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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8일 목요일

1년 남은 박원순, '원순표 대못'을 박아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3-04-17일자 기사 '1년 남은 박원순, '원순표 대못'을 박아라!'를 퍼왔습니다.

[초록發光] 마을, 에너지, 협동조합


마을과 에너지가 만나다?

근래 전화를 받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지인들 뿐 아니라 안면 일식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동네에서 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 햇빛 발전을 시도하고 싶다. 에너지 효율화 집수리 조합을 만들면 어떻겠냐?" 등 마을 안에서 에너지와 관련한 다양한 고민들을 쏟아내는 전화에 정신이 없다. 이렇게 빠르게 마을 단위로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에 고무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서두르다 너무 많은 교육비만을 치르고 실패로 끝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

마을이 에너지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활성화 정책과 핵발전소 1기 줄이기 정책이 맞물려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막상 이 두 정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제대로 마을 단위의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낼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여전히 박원순 시장이 강조해온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마을 공동체의 회복에 대해 강조해 왔고, 이에 대한 시민 사회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민·관 모두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한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2011년 10월 보궐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 시장은 인수위원회 없이 시정을 바로 이어가야 했고, 그의 정책 기조를 충분히 담아낼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2012년의 마을 공동체를 위한 예산은 없었고, 관은 관대로 민은 민대로 새로운 시장이 강조한 '마을'에 대해 서로 다른 상을 그렸고, 이 과정에서 관은 민을 무시했고, 민도 관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서울시 마을 공동체 종합지원센터'라는 중간 조직이 만들어졌지만 짧은 시간 민과 관을 아우르겠다는 미션은 너무 버거워 보였다. 마을 만들기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관은 마을 만들기의 모델로 소개된 마포 성미산 마을, 은평두꺼비하우징, 동작 성대골 마을을 표본 삼아 지역 조사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베끼기 시작했다. 심지어 서울시는 마을 공동체 사업을 잘 진행한 자치구를 선정해 1억 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가 민간 영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을 공동체 사업이 2013년을 맞이했다. 2012년과 달라진 점은 예산이 편성되었다는 것이다. 2012년 행정비를 제외하고, 0원이나 다름없던 예산이 2013년에는 54억8000만 원가량 늘었다. 대단한 발전이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단순히 2012년 대비 2013년의 예산이 책정 되었다고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 될지는 의문이다.

마을에서 '관이 돈을 풀면 마을 사업은 망한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마을에서 뭔가 잘할만하면, 갑자기 관이 지원을 하겠다고 나서고, 마을 사업이 관의 지원에 집착하게 되고, 외부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잘되던 마을이 망하는 마을이 된다는 것이다. 마을 사업은 본래 지역 주민의 자발성과 자립을 기틀로 자리 잡아야 지속가능한데 관의 지원이 이런 기틀을 흔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충분한 기초 조사와 명확한 목적, 방향을 모으지 못한 채 예산만 책정하는 것은 마을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에너지 자립 마을 성공할까?
ⓒ프레시안(최형락)


물론 마을 공동체 사업이 모두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에너지 정책인 '핵발전소 1기 줄이기'에 발 맞춰 에너지 분야를 적극적으로 마을로 끌어 들여 새로운 에너지 자립 모델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마을 공동체와 에너지 문제를 한 번에 풀어낼 수 있는 모델을 찾은 것이고 마을 입장에서는 새로운 마을 공동체 활성화 영역을 발굴한 셈이다.

사실 '핵발전소 1기 줄이기' 사업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만 에너지 자립도는 극히 낮은(2008년 기준 2.45퍼센트) 서울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을 것인가 하는 공급 위주의 정책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줄일 것인가 하는 수요 관리 정책으로 급선회한 참신한 정책이긴 하지만 사실 그 안의 내용은 에너지 줄이기 이상의 참신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들면서 새로운 구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마을 7개, 그리고 올해 4개 마을을 추가하여 선정한 에너지 자립 마을이 대표적일 것이다. 에너지 자립 마을은 에너지 자립도를 2014년까지 50퍼센트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특히 도심형 에너지 자립 마을 만들기 사업 중 성대골 마을과 십자성 마을의 경우 마을의 에너지 자립 활동을 관광 코스와 연계하는 방안이 나와 흥미롭다.

단순히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에너지 절약하는 것을 넘어 에너지를 생산하고 여기에 체험과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접목시키고 있다. 그리고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일자리까지 창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내공이 쌓인 탄탄한 마을 공동체가 에너지를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다.

마을 공동체+협동조합+핵발전소 1기 줄이기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주체로 협동조합이 부상하고 있다. 처음 서울시민 햇빛 발전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이후 노원구, 성북구와 같이 구 단위의 햇빛 발전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고, 한살림과 같은 생활협동조합도 한살림 햇빛발전조합을 만들어 물류 센터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있다. 지금껏 오롯이 에너지를 쓰기만 했던 서울 시민들이 스스로의 힘을 모아 태양광을 설치하고 발전소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사업 그리고 협동조합, 거기에 핵발전소 1기 줄이기 정책까지, 이 세 조합은 아주 시기적절하고 궁합도 잘 맞아 보인다. 마을 단위로 사람이 모이고, 그들이 에너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시는 이러한 시민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결과적으로 서울시 전체의 에너지는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는 늘릴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와 협동조합을 통해 교육과 확산이 이뤄지고, 녹색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다. 이것이 마을, 협동조합, 핵발전소 1기 줄이기가 만들어내는 최상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것이 지속 가능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에너지 자립 마을이 많아지고 에너지 협동조합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성공으로 자찬할 수는 없다. 서울시의 지원에 힘입어 시작하고 있는 햇빛 발전 조합이나 에너지 자립 마을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협동조합과 마을 공동체 사업을 보면 한때 유행처럼 확산됐던 사회적 기업이 떠오른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활성화 정책은 사회적 기업들이 자립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경제 영역의 생태계 조성 없이 오롯이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도입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기업 지원은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전락했고 결국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정부의 보조 없이는 1년을 버티지 못하는 유약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의 총체적 실패라는 신랄한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이미 에너지 협동조합과 에너지 자립 마을도 사회적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지원 없이는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제 박원순 시장의 임기는 1년 남짓 남아 있다. 마을, 협동조합 그리고 에너지를 묶어 내어 최상의 효과를 기대하고자 한다면 각각의 정책 지원과 예산 확대 보다는 이들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많은 전문가는 서울형 발전 차액 지원 제도(FIT)의 도입과 확대를 제안하고 있다. 마을과 협동조합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것을 되 팔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경제가 만들어지고 다른 영역으로의 확대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제 서울시는 이러한 의견을 받아 에너지 자립 마을과 에너지 협동조합이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2012년 9월 9일 일요일

W의 폭풍,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09-01일자 기사 'W의 폭풍,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를 퍼왔습니다.
Cover Story ● 기후변화, 경제를 지배한다- ①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세계경제에 기후변화 비상이 걸렸다. 기후변화에 의한 대규모 피해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됐다. 기후변화가 단순한 지구온난화를 넘어 상시적 기상이변이 되면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예고되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운명이 결정된다. 기후변화가 불러올 새 패러다임에 뒤처진 기업은 생존 자체를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커질수록 각광받는 산업 또한 적지 않다. 상시화된 기후변화로 세계경제가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하고 주요 산업지도의 변화를 그려봤다.  _편집자

W(Weather)의 폭풍,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폭염·폭우·가뭄으로 일상화된 기후변화… 적응 못하면 나라, 기업 모두 도태될 수도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과 가뭄, 태풍과 홍수 등 기상이변이 잇따르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는 단순한 이변이 아니라 상시적 현상이라는 것이 기상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기후변화는 가뜩이나 힘을 잃어가는 지구촌 경제에 또 하나의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른바 'W(Weather·날씨)의 공포'다.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운명이 결정된다.
2006년 당시 영국 정부의 수석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이 기후변화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른바 '스턴 보고서'(Stern Review 2006)다. 스턴은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기후변화 추세에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세계가 경제 대공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2006년)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비용은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에 불과하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앞으로 이 비용이 GDP의 20%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턴의 경고는 당시 상황에서 매우 충격적인 것이어서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주목할 것은 스턴 보고서가 전망한 예측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발표한 '우리나라 기후변화의 경제학적 분석'은 한국판 스턴 보고서로 불린다. 이 보고서는 2012년부터 2100년까지 한반도의 기후변화 데이터를 분석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한국의 피해 규모가 스턴 보고서가 예견한 시나리오와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를 보면 이대로 기후변화가 계속될 경우 2100년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누적 피해 금액은 약 2800조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GDP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이미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기후변화의 주범은 지구온난화다.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1.5℃ 높아졌다. 지구 평균 상승치의 2배다. 올해 8월 들어 폭염경보 기준인 35℃를 웃도는 날씨가 7일 연속 이어지면서 1994년(9일) 이후 가장 긴 폭염을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7월은 한국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폭우가 내린 달로 기록됐다.
한반도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은 56년 만의 가뭄으로 국토의 절반가량이 물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이번 여름엔 시베리아도 30℃ 안팎의 이상고온 현상이 2개월 가까이 이어지면서 산불이 기승을 부렸다. 문제는 이같은 기상이변이 더 이상 일시적이 아니라 상시적 현상이라는 데 있다. 송창근 국립환경과학원 환경연구관은 "대형 기상이변의 발생 빈도가 전세계적으로 1980년대 연평균 12.7회에서 2010년대 24.5회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기상학자들의 기후변화 예측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놓고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되는 기후변화는 이미 글로벌 경제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가 지난 7월24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기후변화에 의한 대규모 경제 피해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됐다"고 말할 정도다.

기온 4℃ 올라가면 GDP 5.6% 손실

기후변화는 이제 세계경제에 가장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됐다. KEI의 '우리나라 기후변화의 경제학적 분석' 자료를 보면, 기온이 4℃ 올라가면 GDP의 5.6%가 손실되는 것으로 예측됐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기상기구(WMO)가 공동 운영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회의'(IPCC)의 4차 보고서는 지구의 평균기온이 2100년까지 현재보다 4℃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극심한 가뭄·홍수·태풍은 기업의 원자재 조달은 물론 판로에도 영향을 미친다. 농민들은 농작물 재배지 이동에 따라 작물을 바꾸거나 기후에 맞는 작물을 재배해야 한다. 이미 아열대성 작물인 감귤과 제주 특산품인 한라봉이 남해안에서 재배되고 있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의 연구 자료를 보면 직간접적으로 날씨의 영향을 받는 국내 산업의 비율이 GDP의 52%에 달하고, 기상정보의 활용 가치는 연 3조5천억~6조5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태풍이나 폭염과 같은 기후변화가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명수정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 부연구위원은 "기후변화 현상을 더 이상 예외적이고 대비할 수 없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일상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전세계는 오래전부터 기후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주목해왔다. 기후변화의 파장은 선진국에도 큰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된다. 인도 경제는 우기인 6~9월의 강우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올해 5% 성장도 불투명하다. 미국 경제통신 (블룸버그)는 "급속한 경기둔화에 몬순기 가뭄까지 겹쳐 인도의 국가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 수준인 정크 등급으로 강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대륙 동남부 지역의 주요 항구도시들이 기후변화에 취약하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이는 앞으로 중국 경제의 큰 변수로 지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7월 발표한 '기후변화에 취약한 전세계 항구도시' 보고서를 보면, 10대 취약 도시 가운데 4곳이 중국의 항구도시였다. 광저우가 2070년 인명 피해 1030만 명과 재산 피해 3조4천억달러가 예상돼 2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상하이(5위), 톈진(7위), 홍콩(9위)이 모두 취약 도시로 꼽혔다. 인도는 콜카타가 재산 피해 2조달러, 인명 피해 14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4위에 올랐으며, 뭄바이도 6위에 이름을 올렸다.

두산중공업이 2009년 완공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쇼아이바 3단계 해수담수화 플랜트. 이 담수화 시설은 하루 88만t의 담수를 생산해 메카와 메디나에 공급하고 있다. 88만t은 하루 300만 명이 동시에 쓸 수 있는 양이다. 두산중공업 제공

식량·에너지 수급 불균형 일상화


기후변화가 불러온 파장이 가장 크게 미치는 곳은 에너지와 식량 산업이다. 기후변화가 단순한 지구온난화를 넘어 상시적인 기상이변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에너지와 식량의 수급 불균형은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에너지 수급 불균형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이상고온 현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에너지 사용 증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도는 몬순기에 가뭄이 이어지면서 지난 7월 최악의 정전 사태를 겪었다. 루마니아에서도 폭염과 가뭄이 잇따르면서 다뉴브강의 수위가 대폭 낮아져 수력발전소의 발전량이 25% 이상 줄었다.


기업도 에너지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앞으로 전기요금의 대폭 인상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전력이 전기요금 인상에 적극 나서면서 그동안 싼값에 펑펑 써왔던 전기가 더 이상 값싼 재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에너지 정책 변화가 예상된다. 큰 틀은 절전 혁신과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다. 우선 전기요금 상승과 전기 부족에 허덕이는 생산 현장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은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면, 이제는 소비 전력을 줄이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체질 개선을 통해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서 에너지 절전형 산업으로 급속한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앞으로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시설 투자가 불가피하다"며 "생산 현장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개념으로 전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저탄소 혁명도 기후변화가 몰고 온 새로운 트렌드다.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발전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는 일본의 움직임이 가장 눈에 띈다. 정부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원전 가동 중지로 인해 생긴 공백을 태양광·태양열·풍력 등 대체에너지가 메꾸기 시작했다. 일본은 2020년까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500만 대로 늘리고 수소충전소 3천 곳을 세워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주도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에너지관리공단,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수소에너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에 뒤처지는 기업들은 이미지 추락뿐 아니라 생존 자체도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진우 연구원은 "과거 정보기술(IT) 시대에 뒤처진 기업들이 쇠락의 길을 걸었듯이 기후변화에 따른 에너지 수급에 대처하지 못하는 기업들 역시 미래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식량 공급 부족과도 직결된다. 국제쌀연구소(IRRI) 자료를 보면, 온도가 1℃ 상승하면 쌀 생산이 1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100년 세계 온도가 최대 4℃ 상승할 것이란 예상을 감안한다면 쌀 생산량이 40%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자연스럽게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 발표를 보면, 글로벌 식량가격지수는 7월 한 달 동안 6% 상승했다. 2009년 11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미국 중서부를 뒤덮은 최악의 가뭄에 러시아·우크라이나·발칸반도 지역의 고온 현상, 인도의 가뭄, 중국의 홍수 등이 곡물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5월 말 이후 옥수수 가격은 47%, 콩은 26%나 올랐다.

자료: 환경정책평가연구원

기후변화 적응 여부가 기업 경쟁력

UNFAO가 매년 발표하는 식량가격지수를 보더라도 최근의 가파른 곡물값 상승을 확인할 수 있다. 2004년 식량가격지수를 100으로 삼았을 때, 2012년 식량가격지수는 194.8로 2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이는 2008년 식량 파동 때의 164.6보다 높은 수치다. 급기야 유엔이 미국 정부에 옥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바이오에탄올 생산 감축을 요구하고 나설 정도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식량 가격 상승이 선진국은 물론이고 브라질·중국·인도 등 이미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신흥 경제국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는 위기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저명한 경제 저술가 토드 부크홀츠는 "온난화로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북극항로 이용이 가능해지는 등 다양한 경제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기후변화가 일방적으로 경제에 악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기업들 역시 기상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수요를 예측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날씨경영'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2009년 기상산업진흥법이 제정되면서 국내에선 비로소 날씨컨설팅 서비스가 시작된 상황이다. 특히 올해 들어 폭염 등 날씨재해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면서 날씨경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날씨경영이란 기업이 날씨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에 대응해 경영전략을 짜는 것을 말한다. 기상이변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기회를 살려 매출을 늘리는 것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기후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은 삼성이다. 삼성은 이미 2000년대 초반 삼성지구환경연구소를 만들어 기후변화에 따른 경영전략을 짜고 있다. 백재봉 소장은 "기상에 대한 투자는 투자액의 10배 이상의 효과를 가져온다"며 "기후변화는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인식 전환 등 치밀하게 대응해야 기후변화를 새로운 발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연기  부편집장 ykkim@hani.co.kr

2012년 4월 6일 금요일

"핵발전 반대 59.3%" 투표로 이어진다면…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06일자 기사 '"핵발전 반대 59.3%" 투표로 이어진다면…'을  퍼왔습니다.
[초록發光] '욕망'이 아닌 '미래'를 위해 투표하자!

이제 총선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 이미 결정한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 결정하지 않은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선거에서 표의 행사는 우리에게서 대표권을 위임받고 정책을 실행해 온 집권 여당의 정책 활동에 대한 엄중한 평가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녹색 성장이라는 그럴듯한 포장 하에 4대강 생태계파괴를 방조하고,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목표 하에 대기업 조세 감면을 늘려주며 경제 양극화를 조장한 집권 여당의 실정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이다. 또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명백히 줄어들고 있는 핵발전소 시장을 겨냥해서 핵 수출 국가로 발돋움할 것을 부추기고 있는, 정부의 거꾸로 가는 정책도 되돌려 놓는 한 표 행사가 되어야 한다.

한편, 다음 주에 행사할 표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를 분명히 밝히는 정치적 의사 표시일 것이다. 1퍼센트에게만 혜택을 주는 현재와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유지란 것이 우리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뚜렷해지고 있다. 총선을 통해 우리는 경제 양극화가 아닌 경제 민주화를 우리 사회 비전으로 받아들일 것임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경제 민주화 못지않게 대안 비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에너지 체제이다. 여전히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생산성도 낮은 현재의 에너지 체제는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 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어려울 뿐더러 생태 위기를 가속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던 핵에너지 사용 확대라는 것이 해결책은커녕 에너지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후쿠시마 사고가 잘 보여주었다. 여전히 진행형을 보이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핵발전소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고, 통제를 벗어났을 때 기술적 해결책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음도 분명히 해주었다.

최근 고리 핵발전소, 신월성 핵발전소에서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고들 역시국내에서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통제할 수 없을 뿐더러 세대를 넘어서는 방사능 폐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핵발전소 기술을 계속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프레시안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당 체제에서 에너지, 핵발전소 기술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정치적 의제가 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번 총선의 경우 녹색당, 진보신당에서 당의 대표 정책으로 2030, 2040년의 핵발전소 폐쇄와 재생 가능 에너지 체제로의 에너지 전환을 제시하고 있어 에너지, 핵발전소 문제를 정치 의제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우리의 한 표는 이렇게 중요한 에너지 문제가 정치 의제로 채택될 수 있도록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한 표가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독일 녹색당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1970년대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지속해 온 지역 활동가들은 1970년대 말이 되면서 정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의회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977년 처음으로 지역 활동가들이 "녹색 명단 환경 보호(Gruene Liste Umweltschutz)", "원자력 반대 선거 공동체(Wählergemeinschaft Atomkraft Nein Danke)"를 조직하여 지역 의회 선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각각 1.2퍼센트와 2.3퍼센트를 획득하고 의원 1명씩을 지역 의회에 진출시키는데 그쳤지만 이듬해인 1978년 브로크도르프 핵발전소 인근 지역에서 선거에 참여한 "녹색 명단 환경 보호"는 이내 5퍼센트 이상의 득표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고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부지 점거에 열심이었던 지역 농부, 대학교 학생, 교수, 변호사, 마르크스주의 운동가,주택 점거 운동 주도자 등 기존 정당의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던, 아니 의회의 위계질서와 의회 내 행위 규범까지도 무시했던 이들에게 독일 시민들이 표를 주기 시작했다. 당시 이들이 제시했던 탈핵, 생태 문제들이 독일 사회가 해결해가야 할 문제라고 보았던 때문이다.

기존 정당에서는 누구도 제기하지 않던 문제를 이들이 제기하기 시작했고, 핵발전소 문제가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를 느낀 시민들이 아마추어 정치가들에게 표를 주었던 것이다. 이런 시민들의 한 표 행사가 지속되면서 지역 의회에서 출발한 녹색당이 1980년 전국적인 당으로 발전하고 1983년 연방의회 진출에 성공하면서 마침내 핵발전소 폐쇄 정책을 구체화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독일은 새로운 미래 비전을 선취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2011년 8월 에너지경제원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에 대한 반대 의견을 보이는 사람이 이전의 19.2퍼센트에서 59.3퍼센트로 증가했다고 한다. 국내 핵발전소가 '불안전'하다고 답한 이들도 47.4퍼센트에 달했다. 이런 반대 여론은 예정 후보지 지역의 경우 확실히 높았다고 한다.

며칠 전 발표된 고리 핵발전소 1호기 비상 냉각 장치 가동 불능 가능성은 이런 반대 여론을 더 강화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이 또 다시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발전하기 전에 핵발전소 기술의 지속 여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당장이라도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논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이 이번 총선을 통해 핵발전소가 정치 의제화될 수 있도록 우리의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일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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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동국대학교 교수·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2012년 3월 1일 목요일

고삐풀린 원자력 신화, 그 오만의 대가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1일 기사 '고삐풀린 원자력 신화, 그 오만의 대가는…'을 퍼왔습니다.
[정욱식의 '핵과 인간'] 원전을 향한 질주

핵은 무기로부터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즈음에 그 과학적 원리가 입증되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직후 전쟁이 끝났다. 가공할 폭발력을 선보인 핵은 이후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추진력으로 핵을 이용해 대서양과 태평양의 강자로 우뚝 섰고, 이후 소련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도 뒤따랐다. 이들 무기에 추진력으로 사용된 핵 발전은 가압경수로(PWR)였는데, 이후 PWR는 대표적인 핵 발전소의 모델이 된다.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에너지로 쓸 수 있다면?' 많은 과학자들과 정부들은 이 질문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원자력을 "세계 번영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핵을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한 움직임은 195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핵을 "기적의 힘"이라고 부르면서 대단히 저렴하고 고갈될 걱정도 없는 에너지원 개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태양의 일부를 지구에 갖다 놓은 것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핵을 무기로 사용하면 인류 절멸의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에너지로 사용하면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8일 유엔 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를 발표했다. 그는 말했다. "핵의 시대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우려해야 할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략) 미국은 여러분과 전 세계 앞에 가공할 만한 핵의 딜레마를 해결할 것을 약속합니다. 인간의 경의적인 발명품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당시 원자력에 대한 환상은 미국 원자력위원회 의장이었던 루이스 스트라우스(Lewis Strauss)가 원전은 "너무 저렴해서 측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났다. 이러한 환상은 1955년 12월 31일자 일본의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원자력을 잠재 전력으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게다가 석탄 등의 자원이 지구상에서 차차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에너지가 갖는 위력은 인류 생존에 불가결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중략) 전기료는 2,000분의 1이면 된다. (중략) 원자력발전에는 화력발전처럼 큰 공장이 필요 없다. 큰 연돌이나 저탄장도 필요 없다. 매일 석탄을 운반하고 재를 버리기 위한 철도나 트럭도 필요 없다. 밀폐식 가스터빈을 이용할 수 있으면 보일러의 물조차 필요 없다. 물론 산간벽지를 선택할 필요도 없다. 빌딩의 지하실이 (핵) 발전소가 될 수도 있다."

'핵무기는 통제하고 원전은 확대하라!'

'신의 불'이라고 불리던 핵을 가장 먼저 손에 넣은 미국은 자신의 핵무기 독점은 유지하면서 핵의 "평화적 이용" 방안 마련에 몰두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11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고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은 철저한 국제 검증 아래에 두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유엔 원자력위원회(UN Atomic Energy Commission)를 만들어 국제적 핵통제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이듬해 미국 정부는 더욱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새로운 핵무기와 핵분열 물질 생산 금지, 우라늄 광산 통제, 핵연료 주기에 대한 국제적 통제와 엄격한 검증 체제 구축, 완전한 핵무기 폐기, 국제 원자력 개발 기구(International Atomic Development Authority)를 창설 등을 담은 '바루크 플랜'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당시 핵 독점의 지위를 누렸던 미국은 진정성이 결여된 말잔치에 불과했다. 미국이 유일한 핵보유국이었던 만큼, 국제 핵통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실천해야 했지만, 이를 거부한 것이다.

뒤이어 집권한 아이젠하워는 에너지로도 가공할 무기로도 이용될 수 있는 '핵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 원자력 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늘리면서 핵보유국들은 핵무기 보유고를 줄이기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의 제안은 바루크 플랜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었다. 바루크 플랜이 핵무기의 완전 폐기를 제안한 반면,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에서는 감축과 통제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우라늄 은행'으로 제안된 IAEA의성격도 변질되었다. IAEA의 당초 기능은 공평하게 우라늄을 모아 이것을 다시 분배하는 것이었는데, 소련이 우라늄 납부를 거부하고 미국 의회가 핵 물질 및 기술 분배의 독점적 권한을 주장하면서 무산되었다. 이렇듯 국제적 핵 통제 구축이 난항을 겪고 있는 사이에 미국, 소련, 영국 등 핵보유국들이 다른 여러 나라들과 양자 협정을 체결해 원자로를 비롯한 핵시설과 핵기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의 구상은 이후 지지와 비판을 함께 수반하게 된다. 옹호자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 없었더라도 핵확산은 불가피했고, 이 구상을 통해 그나마 그 속도와 범위를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 IAEA가 공식적으로 창립돼 국제적 핵 통제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아이젠하워의 정책은 미국 원자력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었고, 오히려 핵확산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반박한다.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이 이미 원자력 기술을 갖춘 상태여서 앞으로 미국의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 수 있으므로 미국이 선수를 쳐야 한다는 '이윤 논리'가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돈을 벌기 위해 핵 기술을 다른 나라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인도, 이스라엘,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원자력 수출에 힘입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거나 그 문턱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NPT와 IAEA의 '생얼'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의 근본 취지는 핵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평화적 이용은 증진하는 대신에, 인류 문명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핵무기의 확산은 방지하자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의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취지와 맥락을 같이한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첫째,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 스스로가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이 구상을 추진한 탓에 국제 사회의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둘째, 미국의 실질적 행보는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과 거리가 멀었다. 그가 백악관에 들어갈 때 1,400개였던 미국의 핵무기는 그가 백악관을 떠날 때는 2만개까지 증가해 있었다. 셋째, 미국은 핵 기술과 물질이 군사용으로 전용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핵 국가에 대한 원자력 수출에 적극적이었다. 훗날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거나 개발에 성공한 많은 나라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원자력을 수입한 나라들이 대부분인데, 여기에는 비밀 핵개발에 성공한 남아프리카 공화국뿐만 아니라 오늘날 미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이란도 포함되어 있다. 끝으로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로 이어진 원전 사고가 입증해준 것처럼, 핵 '발전' 역시 핵 '무기' 못지 않게 인류 생존과 지구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에 창설된 IAEA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 기구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증진하는 대신에, 핵기술이 군사적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1961년에는 최초로 안전조치협정을 만들었고, 1967년에는 기존의 내용을 강화한 새로운 안전조치협정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1970년 NPT가 탄생하면서 IAEA는 비핵 국가의 의무를 검증하는 유엔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설립 취지에 "원자력 에너지의 공헌을 진전시키고 확대한다"고 명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IAEA가 원전 확대를 존재 이유로 삼다보니 '국제 원전 마피아'라는 오명을 자초하고 있다. IAEA의 홍보부장을 지낸 요시다 야스히코의 말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목으로 각국으로부터 온, 원자력 산업 대리인들이 업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만 활동한다. 국제기구라고 하면 뭔가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실태를 냉정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IAEA의 횡포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유엔 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이다. WHO는 1956년까지는 "원자력 산업과 방사능원의 증대에 의해 미래 세대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1959년 WHO는 IAEA와 맺은 협약을 맺고는 IAEA의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IAEA 입장이 다른 것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핵 강대국들이 유엔을 장악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이에 따라 WHO는 IAEA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IAEA와 WHO의 협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IAEA의 횡포는 체르노빌 사태에 대한 평가에서 또 다시 입증된다. IAEA는 2006년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약 4000명이라고 발표했다. 반론은 즉각 구소련에서 원전 설계에 관여했던 과학자들을 통해 나왔다. 이들은 IAEA의 평가가 ▲영어 이외의 슬라브어로 된 1차 차례를 이용하지 않았고 ▲방사성 물질 43%가 배출된 지역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의도적으로 방사선 농도의 수치를 과소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98만5천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NPT를 살펴보자. 1968년부터 서명에 들어가 1970년 3월에 발효된 NPT는 핵무기 확산을 예방하고 궁극적으로 완전한 핵무기 폐기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대표적인 국제 군축 조약이다. NPT가 발효될 당시에는 회원국이 43개국에 불과했으나 점차 늘어나 2012년 2월 현재 189개국으로 늘어났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에 줄곧 비회원국으로 남아 있으면서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으며, 북한도 이들 나라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 네 나라가 NPT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IAEA의 감시와 사찰에 동의해야 한다.

NPT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비핵 국가와 핵보유국 사이의 균형된 의무로서 '비확산(non-proliferation)'과 '핵군축(disarmament)'을 함께 요구하는 한편, 회원국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비확산'은 비핵 국가들이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보장받는 대신에 이를 핵무기 개발로 전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핵군축'은 핵보유국의 핵무기 폐기 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NPT는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확산'에 초점을 맞춘 조약이다. 또한 생물무기금지협약, 화학무기금지협약, 대인지뢰금지협약, 집속탄금지협약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군축 조약은 해당 무기의 사용 및 실험 금지와 폐기를 명시한다. 반면 NPT는 핵보유국의 핵무기 사용 금지는 물론이고 추가적인 핵무기 제조 금지와 핵폐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NPT는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을 했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인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하면서 핵폐기 의무를 '선의(good faith)'에 맡겼다. 반면 다른 회원국들의 핵무기 개발은 금지하고 IAEA를 통해 이를 검증하는 대신에 평화적 핵이용을 보장하고 있다.

NPT는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189 대 4'(회원국 대 비회원국)라는 스코어가 보여주듯, NPT는 군비 통제 조약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184 대 9'(비핵 국가 대 핵보유국)라는 숫자는 NPT 등장 이전에 우려되었던 핵확산이 이 조약 발효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비확산 분야의 베테랑 외교관이었던 조지 번George Bunn은 "NPT가 없었다면, 오늘날 9개국이 아니라 30~40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NPT가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 규범을 확고히 함으로써 비핵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동기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핵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것은 NPT 때문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적‧안보적‧경제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NPT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고 그 의무의 이행도 차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불평등 조약'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리고 아래의 표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NPT는 5대 핵보유국의 핵군축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미국 쓰리마일 원자력 발전소

핵은 무기로부터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즈음에 그 과학적 원리가 입증되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직후 전쟁이 끝났다. 가공할 폭발력을 선보인 핵은 이후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추진력으로 핵을 이용해 대서양과 태평양의 강자로 우뚝 섰고, 이후 소련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도 뒤따랐다. 이들 무기에 추진력으로 사용된 핵 발전은 가압경수로(PWR)였는데, 이후 PWR는 대표적인 핵 발전소의 모델이 된다.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에너지로 쓸 수 있다면?' 많은 과학자들과 정부들은 이 질문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원자력을 "세계 번영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핵을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한 움직임은 195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핵을 "기적의 힘"이라고 부르면서 대단히 저렴하고 고갈될 걱정도 없는 에너지원 개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태양의 일부를 지구에 갖다 놓은 것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핵을 무기로 사용하면 인류 절멸의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에너지로 사용하면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8일 유엔 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를 발표했다. 그는 말했다. "핵의 시대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우려해야 할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략) 미국은 여러분과 전 세계 앞에 가공할 만한 핵의 딜레마를 해결할 것을 약속합니다. 인간의 경의적인 발명품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당시 원자력에 대한 환상은 미국 원자력위원회 의장이었던 루이스 스트라우스(Lewis Strauss)가 원전은 "너무 저렴해서 측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났다. 이러한 환상은 1955년 12월 31일자 일본의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원자력을 잠재 전력으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게다가 석탄 등의 자원이 지구상에서 차차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에너지가 갖는 위력은 인류 생존에 불가결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중략) 전기료는 2,000분의 1이면 된다. (중략) 원자력발전에는 화력발전처럼 큰 공장이 필요 없다. 큰 연돌이나 저탄장도 필요 없다. 매일 석탄을 운반하고 재를 버리기 위한 철도나 트럭도 필요 없다. 밀폐식 가스터빈을 이용할 수 있으면 보일러의 물조차 필요 없다. 물론 산간벽지를 선택할 필요도 없다. 빌딩의 지하실이 (핵) 발전소가 될 수도 있다."

'핵무기는 통제하고 원전은 확대하라!'

'신의 불'이라고 불리던 핵을 가장 먼저 손에 넣은 미국은 자신의 핵무기 독점은 유지하면서 핵의 "평화적 이용" 방안 마련에 몰두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11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고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은 철저한 국제 검증 아래에 두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유엔 원자력위원회(UN Atomic Energy Commission)를 만들어 국제적 핵통제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이듬해 미국 정부는 더욱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새로운 핵무기와 핵분열 물질 생산 금지, 우라늄 광산 통제, 핵연료 주기에 대한 국제적 통제와 엄격한 검증 체제 구축, 완전한 핵무기 폐기, 국제 원자력 개발 기구(International Atomic Development Authority)를 창설 등을 담은 '바루크 플랜'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당시 핵 독점의 지위를 누렸던 미국은 진정성이 결여된 말잔치에 불과했다. 미국이 유일한 핵보유국이었던 만큼, 국제 핵통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실천해야 했지만, 이를 거부한 것이다.

뒤이어 집권한 아이젠하워는 에너지로도 가공할 무기로도 이용될 수 있는 '핵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 원자력 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늘리면서 핵보유국들은 핵무기 보유고를 줄이기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의 제안은 바루크 플랜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었다. 바루크 플랜이 핵무기의 완전 폐기를 제안한 반면,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에서는 감축과 통제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우라늄 은행'으로 제안된 IAEA의성격도 변질되었다. IAEA의 당초 기능은 공평하게 우라늄을 모아 이것을 다시 분배하는 것이었는데, 소련이 우라늄 납부를 거부하고 미국 의회가 핵 물질 및 기술 분배의 독점적 권한을 주장하면서 무산되었다. 이렇듯 국제적 핵 통제 구축이 난항을 겪고 있는 사이에 미국, 소련, 영국 등 핵보유국들이 다른 여러 나라들과 양자 협정을 체결해 원자로를 비롯한 핵시설과 핵기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의 구상은 이후 지지와 비판을 함께 수반하게 된다. 옹호자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 없었더라도 핵확산은 불가피했고, 이 구상을 통해 그나마 그 속도와 범위를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 IAEA가 공식적으로 창립돼 국제적 핵 통제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아이젠하워의 정책은 미국 원자력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었고, 오히려 핵확산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반박한다.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이 이미 원자력 기술을 갖춘 상태여서 앞으로 미국의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 수 있으므로 미국이 선수를 쳐야 한다는 '이윤 논리'가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돈을 벌기 위해 핵 기술을 다른 나라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인도, 이스라엘,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원자력 수출에 힘입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거나 그 문턱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NPT와 IAEA의 '생얼'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의 근본 취지는 핵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평화적 이용은 증진하는 대신에, 인류 문명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핵무기의 확산은 방지하자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의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취지와 맥락을 같이한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첫째,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 스스로가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이 구상을 추진한 탓에 국제 사회의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둘째, 미국의 실질적 행보는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과 거리가 멀었다. 그가 백악관에 들어갈 때 1,400개였던 미국의 핵무기는 그가 백악관을 떠날 때는 2만개까지 증가해 있었다. 셋째, 미국은 핵 기술과 물질이 군사용으로 전용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핵 국가에 대한 원자력 수출에 적극적이었다. 훗날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거나 개발에 성공한 많은 나라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원자력을 수입한 나라들이 대부분인데, 여기에는 비밀 핵개발에 성공한 남아프리카 공화국뿐만 아니라 오늘날 미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이란도 포함되어 있다. 끝으로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로 이어진 원전 사고가 입증해준 것처럼, 핵 '발전' 역시 핵 '무기' 못지 않게 인류 생존과 지구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에 창설된 IAEA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 기구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증진하는 대신에, 핵기술이 군사적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1961년에는 최초로 안전조치협정을 만들었고, 1967년에는 기존의 내용을 강화한 새로운 안전조치협정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1970년 NPT가 탄생하면서 IAEA는 비핵 국가의 의무를 검증하는 유엔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설립 취지에 "원자력 에너지의 공헌을 진전시키고 확대한다"고 명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IAEA가 원전 확대를 존재 이유로 삼다보니 '국제 원전 마피아'라는 오명을 자초하고 있다. IAEA의 홍보부장을 지낸 요시다 야스히코의 말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목으로 각국으로부터 온, 원자력 산업 대리인들이 업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만 활동한다. 국제기구라고 하면 뭔가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실태를 냉정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IAEA의 횡포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유엔 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이다. WHO는 1956년까지는 "원자력 산업과 방사능원의 증대에 의해 미래 세대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1959년 WHO는 IAEA와 맺은 협약을 맺고는 IAEA의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IAEA 입장이 다른 것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핵 강대국들이 유엔을 장악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이에 따라 WHO는 IAEA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IAEA와 WHO의 협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IAEA의 횡포는 체르노빌 사태에 대한 평가에서 또 다시 입증된다. IAEA는 2006년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약 4000명이라고 발표했다. 반론은 즉각 구소련에서 원전 설계에 관여했던 과학자들을 통해 나왔다. 이들은 IAEA의 평가가 ▲영어 이외의 슬라브어로 된 1차 차례를 이용하지 않았고 ▲방사성 물질 43%가 배출된 지역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의도적으로 방사선 농도의 수치를 과소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98만5천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NPT를 살펴보자. 1968년부터 서명에 들어가 1970년 3월에 발효된 NPT는 핵무기 확산을 예방하고 궁극적으로 완전한 핵무기 폐기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대표적인 국제 군축 조약이다. NPT가 발효될 당시에는 회원국이 43개국에 불과했으나 점차 늘어나 2012년 2월 현재 189개국으로 늘어났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에 줄곧 비회원국으로 남아 있으면서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으며, 북한도 이들 나라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 네 나라가 NPT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IAEA의 감시와 사찰에 동의해야 한다.

NPT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비핵 국가와 핵보유국 사이의 균형된 의무로서 '비확산(non-proliferation)'과 '핵군축(disarmament)'을 함께 요구하는 한편, 회원국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비확산'은 비핵 국가들이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보장받는 대신에 이를 핵무기 개발로 전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핵군축'은 핵보유국의 핵무기 폐기 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NPT는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확산'에 초점을 맞춘 조약이다. 또한 생물무기금지협약, 화학무기금지협약, 대인지뢰금지협약, 집속탄금지협약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군축 조약은 해당 무기의 사용 및 실험 금지와 폐기를 명시한다. 반면 NPT는 핵보유국의 핵무기 사용 금지는 물론이고 추가적인 핵무기 제조 금지와 핵폐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NPT는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을 했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인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하면서 핵폐기 의무를 '선의(good faith)'에 맡겼다. 반면 다른 회원국들의 핵무기 개발은 금지하고 IAEA를 통해 이를 검증하는 대신에 평화적 핵이용을 보장하고 있다.

NPT는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189 대 4'(회원국 대 비회원국)라는 스코어가 보여주듯, NPT는 군비 통제 조약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184 대 9'(비핵 국가 대 핵보유국)라는 숫자는 NPT 등장 이전에 우려되었던 핵확산이 이 조약 발효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비확산 분야의 베테랑 외교관이었던 조지 번George Bunn은 "NPT가 없었다면, 오늘날 9개국이 아니라 30~40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NPT가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 규범을 확고히 함으로써 비핵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동기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핵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것은 NPT 때문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적‧안보적‧경제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NPT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고 그 의무의 이행도 차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불평등 조약'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리고 아래의 표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NPT는 5대 핵보유국의 핵군축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