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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4일 화요일

김지하의 변신 혹은 변절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04일자 기사 '김지하의 변신 혹은 변절'을 퍼왔습니다.

김지하 시인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세대의 영웅이고 나의 영웅이었다. 그의 감동적이고 해학적인 시와 글이 있었기에 20대의 우리는 지하 골방에 앉아서 마음껏 박정희 체제를 비웃을 수 있었고, 민주화 투쟁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그의 생명사상과 후천개벽 사상이 당시로서는 좀 뜨악하기는 했으나 지나고 보니 나름대로 혜안이 있었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1991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을 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때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보편적 담론을 펼쳤지만, 그것을 91년이라는 신공안정국의 국면에, 그것도 (조선일보) 지면에 실어서 보수에 큰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의 변신 혹은 전향은 시작된 것 같다. “인간은 후를 보아야 한다”고 하니 아직 인생 후반부가 남은 나도 큰소리는 못 치겠지만, 그의 변신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지식인은 자신을 알아보는 주군이나 군주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옛말이 있듯이, 그는 자신을 버린 옛 운동진영을 비판해왔고, 자신을 찾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보수세력의 품에 안겼다. 보수세력이 돈과 권력과 위세와 여유, 모든 것을 쥐고 있는 한국 땅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똑똑한 지식인의 변신은 87년 이후 지금의 뉴라이트에 이르기까지 계속 있어왔고, 그의 변신도 그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페이스북에 그의 행동을 ‘전향’이라고 했더니 어떤 페친(페이스북 친구)은 “지식인이라면 적어도 사상적 ‘전향’을 해야 하는데… 변절이라는 생각만 듭니다”라고 댓글을 달았고, 다른 친구는 “썩은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머리를 조아리는 법… 공자는 이를 ‘소인배’라 했죠”라고 일갈했다.그렇다. 늙고 외로워지면 사람은 보수화된다. 특히 어려웠던 시절의 동료들이 자신을 따돌린 채 자기들끼리만 한자리씩 해먹으면, 명성도 잃고 지위도 갖지 못한 지식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변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이 힘들다고, 자신이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모든 사람이, 모든 노인들이 과거의 적에게 안기지는 않는다. “지초와 난초는 매우 깊은 수풀에서 자라지만, 사람이 없더라도 자신의 향을 풍긴다. 군자가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데 곤궁하다고 해서 절개를 꺾어서는 안 된다”(芝蘭生於深林 不以無人而不芳 君子修道入德 不以困窮而改節)는 공자의 말씀이 기억난다. 남이 알아주지 않고 경제적으로 곤궁하다고 변절하는 것은 글 읽는 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기본 교육과 인격도야가 중요하다는 경고로 들린다.70~80년대는 참으로 험악한 시대였고, 90년대 이후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소수의 잘나가는 운동권 출신 외에 대다수 과거 운동세력은 여전히 힘겹게 살아간다. 김지하를 고문했던 세력은 과거의 운동권 명사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여유와 아량을 과시하지만, 여전히 날을 세워야 하는 운동세력은 민주화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 자기편의 약간의 차이를 참지 못하고 거친 공격을 해댔고, 결국 상처를 안은 수많은 동료를 적의 품으로 쫓아냈다.가버린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비난만큼이나, 그가 죽도록 고생하고 출옥했을 때 그를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한 운동세력의 좁은 품이 한탄스럽다. 그리고 늙어서도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 한 사람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의 척박한 정치현실을 한탄한다. 민주화운동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 이렇게 취약했던가 되돌아보게 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2년 11월 18일 일요일

‘인간도살장’의 세 가지 논리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17일자 기사 '‘인간도살장’의 세 가지 논리'를 퍼왔습니다.

 
2001년 1월 서울시내에 걸린 고문경찰 이근안의 현상수배 대자보를 시민들이 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고문, 권력이 원하는 목표 위해 사람을 철저히 파괴한 삼중의 폭력
박정희·전두환 때 고문 지시한 자, 묵인한 사법부, 왜곡 보도한 언론 대선 활개

“고통, 고문, 이런 고씨 돌림은 죽음의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 죽음의 핵심 정수인 것입니다. 저 칠흑같이 어두웠던 일제 치하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등계 형사들에 의해 불구자가 되고 목숨을 잃어가고 윤동주 시인이나 이육사처럼 옥사했던 이유가 이 참혹한 고문이었습니다.전기고문, 그것은 한마디로 불고문이었습니다. 외상을 남기지 않으면서 치명적으로 내상을 입히는 것이고 극도의 공포와 고통을 수반하는 고문입니다. 물고문과 불고문의 조화라 할까요. 물고문이 밑바닥이 닿지 않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질식해가는 것이라면 불고문은 단근질해서 뜨거운 불인두로 지져서 바싹 말라 바스라뜨리고 돌을 말려서 불에 튀기는 그런 것입니다. 전기고문 그것은 핏줄을 뒤틀어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침내 마디마디 끊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이 오고 그 몰려오는 공포라니, 죽음의 그림자가 독수리처럼 날아와 파고드는 것처럼 아른거렸습니다.

”물·전기고문 판치는 저주의 세계

최근 개봉된 영화 (남영동 1985)의 토대인 김근태의 수기 (남영동)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김근태는 자신이 고문당한 남영동을 ‘인간도살장’, 독가스 대신 전기고문과 물고문이 설치는 나치 수용소였으며, 시간이 종국적으로 멈춰버린 저주의 세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국어사전에서 고문(拷問)은 “죄를 진 혐의가 있는 자에게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육체적인 고통을 주며 신문함”이라고 말한다. 즉, 죽이는 것은 고문의 목표가 아니다. 피의자가 생명을 유지하며 극한의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고문은 중세 유럽이나 과거 중국, 조선에서도 존재했는데, 조선시대에는 모반(謀反) 대역죄(大逆罪)인들의 죄를 추궁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중세 독일에는 날카로운 쇠못을 촘촘히 박은 철의(鐵衣)를 피고문자에게 입혀 조여들게 하는 고문도 있었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하여 나무 침대 위에 팔다리를 고정시켜 사지를 찢는 고문도 있었다. 전세계에서 사용된 고문의 종류는 대략 320여 종이라고 한다. 일제가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심문할 때 사용한 고문은 이들 전세계 고문의 종합판이었다. 손가락 사이, 배꼽, 귀, 코, 입, 성기, 항문 등에 전선 전극을 갖다 대서 고통을 주는 전기고문, 추운 겨울에 옷을 벗겨놓고 찬물을 끼얹거나 거꾸로 매단 다음 얼굴을 수건으로 덮고 물이나 고춧가루를 끼얹는 물고문, 수갑을 채운 양손 사이에 무릎을 집어넣고 쇠파이프를 꽂아 대롱대롱 매달아놓는 통닭구이 고문, 손톱 뽑기 고문 등 우리의 상상력으로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고문 방법이 사용되었다.박정희·전두환 시절 고문은 바로 일제 시기 고문의 후속편이자 확대판이었다. 그 방법 역시 김근태의 수기에 나온 것처럼 일제의 것과 거의 동일했으며, 그 시절 고문기술자들은 해방 직후 일제의 고등경찰로부터 고문 방법을 배운 선배들에게서 대대로 기술을 전수받았다. 잠 안 재우는 고문, 집단으로 주먹과 각목으로 사정없이 폭행하는 고문, 통닭구이 하듯 손과 발을 묶어 매달아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붓는 고문, 시멘트 바닥에 알몸으로 무릎 꿇게 하고 얼음물을 부어대는 고문, 알몸뚱이로 다리를 벌리게 한 다음 생식기를 줄로 때리는 고문, 다리 사이에 각목을 끼우고 구둣발로 짓이기는 고문, 볼펜으로 머리털을 감아 당기는 고문,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짓이기는 고문…. 죽도, 대나무관, 5자 정도의 곤봉, 사람을 채찍질하기 위해 사용된 로프, 사람을 찌르기 위해 사용하는 우산 꼭지, 부젓가락, 사람의 몸을 밟아 뭉개기 위한 도구, 하복부에 찔러넣는 곤봉 등 이루 셀 수 없는 종류의 향연이 서빙고의 보안사 사무실, 남산의 중앙정보부(안기부), 남영동 경찰 대공분실 등에서 질펀하게 펼쳐졌다.아마 가장 극심한 경우는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관계자들이 당한 고문이었을 것 같다. 당시 감옥에서 김지하가 이들에게 “고문 많이 당했습니까?” 물으니까 이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하재완은 “말 마이소. 창자가 다 빠져나와버리고 부서져버리고 엉망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탈장이 되어 한 손으로 항문으로 흘러나온 창자를 집어넣으며 재판을 받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났다.

영화 <남영동 1985> 에 나오는 대공분실에서의 고문 장면.

개인이나 세력 향한 복수이고 화풀이

그런데 고문이 “자백을 받기 위해 심문”하는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고문은 권력이 자신에게 대드는 저항자의 손발을 묶어놓은 다음 마음껏 화풀이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완전히 무력화된 상대방을 조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유럽 거점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은 다음과 같이 고문 사실을 기억한다.“조사실로 걸어가는데 수사관들이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잡혔는데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느냐며 마구 때렸다. 조사실에서는 모○○이 내 구두를 벗겨 그 구두로 분풀이하듯이 때렸다. …물에 젖은 수건을 손과 발에 묶고 전깃줄에 엮어서 전기고문을 했다. 계속 고문을 하는데 살점이 모두 떨어지는 고통이었다. 옷을 벗기고 손과 발을 묶어서 다리 사이에 막대기를 끼워 대롱대롱 매달리게 하고는 물을 붓는 고문을 당하였다. 그 고문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옷 입은 사람 앞에 옷을 다 벗고 있는 것이 수치스럽고 모멸스러워 내가 짐승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로 차는데 그때 맞은 후유증으로 지금도 왼쪽 허리 쪽이 시큰거린다.”즉, 폭력과 고문은 자신에게 대드는 개인이나 세력을 향한 복수이고 화풀이기도 하다. 특히 고문은 상대방을 완전히 감금하고 무장해제시킨 다음 자신만이 무기를 들고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것이므로 가장 비열하고 심각한 불공정 게임이다. 고문은 유죄 사실, 반란세력의 전모를 파악해서 유죄를 입증한다는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폭력이 그렇듯이 그 과정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고, 그것을 통해 만들어질 권력자와 백성들 간의 관계 정립의 구상이기도 하다.그래서 폭력으로서 고문은 가장 야만적인 현상으로 보이지만, 사실 인간들의 세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TV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도망가는 얼룩말을 잔인하게 물어뜯어 죽인 다음 유혈이 낭자한 주검 더미 위에서 걸쭉하게 잔치를 벌이는 것을 본 시청자는 그것을 ‘야만의 세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핵무기를 떨어뜨려 수만 명의 육신을 그 자리에서 녹아내리게 만들고, 피폭자 수십만 명을 평생토록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자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얼룩말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는 것 이상으로 야만적인 일이 아닌가?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후자의 폭력은 동물의 폭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인간 사회의 폭력은 바로 권력 행사의 일환이며, 그것을 통해 상대방을 복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동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만 일단 욕망이 충족되면 그 이상의 폭력을 가하지는 않는 데 비해,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거나 불안이 제거돼도 폭력을 계속 사용한다. 인간들이 대역죄인의 사지를 찢어서 죽이거나, 반역자를 처형한 다음 목을 잘라 네거리에 걸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게 만드는 것은 폭력 행사를 가시화함으로써 권력의 위세를 만천하에 선포하는 행위다. 인간은 정치적 목적을 이끌어내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고, 또 폭력을 통해 상대방이 완전히 굴복하는 것을 즐긴다.

이근안이 고문을 자행했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분실. 1985년 김근태는 무려 22일 동안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쓰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

저승사자 앞의 피라미처럼

조작간첩 사건의 희생자 신귀영은 “고문을 당할 때는 경찰관이 사람으로 안 보이고 작은 짐승을 잡아먹으려는 큰 짐승이자 저승사자로 보였다”고 증언한다. 김근태는 고문에 못 견뎌 “두 눈이 가려진 채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항복한다고 용서해달라고 두 손으로 빌었다”고 그날의 악몽을 기억한다. 처참한 처지에 빠진 피의자는 때리지 말라고, 살려달라고, 원하는 대로 다 말하겠다고 싹싹 빈다. 인간은 미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수사관은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다. 자신이 그렇게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생명을 구걸하는 존재가 되는 경험을 가졌다는 것은 치욕 중의 치욕이다. 그래서 고문 피해자나 학살 현장의 생존자들은 누구에게도 이 부끄러운 경험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문 현장은 바로 저승사자 앞의 피라미처럼 가쁜 숨을 헐떡이며 거의 처분에 몸을 맡긴 인간이 마주 선 적나라한 권력 현장이다. 즉, 고문은 평소의 생각과 신조를 의심과 처벌의 대상으로 삼거나 그것을 의도적으로 조작해 권력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세적 방법의 폭력이고, 폭력에 굴복해 원하지 않는 말을 하거나 동료의 이름을 댄 피해자들에게 치욕과 수모를 가져다줘서 이들을 정신적으로 파괴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단절시키는 이중적 폭력이며, 고문당한 사람들의 초췌한 얼굴, 절뚝거리는 발걸음, 망가진 신체를 목격하거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체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권력을 두려워하고 그들에게 복종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삼중의 폭력이다.집단학살이 사람을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라면 고문은 피해자들을 천천히 죽이는 것이다. 고문 피해자 중에는 김근태처럼 수십 년 동안 고통받다가 병에 걸려 원래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죽은 경우도 있지만, 고문 이후 1개월 혹은 1년 뒤는 죽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고통에 신음하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고문 현장의 ‘미시정치’는 바로 절대 권력의 행사와 절대 복종이다. 고문 이후의 ‘거시정치’는 서서히 죽어가는 피해자를 모든 사람들이 듣거나 보게 만들고, 이런 주변 사람들이 그 권력의 무서움을 깨닫고 움츠러들도록 한다. 수사관, 즉 고문자로 표상되는 권력은 바로 자신에게 저항하는 사람을 이렇게 완전히 굴복시키고 항복을 받아내 위세를 과시한다. 피의자가 폭력 앞에 굴종하는 것을 바라보는 권력자는 무한대의 자기만족을 느끼고, 자신의 권력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계속 향연을 즐기고 싶은 그들

김근태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인간백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백정에게 칼을 휘두르라고 지시한 사람들은 지금 시퍼렇게 살아서 요직에 있고, 피해자가 아무리 고문을 호소해도 못 본 체하며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들이 아직도 현직에 있거나 정치권, 재야 법조계에서 호의호식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문당한 사실보다는 그들이 간첩이었다는 것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던 언론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1·2등 신문이다. 이제 그들은 고문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됐지만, 자신이 가진 권력 기반을 활용해 앞으로도 계속 향연을 즐기고 싶어 이번 대선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김동춘 “유신 당시, 수출 100억불 얘기 전혀 없었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8-31일자 기사 '김동춘 “유신 당시, 수출 100억불 얘기 전혀 없었다”'를 퍼왔습니다.
유신40년 기획강좌에서 유신과 70년대 경제성장 '이면' 설명

 
ⓒ민중의소리 김 교수는 3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유신40년 기획강좌'에서 유신체제와 70년대 경제성장의 배경을 진단하며 "박정희 정권 때 사후적으로 수출 100억불에 달성한 것은 맞지만 이것은 유신과 하나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유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한 조치였다"는 새누리당측의 주장에 대해 "유신헌법 통과 전후로 수출 100억불이 목표라는 이야기는 단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며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질타했다.

"유신헌법 어디를 뒤져봐도 경제성장 이야기 없어"

김 교수는 3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유신40년 기획강좌'에서 유신체제와 70년대 경제성장의 배경을 진단하며 "박정희 정권 때 사후적으로 수출 100억불에 달성한 것은 맞지만 이것은 유신과 하나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유신은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이 제3공화국 헌법을 제4공화국 헌법으로 개헌한 것을 말한다. 메이지 유신에서 이름을 따온 유신헌법에는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을 가진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임기 6년에 연임이 가능하며 대통령 선출 제도를 직선제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제로 바꿈으로써 행정.입법.사법 3권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된 절대적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이 때문에 유신헌법이 발효된 기간을 유신독재로 부르기도 하는 데, 모두 경제 성장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김 교수는 유신 등장의 배경을 국내외 정세를 통해 설명했다. 70년대 국내외 상황을 종합한 결과 권력 몰락의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정권이 겉으론 통일을 추구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장기 집권 체제를 만든 것이 유신이란 설명이다.

먼저 그는 "70년 닉슨의 핑퐁외교로 냉전체제가 허물어졌는데 박정희 정권의 입장에선 '미국이 빨갱이와 손을 잡는 상황'으로 국가 정체성이 허물어지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71년 박정희 정권이 군인, 공무원 등 100만 명 이상을 조직 동원하고 각종 부정을 저지른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간신히 이기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다음 선거에선 '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까지 느끼게 됐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국내외에서 내몰린 박 전 대통령이 국내 정치 위기 돌파용으로 생각한 것이 남북대화였다"며 "7.4남북공동성명, 남북이산가족 문제 등 겉으로 통일 분위기를 조성해놓고 통일 위해 국민을 총동원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것이 통일주체국민회의, 유신헌법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박정희는 권력 위기를 돌파하려는 생각이었을 뿐 통일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유신이 100억불 수출을 위한 것이였다는 것은 그 어떤 자료에도 나오지 않는 거짓말"이라며 "오히려 77년부터는 경제가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에 김재규의 총에 맞지 않아도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민중의소리 김 교수는 3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유신40년 기획강좌'에서 유신체제와 70년대 경제성장의 배경을 진단하며 "박정희 정권 때 사후적으로 수출 100억불에 달성한 것은 맞지만 이것은 유신과 하나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70년대 노동자들의 삶이 제대로 전달된다면 박근혜, 대통령 될 수 없어"

그는 '박정희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경제 성장 배경에는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정책과 '장시간 근로.저임금' 등 부당노동행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70년대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미디어를 통해 제대로 전달만 된다면 박근혜 후보는 올해 대선에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김 교수는 "청계천 일대 빈민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트럭에 태워 서울 봉천동, 경기도 광주(현재 성남) 일대에 몰아 넣었는데 상하수 시설, 화장실이 없어 온 동네가 인분냄새만 났다. 참다못한 사람들이 결국 폭동을 일으켰는 데 그것이 바로 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당시 대학가 하숙비가 3만원일 때 구로공단 여공 월급이 4만원이었다"며 "지금으로 치면 하숙비 50만원 시대에 월급 50만원 받는 꼴인데 살인적인 저임금이 노동자의 현실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공장에서 일했던 16~20살 처녀들의 경우 노종자의 권리의식은커녕 사용자를 아버지처럼 여겼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응할 경우엔 산업역군이라고 칭송하면서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면 몽둥이를 치켜세우는 것이 유신헌법의 본질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스승인 알렌스키가 한국에 와서 '한국 노동자들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나을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유신은 사실상 약자에 대한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성토했다.

또한 "해고, 저임금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에도 회사, 경찰, 중앙정보부가 서로 연락하면서 노동자들을 탄압했다"며 "회사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똥물을 퍼붓고 폭행을 해도 경찰은 구경만 했는데 최근 SJM 폭력사태와 비슷했다"고 힐난했다.

여전히 살아있는 유신, 그것이 가장 큰 폐해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유신의 가장 큰 폐해에 대해 "유신을 시작한지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용자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꼽았다.

그는 "얼마전 삼환기업 총수 일가가 60대 임원들의 뺨을 때린 일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박정희 시대 생각을 가진 사용자들이 아직도 있다"며 "국민을 '개똥'처럼 취급하는 사고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노사 중립적인 위치를 취해야하는 데 사용자들이 임금체불해도, 노조설립을 방해해도, 노동자들을 폭행해도 무조건 봐주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박정희 경제 성장의 철학은 '인간은 돈 버는 도구'라는 것인데, 전근대적인 노사관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도 유신의 폐해"라고 덧붙였다.

정혜규 기자 jhk@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