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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일 목요일

고삐풀린 원자력 신화, 그 오만의 대가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1일 기사 '고삐풀린 원자력 신화, 그 오만의 대가는…'을 퍼왔습니다.
[정욱식의 '핵과 인간'] 원전을 향한 질주

핵은 무기로부터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즈음에 그 과학적 원리가 입증되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직후 전쟁이 끝났다. 가공할 폭발력을 선보인 핵은 이후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추진력으로 핵을 이용해 대서양과 태평양의 강자로 우뚝 섰고, 이후 소련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도 뒤따랐다. 이들 무기에 추진력으로 사용된 핵 발전은 가압경수로(PWR)였는데, 이후 PWR는 대표적인 핵 발전소의 모델이 된다.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에너지로 쓸 수 있다면?' 많은 과학자들과 정부들은 이 질문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원자력을 "세계 번영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핵을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한 움직임은 195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핵을 "기적의 힘"이라고 부르면서 대단히 저렴하고 고갈될 걱정도 없는 에너지원 개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태양의 일부를 지구에 갖다 놓은 것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핵을 무기로 사용하면 인류 절멸의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에너지로 사용하면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8일 유엔 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를 발표했다. 그는 말했다. "핵의 시대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우려해야 할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략) 미국은 여러분과 전 세계 앞에 가공할 만한 핵의 딜레마를 해결할 것을 약속합니다. 인간의 경의적인 발명품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당시 원자력에 대한 환상은 미국 원자력위원회 의장이었던 루이스 스트라우스(Lewis Strauss)가 원전은 "너무 저렴해서 측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났다. 이러한 환상은 1955년 12월 31일자 일본의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원자력을 잠재 전력으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게다가 석탄 등의 자원이 지구상에서 차차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에너지가 갖는 위력은 인류 생존에 불가결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중략) 전기료는 2,000분의 1이면 된다. (중략) 원자력발전에는 화력발전처럼 큰 공장이 필요 없다. 큰 연돌이나 저탄장도 필요 없다. 매일 석탄을 운반하고 재를 버리기 위한 철도나 트럭도 필요 없다. 밀폐식 가스터빈을 이용할 수 있으면 보일러의 물조차 필요 없다. 물론 산간벽지를 선택할 필요도 없다. 빌딩의 지하실이 (핵) 발전소가 될 수도 있다."

'핵무기는 통제하고 원전은 확대하라!'

'신의 불'이라고 불리던 핵을 가장 먼저 손에 넣은 미국은 자신의 핵무기 독점은 유지하면서 핵의 "평화적 이용" 방안 마련에 몰두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11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고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은 철저한 국제 검증 아래에 두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유엔 원자력위원회(UN Atomic Energy Commission)를 만들어 국제적 핵통제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이듬해 미국 정부는 더욱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새로운 핵무기와 핵분열 물질 생산 금지, 우라늄 광산 통제, 핵연료 주기에 대한 국제적 통제와 엄격한 검증 체제 구축, 완전한 핵무기 폐기, 국제 원자력 개발 기구(International Atomic Development Authority)를 창설 등을 담은 '바루크 플랜'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당시 핵 독점의 지위를 누렸던 미국은 진정성이 결여된 말잔치에 불과했다. 미국이 유일한 핵보유국이었던 만큼, 국제 핵통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실천해야 했지만, 이를 거부한 것이다.

뒤이어 집권한 아이젠하워는 에너지로도 가공할 무기로도 이용될 수 있는 '핵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 원자력 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늘리면서 핵보유국들은 핵무기 보유고를 줄이기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의 제안은 바루크 플랜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었다. 바루크 플랜이 핵무기의 완전 폐기를 제안한 반면,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에서는 감축과 통제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우라늄 은행'으로 제안된 IAEA의성격도 변질되었다. IAEA의 당초 기능은 공평하게 우라늄을 모아 이것을 다시 분배하는 것이었는데, 소련이 우라늄 납부를 거부하고 미국 의회가 핵 물질 및 기술 분배의 독점적 권한을 주장하면서 무산되었다. 이렇듯 국제적 핵 통제 구축이 난항을 겪고 있는 사이에 미국, 소련, 영국 등 핵보유국들이 다른 여러 나라들과 양자 협정을 체결해 원자로를 비롯한 핵시설과 핵기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의 구상은 이후 지지와 비판을 함께 수반하게 된다. 옹호자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 없었더라도 핵확산은 불가피했고, 이 구상을 통해 그나마 그 속도와 범위를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 IAEA가 공식적으로 창립돼 국제적 핵 통제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아이젠하워의 정책은 미국 원자력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었고, 오히려 핵확산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반박한다.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이 이미 원자력 기술을 갖춘 상태여서 앞으로 미국의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 수 있으므로 미국이 선수를 쳐야 한다는 '이윤 논리'가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돈을 벌기 위해 핵 기술을 다른 나라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인도, 이스라엘,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원자력 수출에 힘입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거나 그 문턱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NPT와 IAEA의 '생얼'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의 근본 취지는 핵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평화적 이용은 증진하는 대신에, 인류 문명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핵무기의 확산은 방지하자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의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취지와 맥락을 같이한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첫째,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 스스로가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이 구상을 추진한 탓에 국제 사회의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둘째, 미국의 실질적 행보는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과 거리가 멀었다. 그가 백악관에 들어갈 때 1,400개였던 미국의 핵무기는 그가 백악관을 떠날 때는 2만개까지 증가해 있었다. 셋째, 미국은 핵 기술과 물질이 군사용으로 전용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핵 국가에 대한 원자력 수출에 적극적이었다. 훗날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거나 개발에 성공한 많은 나라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원자력을 수입한 나라들이 대부분인데, 여기에는 비밀 핵개발에 성공한 남아프리카 공화국뿐만 아니라 오늘날 미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이란도 포함되어 있다. 끝으로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로 이어진 원전 사고가 입증해준 것처럼, 핵 '발전' 역시 핵 '무기' 못지 않게 인류 생존과 지구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에 창설된 IAEA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 기구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증진하는 대신에, 핵기술이 군사적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1961년에는 최초로 안전조치협정을 만들었고, 1967년에는 기존의 내용을 강화한 새로운 안전조치협정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1970년 NPT가 탄생하면서 IAEA는 비핵 국가의 의무를 검증하는 유엔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설립 취지에 "원자력 에너지의 공헌을 진전시키고 확대한다"고 명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IAEA가 원전 확대를 존재 이유로 삼다보니 '국제 원전 마피아'라는 오명을 자초하고 있다. IAEA의 홍보부장을 지낸 요시다 야스히코의 말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목으로 각국으로부터 온, 원자력 산업 대리인들이 업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만 활동한다. 국제기구라고 하면 뭔가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실태를 냉정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IAEA의 횡포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유엔 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이다. WHO는 1956년까지는 "원자력 산업과 방사능원의 증대에 의해 미래 세대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1959년 WHO는 IAEA와 맺은 협약을 맺고는 IAEA의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IAEA 입장이 다른 것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핵 강대국들이 유엔을 장악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이에 따라 WHO는 IAEA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IAEA와 WHO의 협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IAEA의 횡포는 체르노빌 사태에 대한 평가에서 또 다시 입증된다. IAEA는 2006년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약 4000명이라고 발표했다. 반론은 즉각 구소련에서 원전 설계에 관여했던 과학자들을 통해 나왔다. 이들은 IAEA의 평가가 ▲영어 이외의 슬라브어로 된 1차 차례를 이용하지 않았고 ▲방사성 물질 43%가 배출된 지역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의도적으로 방사선 농도의 수치를 과소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98만5천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NPT를 살펴보자. 1968년부터 서명에 들어가 1970년 3월에 발효된 NPT는 핵무기 확산을 예방하고 궁극적으로 완전한 핵무기 폐기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대표적인 국제 군축 조약이다. NPT가 발효될 당시에는 회원국이 43개국에 불과했으나 점차 늘어나 2012년 2월 현재 189개국으로 늘어났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에 줄곧 비회원국으로 남아 있으면서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으며, 북한도 이들 나라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 네 나라가 NPT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IAEA의 감시와 사찰에 동의해야 한다.

NPT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비핵 국가와 핵보유국 사이의 균형된 의무로서 '비확산(non-proliferation)'과 '핵군축(disarmament)'을 함께 요구하는 한편, 회원국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비확산'은 비핵 국가들이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보장받는 대신에 이를 핵무기 개발로 전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핵군축'은 핵보유국의 핵무기 폐기 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NPT는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확산'에 초점을 맞춘 조약이다. 또한 생물무기금지협약, 화학무기금지협약, 대인지뢰금지협약, 집속탄금지협약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군축 조약은 해당 무기의 사용 및 실험 금지와 폐기를 명시한다. 반면 NPT는 핵보유국의 핵무기 사용 금지는 물론이고 추가적인 핵무기 제조 금지와 핵폐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NPT는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을 했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인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하면서 핵폐기 의무를 '선의(good faith)'에 맡겼다. 반면 다른 회원국들의 핵무기 개발은 금지하고 IAEA를 통해 이를 검증하는 대신에 평화적 핵이용을 보장하고 있다.

NPT는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189 대 4'(회원국 대 비회원국)라는 스코어가 보여주듯, NPT는 군비 통제 조약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184 대 9'(비핵 국가 대 핵보유국)라는 숫자는 NPT 등장 이전에 우려되었던 핵확산이 이 조약 발효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비확산 분야의 베테랑 외교관이었던 조지 번George Bunn은 "NPT가 없었다면, 오늘날 9개국이 아니라 30~40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NPT가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 규범을 확고히 함으로써 비핵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동기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핵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것은 NPT 때문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적‧안보적‧경제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NPT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고 그 의무의 이행도 차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불평등 조약'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리고 아래의 표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NPT는 5대 핵보유국의 핵군축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미국 쓰리마일 원자력 발전소

핵은 무기로부터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즈음에 그 과학적 원리가 입증되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직후 전쟁이 끝났다. 가공할 폭발력을 선보인 핵은 이후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추진력으로 핵을 이용해 대서양과 태평양의 강자로 우뚝 섰고, 이후 소련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도 뒤따랐다. 이들 무기에 추진력으로 사용된 핵 발전은 가압경수로(PWR)였는데, 이후 PWR는 대표적인 핵 발전소의 모델이 된다.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에너지로 쓸 수 있다면?' 많은 과학자들과 정부들은 이 질문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원자력을 "세계 번영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핵을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한 움직임은 195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핵을 "기적의 힘"이라고 부르면서 대단히 저렴하고 고갈될 걱정도 없는 에너지원 개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태양의 일부를 지구에 갖다 놓은 것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핵을 무기로 사용하면 인류 절멸의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에너지로 사용하면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8일 유엔 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를 발표했다. 그는 말했다. "핵의 시대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우려해야 할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략) 미국은 여러분과 전 세계 앞에 가공할 만한 핵의 딜레마를 해결할 것을 약속합니다. 인간의 경의적인 발명품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당시 원자력에 대한 환상은 미국 원자력위원회 의장이었던 루이스 스트라우스(Lewis Strauss)가 원전은 "너무 저렴해서 측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났다. 이러한 환상은 1955년 12월 31일자 일본의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원자력을 잠재 전력으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게다가 석탄 등의 자원이 지구상에서 차차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에너지가 갖는 위력은 인류 생존에 불가결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중략) 전기료는 2,000분의 1이면 된다. (중략) 원자력발전에는 화력발전처럼 큰 공장이 필요 없다. 큰 연돌이나 저탄장도 필요 없다. 매일 석탄을 운반하고 재를 버리기 위한 철도나 트럭도 필요 없다. 밀폐식 가스터빈을 이용할 수 있으면 보일러의 물조차 필요 없다. 물론 산간벽지를 선택할 필요도 없다. 빌딩의 지하실이 (핵) 발전소가 될 수도 있다."

'핵무기는 통제하고 원전은 확대하라!'

'신의 불'이라고 불리던 핵을 가장 먼저 손에 넣은 미국은 자신의 핵무기 독점은 유지하면서 핵의 "평화적 이용" 방안 마련에 몰두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11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고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은 철저한 국제 검증 아래에 두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유엔 원자력위원회(UN Atomic Energy Commission)를 만들어 국제적 핵통제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이듬해 미국 정부는 더욱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새로운 핵무기와 핵분열 물질 생산 금지, 우라늄 광산 통제, 핵연료 주기에 대한 국제적 통제와 엄격한 검증 체제 구축, 완전한 핵무기 폐기, 국제 원자력 개발 기구(International Atomic Development Authority)를 창설 등을 담은 '바루크 플랜'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당시 핵 독점의 지위를 누렸던 미국은 진정성이 결여된 말잔치에 불과했다. 미국이 유일한 핵보유국이었던 만큼, 국제 핵통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실천해야 했지만, 이를 거부한 것이다.

뒤이어 집권한 아이젠하워는 에너지로도 가공할 무기로도 이용될 수 있는 '핵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 원자력 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늘리면서 핵보유국들은 핵무기 보유고를 줄이기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젠하워의 제안은 바루크 플랜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었다. 바루크 플랜이 핵무기의 완전 폐기를 제안한 반면,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에서는 감축과 통제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우라늄 은행'으로 제안된 IAEA의성격도 변질되었다. IAEA의 당초 기능은 공평하게 우라늄을 모아 이것을 다시 분배하는 것이었는데, 소련이 우라늄 납부를 거부하고 미국 의회가 핵 물질 및 기술 분배의 독점적 권한을 주장하면서 무산되었다. 이렇듯 국제적 핵 통제 구축이 난항을 겪고 있는 사이에 미국, 소련, 영국 등 핵보유국들이 다른 여러 나라들과 양자 협정을 체결해 원자로를 비롯한 핵시설과 핵기술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의 구상은 이후 지지와 비판을 함께 수반하게 된다. 옹호자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 없었더라도 핵확산은 불가피했고, 이 구상을 통해 그나마 그 속도와 범위를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 IAEA가 공식적으로 창립돼 국제적 핵 통제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아이젠하워의 정책은 미국 원자력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었고, 오히려 핵확산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반박한다.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이 이미 원자력 기술을 갖춘 상태여서 앞으로 미국의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 수 있으므로 미국이 선수를 쳐야 한다는 '이윤 논리'가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돈을 벌기 위해 핵 기술을 다른 나라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인도, 이스라엘,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원자력 수출에 힘입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거나 그 문턱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NPT와 IAEA의 '생얼'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의 근본 취지는 핵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평화적 이용은 증진하는 대신에, 인류 문명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핵무기의 확산은 방지하자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의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취지와 맥락을 같이한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첫째,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 스스로가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이 구상을 추진한 탓에 국제 사회의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둘째, 미국의 실질적 행보는 아이젠하워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과 거리가 멀었다. 그가 백악관에 들어갈 때 1,400개였던 미국의 핵무기는 그가 백악관을 떠날 때는 2만개까지 증가해 있었다. 셋째, 미국은 핵 기술과 물질이 군사용으로 전용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핵 국가에 대한 원자력 수출에 적극적이었다. 훗날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거나 개발에 성공한 많은 나라들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원자력을 수입한 나라들이 대부분인데, 여기에는 비밀 핵개발에 성공한 남아프리카 공화국뿐만 아니라 오늘날 미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이란도 포함되어 있다. 끝으로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로 이어진 원전 사고가 입증해준 것처럼, 핵 '발전' 역시 핵 '무기' 못지 않게 인류 생존과 지구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힘입어 1956년에 창설된 IAEA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 기구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증진하는 대신에, 핵기술이 군사적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1961년에는 최초로 안전조치협정을 만들었고, 1967년에는 기존의 내용을 강화한 새로운 안전조치협정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1970년 NPT가 탄생하면서 IAEA는 비핵 국가의 의무를 검증하는 유엔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설립 취지에 "원자력 에너지의 공헌을 진전시키고 확대한다"고 명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IAEA가 원전 확대를 존재 이유로 삼다보니 '국제 원전 마피아'라는 오명을 자초하고 있다. IAEA의 홍보부장을 지낸 요시다 야스히코의 말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목으로 각국으로부터 온, 원자력 산업 대리인들이 업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만 활동한다. 국제기구라고 하면 뭔가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실태를 냉정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IAEA의 횡포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유엔 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이다. WHO는 1956년까지는 "원자력 산업과 방사능원의 증대에 의해 미래 세대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1959년 WHO는 IAEA와 맺은 협약을 맺고는 IAEA의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IAEA 입장이 다른 것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핵 강대국들이 유엔을 장악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이에 따라 WHO는 IAEA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IAEA와 WHO의 협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IAEA의 횡포는 체르노빌 사태에 대한 평가에서 또 다시 입증된다. IAEA는 2006년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약 4000명이라고 발표했다. 반론은 즉각 구소련에서 원전 설계에 관여했던 과학자들을 통해 나왔다. 이들은 IAEA의 평가가 ▲영어 이외의 슬라브어로 된 1차 차례를 이용하지 않았고 ▲방사성 물질 43%가 배출된 지역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의도적으로 방사선 농도의 수치를 과소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98만5천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NPT를 살펴보자. 1968년부터 서명에 들어가 1970년 3월에 발효된 NPT는 핵무기 확산을 예방하고 궁극적으로 완전한 핵무기 폐기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대표적인 국제 군축 조약이다. NPT가 발효될 당시에는 회원국이 43개국에 불과했으나 점차 늘어나 2012년 2월 현재 189개국으로 늘어났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에 줄곧 비회원국으로 남아 있으면서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으며, 북한도 이들 나라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 네 나라가 NPT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고 IAEA의 감시와 사찰에 동의해야 한다.

NPT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비핵 국가와 핵보유국 사이의 균형된 의무로서 '비확산(non-proliferation)'과 '핵군축(disarmament)'을 함께 요구하는 한편, 회원국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비확산'은 비핵 국가들이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보장받는 대신에 이를 핵무기 개발로 전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핵군축'은 핵보유국의 핵무기 폐기 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NPT는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확산'에 초점을 맞춘 조약이다. 또한 생물무기금지협약, 화학무기금지협약, 대인지뢰금지협약, 집속탄금지협약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군축 조약은 해당 무기의 사용 및 실험 금지와 폐기를 명시한다. 반면 NPT는 핵보유국의 핵무기 사용 금지는 물론이고 추가적인 핵무기 제조 금지와 핵폐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NPT는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을 했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인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하면서 핵폐기 의무를 '선의(good faith)'에 맡겼다. 반면 다른 회원국들의 핵무기 개발은 금지하고 IAEA를 통해 이를 검증하는 대신에 평화적 핵이용을 보장하고 있다.

NPT는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189 대 4'(회원국 대 비회원국)라는 스코어가 보여주듯, NPT는 군비 통제 조약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184 대 9'(비핵 국가 대 핵보유국)라는 숫자는 NPT 등장 이전에 우려되었던 핵확산이 이 조약 발효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비확산 분야의 베테랑 외교관이었던 조지 번George Bunn은 "NPT가 없었다면, 오늘날 9개국이 아니라 30~40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NPT가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 규범을 확고히 함으로써 비핵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동기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핵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것은 NPT 때문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적‧안보적‧경제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NPT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고 그 의무의 이행도 차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불평등 조약'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리고 아래의 표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NPT는 5대 핵보유국의 핵군축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2년 1월 21일 토요일

국민을 위한 에너지 산업 체제를 구축하자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1-20일자 기사 '국민을 위한 에너지 산업 체제를 구축하자'를 퍼왔습니다.
[이젠 국유화다④] 재벌 손아귀에 떨어진 신재생에너지 산업

지금 석유는 매우 위험한 상태이다. 무궁무진할 줄 알았던 석유의 고갈을 경고하는 과학자들의 메시지는 꽤 구체적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를 찾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동시에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전쟁은 자원개발을 둘러싼 다양한 합종연횡을 낳고 있는 동시에 병력과 비행기가 동원되는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국 부시 정권이 이라크를 향해 진격했던 이유가 ‘석유 파이프 라인 확보’에 있었음은 세 살배기조차 알고 있다. 그리고 2012년 지금 오바마 정부는 이란을 향해 핵무기 개발 중단을 요구하며 석유 수입을 제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국 의회는 법까지 만들어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에게 이란에서 생산한 원유를 수입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처럼 자원의 확보가 중요한데, 지금 한국에서는 정부와 민간재벌이 이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와 민간자본인 SK, GS 등 정유기업들이 각개약진하는 모양새이다.

한국석유공사:국내대륙붕 사업, 해외석유개발 사업, 시추선 사업, 석유비축 사업, 비축기지 건설 사업, 연구개발 사업, 석유정보 서비스 

SK 계열사(에너지 화학 부문):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케미칼, SKC, SK E&S, SK가스, SK루브리컨츠

GS칼텍스 사업:석유분야, 석유화학, BASE 오일 및 윤활유 분야, 전력 및 지역 난방분야, LNG 및 도시가스분야, 해외자원개발분야, 신재생에너지 분야, 녹색성장사업분야
S-OIL 사업:정유부문, 윤활부문, 석유화학부문, 연구개발, 해외시장

향후 석유를 둘러싼 민감한 문제들이 다양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석유 자원 개발에 대한 부분은 국가 및 정부 부문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관련 법률들을 개정해서 자유화했던 해외개발 및 자원개발 영역을 공공화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민간 재벌이 석유개발과 도입 과정에서 국민의 이익이나 국익을 얼마나 고려할까?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재벌들에게 국민과 국익은 없다. 그들은 총수 일가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그런 재벌의 정유회사들에게 에너지 자원의 개발과 공급의 역할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Iran Focus 미국 의회는 법까지 만들어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에게 이란에서 생산한 원유를 수입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사업은 국가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

석유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소비 체계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석유 중심 에너지 체제를 새로운 에너지 체제로 바꾸자는 호소와 제안들은 참 많다. 그런데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연구개발과 그 성과에 대한 소유가 재벌들의 손아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재벌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면서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독려하는 양상이다. 결국 국민의 엄청난 혈세가 정책 자금으로 재벌들에게 흘러가면서 국민의 미래를 위한 대체 에너지 체제가 아니라 정유 기업을 소유한 재벌들의 새로운 이익 창출 분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식경제부는 2011년 업무계획에서 ‘1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수출 400억불의 신(新)주력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면서 태양광, 풍력 등 에너지원(源)별 중소‧중견기업의 사업화 지원에 200억원(2011년)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2015년까지 수출 1억불 이상 글로벌 스타기업 50개를 육성하겠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재벌에 대한 지원을 명시적으로 표방하고 있지만 않지만 SK와 GS칼텍스 등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진출을 확대 강화하고 있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은 직간접적으로 이들 재벌을 지원하고 후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재생에너지는 국가의 미래는 물론이고 국민들의 삶과 생활까지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야이다. 이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전 국민이 뜻을 모아야 한다. 정부는 돈을 대고 재벌과 기업들이 에너지 개발과 상용화를 실행하는 그런 방식으로는 미래를 결코 준비할 수 없다. 

석유 소비체제를 사회화하자

석유의 소비 과정의 혁신도 필요하다. 민간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정유 시설을 거친 석유 제품들은 정제 이후 비싼 가격으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이를 통해 정유회사와 그 재벌들은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 정부 역시 석유에 대한 다양한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 글에서 에너지 가격 결정 방식과 구조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도입되는 원유 가격 대비 판매 가격의 격차가 크다면, 그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어떤 정책이 아니라 민간자본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는다면 사회적으로 이는 재조정되어야 한다.

지금 정부에서는 알뜰 주유소라는 것을 만들고 있다. 기존 정유업체들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동의하는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내용인즉 주유소들이 공동구매를 통해 매입가를 낮추고 각종 비용을 줄여 석유 판매가격을 낮추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조금 더 싼 가격으로 석유제품을 파는 주유소가 조금 더 생길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

알뜰 주유소가 아니라 정유회사들이 지배하고 있는 석유제품 공급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주유소들이 정유회사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석유 공급 관련 표준계약서를 마련하여 정유업체들이 석유제품 공급까지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 재벌에 의한 소비/유통망 대신 사회적으로 통제되는 유통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종탁(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2011년 12월 8일 목요일

"오바마 정부의 '중국 견제' 핵심은 석유 수송로 장악'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07일자 기사 '"오바마 정부의 '중국 견제' 핵심은 석유 수송로 장악''을 퍼왔습니다.
[해외시각] "석유로 중국 목을 죄겠다는 미국의 위험한 불장난"

미국이 최근 외교안보적 차원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핵심 사안은 남중국해 문제다. 미국은 인도, 인도네시아,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중국을 둘러싼 국가들과 외교적·군사적 유대를 강화하면서 해양으로 뻗어나오려는 중국을 봉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행보는 남중국해를 장악함으로써 중국의 목줄을 틀어쥐려는 시도라고 마이클 클레어 햄프셔대 교수는 주장했다. 에너지 안보 권위자인 클레어 교수는 6일(현지시간) 미국 웹사이트 '톰디스패치' 기고에서 과거에도 미래에도 국제정치의 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석유일 것이라며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움직임은 중국의 석유 수송로 인근의 통제력을 강화하는데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클레어 교수는 이같은 미국의 전략이 중국의 반발을 불러와 아시아 지역에서 신냉전을 촉발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석유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미국의 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해서도 환경 파괴 등의 이유를 들어 우려를 표했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원문 보기)

▲지난 1월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뉴시스

중국에 대한 정책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려 하는가? 중동 지역에서의 재앙과도 같았던 두 개 전쟁을 끝내며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에서 새로운 냉전을 촉발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석유는 다시 한 번 지구적 패권의 열쇠로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호주 의회 연설에서 대담하면서도 지극히 위험한 지정학적 견해를 드러낸 것은 미국의 새로운 정책을 나타내는 신호였다. 지난 수십 년간 중동에 집중돼 왔던 미국의 힘의 초점이 아태 지역으로 옮겨지리라는 것이다. 오바마는 "나의 방침은 명확하다"면서 "우리는 미래에도 이 지역에서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 관리들이 이 새로운 정책에 대해 특별히 중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오바마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제부터 미국의 군사전략 우선순위는 대테러전략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봉쇄가 될 것이다. 어떤 위험이나 대가가 따르더라도 말이다.

지구의 새로운 중심

미 고위 당국자들은 현재 아태 지역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에 집중하고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중국이 아태 지역 내에서 영향력을 확장할 기회를 가졌다고 말한다.

2차 대전 이후로 미국은 처음으로 아태 지역에서의 지배적인 경제 행위자가 아니게 됐고, 만약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려면 아태 지역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회복하고 중국의 영향력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것이 향후 몇십 년 간 미국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이 새로운 전략에 발맞춰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힘을 강화하고 중국을 수세에 처하게 한 일련의 움직임을 취했다. 호주 다윈기지에 미군 2500명을 파견하기로 한 것이나 지난달 18일 '마닐라 선언'을 통해 필리핀과 긴밀한 군사적 유대관계를 맺기로 한 것 등이 이에 포함된다.

또 백악관은 인도네시아에 F-16 전투기 24대를 판매한다고 발표했고 클린턴 장관은 미국 국무장관으로서는 56년만에 처음으로 중국의 오랜 동맹국이자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던 버마를 방문했다. 클린턴은 또한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과의 외교‧군사적 유대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중국을 둘러싸고 있거나 중국이 천연자원을 수입하고 자국 제품을 수출하는 해상 무역로상에 있다.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의 말처럼, 이런 움직임은 중국이 역내에서 경제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미국의 외교‧군사적 우위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다. 클린턴은 최근 기고에서 경제적으로 약화된 미국은 더 이상 다수의 지역에서 동시적인 우세를 유지할 수 없음을 암시했다. 미국은 반드시 전장(戰場)을 신중하게 골라야 하며 제한된 자원을 투입해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권력질서에서 아시아가 갖는 중심성을 감안하면 이는 곧 자원을 아시아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클린턴은 "지난 10년 간 우리는 막대한 자원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쏟아부었다"며 "앞으로의 10년 동안 우리의 리더십과 안보, 이익을 유지하는데 가장 좋은 위치를 점하려면 어디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지 스마트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 따라서 앞으로 10년 간 미국의 국가 운영에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아태지역에 투자할 외교적 경제적 전략적 자원을 실질적으로 계속 증가시키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는 위험한 도발이다. 최근 발표된 조치들은 중국을 둘러싼 해상 군사력 증대와 중국 인접국들과의 군사 유대 강화 등을 수반한다. 이는 중국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미국의 침입에 대한 더 적극적인 군사 대응을 선호하는 중국 지도자(특히 군사 지도자)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다.

미국의 시도가 어떤 형태를 띠든 한 가지는 명백하다. 세계 제2의 경제 대국 중국의 지도자들은 자국 주변에서 미국이 영향력을 강화하는데 대해 중국이 약하고 우유부단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결국 미국이 2011년 아시아에서 신냉전의 씨앗을 뿌린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군사력 집중과 잠재적인 중국의 반격 가능성은 이미 미국과 아시아 등 언론에서 토론 주제가 됐다. 그러나 (미중 간) 초기 투쟁의 중대한 한 측면은 전혀 주목받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의 갑작스런 행보가 세계의 최신 에너지 질서에 미칠 영향의 정도가 바로 그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관측처럼 이는 미국에는 우위를, 중국에는 취약성 증대를 가져올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 질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대부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석유에 심하게 의존해 왔다. 반면 중국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2001년 미국은 매일 196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했지만 자국 내 생산량은 일일 900만 배럴에 불과했다. 매일 1060만 배럴을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 정책결정자들에게 큰 근심거리였다. 미국은 중동의 석유 생산국과 긴밀하고 군사화된 유대를 맺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미국의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때때로 전쟁도 벌였다.

반면 중국은 2001년 석유 소비량이 하루에 500만 배럴에 불과했고 국내 생산량은 일일 330만 배럴이었다. 때문에 중국은 해외 석유 공급자들의 안정성에 크게 목을 매지 않았고 오랫동안 복잡한 외교정책을 통해 개입해 온 미국의 전철을 밟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오바마 행정부의 결론처럼 판이 바뀌었다. 중국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중산층이 출현하면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자동차를 샀다) 중국의 석유 소비량은 급등했다. 중국의 일일 석유 소비량은 2008년 780만 배럴이었으나 2020년에는 1360만 배럴로, 2035년에는 1690만 배럴로 늘 것으로 미 에너지부는 추산했다. 반면 중국 국내의 석유 생산량은 2008년 하루 400만 배럴에서 2035년 530만 배럴로밖에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2008년 하루에 380만 배럴이었던 중국의 일일 석유 수입량은 2035년 1160만 배럴까지 늘어 미국을 추월하게 될 것이다.

한편 미국의 에너지 상황은 좀더 나아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알래스카나 멕시코만 인근 의 유전, 몬태나, 노스다코타, 텍사스의 '셰일 오일' 등 미국 국내에서 이뤄질 소위 '힘든 기름'(tough oil. 깊숙이 묻혀 있거나 지질학적으로 시추가 어렵다는 등의 사정으로 채취 비용이 많이 드는 원유 : 옮긴이)의 생산량 증대에 힘입어, 전체 소비량이 늘어나더라도 수입량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중동이나 아프리카보다 서반구의 석유 생산량이 더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 역시 캐나다, 브라질에서 더 많은 '힘든 기름' 탐사가 이뤄졌고 콜롬비아의 상황이 안정화되는데 따른 것이다. 에너지부는 미국, 캐나다, 브라질의 석유 생산량이 2035년이면 일일 1060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증가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설치한 해상 구조물. ⓒ로이터=뉴시스

해양 수송로는 누구의 것인가?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미국에 이익이 될 것이며 중국은 해양 수송로에서 일어나는 예상 밖의 변화에 더 취약하게 될 것이다. 즉 미국은 오랫동안 자국 외교정책을 지배해 왔으며 스스로를 황폐화시킨 비싼 전쟁으로 자신을 이끌었던 중동 산유국과의 정치적 군사적 유대를 점차 느슨하게 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게 됐다.

오바마가 호주에서 말한 것처럼 미국은 진실로 스스로의 군사적 초점을 재조정해야 할 위치에 와 있다. 오바마는 "값비싼 전쟁을 치른 지난 10년이 지난 후, 미국은 아태 지역의 광대한 잠재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 모든 것은 중국에는 잠재적인 전략적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석유 수입량 중 일부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송유관을 거쳐 오지만 중동, 아프리카, 남미로부터 유조선에 실려 오는 양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이 유조선을 거쳐 오는 해양 수송로는 미국 해군이 경비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으로 들어오는 거의 모든 유조선은 오바마 행정부가 해군력에 의한 효율적 통제 방안을 찾고 있는 수역, 즉 남중국해를 가로지른다.

오바마 행정부는 남중국해와 인접 해역의 지배권을 확보함으로써 21세기 에너지 질서의 주도권을 획득하려 하고 있는 것이 명확하다. 이는 20세기에 핵무기가 수행했던 협박과 같은 역할이다. 즉 '우리를 압박한다면 에너지 공급로를 차단함으로써 너희의 경제를 마비시킬 것이다'라는 것이 이 정책의 함의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절대 공식 석상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이런 노선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중국이 이같은 위험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도 많다. 예를 들어 중국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카스피해에서부터 드넓은 아시아 전체를 가로지르는 송유관(또는 가스관)을 건설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오바마의 새로운 전략의 청사진이 명확해질수록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이 자신들의 에너지 생명줄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리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런 시도에는 경제적, 외교적 조치가 포함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같은 지역 국가들과 앙골라,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주요 석유 공급국들의 환심을 사려 할 것이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곤란한 것은, 군사적 속성을 띠는 조치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함대에 비하면 여전히 작고 초보적인 수준이겠지만 중국이 해군력 강화에 나서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또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들과의 군사적 유대 강화도 이뤄질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현재 아시아에서 냉전 시기와 같은 군비 경쟁에 불을 지핀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떤 국가든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긴장을 더 격화시키고 우발적인 사태가 벌어질 위험을 높일 수 있다. 2009년 3월 대(對)잠수함 작전 중이던 미 군함 임페커블호를 중국 해군 함대가 에워싸고 거의 교전 직전 상황까지 갔던 사태와 같이 미국, 중국과 동맹국 군함이 개입된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군함들이 더 도발적인 태세로 이 해역을 돌아다니게 된다면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더 극단적인 결과가 일어날 위험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군사력 우선 정책이 가져올 잠재적 위험과 비용은 아시아 안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려 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극지 탐사, 심해 탐사, 수리학적 파쇄 같은 환경 파괴 우려가 높은 기술들을 승인해 주고 있다. 지난해 4월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워터호라이즌호 폭발 같은 환경 재앙이 미 본토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가장 더러운 에너지'로 불리는 캐나다 '타르 샌드'(tar sand, 모래와 기름이 섞인 물질에서 추출한 석유 : 옮긴이)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수록 온실 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는 등 환경 파괴 위험이 커질 것이다. 브라질 인근 등 대서양 심해에서의 석유 생산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모든 상황은 명백히 우리가 환경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더 위험한 세계에 살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동에서 벌어진 재앙과도 같은 전쟁에서 몸을 빼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런 군사적 지배와 도발을 강조하는 전략을 재차 선택한 것은 분명 반작용을 불러올 것이다. 이는 신중한 태도도 아니며 장기적으로 보아 세계적 경제 협력이 중요한 이 시기에 미국의 국익을 증진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외부 에너지 의존성을 줄이기 위해 환경을 희생한다는 것 또한 말이 안 된다.

아시아에서의 신냉전과 서반구에 걸친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지구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대립과 환경적 재앙을 불러올 독약과도 같은 정책들은 아직 되돌릴 수 있을 때에 재고돼야 한다. 이런 정책이 훌륭한 통치행위의 표본이 아니라 '바보들의 행진'에 불과하다는 것은 굳이 예언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곽재훈 기자(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