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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0일 금요일

[사설]핵에너지 없는 대한민국은 가능하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4-19일자 사설 '[사설]핵에너지 없는 대한민국은 가능하다'를 퍼왔습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어제 발표한 ‘한국의 지속가능에너지 전망 보고서’는 핵 에너지 없는 대한민국이 가능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린피스는 한국의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역량을 높이 평가하면서 2050년까지 전체 공급에너지의 60%를 깨끗하고 저렴하며 안전한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우선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동시에 전체 에너지부문 투자재원의 90%를 재생가능에너지 및 열병합 발전에 투자할 경우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2050년까지 매년 평균 48억달러의 에너지 투자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수많은 녹색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도 한다. 이상적인 시나리오가 아니다. 현존 기술의 일부분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그린피스 보고서는 겉으로는 재생·클린 에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세계 원자력 강국을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부의 제1차 국가기본에너지계획은 2030년까지 현재 전체 수요전력의 39%인 원자력발전 의존율을 59%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신재생에너지가 경제성이 있으려면 40~50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그 수준이 드러난다. 

이 같은 정책기조는 시장논리 측면에서 보아도 세계적 추세에 어긋난다. 보고서가 적시했듯이 세계 재생가능 에너지시장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5~2010년 사이에 풍력에너지 설비용량은 333%가, 태양광은 700% 이상 성장했다. 미국 시민단체 퓨채리터블 트러스트가 지난 13일 발표한 ‘누가 신재생에너지 경쟁에서 앞서가는가’라는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신재생에너지 생산능력은 전년에 비해 17.3%가 늘었다. 미국은 481억달러(54조5690억원), 중국은 455억달러를 투입해 1, 2위를 기록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22년까지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이 306억달러, 이탈리아가 280억달러를 각각 투입했다. 한국의 투자규모는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15위에 그친 3억3300만달러에 불과했다. G20 국가들의 총 재생가능에너지 투자규모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것은 0.1%에 불과하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이 같은 투자규모는 중국·인도·일본은 물론, 인도네시아에도 뒤지는 것으로 미래 에너지 후진국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것이다. 

원자력을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재원만으로도 충분하다. 결국 정부의 정책의지가 관건이다. 그린피스 보고서는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의 눈을 보고 ‘기회는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기술은 있었지만, 비전이 없었다’고 말할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2012년 3월 11일 일요일

후쿠시마에서 열린 지옥문, 밀양에서 닫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9일자 기사 '후쿠시마에서 열린 지옥문, 밀양에서 닫자!'를 퍼왔습니다.
[후쿠시마 그리고 1년] 충격은 있어도 변화는 없었다

L 선생님께

이제 모레 3월 11일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딱 1년이 됩니다. 선생님께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리고자 1인 시위를 비롯한 온갖 퍼포먼스를 한 지도 1년이 됩니다. 저번에 잠시 만났을 때, 얼굴이 까칠해서 마음이 아팠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자 회견을 했던 지난 2월 22일, 선생님은 짧은 편지로 울분을 표시하였습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노무현 정부 총리 때 했던 말("원자력 5대 강국으로 진입하자!")을 언급하면서, 핵 발전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강 기자, 요즘도 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올라오던 그 뉴스를 꿈에서 보곤 합니다. 그 후쿠시마의 비극이 부산에서, 울산에서, 영광에서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저 무심한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대통령의 그런 얘기에 분노하지 않는 시민들은 또 어떻고요? 이런 상황이 절망스럽습니다."

선생님의 절망이 배어 있는 편지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를 보고 나서도 사람들은 왜 변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저 역시 지난 1년간 계속해서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충격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요?


ⓒ프레시안

후쿠시마, '무지'와 '무심' 사이에서

1년 전 한국 언론은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일본 현지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연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뉴스를 도배했습니다. 몇몇 언론은 취재 준비도 제대로 못한 기자를 후쿠시마 현지로 급하게 보냈다가 새로운 뉴스메이커가 되기도 했고요. 현장에 파견된 기자들이 방사성 물질에 피폭되었으니까요.

L 선생님께서도 언급하셨던,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원자로를 담아 두던 격납고가 폭발하던 모습은 특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절대로 핵발전소가 핵폭탄처럼 '펑' 하고 터질 리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저조차도 그 뉴스를 보고서는 영문을 모른 채 불안에 떨었으니까요. (핵연료 안에는 방사성 우라늄이 아주 적은 농도만 포함돼 있어서 폭탄과는 다릅니다.)

물론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었던 한국 언론 중에서 지속적으로 후쿠시마 사고를 보도한 곳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핵 발전의 위험에 무지한 이유 중 하나를 언론의 소극적인 보도 태도 탓이라고 질타했습니다. 한국 언론의 한심한 행태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국 언론이 후쿠시마 사고를 지속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으나, 초기의 보도만 놓고 보면 그 양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대다수 국민은 그 보도만으로도 핵발전소가 사고가 났을 때 얼마나 위험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지 생생히 체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 충격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것일까요?

최근에 닐 포스트먼이 1985년에 펴낸 (홍윤선 옮김, 굿인포메이션 펴냄)를 정독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먼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 세계 곳곳의 온갖 전쟁, 범죄, 사고, 홍수와 같은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된 현실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도처에 흘러넘치는 정보는 이를 접하는 사람과는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다. 즉,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된 사회적, 지적 상황과는 무관한 정보라는 뜻이다. (…) 아침에 TV 뉴스나 라디오 또는 신문을 통해 접한 정보로 하루의 계획을 바꾸거나, 아니면 하지 않았을 일을 저질렀다거나, 무엇인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적이 얼마나 자주 있는가?

(…) 일상적인 뉴스는 대부분 그저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쓸모없는 정보의 집합체일 뿐 의미 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 삶과 무관한 정보가 도처에 흘러 넘쳐 '정보 대비 행동 비율'이 극적으로 낮아져버렸다. (…) 온 세계가 뉴스를 위한 배경으로 전락하자 사람들은 일말의 통제 감각마저 상실해 버렸다. (, 114, 117쪽)

포스트먼의 이런 지적은 지금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뉴스가 유통되는 방식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충격적인 사실(fact)이 24시간 동안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전달이 되더라도 대다수 사람에게 그런 정보는 자신의 삶과 무관한 것일 뿐입니다. 보통의 생활인에게는 후쿠시마 사고보다는 일기예보가 좀 더 삶에 밀착된 뉴스일 테니까요.

더구나 그렇게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제공되는 뉴스는 대개는 파편적인 정보입니다. 기사가 조금만 길어도 "길어서 못 읽겠다!" "처럼 한마디로 정리해!" 등의 댓글이 붙는 요즘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더 심화되었고요. 그러니 독자가 뉴스를 통합하고 해석하려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뉴스는 30초짜리 광고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1년 내내 전달한다고 한들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너무 적은 보도는 대중의 무지함을 낳는다면, 이런 식의 너무 많은 보도는 대중의 무심함을 낳습니다. 무지와 무심, 둘 중에 뭐가 더 무서운가요? 무지한 사람은 가르칠 수라도 있지만, 무심한 사람은 도리가 없습니다.

'위험'과 '안전'의 악순환

L 선생님,

지금부터 불편한 얘기를 털어놓겠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한국의 환경 단체를 비롯한 반핵 세력은 핵발전소의 '위험'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지겹도록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도 꿈쩍도 안 하는 정부, 여론이 야속한 나머지 사석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 이런 얘기도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사고가 한 번 나야해!"

반핵 세력이 위험을 강조하니, 찬핵 세력도 도리가 없습니다. 지난 1년간 찬핵 세력은 '안전'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지진 심지어 미사일 공격에도 안전한 한국 핵발전소의 신화가 대중에게 유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핵발전소가 위험해서 걱정이지? 더 안전한 핵발전소를 만들면 되잖아!"

무슨 얘기냐고요?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의가 '위험하다-안전하다' 이런 이항 대립 구도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전혀 엉뚱한 곳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논리대로라면, 반핵 세력이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하는 한 대중의 각성과 변화를 이끌어낼 가장 큰 기회는 더 큰 사고입니다. 안타까운 상황입니다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보가 무너지는 것이고, 지구 온난화가 초래하는 문제를 확인하려면 심각한 기후 재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찬핵 세력의 상황은 더 아이러니합니다. 반핵 세력이 위험을 강조할수록 이들은 더 안전한 핵발전소 개발과 건설을 향해서 일로매진합니다. 안전한 원자로를 개발하고자 더 많은 연구 자금과 연구 인력이 필요합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핵발전소 안전장치의 성능이 향상된 것도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핵에너지 의존을 탈피하는 에너지 전환을 바라는 L 선생님과 같은 분에게는 이중의 악재입니다. (저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정말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로 무장한 위험성이 대폭 감소된 핵발전소가 등장한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온 처지라면,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환경 운동가 일부가 핵발전소에 대한 태도를 바꾼 데도 이런 사정이 작용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평소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온 그들은 지구 온난화라는 더 큰 위험이 나타나자,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핵발전소의 위험에는 눈을 감아 버린 것입니다. '위험하다-안전하다' 이항 대립 구도가 낳은 또 다른 부작용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핵발전소를 용인할 리 없습니다. 반핵 세력은 좀 더 안전해진 핵발전소의 또 다른 위험, 시스템의 불확실성 등과 같은 것을 강조할 테지요. 그렇다면 찬핵 세력은 어떻게 나올까요? 당연히 그런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연구 자금과 연구 인력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핵 발전은 계속됩니다. 우라늄이 고갈될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는 또 핵폐기물을 재처리해서 활용하자고 하겠군요.

'안전'에서 '윤리'로!


▲ <원자력의 거짓말>(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프레시안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었던 일본의 지식인 고이데 히로아키는 (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에서 '안전' 아닌 '윤리'를 강조합니다.

고이데는 도호쿠 대학 원자력공학과 재학 시절에 센다이 근처에서 벌어진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어떤 주민 집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생을 반핵 운동에 바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반핵 운동을 결심하면서도 전공을 바꾸지 않은 것은 반핵 운동의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서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후 고이데는 연구자로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일생 동안 외로운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고이데의 반핵 메시지 중에 들어있는 독특하게 윤리적인 시각이다. 그는 자신이 반핵 운동을 계속해온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핵의 안전 문제가 아니라 핵을 둘러싼 차별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13~14쪽)

마침 김종철 발행인도 고이데의 책에서 "윤리적인 시각"을 포착해 강조하고 있어서 소개합니다. 고이데의 책에 묶인 글들에 녹아 있는 윤리적인 시각은 김종철 발행인의 말대로 "핵을 둘러싼 차별 구조"입니다. 도대체 핵을 둘러싼 무슨 차별 구조가 있다는 것일까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핵발전소 노동자.

최근에 가톨릭대학교 이영희 교수를 통해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소개받았습니다. 일본의 도모히코 스즈키가 쓴 . 이 책은 이번에 후쿠시마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을 비롯한 일본의 핵발전소와 범죄 조직 야쿠자 간의 연계를 주장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선생님, 야쿠자와 핵발전소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의 핵발전소는 1990년대부터 야쿠자 조직원을 고용해 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일본의 핵발전소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최악의 직장이기 때문입니다. 야쿠자는 바로 이런 핵발전소에 노동자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온 것이지요.

도모히코는 그 자신이 2011년 여름 수개월간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위장 취업을 한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사고를 수습하던 노동자는 제대로 맞지 않는 방사성 물질 필터가 부착된 마스크를 쓰고, 작업장에서 쫓겨나 삯을 제대로 못 받을 게 두려워 개인별 방사능 측정 배지를 양말 안에 넣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규직 노동자보다 못한 보호 장구를 지급 받으며 험한 일을 하는 이들은 대개가 노숙인, 실업자, 야쿠자에게 빚 독촉을 받는 사람 등이었습니다. 최근에 일본의 미야베 미유키가 쓴 소설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가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지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며 만신창이가 된 여주인공의 안타까운 사연이 바로 지금 후쿠시마를 비롯한 핵발전소에서 진행 중인 거예요.

일본의 원자력자료정보실 통계를 보면, 피폭 노동자의 수는 지난 30년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대부분은 도쿄전력과 같은 전력회사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을 통해서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들의 희생을 통해서 핵발전소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아쉽게도, 핵발전소 노동자의 피폭 방사선량이 다른 산업에 비해서 많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국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심지어 안전하다고 확신하면서) 수만 명이 핵발전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핵발전소는 그들의 희생 없이는 한 순간도 가동할 수 없습니다.

둘째, 지역 주민.


▲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녹색평론사
가끔 핵 발전을 놓고서 얘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곤 합니다.

"이번에 지진이 난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는 전력 회사 '도호쿠전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곳은 '도쿄전력'이잖아요. 혹시 이상하다 생각해 본적은 없으세요?"

이런 질문을 받고서야 사람들은 '아!' 하고 탄식을 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후쿠시마를 비롯한 도호쿠 지방이 아니라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도쿄로 공급이 됩니다. 그러니 후쿠시마 핵발전소도 도호쿠전력이 아닌 도쿄전력이 관리하는 것이지요.

후쿠시마 핵발전소 단지가 만들어지던 1950~60년대만 하더라도 도호쿠 지방은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도호쿠 지방이 얼마나 차별을 받는 낙후된 곳이었는지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일본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펴냄)을 보면 생생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강원도 삼척, 경상북도 울진, 영덕을 새로운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했습니다. 삼척, 울진, 영덕이 어떤 곳인가요? 변변찮은 공장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낙후된 그곳 주민에게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질 전기가 필요할 리 없습니다. 지금 삼척, 울진, 영덕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위해서 또 한 차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치우 어르신은 어떻고요? 고압 송전탑 탓에 평생 농사를 짓던 땅을 빼앗긴 70대 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 외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하소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고압 송전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바로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서울, 대전, 대구 등으로 옮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울 한강에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선언을 하지 않는 한, 이런 식의 희생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지역의 희생을 전제한 핵발전소를 유지하는 게 과연 윤리적인가요? 서울에 사는 이들은 일본에서 날아온 방사성 물질이 섞인 비를 걱정하기 전에, 자신의 안락한 일상생활이 누구의 희생 덕분인지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미래 세대.

흥미로운 일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핵폐기물의 위험에 대해서 대다수 시민이 여전히 무지하다는 사실입니다. 적지 않은 언론에서 고준위 핵폐기물은 수만 년, 수십만 년 이상 자연과 격리가 필요한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렸는데도 대다수 시민은 금방 망각합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익숙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이 반감기는 방사성 물질의 방사능이 원래 값의 절반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확률적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3·11 사고 이후에 아이 분유를 비롯한 각종 먹을거리에서 발견되는 방사성 물질 '세슘 137'의 반감기는 약 30년입니다.

'반감기 30년'은 30년이 지나야 방사성 세슘의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0년이 지나도 세슘은 안전하지 않아요. 나머지 절반의 세슘은 여전히 방사선을 내뿜을 테니까요. 보통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를 서른 번 정도 지나야 완전히 방사능을 잃습니다. 그러니 세슘이 안전해지려면 900년(30년×30)이나 걸리는 셈입니다.

(다행히 사람은 몸속의 위험한 물질을 끊임없이 밖으로 배출하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몸속으로 들어온 방사성 세슘은 원래의 반감기와는 상관없이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보통 세슘의 절반 정도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10일 정도입니다. 물론 그 동안 세슘의 방사선은 알게 모르게 몸속 곳곳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핵폐기물 안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방사성 물질 '플루토늄 239'는 반감기가 2만4000년입니다. 반감기가 2만4000년이니, 플루토늄이 방사능을 잃는데 걸리는 시간은 실제로는 수십 만 년(!)이 걸릴 것입니다. 실제로 핀란드는 핵폐기물을 10만 년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처리장을 짓는 '온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0만 년이라니요! 지구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게 바로 약 13만 년 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수천 년, 수만 년 후의 미래 세대에게 핵폐기물의 위험을 어떻게 경고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선사 시대 동굴에 쓰인 기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나요? 국어 시간에 200년 전에 한글로 쓰인 소설도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해독할 수 없었잖아요.

그래서 유일한 해결책은 말 그대로 '원자력 족(族)'을 만드는 방법뿐이라는 암울한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핵폐기물 처리장을 지키는 종교 조직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들이 '금기'를 이어가게 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특정한 장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기' 말입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클로드 카리에르와의 대담을 실은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서 핵폐기물을 둘러싼 이런 사정을 언급하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그냥 나 혼자만 해본 생각입니다. 핵폐기물을 묻되, 매우 희석된 상태, 즉 방사능이 아주 약한 상태의 폐기물을 맨 위층에 두고, 점차로 방사능이 강한 층들을 깔아 나가는 겁니다. 만일 외계인(혹은 미래 세대-인용자)의 실수로 그 폐기물이 손이나 혹은 손처럼 사용하는 다른 기관이 닿는다 하더라도, 그는 단지 손가락 한 마디를 잃게 될 뿐입니다.

만일 더 해본다면 손가락 하나를 잃게 되겠죠. 하지만 그가 더 이상 파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 198~199쪽)

핵 발전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세계 어느 나라도 만들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불가능성 때문입니다. 핵발전소는 이미 대기 중에 배출된 방사성 물질뿐만 아니라 에코와 같은 걱정을 해야 할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쓰레기의 처리를 미래 세대에게 떠넘깁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요?

'후쿠시마 국민' 아닌 '밀양 국민'!

L 선생님,


▲ <녹색당 선언>(녹색당 기획, 이매진 펴냄). ⓒ이매진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후쿠시마 1년, 왜 대다수 사람은 변하지 않을까?' 이제 질문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후쿠시마 1년, 왜 어떤 사람은 변했을까?'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면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입니다. 한국에서 녹색당을 준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은 (녹색당 기획, 이매진 펴냄)을 보면, 영덕의 박혜령 씨가 등장합니다. '돈의 노예'로 살았던 도시 생활에 지쳐 9년 전 영덕 시골 마을로 들어갔던 박 씨는 핵발전소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총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밀양의 이치우 어르신은 어떻습니까? 핵발전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송전탑이 앗아간 그의 넋을 위로하고자 17일 밀양으로 가는 '탈핵 희망 버스'가 기획되고 있습니다. 다수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그의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조명될 때, 정의롭지 못한 에너지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받는 전국 곳곳의 제2, 제3의 희생자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핵발전소에서 피폭을 당하며 노동에 종사하는 이름 없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떻습니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우리가 시급히 했어야 할 일이 바로 핵발전소의 고용 관행, 작업 실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아니었을까요?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는지 알려야 합니다.

이런 '작은 것들의 정치'가 모여서 거대한 대항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에서도 핵 발전이 아닌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장 먼저 '탈핵'을 선언한 독일의 힘도 수십 년간 축적해온 이런 대항 네트워크(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의 노동자, 녹색당 정치인 등)가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이 마땅히 3·11을 앞두고 자신을 '후쿠시마 국민'이라고 규정해야 하듯이, 지금 우리는 자신을 '밀양 국민', '영덕 국민', '삼척 국민'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3·11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의 '삶과 무관한' 재난 영화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삶에 뿌리내린 문명사적 전환의 순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L 선생님의 건투를 빕니다.

2011년 3월 9일

강양구 드림.

2012년 3월 5일 월요일

"원자력은 싸다"?…MB의 거짓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5일자 기사 '"원자력은 싸다"?…MB의 거짓말'을 퍼왔습니다.
[3.11 후쿠시마가 남긴 것] '원자력은 경제적'이라는 허상

오는 11일이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난 지1주년이 된다. 이 사고는 후쿠시마 원전의 노심만이 아니라 '원자력은 깨끗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인 에너지'라는 신화를 붕괴시켰다. 일본의 이웃나라인 한국에서 그 영향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원자력 확대' 선언과 신규 원전 부지 지정, 핵안보정상회의 유치에서 보이듯 흔들리는 원전의 지위를 사수하기 위한 이른바 '원전 마피아'의 방어가 강해졌다. 반대로 시민사회에서는 원자력의 위험성을 경고해온환경단체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원자력과 방사능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고, 친환경적인 대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미 탈핵을 선언한 독일 등 몇몇 나라에서처럼 전면적인 전환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원자력 신화에 도취되어 있던 한국에서 이러한 균열은 중요한 변화다. 3.11 후쿠시마 사고가 지난 1년 간 한국에 남긴 것을 더듬어본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주년 특별 기자회견에서 '원전 불가피론'을 설파하며 내세운 주요 근거 중의 하나는 '원자력이 싸다'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원자력을 폐기하면 전기료가 40% 올라가야 한다", "지금 31%의 전력을 원자력에 의지하고 있어 세계에서 전기료가 가장 싼 것"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소위 원전의 '경제성'은 원자력 발전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할 때 나오는 가장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원자력문화재단은 "원자력 발전은 경제적인 에너지원"이라고 홍보했다. 2011년말 기준 원자력의 발전 단가는 kWh 당 39.07원으로 산정되어 수력 134.73원, 석유 221.25원, LNG 140.36원, 무연탄 98.67원 등에 비해 훨씬 저렴하개 거래됐다.


'싸다'고 홍보하면서 가격 어떻게 매겼는지는 영업상 비밀?

문제는 이러한 원자력 발전단가가 어떻게 산정된 것인지 정보가 공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의 발전단가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정부 고시에 따라 결정한다. 그러나 한수원이나 원자력문화재단은 '원자력은 경제적인 에너지'라고 홍보할 뿐 산정 근거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기획처 예산팀 관계자는 "원자력 발전 단가 내역은 비공개 대상"이라며 "모든 제조사에서 원가는 '영업상 비밀' 아니냐.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환경단체의 요구는 물론 국회에도 발전 단가 산정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공동대표는 "한수원과 한전은 손해를 세금으로 메꾸는 공기업인데다 '원자력은 경제적이다'라는게 원자력 확대 정책의 가장 핵심 논리인 상황 아니냐"며 "단순히 원전의 발전단가는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결정 기준이기 때문에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단가를 다시 산정한 결과 화력발전보다 원자력 발전이 더 비싼 것으로 나왔다. 일본의 원자력위원회 소위원회가 지난 10월 발표한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와 재처리 비용을 고려하면 원자력 발전 비용은 1kWh당 6.7엔으로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 비용(1kWh 당 5.7엔)이나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전(1kWh 당 6.2엔) 보다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력발전소, 한번 사고나면 재앙 '믿는 건 세금'?"


한국의 전력 요금에는 이런 사고에 대비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을까. 다른나라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피해에 대비해 전력회사에 일정의 피해보상액을 미리 확보하도록 하는 '원자력손해배상법'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고가 났을 때 전력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배상 액수는 제한적이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원자력책임 보험료마저도 경감시켜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전력회사가 3억 SDR(IMF 준비통화 단위), 한화로 약 5000억 원 가량을 한도로 배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이 1200억 엔, 약 1조5600억 원으로 정하는 것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나는 액수다. 게다가 일본의 경우 1200억 엔은 최소 확보 금액이고 그 이상은 '무한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유한 책임'이라 5000억 원 이상의 피해는 정부가 지원하도록 되어있다.

후쿠시마 사고만 해도 앞으로 40년 이상은 걸릴 배상, 제염, 폐로 비용은 100조 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의 위원회는 2011~2012년 간만의 피해 보상 금액만으로 4조 5000억 엔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회사가 부담하는 배상금액은 물론 일본의 회사에 부과된 금액도 훌쩍 넘어선 수치다. 사실상 원전 사고에 따른 피해 부담은 전력회사가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한국의 전력회사는 배상금액 5000억 원을 확보하고 있지도 않다. 장정욱 마쓰야마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대통령령으로 전력회사의 확보 금액을 특별히 낮출 수 있도록 해 원자력 책임 보험금은 실질적으로는 불과 500억 원만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반면 원자력 사업자를 위한 원자력 재산 보험금은 약 1조 원에 달한다"고 꼬집었다.

장정욱 교수는 "만약 원자력 사업자의 부담을 국민의 세금으로 경감시켜주는 이러한 제도가 없다면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현재 대통령령에 따른 경감 조치를 복귀시키기만 해도 현재 한전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열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원자력은 경제적이다'라는 신화를 가능하게 하는 숨은 비용은 모두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사진은 경주 월성 1호기. ⓒ뉴시스

폐로·고준위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합하면…

원자력발전의 발전 단가를 책정할 때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원전의 해체·철거 등 폐로 비용과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폐기물 처리 비용, 그리고 사고 발생시 처리 비용 등을 반영했느냐, 또 이들을 얼마로 산정했느냐 등의 문제다.

한수원 관계자는 "내역은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 비용, 폐로 비용 등 논란이 되는 거의 모든 비용이 다 들어가 있다"면서 "사용후 핵연료 처리 비용이나 폐로 비용 등도 다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한수원 측의 주장대로 미래 비용까지 다 반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얼마로 책정했느냐는 별개 문제다. 가령 정부는 2003년도부터 원전 철거 비용을 호기 하나당 3251억 원으로 상정하고 이를 '원전 철거비 충당금'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을 폐로하는 데에는 이보다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 1기당 철거해체 비용을 6000억원 이상으로 추산했고, 환경운동연합과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인 고리 1호기의 폐로 비용을 9860억 원으로 추산하는 보고서를 냈다.

최근 유럽에서도 원전의 폐로 비용이 과소 평가되어 왔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달 8일 유럽감사원은 가동이 중단된 원전의 해체철거비용은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보다 2배 가량 많다는 특별보고서를 냈다. EU는 1999년부터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에 있는 총 8기의 원전을 폐쇄, 철거하는 비용을 28억 유로(4조3000억 원)으로 산정하고 지원해왔으나, 실제로는 이에 더해 25억 유로를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비용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를 각 원전의 저장 수조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으며 매년 약 700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해 2016년 포화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폐기할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어떻게 건설할지에 관한 공식적인 논의는 아직 이뤄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직접 처분 보다 더 비용이 더 많이 드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2003년 일본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 비용은 직접 처분 비용보다 약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왔고, 비공개 자료에서는 약 4배라고도 나온다고 한다. 만약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까지 강행한다면 원전의 숨은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셈.

"전기요금에 들어가야 할 돈을 세금으로? '수익자 부담 원칙' 붕괴"

결국 사고시 배상·보상 비용,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 원전 폐로 비용 등 '원자력은 경제적이다'라는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원전의 숨은 비용은 모두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현 세대의 이득을 위해 미래 세대에게 비용을 전가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이 그 비용과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도 맞지 않다.

이헌석 공동대표는 "지금처럼 폐로나 사용후 핵연료 비용을 원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세금을 투입해서 원자력 발전소를 폐로해야 할 것"이라며 "전기원가에 폐로 비용을 반영한다면 '수혜자 부담 원칙'에 따라 전기를 더 많이 쓰는 사람이 그 비용을 더 부담하게 되지만, 세금으로 처리하면 모든 사람이 나눠서 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생산 전력의 50~60% 가량을 산업계가 쓰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용후 핵연료나 폐로 비용 등을 국민의 세금으로 쓰는 것은, 결국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산업계를 다시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채은하 기자 

오스트리아의 기적같은 '탈핵 오디세이'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5일자 기사 '오스트리아의 기적같은 '탈핵 오디세이''를 퍼왔습니다.
[기고] 악마의 선물을 거부한 오스트리아

도나우 강변을 걸으며

지난 연말 공직을 훌훌 벗고 비엔나의 가족 집에서 석달 동안 한거했는데, 깊고 푸른 도나우(다뉴브)강의 물빛에 매료되어 그곳을 자주 찾았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도나우의 물빛은 내가 옛날 옛적에 읽은 적이 있던 어느 일본 소설의 제목과도 같았다. 흡사 우리들의 비밀스런 푸른 혈맥이 합류해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내면 깊숙이 흐르는 천년 기억이 만들어 놓은 신비의 심연 같기도 하다. 환희인 듯 우수인 듯, 사랑인 듯 죽음 인듯, 짙푸른 강심이 숨기고 있는 매력의 정체는 종내 알 수가 없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바라보노라면 인간과 새들과 갈대들이 난장을 트고 있는 한바탕 생명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도나우강, 섬진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그리고 그 강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후덕한 산과 뫼를 마음속에 그려 보다, 나는 문득 탄식을 토한다.

"하나님, 어찌해 우리 인간들에게 이토록 과분한 선물을 안겨주셨습니까? 걸핏하면 자연에 폭력을 가하는 못된 피조물들에게 말입니다."

이 아름다운 강변에 핵발전소가 들어선다면? 그리하여 인간과 새들이 언젠가 올지도 모를 핵 재앙의 공포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오스트리아에서 실제로 일어날 뻔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뜸이 이렇게 길어졌다.

비엔나에서 도나우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100리(40km)쯤 올라가다보면 뜬금없이 거대한 인공 건물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강변 풍경과는 전혀 컨셉이 다른, 누가 보아도 이물(異物) 같은 이 건물은 다름 아닌 핵발전소이다. 그런데 괴이한 것은, 이것이 '우두커니' 서있다는 점이다. 완공된 후 지금껏 한 번도 엔진이 돌아가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을 것이라 한다.

도대체 왜 멀쩡한 핵발전소가 하릴 없이 놀고만 있는 것일까? 애써 지었으면 엔진을 돌리든지, 돌리지 않으려면 애시 당초 짓지를 말았던지 할 일 아닌가. 10억 유로 상당의 막대한 예산까지 부었다면서 말이다. 실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일까?

인구 3000여 명에 불과한 도나우 강변 작은 마을 쯔베텐도르프(Zwetendorf)라는 곳에 오스트리아 정부가 핵발전소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1972년. 그 때부터 극소수 '반골'들이 반대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세력을 얻어갔으며 5~6년 후 완공을 앞둔 시점에 와서는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갈렸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는데, 정부 여당은 투표 결과를 낙관했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78년 11월 투표함을 열어 보니 반대가 50.5%로 나타난 것이다. 1% 차이였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써 오스트리아는 핵발전소를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아울러 당시 계획 중이던 다른 5기의 핵발전소 건설 계획도 모두 폐기되었다. 이렇게 오스트리아는 영원히 '핵'과 결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에 대해 정부 및 정당들은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이 나라의 탈핵 오디세이는 어떻게 가능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궁금증에 좀이 쑤신 나머지 관련 정보와 자료들을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 읽어 보았다. 그러던 중 비엔나의 학자이자 반핵 운동가인 피타 바이쉬(Peter Weish) 박사의 글을 접했다. 내용이 여실하고 현장감이 있었다. 나는 박사에게 이메일로 이 글을 소개해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박사는 흔쾌히 응락했다. 그래서 이 글의 요지 부분을 여기 싣게 되었다.


▲ 핵발전소 예정 건물이었던 오스트리아 쯔베텐도르프의 박물관

오스트리아의 핵에너지에 대한 결별
196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 정부는 핵발전 프로그램에 착수했고, 기획사가 설립되었다. 당시 나는 비엔나 근처에 소재한 핵발전 방사능 보호를 위한 기관의 생물학 연구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방사능 쓰레기 및 방사능의 생물학적 위험을 알고 있었던 나는 핵발전소 건설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렇게 나는 애초부터 반핵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1971년 있었던 우리들의 첫 시위를 나는 기억한다. 핵발전소 건설 부지로 선정된 쯔베텐도르프로 향하는 시위 행진이었는데 참석자는 모두 열 두어 명 가량이었다. 이듬해인 1972년, 수도 비엔나로부터 20마일 떨어진 도나우강 상류에 있는 쯔베텐도르프에 최초의 핵발전소 건설이 시작되었다. 공사는 독일의 AEG사와 SIEMENS가 맡았다. 완공되면 70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게 되어 오스트리아 전기 생산량의 약 10%를 감당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에 더해 1974년 초에는 제2의 핵발전소 건설이 추진되었다. 당시 양대 주요 정당인 사회당과 당시 제1야당인 보수당이 모두 핵발전소를 지지했고, 소수당인 자유당만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1975년 공식적인 정부 에너지 계획에 의하면, 오스트리아는 1985년까지 총 3000메가와트 발전량을 충당할 3기의 발전소를 완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74년 겨울에 2기 건설 공정이 유예되었다. 전기 수요가 감소한데다가, 지역주민들의 집단적 반대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1976년 가을이 되자 정부는 핵발전소의 타당성과 이점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외의 반작용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몇몇 신문들이 비판적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반핵 운동은 가열되었다. 원래 핵폐기물을 다른 나라에 수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려니 했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핵폐기물의 국내 저장소 문제를 둘러싸고 후보지 지역 주민으로부터 대대적인 반대 활동이 일어났다. 언론에서는 핵 이슈를 광범위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완공 단계의 쯔붸텐도르프 핵발전소 문제에 대해 이제 비로소 바보 멍청이로 낙인찍히지 않고도 내 놓고 시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반대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방사능 유출의 해독성* 미결 상태로 남아 있는 여러 기술적 문제들* 핵 폐기물의 관리와 처리에 대한 해결 불가능한 난제들* 소위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과 핵 군수산업간의 연계성* 불완전한 위기 대처 계획, 핵 재앙 발생시 여러 도시를 동시에 소개(疏開)해야 할 필요성과 그 불가능성.

우리는 또한 핵 산업 및 플루토늄 생산의 확대를 반대하는 우리들의 비판적 활동이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을 저지하는 투쟁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활동들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1977년 4월 잘츠부르그에서는 '핵 없는 미래를 위한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for a Non-Nuclear Future)가 여러 나라의 비정부 기구들의 주관하에 개최되기도 했다. 거기 참석한 어떤 대표단은 우리들의 반핵 캠페인을 지원해 주었다.

1977년 가을에는 쯔붸텐도르프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그 해 12월 반대자들은 핵발전소에 사용될 연료 수입을 위한 비밀 계획을 폭로하면서 이를 행동으로 저지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사정이 이러하자 연료 수송이 다음해 초로 연기되었다. 그 후 급기야 쯔베텐도르프 부지로 연료를 수송하기 위해 군용 헬리콥터가 동원되었고 부지 주위는 경찰 병력이 봉쇄했다. 모든 반핵 시위와 활동은 완전히 비폭력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주목할 사실이다.

핵발전소 건설 문제가 이렇게 뜨거운 정치적 이슈가 되자, 정부는 이에 대한 결정을 의회로 보냈다. 여당인 사회당은 의회에서의 합의 통과를 확신했다. 왜냐면 제1야당도 찬성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즈음 정부로부터 보고서 한 건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핵발전소에 대한 홍보 캠페인에서 편집되었던 다량의 기록문서와 정보를 정리한 것이었다. 그것은 극도로 친핵적이었으며 편견에 치우친 데다가 여러 중요한 진실을 완전히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홍보전이 대중을 속이기 위해 획책되었다는 반대자들의 당초 주장이 옳았음이 증명된 것이다. 뒤이어 이루어진 국회 청문회에서는 제반 안전 측면이 의문스럽다는 것과 방사능 생태 전문가가 타당성 조사 연구팀에 포함되지 않았던 점 등의 결함이 노출되었다.

이에 국민당(People's Party)이 입장을 재검토했다. 당 대표 타우스(Taus) 박사는 여전히 핵발전소를 선호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안전 문제가 분명해질 때 까지는 잠정적으로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겠고 공표했다.

유권자들 가운데 소수에 머물러 있었던 핵 반대자들이 이제는 그 수가 불어나 선거에서 친핵 정당에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이렇게 되자 집권 사회당은 이 문제를 의회에서 결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왜냐면 국민당의 입장이 모호해졌고, 가장 서쪽의 주(Vorarlberg) 출신의 사회당 의원들이 당의 노선을 따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서단 지역의 주민들은 마침 이웃 나라 스위스가 접경 지역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대해 이를 좌절시켰던 참이었다. 그 지역 주민들은 압도적으로 핵발전소를 반대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내에서 핵발전소가 생긴다면 스위스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했다.

한편 오스트리아 정부는 여러 외국 학자들을 초빙해 그들 나라의 사례를 설명할 기회를 마련했다. 텔러(Teller) 박사도 그들 중의 하나였는데,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명성이 높았고 또 동시에 악명이 높기도 한 사람이었다. 비엔나 대학에서 추진되었던 그의 강의는 학생들의 반대로 취소되고 말았다.

1978년 6월 사회당 소속 크라이스키(Dr. Kreisky) 총리는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그는 핵발전소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지극히 부적절한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이제 입장을 바꾸어 11월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민 다수가 찬성할 것임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친핵 세력은 거대한 지원을 받으면서 전투에 돌입했다. 국가 소유의 기관들에서만도 200만 달러의 세금을 찬성 캠페인을 위해 지출했다. 더 나아가 산업가 협회, 노동조합 산하의 단체들 그리고 사회당이 수백만 달러를 지출했다.

반면 반핵 활동가들이 가진 것이라곤 개인의 주머니에 있는 돈과 몸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다양한 단체들이 반대 활동에 참여해 이채를 띠었다. 예를 들어 원자력을 반대하는 어머니 모임, 교사 모임, 물리학자 모임, 생물학자 모임, 지질학자 모임, 의사 모임, 학생 모임, 카톨릭 모임, 예술가 모임, 무역 노조연맹 등등이었다.

곳곳에 연락 거점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 하나는 오스트리아 학생 동맹이 조직한 것이었다. 동시에 2개의 본부가 조직되었고 학자들과 시민 단체의 상호 협력은 뛰어난 것이었다. 자당의 노선에 반대하는 사회당 인사들은 당으로부터 여러 차례 제명 위협을 받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당의 기강을 무시하기로 강하게 결심했다. 그들의 슬로건은 "(사회당의) 크라이스키 정부에는 Yes, 쯔베텐도르프에는 No"였다.

국민투표 예정일 몇 주 전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는 여전히 찬성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점차 찬반의 차이가 줄어들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반대자들은 더 많은 폭로를 했는데, 기술적 하자, 안전 규정 위반, 부지의 지질학적 부적합성등을 공개했다. 주요 신문들은 핵발전소 이슈를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조명했다.

한편 노동 연맹(Trade Union)의 안톤 베냐(Anton Benya) 회장은 수천 개의 산하 조직의 노동자들에게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져 달라고 설득했다. 크라이스키 총리도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했다. 이로써 국민투표에서 과반수가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다. 뚜껑을 열어 보니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온 것이었다. 투표자수(유권자의 약 3분의 2) 326만 중에서 핵발전소 찬성이 49.5% 반대가 50.5%로 나타났다. 반핵 운동의 열정과 헌신이 거둔 승리였다. 정부 여당의 홍보전과 기성조직의 활동은 패배했다.

이는 오스트리아 현대사에서 한 획을 긋는 사건이기도 했다. 2만 표도 되지 못한 차이가 이 나라에 핵에너지를 물리치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활동과 헌신이 가치가 있음을 보여 주었으며, 모든 모임과 토론과 팸플릿이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모든 활동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성공의 전망이 어두울 때에도 싸우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분석에 의하면, 반핵 다수표는 젊은 세대, 특히 젊은 여성들로부터 나왔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결코 정치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글을 마치며
서두에서 문제의 쯔베텐도르프의 핵발전소가 '우두커니 하릴 없이' 서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실례의 말씀 같다. 이 핵발전소는 박물관으로 변신했으며 일부는 태양열 발전소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2009년도 'Save the World Awards'를 받기도 했다. 당초의 핵발전소가 이제는 역설적으로 반핵 평화의 기념물이자 상징이 되어 웅변을 토하고 있는 것이니, 하릴 없이 우두커니 서있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되는 소리일 것 같다.

공교로운 일이지만, 오스트리아 국민투표의 정당성을 반증해 주기라고 하듯이 투표일로부터 5개월 후에 미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1979년 3월 펜실바니아 주에 속한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가 그것이었다. 그로써 핵발전은 결코 안전하지 않음을 증명해 주었고 오스트리아 사람들로 해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그 뒤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 또 작년의 후쿠시마 재앙 소식을 들었을 때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탈핵 오디세이를 돌아보며 스스로 안도하고 자랑스러워했을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하필이면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사고 발생 직후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텅 빈 비행기를 타고 썰렁한 오사카 공항에 내렸더니 어떤 노신사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정중히 인사를 한다. "아무도 오지 않으려는 우리나라를 이렇게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본은 '아무도 오지 않으려는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오사카는 내가 10여년 전에 근무했던 곳이다. 그 때 사귀었던 친구들을 만나 해후의 정을 나누었다. 그분들이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맥주잔을 주고받으며 왁자하게 떠들었다. 그 때 우리들 중에 아무도 말은 꺼내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엔 핵의 공포, 죽음의 공포가 어른거리고 있음을 나는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 '핵'은 남의 이야기거나 관념적 담론이 아니었다. 바로 내 코앞에 와 있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핵발전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강토를 '아무도 오지 않으려는 나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의문을 내가 갖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핵발전소에 대해 혹자는 안전하고 필요불결하다고 하고, 또 혹자는 악마의 선물이라고 외친다. 어떤 나라들은 정책적으로 핵발전소를 더욱 많이 짓고 수출하려고 하고, 또 어떤 나라들은 여기에서 탈출하려 한다. 2022년 말까지 자국 내의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독일은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과연 어느 길이 옳은 것일까? 우리는 마땅히 후쿠시마가 주는 교훈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막연히 우리 당대에 별 일이야 없겠지 하는 안이한 타성과 불감증, 그리고 자본의 생리에 맡겨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민감하고 너무 오래 가고 너무 큰 일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소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며 꼭 필요하다고 정부가 확신하더라도, 국민들을 설득시킬 책임과 의무는 정부의 몫이다. 만일 핵발전소가 100% 안전하다는 것이 백년 후에 증명된다 하더라도, 지금 민(民)이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매한 민중이여, 나를 따르라, 알게 될 날이 오리라' 하고 밀어 붙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민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민이 설득되지 않으면 강행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핵발전소는 우리와 후손들의 안전과 생명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여기에 여와 야가 어디 있으며, 좌와 우는 또 무엇이며, 보수와 진보와 같은 이분법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재앙이 발생하면 우파는 안전하고 좌파는 위험한가? 혹은 그 역이 성립하는가? 오스트리아의 핵 탈출기가 우리나라의 정책 결정자, 그리고 깨어있는 사람들에게 대안을 모색하는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선흥 전직 외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