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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8일 화요일

삼성그룹 하룻새 시가총액 15조원 증발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8-27일자 기사 '삼성그룹 하룻새 시가총액 15조원 증발'를 퍼왔습니다.

증권가 당분간 주가하락 예상

미국에서 열린 특허 침해 소송에서 애플에 패소한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그룹 계열사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27일 하루 동안 삼성전자와 삼성 계열사들의 시가총액은 15조원 넘게 증발했다.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9만5000원(7.45%) 하락한 118만원으로 마감했다. 이날 주가 하락으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73조원으로 14조원 줄었다.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삼성전자의 주가가 하락하자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전기전자(IT) 업종 지수도 5% 넘게 내렸다. 삼성전자 우선주는 이날 7.17% 내려 69만9000원에 마감했다.삼성 계열사 주가도 줄줄이 하락했다. 전기전자 분야 계열사들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삼성전기가 6.41%, 삼성테크윈 2.07%, 삼성에스디아이(SDI)는 1.74% 하락했다. 한국거래소 집계를 보면, 이날 삼성전자를 포함해 삼성그룹 상장 계열사 17곳의 시가총액(우선주 포함)은 15조2000억원 가량 줄었다.증권가에서는 당분간 삼성전자의 주가 하락은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다. 배상액이 우리돈으로 1조원을 웃도는데다 앞으로 일정에 따라 추가적인 배상 가능성이 있고 휴대폰 판매 금지 조처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이와 달리 특허 소송 패소만으로는 주가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신영증권 임돌이 연구원은 “지루한 소송이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과거에도 소송가액이 큰 법률적 다툼에 주가가 크게 출렁이지는 않았다”며 “스마트폰 새상품 출시 주기가 짧기 때문에 소송 패소에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한편, 이날 엘지(LG)전자는 직전 거래일보다 2.83% 오르며 3거래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또 애플 제품에 부품을 공급하는 엘지(LG)디스플레이도 4.26% 올라 ‘적의 적은 동지’임을 보여줬다.

권은중 기자details@hani.co.kr

2012년 6월 20일 수요일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20일자 기사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을 퍼왔습니다.
[강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네 번째

최근 경제민주화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주요 주제는 재벌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최하는 "정승일/이종태/장하준과 함께하는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의 네 번째 강연은 논쟁의 주제가 되는 재벌개혁에 대한 내용이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의 공동 저자인 정승일 박사가 강연하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에 관한 강의가 지난 6월 11일에 있었다. 강의 내용도 제목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다.

재벌개혁 - 죽 쒀서 개주면 안 된다

재벌개혁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논의되어온 주제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재벌 위주로 돌아간다는 방증일 것이다. 특히 재벌 가족들의 편법 상속이나 재벌그룹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같은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재벌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근의 중론이다.

문제는 재벌개혁이 잘못 진행될 경우 '아니함만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마구잡이 재벌개혁은 자칫 우리나라 최대기업들의 소유지배 구조를 뒤흔들어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와 투기자본들만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 잘못된 방향의 재벌개혁이 자칫 '죽 써서 개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11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로 정승일 박사가 강의하는 '한국경제와 복지국가' 네 번째 강연이 '재벌개혁'을 주제로 열렸다. 이번 강연에서 정 박사는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와 정승일 박사, 이종태 기자의 이라는 책의 내용에 대한 해설과 함께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수십 가지 방법

정 박사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1주일 전에 이병천 교수가 (프레시안) 지상에서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는 제목의 긴 글을 쓴 것에 대해 "재미있는 제목의 글을 쓰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전에 이병천 교수에 대해 장하준 교수와 정 박사가 '재벌가문(총수 일가)과 재벌그룹(제도)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반박하자, 이병천 교수는 재벌이라는 것은 재벌 총수가문과 재벌 그룹 기업들이 한 몸으로 엮인 것이므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재벌 총수를 재벌그룹으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재반박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정 박사는 자신이 재벌 옹호론자가 아님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으므로 이를 중언부언하지 않겠다면서, 이번에는 작정한 듯이 구체적으로 재벌 기업 집단과 재벌 총수 일가를 구분해서 개혁을 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파산한 대우그룹은 왜 그룹 체제를 해체해야 했나?

정 박사는 이병천 교수의 글 제목을 얘기하면서, "재벌 총수를 재벌 그룹으로부터 구별하여, 실효적으로 떼어놓는 데는 수십 가지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재벌그룹이 파산할 경우 당연히 재벌가족을 재벌그룹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재벌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통념이 강했다. 하지만 IMF 사태와 그에 따른 재벌개혁 과정에서 많은 재벌그룹들이 파산하고 해체되었다. 정 박사는 "1997년 이전에는 흔히 30대 재벌그룹을 말했다. 그렇지만 그 30대 재벌그룹 중 1/3이 그 이후 해체되었다. 실질적으로 온전히 생존하여 재벌그룹 형태를 유지한 것은 과거 30대 그룹 중 1/3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30대 재벌이 아니라 10대 재벌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어 통합진보당이 실질적인 재벌해체를 지난 3월 공약으로 제시한 데 대해서도 "재벌해체가 별로 진보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30대 재벌그룹 중 1/3가량이 해체되고 1/3가량은 형체만 남은 1998년 이후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는지 잘 생각해보면 된다"고 충고했다. 재벌해체의 결과 대우자동차가 GM에 매각되고 쌍용차는 상하이차에 매각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또한 딤채 냉장고를 만드는 위니아만도(과거 한라그룹)와 오리온전기(과거 대우그룹)는 투기적인 영미계 사모펀드에 팔려 조각조각 해체되어 청산되었거나 지금도 그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재벌 해체론자들이 원하는 것이 이렇게 재벌 기업들이 해체되어 산산조각 나서 외국에 매각되거나, 본래 기업이 가지고 있던 가치와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인지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고 한다.

정승일 박사는 "대우그룹, 쌍용그룹, 해태그룹 등이 부도난 후 채권은행들이 그 그룹 및 계열사들의 주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병천 교수의 표현 그대로, 재벌그룹으로부터 재벌총수 및 그 가족들이 생이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병천 교수 역시 그룹 체제가 갖는 장점은 인정한다고 한다. 단독의 독립 대기업 체제보다는 대기업들로 구성된 그룹경영 체제가 선진국 추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정 박사는 "채권은행들이 재벌 가족을 대신하여 그 그룹들의 대주주 노릇을 하면 된다. 그런데 왜 그것이 안 되는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금산 분리(은산 분리)와 은행의 산업자본 대주주 역할 금지

그러고 보니 그렇다. 왜 안 된다는 건가? 정 박사는 대우그룹의 예를 계속 들었다. 대우그룹의 경우 먼저 1단계에서 채권은행단을 대표하는 당시 산업은행과 제일은행이 대주주가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이다. 채권은행들은 대우그룹이 거느리던 계열사들을 하나둘씩 매각하기 시작하였다. 왜 제일은행이나 산업은행 같은 은행들은 재벌그룹의 대주주 역할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면 안 되는 걸까?

정 박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알려면 이른바 '금산 분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 분리의 역사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정부는 대공황의 원인으로 지적된 모건(Morgan) 은행에 철퇴를 내리는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상업은행은 일반기업(산업자본)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일반기업의 부실화 위험이 그대로 은행의 부실화 위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어벽 설치 차원에서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은산 분리(은행-산업자본 분리)는 매우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조치가 아니었을까?

정 박사는 이에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당시 스위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은 미국의 조치를 따르지 않았다. 예컨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경제위기 속에서 독일의 다임러와 벤츠 자동차가 파산하였고 도이체방크라고 하는 채권 은행이 이들 회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당시 무수히 많은 독일 기업들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도이체방크는 다임러-벤츠의 대주주 역할을 회사가 정상된 이후에도 계속 수행하였다. 그 이후 70년간 계속 수행했으며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다임러 그룹은 한국 재벌그룹처럼 대기업 그룹으로 성장해서, 자동차 사업만 한 것이 아니라 항공과 IT, 철도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다양한 계열사들도 가지고 있었다.

독일만이 아니라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도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은행들이 은산 분리 원칙이 매우 엄격한 미국에 비해 더 금융위기(은행위기)를 겪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금산 분리(은산 분리)라는 원칙이 지고지순의 절대 원리가 아니라는 증거다.

정 박사는 "글래스-스티걸 법과 같은 엄격한 은산 분리 원칙을 지키는 선진국은 미국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세력조차 미국식 제도를 우상처럼 숭배한다"고 힐난했다. 한국에는 미국의 글래스-스티걸 법의 원칙이 은행법에 들어와 있고 따라서 시중은행이 비부실 기업(워크아웃 등을 졸업한 정상 기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단,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 특수은행은 예외적으로 대주주 역할을 지속할 수 있다.

개혁 진보적 학자들은 왜 은행의 일반기업 대주주 역할을 반대할까?

그렇다면 한국의 개혁적 진보 세력은 이 문제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할까? 대표적인 진보개혁 경제학자인 김상조 교수는 "은행들이 산업기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이른바 '독일식 은행 자본주의'를 한국에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은행들은 독일·스위스 은행들과 달리 독자적인 기업여신 심사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의 은행들이 독일과 스위스의 은행들과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관치금융의 관행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한국의 진보개혁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한국 시중은행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깔려 있다. 즉 한국의 은행들은 여전히 관치금융의 성격이 강하고 따라서 부실화된 대기업들에 제공되는 구제금융에서도 여전히 관치금융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관치금융을 이유로 은행의 대주주 역할을 거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김상조와 유종일 등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요구한 조급한 은행 민영화와 그 결과인 은행들의 주주자본주의화로 인하여, 은행들에 있어 고객 기업의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평가하는 심사능력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은행이 고객 기업의 대주주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제대로 된 기업통제, 기업감독 역할을 수행하려면 제대로 된 산업전문가와 업종 전문가들이 은행 조직 내에서 조직적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처럼 단기수익성 위주의 주주중시 경영으로 은행들이 운영될 경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정 박사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관치금융 비판과 조급한 은행 민영화 요구야말로 우리 은행들에 있어 기업 대주주 역할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런데 단기수익성 위주의 경영은 모피아 경제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말의 외환금융위기로 정부가 부실은행들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국유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은행 국유화 체제를 영구화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당시 그 '민주정부'들은 은행 민영화에 주력했으며 민영화 가격을 높이기 위해 은행들의 주가 올리기에만 주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국유 은행들조차 부실 재벌그룹들, 예컨대 대우그룹의 대주주 역할을 계속 수행할 의지가 없었다. 단기수익성과 주가 띄우기에 방해가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은행계 지주회사가 재벌그룹의 대주주 역할 –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

그런데, 아무튼 지난 반세기도 넘게 유지되어온 은산 분리 원칙을 갑자기 한국에서 폐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정 박사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은행계 산업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시중 은행들이 보유한 대주주 지분을 그 산업 지주회사에 이전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예컨대 현재 워크아웃에 들어가 있는 건설업체와 조선업체들의 경우, 그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산업 지주회사를 신설하고 그 지주회사를 통해 정상화된 건설사 및 조선사들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때 우리은행이 그 지주회사에 대해 대주주 역할을 하는 데서 발생하는 은산분리 원칙 침해에 대해서는, 은산 분리에 관한 은행법에 예외 조항을 신설하여 은행계 지주회사에 한해 허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경우 그룹 계열사의 부실화 위험이 은행 부실화의 위험으로 전이될 위험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 박사는 "그런 위험 전이의 가능성은 그 중간에 있는 산업 지주회사가 제대로 된 차단벽 역할을 수행하도록 잘 설계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놀라운 것은 스웨덴 최대의 재벌그룹이며 한국 재벌의 개혁방향으로 흔히 거론되는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이 사실상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SEB라고 하는 은행이 설립한 은행계 지주회사(holding company)로 출발한 Investor AB라고 하는 지주회사가 발렌베리 그룹의 핵심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핀란드에도 이런 은행계 기업그룹들이 여러 개 있다고 한다.

재벌가족의 편법 상속 – 국가적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재벌 그룹 계열사들이 부실해져 파산하였을 경우이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우량 재벌그룹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삼성그룹이나 현대기아차 그룹 같은 우량 재벌그룹에서 재벌가족을 그 재벌그룹으로부터 구별하여 떼어놓을 수 있을까?

정 박사는 삼성그룹의 사례를 들면서 "삼성은 누가 보아도 편법적인 방식의 상속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5년경 이건희 회장의 재산이 4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재용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불과 16억 원만을 상속세로 냈다. 현행법상 상속재산의 50%인 2조를 냈어야 했다. 정 박사는 "이런 경우 '재벌과의 타협'은 있을 수 없으며, 이건희 회장은 몇 년간 감옥에 들어가 조용히 반성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 박사는 그렇지만 "만약 이건희 일가가 상속세를 법규대로 50% 납부한다면, 가뜩이나 쥐꼬리만 한 이건희 일가의 대주주 지분은 그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면서, "삼성그룹 전체의 결속력을 유지해온 대주주 지분이 이렇듯 더욱 줄어들게 될 경우, 국내외의 주식투자 펀드들과 투기자본들이 더욱 설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에 대해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그런 문제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시장의 논리'에 맡기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정 박사는 "이때 시장 논리란 바로 주식시장 논리와 M&A 시장 논리를 말한다"고 평했다. 또한 "주식시장과 M&A 시장은 주가 가치 극대화 논리를 따르는 법이며, 따라서 이 경우 삼성그룹을 쪼개고 해체하여 '매각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장 논리가 작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정 박사는 "이 경우 삼성전자 같은 초대형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이 국내 자본에게는 힘에 부치기 때문에 결국은 해외 자본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LG전자가 삼성전자를 인수하는 것 역시 독점 금지에 위배되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박사는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여타 계열사들은 과거 국민의 혈세로 육성한 기업들이다. 왜 이런 소중한 기업들을 해외 자본에 매각하려야 하는가?"라고 아울러 반문했다.

재벌가족의 상속 지분을 국가 소유로 관리하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삼성그룹 해체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의 편법 상속을 지금처럼 방치할 수도 없지 않는가? 이에 정 박사는 재벌가족들의 경영권 상속(대주주 지분 상속)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즉 지금처럼 이건희 일가가 국세청에 현물(주식) 형태로 납부한 상속세를 시중에 매각하여 현금화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그 현물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그 주식지분을 보유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지주회사를 신설하거나 또는 국민연금 특별계정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만약 이런 방안이 전면적으로 실시될 경우, 삼성그룹의 핵심 대주주는 이건희 회장 일가와 함께 국가(민주공화국)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으로부터 부분적이지만 생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재용으로부터 그 후손에게로 다시 상속될 때마다 국가는 상속세로 획득한 지분의 보유를 확대할 것이며, 따라서 언젠가 국가는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가 될 것이다. 즉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생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30대 재벌 특별법을 시행하여 이런 방식의 현물 상속세를 30대 재벌그룹에 적용하게 할 경우, 국가는 앞으로 수십 년 뒤 30대 재벌그룹의 최대 주주로서 그 재벌 그룹들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정 박사의 가설이었다.

정승일 박사는 "이와 같은 방안은 현재의 상속증여세와 여타 법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시행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즉 '국유화'라는 명칭에서 연상되는 엄청나게 급진적인 방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필요한 것은 국가지주회사 또는 국민연금 특별계정에 관한 법을 새로 제정하여 그 기관이 위와 같은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재벌 가족의 상속 지분을 공유재산으로 공익적으로 관리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방안은 대기업 그룹의 점진적 국유화라는 재계의 비난과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그렇다면 다른 방식을 타협안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재벌가족의 상속 지분을 국세청에 납부하지 않고 공익재단에 기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익재단의 지배구조와 운영을 해당 재벌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방식으로, 그야말로 공익적 인사들에 의해 수행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예컨대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는 이건희 가문에서 점진적으로 수십 년에 걸쳐, 그 공익재단으로 이전될 것이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이건희 가문이 점진적으로 생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정 박사에 따르면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이 현재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발렌베리 그룹 소유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최대 주주는 발렌베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그 지주회사의 최대주주는 여러 개의 공익재단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50년 전에 시작된 발렌베리 가문은 그간 5회가 넘는 재산 상속을 했는데, 그때마다 상속세를 납부하는 대신 여러 개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그 재단에 자신들의 상속 지분을 현물로 기부했다.

그 결과 오늘날 공익재단은 발렌베리 가문을 제치고 Investor AB의 최대 주주이다. 물론 그 공익재단의 수익금은 역사와 언어학 등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연구비로 쓰이고 있으며, 발렌베리 가문 일가에는 단 한 푼도 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다. 단, 그러한 기부에 대한 대가로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들은, 그룹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이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가족원들은 Investor AB에서 적은 지분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 경우, 경영 능력이 떨어지는 무능한 후계자들은 그 지주회사의 경영 일선에 CEO로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사장(chair man) 또는 한갓 이사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무능한 재벌 3세, 4세 경영'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정 박사는 아울러 설명했다.

기업집단법을 제정하여 '무책임 황제 경영'을 '책임 황제 경영'으로 바꾸자

마지막으로 정 박사는 한국의 경우 기업집단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정 박사는 "나는 2006년부터 이미 기업집단법의 필요성에 관하고 말하고 써왔으며, 요즘에는 김상조 교수와 정태인 원장 등도 그것에 동의하는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집단법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정 박사는 이미 지주회사(holding company) 체제로 전환한 LG그룹과 그렇지 못한 삼성그룹을 비교했다. "LG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의 최상위에 있는 지주회사인 (주)LG가 상법상 주식회사다"라면서, 따라서 "(주)LG는 상장회사인 까닭에 공시의무도 있고, 감사위원회와 사외이사 선임 의무도 있어 상당 정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삼성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 최상위에 있는 미래전략기획실이 아무런 법적 권위도, 법적 의무도 갖지 않는 임의 조직이다. 정 박사는 "따라서 미래전략기획실은 아무런 공시 의무도 없고, 그것을 감독하고 감시할 이사회도, 감사위원회를 구성할 의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래전략기획실은 투명성이라곤 전혀 없는 일종의 유령 조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에서 총수 황제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기업집단법은 이와 같은 기형적인 현실을 타개하여, 미래전략기획실과 같은 그룹 경영 조직에 아예 상법상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면서 양성화,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장점은 먼저 미래전략기획실로 대표되는 그룹경영 조직을 감시하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상법상 의무화되고 또한 공시 의무도 부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삼성그룹 최상위 조직의 내밀한 활동을 감시하는 장치들이 합법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 결과 삼성그룹의 편법 상속과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 등이 지금에 비해 매우 힘들어진다.

또한 현재의 공정거래법상 재벌규제가 모두 폐지되고 상법상의 재벌 규제로 대체되기 때문에 재벌들의 구명 로비가 매우 힘들어진다. 즉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의 재량권 여지가 많은 행정 규제가 아니라 사법부 판사의 판결에 따르는 상법상 규제로 재벌 규제가 획기적으로 재편되는 까닭에, 재벌 규제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대폭 향상된다는 것이 정승일 박사의 설명이다. 즉 사후적으로 계열사들에서 소액주주와 채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법부에 모기업 또는 미래전략기획실을 소액주주 또는 채권자가 고소·고발하고 그에 대한 판결을 공무원이 아닌 사법부에서 내리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기업집단법이 제정될 경우,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무능한 재벌 3세, 4세는 경영 일선(그룹 CEO)에 나서지 말고, 후선(그룹 이사회 이사장)에 머무르게 하는 '책임 경영'이 명확하게 된다고 아울러 말했다. 즉 지금처럼 이건희 회장이 북치고 장구 치고 자기 마음대로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자신이 삼성그룹의 CEO인지, 삼성그룹의 이사장(chair man)인지 본인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를 지속하는 것보다는, 미래전략실의 최고 경영자(CEO)는 최지성 씨가 맡고 예컨대 이재용은 미래전략실 이사회 이사장(또는 이사)으로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을 법률적으로 명확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업집단법이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 경우 재벌 가족은 재벌 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몇 발짝 물러나는 것이고, 그만큼 재벌가족과 재벌그룹의 생이별이 진행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경제력 집중 축소냐, 집중된 경제력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냐

정 박사의 강연을 들은 일부 청중은 기업집단법에 대하여 "그렇게 되더라도 삼성그룹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차라리 출자총액제한 등의 수단으로 계열사 확대를 저지하는 것이 더 낳은 대안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그렇다. 기업집단법은 재벌그룹의 계열사 확대를 저지하지 않는다"면서, "그렇지만 만약 삼성그룹이 항공산업과 제약산업 같은 미래첨단 제조업 쪽으로 신규 계열사를 만들고 그것의 육성에 전력을 다할 경우, 오히려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성원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항공이나 첨단 소재, 제약 같은 미래 산업의 경우 향후 5년, 10년간 대규모투자가 필요하며 더구나 그 기간 동안 흑자가 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그런 일에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거둔 혈세를 사용하느니, 이왕이면 삼성이나 현대차 같이 이미 돈 많이 벌고 있는 기업그룹들이 대신 해준다면 국민들로서는 얼마나 좋은 일이냐는 것이다.

이 경우 삼성그룹 또는 현대차 그룹으로 경제력이 더 집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집중된 경제력(기업집단)을 사회적·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정승일 박사는 "경제력 집중 그 자체의 긍정성과 효율성까지 약화시키는 장치들(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해)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은행이나 국가, 공익재단과 같은 여타 이해관계자들이 삼성과 현대차 같은 재벌그룹의 대주주 또는 최대주주로서 역할하게 하여 그 집중된 경제력(재벌그룹 권력)을 사회적·민주국가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경제력 집중의 방지·약화'(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한)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상의 내용과 함께 이번 네 번째 강연을 마쳤다. 정 박사의 이번 강연 내용에 따라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재벌개혁에 대한 논쟁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와 복지국가' 다섯 번째 강연은 6월 18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교육실에서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 노동 문제를 가지고 진행될 예정이다.

 /한창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8일자 기사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를 퍼왔습니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

우리가 이렇게 늦게 글을 쓰게 된 이유

우리 세 명이 지난 3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새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로 그 책에 대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프레시안)의 지면을 통해 지난 한 달 동안 정태인 새사연 원장과 이병천 강원대 교수(이하 존칭 생략), 이 두 분이 5차례가 넘는 글을 연재하면서 우리의 견해를 비판하였다.

정태인이 5월 초 '장하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형식을 통해 우리를 비판한 직후 우리는 그에 응답하는 글을 실으려 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그 직후 이병천 교수가 유사한 논지로 우리 책을 비판하는 서평을 계속해서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 분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종합해서 응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우리는 내렸다. 그로 인해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이렇게 늦어지게 되었다. 두 분과 독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 8~10회 정도에 걸쳐 우리의 두 책에 제기된 비판점 중에 재벌개혁과 주주자본주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박정희 체제와 경제민주화, 노동통제와 비정규직문제, 산업정책과 추격·탈추격, FTA 등의 주제에 관하여 연속적으로 글을 실을 계획이다.

우리의 책이 왜 이렇게 많은 비판을 받을까?

우리의 새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후 )는 2005년 발간된 와 마찬가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정책의 배경에 있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 즉 그런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을 '경제민주화'로, '진보적 자유주의'로 묘사하며 찬양했던 개혁진보파 인사들 역시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부키
우리는 두 책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진보 정부 또는 좌파 정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모두에 만연한 - 거대한 착각이라고 썼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일부 진보 인사들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시장개혁을 2013년 체제 하에서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재추진해야 한다고 하는 것 역시 강하게 비판하였다. 하물며 우리는 (선택)의 맨 앞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기본적으로 모두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진해 온 게 사실이에요. 시민들이 이런 측면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안티 이명박'이 노무현 시대로 회귀함을 의미한다면 정말 허무한 일 아닐까요? (...) 우파 신자유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좌파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이를 경제 민주화로 포장하는 일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젠 정말 불판을 갈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닥치고 반MB, 닥치고 반새누리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상황에서 우리처럼 '불판을 갈자'고 외치는 것은 무모함에 가깝다. 우리들에게 "박정희주의자", "재벌옹호론자"라는 욕설이 사방에서 빗발친다. "반MB 경제민주화 전선을 교란시킨다"는 비난도 쇄도한다.

물론 이렇듯 격렬한 욕설과 비난을 동반한 논쟁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개혁진보파를 자임하는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에조차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요소들이 깊이 침투해 있는 경우, 치열하고 격렬한 논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논쟁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정태인, 이병천처럼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지식인들, 그것도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들마저 우리 책에 대해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곡해와 왜곡, 중상비방을 펼치는 것은 정말 당혹스럽다. 예컨대 정태인은 (시사인)(5월 4일자) 인터뷰에서, 우리가 새 책에서 재벌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 말고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재벌 합리화론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뒤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이것은 명백한 왜곡이요 중상비방인데, 그밖에도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는 유사한 왜곡과 중상비방이 수없이 많다. 앞으로 우리는 그러한 왜곡과 중상비방에 대해 지적할 것이며, 또한 앞서 예로 든 '재벌 합리화론'과 같이 너무나 명백한 의도적 왜곡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할 작정이다.

개인·인물과 제도·정책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 있다. 바로 개인(인간)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한국은행 독립성 문제에 대한 논란을 보자. 우리는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전통적으로 한국은행 독립성을 - 그리고 이를 통한 물가통제에 집중하는 통화정책을 - 옹호하면서 그에 반대해온 기획재정부(또는 재정경제부)를 비판해온 데 대하여 우리의 새 책에서 비판하였다.

그런데 정태인은 공개편지에서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에 물들었는데 반하여 한국은행 근무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우리를 반박하였다. 정태인 자신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관료들을 경험해보니 그렇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태인은 따라서 한국은행 독립성 주장은 반신자유주의 즉 경제민주화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런데 정태인의 이러한 논법은 개인(인간)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여 관찰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정태인 식의 논법대로라면 신자유주의적인 인간들이 넘쳐나는 기획재정부는 해체 또는 약화시키는 것이 해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니면, 비신자유주의자들이 많은 한국은행 또는 (정태인이 말하는 방식의) 재벌규제 실무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다른 정부조직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서 기획재정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다. 실제 정태인이 "100%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하는 김상조는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모피아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태인은 신자유주의에 뿌리 깊이 감화된 관료들(개인들)이 유별나게 기획재정부에만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관료들은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한미FTA 추진)에도, 교육과학부(교육 시장화 추진)에도 철철 넘쳐난다. 공정거래위원회(각종 규제완화 추진)와 노동부(노동권 약화 추진), 보건복지부(사회복지 축소 추진)에도 그런 신자유주의적 관료들은 넘쳐난다.

그렇다면 이런 부처들도 해체 내지 약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런 논법대로라면, 현재의 국회와 청와대(따라서 우리나라의 모든 국가기관)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인물들이 대다수라는 이유로 그 권한과 위상을 해체 또는 약화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한다면, 원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주장해온 밀턴 프리드먼과 하이에크 류의 신자유주의와 똑같은 정책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신자유주의적 '인물'과 신자유주의적 '제도'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인물과 제도를 구별하지 않는 똑같은 문제점은 이병천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이병천은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개발 독재 유산 위에 서 있다"는 글에서, 한국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를 추진해온 인물들은 대부분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재벌계 인물들과 경제 관료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과 금융자산가들이 선두에 섰던 서구와는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모피아 관료와 재벌계 인사들이 앞장서서 추진한 '잡종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한다.

훌륭하면서도 올바른 지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점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런데 박정희 체제의 권력자들(모피아와 재벌)이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동일한 인물·개인들이라는 이병천식 논법을 따라가자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즉 시장주의적 제도·정책)와 박정희 체제(즉 반시장주의적 제도·정책) 사이에는 별다른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이병천은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 셈인데, 제도·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이병천은 우리가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선택)에서 재벌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인 양 엉터리로 묘사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로서는 어이가 없는 비판인데, 이 역시 이병천이 개인(재벌가족과 그 가신들)과 제도(법인기업으로서의 대기업과 대기업집단)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심각한 곡해요 중상비방이다.

이병천은 이건희와 정몽구와 같은 재벌가문(인간·개인)과 그룹 체제(제도·정책)를 구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재벌그룹(즉 대기업집단 체제)의 유용성과 정당성을 옹호한다는 점을 곡해하여, 마치 우리가 이건희·정몽구 회장과 같은 재벌 가문과 그 가신 그룹의 이해관계와 행위들(각종 불법행위들)까지 옹호하고 있는 양 착각한다.

요컨대, 정태인과 이병천은 박정희식 경제체제(반신자유주의적 제도·정책)와 그에 관련된 인물들(신자유주의적 모피아 경제관료들)을 구별하지 않고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또한 대기업집단(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는)이라는 경제 제도를 재벌 가족들(주주자본주의에 적극 호응하여 사리사욕을 취하는)이라는 인물·개인들로부터 구별하지 않으며,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또한 한국은행 독립성 여부에 관한 제도적·정책적 문제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개인-인물들이 한국은행에 많으냐, 기획재정부에 많으냐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영국에 사는 장하준은 한국의 구체적 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말라?

정태인은 자신이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한국의 구체적 상황을 경험해보니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는 신자유주의자가 많은데 반해 한국은행에는 별로 그렇지 않더라고 말한 뒤, 외국(영국)에 살고 있는 장하준은 한국의 이런 구체적 현실을 잘 모르니 신중하게 발언하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서 한국을 더 잘 이해하는가? 한미FTA를 밀어붙인 정치인들과 관료들 대다수 역시 한국 땅에서 평생 발붙이고 살아온 사람들 아니던가? 게다가 자기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식으로 논지를 펼친다면, 역사가들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과거 시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발언할 수 있는 건가? 또한 그런 식으로 남을 비판한다면, 과거 청와대 비서관 시절 정태인이 자주 재벌들로부터 듣던 '기업경영 안 해본 사람은 기업 비판하지 말라'는 류의 비판과 뭐가 다른가?

그리고 정태인은 미국인 스티글리츠의 한국 경제 관련 발언을 금과옥조처럼 칭찬하곤 했는데, 설마 스티글리츠는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즉 구체적인 현실을 경험하고) 발언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정태인은 한국의 구체적 현실을 경험하지 못한 외국인일지라도 자신과 견해가 일치하면 한국을 잘 이해한 것이고, 외국에 살기는 하지만 한국인이고 평생 한국경제를 연구해 온 장하준이 자신과 반대되는 견해를 표명하면 한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고 격하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영국에 있는 장하준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국 땅에서 살고 있는 정승일과 이종태는 뭔가? 그들이 한국 땅에서 경험하고 체험하는 구체적 현실이 정태인의 그것에 비해 못하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정태인의 그런 태도는 스티글리츠나 장하준처럼 외국 명문대학 교수의 말에는 경청하면서 그렇지 않은 정승일과 이종태는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자기와 견해가 일치하는 스티글리츠는 뭘 좀 아는 사람이고 장하준은 그렇지 않다는 건가?

마지막으로, 영국에 살고 있는 장하준은 그렇다고 해서 영국에 대해서만 발언해야 하는가? 장하준이 남미와 아프리카의 가난과 저발전에 대해 말하는 것 역시 구체적 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헛소리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쁜 사마리안)이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의 내용 역시 모두 장하준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는 건가? 정태인이야말로 이런 유의 발언을 할 때는 더 신중하게 예의를 지킬 필요가 있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가 함께 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종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