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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1일 금요일

핵무기는 곧 핵전쟁의 유발요인

이글은 레디앙 2013-05-30일자 기사 '핵무기는 곧 핵전쟁의 유발요인'을 퍼왔습니다.
[전쟁과 평화] 쿠바 미사일 위기 50년, 남북의 민중이 반드시 알아야 할 교훈

혹자는 현재의 한반도 전쟁 위험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닮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쿠바 미사일 위기’란 무엇이었나?
미국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이 벌어졌다면 단시간 내에 최소 1억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과연 인류 역사의 최고 위험이라 불릴 만했다.
쿠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는 미국의 시도, 즉 1961년 4월 피그스만 침공(몽구스 작전)이 실패한 후, 1962년 5월 소련 흐루시초프는 미국의 쿠바 침공을 억제하기 위해 쿠바에 소련 핵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구상을 제안했다.
7월에 흐루시초프와 카스트로는 비밀합의를 체결했고 미사일 기지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미국이 터키에 미사일을 배치한 것에 대한 맞대응이기도 했다. 1962년 10월 14일 미국 U-2 정찰기는 준중거리 미사일(사거리 1,000-2,500km) 기지와 중거리 미사일(사거리 2,500-3,5000km) 기지 건설 장면을 촬영했다. 이로부터 13일 간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되었다.


[사진설명] 나무상자에 담긴 소련 폭격기 Il-28을 갑판에 실은 소련 화물선 위를 미국 해군기가 비행하는 장면.

미국은 공중과 해상을 통해 쿠바를 공격하는 계획을 검토했으나 군사봉쇄를 선택했다. (케네디 정부는 여러 이유 때문에 이른 ‘격리’라고 불렀다.) 미국은 공격용 무기가 쿠바에 전달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고 쿠바에 건설 중이거나 완성된 소련 미사일 기지를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10월 24일, 후르시초프는 봉쇄는 인류를 핵전쟁의 심연으로 몰아넣은 공격행위라 규정하며 맞대응했으나, 비밀협상 채널이 개설되었다.
이 와중에 소련 선박은 봉쇄를 뚫기 위한 시도를 지속했고 미국은 해군 전함에 경고사격 후 발포하라는 명명을 내렸다. 10월 27일 미국 U-2 정찰기가 격추되면서 즉각적 보복조치가 검토되었으나 케네디는 협상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10월 28일 양국은 극적으로 협상 타결에 도달했다. 소련은 쿠바의 공격무기를 해체하여 소련으로 되돌려 보내며 이를 국제연합을 통해 검증하고, 미국은 쿠바를 결코 침공하지 않는다고 공개 선언한다는 것이 공개된 합의였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에 대항에 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한 핵탄두 장착 중거리미사일 주피터를 해체하다는 비밀합의도 제공해야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세계 외교사의 전설로 남아 있고 국제정치학이나 협상학에는 영감의 원천이다. 그 후 50년 동안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수만 페이지의 해석과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당시 미국과 소련 핵전력의 포괄적 전투서열을 다룬 것은 거의 없다.
1962년 10월 중반부터 쿠바 해상봉쇄가 끝나는 1962년 11월 20일까지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중 일부는 높은 수준의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무기 체계 상태를 상세히 평가하면 위기의 성격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그 결과 쿠바 미사일 위기는 그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위험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번 글에서는『핵과학자회보』에 실린 로버트 S. 노리스와 한스 M. 크리스텐의 「쿠바 미사일 위기: 1962년 10월·11월의 핵 전투서열」을 소개하며 당시에 발발할 수도 있었던 세계 핵전쟁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검토한다. 그로부터 한반도 전쟁 위험에 관한 중요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위험성 평가

위기가 최고조가 달할 당시 미국은 약 3,500개의 핵무기가 명령에 따라 사용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반면 소련은 아마도 300-500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나 많은 규모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양측의 6개 정도의 미사일로도 파국이 벌어질 수 있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케네디와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핵전쟁을 시작할 의도가 없었고 핵전쟁을 막기 위해 모든 시도를 다했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들이 예측할 수 없거나 통제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1962년 10월 전면 핵전쟁이 발발했을 가능성을 계측하기 위해선 양국의 핵전력 전투서열을 쿠바 인근 지방의 핵전력, 유럽 지역의 핵전력, 세계전력이란 세 범주로 나눠 검토해야 한다.
지방 전력은 쿠바 내부 또는 그 주변에 배치될 수 있는 핵무기를 뜻한다.
지역전력은 유럽에 배치되어 소련의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미국 전술핵무기와 소련 서부에 배치되어 유럽의 목표물을 조준한 소련 핵무기를 말한다.
세계전력은 세계적 핵전쟁에 사용되는 전략핵무기로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장거리 폭격기로서, 이는 미국과 소련, 상대방 영토에 도달할 수 있다.
쿠바 인근 지방의 핵전력
쿠바 또는 그 인근에서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시나리오는 쿠바를 침입한 미군을 격퇴하기 위해 소련이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만약 미국 군인이 피살되었다면 미국은 보복하고 소련은 그에 대응해야 했을 것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미국과 소련의 지방전력

미국의 군사봉쇄가 개시된 10월 24일 시점에 쿠바에는 다섯 개 유형의 핵탄두 158개가 배치되었거나 배치될 예정이었다. 이는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이 정확히 몰랐던 사실이다.
그 중 95~100개가 사용될 수 있는 상태였다. 중거리 탄도미사일 SS-5는 쿠바에 도착하지 않았다. 10월 28일 준중거리 탄도미사일 SS-4 중 6-8기가 작전태세에 도달했다.
또한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폭격기 IL-28(일류신-28)은 아직 나무상자에 담겨 있었다. 가장 수가 많고 위험한 사용가능 핵무기는 대지 순항미사일, FKR-1 2개 연대를 위한 80개의 핵탄두였다. 만약 미국이 침공했다면 이 미사일이 관타나모의 미 해군기지와 쿠바 해안의 미군 해병대 합동부대를 공격했을 것이다.



[사진설명] 쿠바에 배치될 소련 미사일의 사정거리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미국의 쿠바 침공을 위한 핵무기 계획이다. 작전계획이 처음 수립되었을 때는 미 합동참모부가 핵무기 사용을 고려했으나 10월 31일에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한 쿠바에 배치된 소련군을 지휘하는 대장 이사 플리예프가 FROG 단거리 미사일(일명 루나)이나 FKR-1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논쟁이 많다.
그러나 학자인 스티븐 자로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최근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크레믈린의 특별한 허가가 없다면 쿠바에 배치된 소련군 지휘부가 FRK, 루나, IL-28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증거를 볼 때 모스크바는 핵무기 사용을 막을 수 있는 실제적인 기술적 수단이 없었고, 쿠바 지휘부는 전쟁이 발발한다면 핵무기 보관 부대의 동의라는 조건에서 모스크바의 승인 없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소련의 전술핵무기 배치가 핵전쟁 억지라는 목적을 지닌 게 아니라 실제 사용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련은 전술핵무기의 존재를 공개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전술핵무기의 존재는 소련이 붕괴한 후 1990년대 초반에야 세상에 드러났다. 전술핵무기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할 때 사용하기 위해 배치되었고 미국의 정보기구는 당시에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미국으로서는 준중거리 미사일 SS-4가 미국 도시를 조준하는 게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다. 쿠바에 배치된 소련 미사일부대의 지휘자였던 이고르 스테첸코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미사일 해체 지시가 내려온 10월 28일 시점에 6-8기만이 작전태세에 도달할 수 있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미사일이 미국 도시 중 어디를 조준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동부해안을 따라, 사거리 1,300km 내에는 북쪽으로는 워싱턴DC, 서쪽으로는 뉴올리언즈, 휴스턴, 달라스, 북서쪽으로 신시내티가 있다. 정확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도시 내부 또는 주변에서 1 메가톤의 폭파로 수십만 명이 사망할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유럽지역 핵전력

유럽 전역(戰域)에서 미국과 나토, 소련은 준중거리 미사일, 중거리 미사일, 전폭기를 보유했다. 만약 핵전쟁이 유럽과 소련 서부 지역에 한정된다면 양측이 보유한 핵무기 규모는 비슷했다.
하지만 핵전쟁에 관한 미국의 최고 작전계획인 단일통합작전계획(SIOP)에 따라 대서양 사령부와 유럽사령부의 작전계획이 통합되었기 때문에 핵전쟁이 유럽과 소련 서부에 한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SIOP은 사령부들의 중복 공격을 피하기 위해 공격목표를 조정하려고 도입되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유럽의 역할을 검토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유럽 전역의 지역전력

1962년 미국은 약 4,375개의 핵무기를 유럽에 배치했다. 대부분은 전술핵무기로, 155mm 포탄과 203mm 포탄,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 핵지뢰, 단거리 미사일로 구성되었다.
그렇지만 약 10%, 또는 450개의 핵무기가 탄도미사일(토르, 주피터), 순항미사일(마타도르, 메이스), 미공군 전폭기, 미해군의 항공모함 탑재기에 배치되었다. 미국과 나토의 전폭기는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영국, 네덜란드의 기지와 미국 6함대 항공모함에 배치된 핵폭탄을 공급 받을 수 있었다.


[사진설명] 핵무기를 탑재한 중거리 미사일 주피터. 미국은 이탈리아와 터키에 배치된 주피터 미사일의 철수를 비밀리에 합의했다.

소련은 550개의 SS-4, SS-5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수는 유럽의 목표물을 겨냥하고 있었고, 일부는 태평양 연안 지역의 미군 기지와 미국의 동맹국을 겨냥했을 것이다. 소련의 전폭기도 서유럽을 타격할 임무를 안고 있었을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세계 핵전력
만약 쿠바에서 핵무기가 사용되었다면 핵전쟁의 단계적 상승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전략핵무기의 사용가능성도 상당히 컸다. 10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쿠바에서 서반구 어떤 국가로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소련이 미국에 공격을 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게 우리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 이는 소련에 대한 전면적 보복 대응을 요구할 것이다.”


[표3] 미국과 소련의 전략 핵전력

1962년 시점에서 미국의 전략 핵전력 규모는 소련보다 수 배 더 컸고, 훨씬 더 신뢰성이 높았다. 예를 들어 10월 시점에 완전히 준비를 갖춘 3,500개의 핵무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고, 이는 도합 6,300 메가톤의 위력을 지녔다.
경계 태세가 최고조에 오른 11월 4일에 미국 전략 공군 사령부는 1,479개의 폭격기, 182개의 탄도미사일, 총합 2,952개의 핵무기와 1,003개의 공중급유기를 대기시켜서 보복공격을 준비했다.
소련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약 42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했다.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은 보유하지 못했다. 160개의 장거리 폭격기는 무시무시한 미국-캐나다 공중방어체계에 대면해야 했다. 미국-캐나다 방어체계는 공대공 요격 핵미사일을 탑재한 전투기, 지대공 요격미사일 BOMARC,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로 구성되었다.
소련의 장군 아나톨리 그리코프에 따르면 흐루시초프와 그의 군사고문은 1962년 시점에 “미국의 전략 핵전력이 소련보다 17 대 1로 앞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새로운 인식

쿠바 미사일 위기는 양측의 핵전력이 상대적으로 미완성된 무기경쟁의 초기 단계에 전개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미국과 소련의 핵전력이 대략적으로 평형성을 갖추게 되었다. 미국과 소련의 핵경쟁이 더욱 위험한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제 우발적이든 아니면 고의적이든 간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폭포효과로 인해 곧바로 대재앙을 낳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조치들은 매우 논리적이고, 신중하며, 별로 과격하지 않은 대응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혹자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한반도 전쟁위험에 주는 교훈을 위기를 이겨내는 리더십이나 협상의 기술에서 찾는다. ‘합리적 선택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라’, ‘열린 토론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라’, ‘오해가 생겼을 때 바로잡을 수 있는 안정적인 소통경로를 확보하라’ 등등. 물론 이는 어떤 위기에 대처했을 때나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쿠바 미사일 위기가 주는 교훈은 매우 단순한 것이다. 핵무기를 개발 또는 도입해 배치하려는 구상이나 고도의 핵무기 체계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핵전쟁 유발요인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리더십이나 협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핵위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핵무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핵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세계적 핵전력은 북한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핵개발 계획을 자극한다. 역으로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은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 정책, 즉 북한에 대한 핵공격 계획이 영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핵무기는 억지력의 원천이 아니라 전쟁 유발의 원천이 된다. 바로 이 사실이 남과 북의 민중이 분명히 깨달아야 할 교훈이다. 


By 임필수

2013년 5월 22일 수요일

북한 핵무기 40~50개, 그 가공할 시나리오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21일자 기사 '북한 핵무기 40~50개, 그 가공할 시나리오는?'를 퍼왔습니다.
[정욱식의 북핵이야기](19) 박근혜-오바마, 2016년을 생각해보라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 공조기간은 미국의 대선이 예정된 2016년까지이다. 그런데 조속히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열지 못하면 가공할 만한 시나리오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10개 안팎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스스로 공언한 것처럼 "핵 억제력"을 늘려갈 경우 2016년까지 40개 안팎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면 이러한 추정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4월 초 북한은 불능화되었던 5메가와트 실험용 흑연감속로를 복구해 재가동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 원자로를 재가동하면 북한은 핵무기 1~2개 분량에 해당하는 8킬로그램 정도의 플루토늄을 매년 생산할 수 있다. 또한 영변에 있는 현대식 우라늄 농축 공장을 가동하면 매년 40킬로그램 정도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고, 이는 핵무기 2개 분량에 해당한다.

그런데 복병이 있다. 바로 완공을 눈앞에 둔 30메가와트급 실험용 경수로이다. (38 노스)가 영변에 건설 중인 경수로의 최근 사진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은 이르면 올해 여름부터 이 원자로를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이 원자로에 연료를 제공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시설도 가동 중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북한이 이 경수로를 핵무기 개발용으로 전용할 경우 2016년까지 16개의 핵무기를 추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지난 2008년 6월 27일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2013년 4월, 북한은 흑연감속로의 재가동을 선언했다. ⓒ 뉴시스

또 하나의 복병도 있다. 북한이 제2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만약 그렇다면, 북한의 핵 능력은 훨씬 강해질 수밖에 없다. 약 2000개의 원심분리기로 가동되는 비밀 시설로 우라늄 핵폭탄을 만들면 매년 2개 정도를, 저농축 우라늄을 30메가와트 경수로 연료로 사용해 플루토늄을 만들면 매년 5~6개를 추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정을 토대로 ISIS는 북한이 2016년까지 최대 48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30메가와트 경수로에 매력 느낄 듯

우라늄 농축 시설과 30메가와트 경수로 사이의 관계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째는 북한이 농축 프로그램을 고농축 우라늄 생산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는 농축 프로그램을 경수로 연료 제공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셋째는 두 가지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이 가운데 첫째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낮다. 고농축 우라늄만 생산하면 30메가와트 경수로를 가동시킬 연료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시나리오도 고성능 핵폭탄을 만드는데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은 농축 프로그램의 일부는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사용하면서 경수로 연료 생산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북한이 전력난 해소용으로 경수로 운영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30메가와트 경수로 자체적으로도 전력을 생산할 수 있지만, 이 경수로의 운영 노하우를 살려 더 큰 규모의 경수로 건설에 나서려고 할 것이다.

둘째는 경수로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수로는 일반적으로 3~5퍼센트 농도의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한다. 이에 따라 경수로 가동 후 나온 사용후 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는 있지만 그 농도가 70% 정도여서 무기급인 90% 이상에는 못 미친다. 그러나 경수로에 사용할 저농축 우라늄의 농도를 10% 수준으로 높이면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으로서는 전력난도 일부 해결하고 "핵 억제력"도 증강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경수로 가동에 있는 것이다. 북한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면서 그 방도 가운데 하나를 "자립적 핵동력 공업을 발전시키고 경수로를 개발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시간은 한미동맹의 편이 아니다

정리하자면, 북한은 공개된 핵 시설만으로도 2016년까지 약 40개를, 여기에 비밀 농축 시설까지 보유하고 있다면, 약 5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더구나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퇴임 직전에 경고했던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 시점도 2015~16년이다. 만약 북한이 40~5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는, 이 가운데 일부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하게 된다면,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될까? 세 가지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다.

먼저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다. 어느 일방에 의한 의도적인 전면전 가능성은 낮다고 하더라도, 우발적 무력 충돌 및 확전의 위험성은 이미 높아지고 있다. 특히 북한은 핵무력이 증강될수록 그 위력을 믿고 정전체제를 무력화하려는 군사 모험주의적 행태를 지속하려고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능동적 억제'를 공식화한 상태이다. 핵심 골자는 북한의 도발 시 "현장 지휘관이 먼저 조치를 취하고 나중에 보고하라", "도발 원점뿐만 아니라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확전불사론이다. 여기에 더해 북한의 핵무기 사용 징후시 선제타격까지 검토하고 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화재로 이어지는 봄철 산불처럼 한반도 정세는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의 무력 충돌 발생 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북한은 핵 위협을 동원해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려고 할 것이다. 특히 북한이 오키나와와 괌, 더 나아가 하와이와 미국 본토까지 다다르는 핵미사일을 보유하게 될 경우 이러한 가정은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이 북한의 위협에 굴복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오히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재확인시키기 위해 대북 무력시위를 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핵 모험주의, 남한의 '능동적 억제', 미국의 '확장 억제'가 악순환을 형성하면 한반도는 정전체제가 그 뿌리부터 흔들리면서 열전(熱戰)의 위험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핵무력이 질량적으로 강화될수록 한국의 핵무장론도 커지게 될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민의 60~70%가 핵무장에 찬성하고 있다. 이에 비춰볼 때 북한의 핵보유량이 40~50개로 늘어나면 남한의 핵무장론도 동반 상승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또 다시 북한의 위협과 한국의 핵무장론을 '이중 억제'하고자 핵 투발수단을 동원한 무력시위에 나서면 한반도 정세는 더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것도 2013년 봄에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상유지의 한 축이 북한-남한-일본으로 이어지는 핵 도미노 현상을 예방하는 데 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현상유지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북한발 핵확산의 우려도 커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북한은 경제적 목적이든,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든, 이란 등 다른 나라에 핵을 수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핵보유량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북한과 이란이 2012년 9월 '과학협력협정'을 체결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부채질한다. 이 협정에는 "양국은 전문성을 교환"하고, "과학 연구 장비를 함께 사용"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시리아와 2002년에 과학협력협정을 맺고 시리아에 원전 제공을 시도했다는 전례를 들어, 북한-이란 협정이 핵과 미사일 협력 강화의 전주곡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한편 북한은 6자회담 합의를 통해 핵을 외부에 이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6자회담 합의 무효화를 선언한 상태이다. 또한 2013년 4월 1일에는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을 제정하면서 "핵무기나 그 기술, 무기급 핵물질이 비법적으로 루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담보하기 위한 보관관리체계와 질서를 세운다"고발표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대목은 "비법적으로"라는 표현이다. 양자 협정을 체결한 이란과의 핵ㆍ미사일 거래는 합법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염두에 둔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미국이 북한과 이란의 핵 거래를 구체적으로 포착할 경우 북한이 금지선(red line)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하곤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고 할 것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가 급격히 고조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위험한 시나리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의 딜레마도 커지게 된다. 미국은 북한의 핵 수출이 포착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핵전쟁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대북 군사행동에 나서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한반도, 그런데도 인내를?

지난 5월 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한미동맹의 대북정책은 '봉쇄'의 성격이 짙다. 외교적으로는 까다로운 대화 조건을 제시하면서 북한을 고립화시키고, 경제적으로는 다양한 수준의 제재를 총동원하고, 군사적으로는 억제와 보복 능력을 강화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또한 대북 압박은 중국에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러한 봉쇄 위주의 정책은 그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현상유지의 장기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현상유지가 과연 지속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봉쇄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될 것이고, 북한은 '게임 체인저'가 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정전체제를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 현상유지 체제는 불안정성은 가중되는 반면에 지속가능성은 위축될 공산이 크다. 이는 부지불식간에 장기간의 현상유지를 염두에 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나 이와 흡사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한다. 재검토의 핵심은 평화적인 현상 변경, 즉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면서 북핵 문제를 여기에 녹여낼 수 있는 능동적인 태도이어야 한다. 시간은 결코 한미동맹의 편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2013년 4월 10일 수요일

한반도 원시시대를 원하면 치킨게임을 하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4-10일자 사설 '한반도 원시시대를 원하면 치킨게임을 하라'를 퍼왔습니다.
[사설] 너도죽고 나도죽고 모두죽자는 미친짓 안돼… 박 대통령 조건없는 대화 나서라

남북 사이의 긴장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남북한 당국 모두 벼랑끝전술이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파국을 향해 극단적인 모험주의로 치달아 상대를 굴복시키려 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이 두가지 전술은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핵무기 선제공격으로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제1타격 능력과 선제공격을 당하고도 나머지 핵무기로 상대방에게 역시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제2타격 능력을 모두 갖춘 미소 강대국이 벌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같은 가상 전쟁놀음의 결과가 이른바 ‘상호 확실한 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이다. 약자로 줄여 ‘MAD’라 부른다. 글자 그대로 ‘미친 짓’이다.

MAD = You Die, I Die, All Die

지금 한반도에서 다시 그런 미친 짓(MAD)이 실제 벌어지려 하고 있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다. 북한은 이미 ‘정교한 형태의 핵무기’는 아닐지라도 ‘엉성한 형태의 핵폭탄’은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남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동맹국 미국의 핵우산속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핵무기가 아니다.

북한이 지난달 무인타격기 공습과 대공미사일 발사 훈련 모습. ©연합뉴스


만약 남북간에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남북 양측이 가지고 있는 재래식 무기와 화력만으로도 한반도 대부분은 1주일안에 초토화된다. 최전방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도와 수도권 일대에 포탄은 비오듯 쏟아지고, 수백만대의 자동차, LPG와 도시가스(LNG), 전국의 주유소와 각종 화학공장 등이 불타거나 폭발하는 끔찍하고 참혹한 상황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북한 공산 정권도 궤멸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남은 것은 글자 그대로 수렵채취 시대의 한반도와 잿더미 뿐.   

전쟁 위협이 상존하는 한, 최소한 수도권의 2천5백만 국민은 북한 군부 강경파나 모험주의자들의 볼모나 다름없다. 이것은 치킨게임이나 벼랑끝전술 같은 가상 게임에서 상정하는 조건과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평화통일을 이루거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지 않는는 한 숙명적으로 부닥쳐야 하는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엄혹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원칙과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북한은 치킨게임의 법칙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타협과 강경 노선 중 타협책을 버리고 강경일변도로 나오고 있다. 남북간의 교류협력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며 남쪽을 압박하고 있다. 상대방이 두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치킨게임의 이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단계적인 전략을 밟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비롯한 북한 지도부가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모두 죽자(You die, I die, All die)”는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공식적인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대치 상태가 계속될 때 ‘우발적 사고에 의한 전면전’의 가능성은 상존하는 것이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 조건없는 대화를 제의하라 

그래서 우리 정부에게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한반도의 위기관리가 최우선 국정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와 여기서 비롯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정권이 뿌린 씨앗의 결과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를 원시시대로 돌리고 싶다면 북한 당국에 맞서 치킨게임을 해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북한 당국과 조건없는 대화에 나서겠다고 공식 제의하라.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에게 특사로 나서달라고 요청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과 달포 전 취임식에서 헌법 제69조에 따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된다.  
미디어오늘 | media@mediatoday.co.kr  

2013년 2월 6일 수요일

북한 3차 핵실험은 1,2차와 왜 다른가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2-05일자 기사 '북한 3차 핵실험은 1,2차와 왜 다른가'를 퍼왔습니다.
핵무기 실전 배치 앞둔 ‘마지막 단계’

북한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의 움직임 등 북한의 3차 핵실험 실시가 임박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1월 27일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에서 “국가적 중대조치”에 대한 결심을 밝혔으며, 3일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기술적 준비를 모두 마치고 최고 지도부의 ‘정치적 결단’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6년과 2009년에도 핵실험을 실시한 바 있으나, 3차 핵실험을 앞둔 북한의 태도나 이를 바라보는 한.미의 인식이 1,2차 때와는 사뭇 다르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지난 1일 “현 상황은 1,2차 핵실험과는 다른 엄중한 상황”이며 “북한의 3차 핵실험은 핵개발을 위한 ‘마지막 단계’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3차 핵실험은 1,2차 때의 경험과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에 기초해 핵무기 실전배치에 들어서기 전 ‘마지막 단계’라는 의미다.

3차 핵실험, 어떻게 실시될까

국내외 전문가들은 3차 핵실험의 내용과 방식, 목표에 대해 다양한 관측을 내놓고 있다. 

당초 북한의 3차 핵실험은 2차 핵실험을 실시한 서쪽 갱도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2009년 이후 새로 굴착된 남쪽 갱도에서도 2일까지 사실상 핵실험 준비가 마무리된 것으로 파악되면서, 북한이 서쪽 및 남쪽 두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5일 보도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한꺼번에 두 군데 이상에서 동시에 할 것 같다”며 북한이 언급한 ‘높은 수준의 핵시험’은 “소형 핵무기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AP/뉴시스 미 상업용 위성 지오아이가 지난 4일 북한 풍계리의 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사진.

핵실험을 여러 차례 할수록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례처럼 북한이 동시다발적으로 핵실험을 할 경우 핵무기 소형화 시기를 단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미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로켓 발사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력을 증명한 상태에서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을 정도의 소형화 기술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핵실험을 거쳐 실제 핵무기를 전력화하려면 이를 운반수단인 사거리 1만km 이상의 미사일에 탑재해야 한다. 군 당국은 탄두 소형화의 기준을 북한 스커드B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중량 1t, 직경 90cm 이내로 보고 있다.

고농축 우라늄 실험 할까?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관련, 핵물질로 플루토늄을 쓸지 고농축우라늄을 쓸지도 관심사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4일 국회에서 이번 핵실험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는 관측에 대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어느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 만한 HEU를 갖고 있다고 보는지 묻자 “몇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북한이 지난 2010년 11월 미국의 핵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우라늄농축시설을 공개한 후로 북한이 이를 이용한 3차 핵실험을 실시할지 여부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모아왔다. 

실제 고농축우라늄으로 핵실험을 할 경우 북핵 문제의 양상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통한 HEU 생산이 2~3년 내에 가능해지면서 다량의 핵무기 생산 체제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플루토늄 방식의 재처리는 노출이 쉬워 감시와 통제가 가능하지만, 고농축우라늄은 소규모 시설에서 제조, 은닉 및 소규모 운반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어디서 얼마나 농축작업이 이뤄지는지 추적하는 게 사실상 어려워져 이전처럼 국제사회가 감시하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이는 미국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원칙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으로, 1,2차 때의 ‘비핵화’를 위한 협상 또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최근 국방부가 공개한 풍계리 핵실험장 수평갱도의 구조를 보면 끝부분이 꼬여 있으며 9중 차단문과 3중 핵폭풍.잔해 차단벽이 설치돼 있다. 이로 인해 핵실험이 실시되더라도 한.미 당국의 방사능 물질 탐지 등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핵보유국’ 인정으로 가나?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높은 수준의 핵시험’을 예고한 가운데,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북미 관계가 본질적으로 다른 국면으로 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기술력을 입증한 데 이어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빠른 시일 내에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상, 미국 정부의 접근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통해 미국이 자신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북미 관계 정상화나 평화체제 협상 등에 나설 것을 의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전과 다른 차원의 핵능력을 한 손에 쥐고 북미협상을 주도하려는 타산이라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지난해 5월 헌법 서문을 개정해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명시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 또한 이제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대북 협상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새 전략을 짜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암묵적으로 핵보유 사실을 전제하고 대북 협상에 나서는 게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것이다. 

한.미 당국은 연일 3차 핵실험을 ‘저지’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하며 다른 한 축으론 3차 핵실험을 강행할 시 더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핵실험을 막기 위한 중국의 역할을 촉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에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여부가 북한의 판단에 달린 일이며,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문제는 미국이 과연 3차 핵실험 이후 달라진 북미관계의 틀에 따라 비핵화 논의를 넘어서는 대북협상에 선뜻 나설 것이냐다.

현재 한.미가 동해상에 핵잠수함과 이지스함을 총출동시켜 대북 '무력시위'를 하듯 대북 압박을 이어가고 북한은 이에 반발하면서 서로가 정세를 격화시키는 긴장 국면이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에 이른 봄이 오기를 낙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 보인다.

ⓒ뉴시스(국방부 제공) 한국과 미국의 해군 함정들이 2월 4일 오후 동해상에서 연합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정지영 기자 jjy@vop.co.kr

2012년 3월 1일 목요일

고삐풀린 원자력 신화, 그 오만의 대가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1일 기사 '고삐풀린 원자력 신화, 그 오만의 대가는…'을 퍼왔습니다.
[정욱식의 '핵과 인간'] 원전을 향한 질주

핵은 무기로부터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즈음에 그 과학적 원리가 입증되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직후 전쟁이 끝났다. 가공할 폭발력을 선보인 핵은 이후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추진력으로 핵을 이용해 대서양과 태평양의 강자로 우뚝 섰고, 이후 소련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도 뒤따랐다. 이들 무기에 추진력으로 사용된 핵 발전은 가압경수로(PWR)였는데, 이후 PWR는 대표적인 핵 발전소의 모델이 된다.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에너지로 쓸 수 있다면?' 많은 과학자들과 정부들은 이 질문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원자력을 "세계 번영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핵을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한 움직임은 195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핵을 "기적의 힘"이라고 부르면서 대단히 저렴하고 고갈될 걱정도 없는 에너지원 개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태양의 일부를 지구에 갖다 놓은 것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핵을 무기로 사용하면 인류 절멸의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에너지로 사용하면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8일 유엔 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를 발표했다. 그는 말했다. "핵의 시대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우려해야 할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략) 미국은 여러분과 전 세계 앞에 가공할 만한 핵의 딜레마를 해결할 것을 약속합니다. 인간의 경의적인 발명품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당시 원자력에 대한 환상은 미국 원자력위원회 의장이었던 루이스 스트라우스(Lewis Strauss)가 원전은 "너무 저렴해서 측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났다. 이러한 환상은 1955년 12월 31일자 일본의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원자력을 잠재 전력으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게다가 석탄 등의 자원이 지구상에서 차차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에너지가 갖는 위력은 인류 생존에 불가결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중략) 전기료는 2,000분의 1이면 된다. (중략) 원자력발전에는 화력발전처럼 큰 공장이 필요 없다. 큰 연돌이나 저탄장도 필요 없다. 매일 석탄을 운반하고 재를 버리기 위한 철도나 트럭도 필요 없다. 밀폐식 가스터빈을 이용할 수 있으면 보일러의 물조차 필요 없다. 물론 산간벽지를 선택할 필요도 없다. 빌딩의 지하실이 (핵) 발전소가 될 수도 있다."

'핵무기는 통제하고 원전은 확대하라!'

'신의 불'이라고 불리던 핵을 가장 먼저 손에 넣은 미국은 자신의 핵무기 독점은 유지하면서 핵의 "평화적 이용" 방안 마련에 몰두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11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고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은 철저한 국제 검증 아래에 두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유엔 원자력위원회(UN Atomic Energy Commission)를 만들어 국제적 핵통제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이듬해 미국 정부는 더욱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새로운 핵무기와 핵분열 물질 생산 금지, 우라늄 광산 통제, 핵연료 주기에 대한 국제적 통제와 엄격한 검증 체제 구축, 완전한 핵무기 폐기, 국제 원자력 개발 기구(International Atomic Development Authority)를 창설 등을 담은 '바루크 플랜'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당시 핵 독점의 지위를 누렸던 미국은 진정성이 결여된 말잔치에 불과했다. 미국이 유일한 핵보유국이었던 만큼, 국제 핵통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실천해야 했지만, 이를 거부한 것이다.

뒤이어 집권한 아이젠하워는 에너지로도 가공할 무기로도 이용될 수 있는 '핵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 원자력 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늘리면서 핵보유국들은 핵무기 보유고를 줄이기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의 제안은 바루크 플랜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었다. 바루크 플랜이 핵무기의 완전 폐기를 제안한 반면,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에서는 감축과 통제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우라늄 은행'으로 제안된 IAEA의성격도 변질되었다. IAEA의 당초 기능은 공평하게 우라늄을 모아 이것을 다시 분배하는 것이었는데, 소련이 우라늄 납부를 거부하고 미국 의회가 핵 물질 및 기술 분배의 독점적 권한을 주장하면서 무산되었다. 이렇듯 국제적 핵 통제 구축이 난항을 겪고 있는 사이에 미국, 소련, 영국 등 핵보유국들이 다른 여러 나라들과 양자 협정을 체결해 원자로를 비롯한 핵시설과 핵기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의 구상은 이후 지지와 비판을 함께 수반하게 된다. 옹호자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 없었더라도 핵확산은 불가피했고, 이 구상을 통해 그나마 그 속도와 범위를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 IAEA가 공식적으로 창립돼 국제적 핵 통제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아이젠하워의 정책은 미국 원자력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었고, 오히려 핵확산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반박한다.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이 이미 원자력 기술을 갖춘 상태여서 앞으로 미국의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 수 있으므로 미국이 선수를 쳐야 한다는 '이윤 논리'가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돈을 벌기 위해 핵 기술을 다른 나라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인도, 이스라엘,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원자력 수출에 힘입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거나 그 문턱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NPT와 IAEA의 '생얼'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의 근본 취지는 핵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평화적 이용은 증진하는 대신에, 인류 문명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핵무기의 확산은 방지하자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의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취지와 맥락을 같이한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첫째,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 스스로가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이 구상을 추진한 탓에 국제 사회의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둘째, 미국의 실질적 행보는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과 거리가 멀었다. 그가 백악관에 들어갈 때 1,400개였던 미국의 핵무기는 그가 백악관을 떠날 때는 2만개까지 증가해 있었다. 셋째, 미국은 핵 기술과 물질이 군사용으로 전용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핵 국가에 대한 원자력 수출에 적극적이었다. 훗날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거나 개발에 성공한 많은 나라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원자력을 수입한 나라들이 대부분인데, 여기에는 비밀 핵개발에 성공한 남아프리카 공화국뿐만 아니라 오늘날 미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이란도 포함되어 있다. 끝으로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로 이어진 원전 사고가 입증해준 것처럼, 핵 '발전' 역시 핵 '무기' 못지 않게 인류 생존과 지구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에 창설된 IAEA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 기구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증진하는 대신에, 핵기술이 군사적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1961년에는 최초로 안전조치협정을 만들었고, 1967년에는 기존의 내용을 강화한 새로운 안전조치협정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1970년 NPT가 탄생하면서 IAEA는 비핵 국가의 의무를 검증하는 유엔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설립 취지에 "원자력 에너지의 공헌을 진전시키고 확대한다"고 명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IAEA가 원전 확대를 존재 이유로 삼다보니 '국제 원전 마피아'라는 오명을 자초하고 있다. IAEA의 홍보부장을 지낸 요시다 야스히코의 말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목으로 각국으로부터 온, 원자력 산업 대리인들이 업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만 활동한다. 국제기구라고 하면 뭔가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실태를 냉정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IAEA의 횡포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유엔 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이다. WHO는 1956년까지는 "원자력 산업과 방사능원의 증대에 의해 미래 세대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1959년 WHO는 IAEA와 맺은 협약을 맺고는 IAEA의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IAEA 입장이 다른 것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핵 강대국들이 유엔을 장악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이에 따라 WHO는 IAEA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IAEA와 WHO의 협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IAEA의 횡포는 체르노빌 사태에 대한 평가에서 또 다시 입증된다. IAEA는 2006년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약 4000명이라고 발표했다. 반론은 즉각 구소련에서 원전 설계에 관여했던 과학자들을 통해 나왔다. 이들은 IAEA의 평가가 ▲영어 이외의 슬라브어로 된 1차 차례를 이용하지 않았고 ▲방사성 물질 43%가 배출된 지역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의도적으로 방사선 농도의 수치를 과소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98만5천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NPT를 살펴보자. 1968년부터 서명에 들어가 1970년 3월에 발효된 NPT는 핵무기 확산을 예방하고 궁극적으로 완전한 핵무기 폐기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대표적인 국제 군축 조약이다. NPT가 발효될 당시에는 회원국이 43개국에 불과했으나 점차 늘어나 2012년 2월 현재 189개국으로 늘어났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에 줄곧 비회원국으로 남아 있으면서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으며, 북한도 이들 나라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 네 나라가 NPT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IAEA의 감시와 사찰에 동의해야 한다.

NPT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비핵 국가와 핵보유국 사이의 균형된 의무로서 '비확산(non-proliferation)'과 '핵군축(disarmament)'을 함께 요구하는 한편, 회원국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비확산'은 비핵 국가들이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보장받는 대신에 이를 핵무기 개발로 전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핵군축'은 핵보유국의 핵무기 폐기 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NPT는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확산'에 초점을 맞춘 조약이다. 또한 생물무기금지협약, 화학무기금지협약, 대인지뢰금지협약, 집속탄금지협약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군축 조약은 해당 무기의 사용 및 실험 금지와 폐기를 명시한다. 반면 NPT는 핵보유국의 핵무기 사용 금지는 물론이고 추가적인 핵무기 제조 금지와 핵폐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NPT는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을 했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인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하면서 핵폐기 의무를 '선의(good faith)'에 맡겼다. 반면 다른 회원국들의 핵무기 개발은 금지하고 IAEA를 통해 이를 검증하는 대신에 평화적 핵이용을 보장하고 있다.

NPT는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189 대 4'(회원국 대 비회원국)라는 스코어가 보여주듯, NPT는 군비 통제 조약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184 대 9'(비핵 국가 대 핵보유국)라는 숫자는 NPT 등장 이전에 우려되었던 핵확산이 이 조약 발효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비확산 분야의 베테랑 외교관이었던 조지 번George Bunn은 "NPT가 없었다면, 오늘날 9개국이 아니라 30~40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NPT가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 규범을 확고히 함으로써 비핵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동기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핵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것은 NPT 때문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적‧안보적‧경제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NPT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고 그 의무의 이행도 차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불평등 조약'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리고 아래의 표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NPT는 5대 핵보유국의 핵군축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미국 쓰리마일 원자력 발전소

핵은 무기로부터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즈음에 그 과학적 원리가 입증되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직후 전쟁이 끝났다. 가공할 폭발력을 선보인 핵은 이후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추진력으로 핵을 이용해 대서양과 태평양의 강자로 우뚝 섰고, 이후 소련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도 뒤따랐다. 이들 무기에 추진력으로 사용된 핵 발전은 가압경수로(PWR)였는데, 이후 PWR는 대표적인 핵 발전소의 모델이 된다.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에너지로 쓸 수 있다면?' 많은 과학자들과 정부들은 이 질문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원자력을 "세계 번영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핵을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한 움직임은 195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핵을 "기적의 힘"이라고 부르면서 대단히 저렴하고 고갈될 걱정도 없는 에너지원 개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태양의 일부를 지구에 갖다 놓은 것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핵을 무기로 사용하면 인류 절멸의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에너지로 사용하면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8일 유엔 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를 발표했다. 그는 말했다. "핵의 시대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우려해야 할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략) 미국은 여러분과 전 세계 앞에 가공할 만한 핵의 딜레마를 해결할 것을 약속합니다. 인간의 경의적인 발명품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당시 원자력에 대한 환상은 미국 원자력위원회 의장이었던 루이스 스트라우스(Lewis Strauss)가 원전은 "너무 저렴해서 측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났다. 이러한 환상은 1955년 12월 31일자 일본의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원자력을 잠재 전력으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게다가 석탄 등의 자원이 지구상에서 차차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에너지가 갖는 위력은 인류 생존에 불가결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중략) 전기료는 2,000분의 1이면 된다. (중략) 원자력발전에는 화력발전처럼 큰 공장이 필요 없다. 큰 연돌이나 저탄장도 필요 없다. 매일 석탄을 운반하고 재를 버리기 위한 철도나 트럭도 필요 없다. 밀폐식 가스터빈을 이용할 수 있으면 보일러의 물조차 필요 없다. 물론 산간벽지를 선택할 필요도 없다. 빌딩의 지하실이 (핵) 발전소가 될 수도 있다."

'핵무기는 통제하고 원전은 확대하라!'

'신의 불'이라고 불리던 핵을 가장 먼저 손에 넣은 미국은 자신의 핵무기 독점은 유지하면서 핵의 "평화적 이용" 방안 마련에 몰두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11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고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은 철저한 국제 검증 아래에 두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유엔 원자력위원회(UN Atomic Energy Commission)를 만들어 국제적 핵통제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이듬해 미국 정부는 더욱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새로운 핵무기와 핵분열 물질 생산 금지, 우라늄 광산 통제, 핵연료 주기에 대한 국제적 통제와 엄격한 검증 체제 구축, 완전한 핵무기 폐기, 국제 원자력 개발 기구(International Atomic Development Authority)를 창설 등을 담은 '바루크 플랜'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당시 핵 독점의 지위를 누렸던 미국은 진정성이 결여된 말잔치에 불과했다. 미국이 유일한 핵보유국이었던 만큼, 국제 핵통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실천해야 했지만, 이를 거부한 것이다.

뒤이어 집권한 아이젠하워는 에너지로도 가공할 무기로도 이용될 수 있는 '핵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 원자력 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늘리면서 핵보유국들은 핵무기 보유고를 줄이기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의 제안은 바루크 플랜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었다. 바루크 플랜이 핵무기의 완전 폐기를 제안한 반면,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에서는 감축과 통제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우라늄 은행'으로 제안된 IAEA의성격도 변질되었다. IAEA의 당초 기능은 공평하게 우라늄을 모아 이것을 다시 분배하는 것이었는데, 소련이 우라늄 납부를 거부하고 미국 의회가 핵 물질 및 기술 분배의 독점적 권한을 주장하면서 무산되었다. 이렇듯 국제적 핵 통제 구축이 난항을 겪고 있는 사이에 미국, 소련, 영국 등 핵보유국들이 다른 여러 나라들과 양자 협정을 체결해 원자로를 비롯한 핵시설과 핵기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의 구상은 이후 지지와 비판을 함께 수반하게 된다. 옹호자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 없었더라도 핵확산은 불가피했고, 이 구상을 통해 그나마 그 속도와 범위를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 IAEA가 공식적으로 창립돼 국제적 핵 통제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아이젠하워의 정책은 미국 원자력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었고, 오히려 핵확산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반박한다.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이 이미 원자력 기술을 갖춘 상태여서 앞으로 미국의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 수 있으므로 미국이 선수를 쳐야 한다는 '이윤 논리'가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돈을 벌기 위해 핵 기술을 다른 나라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인도, 이스라엘,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원자력 수출에 힘입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거나 그 문턱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NPT와 IAEA의 '생얼'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의 근본 취지는 핵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평화적 이용은 증진하는 대신에, 인류 문명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핵무기의 확산은 방지하자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의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취지와 맥락을 같이한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첫째,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 스스로가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이 구상을 추진한 탓에 국제 사회의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둘째, 미국의 실질적 행보는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과 거리가 멀었다. 그가 백악관에 들어갈 때 1,400개였던 미국의 핵무기는 그가 백악관을 떠날 때는 2만개까지 증가해 있었다. 셋째, 미국은 핵 기술과 물질이 군사용으로 전용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핵 국가에 대한 원자력 수출에 적극적이었다. 훗날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거나 개발에 성공한 많은 나라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원자력을 수입한 나라들이 대부분인데, 여기에는 비밀 핵개발에 성공한 남아프리카 공화국뿐만 아니라 오늘날 미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이란도 포함되어 있다. 끝으로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로 이어진 원전 사고가 입증해준 것처럼, 핵 '발전' 역시 핵 '무기' 못지 않게 인류 생존과 지구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에 창설된 IAEA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 기구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증진하는 대신에, 핵기술이 군사적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1961년에는 최초로 안전조치협정을 만들었고, 1967년에는 기존의 내용을 강화한 새로운 안전조치협정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1970년 NPT가 탄생하면서 IAEA는 비핵 국가의 의무를 검증하는 유엔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설립 취지에 "원자력 에너지의 공헌을 진전시키고 확대한다"고 명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IAEA가 원전 확대를 존재 이유로 삼다보니 '국제 원전 마피아'라는 오명을 자초하고 있다. IAEA의 홍보부장을 지낸 요시다 야스히코의 말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목으로 각국으로부터 온, 원자력 산업 대리인들이 업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만 활동한다. 국제기구라고 하면 뭔가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실태를 냉정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IAEA의 횡포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유엔 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이다. WHO는 1956년까지는 "원자력 산업과 방사능원의 증대에 의해 미래 세대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1959년 WHO는 IAEA와 맺은 협약을 맺고는 IAEA의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IAEA 입장이 다른 것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핵 강대국들이 유엔을 장악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이에 따라 WHO는 IAEA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IAEA와 WHO의 협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IAEA의 횡포는 체르노빌 사태에 대한 평가에서 또 다시 입증된다. IAEA는 2006년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약 4000명이라고 발표했다. 반론은 즉각 구소련에서 원전 설계에 관여했던 과학자들을 통해 나왔다. 이들은 IAEA의 평가가 ▲영어 이외의 슬라브어로 된 1차 차례를 이용하지 않았고 ▲방사성 물질 43%가 배출된 지역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의도적으로 방사선 농도의 수치를 과소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98만5천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NPT를 살펴보자. 1968년부터 서명에 들어가 1970년 3월에 발효된 NPT는 핵무기 확산을 예방하고 궁극적으로 완전한 핵무기 폐기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대표적인 국제 군축 조약이다. NPT가 발효될 당시에는 회원국이 43개국에 불과했으나 점차 늘어나 2012년 2월 현재 189개국으로 늘어났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에 줄곧 비회원국으로 남아 있으면서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으며, 북한도 이들 나라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 네 나라가 NPT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IAEA의 감시와 사찰에 동의해야 한다.

NPT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비핵 국가와 핵보유국 사이의 균형된 의무로서 '비확산(non-proliferation)'과 '핵군축(disarmament)'을 함께 요구하는 한편, 회원국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비확산'은 비핵 국가들이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보장받는 대신에 이를 핵무기 개발로 전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핵군축'은 핵보유국의 핵무기 폐기 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NPT는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확산'에 초점을 맞춘 조약이다. 또한 생물무기금지협약, 화학무기금지협약, 대인지뢰금지협약, 집속탄금지협약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군축 조약은 해당 무기의 사용 및 실험 금지와 폐기를 명시한다. 반면 NPT는 핵보유국의 핵무기 사용 금지는 물론이고 추가적인 핵무기 제조 금지와 핵폐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NPT는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을 했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인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하면서 핵폐기 의무를 '선의(good faith)'에 맡겼다. 반면 다른 회원국들의 핵무기 개발은 금지하고 IAEA를 통해 이를 검증하는 대신에 평화적 핵이용을 보장하고 있다.

NPT는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189 대 4'(회원국 대 비회원국)라는 스코어가 보여주듯, NPT는 군비 통제 조약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184 대 9'(비핵 국가 대 핵보유국)라는 숫자는 NPT 등장 이전에 우려되었던 핵확산이 이 조약 발효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비확산 분야의 베테랑 외교관이었던 조지 번George Bunn은 "NPT가 없었다면, 오늘날 9개국이 아니라 30~40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NPT가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 규범을 확고히 함으로써 비핵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동기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핵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것은 NPT 때문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적‧안보적‧경제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NPT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고 그 의무의 이행도 차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불평등 조약'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리고 아래의 표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NPT는 5대 핵보유국의 핵군축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2년 1월 6일 금요일

"MB여, '종북(終北)주의'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06일자 기사 '"MB여, '종북(終北)주의'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를 퍼왔습니다.
[정욱식의 '오, 평화']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한국의 선택

군비 삭감 시대에 접어든 미국의 새로운 군사 전략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군사비를 늘려온 미국은 최근 극심한 경제난과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향후 10년간 최소 4500억 달러, 미 의회가 올해에 재정 적자 삭감안 합의에 실패하면 추가적으로 5000억 달러의 군사비를 줄여야 할 형편이다. 이는 대규모의 군비 지출을 전제로 했던 군사 전략의 수정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과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반면 북한과는 적대 관계에 있다. 미국의 군사 전략 변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한국에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미제 무기 수입, 주한미군 기지 이전 비용 증액 등 주로 '돈'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또한 한미연합방위체제에서 한국이 더 많은 역할과 기여를 하고 지역적ㆍ세계적 역할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이명박 정부의 '한미 전략동맹'에 상당 부분 담겨 있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미동맹 사이에 대북 군사전략을 놓고 '엇박자'나 한국이 '독박'을 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신군사전략은 중국 견제와 봉쇄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한국에도 엄청난 전략적 부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우리가 미국의 신군사전략을 예의주시하면서 현명한 대응책을 세워야 할 까닭들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신군사전략의 방향은?


작년 봄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에 의해 시작된 군사 전략 재검토는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챙길 정도로 중대 사안으로 부상했다. 오바마는 지난 9월 이후 6차례에 걸쳐 펜타곤 관리들과 전략 협의를 가진데 이어, 5일(현지시간)에는 펜타곤을 직접 방문해 '국방 전략 검토(Defense Strategy Review)'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국방장관 및 합참의장과 나란히 할 예정이다. 미국 대통령이 펜타곤 문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등장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새로운 군사전략의 방향은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과 야심을 줄이고 아시아에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1월 4일자 는 새로운 군사 전략은 "중국과 같은 적대국들이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과 정밀 레이더를 사용하려는 시도를 극복할 수 있는 무기 체계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막대한 운영유지비가 소요되는 항공모함도 11척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의 신군사전략에서 주목할 것은 육군과 해병대 감축 방침이다. 펜타곤은 작년에 이미 2015년부터 2만7000명의 육군과 1만5000~2만 명의 해병대를 감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라크 전쟁 종식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감축을 선언하면서 추가적인 감축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미 국방부는 현재 57만명의 육군을 49만명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4일자 가 보도했다.

주목할 것은 감축 이유이다. 예산 절감은 기본이다. 가장 중요한 사유는 군사 전략의 변화에 있다. 1990년대 이후 유지해온 '윈-윈 전략'을 사실상 폐기하고, 하나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도모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는 적대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와 봉쇄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엄청난 예산과 군대 투입이 불가피한 '대규모의 안정화 작전'을 더 이상 수행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는 "새로운 전략 문서는 육군과 해병대의 규모가 더 이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대규모의 장기적인 안정화 작전을 수행할 필요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업무보고를 듣기 위해 통일부를 찾았다. ⓒ청와대

미국, '북한 안정화 작전' 꺼린다

바로 이 지점에 한국과 미국의 중대한 '엇박자'가 존재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의 대북 군사전략의 핵심은 '북한 급변사태 대비'에 맞춰졌고, 그 핵심은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흡수통일을 달성한다는 데에 있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 '개념계획'으로 있었던 '5029'를 작전계획 수준으로 격상한 것도 이러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대규모의 미군을 투입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확보ㆍ탈취ㆍ파괴ㆍ유출 차단 등 제한적인 임무만 맡고 엄청난 인적ㆍ물적 피해가 불가피한 안정화 작전은 한국이 알아서 하라는 의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미국의 의도는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미국은 신속하게 대북감시태세(워치콘)와 대북방어태세(데프콘)를 격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북한의 "평화롭고 안정적인 권력 전환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하게 북한군을 자극해 김 위원장 사망이라는 '돌발 변수'가 '급변사태'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흡수통일'이라는 몽상에 사로잡혀 '기다리기 전략'으로 일관해온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차기 정권을 꿈꾸는 정치인들도 이와 같은 변화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조차도 북한의 급변사태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대규모의 군사적 개입에 나설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를 이유로 외부 세력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분명해진다. 북한의 급변사태를 '통일의 호기'로 바라보면서 무력 흡수통일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위험천만한 것이라는 점이. 그래서 정신차려야 한다.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는 '종북(終北)주의'에서 깨어나, 남북관계와 주변국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맺어가야 하는가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