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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박근혜가 진짜 '개혁적 보수'로 거듭났다면…"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13일자 기사 '"박근혜가 진짜 '개혁적 보수'로 거듭났다면…"'을 퍼왔습니다.
[시민정치시평] 민생민주 '시민정부'를 위하여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두워 보였던 판도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고 있다. 아무래도 안철수 전후보가 다시 등판해 일으킨 '안철수 효과'가 가장 클 것이다. 사실 시대 변화의 상징이 되었던 안철수가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선거는 진작 게임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덕분에 문후보가 상승세를 타게 됐지만 안타깝게도 판세는 여전히 예측 불허다. 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 25년이 되는 올해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행운의 여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까. 그 여신은 "변화하라", "민생을 살려라" 그리고 "국민통합을 이루라"는 새 시대정신의 명령을 내렸다. 그 계명을 받아 안을 임자는 과연 누구일까 ?

원래 변화를 거부하고 구체제를 지키는 것이 보수(保守)의 생리인데 지금은 진보는 물론 보수 세력도, 여도 야도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이제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를 이뤄 새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리키는 대한민국호의 미래는 무척 다르다. 여전히 "어떤 변화인가"가 문제로 되고 있다.

지난 시기 산업화와 민주화라고 하는 근대화 이중혁명의 관문을 모두 통과한 대한민국의 성취는 매우 크고 충분히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이 후발 압축 이중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 노동자, 서민과 국민 대중은 얼마나 큰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가. 그러나 그 다음 관문, 즉 87년식 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사회경제적 민주화 또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증진을 양 날개로 하는 민생 민주화로 가는 과제 앞에서 우리는 좌절했고, 그래서 표류하게 됐다.

한국형 자본주의의 역사적 진화 경로는 매우 유별난 구석이 있다. 지난 시기 권위주의적 개발체제는 고도로 집단적인 협력자본주의 특성이라든가 온실적 보호를 넘어 개방 이익과 보호를 결합한 역동성이라든가 하는 면에서 거대한 성장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 발전모델에서는 권위주의 정권과 독점재벌이 폐쇄적인 지배연합을 이뤘고 이를 감시· 견제하는 힘은 억압당했다. 또 이 모델은 성장을 최우선가치로 삼아 비용은 사회화하면서도 이익은 주로 재벌이 차지하는 분배의 불공정에서 심각한 모순을 내장하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재벌독식 공화국과 두 국민 분열을 초래한 한국 보수 세력의 첫 번째 역사적 책임이다.

87년 정치적 민주화이후 한국 자본주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 과제 그리고 세계화 추세라는 내외의 압력을 동시에 받게 됐는데 김영삼 정부는 이 두 압력에 전혀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했다. 터무니없이 '세계화'를 국정기조로 내세운 이 정부의 말기는 재벌에 발목 잡힌 채(삼성의 편법세습을 포함해) 노동법을 날치기로 통과하고 마침내 외환위기를 부르는 비극적 사태로 결말이 났다. 이것이 보수 세력의 두 번째 책임이다.

보수정부의 다음 바통은 '경제를 살리겠다', '부자 되세요' 구호를 내 걸고 집권한 이명박 정부로 넘겨졌다. CEO출신 이명박이 이끈 현 정부는 부자 감세와 친재벌 규제완화 등 온갖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움) 정책과 4대 강 사업을 통해 한국현대사상 재벌 독식, 토건 삽질과 두 국민 분열을 가장 저돌적으로 밀어붙인 '강부자' 정권이 되었고 민생과 서민경제를 파탄 지경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마침내 한미 FTA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이것이 한국 보수 세력이 저지른 세 번째 책임이다. 그리고 이런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해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공동책임을 지고 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97년 이후 10년을 책임졌던 민주개혁 정부도 오늘의 재벌 독식체제와 두 국민 분열상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97년 외환위기가 발발하고 그로 인해 한국경제가 IMF 관리체제아래 놓이게 된 것은 김영삼 보수정부가 떠넘긴 것이고 김대중 정부의 책임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김대중 정부가 IMF 프로그램을 초과 달성했다 할 정도로 경제적 자유화와 시장화를 추구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IMF위기를 조기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약한 민주주의의 깃발은 재벌독식 시장경제의 지배력에 꺾였고, 노동시장의 유연화 그리고 금융 및 부동산 시장의 자유화로 민생은 고달파지고 국민 대중의 삶의 미래는 매우 불안해 졌다.

원래 한국경제는 기본 체질상 복지가 취약하며 이를 고성장과 지속적 일자리 창출로 만회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복지 지출을 좀 늘렸다고 해도 그것으로 일자리가 대량 파괴되고 몹쓸 일자리가 양산될 뿐 더러 성장도 감속되는 사태를 막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 서민 대중, 중산층의 고통으로 안겨졌다. 그리하여 김대중 정부 시기 한국 사회경제는 노동, 토지 주택, 그리고 금융이 시장화됨으로써 민생의 살림터전이 파괴된 '폴라니적 모순'에 빠지게 됐다. 이것이 민주개혁정부가 오늘의 재벌독식과 양극화 상황에 대해 지고 있는 첫 번째 책임이다.

그런데 민주개혁 정부에 큰 애정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종종 김대중 정부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 더 비판적임을 보게 된다. 김대중 정부의 실정 중에는 김영삼 정부가 떠안긴 부분이 크지만 그에 비해 노무현 정부는 너무 무력하게 '권력을 시장에', 재벌에 넘겨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보수 정권이 해야 할 일인 한미 FTA를 임기 말 최대의 국정과제로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도 노무현 정부였다. 참여정부 말기는 거의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이 합심해서 진보·노동세력을 공격하는 모양새였다. 정권 바통이 이명박 정부에 넘어간 것은 참여정부의 책임이 크다. 이것이 민주개혁정부가 오늘의 고통스런 상황에 대해 지고 있는 두 번째 책임이다. 결국 민주개혁 정부 또한 세계화와 시장의 시대가 제기한 도전에 적절히 응답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본다면, 지금 자신들과 대한민국의 미래 명운을 걸고 다투고 있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모두 어쩔 수없이 '과거 부채'를 물려받은 채, 미래 변화 그리고 국민 통합, 민생 살리기를 외치고 있는 형편이라 하겠다. 물론 민주개혁 세력의 입장에서는 보수 세력에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또 이미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 정부가 심판받았으므로 이번에는 이명박 정부가 심판받는 것이 순리라고 말할 것이다. 더욱이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실패에 대해 공동 책임을 져야 마땅한 당사자가 아닌가. 이는 틀린 말은 아니다. 여하튼간에 이쪽저쪽 과거 실패들이 '톱니효과'처럼 경로의존적으로 쌓인 결과 87년 민주화이후 '물탄 민주주의' 세월을 보낸 오늘, 대한민국은 민생 문제 또는 이른바 '사회 문제'가 가히 폭발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의 두 바퀴로 가는 민생 민주주의야말로 재벌독식 정글자본주의를 넘어, 두 국민 분열의 대한민국(two nations)을 넘어, 함께 사는 통합(one nation)의 대한민국으로 가는 최대, 최고의 시대정신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민생민주 공화국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공화국의 새로운 시민은 정치적 시민일 뿐 아니라 '사회적 시민'으로 전진해야 한다.

이것이 변화하라, 그리고 통합하라는 시대명령 앞에 보수 (保守)세력도 나름대로 보수(補修)를 도모하고 민주개혁 세력도 진보를 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까닭이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공동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차별화를 시도하며, 심지어 '빨갱이'색을 자신들의 상징 색으로 도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들이 자신들의 본색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변화, 통합, 민생, 그리고 미래 등에는 생리상 여전히 변화보다는 지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들의 대안은 어디까지나 시장보수, 성장 보수, 재벌보수가 중심 기둥이며 여기에 민생은 끼워 넣기 모양새로 되어 있다.

만약 그들이 난파하고 있던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김종인씨를 새로 영입했던 초기의 쇄신 정신을 그대로 밀고 갔더라면 아마 '개혁적 보수'로 거듭났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랬더라면 한국의 보수는 제법 '큰 보수'로, 위협적인 미래 보수 세력으로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은 총선 승리에 도취되고 다시 오만해져 중도에 그 길을 포기하고 옹색한 보수로 되돌아갔다. 이는 현 정부에서 총리까지 지냈던 정운찬 같은 이가 문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걸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 결과 박근혜 후보는 너무 태연자약하게 '줄푸세'는 여전히 유효하며 경제 민주화와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친재벌 신자유주의 양극화 정책의 대명사이면서 민생과 서민경제를 파탄시킨 바로 그 정책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정책과 같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박근혜 후보가 얼마나 과거에 붙들려 있고 반성할 줄 모르는지를 이토록 잘 웅변해주는 대목이 있을까. 김종인표 경제민주화 정책을 내친 후 내 놓은 경제성장과 경제민주화의 `투트랙'론이 어떨지 알만하지 않은가.

 
ⓒ프레시안(최형락)

"줄푸세=경제민주화" 등식에 입각한 새 누리당의 민생살리기란 부자와 특권 재벌의 기득권 구조를 그대로 놔둔 채 재벌주도 특권경제의 국물이 이전보다는 좀 더 흘러내리도록 하는 '시혜적 민생'을 벗어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박근혜 후보가 줄곧 말하는 '약속'이라는 것도, 그 말이 아무리 달콤하다 해도, 이것 이상의 약속은 아닐 것이다. 혹시 박근혜 후보가 승자가 된다 한들 "줄푸세= 경제민주화" 등식을 기조로 삼는 정부라면 필경 이명박 정부를 강력히 계승하는 무늬만의 민생 정부, 무늬만의 국민통합 정부가 되지 않겠는가.

나는 박근혜 후보가 이끄는 보수 세력이 명실상부한 '개혁적 보수'로 새로 거듭나지 못하고 줄푸세 보수와 성장 보수, 재벌 보수, 기득권 보수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 구체제를 지키는 '수구적 보수'를 중심에 놓고 미사여구로 변화와 미래, 민생과 통합을 외치고 있는 것은 확실히 그들의 자충수라는 생각을 한다. 거꾸로 그것은 민주 진보세력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 세력은 여전히 힘이 세다. 결집력과 대중의 충성도도 대단히 높다. 상당수 국민들은 여전히 성장주도 능력과 위기관리 능력 부분에서 박 후보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폴라니가 말했듯이, 역사적으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대중들은 흔히 보수, 심지어 파시즘의 선동에 넘어가기도 한다.

바로 이 때문에, 특히 위기 국면에서 보수의 자충수를 기회로 포착해 국민 대중을 민생민주연합으로 불러낼 수 있는 민주 진보세력의 저변 넓은 소통과 공감의 능력, 대안 구성의 능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이는 대선 승리뿐만 아니라 집권 후 '전환의 계곡'에서 재벌과 모피아, 국제금융자본의 사보타지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보수대연합이냐 민주민생 대연합이냐, 과거로 역주행이냐 미래로 전진이냐, 이는 저쪽의 실수가 아니라 전적으로 이쪽의 정치적 능력 여하에 달려 있다.

민주개혁 세력의 대선후보 문재인은 민주당의 틀 안에서는 변화하라는 시대정신에 가장 잘 부응한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비좁고 낡은 민주통합당의 틀을 깨야 할 뿐더러 무엇보다 '노무현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그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다. 늦긴 했지만 문재인은 중도 부동층과 2030세대, 노동계층에까지 폭넓게 호소하는 '문-안-심 연대'를 구성했다. 그리고 국민 연대의 후보로도 추대되었다. 그는 과연 민생민주 공화국과 이 공화국의 새로운 시민을 위해 새 문을 여는 지도자, 민생 경제와 참여민주주의가 상생하는 '시민정부' 시대의 문을 열어젖히는 첫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산업화와 민주화이후, 87년식 민주주의를 넘어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다시 2012년 12월 대한민국 대선의 여신은 누구의 약속에 미소를 보내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온 몸을 내던져 '박차고 문여는' 문후보의 막판 스퍼트를 기대한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 공동편집인

2012년 6월 17일 일요일

‘박정희 주의’ ‘좌파 신자유주의’, 오해를 풀어라


이글은 한겨레21 2012-06-18일자[제915호] 기사 '‘박정희 주의’ ‘좌파 신자유주의’, 오해를 풀어라'를 퍼왔습니다.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 장하준 등 “재벌개혁 그 자체 목적 아니다”에 이병천 반론하며 ‘한국경제 성격’ 직격탄 논쟁… 넓은 그림 속 공통점 살려 개혁 연대 해야

» 재벌 개혁만 놓고 보면 장하준 교수(왼쪽) 등과 이병천 교수(오른쪽)가 함께하기 힘든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 바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왼쪽 김명진 기자, 오른쪽 <한겨레> 김정효 기자

인터넷언론 에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이종태 기자(이하 장 교수 등)와 개혁진보 경제학자 간에 ‘한국경제 성격논쟁’이 시작됐다. 장 교수 등이 지난 3월 말 펴낸 신간 에 대해 개혁진보 학계의 이병천 강원대 교수와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이 글을 쓰자, 장 교수 등이 반박하고 이 교수가 재반박하는 형식으로 진행 중이다. 이번 논쟁은 19대 국회 개원 이후 정치권과 재계에서 경제민주화 이슈가 재점화하고, 개혁진보 진영이 재벌체제 이후 새로운 대안 제시를 요구받는 시점과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이건희와 삼성도 구별 못하나’ 격한 논쟁
하지만 논쟁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다. 오히려 감정싸움 조짐이 보인다는 우려도 있다. 장 교수 등은 첫째 반론인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에서 “우리들에게 박정희주의자, 재벌옹호론자라는 욕설이 사방에서 빗발친다”며 “격렬한 욕설과 비난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첫째 재반박문인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에서 “내 쪽이 오히려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장 교수 등은 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해온 개혁진보 학자들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맹공했다. 이에 대해 개혁진보 쪽은 “참여정부의 개혁 실패를 재벌과 시장독재에 투항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사람들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며 흥분했다. 장 교수는 지난 5월 이에 관해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사실상 사과했다. 결국 양쪽 사이에는 소통 부족으로 인한 오해가 적지 않은 듯하다.
생각이 다를 때는 논쟁이 격해지기도 한다. 재벌 개혁을 둘러싼 양쪽의 이견은 확연하다. 개혁진보 학자들은 “재벌 개혁이 경제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새누리당의 이혜훈 최고위원이 지난 6월5일 당내 모임에서 “재벌 개혁 없이 경제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취지다. 반면 ‘재벌 타협론’을 주장하는 장 교수 등은 둘째 반론인 ‘재벌 개혁 만능론은 반민주적 행위’에서 “(우리는) 재벌 개혁이 제대로 돼야 그 이후 비로소 복지국가가 그 바탕 위에 제대로 구축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말의 의도는 다음에서 더 분명해진다. 장 교수 등은 “출자총액제한제 강화를 통해 재벌을 약화 또는 해체시키게 되면 주주자본주의 영향력이 증폭되고, 친노동·친중소기업적인 정책과 복지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며 “재벌 개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복지국가 구축이라는 더 큰 목적에 복무하는 여러 수단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재벌 개혁만 놓고 보면 양쪽이 함께하기 힘든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 바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헌법 119조 2항은 균형성장, 소득분배, 경제력과 시장지배력의 남용 억제 등 경제민주화를 위해 정부가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고 돼 있다. 경제민주화론자와 반경제민주화론자의 가장 쉬운 구분법은 바로 이 부분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부의 시장(재벌) 규제에 찬성하느냐 여부다. 이런 점에서 장 교수 등이나 개혁진보 학계는 모두 정부의 시장규제 찬성론자다. 반면 재벌과 보수 경제학자는 정부가 함부로 시장개입(규제)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맞선다.
복지국가 강조, 공통점 더 커
둘 사이의 또 다른 공통점은 복지국가 강조다. 재벌과 보수 경제학자들은 ‘선 성장-후 복지(내지 후 분배)’를 주장한다. 하지만 개혁진보 학자와 장 교수 등은 성장과 복지가 분리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통합당의 4·11 총선 공약을 디자인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는 개혁의 양날개”라고 강조해왔다. 장 교수 등은 “재벌 개혁은 복지국가라는 더 큰 프레임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부분”이라며 오히려 복지를 더 상위 개념으로 둔다.
장 교수 등은 두 번째 반박인 ‘재벌 개혁 만능론은 반민주적 행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태인·이병천 등을 포함하는 많은 개혁진보 지식인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민주화이고 그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이 시각에 따르면, 재벌 개혁의 핵심 과제는 재벌 계열사 간 순환출자와 같은 ‘왜곡된’ 소유지배구조로 인위적으로 묶여 있는 재벌을 약화·해체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개혁론=재벌해체론’의 등식은 지나친 단순화다. 요즘 재벌해체론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왜곡된 재벌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것과 재벌을 약화·해체하자는 것은 다르다. 개혁진보 경제학자 중에서 재벌체제의 장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도 적지 않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재벌 개혁은 재벌 죽이기가 아니라 재벌을 아끼는 마음에서 거듭나게 하려는 것”이라며 ‘재벌사랑론’을 편다.
장 교수 등은 또 “개혁론자들은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거의 동일시한다”며 “재벌 개혁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여러 과제 중 하나일 뿐인데 이를 무시한다”고 주장한다. 옳은 얘기다. 재벌 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전부가 아니라 여러 과제 중 하나라는 점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실제 경제민주화 정책에는 재벌 개혁 외에 중소기업·상인 지원, 노동시장 개혁, 조세개혁 등을 망라한다. 개혁진보 학자들이 재벌 개혁 이외의 요소들을 무시한다는 말은 지나치다.
장 교수 등은 재벌과의 대타협론을 주장한다. 재벌과 타협해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노동·복지·세제 등에서 양보를 얻어내자는 것이다. 혁명을 할 것이 아니라면, 재벌 개혁을 포함한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건설은 결국 사회적 대화를 통한 타협으로 이뤄내야 한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개혁진보 학계의 우려처럼 재벌이 ‘얻을 것 다 얻었는데 타협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재벌과 우리 사회 모두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대타협이 가능할지는 솔직히 확신이 안 선다. 이유는 재벌 총수의 완고함이 아니라 재벌체제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재벌과의 타협이 가능할까
삼성전자가 최근 납기 종료 이후 부당한 발주 취소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당한 사건은 좋은 사례다. 중소기업이 주문을 받은 뒤 납기에 맞춰 부품을 다 만들어놨지만, 삼성전자는 시장 상황이 변했다는 이유로 발주 취소를 하고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다. 사실상 삼성이 재고 부담을 중소기업에 전가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것을 정보기술(IT) 산업의 특성이라고 변명했다. 이런 현실이 고쳐지지 않는 한 중소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궁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재벌이 타협을 하려면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발주 취소, 담합 등과 같은 불법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재벌은 경쟁력을 잃고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벌체제가 과연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장 교수 등과 개혁진보 학계는 개혁의 방법론에 차이가 있지만 지향점이 같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단순한 방법론의 차이로 인해 등을 돌린다면, 당파의 차이를 이유로 왜의 침략 가능성에 대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다가 임진왜란을 자초한 이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장 교수 등과 개혁진보 학계가 분열하면, 통합진보당 사태처럼 경제민주화 반대 세력에게 악용될 수도 있다. 장 교수 등과 개혁진보 학자들은 개혁 연대를 해야 한다.

jskwak@hani.co.kr

선임기자 한겨레 경제부

2012년 5월 30일 수요일

"재벌개혁 만능론은 반민주적 행위"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30일자 기사 '"재벌개혁 만능론은 반민주적 행위"'를 퍼왔습니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

-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 정태인·이병천 등을 포함하는 많은 개혁진보 지식인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민주화이고 그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시각에 따르면, 재벌개혁의 핵심 과제는 재벌그룹 계열사 간 순환출자와 같은 '왜곡된' 소유지배구조로 인위적으로 묶여 있는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약화·해체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계열사 간 출자총액의 제한과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해야 하고, 이렇게 하여 왜곡된 소유지배구조가 정상화된다면 비관련 다각화(문어발식 확장)와 계열사 간 상호 지원 같은 '왜곡된' 경영 역시 바로잡힌다고 한다.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으로 협소화하지 말자

그러나 우선 생각해 볼 점은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거의 동일시한다. 그렇지만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를 위해 이루어야 할 여러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노동자 개인의 권익과 노동조합의 권리를 대폭 향상시키고, 또한 (독일의 공동결정제처럼) 종업원 대표자들의 회사 경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소비자 협동조합의 설립을 지원하여 소비자 권익을 향상시키는 것, 그리고 소농·소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결성한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금전적 지원을 통해 그들의 경제적 힘을 향상시키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전기와 철도·지하철, 버스, 우편, 수도처럼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이나 혹은 그런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산업정책과 복지정책 등을 통하여 ('1원 1표'라는 반민주적인 원리에 기초하게 마련인) '시장'을 규제하여, 기업들이 가능한 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즉 국민들의 이익에 맞도록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그 구조와 인맥상, 물가안정과 통화가치 유지 등 금융중심적 시각에서 경제문제를 파악하게 되어 있는 중앙은행(한국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서 중앙은행이 고용이나 성장처럼 일반 국민에게 더 중요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이다.

이렇듯 경제민주화를 위해 할 일이 여러 가지로 많은데도 개혁파의 경제민주화론은 이런 여타 요소들은 거의 무시하면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거의 동의어로 쓸 정도로 재벌개혁(대기업집단의 약화와 해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재벌개혁 없이는 복지국가도 없다?

물론 개혁세력이 노동자 권익과 중소기업 역할 강화, 복지확대 등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재벌개혁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이런 다른 정책들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는 점이다. 마치 한국 경제가 태양계라면 재벌은 태양이고, 따라서 개혁을 통해 재벌이라는 '태양'을 밝게 하지 않으면, 그 주위를 돌고 있는 노동자와 중소기업, 복지 같은 '행성'들은 밝게 빛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에서 이런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제 아무리 복지에 돈을 쏟아 부어도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의 분배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도 언감생심일 겁니다. …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없이 복지만 내세워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병천 역시 말하기를,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두 가지 시대정신이 새로 정립되는 상황에서 그 기본 관문(즉 일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재벌개혁과 '삼성 동물원' 상황의 극복"이라고 한다. 즉 경제민주화(재벌개혁)와 복지국가를 각각의 독립된 병렬적 의제로 내세우되, '전자'(재벌개혁)를 '후자'(복지국가)에 앞서 선행하는 단계로 보고 있다. 특히 정태인은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과 함께 공동으로 '재벌개혁 시민연대'를 새로 구축하여 재벌개혁을 올해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먼저 재벌개혁이 제대로 되어야 그 이후 비로소 복지국가가 그 바탕 위에서 제대로 구축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재벌개혁과 복지국가 구축을 분리시켜 보는 데 문제가 많다. 많은 점에서 복지국가의 강화는 그 자체가 재벌개혁이기도 하다. 예컨대 복지국가의 필요조건인 누진 소득세 강화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소득 계층인 재벌 가문들과 그 가신들이다. 또한 보편적 의료 복지와 노인 복지 역시 그 자체 강력한 재벌 개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도들은 재벌계 보험회사들이 주도하는 보험업계의 이익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운동 속에는 이렇듯 '여러 형태'의 재벌개혁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 금지 같은 '특정 형태'의 재벌개혁(그것도 재벌가족이 아닌 대기업그룹 체제만을 규제·통제하는)만이 올바른 재벌개혁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리가 에서 "복지국가 따로, 경제민주화 따로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한 운동 그 자체가 경제민주화"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도리어 우리는 출자총액제한 강화를 통해 대기업집단을 약화 또는 해체시키게 되면 한국 최대 대기업들에 대한 주주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증폭되고, 그렇게 되면 친노동, 친중소기업적인 정책과 복지 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본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경제민주화를 더 큰 프레임에서 바라보자

조금 더 이론적으로 들어가자면,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다양한 논자들에 의해 다양한 프레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역시 경제민주화론이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이 다수인 사회에서 다수자 민주주의를 통해 집권한 인민주권(즉 민주주의)이 중앙집중 계획경제를 실시함으로써 다수자인 노동계급의 이익에 맞게 (즉 민주적으로) 경제를 운영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사유재산제를 폐지하고 중앙계획 경제를 하지 않는 한 경제민주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이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나라 개혁론자들이 주장하는 재벌개혁(즉주식시장의 힘을 빌린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며, 오히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통한 노동자 착취'와 '시장의 무정부성' 같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적 사안들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반민주적 행위이다.

또한 무정부주의자들(아나키스트)의 주장 역시 그들 나름의 경제민주화론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국가권력을 해체하고 그것을 자율적 (협동조합) 공동체의 연대적 결사체로 대체함으로써 실질적인(즉 경제적인) 인민주권(즉 민주주의)을 실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종철과 박승옥, 윤구병 같은 생태주의 공동체론자들은 도처에 자율적 협동조합을 건설함으로써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국가 권력을 통한 재벌 통제'(예컨대 출자총액제한)는 강도(국가)더러 도둑(재벌) 잡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반민주적인 발상이다.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냐, 비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냐

그렇다면 국가조직(특히 그 경제정책 담당조직들)과 대기업들, 즉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조직들'을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즉 1원 1표가 아닌 1인 1표의 이상(理想)에 맞게 재편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정부조직(정부의 경제개입)과 대기업(대기업집단)을 가능하면 작게 만들자는 입장이다. 이것이 자유주의(liberalism)의철학인데, 여기서는 '합리적 (자유) 시장'의 원리가 가장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 정부는 되도록 적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좋고(박정희식 관치경제의 해체), 또한 대기업 특히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의 비중 역시 되도록이면 줄여서 적게 만들며(재벌해체 또는 축소), 그리고 작은 기업들(중소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완전경쟁 상태(공정시장 원칙)를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렇듯 '완전경쟁 시장(공정시장) 자본주의'를 만들어야만 참된 '1인 1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정치경제 사상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고 부른다. 그리고 한국의 개혁파 학자들은 이것을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그에 반해 우리는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정부(특히 큰 복지국가)와 대기업(대기업집단)이 경제적 민주주의의 달성을 위해 긴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래야만 참된 경제민주화가 달성된다고 본다. 즉 우리 역시 경제적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구상하는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내용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틀에 머무르는) 우리나라 개혁론자들의 그것과 현격하게 다르다. 우리의 시각은 비자유주의(non-liberal)적 민주주의이며 유럽 사회민주주의에 훨씬 가깝다.

'착한 자본가' 만들기가 복지국가 만들기에 우선한다?

많은 개혁진보 지식인들이 경제민주화를 진보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스웨덴식 복지국가에 '앞서'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가 선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은 한국 진보의 역사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1960-80년대에 그 사상적 기초가 형성된 한국 진보 세력의 정치경제학에는 박정희식 관치경제와 재벌그룹 체제로 상징되는 한국 자본주의는 '비정상적' 자본주의라는 관념이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명칭은 '천민' 자본주의(김상조)이다. 그리고 '식민지 반(半)' 자본주의(통합진보당 구당권파), 또는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과거 이병천이 대표적 논자였다)로 불리기도 했다. 굳이 이런 형용사를 붙이는 이유는 한국 자본주의가 선진국 자본주의에 비해 왜곡되고 부도덕한 방식으로 성장해왔고, 따라서 이런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한국 자본주의는 '정상적' 자본주의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천민자본주의'라는 시각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귀족 자본주의'였고 '노블리스 오블리제 자본가들'이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장하준이 와 등에서 지적했듯이, 실제 미국과 유럽 자본주의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 부정부패와 반민주주의, 정부개입이 난무하는 천민적, 비정상적 방식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정태인 등이 말하듯이 착한 자본가 단계, 즉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또는 '공정시장', '공정국가')가 제대로 되어야만 그 이후 비로소 그 바탕 위에서 본격적인 북유럽식 복지국가가 가능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한 한국 경제의 발전 수준과 국민의 시민적 성숙도로 볼 때, 대한민국은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곧장 나아갈 수 있다. 복지국가 5개년 계획을 세워 지금부터 차근차근 밀고 나간다면, 5-10년 뒤에는 지금의 미국, 그 다음엔 지금의 유럽 중위권 복지국가, 20-30년 뒤엔 지금의 스웨덴 복지국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복지국가 운동이 전쟁이라면 재벌개혁은 전투

이렇듯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저, )로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제시하는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재벌개혁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 없다. 재벌개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큰 목적, 즉 복지국가의 구축에 복무하는 수단, 그것도 여러 수단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재벌개혁 운동과 복지국가 운동은 동시에 '병렬적으로' 행해지면서 서로 '보완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재벌개혁 운동은 어디까지나 복지국가 운동이라는 더 큰 프레임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부분이다. 말하자면, 복지국가 운동이 하나의 전쟁(war)이라면, 재벌개혁은 그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전투(battle), 물론 중요한 전투이다. 중요한 것은 프레임(frame)이다. 재벌개혁이 복지국가 구축과 따로 떼어져 병렬화될 때, 그 운동은 궁극적인 큰 목적과 방향(즉 프레임)을 상실한 채 주주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무릇 모든 개혁은 개선(改善)이 될 수도, 개악(改惡)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역시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재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재벌개혁은 - 투명성 강화 등 보편타당한 이야기들도 일부 있지만 - 본질적으로 월스트리트와연계된 주주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프레임 속에서 머무르고 있고, 따라서 대부분 국민의 이해관계에서 볼 때는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주주자본주의 원리에 따른 재벌개혁'은 수익성 및 주주이익 지상주의와 이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과 비정규직 양산, 인건비와 하청단가의 삭감, 청장년 실업과 빈곤층의 만연 등을 낳는다.

개악이 아닌 개선이 되려면, 재벌개혁을 통해 달성하려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본다. 물론 그런 복지국가에서도 소득재분배(이른바 2차 분배)를 통한 복지(즉 좁은 의미의 복지)는 만능이 아니다. 그곳에서도 왕성한 일자리 창출과 근로소득 창출을 통한 1차 소득분배(즉 원천소득 분배)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그 큰 부분은 대기업의 몫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복지국가 원리에 따르는 재벌개혁', 즉 진보적 자유주의가 아닌 새로운 프레임의 재벌개혁을 구상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구체적으로 쓸 예정이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을 통해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등의 집중 비판을 받은 (부키 펴냄)의 저자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이종태 기자가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이들은 약 10회에 걸친 답변에서 새로운 문제 제기도 할 예정입니다.

애초 이 글은 영국에 있는 관계로 한국의 논쟁에 실시간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장하준 교수의 제안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장 교수가 주도한 수차례에 걸친 장시간의 화상 회의를 통해서 답변의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되었고, 각자 나눠 쓴 초고를 역시 수차례의 첨삭을 통해서 조율해 최종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종태 기자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8일자 기사 '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를 퍼왔습니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

우리가 이렇게 늦게 글을 쓰게 된 이유

우리 세 명이 지난 3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새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로 그 책에 대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프레시안)의 지면을 통해 지난 한 달 동안 정태인 새사연 원장과 이병천 강원대 교수(이하 존칭 생략), 이 두 분이 5차례가 넘는 글을 연재하면서 우리의 견해를 비판하였다.

정태인이 5월 초 '장하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형식을 통해 우리를 비판한 직후 우리는 그에 응답하는 글을 실으려 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그 직후 이병천 교수가 유사한 논지로 우리 책을 비판하는 서평을 계속해서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 분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종합해서 응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우리는 내렸다. 그로 인해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이렇게 늦어지게 되었다. 두 분과 독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 8~10회 정도에 걸쳐 우리의 두 책에 제기된 비판점 중에 재벌개혁과 주주자본주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박정희 체제와 경제민주화, 노동통제와 비정규직문제, 산업정책과 추격·탈추격, FTA 등의 주제에 관하여 연속적으로 글을 실을 계획이다.

우리의 책이 왜 이렇게 많은 비판을 받을까?

우리의 새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후 )는 2005년 발간된 와 마찬가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정책의 배경에 있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 즉 그런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을 '경제민주화'로, '진보적 자유주의'로 묘사하며 찬양했던 개혁진보파 인사들 역시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부키
우리는 두 책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진보 정부 또는 좌파 정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모두에 만연한 - 거대한 착각이라고 썼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일부 진보 인사들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시장개혁을 2013년 체제 하에서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재추진해야 한다고 하는 것 역시 강하게 비판하였다. 하물며 우리는 (선택)의 맨 앞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기본적으로 모두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진해 온 게 사실이에요. 시민들이 이런 측면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안티 이명박'이 노무현 시대로 회귀함을 의미한다면 정말 허무한 일 아닐까요? (...) 우파 신자유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좌파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이를 경제 민주화로 포장하는 일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젠 정말 불판을 갈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닥치고 반MB, 닥치고 반새누리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상황에서 우리처럼 '불판을 갈자'고 외치는 것은 무모함에 가깝다. 우리들에게 "박정희주의자", "재벌옹호론자"라는 욕설이 사방에서 빗발친다. "반MB 경제민주화 전선을 교란시킨다"는 비난도 쇄도한다.

물론 이렇듯 격렬한 욕설과 비난을 동반한 논쟁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개혁진보파를 자임하는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에조차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요소들이 깊이 침투해 있는 경우, 치열하고 격렬한 논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논쟁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정태인, 이병천처럼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지식인들, 그것도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들마저 우리 책에 대해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곡해와 왜곡, 중상비방을 펼치는 것은 정말 당혹스럽다. 예컨대 정태인은 (시사인)(5월 4일자) 인터뷰에서, 우리가 새 책에서 재벌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 말고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재벌 합리화론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뒤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이것은 명백한 왜곡이요 중상비방인데, 그밖에도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는 유사한 왜곡과 중상비방이 수없이 많다. 앞으로 우리는 그러한 왜곡과 중상비방에 대해 지적할 것이며, 또한 앞서 예로 든 '재벌 합리화론'과 같이 너무나 명백한 의도적 왜곡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할 작정이다.

개인·인물과 제도·정책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 있다. 바로 개인(인간)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한국은행 독립성 문제에 대한 논란을 보자. 우리는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전통적으로 한국은행 독립성을 - 그리고 이를 통한 물가통제에 집중하는 통화정책을 - 옹호하면서 그에 반대해온 기획재정부(또는 재정경제부)를 비판해온 데 대하여 우리의 새 책에서 비판하였다.

그런데 정태인은 공개편지에서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에 물들었는데 반하여 한국은행 근무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우리를 반박하였다. 정태인 자신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관료들을 경험해보니 그렇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태인은 따라서 한국은행 독립성 주장은 반신자유주의 즉 경제민주화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런데 정태인의 이러한 논법은 개인(인간)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여 관찰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정태인 식의 논법대로라면 신자유주의적인 인간들이 넘쳐나는 기획재정부는 해체 또는 약화시키는 것이 해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니면, 비신자유주의자들이 많은 한국은행 또는 (정태인이 말하는 방식의) 재벌규제 실무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다른 정부조직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서 기획재정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다. 실제 정태인이 "100%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하는 김상조는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모피아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태인은 신자유주의에 뿌리 깊이 감화된 관료들(개인들)이 유별나게 기획재정부에만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관료들은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한미FTA 추진)에도, 교육과학부(교육 시장화 추진)에도 철철 넘쳐난다. 공정거래위원회(각종 규제완화 추진)와 노동부(노동권 약화 추진), 보건복지부(사회복지 축소 추진)에도 그런 신자유주의적 관료들은 넘쳐난다.

그렇다면 이런 부처들도 해체 내지 약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런 논법대로라면, 현재의 국회와 청와대(따라서 우리나라의 모든 국가기관)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인물들이 대다수라는 이유로 그 권한과 위상을 해체 또는 약화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한다면, 원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주장해온 밀턴 프리드먼과 하이에크 류의 신자유주의와 똑같은 정책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신자유주의적 '인물'과 신자유주의적 '제도'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인물과 제도를 구별하지 않는 똑같은 문제점은 이병천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이병천은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개발 독재 유산 위에 서 있다"는 글에서, 한국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를 추진해온 인물들은 대부분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재벌계 인물들과 경제 관료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과 금융자산가들이 선두에 섰던 서구와는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모피아 관료와 재벌계 인사들이 앞장서서 추진한 '잡종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한다.

훌륭하면서도 올바른 지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점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런데 박정희 체제의 권력자들(모피아와 재벌)이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동일한 인물·개인들이라는 이병천식 논법을 따라가자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즉 시장주의적 제도·정책)와 박정희 체제(즉 반시장주의적 제도·정책) 사이에는 별다른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이병천은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 셈인데, 제도·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이병천은 우리가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선택)에서 재벌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인 양 엉터리로 묘사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로서는 어이가 없는 비판인데, 이 역시 이병천이 개인(재벌가족과 그 가신들)과 제도(법인기업으로서의 대기업과 대기업집단)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심각한 곡해요 중상비방이다.

이병천은 이건희와 정몽구와 같은 재벌가문(인간·개인)과 그룹 체제(제도·정책)를 구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재벌그룹(즉 대기업집단 체제)의 유용성과 정당성을 옹호한다는 점을 곡해하여, 마치 우리가 이건희·정몽구 회장과 같은 재벌 가문과 그 가신 그룹의 이해관계와 행위들(각종 불법행위들)까지 옹호하고 있는 양 착각한다.

요컨대, 정태인과 이병천은 박정희식 경제체제(반신자유주의적 제도·정책)와 그에 관련된 인물들(신자유주의적 모피아 경제관료들)을 구별하지 않고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또한 대기업집단(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는)이라는 경제 제도를 재벌 가족들(주주자본주의에 적극 호응하여 사리사욕을 취하는)이라는 인물·개인들로부터 구별하지 않으며,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또한 한국은행 독립성 여부에 관한 제도적·정책적 문제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개인-인물들이 한국은행에 많으냐, 기획재정부에 많으냐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영국에 사는 장하준은 한국의 구체적 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말라?

정태인은 자신이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한국의 구체적 상황을 경험해보니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는 신자유주의자가 많은데 반해 한국은행에는 별로 그렇지 않더라고 말한 뒤, 외국(영국)에 살고 있는 장하준은 한국의 이런 구체적 현실을 잘 모르니 신중하게 발언하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서 한국을 더 잘 이해하는가? 한미FTA를 밀어붙인 정치인들과 관료들 대다수 역시 한국 땅에서 평생 발붙이고 살아온 사람들 아니던가? 게다가 자기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식으로 논지를 펼친다면, 역사가들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과거 시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발언할 수 있는 건가? 또한 그런 식으로 남을 비판한다면, 과거 청와대 비서관 시절 정태인이 자주 재벌들로부터 듣던 '기업경영 안 해본 사람은 기업 비판하지 말라'는 류의 비판과 뭐가 다른가?

그리고 정태인은 미국인 스티글리츠의 한국 경제 관련 발언을 금과옥조처럼 칭찬하곤 했는데, 설마 스티글리츠는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즉 구체적인 현실을 경험하고) 발언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정태인은 한국의 구체적 현실을 경험하지 못한 외국인일지라도 자신과 견해가 일치하면 한국을 잘 이해한 것이고, 외국에 살기는 하지만 한국인이고 평생 한국경제를 연구해 온 장하준이 자신과 반대되는 견해를 표명하면 한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고 격하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영국에 있는 장하준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국 땅에서 살고 있는 정승일과 이종태는 뭔가? 그들이 한국 땅에서 경험하고 체험하는 구체적 현실이 정태인의 그것에 비해 못하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정태인의 그런 태도는 스티글리츠나 장하준처럼 외국 명문대학 교수의 말에는 경청하면서 그렇지 않은 정승일과 이종태는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자기와 견해가 일치하는 스티글리츠는 뭘 좀 아는 사람이고 장하준은 그렇지 않다는 건가?

마지막으로, 영국에 살고 있는 장하준은 그렇다고 해서 영국에 대해서만 발언해야 하는가? 장하준이 남미와 아프리카의 가난과 저발전에 대해 말하는 것 역시 구체적 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헛소리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쁜 사마리안)이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의 내용 역시 모두 장하준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는 건가? 정태인이야말로 이런 유의 발언을 할 때는 더 신중하게 예의를 지킬 필요가 있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가 함께 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종태 기자

2012년 5월 25일 금요일

"최악의 공황이 온다…우린 정말 재수 없는 세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4일자 기사 '"최악의 공황이 온다…우린 정말 재수 없는 세대"'를 퍼왔습니다.
[강연] 정승일,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강좌에서 김상조 등 정면 비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이종태 (시사IN) 기자와 함께 를 쓴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비롯한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다시 정면 비판했다. 최근 에서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저자들과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이병천 강원대 교수 등의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23일 저녁 '세계 금융 위기, 왜 발생했고 왜 계속되는가'라는 주제로 서울 마포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교육실에서 강연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주최하는 연속 강좌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중 첫 번째 강연이었다.

이날 정 연구위원은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 1997년 말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 그리고 최근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그리스 문제 등을 비교하며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정 연구위원은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경제 위기는 대공황이며, 그 후 최악(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말 재수 없는 세대"라고 말했다.

이번 위기에 대해 정 연구위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제 2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정 연구위원은 "대공황이 시작된 건 1929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전개된 건 (그로부터 4년 후인) 1933년"이라며 지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타격을 입었던 세계 경제가 안정되는 듯하다가, 최근 그리스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다시 출렁이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그리스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든 아니면 유로존에서 탈퇴하든 반드시 크게 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했다. 1997년 타이부터 한국까지 연달아 무너지며 동아시아 금융 위기가 발생한 것처럼, 유럽에서도 만약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그리스 같은 상황이 된다면 큰일이 터질 것이라는 말이다.

정 연구위원은 "쓸데없이 공무원이 많고 복지가 과다하고, 그래서 망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그리스를 비난하는 여론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이야기를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것은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그리스 국채를 사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를 도와줘야 한다는 건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독일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단 그리스의 불부터 꺼주고, 그 다음에 장기적으로 구조 개혁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 정 연구위원의 판단이다.


 ▲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외환위기 책임, 재벌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1990년대 한국의 경험을 반추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가 국제통화기금을 비판했다. 삭스는 개발도상국을 위해 일하는 진보적인 학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자다. 그런 삭스조차 금융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당시 삭스는 국제통화기금을 향해 '너희가 해야 할 건 불난 집에 가서 불이야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소방수 역할이다'라고 비판했다. 극장에서 불이 났을 때 조용히, 차분하게 끄는 게 아니라 불이야라고 소리부터 지르면 수백 명이 압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7년에도 국제통화기금 뒤에 있는 미국이 조용히 400억 달러를 한국 정부에 꿔줬으면 (외환위기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 연구위원은 "(역사적으로) 금융 위기의 패턴은 같다"고 진단했다. 금융 시장을 대폭 개방하면 흥청망청 달러 자금이 들어오고 그 결과 거품이 생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하면서 첫 번째로 은행을 국유화했다. 대통령 산하 은행을 만든 것이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 들어 은행이 본격적으로 민영화됐다. (…) 김영삼 정부는 외환시장에 대한 통제를 풀어버렸다. 그러자 한국의 은행들이 뉴욕이나 런던에 지점을 만들고 외국에서 (대규모로) 돈을 꿔오기 시작했다. 박정희 때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은행들은 그때 봉이 김선달 식으로 장사를 했다. 외국에서 싸게(금리 3퍼센트 수준) 돈을 꿔서 한국에서 높은 금리(대출 금리 10%대)로 빌려줬다. 은행뿐만 아니라 종합금융사들도 그렇게 했다. 그 결과 외채가 급증했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400억 달러 수준이던 것이 말기에는 14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중 400억 달러를 막지 못하면서 국가 부도가 난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이 대목에서 "외환위기의 원인은 금융 시장을 마구 개방한 것이며, 그 책임을 재벌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IMF 위기가 터진 후 재벌의 탐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삼성, 대우 등 재벌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때문에 금융 위기가 터진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자유주의 경제학이다. 탐욕의 과잉을 하느님, 즉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처벌한 것이라고 보는 방식이다. 그런데 (IMF 위기가) 재벌의 탐욕이 넘쳐서, 혹은 관료가 정경유착을 해서였다면 이승만, 박정희 때는 왜 안 터졌나."

정 연구위원은 "요즘 그리스에 대해 복지 과잉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듯이, IMF 위기 때 한국에서는 복지가 없었으니 재벌과 관료의 탐욕을 비난했던 것"이라며 경제 문제를 도덕 이론으로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금융 위기를 막으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는 주먹, 즉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 개입에 부정적인 주류경제학자들을 비판했다. 아울러 금융 시장에 대한 통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규제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박정희 정권 때) 은행들의 외환 도입을 통제하던 경제기획원이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없어졌다. 그 후 해외에서 돈을 꿔오는 걸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다. 100퍼센트 확신한다. 만약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박정희 체제 타도'라는 명분으로 경제기획원을 없애지 않았다면,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지 않고 금융시장도 (대폭) 열지 않았다면 1997년에 외환위기가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한국이) 박정희 때로 돌아가면 안 되지만, 그 시기에 잘했던 요소들은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체제를 연상시키는 것들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론자들 비판…"이게 무슨 진보인가"

정 연구위원은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을 돌아보며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 연구위원은 김상조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 "정운찬의 제자들"을 거명하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외환위기가 터진 후 한국 정부는 자본을 투입해 은행을 사실상 국유화했다. 박정희 때로 돌아간 것이다. 이때 경실련과 참여연대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은행 국유화에 반대했다. 진보 쪽이 원하는 게 관치경제를 철폐하고 박정희 체제를 없애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은행 국유화를 빨리 해소하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어디에 은행을 팔 수 있었겠나. 그래서 해외 매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막강했던 그 시민단체들은 매각 과정에서 노코멘트(No comment)를 했다.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다. 이게 무슨 진보인가.

당시 대우도 전체가 국유화됐다. 즉 산업은행 소유가 됐다. 그런데 이걸 매각할 곳이국내에는 없었다. 그래서 외국에 판 것이다. 대우자동차는 헐값에 GM에 넘어가지 않았나. 쌍용자동차도 중국에 팔리고, 그래서 22명이 숨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걸 가지고 요즘에 경제 민주화 이야기하는 분들이 '쌍용차 봐라. 재벌 때문에 저런 것이다. 그러니 경제 민주화를 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난 당신들이야말로 쌍용차를 저렇게 만든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에 터진 '카드 대란'과 관련해서도 정 연구위원은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거세게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는 처음에 (카드사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으려 하다가 나중에 투입했다. 그냥 놔두면 (카드사는 물론) 은행까지 파산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갖고 (지금의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시장 원리에 어긋나게 왜 카드사들을 살려주느냐. 이건 재벌 도와주기 아니면 관치금융이다'라고 비판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이야기다. 왜 정부가 불을 끄는 것도 못 하게 하나. 대공황이 터졌을 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폭풍은 사라지고 불황은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폭풍우는 언젠가 끝날 테니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였다. 경제 민주화론자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럴 거면 경제학자들이 왜 존재하나. 어떻게 하면 폭풍우를 뚫고 갈 것인지 길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두 번째 강좌는 '금융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 왜 문제인가'(강사 이종태)라는 주제로 30일에 열린다.


 /김덕련 기자

2012년 5월 7일 월요일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07일자 기사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를 퍼왔습니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주장에 답한다

-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주장에 답한다 
"재벌개혁이 낡은 화두?…그들은 쾌도난마하지 못했다"

장하준과 정승일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매우 넓다. MB정부 시기는 물론 97년 '외환위기'이후 한국경제, 나아가 근대화 50년 한국자본주의의 굵직한 주제들을 거의 포괄한다. 게다가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이후 세계경제 현안에 대해서도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그들은 나라안팎 경제사정을 아울러 어지간히 큰 지식용량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흉내내기 어려운 종합적 작업을 수행했다. 그것만으로 (선택)은 (쾌도난마 한국경제)(이하 (쾌도난마))에 이어 또 다시 '경제 시민'들에게 큰 선물이 된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의외로 모호한 구석이 있는 신자유주의 개념에 대해 장하준, 정승일이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그 개념 위에서 한국경제의 주요 문제 또는 '주요 모순'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기에 어떤 강점과 약점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선택)과 (쾌도난마) 전체를 관통하는 그들의 핵심 논지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그 기본 논지는 (쾌도난마)이래 (선택)에서도 별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장하준, 정승일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세 가지 명제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널리 쓰이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각인 각색이고 그래서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이 말은 간단히 탈규제 자유화, 사유화, 부자 감세, 노동시장 유연화, 개방화 등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의외로 딱 집어 정확히 무엇을 신자유주의라고 볼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와 합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신자유주의가 단지 정책만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축적체제(regime) 또는 하나의 자본주의 유형인지, 둘다인지, 그리고 하나의 단일한 신자유주의 형태만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러 잡종(雜種, hybrid) 신자유주의 형태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런 까닭인지 아예 '신자유주의 타령'은 그만하고 시장근본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라는 말을 써자는 주장까지 있다(김기원). 그러면 장하준 ,정승일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제1)- "신자유주의는 저성장주의이며 저성장을 위한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금융자본을 위한 자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금융자본이 기업경영의 주도권을 장악한 시스템인 것입니다"((쾌도난마), p.17).즉 그들의 경우, 신자유주의란 곧 금융자본주의, 또는 주주자본주의다. 금융이 몸통이고 실물이 꼬리로 거꾸로 선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이어서 그들은 신자유주의는 좌파와 우파의 '두가지 버전'이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제2)- " 좌파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는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이나 영국노동당의 블레어는...금융자본주의 노선을 밀어붙이고 노동시장에 최소한의 보호장치는 존속시키지만 기본적으로 유연화를 지지하고 노동조합이 자본에 밀려 약체가 되는 것을 방관하고 공공 부문 민영화를 지지한 것도 그래서이죠. 그러면서 공정한 시장을 주장하니까 독점은 규제하고요. 그에 비해 이명박 정부같은 원조 신자유주의는 노동시장의 완전한 유연화를 주장합니다. 심지어는 최저임금제에도 반대해요. 또 독점대기업도 용인합니다... 그러니까 이명박 정권은 레이건과 대처정권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클린턴과 블레어 정권에 비교할 수 있어요((선택), p.22-3).

그런데, 이렇게 신자유주의를 금융자본주의, 주주자본주의라 규정한 다음, 그들은 " 오늘날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주체는 재벌이 아니라 세계화된 금융자본이다"라고 말한다( (쾌도난마), p.237). 그들의 이런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노동운동의 주적이 세계화된 금융자본"이라는 대목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제3)- "한국노동운동의 가장 큰 착각중 하나는 반재벌투쟁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함께 갈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둘 다 '노동자의 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재벌과 신자유주의를 '같은 편'으로 간주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재벌을 타도한다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극복되고 신자유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노동시장 유연화는 반재벌투쟁을 통해 극복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거죠"( (쾌도난마), p 174).장하준, 정승일에 대한 공감

우리는 장하준, 정승일의 말이 마땅히 진지하게 경청해야 할 대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자본주의 패권국 미국이 금융주도 신자유주의 길로 돌진해 그 질병을 세계적 규모로 전염시킨 사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져 그 위기 또한 세계화되었으며 금융과두제와 양극화에 항의해 '월가 점령'운동까지 전개된 경과를 생각할 때, 그들이 신자유주의를 금융자본의 지배 체제로 파악하고 그 파괴적 효과와 위험에 대해 질타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금융 주도 주주자본주의의 위험은 결코 바다 건너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곧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뼈속까지 친미적인' 이명박 정부는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이전 김대중 ㆍ노무현 정부도 재벌개혁을 비롯한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경제를 미국식의 신자유주의, 주주 자본주의쪽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구개발주의를 결정적으로 해체한 한국경제 '97년 체제'의 골격은 김대중 정부 시기 IMF관리체제아래 만들어 졌었다.재벌개혁의 성격은 전면 개방된 금융시장의 힘과 주주가치로 재벌을 규율하는 기조를 가졌었다. 그 결과 재벌체제-민영화된 공기업도-는 현저히 주주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97년이후 재벌체제는 그 이전과 연속적 측면을 가지면서도, 주주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질적 변화를 겪었다고 봐야 한다. 97년이전이나 이후나 한국경제는 그저 변함없는 재벌자본주의 또는 총수자본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연속성만 봐서는 97년이후, 2008년이후 양극화 축적체제의 전모를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이 대목에서는 장하준,정승일의 한국경제 진단과 같이가며 주류 재벌개혁론자와는 갈라진다. 장하준은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말하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은 지난 수십년간 국민이 함께 키워온 거예요. 그런 대기업을 재벌개혁이란 명분하에 국내외 자본투자자들이나 재테크 세력에게 내주면 안됩니다. 그런 재벌개혁이라면 과거 재벌 가문사람들 500명 정도만 잘 먹고 잘 살던 걸 기껏 5만이나 50만명의 금융 자산 부자들까지 잘 먹고 잘 살게 만드는 경제민주화로 끝날 수 밖에 없어요. 우리는 그러지 말고 5000만 국민 전체가 골고루 잘 먹고 잘 사는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재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선택>, p.266).나는 장하준의 이 견해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나 또한 거의 같은 의미로 다음과 같이 쓴 바가 있다.

"이 자본의 정치적 해방의 시대에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한강의 기적과 세계 속의 한국경제를 일구는 데 가장 무거운 부담을 져 온 근로대중은 고용불안과 생존권 위기 상황에 내몰려 있다. 재벌의 부는 국민의 부(commonwealth)로,근로 대중의 생활향상으로 확산 균점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국제금융자본이 뜯어먹고 있다" (이병천, "반공개발독재와 돌진적 산업화",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한울, 2007, pp.139-140).

주주자본주의적 개혁으로 인해 지난 날 한국경제의 '집단적 협력자본주의'- 권위주의적이고 불공정 공유형태이긴했지만- 성격은 결정적으로 파괴되었고 지난 수십년간 국민 대중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함께 키워온 재벌의 과실은 재테크 세력, 금융투자자들에게 내어주기에 이르렀다. 반면 노동자와 서민, 그리고 여러 중간 집단들조차 패배자의 처지로 떨어졌다. 그러므로 더 많은 주주 자본주의를 추동하고 심화시키는 재벌개혁에는 반대하며 주주자본주의를 견제해야 한다고 보는 장하준 정승일의 주장에 나는 공감한다. 그런 개혁은 재벌과 금융자본과 유착, 공생하는 과두지배체제를 강화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한층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단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어떤 개혁인가', '어떤 민주화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관련 기사 : 재벌개혁과 한국경제 새판짜기). 금융 자유화와 주주가치를 더 심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경제민주화여야 한다. 금융 통제와 양극화 해소는 민주적 대안의 길에서 같이 가야 할 두 바퀴 친구가 되어야 한다.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금융통제없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재벌에 면죄부를 주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장하준, 정승일과 나는 어디서 갈라지는가? 위에서 인용한 나의 글에는 다음 문장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과 같은 슈퍼재벌의 무법 무책임의 횡포가 국가권력의 비호아래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장하준,정승일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벌을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재벌 개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예각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대안의 길에서 어떤 재벌개혁인가, 어떤 경제민주화인가 하는 게 문제다. 나는 장하준, 정승일의 논리에서 중대한 문제는 앞서 본 (명제 3)에 있다고 생각한다. (명제3)에서 그들은 신자유주의 축적 체제와 축적 기획의 주체가 금융자본, 무엇보다 월가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된 금융자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재벌을 한국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서 떼어내 버린다. 이제 재벌은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와 기획의 중심 지배세력이기는 커녕 노동자들과 함께 초국적 금융자본의 공격을 받는 대상으로 설정된다.( 쾌도난마, pp.85-6). 그리고 공정시장을 위한 개혁은 결국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를 하자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선택, pp.188- 194).

이런 논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재벌이 신자유주의를 선도한 세력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장하준은 이렇게 말한다.

"재벌들이 바보같은 짓을 한 거예요. 시장주의(자유주의)를 들여오면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1990년대 중반 자유기업원 등을 만들어 미국 공화당 극우파들의 극단적 개인주의나 수입하고 주주자본주의 이론 들여오고 그랬거든요.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은 거죠"((쾌도난마), p. 83).그동안 '월가- 미국 재무부-IMF 복합체'(웨이드)의 프로그램과 그 지배 복합체가 해온 짓을 생각한다면, 나는 장하준, 정승일의 주장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 지배 복합체와 그 정책 체계로서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시하는 탈규제, 경쟁시장, 사적 소유권정립, 대외개방 등은 결국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도우는 게 아니라 봉쇄하는 것이었다. 세계를 '평평하게' 하는 작업은 약소국을 강대국에 무장해제 시키는 '사다리 걷어차기'전략이 될 수 있다.그리고 우리의 경우에도 그들 지배 복합체는 재벌 해체 등 미국을 위한 극단적 구상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재벌조직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주주자본주의론을 주장하면서 장하준을 비판하고 있는 걸 보노라면 ( 송원근 , 강성원 지음,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북오션, 2011 참조), 재벌들이 바보같은 했다는 장하준의 말이 전혀 틀린 것도 아니다. 재벌 연합체 산하 연구소가 주주자본주의를 주장하면서, 재벌을 옹호해 주는 세계적인 학자 장하준을 비판하다니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재벌이 한국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배세력이 아니라니. 한국의 민주화이후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과실을 얻고 최대의 승리자가 되었다 할 재벌을 반(反)신자유주의 대열의 주체세력으로 올려 세우다니. 그리고 진보적으로 가져와야 할 공정시장을 위한 개혁을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로 가는 길이라고만 내던지다니. 이 대목에서 나의 생각은 장하준,정승일과 갈라진다. 재벌은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바보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재벌산하 연구소가 (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같은 책만 내는 건 아니다. 우리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홍순영 장재철 외, 2006) 같은 책도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장하준 정승일과 비슷하게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재벌 조직을 옹호하는 논지를 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의외로 경제적 자유화를 '기초적 자유화'와 '선진화된 자유화'로 구분한다. 그러면서 영미형 자본주의는 법의 지배와 선진화된 시장의 조합으로, 유럽형은 사회적 통합과 기본적 자유화의 조합으로 파악한다.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이후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주식시장 규율이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에 따른 많은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p29, 243)라고 쓰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연구인데도 불구하고 장하준 정승일같이 극단적 주장을 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 최고의 재벌연구소에서조차 나름대로는 균형잡힌 말을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는 장하준 정승일의 주장이 그만큼 한국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 장하준 정승일은 한국자본주의의 '주요 모순'을 '쾌도난마' 한 것 같지 않다. 이는 그들이 한국 경제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조사 연구와 안목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신자유주의를 금융자본의 단일 지배로만 파악한 탓일 수도 있다(명제 1). 신자유주의가 단지 금융자본의 지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보다 포괄적으로 지배적 계급권력의 보수적 복원, 인간과 세계의 재상품화 기획이라고 보지 않고 말이다. 그들이 한국경제를 쾌도난마하는데 빈틈을 갖게 된 것은 아마 둘다 때문일지 모른다.(계속)

▲ 이종태 <시사IN> 기자(왼쪽),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부키

이병천 강원대 교수, (시민과 세계) 공동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