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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0일 수요일

"반도체 설비에 문제 생기면 코로 냄새 맡아 오류 찾았는데…"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09일자 기사 '"반도체 설비에 문제 생기면 코로 냄새 맡아 오류 찾았는데…"'를 퍼왔습니다.
[현장] 반도체 직업병 사망자 추모 퍼포먼스

"이 방진복(防塵服)은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입는 옷인데 사람의 몸이 아니라 제품을 보호하는 옷입니다. 사람 몸의 각질이 제품에 떨어질까 봐 입는 것이고 화학물질은 사람 몸으로 다 투과됩니다."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국제반도체대전행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행사장 밖에 흰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섰다. 지나가던 행인이 방진복을 가리키며 "부직포처럼 생긴 이게 뭐냐"고 묻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활동가 공유정옥 씨가 이렇게 설명했다.

▲9일 오전 방진복을 입고 추모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반올림 활동가들 ⓒ프레시안(남빛나라)

반도체 산업의 첨단기술을 전시하고 그 성과를 기념하는 행사장 앞에서 반도체 직업병 사망노동자를 추모하는 퍼포먼스가 거행됐다.

반올림 활동가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인 송진우 씨가 "이 자리는 매년 발전하는 전자제품의 성능과 기능 그리고 기술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자리"라고 말하며 "(그러나) 이 사업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의 고통, 죽음, 아픔을 가져왔는지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추모식을 시작했다.

실내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반도체 산업 종합전시회가 진행 중인 만큼, 추모식이 열린 킨텍스 행사장 주변은 반도체 사업 관계자와 반도체 업체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 등 반도체 사업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송 씨는 "반도체 칩을 만들기 위해, 설비에 이상이 생기면 측정장비보다 자신의 코를 이용해서 오류를 찾아냈던 노동자들,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방진복이 자신을 보호하는 줄로 알고 일했던 노동자들, 화학물질이 새면 보호장비도 없이 걸레로 닦아냈던 노동자들"이라며 그동안 보고 들어온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그들에게 전했다.

송 씨는 "방사선을 방출시키는 설비를 어떤 보호구도 없이, 방진복 하나 믿고 유지·보수했던 노동자들"이라고 말하며 반도체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밝혔다.

이어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반도체 노동자들 한명 한명의 이름과 병명이 불렸다. 송 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인 19세에 입사해서, 퐁당퐁당 장비라 불렸던 수동장비를 이용해 화학물질 세척업무를 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22세에 죽어간 황유미"라고 말하며 지난 2007년 3월 6일 사망한 황유미 씨의 이름을 불렀다.

다음으로 송 씨는 "황유미와 함께 2인 1조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어간 31살 이숙영"씨의 이름을 불렀다. 지난 2010년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는 반올림과의 인터뷰에서 같은 곳에서 일하는 두 명이 희귀한 백혈병에 동시에 걸렸다는 사실이 이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설비 엔지니어로 유지보수업무를 하다가 2005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황민웅 씨의 이름이 이어졌다.

황 씨의 부인 정애정 씨는 2008년 4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유족급여)를 신청했으나 2008년 5월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이후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과 함께 2010년 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기각됐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반올림이 목격한 반도체 노동자들의 이름과 병명이 불리는 동안 주위가 잠시 소란해지기도 했다. 반도체대전에 참가한 한 구직자는 "뭐 어쩌라고 여기서 저런 걸 하는 거냐? 우리보고 취업하지 말라고?"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전공을 바꾸라는 건가?"라며 농담하는 구직자도 있었다. 한 구직자는 "축제에 와서 왜 저러는 거냐"고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지난 6월에 삼성 LCD 천안공장에서 까만 유릿가루를 날리며 LCD 패널을 자르는 업무를 하던 윤슬기님이 중증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13년간 모진 투병 끝에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송 씨가 말을 마칠 때까지 불린 노동자는 총 24명이었다.

송 씨는 "(이외에도) 이렇게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직업병으로 죽어간 노동자들은 60여 명이 넘는다"며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일하다가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들의 삶과 고통, 죽음이 이야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빛나라 기자

2012년 8월 5일 일요일

이건희 회장이 들어야 할 목소리


이글은 한겨레21 2012-08-06일자 제922호 기사 '이건희 회장이 들어야 할 목소리'를 퍼왔습니다.
[초점]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 국회에서 열려…국제학술지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도 삼성 특집

“이건희 회장이 ‘국민들이 좀더 정직해졌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대한민국 일류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인데, 직원이 병들었다고 종이컵처럼 버리긴 했어도 양심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산업재해 신청하는 것조차) 너무 힘든 싸움이더라고요.” 삼성전자 LCD사업부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한혜경(35)씨의 어머니 김시녀(56)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착 가라앉은 무거운 공기가 침묵이 되어 흐르는 듯했다. 지난 7월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무노조 기업 안전관리를 사업주에게 맡긴 정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에 걸려 사망한 이들의 유족과 현재 투병 중인 이들이 참석해, 반도체·LCD 공장의 노동환경과 실태, 삼성전자의 산재 은폐 시도, 근로복지공단 등의 산재 불인정 사례 등을 증언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며 만난 남편 황민웅씨를 백혈병으로 잃은 정애정(35)씨는 “고교 3학년 때 입사하는 오퍼레이터 직종 직원들에게 노동법·산재법 교육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며 “무노조 사업장인 삼성에서 안전 관리를 사업주에게 맡기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다”고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를 촉구했다.
이날 대회는 심상정 통합진보당 의원이 주관한 행사로 지금까지 56명의 사망자를 불러온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의 백혈병·직업병 실태를 국회 차원에서 공론화하고 해법을 마련하려고 열렸다. 삼성전자의 백혈병·직업병 실태가 국회 차원에서 논의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오후 참가자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은 아프고 병든 노동자들과 그 가족에게 거액의 금전으로 산재 포기를 유도하거나 산재 신청조차 하지 못하도록 회유하지 말고, 정부가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고 직업병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심 의원은 “삼성 백혈병 문제가 국제학술지에까지 실리는 등 안팎에서 주목하고 있는 만큼 삼성 피해자에 대한 공식적인 전수조사와 역학조사가 시급하다”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안에서 쌍용차 문제와 함께 소위원회를 구성해 삼성 백혈병·직업병 문제의 해법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 ‘삼성 백혈병 작업병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26일 오전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자기가 일했던 반도체 라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황씨는 반도체 공정에서 쓰이는 유해물질에 대한 안전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한겨레21 김명진

삼성 백혈병 노동자 진단 당시 평균 28.5살

지난 7월25일 환경보건시민센터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산업·환경보건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IJOEH)이 7월 펴낸 최신호(계간 4~6월호)에 한국 직업환경의학 여성 전문가 4명의 공동논문 ‘한국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에게 나타난 백혈병과 비호지킨림프종 문제’를 특별기고(Special Contribution)로 실었다”고 밝혔다.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현주 단국대 의대 교수, 임신예 경희의료원 교수,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이 참여한 이 논문에는 2007년 11월부터 2011년 1월 사이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과 비호지킨림프종 사례 17건의 특성이 분석되어있다. 이 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진단 당시 연령이 평균 28.5살이며 입사에서 진단까지의 평균 잠복기는 104.3개월(8년 7개월)이었다는 사실도 논문에서 드러났다. 저널 표지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다니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유미씨의 사진이 실렸으며, 사설에서도 별도로 삼성전자의 백혈병 문제를 자세히 소개하는 등 삼성전자의 백혈병·직업병 실태를 이례적으로 집중 조명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2012년 6월 7일 목요일

삼성 직업병, 너무도 불리한 ‘산 자들의 싸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6-07일자 기사 '삼성 직업병, 너무도 불리한 ‘산 자들의 싸움’'을 퍼왔습니다.
[미디어현장] 윤지연 참세상 기자

삼성 직업병, 하면 떠오르는 것은 국화꽃잎과 새하얀 방진복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영정사진, 유족과 활동가들의 울음소리가 차례로 떠오른다. 지난 6월 2일, 쉰 여섯 번 째 삼성 직업병 피해자가 사망했다. 국화꽃잎과 오열소리가 가득 찬 빈소를 생각한 뒤에야 실감했다. 아,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구나. 

피해자와 유족들은 생전 백혈병과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등의 희귀병과 싸운다. 온전히 개인의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근로복지공단과 삼성과도 싸워야 한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밝혀내야 하는 ‘산재 입증’ 싸움은 불리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치료비와의 싸움은 간간이 피해자와 유족의 무릎을 꿇게 한다.

그래서 삼성 직업병 기자회견이나 추모식, 집회를 가득 메우는 유족의 오열은 매번 참아내기가 어렵다. 특히 그들의 울음에 묻어있는 미안함은 분노보다도 슬프다. 법정에서, 근로복지공단에서, 삼성 본관에서 수 없이 싸워왔던 유족이 느끼는 미안함은, 정부와 삼성이 그들에게 전가한 또 하나의 상처였다.

그 상처는 공식처럼 따라다니는 생활고에 시달릴 때 그들을 더 옭아맨다. 지난 2일 사망한 윤아무개씨는 13년간 재생불량성빈혈로 투병해 왔다. 그 기간 동안, 윤씨의 모친과 윤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있었다. 뇌종양 수술 후 1급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혜경 씨 역시 생활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 유일한 가족인 모친 김시녀씨는, 혼자 걷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을 수 없는 혜경 씨를 보살피느라 모든 경제활동을 포기했다. 병원비와 집세, 생활비는 언제나 그들을 짓누른다.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그들의 생존은 불투명하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자녀는 또 다시 열악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된다. 이 사회적 병폐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된다. 사회 구조가 어긋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유족들은 가난의 죄책감을 덜어버리지 못한다. 작년 3월, 삼성 천안공장에서 일하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살한 고 김주현 씨의 부친 역시 부채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워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로 인해 고압적인 회사의 행동에도 아무 말 없이 숨죽여 살았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찢어져요”라며 울먹였다. 지난 5월 사망한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다음 세상에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라고 전했다. 

산재법의 문제도, 근로복지공단과 삼성과의 공조도, 공정 과정에서의 화학물질 사용도, 무엇보다 가난의 대물림 문제 까지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사회 구조는 그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정부나 근로복지공단이 아닌, ‘반올림’이라는 작은 단체뿐이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고 이윤정씨의 추모식에서 “저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렇게 많은 제보가 들어오는지 고통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삶과 죽음, 투쟁과 생활을 온전히 힘없는 개인과 단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지금까지 반올림에 접수된 삼성 직업병 제보자는 140명, 반도체 전자산업 전체 직업병 제보자는 160명에 달한다. 

윤지연 참세상 기자
하지만 정부와 삼성의 대응은 여전히 기만적이다. 2010년,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삼성이 고용한 대형 로펌인 ‘율촌’ 변호사들이 공단을 대신해 대리인단으로 포진됐다. 이들은 프리젠테이션 영상을 통해 완벽한 안전보호장구와 안전장치가 마련된 공정과정을 소개했다. 이미 신형 라인으로 교체된 공장 내부가 담긴 영상에는, 피해자들의 현장이 지워져 있었다.

그 현장을 본 유족 황상기씨는 “저것은 거짓말입니다”라고 소리를 쳤다. 재판이 끝난 후, “삼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황유미를 살려내라”는 그의 외침은 계속됐다. 지워져버린 현장, 땅에 묻혀 말이 없는 피해자들, 정부와 삼성의 공조에 대응해야 하는 너무나 불리한 싸움. 언제까지 이들은 너무나 공고한 삼성의 벽 앞에서 ‘내 가족을 살려내라’는 외침을 이어가야 할까.

윤지연 참세상 기자 | media@mediatoday.co.kr 

2012년 5월 31일 목요일

“반도체 노동자와 삼성의 실상 알리고 싶었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5-30일자 기사 '“반도체 노동자와 삼성의 실상 알리고 싶었다”'를 퍼왔습니다.

ㆍ‘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성균관대서 거리 강연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36·사진)가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성균관대 캠퍼스에서 거리강연 강사로 나섰다. 이 노무사는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직업병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반올림’에서 상임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다.

이 노무사는 30일 오후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앞에서 이윤정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본 삼성그룹의 근로실태와 노조 문제 등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윤정씨는 1997년부터 6년 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뇌종양 진단을 받고 지난 7일 숨졌다. 이 노무사는 “삼성은 아직도 이윤정씨가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된 악성 뇌종양이 개인 질병이라고 몰아가고 있다”며 “그러나 진짜 원인은 전자파와 불량품 찌꺼기를 만지면서 묻은 유해성 화학물질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거리 강연장에 시선만 보낼 뿐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학생은 1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노무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40분간 풀어나갔다. 이날 거리 강의는 이 대학 류승완 박사 강의박탈 학생·동문대책위가 마련했다.


강연이 끝나고 난 뒤 이 노무사는 삼성과 악연을 맺기 시작한 사건을 먼저 떠올렸다. 그는 2005년 삼성SDI에서 노조 설립을 시도했던 노동자들을 만나 위치추적 의혹 등 삼성 노무관리의 실상을 접했다. 그는 “이때부터 인생이 꼬인 거죠”라며 웃었다. 

이 노무사는 2007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고 황유미씨 사건을 다루면서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그는 “황유미씨의 부친께서 ‘삼성이 딸의 죽음을 산업재해가 아닌 개인 질병으로 몰아가려 하고 아무도 문제를 캐려고 하지 않았다’면서 한숨부터 쉬셨다”며 “‘삼성에 노조가 있었더라면 내 딸이 죽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할 때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후 이 노무사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삼성과의 긴 싸움에 발을 들였다. 대책위는 다음해 반올림으로 전환됐고 이 노무사는 이 단체를 5년째 이끌고 있다.

이 노무사는 삼성과 상대하면서 가장 힘든 점에 대해 “삼성은 항상 직접 협상에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정부기관을 앞세우는 방식을 쓴다”며 “또 피해자를 금품 등으로 회유하거나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 ‘삼성처럼 돈 많이 벌어다주는 회사를 왜 걸고넘어지느냐’며 반올림 등을 대기업 흠집내기만 하는 집단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반올림의 도움으로 김지숙씨(36)가 지난달 10일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근로자 중에서는 처음으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삼성전자 온양공장 반도체 조립 공정 등에서 5년5개월 동안 근무한 뒤 ‘혈소판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희귀병에 걸렸다. 근로복지공단은 김씨가 근무 과정에서 벤젠이 포함된 유기용제와 포름알데히드 등에 간접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고 1999년 퇴사 당시부터 빈혈과 혈소판 감소 소견이 있었던 점 등을 인정했다. 

이씨는 “반올림은 산업재해 인정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삼성뿐만 아니라 반도체공장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인권을 반올림하기 위해서 반발짝씩 앞서나가겠다”고 말했다.

박효재·이효상 기자 mann616@kyunghyang.com

2012년 4월 15일 일요일

재생불량성 빈혈 산재인정, 의미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4-14일자 기사 '재생불량성 빈혈 산재인정, 의미 축소해서는 안 된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문웅·노무법인 산재 대표노무사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삼성반도체 근로자가 신청한 "혈소판 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위의 질병은 반도체공정에서 유발될 수 있는 벤젠(유기용제), 포름알데이드, 전리방사선 등에 의해 발병될 수 있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되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상 업무상 질병중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물론 산재법에서는 이에 대한 인정기준으로 일정농도 및 근무기간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한편, 산업의학계에서는 유해물질에 의한 직업병의 경우 반드시 법에서 정한 일정농도 또는 근무기간 이상을 미달하더라도 충분히 직업병에 이환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문웅·노무법인 산재 대표노무사

그러나, 유해물질 피폭 가능성이 추정되는 사업장 근로자들이 최초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법에서 정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은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 등 산재 불승인 이후 이의신청 절차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 스스로 최초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 것이라 그 의미가 크다.


판례는 2007년 6월에 이미 직업병과 관련하여 최초 결정기관보다 진일보한 판결을 한 바 있다.


“10여년 전 공사도중 노출된 석면이 원인이 되어 폐암이 발병되었거나 자연적인 진행 경과 이상으로 악화되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대법2005두517, 2007.06.01)이 그것이다.


즉, 판례는 업무상 질병에 있어 근로복지공단보다 폭넓게 인정하였으며, 그 결과, 근로자들은 소송에 가서야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사회·경제적 약자인 근로자들에게 시간과 경제적 비용을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편, 삼성은 "공단의 결정을 받아들인다"라고 하면서 "공단이 명확한 발병 원인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영향 가능성만으로 산재를 인정한 것으로 보상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에 따른 판정"이라며 그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판정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잘못된 해석으로 보인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등 전문기관이 역학조사 및 작업환경 측정 등을 통해 현재 및 과거에 노출되었거나 노출될 수 있는 유해물질의 존재여부를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산업의학적 측면의 '과학적 추정‘이 수반되며, 대법원 또한 이러한 기조에 의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은 그동안 지나치게 엄격했던 업무상 질병에 대한 기준에 대해 공단 스스로 유연성과 합리성을 더한 것 같아 진심으로 환영한다.


더불어, 이번 결정이 앞으로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쳐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 하고자 하는 산재법 본연의 목적을 이루는데 초석이 되길 바란다.

문웅·노무법인 산재 대표노무사

2012년 2월 11일 토요일

깨끗하다는 삼성 공장 1급 발암물질 다수...그렇다면 90년대는?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2-11일자 기사 '깨끗하다는 삼성 공장 1급 발암물질 다수...그렇다면 90년대는?'를 퍼왔습니다.
삼성은 백혈병 문제 털고 싶다고? 털고 갈 문제 아니라 책임질 문제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하 산보연)이 지난 6일 ‘반도체사업장 정밀 작업환경평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산보연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삼성전자, 하이닉스, 페어차일드코리아 반도체 사업장을 정밀 조사한 결과, 반도체 가공라인과 조립라인 모두에서 백혈병 등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이 반도체 생산 과정 중에 ‘부산물’로서 발생한다는 내용이었다. 폐암과 피부암 등을 일으키는 비소의 경우는 노출기준치를 초과한다고 했다. 

이 연구결과의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백혈병 이슈가 처음으로 불거진 것은 2007년이니까 벌써 5년전의 일이다. 이슈가 불거지기전 이미 황유미, 이숙영, 황민웅 등 많은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일한 작업환경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중반의 일이고 지금의 반도체 작업환경과는 많이 다르다. 노후화된 라인에서 수동의 작업방법으로 직접적으로 화학물질을 취급했다. 환기도 잘 안 되어 지린냄새, 비린냄새, 알콜냄새가 짬뽕되어 구역질이 난다는 환경이었다. 밀폐된 용기가 아니라 밥그릇 같은 곳에 유기용제를 담아 솜뭉치로 반도체 이물질을 닦던 환경이었다. 

그런데 이번 산보연의 연구는 과거에 피해자들이 발생할 당시의 작업환경을 재현한 조사가 아니라 2009년에서 2011년까지 가장 최근의 최신 자동화된 공정을 조사한 것이다. 또 이미 백혈병 이슈가 한참 불거지고 난 뒤에 한 조사이다. 즉 이미 깨끗해질 대로 깨끗해진 반도체 공장을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공기 중에서 1급 발암물질들이 다수 발생했다는 것이다. 



ⓒ양지웅 기자 지난해 12월1일 오후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열린 '발암물질 추방, 직업성암 산재불승인 남발 근로복지공단 규탄 금속노조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암 산재 승인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실로 충격적인 결과이다. 즉 산보연의 이번 조사결과는 과거에 (환경수첩 등에서 드러난) TCE 등 직접 사용한 발암물질에 더해, 공정 과정 중에 ‘부산물’로서 발암물질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동안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단지 반도체 공장의 위험성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때문에 노동부에서는 이번 결과발표에 대한 조치로 반도체 공장들에 환기시설 보강 및 대체물질 사용, 후속 조사 등 시정조치를 하겠다고 하였다. 과연 얼마만큼 이 시정조치가 이행될 지에 대하여 많은 감시의 눈이 필요할 때이기도 하다.

꼭 짚고 넘어갈 것은, 노출허용기준 미만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발암물질은 극미량의 노출로도 누군가는 암이 발병할 수 있다고 한다. 노출허용기준은 그 나라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수준을 반영한 ‘관리’ 기준일 뿐이며 노출허용기준 미만에서도 암이 발병한 사례는 많이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경우는 벤젠 노출 허용기준을 10ppm(피피엠)에서 1ppm으로, 다시 0.1ppm으로 낮추어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까지 1ppm의 관리기준을 가지고 있다. 또 이는 단일물질이 노출될 경우의 노출기준일 뿐이지 반도체산업과 같이 많은 화학물질이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경우에 있어 노출 허용 관리기준은 아예 없는 형국이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지난해 6월 23일 삼성백혈병 1심 판결은 비록 노출허용기준 미만의 노출이라 하여도 여러 화학물질들과 방사선의 복합적이고 장시간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백혈병이 발병되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번 산보연의 조사결과 발표가 난 이후 삼성은 언론을 통해, “그룹차원에서 백혈병 문제를 털고가고 싶다”고 밝혔다. 왜 이번에는 “벤젠은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지 않는지 아이러니하지만 어쨌든간에 삼성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니까 진심어린 충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털고가고 싶다”는 태도부터 바꾸라고 말하고 싶다. 백혈병을 비롯해 수많은 삼성의 직업병 피해자들은 털어낼 대상이 아니다. 삼성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다. 삼성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또 하나의 가족”이었고 삼성의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준 성실한 노동자들이었다. 열심히 일하다 병을 얻고 버려지고 가난의 굴레로 거액의 치료비와 생계의 고통때문에 삼성의 회유금 을 받고 산재인정 싸움을 포기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말못할 속앓이를 하게 해서는 안되는 귀한 존재들이란 말이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대가로 일군 삼성이라면 그 노동자와 가족들이 목숨을 잃는 고통을 두고 '이번에 털고간다'는 식으로 해결책을 내서는 안된다. 

그간 삼성이 어떠했는가? 화학물질 정보는 죄다 영업비밀이라며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수년째 늘어만 가는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그저 다 개인질병이라 주장했고, 감광제 성분에 벤젠이 있다는 서울대 조사결과조차도 그건 조사가 잘못되었을 뿐이라고 강변해왔다. 


ⓒ민중의소리 故 박지연씨는 고3때인 2004년 12월 삼성전자에 입사해, 하루 12시간씩 방사선과 유독화학물질에 노출된 작업장에서 일하다 '급성골수백혈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다. 박씨는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인정받지도 못한채 2010년 3월31일 23살의 나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뿐만아니다. 故 박지연씨가 2010년 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여론 무마용으로 기자들을 불러모아 반도체 공장이 얼마나 깨끗한지 눈요기로 보여주었고, 해외에서 유명한 안전보건컨설팅사라며 인바이런사를 통해 백혈병이 업무와 무관하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산재 행정소송에의 개입이다.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보험 혜택을 받게 해달라는 피해자들의 작은 권리마저도 빼앗으려 삼성은 행정소송의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해 대형로펌 변호사들을 통해 수백 수천쪽짜리 방대한 자료로 공격을 해오고 있는 중이다. 

삼성이 직업병 문제를 진정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소송보조참가 철회와 산업재해 인정이다. 그래야 긴 세월 울분이 켜켜이 쌓인 유족들과 피해당사자들, 삼성의 말을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진심이 전달될 것이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