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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6일 화요일

이준구 "박근혜 정부, 믿음 주기엔 너무 모자라"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2-25일자 기사 '이준구 "박근혜 정부, 믿음 주기엔 너무 모자라"'를 퍼왔습니다.
"못난 지도자는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4일 "출범을 하루 앞둔 박근혜 정부도 우리에게 믿음을 주기에는 너무나 모자란다는 느낌"이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준구 교수는 이날 오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이같이 밝힌 뒤, "현재 상황에서 이 정부의 앞날을 점쳐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지금까지 진행해 온 핵심 직책의 인사입니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걸 보면서 무언가 답답함을 느낀 사람이 비단 나 하나에 그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를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대통합 정신이 발휘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잘 선택한 것 같지도 않고, 도덕적 결함이 없는 깨끗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것 같지도 않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은 뒤, "한 마디로 감동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사람 맥 빠지게 만드는 인사였습니다"라고 탄식했다.

그는 "오죽하면 이명박 정부측 인사로부터 고소영 인사보다 성시경 인사가 더 나을 게 하나도 없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겠습니까?"라며 최근 이동관 전 홍보수석의 조롱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못난 지도자는 훌륭한 사람을 골라 쓰지 못하고 자기 주위에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없다는 투정만 합니다. 못난 지도자는 쓴소리 하는 사람을 멀리 하고 아첨배에 둘러싸이는 걸 좋아합니다. 못난 지도자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고 타눌러야 할 적으로 봅니다"라며 "그리고 이런 못난 지도자는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강력 경고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박근혜 정부의 불안한 출발

잘 알고 계실 테지만, 내가 박근혜 정부에 거는 기대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난 지난 대선에서 사람들이 박근혜 후보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대통령으로 뽑아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나 역시 그의 능력은 아직까지 제대로 검증된 바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는 걸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박근혜 후보가 승리를 거둔 결정적인 이유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보다는 다른 데 있었다고 봅니다.어떤 일이 있어도 진보에게 정권을 내줄 수는 없다는 절박감이 보수를 똘똘 뭉치게 만든 것이 결정적인 승인이었다고 봅니다.또한 박정희에 대한 향수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요.

솔직히 말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천명한 "대탕평, 대통합"에도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습니다.자기와 반대편에 섰던 사람을 끌어안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게다가 그 동안 사람 쓰는 방식을 보아온 바로는 대통합과는 거리가 멀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에 비해 내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사실입니다.그때 이명박 당선자 그리고 인수위가 하는 말들을 들어 보면 뭔가 한 건 크게 터뜨릴 것 같은 기세였습니다.좋은 것 한 건을 크게 터뜨릴 것 같았다면 반가운 일이었을 테지만, 그 반대였기 때문에 불안감을 떨쳐내기 힘들었던 거죠.

그러나 출범을 하루 앞둔 박근혜 정부도 우리에게 믿음을 주기에는 너무나 모자란다는 느낌입니다.현재 상황에서 이 정부의 앞날을 점쳐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지금까지 진행해 온 핵심 직책의 인사입니다.이 과정이 진행되는 걸 보면서 무언가 답답함을 느낀 사람이 비단 나 하나에 그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대통합 정신이 발휘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잘 선택한 것 같지도 않고, 도덕적 결함이 없는 깨끗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것 같지도 않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한 마디로 감동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사람 맥 빠지게 만드는 인사였습니다.오죽하면 이명박 정부측 인사로부터 고소영 인사보다 성시경 인사가 더 나을 게 하나도 없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겠습니까?게다가 의사결정 과정이 효율적인 것 같지도 않고, 균형감각이 갖춰진 것 같지도 않다는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보인 태도를 미래에 대입해 박근혜 정부의 앞날을 예상해 본다면 결코 낙관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이명박 정부는 불통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가 소통의 정부가 될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대통령에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열심히 애쓴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심지어 자기 편 사람들과도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아무리 준비가 잘 된 사람이라도 처음에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똑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이는 그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우리가 앞으로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합니다.이번 인사 과정에서 보인 것 같은 실망스런 태도를 고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5년은 보나마나 뻔합니다. 

못난 지도자는 훌륭한 사람을 골라 쓰지 못하고 자기 주위에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없다는 투정만 합니다.못난 지도자는 쓴소리 하는 사람을 멀리 하고 아첨배에 둘러싸이는 걸 좋아합니다.못난 지도자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고 타눌러야 할 적으로 봅니다.그리고 이런 못난 지도자는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누가 앞으로의 5년을 이끌어갈지를 이미 선택한 상황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좋던 싫던 새 대통령이 잘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어둡고 길었던 5년이 끝나 겨우 숨을 돌리려는 차에 똑같은 5년을 맞는다는 건 정말로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자금까지 관찰해 온 바로는 결코 낙관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박정엽 기자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우리 생전에 높은 도덕성의 대통령 한번 봤으면"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1-13일자 기사 '"우리 생전에 높은 도덕성의 대통령 한번 봤으면"'을 퍼왔습니다.
[전문] 이준구 "朴, 탕평과 대통합 약속만은 지켜 주기를"

대선때 문재인 후보를 찍었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2일 "진정으로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국민과 함께 웃어주고, 아무런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높은 도덕성의 소유자인 대통령을 우리 생전에 한 번은 봐야만 하는 게 아닌가"라며 박근혜 당선인이 최소한 탕평과 대통합 공약만은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이준구 교수는 이날 오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새 정부에 거는 기대, 그리고 우려'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우리는 그 동안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대통령을 갖는 행운과는 인연이 멀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왜 박 당선인을 찍지 않았는가를 상세히 밝힌 뒤,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5년 전만큼 불안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그때는 한반도대운하니 747이니 하는 허황된 공약이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을 지키려 든다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엄청나게 큰 혼란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또한 마치 점령군이나 되듯 모든 것을 뜯어고치겠다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인수위원회를 보면서 또 다시 불안감이 밀려옴을 느꼈다"며 5년전 MB정권 출범 때를 회상했다.

그는 이어 "이번 박근혜 당선인의 캠프에서는 그런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다. 또한 박 당선인의 발언 중에는 적극적으로 기대를 걸어볼 만한 대목이 있어 보인다"며 "예를 들어 탕평과 대통합을 주요한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것은 나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든다. 내편 네편을 철저히 가르는 패거리정치로 일관했던 MB정부 5년 동안 갈기갈기 찢어졌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 탕평과 대화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 당선인이 내건 복지 공약도 기대를 걸어봄직 하다고 생각한다. 그 약속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엄청난 재원을 성공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지만, 만약 성공적으로 그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 사회의 복지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 분명하다"며 "뿐만 아니라 국민의 손톱밑 가시를 빼주겠노라는 박 당선인의 발언에도 기대가 크다. 국민의 아픈 가슴을 쓸어주고 불편한 것을 모두 해소시켜 주겠다는 약속이니만큼 그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나아질 테니 말이다. 자신은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원칙을 갖고 있다는 박당선인의 말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새 정부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를 가장 걱정스럽게 만든 것은 인수위 대변인과 헌재소장에 지명된 사람들의 됨됨이"라며 "의문의 여지없이 강경 보수 색채를 지닌 그들을 선택한 것은 박 당선인이 내건 탕평, 대통합과 전혀 걸맞지 않는 일"이라며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과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 내정을 질타했다.

그는 또 "요즈음 언론보도를 보면 대통합 인사의 모범사례로 호남출신 총리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런 말이 호남의 민심을 달래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화나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호남총리는 과거 대부분의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즐겨 쓰던 케케묵은 수법이 아니던가?"라고 호남총리론을 힐난했다.

그는 박 당선인의 언론정책에 대해서도 "나는 우선 박 당선인이 MBC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주목해 보려고 한다"며 "만약 또 다른 정권의 하수인으로 MBC를 이끌게 만든다면 그것은 언론을 계속 집권세력의 지배하에 놓아두겠다는 의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대통합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박근혜 당선인이 아무리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금 공약한 것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는 설사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해해 줄 용의가 있다"며 "그러나 탕평과 대통합의 공약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 하나만 버리면 이 공약을 실천에 옮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며 탕평과 대통합 공약만은 반드시 지켜줄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새 정부에 거는 기대, 그리고 우려

솔직히 말해 나는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해 크게 실망한 사람 중 하나다.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나는 ‘그 나물에 그 밥’인 새누리당 후보에 기대를 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동안 당의 이름이 공화당에서 민정당으로, 거기서 다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쳐 새누리당이 되었지만, 이름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가 보기에 이 당의 본질만은 공화당 그 시절과 아무 다름이 없다. 즉 기득권 세력들이 결집해 변화에 한사코 반대하는 기본 속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본다는 뜻이다.

누구나 인정하듯, 지난 대선을 보면 공약이란 측면에서 두 후보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약이 더 훌륭하게 보여 2번을 지지했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하지 않은 태도다. 나는 현재 우리 사회에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될 부분이 너무나 많다고 보았으며, 그 일을 과감하게 수행하는 데 누가 더 적합한지의 관점에서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다고 집권 여당의 체질이 본질적으로 바뀔 리 없으리라는 의구심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1번은 선택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변화는 경제의 민주화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힘있는 1%와 힘없는 99% 사이의 간극은 나날이 벌어져 가고 있다. 힘있는 1%를 대변하는 재벌들은 MB정부하에서 엄청난 속도로 몸집을 불려 이제는 정치적 권력으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공룡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나날의 삶이 힘에 겨운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은 이들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코너로 몰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친재벌로 시작한 이 정부는 힘이 다 빠져버린 임기 말에 새삼스럽게 ‘상생’을 부르짖어 봤지만 이룬 것 하나도 없이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켰을 따름이다.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 이들을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전락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사디스트가 아닌 바에야 대기업 잘 나가는 꼴이 보기 싫어 이들을 망하게 하자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방면의 전문가가 지적하고 있듯, 재벌 문제와 대기업 문제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1) 대기업의 효율적 경영 덕분에 우리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당연히 응원해 주고 도와줘야 한다. 경제민주화, 좀 더 좁게 말해 재벌 개혁이란 것은 대기업의 장점을 죽여 버리자는 뜻이 아니고 재벌들의 파울 플레이를 막는 기본질서를 확립하자는 뜻이다.

일부 재벌들의 파울 플레이는 공평성의 측면과 효율성의 측면 모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파울 플레이가 나오지 못하는 기본질서를 정착시켜 공평성과 함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의 목표다. 재벌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 우리 경제의 효율성이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편법 증여나 일감 몰아주기,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인력 빼오기 같은 불공정한 행위를 뿌리 뽑으면 우리 경제의 효율성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 나아가 시장원칙을 확립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의결권과 이익 청구권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혁이 필수적 요건이다.

이와 더불어 내가 바랐던 변화는 사회 도처에서 무너져 가고 있는 정의의 기반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사회의 소금이어야 할 검찰의 추락은 이제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 기능을 맡아야 할 검찰에 정권의 보위 역할을 맡기니 그런 비참한 추락을 맛볼 수밖에 없다. 가장 정의감에 불타고 가장 능력 있는 사람 위주로 인사를 해야 하는데, 가장 입맛에 맞고 가장 다루기 쉬운 사람 위주로 인사를 하니 기강이 제대로 설 리 없다. 지난 5년 동안 제 편은 두루뭉술한 잣대로 감싸고 남의 편은 먼지까지 털어내는 편파수사를 일삼은 검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정의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또한 측근 인사를 통해 언론을 장악함으로써 사회비판 기능을 마비시켜 버린 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지 정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치 자기네들이 주인인 양 모든 보도를 자기들 입맛대로 통제하기를 일삼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언론자유를 부르짖으며 일어선 양심적인 언론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잔인한 보복이었다. 지금도 해직 언론인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데 이 문제는 해결될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언론이 본래의 사회비판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이 그와 같은 잔인한 보복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이 땅의 정의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교육의 측면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교육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대학입시를 기형적으로 만들어 버린 탓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입학지도 교사들마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입시제도는 돈으로 정보를 살 수 있는 부유층 학부모에게만 유리한 구도를 만들었다. 또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입학사정관제 역시 스펙 쌓기를 시킬 수 있는 부유층 학부모들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기형적일 뿐 아니라 불공정하기까지 한 대입제도를 하루 빨리 뜯어 고쳐야만 한다고 믿었다. 

또한 국제중으로부터 시작해 특목고와 자사고로 이어지는 ‘저들만의 리그’를 개혁하는 일도 대입제도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라고 보았다. 만약 자사고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바람직한 것이라면 왜 공립학교에서는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는가? 돈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공교육에 돈을 더 부어넣으면 되지 않는가? 왜 돈 있는 학부모의 자제는 질 좋은 교육을 받고 돈 없는 학부모의 자제는 질 나쁜 교육에 만족해야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일진데, 이런 투자에 돈을 좀 더 많이 쓴다고 해서 낭비라고 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만약 공교육은 틀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공교육의 족쇄를 풀어버리면 될 것 아닌가? 그 족쇄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정부인데 그것 탓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진보적인 교육감들이 육성하려 하는 혁신학교를 정부가 한사코 막으려고 나서는 이유가 무언지도 나는 잘 모른다. 고루한 틀에서 벗어나려는 취지는 자사고나 혁신학교나 똑같을 텐데 왜 하나는 적극 육성의 대상이 되고 하나는 훼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저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일부 계층에 영합하려는 의도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이유가 없다.

나는 이런 개혁 과제들을 누가 더 과감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판단해 지지 후보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제 선거는 모두 끝났고 이제는 새로이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록 어떤 것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나와 똑같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올바른 방향으로는 나가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아니, 방법론상으로는 내 생각과 판이하게 다르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든다면 나는 흔쾌히 박수를 보낼 용의가 있다.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5년 전만큼 불안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때는 한반도대운하니 747이니 하는 허황된 공약이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을 지키려 든다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엄청나게 큰 혼란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또한 마치 점령군이나 되듯 모든 것을 뜯어고치겠다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인수위원회를 보면서 또 다시 불안감이 밀려옴을 느꼈다. ‘어륀지 파동’이 상징하고 있듯, 고쳐야 할 것 고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않고 설익은 개혁을 하겠다고 덤비는 태도가 너무나도 불안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이 자신의 지도이념으로 내걸고 있는 어설픈 신자유주의가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어줌으로서 서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입증된 사실이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행해진 실험은 재정적자나 양극화 심화 같은 부작용만 남겼을 뿐 기대했던 효과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 이념의 노예가 된 그들은 당당하게 ‘부자감세’를 경제 살리기의 결정적 카드로 들고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점차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부자 편을 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번 박근혜 당선인의 캠프에서는 그런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다. 또한 박 당선인의 발언 중에는 적극적으로 기대를 걸어볼 만한 대목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탕평과 대통합을 주요한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것은 나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든다. 내편 네편을 철저히 가르는 패거리정치로 일관했던 MB정부 5년 동안 갈기갈기 찢어졌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 탕평과 대화합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고질로 자리 잡아 왔고 이번 선거에서도 유감없이 그 위력을 발휘한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안이 바로 탕평과 대통합임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 당선인이 내건 복지 공약도 기대를 걸어봄직 하다고 생각한다. 그 약속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엄청난 재원을 성공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지만, 만약 성공적으로 그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 사회의 복지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손톱밑 가시를 빼주겠노라는 박 당선인의 발언에도 기대가 크다. 국민의 아픈 가슴을 쓸어주고 불편한 것을 모두 해소시켜 주겠다는 약속이니만큼 그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나아질 테니 말이다. 자신은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원칙을 갖고 있다는 박당선인의 말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이 막상 정권을 잡았을 때 이 모든 약속을 충실히 이행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모든 대통령이 자기가 한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렇지만 일단은 그 약속을 믿기로 하고 지켜봐 주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대통령 선거 이전에 갖고 있던 생각은 모두 털어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새 정부의 행보를 주시해 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새 정부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를 가장 걱정스럽게 만든 것은 인수위 대변인과 헌재소장에 지명된 사람들의 됨됨이다. 의문의 여지없이 강경 보수 색채를 지닌 그들을 선택한 것은 박 당선인이 내건 탕평, 대통합과 전혀 걸맞지 않는 일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주는 이미지는 화합이 아니라 대결이다. 특히 헌재소장처럼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에 대해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기관의 수장을 그렇게 뚜렷한 이념적 성향의 사람으로 앉힌다는 것은 사회통합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읽힌다.

요즈음 언론보도를 보면 대통합 인사의 모범사례로 호남출신 총리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런 말이 호남의 민심을 달래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화나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호남총리는 과거 대부분의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즐겨 쓰던 케케묵은 수법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서 호남인들이 고맙다고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 묻고 싶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들어 주지 못하듯, 한 사람의 호남총리가 대통합을 구현할 수 없다. 총리로 뽑힌 그 개인은 가문의 영광일지 몰라도 호남인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탕평과 대통합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것은 지난 선거에서 2번에게 표를 던진 48%의 유권자의 뜻을 받들어 모신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선거 그 자체는 단 한 표라도 더 많은 사람이 독식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의민주제하에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뽑혔다 하더라도 일단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소수파의 의견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박 당선인이 바로 이런 의미에서 탕평과 대통합을 부르짖었다면 그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 될 수 있다. 단지 호남출신의 인사를 총리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호남인이 갈구하던 바, 즉 사회의 변화를 바라던 그 희망을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 진정한 탕평이자 대통합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정권들은 힘없는 총리 자리에 타지 출신을 앉히고 권력의 핵심은 모두 자기 지역 출신으로 채우는 전법을 즐겨 써왔다. 박근혜 후보가 진심에서 탕평과 대통합을 부르짖고 있는지의 여부는 이와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적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우선 박 당선인이 MBC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주목해 보려고 한다. 만약 또 다른 정권의 하수인으로 MBC를 이끌게 만든다면 그것은 언론을 계속 집권세력의 지배하에 놓아두겠다는 의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대통합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

헌재소장 자리가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중요한 자리인 것은 사실이고, 따라서 어떤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려 하는지롤 보고 앞날을 어느 정도 점쳐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재소장으로 선택된 사람을 보고 든 느낌은 솔직히 말해 “약간 불안하다”는 것이다. MB정부에서는 출범 초기의 고소영, 강부자의 악령이 임기 내내 그 정권의 주위를 맴돌았다. 새 정부는 그런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앞으로 줄지어 발표될 새 정부 중요 인사들의 면면 역시 헌재소장의 경우와 그리 다르지 않다면 우리의 기대는 곧바로 실망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아무리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금 공약한 것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는 설사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해해 줄 용의가 있다. 예컨대 복지공약 같은 것은 현실적 여건상 100% 충실하게 지켜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리해서 공약을 지키려 하느니보다 오히려 국민의 양해를 구하고 포기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탕평과 대통합의 공약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 하나만 버리면 이 공약을 실천에 옮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동안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대통령을 갖는 행운과는 인연이 멀었다. 진정으로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국민과 함께 웃어주고, 아무런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높은 도덕성의 소유자인 대통령을 우리 생전에 한 번은 봐야만 하는 게 아닌가. 우리 국민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그런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과연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순전히 그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

박태견 기자 

2012년 12월 4일 화요일

이준구 "MB, 경제 시퍼렇게 멍 들게 해"


이글은 시사IN 2012-12-03일자 기사 '이준구 "MB, 경제 시퍼렇게 멍 들게 해"'를 퍼왔습니다.
전문] "MB의 신자유주의조차 무늬에 불과"

"이명박 정부가 표방했던 신자유주의가 실제로는 무늬에 불과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MB 5년'의 경제정책에 대해 내린 총평이다. 

이 교수는 MB의 신자유주의가 무늬에 불과했다고 지적하는 이유로 "진정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했다면 감세와 더불어 정부지출을 급격하게 줄이는 조처를 취했어야 했다.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로 세금을 깎아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지출을 대폭 늘리는 정책을 추구했다. 감세정책을 통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듯하면서 정부지출을 대폭 늘려 큰 정부를 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2일 이렇듯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MB 5년'에 대한 본격 분석에 착수했다. 두 개의 글을 올리겠다고 예고한 이 교수는 우선 이날 첫번째 올린 글의 성격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무늬만 신자유주의였을 뿐 실제로는 1960년대의 관리경제정책을 추구했다는 점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앞으로 올릴 두번째 글을 통해선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수치만을 인용해 자기네들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홍보를 일삼는 MB정권'에 대한 반박을 예고했다.

그는 MB 5년간 노골적으로 진행된 시장개입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정부 개입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경기를 단기적으로 약간 끌어올리는 데 지나지 않는다. 욕심이 지나쳐 무리하게 경기를 너무 심하게 부추기려 들면 경제의 이곳저곳에 잘 보이지 않는 후유증을 숱하게 남기게 된다"며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써온 정책을 보면 바로 이런 시나리오에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의식해 경제성장률을 단 1%라도 끌어올리려고 많은 무리수를 동원한 나머지 경제의 이곳저곳에 시퍼런 멍이 들게 만들었다는 말이다"라고 질타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평가-어느 케인즈주의자의 고백

1. 케인즈학파 vs. 시카고학파

경제이론은 크게 보아 미시경제이론과 거시경제이론의 두 범주로 나누어진다. 미시경제이론은 이름 그대로 개별 경제주체 혹은 개별시장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한편, 거시경제이론은 경제 전체의 상황을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역할분담 체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케인즈학파, 시카고학파 식으로 학파를 나눌 때는 주로 거시경제이론과 결부되어 그런 구분을 한다. 따라서 나처럼 미시경제이론을 전공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렇게 학파를 구분해 어떤 학파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이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어떤 학파의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는 데 더욱 적합한지에 대한 판단은 하고 있고, 그렇다면 두 학파 중 한쪽을 지지하고 있는 셈이 된다. 내가 1970년대에 공부했던 Princeton대학 경제학과는 당시 케인즈학파의 중심 세력 중 하나였고, 특히 내 박사논문을 지도했던 Alan Blinder교수는 대표적 케인즈주의자 중 한 분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자연히 케인즈학파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케인즈학파의 현실 설명력이 더 뛰어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카고학파가 그려내는 경제이론의 세계는 한 마디로 말해 아름답고 정교하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극도로 합리적이며 물가와 임금은 생고무줄 같은 탄력성을 갖는다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보고 있는 경제에는 장기간에 걸친 불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불균형이 존재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물가와 임금의 신축성을 통한 조정을 통해 균형이 바로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는 그처럼 윤활유가 잘 쳐져 아무 마찰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부속들로 이루어진 기계가 아니다. 곳곳에 비합리성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물가와 임금이 경직성을 보일 때도 많다. 만약 모든 인간이 극도로 합리적이고 시장의 조정기능이 완벽하게 작용했다면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이 감지된 순간 합리적 인간과 완벽하게 작용하는 시장기능이 이를 해소하는 작업에 나섰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조정기능을 중시하는 시카고학파는 경기침체의 상황에서도 정부가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물론 아무리 심각한 불황이 엄습해 와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극단적인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시카고학파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다.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한 개입을 삼가고 시장기능을 활성화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 동안 나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재정학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려는 목적에서, 소득분배 상태를 개선하려는 목적에서, 혹은 온정적 간섭주의의 시각에서 경제에 적극 개입할 수 있다. 따라서 재정학자로서의 나는 정부 개입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미시경제적 관점에서의 개입뿐 아니라 경제를 안정시키려는 거시경제적 관점에서의 개입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태도를 취해온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케인즈학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탓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시카고학파의 아름다운 이론체계는 아무래도 현실성이 떨어졌고, 그렇다면 나는 케인즈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5년이 이와 같은 나의 믿음을 크게 흔들어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카고학파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현실성이 없다고 옆으로 제쳐 놓았던 시카고학파의 이론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경제를 운영해온 모습을 보면서 정부의 불필요한 개입은 약이 아닌 독이라는 시카고학파의 가르침에 한 점 틀린 것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2. 무늬만 신자유주의인 1960년대식 관리경제정책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들어섰지만, 실제로 경제를 운영해온 방식에 비추어 판단을 해보면 이명박 정부는 결코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투철한 정부가 아니었다. 시장의 자율에 맡겨 두기는커녕 정부가 모든 일에 시시콜콜 간섭해 자신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정권 초기부터 시장 상황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밀어붙인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이 그와 같은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친재벌적 태도를 취하다가 국민의 여론이 비등하자 갑자기 ‘상생’을 내걸고 이들을 압박하는 태도로 반전한 것도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태도였다.

심지어는 물가마저도 ‘이명박 물가지수’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1960년대식의 관리경제정책 체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물가상승의 압력을 이명박 정부는 강압적인 지도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공정거래의 확립이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안정의 기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 그 좋은 예다. 수요를 적절하게 관리해 물가상승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순리를 버리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강제력을 동원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태도가 신자유주의와 부합될 리 만무한 일이다.

불필요한 개입의 또 다른 좋은 예는 경기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에서 찾을 수 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가 2008년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대응으로서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오해하기 쉽다. 또한 이명박 정부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선전해 왔다. 그런 방식으로 선제적 대응을 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거듭 말해온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는 정권 출범 초부터 기본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던 핵심정책이다.

지난 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대운하’라는 기상천외한 토목공사를 핵심 공약으로 들고 나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우리나라의 현행 물류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라도 건설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심각한 동맥경화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라도 있어 그 사업을 구상했을까? 나는 절대로 그것이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내가 보기에 이명박 후보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점은 22조원의 지출이 가져올 직접적 경기부양 효과와 소위 친수공간 개발에 따른 추가적 부양효과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경기부양 효과는 그가 내건 ‘747공약’의 실천에 큰 몫을 한다고 보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촛불시위를 계기로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포기한 직후 다시 이름만 ‘4대강사업’으로 바꿔 똑같은 사업을 밀어붙인 것을 보면 문제의 핵심이 바로 22조원의 추가적 지출이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를 신자유주의적 정부라고 오인하게 된 것은 그들이 그런 시늉을 낸 데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정부라는 시늉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감세정책이다. 오래 전부터 감세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감세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를 신자유주의적 정부로 오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자감세’라는 비아냥거림 속에서 감세정책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을 보면 이것이 이명박 정부 정책의 핵심은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감세정책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묘약이라는 확신을 가졌다면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날 리가 없지 않은가?

진정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했다면 감세와 더불어 정부지출을 급격하게 줄이는 조처를 취했어야 했다.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로 세금을 깎아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지출을 대폭 늘리는 정책을 추구했다. 감세정책을 통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듯하면서 정부지출을 대폭 늘려 큰 정부를 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이명박 정부가 표방했던 신자유주의가 실제로는 무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3. 무엇을 믿고 ‘747공약’을 내걸었을까?

되돌아보면 이명박 후보가 실현가능성이 말 그대로 제로인 747공약을 들고 나온 배경이 무엇이었는지가 어렴풋이 드러난다. 이 공약에 처음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4%에서 5%에 이르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어떻게 단기간에 경제성장률을 7%대로 끌어올리는 기적을 연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경제학의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여간한 무리수를 두지 않고서는 그와 같은 목표의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 측에서는 과연 어떤 정책을 통해 그처럼 무모하게 설정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동안 이명박 정부가 운영해온 경제정책을 보면 7%의 성장률 달성을 위해 동원할 수 있다고 본 수단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우선 성장률이 높아지려면 투자가 급격하게 증가해야 하는데, 친재벌정책으로 그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한편 법인세율을 낮춰 주고 저금리기조를 유지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지금 우리 경제의 투자는 그들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명박 후보 측은 기업의 투자가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렇기 때문에 쓸모없는 정책으로 헛방을 날려버린 셈이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케인즈의 말이 시사하듯, 기업은 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느낌이 올 때에 한해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요즈음처럼 투자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가 앞으로의 전망이 불투명한 경우에는 이 말이 더욱 잘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기업이 법인세율이나 이자율의 동향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는 말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실질이자율을 거의 0%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고 투자를 애타게 기다려도 투자가 증가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여튼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747공약은 바로 이 첫걸음부터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후보측이 그 다음으로 효과 있는 정책으로 본 것은 고환율을 통한 수출촉진이었던 것 같다.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원자재 값이 아무리 올라도 환율만 높은 수준에 유지된다면 우리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다면 두 번 다시 생각할 필요 없이 환율을 그 방향으로 끌고 가면 된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의 핵심 관료들 중에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외환시장에 실제로 개입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와 같은 개입에 찬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노골적으로 고환율정책을 유지해 왔고, 이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출이 전혀 흔들리지 않은 것은 이 고환율정책의 덕이 어느 정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조금 뒤에 논의하겠지만, 문제는 외환시장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747공약 달성을 위한 마지막 카드가 앞에서 말한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였다고 짐작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전반기에 기록한 경제성장률 속에는 정부지출 증가가 기여한 것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만 없었어도 7% 경제성장률의 목표를 달성할 뻔 했다고 억울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지출을 늘려 경제성장률을 억지로 높인다는 것은 그들이 내건 7%의 경제성장률 공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747공약에서의 7%라는 경제성장률은 자신의 임기 동안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잠재)성장률을 그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뜻이지, 정부지출 늘려 반짝 상승을 이루도록 하겠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방법으로 경제성장률 높이는 것은 누구인들 못하겠는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747공약의 배경에는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서라도 경제성장률을 일시적으로나마 그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행운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때마침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폭풍 때문에 그렇게 무리수를 둠으로써 과연 7%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를 검증할 기회마저 날라가 버렸다. 그러나 나는 온갖 무리수를 동원했어도 일시적이나마 그 목표를 달성하는 일조차 불가능했으리라고 믿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직 본격화되기 전인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의 성과가 그리 눈부시지도 않았던 것을 보면 그렇게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4. 무분별한 인위적 개입의 불행한 유산

이명박 정부는 그래도 자기네들이 경제정책만은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선전한다. 그 근거로는 OECD 가입국들 중 우리처럼 빨리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회복된 나라가 없다는 것을 든다. 바로 뒤이어 발표할 글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겠지만, 우리를 미국이나 유로존 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 평가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의 진원지로서 그 직격탄을 맞은 나라들이다. 우리처럼 그런 위기와 비교적 먼 거리에 있었던 경제가 그들의 경제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아보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해서 하등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백보를 양보해 두 차례의 위기에서 살아남게 만든 공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무리수, 즉 불필요한 개입은 우리 경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불행한 유산을 숱하게 남겨 놓았다. 시카고학파가 불필요한 개입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은 그것이 경기를 일시적으로 반짝 되살려 놓는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경제구조를 왜곡하고 체질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권 출범 초 무리하게 밀어붙인 고환율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허덕이고 있던 중소기업들에게 치명적 손실을 가져다준 KIKO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은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KIKO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장의 펀더멘탈을 무시하고 고환율정책을 추구했고, 그 결과 중소기업의 줄도산 사태를 야기했던 것이다.

또한 2008년 여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한때 환율이 위험수준까지 뛰어오른 적이 있었다. 다행히 위기를 맞지는 않았지만, 바로 몇 달 뒤에 환율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을 쓴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 사례를 보면 시카고학파가 왜 과도한 정부 개입이 경제를 더욱 불안정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을 경고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수출을 늘리려는 욕심에서 외환시장에 부질없는 개입을 일삼다가 뜻밖의 위기를 맞을 뻔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뿐만 아니라 환율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정책은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환율이 1,100원대 이하로 떨어지자 우리 기업들의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난리법석이 일어났다. 과거에는 900원대의 환율에서도 끄떡없이 수출하던 우리 기업이 왜 1,100원선이 무너지면 수출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을 치게 되었는가? 높은 환율이 우리 기업들에게 보호효과를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같은 보호에 안주하는 타성을 길러주게 된 것도 사실이다. 기업이 때로는 시장의 호된 채찍을 맞아 보아야 매를 견디는 강한 체질을 키울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정책은 우리 기업들이 스스로 체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린 결과를 빚었다.

정부가 인위적 개입을 통해 물가를 통제하려 할 때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가 불안이 눈앞에 닥쳐 있는데도 정부는 물가 불안을 더욱 부추길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인위적 개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다행히 세계 경제가 극도의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덕분으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는 위험한 줄타기를 한 셈이다. 지금도 잘 살펴보면 시장 이곳저곳에 그와 같은 인위적 개입을 통한 물가 관리의 후유증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경기부양을 위해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22조원이란 어마어마한 정부지출을 쏟아 부은 4대강사업의 문제점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자기 임기 중에 끝내려는 욕심에서 여론의 수렴도 없이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4대강사업은 우리 경제, 사회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겨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집권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무런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고 22조원이나 드는 거대토목사업이 하루아침에 시작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은 효율적이며 공정한 정부를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그렇게 투입된 22조원이 반짝 경기회복에 얼마나 큰 효과를 냈는지 몰라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갖가지 부정적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5. 이명박 정부가 우리에게 준 교훈

이명박 정부의 5년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이 세상에 경제를 기적처럼 되살리는 묘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의 실험에서도 이미 의심의 나위 없이 입증된 사실이다. 기적처럼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등장한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와 새처리즘(Thatcherism)의 귀결을 보면 그와 같은 약속은 애당초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5년은 어느 누구가 얼마나 달콤한 목소리로 나는 경제를 기적처럼 되살릴 비방이 있다고 속삭여도 그 말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실질적으로 정부 개입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경기를 단기적으로 약간 끌어올리는 데 지나지 않는다. 욕심이 지나쳐 무리하게 경기를 너무 심하게 부추기려 들면 경제의 이곳저곳에 잘 보이지 않는 후유증을 숱하게 남기게 된다. 그 결과 경제의 전반적 체질이 약해져 오히려 장기적 성장이 둔화되는 역효과를 내고 만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써온 정책을 보면 바로 이런 시나리오에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의식해 경제성장률을 단 1%라도 끌어올리려고 많은 무리수를 동원한 나머지 경제의 이곳저곳에 시퍼런 멍이 들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가능한 한 개입을 삼가고 시장기능을 최대한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카고학파의 가르침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가 경제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는 과욕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몰아가려고 해도 쉽게 몰아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과욕 때문에 무리수를 두게 되면 경제에 더 큰 해를 입힐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카고학파는 정부의 개입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이 4%에서 5% 정도인 경제를 하루아침에 잠재성장률 7%대의 경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허황된 과욕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과욕이 이명박 정부 5년의 경제정책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린 주범이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록 화려하게 보이지는 않더라도 경제를 순리에 맞게 이끌어가는 것이 올바른 길임에도 불구하고, 과욕 때문에 흐려진 눈에는 그 분명한 답이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수치만을 인용해 자기네들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홍보를 일삼는다. 다른 글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그들이 제시한 통계수치 그 자체만으로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반박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무리하게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은 경제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지 않은 채 우리 경제의 활력을 지속적으로 좀먹고 있다. 앞으로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그 후유증의 전모가 우리에게 분명히 밝혀지리라고 생각한다.

박태견 기자

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이준구 "C일보, 대놓고 이간질"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11-26일자 기사 '이준구 "C일보, 대놓고 이간질"'을 퍼왔습니다.
"코 풀었다는 것까지 시비, 방귀라도 뀌었다면 큰일 났겠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5일 "오늘 신문을 보니 이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대놓고 이간질을 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라며 (조선일보)를 강력 질타했다.

이준구 교수는 블로그를 통해 이같이 말한 뒤, "오늘 인터넷판 C일보 톱기사의 제목은 '안철수, TV 토론 후 文에 분노와 회의를 느꼈다'입니다. 이 제목이 뜻하는 바는 안철수씨의 사퇴가 문재인씨에 분노해 자리를 박차고 나간 걸 의미한다는 것이겠지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그러나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아무런 구체적 근거 없이 '하더라 통신'식의 추측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안철수씨가 분노와 회의를 느꼈다는 것은 그들이 본인에게 직접 듣고 보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가까운 지인에게 그렇게 털어 놓은 걸 들었다는 식"이라며 "정말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보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이 기사 보면 그 날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일방적으로 무례하게 굴었다는 것인데, 난 그 토론 보면서 졸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신사적으로 진행되는 정치 토론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심지어 문재인 후보가 코를 풀었다는 것까지 시비를 걸던데, 만약 방귀라도 뀌었다면 큰일 났겠네요"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그는 "보수세력이 왜 이런 근거없는 말로 이간질에 나서는지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라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안철수씨의 지지계층이 비교적 젊은 세대여서 보수세력의 이런 케케묵은 마타도어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엄수아 기자 

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이준구 "4대강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10-18일자 기사 '이준구 "4대강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을 퍼왔습니다.
"목놓아 울고 싶었다. 정말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는 걸까"

"정부와 보수진영에서는 이미 4대강공사가 완료단계에 있기 때문에 게임은 끝난 것이라고 희희낙락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4대강사업에 일관되게 반대해온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이 교수는 17일 밤 KBS1 (환경스페셜) '생태보고 수변습지'를 시청한 뒤 "너무나도 감동적인 프로그램이라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며 "그 동안 죽어버렸다고 생각한 공영방송 KBS가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멋진 프로그램이었다"고 극찬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4대강사업으로 인해 파괴되어 버리고 만 '수변습지'"라며 "이렇게 4대강사업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습지가 80개소 12,699,000평방미터나 된답니다. 어줍지 않게 거기다 "생태공원"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사실은 생명이 제대로 뿌리도 내릴 수 없는 '녹색사막'을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MB정부를 질타했다.

실제로 (환경스페셜)은 4대강사업 대상에 포함됐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보존된 금강 상류 '천내습지'와 4대강사업후 인공적으로 조성된 '대체습지'와의 차이점을 보여줌으로써 4대강사업이 얼마나 반환경적 만행이었는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 

(환경스페셜)은 "금강 상류에 위치한 천내습지는 폭 약 300m, 길이 1.2km에 이르는 자연습지. 주변사람들의 노력으로 생태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각종 개발로부터 보존되고 있다"며 "버드나무 군락과 수초가 무성한 이곳엔 다양한 곤충이 살아가고 물속에선 한국특산종 감돌고기와 멸종위기종 꾸구리가 헤엄을 친다. 수초더미 속에선 개개비가, 습지가 내려다보이는 산에선 쏙독새가 알을 품고 있다. 밤이 되면 고라니와 수달이 물을 마시고 사냥을 한다. 다양한 동식물을 품어 주는 생명의 터전 천내습지, 자연 습지만이 가진 힘"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인공습지'에 대해선 "천내습지 인근에 위치한 한 인공습지, 강변에 흙을 돋워 나무를 식재하고 벤치를 놓아 언뜻 보면 깔끔해 보인다. 그 속을 들여다봤다. 돌을 철망으로 엮어 쌓은 제방은 수중까지 이어져 수초 한 포기, 물고기 한 마리 찾을 수 없다"며 "낙동강의 인공습지도 마찬가지다. 강바닥 에서 준설한 모래를 4미터 이상 쌓아올린 둔치는 너무 높아 식물이 물을 흡수하지 못해 죽어가고, 새롭게 조성한 수변공원엔 건조한 지대에 사는 병꽃나무와 산비탈에 사는 참느릅나무가 식재돼 말라가고 있다. 낙동강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던 해평습지. 강 개발로 새들이 쉬어가던 모래톱은 사라지고 골프장, 체련공원을 포함한 대체습지가 들어섰다. 이후 해평습지를 찾는 철새의 수는 급감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환경스페셜) 중에서도 일본도 동일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전한 뒤 "직강화 공사를 담당했던 한 (일본) 공무원이 나와 그 당시 자신이 한 일을 반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그 사람은 재자연화에 앞장 서 일하고 있나 봅니다"라며 "난 그 장면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에도 그와 같은 양심적인 공무원이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은 정권의 주구가 되어 4대강 파괴에 앞장서고 있지만 언젠가 정신을 차려 자신이 한 일을 깊게 뉘우치고 재자연화에 팔 걷고 나설 공무원이 있을까라는 의문"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프로그램의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강이 보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목 놓아 울고 싶더군요. 정말로 우리에겐 미래가 없는 것일까요?"라고 절규했다.

이 교수는 18일 오전 추가로 올린 글을 통해 "왜 진작 이런 프로그램 방영해 4대강사업이 시작되지 못하도록 막지 못했느냐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판적 성격의 프로그램이 정권 초기의 서슬 퍼런 검열망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라며 "정권의 언론 장악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산 예"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이 방영될 수 있는 것도 정권 말기가 되니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라며 "정부와 보수진영에서는 이미 4대강공사가 완료단계에 있기 때문에 게임은 끝난 것이라고 희희낙락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4대강사업의 부작용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면서, 그리고 더 이상 정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언론이 4대강사업의 진실을 하나씩 밝혀내면서 진정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니까요"라고 단언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우리에겐 미래가 없는 것일까요?(2012/10/17 23:46)

방금 전에 끝난 KBS1의 환경스페셜 '생태보고 수변습지" 프로그램 보셨나요?너무나도 감동적인 프로그램이라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습니다.그 동안 죽어버렸다고 생각한 공영방송 KBS가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멋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4대강사업으로 인해 파괴되어 버리고 만 “수변습지”입니다.거기에서 살고 있는 버드나무 한 그루, 이름 모를 풀 한 포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그 속에 깃들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 소중한 수변습지를 모두 파괴해 버리고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수변공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이렇게 4대강사업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습지가 80개소 12,699,000평방미터나 된답니다.(이것은 정부 발표 자료이기 때문에 절대로 과장된 수치가 아닙니다.) 어줍지 않게 거기다 "생태공원"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사실은 생명이 제대로 뿌리는 내릴 수 없는 “녹색사막”을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이 프로그램은 정부가 조성한 소위 수변공원이란 것이 얼마나 황폐한 공간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준설토를 2,3미터 높이로 덧쌓아 공원을 만들었으니 식물의 뿌리가 제대로 물을 흡수할 수 없어 말라죽어 가는 것이지요.애꿎게 거기에 심어져 사람이 계속 물을 주지 않는 한 말라죽게 될 식물들이 가엽게만 느껴지더군요. 

또한 주변 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아무 것이나 마구잡이로 심은 바람에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도 애처롭게 보였습니다,예를 들어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병꽃나무를 강한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건조한 강가에 심고, 선선한 곳에서 자라는 쉬땅나무를 햇빛으로 뜨겁게 달구어지는 강가에 심는 것 같은 코미디를 연출했던 것이지요.몇 달 안 되는 준비기간으로 졸속으로 공사를 시작했으니 그런 걸 제대로 생각할 여유가 있었겠어요?

4대강사업으로 인해 자연습지가 파괴된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대체습지를 만들 테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습니다.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인공습지가 자연습지의 대체물이 결코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여도 그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거죠.

그 한 예로 지난 여름 태풍이 왔을 때 자연습지와 인공습지가 각각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태풍이 몰아치자 자연습지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은 엄청난 위협에 직면하게 됩니다.그러나 태풍이 지나가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바로 돌아갑니다.

이에 비해 정부가 조성한 인공습지는 태풍으로 인해 험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여줍니다.여기저기 흙이 깊게 파여나가고 나무들이 처참하게 쓰러진 모습으로 말이지요.그걸 다시 복구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 같더군요.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얼마나 훌륭한 복원력을 갖고 있는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중반에 가면 남한강 이포보 부근을 둘러보는 일본 환경전문가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이들은 한국이 왜 굳이 일본의 실패 사례를 본받으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습니다.일본이 바로 그런 식으로 강들에 손을 대서 지금은 크게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지적입니다.

그 한 예가 기후현, 아이찌현, 미에현을 지나가는 나가라가와(長良川)의 경우입니다.1995년 강 하류에 8.2미터 높이의 하구언을 쌓은 후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군요.자연습지 대신 만든 대체습지가 모두 죽어가는 것은 물론, 강 바닥이 썩어가고 있답니다.

한 어부가 나와 증언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하루 1,000마리 정도의 물고기를 잡았는데 현재는 150마리 정도밖에 잡지 못한다고 울상을 짓습니다.일본에서 가장 깨끗한 3대강으로 꼽혔던 나가라가와의 물이 하구언 때문에 썩어가고 있다는 말이지요.고기가 안 잡히자 어부의 수도 줄어들어 과거의 800명이 지금은 20명 정도로 줄었다고 합니다.

4대강사업의 미래를 말해 주는 더욱 좋은 예는 오사카 부근의 요도가와(淀川)입니다.1970년대에 우리의 4대강사업과 아주 비슷한 공사를 이 강에서 시행했다고 합니다.강을 직강화하고 준설토로 강변에 공원과 체육시설을 조성했다니 4대강사업과 똑같았던 셈이지요.

그러나 그와 같은 공사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것은 인식하고 최근에는 재자연화(再自然化)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즉 직강화했던 것을 다시 구불구불한 원래의 상태로 돌리고 수변습지를 조성하면서 갈대밭을 만드는 식으로 다시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이지요.

직강화 공사를 담당했던 한 공무원이 나와 그 당시 자신이 한 일을 반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지금 그 사람은 재자연화에 앞장 서 일하고 있나 봅니다.

난 그 장면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에도 그와 같은 양심적인 공무원이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지금은 정권의 주구가 되어 4대강 파괴에 앞장서고 있지만 언젠가 정신을 차려 자신이 한 일을 깊게 뉘우치고 재자연화에 팔 걷고 나설 공무원이 있을까라는 의문이지요.

그런데 요도가와의 재자연화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원상 복구가 무척 힘든 일이라고 고충을 토로합니다.일단 망가진 생태계를 원 상태로 돌리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것이지요.그 말을 들으니 우리 4대강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더군요.설사 재자연화 하기로 합의를 본다 하더라도 거기에 들어갈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프로그램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원래는 4대강사업의 대상이었지만 시민들의 반대 덕분에 원래 상태대로 보존된 금강 천내습지의 건강한 모습은 한 줄기 빛처럼 밝아 보였습니다.거기 와서 자연을 마음껏 즐기는 시민의 모습을 보면서 그걸 보존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그러나 뒤이어 불도저의 삽날에 사라져간 수많은 자연습지의 건강했던 모습과 공사로 인해 망가진 모습을 비교해 보여줄 때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강이 보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이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목 놓아 울고 싶더군요.정말로 우리에겐 미래가 없는 것일까요?

ps. 이 프로그램 아직 안 보신 분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내가 낸 시청료가 하나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좋은 프로그램입니다.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 프로그램을 만들어준 제작자들께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4대강공사 게임은 이제부터가 시작(2012/10/18 10:33)
 

왜 진작 이런 프로그램 방영해 4대강사업이 시작되지 못하도록 막지 못했느냐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이와 같은 비판적 성격의 프로그램이 정권 초기의 서슬 퍼런 검열망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정권에 접수된 공영방송은 4대강사업에 비판을 할 수 없도록 재갈이 물려졌고, 종편에 목을 매달고 있었던 조중동은 알아서 기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지요.정권의 언론 장악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산 예라고 하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될 수 있는 것도 정권 말기가 되니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아무리 정권 말기라 해도 실제로 이 프로그램 제작하고 방영하는 과정에서 제작진이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요.

정부와 보수진영에서는 이미 4대강공사가 완료단계에 있기 때문에 게임은 끝난 것이라고 희희낙락하고 있을지 모릅니다.그러나 진정한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4대강사업의 부작용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면서, 그리고 더 이상 정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언론이 4대강사업의 진실을 하나씩 밝혀내면서 진정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어제의 환경스페셜 프로그램은 그 게임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박태견 기자 

2012년 6월 12일 화요일

이준구 "盧와 맞장 뜨던 검사들, 지금 어디 있나"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6-12일자 기사 '이준구 "盧와 맞장 뜨던 검사들, 지금 어디 있나"'를 퍼왔습니다.
"지금 검찰의 중견간부 이상의 중책을 맡고 있을 게 분명하거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1일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대해 "역대 검찰 중 지금처럼 불신을 받고 있는 검찰이 없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돈봉투 사건, 불법사찰 사건, 파이시티 사건에 이어, 이번 내곡동 사저 사건의 처리 결과도 이미 예상된 것과 한 점의 차이도 없다"며 이같이 탄식했다.

그는 "이런 현실을 검찰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을까요?"라고 반문한 뒤, "난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의 행동을 국민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라며 "사람들 뇌리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젊은 검사들과 계급장 떼고 대화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막 가자는 것이지요?'라는 그 유명한 조크가 바로 그 만남에서 만들어졌지요"며 2003년초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젊은 검사들간의 공개 설전을 거론했다.

그는 "그때 우리는 대통령조차 무서워하지 않는 젊은 검사들의 패기에 놀랐습니다. '아, 이렇게 정의감이 강한 검사들이 다 있나?'라고 경탄했습니다"라며 "(그런데) 이 시점에서 내가 갖는 의문은 지금 그들이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변호사 등으로 전직하지 않고 아직 검사로 남아 있다면 검찰의 중견 간부 이상의 중책을 맡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라며 "그들은 지금 검찰의 모습이 십 년 전 자신들이 펼쳐 보였던 이상과 부함된다고 만족하고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결론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십 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라며 "입으로만 부르짖는 정의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천으로 정의를 보여줘야만 비로소 언행이 일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일선검사 등 검찰 내부에서도 내곡동 무혐의 처분에 대한 불만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급소를 찌른 이 교수의 일갈이 과연 검찰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지켜볼 일이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그때의 패기만만하던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 검찰이 한 가지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즉 모든 일에서 우리가 예상하는 그대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그 일관성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전 정권과 관련된 비리와 현 정권과 관련된 비리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기다려볼 필요도 없습니다돈봉투 사건, 불법사찰 사건, 파이시티 사건에 이어, 이번 내곡동 사저 사건의 처리 결과도 이미 예상된 것과 한 점의 차이도 없습니다.혹시나 하면서 기다려 봐도 그 결과는 언제나 "역시나"로 끝나고 맙니다.

사실 사회의 정의를 세우려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더욱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것 아닙니까?죽은 권력 괴롭히는 일은 누구인들 못하겠습니까?살아있는 권력의 비리에 대해 추상 같은 단죄를 해야 사회가 맑아지는 것이지요.

현재 우리 검찰이 이 점에서 국민에게 어떤 점수를 받고 있는지를 구태여 조사해볼 필요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역대 검찰 중 지금처럼 불신을 받고 있는 검찰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검찰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을까요? 난 아니라고 봅니다.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의 행동을 국민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사람들 뇌리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젊은 검사들과 계급장 떼고 대화한 일이 있었습니다."이제는 막 가자는 것이지요?"라는 그 유명한 조크가 바로 그 만남에서 만들어졌지요.

그때 우리는 대통령조차 무서워하지 않는 젊은 검사들의 패기에 놀랐습니다."아, 이렇게 정의감이 강한 검사들이 다 있나?"라고 경탄했습니다.TV 중계를 지켜보던 나는 그들이야 말로 온 세상의 정의를 자신들만이 담보하고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고 느꼈습니다.

이 시점에서 내가 갖는 의문은 지금 그들이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것입니다.변호사 등으로 전직하지 않고 아직 검사로 남아 있다면 검찰의 중견 간부 이상의 중책을 맡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그들은 지금 검찰의 모습이 십 년 전 자신들이 펼쳐 보였던 이상과 부함된다고 만족하고 있을까요?세로 선출된 대통령의 문제점까지 지적할 정도의 패기를 가졌던 그들 아니었습니까?보수언론마저 검찰의 수사 결과에 누가 선뜻 수긍하려 들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마당에, 그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그때 그들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던 정의란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는지 궁금하네요.지금 우리가 보는 검찰의 보기 흉하게 휘어진 잣대를 뜻하는 것이었나요?만약 그렇다면 할 말이 없구요.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비록 십 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마치 정의의 수호신이라도 되는 양 거침없는 발언을 하는 그들을 보고 어이가 없어진 대통령이 "이제는 막 가자는 것이지요?"라는 말을 하게 만든 그때의 그 장면 말입니다.

지금 검찰의 중추를 구성하고 있는 간부들이 그때의 젊은 검사들이었다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입으로만 부르짖는 정의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실천으로 정의를 보여줘야만 비로소 언행이 일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런 검사들이 많아야만 검찰에 대한 신뢰가 우러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내곡동 사저 사건을 또 다시 흐지부지 처리해 버리고 말았다는 기사를 읽고 문득 든 생각이었습니다.

최병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