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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8일 금요일

우리의 가정이 가난한 진짜 이유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1-18일자 기사 '우리의 가정이 가난한 진짜 이유'를 퍼왔습니다.
[김병권의 한국사회의 창]

2011년부터 경제사정이 나빠지기 시작했으니 3년째다. 특히 지난해는 2.0% 수준밖에 성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별히 주목할 경제적 충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던 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최소한 올해 상반기까지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다. 새로 취임하는 박근혜 정부는 예산집행을 상반기에 몰아서 할 뿐 아니라 추경편성까지 해서라도 경기악화를 막으려 할 것이지만 체감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럼 하반기는 어떨까. 그건 그때 가 봐야 한다. 유럽위기 향방 등 대외적 변수들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나라 최대 기업 삼성전자의 2012년 실적은 최고의 신기록 행진을 했다. 지난해 매출액 잠정집계는 201조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18.4%가 늘었다. 영업이익은 더 놀랍다. 29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는데 전년 대비 거의 두 배인 88.84%가 증가했다. 이 정도 어마어마한 규모면 우리 국민들에게 떡고물이라도 떨어졌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우리경제에서 ‘부자 삼성 가난한 국민’의 특징이 점점 더 짙어져 간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왜 그럴까. 한국은행에서 이에 대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이슈보고서 ‘가계소득 현황 및 시사점’을 발표했다. 보고서는 국민소득 가운데 기업이 이윤·이자·배당금으로 가져가는 몫이 계속 커져 온 반면 가계에게 차례지는 몫은 줄어 왔다고 분석한다. 외환위기 직전인 95년 국민소득 가운데 가계의 비중은 70.6%였다. 그런데 2011년에는 61.6%까지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기업의 몫은 16.6%에서 24.1%까지 늘어났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 영향 등으로 가계소득 비중이 줄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한국경제에서 유독 가계의 몫이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2011년 기준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76.4%, 일본 65.8%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69.0%였다. 한국이 61.6%였음을 비교해 보라. 언론에서는 우리 사회가 '격차 사회'라고 난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남성과 여성의 격차 등 수많은 격차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격차의 근원에는 기업과 가계가 가져가는 몫의 격차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보자.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가계소득이 예전에 비해 늘지 않은 이유를 세 가지 차원에서 설득력 있게 정리했다. 첫째로 기업의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속도를 임금증가가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90년대에는 연평균 임금 증가율이 11.7%였고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12.8%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양상이 달라진다. 임금상승률은 7.2%에 불과한데, 영업이익률은 10.2%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재벌 대기업은 훨씬 더 올랐을 것이다. 결국 기업이 이윤을 내고 성과를 올려 거둔 몫을 노동자에게 비례해서 나누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자 삼성, 가난한 가계의 숨은 비밀은 이처럼 단순한 곳에 있었다.
두 번째는 기업의 노동자뿐 아니라 취업자에서 28.2%나 차지하고 있는 자영업자의 수익이 갈수록 악화됐다는 점이다. 자영업자 수익 역시 임금과 유사하게 90년대까지는 괜찮았지만 2000년대 오면서 현저히 줄어들었다. 90년대에 자영업자 연평균 영업이익은 10.2% 증가해 기업 영업이익과 비슷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자영업자 영업이익이 고작 1.5%밖에 늘지 않았고 기업은 10.2%가 늘었으니 당연히 기업에 비해 자영업 가계의 소득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임금노동자보다 못한 영세 자영업의 확산은 여기서도 확인된다.
세 번째는 바로 가계부채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의 저축률이 10%가 넘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덕분에 부채에 대한 이자상환보다 저축에 대한 이자수입이 많아서 순이자소득이 14%씩 늘어났다. 그런데 2000년대에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뀐다. 순이자소득이 마이너스 13.3%로 역전된 것이다. 2011년 기준 1천조원의 가계부채 때문에 상환해야 할 이자가 연간 44.5조원 규모로 불어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반면 기업은 2000년대 들어와 부채 비율이 크게 축소됐고, 금융비용도 줄어들었다. 들어오는 수입은 충분히 오르지 않고 나가야 할 지출만 늘어난 곳은 가계뿐이었다.
이런 분석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소득 확대→소비증가→고용창출→인적자본 축적→성장지속→소득확대'의 선순환을 이루는 내수와 수출의 균형성장체제로 바꿔야 한다. 새사연은 이를 ‘소득주도 성장모델’이라고 부른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빼 버렸지만, 지난해 대선에서 첨예한 이슈가 된 경제민주화가 그 해답이 되지 않을까.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005년까지 IT업계에서 엔지니어로 살아왔다. 새사연 창립을 함께 하면서 지금은 새사연 부원장으로 있다.  

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MF 위기 15년…"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22일자 기사 'MF 위기 15년…"위기는 끝나지 않았다"'를 퍼왔습니다.
[현장] 금융 피해자 행동의 날…"가난과 빚의 악순환 끊어야"

1997년 11월 21일, 임창열 경제 부총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IMF(국제통화기금)에 유동성 조절자금지원을 요청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 전해(1996년)에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며 축포를 터트렸던 김영삼 정부는 그렇게 외환위기라는 날벼락을 국민들에게 안겼다. 위기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났음에도 "경제 펀더멘털(기초)이 좋아 위기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변하던 김영삼 정부였다.

그로부터 15년. 평생직장 개념은 희미해지고, 정리해고와 고용 불안은 일상이 됐다. 비정규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부자는 못 되더라도 중산층은 될 수 있다'던 믿음도 산산조각 났다.

양극화도 심해졌다. IMF 구제금융 위기로 인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IMF=I'm fired(나 해고됐어)'였지만, 가격이 폭락한 주식과 부동산 등을 헐값에 사들이고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주가를 올린 일부 부유층에게는 'IMF=I'm fine(난 좋아)'이었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대통령이 세 번 바뀌었지만 밀려난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데도 더 가난해지고 빚은 불어나는 빈곤과 부채의 늪에 빠진 이들은 점점 늘어났다. IMF 차입금을 상환할 때 245만 명이던 신용불량자는 2004년 396만 명으로 늘었고, 올해 9월 기준으로 금융 소외자(2005년 4월 정부는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를 없앴다)로 분류되는 7등급 이하 저신용자는 603만9071명에 이른다.

▲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실업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거리로 내몰린 실직자들은 낮이면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사회단체들이 제공하는 무료급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밤이 되면 지하철 통로에 노숙을 했다(1998년 6월 22일). ⓒ연합뉴스

IMF 구제금융 위기 15년, '약탈적 금융'은 현재진행형

IMF 구제금융 위기가 시작된 지 15년이 지난 21일 오후, 빈곤과 채무의 악순환을 끊으려는 이들이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모여 '금융 피해자 행동의 날' 행사를 열었다. 금융 피해자가 연대해 가난과 빚의 덫을 없애자는 취지다.

이들은 금융 채무자들이 탐욕적 금융 수탈 정책의 피해자라고 규정했다. 가난과 빚의 늪에 빠진 책임을 개인에게만 묻고 '도덕적 해이'를 비난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구조적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1998년 IMF의 요구에 따른 이자제한법 폐지, 카드 대란을 불러온 1999년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비중 및 한도 폐지, 정리해고·파견근로·변형근로 등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몬 정책들이 금융 채무자를 양산한 현실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 피해자 행동의 날' 참가자들은 지난 15년 동안 진행된 한국 사회의 '금융 세계화'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금융 자본의 수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허영구 좌파노동자회 대표는 "15년간 위기 극복이라는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게 했나"라며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구속되고, 수십 명이 분신했으며, 수십만 명이 정리해고로 쫓겨난" 끔찍한 상황을 되짚었다. 허 대표는 "서민을 쥐어짜는 금융 수탈이 계속"되면서 "한국은 하루에 수십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야만적인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들도 비판했다. 허 대표는 "유력 대선 후보들이 서민의 피부에 와 닿는 금융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다들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를 지속하려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허 대표는 금융 세계화의 폐해를 확산시킨 "IMF 외환위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 후 "약탈적 금융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는 파산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서 활동가는 올해 초 마련된 '새로운 개인 파산 절차 운용 실무'(새 파산제도)가 새롭게 출발하려는 채무자들에게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 파산제도의 핵심은 파산관재인 선임을 대폭 늘리고 그 비용을 30만 원 이하로 하며, 파산과 면책 절차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 활동가는 "(대부분) 정리해고, 비정규직, 실업 등으로 인한 사회구조적 채무라는 점에서 파산제가 확대돼야 함에도 새 파산제도는 그 문턱을 높였다"고 비판했다. 이전과 달리 배우자·부모·자녀의 재산 및 10년간의 주거 변동 사항, 3년간의 과세 증명, 5년간의 출입국 사실 증명 서류 등을 과도하게 요구해 채무자를 위축시키고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 활동가는 "(정부가) 파산 자체를 포기하게끔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금융 피해자 행동의 날' 조직위원회는 변호사 중에서 파산관재인을 선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민간 법조 시장의 경제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채무자의 비용으로 채무자를 조사한다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금융 채무 대책이 채권자 편향으로 돼 있기 때문에, 파산 원인이 늘어나는데도 개인 파산 신청 건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줄었다고 비판했다. 개인 파산 신청 건수는 2007년 15만 5190건에서 2011년 6만 9754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진짜 범죄자는 가난을 만들어내고 가난한 이들을 모욕하는 사람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은 "파산은 범죄가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진짜 범죄자는 "가난을 만들어내고 가난한 이들을 모욕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김 조직국장은 "IMF 위기 때 쓰러져가던 은행들에 168조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 살려냈다"며 "그렇게 세금으로 배를 채운 저들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만들어내고, 그 때문에 가난해진 사람들을 계속 모욕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도 비판했다. 김 조직국장은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 의무자 기준을 없애야 한다"며 한 가정의 사례를 소개했다.

"빌딩 유리창 청소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일하던 중 떨어져 장애인이 됐다. 그 아들이 직장에 다니게 되자, (부양 의무자 기준 때문에) 아버지는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가난과 빚의 늪에 빠진) 아들은 200만 원 정도 되는 월급의 거의 절반인 100만 원씩을 매달 갚아야 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희망 없는 생활에 지친 32세 청년은 결국 얼마 전 아버지를 떠나 잠적했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인가."

최덕용 한국금융피해자협회 실장은 금융 피해자의 삶을 증언했다. "2-3년 전까지는 채무, 추심 같은 걸 모르고 살았다"는 최 실장은 파산의 쓴맛을 봐야 했다. 최 실장은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은행 돈을 자기 돈처럼 썼지만 나 같은 서민에겐 은행 문턱이 너무나 높았다"며 고금리, '꺾기' 등을 당하다 결국 사업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 후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비인간적인 채권 추심에 시달려야 했다. 최 실장의 아내도 "남편에게 보증을 서준 죄"로 빚쟁이가 됐고, 두 자녀도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빚쟁이 아닌 빚쟁이"가 됐다.

최 실장은 "파산 신청을 하려 해도 '도덕적 해이'라는 명목으로 범죄자 취급을 한다"고 비판했다. "새 삶을 살려는 사람에게 영원한 채무자로 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최 실장은 '도덕적 해이'를 강조하는 이들을 비판했다.

"빚진 사람은 다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것인가? 학자금 대출로 빚진 아이들은 모두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것인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개인들이 모두 잘못한 것이고 정부, 국회, 사회 지도층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인가? 혈세를 수백억씩 낭비하고 공적 자금을 투입하게 만드는 것이 도덕적 해이 아닌가? (…) 건실하게 살다가 실패의 아픔을 겪은 이들이 살아갈 길은 이 땅에 진정 없는 것인가?"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경제위원회의 백주선 변호사는 법적인 문제를 짚었다. 백 변호사는 이자 상한선을 20%로 내려 고금리 폐해를 줄이고, 채무자의 방어권을 법에 명시해 강압적인 채권 추심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IMF 구제금융 위기를 맞이한 지 15년이 된 21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 피해자 행동의 날' 행사가 열렸다. ⓒ프레시안(김덕련)

"탐욕스런 금융 자본, 그리고 부패한 '모피아'와 싸워야"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은 "IMF 위기 이후 한국은 1% 금융 자본가들에게 99%가 수탈당하는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다들 대선에 정신없는 이때 '모피아'들은 금융 수탈을 더 많이 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키고 있다"며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을 거론했다. 홍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 "3조 원을 모아온 5개 증권사를 위한 법을 만드는 국회, 실패하면 그 비용을 납세자에게 물리는 법이자 '모피아'의 숙원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대선 후보들에 대해서도 "유력 대선 후보 중 어느 누구도 금융과 관련해 서민 편에서 속 시원하게 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홍 사무처장은 "지난 정권의 2인자였던 문재인 후보는 파생상품 거래세에 반대했고, 안철수 후보는 '모피아'의 대부인 이헌재 씨를 멘토로 삼았다"고 질타했다. 이어 "저들(대선 후보들)은 (약탈적인) 금융 시스템, 경제 시스템을 바꿀 생각이 없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100일 안에 '이명박이 차라리 낫다'는 말이 노동자들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홍 사무처장은 "탐욕스런 금융 자본, 그리고 부패한 '모피아'와 싸워야 한다"며 "금융 피해자들의 연대"를 거듭 강조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들은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야외에서 발언을 경청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의 처지를 상징하듯, 참가자들과 차가운 길바닥 사이에는 얇은 방석 하나뿐이었다. "일해도 더욱 가난해지는 세상"이 아니라 "빚 없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기를 소망하는 이들은 자신들을 차가운 거리로 계속 내몰 것인지 한국 사회에 묻고 있었다.


 /김덕련 기자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추방지’에 유폐된 우리 시대의 유령들


이글은 한겨레21 2012-09-24일자 제929호 기사 '‘추방지’에 유폐된 우리 시대의 유령들'을 퍼왔습니다.
[특집] 10년 전 영구임대아파트 살던 6명의 오늘을 추적하다… ‘추방자들의 게토’에서 죽거나 죽음을 기다리는 늘 가난해서 외로운 ‘내부 난민들’

» 26m²짜리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암에 걸린 딸과 20년째 사는 김순자(가명)씨. 딸 수술비를 벌려고 두 달여 전부터 간병일을 하고 있다. 24시간 붙박이 간병을 하는 김씨가 병원 휴게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겨레21

그들은 죽어서야 비로소 목소리를 얻었다. 오랜 세월 안 보이고 안 들리는 불가산(不可算)의 운명을 감내해온 그들에게 이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100일, 그들은 문고리에 목매고 복도에서 몸 던지고, 그도 아니면 건조한 구강에 약봉지를 털고 세상과 돌아누웠다. 이렇게 마감한 인생이 도합 여덟이다. 모두가 메갈로폴리스 서울의 한 공동주거단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들이 살아온 이 공간을 사람들은 ‘영구임대주택단지’라고 부른다. 애초 조력과 돌봄이 절실한 약자들을 위해 지어졌으나, 어느 순간 국가와 사회로부터 내쳐진 ‘추방자들의 게토’가 돼버렸다. 그들을 괴롭혀온 것은 알려진 대로 ‘빈곤’이란 질병이다. 이 질환은 단순히 경제적 결핍이란 증상만을 갖지 않는다. 관계의 결핍은 빈곤의 또 다른 증상이었다. 둘은 하나의 순환고리로 이어져 경제적 궁핍은 관계의 결핍을, 관계의 결핍은 다시 경제적 궁핍을 산출하고 강화했다. 은 지난주 서울의 한 영구임대주택 단지를 찾아 어둡고 습한 침묵의 공간 속에 유폐된 우리 시대의 유령들을 만났다. 노력은 진지했으나 그들을 위한 정교한 복화술이 되기엔 많은 것이 부족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_편집자

‘가난한 사람들은 모여서 산다.’ 이 먹먹한 말에는 담장이 있다. 가난한 이들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 전에도 자기들끼리 모여 살았다. 산동네에 사는 아버지도, 그 아들도, 어머니도, 그 딸도 가난했다. 넘을 수 없는 가난이었다. 20여 년 전 국가가 나섰다. 대단지를 조성해 흩어져 살던 가난한 사람들을 그러모았다. 영구임대아파트는 언뜻 희망처럼 보였다. ‘자격’만 된다면 죽을 때까지 싼값에 자기 집처럼 살 수 있었다. 영구적인 가난만이 자격이었고, 가난했던 아들과 딸, 그들의 아들과 딸이 자격을 얻었다.

아픈 딸에게 고기 먹이면 휘청거리는 가계

가난한 사람들은 모여서 산다. 10년 전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2002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서울시 영구임대주택 주민의 생활’(김수현·김소임·김성희·김연정)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서울의 대표적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2곳에서 40명을 심층 인터뷰해 그들의 삶과 일상을 추적했다. 은 당시 조사를 도운 사회복지관의 협조로 이 가운데 6명의 행방을 추적했다. 그들은 이미 죽거나 여전히 가난했으며,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 강북의 한 병원에서 김순자(59·가명)씨는 24시간 간병일을 하고 있다. 80살 넘은 폐암 환자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하루 6만원을 받는다. 간병일을 시작한 지는 두 달이 조금 넘었다. 경쟁이 심해 한 달에 열흘이나 보름을 채워 일하기가 쉽지 않다. 쥐꼬리만 한 소득이지만 이마저도 혹시나 드러나면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떨어질 수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김씨는 29살 된 딸과 영구임대아파트 10×동 1×××호에 살고 있다. 1992년 12월에 입주했으니 20년째다. 현관·주방·화장실·방이 일체형으로 다닥다닥 붙은 전용면적 26m²의 좁은 공간이 익숙하다. 다 큰 딸은 하루 종일 집에 있다. 아무 일도 못한다. 16살 어린 나이에 암이 발병했다. 이제까지 수술만 5번을 했다. 다른 곳으로 전이된 암 때문에 앞으로 2번을 더 수술해야 한다. 간병일도 3천만원이 넘는 수술비 때문에 시작했다. 김씨는 무릎관절이 아파 10년 가까이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했다. 당뇨도 있다.
10년 전 인터뷰에서 김씨는 “세상천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딸과 둘이 이사 오게 되었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했을 때만 해도 몇 년간은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입주 전 알코올중독으로 술만 마시면 자신을 때리던 남편이 갑작스레 숨졌다. 딱 그 정도의 ‘안정’이었다. 2000년 딸에게 암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남편 쪽 유전이라고 했다.
1993~99년 김씨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관광버스 5대를 청소하는 일을 했다. 월 30만원을 받았다. 2000년에는 주유소에서 청소하고 직원들 밥 해주는 일을 했다. 월 50만원을 받았다. 그 뒤로는 가끔씩 취로사업으로 월 60만원 정도를 버는 게 전부였다. 2012년 현재 김씨는 딸과 자기 앞으로 구에서 지원해주는 월 77만원을 받고 산다. 지역 복지관에서도 월 5만원을 보태준다. 임대료·관리비·수도요금·전기요금·가스비로 다달이 15만원 정도 나간다. 매달 쌀 20kg 한 포대를 6만5천원에 사서 먹는다. 부식은 별거 없다. 하루 ‘두 끼’를 날오이 무쳐 먹고 무생채로 때운다. 몸이 허한 딸에게 고기를 사 먹이면 그달은 가계가 휘청한다. 옷과 신발은 다 1만원짜리다. 저축은 없다. 대부업체에서 돈 1천만원 대출받은 것도 걱정이다.

» 약간의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이성진(가명)씨는 정말로 부지런히 일한다. 부인·달과 함께 18년째 살고 있는 좁디좁은 영구임대아파트 현관문을 이시가 나서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몇 년 전에는 옥상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뛰어내렸다. 술병에 걸린 젊은 남자도 술김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처음에 왔을 때는 고맙고 희망도 있었다. 20년 살다 보니 지금은 이웃이, 동네가 너무 험하다. 더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갈 방법이 없다.

정신지체장애 부부와 14살에 죽은 아들

10년 전 인터뷰에서 김씨는 “옆집 사람이 내 또래라서 말이 통한다. 전부 노인들이라 옆집을 빼면 왕래가 거의 없는 편”이라고 했다. 이제 김씨는 “딸이 아프고 나서 옆집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했다. “다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런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산다.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 보니 바로 옆에 붙은 일반분양 단지 주민들은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거지 취급”한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옥상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뛰어내렸다. 술병에 걸린 젊은 남자도 술김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처음에 왔을 때는 고맙고 희망도 있었다. 20년 살다 보니 지금은 이웃이, 동네가 너무 험하다. 더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갈 방법이 없다.
이성진(52·가명)씨는 새벽 5~6시에 전철을 타고 서울 가락시장에 간다. 두 바퀴가 달린 커다란 ‘딸딸이’를 끌고 역에 들어서면 역무원들은 “이거 가지고 타면 안 되는데요”라며 난감해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물건 떼오려면….” 회기역·왕십리역·잠실역에서 갈아탄다. 지나가는 역만 18개다. 18~20kg들이 양파 5포대를 받아서 낑낑거리며 딸딸이에 싣고 다시 전철로 돌아온다.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일부러 한가한 시간을 고른다. 한 포대에 1만4천원씩 받아온 양파를 집 근처 전철역 앞에 풀어놓는다. 실한 양파 열댓 개를 2천원에 팔다 보니 셈 빠른 아주머니·할머니들이 한 봉지씩 사들고 간다. 워낙 싸게 팔아서 양파를 다 팔아도 하루 벌이가 2만원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팔아야 그나마 사간다”고 한다.
이씨는 말과 행동이 약간 어눌하다. 정신지체장애 3급이다. 아내는 이씨보다 심한 2급이다. 이씨는 18년 전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그 전에는 서울 봉천동에 살았다. 함께 입주한 어머니는 6년 정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아내 사이에는 딸과 아들이 있다. 선천성 심장병을 달고 태어난 아들은 지난해 4월 한식을 앞두고 14살 나이로 죽었다. 수술만 7번을 받았다. 딸은 건강하다.
그는 10년 전과 사는 것은 똑같다고 했다. “지난해까지는 아들 때문에 힘들고 올해는 딸 때문에 힘들어요.” 딸은 재수를 하고 있다. 학원비만 매달 80만원 정도 들어간다. 딸은 대학에서 복지를 공부하고 싶어 한다. 지난 5월부터 양파 장사를 시작했다. “애 학원비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하루 1만원 정도 남겨서 딸에게 3천원 교통비로 줘요.” 구에서는 세 가족 앞으로 다달이 생계급여 96만원, 주거급여 23만원을 지원해준다. 두 부부 앞으로 장애수당이 18만원씩 나온다. “알뜰하게 살면 살 수 있어요. 그런데 딸이 재수를 하면서 문제가 생겨버렸어요.” 대학 등록금은 어쩔 거냐고 했더니 “선생님 말이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고 한다”며 쉽게 대답한다.

이웃과 교류? “그런 거 없어”

빚은 3천만원 정도 된다. 아내와 아들의 수술비 때문에 카드 대출을 받았다. 압류 통지는 계속 날아든다. 전기료를 못 낸 지 석 달째다. 아내와 딸의 휴대전화는 모두 끊겼다. 이씨 휴대전화 요금도 연체 상태지만 끊기지 않을 정도로 돈은 내고 있다. 지난달 이런저런 돈을 갚으려고 통장에 들어온 130만여원을 모두 인출하고 보니 통장에 찍힌 돈은 달랑 4천원 정도다.
이웃과는 전혀 교류가 없다. “술 마시고 우편함 때려 부수고 그래요. 일이 없으니까. 그나마 술 마시고 개판 부리던 사람들은 다 죽었어요.” 그는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 끊은 사람을 직접 보기도 했다. “예전에 봉천동에서 사글세 살 때는 그래도 이웃끼리 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파트는 야박하더라고요. 게다가 이웃들이 질서도 안 지키고 험해서. 개판 치는 사람들과 같이 못 산다는 거죠. 딸 키우기 겁날 때도 많아요.”
영구임대아파트는 그에게 잠시나마 희망이었다. “처음에는 사글세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 돈으로 딴 데서는 집 못 얻잖아요. 내 집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곳에 살다 보니 벗어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나라에서 영구임대아파트는 잘해놨어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빨리 벗어나면 좋은데…. 돈 벌어서 여긴 면해야죠.” 그 역시 해답은 없다.
송만갑(가명)씨는 2002년 인터뷰 당시 46살이었다. 한 해 전에 시각장애인 아내와 결혼한 송씨 역시 다리를 못 썼다. 10년 전 그는 “아내는 남편의 다리가 돼주고 남편은 아내의 눈이 돼주기로 했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고 했다. 서울 행당동에 살던 송씨는 동네가 철거돼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됐다. “처음 이사 올 때는 내 집이라서 기뻤다. 그런데 여기는 주저앉고 안주하게 만든다. 있는 돈도 다 써버리게 만든다. 이젠 어디 다른 곳으로 가지도 못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이웃도 없었다. “예전 동네에서는 이웃 간에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다른 단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세금도 안 내고 돼지같이 피둥피둥 살만 찐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장애인이라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 때문에 옛날이 그립다.” 송씨는 2004년 칼로 다리를 그어 목숨을 끊었다.
“기운이 없어서 제대로 일어날 수도 없다. 나는 아파트 단지가 어떤지 잘 모른다.” 2002년 인터뷰 때 94살이던 김동수씨는 2년 뒤 노환으로 숨졌다. 복지관 쪽에서 신경 써서 그나마 쓸쓸한 죽음은 아니었다고 한다.
2002년 장애인 부모 밑에 살던 유영수(당시 12·가명)군, 소년가장이던 정윤식(당시 14·가명)군. 정군은 10년 전 인터뷰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 몰아두었다. 서로 지나치게 남의 일에 참견하고 소문을 낸다”며 불만을 토로했었다. 두 사람은 성인이 돼 영구임대아파트를 떠났다. 그 뒤로 복지관 쪽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는 “좋은 환경에서 살아봐야 희망이 생긴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살게 되면 그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며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돌파구가 없다”고 했다. “삶에 의지를 가지고 빈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 서울 강북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9월13일 아파트에 장이 섰지만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보다는 바로 옆에 사는 일반분양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더 많이 보였다. 한겨레21 정용일

자기혐오와 절망, 죽음의 자유

가난한 자들이 모여 사는 집합적 주거 형태는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됐다. 가장 유토피아적 비전을 꼽으라면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에 지어진 ‘파밀리스테르’(Familistere)다. 푸리에주의자 장 밥티스트 고댕이 지은 이 집합주택은 독신자는 독신자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일정한 사생활이 보장되는 근대식 방들을 제공하는 한편, 방들이 테라스와 중정이 결합된 단일의 공동공간으로 집중되도록 했다. 사적 공간과 코뮌적 공간이 하나로 결합된 이 건물에 대한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당대의 어떤 집합주택보다 높았다. 실험은 유럽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30년대까지 성공적으로 유지됐다.
이와 달리 한국의 영구임대아파트들이 겪는 참상은 예고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 공간은 빈자들의 파밀리스테르가 되기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던 탓이다. 이곳은 ‘삶을 위한 기계’라는 근대건축의 이상과는 동떨어진 ‘격리·추방의 기계’에 가까웠다. 목표량을 정해놓고 단기간에 완공하는 방식부터 ‘사회주택’에 적용돼야 할 원칙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 1천 가구 이상이었고, 2천 가구가 넘는 대단지도 다수였다. 단지 외부와의 사회적 단절, 지역의 침체는 불가피했다. 공급 단계부터 이미 사회적 배제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지역과 입주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시설 공급도 문제였다. 입주자의 다수인 장애인·노약자를 위한 공학적 배려는 없었다.
행정 당국은 이 ‘더럽고 위험한 존재들’을 한곳에 수용하는 데만 촉수를 세울 뿐, 시설 관리나 취약계층에 절실한 복지서비스 제공은 관심 밖이었다. 슬럼화 우려는 초기부터 있었지만 당국의 대책이란 “설계 단계부터 견고한 주택이 지어지도록 하고, 최저소득층 입주자에겐 난방비·관리비를 추가 지원하는 방안”(1989년 3월 대한주택공사 토론회)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처럼 국가의 ‘적극적 방치’ 아래 동물적 생존을 유지하는 것 말고 일체의 시민적(사회적) 권리가 허용되지 않는 존재들에 합당한 호칭은 ‘내부 난민’이다. 추락할 바닥이 남아 있지 않은 난민에겐 현대인의 숙명이라는 불안조차 느낄 여유가 없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자기혐오와 절망, 죽음에 이를 자유뿐이다.

지역 단위 복지협의체 구성 등 시급

영구임대주택 문제에 대한 처방은 다양하다. 무장애 주거 공간 조성, 복지동 증축과 병행한 순환적 리모델링 같은 물리적 환경 개선은 더 미룰 수 없는 숙제다. 알코올의존자와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지원 체계 구축, 아동과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 확충 또한 시급하다. 복지관 예산과 인력을 늘리고 공공·민간이 함께하는 지역 단위 복지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시민적 삶의 토대인 일자리 문제에 국가와 사회는 진지하게 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 그들을 불편해하고 위험시하며 견고한 감각의 장벽을 세우는 습속과 문화의 비열함은 또 어떤가. 도처에서 상연 중인 추방과 유폐의 잔혹극에서 우리는 과연 단순 관람자일 뿐인가. 비좁고 더러운 추방지의 골방에서 아홉 번째, 열 번째 죽음을 기획하고 있을지 모를 그들이, 이 순간 우리 앞에 던지는 물음이다.

영구임대주택의 역사와 현황

6공 때 서울·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 건설

영구임대주택은 1989년 출범 1돌을 맞은 6공화국 정부의 서민층 주거 안정화 대책의 일환으로 입안됐다. 발표 당시 25만 가구였던 사업 규모는, 1991년 대규모 입주 미달 사태 등을 겪으며 19만여 가구 수준으로 축소됐다.
1989년 11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640가구를 시작으로 그해 전국적으로 4만3253가구의 영구임대주택이 공급됐다. 공급 규모는 1990년 6만4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1991년 4만9607가구, 1992년 3만6706가구로 내리막을 걷다 1993년 507가구를 끝으로 신축이 중단됐다.
전국적으로 19만77가구가 분포하는 영구임대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14만78가구(73.7%), 지자체의 도시개발공사 등이 4만9999가구(26.3%)를 관리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4만5828가구(26%)로 가장 많고 부산 2만6171가구(13.8%), 경기 1만9664가구(10.3%), 대구 1만8744가구(9.8%) 순으로, 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 분포돼 있다. 면적별 분포는 26㎡(67.7%), 31㎡(27.7%), 40㎡(4.2%) 순이다.
입주민은 공급 초기엔 생활보호법에 의한 거택보호자와 자활보호자, 저소득 의료부조자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입주자 미달로 1992년 자격 요건을 완화해 저소득 모자가정, 청약저축 가입자까지 자격이 확대됐다.
입주민 구성(LH 보유 126개 단지, 2008년 3월 기준)을 보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 가구가 57%, 비수급 가구가 43%다. 수급 가구 중에는 의료1종(거택보호)이 63.6%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의료2종(자활)이 30.3%, 나머지는 보훈(3.05%), 새터민(2.4%), 모부자가정(0.6%) 순이다. 가구원수는 1인이 35.6%로 가장 많고, 2인 27.6%, 3인 21.2%, 4인 11.3%, 5인 이상은 4.4%다. 평균연령은 56.9살로 높은 편인데, 세대주가 65살 이상인 가구가 33%로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세영 기자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2년 8월 4일 토요일

"MB 4년, 국가는 가난해지고 재벌은 살쪄"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8-03일자 기사 '"MB 4년, 국가는 가난해지고 재벌은 살쪄"'를 퍼왔습니다.
[여론조사] 71% "MB정부의 경제전망 안 믿는다"

국민 절대 다수는 MB정부가 대기업과 부유층 중심의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하고 정부의 경제전망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다는 극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일 경제개혁연구소(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7월 28~29일 양일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2009년 7월 이후 매분기 동일한 조사를 진행중이다.(표본오차는 95% 신뢰구간에 ±3.1%p). 

우선 정부의 기업정책에 대해 응답자의 87.3%가 ‘대기업 중심’이라고 답했고, ‘중소기업 중심’ 이라는 응답은 6.0%에 불과했다. 

정부의 세금정책에 대해서도 ‘부유층에 유리’하다는 응답(86.8%)이 ‘서민층에 유리’하다는 응답 5.7%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정부의 경제성장율, 예상 실업율 등 경제전망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0.7%로 ‘신뢰한다’는 의견 24.3%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특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비율(24.3%)은 여론조사 실시 이후 최저치로 추락,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MB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과 불신이 높은 것은 MB정부 4년간 재벌의 실질자산 증가율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2배 이상 높아진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연구소측 분석이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포럼 특강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0대 재벌 자산은 12.65% 증가했다"며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인 2001~2007년 5.61%보다 2.2배 증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국가자산의 경우 이전 김대중·노무현 정부 7년간 7.63% 증가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이래 2010년까지 증가율은 1.84% 증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동안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 의해 국가는 가난해지고 재벌의 경제 집중력은 높아졌다"며 MB노믹스를 질타했다.

박정엽 기자

2012년 7월 20일 금요일

"가난이 죄인 나라, 우린 갈 곳이 없습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19일자 기사 '"가난이 죄인 나라, 우린 갈 곳이 없습니다"'를 퍼왔습니다.
[삭제된 역사, 포이동·①] 포이동, 되풀이되는 용산의 비극

강제 이주 이후 30년 간 행정의 폭력에 유린당한 포이동의 역사는 지금 삭제될 위기에 처해 있다. 산 자들의 증언이 쏟아졌지만 이 나라는 그들의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혜정  (삶이 보이는 창)편집위원이 30년에 걸친 포이동 주민의 이야기를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착취당한 그들의 노동, 그리고 인권에 대해 되짚어본다.(편집자)

'삭제되어야만' 하는 가난한 이들의 역사

영화 은 '불법'이라는 단어가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난이 죄가 되는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은 누구나 불법한 누군가가 될 수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두 개의 진실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구조다. 권력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진실을 만들기 위해 정보를 은폐하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뒤바꿔놓는다. 이렇게 또 하나의 진실이 '마련되는' 동안 권력의 바깥에 선 사람들은 명백한 불의 앞에서도 서럽도록 무력해진다. 영화는 관객이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목도하게 한다. 국가권력이 비호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것을. 이 영화의 메시지는 그래서 힘을 가진다. 은 이 권력의 구조를 정확히 보아야 한다고,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자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권력의 작동은 포이동 266번지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박정희 때는 '재건대'라는 이름으로, 전두환 때는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행정에 의해 30년 간 관리, 착취당했던 그들의 역사는 지금 삭제될 위기에 처했다. 그들의 30년 삶에 대해 서울시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거가 없으니 그들의 삶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선 산 자들의 증언은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우리는 그것을 용산 참사를 통해 이미 한번 확인했다.

▲포이동의 한 판자집. ⓒ이혜정

박원순 시장, 지키지 않을 약속 왜 했나?

지난 달 8일,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5기 추모제 행사에는 박원순 시장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이날 강연이 끝난 후 한 대학생이 '재건마을'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에 대해 질문했다. 박원순 시장은 "구룡마을이나 포이동 같은 곳을 이야기하는 것이냐"라고 되물었다. 구룡마을은 포이동과 마을 형성 배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재건마을이라고 부르지 않고 있는데도 그렇게 답한 것이다. 포이동은 재건대 대원('재건대'가 이후 '자활근로대'로 명칭이 바뀜)들이 강제이주를 당해 이루어진 마을이기 때문에 재건마을로 불린다. 포이동에서 공부방 교사로 활동했던 그 학생은 "박원순 시장이 포이동의 역사적 배경이나 자세한 사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해 10월 1일, 박원순 후보에게 보낸 서면인터뷰에 대한 답변에서 그는 너무도 겸손한 태도로 "이제라도 시장으로 출마해 찾아뵐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노력하겠다" 했었다. 그는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조금 더 많은 곳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전히 힘겹게 소외되어 사시는 분들을 보듬고 함께 아픔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이제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선거 기간 중 뻔한 방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30여 년간 지역을 지켜 오시고 삶의 터전을 일궈 오신 분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풀기 위해 진정성을 가진 방문을 하겠습니다."

당시 박원순 후보는 포이동 주민들의 상처에 대해서도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 동안 상처 받아오신 시간들이 어떻게 위로되어야 할 지 저 또한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풀어나가겠습니다."

포이동 주민들은 그의 말에 희망을 품었고, 박원순 후보의 선거운동에 함께 했다. 드라마틱한 역전극을 통해 마침내 그는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시장실을 독특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꾸미는 시장,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시장, 반값 등록금 납부를 실현시키겠다는 시장, 공공부문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시장의 기사가 연일 메인을 장식했다. 그러나 포이동에 관한 기사는 뜨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은 후보시절에도, 시장이 되고 난 이후에도 포이동을 찾지 않았다. 포이동의 사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특별강연 당시 질문을 했던 대학생도, 포이동 주민들도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서울시장 바뀌고 두 배로 늘어난 토지 변상금

"아파트를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 중인 박원순 시장이 유독 포이동만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이동 옆 구룡마을은 수차례 다녀간 시장이 왜 유독 포이동은 그냥 지나치고 있을까. 박원순 시장이 새누리당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일고 있다.

박정재 민철연(민중 주거 생활권 쟁취를 위한 철거민 연합) 연대사업국장은 "한 마디로 여기 땅 값이 비싸서"라고 대답했다. 그는 "과거사 문제도 있지만 새누리당 표적이 되어있는 지역이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곳이기도 하다"고 했다. 올해 토지 변상금이 두 배가량 늘었다면서 "아예 내쫓을 생각이 아니면 이렇게 부과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 주택과 담당 김중철 팀장은 "그건 오해"라고 못 박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지 "가산금이 붙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주민들이 임대아파트로 선뜻 나설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인 토지 변상금에 대한 답이었다. 작년까지 25억 원이었던 토지 변상금은 올해 47억 원으로 늘어났다. 여름도 다 지나지 않았는데 빚 22억 원이 더 늘어났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올해 본세가 29억 원이고 가산금이 18억 원"이라고 정리해주었다. 납기 내에 내지 않아 가산금이 18억 원이나 붙었다는 이야기다.

재산은 모조리 가압류 당한 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낼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김 팀장에게 변상금 면제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그는 "현재까지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공영개발안에 주민들이 합의하면 그제야 변상금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개발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민들에게 수십 억 원의 변상금을 물리고 있는 강남구청과 이를 묵인하는 서울시의 행정은 오세훈 때나 박원순 때나 달라진 것이 없다.

주민들의 생계를 잇던 고물상들도 전부 다른 지역으로 쫓겨났다. 이전을 하지 않을 경우 변상금을 추가 부과하겠다는데 버틸 재간이 없었다. 조철순 전 위원장이 운영하던 고물상은 작년 11월 30일까지 나가라고 통보가 왔다. 그런데 그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단다. 그래서 한 차 분량은 내일 옮기겠다고 강남구청에 이야기를 했고, 다음 날 오전 이사를 마쳤다. 그런데 반나절 늦게 나갔다고 변상금 3억4000만 원이 부과됐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 주택과 김 팀장은 "하자(문제) 없다"고 답했다.

"협의각서를 제출했다든가 구청에 협조했으면, 서로 대화가 잘 되고 했으면 그런 문제가 없었을 것 아니에요."

사람과 삶에 포이동 주민들은 없다

30년 전 강제이주를 당해 곡절의 역사를 살아온 박동식 씨는 말한다.

"고아로 자라난 게 자랑입니까. 강제이주 당해서 자활근로대 생활하면서 온갖 수모 다 당한 게 자랑이겠습니까. 자식들에게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자랑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백퍼센트 너희들 잘못이다. 너희들 못 배워서 그렇다. 너희들 능력 없어서 그렇다. 너희들 게을러서 그렇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라에서 우리를 너무 짓밟았어요. 막연히 우리를 뭘 달라고만 하는 거지새끼처럼만 보지 말고, 나라에서도 잘못한 정책은 잘못했다고 인정해야지요. 그래야 그 같은 과오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고 그러한 역사가 다시 되돌림 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들은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들이 살아온 역사, 인권유린과 착취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바깥에서는 '투기 목적으로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러는데요. 두고 보세요. 내가 여기 점유권을 인정해 달라, 여기 이 땅 우리 땅이니까 달라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은 제 얼굴에 침을 뱉으세요. 우리는 그런 거 아닙니다. 여기다가 정든 이곳에 집을 다시 짓고 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어요. 우리는 잘 먹고 잘 살면서 만난사람들이 아니예요. 땅굴 속에 숨어서, 경찰관들 워커 피해서 동냥해서 깡통에다 얻은 밥 먹고 살아온 사이입니다. 내 인생에 가장 어려울 때 같이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 떡 한 쪽이라도 나눠먹으면서 살아 온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이뤄온 공동체예요."

ⓒ이혜정
지금 그들의 30년 공동체를 위협하는 자는 다름 아닌 서울시와 강남구청이다. 서울시의 개발안에 합의해야만 비로소 이 땅의 시민이 되는 나라. 가난하면 제 집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망루에 올라야 하며,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도 가해자, 범죄자가 되는 나라. 또 가난하면 경찰과군인에게 끌려다니며 '자활'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하고, 그들의 '할당'을 채우기 위해 범죄자가 되고, 영문도 모른 채 불법 점거자가 되어 쫓겨나는 나라. 이 나라에 '사람'은, 그리고 '삶'은 있는 것일까.

박원순 시장은 요즘 '사람'과 '삶'을 말하고 다니며 공동체를 지원하는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를 두고 배울 만큼 배우고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이 모여 친환경 식품 사먹고 자녀들은 대안학교 보내는 중산층 공동체를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원순 시장이 말하는 '사람'과 '삶'에, 그리고 공동체 속에 포이동이 없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은 지금이라도 포이동 주민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서울시가 애써 많은 돈을 지원하지 않아도 잘 사는 동네가 아니라, 오늘 내일 하며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포이동 266번지에 가야 한다. 2009년 용산에서, 그리고 지금 포이동에서 가난의 역사,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용산에서처럼 포이동 주민들의 역사 역시 국가권력에 의해서 삭제당하고 철거당할 위험에 놓여 있다. 박원순 시장은 그 책임의 한복판에 있다.

 /이혜정 편집위원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진짜 대안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18일자 기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진짜 대안은?"'을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빈곤의 예방과 완화를 위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과제

왜 복지국가인가?

오늘날처럼 '노동'의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진 시대는 없는 듯하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과거 봉건시대 영주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노동력인 농노를 보호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제 노동자는 핵심인력 일부를 제외하고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d Bauman, 2004)이 지적한 것처럼 '소비주의' 시대에서 '근로 윤리'는 기만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언제고 잘릴 각오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성실성은 오히려 억울한 감정과 갈등만을 불러일으키는 불필요한 덕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은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아니라 돈을 번 수단이 어찌되었든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을 뽐내는 이들이다. 나머지는 그 유능한 몇몇 사람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배를 곪지 않을 수 있는 가련한 이들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민주주의의 권리는 몇 년에 한 번씩 선거가 있을 때만 잠깐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래서한국에서 복지국가는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노동의 가치와 인간성을 회복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에서는 적어도 땀 흘려 일을 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현실은 일을 해도 미래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아야 할 만큼 열악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자력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전임으로 학원 강사 일을 하는 친구는 졸업 후 3년 동안 열심히 일했음에도 수중에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상황은 중산층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임금을 비교적 많이 받아도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 교육, 주거, 의료 등의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이원화로 인해 패자부활이 힘들어 자신과 자녀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복지국가가 가장 발달한 스웨덴의 경우 교육, 주거,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를 모든 이에게 충분히 제공하므로 비교적 낮은 수준의 임금으로도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왜 보편적 복지국가인가?

빈곤의 예방 및 완화의 관점에서 보편적 복지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빈곤을 효과적으로 예방·완화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여 복지재정을 줄이고 빈곤을 완화한다는 식의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을 채택한 미국과 미국식의 복지국가 퇴보를 경험한 영국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 가정하고 있는 빈곤층에 대한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 미치는 정치적 효과가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첫째,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빈곤층을 빈곤층이 아닌 인구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수한 집단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즉, 빈곤층을 비빈곤층 인구와는 애당초 다른 특징(선천적 능력, 행동적 특징, 가족구조 등)을 가진 정태적 집단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빈곤에서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도 등의 발전도상국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통틀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빈곤층이 결코 정태적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Krishna, 2010). 빈곤으로의 추락과 탈피는 매우 흔한 현상이다. 빈곤위험이 일부 집단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일부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낮은 조세, 규제 완화, 작은 정부를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 3년 동안 OECD 국가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조사는 조사 이전에는 빈곤하지 않았던 인구의 5%가 매년 빈곤층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매년 빈곤인구의 50%는 빈곤 탈피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보다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복지국가가 매년의 빈곤인구뿐만 아니라 빈곤의 지속 역시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OECD, 2001).

결국 빈곤을 예방하는 기능이 있는 보편적 복지 정책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 빈곤층만을 '선별적'으로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이야기는 단기적인 대증 요법이 되기 십상이다.

둘째,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필연적으로 빈곤층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집중적' 지원의 본래 생각과는 반대로 빈곤의 예방과 완화에 투입되는 자원의 총량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1960년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에서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다.

현재 미국에서 '복지'(welfare)라는 단어는 마약에 중독된 흑인과 무책임하게 아이만 낳는 한모가구 등 일부 빈곤층만 수급 받는 '공공부조'와 같은 개념으로 매우 수치스러운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미국인의 심성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납세자와 수혜자가 명백하게 분리되는 시스템 하에서 납세자의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Skocpol, 1990).

아무리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라고 해도 그것은 임의적이고 일시적인 자선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 누군가의 지속적인 세금부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는 매년 7조 원이 넘는 예산이 조세에서 충당되고 있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제도가 발달하지 않은 조건에서 납세자는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여사보험에 가입하거나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려 할 것이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세금부담을 줄여 개인적으로 각종 위험에 대처하길 바란다.

그런데 적지 않은 세금부담을 짊어지는 중산층 납세자들은 공공부조와 같은 '선별적' 복지제도를 통해 이득 볼 게 없다. 따라서 선별적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가 낮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래도 전체 인구에 비해 선별적 복지제도의 수혜자들 가운데 한부모, 소수인종, 장기실업자들의 일부 집단이 과대 대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선별적 복지'에 대한 인식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선별적인 복지제도를 강조하는 국가의 복지 총량(사회보험, 공공부조, 복지서비스 등에 투여되는 자원의 총량)은 보편적인 복지제도가 발달한 국가의 복지 총량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오히려 빈곤층이 향유할 수 있는 자원도 적어지는 '재분배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Korpi and Palme, 1998).

빈곤을 예방·완화하기 위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과제

현재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5% 수준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 권에 속한다.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적 빈곤율'도 약간의 등락에도 불구하고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거칠게 추산하면 약 500만 명이 절대빈곤, 약 750만 명이 상대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그리고 상식과는 달리 소득이 아니라 자산을 기준으로 측정한 빈곤율은 더 높게 나타난다(남상호, 2007, 2011).

빈곤의 예방과 완화가 복지국가의 일차적 과제라 한다면, 이는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이다. 그렇다면 빈곤을 예방·완화하는 데 있어 역동적 복지국가가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주로 세대별 빈곤 위험의 전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현재 빈곤이 가장 심각한 집단은 노인이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이 늘어나고 고용상황이 악화되면서 자녀의 용돈에 의지하던 노인세대의 빈곤율이 급상승했다. 외환위기 극복 이후에도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열악한 상황은 개선되지 못 하고 공적 지원의 확대는 사적 이전의 감소에 상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현재의 근로연령세대 역시 상당수는 노인세대가 되어 빈곤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근로연령세대 인구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또, 120개월의 기여기간을 충족해도 납부액이 적어 충분한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도 빈곤율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은 근로연령세대의 빈곤위험과 노인세대의 빈곤위험이 악순환하는 데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급속한 노령화와 연금재정의 팽창 때문에 사후적 소득보장만으로 대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빈곤을 예방·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의 내실화와 함께 빈곤을 예방하는 사전적인 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는 여성의 고용률 제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강화,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제시하고자 한다.

일-가정 양립 정책을 통해 여성의 고용율을 높여야

첫째,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지금도 근로연령세대 가구의 빈곤을 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고용률은 OECD 국가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 하고 있다( 참조). 25~54세 여성의 고용률이 특히 낮은 것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성이 충분히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 가구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여성의 노후준비를 어렵게 만들어 노인빈곤의 가능성을 높인다. 현재 베이비부머(1955~1963년 생) 여성 374만 1천 명 가운데 10년 이상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이는 불과 49만 명(12.8%)에 불과하다. 그리고 1~9년 납부자가 176만 5천 명(47.2%), 그리고 납부 이력이 전혀 없는 인구가 149만 6천명(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베이비부머 남성의 54.3%, 34.8%, 10.9%와 대조적이다(국민연금공단, 2011).

그런데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7년이나 더 살고, 부부 연령차가 보통 3~4년이므로 평균 10년을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계속해서 이와 같은 여성의 '낮은 고용률-낮은 국민연금 가입률'이 지속된다면 노인 가구, 특히 그 중에서도 홀몸여성노인의 빈곤위험이 매우 높게 지속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더 많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무상보육과 같은 일-가정 양립 정책들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중요한 이유

둘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란 실업에 처한 이들이 괜찮은 일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 훈련, 취업알선 및 구직급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OECD, 2011). 그런데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교육·훈련을 경험한 이의 비율은 18.9%에 지나지 않았고, 평균 교육훈련 시간은 5.3 시간에 불과했다(김유선, 2011:96).

고용의 불안정과 저임금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교육·훈련이 필요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교육·훈련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자기 계발조차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세 자영업자 가운데 사업 정리 후 취업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조사 대상자 가운데 34.2%가 취업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전체 조사 대상자 가운데 66.8%가 정부의 교육 지원 정책이 존재하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중소기업청, 2010).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근로연령세대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은 노후의 창업 또는 유급노동 참여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통한 빈곤의 예방과 완화

셋째,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는 근로능력이 미약한 근로연령 인구와 재고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ㆍ고령 인구에게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원을 제공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2009년 현재 사회적 기업에 취업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각각 132만 원과 93만 원이다(이정봉, 2010). 이는 전체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 255만원, 120만원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지만, 1인 기준의 국민연금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의 평균 급여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의 제공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의 제공,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은 업무처리 능력의 향상, 대인관계의 향상 등 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사후적 소득보장정책에 비해 큰 장점을 가진다. 또한 사회적 기업은 총사업비의 약 65%를 자체 매출액으로, 약 28%를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2008년 기준)하므로 전적으로 정부의 조세에 의지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비해 재정 부담이 덜하고 납세자와의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장점을 가진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을 단지 한시적인 일자리 제공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관련 예산은 2009년 1,885억 원에서 2010년 1,487억 원으로 줄어들었다가 2011년 1,615억 원, 2012년 1,760억 원으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또, 현재 정부의 사회적 기업 정책은 지나치게 자립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재정 지원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두고 추진되어 사전적·예방적 빈곤정책으로서의 목적은 제대로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규창업 사업체의 절반이 3년 이내에 문을 닫고, 3분의 2가 5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사회적 기업이 본연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물론, 이상의 대안들은 소득보장에 치중한 것이다. 주거·의료·교육 등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적절히 향유하는 데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면 사전적·사후적 소득보장을 아무리 충실히 한다고 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다. 이는 다시 보편적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모든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의 확보가 필요할 것이다.

즉, 빈곤의 예방과 완화를 위해서는 혜택을 받는 대상자를 줄여 예산을 절감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 예산 조정과 감세의 원상복구,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점진적 증세를 통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구가 삶의 과정에 닥치게 될 사회적 위험을 성공적으로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서재욱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연구원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보수 언론의 본심 "가난하면 병들어 죽어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11일자 기사 '보수 언론의 본심 "가난하면 병들어 죽어라!"'를 퍼왔습니다.
[서리풀 논평]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어야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어야

2010년 현재 빈곤층은 340만 명에 이른다. 최근 국무총리실이 발표한 2010년 빈곤 실태 조사결과가 그렇다. 이 숫자마저 실제보다 적게 잡힌 것이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퍼센트에 속하는 이른바 차상위 계층을 포함하면 빈곤층 규모는 570만 명으로 늘어난다. 열 사람에 하나 꼴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그래서 가난은 아직도 아주 가까운 문제다.

현실은 상대적 빈곤이니 절대적 빈곤이니 하는 개념 구분을 무색하게 한다. 건강과 의료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만성 질환자가 있는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가 22.4퍼센트인 반면, 기초 수급 가구는 63.8퍼센트 차상위 가구는 58.3퍼센트로 비빈곤 가구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의료비가 부담된다는 가구 비율도 마찬가지다. 전체 가구는 33.1퍼센트였으나, 기초 수급 가구는 45.5퍼센트, 차상위 가구는 52.7퍼센트가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비수급 빈곤층은 11.8퍼센트가 치료를 중도에 포기한 경험이 있었고, 포기한 이유 중 90.9퍼센트가 치료비 부담 때문이었다((한국일보) 2012년 6월 5일자).

사실 이런 조사 결과는 놀랍거나 예상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는 자화자찬이 이어졌지만, 가난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한 단면임을 누구나 안다. 어느 정도 건강 보장 제도가 갖추어졌다지만, 중산층에게도 의료비는 부담스럽다.

익숙한 가난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낯익다. 2012년 제2차 사회보장심의위원회에서 확인된 핵심 전략은 변함없이 대상을 분리하고 개인화한다는 것이다. 다만, 빈곤층을 다시 나눠 차상위와 기초 수급자를 대비시키는 것이 좀 달라졌다. 더 '세분화'했다고나 할까.

분리와 개인화는 우리 사회 기득권층이 가난을 이해하는 방식과 맞물려 있다. 아니나 다를까, 빈곤층 소득이 역진적이고((한국경제)의 제목에는 소득 역전 앞에 "황당한"이라는 표현이 붙었다), 모든 혜택은 수급자가 '독식'한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다시 봐도, 차상위도 어려우니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찾을 수 없다. 기초 수급자가 혜택을 독차지하고, 한번 수급자가 되면 무슨 수를 쓰든 유지하려고 하며, 광범위한 '도덕적 해이'가 의심된다는 것이 논지의 핵심을 차지했다.

압권은 한 신문의 제목이다. "공짜 복지에 '빈곤 역전'"을 1면에 가장 큰 제목으로 뽑았다((세계일보) 2012년 6월 5일자). 공짜 복지라니, 막상 기사 본문에는 저소득층에 돈을 지원하는 정책의 결과가 소득 역전이란다. 빈곤층을 일하도록 만들어야지 돈을 지원하면 공짜 심리가 생긴다는 소박한(?) 그러나 본심을 드러낸 진단이리라.

내놓고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정책을 마련한 것 같다. 물론 비수급 빈곤층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것도 과제에 들어있다. 하지만, 여기에는–너무나 익숙한 표현으로–우선순위와 재정 영향을 고려하여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보다는 대상자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뜻이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정부문서를 읽을 때처럼 숨은 뜻을 해석할 필요도 없이 아예 명확하게 밝혀 놓았다. 기초 수급자에 집중된 부문별 복지 혜택을 차상위 계층으로 조정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이 문제만큼은 정책도 일관성을 보인다. 의료 급여 대상자에게 새로 본인 부담금을 물리는 것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집중된 혜택을 차상위 계층으로 조정한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빈곤도 의료 급여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실태 조사 결과가 보여 주듯, 기초 수급자는 일부 혜택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말이 그렇지 조정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그나마 이들이 받는 혜택을 조정하자고 하면, 기초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든, 의료 급여 대상자는 확대하는 것이 맞다. 혜택의 수준이나 본인 부담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람들은 '도덕적 해이'를 말하지만, 공짜 복지와 '복지 병'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주장이다.

인도적이고 정의에 부합하는 안전망의 원리는 비록 열 사람이 낭비를 한다 한들 꼭 필요한 한 사람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낭비한다고 몰아세우는 것은 의도가 의심스러운 근거 없는 주장에 가깝다. 심지어 낭비를 인정하는 경우라도 의료 급여 수급자가 모두 책임질 일은 아니다.

또 한 가지, 의료 급여는 가난한 사람이 공짜로 병원에 갈 수 있게 해주는 단순한 제도라고 할 수 없다. 건강과 의료는 가난과 밀접하고, 그래서 의료 급여는 빈곤 예방과 빈곤 탈출에 연결되어 있다.

건강이 나빠지면 새로 가난해지거나 가난이 더 심해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난하면 건강이 나빠진다는 것도 정설이다.

이런 건강과 가난의 고리는 당대에 그치지 않고 대를 이어 계속된다. 부모가 가난한 집아이는 대체로 건강이 더 나쁘고, 그 결과 교육과 기술 습득이 부진한 경우가 많다. 성인이 된 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가난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이들의 건강 역시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가난-건강-교육-노동-가난의 고리로 이어지고 되풀이되는 '사회적 유전'을 피하기 어렵다.

가난이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제대로 된 복지이고 사회 정책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 요소인 의료 급여 역시 가난과 건강의 사회적 유전을 예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료급여가 지향해야 할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가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고, 또한 충분한 수준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대상 범위를 모든 빈곤 인구로 확대하고, 있던 본인 부담도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덧붙이는 말. 의료 급여가 가난을 예방하거나 가난에서 탈출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제대로 분석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의료 급여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기초생활보장제도 전체가 빈곤의 심화를 예방하거나 빈곤에서 탈출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참고 자료

국무총리실. 2012년 제2차 사회보장심의위원회 보도자료. 2012년 6월 4일. (☞바로 보기)

 /시민건강증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