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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3일 화요일

"일본 국토의 3%가 방사능 오염 제거 대상지역"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13일자 기사 '"일본 국토의 3%가 방사능 오염 제거 대상지역"'을 퍼왔습니다.
[후쿠시마 이후,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②] 원전 밖의 오염상황과 배상

Ⅲ.원전 밖의 오염상황과 배상

1. 오염지역의 범위와 제염작업의 개시

일본 정부는 지난 해 9월말, 임시적인 시설이지만 순환냉각주입시스템의 가동과 위기대책의 단계적인 정비로 방사성물질의 대량방출 리스크가 줄었다고 하여, 원전으로부터 반경20~30km내의 일부 구역(긴급시 피난준비구역)의 해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연간 피폭선량 20밀리시버트(이하, Sv)를 구역지정의 기준으로 하였던 구역(계획적 피난구역)과 20km내의 경계구역에 대해서도, 오는 4월에 시작될 본격적인 제염작업을 앞두고, 피폭선량을 기준으로 두 구역을 재편할 방침이다.
제염작업은, '방사성물질 오염대책조치법'에 근거하여, 올 1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계획이었으나, 주민의 동의 획득과 중간처분장의 확보 때문에 작업이 지체되고 있다. 제염작업의 실시기준도, 당초는 년간 피폭선량 5mSv 이상이 해당지역이었으나, 지역주민과 지자체의 반발로 1mSv 이상으로 기준이 강화되어 대상면적도 대폭 확대되었다. 이 기준은 자연방사능을 제외한 것으로, 원전사고의 영향인 0.19마이크로(이하,μ)Sv/h분을 포함한 0.23μSv/h이상의 장소가 대상지역이 된다. 단, 매일 실외 8시간, 실내 16시간을 보내는 것을 가정한 숫치이다.



▲ 출처 아사히신문.

일본 문부과학성이 방사성측정장치를 갖춘 항공기와 자동차로 방사성세슘(134과137)을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제염 대상지역은 11,600 평방 킬로미터로 일본 국토의 약 3%에 달한다. 이는 경기도(10,131 평방 킬로미터)와 서울시(605 평방 킬로미터)를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이다. 여기에 포함된 도호꾸(東北)지역의 8개현의 104개 시군읍은, 정부의 재정지원 하에 지자체가 제염작업을 실시하는 지역 '오염상황 중점조사지역'으로, 그리고 정부가 직접 제염작업을 실시하는 경계구역과 계획적피난구역내의 11개 시군읍이 '제염(除鹽)특별지역'으로, 총 115 시군읍이 제염대상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지역산업(농업 및 관광업 등)에의 악영향(소문 피해)을 회피할 목적으로 지역지정을 거부한 지자체들도 있다. 그밖에도, 피난구역은 아니지만, 피난구역에 못지않는 피폭선량의 장소 즉 Hot-spot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주민의 자주피난을 촉구하는 '특정 피난권장지점'으로서 약 280세대(世帶)가 지정되어 있다. 이런 지점은 원전사고 직후의 바람 방향과 비에 의해 방사성생성물의 낙하가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마을내에서 주위보다 피폭선량이 높은 지점의 대부분은 주로 하수구인데, 낙엽 및 토양이 비에 실려 모였다가 물의 증발후에 방사성물질이 농축된 탓이다. 매스컴에서는 이런 지역도 Hot-spot라고 보도하고는 있으나, 특정 피난권장 지점과는 면적의 넓이가 다르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달 중에, 현행의 경계구역과 계획적피난구역을 1)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20mSv 이하, 102 평방km), 2) 거주제한구역(21~50mSv, 72 평방km), 3)귀환곤란구역(50mSv초, 93 평방km) 등 3구역으로 재편할 예정이다.
사고 직후, 일부의 지자체가 주민의 요청으로 유치원 및 초중학교의 부분적인 긴급제염작업을 실시한 적은 있으나, 본격적인 제염작업은 4월부터이다. 년간 피폭선량 50mSv이하의 1)피난지시 해제구역과 2)거주제한구역의 관청, 도로, 학교, 상수도 등 공공시설의 제염작업을 우선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3) 귀환곤란구역의 제염은 당분간 실시하지 않을 예정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제염기술의 한계와 막대한 비용 때문에, 주거허용의 단기적인 기준인 20 mSv 이하로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염작업도, 방사성물질의 반감기가 오기 전까지는, 방사성에 오염된 물질을 주민의 생활환경에서 잠시 격리・보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출처) 일본문부과학성、왼쪽은 공간선량, 오른쪽은 세슘133,137의 토양침착량

일본 정부가 작년 11월부터 피난구역내에서 시험적으로 실시한 제염작업의 결과를 보면, 토양 및 낙엽 등의 제거에서는 일정 정도 감소효과가 나타났으나, 아스팔트도로 및 일반주택의 지붕에서 실시한 고압수 세척의 제염작업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볏집지붕은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기와 및 콘크리트의 표면의 미세한 틈에 들어 있는 방사성물질을 완전히 제거하기가 불가능한 것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50mSv초의 지역으로 피폭선량이 높은 귀환곤란구역에서는 제염작업원들의 피폭문제도 우려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우선 50mSv 이하의 두 구역을 2년간에 걸쳐 선량의 50% 정도로 감소시키는 목표를 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제염작업의 효과는 10%정도로 나머지 40%는 자연적인 분산에 기대할 뿐이다.

한편, 산림지역은 제염을 포기한 상태로, 앞으록 계속 비바람에 의해 방사성 물질이 생활환경으로 유입될 것이나, 주민의 안전한 삶이 보장되기까지는 방사성물질의 반감기로 자연적으로 방사능이 감소되기까지 긴세월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방사성 오염은 육지뿐만 아니라, 해양에서도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계속 드러나고 있다. 증가하고 있는 원전 내부의 방사성오염수의 유출 위험도 있지만, 육지의 방사성물질이 비바람으로 개울 및 강을 통해 호수와 바다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 앞으로, 오염된 수산물의 먹이사슬을 통한 내부피폭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나, 해저토양의 방사능의 경우에는 법적인 규제치조차 없는 상황이다. 해양의 조사는 해저토양과 해수가 이동하므로, 육지보다도 시간 및 비용도 훨씬 많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 및 지자체가 실시할 제염작업의 시행업체들도 정해지고 있는데,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제거한 폐기물을 보관할 장소의 확보이다. 특히 폐기물의 방사능이 높은 후쿠시마현의 경우, 제염작업에서 나오는 폐기물양이 1,500만~2,800만톤으로 최대의 경우에는 일본의 실내야구장인 도쿄돔의 약 23개 분량이 나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보관하기 위해서는 3~5 평방km 면적의 중간저장시설이 불가결하다. 일본정부는 귀환곤란구역으로 지정될, 후쿠시마원전의 입지지역인 후타바군(雙葉郡)의 8시군읍에 중간저장시설의 유치를 요청하였으나, 강력한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이 구역내의 토지를 정부가 차입 또는 매입하여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려는 것이다. 후쿠시마 현내의 각 지자체가 가설처분장을 설치하여 3년간 운영한 후, 2015년 1월부터 인수사업을 시작할 중간저장시설로 가설처분장의 폐기물을 옮겨 약 30년간 보관할 계획이다.

최종처분장의 건설계획은 아직 없으나, 일본정부는 중간저장시설이 영구적인 최종처분장으로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건설예정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완화시키기 위해, 최종처분장은 반드시 후쿠시마현 이외의 장소로 하는 내용의 법규정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편, 사고원전 부지내에서 보관하고 있는 폭발잔해물 등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경우, 현행의 '원자로등(等)규제법'에 의해 별도의 최종처분장에서 보관하게 되나, 이 역시 아직 입지장소는 확보되어 있지 않다.

본격적인 제염작업의 실시를 앞두고, 1월 31일에 카와우찌무라(川內村) 가 귀촌(歸村)선언을 발표했다. 이 지자체는 일부 경계구역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작년 9월말에 해제된 긴급시 피난준비구역만이 대상으로 귀촌의 결정도 주민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구역의 지정해제 후에 돌아 온 주민은 원래의 약 1할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인근의 히로노죠(廣野町)는, 3월1일에 군청사무실만 원래의 건물로 복귀하여 업무를 재개했다. 지정이 해제구역의 지자체가 점차 귀환선언을 발표하겠지만, 병원, 학교, 요양시설, 상점 같은 생활환경이 완전히 복구되지 않는 한, 공동체의 지속적인 유지는 곤란할 것으로 예상된다.

2. 식품의 방사성 규제치와 피폭

사고 직후, 일본정부는 먹이사슬을 통한 내부피폭을 방지하기 위해, 작년 3월17일에 식품에 대한 잠정(暫定)적인 방사능규제치를 설정하였다. 원자력의 안전신화가 모든 사고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탓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국제기준을 참고로 후생노동성에의 자문형식으로 긴급히 규제치를 설정하였다. 예를 들면, 방사성 세슘(이하, Cs)에 오염된 음식을 섭취하더라도 년간 5mSv 이하로 억제하는 식이다.
사고 이후, 후쿠시마현의 농산물뿐만 아니라 원전에서 약 400km떨어진 시즈오카(靜岡)현의 차잎에서도 잠정규제치 이상의 방사능이 발견되어 판매금지 되었다. 생선의 경우, 쓰나미에 의한 어업시설 및 배들의 피해에 따른 영향도 있으나, 사고 직후부터 2012년 3월초 현재도, 후쿠시마현의 어업조합들은 어로작업의 자주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야생동물의 고기, 작은 생선의 일부, 버섯・배추・죽순 등의 야채류에 대해선는 지역별의 출하정지조치가 계속되고 있다.

작년 10월 중순, 수상부(府)의 식품안전위원회는, 식품의 방사성물질의 규제에 대해 [내부피폭]만으로 생애 100mSv를 목표치로 발표했다. 이 기준은 수명 80년의 사람이라면 년간 1.25mSv에 해당하는 것으로, 작년 방사성 Cs의 년간 5mSv의 목표보다 대폭 강화되었다. 위원회는 3000건의 문헌을 조사했지만, 내부피폭에 관한 데이터는 매우 적으며 식품평가로서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 규제치의 가장 큰 변화는, 2012년 2월말에 후생노동성(省)의 약사(藥事)・식품위생심의회가 식품에 포함되는 방사성Cs의 년간 피폭한도를 현행보다 5배 강화된 1mSv로 하고, 또 어린이에 배려한 유아용식품의 신설을 정한 점이다.



이 강화된 기준치의 도입은, 지금은 사고직 후처럼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배출되는 긴급상황이 아니라는 판단과, 어린이피폭에 대한 보호자들의 우려에 배려한 것이다. 특히 음료수는 대체품도 없다는 점에서 세계보건기구(WHO)의 엄격한(?) 기준이 적용됐다. 하지만, 체르노빌원전사고의 피해국인 우크라이나의 경우에는 음료수의 기준은 1리터당 2베크렐(Bq)로 일본보다 엄격하며, 심지어 식기 또는 장난감에도 규제치를 설정하고 있다.

한편, 새로운 규제치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자문요청을 받은 문부과학성의 심의회는, 유아용식품의 별도 설정 및 우유의 기준치를 강화한 점과, 새 규제치가 국내농산물의 5할이 전부 오염되었다는 가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후생노동성의 새로운 규제치를 인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문부과학성 심의회는 농수산업자가 출하정지 및 소문피해를 입는 사태와 검사체제의 정비를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본법에서는 3개월간의 피폭선량이 1.3mSv(년간 5.2 mSv) 이상의 장소를 방사선관리구역로 정해 18세이하의 청소년의 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 문부과학성 심의회는 후쿠시마원전사고 직후에 학교의 년간 피폭선량 기준을 20mSv로 정한 곳이기도 하다. 또, 문부과학성의 심의회가 공개의견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심의회의 전(前) 회장이 관계자들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보내도록 메일로 촉구한 사실도 밝혀졌다.


▲ 게르마늄반도체검출기
새로운 기준치는 올 4월부터 적용되나, 쌀・쇠고기・대두(大豆)의 3가지는 제품의 성장기간에 따른 공급문제를 고려하여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쌀과 쇠고기는 오는 10월부터, 대두(大豆)는 2013년 1월부터 적용된다. 기준치가 강화되어도, 여전히 일본국민이 우려하는 것이 있다. 즉, 식품의 검사체제가 완벽히 정비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강화된 기준치를 검사할 정밀검사기기인 게르마늄(Ge)반도체검출기는 고가인 데다 수량이 한정돼 있기(작년 12월 현재, 일본 전국에 216대 )때문에, 과연 어느 정도 식품의 검사가 철저히 이루어질 지가 앞으로의 과제이다. 방사성 오염식품의 유통에 관한 일본정부의 대응체제에 대해 국민들은 불신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작년 7월초에 잠정규제치를 넘는 쇠고기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검사체제를 정비해 안전선언(출하정지의 해제)을 하기까지 약 2달이나 걸렸던 적이 있다. 특히, 결정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던 것은, 주식인 쌀의 검사체제가 허술하였던 점이다. 피난구역의 벼농사 제한조치, 그리고 철저한(?) 사전검사를 통해 규제치 이하의 안전한 쌀만 출하한다고 후쿠시마현의 지사가 안전선언까지 했지만, 며칠후 농가의 자주검사로 규제치를 넘는 쌀이 발견된는 등, 공공기관의 검사체제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던 것이다.
지난 1월 중순에도 계획적 피난구역내의 채석장에서 나온 돌이 유통되어, 학교의 내진공사 및 통학로, 그리고 신축 아파트 등의 콘크리트 재료로 사용된 것이 밝혀졌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 년간 피폭선량이 약 10mSv로 주거자의 과반수가 피난주민으로 피폭을 피해 멀리 피난 왔지만, 방안에서 피폭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전적인 방사능 측정을 통해 돌의 유통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은 탓이지만, 정부부처간의 권한(權限)의 확보경쟁에 큰 원인이 있다. 관할부처를 보면, 채석장은 경제산업성, 건설업은 국토교통성, 제염은 환경성과 같이 나누어져 있어, 비상시임에도 불구하고 통일적이고 효율적인 규제를 할 수 없는 체제였다. 참고로, 이 돌 문제의 발견은, 아파트에 사는 학생의 선량계의 숫치가 유달리 높은 점이 계기가 되었다. 후쿠시마현의 초중고학생들에게 배급된 휴대용 선량계의 누적피폭량을 정기적으로 체크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수치가 높게 나타 나, 학생의 생활환경을 조사한 결과였던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의 피해확산을 예측하는 '긴급시 신속방사능예측 네트워크 시스템, (SPEEDI)'의 결과를 국민들에게는 신속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단 1장의 예측 결과를 사고 약 10일후에야 비로소 공개했을 뿐이다. 반면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는 사고 직후부터 SPEEDI의 예측결과를 지속적으로 알려줬다. 일본정부의 늑장 대응 때문에, 피난주민들은 정보부족으로 되려 방사능이 높은 지역으로 피난하는 일까지 생겼다. SPEEDI의 존재가 밝혀진 후에도, 일본정부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넣을 배출물질의 양과 종류의 정보부족으로 부정확한 예측에 지나지 않아, 국민들의 불필요한(?) 혼란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 발표를 하지 않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람방향과 속도를 파악하고 있는 이상, 적당한 배출량을 넣어도 오염확산을 예측할 수 있으며, 사고 당일부터 계산한 정부내부의 예측결과도 실제의 오염지역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시스템의 명칭에도 '예측'이 붙어 있는 것처럼, 한정된 자료를 이용하더라도 예측을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였을 것이다. 그리고, 정확한 데이터의 입수가 과연 불가결한 조건이었던가에 대해서도 조사 및 검증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사례는 적지않다. 중요한 사례로서는, 작년 3월말에 피난지역의 어린이들의 일부를 대상으로 한 갑상선조사 결과, 높은 수치가 나온 어린이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정밀검사의 추가실시를 요청하였으나, 일본정부는 검사기기(무게 1t)의 이동곤란, 해당 어린이들에 대한 이지메의 발생방지, 지역사회의 불안조성 등을 이유로 묵살하었다. 또, 행정부처간의 연락부족으로 작년 3월12일~24일까지의 공중 방사선량의 측정조차 실시하지 않았다.
초기 방사능 데이터의 미확보는, 앞으로 장기간의 주민의 건강상태의 추적과 배상문제를 고려하면, 정부의 태만으로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왜냐하면, 후쿠시마현이 주민 약 200만명을 대상으로 피폭량을 추정하고 있는데, 먼전 설문조사로 주민의 피난경로 및 체재기간 등을 파악한 후, 조사한 지역별의 선량으로 개인의 피폭선량을 계산하는 방식이기때문이다. 도쿄전력도 원전내의 사고수습에 종사한 작업원의 피폭량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에는 선량계가 부족한 상태에서 작업에 종사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아직도 하청업자의 수습작업원 10명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다.

3. 피해자 배상은 가능한가?

일본 정부는 원자력관련시설의 사고발생시에 적용되는 원자력손해배상법에 근거하여, 작년 8월부터 원자력손해 배상지원기구(이하, 지원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지원기구는, 도쿄전력이 사고처리와 배상문제에 대한 충분한 재원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이므로, 피해자에의 배상이 지연되지 않도록 도쿄전력에의 자금원조를 실시한다. 그리고, 원자력업무를 담당하던 구(舊) 과학기술청의 일부를 흡수한 문부과학성이 설치한 원자력손해배상 분쟁심사회(이하, 분쟁심사회)가 후쿠시마원전사고의 배상지침(배상의 대상 및 기준)을 정하면, 이에 근거하여 도쿄전력이 피해자에게 일정의 배상금을 지불한다. 단, 당사자간에 배상문제의 대립이 있을 경우에는 심사회의 하부기관으로, 변호사150여명으로 구성된 원자력손해 배상분쟁센터(이하, 분쟁센터)가 주민과 도쿄전력의 화해를 조정한다.

도쿄전력의 배상재원이 부족할 경우에는 지원기구에 자금요청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3월 현재 지원기구가 도쿄전력에 최대 5조엔까지 지원할 수 있다. 이 5조엔은, 적자국채의 일종인 교부(交付)국채가 재원인데, 지원기구는 이 금액내에서 필요할 때마다 국채를 판매하여 현금화한 후, 도쿄전력에 필요액을 지원한다. 2012년 3월초 현재, 지원기구가 도쿄전력에 지원한 금액은 2회에 걸쳐 총 1조5800억엔(약 20조 8000억원)에 달한다. 지원기구의 설립과 함께, 원자력시설(원전, 재처리공장)을 가진 11사도 일정액을 납부하여 배상금에 충당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도쿄전력이 실시하고 있는 배상의 주요한 내용을 보면, 4월말에 정부의 지시에 따라 피난한 반경 20km~30km의 지역주민에 한하여, 세대당 100만엔의 임시의 배상금을 일률적으로 지급하였다. 이 이후부터는, 분쟁심사회가 정하는 수차례의 지침에 따라 배상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추가로 지자체의 피난지시로 대피한 지역주민들도 배상대상으로 추가하였다. 8월초에는 본격적인 배상을 위한 심사회의 중간지침이 확정되어 신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3월초까지도 화해가 성립한 것은 수 건에 불과한 실정이며, 분쟁센터는 도쿄전력의 소극적인 대응이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작년 10월초, 정부의 제3자위원회인 '도쿄전력의 경영・재무조사위원회'가 보고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3년 3월까지의 2년간의 피해보상액을 4조5402억엔(약 60조원)으로 추산했다. 이 배상항목에는 직・간접적인 경제적 피해, 정신적 위자료 등이 포함되어 있으나, 공공단체가 입은 피해 및 생명・건강상의 피해는 제외되어 있다. 그리고, 12월초에 분쟁심의회가 배상지침을 확대하여, 피난구역 이외의 후쿠시마내 23시군읍의 자주피난주민에도 배상을 적용함에 따라, 대상자가 종래의 15만여명에서 후쿠시마현민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150만여명으로 대폭 늘었다. 이중에는 방사능 영향에 민감한 18세 이하의 어린이와 임산부 30여만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따라, 도쿄전력도 담당직원을 늘리고 있으나, 배상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제염작업을 고려해도 앞으로도 장기간의 피난기간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년간 피폭선량이 50mSv초의 귀환불가지역은 최소한 20년 이상 또는 영구히 귀환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 밖의 지역이라도, 농업이 중심인 지역의 경우, 농지는 2, 3년의 방치로 원상회복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총 피해배상금은 장기적인 건강피해의 발생 및 조사비용, 경제적 피해 등을 고려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할 것이다. 한편, 배상책임자인 도쿄전력은, 사고수습비와 원전의 가동중지에 따른 화석연료비의 증가만으로도 실질적으로는 파산상태이다. 작년 10월에 도쿄전력은, 원전사업자가 정부와 체결하는 원자력손해 배상계약금 1,200억엔을 지불받았으나, 지원기구로부터 별도의 지원을 받지 않는 한 배상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원전사고에 따른 배상에 대비하여, 원자력사업자는 일반적으로 원자력책임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원전사고의 원인이 되는 지진 또는 쓰나미도, 다른 나라에서는 민간기업의 공동보험인 원자력보험풀이 취급하고 있으나, 일본은 지진다발국인 탓으로 해외의 원자력보험풀이 재보험을 거부하여, 일본 국내의 보험풀도 지진 또는 쓰나미 같은 원자력보험을 인수하고 있지 않다. 할 수 없이, 일본정부가 일종의 보험형식인 원자력손해배상 보상계약의 체결로 이것들의 보험을 인수하고 있으나, 원전사고시의 최대배상금으로서 겨우 1,200억엔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거대한 원전사고의 배상은 한 기업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결국은 소비자의 전기요금 혹은 국민의 세금으로 메울 수 밖에 없는 점이, 후쿠시마원전사고로 명백해 졌다.

3월초 현재, 도쿄전력에 배상금의 지원만을 하고 있었던 지원기구는, 도쿄전력의 일반경영비(사고수습 비용을 포함)을 지원하기 위해 곧 1조엔의 자본을 투입할 계획이다. 기구는 지원의 전제조건으로서 도쿄전력의 경영권을 확보하고자 하여, 양자간에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기구는 도쿄전력의 총 주식 3분의 2의 확보로 경영권을 쥐고 나서, 10여년동안 회사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계획이다. 장기적인 계획으로서는, 발ㆍ송전(發ㆍ送電)분리를 통해 전력회사의 지역독점제도의 발본적인 해체를 꾀하려고 하는데, 정치계 및 경제계까지 관여하여 도쿄전력의 경영권의 행방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로, 원전사고의 수습비용 즉 배상비용, 제염비, 폐로비용 등의 정확한 예측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로서, 특히 제염비용은 작업내용과 범위에 따라 크게 바뀔 수 있다. 또, 언제 원전사고가 수습이 될지 모르는 상태인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총 비용이 100조엔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본정부의 1년 예산(당초 예산)에 버금간다.
* 후쿠시마 참사 1주년을 맞아 녹색평론ㆍ평화네트워크ㆍ프레시안이 공동 주최하는 탈핵 강연회가 오는 13, 20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2층 강당에서 열립니다. 13일에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핵무기를 통해 본 전쟁과 평화'를, 20일에는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가 '후쿠시마 이후 일본의 핵정책 방향'에 대해 강연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 알림기사 바로가기 : '후쿠시마 1년, 핵 없는 세상을 꿈꾼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

2012년 3월 5일 월요일

"원자력은 싸다"?…MB의 거짓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5일자 기사 '"원자력은 싸다"?…MB의 거짓말'을 퍼왔습니다.
[3.11 후쿠시마가 남긴 것] '원자력은 경제적'이라는 허상

오는 11일이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난 지1주년이 된다. 이 사고는 후쿠시마 원전의 노심만이 아니라 '원자력은 깨끗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인 에너지'라는 신화를 붕괴시켰다. 일본의 이웃나라인 한국에서 그 영향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원자력 확대' 선언과 신규 원전 부지 지정, 핵안보정상회의 유치에서 보이듯 흔들리는 원전의 지위를 사수하기 위한 이른바 '원전 마피아'의 방어가 강해졌다. 반대로 시민사회에서는 원자력의 위험성을 경고해온환경단체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원자력과 방사능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고, 친환경적인 대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미 탈핵을 선언한 독일 등 몇몇 나라에서처럼 전면적인 전환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원자력 신화에 도취되어 있던 한국에서 이러한 균열은 중요한 변화다. 3.11 후쿠시마 사고가 지난 1년 간 한국에 남긴 것을 더듬어본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주년 특별 기자회견에서 '원전 불가피론'을 설파하며 내세운 주요 근거 중의 하나는 '원자력이 싸다'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원자력을 폐기하면 전기료가 40% 올라가야 한다", "지금 31%의 전력을 원자력에 의지하고 있어 세계에서 전기료가 가장 싼 것"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소위 원전의 '경제성'은 원자력 발전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할 때 나오는 가장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원자력문화재단은 "원자력 발전은 경제적인 에너지원"이라고 홍보했다. 2011년말 기준 원자력의 발전 단가는 kWh 당 39.07원으로 산정되어 수력 134.73원, 석유 221.25원, LNG 140.36원, 무연탄 98.67원 등에 비해 훨씬 저렴하개 거래됐다.


'싸다'고 홍보하면서 가격 어떻게 매겼는지는 영업상 비밀?

문제는 이러한 원자력 발전단가가 어떻게 산정된 것인지 정보가 공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의 발전단가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정부 고시에 따라 결정한다. 그러나 한수원이나 원자력문화재단은 '원자력은 경제적인 에너지'라고 홍보할 뿐 산정 근거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기획처 예산팀 관계자는 "원자력 발전 단가 내역은 비공개 대상"이라며 "모든 제조사에서 원가는 '영업상 비밀' 아니냐.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환경단체의 요구는 물론 국회에도 발전 단가 산정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공동대표는 "한수원과 한전은 손해를 세금으로 메꾸는 공기업인데다 '원자력은 경제적이다'라는게 원자력 확대 정책의 가장 핵심 논리인 상황 아니냐"며 "단순히 원전의 발전단가는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결정 기준이기 때문에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단가를 다시 산정한 결과 화력발전보다 원자력 발전이 더 비싼 것으로 나왔다. 일본의 원자력위원회 소위원회가 지난 10월 발표한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와 재처리 비용을 고려하면 원자력 발전 비용은 1kWh당 6.7엔으로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 비용(1kWh 당 5.7엔)이나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전(1kWh 당 6.2엔) 보다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력발전소, 한번 사고나면 재앙 '믿는 건 세금'?"


한국의 전력 요금에는 이런 사고에 대비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을까. 다른나라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피해에 대비해 전력회사에 일정의 피해보상액을 미리 확보하도록 하는 '원자력손해배상법'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고가 났을 때 전력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배상 액수는 제한적이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원자력책임 보험료마저도 경감시켜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전력회사가 3억 SDR(IMF 준비통화 단위), 한화로 약 5000억 원 가량을 한도로 배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이 1200억 엔, 약 1조5600억 원으로 정하는 것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나는 액수다. 게다가 일본의 경우 1200억 엔은 최소 확보 금액이고 그 이상은 '무한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유한 책임'이라 5000억 원 이상의 피해는 정부가 지원하도록 되어있다.

후쿠시마 사고만 해도 앞으로 40년 이상은 걸릴 배상, 제염, 폐로 비용은 100조 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의 위원회는 2011~2012년 간만의 피해 보상 금액만으로 4조 5000억 엔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회사가 부담하는 배상금액은 물론 일본의 회사에 부과된 금액도 훌쩍 넘어선 수치다. 사실상 원전 사고에 따른 피해 부담은 전력회사가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한국의 전력회사는 배상금액 5000억 원을 확보하고 있지도 않다. 장정욱 마쓰야마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대통령령으로 전력회사의 확보 금액을 특별히 낮출 수 있도록 해 원자력 책임 보험금은 실질적으로는 불과 500억 원만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반면 원자력 사업자를 위한 원자력 재산 보험금은 약 1조 원에 달한다"고 꼬집었다.

장정욱 교수는 "만약 원자력 사업자의 부담을 국민의 세금으로 경감시켜주는 이러한 제도가 없다면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현재 대통령령에 따른 경감 조치를 복귀시키기만 해도 현재 한전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열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원자력은 경제적이다'라는 신화를 가능하게 하는 숨은 비용은 모두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사진은 경주 월성 1호기. ⓒ뉴시스

폐로·고준위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합하면…

원자력발전의 발전 단가를 책정할 때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원전의 해체·철거 등 폐로 비용과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폐기물 처리 비용, 그리고 사고 발생시 처리 비용 등을 반영했느냐, 또 이들을 얼마로 산정했느냐 등의 문제다.

한수원 관계자는 "내역은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 비용, 폐로 비용 등 논란이 되는 거의 모든 비용이 다 들어가 있다"면서 "사용후 핵연료 처리 비용이나 폐로 비용 등도 다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한수원 측의 주장대로 미래 비용까지 다 반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얼마로 책정했느냐는 별개 문제다. 가령 정부는 2003년도부터 원전 철거 비용을 호기 하나당 3251억 원으로 상정하고 이를 '원전 철거비 충당금'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을 폐로하는 데에는 이보다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 1기당 철거해체 비용을 6000억원 이상으로 추산했고, 환경운동연합과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인 고리 1호기의 폐로 비용을 9860억 원으로 추산하는 보고서를 냈다.

최근 유럽에서도 원전의 폐로 비용이 과소 평가되어 왔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달 8일 유럽감사원은 가동이 중단된 원전의 해체철거비용은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보다 2배 가량 많다는 특별보고서를 냈다. EU는 1999년부터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에 있는 총 8기의 원전을 폐쇄, 철거하는 비용을 28억 유로(4조3000억 원)으로 산정하고 지원해왔으나, 실제로는 이에 더해 25억 유로를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비용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를 각 원전의 저장 수조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으며 매년 약 700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해 2016년 포화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폐기할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어떻게 건설할지에 관한 공식적인 논의는 아직 이뤄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직접 처분 보다 더 비용이 더 많이 드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2003년 일본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 비용은 직접 처분 비용보다 약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왔고, 비공개 자료에서는 약 4배라고도 나온다고 한다. 만약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까지 강행한다면 원전의 숨은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셈.

"전기요금에 들어가야 할 돈을 세금으로? '수익자 부담 원칙' 붕괴"

결국 사고시 배상·보상 비용,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 원전 폐로 비용 등 '원자력은 경제적이다'라는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원전의 숨은 비용은 모두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현 세대의 이득을 위해 미래 세대에게 비용을 전가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이 그 비용과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도 맞지 않다.

이헌석 공동대표는 "지금처럼 폐로나 사용후 핵연료 비용을 원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세금을 투입해서 원자력 발전소를 폐로해야 할 것"이라며 "전기원가에 폐로 비용을 반영한다면 '수혜자 부담 원칙'에 따라 전기를 더 많이 쓰는 사람이 그 비용을 더 부담하게 되지만, 세금으로 처리하면 모든 사람이 나눠서 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생산 전력의 50~60% 가량을 산업계가 쓰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용후 핵연료나 폐로 비용 등을 국민의 세금으로 쓰는 것은, 결국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산업계를 다시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채은하 기자 

오스트리아의 기적같은 '탈핵 오디세이'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5일자 기사 '오스트리아의 기적같은 '탈핵 오디세이''를 퍼왔습니다.
[기고] 악마의 선물을 거부한 오스트리아

도나우 강변을 걸으며

지난 연말 공직을 훌훌 벗고 비엔나의 가족 집에서 석달 동안 한거했는데, 깊고 푸른 도나우(다뉴브)강의 물빛에 매료되어 그곳을 자주 찾았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도나우의 물빛은 내가 옛날 옛적에 읽은 적이 있던 어느 일본 소설의 제목과도 같았다. 흡사 우리들의 비밀스런 푸른 혈맥이 합류해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내면 깊숙이 흐르는 천년 기억이 만들어 놓은 신비의 심연 같기도 하다. 환희인 듯 우수인 듯, 사랑인 듯 죽음 인듯, 짙푸른 강심이 숨기고 있는 매력의 정체는 종내 알 수가 없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바라보노라면 인간과 새들과 갈대들이 난장을 트고 있는 한바탕 생명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도나우강, 섬진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그리고 그 강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후덕한 산과 뫼를 마음속에 그려 보다, 나는 문득 탄식을 토한다.

"하나님, 어찌해 우리 인간들에게 이토록 과분한 선물을 안겨주셨습니까? 걸핏하면 자연에 폭력을 가하는 못된 피조물들에게 말입니다."

이 아름다운 강변에 핵발전소가 들어선다면? 그리하여 인간과 새들이 언젠가 올지도 모를 핵 재앙의 공포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오스트리아에서 실제로 일어날 뻔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뜸이 이렇게 길어졌다.

비엔나에서 도나우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100리(40km)쯤 올라가다보면 뜬금없이 거대한 인공 건물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강변 풍경과는 전혀 컨셉이 다른, 누가 보아도 이물(異物) 같은 이 건물은 다름 아닌 핵발전소이다. 그런데 괴이한 것은, 이것이 '우두커니' 서있다는 점이다. 완공된 후 지금껏 한 번도 엔진이 돌아가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을 것이라 한다.

도대체 왜 멀쩡한 핵발전소가 하릴 없이 놀고만 있는 것일까? 애써 지었으면 엔진을 돌리든지, 돌리지 않으려면 애시 당초 짓지를 말았던지 할 일 아닌가. 10억 유로 상당의 막대한 예산까지 부었다면서 말이다. 실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일까?

인구 3000여 명에 불과한 도나우 강변 작은 마을 쯔베텐도르프(Zwetendorf)라는 곳에 오스트리아 정부가 핵발전소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1972년. 그 때부터 극소수 '반골'들이 반대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세력을 얻어갔으며 5~6년 후 완공을 앞둔 시점에 와서는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갈렸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는데, 정부 여당은 투표 결과를 낙관했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78년 11월 투표함을 열어 보니 반대가 50.5%로 나타난 것이다. 1% 차이였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써 오스트리아는 핵발전소를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아울러 당시 계획 중이던 다른 5기의 핵발전소 건설 계획도 모두 폐기되었다. 이렇게 오스트리아는 영원히 '핵'과 결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에 대해 정부 및 정당들은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이 나라의 탈핵 오디세이는 어떻게 가능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궁금증에 좀이 쑤신 나머지 관련 정보와 자료들을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 읽어 보았다. 그러던 중 비엔나의 학자이자 반핵 운동가인 피타 바이쉬(Peter Weish) 박사의 글을 접했다. 내용이 여실하고 현장감이 있었다. 나는 박사에게 이메일로 이 글을 소개해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박사는 흔쾌히 응락했다. 그래서 이 글의 요지 부분을 여기 싣게 되었다.


▲ 핵발전소 예정 건물이었던 오스트리아 쯔베텐도르프의 박물관

오스트리아의 핵에너지에 대한 결별
196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 정부는 핵발전 프로그램에 착수했고, 기획사가 설립되었다. 당시 나는 비엔나 근처에 소재한 핵발전 방사능 보호를 위한 기관의 생물학 연구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방사능 쓰레기 및 방사능의 생물학적 위험을 알고 있었던 나는 핵발전소 건설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렇게 나는 애초부터 반핵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1971년 있었던 우리들의 첫 시위를 나는 기억한다. 핵발전소 건설 부지로 선정된 쯔베텐도르프로 향하는 시위 행진이었는데 참석자는 모두 열 두어 명 가량이었다. 이듬해인 1972년, 수도 비엔나로부터 20마일 떨어진 도나우강 상류에 있는 쯔베텐도르프에 최초의 핵발전소 건설이 시작되었다. 공사는 독일의 AEG사와 SIEMENS가 맡았다. 완공되면 70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게 되어 오스트리아 전기 생산량의 약 10%를 감당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에 더해 1974년 초에는 제2의 핵발전소 건설이 추진되었다. 당시 양대 주요 정당인 사회당과 당시 제1야당인 보수당이 모두 핵발전소를 지지했고, 소수당인 자유당만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1975년 공식적인 정부 에너지 계획에 의하면, 오스트리아는 1985년까지 총 3000메가와트 발전량을 충당할 3기의 발전소를 완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74년 겨울에 2기 건설 공정이 유예되었다. 전기 수요가 감소한데다가, 지역주민들의 집단적 반대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1976년 가을이 되자 정부는 핵발전소의 타당성과 이점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외의 반작용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몇몇 신문들이 비판적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반핵 운동은 가열되었다. 원래 핵폐기물을 다른 나라에 수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려니 했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핵폐기물의 국내 저장소 문제를 둘러싸고 후보지 지역 주민으로부터 대대적인 반대 활동이 일어났다. 언론에서는 핵 이슈를 광범위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완공 단계의 쯔붸텐도르프 핵발전소 문제에 대해 이제 비로소 바보 멍청이로 낙인찍히지 않고도 내 놓고 시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반대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방사능 유출의 해독성* 미결 상태로 남아 있는 여러 기술적 문제들* 핵 폐기물의 관리와 처리에 대한 해결 불가능한 난제들* 소위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과 핵 군수산업간의 연계성* 불완전한 위기 대처 계획, 핵 재앙 발생시 여러 도시를 동시에 소개(疏開)해야 할 필요성과 그 불가능성.

우리는 또한 핵 산업 및 플루토늄 생산의 확대를 반대하는 우리들의 비판적 활동이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을 저지하는 투쟁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활동들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1977년 4월 잘츠부르그에서는 '핵 없는 미래를 위한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for a Non-Nuclear Future)가 여러 나라의 비정부 기구들의 주관하에 개최되기도 했다. 거기 참석한 어떤 대표단은 우리들의 반핵 캠페인을 지원해 주었다.

1977년 가을에는 쯔붸텐도르프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그 해 12월 반대자들은 핵발전소에 사용될 연료 수입을 위한 비밀 계획을 폭로하면서 이를 행동으로 저지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사정이 이러하자 연료 수송이 다음해 초로 연기되었다. 그 후 급기야 쯔베텐도르프 부지로 연료를 수송하기 위해 군용 헬리콥터가 동원되었고 부지 주위는 경찰 병력이 봉쇄했다. 모든 반핵 시위와 활동은 완전히 비폭력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주목할 사실이다.

핵발전소 건설 문제가 이렇게 뜨거운 정치적 이슈가 되자, 정부는 이에 대한 결정을 의회로 보냈다. 여당인 사회당은 의회에서의 합의 통과를 확신했다. 왜냐면 제1야당도 찬성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즈음 정부로부터 보고서 한 건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핵발전소에 대한 홍보 캠페인에서 편집되었던 다량의 기록문서와 정보를 정리한 것이었다. 그것은 극도로 친핵적이었으며 편견에 치우친 데다가 여러 중요한 진실을 완전히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홍보전이 대중을 속이기 위해 획책되었다는 반대자들의 당초 주장이 옳았음이 증명된 것이다. 뒤이어 이루어진 국회 청문회에서는 제반 안전 측면이 의문스럽다는 것과 방사능 생태 전문가가 타당성 조사 연구팀에 포함되지 않았던 점 등의 결함이 노출되었다.

이에 국민당(People's Party)이 입장을 재검토했다. 당 대표 타우스(Taus) 박사는 여전히 핵발전소를 선호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안전 문제가 분명해질 때 까지는 잠정적으로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겠고 공표했다.

유권자들 가운데 소수에 머물러 있었던 핵 반대자들이 이제는 그 수가 불어나 선거에서 친핵 정당에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이렇게 되자 집권 사회당은 이 문제를 의회에서 결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왜냐면 국민당의 입장이 모호해졌고, 가장 서쪽의 주(Vorarlberg) 출신의 사회당 의원들이 당의 노선을 따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서단 지역의 주민들은 마침 이웃 나라 스위스가 접경 지역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대해 이를 좌절시켰던 참이었다. 그 지역 주민들은 압도적으로 핵발전소를 반대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내에서 핵발전소가 생긴다면 스위스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했다.

한편 오스트리아 정부는 여러 외국 학자들을 초빙해 그들 나라의 사례를 설명할 기회를 마련했다. 텔러(Teller) 박사도 그들 중의 하나였는데,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명성이 높았고 또 동시에 악명이 높기도 한 사람이었다. 비엔나 대학에서 추진되었던 그의 강의는 학생들의 반대로 취소되고 말았다.

1978년 6월 사회당 소속 크라이스키(Dr. Kreisky) 총리는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그는 핵발전소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지극히 부적절한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이제 입장을 바꾸어 11월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민 다수가 찬성할 것임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친핵 세력은 거대한 지원을 받으면서 전투에 돌입했다. 국가 소유의 기관들에서만도 200만 달러의 세금을 찬성 캠페인을 위해 지출했다. 더 나아가 산업가 협회, 노동조합 산하의 단체들 그리고 사회당이 수백만 달러를 지출했다.

반면 반핵 활동가들이 가진 것이라곤 개인의 주머니에 있는 돈과 몸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다양한 단체들이 반대 활동에 참여해 이채를 띠었다. 예를 들어 원자력을 반대하는 어머니 모임, 교사 모임, 물리학자 모임, 생물학자 모임, 지질학자 모임, 의사 모임, 학생 모임, 카톨릭 모임, 예술가 모임, 무역 노조연맹 등등이었다.

곳곳에 연락 거점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 하나는 오스트리아 학생 동맹이 조직한 것이었다. 동시에 2개의 본부가 조직되었고 학자들과 시민 단체의 상호 협력은 뛰어난 것이었다. 자당의 노선에 반대하는 사회당 인사들은 당으로부터 여러 차례 제명 위협을 받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당의 기강을 무시하기로 강하게 결심했다. 그들의 슬로건은 "(사회당의) 크라이스키 정부에는 Yes, 쯔베텐도르프에는 No"였다.

국민투표 예정일 몇 주 전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는 여전히 찬성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점차 찬반의 차이가 줄어들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반대자들은 더 많은 폭로를 했는데, 기술적 하자, 안전 규정 위반, 부지의 지질학적 부적합성등을 공개했다. 주요 신문들은 핵발전소 이슈를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조명했다.

한편 노동 연맹(Trade Union)의 안톤 베냐(Anton Benya) 회장은 수천 개의 산하 조직의 노동자들에게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져 달라고 설득했다. 크라이스키 총리도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했다. 이로써 국민투표에서 과반수가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다. 뚜껑을 열어 보니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온 것이었다. 투표자수(유권자의 약 3분의 2) 326만 중에서 핵발전소 찬성이 49.5% 반대가 50.5%로 나타났다. 반핵 운동의 열정과 헌신이 거둔 승리였다. 정부 여당의 홍보전과 기성조직의 활동은 패배했다.

이는 오스트리아 현대사에서 한 획을 긋는 사건이기도 했다. 2만 표도 되지 못한 차이가 이 나라에 핵에너지를 물리치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활동과 헌신이 가치가 있음을 보여 주었으며, 모든 모임과 토론과 팸플릿이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모든 활동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성공의 전망이 어두울 때에도 싸우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분석에 의하면, 반핵 다수표는 젊은 세대, 특히 젊은 여성들로부터 나왔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결코 정치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글을 마치며
서두에서 문제의 쯔베텐도르프의 핵발전소가 '우두커니 하릴 없이' 서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실례의 말씀 같다. 이 핵발전소는 박물관으로 변신했으며 일부는 태양열 발전소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2009년도 'Save the World Awards'를 받기도 했다. 당초의 핵발전소가 이제는 역설적으로 반핵 평화의 기념물이자 상징이 되어 웅변을 토하고 있는 것이니, 하릴 없이 우두커니 서있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되는 소리일 것 같다.

공교로운 일이지만, 오스트리아 국민투표의 정당성을 반증해 주기라고 하듯이 투표일로부터 5개월 후에 미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1979년 3월 펜실바니아 주에 속한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가 그것이었다. 그로써 핵발전은 결코 안전하지 않음을 증명해 주었고 오스트리아 사람들로 해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그 뒤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 또 작년의 후쿠시마 재앙 소식을 들었을 때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탈핵 오디세이를 돌아보며 스스로 안도하고 자랑스러워했을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하필이면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사고 발생 직후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텅 빈 비행기를 타고 썰렁한 오사카 공항에 내렸더니 어떤 노신사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정중히 인사를 한다. "아무도 오지 않으려는 우리나라를 이렇게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본은 '아무도 오지 않으려는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오사카는 내가 10여년 전에 근무했던 곳이다. 그 때 사귀었던 친구들을 만나 해후의 정을 나누었다. 그분들이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맥주잔을 주고받으며 왁자하게 떠들었다. 그 때 우리들 중에 아무도 말은 꺼내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엔 핵의 공포, 죽음의 공포가 어른거리고 있음을 나는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 '핵'은 남의 이야기거나 관념적 담론이 아니었다. 바로 내 코앞에 와 있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핵발전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강토를 '아무도 오지 않으려는 나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의문을 내가 갖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핵발전소에 대해 혹자는 안전하고 필요불결하다고 하고, 또 혹자는 악마의 선물이라고 외친다. 어떤 나라들은 정책적으로 핵발전소를 더욱 많이 짓고 수출하려고 하고, 또 어떤 나라들은 여기에서 탈출하려 한다. 2022년 말까지 자국 내의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독일은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과연 어느 길이 옳은 것일까? 우리는 마땅히 후쿠시마가 주는 교훈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막연히 우리 당대에 별 일이야 없겠지 하는 안이한 타성과 불감증, 그리고 자본의 생리에 맡겨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민감하고 너무 오래 가고 너무 큰 일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소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며 꼭 필요하다고 정부가 확신하더라도, 국민들을 설득시킬 책임과 의무는 정부의 몫이다. 만일 핵발전소가 100% 안전하다는 것이 백년 후에 증명된다 하더라도, 지금 민(民)이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매한 민중이여, 나를 따르라, 알게 될 날이 오리라' 하고 밀어 붙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민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민이 설득되지 않으면 강행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핵발전소는 우리와 후손들의 안전과 생명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여기에 여와 야가 어디 있으며, 좌와 우는 또 무엇이며, 보수와 진보와 같은 이분법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재앙이 발생하면 우파는 안전하고 좌파는 위험한가? 혹은 그 역이 성립하는가? 오스트리아의 핵 탈출기가 우리나라의 정책 결정자, 그리고 깨어있는 사람들에게 대안을 모색하는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선흥 전직 외교관

2011년 12월 24일 토요일

[사설] 새 원전 부지 선정 철회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23일자 사설 '[사설] 새 원전 부지 선정 철회해야'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새 원전 부지 선정을 강행해 경북 영덕과 강원도 삼척 등 2곳을 원전 건설 후보지로 선정했다고 어제 발표했다. 후보 부지는 원전을 최대 8기까지 지을 수 있는 규모로 환경성 검토를 거쳐 내년 말 최종 확정하겠다고 한다. 원전을 새로 짓겠다는 것은 탈핵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거슬러 가는 분별없는 모험주의로, 당장 그만둬야 한다.
후보지로 선정된 영덕과 삼척은 과거 원전 터와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터로 선정됐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철회된 경험이 있는 지역이다. 이번에도 찬성률이 절반 또는 그 아래 수준으로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정부가 또다시 지역갈등과 혼란을 유발시키는 꼴인데, 지역 주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부지 선정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핵정책이 전세계적인 대세를 이루고 있다. 독일은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022년까지 이미 설치 운전중인 원전 17기를 모두 폐기하기로 했다. 재생에너지 보급노력을 꾸준히 한 결과 올해 발전량이 20%에 이르러 처음으로 원전 발전량을 웃돈 것은 재생에너지의 현실적 가능성을 상징한다. 규모 8.0의 지진에도 견딘다던 후쿠시마 원전이 붕괴된 일본은 원전 의존도를 낮추고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 바꿔나가는 중이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들이 탈핵 대열에 동조한 까닭은 지난 30년 사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두 차례의 대형 참사로 원전 안전신화가 여지없이 깨졌기 때문이다.
원전은 관리 및 폐기 비용까지 계산한다면 결코 경제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미래세대에는 큰 짐이 된다. 전세계 어디에도 고준위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고 재처리를 한다고 해도 고준위 핵폐기물은 거의 줄어들지 않는 탓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최근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을 중단하고 더는 원전을 추가로 짓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이유도 ‘미래세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원전은 새로 짓기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고 위험 또한 그만큼 증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에너지 절약 잠재량이 전체 에너지의 30% 수준에 이른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 정도면 원전을 더 짓지 않아도 된다. 부지 선정을 철회하고 에너지 정책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