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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0일 수요일

"시커멓게 타 죽어가던 시체를 어떻게 잊겠소!"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19일자 기사 '"시커멓게 타 죽어가던 시체를 어떻게 잊겠소!"'를 퍼왔습니다.
[현장]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96세 老의사의 절규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의사는 나밖에 없다.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내 아이, 주변에 아는 사람의 아이, 내 친척의 아이를 포함한 모든 아이가 방사능의 해를 입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 손으로 반드시 핵발전소를 멈춰야 한다.

올해로 만 96세를 맞은 노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치자 청중은 박수로 화답했다. 일본의 저명한 반핵운동가 의사인 히다 슌타로 씨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함춘회관에서 열린 강연회 '히로시마와 후쿠시마 : 그 핵의 상처를 말한다'에 연사로 참석해 피폭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 1945년 히로시마에서 원자 폭탄이 터질 당시 그라운드 제로(원자 폭탄이 폭발한 지점)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후 그는 평생 피폭당한 의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지속해서 피폭자를 치료하며 핵의 위험성을 고발하는데 앞장서 왔다. 지난 2005년 영국 BBC가 방영한 (카운트다운 히로시마)에서 히다 씨의 경험이 재연되기도 했다.

▲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후 1년이 흐른 지난해, 잠시 고향을 방문한 일본 주민들. ⓒ도요다 나오미

부라부라 병…이유 없이 아픈 사람들

히다 슌타로 씨는 일본이 핵폭탄을 경험한 뒤에도 국제 정세로 인해 핵에 반대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패전 후 일본은 실질적으로 미국에 점령당했다"며 "미국 정부는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은 방사능 때문이 아니'라고 매일 같이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히다 씨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자를 계속해서 진료해온 의사들은 모두 미국의 이야기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히다 씨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더 많이 그리고 가까이에서 피해자들을 봐온 그였기 때문에 더욱더 미국 정부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원폭 피해자를 봤을 때 가장 고통받았던 경험을 말하고 싶다"며 핵폭탄 투하 당시 그를 찾아왔던 환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폭 현장에서 머리카락이 빠진 채 시커멓게 타 죽어가는 시체를 수도 없이 목격한 히다 씨지만 정작 그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환자는 "겉으로 볼 때는 아무 이상이 없는 듯했던" 한 남자였다.

히다 씨의 말에 따르면 원래 히로시마에 살고 있었던 그 환자는 원폭 당시 일이 있어 오사카에 머물고 있었다. 그 남자는 원폭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라디오 뉴스를 듣고서야 히로시마에서 엄청난 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자는 부인과 자식의 생사를 걱정하며 한달음에 히로시마로 달려왔지만 결국 가족들을 찾지 못했다.

"집 같은 집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시체들이 마치 그냥 자는 듯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던" 히로시마에서 종일 가족을 찾아 헤매던 이 남자가 어느 날 히다 씨에게 찾아왔다. "몸이 너무 나른하고 무겁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살펴도 도저히 증상이 보이지 않아 병명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결국 히다 씨는 뾰족한 처방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부라부라 병(ぶらぶら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어로 '빈둥빈둥 병'으로 해석되는 이 병에 걸리면 몸이 나른해서 일할 수가 없었다. 부라부라 병에 걸린 환자들은 "멀쩡한 몸을 가지고서 힘이 없다고 엄살을 부리며 일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히다 씨 역시 당시에는 병의 원인을 몰라 당황스러웠고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야 했다. 그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이후에 생겨난 부라부라 병과 같은 병들이 지금은 '만성 방사능증'으로 불린다"며 "현재 핵발전소가 있는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도 이런 병을 가진 환자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몇 년 지나면 후쿠시마에도 희소병 발생"

이어서 히다 씨는 지난 1975년 유엔 사무총장(쿠르트 발트하임)에게 핵 실험을 그만둬야 한다는 의견을 일본 대표로 전달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사무총장은 '우리가토론해서 핵실험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변했지만 결과적으로 내 의견은 묵살됐다"고 말했다.

히다 씨는 "당시 나는 피폭자들을 치료할 방법을 논의하는 심포지엄을 열자고 유엔에 요구했다"며 "그러나 유엔은 미·일 양 정부의 의견을 듣고 난 뒤 '원폭 피해자는 1명도 없다. 죽을 사람은 이미 다 죽었고 생존자는 피해자라고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저의 의견을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유야무야 식으로 피해를 덮어온 히로시마 원폭 당시와 현재 후쿠시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히다 씨의 생각이다. 그는 "70여 년이 흐른 지금 후쿠시마 현에도 아이들을 포함해서 방사능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원자 폭탄의 방사선과 같은 것이 지금 핵발전소에서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히다 씨는 "일본의 후쿠시마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주의 깊게 지켜봐 달라"며 "아무리 능력이 있는 의사라도 자신들이 아는 의학적 근거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나면 후쿠시마에서 분명히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발전소 많은 나라인 한국 국민에게 부탁"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이웃 나라 한국에 대한 히다 씨의 걱정은 매우 컸다. 현재 한국은 23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으며 4기의 핵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그는 "한국에도 핵발전소가 수십 기 있다고 들었다"며 "지금은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매일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핵발전소는 일정량의 방사능을 공기 중에 방출한다"고 우려했다.

히다 씨는 "원래 핵발전소 자체가 일정량의 방사선을 누출하는 구조"라며 "이 늙은이가 이렇게 이웃 나라에까지 와서 핵발전소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워나가자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핵발전소는 싸고 안전하게 전기를 만들어낸다"는 핵발전소 찬성론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이는 한국에서도 '핵발전소 신화'로 회자된다. 이에 히다 씨는 "싸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방사능이라는 공포의 독으로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히다 씨는 "암 환자를 만들어내는 핵발전소를 가능하면 하나씩이라도 줄여나가야 한다"며 "그런 활동 속에서 매우 큰 저항에 부딪히겠지만 경제성이나 편리성보다 여러분의 생명이 파괴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히다 씨는 "핵발전소가 많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국인 여러분은 핵발전소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며 "한국인의 힘으로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남빛나라 기자

2012년 10월 2일 화요일

"국정원, '후쿠시마 방사능 국내유입' 보고서 폐기 개입 의혹"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10-02일자 기사 '"국정원, '후쿠시마 방사능 국내유입' 보고서 폐기 개입 의혹"'을 퍼왔습니다.
김경협 "언론보도 나간 뒤 국립환경과학원서 자료 받아"

국정원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방사능의 국내유입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한 국립환경과학원의 연구결과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2일 다시 제기됐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이날 공개한 환경부 감사담당관실의 '방사성물질 유입 은폐 보도관련 관계자 조사보고' 문건에 따르면,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해 3월 국정원으로부터 두 차례 연락을 받은 뒤 방사능 국내유입 가능성이 담긴 조사결과를 폐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지난 2011년 3월 24일, '방사능 오염 확산 가능성'을 제기한 KBS 보도가 나간 직후 3월 25일~31일 사이에 두 차례 윤승준 당시 국립환경과학원장과 담당연구관에게 연락을 취해 해당 시뮬레이션 결과를 송부받았다. 그후 윤 원장은 담당 연구관에게 외부대응과 연구 중단을 지시했다. 

그로부터 일년 뒤인 지난 3월 (한겨레), (경향)이 환경부 고위공직자의 발언을 토대로 '국정원이 국립환경과학원의 방사능 유입 조사 결과 폐기에 개입했다'고 보도했고, 이에 환경부 감사담당관실은 전해 10월 경질된 윤승준 전 원장 등 내부정보 유출자로 지목받은 관계자들을 2차례에 걸쳐 조사했다.

당시 국정원은 (한겨레) 등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은 그런 보고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주장했고, 환경부와 과학원은 해당 언론에 정정보도를 요청했었다. 

환경부는 당시 조사를 마친 뒤 윤 전 원장에 대해서는 '엄중 경고 조치'를 내렸지만, 국정원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윤 전 원장이 조사때 '언론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토대로 현재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 의원은 "이 조사결과는 국정원에 의해서 과학원의 일본 방사능 유입가능성에 대한 외부발표가 중단됐을 뿐 아니라, 관련 연구마저 중단됐음을 시사하고 있어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졌다"며 "국민안전을 심각하게 위해한 사안이므로 국정원과 윤 원장, 나아가 은폐를 지시한 윗선을 밝히는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병성 기자 

2012년 6월 19일 화요일

수입식품 방사능, 시민이 정밀측정한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18일자 기사 '수입식품 방사능, 시민이 정밀측정한다'를 퍼왔습니다.

환경단체들, 핵종분석기 도입 추진…“정부에만 의지 안해”

“방사능 오염 정보를 얻기 위해 정부의 입만 바라보고 있지 않겠다. 정부가 분석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분석하겠다.”
시민환경단체들이 국내에서는 정부와 전문기관, 대학 등에서만 가능한 방사능 핵종 분석을 올가을부터 직접 하는 것을 목표로 핵종 분석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산 수산물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지속적으로 검출되면서 국내에 수입되는 식품들의 방사능 오염 정보에 대한 갈증이 높아진 상태다. 하지만 시민환경단체들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간이 계측기로는 정밀한 핵종 분석이 불가능해 이들은 정부의 발표에만 의지해왔다.
시민환경단체들이 가을부터 자체적으로 핵종 분석을 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분석장비값 1억2천여만원을 포함해 1억5천여만원이다. 이들은 현재까지 환경운동연합, 한살림, 아이쿱생협 등의 약정과 모금을 통해 1억2천여만원을 확보하고 부족한 자금을 채우기 위해 시민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분석기를 도입하면 녹색병원 노동건강연구소에 설치해 정부 인증기관 수준의 공신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황상규 환경운동연합 전 사무처장이 대표로 있는 에스아르(SR)코리아에서는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구입한 방사능측정기의 측정자료를 네트워크화해 누구든 자신이 있는 곳의 방사능 수치를 확인할 수 있게 한 ‘방사능안전지킴이’(RadMap) 앱을 개발해 무료 보급에 나섰다. 황 대표는 “측정한 사람들이 결과를 혼자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앱에 올려 시민들과 공유하게 함으로써 일종의 시민참여형 방사능 감시시스템을 구성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2012년 5월 21일 월요일

고리원전 1호기 터지면...85만명 사망 피해액 628조원, 기장군 일대 주민은 몰살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5-21일자 기사 '고리원전 1호기 터지면...85만명 사망
피해액 628조원, 기장군 일대 주민은 몰살'을 퍼왔습니다.

국내 최고령 원전인 고리원전 1호기에서 방사능이 외부로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85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최대 628조원의 경제적 피해가 난다는 모의실험 결과가 나왔다.

환경운동연합, 반핵부산대책위,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조경태 민주당 의원, 김제남 당선자는 2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결과를 밝혔다.

박승준 일본 관서학원대학 종합정책학부 준교수와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장은 지난 2월부터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고평가 프로그램인 세오코드(SEO code)를 한국의 핵발전소에 적용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같은 분석결과를 얻었다.

환경단체는 고리1호기에서 체르노빌 원전 때와 같은 양의 방사능 물질이 방출되고 시민들이 피난을 가지 않는다고 가정아래 모의실험을 한 결과 급성 사망자가 4만7천580명에 이르고, 방사능에 의한 장기적 암사망자까지 포함하면 최대 85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됐다고 밝혔다. 특히 고리원전 인근 기장군 일광면, 기장읍 주민 대다수가 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피해예상치는 피난비용까지 포함해 최대 62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경우를 가정해 발생할 경제적 피해규모를 추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이 배상할 수 있는 보험금은 500억원에 불과, 사고에 따른 모든 비용은 정부가 부담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연구진들은 모의실험 결가 발표 자료에서 "고리원전의 방사능 누출사고에 대비해 신속한 피난 방재대책이 필요하고 원전 근접 지역의 거주를 제한해야 한다"며 "피폭에 의해 장기적으로 암에 걸려 사망하는 인원을 줄이기 위해서는 부산시민까지 피난시키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비춰봤을 때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일본은 향후 수십년 간 암, 백혈병, 유전질환을 비롯 제염비용, 의료비용, 농산물 피해비용, 피난민 보상 등에 100조엔 이상을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원전은 싼 것이 아니고, 사고가 날 경우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수명을 연장해 사용중인 고리원전 1호기는 최근 대형안전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달여 동안 은폐해오다가 들통나, 부산 일대 시민은 물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여야, 부산 시의회, 그리고 김두관 경남지사까지 즉각 폐지를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전력난을 이유로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김혜영 기자

2012년 4월 6일 금요일

국책연구원도 MB에 반기… "원전추가건설 안 된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15일자 기사 '국책연구원도 MB에 반기… "원전추가건설 안 된다"'를 퍼왔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디도스 공격 배후에 1억원 거래, 경찰 은폐의혹

국내 원전이 잇달아 중단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의 원전 추가 건설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국책연구원의 보고서가 제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13일 밤 경북 울진원전 1호기가 갑자기 가동이 중단된 데 이어 14일에는 부산 고리원전 3호기도 가동이 중단되는 등 방사능 공포와 함께 겨울철 안정적 전기공급에 적신호가 켜졌다.
10·26 재보선 당일 중앙선관위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사건의 범인들과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서 사이에 공격 시점을 전후해 1억 원의 돈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파문을 낳고 있다.
다음은 15일자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국책연구원이 “원전 추가건설·수명연장 포기해야” 반기 파문
미래세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원자력발전 추가 건설과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국책연구기관 연구진으로부터 나와 파문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환경단체나 학자들이 원전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경우는 많았지만 정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국책연구기관이 보고서에 담은 것은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전체 전력생산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을 현재의 34%에서 59%까지 늘리고, 원전 수출도 계속할 방침이지만, 국책연구소가 정부정책과 전혀 다른 방향을 제안함에 따라 파장이 예상된다.
국민일보 1면 머리기사에 따르면,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한국행정연구원은 올 초부터 협동연구로 수행한 ‘미래세대의 지속가능발전조건: 성장·환경·복지의 선순환’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14일 밝혔다.


국민일보 12월 15일자 1면

에너지분야를 맡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강광규 환경평가본부장은 “추가 원전 건설과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을 삼가고 내구연한까지만 가동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신재생에너지 보급목표를 기본계획보다 상향조정해 원전 공급 감소분의 일부를 충당케 하자”고 제안했다.
강 본부장은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협동연구 참가자 다수는 원전 추가건설이나 연장가동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워크숍에서는 더 강력한 반(反) 원전 입장을 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최종발표에서 다소 완곡해졌다”고 전했다.
또 원전 중단…방사능 공포 고조
원자력발전소가 잇따라 고장으로 멈추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서울신문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밤 경북 울진원전 1호기(95만㎾급)가 갑자기 멈춰선 데 이어 14일 오전 부산 고리원전 3호기(〃)도 가동이 중단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오전 8시36분쯤 고리원전 3호기가 터빈 발전기의 과전압 탓에 발전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전날 울진원전 1호기는 터빈을 돌리는 스팀(증기)을 물로 환원시키는 복수기가 이상을 일으켰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울진원전 4호기(100만㎾급)의 증기발생기 2개에 연결된 1만 6400여개의 전열관 가운데 3800여개가 마모되거나 균열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4호기에서는 지난 9월 원자로 건물에서 일하던 근로자 32명이 극미량의 방사선에 피폭되는 사고도 일어났다. 울진원전의 총 6기 원자로 가운데 멀쩡한 것은 3호기 뿐이며, 부산 고리원전의 총 4기 원자로는 모두 말썽이다. 3호기 고장에 앞서 지난 6월 송전선로 사고로 2호기(65만㎾급)의 가동이 중단됐다. 지난 4월에는 1호기(58만㎾급)가 전원 공급계통 차단기의 부품 결함으로 중단되고, 또 3호기와 4호기(65만㎾급)가 외부 전원공급 중단으로 발전을 멈췄다. 서울신문은 “총체적 부실에 직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서울신문 12월 15일자 1면

주민단체인 울진지역발전협의회는 “방사능 누출이 예상되는 울진 4호기의 증기발생기 전열관 손상사고를 은폐·축소하는 것은 범죄행위”라면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사고를 은폐하려다 참사로 이어진 것을 거울삼아 정부가 한수원에 대한 법적 조치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디도스 공격 1억 거래 있었다…경찰 은폐의혹
10·26 재보선 당일 중앙선관위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사건의 범인들과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서 사이에 공격 시점을 전후해 1억 원의 돈거래가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14일 한겨레21이 돈 거래 사실을 보도하자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뒤늦게 보도내용을 인정했다.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이 돈 거래가 사건의 실체를 밝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데도 경찰이 “의심할 만한 금전거래는 아니다”라며 사실을 숨겨와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도 1면 머리기사에서 “거액의 금전 거래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돈의 출처와 디도스 공격의 배후, 윗선에 대한 의혹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며 “더구나 경찰은 국회의원 비서 2명이 직접 관련된 금전 거래 내역을 확인하고도 공개하지 않아 사건을 축소 내지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 12월 15일자 1면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디소스 공격 6일 전인 10월 20일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였던 김아무개씨가 디도스 공격을 지시한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 비서 공아무개씨에게 1000만 원을 송금한 사실이 있었다고 15일 밝혔다. 김씨는 또 공격 보름후인 지난달 11일 디도스 공격을 실행한 IT업체 K사 대표 강아무개씨에게 9000만 원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돈거래 내역에 대해 “김씨가 공씨에게 송금한 1000만 원은 강씨의 K사 직원 월급으로 쓰였고, 9000만 원 중 8000만 원은 K사 임원이자 공씨의 친구인 차아무개씨에게 넘어갔다”며 “계좌 조사를 통해 강씨가 지난달 17일과 26일 각각 5000만 원 씩 두 차례에 걸쳐 김씨에게 1억 원을 돌려보낸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준규, 검찰총장 때 이국철 회장 만났다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검찰총장이던 올해 초 이국철 SLS 회장과 이 회장의 로비스트인 문환철(42·대영로직스 대표)씨를 만난 것으로 14일 밝혀졌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사정당국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 전 총장은 이 회장과 문씨를 서울 강남의 레스토랑에서 만나 식사를 했다고 조선은 전했다. 조선에 따르면, 만남은 문씨가 주선했으며, 문씨는 김 전 총장과 이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씨는 이 회장에게서 ‘SLS 경영권을 되찾기 위한 정·관계 로비자금’ 명목으로 7억8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만남이 이뤄질 때 이 회장은 창원지검이 2009년 하반기 진행한 수사에서 분식회계 등의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던 중이었다. 창원지검 수사는 김 전 총장이 총장일 때 진행됐으나, 이 회장에 대한 비리 첩보가 창원지검에 배당된 것은 김 전 총장 취임 이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SLS그룹 주력 계열사인 SLS조선의 워크아웃이 결정되면서 경영권도 잃은 상태였다.
검찰 안팎에선 이 만남이 이 회장이 줄곧 주장해 온 ‘SLS 워크아웃 과정의 부당성’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조선은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의 말을 빌어 “모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발언이 나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회장과 문씨가 SLS조선 워크아웃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 회장은 만남 이후 ‘산업은행 관계자들이 금품을 수수했으며, SLS조선 워크아웃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내용으로 대검에 진정을 냈고, 대검은 이 회장의 진정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에 넘겨 조사토록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 회장이 지난 9월 당초 진정 내용에는 없던 ‘신재민 전 차관 연루 의혹’을 제기하면서 특수3부로 수사 주체가 바뀌었다.
한편, 이 회장은 최근 검찰이 입수한 비망록에 “검찰의 최고 간부님과 한식 겸 퓨전 양식 메뉴로 식사했는데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적었고, 50만~55만원의 식대도 이 회장 자신이 카드로 결제했다고도 적었다. ‘최고 간부님’은 김 전 총장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회장은 또 “문씨가 (김 전 총장 등) 검찰 간부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해서 돈을 줬다”고도 적었었다.
주중 한국대사관 쇠구슬탄 맞아
중국 베이징(北京) 소재 한국대사관에 공기총으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손톱 크기의 쇠구슬이 날아들어 중국 공안이 수사에 나섰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으로, 한국 해양경찰 살해 사건 발생 후 악화하고 있는 양국 국민의 감정을 보여주는 사건이어서 내년 한중수교 20주년을 앞둔 두 나라 관계에 암초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국일보 등이 보도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주중 한국대사관은 13일 낮 12시30분(현지시간)에서 오후 1시30분 사이 대사관 경제동휴게실의 대형 방탄유리가 쇠구슬에 맞아 파손됐다고 밝혔다. 대사관은 사건 발생 4시간 뒤 이 사실을 신고했으며 베이징 공안국은 현장에 출동, 쇠구슬을 수거하고 목격자 진술을 확보했다. 사건 후 주중대사관에는 경찰 수십 명이 배치됐다. 중국에서는 민간인의 총기보유가 불법이지만 수렵용 공기총은 허가를 받아 보유할 수 있다.
대사관은 모든 직원에게 안전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고 중국 외교부 등에 사건 규명을 위해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1000회 맞은 수요집회 “20년간 일 대사관 앞 천번을 울었건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상임대표 윤미향·이하 정대협)가 서울 종로구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열어온 ‘수요시위’가 14일로 1000회를 맞았다. 굳게 잠긴 일본대사관 철문 앞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온 지 20년 세월이 흘렀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최장기 집회 기록이다.
지난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정대협 회원 등 30여명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강제연행 인정 등을 요구하면서 시작된 수요시위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아직 청산되지 않은 일제 강점기 과거사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기여했다.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공개 증언에 나선 고 김학순 할머니(당시 67살)의 용기가 수요시위의 밑거름이 된 이후 언론에서 연일 위안부 문제를 보도하면서 피해자들이 하나 둘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한겨레 12월 15일자 1면

한겨레는 수요시위 1000회에 대해 “자신이 당한 고통을 후손들이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할머니들의 집념이 있어 가능했다”며 “할머니들은 노환과 굳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세월 단 한 번도 수요시위를 거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시위가 거듭될수록 할머니들은 평화운동가나 역사 선생님으로 변해갔다. 피해자에서 운동의 주체로 거듭났고, 할머니들은 국경을 넘어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냈다고 한겨레는 평가했다. 할머니들의 요구는 일본의 △위안부 범죄 인정 △진상규명 △일본의회의 사죄 결의 △법적 배상 △역사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책임자 처벌 등 일곱 가지이지만 할머니들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핵발전 반대 59.3%" 투표로 이어진다면…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06일자 기사 '"핵발전 반대 59.3%" 투표로 이어진다면…'을  퍼왔습니다.
[초록發光] '욕망'이 아닌 '미래'를 위해 투표하자!

이제 총선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 이미 결정한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 결정하지 않은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선거에서 표의 행사는 우리에게서 대표권을 위임받고 정책을 실행해 온 집권 여당의 정책 활동에 대한 엄중한 평가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녹색 성장이라는 그럴듯한 포장 하에 4대강 생태계파괴를 방조하고,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목표 하에 대기업 조세 감면을 늘려주며 경제 양극화를 조장한 집권 여당의 실정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이다. 또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명백히 줄어들고 있는 핵발전소 시장을 겨냥해서 핵 수출 국가로 발돋움할 것을 부추기고 있는, 정부의 거꾸로 가는 정책도 되돌려 놓는 한 표 행사가 되어야 한다.

한편, 다음 주에 행사할 표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를 분명히 밝히는 정치적 의사 표시일 것이다. 1퍼센트에게만 혜택을 주는 현재와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유지란 것이 우리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뚜렷해지고 있다. 총선을 통해 우리는 경제 양극화가 아닌 경제 민주화를 우리 사회 비전으로 받아들일 것임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경제 민주화 못지않게 대안 비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에너지 체제이다. 여전히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생산성도 낮은 현재의 에너지 체제는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 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어려울 뿐더러 생태 위기를 가속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던 핵에너지 사용 확대라는 것이 해결책은커녕 에너지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후쿠시마 사고가 잘 보여주었다. 여전히 진행형을 보이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핵발전소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고, 통제를 벗어났을 때 기술적 해결책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음도 분명히 해주었다.

최근 고리 핵발전소, 신월성 핵발전소에서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고들 역시국내에서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통제할 수 없을 뿐더러 세대를 넘어서는 방사능 폐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핵발전소 기술을 계속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프레시안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당 체제에서 에너지, 핵발전소 기술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정치적 의제가 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번 총선의 경우 녹색당, 진보신당에서 당의 대표 정책으로 2030, 2040년의 핵발전소 폐쇄와 재생 가능 에너지 체제로의 에너지 전환을 제시하고 있어 에너지, 핵발전소 문제를 정치 의제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우리의 한 표는 이렇게 중요한 에너지 문제가 정치 의제로 채택될 수 있도록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한 표가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독일 녹색당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1970년대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지속해 온 지역 활동가들은 1970년대 말이 되면서 정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의회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977년 처음으로 지역 활동가들이 "녹색 명단 환경 보호(Gruene Liste Umweltschutz)", "원자력 반대 선거 공동체(Wählergemeinschaft Atomkraft Nein Danke)"를 조직하여 지역 의회 선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각각 1.2퍼센트와 2.3퍼센트를 획득하고 의원 1명씩을 지역 의회에 진출시키는데 그쳤지만 이듬해인 1978년 브로크도르프 핵발전소 인근 지역에서 선거에 참여한 "녹색 명단 환경 보호"는 이내 5퍼센트 이상의 득표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고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부지 점거에 열심이었던 지역 농부, 대학교 학생, 교수, 변호사, 마르크스주의 운동가,주택 점거 운동 주도자 등 기존 정당의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던, 아니 의회의 위계질서와 의회 내 행위 규범까지도 무시했던 이들에게 독일 시민들이 표를 주기 시작했다. 당시 이들이 제시했던 탈핵, 생태 문제들이 독일 사회가 해결해가야 할 문제라고 보았던 때문이다.

기존 정당에서는 누구도 제기하지 않던 문제를 이들이 제기하기 시작했고, 핵발전소 문제가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를 느낀 시민들이 아마추어 정치가들에게 표를 주었던 것이다. 이런 시민들의 한 표 행사가 지속되면서 지역 의회에서 출발한 녹색당이 1980년 전국적인 당으로 발전하고 1983년 연방의회 진출에 성공하면서 마침내 핵발전소 폐쇄 정책을 구체화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독일은 새로운 미래 비전을 선취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2011년 8월 에너지경제원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에 대한 반대 의견을 보이는 사람이 이전의 19.2퍼센트에서 59.3퍼센트로 증가했다고 한다. 국내 핵발전소가 '불안전'하다고 답한 이들도 47.4퍼센트에 달했다. 이런 반대 여론은 예정 후보지 지역의 경우 확실히 높았다고 한다.

며칠 전 발표된 고리 핵발전소 1호기 비상 냉각 장치 가동 불능 가능성은 이런 반대 여론을 더 강화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이 또 다시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발전하기 전에 핵발전소 기술의 지속 여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당장이라도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논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이 이번 총선을 통해 핵발전소가 정치 의제화될 수 있도록 우리의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일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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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동국대학교 교수·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2012년 3월 25일 일요일

한국이 사는 길…'원전 수출' 아닌 '폐로 사업'!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23일자 기사 '한국이 사는 길…'원전 수출' 아닌 '폐로 사업'!'을 퍼왔습니다.
[후쿠시마 1년, 핵 없는 세상을 꿈꾼다·③] 장정욱 마쓰야마 대학교 교수

, , 평화네트워크는 지난 6일부터 '후쿠시마 1년, 핵 없는 세상을 꿈꾼다' 연속 강연을 진행 중이다. 6일 김종철  발행인, 13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에 이어 20일에는 서울 중구 장충동  강의실에서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 대학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장정욱 교수는 '후쿠시마, 겨우 최악의 사태를 막았을 뿐'이란 주제로 사고 1년이 지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의 현 상태와 그 영향을 점검하는 한편, 핵 안보 정상 회의 개최로 들떠 있는 한국의 안전 불감증에 경고를 던졌다.

장정욱 교수는 일본이 언제든 쓰나미가 발생할 수 있는 지형적 특성을 무시하고 '경제적 이유'로 미국 방식을 도입해,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애초에 위험한 곳에 세우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미 과거에 도호쿠 지방에서 일어났던 지진의 시뮬레이션을 토대로, 거대 쓰나미로 인한 핵발전소 침수가 일어날 수 있다는 조사 결과를 2008년에 갖고 있었음에도 적극적인 대처는커녕 보고조차 제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도쿄전력이 주장하듯 '천재지변'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인재에 가까운 사고였다는 것이다.

장정욱 교수는 사고 1년이 지난 현재 핵발전소 사고의 직접적인 피해로 사망한 사람은 많지 않지만, 참극은 두고두고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비단 공기 중으로, 해수 속으로 유입된 거대한 양의 방사능 물질 때문만이 아니다. 피난과 귀향의 불가능함으로 인해 수십 만 명 이상의 삶이 파괴되었고, 배상과 복구 비용 또한 막대해 전 국민이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장정욱 교수는 방사성 물질이 넘나드는 것은 물론이요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고 위험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 안보 정상 회의'와 '핵발전소 수출'에 환호하는 한국에 대해서도 고언을 던졌다. 핵발전소 수출이 아니라 '폐로 사업'에 주력하는 것이 한국이 살 길이라고 그는 말한다.

다음은 강연의 주요 내용.



▲ 장정욱 마쓰야마 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온도를 내릴 수 없었던 후쿠시마 핵발전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부터 다시 복기해 보겠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에 규모 9.0의 지진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쓰나미가 왔다.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사고의 경우 두 번째 쓰나미가 문제가 되어 일어났다. 이날 15시 35분에 높이 13.1미터의 두 번째 쓰나미가 왔는데, 이 높이는 어디까지나 도쿄전력의 추정치이다. 핵발전소가 세워져 있는 지면은 해수면에서 10미터 높았고, 따라서 그것보다 파도가 더 높았기에 물이 들어왔다. 이로 인해 ①냉각용의 바닷물을 퍼 올리는 취수 펌프, ②전원을 공급할 터빈 건물 지하에 있던 비상용 디젤 발전기와 배전판 등이 바닷물에 잠겨 누전되어 작동 불능이 되었다.

자주 하는 표현이지만 핵발전소는 '바닷물을 데우는 기계'다. 핵분열로 발생하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1초당 70톤의 냉각수가 필요한데, 그만큼을 데워서 다시 바다로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뜨거운 증기를 냉각시킬 때도, 사용 후 핵연료가 담긴 수조를 냉각시키는 데도 해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해수를 뽑아내는 펌프가 침수되어 기능을 상실했던 것이다. 또 터빈 건물 지하실이 침수되었다. 이러면 물이 들어와도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는 동력 자체가 없어진다. 또 내·외부에서 들어온 전선을 배전시키는 배전판도 다 꺼졌다. 이 중 하나라도 차단되면 안 되는데 이번 사고에선 세 개가 다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의 원자로 6기엔 가동 중의 핵분열을 이용한 전기(교류)인 내부 전원 외에 비상시의 전원 확보를 위해 ①13대의 비상용 디젤발전기(교류), ②이동식 전원차(직류) ③용량 8시간의 배터리(직류), ④다른 지역의 발전소로 전원을 공급받는 외부 전원(교류)가 준비되어 있었다. 일단 사고로 내부 전원을 잃었고, ④의 경우 지진의 영향으로 송전탑과 변전소가 파손되어 즉시 사용할 수 없었다.

①의 경우 조금 높은 위치에 있었던 6호기의 공냉식 비상용 디젤 발전기 한 대만이 정상으로 가동하여 5, 6호기는 간신히 전원 상실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이동식 전원차(②)의 경우 사고 직후 인근의 그것들을 끌어 모았지만, 지진에 의한 도로 파손 등으로 11일 늦은 밤에야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도착했다. 최종적으로 69대가 모였지만, 전원 접속 장치의 규격이 맞지 않아 전선을 벗겨 직접 연결했음에도 전원판 침수, 전선 길이 부족 등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배터리(③)는 냉각재를 공급할 정도의 용량이 없다. 단지 냉각용 배관의 밸브 개폐와 중앙 제어실의 조명 같은 데 사용될 수 있을 뿐이다. 이로써 냉각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원조차도 없어진 원자로 1~4호기는 그 연료가 융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는 바닷가에 터빈 건물을, 내륙 쪽에 원자로 건물을 배치하는 구조이다. 이는 미국에서 핵발전소를 처음 개발할 때 만들어진 미국식 구조다. 미국 핵발전소는 지진이 거의 없는 지역, 쓰나미의 침수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지역에 입지하고 있다. 그런데 후쿠시마는 어떠한가? 이는 도쿄전력이 초기에 핵발전소를 수입할 때, 일본 특유의 지형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 방식을 답습한 결과이다. 일본이 쓰나미를 고려했다면 핵발전소를 좀 더 내륙 쪽에 세우거나 방수성을 높였을 것이다. 게다가 당초 해면 30미터 높이의 지면을 20미터나 깎아 10미터 높이의 위치에 핵발전소를건설했다. 이유는 해수 펌프가 기능하는 거리를 짧게 하고 핵연료가 드나드는 항만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즉, 경제성을 위해서다. 한국도 마찬가지 이유로 미국 방식을 도입했다. 한국에는 지진 가능성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아무도 보장하지 못한다.

사고는 인재였나


ⓒ프레시안(최형락)
도쿄전력은 이번 사고 원인에 대해 예상(5.7미터)보다 높은 쓰나미라는 불가항력적인 자연 재해가 원인인 '천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비판자들은 '인재'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쿄전력이 이미 몇 년 전에 높은 쓰나미가 올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대책 비용의 절약을 위해 고의적으로 무시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도쿄 전력이 이미 예상 높이 5.7미터를 넘는 거대 쓰나미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지역에 올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계산 결과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먼저 2006년에는 5.7미터 이상의 쓰나미가 올 확률이 50년 안에 약 10퍼센트이며, 노심 융용을 일으킬 수 있는 10미터 이상의 쓰나미가 올 확률은 1퍼센트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 원칙이 '10만 년에 1회 가능성'임을 고려했을 때, 이는 엄청난 차이다.

한편, 도쿄 전력은 2008년 ①1896년에 발생한 산리쿠(三陸) 지진(M8.3 규모), ②869년 발생한 죠칸(貞觀) 지진(M8.4 규모)과 같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의 쓰나미 높이를 예상하는 계산을 해 보았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①의 경우 후쿠시마 핵발전소 지역에 최대 15.7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올 수 있으며 ②의 경우 최대 9.2미터의 쓰나미가 올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도쿄전력은 이를 정부의 원자력안전·보안원에 보고하긴 했지만, 낮은 수치의 결과는 2009년 9월에 보고한 반면 높은 수치의 결과는 핵발전소 사고 발생 불과 4일 전인 2011년 3월 7일에 보고했다. 2008년부터 이 결과를 존중해 즉시 추가 대책이 실시되었다면 지금과 같았을까? 작년 10월에야 공개된 도쿄전력의 계산 결과 자료에는, 2012년 10월까지 대책을 '검토'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을 뿐이다.

또 하나의 쟁점이 있다. 이 사고가 정말 '쓰나미' 때문이었냐는 것을 둘러싸고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격납 용기의 설계에 관여했던 다나카 마쓰히코 씨는, 가동 41년째의 노후 핵발전소 1호기의 경우 쓰나미가 오기 전에 이미 원자로계의 배관이 파손되어 냉각재의 대량 상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원자로 밑 부분에 붙어 있는 50톤 무게의 재순환 배관이 지진을 만나 깨어졌으며, 그로 인해 뜨거운 증기가 대량 유출되었고 압력도 올라갔다고 말한다. 실제로 쓰나미가 오기 전에 1호기의 압력이 올라갔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도쿄전력은 아직도 이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따라서 누구 말이 맞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수상이 말한 '냉온 정지 상태'는 없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현재 상태를 점검해 보자. 지난해 12월 16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수상은 사고 핵발전소 3기 원자로의 밑부분 온도가 섭씨 100도 이하로 내려갔고 방사성 물질 배출량이 감소되었다며 핵발전소가 "냉온 정지 상태에 도달했다"고 대내외적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원래 없는 개념으로, 정치적 판단에 의해 급조된 것이다. 원자력 전문 용어로서 "정상 상태의 핵발전소 원자로의 내부 온도가 섭씨 100도 이하로 낮아진 상태"를 이르는 '냉온 정지'란 말이 있긴 하지만, 원자로 및 격납 용기에서 냉각수가 줄줄 새고 있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중환자에 대한 수술을 하기도 전에 간단한 응급 조치로 완치되었다는 식으로, 실태를 의도적으로 축소시킨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발표 이후 도쿄 전력이 사고의 수습에 관한 중장기 대책을 발표했다. 내용은 ①2013년까지 1~4호기 수조 내의 사용 후 핵연료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 ②핵발전소 건물 내의 제염(오염 지역의 제거) 작업을 하고 파손 부분을 수리하며 오염수를 처리하고, 격납 용기 전체를 물로 채워 냉각하는 것, ③2036년까지 격납 용기 및 원자로의 녹은 핵연료를 추출하는 것, ④2051년까지 핵발전소를 완전 해체하는 것이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아도 완전 수습까지 최소 40년 이상이 걸린다. 또한 이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으로, 수습 계획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노력 목표에 가깝다. 현재 녹은 핵연료의 무게, 형태 및 위치도 알 수 없는 상태다. 게다가 원자로 및 격납 용기도 크게 파손되어 있다. 일단은 약 35미터 위의 격납 용기의 윗부분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그 속에 떨어져 있는 최소 100톤 이상의 녹은 핵연료를 끄집어 낼 계획이지만, 경제적·기술적으로 이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체르노빌 핵발전소처럼 시멘트로 핵발전소 건물 전체를 덮는 석관(石棺) 방식이 등장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피해 원자로에서는 사고 직후만큼 엄청난 양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방사능 물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물론 2012년 3월 6일 현재 방사능 물질의 시간당 대기 방출량은 1000만 베크렐로, 1년 전인 2011년 3월 15일의 약 8000만분의 1로 감소한 수치다. 1호기의 파괴된 건물 외벽을 완전히 덮는 차폐 시설을 설치했고, 2호기엔 필터가 있는 환기장치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현재 방사능 물질의 배출은 거의 3호기가 그 원인이다.

또한 해양으로의 오염수 유출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도쿄 전력은 핵발전소 건물 밑에 고여 있는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를 정화하여 약 4킬로미터의 배관을 통해 원자로에 냉각수를 공급하고 있다. 2011년 4월의 계획으로는 그해 말까지 핵발전소 건물 밑에 있는 것을 포함한 25만 톤의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의 대부분을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는 오히려 늘고 있는 실정이다. 지하의 콘크리트에 금이 나서 현재도 오염수가 흘러나가고 있는데, 사람 접근이 불가능하니 어디로, 어느 정도로 나가는지 알 수도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건물 지하로 매일 200~500톤의 지하수가 유입된다는 것이다. 지하수가 격납 용기로부터 새어나오는 원자로의 냉각수와 섞여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유입되는 지하수의 양만큼 처리해야 할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도 늘고 있는 셈이 된다. 원자로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냉각수의 주입량을 늘리면 새어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가 증가하고, 건물 지하의 방사성 오염수를 많이 처리하면 수위 변화로 지하수의 유입이 늘어나는 진퇴양난의 상태다. 지하수를 어떻게 막겠는가. 격납 용기를 완전히 막지 않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될 거다. 이건 체르노빌하고 비교가 안 되는 사태다.

한편, 정화 과정을 거친 후에 늘어나는 저준위 방사성 오염수의 저장 문제도 있다. 현재 고준위 오염수에서 기름과 세슘, 염분을 제거하여 저준위 오염수로 만들고, 이것을 다시 원자로에 투입하고 남는 것을 탱크에 저장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저장할 공간이 부족한 것이다. 3월 6일 기준으로 저장 용량의 72퍼센트에 달하는 약 12만 톤이 차 있으니 오래 못 가 가득 찰 것이고, 따라서 탱크의 증설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오염수를 정화할 때 쓰는 특수 약품, 필터, 폐기물은 또 어떻게 버릴 것인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타개하려면 오염수의 증가 자체를 막아야 하는데, 격납 용기의 파손 부분을 수리하여 한정된 수량에 의한 순환 냉각 시스템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오염의 완전한 제거, 불가능하다

이제 핵발전소 부지 바깥의 상황, 피해 지역으로 눈을 돌려 보자. 일본 정부는 지난해 9월 말 핵발전소으로부터 반경 2~30킬로미터 내의 일부 구역(긴급시 피난 준비 구역)의 해제를 발표했다. 그리고 오는 4월에 시작될 본격적인 제염 작업을 앞두고 기준을 '피폭선량'으로 하여 오염 구역을 재편할 방침이다. 구역은 ①피난 지시 해제 준비 구역(연간 피폭선량 20밀리시버트 이하), ②거주 제한 구역(21~50밀리시버트), ③귀환 곤란 구역(50밀리시버트 이상, 최소 5년 이상)으로 나뉜다.

'귀환 곤란 지역'이 아니라고 해도, 사실상 그 지역의 삶은 제대로 이어질 수 없다. 지난 1월 31일 가와우치무라(川内村)가 해제된 '긴급시 피난 준비 구역'만을 대상으로 자발적 귀촌 선언을 발표했는데, 돌아온 주민은 원래의 1할에도 못 미쳤다. 인근의 히로노쵸(広野町)는 3월 1일에 군청 사무실만 원래의 건물로 복귀했다. 앞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점차 귀환 선언을 하겠지만 인프라나 관공서, 병원이나 학교 등의 생활 환경이 복구되지 않는 한, 공동체가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본격적인 제염 실시를 앞두고 문부과학성이 방사성 세슘(134와 137)을 조사했는데, 이에 따르면 제염 대상 지역은 1만 1600평방킬로미터로 일본 국토의 3퍼센트에 달한다. 한국 경기도와 서울시를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총 115개 시군읍이 제염 대상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농업 및 관광업 등의 지역 산업에의 악영향을 회피할 목적으로 지역 지정을 거부한 지방자치단체들도 있다.

제염에는 한계가 있다. 일본 정부가 작년 11월부터 피난 구역 내에서 시험적으로 실시한 제염 작업의 결과를 보면, 토양 및 낙엽 제거에서는 일정 정도 감소 효과가 나타났으나,아스팔트 도로 및 일반 주택의 지붕에서 실시한 고압수 세척의 제염 작업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 피폭선량이 높은 귀환 곤란 구역에서는 제염 작업원들의 피폭 문제도 우려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우선 50밀리시버트 이하의 두 구역을 2년간에 걸쳐 선량의 50퍼센트 정도로 감소시키는 목표를 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제염 작업의 효과는 10퍼센트 정도로 나머지 40퍼센트는 자연적인 분산에 기대할 뿐이다.

또 산림 지역의 제염은 거의 불가능하며, 따라서 포기 상태다. 강이나 바다, 갯벌이나 해저도 마찬가지다. 바다의 경우 한국 쪽에도 1년 후에는 오염된 물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염된 수산물의 먹이사슬을 통한 내부 피폭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는데, 해저 토양 방사능은 법적인 규제치조차 없는 상황이다. 체르노빌의 경우 먹이사슬 피폭의 피크는 사고 2년 뒤였다고 한다. 여러분도 앞으로 생선을 조심하고, 먹을 때는 꼭 뼈를 확실히 발라 먹는 게 좋겠다.

피해 배상은 가능한가?

핵발전소 사고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대한 보상 측면을 살펴보자. 도쿄 전력은 일단 지난해 4월 말에 일본 정부의 지시에 따라 반경 2~30킬로미터 내 지역 주민에 한해, 세대 당 100만 엔의 임시 배상금을 일률적으로 지급했다. 이후 8월부터 원자력 손해 배상지원 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있으며, 분쟁 심사회를 설립해 거기서 중간 지침을 만들어 본격적인 배상을 시작했다. 당사자 간에 배상 문제의 대립이 있을 경우 변호사 150여 명으로 구성된 분쟁 센터가 화해를 조정한다. 그래도 안 될 땐 소송 방법이 있다. 그러나 피난민이 총 16만 명에나 이름에도, 2012년 3월 2일 현재까지 배상 신청은 1181건뿐이며 화해가 성립된 경우는 16건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정부의 피난 지시 지역에서는 일시불·일률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임산부와 18세 이하의 어린이·청소년에 대해선 특별히 위자료를 더 지급해야 한다는 반발이 있다. 도쿄전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민들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줄어들 거라고 주장하지만, 주민들은 반대로 늘어날 거라고 주장한다. 한편, 지난 12월 초 분쟁 심의회가 배상 지침을 확대하면서, 후쿠시마 현내 23 시군읍의 정부가 피난을 지시하지 않았으나 자주적으로 피난한 주민들에 대해서도 배상을 적용함에 따라, 대상자가 종래 15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대폭 늘었다.

게다가 간접적인 피해가 전국적으로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배상 지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가령 교토 지역에 해외 관광객이 오지 않는다든지,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나라의 물건이란 이유만으로 특정 품목의 해외 수출이 금지된다든지 하는 '소문'에 의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또 앞으로 해양 오염수 때문에 중국이나 한국으로부터 제소가 생길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대체 돈이 얼마나 들까. 일단 실질 피해 주민 보상만 봤을 때 정부는 2013년 3월까지 2년간 4.5조 엔(약 60조 원)의 보상액이 들 것으로 추산한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도쿄 전력에 지원한 금액이 약 1.6조 엔이다. 그리고 도쿄전력이 3월 19일 기준으로 실제 지불한 금액이 여기의 4분의 1인 4500억 엔 정도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제염 작업 비용과 폐로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큰 문제가 제염 비용이다. 대체 어디까지 제염할 건가가 문제다. 일부 학자들은 포기할 지역을 확실히 포기해 쓸데없는 돈을 계속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농업이 중심인 지역의 경우, 2~3년만 방치해도 회복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제염 비용을 약 60조 엔으로 보고 있는데 여기엔 산림 지역의 제염이나 처분장 건설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런 것까지 포함시키면 제염 작업만으로 100조 엔을 넘을 수도 있다. 이 비용은 사고 이전 일본 정부의 1년 예산에 버금간다. 그러나 배상 책임자인 도쿄전력은, 사고 수습비와 핵발전소 가동 중지에 따른 연료비 조달만으로 실질적 파산 상태다.

배상의 어려움은 이 엄청난 금액 규모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건강의 변화, 생명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어렵다. 보통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직접 피해에 의한 사망자는 그리 많지 않아서 그 부분은 괜찮다는 식으로 얘기된다. 실제로 사망한 사람은 쓰나미가 오기 전, 점검 차 지하에 들어갔다가 사망한 핵발전소 종업원 2명과 사고 후 수습 작업 중 과로사로 인정받은 종업원 1명 등 3명이 전부다.

그러나 사고 당시 피난 과정에서 중환자 14명이 사망했고, 유기농 농민과 무덤으로 피난 간다며 자살한 93세의 노인 등 4명이 자살했다. 또한 핵발전소 30킬로미터 내 13개소의 양로 시설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사망자는 2009년 89명, 2010년 107명에서 2011년엔 206명으로, 2배나 크게 늘었다. 사망 원인이 뭔가. 환경이 바뀐 데 대한 정신적 쇼크와 스트레스다. 사고 이후 이 환경 변화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후쿠시마에서 621명이다. 이는 쓰나미 피해가 가장 컸던 미야기 현의 환경 변화로 인한 사망자 554명보다 많은 숫자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의 상황을 감안하면, 앞으로 후쿠시마 사고 피해에 의한 사망자는 고령자를 중심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앞으로 4~5년 후부터 어린이의 갑상선암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일본 핵발전소, 이제 어디로 가나

사고 이후 일본 핵발전소는 어떻게 되었나. 일본 전체 핵발전소 54기 가운데 현재 도쿄전력의 가시와자키 핵발전소 6호기, 홋카이도 전력의 도마루 3호기 등 2기만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 7월 6일 간 나오토 당시 수상은 핵발전소 재가동의 전제 조건으로 모든 핵발전소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핵발전소가 지진, 쓰나미, 홍수 등과 같은 재해, 그리고 테러 및 항공기의 충돌 등의 사고에 직면했을 때, 이번 사고와 같은 일이 발생할 때까지 핵발전소가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지를 체크하는 안전 여유도 검사다. 3월 초 현재 이 테스트에서 일단 1차만 통과한 것이 후쿠이 현의 오오이 핵발전소 3, 4호기와 시코쿠의 이카타 핵발전소 3호기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여름의 전력 부족을 들먹이면서 오오이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워낙 반대하고 있어 불투명하다.

또 일본 정부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별도의 청, '원자력규제청'으로 독립시켰다. 다만 일본의 야당, 주로 자민당은 이를 행정부에서 완전 독립된 제3자 위원회로 구성해야 한다고 반발하며 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이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신뢰를 잃은 규제 기관의 재편을 통해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높이려는 정치적인 판단의 결과이지만,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원자력규제청에 필요한 500여 명의 직원이 대부분 원자력안전·보안원에서 그대로 평행 이동할 것이며, 일부의 간부 이외는 여전히 경제산업성 및 문부과학성과의 인사 교류가 허용될 방침이다. 형식적인 조직 개편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핵발전소 사고에 대비해 주민들이 행정 기관과 함께 일종의 훈련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방재 구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행의 원자력 방재 구역은 핵발전소 반경 8~10킬로미터의 지역인데, 이것을 개정하여 약 3배인 30킬로미터로 확대한다. 30킬로미터는 IAEA에서 정한 긴급 방호조치 구역의 기준으로서, 이제야 국제 표준에 따르게 된 것이다. 개정 방재 지침은 또한 특정 사태 발생 시 즉시 피난하는 5킬로미터 내의 예방 방지 조치 구역도 도입한다. 그리고 50킬로미터 이내의 구역까지 요오드제의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국제 표준을 좋아하는 한국은, 이 방재 구역만은 IAEA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여전히 8~10킬로미터에 머무르고 있다. 방재 구역의 개정엔 엄청난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돈 쓰기 싫다는 거다.

또 핵발전소의 수명을 법적으로 정하기로 한 것도 중요한 정책 변화다. 아직 법 통과는 안 되었지만, 수명 40년을 원칙으로 하면서 매우 예외적으로 최장 20년의 연장을 1회만 허용하기로 했다. 일본에 40년을 넘긴 핵발전소는 3기가 있고, 37년 이상 된 게 4기가 있다. 다만 연장에 대해서 아직까지 이렇다 할 기준은 없다. 한국의 경우 핵발전소의 수명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고리 핵발전소처럼 1970년대에 만들어진 핵발전소는 금속 재질도 안 좋아서 30년 이상 쓰면 안 된다. 일본 정부는 또 백 피트(back-fit)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노후 핵발전소라도 최신의 안전 기준을 반영하도록 지시하고, 반영하지 않은 핵발전소의 경우에는 가동 정지를 명령하는 제도다. 이 제도들은 한국 정부도 시급히 따라가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측면에서 현재의 핵연료 주기 정책에 변화가 올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사용 후 핵연료를 100퍼센트 재처리하여 고속증식로의 핵연료로서 플루토늄을 증식시켜 왔는데, 이 노선을 수정하여 직접 처분과 혼합 산화물 연료를 이용하는 플루서멀(Plu-thermal)을 실용적인 노선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이 내용은 오는 여름 제출을 목표로 작성 중인 '에너지 기본 계획 및 원자력 정책 대강'이라는 중장기 계획에서 드러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무모하다고 비판 받아 온 고속증식로 '몬쥬'는 포기하지 않을까 싶다. 또 현재 3기의 핵발전소가 건설 중인데, 이 3기 이상으로 또 새로 짓는 것은 대단히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기다 위에서 언급했듯 핵발전소 수명을 40년으로 못 박아 놨기 때문에, 일본은 장기적으로 핵발전소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MB가 꾸는 '핵의 꿈'을 묻다

3월 26·27일에 서울에서 핵 안보 정상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여기서 논의될 여러 국가 공동의 핵 안보 가운데 테러 방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무래도 핵발전소 안전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내부의 사정과 정보는 점점 더 바깥으로 공표되기 어려워질 것이다. 안전 시설의 강화는 곧 정보 미공개의 강화라는 얘기다. 한편 IAEA, 즉 핵 확산의 감시의 강화가 핵발전소 안전의 강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데 주목하자. 결국 조약이 만들어져도 국가가 거기에 따르는가 아닌가의 문제인데, 중국 등 신흥 발전국들의 경우 안전 대책이 강화되면 크게 반발한다. 또한 핵 사찰의 강화는 기존의 핵 처리 기술 보유국 간의 연계 강화를 의미할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핵연료 산업계의 득세와 이에 따른 미국의 세계 전략이란 측면이다. 우리가 핵발전소 수출한다고 하면 두산중공업이 돈을 많이 벌겠구나 하지만, 두산중공업은 기계만 만들어 파는 거다. 새로 핵발전소 지을 때 딱 한 번 거래하는 거다. 그런데 핵연료는, 핵발전소 한 번 지어놓으면 40년 동안 팔 수 있다. 핵연료 산업도 석유처럼 메이저가 있는데, 바로 미국이다. 가령 일본은 1970년대까지 핵연료 가운데 3할 이상을 미국에서 사야 하는 규정을 지켰다. 미국의 핵연료 농축 공장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핵발전소는 확산되어야 한다. 이것이 미국의 세계 전략이다.

한편, 핵연료 공급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공동 추진 역시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 맨 처음엔 오스트레일리아에 처분장을 건설하기로 했는데 무산되었고, 지난해엔 몽고에서 또 무산되었다. 핵발전소를 돌리는 한 계속 발생하는 폐기물의 문제는 앞으로 점점 더 큰 이슈가 될 텐데, 제발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 한국방송(KBS)에서 핵 안보 정상 회의와 관련해 이란 스페셜 프로그램을 방송했는데 그걸 보고 화가 많이 났다. 핵연료를 사용 후 재처리 하면 96퍼센트까지 재활용 할 수 있다고 프랑스의 아레바(AREVA)의 입을 빌려 보도한 것이다. 완전히 거짓말이다. 내가 보기에 재활용 할 수 있는 비율은 간단히 계산하면 1퍼센트, 정확히 계산하면 0.1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 국내 신문사들은 이 과학적 이야기를 제대로 써 주지 않는다. 뒤에 대체 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을 완전히 호도하는 짓이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핵발전소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새로운 시장은 터키,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인데, 터키나 베트남은 조건이 너무나 좋지 않다. 우리가 건설을 위한 자금을 전부 조달하고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하면 수주한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도 한국 정부가 수주를 위해 힘을 쏟고 있는 나라이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타이도 연기했고, 필리핀은 화산 때문에 IAEA에서도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나라다.

핵발전소 수출 시장에 중국도 더 깊이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시장은 줄어들고 있는 한편 중국은 한국보다 돈도 자원도 많고, 파는 가격도 싸다. 땅 넓은 중국엔 사용 후 핵연료 보관 장소도 있다. 그것까지 받아주는 조건으로 했을 때 한국이 경쟁할 수 있을까? 승패가 빤히 보인다. 이건 결국 우리가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하는 문제다. 핵발전소를 짓는 사업이 아니라 핵발전소의 폐로 사업에 집중하면 어떨까. 앞으로 문 닫는 핵발전소가 늘어날 것이다. 그게 우리가 살 길이다.



/안은별 기자(정리)

2012년 3월 11일 일요일

후쿠시마에서 열린 지옥문, 밀양에서 닫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9일자 기사 '후쿠시마에서 열린 지옥문, 밀양에서 닫자!'를 퍼왔습니다.
[후쿠시마 그리고 1년] 충격은 있어도 변화는 없었다

L 선생님께

이제 모레 3월 11일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딱 1년이 됩니다. 선생님께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리고자 1인 시위를 비롯한 온갖 퍼포먼스를 한 지도 1년이 됩니다. 저번에 잠시 만났을 때, 얼굴이 까칠해서 마음이 아팠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자 회견을 했던 지난 2월 22일, 선생님은 짧은 편지로 울분을 표시하였습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노무현 정부 총리 때 했던 말("원자력 5대 강국으로 진입하자!")을 언급하면서, 핵 발전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강 기자, 요즘도 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올라오던 그 뉴스를 꿈에서 보곤 합니다. 그 후쿠시마의 비극이 부산에서, 울산에서, 영광에서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저 무심한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대통령의 그런 얘기에 분노하지 않는 시민들은 또 어떻고요? 이런 상황이 절망스럽습니다."

선생님의 절망이 배어 있는 편지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를 보고 나서도 사람들은 왜 변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저 역시 지난 1년간 계속해서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충격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요?


ⓒ프레시안

후쿠시마, '무지'와 '무심' 사이에서

1년 전 한국 언론은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일본 현지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연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뉴스를 도배했습니다. 몇몇 언론은 취재 준비도 제대로 못한 기자를 후쿠시마 현지로 급하게 보냈다가 새로운 뉴스메이커가 되기도 했고요. 현장에 파견된 기자들이 방사성 물질에 피폭되었으니까요.

L 선생님께서도 언급하셨던,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원자로를 담아 두던 격납고가 폭발하던 모습은 특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절대로 핵발전소가 핵폭탄처럼 '펑' 하고 터질 리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저조차도 그 뉴스를 보고서는 영문을 모른 채 불안에 떨었으니까요. (핵연료 안에는 방사성 우라늄이 아주 적은 농도만 포함돼 있어서 폭탄과는 다릅니다.)

물론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었던 한국 언론 중에서 지속적으로 후쿠시마 사고를 보도한 곳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핵 발전의 위험에 무지한 이유 중 하나를 언론의 소극적인 보도 태도 탓이라고 질타했습니다. 한국 언론의 한심한 행태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국 언론이 후쿠시마 사고를 지속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으나, 초기의 보도만 놓고 보면 그 양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대다수 국민은 그 보도만으로도 핵발전소가 사고가 났을 때 얼마나 위험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지 생생히 체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 충격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것일까요?

최근에 닐 포스트먼이 1985년에 펴낸 (홍윤선 옮김, 굿인포메이션 펴냄)를 정독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먼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 세계 곳곳의 온갖 전쟁, 범죄, 사고, 홍수와 같은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된 현실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도처에 흘러넘치는 정보는 이를 접하는 사람과는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다. 즉,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된 사회적, 지적 상황과는 무관한 정보라는 뜻이다. (…) 아침에 TV 뉴스나 라디오 또는 신문을 통해 접한 정보로 하루의 계획을 바꾸거나, 아니면 하지 않았을 일을 저질렀다거나, 무엇인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적이 얼마나 자주 있는가?

(…) 일상적인 뉴스는 대부분 그저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쓸모없는 정보의 집합체일 뿐 의미 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 삶과 무관한 정보가 도처에 흘러 넘쳐 '정보 대비 행동 비율'이 극적으로 낮아져버렸다. (…) 온 세계가 뉴스를 위한 배경으로 전락하자 사람들은 일말의 통제 감각마저 상실해 버렸다. (, 114, 117쪽)

포스트먼의 이런 지적은 지금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뉴스가 유통되는 방식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충격적인 사실(fact)이 24시간 동안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전달이 되더라도 대다수 사람에게 그런 정보는 자신의 삶과 무관한 것일 뿐입니다. 보통의 생활인에게는 후쿠시마 사고보다는 일기예보가 좀 더 삶에 밀착된 뉴스일 테니까요.

더구나 그렇게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제공되는 뉴스는 대개는 파편적인 정보입니다. 기사가 조금만 길어도 "길어서 못 읽겠다!" "처럼 한마디로 정리해!" 등의 댓글이 붙는 요즘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더 심화되었고요. 그러니 독자가 뉴스를 통합하고 해석하려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뉴스는 30초짜리 광고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1년 내내 전달한다고 한들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너무 적은 보도는 대중의 무지함을 낳는다면, 이런 식의 너무 많은 보도는 대중의 무심함을 낳습니다. 무지와 무심, 둘 중에 뭐가 더 무서운가요? 무지한 사람은 가르칠 수라도 있지만, 무심한 사람은 도리가 없습니다.

'위험'과 '안전'의 악순환

L 선생님,

지금부터 불편한 얘기를 털어놓겠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한국의 환경 단체를 비롯한 반핵 세력은 핵발전소의 '위험'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지겹도록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도 꿈쩍도 안 하는 정부, 여론이 야속한 나머지 사석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 이런 얘기도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사고가 한 번 나야해!"

반핵 세력이 위험을 강조하니, 찬핵 세력도 도리가 없습니다. 지난 1년간 찬핵 세력은 '안전'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지진 심지어 미사일 공격에도 안전한 한국 핵발전소의 신화가 대중에게 유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핵발전소가 위험해서 걱정이지? 더 안전한 핵발전소를 만들면 되잖아!"

무슨 얘기냐고요?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의가 '위험하다-안전하다' 이런 이항 대립 구도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전혀 엉뚱한 곳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논리대로라면, 반핵 세력이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하는 한 대중의 각성과 변화를 이끌어낼 가장 큰 기회는 더 큰 사고입니다. 안타까운 상황입니다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보가 무너지는 것이고, 지구 온난화가 초래하는 문제를 확인하려면 심각한 기후 재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찬핵 세력의 상황은 더 아이러니합니다. 반핵 세력이 위험을 강조할수록 이들은 더 안전한 핵발전소 개발과 건설을 향해서 일로매진합니다. 안전한 원자로를 개발하고자 더 많은 연구 자금과 연구 인력이 필요합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핵발전소 안전장치의 성능이 향상된 것도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핵에너지 의존을 탈피하는 에너지 전환을 바라는 L 선생님과 같은 분에게는 이중의 악재입니다. (저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정말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로 무장한 위험성이 대폭 감소된 핵발전소가 등장한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온 처지라면,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환경 운동가 일부가 핵발전소에 대한 태도를 바꾼 데도 이런 사정이 작용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평소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온 그들은 지구 온난화라는 더 큰 위험이 나타나자,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핵발전소의 위험에는 눈을 감아 버린 것입니다. '위험하다-안전하다' 이항 대립 구도가 낳은 또 다른 부작용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핵발전소를 용인할 리 없습니다. 반핵 세력은 좀 더 안전해진 핵발전소의 또 다른 위험, 시스템의 불확실성 등과 같은 것을 강조할 테지요. 그렇다면 찬핵 세력은 어떻게 나올까요? 당연히 그런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연구 자금과 연구 인력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핵 발전은 계속됩니다. 우라늄이 고갈될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는 또 핵폐기물을 재처리해서 활용하자고 하겠군요.

'안전'에서 '윤리'로!


▲ <원자력의 거짓말>(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프레시안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었던 일본의 지식인 고이데 히로아키는 (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에서 '안전' 아닌 '윤리'를 강조합니다.

고이데는 도호쿠 대학 원자력공학과 재학 시절에 센다이 근처에서 벌어진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어떤 주민 집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생을 반핵 운동에 바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반핵 운동을 결심하면서도 전공을 바꾸지 않은 것은 반핵 운동의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서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후 고이데는 연구자로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일생 동안 외로운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고이데의 반핵 메시지 중에 들어있는 독특하게 윤리적인 시각이다. 그는 자신이 반핵 운동을 계속해온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핵의 안전 문제가 아니라 핵을 둘러싼 차별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13~14쪽)

마침 김종철 발행인도 고이데의 책에서 "윤리적인 시각"을 포착해 강조하고 있어서 소개합니다. 고이데의 책에 묶인 글들에 녹아 있는 윤리적인 시각은 김종철 발행인의 말대로 "핵을 둘러싼 차별 구조"입니다. 도대체 핵을 둘러싼 무슨 차별 구조가 있다는 것일까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핵발전소 노동자.

최근에 가톨릭대학교 이영희 교수를 통해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소개받았습니다. 일본의 도모히코 스즈키가 쓴 . 이 책은 이번에 후쿠시마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을 비롯한 일본의 핵발전소와 범죄 조직 야쿠자 간의 연계를 주장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선생님, 야쿠자와 핵발전소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의 핵발전소는 1990년대부터 야쿠자 조직원을 고용해 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일본의 핵발전소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최악의 직장이기 때문입니다. 야쿠자는 바로 이런 핵발전소에 노동자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온 것이지요.

도모히코는 그 자신이 2011년 여름 수개월간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위장 취업을 한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사고를 수습하던 노동자는 제대로 맞지 않는 방사성 물질 필터가 부착된 마스크를 쓰고, 작업장에서 쫓겨나 삯을 제대로 못 받을 게 두려워 개인별 방사능 측정 배지를 양말 안에 넣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규직 노동자보다 못한 보호 장구를 지급 받으며 험한 일을 하는 이들은 대개가 노숙인, 실업자, 야쿠자에게 빚 독촉을 받는 사람 등이었습니다. 최근에 일본의 미야베 미유키가 쓴 소설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가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지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며 만신창이가 된 여주인공의 안타까운 사연이 바로 지금 후쿠시마를 비롯한 핵발전소에서 진행 중인 거예요.

일본의 원자력자료정보실 통계를 보면, 피폭 노동자의 수는 지난 30년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대부분은 도쿄전력과 같은 전력회사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을 통해서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들의 희생을 통해서 핵발전소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아쉽게도, 핵발전소 노동자의 피폭 방사선량이 다른 산업에 비해서 많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국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심지어 안전하다고 확신하면서) 수만 명이 핵발전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핵발전소는 그들의 희생 없이는 한 순간도 가동할 수 없습니다.

둘째, 지역 주민.


▲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녹색평론사
가끔 핵 발전을 놓고서 얘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곤 합니다.

"이번에 지진이 난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는 전력 회사 '도호쿠전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곳은 '도쿄전력'이잖아요. 혹시 이상하다 생각해 본적은 없으세요?"

이런 질문을 받고서야 사람들은 '아!' 하고 탄식을 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후쿠시마를 비롯한 도호쿠 지방이 아니라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도쿄로 공급이 됩니다. 그러니 후쿠시마 핵발전소도 도호쿠전력이 아닌 도쿄전력이 관리하는 것이지요.

후쿠시마 핵발전소 단지가 만들어지던 1950~60년대만 하더라도 도호쿠 지방은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도호쿠 지방이 얼마나 차별을 받는 낙후된 곳이었는지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일본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펴냄)을 보면 생생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강원도 삼척, 경상북도 울진, 영덕을 새로운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했습니다. 삼척, 울진, 영덕이 어떤 곳인가요? 변변찮은 공장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낙후된 그곳 주민에게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질 전기가 필요할 리 없습니다. 지금 삼척, 울진, 영덕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위해서 또 한 차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치우 어르신은 어떻고요? 고압 송전탑 탓에 평생 농사를 짓던 땅을 빼앗긴 70대 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 외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하소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고압 송전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바로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서울, 대전, 대구 등으로 옮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울 한강에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선언을 하지 않는 한, 이런 식의 희생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지역의 희생을 전제한 핵발전소를 유지하는 게 과연 윤리적인가요? 서울에 사는 이들은 일본에서 날아온 방사성 물질이 섞인 비를 걱정하기 전에, 자신의 안락한 일상생활이 누구의 희생 덕분인지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미래 세대.

흥미로운 일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핵폐기물의 위험에 대해서 대다수 시민이 여전히 무지하다는 사실입니다. 적지 않은 언론에서 고준위 핵폐기물은 수만 년, 수십만 년 이상 자연과 격리가 필요한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렸는데도 대다수 시민은 금방 망각합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익숙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이 반감기는 방사성 물질의 방사능이 원래 값의 절반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확률적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3·11 사고 이후에 아이 분유를 비롯한 각종 먹을거리에서 발견되는 방사성 물질 '세슘 137'의 반감기는 약 30년입니다.

'반감기 30년'은 30년이 지나야 방사성 세슘의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0년이 지나도 세슘은 안전하지 않아요. 나머지 절반의 세슘은 여전히 방사선을 내뿜을 테니까요. 보통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를 서른 번 정도 지나야 완전히 방사능을 잃습니다. 그러니 세슘이 안전해지려면 900년(30년×30)이나 걸리는 셈입니다.

(다행히 사람은 몸속의 위험한 물질을 끊임없이 밖으로 배출하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몸속으로 들어온 방사성 세슘은 원래의 반감기와는 상관없이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보통 세슘의 절반 정도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10일 정도입니다. 물론 그 동안 세슘의 방사선은 알게 모르게 몸속 곳곳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핵폐기물 안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방사성 물질 '플루토늄 239'는 반감기가 2만4000년입니다. 반감기가 2만4000년이니, 플루토늄이 방사능을 잃는데 걸리는 시간은 실제로는 수십 만 년(!)이 걸릴 것입니다. 실제로 핀란드는 핵폐기물을 10만 년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처리장을 짓는 '온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0만 년이라니요! 지구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게 바로 약 13만 년 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수천 년, 수만 년 후의 미래 세대에게 핵폐기물의 위험을 어떻게 경고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선사 시대 동굴에 쓰인 기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나요? 국어 시간에 200년 전에 한글로 쓰인 소설도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해독할 수 없었잖아요.

그래서 유일한 해결책은 말 그대로 '원자력 족(族)'을 만드는 방법뿐이라는 암울한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핵폐기물 처리장을 지키는 종교 조직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들이 '금기'를 이어가게 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특정한 장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기' 말입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클로드 카리에르와의 대담을 실은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서 핵폐기물을 둘러싼 이런 사정을 언급하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그냥 나 혼자만 해본 생각입니다. 핵폐기물을 묻되, 매우 희석된 상태, 즉 방사능이 아주 약한 상태의 폐기물을 맨 위층에 두고, 점차로 방사능이 강한 층들을 깔아 나가는 겁니다. 만일 외계인(혹은 미래 세대-인용자)의 실수로 그 폐기물이 손이나 혹은 손처럼 사용하는 다른 기관이 닿는다 하더라도, 그는 단지 손가락 한 마디를 잃게 될 뿐입니다.

만일 더 해본다면 손가락 하나를 잃게 되겠죠. 하지만 그가 더 이상 파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 198~199쪽)

핵 발전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세계 어느 나라도 만들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불가능성 때문입니다. 핵발전소는 이미 대기 중에 배출된 방사성 물질뿐만 아니라 에코와 같은 걱정을 해야 할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쓰레기의 처리를 미래 세대에게 떠넘깁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요?

'후쿠시마 국민' 아닌 '밀양 국민'!

L 선생님,


▲ <녹색당 선언>(녹색당 기획, 이매진 펴냄). ⓒ이매진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후쿠시마 1년, 왜 대다수 사람은 변하지 않을까?' 이제 질문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후쿠시마 1년, 왜 어떤 사람은 변했을까?'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면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입니다. 한국에서 녹색당을 준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은 (녹색당 기획, 이매진 펴냄)을 보면, 영덕의 박혜령 씨가 등장합니다. '돈의 노예'로 살았던 도시 생활에 지쳐 9년 전 영덕 시골 마을로 들어갔던 박 씨는 핵발전소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총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밀양의 이치우 어르신은 어떻습니까? 핵발전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송전탑이 앗아간 그의 넋을 위로하고자 17일 밀양으로 가는 '탈핵 희망 버스'가 기획되고 있습니다. 다수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그의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조명될 때, 정의롭지 못한 에너지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받는 전국 곳곳의 제2, 제3의 희생자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핵발전소에서 피폭을 당하며 노동에 종사하는 이름 없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떻습니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우리가 시급히 했어야 할 일이 바로 핵발전소의 고용 관행, 작업 실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아니었을까요?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는지 알려야 합니다.

이런 '작은 것들의 정치'가 모여서 거대한 대항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에서도 핵 발전이 아닌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장 먼저 '탈핵'을 선언한 독일의 힘도 수십 년간 축적해온 이런 대항 네트워크(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의 노동자, 녹색당 정치인 등)가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이 마땅히 3·11을 앞두고 자신을 '후쿠시마 국민'이라고 규정해야 하듯이, 지금 우리는 자신을 '밀양 국민', '영덕 국민', '삼척 국민'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3·11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의 '삶과 무관한' 재난 영화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삶에 뿌리내린 문명사적 전환의 순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L 선생님의 건투를 빕니다.

2011년 3월 9일

강양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