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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4일 화요일

이준구 "MB, 경제 시퍼렇게 멍 들게 해"


이글은 시사IN 2012-12-03일자 기사 '이준구 "MB, 경제 시퍼렇게 멍 들게 해"'를 퍼왔습니다.
전문] "MB의 신자유주의조차 무늬에 불과"

"이명박 정부가 표방했던 신자유주의가 실제로는 무늬에 불과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MB 5년'의 경제정책에 대해 내린 총평이다. 

이 교수는 MB의 신자유주의가 무늬에 불과했다고 지적하는 이유로 "진정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했다면 감세와 더불어 정부지출을 급격하게 줄이는 조처를 취했어야 했다.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로 세금을 깎아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지출을 대폭 늘리는 정책을 추구했다. 감세정책을 통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듯하면서 정부지출을 대폭 늘려 큰 정부를 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2일 이렇듯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MB 5년'에 대한 본격 분석에 착수했다. 두 개의 글을 올리겠다고 예고한 이 교수는 우선 이날 첫번째 올린 글의 성격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무늬만 신자유주의였을 뿐 실제로는 1960년대의 관리경제정책을 추구했다는 점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앞으로 올릴 두번째 글을 통해선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수치만을 인용해 자기네들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홍보를 일삼는 MB정권'에 대한 반박을 예고했다.

그는 MB 5년간 노골적으로 진행된 시장개입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정부 개입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경기를 단기적으로 약간 끌어올리는 데 지나지 않는다. 욕심이 지나쳐 무리하게 경기를 너무 심하게 부추기려 들면 경제의 이곳저곳에 잘 보이지 않는 후유증을 숱하게 남기게 된다"며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써온 정책을 보면 바로 이런 시나리오에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의식해 경제성장률을 단 1%라도 끌어올리려고 많은 무리수를 동원한 나머지 경제의 이곳저곳에 시퍼런 멍이 들게 만들었다는 말이다"라고 질타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평가-어느 케인즈주의자의 고백

1. 케인즈학파 vs. 시카고학파

경제이론은 크게 보아 미시경제이론과 거시경제이론의 두 범주로 나누어진다. 미시경제이론은 이름 그대로 개별 경제주체 혹은 개별시장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한편, 거시경제이론은 경제 전체의 상황을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역할분담 체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케인즈학파, 시카고학파 식으로 학파를 나눌 때는 주로 거시경제이론과 결부되어 그런 구분을 한다. 따라서 나처럼 미시경제이론을 전공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렇게 학파를 구분해 어떤 학파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이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어떤 학파의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는 데 더욱 적합한지에 대한 판단은 하고 있고, 그렇다면 두 학파 중 한쪽을 지지하고 있는 셈이 된다. 내가 1970년대에 공부했던 Princeton대학 경제학과는 당시 케인즈학파의 중심 세력 중 하나였고, 특히 내 박사논문을 지도했던 Alan Blinder교수는 대표적 케인즈주의자 중 한 분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자연히 케인즈학파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케인즈학파의 현실 설명력이 더 뛰어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카고학파가 그려내는 경제이론의 세계는 한 마디로 말해 아름답고 정교하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극도로 합리적이며 물가와 임금은 생고무줄 같은 탄력성을 갖는다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보고 있는 경제에는 장기간에 걸친 불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불균형이 존재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물가와 임금의 신축성을 통한 조정을 통해 균형이 바로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는 그처럼 윤활유가 잘 쳐져 아무 마찰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부속들로 이루어진 기계가 아니다. 곳곳에 비합리성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물가와 임금이 경직성을 보일 때도 많다. 만약 모든 인간이 극도로 합리적이고 시장의 조정기능이 완벽하게 작용했다면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이 감지된 순간 합리적 인간과 완벽하게 작용하는 시장기능이 이를 해소하는 작업에 나섰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조정기능을 중시하는 시카고학파는 경기침체의 상황에서도 정부가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물론 아무리 심각한 불황이 엄습해 와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극단적인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시카고학파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다.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한 개입을 삼가고 시장기능을 활성화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 동안 나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재정학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려는 목적에서, 소득분배 상태를 개선하려는 목적에서, 혹은 온정적 간섭주의의 시각에서 경제에 적극 개입할 수 있다. 따라서 재정학자로서의 나는 정부 개입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미시경제적 관점에서의 개입뿐 아니라 경제를 안정시키려는 거시경제적 관점에서의 개입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태도를 취해온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케인즈학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탓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시카고학파의 아름다운 이론체계는 아무래도 현실성이 떨어졌고, 그렇다면 나는 케인즈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5년이 이와 같은 나의 믿음을 크게 흔들어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카고학파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현실성이 없다고 옆으로 제쳐 놓았던 시카고학파의 이론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경제를 운영해온 모습을 보면서 정부의 불필요한 개입은 약이 아닌 독이라는 시카고학파의 가르침에 한 점 틀린 것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2. 무늬만 신자유주의인 1960년대식 관리경제정책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들어섰지만, 실제로 경제를 운영해온 방식에 비추어 판단을 해보면 이명박 정부는 결코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투철한 정부가 아니었다. 시장의 자율에 맡겨 두기는커녕 정부가 모든 일에 시시콜콜 간섭해 자신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정권 초기부터 시장 상황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밀어붙인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이 그와 같은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친재벌적 태도를 취하다가 국민의 여론이 비등하자 갑자기 ‘상생’을 내걸고 이들을 압박하는 태도로 반전한 것도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태도였다.

심지어는 물가마저도 ‘이명박 물가지수’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1960년대식의 관리경제정책 체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물가상승의 압력을 이명박 정부는 강압적인 지도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공정거래의 확립이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안정의 기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 그 좋은 예다. 수요를 적절하게 관리해 물가상승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순리를 버리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강제력을 동원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태도가 신자유주의와 부합될 리 만무한 일이다.

불필요한 개입의 또 다른 좋은 예는 경기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에서 찾을 수 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가 2008년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대응으로서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오해하기 쉽다. 또한 이명박 정부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선전해 왔다. 그런 방식으로 선제적 대응을 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거듭 말해온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는 정권 출범 초부터 기본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던 핵심정책이다.

지난 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대운하’라는 기상천외한 토목공사를 핵심 공약으로 들고 나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우리나라의 현행 물류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라도 건설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심각한 동맥경화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라도 있어 그 사업을 구상했을까? 나는 절대로 그것이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내가 보기에 이명박 후보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점은 22조원의 지출이 가져올 직접적 경기부양 효과와 소위 친수공간 개발에 따른 추가적 부양효과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경기부양 효과는 그가 내건 ‘747공약’의 실천에 큰 몫을 한다고 보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촛불시위를 계기로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포기한 직후 다시 이름만 ‘4대강사업’으로 바꿔 똑같은 사업을 밀어붙인 것을 보면 문제의 핵심이 바로 22조원의 추가적 지출이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를 신자유주의적 정부라고 오인하게 된 것은 그들이 그런 시늉을 낸 데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정부라는 시늉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감세정책이다. 오래 전부터 감세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감세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를 신자유주의적 정부로 오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자감세’라는 비아냥거림 속에서 감세정책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을 보면 이것이 이명박 정부 정책의 핵심은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감세정책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묘약이라는 확신을 가졌다면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날 리가 없지 않은가?

진정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했다면 감세와 더불어 정부지출을 급격하게 줄이는 조처를 취했어야 했다.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로 세금을 깎아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지출을 대폭 늘리는 정책을 추구했다. 감세정책을 통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듯하면서 정부지출을 대폭 늘려 큰 정부를 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이명박 정부가 표방했던 신자유주의가 실제로는 무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3. 무엇을 믿고 ‘747공약’을 내걸었을까?

되돌아보면 이명박 후보가 실현가능성이 말 그대로 제로인 747공약을 들고 나온 배경이 무엇이었는지가 어렴풋이 드러난다. 이 공약에 처음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4%에서 5%에 이르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어떻게 단기간에 경제성장률을 7%대로 끌어올리는 기적을 연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경제학의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여간한 무리수를 두지 않고서는 그와 같은 목표의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 측에서는 과연 어떤 정책을 통해 그처럼 무모하게 설정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동안 이명박 정부가 운영해온 경제정책을 보면 7%의 성장률 달성을 위해 동원할 수 있다고 본 수단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우선 성장률이 높아지려면 투자가 급격하게 증가해야 하는데, 친재벌정책으로 그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한편 법인세율을 낮춰 주고 저금리기조를 유지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지금 우리 경제의 투자는 그들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명박 후보 측은 기업의 투자가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렇기 때문에 쓸모없는 정책으로 헛방을 날려버린 셈이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케인즈의 말이 시사하듯, 기업은 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느낌이 올 때에 한해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요즈음처럼 투자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가 앞으로의 전망이 불투명한 경우에는 이 말이 더욱 잘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기업이 법인세율이나 이자율의 동향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는 말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실질이자율을 거의 0%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고 투자를 애타게 기다려도 투자가 증가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여튼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747공약은 바로 이 첫걸음부터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후보측이 그 다음으로 효과 있는 정책으로 본 것은 고환율을 통한 수출촉진이었던 것 같다.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원자재 값이 아무리 올라도 환율만 높은 수준에 유지된다면 우리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다면 두 번 다시 생각할 필요 없이 환율을 그 방향으로 끌고 가면 된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의 핵심 관료들 중에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외환시장에 실제로 개입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와 같은 개입에 찬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노골적으로 고환율정책을 유지해 왔고, 이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출이 전혀 흔들리지 않은 것은 이 고환율정책의 덕이 어느 정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조금 뒤에 논의하겠지만, 문제는 외환시장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747공약 달성을 위한 마지막 카드가 앞에서 말한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였다고 짐작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전반기에 기록한 경제성장률 속에는 정부지출 증가가 기여한 것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만 없었어도 7% 경제성장률의 목표를 달성할 뻔 했다고 억울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지출을 늘려 경제성장률을 억지로 높인다는 것은 그들이 내건 7%의 경제성장률 공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747공약에서의 7%라는 경제성장률은 자신의 임기 동안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잠재)성장률을 그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뜻이지, 정부지출 늘려 반짝 상승을 이루도록 하겠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방법으로 경제성장률 높이는 것은 누구인들 못하겠는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747공약의 배경에는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서라도 경제성장률을 일시적으로나마 그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행운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때마침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폭풍 때문에 그렇게 무리수를 둠으로써 과연 7%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를 검증할 기회마저 날라가 버렸다. 그러나 나는 온갖 무리수를 동원했어도 일시적이나마 그 목표를 달성하는 일조차 불가능했으리라고 믿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직 본격화되기 전인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의 성과가 그리 눈부시지도 않았던 것을 보면 그렇게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4. 무분별한 인위적 개입의 불행한 유산

이명박 정부는 그래도 자기네들이 경제정책만은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선전한다. 그 근거로는 OECD 가입국들 중 우리처럼 빨리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회복된 나라가 없다는 것을 든다. 바로 뒤이어 발표할 글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겠지만, 우리를 미국이나 유로존 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 평가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의 진원지로서 그 직격탄을 맞은 나라들이다. 우리처럼 그런 위기와 비교적 먼 거리에 있었던 경제가 그들의 경제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아보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해서 하등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백보를 양보해 두 차례의 위기에서 살아남게 만든 공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무리수, 즉 불필요한 개입은 우리 경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불행한 유산을 숱하게 남겨 놓았다. 시카고학파가 불필요한 개입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은 그것이 경기를 일시적으로 반짝 되살려 놓는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경제구조를 왜곡하고 체질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권 출범 초 무리하게 밀어붙인 고환율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허덕이고 있던 중소기업들에게 치명적 손실을 가져다준 KIKO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은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KIKO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장의 펀더멘탈을 무시하고 고환율정책을 추구했고, 그 결과 중소기업의 줄도산 사태를 야기했던 것이다.

또한 2008년 여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한때 환율이 위험수준까지 뛰어오른 적이 있었다. 다행히 위기를 맞지는 않았지만, 바로 몇 달 뒤에 환율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을 쓴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 사례를 보면 시카고학파가 왜 과도한 정부 개입이 경제를 더욱 불안정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을 경고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수출을 늘리려는 욕심에서 외환시장에 부질없는 개입을 일삼다가 뜻밖의 위기를 맞을 뻔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뿐만 아니라 환율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정책은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환율이 1,100원대 이하로 떨어지자 우리 기업들의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난리법석이 일어났다. 과거에는 900원대의 환율에서도 끄떡없이 수출하던 우리 기업이 왜 1,100원선이 무너지면 수출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을 치게 되었는가? 높은 환율이 우리 기업들에게 보호효과를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같은 보호에 안주하는 타성을 길러주게 된 것도 사실이다. 기업이 때로는 시장의 호된 채찍을 맞아 보아야 매를 견디는 강한 체질을 키울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정책은 우리 기업들이 스스로 체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린 결과를 빚었다.

정부가 인위적 개입을 통해 물가를 통제하려 할 때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가 불안이 눈앞에 닥쳐 있는데도 정부는 물가 불안을 더욱 부추길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인위적 개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다행히 세계 경제가 극도의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덕분으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는 위험한 줄타기를 한 셈이다. 지금도 잘 살펴보면 시장 이곳저곳에 그와 같은 인위적 개입을 통한 물가 관리의 후유증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경기부양을 위해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22조원이란 어마어마한 정부지출을 쏟아 부은 4대강사업의 문제점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자기 임기 중에 끝내려는 욕심에서 여론의 수렴도 없이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4대강사업은 우리 경제, 사회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겨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집권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무런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고 22조원이나 드는 거대토목사업이 하루아침에 시작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은 효율적이며 공정한 정부를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그렇게 투입된 22조원이 반짝 경기회복에 얼마나 큰 효과를 냈는지 몰라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갖가지 부정적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5. 이명박 정부가 우리에게 준 교훈

이명박 정부의 5년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이 세상에 경제를 기적처럼 되살리는 묘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의 실험에서도 이미 의심의 나위 없이 입증된 사실이다. 기적처럼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등장한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와 새처리즘(Thatcherism)의 귀결을 보면 그와 같은 약속은 애당초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5년은 어느 누구가 얼마나 달콤한 목소리로 나는 경제를 기적처럼 되살릴 비방이 있다고 속삭여도 그 말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실질적으로 정부 개입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경기를 단기적으로 약간 끌어올리는 데 지나지 않는다. 욕심이 지나쳐 무리하게 경기를 너무 심하게 부추기려 들면 경제의 이곳저곳에 잘 보이지 않는 후유증을 숱하게 남기게 된다. 그 결과 경제의 전반적 체질이 약해져 오히려 장기적 성장이 둔화되는 역효과를 내고 만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써온 정책을 보면 바로 이런 시나리오에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의식해 경제성장률을 단 1%라도 끌어올리려고 많은 무리수를 동원한 나머지 경제의 이곳저곳에 시퍼런 멍이 들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가능한 한 개입을 삼가고 시장기능을 최대한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카고학파의 가르침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가 경제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는 과욕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몰아가려고 해도 쉽게 몰아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과욕 때문에 무리수를 두게 되면 경제에 더 큰 해를 입힐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카고학파는 정부의 개입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이 4%에서 5% 정도인 경제를 하루아침에 잠재성장률 7%대의 경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허황된 과욕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과욕이 이명박 정부 5년의 경제정책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린 주범이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록 화려하게 보이지는 않더라도 경제를 순리에 맞게 이끌어가는 것이 올바른 길임에도 불구하고, 과욕 때문에 흐려진 눈에는 그 분명한 답이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수치만을 인용해 자기네들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홍보를 일삼는다. 다른 글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그들이 제시한 통계수치 그 자체만으로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반박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무리하게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은 경제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지 않은 채 우리 경제의 활력을 지속적으로 좀먹고 있다. 앞으로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그 후유증의 전모가 우리에게 분명히 밝혀지리라고 생각한다.

박태견 기자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노무현-이명박이 강조한 '선진화'의 함정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7일자 기사 '노무현-이명박이 강조한 '선진화'의 함정'을 퍼왔습니다.
[민생복리가 경제민주화다] (1) 신자유주의 망령과 위험한 유희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이것은 국민적 합의이며, 경제발전 불균형에 따라 국민적 불만이 발화점에 달했다는 뜻이다. 역대정권이 노동의 가치는 말하지 않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니, '친기업'이니 떠들며 자본 위주의 편향적 경제-사회정책을 펴온 결과이다. 이에 따라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난제는 양극화이다.

역대정권이 시장주의와 규제완화에 근거한 신자유주의를 맹신한 결과 계층-부문 간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계층-부문 간의 반목과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그 간극을 좁히지 않고는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단계에 이르렀다.

정치권이 내놓는 경제담론을 보면 구체성-현실성이 결여된 채 재벌개혁에만 매몰되어 있다. 경제민주화를 자칫 잘못 논의하다가는 이념논쟁만 유발하여 본질은 증발되고 사상논쟁만 남을 공산이 크다.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민생복리이다. 그 지향점은 양극화 완화를 통한 사회통합이다. 논의의 초점을 민생복리에 맞추지 않는다면 경제민주화는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만 남는다. (연재 전문)

2007년 봄 세계금융시장에 엄습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1년 반이 지나서 기어코 대폭발을 일으켰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지인 월스트리트를 초토화한데 이어 세계경제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것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발진해 20년 이상 세계경제 질서를 재편해온 시장주의와 규제완화를 골격으

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의미한다. 사태진전에 따라서는 21세기의 제국 미국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판국이다.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라는 재정-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려온 미국은 1980년대 중반에 들어 해외시장 개방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통상정책을 전환했다. 군사력을 배경으로 세계시장을 열어젖히면서 그 전면에 내건 기치는 시장주의와 규제완화이다. 1989년 공산주의의 붕괴로 미국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극하자 '국경 없는 세계경제'(borderless world)라는 전략목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상품뿐만 아니라 용역-자본-기술-인력의 이동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철폐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자 간 협정인 WTO(세계무역기구)와 양자 간 협정인 FTA(자유무역협정)이다. WTO와 FTA의 본질은 시장주의와 규제완화에 근거한 무차별적인 시장개방이다. 미국자본이 세계의 모든 시장, 모든 영역에서 제약 없이 사업을 영위하도록 보장하라는 것이다. 미국인이 돈을 버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규제를 풀라는 뜻이다.

그래서 한국도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해 금융-자본시장을 활짝 열었고 외국인의 부동산 매입도 허용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정리해고, 비정규직을 도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교육도 의료도 시장으로 보고 개방을 압박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역대정권이 미국의 개방압력에 편승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규제완화를 발전전략으로 답습해 왔다. 그 선봉에는 미국 유학파 관료집단이 포진해 있다. 김영삼 정권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과 금융-자본시장 개방, 외환위기로 인한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도입. 김대중 정권의 노동시장 규제완화에 따른 양극화 심화, 부동산 규제완화로 인한 투기촉발. 노무현 정권의 한-미 FTA 추진과 한국경제의 미국종속화. 이명박 정권의 공적영역 민영화를 통한 신자유주의 완결판 등이 그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경제-사회정책은 미국 신자유주의의 복사판이다. 그 대표격이 금융산업 규제완화이다. 자본의 탐욕이 빚은 월스트리트의 대참사라는 교훈을 목도하고도 재벌은행 탄생을 밀어붙였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경계철폐가 그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투자은행을 모방한 자본시장통합법이 2009년 2월 시행에 들어갔다. 여기에 재벌의 계열확장의 길을 트려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했다.

▲ 한미FTA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돼 이명박 정부 때 체결됐다. ⓒ뉴시스

공기업 선진화 또한 위험한 함정이다. 선진화란 말장난에 불과한 속임수이다. 노무현 정권도 정책변화 앞에는 꼭 선진화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심지어 기자실을 폐쇄하면서도 취재선진화 방안이라고 강변했다. 노무현 정권의 정책이라면 무엇이든지 냉소적이던 이명박 정권도 선진화라는 단어를 그대로 답습해 썼다.

민영화는 영어로 'privatize'이다. 사유화란 뜻이다. 공적영역을 사적 자본한테 넘겨 독점이익을 보장하면 오히려 후진화가 될 수 있다. 물, 불, 빛은 인간생존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말 바꾸기를 하면서 상수도, 전기, 가스를 민영화하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인간 삶의 기초적 요소를 독점자본의 탐욕에 맡기려 들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우수한 인간에 의해 사회가 진화하고 발달한다는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을 신봉한다. 다시 말해 미국 자본주의는 바로 이 적자생존론에 근거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교육에서도 그대로 차용했다. 교육을 산업과 시장으로 보는 이른바 자율화 정책이 그것이다. 초등생을 일제고사를 통해 서열화하고 2008년 국제중 설립을 결정했다.

전파는 국민의 재산이다. 따라서 전파는 어떤 정파-자본의 독점물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의 민영화를 추진하다 성사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조-중-동에게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방송사업권을 허용했다. 공공재인 방송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려 했던 것이다. 의술을 인술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하게도 상업적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다음 대통령은 공적영역의 가치를 신봉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노령화사회를 넘어 노령사회로 진입할 단계다. 이제 과중한 의료비 부담이 국민적 과제로 다가왔다. 그런데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공영제를 해체하려는 불순한 시도가 그치지 않는다. 국민은 보편적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전력, 수도, 도로, 공항 등 공적영역을 민영화하려는 시도 또한 차단해야 한다. 이미 공항, 도로, 지하철이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부분적으로 사적 자본에게 넘어갔다. 이것은 사영화(privatization)이다. 국민에게 무차별적-보편적 혜택을 제공해야 할 공적영역(public sector)이 특정-독점자본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몰락을 보고도 그 망령과 위험한 유희를 펼치겠다는 뜻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2012년 8월 19일 일요일

운이 좋다면 피할 수 있을까, 쌍용을, 이 신자유주의를


이글은 한겨레21 2012-08-20일자 제924호 기사 '운이 좋다면 피할 수 있을까, 쌍용을, 이 신자유주의를'을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한여름날의 지옥 3년 뒤, 출소한 한상균 전 지부장과 (의자 놀이) 펴낸 소설가 공지영의 만남…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사랑한 현장으로 돌아갈, 마지막 희망이 필요하다

한 여름날의 지옥. 2009년 8월5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이 그랬다. 그 7개월 전 서울 용산 참사의 직간접적 원인이었던 경찰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가 공장 지붕 위에 상륙했다. 방패와 곤봉을 쥔 무장 특공대들의 시선은 당황한 노동자들을 토끼몰이하듯 좇았다. 마구잡이 구타. 공장 위를 맴돌던 헬기는 최루액을 비처럼 뿌려댔다. 사 쪽의 2646명 정리해고 계획을 막겠다며 76일째 옥쇄파업을 벌이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 600여 명을 진압하려는 작전이었다. 이날 조합원 100여 명과 경찰 34명이 다쳤다. 이미 열흘 넘게 전기와 물이 끊긴 공장 안에서 경찰·용역 대 조합원 간 충돌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그 다음날 한상균(51)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회사 쪽에 대화 재개를 요청했다. 이날 노사는 마지막까지 남은 정리해고 대상 조합원 974명 중 468명(48%)은 무급휴직 1년 뒤 생산물량에 따른 순환근무로 고용을 유지하고 나머지 52%는 희망퇴직을 하는 안에 합의했다. 그날 저녁 한 전 지부장은 조합원 한명 한명과 포옹하며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눴다. 파업 종료 합의 뒤에도 국가와 회사는 ‘폭력시위’로 피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 따위를 제기하는 등 쌍용차 노조 집행부와 조합원들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가슴에 멍이 생긴 해고·무급휴직·희망퇴직자 2천여 명에겐 경제적 고통과 가정불화가 쓰나미처럼 밀어닥쳤다. 그 고통이 쌍용차 노동자·가족 22명의 목숨을 앗아갈지, 그땐 그 누구도 몰랐다.

» 한상균 전 지부장과 소설가 공지영

용산 이후 ‘도가니’로 빠져든 사회

지난 8월4일 밤 12시 한상균 전 지부장이 옥문을 나섰다. 노사 합의 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대법원에서 3년형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만기 출소한 것이다. 옹근 3년이다. 그 사이 쌍용차의 경영 실적은 나아지고 있지만 복직된 조합원은 아무도 없다. 노사 합의문은 회사 쪽엔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그 휴지 조각이 22명의 생명줄을 끊어놓았다.
한 전 지부장은 8월6일 오전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추모 분향소를 찾았다. 이미 말라버렸다 여긴 눈물샘이 금세 차올랐다. 그날 소설가 공지영(49)은 쌍용차 파업 전후 과정을 기록한 르포 (휴머니스트 펴냄)를 출간했다. 동료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산 자와 죽은 자로, 승자와 패자로 갈라놓은 쌍용차 정리해고 전후의 사태를, 사람 수보다 모자란 의자를 차지하려고 가족과 친구를 밀어내야 하는 ‘의자놀이’에 비유한 것이다. 8월6일 저녁,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카페에서 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과 소설가 공지영이 마주 앉았다. 대화의 시작점은 다시 3년 전 평택 공장이었다.

공지영 작가(이하 공) 3년 전 우연히 뉴스를 통해 쌍용차 조합원들이 경찰에 진압당하는 장면을 봤다. 그때 ‘저 사람들 처음 싸우는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다. 30초가 안 되는 그 짧은 장면을 어떻게든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실은 한 번도 잊지 않고 있었다. 늘 미안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제발 빨리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다. 그때 빚을 이제야 갚는 것 같다. 소설 를 쓰고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쌍용차 문제가 생겼다. 내가 예지 능력이 있는 건 아닌데, 용산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점점 ‘도가니’로 빠져들더라.

한상균 전 지부장(이하 한) 3년 전 파업을 마무리할 당시엔 워낙 많은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그걸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 생각은, 살려고 투쟁하는 건데 그 투쟁 때문에 많은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안길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가장 큰 문제는 조합원들의 안전이었다. 공권력이 투입되면 수백 명이 사고를 당할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국가는 ‘설마’ 하며 별다른 고민 없이 공권력으로 밀어붙인 거 같다.

서로를 미워하게 만드는 실체 없는 ‘유령’

공 를 쓰는 동안 특이한 경험을 했다. 쌍용차 문제에 대한 상황 파악은 금방 됐다. 그런데 집필을 시작하면 잠을 못 자는 거다. 빙의 같은 현상이었다. 잠을 못 잔 지 사흘째 되던 날 하품을 하는데, 그 순간 지금까지 하품조차 한 번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름이 끼쳤다. 하품도 하지 않는 건 완벽한 초긴장, 병적인 상태다. 생각해보니 파업 끝나기 전 공장에 전기·물 공급 끊기고 경찰 헬기 뜨던 상황이 그랬을 거 같더라. 한 조합원한테 물어봤더니 그때 잠을 못 잔 조합원이 많았다는 거다. 조합원들이 그런 초각성 상태에서 공포까지 가중됐다면 정말 빨리 정신 상담을 받아야 했는데, 국가와 회사 쪽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잠을 잘 수 없을 거란 두려움으로 글을 쓰지 못하던 와중에 오래전 참석을 약속한 평택역 앞 거리 미사에 갔다. 미사 도중에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한 조합원 아내한테 휴지를 좀 달라고 하니까 이 양반도 울고 있더라. 그날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섭다고 안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쓰지 않을 거면 여기서 포기하고, 그게 아니면 잠 못 자도 쓰자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약간 잠이 오더라.
한 자료를 통해 77일간의 파업 과정을 파악했다고 들었는데, 어느 부분에서 몰입이 됐는지 궁금하다. 쌍용차 사태는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지 않나. 22명의 희생에 대한 동정일 수도 있고.
공 이게 단순히 노동계급의 이야기가 아니라 99.9%들의 일이구나, 내 자식이나 이 사회의 흥망성쇠가 쌍용차 문제 해결에 달렸구나 싶었다. 경영이 어려워져 노동자들이 ‘자구책이 있으니 한번 해보겠다’고 하는데도 사 쪽에서는 ‘시끄러워. 너희는 나가’라며 몰아냈다. 법대 교수들한테 그런 법이 어딨냐고 물어봤더니 ‘어쩔 수가 없다. 이게 신자유주의다’라고 하더라. 그때 이게 내 문제가 되겠구나 싶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노동자와 노동자를 서로 미워하게 만들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유령, 그 유령하고 싸워야 하니까 사람들이 돌지. 선생님한테 맞은 애들은 친해질 수 있지만 선생님이 시켜서 서로 따귀를 때린 애들은 친해질 수 없다. 상대방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말이다.
한 문제의 발단은 2005년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기술을 빼가는 ‘먹튀’ 경영을 한 것이다. (상하이차는 쌍용차 인수 때 약속한 투자 계획을 지키지 않다가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언론 등이 이런 문제는 외면하고 노사 문제로만 몰아갔고, 공권력이 과도하게 개입했다. ‘유령’은 거기서부터 떠오른 것이다.
시민사회나 작가 단체들이 나선 건 ‘이게 내 자식이나 이웃의 문제다’라는 공분이 생겨서인 듯하다. 그런데 이런 (연대의) 싹이 자라기 전에 잘라야 한다고 여기는 집단이 있다. 양쪽 간 접점을 과연 어느 지점에서 만들지 힘겨루기 과정에 있는 것 아니겠나. 요즘 자본의 사병들이 공권력의 비호 아래 노동자들을 두들겨패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공 자료를 보니 쌍용차와 계약을 맺은 경비업체가 용역 1인당 하루에 24만7천원 정도를 지급했다고 신고했더라. 헬기 한 번 띄우는 데 600만원이 든다더라. 그런 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면 안 되나 싶었다. 경찰은 쌍용차 평택 공장에다 10년묵은 최루액 2천ℓ 이상을 부었고, 테이저건·고무탄 따위 온갖 무기를 시험했다.


하루아침에 빈민·빨갱이, 그리고 죽음

해외자본의 무책임과 부정, 정부의 방관, 무리한 공권력 투입,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정리해고,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뉜 노-노 갈등과 공동체 붕괴, 무력화된 노사 합의…. 쌍용차 사태는 ‘운이 좋아야 피해갈 수 있는’ 우리 사회 문제의 집합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안도하는 사이 2천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 가운데 22명이 죽어나갔다.
공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이 너무 범생이였다. 별로 낮지 않은 월급을 받았고, 준법정신이 투철했다. 스스로 경찰과 대적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지. 우린 학생운동 하며 경찰을 비난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한테는 그런 상황이 범법인 거다. 게다가 평택이 보수적인 지역이고. 별걱정 없이 모범적으로 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빈민·빨갱이가 됐고, 죽음의 경험까지 덧붙여진 거다.
한 쌍용차는 다른 대공장보다 노사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돼왔던 사업장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 말살을 경험하니 모두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연결되고. 개인의 선택이지만 구조적으로 죽임을 당한 사회적 타살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국가와 회사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공 진압 과정에서 공권력이 ‘너희 따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고 벌레만도 못해’라는 메시지를 준 것 같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돈 많은 놈이 나를 때리면 공권력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더 커진 듯하다.
한 파업 와중에 ‘한상균은 파업 끝나면 민주노총으로 간다, 누구누구는 정치한다, 조합원들만 희생양이다’ 이런 헛소문들이 돌았을 때 상처를 많이 받았다. 개개인은 나약하다. 파업을 하며 그런 면들을 낱낱이 봤지만, 지난 3년간 그 기억을 싹 지웠다. 지우지 않으면 세상 보는 눈이 비뚤어져 내가 살지 못할 것 같았다. (파업 조합원들한테 폭력을 행사하고 회사 편을 든 사람들도) 우리 조합원인데 왜 용서를 못하겠는가. 생존을 빌미로 흔들었을 때, 누구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몰고 가는 자본이 악랄한 것이다. 영혼을 짓밟는 일이다.
공 여러 자료를 보며 한 전 지부장에 대해 궁금했다. 이렇게 존경받는 지도부는 처음 본 것 같다. (2009년 6월26일 관리직·비해고 노조원 3천여 명의 공장 진입으로) 처음 (노-노) 충돌이 있었을 때 노조 지도부가 사 쪽 직원들과 맞서지 말라고 방침을 내린 건가, 아니면 파업 조합원들이 착해 쇠파이프를 못 든 건가?
한 같은 조합원들한테 폭력을 쓸 수 없다는 방침은 분명했다. 이를 조합원들에게 내부 방송으로도 알렸다.
공 적극적으로 폭력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건데, 그럼 어느 순간부터 조합원끼리 맞선 건가?
한 처음엔 서로 냉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것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용역들이 한 거다. 우리가 밀릴 수밖에 없는 입체적인 작전이 있었다. 그러다 노-노 간 우발적 충돌이 발생했고 감정이 격앙되게 된 것이다.
공 취재할 때 그 이야기를 듣고선 ‘싸우는데 가릴 게 뭐 있어’라고 생각했다. 파업 노동자들이 전기가 끊긴 도장공장 안에 있던 비상발전기를 자동차용 페인트가 굳지 않게 하는 데 썼다고 하더라.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회사 손해 걱정하게 생겼나. 전기 끊긴 도장공장의 불을 밝히는 데 비상발전기를 써야지, 그게 싸움을 이기자는 사람들이 할 일인가. 그렇게 울컥울컥하는 심정이 들다가도 결국 이런 것 때문에 이 사람들이 이기겠구나, 이 바보 같은 패자들이 결국은 그 바보스러움 때문에 다시 승자가 되겠구나 싶었다. 사람들한테 ‘올바르게 사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가르쳐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보 같은 일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오히려 사람들에겐 많은 걸 준다. 뉴스에서 보던 것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울컥한다. 그렇게 행동해줘서 조합원들에게 감사했다.

비상발전기로 도료 굳지 않게 한 사람들

한 해고자·희망퇴직자,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조합원일지라도 쌍용차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못 봤다. 그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다. 쌍용차는 강소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활력을 찾아갈 수 있는 조건이 있는데, 경영진들이 이를 외면하면 안 된다. 차량 판매 캠페인 등 일터에 복귀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찾을 수도 있다. (현재 쌍용차의 대주주인) 마힌드라 경영진은 그들이 강조해온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국내에서 한 단계 도약하려면 하루빨리 해고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공지영 작가와 얘기를 마친 뒤 지하철을 타고 동료들이 있는 대한문으로 다시 향했다.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그에겐 휴대전화가 없다. 지하철 안 승객들이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광경도 낯설다. 진중한 말투에선 오랫동안 비워둔 아버지·남편·아들 자리에 대한 고민이 묻어났다. 3년이란 시간은 많은 걸 변하게 한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만으론 쌍용차 노동자들의 비극을 막아낼 수 없다. 다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 잘못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희망, 그토록 원하던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하다. 이제 의자놀이는 그만 두고, 비극의 강을 건널 희망의 징검돌을 놓는 일에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한다.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의자놀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한 권 사면 4200원 후원

쌍용차 정리해고 과정 및 파업 전후 이야기를 담아낸 (의자놀이)는 쌍용차 문제 해결을 열망하는 이들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졌다. 대표 집필자인 공지영 작가는 자신의 인세(책값의 10%)를, 편집·디자인·마케팅 등을 맡은 휴머니스트 쪽은 수익금 전액을 쌍용차 해고노동자 후원 기금으로 내놓기로 했다. 독자가 (의자놀이) 한 권을 사면, 4200원을 후원하게 된다. 제작 원가와 서점 마진 등 유통 비용을 뺀 저자 인세와 출판사 수익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책이 출간된 뒤, 일부 중소 서점들도 수익금을 후원 기금에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 잘못 표기된 법률 용어를 체크해주거나 인터넷에 서평을 올리는 등 책 제작과 홍보에 도움을 주려는 독자도 늘고 있다. 책 출간을 기념해 8월18일 저녁 7시 쌍용차 희생자 추모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대한문 앞에서 북콘서트‘들국화와 함께하는 공지영의 의자놀이’가 열린다.
공지영 작가는 그동안 공개된 쌍용차 관련 기록이나 기사·칼럼·인터뷰 등을 참고해 집필에 나섰다. 원문을 작성한 이들이 인용을 허락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공 작가가 쌍용차 사태 3년의 전 과정을 직접 현장 취재한 게 아닌데도 ‘르포르타주’의 형식을 취한 탓에 일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이 르포 작가 이선옥씨의 글을 인용해 2012년 4월26일치 (경향신문)에 기고한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는 불행하다’라는 칼럼의 재인용을 둘러싼 ‘표절’ 논란이 대표적이다. 공 작가가 직접 쓰지 않고 인용한 글인데도 출처를 책의 맨 뒤에 간략하게 언급해 다수의 독자들이 공 작가의 글로 오해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1차 저작권자인 이선옥씨의 동의를 받지 않은 점 등은 잘못이라는 하종강·이선옥씨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 출판사 휴머니스트 편집팀은 8월9일 (의자놀이)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쌍용차 이야기를 더 울림 있게 전하고 싶어, 일부는 본문 중에 인용 출처를 밝히고, 일부는 책 뒤편에 인용 출처를 수록했고, 해당 칼럼 중 일부가 이선옥 작가 글의 재인용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며 “두 분의 요청에 따라 이후 출간되는 책에선 문제가 된 글을 삭제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왜 이 씨 가문과 타협해야 복지국가 될 수 있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24일자 기사 '"왜 이 씨 가문과 타협해야 복지국가 될 수 있나"'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유종일 KDI 교수 "자본 통제, 재벌 개혁…둘 다 하면 된다"

"의미 있는 토론이긴 한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최근 (프레시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 경제 성격논쟁'을 두고 나오는 말 중 하나다. 이런 기대 섞인 우려를 여러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20일 만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에게서도 같은 진단을 들었다. "생산적인 논쟁이 돼야 할 텐데 아쉽다." 유 교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 쪽으로부터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은 경제 민주화론자 중 한 사람이다. 인터뷰는 KDI의 유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유 교수는 "필요한 논쟁이긴 한데 굉장히 감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 비슷하게 하고 재벌들이 횡포를 부려 불균형과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시장과 재벌을 규제하고 조정해서 바꿔야겠다'는 것이 한국 사회에 형성된 합의다. 상황이 이러한데, '경제 민주화론자는 신자유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건 경제 민주화를 고민하는 사람들로서는 좀 황당한 일이다."

유 교수는 "장하준 교수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왜 재벌과 타협해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건가?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된다. 세금을 걷고 그 세금으로 복지 정책을 실시한다, 이렇게 하면 된다. 왜 (삼성) 이씨 가문과 타협해야 복지국가가 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재벌과 대타협' 문제와 관련해 유 교수는 "법 위에서 놀고 있는 재벌들이 뭣 때문에 타협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이뤄져야, '타협하지 않으면 나도 손해를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타협하는 것이다. 그 힘을 만들자는 것이 재벌 개혁 운동이다."

  ▲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생산적인 논쟁으로 바꿔가야"


유 교수는 "생산적인 논쟁이 돼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논쟁을 위한 논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그걸 고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개혁을) 하다보면 예기치 않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무엇인지, 구더기(부작용) 무서워 장을 안 담그는 게 맞는 건지, 그게 아니라 장을 담그려면 어떤 보완 대책이 필요한 건지, 이런 식으로 가야 생산적인 논쟁이 된다.

(…) 장하준 교수 쪽도 '재벌이 다 잘하고 있다'는 건 아니고 이러저러한 건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것 아닌가. (…) 어떻게 재벌을 개혁하고 경제 민주화를 이루고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지, 그리고 장 교수가 이야기하는 국제 투기성 금융 자본의 폐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논의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서로 접점을 찾으며,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 방식의) 생산적인 논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유 교수는 "자본 통제가 우선이냐, 재벌 개혁이 우선이냐 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말했다.

"둘 다 하면 되는 것이다. 재벌 개혁을 하면 자본 통제를 못한다? 자본 통제를 하면 재벌 개혁을 못한다? 전혀 그런 게 아니다. (…) 자본 자유화에 가장 앞장선 세력이 누군가? 재벌이다. 또한 재벌은 최고의 수혜자다. 재벌들이 금리 싼 자본을 열심히 들여오고 했던 것 아닌가."

유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재벌 개혁과 자본 통제를 대립적인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1997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 '(변화한 한국에 대한) 감을 잡을 때까지 몇 년간은 대중적인 글쓰기를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걸 딱 2번 어겼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쓴 것 중 하나가 외환 자유화 2단계를 할 때 반대한 것이다. 그밖에도 학술회의,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자본 통제를 해야 한다'고 여러 번 주장했다."

"경제 민주화는 역사적 과제…국민이 원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에 반대하는 힘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있다"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사례로 들었다.

"우리의 주된 전선은 거기다. (…) 전경련부터 해체해야 한다."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는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 119조 2항은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 시장 지배력 남용 방지 등을 위해 정부가 규제 및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경제 민주화의 근거 조항으로 여겨진다. 또한 "국민이 경제 민주화를 절절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드 수수료 문제 갖고 음식점 주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청년들은 최저임금이나아르바이트생 권리 문제 등을 놓고 싸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여기저기서 싸우고 있다. 희망버스도 많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업형 슈퍼마켓 때문에 동네 가게 주인들은 다 죽을 맛이다. '우리도 먹고살게 해달라. 왜 대기업만 잘나가냐', 이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국민들이 원하니까, 정치권도 표를 얻으려고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 과제로 꼽히는 재벌 개혁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흔치 않은 기회가 왔다"고 진단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때 재벌이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재벌 개혁이 사회의 중심 과제로 등장했다. 많은 개혁 조치가 이뤄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벌의 힘이) 부활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폐해가 더 심해졌다. (…) (요즘 재벌 위주 경제의 폐해를) 국민들이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 재벌 개혁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유 교수는 재벌 개혁의 핵심이 "총수 지배 체제를 바꾸고 소유 지배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유 교수는 이를 위해 순환 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 계열 분리 명령제, 노동자 경영 참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는 역사적 과제"라며 "꼭 단기에 승부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길게 보면 반드시 이뤄질 일이고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유 교수에게 물었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과 재벌 개혁을 연결시킬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일까.

"예를 들면, 법인세 비과세 감면 액수가 굉장히 많다. 그걸 전면적으로 없애고, 딱 하나세제 혜택을 주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물론 고용 문제는 한두 가지로 풀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진짜 뭐 좀 달라지겠구나', 이런 느낌이 확 올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김덕련 기자

'변절'한 경제학자를 찾습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25일자 기사 ''변절'한 경제학자를 찾습니다'를 퍼왔습니다.
[데스크 칼럼] '한국경제 성격 논쟁', 아쉬운 대목들

'변절'은 꼭 나쁜 걸까. 헷갈리는 질문이다. 물론, '좋다 나쁘다'를 따지기조차 민망한 '변절'도 제법 있다. 예컨대 파릇파릇한 대학 신입생들에게 '주체사상만이 진리'라고 강변하다가 어느 순간 극우파로 돌변하더니, 이젠 아무에게나 '종북' 딱지를 붙이려 드는 이들이 있다. 이런 경우는 '옳다, 그르다' 또는 '좋다, 나쁘다'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 그냥 볼썽사나운 경우다.

성찰이 있는 변절은 감동을 준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주입한 '휴전선 너머에는 승냥이떼가 산다'라는 신념을 여전히 꺾지 않고 있다면? 혹은 일제 강점기에 주입된 신념을 계속 유지하는 어른이 있다면? 이런 경우라면, 참 곤란하다. '변절'을 적극적으로 권할 일이다. 굳이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어도, 10대 또는 20대 시절 품었던 생각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지내는 이들이 있다면, 누구든 적당한 변절을 권하고 싶어질 게다.

세계관, 가치관은 현실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변화하는 게 옳다. 물론, 이 과정에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또 대중적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소신의 변화를 설명하는 논리를 갖춰야 한다. 그게 책임 있는 자세다. 글머리에서 예로 든 이들이 볼썽사나운 이유는 자신들의 극단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논리가 워낙 옹색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대로 된 변절, 성찰이 있는 변절은 깊은 감동을 준다. 주변 사람들에게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인전 속 인물들은 종종 이런 종류의 변절자들이었다. 지금껏 품었던 생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도, 낡은 생각을 고집한다면 비겁한 짓이다. 설령 조금 거칠고 엉성해도,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새로운 현실에 어울리는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걸 지닌 이들이 많았다면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에게 국권을 뺏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런 용기를 지닌 이들이 많았다면, 1980~90년대에 무수히 생겨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게다.

돌고 도는 논쟁

뜬금없는 '변절 예찬'을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최근 (프레시안)에선 '한국 경제 성격 논쟁' 기획이 진행 중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 등의 주장이 한축이다. 또 이들이 비판대상으로 삼는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이 다른 한축이다. 재벌개혁, 박정희 정권에 대한평가, 산업정책의 중요성 등에 대해 상당한 이견이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한국 경제의 성격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점을 높이 사는 독자들이 많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해당 지면을 담당하는 기자 입장에선 아쉬움이 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등의 문제제기는 크게 새롭지 않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지적했듯, 이들의 문제의식은 2001년 발족한 대안연대회의 활동 속에서 이미 잘 드러났다. 이들의 비판 대상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현 경제개혁연대)를 중심으로 소액주주운동을 해 왔다. 지금 벌어지는 논쟁은 과거 대안연대회의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과 상당부분 겹친다. 물론, 새롭지 않다는 게 꼭 비난받을 점은 아니다. 과거의 논쟁을 현실 속에서 다시 조명하는 게 필요한 때도 많다. 어차피 역사란 중요한 쟁점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경제의 대세가 바뀌었는데, 왜 '변절자'가 안 나올까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논쟁이 태동한 2000년대 초와 지금 사이에는 결정적인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2008년 금융 위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 자본주의의 성격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외국에선 숱한 사회과학자들이 기존 입장을 바꿨다. 예컨대 클링턴 행정부에서노동부 장관을 지냈으며 미국 민주당의 이데올로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로버트 라이시 미국 UC버클리 대학 교수는 2008년 이후 확실히 좌회전 했다. 금융위기 이후에 출간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전작인 (슈퍼자본주의), (부유한 노예) 등과 확연히 다르다. 어찌 보면 '작은 변절'인데, 이런 변절자가 미국, 유럽 등에선 제법 흔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선 이런 변절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상아탑 안에만 머물렀던 학자들은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들은 어차피 현실과 거리를 둬 왔다. 그러나 현실에 깊이 개입했던 학자들이 현실의 거대한 변화 앞에서도 아무런 생각 변화가 없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현실은 바뀌는데 생각은 그대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그렇게 망했고, 1980~90년대 운동권이 그렇게 망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과잉과 구자유주의의 결핍, 저울은 어디로 기울어야 할까

물론, 생각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이끌었던 김상조 교수의 경우, 최근 출간한 에서 그간 진행한 소액주주운동을 통렬하게 반성했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이른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모델 중심의 지배 구조 개선 노력이 후하게 평가돼도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에서 헤매고 있으며, 박하게 평가하자면 정상 궤도를 이탈해 사실상 실패"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2008년 이후 전개되는 세계경제의 지각변동과는 별개 차원이다. 그 이전부터 예정돼 있던 반성이었다. (종횡무진 한국 경제)에서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과잉' 못지않게 '구(舊) 자유주의의 결핍' 역시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읽기에 따라서는 후자를 더 심각하게 본다는 느낌도 받는다. 2008년 이전이라면, 이런 입장이 꼭 어색하지는 않다. 그러나 2012년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적어도 2008년 이후라면,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낳은 폐해에 더 치중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물론, 김 교수가 강조하는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은 꼭 구자유주의적 개혁과제라고만 볼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낳은 폐해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장치다. 기득권층의 로비가 법치와 시장 규율을 조롱하는 장면은 충분히 익숙하다. 삼성 등 재벌이 법을 농락하며 군림하는 상황은 이런 현실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러나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입장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 앞에선 조금 한가한 감이 있다. 고름이 터져서 응급처치를 요하는 환자 앞에서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술, 담배를 멀리 하면 건강해진다'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창립 당시 "거대담론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성공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라고 천명했다. 이런 입장은 지금까지 견고하게 유지돼 왔고, 큰 성과를 거뒀다. 거대재벌 삼성의 급소를 콕 짚어내 압박했던 여러 사례는 관성에 젖은 기존 운동권이라면 기대하기 어려웠던 성과였다. 소규모 시민단체가 재벌을 상대로 공익소송을 벌여 높은 승소율을 기록했다는 점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거대담론에 대한 대중의 수요, 지식인은 응답해야

하지만 이제는 거대담론을 외면할 수 없는 때가 된 것 아닐까. 적어도 지식시장에선, 거대담론에 대한 수요가 뚜렷하다. 철학서적인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현상, 장하준 교수의 저술이 잇따라 화제가 된 현상 등이 그 방증이다. 과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류의 책에 열광하던 이들이 이제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는다. 대중이 보기에, 지금의 세계경제는 재테크 서적의 얄팍한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의 방향을 이해하고픈 욕망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큰 이야기', '역사적 접근' 등을 다룬 책을 찾아 읽는다.

거대담론에 대한 수요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현실에 참여하는 지식인은 응답할 의무가 있다. "구체적인 성공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는 일은 앞으로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나 "거대담론의 실패경험"을 경계하는 논리가 지금도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지금 대중이 요구하는 거대담론은 19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처럼 공허한 게 아니다.

제대로 된 거대담론에 기반한 설명이 필요한 사례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컨대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아이슬란드는 이후 강력한 긴축정책을 취하는 한편,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탕감정책을 취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1000조 원에 가까운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눈길이 가는 사례다. 그런데 긴축에 반대하는 입장, 또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입장 등 기존의 전형적인 분석틀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결국 정치적 정당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폭넓게 아우르는 논리가 필요하다.

기존 주류경제학의 처방이 힘을 잃은 상황에서 새로운 논리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지금 필요한 거대담론이다.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원칙을 앞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결코 간단치 않다. 신자유주의 이후를 전망하는 거대담론에 대한 토론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재벌이 뭐가 아쉬워서 타협하겠나

거대담론을 원하는 대중에게 때 마침 스케일 큰 논리를 제공했던 그룹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등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다. 이들이 비판하는 진영의 논리에 비해, 이들의 주장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딱딱한 법률 용어가 상대적으로 덜 쓰인다. 대중적인 반향이 컸던 한 이유일 게다. 그러나 그만큼, 대중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설명을 할 필요가 따른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문제가 "재벌 총수가 뭐가 아쉬워서 타협 하겠나"라는 것이다. 물론, 이름 모를 외국계 투기자본이 국내 대기업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지금의 지배구조가 낫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재벌과의 타협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연결 짓는 건 비약이다. '재벌이 현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타협점을 찾게끔 압박할 수단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경제개혁연대라면, 이 질문 앞에서 할 말이 있다. 현행 재벌 지배구조가 지닌 법적 맹점을 공격하는 것이고, 이는 자유주의적인 개혁 과제를 중시하는 이 단체의 입장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이 내놓은 입장은 '복지국가 진영의 정치세력화 및 집권', '정치 사회적 압력', '노동조합 강화' 등 막연한 수준이다. 재벌의 로비는 강력한데, 그들을 통제할 힘은 극히 미미한 게 현실이라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보다 구체적인 재벌 압박·통제 장치를 제출할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 대한 정교한 논의가 빠진다면, 이들의 주장은 지속적인 신뢰를 얻기가 힘들다.

기업집단법 제정, 보험산업 개혁…공통점도 많다

아쉬운 대목은 또 있다. 역시 독자들이 자주 지적하는 문제다. 이들 그룹은 여러 차례에 걸쳐 김상조, 유종일 등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을 비판해 왔다. 소유권에 바탕한 자유주의 논리가 연대에 기반한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에 대한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비판은 상당히 소모적이다. 이들이 비판 대상으로 삼는 학자들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예컨대 장하준, 김상조 사이의 거리가 주주자본주의를 온전히 지지하는 다른 경제학자와 김상조 사이의 거리보다 과연 멀까. 원고 청탁 및 취재차 만난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으리라는 대답이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찾아보면, 이들 집단 사이에는 공통점이 꽤 많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지적했듯, 양 측은 모두 '기업 집단 법' 제정을 주장한다. 현행 재벌 지배 구조가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이 있다는 점에는 다들 공감하는 것이다. 또 장하준 교수는 보험 산업이 복지 강화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맥락은 다르지만, 김상조 교수 역시 삼성생명 등 보험 업계의 문제점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 왔다.

경제와 노동, 복지를 아우르는 포괄적 접근이 지닌 효용

차이점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접근은 논점을 선명하게 하는 데는 이롭지만, 양 측의 공통분모를 확대하는 논의를 가로막는 면도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장점을 살리는데도 해롭다. 이들 그룹의 대표적인 장점은 협소한 주류 경제학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포괄적 접근이다. 예컨대 정승일 박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거래 문제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해서 이 문제에 천착했던 경제학자들에게선 나오지 않았던 접근방식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하청 관행이 많은 경우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 박사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대기업이 하청 업체를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문제인데, 최저임금 인상은 이런 경우를 줄이도록 하는 압력이 될 수 있다. 정 박사는 여기에 복지 차원의 접근도 곁들인다. 인상된 최저임금을 줄 수 없는, 경쟁력 없는 하청업체는 도산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와 노동, 복지 영역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야 가능한 해법인데,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이런 접근에서 강점이 있다. 이런 식의 접근에선 기존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소외됐던 노동운동 진영, 복지운동 진영이 설 자리가 생긴다. 민주노총이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 개입할 수 있게끔 하는 논리적 근거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처럼 연대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장점이고, 변호사와 경제학자들만의 운동에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는 게 과거 소액주주 운동의 한계였다. 그렇다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생각이 다른 이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확대하는 게 옳다.

생산적인 변절을 기대한다

이처럼 포괄적인 접근은, 다른 한편으로 주류 경제학자들의 외면을 낳은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런 태도가 꼭 옳은지는 의문이다. 거시경제학의 시조이며, 1930년대 공황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 역시 정통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대학 전공은 수학이었고 박사 학위도 없었으며, 대부분의 경력을 대학이 아닌 관청에서 쌓았다. 하지만 지금 경제학 역사에서 케인스의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논쟁은 '어느 쪽이 더 정통 경제학 이론에 부합하느냐'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존 경제학 이론의 권위가 흔들린 것 역시 사실이다. 지금 필요한 건 '위기 앞에서 가장 실용적인 해법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논쟁이다.

현 정부 들어서 '실용'이라는 표현에 조금 부정적인 어감이 깃들게 됐다. 그러나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적어도 정책에 관한 논의에선 나쁜 게 아니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모두 죽는다"라고 한 것 역시 케인스였다. 경제학자가 할 일은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처방이라는 것. 장기적으로 체질을 개선하자는 식의 주장은 경제학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게다. 구체적 현안을 둘러싼 논쟁에선 늘 한결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가장 실용적인 해법을 찾다보면, 기존 입장을 뛰어넘는 경우는 다반사로 생기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변절'이지만, 생산적인 변절이다. 향후 전개될 '한국경제 성격 논쟁'에서 생산적인 변절이 종종 나타나길 기대한다.

 ▲ ⓒ프레시안(손문상)

/성현석 기획취재팀장

2012년 6월 1일 금요일

"'재벌과 투기자본, 뭐가 더 나쁜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01일자 기사 '"'재벌과 투기자본, 뭐가 더 나쁜가?"'를 퍼왔습니다.
['한국경제와 복지국가' 강연] 이종태 "복지국가냐, 주주자본주의냐"

"민영화는 나쁘다. 그 중에서 공공부문이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가는 경우는 최악이다. 그나마 국내 재벌기업에 넘어가는 것은 차악이다. 그런데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재벌기업 민영화'는 극렬히 반대하면서 '투기자본 민영화'에는 침묵한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 한 말이다. 국내 재벌들이 적어도 '지속가능한 기업경영'을 고려하는 것과는 달리, 기업의 존폐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주주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투기자본은 국내 사회·경제에 최악의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정 연구위원이 재벌개혁보다는 주주자본주의 규제를 강조하는 이유다.

'금융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라는 주제로 30일 서울 마포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교육실에서 강연한 이종태 (시사IN) 기자는 정 연구위원의 문제의식에 살을 덧붙였다. 정 연구위원과 함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의 공저자이기도 한 이종태 기자는 최악의 민영화의 예로 최근 요금 인상 논란을 불러일으킨 서울시 메트로 9호선을 꼽았다.


"메트로 9호선이 수익 낼 수 없는 이유? 주주 탓!"

이 기자는 "아무리 지하철 요금을 올려줘도 메트로 9호선의 경영 상황은 절대 개선될 수 없다"면서 "메트로 9호선의 부실기업화는 주주자본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메트로 9호선의 수익이 주주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메트로 9호선은 자본금인 1671억 원보다 3배가량 많은 5000억 원을 대출받았고, 적게는 6%에서 많게는 15%에 달하는 고금리 이자를 물면서 '부실기업화'의 수순을 밟았다. 2009년 개통 이후 메트로 9호선이 기록한 순손실 1634억 원 가운데 대출 이자비용은 무려 1000억 원에 이른다.

메트로 9호선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이자를 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메트로 9호선의 금융계 주주가 곧 채권자들이기 때문이다. 메트로 9호선의 주주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사, 신한은행 등은 메트로 9호선 운영에 필요한 자본금 5000억 원을 '투자'하는 대신 고금리로 '빌려주기'로 결정했다.

주주들이 메트로 9호선의 순이익을 늘리는 데 관심이 없는 이유에 대해 이 기자는 "메트로 9호선에서 순수익이 발생하면 주주들은 법인세를 제하고 줄어든 배당을 받아야 한다"며 "반면에 적자라면 수익이 없는 만큼 메트로 9호선은 법인세를 낼 필요가 없고, 주주들은 고금리 대출이자를 통해 메트로 9호선이 내지 않은 법인세를 포함한 더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시스

이 기자는 "문제는 이처럼 기업의 지속가능성에는 관심이 없는 주주자본주의가 전 세계가 돌아가는 법칙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 입장에서 투자자들은 그저 외부인이었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부터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고용창출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했던 분위기도 1970년대를 전후로 오로지 주주에 대한 봉사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확산, 기업 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 외주화 증대 등 신자유주의적인 변화가 이뤄졌다고 이 기자는 지적했다.

"신자유주의가 태양계라면, 금융자본주의는 태양"

주주자본주의 규제보다는 재벌개혁을 강조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과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의 저자들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진단을 어떻게 달리할까.

이 기자는 "정태인 원장, 이병천 교수는 금융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 현상의 단지 일부로만 간주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나를 비롯한 (선택)의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을 주주자본주의, 혹은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현상인) 금융자본주의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가 태양계라면 금융자본주의는 태양계의 핵심인 태양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 등의 현상은 태양을 둘러싼 행성들이다. 그런데 정태인 원장은 (금융자본주의가 아니라)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 등의 현상을 묶어 신자유주의라고 본다. 그러면서 '재벌 규제 방안'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설립, 최저임금 인상, 하청기업의 집단교섭권 부여,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소비자권리 강화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 원장이 제시한 '재벌 규제 방안'조차 금융자본주의를 규제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금융자본주의를 규제하지 않고는 다른 사회·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선택)의 저자들이 주주가치에 기반을 둔 운동인 '소액주주 운동'에 비판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소액주주 운동이 금융자본주의 체제에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과 관련해 정태인 원장은 (프레시안) 기고에서 "금융세계화와 주주자본주의가 양극화의 근원이라는 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원장은 "(선택)이 재벌의 경영권 보호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라며 "과연 경영권을 보호해주면 재벌들이 배당금을 줄여서 투자를 늘리고 하청단가도 올려주며 노동자 임금도 끌어올릴까"라고 반문했었다.

정 원장은 또 "한 국가에서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는) 효과를 낼 뾰족한 정책은 별로 없다. (다만)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조와 세계적인 금융규제 강화의 진행에 맞춰 주주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시정해야 한다"며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정책, 외환보유고 관리 정책을 사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을 소개하며 이 기자는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정책을 쓰는 것은 자본통제보다 어렵고 시간도 더 걸린다"며 "동아시아 공동 환율정책이 이뤄질 때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자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정 원장을 비판했다.

"1주10표제 도입해 '창업자 프리미엄' 주자"

강연이 끝나자 청중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주주자본주의 규제' 방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답변에 나선 정승일 연구위원은 기업을 안정적으로 꾸릴 만한 경영자나 창업자에게 이를테면 '1주10표'를 주자고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1주 1표밖에 허용이 안 된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1주 1000표인 주식도 발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이 상장하기 전 주식을 발행할 때,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20% 지분을 갖더라도 의결권을 60% 넘게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면 주커버그는 60%의 의결권에 대한 주식을 시중에 매각하지 않고 1주 1표짜리만 매각하면 된다. 창업자 프리미엄이 발동하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삼성그룹을 예로 들며 "삼성의 주주 중 80%가 마음만 먹으면 주주총회에 와서 이건희 회장을 몰아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이건희 회장이 대주주 행세를 하면서 주가를 올리고 주주들의 배당금을 높여줬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1주 10표제가 법률로 허용되면 이건희 회장은 주주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배당을 많이 하지 않아도, 자가 주식을 매입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런 식으로 금융자본주의를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태 기자가 언급한 '메트로 9호선' 사례에 대해서도 정 연구위원은 "오스트리아나영국에서처럼 민영화하더라도 황금주 제도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금주란 단 1주를 갖고도 적대적 인수합병 등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으로, 주로 정부가 보유한다. 그는 "황금주 제도를 도입하면 서울시가 주식을 많이 안 가져도 메트로 9호선에 대한 의결권을 50% 넘게 만들 수 있다"며 "한국에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국제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종태 기자는 "대기업 계열사 해체와 약화에 반대하는 의 입장을 재벌 옹호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며 "(선택)의 문제의식은 주주자본주의와 재벌 중에서 양자택일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주자본주의와 복지국가 중에서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기업 계열사들을 해체해서 국내 대기업에 대한 주주자본주의의 영향력을 높인다면, 친노동·친중소기업·복지 정책들은 실행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한국경제와 복지국가' 강연 시리즈

① "최악의 공황이 온다…우린 정말 재수 없는 세대"  

 /김윤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