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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7일 일요일

“박근혜, 경제성장하려면 50대 이상 설득해야”


이글은 프미디어오늘 2013-03-16일자 기사 '“박근혜, 경제성장하려면 50대 이상 설득해야”'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전성인 홍익대 교수 “朴이 50대 이상 설득할 수 있을지가 관건”

한국의 경제활동인구는 곧 감소 추세로 반전될 전망이다. 돈을 버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아 ‘20년 대불황’ 일본의 뒤를 잇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국이 조만간 경제성장에 가장 중요한 조건을 상실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50대 이상의 약진’은 한국경제의 성장을 내다보는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50대 이상 기성세대는 ‘독재자의 딸’ 박근혜씨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지난 7일 오후 홍익대학교에서 만난 전성인 교수(경제학과)는 “곳간을 빼먹는 50대 이상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쥔 우울한 시대가 왔다”면서 “박근혜 정부가 한국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을 설득해 양보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대 간 갈등은 정권 초부터 나타나고 있다. 국민연금 논란이 일례다. 전성인 교수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갈등은 지금 젊은 세대에게 돈을 더 걷을 것이냐, 다음 세대로 미룰 것이냐는 문제만 남았다”면서 “국민연금 탈퇴 움직임은 세대 갈등 구조의 표출”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령사회에 맞는 복지 요구가 쏟아지는데 세대 간 갈등이 유발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가 대면한 경제적 조건은 녹록치 않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밝혔듯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고, 해외시장 경쟁압력이 심화되고 있다. 북한 핵실험 등으로 동북아 정세도 불안할뿐더러 미국, EU발 금융위기 가능성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세계경제의 위기, 한국경제의 저성장 국면,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3중의 위기’다.
여기에 가계부채 폭탄은 터졌고, 부동산 신화도 깨지고 있다. 고용률은 정체 국면이고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하다. 수출 대기업 위주 정책은 실패했다. 경제성장률은 분명한 하락 추세다. DJ 때 성장률 5%는 노무현 정부에서 4%로 떨어졌고, 이명박 정부에서 3%로 내려앉았다. ‘만성적 저성장 상태’로 볼 수 있다.
전성인 교수는 “2020년대로 가면 잠재성장률이 땅바닥 밑으로 추락한다는 것이 성장을 추계하는 학자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라며 “2018년까지 임기인 박근혜 정부에서 성장 둔화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경제성장의 세 가지 요소는 노동력 확대, 자본 투입 확대, 생산성 향상인데 연 1% 수준인 기술 몫으로 추락하는 경제를 잡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성장과 통합이다.” 전성인 교수는 노령사회로 인한 세대 양극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세대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서 한국경제가 성장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50대 이상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로 볼 때, 경제정책의 방향이 자칫 세대 간 갈등이 격화되는 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50대 이상 인구의 절대수가 많아지면 이 세대가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 정부와 정치인이 ‘표밭’을 고려한다면 같은 복지라도 무상급식과 기초노령연금에 대한 입장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성장과는 거리가 먼 ‘복지만을 위한 복지’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전성인 교수는 인터뷰 내내 “우울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안철수 캠프에서 활동했고 야권이 대선에서 졌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보다 내일이 낫다는 경제성장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인데 ‘음(-)의 저축자’ 50대 이상이 한국 정치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면서 “정치인들은 이들을 위한 공약을 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성장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우울한 시대”가 왔다. 사진=서울대 금융경제연구원 누리집에서 내려받음.

박근혜 정부는 중산층을 7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ICT(정보통신기술) 융합과 서비스산업 선진화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창조경제’를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전성인 교수는 “정부가 선택한 사업이 한국경제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박정희 식”이라며 “그런 시대는 지났다. 어려운 방법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장에 대해 아무도 숙제를 못 풀고 있는데 남은 길은 자신의 지지층인 50대 이상에게 양보하라고 설득하는 방법뿐”이라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적 길을 걸어온 한국에서 창조경제를 위한 일자리 창출은 의외로 손쉬울 수 있다. FTA(자유무역협정)를 확대하면서 ‘자본 유치’를 명분으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에 더 편입하는 방법이 있다. 이에 대해 전성인 교수는 이 같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더 심화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령사회에 대한 설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령사회의 다른 말은 ‘쌓여 있는 돈이 많다’는 것”이라며 “한국에는 물건만 좋으면 투자할 스폰서가 많다”고 말했다.
전성인 교수는 경제성장을 위해 ‘멍석’을 깔아야 할 정부가 ‘종목’을 지정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 박근혜 정부의 ICT 관련 정책기조에 대해 “한국에서 ICT의 상당 부분을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고, 이들은 독자적인 R&D(연구개발)가 가능한 상황인데 정부가 대놓고 ICT를 진흥한다는 것에서 또 다시 대기업 독식문화가 등장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재벌을 규제해서 죽이는 것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취업이 어려운 30대 여성을 흡수할 수 있고, 창조경제에 맞는 콘텐츠 산업을 살리기 위한 가장 좋은 토양은 중소기업이다. 창의력이 넘치는 분야 생태계는 마비돼 있고 왜곡돼 있다. 숨통을 틔워서 돌아가게 만들어줘야 한국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대기업은 야전교범 하나 놓고 줄 서라는 방식인데 이런 방식으로는 이제 성장할 수 없다. 분위기만 싸늘해진다.”
전성인 교수는 한국경제의 대외적인 불확실성으로 북한은 물론 미국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들었다. 그는 “미국은 버냉키의 풍선정책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있다”면서 “2008년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돈을 푼 것은 이해하지만 그 뒤로 충분한 긴축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유화적인 통화정책만 펼쳤다. 사람들은 슬슬 ‘폭탄이 언제 터지나’라고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폭탄이 터지면 우리나라는 난리가 난다. ‘터질 폭탄은 언젠가 터진다’는 것은 철칙이다. 결국 시기의 문제인데, 향후 5년 내 미국발 폭탄이 터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내일 폭탄이 터진다고 하면 사람들은 오늘 은행으로 뛰어간다. 폭탄은 사실 오늘 터지는 것이다. 폭탄의 격발장치가 주식시장 폭락, EU발 위기 등 무엇이 될지 모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 벤 버냉키)에 따르면, 미국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성장 추세를 따라잡는 시기는 2020~2021년이다. 지난해 9월 연준은 매월 450억 달러의 장기국채 매입과 함께 매월 400억 달러의 주택담보부증권을 매입하는 제 3차 수량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제로금리 정책 기한도 2015년 중반까지 연장했다.
여기에 미국은 장기 채권을 사들여 장기금리를 끌어내리고, 단기 채권을 팔아 단기금리를 내리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정책도 펼쳤다. 미국은 올해 초 재정절벽을 피하기 위해 GDP 1% 수준인 2천억 달러를 증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봉책’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 중 한 곳인 일본의 경제적 능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것도 한국에 좋지 않은 소식이다. 전성인 교수는 “아베 정부는 경제적인 몰락을 정치적 몸짓으로 극복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앞으로 한국 물건의 구매하는 큰손이 아니라 사무라이로 재무장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경제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성인 교수는 최근 터져 나오고 있는 가계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원칙으로 △채무자 채권자 간 공평한 손실분담 △담보채권(채무)와 신용채권(채무) 간 형평성 유지 △국가개입 최소화 등을 들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18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는데 이럴 경우, 채무자는 만세, 채권자는 만만세를 외치고 결국 국민만 울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가 팔을 비틀거나 세금을 투입하는 것 말고 케이스별로 심의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김동춘 “유신 당시, 수출 100억불 얘기 전혀 없었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8-31일자 기사 '김동춘 “유신 당시, 수출 100억불 얘기 전혀 없었다”'를 퍼왔습니다.
유신40년 기획강좌에서 유신과 70년대 경제성장 '이면' 설명

 
ⓒ민중의소리 김 교수는 3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유신40년 기획강좌'에서 유신체제와 70년대 경제성장의 배경을 진단하며 "박정희 정권 때 사후적으로 수출 100억불에 달성한 것은 맞지만 이것은 유신과 하나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유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한 조치였다"는 새누리당측의 주장에 대해 "유신헌법 통과 전후로 수출 100억불이 목표라는 이야기는 단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며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질타했다.

"유신헌법 어디를 뒤져봐도 경제성장 이야기 없어"

김 교수는 3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유신40년 기획강좌'에서 유신체제와 70년대 경제성장의 배경을 진단하며 "박정희 정권 때 사후적으로 수출 100억불에 달성한 것은 맞지만 이것은 유신과 하나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유신은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이 제3공화국 헌법을 제4공화국 헌법으로 개헌한 것을 말한다. 메이지 유신에서 이름을 따온 유신헌법에는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을 가진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임기 6년에 연임이 가능하며 대통령 선출 제도를 직선제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제로 바꿈으로써 행정.입법.사법 3권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된 절대적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이 때문에 유신헌법이 발효된 기간을 유신독재로 부르기도 하는 데, 모두 경제 성장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김 교수는 유신 등장의 배경을 국내외 정세를 통해 설명했다. 70년대 국내외 상황을 종합한 결과 권력 몰락의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정권이 겉으론 통일을 추구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장기 집권 체제를 만든 것이 유신이란 설명이다.

먼저 그는 "70년 닉슨의 핑퐁외교로 냉전체제가 허물어졌는데 박정희 정권의 입장에선 '미국이 빨갱이와 손을 잡는 상황'으로 국가 정체성이 허물어지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71년 박정희 정권이 군인, 공무원 등 100만 명 이상을 조직 동원하고 각종 부정을 저지른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간신히 이기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다음 선거에선 '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까지 느끼게 됐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국내외에서 내몰린 박 전 대통령이 국내 정치 위기 돌파용으로 생각한 것이 남북대화였다"며 "7.4남북공동성명, 남북이산가족 문제 등 겉으로 통일 분위기를 조성해놓고 통일 위해 국민을 총동원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것이 통일주체국민회의, 유신헌법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박정희는 권력 위기를 돌파하려는 생각이었을 뿐 통일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유신이 100억불 수출을 위한 것이였다는 것은 그 어떤 자료에도 나오지 않는 거짓말"이라며 "오히려 77년부터는 경제가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에 김재규의 총에 맞지 않아도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민중의소리 김 교수는 3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유신40년 기획강좌'에서 유신체제와 70년대 경제성장의 배경을 진단하며 "박정희 정권 때 사후적으로 수출 100억불에 달성한 것은 맞지만 이것은 유신과 하나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70년대 노동자들의 삶이 제대로 전달된다면 박근혜, 대통령 될 수 없어"

그는 '박정희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경제 성장 배경에는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정책과 '장시간 근로.저임금' 등 부당노동행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70년대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미디어를 통해 제대로 전달만 된다면 박근혜 후보는 올해 대선에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김 교수는 "청계천 일대 빈민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트럭에 태워 서울 봉천동, 경기도 광주(현재 성남) 일대에 몰아 넣었는데 상하수 시설, 화장실이 없어 온 동네가 인분냄새만 났다. 참다못한 사람들이 결국 폭동을 일으켰는 데 그것이 바로 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당시 대학가 하숙비가 3만원일 때 구로공단 여공 월급이 4만원이었다"며 "지금으로 치면 하숙비 50만원 시대에 월급 50만원 받는 꼴인데 살인적인 저임금이 노동자의 현실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공장에서 일했던 16~20살 처녀들의 경우 노종자의 권리의식은커녕 사용자를 아버지처럼 여겼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응할 경우엔 산업역군이라고 칭송하면서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면 몽둥이를 치켜세우는 것이 유신헌법의 본질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스승인 알렌스키가 한국에 와서 '한국 노동자들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나을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유신은 사실상 약자에 대한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성토했다.

또한 "해고, 저임금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에도 회사, 경찰, 중앙정보부가 서로 연락하면서 노동자들을 탄압했다"며 "회사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똥물을 퍼붓고 폭행을 해도 경찰은 구경만 했는데 최근 SJM 폭력사태와 비슷했다"고 힐난했다.

여전히 살아있는 유신, 그것이 가장 큰 폐해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유신의 가장 큰 폐해에 대해 "유신을 시작한지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용자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꼽았다.

그는 "얼마전 삼환기업 총수 일가가 60대 임원들의 뺨을 때린 일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박정희 시대 생각을 가진 사용자들이 아직도 있다"며 "국민을 '개똥'처럼 취급하는 사고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노사 중립적인 위치를 취해야하는 데 사용자들이 임금체불해도, 노조설립을 방해해도, 노동자들을 폭행해도 무조건 봐주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박정희 경제 성장의 철학은 '인간은 돈 버는 도구'라는 것인데, 전근대적인 노사관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도 유신의 폐해"라고 덧붙였다.

정혜규 기자 jhk@vop.co.kr

2012년 5월 18일 금요일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민간소비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18일자 기사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민간소비'를 퍼왔습니다.
근래 저조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간소비의 장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오기 이전까지만 해도 소비증가율은 우리가 자랑하던 고도 경제성장률을 웃돌았다.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 GDP성장률은 연평균 8%였는데, 같은 기간 동안 연평균 소비증가율은 이보다 높은 8.1%이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이후 소비증가율이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하더니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연평균 소비증가율이 2.0%로 주저앉으면서 GDP증가율(3.1%)보다 낮아졌다.

그러면, 민간소비가 왜 이렇게 위축되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언론매체들은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우선,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건 좀 막연한 주장이다. 물론, 민간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소득 그 자체가 크게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 낮으면, 소득증가율도 낮을 수밖에 없다. 1998년 이후 2011년까지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4.2%였으나 국민소득증가율은 3.2%에 머물렀다. 물가를 감안한 가구당 월평균 실질 소득은 2003년 이후 매년 1~2%대의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비록 저조하지만 그 동안 우리나라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다. 무역흑자로 해마다 엄청난 외화가 끊임없이 국내로 유입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OECD국가들 중에서 가장 양호하다고 이명박 정부의 핵심인사들은 늘 자랑한다. 그러면, 지속적 경제성장과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 한 백화점 명품관. 부자들이 명품 구입에 쓰는 돈이 경기 진작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다. ⓒ뉴시스
결국 그 돈이 우리나라 부자들의 손에 집중되어 그곳에 머물고 있을 뿐 일반서민에게 흘러내려오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 내내 낙수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이 정부의 핵심 경제측근도 인정한 사실이다. 물론, 부자들도 소비에 돈을 쓴다. 하지만, 이들은 고가품이나 명품에 돈을 많이 쓰고 해외에서 돈을 많이 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외국에서 지출하는 씀씀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국내 가계의 해외 지출액은 1997년과 2011년 사이에 4.5배 증가하였고, 전체 소비지출에서 해외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1.8%에서 3.4%로 높아졌다.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소비하는 지출액은 이에 크게 못 미친다. 해외에서의 소비지출은 낙수효과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설령 부자들이 해외에서 돈을 쓰지 않고 전부 국내에서 쓴다고 해도, 이들의 소비가 민간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근래 가장 많이 지적되는 민간소비 침체의 요인은 가계부채의 급증이다. 집집마다 부채를 너무 많이 지고 있어서 소비에 돈을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2011년 가구당 가처분소득 3283만 원이었는데 평균부채가 3679만 원이었으니 소득보다 빚이 더 많다. 빚 그 자체도 문제지만, 이자도 문제다. 세계경제위기 이후 기준 금리 인상과 가계대출금리 상승 등의 요인으로 2011년 가계부채에 대한 이자만 해도 55조 5천억 원에 달했다. 그만큼 소비에 쓸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기침체로 가계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가치마저 저조하여 소비심리가 더욱 더 위축되었다. 이른바 자산효과(wealth effect)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국내 고용 사정의 악화도 민간소비 침체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탄성치(취업자증가율/경제성장률)가 급락하고 있다. 외환위기 전인 1984-1997년의 기간에는 고용탄성치가 연평균 0.35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과 2008년 사이에는 0.311로 낮아졌고,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2012년의 기간에는 0.29로 크게 낮아졌다. 물론, 매년 신규취업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대부분이 안정적 소득을 보장하는 일자리가 아니다.

민간소비의 침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이런 다양한 견해들 그리고 이에 대한 언론보도에서 한 가지 크게 아쉬운 점은 좀 더 근본적인 요인, 즉 소득분배의 극심한 불평등이 제대로 부각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민간소비가 장기침체에 빠진 근본적 원인은 우리 사회의 극심한 빈부격차에 있다. 민간소비에서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일반서민의 소비다. 그러므로 일반 서민이 지갑을 열어야 민간소비가 늘어나고 내수가 늘어나고 또 그래야만 높은 경제성장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일반서민들이 지갑을 열어 본들 그 속에 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돈이 부자들의 손에 집중되어 있으니 일반서민들의 지갑은 얄팍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근래에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가계대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소득불평등이 심해진다는 것은 중산층의 몰락을 뜻한다. 국민경제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산층이 몰락하면 국민경제 그 자체가 허약해진다.

요컨대, 민간소비의 규모를 좌우하는 것은 일반서민의 소비다. 하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로 일반서민들의 지갑이 얄팍해진 상황에서 민간소비가 활발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민간소비에 대한 논의는 마치 우리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망각한듯 한 인상을 준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발표된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연구가 눈길을 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소득계층 상위 1%의 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8년의 6.97%에서 2011년에는 11.5%로 크게 증가하였다. 상위 1%의 연평균 소득은 1억9500만 원으로서 근로소득보다는 배당소득과 사업 및 부동산소득의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고도 성장기 때 소득분배가 상대적으로 나았던 것은 빠른 고용확대를 통해서 정장의 성과가 저변으로 잘 확산되었기 때문"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고용의 질이 떨어지고,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이 확산되면서 소득집중도가 심화됐다"고 말했다.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에 대한 정보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개인소득에 대한 정보나 자료를 얻기가 매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김 교수의 연구는 주목을 받을 만하다.

민간소비를 살리고 그럼으로써 소기의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극심한 소득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완화하는 대책이 시급하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2011년 11월 30일 수요일

이명박의 '종미'냐 마잉주의 '용미'냐, '국익'에게 물어보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1-11-30일자 기사 '이명박의 '종미'냐 마잉주의 '용미'냐, '국익'에게 물어보라'를 퍼왔습니다.
[한반도 브리핑] 대미 FTA 전략의 고수와 하수

대만(타이완)은 한국과 여러모로 닮은 나라이다. 대만은 국제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실질적인(de facto) 분단국가이다. 또 한국과 유사하게 수십 년 동안 독재를 경험했으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해 한국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신흥 공업 경제 지역(East Asia's Newly Industrializing Economies)으로 발돋움했고 민주화를 달성하였다.

이러한 유사점은 마잉주(馬英九) 총통과 이명박 대통령에게서도 나타난다. 두 사람은 2008년 정권교체를 이뤘다. 마잉주는 국민당 후보로 총통에 당선되어 8년간의 민진당 집권을 종결시켰으며 이명박은 한나라당 후보로 민주당의 10년 집권을 끝냈다.

마잉주의 정치노선도 이명박 대통령과 유사하게 중도 실용주의였다. 그러나 마 총통의 실용노선과 이 대통령의 실용노선은 내용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마 총통의 실용주의 노선의 근간은 '대륙과의 통일을 추구하지 않고, 독립을 추구하지 않으며,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不統, 不獨, 不武)'는 삼불(三不)이다. 아울러 '1992년 양안(중국과 대만) 컨센서스'를 기초로 양안의 평화발전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양안 컨센서스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그 의미는 양안 쌍방의 각자 해석에 맡긴다(一個中國, 各自表述)'로 요약된다.

이 노선에 따라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해 나아갔다. 격렬한 내전을 겪은 분단국가인 대만에서 '실용노선'이란 중국과 분쟁 또는 전쟁을 피하고 평화롭게 공생 발전하는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물론 중국과 북한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대만이 보다 수세 또는 순응적인 입장에서 중국과 공생·발전 추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즉 힘의 열세에 있는 대만이 거대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공생·발전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연평도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이 언제라도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에도 '실용노선'이란 그것이 진정한 '실용'이라면 대만과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

마잉주 총통과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노선'은 각기 다른 내용을 갖고 시작되었다. 2008년 3월 정권 교체 이후 대만은 중국과 정치, 경제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을 위해 양안회담을 수차례 개최했다. 2010년 6월 29일 중국 중칭(重慶)에서 열린 제5차 양안회담에서는 양안경제협력기구협정(ECFA; 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을 정식 체결했다. ECFA채결로 중국은 대만의 539개 품목, 대만은 중국의 267개 품목(조기자유화 대상 품목)에 대해 향후 2년 내에 3단계에 걸쳐 관세를 인하하기로 합의하였다.

반면 한국은 민주당 집권 당시 햇볕정책을 북한 퍼주기로 규정하고 대가없이 북한과 교류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으며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자 남북 교류협력과 관련된 인적·물적 교류를 중단하는 이른바 5.24 조치(①북한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 전면 불허 ② 남북교역 중단 ③남측 국민의 방북 불허 ④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⑤대북지원 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를 취했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최악으로 치달았다.

대만의 실용주의는 현실에서 국익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ECFA에 규정에 힘입은 대만의 대중국 수출은 2011년 들어 5개월간 12억 달러에 달했으며 관세절감만도 3069만 달러였다. 이에 힘입어 2010년 대만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전년 대비 10.82% 증가한 14조2000억 위안을 기록했다. 이것은 1986년 이래 24년 만에 최고치로 중국의 지난해 성장률(10.3%)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무역흑자에 힘입어 대만은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외채의 최종 상환 분 23만8000달러를 9월 15일자로 상환해 외채 제로 국가가 되었다.

양안관계가 안정되자 대만을 방문한 관광객도 지난 3년간 급속히 증가(2008년 연인원 300만 명에서 2010년 556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타오위앤(桃園) 국제공항의 승객 및 화물 운송량은 아시아 네 마리 호랑이(싱가포르, 홍콩, 한국, 대만) 중 꼴찌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1위로 뛰어올랐다.

미국에 본부를 둔 '비즈니스 환경 리스크 정보'(BERI)는 2010년 9월 발표된 올해 2차 투자환경 평가 보고서에서 대만의 투자환경이 올해 1차 평가 때보다 한 단계 상승해 노르웨이와 공동으로 3위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ECFA 체결 등으로 양안관계 정치 리스크가 크게 감소된 것이 대만의 투자환경 순위 상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 내년 1월 재선에 도전하는 마잉주 대만 총통이 지난 22일 타이베이의 미 상공회의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만이 양안관계 개선에만 올인하는 것은 아니다. 무역의존도가 늘 100%가 훨씬 넘는 대만(2010년 기준으로 125%)에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통상조약은 국익을 극대화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21세기 들어 대만은 미국, 일본, 한국,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태평양 국가들과 경제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는 2002년부터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심스럽게 타진해 왔다. 대만에 미국과의 FTA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할 수 있다.

한미 FTA 추진 배경에는 경제논리 이외에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정치논리가 있듯이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에게 미국의 협력 강화는 한국이 한미 FTA에서 갖는 의미보다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대만은 철저한 그리고 진정한 실용주의를 택했다. 대만은 양안관계의 안정화를 가장 중심에 두고 이것을 바탕으로 전 세계 시장과 중국시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해 대만의 지위 제고를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적중하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대만이 중국과 ECFA를 체결하자 미국 내에서 조속히 대만과 FTA를 채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방 상원에서 나오고 있다. 연방 상원의원이며 과거 부통령 후보였던 조셉 리버만은 한국에 이어 대만과 빠른 시일 내에 FTA를 채결해야 한다고 오바마 행정부에 요구했다. 그에 따르면 ECFA로 양안 경제관계가 대만-미국 경제관계보다 더 자유롭다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대만과 FTA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만은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결코 불리한 입장이 아니다. 또한 중국과의 협상에서도 불리하지 않다. 미국에 FTA를 제안하며 적지 않은 양보를 감당해야 했던 한국과 매우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분단국가에게 국익의 핵심은 대립과 대결을 지양하고 공생, 평화 그리고 나아가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이념적 편향을 뛰어넘어 '실용'을 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이치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 정부가 내걸었던 실용(實用)은 실용(失用)이 되어버렸다.



/박후건 경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