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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5일 화요일

초라한 변절, 김지하는 없다


이글은 대자보 2013-01-14일자 기사 '초라한 변절, 김지하는 없다'를 퍼왔습니다.
[정문순 칼럼] 수구 이데올로그로 등극한 김지하를 작별하다

김지하의 이력으로 볼 때 그가 박근혜를 지지했다고 하여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죽음의 굿판’ 발언을 포함하여 1990년대 이후 사이비 신흥 종교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사상이라는 것을 봐도 그가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이상했다. 실은 그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변절했다. 단지 한때의 저항 시인 이력이 그를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을 만큼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가 문재인을 지지한다면 그게 오히려 욕된 일이었다. 조갑제가 야당 후보를 지지할 경우의 참상을 생각하면 된다. 

김지하는 박정희가 죽었을 때 그에게 당한 것을 모두 용서했다고 했다. 몸을 숨긴 아들을 내놓으라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기고문을 가하여 ‘반편이’로 만든 짓도 용서했다고 했다. 대단한 자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김지하가 자신을 수 년 동안 감옥에 가두어 가시 면류관을 씌워주고 아버지까지 고문한 야수적인 독재자를 용서했노라고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다닐 이유는 없다. 용서했으니 어쩌란 말인가. 극악한 탄압을 받았던 자신도 용서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박정희를 그만 놓아주자는 말인가. 참혹한 탄압을 받은 자신도 독재자를 용서했는데, 별 피해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왜 미워죽으려고 난리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용서나 화해는 사회적 차원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김지하보다 덜 고생하지도 않았던 고 김근태 전 의원은 고문기술자를 용서했노라고 떠들지 않았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비는 옥중의 이근안이 가진 진정성을 의심했다. 설령 이근안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고 확신했어도 김근태라면 누구를 용서했다느니 하는 가당찮은 말은 하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김지하가 독재자를 용서했다고 요란하게 말할 때의 강조점은 자신이 나쁜 독재자를 용서했다는 액면 그대로의 주장에 있지 않다. 그것은 독재자를 지지했다는 뜻으로, 박정희 독재에 대해 투항하여 자신의 내면에 오롯이 독재를 받아들였다는 의미로 새길 수밖에 없다. 

저항 시인 김지하는 독재자를 용서했을 때 수명이 끝난 것이다. 1991년 조선일보에 죽음을 모독하는 글을 써갈길 때까지 저항 시인의 잔명을 보존할 이유도 없었다. 독재자에 대한 증오를 깨끗이 비워냈다고 하는 자가 사회적 타살을 함부로 모욕하는 것은 자신의 심리 구조상 별스러울 것이 아니며 모순되지도 않는다. 그가 진작에 변절했음을 안다면 저항 시인이 죽음을 모독했다며 세상이 흥분할 일도 아니었다. 그의 변절은 이미 오래 전 독재자의 죽음과 함께 완료된 것이었다. 

김지하는 혼자 힘으로는 부족했는지 아내까지 끌어와서 박근혜 지지를 합리화하고자 한다. 평소에는 무시하다가 불리할 때 여자를 써먹는 것은 마초주의의 습성이다. 그는 아내가, 박근혜가 신산한 세월을 살았다고 동정하더라고 했다.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느라 친정어머니 박경리와 함께 감옥 밖에서 영어나 다름없는 세월을 감당해야 했던 아내였다. 자신의 고통이 아닌 가해자 가족의 고통을 살필 마음의 여유는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차원 높은 아량이지만, 김지하와 그의 아내가 독재자와 가족을 용서하든 말든 동정이나 연민은 철저히 개인적인 자유에 머무를 뿐이다. 한 인간의 삶이 기막히다는 이유로 그를 일국의 대통령 감으로 추어올리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독재자의 딸을 지지하면서 김지하는 어느새 부끄러움도 잊었다. 김지하가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상금을 타고 싶다고 누차 강조하는 모습은 누추하고 초라하다. 돈을 드러내놓고 밝히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는 왜 자신의 이력에 당당하지 못하고 돈을 받는 데만 당당한가. 그 돈을 받는다고 자신의 과거가 온전히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화 경력을 가진 인사들 중에는 보상금 수령조차 구차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가 간절히 바라는 보상금이 나올 수 있게 한 데는 그가 빨갱이로 부를지도 모를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과거사 규명 작업과 민주화 유공자 명예회복 제도에 오로지 빚진 것이다. 박근혜는 거기에 딴죽을 걸었을망정 한 줌의 공헌도 한 바 없다. 박정희를 용서했다는 마음 자세라면 그에게 당한 것에 대해 보상을 받겠다는 생각이 깃들기는 어렵다. 김지하가 보상금의 크기에 과거 치유에 대한 능력이 있다고 믿을 정도면 자신의 빛나는 한때의 이력마저 스스로 모욕하는 것이다. 김지하는 피해의식에 몸부림치는 초라한 노인으로밖에 남아있지 않다. 

사상가로서 김지하가 내놓은 율려 운동이니, 까마득한 상고사 추켜세우기니 하는 것도 극우 민족주의의 변종에 불과하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어 급조한 ‘DNA 모성주의’는 또 뭐란 말인가. 그런데도 그의 과거 이력을 들어 차마 극우라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그를 한국의 사상가로 받들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분신 정국을 모독하고 저주했어도 생명 사상의 발로라고 아부했다. 출판계나 문단은 사상범 출신 시인의 명성에 기대어 김지하가 쓴 책을 팔아먹을 궁리만 하였다. 형편없이 수준 낮은 시를 내놓아도 무조건 걸작이었다. 평론가니 교수니 하는 자들도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강사로 모시기 바빴다. 어렵사리 강연 초청을 수락할 경우, 대중 앞에서 반말을 섞어 말하는 그에게 모시게 돼 영광이라고 엎드렸다. 1991년 분신 정국 이후 그와 틀어졌던 진보 진영 문학가 집단이 세월이 지났다고 그와 화해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대접을 받아봤자 남의 죽음을 모독한 자는 정작 한 줌의 반성도 하지 않았다. 결국 더 큰 사고를 쳤고 변호해 줄래야 해줄 수 없는 막장으로 자신을 몰고 갔다. 

그의 48% ‘빨갱이’ 발언은 그동안 그에 대한 의심이나 의혹이 뒤엉킨 모든 것을 명쾌하게 씻어주었다. 김지하는 40년 넘게 자신을 옭아맸던 빨갱이 족쇄를 남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속이 후련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한국의 지식계에서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할지는 이로써 분명해졌다. 히틀러에 가까운 사고방식의 소유자를 한국의 사상가 반열에 올려놓는 것은 언어도에 불과하다. 수구 이데올로그 이문열의 확고한 자리를 위협하게 된 그는 더 이상 김지하가 아니다. 세상은 김지하를 당당히 버려도 좋을 때가 되었다. 정도는 덜하지만 ‘겨울공화국’의 양성우도 오래 전에 이탈하여 MB의 문화계 인맥으로 넘어갔고, 또 누가 남았지? 

대선 때 문재인 지지를 통해 자신의 일관성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한때 MB의 대북 정책을 지지했던 황석영의 행적도 살얼음을 디딘 듯 조심스럽다. 사실 황석영이 자신의 표절 행각을 책임지지 않았을 때부터 그에게서도 기대를 접게 했다. 2000년대 이후 작품 이력을 보더라도 그가 신나게 썼던 여성 수난사의 소설들은 수구 퇴행의 가부장제적 여성관이 철저히 배인 것이었다. 시인 고은의 경우도, 가만히 있어도 대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거인이 ‘일개’ 노벨상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비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주옥과도 같은 이력을 스스로 무참히 난도질하는 지식인을 보는 것은 슬프다. 그가 정상일 때 남겼던 언어마저 포기해야 하는가 하는 괴로움이 남는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대상의 핵심을 그대로 육박해 가는 그 명쾌했고 날이 서렸던 언어는 그대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그저 사람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인간은 고정 불변의 존재가 아니며 상황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자위하고 싶을 뿐이다. 한 사람의 시인이 자존심을 지키고 품위 있는 원로로 늙어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 사회는 무서운 곳인가. 어쨌든 김지하는 죽었다. 그의 시가 한 사람의 영욕을 두고두고 증명할 것임을 생각하면 죽은 시인이 측은하기만 하다. 그의 단순명료한 시들은, 군사정권의 야만적인 폭력성이 뒤덮던 세상과의 처절한 응전이었기에 더욱 안타깝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지하여, 그 휘황한 ‘구라’여


이글은 시사IN 2012-12-28일자 기사 '지하여, 그 휘황한 ‘구라’여'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김지하를 이해하는 데는 (흰 그늘의 길)이 최상이다. 그의 여성 대통령 대망론은 변절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의 파탄이다. 그의 독설은 ‘좀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빚어낸 말장난이었는

뛰어난 문학 작품이 자신도 모르는 충동을 드러내는 반면,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해명의 욕망에 겨누어진 회고록이나 자서전은 상당히 정제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흰 그늘의 길)(학고재, 2003)은 김지하를 이해하는 최상의 텍스트다. 

그의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는 이렇게 가르쳤다. “너는 앞으로 글을 쓸 아이다. 이 말을 잊지 마라. 사람이 글을 쓰려거든 똑 요렇게 써야 헌다. 한 놈이 백두산에서 방귀를 냅다 뀌면 또 한 놈이 한라산에서 ‘어이 쿠려’ 코를 틀어막고, 영광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펄쩍 뛰어 강릉 경포대 앞바다에 쾅 떨어진다. 요렇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라서 눈을 크게 치떴던 아이는 “이 말씀을 잊지 않고 내 문학의 중요한 규범으로 깊이 간직”했다가, 자신의 이름을 최초로 떨치게 만든 장편 담시 ‘오적’의 첫 줄을 이렇게 내갈겼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독자들은 이 문단을 통째 기억해 두시라.   

 
ⓒ이지영 그림

1974년 민주청년학생연합(민청학련)의 배후 주동자로 지목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곧 무기형으로 감형된 다음, 10개월 만에 석방됐다. 이듬해인 1975년, 감옥에 있을 때 알게 된 인혁당 조작 사건을 폭로한 그는 다시 체포되어 7년 형을 선고받았다. 독방에서 폐소공포증을 얻은 시인은 감옥의 쇠창살과 시멘트 벽의 먼지구덩이를 토양 삼아 자라나는 풀씨를 보고 일종의 개안을 했으니, ‘생명’의 존귀함과 그것을 ‘모셔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온갖 서구 합리주의에 비판적이었던 그가 풀씨를 통해 영성과 동양 사상에 입문하게 된 것은 실로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1991년 5월, (조선일보) 기고문의 배경

1979년 가을 박정희가 죽고 1980년 3월 ‘서울의 봄’이 찾아왔을 때, 시국 사범 대부분이 석방되었으나 김지하는 제외됐다. 그가 버거웠던 신군부는 언제라도 그를 창피 줄 수 있는 각서를 받아놓고자 했다. 고민 끝에 김지하는 장자(莊子)풍의 각서를 중앙정보부에 제출하고 그해 12월에 석방된다. “내가 지금 조물주를 벗 삼다가 싫어져 또 허무의 기운을 타고 육극(六極) 밖에 내달아 우주를 들며 나며 태허(太虛)의 광야에서 노닐고 있는데 네가 지금 나에게 와서 옹색스럽게 천하 다스리는 정치 따위 문제로 나를 괴롭힌단 말이냐?” 

옥고에서 풀려난 김지하는 동지와 후배들로부터 투쟁의 선봉에 서줄 것을 강요받았으나, 그의 관심은 정치나 경제 결정론적 변혁 운동보다 한 차원 높다는 생명운동과 영성운동으로 옮아가 있었다. 이때부터 ‘구도자’를 자처하는 그와 운동권 사이에 반목이 싹텄다. 김지하의 전향 기점을 ‘분신 정국’이라 불리는 1991년 5월, (조선일보)에 쓴 기고문에서 찾는 사람이 많은데, 여기에는 두 가지 숙고 사항이 있다. 첫째는 생명을 모셔야 한다는 그의 시각에서 ‘자살 행진’을 방관할 수 없었다는 점. 둘째는 (흰 그늘의 길)에서는 귀띔만 한 채, 각종 보수 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가 꺼내놓은 ‘김지하 번제(燔祭:제물로 바침)설’. 

<흰 그늘의 길>김지하 지음학고재 펴냄

김지하와 그의 가족들은 유신 시절, 극좌 인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김지하로 하여금 더 공격적인 글을 쓰게 하여 사형을 받도록 하거나, 그를 암살해 정권을 타도하는 지렛대(희생양)로 이용하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기고문은 1991년의 분신 정국을 김지하 자신의 경험 내지 망상(妄想) 구조 아래서 파악하려고 했던 글로, 시인은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번제설의 배후를 아는 대로 밝혀야 한다.

동학·동양사상·선불교에 매진한 시인은 심신의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자기 분열과 불면의 고통 속에서 ‘헛것’을 보기도 했다. 1987년부터 정신과를 찾게 된 그는 그것을 ‘영적 체험’으로 설명하고자 하며, 실제로 저명한 정신과 의사로부터 ‘종교적 환상’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애정 결핍과 그것을 상쇄해준 엄청난 명성의 퇴색 과정을 보면 그가 앓은 병이 갖은 상실과 연관된 우울증이며, 그것의 합병증이 한때 알코올중독으로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을 회고록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우울증이란 병을 인정할 수 없었다. 좀스러우니까.  

지난 11월26일 시인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후에 쏟아낸 여러 차례의 언사를 종합해보면, ‘후천개벽에는 여자가 왕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우주의 정세’란다. 뛰어난 명문으로 기록될 1991년 5월5일치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정치란 ‘환상적 전망’이 아니라 “도덕적 확신에 기초한 엄밀한 이성과 수학의 세계”라고 일갈했던 그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논리이지만, 이제는 독자들도 이게 웬 ‘구라’인지 알리라.      

김지하의 여성 대통령 대망론은 변절이 아니라 그보다 더 뼈아픈, 이론과 실천의 파탄이다. 생명을 받들어 모시는 여성성에 대한 희구는 세 권으로 이루어진 이 회고록에도 그들먹하지만, 일찍이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동광출판사, 1984)에서부터 천명되었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이 제 생각과도 같습니다. 즉 여성적인 덕성이 앞으로의 세계에 있어서의 평화, 관용, 화해에 중요한 몫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그 어떤 여성 정치인도 ‘서포트’한 적이 없었던 시인이 아버지의 신원 말고는 정치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독재자의 딸을,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지지한다? 그는 회고록 2권 어디에 자신은 “원리주의자, 근본주의자, 도그마 신봉자”와는 잘 어울릴 수 없었기에 극좌는 물론이고 “극우적 반공주의자들과도 어울리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현재의 그는 도그마 신봉자일 뿐 아니라, 요즘은 극우 반공주의자들과도 잘 지낸다.

아이엠에프도 박정희 때 시작됐다더니…

회고록 1권 어디에는 2001년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 일인 시위를 하는 시인의 사진과 함께 “그린벨트로 산림을 보호한 것 이외에는 박정희가 한 일은 하나도 없다” “아이엠에프는 박정희 때 시작된 환란이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독설도 모두 외할아버지가 조급히 가르친 허장성세와 ‘좀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시인의 강박이 빚어낸 휘황한 말장난이었던가? 본디 4·19를 마뜩해하지 않았던 김지하에게는 그것을 부정하는 향후 행로만 남았고, 우리에게는 이문열이 그를 모델로 쓴 소설을 읽어야 하는 구차한 즐거움만 남았다. 

장정일 (소설가)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개 똥구멍' 타령 김지하, '변절의 굿판' 걷어 치워라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2-05일자 기사 ''개 똥구멍' 타령 김지하, '변절의 굿판' 걷어 치워라'를 퍼왔습니다.
[게릴라칼럼] 리영희·백낙청 '깡통'에 비유... 박근혜 지지 서글퍼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12월 4일 <조선일보>에 실린 김지하 시인의 특별기고 '한류-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 ⓒ 조선일보

칠순 넘은 시인의 독설이 거침없다. '늙고 외로워지면 보수화된다'는 통념을 몸소 실천하며 일깨워 주기로 작심한 듯하다. 자기 몸 하나도, 생각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서슬 퍼런 197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가 국가 운영체제의 기반이던 박정희 유신 독재시절에 저항 시로 맞섰던 그가 유치한 언행을 일삼으면서도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다. 

김지하 시인이 4일 (조선일보)에 쓴 '한류-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란 제목의 칼럼을 보면 한때나마 그의 시 '오적'을 읊조리며 저항정신을 흠모했던 한 사람으로써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김지하가 (조선일보) 통해 쏟아낸 궤변 

김지하 시인은 칼럼을 통해 "못된 쑥부쟁이가 한류-르네상스를 가로막고 있다"면서 못된 쑥부쟁이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실명 비판했다. 열가지 이유를 들어 백 교수를 '사기꾼', '깡통 빨갱이' 등으로 비유하면서 인신공격성 독설을 퍼부었다. 

특히 고 리영희 선생을 깡통 저널리스트라고 표현한 대목은 압권이다.   

"그(백낙청 교수)의 사상적 스승이라는 '리영희'는 과연 사상가인가? 깡통 저널리스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리영희를 앞세워 좌파 신문에서 얄팍한 담론으로 사기행각을 일삼았다." 

199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분신자살이 잇따랐을 때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했다가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직과 회원자격 정지 결정을 당한 김지하 시인이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보수신문을 통해 후안무치의 궤변을 쏟아냈다. 그동안 그가 이곳저곳을 돌며 열변을 토했던 '사상과 정치의 대변혁 필요성'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모습이다. 대선을 앞두고 왜 그는 무절제한 독설로 세간의 주목을 끌려는 것일까.   

그는 실천적 비평과 민족문학 운동을 일관되게 펼쳐온 백 교수를 향해 뜬금없이 "북한 깡통들의 '신파조'를 제일로 떠받들고 있다"는 둥, "전혀 무식하다"는 둥, 심지어 그의 평론 행위 대해 "그것은 공연한 '시비'에 불과하다"고 멸시하기까지 했다.

그는 고인이 된 박경리 소설가의 작품평까지 언급하면서 백 교수의 문학평을 "너절하고 더러운 방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훼했다. 참으로 민망하고 듣기 거북한 궤변이다.  더욱이 이 같은 상식밖의 그의 행보가 최근 대선을 앞두고 자주 목격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유신시대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활동한 그가 지난달 26일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혀 충격을 주었다. 범시민사회단체연합이 주최한 강연회에 참석한 그는 "이제 여자가 세상일 하는 시대가 왔고 나는 여성들의 현실통어 능력을 인정한다"며 "여자에게 현실적인 일을 맡기고 남자는 이를 도와야 하는 때가 왔다"고 작심한 듯 말했다.

▲ 지난 11월 26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김지하 선생 초청 시국강연회'가 열리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 발언을 했다. ⓒ 권우성

그가 이날 지지하며 추켜세운 박근혜 후보는 한때 그를 감옥에 투옥시킨 독자재의 딸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이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다음날 브리핑에서 "박 후보가 (김지하 시인의) 진솔한 말씀에 감동을 느꼈다"며 "진심으로 고마운 일"이라고 반긴 대목 또한 가관이다.

유신독재 저항시인의 '독재자의 딸' 지지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김지하'라는 사람이 '박정희의 딸'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험악한 시대를 만들어 그의 육신을 영어에 가두며 심신을 고문했던 세력의 품으로 돌아간 까닭을 알 수 없다. 

엄혹한 독재시절, 그의 시를 몰래 읽고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한때 그의 생명사상과 후천개벽 사상이 민주화운동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다니 자괴감마저 느껴진다. "부끄러울 줄 알아야 큰일을 할 수 있다"던 그의 말이 더 없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늘 깨어 있던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을 포함해 진보적 지식인 백낙청을 '깡통'으로 표현하고, 야권 단일화를 빗대 '개수작'이라고 표현한 부분에는 노망기가 가득 묻어난다. 그리고도 그는 민청학련 사건과 오적 필화 사건으로 7년간 수감생활을 한 지난 세월의 명예회복을 위해 38년 만에 법정에 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원범)는 지난 3일 대통령긴급조치제1호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한 재심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법정에 출석한 김 시인은 "세월이 흐르는 바 역사의 변경 과정에 따라 판결해야 하는데도 항구적인 판결로 고정시켰다"며 "세월이 갈수록 타당한 법적 판결이라고 느껴지지 않으니 다시 판단해 달라"고 주장했다. 그의 변호인은 "당시 김씨는 개개의 정부를 타도하려 했을 뿐 기본 정치체계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며 "국가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을 뿐 반국가 단체를 조직한 바도 없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1970년 (사상계)에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시 '오적'을 게재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100일간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다. 또 1974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구속돼 사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이후 국제적인 구명운동으로 10개월 만에 풀려난 그는 유신독재의 진상을 알리는 글을 쓰고 재수감 돼 6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을 그토록 모질고 힘들게 했던 유신독재자의 딸을 이 나라 대통령감으로 지지하고 나서는가 하면 보수신문 (조선일보)에 기고글을 통해 진보적 지식인을 노골적으로 비난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변절의 굿판, 걷어 치워라 

유신시대 지하의 영웅이었던 그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그가, 저항적 문인이었던 그가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는 뭘까. 변절일까? 오판일까? 대선을 앞두고 온갖 추악한 변절이 판을 치고 있지만 '저항 시인 김지하' 만큼은 변절이 아닌 오판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조선일보)에 쓴 칼럼에서 김 시인은 "이번 선거의 개 똥구멍 같은 온갖 개수작들이 역설적으로, 과거가 끝났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려는 과거는 어느 누구의 과거를 얘기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더 이상 기억하기 싫은 오욕의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선거가 아무리 '개 똥구멍' 같다고 할지라도 그건 유권자들이 표로 심판할 일이다. 제발 변절의 굿판이라면 걷어 치워라.   

박주현(parkjh)

2012년 12월 4일 화요일

김지하의 변신 혹은 변절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04일자 기사 '김지하의 변신 혹은 변절'을 퍼왔습니다.

김지하 시인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세대의 영웅이고 나의 영웅이었다. 그의 감동적이고 해학적인 시와 글이 있었기에 20대의 우리는 지하 골방에 앉아서 마음껏 박정희 체제를 비웃을 수 있었고, 민주화 투쟁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그의 생명사상과 후천개벽 사상이 당시로서는 좀 뜨악하기는 했으나 지나고 보니 나름대로 혜안이 있었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1991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을 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때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보편적 담론을 펼쳤지만, 그것을 91년이라는 신공안정국의 국면에, 그것도 (조선일보) 지면에 실어서 보수에 큰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의 변신 혹은 전향은 시작된 것 같다. “인간은 후를 보아야 한다”고 하니 아직 인생 후반부가 남은 나도 큰소리는 못 치겠지만, 그의 변신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지식인은 자신을 알아보는 주군이나 군주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옛말이 있듯이, 그는 자신을 버린 옛 운동진영을 비판해왔고, 자신을 찾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보수세력의 품에 안겼다. 보수세력이 돈과 권력과 위세와 여유, 모든 것을 쥐고 있는 한국 땅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똑똑한 지식인의 변신은 87년 이후 지금의 뉴라이트에 이르기까지 계속 있어왔고, 그의 변신도 그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페이스북에 그의 행동을 ‘전향’이라고 했더니 어떤 페친(페이스북 친구)은 “지식인이라면 적어도 사상적 ‘전향’을 해야 하는데… 변절이라는 생각만 듭니다”라고 댓글을 달았고, 다른 친구는 “썩은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머리를 조아리는 법… 공자는 이를 ‘소인배’라 했죠”라고 일갈했다.그렇다. 늙고 외로워지면 사람은 보수화된다. 특히 어려웠던 시절의 동료들이 자신을 따돌린 채 자기들끼리만 한자리씩 해먹으면, 명성도 잃고 지위도 갖지 못한 지식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변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이 힘들다고, 자신이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모든 사람이, 모든 노인들이 과거의 적에게 안기지는 않는다. “지초와 난초는 매우 깊은 수풀에서 자라지만, 사람이 없더라도 자신의 향을 풍긴다. 군자가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데 곤궁하다고 해서 절개를 꺾어서는 안 된다”(芝蘭生於深林 不以無人而不芳 君子修道入德 不以困窮而改節)는 공자의 말씀이 기억난다. 남이 알아주지 않고 경제적으로 곤궁하다고 변절하는 것은 글 읽는 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기본 교육과 인격도야가 중요하다는 경고로 들린다.70~80년대는 참으로 험악한 시대였고, 90년대 이후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소수의 잘나가는 운동권 출신 외에 대다수 과거 운동세력은 여전히 힘겹게 살아간다. 김지하를 고문했던 세력은 과거의 운동권 명사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여유와 아량을 과시하지만, 여전히 날을 세워야 하는 운동세력은 민주화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 자기편의 약간의 차이를 참지 못하고 거친 공격을 해댔고, 결국 상처를 안은 수많은 동료를 적의 품으로 쫓아냈다.가버린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비난만큼이나, 그가 죽도록 고생하고 출옥했을 때 그를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한 운동세력의 좁은 품이 한탄스럽다. 그리고 늙어서도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 한 사람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의 척박한 정치현실을 한탄한다. 민주화운동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 이렇게 취약했던가 되돌아보게 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변절'한 경제학자를 찾습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25일자 기사 ''변절'한 경제학자를 찾습니다'를 퍼왔습니다.
[데스크 칼럼] '한국경제 성격 논쟁', 아쉬운 대목들

'변절'은 꼭 나쁜 걸까. 헷갈리는 질문이다. 물론, '좋다 나쁘다'를 따지기조차 민망한 '변절'도 제법 있다. 예컨대 파릇파릇한 대학 신입생들에게 '주체사상만이 진리'라고 강변하다가 어느 순간 극우파로 돌변하더니, 이젠 아무에게나 '종북' 딱지를 붙이려 드는 이들이 있다. 이런 경우는 '옳다, 그르다' 또는 '좋다, 나쁘다'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 그냥 볼썽사나운 경우다.

성찰이 있는 변절은 감동을 준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주입한 '휴전선 너머에는 승냥이떼가 산다'라는 신념을 여전히 꺾지 않고 있다면? 혹은 일제 강점기에 주입된 신념을 계속 유지하는 어른이 있다면? 이런 경우라면, 참 곤란하다. '변절'을 적극적으로 권할 일이다. 굳이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어도, 10대 또는 20대 시절 품었던 생각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지내는 이들이 있다면, 누구든 적당한 변절을 권하고 싶어질 게다.

세계관, 가치관은 현실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변화하는 게 옳다. 물론, 이 과정에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또 대중적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소신의 변화를 설명하는 논리를 갖춰야 한다. 그게 책임 있는 자세다. 글머리에서 예로 든 이들이 볼썽사나운 이유는 자신들의 극단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논리가 워낙 옹색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대로 된 변절, 성찰이 있는 변절은 깊은 감동을 준다. 주변 사람들에게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인전 속 인물들은 종종 이런 종류의 변절자들이었다. 지금껏 품었던 생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도, 낡은 생각을 고집한다면 비겁한 짓이다. 설령 조금 거칠고 엉성해도,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새로운 현실에 어울리는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걸 지닌 이들이 많았다면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에게 국권을 뺏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런 용기를 지닌 이들이 많았다면, 1980~90년대에 무수히 생겨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게다.

돌고 도는 논쟁

뜬금없는 '변절 예찬'을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최근 (프레시안)에선 '한국 경제 성격 논쟁' 기획이 진행 중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 등의 주장이 한축이다. 또 이들이 비판대상으로 삼는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이 다른 한축이다. 재벌개혁, 박정희 정권에 대한평가, 산업정책의 중요성 등에 대해 상당한 이견이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한국 경제의 성격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점을 높이 사는 독자들이 많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해당 지면을 담당하는 기자 입장에선 아쉬움이 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등의 문제제기는 크게 새롭지 않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지적했듯, 이들의 문제의식은 2001년 발족한 대안연대회의 활동 속에서 이미 잘 드러났다. 이들의 비판 대상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현 경제개혁연대)를 중심으로 소액주주운동을 해 왔다. 지금 벌어지는 논쟁은 과거 대안연대회의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과 상당부분 겹친다. 물론, 새롭지 않다는 게 꼭 비난받을 점은 아니다. 과거의 논쟁을 현실 속에서 다시 조명하는 게 필요한 때도 많다. 어차피 역사란 중요한 쟁점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경제의 대세가 바뀌었는데, 왜 '변절자'가 안 나올까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논쟁이 태동한 2000년대 초와 지금 사이에는 결정적인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2008년 금융 위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 자본주의의 성격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외국에선 숱한 사회과학자들이 기존 입장을 바꿨다. 예컨대 클링턴 행정부에서노동부 장관을 지냈으며 미국 민주당의 이데올로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로버트 라이시 미국 UC버클리 대학 교수는 2008년 이후 확실히 좌회전 했다. 금융위기 이후에 출간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전작인 (슈퍼자본주의), (부유한 노예) 등과 확연히 다르다. 어찌 보면 '작은 변절'인데, 이런 변절자가 미국, 유럽 등에선 제법 흔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선 이런 변절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상아탑 안에만 머물렀던 학자들은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들은 어차피 현실과 거리를 둬 왔다. 그러나 현실에 깊이 개입했던 학자들이 현실의 거대한 변화 앞에서도 아무런 생각 변화가 없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현실은 바뀌는데 생각은 그대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그렇게 망했고, 1980~90년대 운동권이 그렇게 망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과잉과 구자유주의의 결핍, 저울은 어디로 기울어야 할까

물론, 생각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이끌었던 김상조 교수의 경우, 최근 출간한 에서 그간 진행한 소액주주운동을 통렬하게 반성했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이른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모델 중심의 지배 구조 개선 노력이 후하게 평가돼도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에서 헤매고 있으며, 박하게 평가하자면 정상 궤도를 이탈해 사실상 실패"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2008년 이후 전개되는 세계경제의 지각변동과는 별개 차원이다. 그 이전부터 예정돼 있던 반성이었다. (종횡무진 한국 경제)에서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과잉' 못지않게 '구(舊) 자유주의의 결핍' 역시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읽기에 따라서는 후자를 더 심각하게 본다는 느낌도 받는다. 2008년 이전이라면, 이런 입장이 꼭 어색하지는 않다. 그러나 2012년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적어도 2008년 이후라면,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낳은 폐해에 더 치중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물론, 김 교수가 강조하는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은 꼭 구자유주의적 개혁과제라고만 볼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낳은 폐해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장치다. 기득권층의 로비가 법치와 시장 규율을 조롱하는 장면은 충분히 익숙하다. 삼성 등 재벌이 법을 농락하며 군림하는 상황은 이런 현실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러나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입장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 앞에선 조금 한가한 감이 있다. 고름이 터져서 응급처치를 요하는 환자 앞에서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술, 담배를 멀리 하면 건강해진다'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창립 당시 "거대담론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성공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라고 천명했다. 이런 입장은 지금까지 견고하게 유지돼 왔고, 큰 성과를 거뒀다. 거대재벌 삼성의 급소를 콕 짚어내 압박했던 여러 사례는 관성에 젖은 기존 운동권이라면 기대하기 어려웠던 성과였다. 소규모 시민단체가 재벌을 상대로 공익소송을 벌여 높은 승소율을 기록했다는 점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거대담론에 대한 대중의 수요, 지식인은 응답해야

하지만 이제는 거대담론을 외면할 수 없는 때가 된 것 아닐까. 적어도 지식시장에선, 거대담론에 대한 수요가 뚜렷하다. 철학서적인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현상, 장하준 교수의 저술이 잇따라 화제가 된 현상 등이 그 방증이다. 과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류의 책에 열광하던 이들이 이제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는다. 대중이 보기에, 지금의 세계경제는 재테크 서적의 얄팍한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의 방향을 이해하고픈 욕망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큰 이야기', '역사적 접근' 등을 다룬 책을 찾아 읽는다.

거대담론에 대한 수요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현실에 참여하는 지식인은 응답할 의무가 있다. "구체적인 성공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는 일은 앞으로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나 "거대담론의 실패경험"을 경계하는 논리가 지금도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지금 대중이 요구하는 거대담론은 19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처럼 공허한 게 아니다.

제대로 된 거대담론에 기반한 설명이 필요한 사례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컨대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아이슬란드는 이후 강력한 긴축정책을 취하는 한편,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탕감정책을 취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1000조 원에 가까운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눈길이 가는 사례다. 그런데 긴축에 반대하는 입장, 또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입장 등 기존의 전형적인 분석틀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결국 정치적 정당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폭넓게 아우르는 논리가 필요하다.

기존 주류경제학의 처방이 힘을 잃은 상황에서 새로운 논리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지금 필요한 거대담론이다.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원칙을 앞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결코 간단치 않다. 신자유주의 이후를 전망하는 거대담론에 대한 토론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재벌이 뭐가 아쉬워서 타협하겠나

거대담론을 원하는 대중에게 때 마침 스케일 큰 논리를 제공했던 그룹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등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다. 이들이 비판하는 진영의 논리에 비해, 이들의 주장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딱딱한 법률 용어가 상대적으로 덜 쓰인다. 대중적인 반향이 컸던 한 이유일 게다. 그러나 그만큼, 대중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설명을 할 필요가 따른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문제가 "재벌 총수가 뭐가 아쉬워서 타협 하겠나"라는 것이다. 물론, 이름 모를 외국계 투기자본이 국내 대기업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지금의 지배구조가 낫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재벌과의 타협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연결 짓는 건 비약이다. '재벌이 현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타협점을 찾게끔 압박할 수단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경제개혁연대라면, 이 질문 앞에서 할 말이 있다. 현행 재벌 지배구조가 지닌 법적 맹점을 공격하는 것이고, 이는 자유주의적인 개혁 과제를 중시하는 이 단체의 입장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이 내놓은 입장은 '복지국가 진영의 정치세력화 및 집권', '정치 사회적 압력', '노동조합 강화' 등 막연한 수준이다. 재벌의 로비는 강력한데, 그들을 통제할 힘은 극히 미미한 게 현실이라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보다 구체적인 재벌 압박·통제 장치를 제출할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 대한 정교한 논의가 빠진다면, 이들의 주장은 지속적인 신뢰를 얻기가 힘들다.

기업집단법 제정, 보험산업 개혁…공통점도 많다

아쉬운 대목은 또 있다. 역시 독자들이 자주 지적하는 문제다. 이들 그룹은 여러 차례에 걸쳐 김상조, 유종일 등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을 비판해 왔다. 소유권에 바탕한 자유주의 논리가 연대에 기반한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혁 성향 경제학자들에 대한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비판은 상당히 소모적이다. 이들이 비판 대상으로 삼는 학자들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예컨대 장하준, 김상조 사이의 거리가 주주자본주의를 온전히 지지하는 다른 경제학자와 김상조 사이의 거리보다 과연 멀까. 원고 청탁 및 취재차 만난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으리라는 대답이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찾아보면, 이들 집단 사이에는 공통점이 꽤 많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지적했듯, 양 측은 모두 '기업 집단 법' 제정을 주장한다. 현행 재벌 지배 구조가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이 있다는 점에는 다들 공감하는 것이다. 또 장하준 교수는 보험 산업이 복지 강화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맥락은 다르지만, 김상조 교수 역시 삼성생명 등 보험 업계의 문제점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 왔다.

경제와 노동, 복지를 아우르는 포괄적 접근이 지닌 효용

차이점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접근은 논점을 선명하게 하는 데는 이롭지만, 양 측의 공통분모를 확대하는 논의를 가로막는 면도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장점을 살리는데도 해롭다. 이들 그룹의 대표적인 장점은 협소한 주류 경제학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포괄적 접근이다. 예컨대 정승일 박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거래 문제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해서 이 문제에 천착했던 경제학자들에게선 나오지 않았던 접근방식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하청 관행이 많은 경우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 박사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대기업이 하청 업체를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문제인데, 최저임금 인상은 이런 경우를 줄이도록 하는 압력이 될 수 있다. 정 박사는 여기에 복지 차원의 접근도 곁들인다. 인상된 최저임금을 줄 수 없는, 경쟁력 없는 하청업체는 도산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와 노동, 복지 영역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야 가능한 해법인데,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이런 접근에서 강점이 있다. 이런 식의 접근에선 기존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소외됐던 노동운동 진영, 복지운동 진영이 설 자리가 생긴다. 민주노총이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 개입할 수 있게끔 하는 논리적 근거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처럼 연대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의 장점이고, 변호사와 경제학자들만의 운동에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는 게 과거 소액주주 운동의 한계였다. 그렇다면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그룹은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생각이 다른 이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확대하는 게 옳다.

생산적인 변절을 기대한다

이처럼 포괄적인 접근은, 다른 한편으로 주류 경제학자들의 외면을 낳은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런 태도가 꼭 옳은지는 의문이다. 거시경제학의 시조이며, 1930년대 공황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 역시 정통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대학 전공은 수학이었고 박사 학위도 없었으며, 대부분의 경력을 대학이 아닌 관청에서 쌓았다. 하지만 지금 경제학 역사에서 케인스의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논쟁은 '어느 쪽이 더 정통 경제학 이론에 부합하느냐'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존 경제학 이론의 권위가 흔들린 것 역시 사실이다. 지금 필요한 건 '위기 앞에서 가장 실용적인 해법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논쟁이다.

현 정부 들어서 '실용'이라는 표현에 조금 부정적인 어감이 깃들게 됐다. 그러나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적어도 정책에 관한 논의에선 나쁜 게 아니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모두 죽는다"라고 한 것 역시 케인스였다. 경제학자가 할 일은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처방이라는 것. 장기적으로 체질을 개선하자는 식의 주장은 경제학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게다. 구체적 현안을 둘러싼 논쟁에선 늘 한결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가장 실용적인 해법을 찾다보면, 기존 입장을 뛰어넘는 경우는 다반사로 생기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변절'이지만, 생산적인 변절이다. 향후 전개될 '한국경제 성격 논쟁'에서 생산적인 변절이 종종 나타나길 기대한다.

 ▲ ⓒ프레시안(손문상)

/성현석 기획취재팀장

2012년 1월 30일 월요일

욕망과 변절 사이, 손석형과 박용진의 경우


이글은 대자보 2012-01-30일자 기사 '욕망과 변절 사이, 손석형과 박용진의 경우'를 퍼왔습니다.
지금 창원 지역은 손석형 전 경남도의원의 중도사퇴 가지고 말이 많다. 진보정치의 대의를 져버렸다느니, 도민과의 약속을 어겼다느니 하는 비난이 턱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왜 내 마음을 울리지는 못하는 걸까. 나는 총선 출마를 위해 지방의원직을 내던진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나라도 그렇게 할지 모르겠다. 

끝까지 현 직분을 완주하는 것이 박수 받을 만한 일이긴 하겠지만 다음 총선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고 개인으로서 손해 봐야 할 것이 많다. 지방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누구에게 해를 입히는 일일까. 재선거 비용? 비용을 따지자면 선출 제도만큼 낭비적인 것은 없다. 

더 근사한 자리,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바탕에 자리한 기본적인 욕구일 것이다. 지방의원과 국회의원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자신의 그릇이 국민의 대표라고 믿는 사람을 굳이 뜯어말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 월등한 책임과 능력이 요구되는 일에 도전하겠다는데 그런 부분까지 비난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성공이든 실패든 전적으로 자신이 감당할 몫일 터. 정치인은 도덕군자를 뽑는 것이 아님과, 인간에게 내재한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도리어 정치의 수준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큰물에 도전하기 위해 도의원직을 물러나는 것이 욕먹는 일일 정도로 정치를 순백무결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어쩌면 지금의 정치판이 워낙 지저분하고 더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보신당 창당 주역이 총선을 앞둔 정치적 격변의 기회를 틈타 몇 단계 건너 뛰어 민주통합당으로 향하는 세상은 이익 앞에 지조도 원칙도 없는 한국 정치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진보주의자가 하루아침에 보수기득권 세력에 투항하는 것이야 한두 번 보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가 순결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내가 보기에도 이런 장면은 어리둥절하다. 박용진 전 진보신당 대변인은 한나라당과 싸잡아 민주당을 보수정당으로 그렇게 손가락질할 때는 언제고 민주통합당에는 왜 갔을까. 

탐욕이 많은 자는 가치관보다 이익이 꾀이는 곳을 택하기 마련임을 안다면, 박용진의 선택은 이해가 간다. 자신과 아무리 색채가 맞더라도 그에게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가는 건 무리였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전신인 민주노동당에서 나올 당시 감정적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다 비슷한 사람들 천지니 자신이 돋보일 것이 없는 반면, 민주통합당에서는 진보진영 출신으로 희소성을 요구할 수 있는 지분을 기대했을 것이다. 과연 대표 경선에도 도전해 봤고, 공천 1순위라는 말도 들린다. 이전의 늙은 민주당 같으면 들어가고 싶어도 입당할 명분이 안서겠지만, 이제는 달라졌다는 핑계를 내세울 수 있다. 

박용진은 민주통합당은 민주당과 다르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민주통합당이 되면서 색깔을 완전히 갈아치웠다고 믿는 걸까. 믿고 싶었거나,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을 것이 아닐까. 그 당에 참여정부를 망하게 한 자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친노의 색깔을 덧입은 것밖에 더 있는가. 민주통합당이 자유무역주의를 반대하나. 비정규직을 반대하나. 한미 FTA는 반대한다고 하겠지. 참여정부가 했던 FTA는 잘한 것이고, 이명박 정부가 하는 FTA는 틀렸다고 하겠지. 

내 아무리 인간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고 싶어도 꿋꿋이 지탱해 온 가치관마저 손바닥 뒤집듯 하는 행위까지 너그럽게 대해 줄 생각은 없다. 김문수나 이재오, 뉴라이트 출신들이 그랬듯이 그건 변절이요 훼절일 뿐이다. 양지를 차지하고서도 배신자 소리를 듣기 싫다면 범 잡으러 소굴에 들어간다는 ‘기명삼’ 어법을 관두고 총선 후에도 살아남을지 알 수 없는 가난한 정당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연민이라도 부르는 모습일 것이다.

어쩌면 정치야말로 인간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교과서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교과서는 중도사퇴는 몰라도 신념 체계를 뒤집는 것까지 용인할 아량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변절이 아닌 한, 인간의 약점과 욕망을 최대한 용인하는 방향으로 정치가 나아간다면 좋겠다. 

* 1.27.경남도민일보에 게재한 칼럼을 손본 것임.


* 필자는 <대자보> 편집위원이며, 문학평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