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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7일 목요일

"아들의 관을 날마다 여는 심정, 아시나요?"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06일자 기사 '"아들의 관을 날마다 여는 심정, 아시나요?"'를 퍼왔습니다.
[동행 취재]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 씨 유족의 잔인한 하루

"기다리라면 기다려야지요. 저희는 힘이 없으니까. 그런데요. 의원님들 하루가 저희한텐 한 달 같고 일 년 같습니다. 신랑이 너무나 아꼈던 형이에요. 서른다섯 살밖에 안 됐던 그 형 시신을 지금 옆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마음 잘못 먹지 말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데요. 얼마나 더 죽어야 나서주실 건데요. 몇 명 죽으면 도와주실 건데요.

저희처럼 힘없고 아무것도 아닌 노동자도 국민이거든요. 저도 이 나라 국민이고, 저희 남편도 이 나라 국민이고, 강서 씨도 국민이었어요. 제발 회사랑 대화라도 할 수 있게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높으신 분들 있는 데 와서 이렇게 소리 지르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런데요.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말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인 송지영(가명·31) 씨가 이렇게 말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흥분한 나머지 책상 위로 올렸던 손을 슬그머니 상 아래로 내린다. 그러고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송 씨의 남편은 지금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에서 고(故) 최강서 씨의 주검을 지키고 있다.

송 씨의 옆에는 고 최강서 씨의 아버지 최용덕(64) 씨가 앉아 있다. 양팔로 작은 배낭을 끌어안고 있는 최 씨. 짐이 별로 없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서울로 온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한숨도,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극단의 상황에 놓인 사람만이 풍길 수 있는 침착함이다.

최 씨는 "국회에 올 일이 살다가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고 했다. 물론 서른다섯 살밖에 안 된 아들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현실'이다. 끔찍한 공포 영화나 악몽이 아니라,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당면한 현실.

최 씨는 자신의 그 '현실'을 무서우리만큼 담담하게 읊었다. 아들의 시신이 차가운 공장 아스팔트 바닥 위에 누워 있고, 며느리와 딸이 매일 한 번씩 아들의 관을 열고 새 드라이아이스를 집어넣는다. 그러나 최 씨의 주검에선 이미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다섯 살배기 손자는 "아빠가 보고 싶다"며 새벽까지 울어댄다. 고혈압에 힘겨운 늙은 아내가 손자를 달랜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말이 없다.

이에 앞서 고 최강서 씨는 "민주노조 사수",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158억 철회"를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손해배상을 철회하지도, 유족과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지도 않고 있다.

최 씨와 송 씨에겐 이 잔인한 현실을 넘어설 힘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서울로, 국회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조남호 회장을 못 만나도, 국회의원들은 회장을 만날 수 있겠지"란 생각에서였다. "기자들이 우리를 아무리 외면해도, 국회의원들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란 생각도 했다.

지난 5일 최용덕 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아내 7명(이하 가족 대책위) 등이 국회를 찾았다. 아무런 대책도, 계획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절박함'뿐이었다. 온종일 국회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들은 "정치권이 나서 노사 대화의 물꼬를 터 달라"고 호소했다.

[오전 11시, 민주통합당 지도부 면담] "공장에 들어가고 싶었던 게 아니다"

▲ 고(故) 최강서 씨의 아버지 최용덕 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들이 5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만나 사측과 대화를 주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최 씨 등을 처음 만난 건 민주통합당이었다. 오전 11시,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한정애 의원, 전순옥 의원, 은수미 의원, 이석행 전국노동위원장과 면담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최 씨는 지난달 30일 최강서 씨의 주검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원래는 우리가 갈 적에 회사 정문 앞에, 거기에 시신을 옮기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막 그 뭐냐, 토끼몰이를 당하다 그리로 들어가게 된 겁니다. 거기 들어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못 나오게 하고, 음식물도 못 들어가게 하고….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한상철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부지회장도 민주통합당 의원들을 향해 같은 설명을 했다. 한 부지회장 설명에 따르면, 당시 유족들은 사측이 대화에 나서지 않자 영안실에서 최 씨의 주검을 꺼내 조선소 정문 앞으로 옮긴다는 결정을 내렸다.

시신을 볼모로 싸운다는 비판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영안실에 주검을 그대로 두어서는 회사가 대화에 나서지 않으리란 게 확실했다. 이미 네 차례 교섭 요청에도 응답이 없는 회사였다.

결국, 노조는 유가족 뜻에 따라 영안실에서 주검을 꺼내 조선소로 행진했다. 그러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생겼다. 최 씨의 주검을 든 이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마침 하나 있었던 퇴로는 조선소 서문. 시위대는 주검을 들고 공장 안으로 '어쩌다 보니' 들어가게 됐고, 그 길로 공장 문은 닫혔다.

이후 언론은 시신 농성이란 단어를 기사 제목에 넣고, 앞뒤로 작은따옴표를 붙였다. 최강서 씨의 아내 이선화(37) 씨가 나서 자초지종을 설명도 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싸움은 '시신 농성'이란 끔찍한 단어로 손쉽게 묘사되고 있다. (☞ 관련 기사 보기 : 故 최강서 부인 "어떤 부인이 남편 시신 볼모로 싸우냐")

애타는 이들, 돌아오는 건 "기다려라" "기다려라"

▲ 고 최강서 씨의 아버지 최용덕 씨. ⓒ프레시안(최하얀)

면담 자리에 있던 민주통합당 의원 중 일부는 이미 최 씨를 만난 적이 있다. 지난달 16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은 최강서 씨의 빈소를 찾아 위로의 뜻을 전했다. 당시 문 비대위원장 등을 만난 최 씨는 "조문만 하고 끝내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 난리를 치고 있는데 국회의원 60명인가 70명인가 왔다 갔습니다. 오는 사람한테마다 얘기했습니다. 절 한 번 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오셨으면 책임을 지시라고. 그런데 국회의원 배지 구경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못 풀 문제라 생각이 들면 손 확 들어버리시고, 풀겠다고 말을 했으면 행동을 보여달란 말입니다."

최 씨의 이런 토로에 자리에 있던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는 뜻을 거듭 내비쳤다. 하지만 "사측과 대화가 성사되기 전에라도 장례를 치르는 건 어떠냐"는 설득도 계속됐다.

한정애 의원은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을 만나 유가족과 교섭이 아닌 간담회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다"라며 "노조도 손해배상·가압류 철회와 노조 인정 문제까지 포함해 사측과 일괄 타결하려 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바꿔서 장례와 유가족 보상 문제를 먼저 푸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에 한상철 부지부장은 "우리는 이미 어제 조건 없이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며 "그냥 대화만 시작할 수 있도록 중재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측이 일전엔 시신을 빼면 대화하겠다고 했다가 이제 와선 공장에서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시신을 보내야 대화하겠다고 대화 조건을 바꾸었다"고 전했다.

한정애 의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한 의원은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유가족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유가족의 삶이 정상적인 위치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장례를 먼저 치르도록 도와주고, 남은 것들은 우리 몫(민주통합당과 노조)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한 의원의 말을 가로막았다. 문 비대위원장은 "한정애 의원님, 지금 말씀하시는 건 사측과 어느 정도 얘기를 나누고 하시는 말씀이세요?"라고 묻더니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하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방 안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시 말문을 뗀 사람은 이석행 민주통합당 전국노동위원장이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그는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참…"이라는 말로 시작해, "우선해야 할 일은 새누리당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 비대위원장에게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최 씨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힘을 쏟자는 얘기를 해달라'고 제안했다"며 기다려달란 뜻을 전했다.

"기다려달라", "새누리당을 설득해보겠다", "대선에서 이겼어야 하는데" 등의 말들은 송 씨 등의 가슴을 들쑤셔 놓았다. 40여 분의 면담이 끝나자마자 가족 대책위 7명은 복도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송 씨는 "선화 언니(최강서 씨 부인)가 생각나면 밤에 잠을 못 자겠다"며 "우리가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거냐"고 물었다.

[오후 2시, 새누리당 지도부 면담 요청 거부] "대선 때는 다 만나주지 않았나"

▲ 최용덕 씨와 한진중공업 가족 대책위가 새누리당 지도부 면담을 요구하다 무산된 후 국회 방호과 직원들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이들은 다음 장소로 향했다. 정오께 노회찬·조준호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를 만났고, 점심 후엔 통합진보당 오병윤 원내대표, 이상규 의원, 이혜선 최고위원 등을 만났다.

같은 호소가 매 자리에서 이어졌다. 최강서 씨의 주검이 공장 안까지 들어가게 된 경위, 사측과 대화를 주선해달란 호소, 긴박한 영도조선소 상황 등. 같은 노래가 반복해 나오는 라디오처럼, 이들은 같은 이야기를 오전 중에만 세 번에 걸쳐 쏟아냈다. 지칠 법도 했지만, 눈물은 마를 줄을 모르고 때마다 흘러내렸다.

오후 2시께, 먼 길을 떠나온 이들은 "국회까지 온 김에 새누리당 지도부도 꼭 만나고 가야겠다"며 새누리당 대표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국회 방호과 직원들이 이들을 막아 세웠다. 곧 몸싸움이 벌어졌고, 복도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가족대책위 김순애 씨는 "왜 다 만나주는데 새누리당만 안 만나주는 것이냐"며 "대선 때는 재래시장도 가고 쪽방촌도 가서 다 만나주지 않았냐"고 항변했다.

열 명이 되지 않았던 방호과 직원들은 순식간에 수십 명으로 늘어났다. '한진중공업 사람들이 국회 안에 있다'는 소식이 이미 나돌았는지, 이날 경비는 유난히 삼엄했고 무전은 특히 신속했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울며 주저앉는 가족들과 사지가 들린 최 씨의 모습을 향해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결국, 새누리당 지도부는 만날 수 없었다. 최 씨 등은 방호과 직원들에 의해 국회 본관 후문 근처로 쫓겨나갔다.

[오후 3시 40분,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면담 성사] "당내 여론이…"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과 만난 최용덕 씨와 가족 대책위원들. ⓒ프레시안(최하얀)

본관에서 쫓겨난 이들은 본관 옆 국회의원회관으로 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이미 본청에서 '난동'을 부린 인물로 낙인찍힌 이들은 의원회관에서도 '출입 정지'를 당했다.

최 씨 등은 의원회관 로비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김성태 의원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사이 최 씨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로비에 전시돼 있던 설 선물 상자들이었다. 건물밖에 주차된 택배 트럭들은 쉬지 않고 설 선물들을 쏟아냈다. 최 씨는 "저건 의원들 주는 겁니까"라더니 "국회의원은 좋네. 아들 똑똑하게 키워 국회의원 시킬 걸 그랬네"라고 말했다.

오후 3시 40분, 김성태 의원이 회관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회를 방문한 열두 명 중 최용덕 씨를 포함한 2명만 의원실에서 만나자는 가족 대책위 쪽 제안은 이미 거부된 후였다. 대신 김 의원이 로비로 나와 이들을 만났다.

김 의원은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다만,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시신을 영안실로 옮길 수는 없겠냐"고 말했다.

가족 대책위 전 대표 도경정 씨는 "밖에 있을 때 사측이 안 만나주지 않았냐"며 "지금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면 대화하겠다는 회사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설 전에 사측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겠다"면서도 "당내 여론이 기업 노사 관계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쪽이라, 당 대표 면담을 주선하기는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오후 5시, 한진중공업 본사 피켓 시위] "조남호 회장 얼굴 한 번 봤으면…"


별 소득은 없었지만, 달리 할 일도 더는 없었다. 이들은 국회를 떠나기로 했다. 대신 서울 용산구 한진중공업 건설 부문 본사에서 잠깐이라도 피켓 시위를 벌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얼굴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가족대책위 도경정 씨는 말했다.

이동 차량에는 곧바로 경찰차가 따라붙었다. 40분을 운전해 도착한 본사 건물 앞에서는 이미 노란 형광 조끼를 입은 전투경찰들과 본사 직원 수십 명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은 비로 바뀌어 있었고, 아내들은 남편들의 동료, 최강서 씨의 영정을 들고 본사 앞에 일렬로 앉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날 조 회장을 끝내 만날 수 없었다.

형체를 잃어가는 주검, 깊어가는 슬픔

▲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뒤로 최씨의 주검이 담긴 관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국회부터 한진중공업 본사까지 두루 다녔지만 이들은 이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측과 대화하는 자리를 약속받는다는 소박한 바람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신을 옮기고 장례부터 치르라는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야당 의원들은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고, 여당에서는 이들을 사실상 찬밥 취급했다. 서울로 올라올 때보다 더 무거워진 마음으로 이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제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드라이아이스로 최 씨의 주검이 부패하는 것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조금씩 형체를 잃어가는 최 씨의 주검 옆에서, 아내 이선화 씨는 언제까지 찬바람을 맞으며 슬픔에 겨워해야 할까. 아버지 최용덕 씨는 "나도 아들을 따라 죽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는 절박한 외침이 위태롭다.


 /최하얀 기자

2013년 2월 3일 일요일

삼성과 반올림, 어떤 대화를 나눌까?


이글은 한겨레21 2-13-02-04일자기사 '삼성과 반올림, 어떤 대화를 나눌까? '를 퍼왔습니다.
[초점] 백혈병 사망 등 산재와 무관 주장하던 삼성, 반올림과 대화 제의… 유족은 대화 앞서 사과 원해

2007년 백혈병과 힘겹게 싸우던 22살 황유미씨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빨리 돈 벌어 남동생을 뒷바라지하겠다’며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백혈병 진단을 받은 유미씨였다. 아버지 황상기(58)씨는 딸의 죽음 앞에서 ‘네 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될 때까지 싸우겠노라’ 약속했다. 삼성 직업병 문제를 알리기 위해 황씨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활동가들과 거리로 나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1년 서울행정법원은 백혈병을 앓다 숨진 황유미씨 등 2명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 지난 1월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주관으로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미사가 열렸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요지부동 삼성은 왜 변했나

유미씨가 세상을 등진 지 5년여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줄곧 백혈병 등의 질환 발생과 반도체 공장 작업 환경이 무관함을 주장하던 삼성이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반올림은 1월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의 대화 요청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말 삼성은 백혈병 산재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법적 조정을 받아보자는 구두 제안을 했고, 반올림은 ‘소송은 그대로 진행하되 대화할 수는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DS부문 김종중 사장은 “백혈병 발병자와 유가족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공식 문서를 보냈고, 반올림은 책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대표단 구성 등을 요구했다. 삼성이 지난 1월11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 합당한 대표단을 구성해 대화에 성실하게 임할 것을 분명히 한다”는 답변을 보내와 양쪽의 대화가 처음 성사됐다.
삼성의 태도 변화는 끊임없이 불거져나오는 직업병 논란을 외면하기엔 국내외에서의 기업 이미지 훼손 등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반올림 쪽에서는 전자산업 관련 삼성 계열사에서 일한 뒤 백혈병·뇌종양·유방암·자궁경부암·피부암 등이 발병했거나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제보를 해온 이가 160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에 대한 산재 인정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4월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5년5개월 동안 일한 뒤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는 노동자에 대해 산재를 인정한 데 이어, 12월엔 4년9개월 동안 근무한 뒤 유방암에 걸려 숨진 노동자에 대해서도 산재를 승인했다.
삼성과 반올림이 논의할 의제 범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산재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 등 법적 조처를 놓고 양쪽의 의견이 달라 원활한 협의가 진행될지 미지수다.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공유정옥 산업보건전문의는 “긴 세월 동안 힘겹게 싸워온 피해 가족들에겐 단 몇 명이라도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산재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의미”라며 “소송을 통해 산재가 아니라고 한 정부의 판단이 바로잡히는 걸 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피해 노동자 및 유가족과 근로복지공단 간 소송에서 정부 쪽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소송 등 법적 조처 중단이 대화의 전제 조건은 아니다”라면서도 “대화를 하다 보면 소송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공문에 ‘유감’은 사과가 아니다”

딸을 가슴에 묻은 황상기씨는 대화에 앞서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삼성으로부터 단 한마디의 사과도 들어본 적이 없다. “뒤늦은 대화 제의가 반갑긴 하지만 지금까지 워낙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왔던 사람들이라 어찌될지 모르겠다. 공문에 ‘유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회사 쪽은 그것을 사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 처지에선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유신 사유재산 강탈 사건, 해결책은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10일자 기사 '유신 사유재산 강탈 사건, 해결책은'을 퍼왔습니다.
“유족 포함한 새로운 이사진 구성하는 게 진정한 해결책”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 창립자인 고 김지태 씨 유족이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정수장학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고 김지태 씨 부인 송혜영 씨와 5남 김영철 씨, 6남 김영찬 씨가 함께 했다.

▲ 10일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故 김지태씨 유족들이 정수장학회 환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故 김지태씨 부인 송혜영 씨가 유족들을 대표해 발표문을 낭독하고 있다. ⓒ미디어스

송해영 씨가 유족들을 대표해 낭독한 발표문에서 유족들은 “부일장학회 사건은 조선시대에도 없던 사유재산 강탈 사건”이라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소문에 의하면 박 후보가 이사장을 교체하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서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국민에 대한 눈가림,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족들은 “박 후보 사람이 이사진에서 물러나고 고 김지태 회장 유족을 포함한 새로운 이사진을 구성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정수장학회 문제는)사유재산 강탈이나 부산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민주주의와 민주언론을 강탈한 사건이고 역사왜곡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승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정수장학회 문제는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재산을 강탈한 사건”이라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뿐아니라 범민주세력이 연대해 19대 국회에서 해결할 방도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 이후 부산일보 노조도 상경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부산일보 노조는 △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 이사진 퇴진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재단 이사회는 노조가 제안한 사장후보추천제를 수용하고 부산일보 파행 사태에 책임지고 즉각 사퇴할 것 △ 이명관 부산일보 사장은 조합원과 국민 앞에 사죄하고 즉각 사퇴할 것 등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이 10일부터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부산일보는 정수장학회 이사진 교체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입장 공개, 이사진과 사장퇴진, 사장후보추천제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디어스

회사로부터 대기발령을 받고 두 달 동안 부산일보 앞에서 열린 편집국을 운영했던 이정호 편집국장은 이날부터 프레스센터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또 부산일보 조합원들은 내일(11일)부터 정수장학회 앞에서 릴레이 상경 1인 시위를  벌인다.
이정호 편집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연말부터 사측은 억압과 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편향된 지면 제작이라는 모호하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나를 비롯해 사회부장, 정치부장 등을 징계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정호 편집국장은 “총칼로 빼앗았던 정수장학회의 생명을 늘이기 위해 징계라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승욱 기자  |  sigle0522@mediaus.co.kr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이상돈 "박근혜, 유신문제 정리하고 넘어가야"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8-27일자 기사'이상돈 "박근혜, 유신문제 정리하고 넘어가야"'를 퍼왔습니다.
"인혁당 유족들 만나 사과해야"

박근혜 캠프 출신의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27일 "인혁당 사건은 유신시절에 있었던 가장 어두운 일이었다. 가장 비극적인 일이였기 때문에 그런 필요가 있는 것이고, 또한 대법원도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유신때 '사법살인'을 당한 인혁당 유가족을 만나 사과할 것을 조언했다.

이상돈 교수는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캠프에서 사적인 자리에서 이런 것도 검토해야 되는 것 아니냐, 그런 논의가 잠깐 있긴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박 후보가 인혁당 유족과 만나야 할 시기에 대해선 "9월달은 굉장히 황금과 같은 시간"이라며 "10월달에 야권후보가 결정이 되면 치열한 공방전이 있을 테니까 그 전에 그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늦어도 9월중에 만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유신에 대해선 "사실은 5.16과 유신은 많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5.16이 있은 후에는 2년만에 헌법을 개정을 해서 선거를 치렀고, 그런데 10년만에 그것을 스스로 부정하고 다시 헌정 중단을 한 것이 10월 유신 아니냐"며 유신이 초헌법적 불법이었음을 강조한 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박근혜 후보께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하실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해서도 "법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게 맞는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도 다른 것은 문제가 안 되는데 정수장학회에 대해서는 계속 말이 있고, 사실 현재 정수장학회를 이끌어가시는 분들이 출연을 하신 분도 아니지 않나. 어쩌다 보니까 관리하는데, 이런 사회적인 여론이 있으면 그 쪽에서 어떠한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최필립 이사장 교체를 주문했다.

엄수아 기자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각시탈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23일자 기사 '각시탈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을 퍼왔습니다.
보조출연자 유족, 3달 넘게 KBS앞 시위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

만화가 허영만 원작의 KBS 드라마 (각시탈)이 수목극 가운데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각시탈) 방영 다음날인 매주 목요일, 금요일 포털사이트에는 ('각시탈', 자체최고 시청률 또 경신…20% 고지 '눈앞') ('각시탈' 박기웅, 소름돋는 이중연기) ('각시탈' 주원, 가짜 각시탈 내세워 교란 작전…흥미진진해진 두뇌 싸움) 등 각시탈에 대한 긍정적 기사들이 넘쳐나지만, 각시탈 드라마는 물론이고 관련 기사들도 보기 힘겨운 사람들이 있다.

▲ KBS <각시탈> 포스터

바로 지난 4월 18일 경남 합천의 (각시탈) 촬영현장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조출연자 고 박희석씨의 유족들이다. 고 박희석씨의 아내 윤아무개씨는 "사고 직후 KBS를 비롯해 관련된 4개 회사가 언론사들에게 보도자료를 뿌려서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으나 정작 유족들을 찾아와 진심으로 사과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며 5월 18일부터 KBS 앞 시위에 돌입했으며 박희석씨가 사망한 지 4달을 넘긴 8월 23일 현재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유족들의 요구사항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고인의 죽음에 대한 자막' '보조출연자 대기실' 2가지다. (각시탈) 드라마 초반 또는 말미에 그동안 KBS를 비롯한 제작사 측이 후속 조치 등에서 소홀한 부분이 있어서 유족들이 시위를 하게 됐는데, 이에 대해 사과한다는 뜻이 담긴 자막을 내보내 달라는 것이다. '보조출연자 대기실'의 경우, 드라마 촬영의 특수성상 보조출연자들이 지역에 촬영갔다가 새벽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임금으로 인해 택시를 타고 집에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방송국이 보조출연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대기실 한 칸을 마련해 달라는 호소다. 고인의 죽음이 '교통사고'로 인한 것이지만, 사람이 죽었음에도 KBS를 비롯해 4개 회사가 '나몰라라'하는 것은 계약서 한 장 없이 일해온 보조출연자들의 열악한 현실로 인한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 4월 18일 경남 합천의 <각시탈> 촬영현장으로 가다가 버스전복사고로 사망한 보조출연자 고 박희석씨의 아내 윤아무개씨는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3달 넘게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곽상아

그러나, KBS를 비롯한 제작사 측은 유족들이 시위에 돌입한 지 3주만인 6월 초 보도자료를 내어 "전세버스공제조합이 사망보험금으로 1억5천만원을 확보해둔 상태다" "형사합의금은 3천만원으로 합의 여부는 유족들이 판단할 것"이라며, 유족들에 대한 보상 절차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망보험금'과 '형사합의금'은 KBS를 비롯한 제작사 측과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부분으로서, 유족들의 요구사항과도 거리가 멀다. 유족들은 KBS를 비롯한 제작사 측이 보도자료에서 이 부분을 언급한 것 자체가 "마치 우리가 '돈'을 원해서 시위를 한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려는 것"이라며 분노했으나, 시위 초기 반짝 관심을 가지던 언론들은 제작사 측의 보도자료만을 그대로 받아쓴 이후 후속보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보조출연자 사망 사고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 사건은 이제 '잊혀진 사건'이 된 셈이다.
3달 넘게 KBS 앞에서 시위 중이지만, 점심식사를 위해 혹은 취재를 위해 오가는 KBS 직원을 비롯한 행인들 가운데 시위 중인 유족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편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음에도 KBS를 비롯한 4개 회사가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하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만 보인 것에 분노한 미망인은 관련 회사들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힘들다고 밝혔다. 외주제작 시스템 안에서 '슈퍼갑'인 공영방송사 KBS 앞에서 몇 달째 시위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KBS 측은 지난 6월 21일 KBS 앞에서 시위 중이던 유족들을 한 차례 찾아와 '자막방송'에 대해 "검토해볼 수 있다"고 의사를 표시한 이후 다시 감감무소식이다. 보조출연자 대기실 문제에 대해서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배재성 KBS 홍보실장은 22일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도 KBS에서 지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몇백 명에 이른다. 공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천 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사무공간으로 분류하기도 힘든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KBS가 부족한 공간을 추가로 확보한다면 전향적으로 고려할 수 있으나 당장은 힘들다"고 밝혔다.
23일 미망인 윤아무개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출근한다고 나갔던 아이 아빠가 주검으로 돌아왔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사과를 받고 싶지만, KBS는 '자막에 대해 검토할 수는 있어도 자막을 통해 (미흡한 사후처리에 대한) 사과는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대기실 문제도 확답하지 않고, 다시 오겠다고 하더니 감감무소식이에요.
제가 어떻게 각시탈 드라마를 볼 수 있겠어요? 여론을 통해서 드라마가 대충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항일드라마라고 하던데, 다른 나라를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드라마를 찍으러 가다가 보조출연자가 난데없이 죽었는데, KBS나 제작사나 모두 언론플레이만 하고 실제로 유족들이 어떤 심정인지는 끝까지 신경안쓸 건가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각시탈의 행동에 통쾌해하는 일반 시민들은 이런 사고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고를 접한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고, 알더라도 이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곧 드라마가 끝나는데, 자막을 통해 사과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저는 계속 시위할 겁니다. 남편이 갑자기 죽었는데, 뙤약볕에서, 비내리는 날에 피켓들고 서있는 게 대수겠어요? 공영방송 KBS…정말…너무 나쁩니다."
'삶이 팍팍하고 고단한 조선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던 이름없는 영웅' 각시탈. 그러나 정작 드라마를 촬영하러 가다 안타깝게 숨진 보조출연자들의 유족들에게는 철저한 무관심 뿐이다. (각시탈) 마지막회는 내달 6일 방송될 예정이다.

곽상아 기자  |  nell@mediaus.co.kr

2012년 6월 2일 토요일

"각시탈 사망사고, 최종 책임은 '슈퍼갑' KBS에 있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6-01일자 기사 '"각시탈 사망사고, 최종 책임은 '슈퍼갑' KBS에 있다"'를 퍼왔습니다.
보조출연자 유족, KBS 앞 침묵시위…"KBS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

"KBS 각시탈, 지금 방송되고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20대 시민)
"아이의 아빠가 죽었지만 KBS는 사과 한 마디 안합니다. 제발 각시탈을 보지 말아주세요."(각시탈 보조출연자 故 박희석씨 아내 윤아무개씨)

▲ 6월 1일 정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침묵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고 박희석씨 부인 윤아무개씨. ⓒ곽상아

뙤약볕이 내리쬐는 6월 1일 정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 한 모녀가 피켓을 들고 나타났다. 4월 18일 경남 합천에서 KBS (각시탈) 보조출연자를 단체로 태운 버스가 전복되면서 숨진 보조출연자 고 박희석씨의 가족들이다. 모녀는 지난달 22일부터 KBS 앞에서 침묵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같은날 포털사이트에 넘쳐나는 (각시탈, 수목극 시청률 1위) (수목극 1위 '각시탈' 치명적 매력 '베스트 신 3') ('각시탈' 신현준, 바보와 영웅 오가는 '반전연기' 호평) 등의 기사와는 선명히 대조되는 풍경이다.
모녀가 매일 KBS 앞을 찾아오는 이유는 (각시탈)의 방영 주체인 KBS와 외주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보조출연업체 태양기획 등이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KBS와 외주사인 팬엔터테인먼트는 입장을 내어 "깊은 위로와 함께 사태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 장례와 치료 및 보상 등이 원만하고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KBS) "향후 조치에 사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팬엔터테인먼트)라고 하는 등 '공식적'으로는 신속하게 대응했으나 4월 19일 "KBS, 팬엔터테인먼트, 태양기획, 동백관광 등 4개사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장례를 지원하겠다"며 장례비용으로 2천만원을 준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공식 발표 외에 유족들에게 사과의 말을 건넨적도 없다. 특히, 유족은 KBS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보조출연자 사고에 대한 KBS의 입장'에 분노했다.
"'깊은 위로와 함께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한 것 외에 도대체 KBS가 실제로 한 게 무엇입니까? 그 입장은 '대국민 사기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용역을 거쳤다고 하지만 KBS의 이름으로 각시탈이 방영되고 있지 않나요? 당연히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고 박희석씨의 딸도 엄마를 따라 지난달 22일부터 KBS 앞 침묵시위를 해오고 있다. ⓒ곽상아

모녀가 시위에 돌입하자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타났다. 시위에 돌입한 지난달 22일 KBS, 팬엔터테인먼트, 태양기획, 동백관광 등 이번 사건에 관련된 4개 회사에서 모녀를 찾았다. 윤씨는 "저희를 보고 '도대체 왜 시위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지난달 29일에 찾아와서는 '돈 더 받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데 기가 막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각시탈 첫 방송됐던 지난달 30일, 윤씨의 감정은 더욱 격해져 KBS 앞에서 시위를 진행한 뒤 고영탁 KBS 드라마 국장을 찾아갔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KBS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들어갔는데, 청경들이 제지하더군요. 고영탁 국장을 만나서 '당신들이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 외에 한 게 뭐가 있느냐'고 따져물었더니 '우리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예전에 KBS의 한 관계자도 섬에서 촬영하는 도중 아들이 죽었지만 1주일동안 섬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했어요. '국민과의 약속이라 각시탈은 방영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데 저희는 국민이 아닌가요?"

▲ 5월 23일 열렸던 KBS <각시탈> 제작발표회 모습.

숨진 박씨는 지난 2월부터 보조출연업체 '이중기획'에 소속되어 출연료를 지급받아왔다. 그러나 박씨 출연료와 관련한 세금을 원청회사인 '태양기획'에서 납부하는 등 '이중기획'이 사실상 '태양기획'에 소속되어 운영돼 왔기 때문에 박씨의 진짜 고용주는 '태양기획'이라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태양기획은 "이중기획에서 출연자를 모집했고, 박씨는 이중기획에서 출연료를 받아갔다"고 하고, 이중기획은 "사실상 태양기획이 박씨를 모집했기 때문에, 태양기획이 처리해야 한다"며 서로 책임을 미루는 탓에, 유족들은 출연료 지급 관련 서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지난달 15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제기해야 했다.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은 보조출연자의 산재 신청에 대해 한 번도 곧바로 받아들인 적이 없어, 이번 산재신청의 전망도 어둡다.
2008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은 보조출연자 A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촬영현장에 일용직의 형태로 고용되어 제작사나 용역공급업체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노무를 제공하고 그러한 노무제공에 대한 대가로 시간급 보수를 받는 보조출연자는 근로자로 봄이 상당하다"며 보조출연자가 '개인사업자'가 아닌 '근로자'라고 판결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국 보조출연자 노동조합의 이규석 사무국장은 "2008년 법원 판결이 있었음에도 근로복지공단은 보조출연자들의 산재신청을 단 한 번도 곧바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늘 '산재를 신청한 보조출연자가 근로자라는 근거를 가져오라'고 하기 때문에, 재판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며 "물론 앞선 판결이 있기 때문에 재판에서는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지만 시간이 꽤 걸리니까 대다수가 제풀에 지쳐서 포기한다"고 전했다.
2008년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의 김형동 변호사도 "법원이 보조출연자를 이미 근로자로 인정한지 오래됐는데 행정관청들은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박씨의 경우, 회사 측에서 제공한 차량을 타고 단체로 촬영지에 가다가 당한 사고이기 때문에 당연히 산재로 인정돼야 한다"며 "보조출연자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이 '이름없는 영혼의 통쾌한 액션활극'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드라마를 촬영하는 도중 벌어진 '사망사고'이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방송사→외주제작사→기획사→보조출연자'의 연쇄고리 속에서 계약서 한 장 없이 낮은 임금을 감내하며 묵묵히 일해야 하는 현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언제든 또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전국 보조출연자 노동조합의 이규석 사무국장은 "근본적으로는 불합리한 방송제작 구조 관행이 문제"라며 "제작비의 40~50%를 주연급 연기자들이 가져가고 있는데, 보조출연자들은 똑같은 시간 일하고도 일당 4만원 정도를 가져갈 뿐이다. '보조출연자들에게 지금보다 10%만 더 써라'고 해도 방송사들은 들은 척도 안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규석 국장은 '방송사→외주제작사→기획사→보조출연자'의 고리 속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슈퍼갑' 방송사의 책임을 지적했다. "이번 사건에서 보조출연자 박씨와 KBS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은 맞지만 KBS는 현 구조에서 '슈퍼갑'으로서 관리감독하는 위치에 있지 않느냐"며 "KBS는 용역계약을 준 것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당사자가 아니라고 발뺌하지만 최종적 책임은 KBS에게 있다. 지금의 침묵은 큰 '횡포'"라는 것.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사실 현 상황에서 KBS를 상대로 '보조출연자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해봤자 통할지 착잡합니다. 매년 방송사들은 보조출연업체인 기획사들과 계약을 하는데 연장, 야간, 철야 수당을 (방송사 측에서) 모두 지급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안 줍니다.
작년에도 저희가 기획사를 상대로 '체불임금 청구소송'을 제기했었는데 방송사와의 계약금액, 거래명세서, 법인카드로 돈 들어온 내역 등을 다 확인해보니 방송사가 안 준 게 맞더군요. 보조출연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획사를 상대로 요구해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어서 이제는 방송사를 상대로 직접 싸우려고 합니다.
어차피 기획사는 방송사 앞에서 철저한 '을'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만약 KBS한테 사태수습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면, 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정말 큰 문제예요…."

곽상아 기자  |  nell@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