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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일 월요일

복지부, 자살 막자고 전 국민을 정신병 환자로?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02일자 기사 '복지부, 자살 막자고 전 국민을 정신병 환자로?'를 퍼왔습니다.
[서리풀 논평] 잘못 짚은 정신건강 종합 대책

잘못 짚은 정신 건강 종합 대책

얼리어 글리슨(Aliah Gleason)은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 사는 열세 살의 중학교 2학년 여학생. 특이한 점은 없었지만 말이 험하고 지나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한 번은 콧수염이 많은 여선생을 남자라고 대놓고 놀린 적도 있었다.

부모가 보기에도 그리 두드러진 점이 없었다. 활달하고 명랑하지만 잘 대들고 우스꽝스러운 짓을 자주 하는 애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달랐다. '반항성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특별 교육 대상으로 분류했다.

2003년 문제가 불거졌는데, 마침 텍사스 주가 실시한 정신 건강 검진에서 얼리어가 자살성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추가 검사와 재검사가 진행되었고,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었고 아홉 달이나 치료를 받았다.

의무 기록과 재판 기록을 보면 얼리어의 말은 오락가락했고 입원한 후에 정신 질환 진단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이 사건을 자세히 추적한 의 기자 워터스는 얼리어에게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는지 아직도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얼리어 글리슨 사건은 언론의 보도를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고, 학회에서 정신 건강 검진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나타내는 사례로 보고되기도 했다. 무차별적인 정신 건강 검진이 거대 제약회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 사례는 분명 예외적인 것이고 극단에 속한다. 얼리어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신할 수 없고, 검진을 한다고 해서 모두 이런 식으로 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정신 질환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경계의 모호함(건강과 질병을 나누는)'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 건강 검진이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실제 치료가 필요한 대상자를 잘 가려낼 수 있는가도 문제지만, 발견된 후에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사실 정신 건강의 경계성 자체가 검진의 유용성을 의심케 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demandstudios.com

지난 6월 25일 보건복지부가 정신 건강 증진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거론되던 정책을 모두 모아놓은 것 같은, 그런 의미에서 종합 대책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여럿 중에서도 핵심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 검진을 실시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책을 보도한 언론 역시 검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정부의 이 계획은 좋게 말하자면 의욕이 넘치지만, 한편으로는 무모해 보인다.

정부가 계획한 대로라면, 여든까지 산다고 할 때 정신 건강 검진만 열여덟 번 받게 된다. 취학 전 두 번, 초등학교 두 번, 중학교와 고등학교 각 한 번씩, 20대에 세 번, 그리고 30대 이후 연령대별로 각 두 번씩 검진을 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신문의 표현대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검사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이처럼 많이 그리고 철저하게 하겠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 몇 개 주에서 소아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 검진을 한다고 하지만, 이들 집단조차 정신 건강 검진을 하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는지 논란이 크다. 환자를 발견한다는 의미에서 순전히 의학적인 면만 보더라도 그렇다.

차별과 오명 등 사회적 효과까지 고려하면 집단 정신 건강 검진은 증명되지 않은 '실험'의 차원을 넘지 못한다. 더구나 온 국민을 모두 검진하겠다는 것은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사실 정신 건강 증진 대책의 진짜 문제점은 개별 정책이 아니라 정책의 틀이다. 대책 전체가 정신 건강을 개인의 과제로 돌리는 '개인주의' 패러다임, 상담이나 약물과 같은 치료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료' 패러다임, 그리고 근원이 아니라 현상을 문제 삼는 '결과'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정신 건강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생소하지는 않다.

쉽게,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정리한 정신 건강 대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자(☞바로 보기). 세계보건기구는 정신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이 매우 복합적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사회적, 심리적, 생물학적 요인이 모두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사회 경제적 압력(예를 들면 빈곤)이 개인이나 집단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매우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급격한 사회 변화, 스트레스가 많은 노동 환경, 성차별, 사회적 배제,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 폭력, 신체적 질병, 인권 침해 역시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이런 위험 요인들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정부의 종합 대책 어디에도 이런 시각은 찾기 힘들다. 진단이 부분을 벗어나지 못하니 대책이 정말 '종합'일 리가 없다.

정신 건강을 증진하는 것은 보건의료 이외에도 경제, 교육, 노동, 법률, 교통, 환경, 주택, 복지 분야와 협력할 때 가능하다. 특히 기본적인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 경제 문화적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높은 수준의 정신 건강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본적 구조의 개혁보다 당장의 대책을 아쉬워하는 보건 당국의 어려움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힘없는 부처라 '화끈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사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구하는 기본 원리가 허술하면 정책은 미봉책과 전시행정의 차원에 머물 뿐이다. 농업과 농촌, 농민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설문지와 상담을 통해 농민의 자살이 줄어들 수 있을까.

어떤 지표로 보거나 한국인의 정신 건강이 심각한 위기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진단과 처방이 잘못되면 위기는 더욱 심화된다. 조급하다고 단편적인 해결책이 통할 리 없다.

개인주의-의료-결과 패러다임을 모델로 삼아서는 이 위기를 넘기 어렵다. 사회 경제적 요인을 중심에 놓고 여러 부문이 함께 협력하는 전략이라야 한다. 문제의 뿌리를 향한 '구조적 통합 패러다임'이라야 해결책이 나온다.

참고 자료

Waters, Rob. Medicating Aliah. . 2005년 5/6월호.

 /시민건강증진연구소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보수 언론의 본심 "가난하면 병들어 죽어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11일자 기사 '보수 언론의 본심 "가난하면 병들어 죽어라!"'를 퍼왔습니다.
[서리풀 논평]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어야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어야

2010년 현재 빈곤층은 340만 명에 이른다. 최근 국무총리실이 발표한 2010년 빈곤 실태 조사결과가 그렇다. 이 숫자마저 실제보다 적게 잡힌 것이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퍼센트에 속하는 이른바 차상위 계층을 포함하면 빈곤층 규모는 570만 명으로 늘어난다. 열 사람에 하나 꼴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그래서 가난은 아직도 아주 가까운 문제다.

현실은 상대적 빈곤이니 절대적 빈곤이니 하는 개념 구분을 무색하게 한다. 건강과 의료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만성 질환자가 있는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가 22.4퍼센트인 반면, 기초 수급 가구는 63.8퍼센트 차상위 가구는 58.3퍼센트로 비빈곤 가구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의료비가 부담된다는 가구 비율도 마찬가지다. 전체 가구는 33.1퍼센트였으나, 기초 수급 가구는 45.5퍼센트, 차상위 가구는 52.7퍼센트가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비수급 빈곤층은 11.8퍼센트가 치료를 중도에 포기한 경험이 있었고, 포기한 이유 중 90.9퍼센트가 치료비 부담 때문이었다((한국일보) 2012년 6월 5일자).

사실 이런 조사 결과는 놀랍거나 예상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는 자화자찬이 이어졌지만, 가난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한 단면임을 누구나 안다. 어느 정도 건강 보장 제도가 갖추어졌다지만, 중산층에게도 의료비는 부담스럽다.

익숙한 가난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낯익다. 2012년 제2차 사회보장심의위원회에서 확인된 핵심 전략은 변함없이 대상을 분리하고 개인화한다는 것이다. 다만, 빈곤층을 다시 나눠 차상위와 기초 수급자를 대비시키는 것이 좀 달라졌다. 더 '세분화'했다고나 할까.

분리와 개인화는 우리 사회 기득권층이 가난을 이해하는 방식과 맞물려 있다. 아니나 다를까, 빈곤층 소득이 역진적이고((한국경제)의 제목에는 소득 역전 앞에 "황당한"이라는 표현이 붙었다), 모든 혜택은 수급자가 '독식'한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다시 봐도, 차상위도 어려우니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찾을 수 없다. 기초 수급자가 혜택을 독차지하고, 한번 수급자가 되면 무슨 수를 쓰든 유지하려고 하며, 광범위한 '도덕적 해이'가 의심된다는 것이 논지의 핵심을 차지했다.

압권은 한 신문의 제목이다. "공짜 복지에 '빈곤 역전'"을 1면에 가장 큰 제목으로 뽑았다((세계일보) 2012년 6월 5일자). 공짜 복지라니, 막상 기사 본문에는 저소득층에 돈을 지원하는 정책의 결과가 소득 역전이란다. 빈곤층을 일하도록 만들어야지 돈을 지원하면 공짜 심리가 생긴다는 소박한(?) 그러나 본심을 드러낸 진단이리라.

내놓고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정책을 마련한 것 같다. 물론 비수급 빈곤층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것도 과제에 들어있다. 하지만, 여기에는–너무나 익숙한 표현으로–우선순위와 재정 영향을 고려하여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보다는 대상자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뜻이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정부문서를 읽을 때처럼 숨은 뜻을 해석할 필요도 없이 아예 명확하게 밝혀 놓았다. 기초 수급자에 집중된 부문별 복지 혜택을 차상위 계층으로 조정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이 문제만큼은 정책도 일관성을 보인다. 의료 급여 대상자에게 새로 본인 부담금을 물리는 것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집중된 혜택을 차상위 계층으로 조정한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빈곤도 의료 급여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실태 조사 결과가 보여 주듯, 기초 수급자는 일부 혜택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말이 그렇지 조정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그나마 이들이 받는 혜택을 조정하자고 하면, 기초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든, 의료 급여 대상자는 확대하는 것이 맞다. 혜택의 수준이나 본인 부담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람들은 '도덕적 해이'를 말하지만, 공짜 복지와 '복지 병'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주장이다.

인도적이고 정의에 부합하는 안전망의 원리는 비록 열 사람이 낭비를 한다 한들 꼭 필요한 한 사람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낭비한다고 몰아세우는 것은 의도가 의심스러운 근거 없는 주장에 가깝다. 심지어 낭비를 인정하는 경우라도 의료 급여 수급자가 모두 책임질 일은 아니다.

또 한 가지, 의료 급여는 가난한 사람이 공짜로 병원에 갈 수 있게 해주는 단순한 제도라고 할 수 없다. 건강과 의료는 가난과 밀접하고, 그래서 의료 급여는 빈곤 예방과 빈곤 탈출에 연결되어 있다.

건강이 나빠지면 새로 가난해지거나 가난이 더 심해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난하면 건강이 나빠진다는 것도 정설이다.

이런 건강과 가난의 고리는 당대에 그치지 않고 대를 이어 계속된다. 부모가 가난한 집아이는 대체로 건강이 더 나쁘고, 그 결과 교육과 기술 습득이 부진한 경우가 많다. 성인이 된 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가난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이들의 건강 역시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가난-건강-교육-노동-가난의 고리로 이어지고 되풀이되는 '사회적 유전'을 피하기 어렵다.

가난이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제대로 된 복지이고 사회 정책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 요소인 의료 급여 역시 가난과 건강의 사회적 유전을 예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료급여가 지향해야 할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가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고, 또한 충분한 수준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대상 범위를 모든 빈곤 인구로 확대하고, 있던 본인 부담도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덧붙이는 말. 의료 급여가 가난을 예방하거나 가난에서 탈출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제대로 분석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의료 급여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기초생활보장제도 전체가 빈곤의 심화를 예방하거나 빈곤에서 탈출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참고 자료

국무총리실. 2012년 제2차 사회보장심의위원회 보도자료. 2012년 6월 4일. (☞바로 보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항암제'와 '노인 틀니', 무엇이 더 시급한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9일자 기사 ''항암제'와 '노인 틀니', 무엇이 더 시급한가?'[서리풀 논평] 보건의료 정책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을 퍼왔습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보건의료 정책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1985년 미국 오리건 주는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지원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의료 급여와 비슷하다)가 재정 위기에 빠지자 장기 이식을 급여 항목에서 제외했다. 이 조치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일곱 살 먹은 백혈병 환자가 한국 돈으로 1억 원이 넘는 수술 비용을 마련하려고 모금 운동을 하는 중 사망하자 논란은 더욱 커졌다.

주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정은 한도가 있는데 어떤 병을 가진 사람이 우선 대상자가 되어야 하는지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비싸지만 극소수의 환자는 확실하게 낫게 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인가, 싸고 흔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서비스가 우선인가.

이런 논란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예컨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올리자는 데는 이론이 없지만, 노인 틀니가 먼저인지 새로 나온 초고가의 항암제가 우선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오리건 주는 이런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길을 택했다. 주 의회의 상원의장이던 존 키츠해버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제안한다. 미리 기준을 정해놓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순서대로 진료 항목을 명시적으로 정해놓자는 것이었다(입법화).

당시까지 이런 방법은 전례가 없는 획기적인 것이었고, 그 때문에 여러 찬반 의견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현재까지도 의의와 한계를 두고 연구와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이 제도는 보건 정책 분야에서는 이른바 '오리건 실험(Oregon Experiment)'이라 불린다.

오리건 실험이 법으로 만들어지고 실제 적용되는 길은 매우 멀고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정책이 만들어지는 기술적이고 실무적인 과정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이 과정에서 보통의 시민들이 가진 시각과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대중들은 세 가지 방식을 통해 정책 결정에 참여했다. 정책을 수립하는 책임을 맡았던위원회는 모두 열한 차례의 공청회를 열었고, 의료인과 시민단체 대표를 비롯하여 정책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었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방식인 지역 사회 토론회도 마흔일곱 번이나 열렸다. 주민들이 어떤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지 알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일부 주민만 참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자 한계였다. 주최 측은 일반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것을 기대했으나 참석자의 약 70퍼센트는 의료 관계자였다. 가난한 사람은 거의 없고 여유 있는 계층이 많았던 것도 문제였다. 토론회에서는 정책을 주민에게 소개하고 소집단별로 토론한 다음 토론 결과를 발표하게 했다.

세 번째 참여 방식은 주민 여론 조사이다. 전체 주민을 무작위로 뽑아 스물아홉 가지 건강 상태를 두고 무엇이 중요한지 주민의 판단을 물었다.

전체 방식은 매우 복잡하지만, 주민이 낸 의견만 가지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가의 판단과 객관적인 데이터도 중요한 기준이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낸 의견의 비중은 처음보다 더욱 줄었는데, 1차 결과를 두고 거센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치통, 두통, 요통 같은 가벼운 병이 간 이식이나 골수 이식보다 더 우선순위가 높게 나온 것이 비판을 받은 핵심 이유였다. 결국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초안을 고쳤다.

오리건 실험 이후, 일반 시민이 보건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익숙한 주장이 되었다. 물론, 오리건 사례에서 보듯이 보건 정책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문성과 효율성의 문제가 가로막고 있고,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 결과(건강이나 의료 혜택)가 좋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결과주의' 역시 우리 속의 방해물이다.

그러나 정책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좋은 삶을 위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하물며, 심화된 민주주의를 통해 더 좋은 정책이라는 결과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한국의 정책에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보건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뉴시스

비교적 최근에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을 빚고 있는 두 가지 정책이 있다. 하나는 올해 4월부터 시행된 의원급 만성 질환 관리 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7월부터 시행하려고 하는 일부 질환의 포괄 수가 제도이다. 정부는 정책이 필요한 근거를 제시하고, 의료계는 정책이 가져올 부작용이나 부정적 결과를 근거삼아 반대한다. 갈등의 양상이 사뭇 격렬해서 의료대란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전에도 그랬지만, 찬성이든 반대든 늘 등장하는 명분이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국민은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다. 역설이자 부조리지만, 이 역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거창한 이름을 가진 여러 위원회나 공청회에 소비자, 시민 대표가 참여하고 발언하지만, 아무래도 요식 행위 또는 합리화 과정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나마 이번 정부 들어서는 그조차 귀찮은 듯 대폭 생략하거나 줄이는 일이 흔하다. 보건의료 정책은 전문성이 강하다는 것을 핑계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만성 질환 관리제나 포괄 수가제가 시행되면 일차적으로 영향을 받는 집단은 일반 대중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심각하게 다투는 것을 보더라도, 재정이든 의료 이용이든 그 영향이 작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당사자의 목소리는 아주 작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도 찾기 어렵다.

그 결과, 당사자의 이해충돌과, 그 이해를 조정하고 무마하려는 정책만 두드러져 보인다.

이제 보건의료 정책에도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형식적인 공청회나 전문가가 대신 참여하는 위원회,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요식 행위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대중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공공성'에 기초한 정책 결정과 집행이 필요하다.

참고 자료

Caitlin J. Halligan. "Just What The Doctor Ordered : Oregon's Medicaid Rationing Process and Public Participation In Risk Regulation". Georgetown Law Journal, 83, 1994-1995.



/시민건강증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