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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9일 토요일

“여권, 야권 전체를 종북주의로 낙인… 정권 실정을 덮어”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08일자 기사 '“여권, 야권 전체를 종북주의로 낙인… 정권 실정을 덮어”'를 퍼왔습니다.

ㆍ‘종북·민주주의 위기’ 토론회

연일 확산되는 이른바 ‘종북좌파’ 논란의 전말과 함께 진보진영의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는 8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종북좌파 담론과 마녀사냥으로 본 민주주의의 위기’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첫 발제자로 나선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보수세력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문제를 종북주의로 몰고 가는 것도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경기동부연합의 성격을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운동했던 집단이고, 종북주의 세력을 확대하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넘어서는 무리수를 범했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국회의원) 제명 문제까지 터져 나오고 민주당까지 싸잡아 야권 전체가 종북주의라고 하는 것은 분명한 정치적 낙인이지만 여기에 대항하는 진보진영의 대응방식은 굉장히 허술하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언급한 ‘국가관’ 문제에 대해 “폭력적이고 권력적인 담론 행사”라고 밝혔다. 한 교수는 “일부 집단과 정파의 단편적인 행동들을 끄집어내서 자기들 마음대로 조합해 종북좌파란 딱지를 붙이고 그들을 정치영역에서 배제하려는 사람들의 국가관이 오히려 잘못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헌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국가관은 헌법에서 다 이야기하고 있다”며 “헌정질서를 지키고 국가를 폭력으로 전복하지 않겠다는 헌법 충성 의무만 다하면 되지 그 수준을 넘어서서 ‘어떠한 의사표시를 해라, 어떤 정당에 가입하지 마라’ 이런 구체적인 행동은 요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광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종북 논란은 지금 우리 사회가 북한에 대해서 말하고 표현하는 것의 현주소가 어디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올해 초 북한 트윗을 리트윗(RT)해 기소된 박정근씨의 사례를 들어 “박씨의 트위터에는 검찰이 기소한 ‘친북(親北)’ 멘션보다 ‘반북(反北)’ 멘션이 두 배가량 많았다”며 “맹목적인 반북도, 친북도 아닌 합리적 이성으로 북한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을 종북이라고 잡아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진영이 정치공세화하고 있는 종북좌파 담론에 ‘역공’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민웅 교수는 “종북좌파를 두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최초로 파괴한 것이 이승만 전 대통령이고 그 다음 4·19혁명 정신을 파괴한 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정부와 여권이 종북주의 논란으로 모든 걸 덮으려 하는 건 결국 그들이 민생현안을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상희 교수는 “전원책 변호사가 ‘김정일 개새끼’라고 말하지 못하면 종북이라고 했듯 아주 낮은 차원에서 이미지 조작을 하고 그걸 바탕으로 담론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천안함 사태 당사자들을 전부 다 승진시킨 그 국가관이 뭔지, 사유재산을 침해한 정수장학회의 국가관은 뭔지, 무력으로 국가를 전복시킨 하나회 출신 국회의장의 국가관은 뭔지를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진보진영의 책임 문제도 제기됐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민족담론을 지속적으로 해체해 오면서 북한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공백상태로 남겨뒀고 이 부분을 보수진영이 치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김민웅 교수는 “진보진영의 지식인들이 민족문제와 분단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연평도 사태로 경험했듯 그런 문제가 한번 터지면 인권이고, 헌법의 자유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며 “일상에서 압도하는 것 같지 않지만 한번 터지면 압도돼 버리기에 이런 것들에 대한 치밀한 대응을 준비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토론회를 정리하며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종북주의 논란이 이후 국가보안법 대형사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이명박 정부의 온갖 비리와 정치적인 악행을 종북좌파로 덮고 있는 대선정국에서 진보진영은 적극적인 대응논리를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화 기자 tingco@kyunghyang.com

2012년 6월 6일 수요일

[데스크 칼럼]‘486 犬子론’ 나올까 겁난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6-05일자 기사 '[데스크 칼럼]‘486 犬子론’ 나올까 겁난다'를 퍼왔습니다.
486정치인들, 주어진 권력은 자신들의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한때 자랑스러웠던 그 이름 아래 모였던 ‘486’들이 이제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언제부턴가 486들이 한국정치 권력의 1번지 여의도 국회에 다수 진출하게 되었고, 급기야 야당인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지도부’로도 입성하는 상황이다. 486정치인들이  한국 정치 권력의 중심부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며 불태웠던 민족과 민중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다시 발휘한다면,  그동안 다져진 사회경험과 정치경험을 바탕으로  그 어느 정치인들보다 한국 정치를 잘 이끌어가리라 기대된다. 하지만 최근 486 정치인들이 중심에 놓인 일련의 사건들은  일부 486정치인들의  자질과 지도력을 의심해 보기에 충분하다. 권력의 단맛에 빠져,  ‘언행’의 균형감각을 상실하거나, 자신들만의 ‘패권의식’에 빠져 안하무인의 모습들이 보인다.   최근 탈북자와 관련해 '막말' 파동을 겪고 있는 ‘임수경’의원도 대표적인 486 정치인이다. 그가 벌인 일순간의 행동으로 보수세력에게 꼬투리가 잡히고, 민주통합당에까지 ‘종북논란’이 번지고 말았다. 백요셉이란 탈북자가 임의원 사진도 찍고, 녹취록까지 갖고 있다고 보도된 것으로 보아, 임 의원에게 일부러 접근하고, 자극해 행동을 촉발시켰을 것이란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기득권 세력과 그들에 동조하는 인사들이 야당 인사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대선을 코 앞에 둔 민감한 한국정치 현실에서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닌 기본적인 ‘상수’의 조건이다. 처신에 조심해야 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 대선이란 대사를 앞둔 야당과 진보진영 정치인의 기본적인 자세이기에 임 의원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 된다.   애초 이 ‘종북주의’ 논란 촉발시킨 진보통합당 당권파의 버티기에도 486정치인이 등장한다. 다름아닌 이석기 의원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이다. 그들이 대표했던 구 당권파의 ‘버티기’만 아니었으면, 통합진보당의 비례부정사건이 종북주의 논란으로까지 번지지도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정희 전 의원이 통합진보당의 대표로서 일파의 이해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진보진영 전체를 대표해 결단하고 행동했다면, 이석기 의원이 사태초기 빨리 사퇴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진보진영이, 야권연대가 코너에 몰릴 일도 없다.  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중동과 보수세력’을 탓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호시탐탐’ 진보진영의 흠집내기를 노리고 있다.  그 가장 주요한 무기 중 하나가 ‘친북 ㆍ종북 논란’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모두 다 갖다붙여, ‘흠집내기’하려고 항상 준비된 자들이다. 상어들에게 피 흐르는 ‘상처’를 그냥 방치해 둔 사람이 물어 뜯기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지난 번 패배한 총선의 결과를 두고서도 486정치인들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흠결이 있던 임종석 전 의원이 ‘사무총장’이 되더니 공천과정을 주도하고, 스스로를 공천하며 민주당 공천과정의 잡음과 파열음을 냈다. 당시 민주당의 공천을 두고, ‘친노가 다 해먹었느니’ 말들이 많았지만,  486 특히 전대협 출신들로 일컬어지는 총선의 실무라인들에 대해 오히려 친노 본류들의 불만은 컸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당시  이해찬 의원이  이에 반발해 탈당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을까.  공천권의 핵심에 접근한 ‘486’들이 애초 총선 공천권을 주도하려다 민주당 내 갈등이 커지면서 감동은 사라지고,  감동공천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새누리당에게 결국 패배했다는 것이 민주당안팍에서  공공연하게 회자되던 분석이다.  권력의 단맛에 취해 오만해진 486들이 ‘균형감각’은 사라지고, 자신들만 ‘최선’이라는 아집에 빠져, 패권적 성향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86 정치인들은 한국정치를 이끌어나갈 중추세력이다. 그래서 더 이상 망가지지 않고, 한 때 자랑스럽던 그 이름들이 그대로 자랑스러운 존재로 남아있기를 소망한다. 80년 대학 문을 들어서며 운동을 결심하고 실행했던 그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 486정치인들은 권력으로부터 탄압을 받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막강한 ‘정치권력’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한다.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조건 옳다고 강변하거나, 작은 권력에 도취돼 도를 넘는 언행을 하면, 이번에는 총선이 아니라 대선을 망친다.   지난 총선 직후 한때 사이버 상에서 ‘20대 개새끼론’이 있었다고 한다. 20대들이 기대만큼 투표에 적극 나서지 않아, 투표율이 낮아져 야권연대가 졌다며 20대들을 비난하는 야권지지 성향의 30대들이 만든 이야기였다고 한다. 별로 설득력이 없어 인터넷에서 잠깐 떠돌다 사라진 이야기라고 하지만, 총선 패배에 대한 야권성향의 젊은 지지자들의 절박한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486 정치인들의 신중하지 못한 빗나간 언행과 권력욕으로  빚어진 사건들로 말미암아  이번 대선에서도 진다면, 정말 ‘486개새끼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겸손하고, 스스로 반성하며, 스스로 희생하는, 그때의 그 자세를 486정치인들에게 기대해 본다. 

편집장 윤성한  |  gayajun@mediaus.co.kr

2012년 5월 30일 수요일

[사설] 이 대통령, 여당 선거운동에 작심하고 나섰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29일자 사설 '[사설] 이 대통령, 여당 선거운동에 작심하고 나섰나'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은 민감한 현안 피해가기로 유명하다. 국민이 궁금하게 여기는 관심사를 허심탄회하게 설명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계기로 활용한 기억은 거의 없다. 이 대통령이 엊그제 91차 라디오연설에서 뜬금없이 ‘종북주의’ 문제를 들고나온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의 얄팍한 현실인식과 속보이는 국정운영 방식이 다시 한번 확인된 연설이다.
이 대통령이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종북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나선 것은 최근의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파문이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요즘 몇몇 보수언론이 대대적으로 색깔론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도 라디오연설 주제를 정하는 데 참고했을 것이다. 보수언론의 구미에 맞는 연설을 함으로써 친여매체들한테서도 점차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레임덕 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종북주의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매우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 진보진영 전체에 친북·종북의 색깔을 덧씌움으로써 올해 대선 구도를 여권에 유리하게 이끌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런 정치공학적 맥락을 이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종북주의를 들고나온 것은 대선 공정 관리라는 대통령의 막중한 책임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얘기다. 검찰의 통합진보당 수사가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여겨질 수 있는 발언을 한 것도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더욱 쓴웃음이 나오는 것은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 실패를 모두 종북주의자 탓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좌파세력이 발목을 잡아 국정운영을 못한다는 말을 줄곧 해왔는데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종북세력에 화살을 돌리고 나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패는 자신의 무능과 정책 잘못 때문이지 남 탓을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국민은 무조건 종북좌파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로 국정운영에 임하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는 것이다.
지금 이 대통령은 공안몰이에 정신을 팔 때가 아니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시끄럽다고 해서 국민이 대통령 측근 비리와 이들의 국정농단 사태를 잊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대통령이 정작 라디오연설을 통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은 종북세력 문제가 아니라 현 정권의 부패와 무능이다.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계속 딴소리만 할 요량이면 라디오연설을 아예 중단하기 바란다.

2012년 5월 17일 목요일

구 당권파, ‘조중동 프레임’에 매달리면 살 수 있나


이글은 미디어스 2012-05-17일자 기사 '구 당권파, ‘조중동 프레임’에 매달리면 살 수 있나'를 퍼왔습니다.
여러분을 적절하게 비판한 조선·중앙의 칼럼을 소개합니다

▲ 오늘자 조선일보 39면

“조중동이 만들어낸 거죠”, “이미 과거가 된 일을 현재형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조중동 프레임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게시판에 누가 의혹을 던지고 조중동이 실으면 그게 현실이 된다.” 9일자 한겨레 2면 이석기 2번 당선자의 인터뷰에선 ‘조중동’이 세 번이나 언급된다. 각각 그가 당권파의 실세라는 주장, 종북주의라는 비판, 운영했던 CNP 그룹이 당권파의 자금줄이라는 주장에 대한 해명이다. 오늘 아침 YTN 김갑수의 출발 새아침에선 훨씬 더 심했다. 조중동이 만들어낸 걸 일부 진보언론이 받은 것이 문제고, 자신을 비판한 자당의 이청호 부산 금정구 의원도 조중동의 보도를 통해서만 봤다고 말할 정도였다. 마치 '조중동'이란 단어를 쓰지 않으면 말을 이어갈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 해명들 중 일부는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부정경선 사태 전체가 '조중동의 소설' 안에만 존재한단 말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이젠 참여정부 시절 전가의 보도처럼 '조중동 프레임'이란 말을 쓰던 노무현 지지자들조차도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 지지자들이 이 단어를 쓰면 “대체 이 맥락에서 그게 왜 튀어나오냐”며 ‘멘붕’한다.
통진당 경선 부정 문제는 ‘조중동의 소설’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소리’를 제외한 남한의 모든 언론에서 철저하게 비판받은 문제다. 따라서 “너희들이 ‘조중동 프레임’에 놀아나고 있다”는 구 당권파 일각의 주장은 거론될 가치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 과연 이 문제에 관한 조중동의 칼럼엔 받아들일만한 부분이 없을까?
물론 조중동의 보도기조는 진보언론들에 비해서 볼 때 구 당권파를 친북세력으로 몰고, 그들이 장악한 통진당과 연대를 하는 민주당의 정권교체에 친북의 굴레를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가 보였다. 그러나 그런 의도와는 또 별개로, 조중동의 통진당에 대한 비판에도 들을 구석은 있다. 조중동이 이석기 등의 과거가 어땠는지만 가지고 물고 늘어진다면 ‘색깔론’이란 비판도 가능하겠으나, 이석기 등 통진당 인사들의 현재 생각까지 묻는다면 얘기가 또 다르다.
‘북한 3대세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북한 핵무기 개발이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에 그들이 보편적 정의와 대중적 상식에 현저히 벗어나는 대답을 하거나 침묵한다면, 그 사실 자체가 언론이 시민들에게 마땅히 전해야 하는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이석기나 김재연이 끝내 사퇴하지 않는다면 조중동은 그야말로 통진당을 야당세력을 대선 기간 내내 ‘조질 수 있는’ 꽃놀이패로 받아들이고 환호할 것이다. 이 상황도 사실상 그들이 자초한 것이지 무슨 논리나 윤리로 조중동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고 성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일반론을 넘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칼럼에는 진보진영에 대한 훌륭한 고언이나 통진당 구 당권파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태도에 관한 성찰이 보이는 것들이 있다(동아일보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이석기나 김재연이 후안무치한 모리배 혹은 종교적 광신자라도 한미 FTA를 합당한 논거로 비판할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게도 물론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하다. 악마의 신문 조중동은 읽지 않을 통진당 구 당권파를 위해 기자가 손수 몇 개를 뽑아왔으니 밑줄 쳐가며 읽었으면 좋겠다.   
먼저 오늘자 조선일보에 실린 정우상 논설위원의 칼럼이 있다. 라는 칼럼이 있다. 제목부터 가슴을 후벼판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링크) 
당시 민노당 정책실에는 폐쇄적이지 않고 '진보의 현대화'를 고민했던 독종(毒種)들이 많았다. 이들은 '닥치고 반미(反美)' '닥치고 후보 단일화' 같은 이야기를 하면 코웃음을 쳤다. 이들이 만든 정책이 대형마트 규제, 상가 및 주택 임대차 보호법, 복지확대를 위한 조세개혁,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같은 것들이었다. 대형마트 규제는 8년 뒤에 빛을 봤고, 조세개혁과 복지는 지금 정치권의 가장 큰 쟁점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극복'을 이상으로 삼았지만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놨다. 법과 제도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상담하고 그 결과를 정책으로 만들었다.
(...) 지금은 통합진보당이 진보의 대표 행세를 하고 있지만, 진보정당이 현재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기반을 닦았던 많은 사람들은 진보당과 손을 잡지 않았다. 진보신당에 남은 김종철 부대표에게 주사파들과의 재결합을 거부했던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은 "진보정당 오래하고 싶다"는 거였다. 정권교체라는 이유만으로 북한 추종 노선을 묻어두고, 복지문제에는 관심도 없는 세력과 연합하면 진보정당은 곧 사라질 것이란 설명이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5% 득표율로 낙선했다. 뭐 하러 그 고생을 하며 진보정당을 하는지 물었더니 김종철은 "아직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진보의 시작은 주체사상이 아니다. 숨 막히는 골방에서 여공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불쌍한 평화시장 어린 동심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던 전태일이다. 진보는 다시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권이니, 야권연대니, '닥치고 뭐니' 하는 권력다툼은 그다음 일이다. 비정규직, 독거 노인, 다문화 가정, 그리고 폭압체제에서 헐벗고 있는 2400만 북한 주민들의 삶에서 다시 진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진보가 건강해야 이에 자극받은 보수도 혁신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구구절절하게 옳은 조언이다. 물론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만시지탄이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당시 민주노동당에 대해 이 정도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민주노동당의 역사는 달라졌을 수 있다. 그들은 “진보가 건강해야 이에 자극받은 보수도 혁신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란 정론을 알았으나, 보수가 혁신하는 것보단 보수가 집권하는 것을 더 중시했기에, ‘건강한 진보’를 키워내는 것을 거부했다. 그 결과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원하는, 친북이 진보를 참칭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고 비아냥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얘기는 보수언론이 그렇게 했더라도 진보진영에서 자정능력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에 ‘제 얼굴에 침뱉기’기도 하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진보의 처지를 동정하는 세상이 서글프기만 하다.
다음으로 소개할 글은 16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권석천 논설위원의 라는 칼럼이다. 정파지들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자기반성이 눈에 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링크)
팩트는 가차 없다.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환부는 곪을 대로 곪게 된다. 파이시티 사건과 통합진보당 사태엔 워치독(watch dog·감시견)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있다. 이런 상황은 지난 4년간 언론이 진영 논리의 포로가 됐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 정치세력들은 “좌파에 도움을 주려는 거냐” “보수의 프레임에 넘어가면 안 된다”며 그런 상황을 즐겼다. 시간이 흐르자 다른 매체에 뭐가 나와도 “그건 우리가 쓸 게 아닌데…” 하고 넘겨버렸다. 대신 스마트폰 세상에서 유명 인사들의 트윗을 실어 나르는 데 바빴다. (...) 제도권 언론이 보고 싶은 사실에 안주하는 동안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나는 꼼수다(나꼼수)’ 같은 유사 언론이었다. 

▲ 16일자 중앙일보 34면

이것이 과연 우리가 중앙일보에서만 보아야 할 글일까? 가령 한겨레 논설위원 중 하나라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겨레는 떳떳한가? 이제야 통진당이 진보세력과 나라를 망칠 것처럼 이런 저런 진보언론 지면에 글을 쓰는 진보지식인들은 정말로 떳떳한가? 기자의 생각으론 그런 것 같지 않다.
하나 더 살펴보자. 이번에 소개할 글은 1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이철호 논설위원의 이란 칼럼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칼럼 만큼은 구 당권파들이 반드시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그들 사상에 대한 관용과 햇볕정책을 참 좋아하지 않던가? (링크)
진보진영 인사에 따르면 경기동부가 공식회의를 짓밟은 비밀은 따로 있다. 가장 예민한 뇌관이 ‘당원 명부’와 총무실이라고 한다. 그들은 당원 명부가 공안 당국에 넘어가면 끔찍한 탄압이 기다린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회계·재정을 주무르는 총무실을 넘기는 것도 악몽이다. 지난 8년간 유령당원, 당비 대납, 광고 몰아주기 등의 온갖 불법이 드러날 수 있다. 자칫 양심범이 아니라 횡령·배임의 파렴치범으로 몰리는 게 두려운 것이다.
이제 경기동부는 주홍글씨가 됐다. 그렇다고 공안 당국의 수사가 능사(能事)는 아니다. 한 번쯤 주사파의 과거를 되짚어 보았으면 한다. 1986년 옛 안전기획부는 구국학생연맹(구학련)의 서울대 법대생 김영환·하영옥·박○○군 등을 체포했다. 김영환은 “내가 강철서신을 썼다”고 자백했지만, 안기부는 “믿을 수 없다”며 끔찍한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김씨는 “그때의 기억이 골수 주사파가 된 원형질”이라 고백했다. 이후 대학가의 지하서클 수준이던 구학련은 반제청년동맹→민족민주혁명당의 지하당까지 치달았다. (...)
경기동부도 햇살에 노출되자 단박에 거덜이 났다. 민주노총마저 등을 돌릴 분위기다. 하지만 더 이상 순교자를 만들 게 아니다. 당국의 칼날이 어른거리는 순간 ‘공안탄압’의 물타기와 단합의 빌미가 될지 모른다. 오히려 출당(黜黨)이든 봉합이든 진보진영에 온전히 맡겼으면 한다. 이미 국민들은 어느 쪽이 옳은지 충분히 판단하고 있다. 박 변호사의 변신이 증거하듯 나는 우리 사회의 상식과 건강함을 믿는 쪽이다. 

▲ 15일자 중앙일보 34면

체제와 국가보안법의 탄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정당성의 근거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들 인생의 험난한 경로와는 별도로, 그들은 탄압을 받음으로서 이렇게 남한 사회의 모든 언론에 등장하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나 했던 얘기들을 이제는 보수언론 칼럼니스트가 하고 있다. 공안당국의 탄압이 사라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구 당권파가 한 번 더 고민해 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칼럼은 16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오병상 수석논설위원의 이라는 칼럼이다. 당권파들의 행동의 근거가 되는 저 유명한 ‘군자산의 약속’이란 문건을 살피면서 그들의 정치적 행동의 원인을 추론해 보는 글이다. (링크) 이 역시 진보진영에서도 나오던 분석이다. 칼럼은 이렇게 끝난다.
10년의 노력 끝에 목표달성을 눈앞에 두고 부정·폭력사태가 터졌다. 무엇보다 정당정치를 수단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화근이었다. 통일이라는 지고지순의 목표 앞에서 정당정치의 민주적 절차 따위는 무시됐다. 민주적 정당정치를 부정하면서 제도권 정치참여에 뛰어든다는 생각부터 모순이었다. NL끼리 덮고 감추어 온 모순이 PD와 국민참여당 세력들에 의해 온 세상에 공개됐다. 그간의 성공은 스스로를 감춘 덕분이었다. 언젠가 드러날 모순이었다. 그나마 대통령 선거 이전에 드러나 다행이다.

▲ 16일자 중앙일보 35면

구 당권파여, 당신들은 이 사람의 분석과 결론에 무슨 반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할 수 있는 말은 ‘조중동 프레임’이란 말 뿐인가? 진보진영에서 먼저 나오던 말을 중앙일보가 가져다 써도 ‘조중동 프레임’이라면, 대체 그것의 실체는 뭔가?
기자는 제목에서 이 글의 수신자를 구 당권파로 잡았고 다른 독자들에겐 여흥거리를 주는 척 했다. 하지만 사실은 기자가 상정했던 수신자는 그들을 넘어 본인이 진보개혁 세력에 속한다고 믿는 시민들 전체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상대방의 주장을 ‘조중동 프레임’이란 논거(?)로 무시하는 건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스스로의 부족한 정당성을 채우는 주요한 핑계 논리 중의 하나였다. 조중동에 의해 비판받으면  무슨 일을 했던 진보개혁 진영을 사수하는 투사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통진당 일부 구 당권파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조중동 프레임’이란 핑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때에, 정도의 차이는 있다지만 그간 우리 진보진영이  ‘조중동 프레임’을 우리의 허물을 감추기 위한 핑계로 남용한 경우는 없었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

2012년 5월 8일 화요일

'고장난 나침반'을 버리면 기회가 보인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08일자 기사 ''고장난 나침반'을 버리면 기회가 보인다'를 퍼왔습니다.
[데스크 칼럼] 통합진보당, 마지막 비상구를 열어라

2006년 터진 '일심회' 사건은 2년 뒤인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의 기폭제였다. 민노당 진로의 변곡점이 된 2008년 2.3 임시당대회.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제명안이 부결되면서 민노당은 분당의 외길로 치닫게 된다. 수년간 곪아있던 '종북주의', '패권주의' 논란이 일심회 사건을 통해 분출돼 결국 당을 조각내기에 이른 것이다.

'종북주의 청산' 논쟁은 보수언론이 끌어올렸다. 2007년 대선 직후 비당권파인 조승수 의원의 조선일보 인터뷰가 시발이었다. 제 손으로 보수에게 먹잇감을 던져줬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권파의 상당수는 비당권파가 대선기간에 이미 분당 시나리오를 써놓았다가 대선이 끝나기 무섭게 캠페인에 돌입했다고 의심했다. 심지어 조선일보와 짰다는 얘기까지 공공연했다.

그 즈음 이덕우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심회 사건의 변호인단을 이끌었던 그는 법정에서 국가보안법이 옭아맨 이 부실한 간첩사건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논박했다. 또한 창당 때부터 민노당의 부침을 함께한 당원이되, 정파 대립의 문제에선 한발 비껴있던 사람이기에 그의 말엔 진정성과 객관성이 담겨있음을 신뢰할만 했다. 그런 그가 대뜸 당권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부터 입에 올렸다. 당권파가 '고장난 나침반'을 들고 겨울산을 헤매고 있다는 거다. 탈당계까지 써놓았다는 그에게선 절박함이 여실했다.

"창당초기부터 미뤄둔 그 문제는 당직·공직 선거 때 패권주의로 나타났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자는 진보정당 민노당에서 수구 꼴통이라고 비판했던 기성 정당도 하지 않는 짓을 한 거다. (…) 종북주의가 명확하게 있는데 그것을 없다고 하면 안 된다. 누군가 자주파를 향해 마치 유령하고 싸우는 것 같다고 했다. 그 표현이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왜 있는데 없다고 그러나."

그리곤 자신이 변호했던 일심회 사건 관계자들의 출당 조치를 촉구했다. 국보법에 맞서 일심회 피의자들을 변호했던 것과는 별개로, 당원들의 신상정보를 유출시킨 '해당행위자들'을 당규에 의해 징계하자는 공당의 상식에 바탕을 둔 요구였다. 물론 이런 주장 역시 '당원 동지에 대한 믿음'을 갈파하는 당권파의 주장 앞에선 무기력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북'이란 용어를 적절한 표현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저 대결적 남북관계의 전향을 바라는 다수의 합리적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종북주의'는 모욕적인딱지붙이기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종북주의 논쟁으로 쇄신의 입구를 틀어막은 건 시작부터 파괴적 결말을 잉태한 비당권파의 오류였다고 지금도 판단한다.


 ⓒ연합뉴스

최근 통합진보당에서 부각된 '경기동부연합' 역시 보수언론이 발굴한 종북주의의 변종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쓰임새는 대동소이하다. 설령 종북 노선을 신주단지로 모시는 경기동부연합이 실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사상의 자유를 엄호하는 진보정당이 마녀사냥에 나서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에 대한 당권파의 무비판적 태도로 인해 진보정당과 국민들의 거리가 멀어진 사실마저 가려주지는 않는다. 당권파가 2007년 권영길 대선후보를 통해 미래비전으로 내놓은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지지율 3.01%라는 처참한 득표율로 돌아왔다. 북한 핵실험이라는 초미의 사건에 대해 당 정책위의장이 "북핵은 자위적 측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고 한 발언도 대중정당이 취할 태도는 아니었다.

굳이 이 시점에 북한에 대한 당권파의 태도를 되짚는 까닭은 그들의 정치·조직 노선이 패권주의와 상당히 긴밀한 상호작용을 해왔기 때문이다. 4년 전 일심회 사건을 정점으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논란이 결부됐던 것처럼, 현재의 통합진보당의 논란도 경기동부연합의 정체 논란과 선거부정 문제가 결합해 파열음을 크게 만들고 있지 않나.

또한 2001년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이라는 이른바 '9월 테제'가 제출된 이후 "자주·민주·통일이라는 거룩한 대강령"을 실천하기 위한 정파적 목적으로 진보정당에 결합,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갖은 불법·편법을 자행한 당권파의 과거를 '용산 사태'가 대표하지 않나. 패권주의란 결국 당권파가 자신의 정파 노선을 무리하게 관철시키려다 빚은 크고 작은 패악의 종합적 표현 아닌가.

그들이 지금 "총체적 부정"을 저지르면서까지 비례대표 경선에 사활을 걸었던 맥락, 온통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퇴 요구를 거부하는 맥락에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 전략이 깔려있다는 분석을 비단 음모론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껏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온 그들이 오로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국회의원직에 연연한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정치의 위기가 시작되고 악화된 원인과 결과를 모두 당권파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부당하다. 당권파의 행태가 싫다고 독자적으로 당을 차린 진보신당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지었다면 모를까. 그러나 당권파가 불변적으로 채택한 노선과 그로인한 불·편법적 행태의 상호 관계를 드러내 치유하고 이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면 지난 10년간 진보정당의 발전을 가로막은 문제의 근원이 해결될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역설적으로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가 '고장난 나침반'을 버리려는 변화의 징후 또한 보여줬다는 점에서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비례1번 윤금순 당선자가 선도적으로 사퇴했다. 민노당 대표를 지낸 강기갑 의원도 이정희 대표를 향해 "야욕과 집착을 끊고 버려야 할 땐 정말 버려야 한다. 그것이 진보정당의 새로운 싹을 틔울 결단"이라고 했다. 모두 상식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당권파들의 목소리다.

12일 열릴 예정인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는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비상구다. 논란이 되고 있는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중앙위가 비례대표 당선자들에 대한 사퇴 결정과 부정선거 관련자들을 당기위원회에 회부해 이번 사태에 정치적 종지부를 찍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의결하는 건 전환의 첫 단추다.

그 뒤 통합진보당이 사력을 다해 집중해야 할 건 '노동 없는 진보정치'라는 가장 깊고 끈적한 늪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일이다. 노동자 벨트에서 단 한명의 당선자를 내지 못한 진보정당이 무슨 염치로 이전투구인가. 호사가들의 숱한 '한말씀'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현장이 무너진 자리, 종파만 독버섯처럼 자란다. 대의를 거스르는 어떤 계파나 분파적 행위도 대중들의 신뢰를 잃을 뿐"이라고 트위터에 거칠게 올린 글이 가슴에 닿는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정당사의 첫 장을 돌아보길 바란다. 단순하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 해보자던 것 아니었나? 위기가 기회다.



/임경구 편집국장

2012년 1월 6일 금요일

"MB여, '종북(終北)주의'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06일자 기사 '"MB여, '종북(終北)주의'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를 퍼왔습니다.
[정욱식의 '오, 평화']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한국의 선택

군비 삭감 시대에 접어든 미국의 새로운 군사 전략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군사비를 늘려온 미국은 최근 극심한 경제난과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향후 10년간 최소 4500억 달러, 미 의회가 올해에 재정 적자 삭감안 합의에 실패하면 추가적으로 5000억 달러의 군사비를 줄여야 할 형편이다. 이는 대규모의 군비 지출을 전제로 했던 군사 전략의 수정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과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반면 북한과는 적대 관계에 있다. 미국의 군사 전략 변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한국에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미제 무기 수입, 주한미군 기지 이전 비용 증액 등 주로 '돈'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또한 한미연합방위체제에서 한국이 더 많은 역할과 기여를 하고 지역적ㆍ세계적 역할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이명박 정부의 '한미 전략동맹'에 상당 부분 담겨 있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미동맹 사이에 대북 군사전략을 놓고 '엇박자'나 한국이 '독박'을 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신군사전략은 중국 견제와 봉쇄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한국에도 엄청난 전략적 부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우리가 미국의 신군사전략을 예의주시하면서 현명한 대응책을 세워야 할 까닭들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신군사전략의 방향은?


작년 봄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에 의해 시작된 군사 전략 재검토는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챙길 정도로 중대 사안으로 부상했다. 오바마는 지난 9월 이후 6차례에 걸쳐 펜타곤 관리들과 전략 협의를 가진데 이어, 5일(현지시간)에는 펜타곤을 직접 방문해 '국방 전략 검토(Defense Strategy Review)'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국방장관 및 합참의장과 나란히 할 예정이다. 미국 대통령이 펜타곤 문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등장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새로운 군사전략의 방향은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과 야심을 줄이고 아시아에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1월 4일자 는 새로운 군사 전략은 "중국과 같은 적대국들이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과 정밀 레이더를 사용하려는 시도를 극복할 수 있는 무기 체계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막대한 운영유지비가 소요되는 항공모함도 11척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의 신군사전략에서 주목할 것은 육군과 해병대 감축 방침이다. 펜타곤은 작년에 이미 2015년부터 2만7000명의 육군과 1만5000~2만 명의 해병대를 감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라크 전쟁 종식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감축을 선언하면서 추가적인 감축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미 국방부는 현재 57만명의 육군을 49만명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4일자 가 보도했다.

주목할 것은 감축 이유이다. 예산 절감은 기본이다. 가장 중요한 사유는 군사 전략의 변화에 있다. 1990년대 이후 유지해온 '윈-윈 전략'을 사실상 폐기하고, 하나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도모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는 적대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와 봉쇄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엄청난 예산과 군대 투입이 불가피한 '대규모의 안정화 작전'을 더 이상 수행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는 "새로운 전략 문서는 육군과 해병대의 규모가 더 이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대규모의 장기적인 안정화 작전을 수행할 필요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업무보고를 듣기 위해 통일부를 찾았다. ⓒ청와대

미국, '북한 안정화 작전' 꺼린다

바로 이 지점에 한국과 미국의 중대한 '엇박자'가 존재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의 대북 군사전략의 핵심은 '북한 급변사태 대비'에 맞춰졌고, 그 핵심은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흡수통일을 달성한다는 데에 있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 '개념계획'으로 있었던 '5029'를 작전계획 수준으로 격상한 것도 이러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대규모의 미군을 투입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확보ㆍ탈취ㆍ파괴ㆍ유출 차단 등 제한적인 임무만 맡고 엄청난 인적ㆍ물적 피해가 불가피한 안정화 작전은 한국이 알아서 하라는 의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미국의 의도는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미국은 신속하게 대북감시태세(워치콘)와 대북방어태세(데프콘)를 격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북한의 "평화롭고 안정적인 권력 전환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하게 북한군을 자극해 김 위원장 사망이라는 '돌발 변수'가 '급변사태'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흡수통일'이라는 몽상에 사로잡혀 '기다리기 전략'으로 일관해온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차기 정권을 꿈꾸는 정치인들도 이와 같은 변화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조차도 북한의 급변사태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대규모의 군사적 개입에 나설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를 이유로 외부 세력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분명해진다. 북한의 급변사태를 '통일의 호기'로 바라보면서 무력 흡수통일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위험천만한 것이라는 점이. 그래서 정신차려야 한다.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는 '종북(終北)주의'에서 깨어나, 남북관계와 주변국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맺어가야 하는가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