 전까지는 삼성전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아프고 죽는 줄 몰랐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삼성전자가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들(삼성전자)이 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놨잖아. 세상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애들이 그 젊은 나이에 병 걸려서 죽어나갔잖아요. 자기 자식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그런 환경으로 만들었겠어요? 노동자를 기계 만지는 노예로 생각하는 거죠. 짐승도 그렇게 생각은 안 해요."

윤슬기 씨의 죽음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산재에 대해서 회사가 결정할 권한이 없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이 방침을 정하면 따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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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나영 기자

2012년 6월 21일 목요일

삼성 바리케이드 뚫은 반도체 노동자의 '눈물'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6-20일자 기사 '삼성 바리케이드 뚫은 반도체 노동자의 '눈물''을 퍼왔습니다.
[현장] 국제 NGO 활동가들 "노동자 피눈물로 갤럭시S 만들어"

▲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과 국제 NGO 활동가들은 20일 오후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전자산업 노동권과 환경정의를 위한 국제운동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직업병 노동자 산재 인정 등을 요구하는 노란색 피켓을 삼성 로고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김시연

"제품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다!"

20일 오후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 3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지난 18일부터 천주교 수원대리구청에서 열린 '전자산업 노동권과 환경정의를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다국적 시민단체 활동가들이었다.

국제NGO 활동가들 삼성전자에 '경고 카드'

세계 10여 개 국 36개 단체에서 모인 노동, 환경,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굳이 삼성전자를 마지막 기자회견 장소로 택한 건 최근 반도체 노동자 사망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삼성전자 앞에선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 아버지인 황상기씨를 비롯한 직업병 피해자 가족들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중국, 인도네시아, 멕시코,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활동가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언어로 쓴 노란색 피켓을 들었다. 이 피켓들은 삼성전자를 향해 "노동자를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의 '산업 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을 향한 '경고 딱지'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삼성 로고가 선명한 현수막 앞에 자신들이 쓴 경고 메시지를 붙였다.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온 한 활동가는 영어로 "우린 킬러폰이 아닌 진정한 녹색폰을 원한다"고 썼고, 멕시코에서 온 활동가는 스페인어도 "삼성 노동자를 죽이지 말라"고 썼다. 언어는 모두 달라도 메시지는 분명했다.

대만 '지구의 시민들' 활동가인 웬링 투는 "세계 각지를 다니다 갤럭시S 광고를 보면 젊은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서 "삼성이 창의적이고 지속가능적인 비전을 갖고 휴대폰을 만들려면 더 이상 반도체 산재 문제를 부정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RCA(미국의 다국적 무선 전기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독극물이 든 물을 마시게 했고 폭스콘은 대표적인 전자산업 노동자 착취 사례로 꼽힌다"면서 "삼성도 RCA와 폭스콘 뒤를 따를 거냐"고 꼬집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는 "지난 3일간 전세계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막강 자본 앞에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는 과거 실리콘밸리에서 발생했고 지금 삼성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 중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라며 국제 노동자 연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죽음을 전세계에 알려나가기로 결의했다"며 "삼성이 피해자의 고통을 계속 외면하면 전세계 민중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산업재해 입증책임 사업자에"... 인권위 권고 '단비'

박유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직사업국장은 "어제 인권위에서 산업재해 입증 책임을 사업자가 하도록 권고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면서 "반올림과 피해자 가족의 투쟁은 힘은 작더라도 강한 의지만 가지면 권력에 맞서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9일 산업재해 인정 기준을 개선하라고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지금까지 산업재해 입증 책임이 피해 노동자에게 있었지만 앞으로는 국가나 사용자가 질병과 업무 무관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해온 반올림과 직업병 피해자 가족들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이렇게 지나가는 비를 우리나라에선 호랑이가 장가가는 비라고 한다. 이 비처럼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도 곧 지나가고 눈물도 말랐으면 좋겠다."

이날 기자회견 도중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사회자인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는 "누군가 흘리는 눈물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날 삼성 사옥 주변은 버스와 바리케이드에 둘러싸여 '물 샐 틈' 없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까지 막진 못했다.

▲ 삼성 반도체 반올림 국제 활동가의 기자회견을 앞두고 삼성 서초사옥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하는 삼성 직원들 ⓒ 김시연

 김시연 (staright)

2012년 6월 7일 목요일

삼성 직업병, 너무도 불리한 ‘산 자들의 싸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6-07일자 기사 '삼성 직업병, 너무도 불리한 ‘산 자들의 싸움’'을 퍼왔습니다.
[미디어현장] 윤지연 참세상 기자

삼성 직업병, 하면 떠오르는 것은 국화꽃잎과 새하얀 방진복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영정사진, 유족과 활동가들의 울음소리가 차례로 떠오른다. 지난 6월 2일, 쉰 여섯 번 째 삼성 직업병 피해자가 사망했다. 국화꽃잎과 오열소리가 가득 찬 빈소를 생각한 뒤에야 실감했다. 아,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구나. 

피해자와 유족들은 생전 백혈병과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등의 희귀병과 싸운다. 온전히 개인의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근로복지공단과 삼성과도 싸워야 한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밝혀내야 하는 ‘산재 입증’ 싸움은 불리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치료비와의 싸움은 간간이 피해자와 유족의 무릎을 꿇게 한다.

그래서 삼성 직업병 기자회견이나 추모식, 집회를 가득 메우는 유족의 오열은 매번 참아내기가 어렵다. 특히 그들의 울음에 묻어있는 미안함은 분노보다도 슬프다. 법정에서, 근로복지공단에서, 삼성 본관에서 수 없이 싸워왔던 유족이 느끼는 미안함은, 정부와 삼성이 그들에게 전가한 또 하나의 상처였다.

그 상처는 공식처럼 따라다니는 생활고에 시달릴 때 그들을 더 옭아맨다. 지난 2일 사망한 윤아무개씨는 13년간 재생불량성빈혈로 투병해 왔다. 그 기간 동안, 윤씨의 모친과 윤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있었다. 뇌종양 수술 후 1급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혜경 씨 역시 생활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 유일한 가족인 모친 김시녀씨는, 혼자 걷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을 수 없는 혜경 씨를 보살피느라 모든 경제활동을 포기했다. 병원비와 집세, 생활비는 언제나 그들을 짓누른다.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그들의 생존은 불투명하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자녀는 또 다시 열악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된다. 이 사회적 병폐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된다. 사회 구조가 어긋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유족들은 가난의 죄책감을 덜어버리지 못한다. 작년 3월, 삼성 천안공장에서 일하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살한 고 김주현 씨의 부친 역시 부채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워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로 인해 고압적인 회사의 행동에도 아무 말 없이 숨죽여 살았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찢어져요”라며 울먹였다. 지난 5월 사망한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다음 세상에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라고 전했다. 

산재법의 문제도, 근로복지공단과 삼성과의 공조도, 공정 과정에서의 화학물질 사용도, 무엇보다 가난의 대물림 문제 까지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사회 구조는 그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정부나 근로복지공단이 아닌, ‘반올림’이라는 작은 단체뿐이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고 이윤정씨의 추모식에서 “저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렇게 많은 제보가 들어오는지 고통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삶과 죽음, 투쟁과 생활을 온전히 힘없는 개인과 단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지금까지 반올림에 접수된 삼성 직업병 제보자는 140명, 반도체 전자산업 전체 직업병 제보자는 160명에 달한다. 

윤지연 참세상 기자
하지만 정부와 삼성의 대응은 여전히 기만적이다. 2010년,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삼성이 고용한 대형 로펌인 ‘율촌’ 변호사들이 공단을 대신해 대리인단으로 포진됐다. 이들은 프리젠테이션 영상을 통해 완벽한 안전보호장구와 안전장치가 마련된 공정과정을 소개했다. 이미 신형 라인으로 교체된 공장 내부가 담긴 영상에는, 피해자들의 현장이 지워져 있었다.

그 현장을 본 유족 황상기씨는 “저것은 거짓말입니다”라고 소리를 쳤다. 재판이 끝난 후, “삼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황유미를 살려내라”는 그의 외침은 계속됐다. 지워져버린 현장, 땅에 묻혀 말이 없는 피해자들, 정부와 삼성의 공조에 대응해야 하는 너무나 불리한 싸움. 언제까지 이들은 너무나 공고한 삼성의 벽 앞에서 ‘내 가족을 살려내라’는 외침을 이어가야 할까.

윤지연 참세상 기자 | media@mediatoday.co.kr 

2012년 6월 4일 월요일

"숨을 안 쉬잖아, 내새끼!"... 삼성에서 또!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6-04일자 기사 '"숨을 안 쉬잖아, 내새끼!"... 삼성에서 또!'를 퍼왔습니다.
삼성전자 LCD공장 윤아무개씨 사망... 재생불량성 빈혈로 13년 투병

▲ 윤씨가 응급치료를 받고 있는 병실 ⓒ 이동철

삼성전자 LCD 천안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윤아무개씨는 산소호흡기가 들썩일 정도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병상 옆에서 어머니 신정옥(57)씨가 다니는 교회 관계자가 회복 기도문을 낭송했다. 가족들은 주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했다. 가느다랗게 실눈을 뜬채 병실 안에 모여든 친지들의 모습을 보던 윤씨는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냐"고 의아해 했다. 의사에게는 거듭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병실을 나온 신정옥씨는 "오늘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의 상태를 지켜본 의사 강아무개(가톨릭 성모병원 내과의)씨는 "폐출혈에 방광 내출혈, 소화기 내출혈까지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모 신아무개씨가 "폐를 씻어낼 수 없겠느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득보다 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씨는 "최선을 다해 지혈과 수혈을 해보겠노라"고 말하고 치료실로 다시 들어갔다.

건강하던 딸, 입사 5개월 만에 '재생불량성빈혈' 판정
  
"어제 무슨 낌새를 차렸는지 카카오톡에 하얀 신발에 검은 옷 사진을 올렸더라고요. 당장 지우라고 했죠."

2일 강남 성모병원에서 만난 신정옥씨가 말했다. 삼성전자 LCD천안 사업장에 근무하던 윤씨는 1999년 11월 근무도중 급작스럽게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윤씨의 병에 대해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내렸다. 질병과 함께 결국 그해 12월 윤씨는 삼성전자를 그만뒀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5개월 만이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윤씨와 같은 질병인 '재생불량성 빈혈'이 발병한 김지숙씨의 산재신청 최종의견 진술서에 따르면 윤씨가 앓고 있었던 '재생불량성 빈혈'은 인구 100만 명당 2~14명이 걸리는 희귀 질병이다. 가족력이나 직업력이 없는 이상 대부분이 후천적 요인에 발병하며 벤젠 등이 포함된 유기용제에 노출될 경우 발병가능성이 높다.

윤씨는 이후 13년간 수혈을 받으며 생활했다. 가정 사정으로 어머니 대신 이모가 윤씨를 챙겨 한 달에 한번 수혈을 받게 했다. 군산의료원과 서울 성모병원을 오가며 수혈치료를 받던 중 올해  5월들어 급작스레 상태가 악화되었다. 5월 10일경 강남성모병원에 급히 입원했지만 이미 양쪽 대퇴부의 고관절 괴사가 70%나 진행되었다. 신정옥씨는 "몸에 검붉은 반점이 생기고 눈가에 심한 멍이 들고, 하혈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씨와 가족은 "(윤씨의) 질병이 삼성전자 LCD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신정옥씨는 딸의 질병에 대해 "삼성전자 입사당시만 해도 신체 건강하던 아이가 왜 그렇게 되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반올림에 따르면 빈혈수치가 조금만 나와도 채용에 문제가 되는 곳이 삼성전자 LCD공장이었다. 신씨는 "힘겹게 병마와 싸우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골수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기초수급 생활자로 한 달에 50만 원이 채 안 되는 보조금이 유일한 수입인 신씨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 2010년 7월, 삼성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거나 투병중인 가족들과 노동계, 시민단체 회원들이 삼성LCD 탕정공장 앞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라며 시위하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윤씨 가족과 반올림, '질병과 삼성전자 LCD 직무연관성' 의심

윤씨가 평소 삼성전자 LCD공장 근무경력과 자신의 병과의 상관관계를 의심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신정옥씨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삼성이라는 큰 회사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씨는 2년 전 주변 지인의 제보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직무관련 질병에 대해 산재소송 등을 대리해온 '반올림'을 알게 되었다.

윤씨는 2010년 4월 진료를 받던 강남성모병원에서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를 만났다. 그러나 이후 윤씨의 개인적 사정으로 만남은 끊겼다. 이종란 노무사는 당시 발랄해 보이던 그녀에게 "그렇게 아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윤씨 가족이 다시금 반올림에 연락을 해온 것은 올해 4월이었다. 신정옥씨는 4월 10일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던 김지숙씨가 삼성반도체를 상대로 제기했던 '산업재해 인정신청'을 고용노동부가 인정한 사건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 김지숙씨의 질병 역시 윤씨와 같은 '재생성불량 빈혈'이었다. 신씨에게 "우리도 산재신청을 하면 가능성이 있으려나"하고 윤씨가 물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왜 나를 삼성에 보냈냐"던 윤씨의 말이 못내 가슴에 걸렸던 신씨는 다시금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씨의 재해경위를 상담한 반올림 따르면 윤씨는 삼성전자 LCD반도체 천안공장에서 검은색 유리재질의 LCD 판넬을 자르는 일을 담당했다. 윤씨는 자신의 담당업무에 대해 "잘려진 판넬에 크랙(균열)이 있는지 육안검사를 하거나 완전히 잘리지 않은 판넬은 손으로 직접 조각내어 잘랐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바로 앞 공정에서 LCD에 바르는 화학약품에서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앞공정과 윤씨가 담당한 스크럽 공정 사이에 칸막이는 되어 있지만 수시로 사람들이 들락거려 출입문은 열려 있었다. 면장갑을 낀 채 앞 공정에서 잘리지 않은 유리판넬을 자를 때면 "미세한 유리가루가 날렸다"고 윤씨는 말했다.  

반올림은 '윤씨에 대한 발병경위'라는 보도 자료에서 "LCD도 감광제 및 유기용제와 여러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유리 기판을 가공하는 만큼 제작공정이 반도체 제작공정과 거의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반도체보다 제품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제품 1개당 화학물질 사용량은 더 많다"고 위험성을 지적했다.

반올림 활동가이자 의사(산업의학 전문의)인 공유정옥씨는 "재생불량성 빈혈은 전암성 질환(precancer)으로서 강도에 따라 (감광제 등에 포함된 포름알데히드 등) 위험물질에 짧은 노출에도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혈액암이다"라며 윤씨의 질병과 윤씨가 근무하던 삼성전자 LCD공정과의 직무연관성을 의심했다.

삼성전자·반도체 질병피해 제보자 중 56번째 죽음

▲ 윤씨의 사망소식에 병실로 들어가는 가족들 ⓒ 이동철

2일 밤 9시경 윤씨의 어머니가 병실을 나왔다. 밖에서 대기하던 친지들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며 "(윤씨에게) 한 마디씩 하라"고 울먹였다. 간호사들이 윤씨의 병실을 분주하게 드나들었고 그 때마다 피 묻은 거즈를 한 움큼씩 들고 나왔다. 폐출혈이 멈추지 않아 코로 피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윤씨 옆에서 피를 닦아내던 이모는 간호사들을 향해 "숨을 안 쉬잖아! 내새끼"라고 울부짖었다. "○○야! ○○야! " 곁에서 하염없이 윤씨를 부르던 남자친구의 절규를 뒤로 하고 9시 56분, 윤씨는 결국 만 서른한 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폐출혈'이었다.

"죽은 ○○의 한을 풀고 싶다"던 어머니 신정옥씨는 이종란 노무사와 함께 이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할 계획이다. 윤씨는 반올림에 삼성전자·반도체 질병피해를 제보해온 피해자들 중 지난 5월에 사망한 고 이윤정씨에 이어 56번째 사망자다. 올해 들어서만 고 김도은씨, 고 이윤정씨 등이 사망했다. 

삼성전자는 "3월 21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국제산업보건위원회(ICOH)에서 인바이런사의 삼성전자 반도체 작업라인에 대한 조사 결과 이상없다고 검증받았다"며 삼성전자·반도체 근무관련 질병피해를 주장하는 피해자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삼성전자·반도체 질병피해를 의심해온 피해자들이 제기한 산재보상 행정소송 과정에 피고 측 보조 참가인으로 참여하여 정부에 "산재보상 불가"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올해 2월 삼성전자 건강연구소 부소장명의로 '반올림'에 "삼성퇴직직원들의 직업성 암에 관해 반올림과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대화제의 메일을 보내온 만큼 이후 삼성측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동철 (leeseyha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