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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7일 수요일

낸시랭, 법원앞서 ‘전두환 29만원 앙~’ 퍼포먼스


이글은 GO발뉴스 2013-0327일자 기사 '낸시랭, 법원앞서 ‘전두환 29만원 앙~’ 퍼포먼스'를 퍼왔습니다.
이하 작가 “재판정까지 들어와 응원, 끝날때 같이 나와”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풍자한 포스터를 길거리에 게재했다가 기소된 팝 아티스트 이하씨를 돕기위해 동료 아티스트인 낸시랭이 나섰다. 이 씨를 응원하기 위핸 퍼포먼스에 참여한 것이다. 최근 가장 ‘핫한’ 인물 중 한명인 만큼 낸시랭의 ‘응원’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이 씨의 활동을 보다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 ⓒ 낸시랭 트위터(@nancylangart)

낸시랭은 26일 자신의 트위터(@nancylangart)에 해당 퍼포먼스 장면이 담긴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낸시랭은 ‘트레이드 마크’가 된 포즈와 함께 이 씨와 활짝 웃는 모습이다. 아울러 동료 아티스트들도 ‘문제’가 된 이 씨의 포스터를 들고 이들과 함께 서 있다.
이날 퍼포먼스는 이 씨의 첫 공판이 시작되기 전 서울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벌어졌다. 이 씨는 지난해 7월 전 전 대통령이 ‘29만원’ 짜리 수표를 들고 있는 모습의 풍자 포스터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에 게재해 경범죄 처벌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만원에 약식기소 됐으나 이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한 바 있다.
낸시랭은 트위터를 통해 특유의 ‘발랄’한 어조로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그는 “전두환 전대통령님 전재산이 29만원? 너무해요. 얼마나 청렴하게 사셨으면 가난한 아티스트인 저 낸시랭보다 재산이 적을까요. 전국민적인 후원이 필요한거 아닌가용”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연일 계속되는 공직자 낙마사태에 비하면 전두환 전대통령은 얼마나 청렴하신가요. 박정희 전 대통령도 ‘미술수출’과 ‘사회정화’에 힘쓰셨고요. 박근혜 대통령님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주변이 넘 못 따라와욧! 앙~!”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 ⓒ 낸시랭 트위터(@nancylangart)

이와 관련, 이하 씨는 ‘go발뉴스’와의 통화에서 “어제 (퍼포먼스는) 재미있었다. 지나가시는 시민 분들이 멈춰서서 낸시랭 씨를 구경하더라. 낸시랭 씨가 온 다음에 갑자기 (구경하는) 인원이 늘어났다”며 “차들도 멈춰서더라”고 전했다. 20여명의 아티스트들이 이날 퍼포먼스에 동참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낸시랭은 이 씨와 별다른 친분이 없었지만 동료 아티스트인 강영민 씨의 주선으로 이날 퍼포먼스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이 씨는 “(낸시랭 씨가) 재판정 안까지 들어와 (재판이 끝날 때) 같이 나왔다. ‘힘내시라’고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셨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번 재판과 관련, 이 씨는 “이게 왜 불법광고물 부착이냐고 굉장히 많은 미술인들이 분개했다”며 “기획자, 평론가, 작가 등 동료예술인들로 부터 31장의 탄원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제 행위가 미술가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라는 데에 많은 미술인들이 동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예술의 영역을 너무 법의 잣대가 누르려고 해서는 안된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민주주의 가치관”이라며 “그래서 ‘표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표현의 자유는 목숨과도 같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이 씨는 “법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왜 갤러리에서 (전시)안하고 거리에서 하느냐는 문제인데 갤러리에서만 작품을 발표하라는 법은 헌법에도, 어떤 하위법에도 없다. 갤러리는 그림을 팔기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며 “저에게 갤러리는 길거리다. 그것은 작가가 선택하는 몫”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이 씨는 지난해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모습을 합성한 그림을 길거리에 붙였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선관위에 의해 고발당한 바 있다.

문용필 기자  |  balnews21@gmail.com

2012년 10월 10일 수요일

"반도체 설비에 문제 생기면 코로 냄새 맡아 오류 찾았는데…"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09일자 기사 '"반도체 설비에 문제 생기면 코로 냄새 맡아 오류 찾았는데…"'를 퍼왔습니다.
[현장] 반도체 직업병 사망자 추모 퍼포먼스

"이 방진복(防塵服)은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입는 옷인데 사람의 몸이 아니라 제품을 보호하는 옷입니다. 사람 몸의 각질이 제품에 떨어질까 봐 입는 것이고 화학물질은 사람 몸으로 다 투과됩니다."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국제반도체대전행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행사장 밖에 흰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섰다. 지나가던 행인이 방진복을 가리키며 "부직포처럼 생긴 이게 뭐냐"고 묻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활동가 공유정옥 씨가 이렇게 설명했다.

▲9일 오전 방진복을 입고 추모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반올림 활동가들 ⓒ프레시안(남빛나라)

반도체 산업의 첨단기술을 전시하고 그 성과를 기념하는 행사장 앞에서 반도체 직업병 사망노동자를 추모하는 퍼포먼스가 거행됐다.

반올림 활동가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인 송진우 씨가 "이 자리는 매년 발전하는 전자제품의 성능과 기능 그리고 기술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자리"라고 말하며 "(그러나) 이 사업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의 고통, 죽음, 아픔을 가져왔는지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추모식을 시작했다.

실내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반도체 산업 종합전시회가 진행 중인 만큼, 추모식이 열린 킨텍스 행사장 주변은 반도체 사업 관계자와 반도체 업체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 등 반도체 사업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송 씨는 "반도체 칩을 만들기 위해, 설비에 이상이 생기면 측정장비보다 자신의 코를 이용해서 오류를 찾아냈던 노동자들,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방진복이 자신을 보호하는 줄로 알고 일했던 노동자들, 화학물질이 새면 보호장비도 없이 걸레로 닦아냈던 노동자들"이라며 그동안 보고 들어온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그들에게 전했다.

송 씨는 "방사선을 방출시키는 설비를 어떤 보호구도 없이, 방진복 하나 믿고 유지·보수했던 노동자들"이라고 말하며 반도체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밝혔다.

이어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반도체 노동자들 한명 한명의 이름과 병명이 불렸다. 송 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인 19세에 입사해서, 퐁당퐁당 장비라 불렸던 수동장비를 이용해 화학물질 세척업무를 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22세에 죽어간 황유미"라고 말하며 지난 2007년 3월 6일 사망한 황유미 씨의 이름을 불렀다.

다음으로 송 씨는 "황유미와 함께 2인 1조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어간 31살 이숙영"씨의 이름을 불렀다. 지난 2010년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는 반올림과의 인터뷰에서 같은 곳에서 일하는 두 명이 희귀한 백혈병에 동시에 걸렸다는 사실이 이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설비 엔지니어로 유지보수업무를 하다가 2005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황민웅 씨의 이름이 이어졌다.

황 씨의 부인 정애정 씨는 2008년 4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유족급여)를 신청했으나 2008년 5월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이후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과 함께 2010년 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기각됐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반올림이 목격한 반도체 노동자들의 이름과 병명이 불리는 동안 주위가 잠시 소란해지기도 했다. 반도체대전에 참가한 한 구직자는 "뭐 어쩌라고 여기서 저런 걸 하는 거냐? 우리보고 취업하지 말라고?"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전공을 바꾸라는 건가?"라며 농담하는 구직자도 있었다. 한 구직자는 "축제에 와서 왜 저러는 거냐"고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지난 6월에 삼성 LCD 천안공장에서 까만 유릿가루를 날리며 LCD 패널을 자르는 업무를 하던 윤슬기님이 중증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13년간 모진 투병 끝에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송 씨가 말을 마칠 때까지 불린 노동자는 총 24명이었다.

송 씨는 "(이외에도) 이렇게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직업병으로 죽어간 노동자들은 60여 명이 넘는다"며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일하다가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들의 삶과 고통, 죽음이 이야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빛나라 기자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유신 40년의 ‘흔적’ 그림과 퍼포먼스로 표현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10일자 기사 '유신 40년의 ‘흔적’ 그림과 퍼포먼스로 표현'을 퍼왔습니다.

ㆍ대안공간 풀 6부전 ‘유체이탈’ㆍ1부 ‘국가소리’전 26일까지

고문 피해자들의 환청에 시달리는 박정희가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이승을 둘러본다. 미술가 김정헌(66·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대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연극 (꿀꺽꿀꺽 낄낄낄-유신의 소리)의 큰 뼈대이다.작가는 이 연극 퍼포먼스를 평화박물관과 대안공간 ‘풀’이 유신 4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 ‘유체이탈(維體離脫)’의 1부 ‘국가의 소리’에서 소개했다. ‘유체이탈’전은 ‘유신체제를 벗고 떠나다’라는 뜻으로 연말까지 이어지는 총 6부의 전시로 구성됐다. 유신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20~60대 작가 18명이 영상, 사진, 연극, 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한다. 

김정헌 작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패러디한 1막3장의 희곡을 만들었다. 검은 색안경을 쓰고 지휘봉을 든 박정희의 망령은 못다 이룬 ‘조국근대화’를 보고자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한국을 찾아 박정희기념관(실제로는 김정헌 작가의 그림이 전시된 전시장)을 들른다. 그곳에선 고문 피해자들이 냈을 법한 ‘꿀꺽꿀꺽, 낄낄낄, 허억허억, 쏘오옥, 퍽퍽, 팍팍’ 같은 소리들이 계속 들린다.

연출가 윤한솔은 “새마을노래부터 군가, 국민교육헌장 암기소리 등 독재정권의 선전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소리가 독재를 증언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역전술의 단초가 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환청의 괴로움을 떨치지 못한 두 망령이 차라리 저승이 낫겠다고 떠나면서 연극은 끝난다. 

연극의 마지막 부분 중. 환청의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 박정희(왼쪽·김정헌 분)는 메피스토펠레스(오른쪽·민정기 분)에게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1부 전시가 열리는 대안공간 ‘풀’에서 만난 김정헌씨는 “유신체제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을 미술로 해석하고 싶었다”며 “역사적인 과제를 안고 젊은 작가들이 기획하는데 이번 기회에 그림만이 아닌 연극 퍼포먼스로 참여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의 대사인 “그림이 어떻게 역사와 현실을 그리겠다는 게야”라는 말에 반박하듯 “예술은 세상을 바꿀 힘을 갖고 있고 변혁의 언어를 지녀야 한다”고 했다. 

‘국가의 소리’에 함께 참여한 양아치 작가는 영상작품 ‘뼈와 살이 타는 밤’을 선보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에 의지한 한 사내가 인적 없는 숲, 산, 강, 들판을 헤맨다. 계곡 물 안에 잠긴 사람, 하나씩 어디론가 끌려가는 사람들이 목격된다. 작가는 “영상은 어두운 동굴에서 시작해 어둠을 벗어나려고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다시 동굴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유신의 제도와 형식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내면에 있는 박정희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국가의 소리’ 전시는 이달 26일까지 이어진다. 22일 한 차례 남은 연극은 선착순 예약으로 볼 수 있다. (02)396-4805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2012년 4월 10일 화요일

낸시랭 투표참여 비키니 퍼포먼스 화제…“점점 호감”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4-10일자 기사 '낸시랭 투표참여 비키니 퍼포먼스 화제…“점점 호감”'를 퍼왔습니다.
트위플 “그래서 고양이 메고 다녔구나, 놀라운 개념녀!”

팝 아티스트 낸시랭(32)이 비키니 차림으로 4.11 총선 투표 참여 퍼포먼스를 벌인 사진이 10일 트위터에 화제가 되고 있다. 

낸시랭 닷컴(http://www.nancylang.com)에 따르면 낸시랭은 9일 빨간 하이힐과 비키니만 입은 채 라운드 걸로 변신해 총선이라는 빅매치를 알리는 그녀 특유의 구호인 ‘앙’이 써진 라운드 피켓을 들고 서울 홍대앞, 여의도 국회, 광화문 광장을 활보했다. 어깨에는 자신의 상징인 고양이 인형을 얹었다.

이 프로젝트는 평소 그녀의 열광적인 팬을 자처한 영상제작팀 애스트로넛(astronaut 서세흥, 김세원, 한경안, 박인범)과 의기투합해 이뤄졌다고 낸시랭 닷컴은 밝혔다. 


ⓒ 낸시랭 닷컴

‘앙’은 큐티, 섹시 키티, 낸시를 한마디로 줄인 말이며 신세대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뜻한다고 한다. 비키니에는 낸시랭이 직접 립스틱으로 LOVE를 써넣었으며 사랑과 평화와 아트가 가득한 세상을 만들자는 평소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낸시랭 닷컴은 전했다. 

낸시랭은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이 모두 주인이기 때문에 투표를 통해 주인임을 확인해야 한다며 특히 젊은이들이 모두 투표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낸시렁의 퍼포먼스를 지켜본 시민들은 함께 기념사진을 찍거나 환호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앞서 낸시랭은 ‘개인이 국가다’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2010년 런던에서 ‘UK 프로젝트’를 선보인바 있다.

낸시랭의 비키니 퍼포먼스 사진은 트위터에 급확산되며 큰 화제가 됐다. 

트위플들은 “낸시랭 호감이다 흐뭇”, “오늘 따라 저 고양이 살아있는 거 같은데”, “이분이 점점 좋아집니다”, “저 고양이가 정치적인 고양이로 보여”, “완전 대박! 투표하여 쥐를 잡자!”, “본의 아니게, 정권교체의 아이콘이 된 낸시랭!^^”, “낸시랭, 3분토론에서 변희재를 훅~ 보낸 그녀 ㅋㅋ 비키니 입고 ‘투표합시다~ 앙!”, “낸시랭은 누가 뭐래도 이제 진보의 아이콘으로 등극 ㅋ”, “비키니가 붕대를 이긴 선거로 기록되겠군..ㅋㅋ”, “낸시랭의 고양이! 쥐를 잡고 싶었던 거야^^ 낸시랭 완전 개념짱!”, “낸시랭이 허구한날 고양이 메고 다니더니 결국은 쥐를 잡는구나.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다”, “쥐잡는 고양이와 새눌당을 밟겠다, 빨간구두? 멋지다 낸시랭^^”, “빨간구두, 비키니는 새누리당을 상징하고 새누리 잡는 고양이는 바로 투표~ 앙^^ 행위예술인답다!”, “쥐잡을 고양이를 365일 어깨에 메고 다닌 낸시랭은 정말 짱이다. 놀라운 개념녀” 등 반응을 보였다.



ⓒ 트위터

또 “낸시랭 투표 참여 퍼포먼스 저지하는 경찰”이라며 낸시랭과 경찰관이 마주 서 있는 사진도 관심을 모았다. 트위플들은 “이렇게 일찍 출동했으면 수원여성 살해 안됐지! 신발!”, “미틴경찰아 예술의 자유를 허용하라!”, “추운데 고생하는데 햇볕이나 가리지 말지”, “그냥 가까이서 보고 싶으셨던 건 아니고요?”, “이럴 때는 광속으로 출동하는 경찰!” 등의 의견을 올렸다. 

2012년 4월 9일 월요일

나꼼수, 박근혜 풍자 삼두노출…트위플 “속 시원하다”


‘나는 꼼수다’ 3인방(김어준, 주진우, 김용민)이 8일 서울 광장에 나타나 이른바 ‘삼두 노출’ 퍼포먼스를 했다. 이날 모여든 시민들은 ‘나꼼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나타냈다. ‘과거 막말 파문’으로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의 ‘집중타겟’이 된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서울 노원 갑)은 오랜만에 웃음을 보였다.

ⓒ 트위터 아이디 @badradio14 유튜브 동영상 캡쳐
이날 ‘삼두노출 퍼포먼스’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부산 사상)의 ‘카퍼레이드’ 논란을 풍자한 것이었다.

선관위는 박 위원장과 손 후보가 함께 차에 탑승해 선루프 밖으로 몸을 내밀어 시민들에게 손을 흔든 것을 두고 “우발적”이라며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아울러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로서 행하는 행위”라며 “선거운동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무슨말이 필요할까. 그냥 뻥뚫린 느낌”

‘삼두노출 퍼포먼스’ 현장을 찾았거나 동영상을 통해 이를 지켜본 트위터리안들 사이에서는 “시원하다”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개콘에는 쌍두사, 사상에는 쌍두노출, 나꼼수는 삼두노출”(jasonf****), “와~~대단하네요”(sjs***), “나꼼수 삼두노출. 시원하다!!!”(happ*****), “속이 다 시원합니다”(iloveHe****), “시대의 영웅들”(lordofther*****), “나꼼수 멤버들의 "삼두노출" 이벤트는 통쾌했습니다”(cam*****) 등의 글들이 그것이었다.

아이디 ‘lour*****’는 “세명 멤버들의 밝은 웃음 뒤로 눈물을 보인다. 이들도 많이 지쳤을게다”라며 “하지만 대중 앞에서는 멈칫거릴 자유조차 없는 사람들. 모든 걸 떠나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같은 자리에 서 있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beoxym****’는 최근 ‘김용민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조선일보>를 향해 “80년 넘게 매일 그 많은 기사를 써대면서 단 한번이라도 국민들에게 이런 대접받아봤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Good***’는 “무슨말이 필요할까. 그냥 뻥뚫린 느낌. 조!가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였어!!”라는 소감을 나타냈다.

고재열 <시사IN> 기자(@dogsul)는 “나꼼수 삼두노출에 대한 선관위 반응이 궁금하네요. 불법이라고 한다면 박근혜도 잡아들여야 할테니”라는 글을 올렸다. 여균동 영화감독(dudd****)은 “나꼼수의 삼두노출을 보노라니 나꼼수는 이미 대선 싸움을 시작했다. 박근혜를 향한 빅엿을 시작하다”라고 평가했다.

‘우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풍자의 글들도 이어졌다. 아이디 ‘badradio14’는 “우발적 삼두노출, 우발적 발촬영이라 죄송합니다. 하지만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현장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에 ‘bjfuturep*****’는 “우발적으로 알튀합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외에도 “이런 우발적인 멋쟁이들”(jamiek****), “우발적인 집안 행사로 못 갔네요...사진보니 정말 예의바른 인지상정의 정점이네요”(exper****), “이거 아무리봐도 우발적이야~~”(josh9***) 등의 글도 올라왔다. 다만, 보수성향으로 보이는 트위터리안들은 “2주전부터 광고하고 하는 번개도 있냐”(lupin****) 등의 반응을 나타내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서울광장에 울려퍼진 ‘조!’…김어준 “가카를 찾아달라”

이날 삼두노출 퍼포먼스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주진우 <시사IN> 기자는 차 지붕위에 올랐다. 이들의 손에는 현재 구속 수감중인 ‘나꼼수’의 또다른 멤버,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의 사진도 들려있었다.

김용민 후보는 선루프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삼두노출’을 완성시켰다. 다만, 차량은 멈춘 상태였다. 번개에 모인 ‘나꼼수’ 지지자들은 ‘조!’를 외치며 이들과 함께했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 후보는 이날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트위터 아이디 @badradio14 유튜브 동영상 캡쳐
마이크를 잡은 김어준 총수는 “4월 11일은 가카데이다. 그날 가카를 투표로 찾아내달라. 가카가 숨었다”며 “용민이는 절대 사퇴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용민이가 피를 흘린만큼 댓가를 치르게 해달라”며 “그리고 그들에게 단 한마디만 해야된다면 뭐?”라고 물었다. 또다시 서울광장에 ‘조!’가 울려퍼졌다.

주진우 기자는 “이 선거는 4년동안 우리를 안락하고 편안하게 만든 가카를 심판하는 자리다. 4년 동안 민심을 파탄낸 당과 정부를 심판하는 날이다. 하지만 김용민을 심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 기자는 “4월 11일, 저희가 웃으면 제가 노래 열곡부르겠다. ‘아닌 밤중에 주진우 쇼’하고 노래를 목청이 터질 때까지 하겠다”며 “우리국민이 얼마나 의식이 높은지 민주주의를 얼마나 갈망하는지 목청높여 소리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지나가다 김용민을 만나면 무작정 가서 와락 안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한편,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나꼼수 번개’에는 주최 측 추산 1만 5000명, 경찰 추산 6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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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1일 일요일

후쿠시마에서 열린 지옥문, 밀양에서 닫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9일자 기사 '후쿠시마에서 열린 지옥문, 밀양에서 닫자!'를 퍼왔습니다.
[후쿠시마 그리고 1년] 충격은 있어도 변화는 없었다

L 선생님께

이제 모레 3월 11일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딱 1년이 됩니다. 선생님께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리고자 1인 시위를 비롯한 온갖 퍼포먼스를 한 지도 1년이 됩니다. 저번에 잠시 만났을 때, 얼굴이 까칠해서 마음이 아팠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자 회견을 했던 지난 2월 22일, 선생님은 짧은 편지로 울분을 표시하였습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노무현 정부 총리 때 했던 말("원자력 5대 강국으로 진입하자!")을 언급하면서, 핵 발전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강 기자, 요즘도 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올라오던 그 뉴스를 꿈에서 보곤 합니다. 그 후쿠시마의 비극이 부산에서, 울산에서, 영광에서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저 무심한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대통령의 그런 얘기에 분노하지 않는 시민들은 또 어떻고요? 이런 상황이 절망스럽습니다."

선생님의 절망이 배어 있는 편지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를 보고 나서도 사람들은 왜 변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저 역시 지난 1년간 계속해서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충격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요?


ⓒ프레시안

후쿠시마, '무지'와 '무심' 사이에서

1년 전 한국 언론은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일본 현지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연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뉴스를 도배했습니다. 몇몇 언론은 취재 준비도 제대로 못한 기자를 후쿠시마 현지로 급하게 보냈다가 새로운 뉴스메이커가 되기도 했고요. 현장에 파견된 기자들이 방사성 물질에 피폭되었으니까요.

L 선생님께서도 언급하셨던,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원자로를 담아 두던 격납고가 폭발하던 모습은 특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절대로 핵발전소가 핵폭탄처럼 '펑' 하고 터질 리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저조차도 그 뉴스를 보고서는 영문을 모른 채 불안에 떨었으니까요. (핵연료 안에는 방사성 우라늄이 아주 적은 농도만 포함돼 있어서 폭탄과는 다릅니다.)

물론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었던 한국 언론 중에서 지속적으로 후쿠시마 사고를 보도한 곳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핵 발전의 위험에 무지한 이유 중 하나를 언론의 소극적인 보도 태도 탓이라고 질타했습니다. 한국 언론의 한심한 행태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국 언론이 후쿠시마 사고를 지속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으나, 초기의 보도만 놓고 보면 그 양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대다수 국민은 그 보도만으로도 핵발전소가 사고가 났을 때 얼마나 위험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지 생생히 체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 충격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것일까요?

최근에 닐 포스트먼이 1985년에 펴낸 (홍윤선 옮김, 굿인포메이션 펴냄)를 정독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먼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 세계 곳곳의 온갖 전쟁, 범죄, 사고, 홍수와 같은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된 현실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도처에 흘러넘치는 정보는 이를 접하는 사람과는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다. 즉,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된 사회적, 지적 상황과는 무관한 정보라는 뜻이다. (…) 아침에 TV 뉴스나 라디오 또는 신문을 통해 접한 정보로 하루의 계획을 바꾸거나, 아니면 하지 않았을 일을 저질렀다거나, 무엇인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적이 얼마나 자주 있는가?

(…) 일상적인 뉴스는 대부분 그저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쓸모없는 정보의 집합체일 뿐 의미 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 삶과 무관한 정보가 도처에 흘러 넘쳐 '정보 대비 행동 비율'이 극적으로 낮아져버렸다. (…) 온 세계가 뉴스를 위한 배경으로 전락하자 사람들은 일말의 통제 감각마저 상실해 버렸다. (, 114, 117쪽)

포스트먼의 이런 지적은 지금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뉴스가 유통되는 방식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충격적인 사실(fact)이 24시간 동안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전달이 되더라도 대다수 사람에게 그런 정보는 자신의 삶과 무관한 것일 뿐입니다. 보통의 생활인에게는 후쿠시마 사고보다는 일기예보가 좀 더 삶에 밀착된 뉴스일 테니까요.

더구나 그렇게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제공되는 뉴스는 대개는 파편적인 정보입니다. 기사가 조금만 길어도 "길어서 못 읽겠다!" "처럼 한마디로 정리해!" 등의 댓글이 붙는 요즘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더 심화되었고요. 그러니 독자가 뉴스를 통합하고 해석하려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뉴스는 30초짜리 광고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1년 내내 전달한다고 한들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너무 적은 보도는 대중의 무지함을 낳는다면, 이런 식의 너무 많은 보도는 대중의 무심함을 낳습니다. 무지와 무심, 둘 중에 뭐가 더 무서운가요? 무지한 사람은 가르칠 수라도 있지만, 무심한 사람은 도리가 없습니다.

'위험'과 '안전'의 악순환

L 선생님,

지금부터 불편한 얘기를 털어놓겠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한국의 환경 단체를 비롯한 반핵 세력은 핵발전소의 '위험'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지겹도록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도 꿈쩍도 안 하는 정부, 여론이 야속한 나머지 사석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 이런 얘기도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사고가 한 번 나야해!"

반핵 세력이 위험을 강조하니, 찬핵 세력도 도리가 없습니다. 지난 1년간 찬핵 세력은 '안전'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지진 심지어 미사일 공격에도 안전한 한국 핵발전소의 신화가 대중에게 유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핵발전소가 위험해서 걱정이지? 더 안전한 핵발전소를 만들면 되잖아!"

무슨 얘기냐고요?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의가 '위험하다-안전하다' 이런 이항 대립 구도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전혀 엉뚱한 곳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논리대로라면, 반핵 세력이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하는 한 대중의 각성과 변화를 이끌어낼 가장 큰 기회는 더 큰 사고입니다. 안타까운 상황입니다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보가 무너지는 것이고, 지구 온난화가 초래하는 문제를 확인하려면 심각한 기후 재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찬핵 세력의 상황은 더 아이러니합니다. 반핵 세력이 위험을 강조할수록 이들은 더 안전한 핵발전소 개발과 건설을 향해서 일로매진합니다. 안전한 원자로를 개발하고자 더 많은 연구 자금과 연구 인력이 필요합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핵발전소 안전장치의 성능이 향상된 것도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핵에너지 의존을 탈피하는 에너지 전환을 바라는 L 선생님과 같은 분에게는 이중의 악재입니다. (저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정말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로 무장한 위험성이 대폭 감소된 핵발전소가 등장한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온 처지라면,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환경 운동가 일부가 핵발전소에 대한 태도를 바꾼 데도 이런 사정이 작용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평소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온 그들은 지구 온난화라는 더 큰 위험이 나타나자,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핵발전소의 위험에는 눈을 감아 버린 것입니다. '위험하다-안전하다' 이항 대립 구도가 낳은 또 다른 부작용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핵발전소를 용인할 리 없습니다. 반핵 세력은 좀 더 안전해진 핵발전소의 또 다른 위험, 시스템의 불확실성 등과 같은 것을 강조할 테지요. 그렇다면 찬핵 세력은 어떻게 나올까요? 당연히 그런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연구 자금과 연구 인력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핵 발전은 계속됩니다. 우라늄이 고갈될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는 또 핵폐기물을 재처리해서 활용하자고 하겠군요.

'안전'에서 '윤리'로!


▲ <원자력의 거짓말>(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프레시안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었던 일본의 지식인 고이데 히로아키는 (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에서 '안전' 아닌 '윤리'를 강조합니다.

고이데는 도호쿠 대학 원자력공학과 재학 시절에 센다이 근처에서 벌어진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어떤 주민 집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생을 반핵 운동에 바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반핵 운동을 결심하면서도 전공을 바꾸지 않은 것은 반핵 운동의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서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후 고이데는 연구자로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일생 동안 외로운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고이데의 반핵 메시지 중에 들어있는 독특하게 윤리적인 시각이다. 그는 자신이 반핵 운동을 계속해온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핵의 안전 문제가 아니라 핵을 둘러싼 차별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13~14쪽)

마침 김종철 발행인도 고이데의 책에서 "윤리적인 시각"을 포착해 강조하고 있어서 소개합니다. 고이데의 책에 묶인 글들에 녹아 있는 윤리적인 시각은 김종철 발행인의 말대로 "핵을 둘러싼 차별 구조"입니다. 도대체 핵을 둘러싼 무슨 차별 구조가 있다는 것일까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핵발전소 노동자.

최근에 가톨릭대학교 이영희 교수를 통해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소개받았습니다. 일본의 도모히코 스즈키가 쓴 . 이 책은 이번에 후쿠시마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을 비롯한 일본의 핵발전소와 범죄 조직 야쿠자 간의 연계를 주장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선생님, 야쿠자와 핵발전소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의 핵발전소는 1990년대부터 야쿠자 조직원을 고용해 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일본의 핵발전소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최악의 직장이기 때문입니다. 야쿠자는 바로 이런 핵발전소에 노동자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온 것이지요.

도모히코는 그 자신이 2011년 여름 수개월간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위장 취업을 한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사고를 수습하던 노동자는 제대로 맞지 않는 방사성 물질 필터가 부착된 마스크를 쓰고, 작업장에서 쫓겨나 삯을 제대로 못 받을 게 두려워 개인별 방사능 측정 배지를 양말 안에 넣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규직 노동자보다 못한 보호 장구를 지급 받으며 험한 일을 하는 이들은 대개가 노숙인, 실업자, 야쿠자에게 빚 독촉을 받는 사람 등이었습니다. 최근에 일본의 미야베 미유키가 쓴 소설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가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지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며 만신창이가 된 여주인공의 안타까운 사연이 바로 지금 후쿠시마를 비롯한 핵발전소에서 진행 중인 거예요.

일본의 원자력자료정보실 통계를 보면, 피폭 노동자의 수는 지난 30년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대부분은 도쿄전력과 같은 전력회사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을 통해서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들의 희생을 통해서 핵발전소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아쉽게도, 핵발전소 노동자의 피폭 방사선량이 다른 산업에 비해서 많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국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심지어 안전하다고 확신하면서) 수만 명이 핵발전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핵발전소는 그들의 희생 없이는 한 순간도 가동할 수 없습니다.

둘째, 지역 주민.


▲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녹색평론사
가끔 핵 발전을 놓고서 얘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곤 합니다.

"이번에 지진이 난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는 전력 회사 '도호쿠전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곳은 '도쿄전력'이잖아요. 혹시 이상하다 생각해 본적은 없으세요?"

이런 질문을 받고서야 사람들은 '아!' 하고 탄식을 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후쿠시마를 비롯한 도호쿠 지방이 아니라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도쿄로 공급이 됩니다. 그러니 후쿠시마 핵발전소도 도호쿠전력이 아닌 도쿄전력이 관리하는 것이지요.

후쿠시마 핵발전소 단지가 만들어지던 1950~60년대만 하더라도 도호쿠 지방은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도호쿠 지방이 얼마나 차별을 받는 낙후된 곳이었는지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일본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펴냄)을 보면 생생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강원도 삼척, 경상북도 울진, 영덕을 새로운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했습니다. 삼척, 울진, 영덕이 어떤 곳인가요? 변변찮은 공장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낙후된 그곳 주민에게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질 전기가 필요할 리 없습니다. 지금 삼척, 울진, 영덕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위해서 또 한 차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치우 어르신은 어떻고요? 고압 송전탑 탓에 평생 농사를 짓던 땅을 빼앗긴 70대 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 외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하소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고압 송전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바로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서울, 대전, 대구 등으로 옮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울 한강에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선언을 하지 않는 한, 이런 식의 희생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지역의 희생을 전제한 핵발전소를 유지하는 게 과연 윤리적인가요? 서울에 사는 이들은 일본에서 날아온 방사성 물질이 섞인 비를 걱정하기 전에, 자신의 안락한 일상생활이 누구의 희생 덕분인지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미래 세대.

흥미로운 일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핵폐기물의 위험에 대해서 대다수 시민이 여전히 무지하다는 사실입니다. 적지 않은 언론에서 고준위 핵폐기물은 수만 년, 수십만 년 이상 자연과 격리가 필요한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렸는데도 대다수 시민은 금방 망각합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익숙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이 반감기는 방사성 물질의 방사능이 원래 값의 절반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확률적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3·11 사고 이후에 아이 분유를 비롯한 각종 먹을거리에서 발견되는 방사성 물질 '세슘 137'의 반감기는 약 30년입니다.

'반감기 30년'은 30년이 지나야 방사성 세슘의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0년이 지나도 세슘은 안전하지 않아요. 나머지 절반의 세슘은 여전히 방사선을 내뿜을 테니까요. 보통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를 서른 번 정도 지나야 완전히 방사능을 잃습니다. 그러니 세슘이 안전해지려면 900년(30년×30)이나 걸리는 셈입니다.

(다행히 사람은 몸속의 위험한 물질을 끊임없이 밖으로 배출하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몸속으로 들어온 방사성 세슘은 원래의 반감기와는 상관없이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보통 세슘의 절반 정도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10일 정도입니다. 물론 그 동안 세슘의 방사선은 알게 모르게 몸속 곳곳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핵폐기물 안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방사성 물질 '플루토늄 239'는 반감기가 2만4000년입니다. 반감기가 2만4000년이니, 플루토늄이 방사능을 잃는데 걸리는 시간은 실제로는 수십 만 년(!)이 걸릴 것입니다. 실제로 핀란드는 핵폐기물을 10만 년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처리장을 짓는 '온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0만 년이라니요! 지구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게 바로 약 13만 년 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수천 년, 수만 년 후의 미래 세대에게 핵폐기물의 위험을 어떻게 경고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선사 시대 동굴에 쓰인 기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나요? 국어 시간에 200년 전에 한글로 쓰인 소설도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해독할 수 없었잖아요.

그래서 유일한 해결책은 말 그대로 '원자력 족(族)'을 만드는 방법뿐이라는 암울한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핵폐기물 처리장을 지키는 종교 조직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들이 '금기'를 이어가게 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특정한 장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기' 말입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클로드 카리에르와의 대담을 실은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서 핵폐기물을 둘러싼 이런 사정을 언급하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그냥 나 혼자만 해본 생각입니다. 핵폐기물을 묻되, 매우 희석된 상태, 즉 방사능이 아주 약한 상태의 폐기물을 맨 위층에 두고, 점차로 방사능이 강한 층들을 깔아 나가는 겁니다. 만일 외계인(혹은 미래 세대-인용자)의 실수로 그 폐기물이 손이나 혹은 손처럼 사용하는 다른 기관이 닿는다 하더라도, 그는 단지 손가락 한 마디를 잃게 될 뿐입니다.

만일 더 해본다면 손가락 하나를 잃게 되겠죠. 하지만 그가 더 이상 파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 198~199쪽)

핵 발전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세계 어느 나라도 만들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불가능성 때문입니다. 핵발전소는 이미 대기 중에 배출된 방사성 물질뿐만 아니라 에코와 같은 걱정을 해야 할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쓰레기의 처리를 미래 세대에게 떠넘깁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요?

'후쿠시마 국민' 아닌 '밀양 국민'!

L 선생님,


▲ <녹색당 선언>(녹색당 기획, 이매진 펴냄). ⓒ이매진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후쿠시마 1년, 왜 대다수 사람은 변하지 않을까?' 이제 질문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후쿠시마 1년, 왜 어떤 사람은 변했을까?'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면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입니다. 한국에서 녹색당을 준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은 (녹색당 기획, 이매진 펴냄)을 보면, 영덕의 박혜령 씨가 등장합니다. '돈의 노예'로 살았던 도시 생활에 지쳐 9년 전 영덕 시골 마을로 들어갔던 박 씨는 핵발전소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총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밀양의 이치우 어르신은 어떻습니까? 핵발전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송전탑이 앗아간 그의 넋을 위로하고자 17일 밀양으로 가는 '탈핵 희망 버스'가 기획되고 있습니다. 다수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그의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조명될 때, 정의롭지 못한 에너지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받는 전국 곳곳의 제2, 제3의 희생자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핵발전소에서 피폭을 당하며 노동에 종사하는 이름 없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떻습니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우리가 시급히 했어야 할 일이 바로 핵발전소의 고용 관행, 작업 실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아니었을까요?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는지 알려야 합니다.

이런 '작은 것들의 정치'가 모여서 거대한 대항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에서도 핵 발전이 아닌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장 먼저 '탈핵'을 선언한 독일의 힘도 수십 년간 축적해온 이런 대항 네트워크(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의 노동자, 녹색당 정치인 등)가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이 마땅히 3·11을 앞두고 자신을 '후쿠시마 국민'이라고 규정해야 하듯이, 지금 우리는 자신을 '밀양 국민', '영덕 국민', '삼척 국민'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3·11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의 '삶과 무관한' 재난 영화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삶에 뿌리내린 문명사적 전환의 순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L 선생님의 건투를 빕니다.

2011년 3월 9일

강양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