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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지하여, 그 휘황한 ‘구라’여


이글은 시사IN 2012-12-28일자 기사 '지하여, 그 휘황한 ‘구라’여'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김지하를 이해하는 데는 (흰 그늘의 길)이 최상이다. 그의 여성 대통령 대망론은 변절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의 파탄이다. 그의 독설은 ‘좀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빚어낸 말장난이었는

뛰어난 문학 작품이 자신도 모르는 충동을 드러내는 반면,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해명의 욕망에 겨누어진 회고록이나 자서전은 상당히 정제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흰 그늘의 길)(학고재, 2003)은 김지하를 이해하는 최상의 텍스트다. 

그의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는 이렇게 가르쳤다. “너는 앞으로 글을 쓸 아이다. 이 말을 잊지 마라. 사람이 글을 쓰려거든 똑 요렇게 써야 헌다. 한 놈이 백두산에서 방귀를 냅다 뀌면 또 한 놈이 한라산에서 ‘어이 쿠려’ 코를 틀어막고, 영광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펄쩍 뛰어 강릉 경포대 앞바다에 쾅 떨어진다. 요렇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라서 눈을 크게 치떴던 아이는 “이 말씀을 잊지 않고 내 문학의 중요한 규범으로 깊이 간직”했다가, 자신의 이름을 최초로 떨치게 만든 장편 담시 ‘오적’의 첫 줄을 이렇게 내갈겼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독자들은 이 문단을 통째 기억해 두시라.   

 
ⓒ이지영 그림

1974년 민주청년학생연합(민청학련)의 배후 주동자로 지목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곧 무기형으로 감형된 다음, 10개월 만에 석방됐다. 이듬해인 1975년, 감옥에 있을 때 알게 된 인혁당 조작 사건을 폭로한 그는 다시 체포되어 7년 형을 선고받았다. 독방에서 폐소공포증을 얻은 시인은 감옥의 쇠창살과 시멘트 벽의 먼지구덩이를 토양 삼아 자라나는 풀씨를 보고 일종의 개안을 했으니, ‘생명’의 존귀함과 그것을 ‘모셔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온갖 서구 합리주의에 비판적이었던 그가 풀씨를 통해 영성과 동양 사상에 입문하게 된 것은 실로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1991년 5월, (조선일보) 기고문의 배경

1979년 가을 박정희가 죽고 1980년 3월 ‘서울의 봄’이 찾아왔을 때, 시국 사범 대부분이 석방되었으나 김지하는 제외됐다. 그가 버거웠던 신군부는 언제라도 그를 창피 줄 수 있는 각서를 받아놓고자 했다. 고민 끝에 김지하는 장자(莊子)풍의 각서를 중앙정보부에 제출하고 그해 12월에 석방된다. “내가 지금 조물주를 벗 삼다가 싫어져 또 허무의 기운을 타고 육극(六極) 밖에 내달아 우주를 들며 나며 태허(太虛)의 광야에서 노닐고 있는데 네가 지금 나에게 와서 옹색스럽게 천하 다스리는 정치 따위 문제로 나를 괴롭힌단 말이냐?” 

옥고에서 풀려난 김지하는 동지와 후배들로부터 투쟁의 선봉에 서줄 것을 강요받았으나, 그의 관심은 정치나 경제 결정론적 변혁 운동보다 한 차원 높다는 생명운동과 영성운동으로 옮아가 있었다. 이때부터 ‘구도자’를 자처하는 그와 운동권 사이에 반목이 싹텄다. 김지하의 전향 기점을 ‘분신 정국’이라 불리는 1991년 5월, (조선일보)에 쓴 기고문에서 찾는 사람이 많은데, 여기에는 두 가지 숙고 사항이 있다. 첫째는 생명을 모셔야 한다는 그의 시각에서 ‘자살 행진’을 방관할 수 없었다는 점. 둘째는 (흰 그늘의 길)에서는 귀띔만 한 채, 각종 보수 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가 꺼내놓은 ‘김지하 번제(燔祭:제물로 바침)설’. 

<흰 그늘의 길>김지하 지음학고재 펴냄

김지하와 그의 가족들은 유신 시절, 극좌 인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김지하로 하여금 더 공격적인 글을 쓰게 하여 사형을 받도록 하거나, 그를 암살해 정권을 타도하는 지렛대(희생양)로 이용하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기고문은 1991년의 분신 정국을 김지하 자신의 경험 내지 망상(妄想) 구조 아래서 파악하려고 했던 글로, 시인은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번제설의 배후를 아는 대로 밝혀야 한다.

동학·동양사상·선불교에 매진한 시인은 심신의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자기 분열과 불면의 고통 속에서 ‘헛것’을 보기도 했다. 1987년부터 정신과를 찾게 된 그는 그것을 ‘영적 체험’으로 설명하고자 하며, 실제로 저명한 정신과 의사로부터 ‘종교적 환상’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애정 결핍과 그것을 상쇄해준 엄청난 명성의 퇴색 과정을 보면 그가 앓은 병이 갖은 상실과 연관된 우울증이며, 그것의 합병증이 한때 알코올중독으로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을 회고록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우울증이란 병을 인정할 수 없었다. 좀스러우니까.  

지난 11월26일 시인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후에 쏟아낸 여러 차례의 언사를 종합해보면, ‘후천개벽에는 여자가 왕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우주의 정세’란다. 뛰어난 명문으로 기록될 1991년 5월5일치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정치란 ‘환상적 전망’이 아니라 “도덕적 확신에 기초한 엄밀한 이성과 수학의 세계”라고 일갈했던 그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논리이지만, 이제는 독자들도 이게 웬 ‘구라’인지 알리라.      

김지하의 여성 대통령 대망론은 변절이 아니라 그보다 더 뼈아픈, 이론과 실천의 파탄이다. 생명을 받들어 모시는 여성성에 대한 희구는 세 권으로 이루어진 이 회고록에도 그들먹하지만, 일찍이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동광출판사, 1984)에서부터 천명되었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이 제 생각과도 같습니다. 즉 여성적인 덕성이 앞으로의 세계에 있어서의 평화, 관용, 화해에 중요한 몫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그 어떤 여성 정치인도 ‘서포트’한 적이 없었던 시인이 아버지의 신원 말고는 정치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독재자의 딸을,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지지한다? 그는 회고록 2권 어디에 자신은 “원리주의자, 근본주의자, 도그마 신봉자”와는 잘 어울릴 수 없었기에 극좌는 물론이고 “극우적 반공주의자들과도 어울리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현재의 그는 도그마 신봉자일 뿐 아니라, 요즘은 극우 반공주의자들과도 잘 지낸다.

아이엠에프도 박정희 때 시작됐다더니…

회고록 1권 어디에는 2001년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 일인 시위를 하는 시인의 사진과 함께 “그린벨트로 산림을 보호한 것 이외에는 박정희가 한 일은 하나도 없다” “아이엠에프는 박정희 때 시작된 환란이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독설도 모두 외할아버지가 조급히 가르친 허장성세와 ‘좀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시인의 강박이 빚어낸 휘황한 말장난이었던가? 본디 4·19를 마뜩해하지 않았던 김지하에게는 그것을 부정하는 향후 행로만 남았고, 우리에게는 이문열이 그를 모델로 쓴 소설을 읽어야 하는 구차한 즐거움만 남았다. 

장정일 (소설가)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충격증언 쏟아지는 천안함 재판에 기자들이 없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6-25일자 기사 '충격증언 쏟아지는 천안함 재판에 기자들이 없다'를 퍼왔습니다.
[김종철 칼럼]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과 침묵의 카르텔… 국정조사로 진실 밝혀야

6월 5일 개원할 예정이었던 제19대 국회가 20일이 지나도록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이 ‘개원 협상에서 무리한 요구를 계속했기 때문’이라면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소속 의원들의 한 달치 월급을 ‘반납’ 받았다. 민주통합당은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에서   양보를 거듭했는데도 새누리당이 협상에 성의 있게 응하지 않는 채,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문제,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등 집권세력에 불리한 사건들에 대한 국정조사를 피하려고 개원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반박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국회 문을 아예 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임기가 끝나는 대법관들의 후임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비롯해서 많은 현안들이 국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시급한 것은 ‘천안함 침몰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다. 6월 23일자 한겨레 1면 머리와 3·4면 전체를 메운 ‘천안함, 두 개의 문’이라는 기사는 새누리당과 야당이 하루라도 빨리 국회를 열어 국정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뒤 ‘천안함의 진실’을 밝혀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미국 버클리대학 박사 출신으로 ‘30년 경력의 대잠수함전 전문가’인 안수명(69) 씨는 “서해바다라는 현실의 조건과 잠수정의 공격능력, 어뢰가 목표물을 탐지해 찾아가는 음향신호 처리의 관점에서 보면 (어뢰에 의한 폭발의) 확률은 소수점이 얼마가 되든 0.00000001% 수준으로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2011년 6월 정보공개법에 따라 미국 해군에 ‘천안함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자신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자료를 받지 못하자 한국 정부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천안함 폭발 사건’에 관한 조사결과 등을 바탕으로 연구와 검토를 거듭한 끝에 ‘어뢰에 의한 폭발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미국 퍼듀대 화학공학박사로, 알루미늄 부식 및 폭약 전문가인 김광섭(72) 씨는 지난 4월 25~27일 제주도 서귀포에서 열린 한국화학공학회 학술강연에 초청받았다가 강연 직전 취소 통보를 받았다. 그는 “강연 발표문에서 천안함 합조단의 알루미늄 흡착물질 분석이 잘못됐다는 점과, 1번 어뢰의 인양 장소가 ‘1번 어뢰설’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더니 발표가 취소된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재미 원로 과학자의 주장은 한·미 양국군이 북한을 천안함 침몰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 만큼, 이를 입증할 책임 또한 양국 군, 곧 합조단에 있다고 말한다. 또 합조단 조사 결과에는 ‘주장’만 있고 ‘입증’은 없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비판이다.”(한겨레, 6월 23일자 1면 기사)


2010년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연안에서 일어난 천안함 사건을 둘러싸고 지난 2년 남짓 동안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은 ‘북한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고 주장해왔고, 민주진보 진영의 야당과 일부 언론은 ‘북한의 어뢰 발사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며, 여러 정황을 분석해 보면 좌초에 따른 침몰이거나 기뢰에 의한 폭발일 가능성이 크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초점으로 한 공방전은 이명박 정권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다. ‘민관 합동조사단’은 “가스터빈실 좌현 하단부에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한 것”이며 “어뢰에 적힌 1번이라는 표기법이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 표기방법과 일치한다”는 요지의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반론을 펴는 사람들은 “어뢰 폭발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근거가 없고, ‘1번’이라는 표기는 북한식이 아니라”고 맞서왔다. 

합동조사단에 민주당 추천 민간위원으로 참여해서 활동하다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해군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신상철 (인터넷 포털) 대표는 2011년 8월 22일 첫 번째 재판을 받았다. 그때부터 2012년 6월 11일에 열린 11차 공판까지 법정에서는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어뢰 폭발’ 대 ‘좌초 뒤 침몰’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피고와 그의 변호사들이 증인들에 대한 심문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밝혀낸 것은 ‘천안함 어뢰 폭발설’이 신빙성이 박약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재판은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에 못지않게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므로 언론이 당연히 깊이 있게 보도해야 마땅한데 오직 한 매체 말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1차부터 11차까지 공판 진행과정을 소상하게 알리고, 전문가의 논평과 분석을 보도해왔을 뿐 ‘진보언론’에서는 ‘천안함 재판’에 관한 기사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진보언론의 기자가 현장을 취재하는 모습을 내가 직접 본 적도 있는데 정작 그 매체에는 기사가 실리지 않았다. ‘침묵의 카르텔’을 맺었다면 모를까,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19대 국회는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8개월을 남긴 지금 ‘천안함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천안함 좌초설’을 ‘이적행위’라고 끈질기게 공격해온 새누리당은 지난 23일 재미 학자 두 사람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반론을 펼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관계는 파탄을 향해 치달아왔다. 생산적 교류는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19대 대통령선거가 본격적인 국면에 접어들면 ‘천안함 사건’은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서 국정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뒤 진상을 가려내야 한다.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이 확증되면 반대 진영은 승복해야 할 것이고, ‘어뢰 폭발이 아니라 좌초 등 다른 원인에 의한 침몰’이라면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보수언론이 잘못을 선선히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김종철·언론인(전 연합뉴스 사장) | cckim99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