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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2일 토요일

[50대는 왜 투표장에 몰려갔나](1) “우린 전쟁 얘기 듣고 큰 세대… 진보세력에 대한 불안·회의 들었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12-21일자 기사 '[50대는 왜 투표장에 몰려갔나](1) “우린 전쟁 얘기 듣고 큰 세대… 진보세력에 대한 불안·회의 들었다”'를 퍼왔습니다.

지난 19일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데는 50대 유권자가 대거 투표에 참여해 박 당선인을 선택한 영향이 컸다. 이번 대선에서 50대 투표율(89.9%)은 어떤 연령층보다 높았다. 이들 중 박 당선인을 지지한 비율도 62.5%에 달했다. 

50대가 똘똘 뭉쳐 박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준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안보·경제에 대한 불안감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후보로 대표되는 진보세력과 젊은 세대에 대한 반발감이 꼽힌다.

▲ “대선 TV토론 때 이정희 보면서문 후보도 동색이라는 생각”
- 경기 고양 주부 55세 김모씨

▲ “외환위기 등 역경 헤쳐온 50대평가절하한 것에 대한 심판”
- 경북 구미 회사원 55세 장모씨

50대 유권자 중 상당수가 안보불안 때문에 박 당선인을 택했다고 답했다. ‘박정희 시대’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50대에게는 진보세력이 결합된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후보는 불안했다.

인천에 사는 주부 최모씨(59)는 “6·25전쟁 중 태어나 나도 전쟁에 대한 직접 경험은 없지만 부모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며 “북한은 믿어선 안되는 존재인데 문 전 후보 곁에는 종북세력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이사인 안모씨(56)는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 분명한데도 민주당은 너무 의심이 많았다”며 “잠잠해지려고 하면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면서 북한에 너무 동조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의 김모씨(51·농업)는 “문 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 퍼주기를 해 북한 정권을 유지시키고 미사일도 계속 발사해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정희 전 후보 등 진보세력과 문재인 전 후보를 지지하는 자신들의 자녀뻘인 20~30대에 대한 반발과 걱정 때문에 박 당선인을 찍었다는 50대도 많았다.

대전에서 직장에 다니는 황모씨(59)는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이 전 후보가 ‘박근혜를 떨어뜨리려고 나왔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너무 분노해 주변에 박 당선인을 찍어달라고 자원봉사까지 했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주부 김모씨(55)도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는 TV토론에서 이 전 후보가 지나치게 비이성적이고 전투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진보세력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며 “문 전 후보가 ‘이 전 후보와는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동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동에 사는 회사원 박모씨(55)는 “요즘 20~30대를 보면 어른에 대한 존중 등 전통적 미덕을 모두 팽개쳐 공동사회에서 같이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며 “이들이 아고라니, 트위터 등에서 선동하는 것에 부화뇌동하는 것을 참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북 구미시의 장동국씨(55·회사원)는 “진보세력과 젊은층이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 등 인생 험로를 온몸으로 헤쳐온 50대 이상을 평가절하하는 데 엄중한 심판을 내렸다”며 “야당도 젊은층 목소리만 귀기울이지 말고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 불안과 집값 하락에 대한 불만, 과도한 복지지출에 대한 반발도 50대가 박 당선인을 택한 이유 중 하나다.

50대 유권자 중 상당수가 자신의 집을 갖고는 있지만 노후에 대한 준비는 거의 안돼 있는 ‘하우스 푸어’라서 경제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서울 사당동에서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김모씨(59)는 “지금 살고 있는 148.5㎡(45평)짜리 아파트 값이 4년 전 7억여원에서 현재 6억원으로 1억원 넘게 떨어졌다”며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 등 집값 떨어뜨리기 정책을 과도하게 하다 보니 집 하나 갖고 있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열심히 일해서 부를 쌓은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며 “무조건 세금 때려 중산층을 무너뜨리는 과도한 정책을 내세워선 안된다”고 말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사업을 하는 이모씨(51)는 “내년에도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정권이 교체되면 경제는 더욱 혼란스럽고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대기업 이미지가 강한 후보를 찍는 것은 모험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공무원인 김모씨(52)는 “과거 진보 정권에서 진행된 각종 복지정책으로 전체 예산의 30% 정도를 복지 예산으로 쓰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편성에 큰 혼란을 초래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무상복지 확대 등 진보세력의 지나친 포퓰리즘이 우려돼 박 당선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상호·박태우·곽희양·이혜리 기자 shlee@kyunghyang.com

2012년 10월 5일 금요일

대출받아 집 하나 샀다가 '깡통' 찼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04일자 기사 '대출받아 집 하나 샀다가 '깡통' 찼다'를 퍼왔습니다.
[응답하라, 베이비부머·②] 그들은 왜 '깡통주택' 주인이 됐나

깡통주택. 집주인이 집을 팔더라도 대출금이나 세입자 전세금을 다 갚지 못하는 주택을 말한다. 부동산이 올랐을 때, 더 오르리라 예상하고 빚을 내 집을 샀지만, 정작 집값이 하락하면서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하우스푸어, 가계대출 역대최고치 등과 맞물려 깡통주택이 문제가 되고 있다.

깡통주택은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한국경제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금융전문가 사이에서는 한국의 금융 건전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로 평가된다. 깡통주택이 등장했다는 건, 부동산 경기 악화 → 가계부채 심각 → 금융 건전성 위기 등의 도식이 완성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걸 방증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주택담보대출금과 전세금이 매매가의 80%를 넘는 깡통주택 보유가구가 전체 가구의 3.4%인 18만5000가구로 집계했다. 이들 깡통주택 보유가구가 안고 있는 부채총액은 은행권 전체 주택담보대출액(282조 원)의 20%가 넘는 58조 원으로 추산된다. 비 깡통 거주 가구의 부채는 깡통주택 보유가구의 부채액에 3분의 1 수준이다.

금융회사는 통상 부채 비율이 80% 이상이면 확실한 깡통주택으로 평가하고 있다. 주택경기 침체 시 주택경매 매각가율은 80% 이하로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계에서는 대출 및 전세금 비율이 집값의 70%가 넘는 주택도 사실상 깡통주택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구주가 집을 팔아도 남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깡통주택 가구는 36만8000가구고 부채는 102조9000억 원이다.

 
▲ 강남 아파트. ⓒ연합뉴스

베이비부머와 겹치는 깡통주택 구입자

혹자는 깡통주택을 지닌 이를 하우스푸어로 생각한다. 부분적으로 맞는 이야기지만 정확한 건 아니다. 깡통주택 소유자가 모두 하우스푸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개념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우스푸어는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했으나 매달 대출이자를 갚느라 자신의 생활이 안 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이 무리한 대출을 받은 건,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되팔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집을 팔지도 못하고 이자만 내고 있어 문제가 된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주로 포진하고 있는 하우스푸어는 자신이 사는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반면, 깡통주택 소유자는 자신이 사는 용도보다는 투자의 목적이 더 크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는 전체 깡통주택 보유가구 중 7만9000가구가 자기 집에서 사는 나머지 10만6000가구는 자기 집, 즉 깡통주택을 전세 놓고 다른 집에서 살고 있는 걸로 파악했다. 7만9000가구가 하우스푸어라고 볼 수 있고 나머지 10만여 가구는 투자 목적으로 집을 구입했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깡통주택 보유가구 대부분이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와 겹친다는 점이다. KB금융은 깡통주택 거주 가구의 57%를 40~50대로 보고 있다. 게다가 깡통주택을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고 자신은 다른 집에서 사는 가구 가운데 40~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67.9%나 됐다. 하우스푸어가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몰렸지만, 깡통주택은 베이비부머에게 몰려 있는 셈이다.

노후대책으로 선택한 부동산, 결과는 참담

그렇다면 베이비부머가 무리하게 부동산에 투자한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은행이 발표한 '고령화와 은퇴자산의 적정성' 보고서를 보면 베이비부머 가구의 노후생활을 위한 최소자금은 은퇴 시점인 만 55세를 기준으로 27년을 더 산다고 하면 적어도 월평균 148만 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베이비부머 금융자산은 22.2%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부동산 자산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베이비부머 은퇴 이후 금융자산 중 저축액은 점차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유는 은퇴 후 실제 연금수령까지 약 10년 동안 공백 기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은퇴연령은 50~55세로 추정되나 연금수령시점은 60~65세다.

연금을 받더라도 연금만으로 생활하는 건 불가능하다. 산업은행 보고서를 보면 베이비부머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으로 은퇴 전 소득의 40%를 받더라도 파산확률은 41.4%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베이비부머가 국민연금도 받지 않으면서 현재 소비지출 수준을 은퇴 뒤에도 유지하려 하면 파산 확률은 85%를 넘어설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연금을 받더라도 노후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베이비부머가 노후 대책으로 부동산에 돈을 투자한 이유다. 하지만 영원할 줄 알았던 부동산 상승기가 막을 내리고 주머니에 깡통만 찬 게 지금의 베이비부머다.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부동산

지난 2월 서울대 노화고령연구소가 발표한 전국 베이비부머 4000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베이비부머의 통합은퇴준비지수를 보면 베이비부머는 재무 영역에서 100점 만점에 52.6점을 기록해 가장 낮게 측정됐다. 전체 응답자의 25.4%가 현재 자신의 가계 재무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반면, 긍정적 평가는 19.5%에 그쳤다.

2007년에 인천 송도 50평대 아파트를 10억에 산 이기성(가명·52) 씨는 아파트를 팔았다. 불어나는 이자에 비례해 내려가는 아파트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은행원인 이 씨는 "퇴직하게 되면 노후가 막막해 노후 대책으로 아파트를 샀다"며 "집값은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는 맹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하지만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고, 결국 빚만 지고 아파트를 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평생을 부동산으로 재산을 증식해온 세대이기에 노후 생활 자금 역시 부동산에 기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부메랑이 돼 그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 응답하라, 베이비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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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환주 기자

2012년 5월 25일 금요일

"최악의 공황이 온다…우린 정말 재수 없는 세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4일자 기사 '"최악의 공황이 온다…우린 정말 재수 없는 세대"'를 퍼왔습니다.
[강연] 정승일,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강좌에서 김상조 등 정면 비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이종태 (시사IN) 기자와 함께 를 쓴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비롯한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다시 정면 비판했다. 최근 에서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저자들과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이병천 강원대 교수 등의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23일 저녁 '세계 금융 위기, 왜 발생했고 왜 계속되는가'라는 주제로 서울 마포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교육실에서 강연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주최하는 연속 강좌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중 첫 번째 강연이었다.

이날 정 연구위원은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 1997년 말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 그리고 최근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그리스 문제 등을 비교하며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정 연구위원은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경제 위기는 대공황이며, 그 후 최악(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말 재수 없는 세대"라고 말했다.

이번 위기에 대해 정 연구위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제 2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정 연구위원은 "대공황이 시작된 건 1929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전개된 건 (그로부터 4년 후인) 1933년"이라며 지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타격을 입었던 세계 경제가 안정되는 듯하다가, 최근 그리스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다시 출렁이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그리스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든 아니면 유로존에서 탈퇴하든 반드시 크게 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했다. 1997년 타이부터 한국까지 연달아 무너지며 동아시아 금융 위기가 발생한 것처럼, 유럽에서도 만약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그리스 같은 상황이 된다면 큰일이 터질 것이라는 말이다.

정 연구위원은 "쓸데없이 공무원이 많고 복지가 과다하고, 그래서 망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그리스를 비난하는 여론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이야기를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것은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그리스 국채를 사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를 도와줘야 한다는 건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독일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단 그리스의 불부터 꺼주고, 그 다음에 장기적으로 구조 개혁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 정 연구위원의 판단이다.


 ▲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외환위기 책임, 재벌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1990년대 한국의 경험을 반추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가 국제통화기금을 비판했다. 삭스는 개발도상국을 위해 일하는 진보적인 학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자다. 그런 삭스조차 금융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당시 삭스는 국제통화기금을 향해 '너희가 해야 할 건 불난 집에 가서 불이야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소방수 역할이다'라고 비판했다. 극장에서 불이 났을 때 조용히, 차분하게 끄는 게 아니라 불이야라고 소리부터 지르면 수백 명이 압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7년에도 국제통화기금 뒤에 있는 미국이 조용히 400억 달러를 한국 정부에 꿔줬으면 (외환위기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 연구위원은 "(역사적으로) 금융 위기의 패턴은 같다"고 진단했다. 금융 시장을 대폭 개방하면 흥청망청 달러 자금이 들어오고 그 결과 거품이 생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하면서 첫 번째로 은행을 국유화했다. 대통령 산하 은행을 만든 것이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 들어 은행이 본격적으로 민영화됐다. (…) 김영삼 정부는 외환시장에 대한 통제를 풀어버렸다. 그러자 한국의 은행들이 뉴욕이나 런던에 지점을 만들고 외국에서 (대규모로) 돈을 꿔오기 시작했다. 박정희 때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은행들은 그때 봉이 김선달 식으로 장사를 했다. 외국에서 싸게(금리 3퍼센트 수준) 돈을 꿔서 한국에서 높은 금리(대출 금리 10%대)로 빌려줬다. 은행뿐만 아니라 종합금융사들도 그렇게 했다. 그 결과 외채가 급증했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400억 달러 수준이던 것이 말기에는 14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중 400억 달러를 막지 못하면서 국가 부도가 난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이 대목에서 "외환위기의 원인은 금융 시장을 마구 개방한 것이며, 그 책임을 재벌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IMF 위기가 터진 후 재벌의 탐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삼성, 대우 등 재벌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때문에 금융 위기가 터진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자유주의 경제학이다. 탐욕의 과잉을 하느님, 즉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처벌한 것이라고 보는 방식이다. 그런데 (IMF 위기가) 재벌의 탐욕이 넘쳐서, 혹은 관료가 정경유착을 해서였다면 이승만, 박정희 때는 왜 안 터졌나."

정 연구위원은 "요즘 그리스에 대해 복지 과잉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듯이, IMF 위기 때 한국에서는 복지가 없었으니 재벌과 관료의 탐욕을 비난했던 것"이라며 경제 문제를 도덕 이론으로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금융 위기를 막으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는 주먹, 즉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 개입에 부정적인 주류경제학자들을 비판했다. 아울러 금융 시장에 대한 통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규제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박정희 정권 때) 은행들의 외환 도입을 통제하던 경제기획원이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없어졌다. 그 후 해외에서 돈을 꿔오는 걸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다. 100퍼센트 확신한다. 만약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박정희 체제 타도'라는 명분으로 경제기획원을 없애지 않았다면,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지 않고 금융시장도 (대폭) 열지 않았다면 1997년에 외환위기가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한국이) 박정희 때로 돌아가면 안 되지만, 그 시기에 잘했던 요소들은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체제를 연상시키는 것들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론자들 비판…"이게 무슨 진보인가"

정 연구위원은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을 돌아보며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 연구위원은 김상조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 "정운찬의 제자들"을 거명하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외환위기가 터진 후 한국 정부는 자본을 투입해 은행을 사실상 국유화했다. 박정희 때로 돌아간 것이다. 이때 경실련과 참여연대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은행 국유화에 반대했다. 진보 쪽이 원하는 게 관치경제를 철폐하고 박정희 체제를 없애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은행 국유화를 빨리 해소하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어디에 은행을 팔 수 있었겠나. 그래서 해외 매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막강했던 그 시민단체들은 매각 과정에서 노코멘트(No comment)를 했다.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다. 이게 무슨 진보인가.

당시 대우도 전체가 국유화됐다. 즉 산업은행 소유가 됐다. 그런데 이걸 매각할 곳이국내에는 없었다. 그래서 외국에 판 것이다. 대우자동차는 헐값에 GM에 넘어가지 않았나. 쌍용자동차도 중국에 팔리고, 그래서 22명이 숨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걸 가지고 요즘에 경제 민주화 이야기하는 분들이 '쌍용차 봐라. 재벌 때문에 저런 것이다. 그러니 경제 민주화를 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난 당신들이야말로 쌍용차를 저렇게 만든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에 터진 '카드 대란'과 관련해서도 정 연구위원은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거세게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는 처음에 (카드사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으려 하다가 나중에 투입했다. 그냥 놔두면 (카드사는 물론) 은행까지 파산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갖고 (지금의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시장 원리에 어긋나게 왜 카드사들을 살려주느냐. 이건 재벌 도와주기 아니면 관치금융이다'라고 비판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이야기다. 왜 정부가 불을 끄는 것도 못 하게 하나. 대공황이 터졌을 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폭풍은 사라지고 불황은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폭풍우는 언젠가 끝날 테니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였다. 경제 민주화론자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럴 거면 경제학자들이 왜 존재하나. 어떻게 하면 폭풍우를 뚫고 갈 것인지 길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두 번째 강좌는 '금융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 왜 문제인가'(강사 이종태)라는 주제로 30일에 열린다.


 /김덕련 기자

2012년 5월 18일 금요일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민간소비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18일자 기사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민간소비'를 퍼왔습니다.
근래 저조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간소비의 장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오기 이전까지만 해도 소비증가율은 우리가 자랑하던 고도 경제성장률을 웃돌았다.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 GDP성장률은 연평균 8%였는데, 같은 기간 동안 연평균 소비증가율은 이보다 높은 8.1%이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이후 소비증가율이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하더니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연평균 소비증가율이 2.0%로 주저앉으면서 GDP증가율(3.1%)보다 낮아졌다.

그러면, 민간소비가 왜 이렇게 위축되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언론매체들은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우선,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건 좀 막연한 주장이다. 물론, 민간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소득 그 자체가 크게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 낮으면, 소득증가율도 낮을 수밖에 없다. 1998년 이후 2011년까지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4.2%였으나 국민소득증가율은 3.2%에 머물렀다. 물가를 감안한 가구당 월평균 실질 소득은 2003년 이후 매년 1~2%대의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비록 저조하지만 그 동안 우리나라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다. 무역흑자로 해마다 엄청난 외화가 끊임없이 국내로 유입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OECD국가들 중에서 가장 양호하다고 이명박 정부의 핵심인사들은 늘 자랑한다. 그러면, 지속적 경제성장과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 한 백화점 명품관. 부자들이 명품 구입에 쓰는 돈이 경기 진작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다. ⓒ뉴시스
결국 그 돈이 우리나라 부자들의 손에 집중되어 그곳에 머물고 있을 뿐 일반서민에게 흘러내려오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 내내 낙수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이 정부의 핵심 경제측근도 인정한 사실이다. 물론, 부자들도 소비에 돈을 쓴다. 하지만, 이들은 고가품이나 명품에 돈을 많이 쓰고 해외에서 돈을 많이 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외국에서 지출하는 씀씀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국내 가계의 해외 지출액은 1997년과 2011년 사이에 4.5배 증가하였고, 전체 소비지출에서 해외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1.8%에서 3.4%로 높아졌다.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소비하는 지출액은 이에 크게 못 미친다. 해외에서의 소비지출은 낙수효과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설령 부자들이 해외에서 돈을 쓰지 않고 전부 국내에서 쓴다고 해도, 이들의 소비가 민간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근래 가장 많이 지적되는 민간소비 침체의 요인은 가계부채의 급증이다. 집집마다 부채를 너무 많이 지고 있어서 소비에 돈을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2011년 가구당 가처분소득 3283만 원이었는데 평균부채가 3679만 원이었으니 소득보다 빚이 더 많다. 빚 그 자체도 문제지만, 이자도 문제다. 세계경제위기 이후 기준 금리 인상과 가계대출금리 상승 등의 요인으로 2011년 가계부채에 대한 이자만 해도 55조 5천억 원에 달했다. 그만큼 소비에 쓸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기침체로 가계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가치마저 저조하여 소비심리가 더욱 더 위축되었다. 이른바 자산효과(wealth effect)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국내 고용 사정의 악화도 민간소비 침체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탄성치(취업자증가율/경제성장률)가 급락하고 있다. 외환위기 전인 1984-1997년의 기간에는 고용탄성치가 연평균 0.35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과 2008년 사이에는 0.311로 낮아졌고,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2012년의 기간에는 0.29로 크게 낮아졌다. 물론, 매년 신규취업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대부분이 안정적 소득을 보장하는 일자리가 아니다.

민간소비의 침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이런 다양한 견해들 그리고 이에 대한 언론보도에서 한 가지 크게 아쉬운 점은 좀 더 근본적인 요인, 즉 소득분배의 극심한 불평등이 제대로 부각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민간소비가 장기침체에 빠진 근본적 원인은 우리 사회의 극심한 빈부격차에 있다. 민간소비에서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일반서민의 소비다. 그러므로 일반 서민이 지갑을 열어야 민간소비가 늘어나고 내수가 늘어나고 또 그래야만 높은 경제성장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일반서민들이 지갑을 열어 본들 그 속에 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돈이 부자들의 손에 집중되어 있으니 일반서민들의 지갑은 얄팍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근래에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가계대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소득불평등이 심해진다는 것은 중산층의 몰락을 뜻한다. 국민경제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산층이 몰락하면 국민경제 그 자체가 허약해진다.

요컨대, 민간소비의 규모를 좌우하는 것은 일반서민의 소비다. 하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로 일반서민들의 지갑이 얄팍해진 상황에서 민간소비가 활발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민간소비에 대한 논의는 마치 우리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망각한듯 한 인상을 준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발표된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연구가 눈길을 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소득계층 상위 1%의 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8년의 6.97%에서 2011년에는 11.5%로 크게 증가하였다. 상위 1%의 연평균 소득은 1억9500만 원으로서 근로소득보다는 배당소득과 사업 및 부동산소득의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고도 성장기 때 소득분배가 상대적으로 나았던 것은 빠른 고용확대를 통해서 정장의 성과가 저변으로 잘 확산되었기 때문"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고용의 질이 떨어지고,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이 확산되면서 소득집중도가 심화됐다"고 말했다.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에 대한 정보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개인소득에 대한 정보나 자료를 얻기가 매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김 교수의 연구는 주목을 받을 만하다.

민간소비를 살리고 그럼으로써 소기의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극심한 소득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완화하는 대책이 시급하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2012년 5월 7일 월요일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07일자 기사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를 퍼왔습니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주장에 답한다

-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주장에 답한다 
"재벌개혁이 낡은 화두?…그들은 쾌도난마하지 못했다"

장하준과 정승일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매우 넓다. MB정부 시기는 물론 97년 '외환위기'이후 한국경제, 나아가 근대화 50년 한국자본주의의 굵직한 주제들을 거의 포괄한다. 게다가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이후 세계경제 현안에 대해서도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그들은 나라안팎 경제사정을 아울러 어지간히 큰 지식용량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흉내내기 어려운 종합적 작업을 수행했다. 그것만으로 (선택)은 (쾌도난마 한국경제)(이하 (쾌도난마))에 이어 또 다시 '경제 시민'들에게 큰 선물이 된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의외로 모호한 구석이 있는 신자유주의 개념에 대해 장하준, 정승일이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그 개념 위에서 한국경제의 주요 문제 또는 '주요 모순'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기에 어떤 강점과 약점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선택)과 (쾌도난마) 전체를 관통하는 그들의 핵심 논지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그 기본 논지는 (쾌도난마)이래 (선택)에서도 별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장하준, 정승일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세 가지 명제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널리 쓰이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각인 각색이고 그래서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이 말은 간단히 탈규제 자유화, 사유화, 부자 감세, 노동시장 유연화, 개방화 등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의외로 딱 집어 정확히 무엇을 신자유주의라고 볼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와 합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신자유주의가 단지 정책만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축적체제(regime) 또는 하나의 자본주의 유형인지, 둘다인지, 그리고 하나의 단일한 신자유주의 형태만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러 잡종(雜種, hybrid) 신자유주의 형태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런 까닭인지 아예 '신자유주의 타령'은 그만하고 시장근본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라는 말을 써자는 주장까지 있다(김기원). 그러면 장하준 ,정승일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제1)- "신자유주의는 저성장주의이며 저성장을 위한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금융자본을 위한 자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금융자본이 기업경영의 주도권을 장악한 시스템인 것입니다"((쾌도난마), p.17).즉 그들의 경우, 신자유주의란 곧 금융자본주의, 또는 주주자본주의다. 금융이 몸통이고 실물이 꼬리로 거꾸로 선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이어서 그들은 신자유주의는 좌파와 우파의 '두가지 버전'이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제2)- " 좌파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는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이나 영국노동당의 블레어는...금융자본주의 노선을 밀어붙이고 노동시장에 최소한의 보호장치는 존속시키지만 기본적으로 유연화를 지지하고 노동조합이 자본에 밀려 약체가 되는 것을 방관하고 공공 부문 민영화를 지지한 것도 그래서이죠. 그러면서 공정한 시장을 주장하니까 독점은 규제하고요. 그에 비해 이명박 정부같은 원조 신자유주의는 노동시장의 완전한 유연화를 주장합니다. 심지어는 최저임금제에도 반대해요. 또 독점대기업도 용인합니다... 그러니까 이명박 정권은 레이건과 대처정권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클린턴과 블레어 정권에 비교할 수 있어요((선택), p.22-3).

그런데, 이렇게 신자유주의를 금융자본주의, 주주자본주의라 규정한 다음, 그들은 " 오늘날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주체는 재벌이 아니라 세계화된 금융자본이다"라고 말한다( (쾌도난마), p.237). 그들의 이런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노동운동의 주적이 세계화된 금융자본"이라는 대목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제3)- "한국노동운동의 가장 큰 착각중 하나는 반재벌투쟁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함께 갈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둘 다 '노동자의 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재벌과 신자유주의를 '같은 편'으로 간주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재벌을 타도한다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극복되고 신자유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노동시장 유연화는 반재벌투쟁을 통해 극복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거죠"( (쾌도난마), p 174).장하준, 정승일에 대한 공감

우리는 장하준, 정승일의 말이 마땅히 진지하게 경청해야 할 대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자본주의 패권국 미국이 금융주도 신자유주의 길로 돌진해 그 질병을 세계적 규모로 전염시킨 사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져 그 위기 또한 세계화되었으며 금융과두제와 양극화에 항의해 '월가 점령'운동까지 전개된 경과를 생각할 때, 그들이 신자유주의를 금융자본의 지배 체제로 파악하고 그 파괴적 효과와 위험에 대해 질타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금융 주도 주주자본주의의 위험은 결코 바다 건너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곧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뼈속까지 친미적인' 이명박 정부는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이전 김대중 ㆍ노무현 정부도 재벌개혁을 비롯한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경제를 미국식의 신자유주의, 주주 자본주의쪽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구개발주의를 결정적으로 해체한 한국경제 '97년 체제'의 골격은 김대중 정부 시기 IMF관리체제아래 만들어 졌었다.재벌개혁의 성격은 전면 개방된 금융시장의 힘과 주주가치로 재벌을 규율하는 기조를 가졌었다. 그 결과 재벌체제-민영화된 공기업도-는 현저히 주주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97년이후 재벌체제는 그 이전과 연속적 측면을 가지면서도, 주주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질적 변화를 겪었다고 봐야 한다. 97년이전이나 이후나 한국경제는 그저 변함없는 재벌자본주의 또는 총수자본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연속성만 봐서는 97년이후, 2008년이후 양극화 축적체제의 전모를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이 대목에서는 장하준,정승일의 한국경제 진단과 같이가며 주류 재벌개혁론자와는 갈라진다. 장하준은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말하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은 지난 수십년간 국민이 함께 키워온 거예요. 그런 대기업을 재벌개혁이란 명분하에 국내외 자본투자자들이나 재테크 세력에게 내주면 안됩니다. 그런 재벌개혁이라면 과거 재벌 가문사람들 500명 정도만 잘 먹고 잘 살던 걸 기껏 5만이나 50만명의 금융 자산 부자들까지 잘 먹고 잘 살게 만드는 경제민주화로 끝날 수 밖에 없어요. 우리는 그러지 말고 5000만 국민 전체가 골고루 잘 먹고 잘 사는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재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선택>, p.266).나는 장하준의 이 견해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나 또한 거의 같은 의미로 다음과 같이 쓴 바가 있다.

"이 자본의 정치적 해방의 시대에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한강의 기적과 세계 속의 한국경제를 일구는 데 가장 무거운 부담을 져 온 근로대중은 고용불안과 생존권 위기 상황에 내몰려 있다. 재벌의 부는 국민의 부(commonwealth)로,근로 대중의 생활향상으로 확산 균점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국제금융자본이 뜯어먹고 있다" (이병천, "반공개발독재와 돌진적 산업화",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한울, 2007, pp.139-140).

주주자본주의적 개혁으로 인해 지난 날 한국경제의 '집단적 협력자본주의'- 권위주의적이고 불공정 공유형태이긴했지만- 성격은 결정적으로 파괴되었고 지난 수십년간 국민 대중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함께 키워온 재벌의 과실은 재테크 세력, 금융투자자들에게 내어주기에 이르렀다. 반면 노동자와 서민, 그리고 여러 중간 집단들조차 패배자의 처지로 떨어졌다. 그러므로 더 많은 주주 자본주의를 추동하고 심화시키는 재벌개혁에는 반대하며 주주자본주의를 견제해야 한다고 보는 장하준 정승일의 주장에 나는 공감한다. 그런 개혁은 재벌과 금융자본과 유착, 공생하는 과두지배체제를 강화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한층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단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어떤 개혁인가', '어떤 민주화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관련 기사 : 재벌개혁과 한국경제 새판짜기). 금융 자유화와 주주가치를 더 심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경제민주화여야 한다. 금융 통제와 양극화 해소는 민주적 대안의 길에서 같이 가야 할 두 바퀴 친구가 되어야 한다.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금융통제없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재벌에 면죄부를 주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장하준, 정승일과 나는 어디서 갈라지는가? 위에서 인용한 나의 글에는 다음 문장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과 같은 슈퍼재벌의 무법 무책임의 횡포가 국가권력의 비호아래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장하준,정승일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벌을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재벌 개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예각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대안의 길에서 어떤 재벌개혁인가, 어떤 경제민주화인가 하는 게 문제다. 나는 장하준, 정승일의 논리에서 중대한 문제는 앞서 본 (명제 3)에 있다고 생각한다. (명제3)에서 그들은 신자유주의 축적 체제와 축적 기획의 주체가 금융자본, 무엇보다 월가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된 금융자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재벌을 한국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서 떼어내 버린다. 이제 재벌은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와 기획의 중심 지배세력이기는 커녕 노동자들과 함께 초국적 금융자본의 공격을 받는 대상으로 설정된다.( 쾌도난마, pp.85-6). 그리고 공정시장을 위한 개혁은 결국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를 하자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선택, pp.188- 194).

이런 논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재벌이 신자유주의를 선도한 세력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장하준은 이렇게 말한다.

"재벌들이 바보같은 짓을 한 거예요. 시장주의(자유주의)를 들여오면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1990년대 중반 자유기업원 등을 만들어 미국 공화당 극우파들의 극단적 개인주의나 수입하고 주주자본주의 이론 들여오고 그랬거든요.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은 거죠"((쾌도난마), p. 83).그동안 '월가- 미국 재무부-IMF 복합체'(웨이드)의 프로그램과 그 지배 복합체가 해온 짓을 생각한다면, 나는 장하준, 정승일의 주장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 지배 복합체와 그 정책 체계로서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시하는 탈규제, 경쟁시장, 사적 소유권정립, 대외개방 등은 결국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도우는 게 아니라 봉쇄하는 것이었다. 세계를 '평평하게' 하는 작업은 약소국을 강대국에 무장해제 시키는 '사다리 걷어차기'전략이 될 수 있다.그리고 우리의 경우에도 그들 지배 복합체는 재벌 해체 등 미국을 위한 극단적 구상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재벌조직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주주자본주의론을 주장하면서 장하준을 비판하고 있는 걸 보노라면 ( 송원근 , 강성원 지음,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북오션, 2011 참조), 재벌들이 바보같은 했다는 장하준의 말이 전혀 틀린 것도 아니다. 재벌 연합체 산하 연구소가 주주자본주의를 주장하면서, 재벌을 옹호해 주는 세계적인 학자 장하준을 비판하다니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재벌이 한국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배세력이 아니라니. 한국의 민주화이후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과실을 얻고 최대의 승리자가 되었다 할 재벌을 반(反)신자유주의 대열의 주체세력으로 올려 세우다니. 그리고 진보적으로 가져와야 할 공정시장을 위한 개혁을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로 가는 길이라고만 내던지다니. 이 대목에서 나의 생각은 장하준,정승일과 갈라진다. 재벌은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바보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재벌산하 연구소가 (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같은 책만 내는 건 아니다. 우리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홍순영 장재철 외, 2006) 같은 책도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장하준 정승일과 비슷하게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재벌 조직을 옹호하는 논지를 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의외로 경제적 자유화를 '기초적 자유화'와 '선진화된 자유화'로 구분한다. 그러면서 영미형 자본주의는 법의 지배와 선진화된 시장의 조합으로, 유럽형은 사회적 통합과 기본적 자유화의 조합으로 파악한다.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이후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주식시장 규율이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에 따른 많은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p29, 243)라고 쓰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연구인데도 불구하고 장하준 정승일같이 극단적 주장을 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 최고의 재벌연구소에서조차 나름대로는 균형잡힌 말을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는 장하준 정승일의 주장이 그만큼 한국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 장하준 정승일은 한국자본주의의 '주요 모순'을 '쾌도난마' 한 것 같지 않다. 이는 그들이 한국 경제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조사 연구와 안목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신자유주의를 금융자본의 단일 지배로만 파악한 탓일 수도 있다(명제 1). 신자유주의가 단지 금융자본의 지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보다 포괄적으로 지배적 계급권력의 보수적 복원, 인간과 세계의 재상품화 기획이라고 보지 않고 말이다. 그들이 한국경제를 쾌도난마하는데 빈틈을 갖게 된 것은 아마 둘다 때문일지 모른다.(계속)

▲ 이종태 <시사IN> 기자(왼쪽),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부키

이병천 강원대 교수, (시민과 세계) 공동편집인

2012년 4월 20일 금요일

경실련 "서울시 협상책임자 거의 바보 수준"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420일자 기사 '경실련 "서울시 협상책임자 거의 바보 수준"'을 퍼왔습니다.
신영철 "잘못된 계약, 서울시 의지 없이 불가능"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20일 서울지하철9호선 특혜 논란과 관련, "2005년 당시 서울시가 의지만 있었다면 막을 수 있는 계약이었다"고 강조했다. 

신 단장은 이날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MRG(최소운영수입보장제)제도 자체가 특혜이고, 이는 외환위기 때문에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됐는데 2005년이면 외환위기를 벌써 극복하고 거품론에 대해 우려할 시기였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민자사업자가 자기에게 불리한 계약을 체결했을 리가 없다면 서울시가 이것을 제대로 감시해야 하고, 세금으로 매우게 되는 계약을 체결했다면 적자가 안 나는 부분을 만든다거나 적자가 났을 때 민자사업자가 상당 부분 리스크를 가져가게 했어야 했다"며 "전적으로 세금으로 다 부담시키게 한 부분은 서울시에서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거의 바보 수준"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또한 "민자사업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상당 부분 재정을 지원해주고 있기 대문에 정확한 의미의 민자사업도 아니다"라며 "근본적으로는 민자사업과 관련된 정보들이 다 투명하게 공개됐어야 하는데 공개를 잘 안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반대를 한다"며 유착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시의 지하철9호선 인수 검토에 대해선 "현재로선 그 방법 이상의 대안이 없다고 보여진다"면서도 "매각 인수하는 비용 자체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이 논란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최병성 기자

2012년 4월 16일 월요일

MB정부 ‘사회경제고통지수’ 외환위기 이후 최고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15일자 기사 'MB정부 ‘사회경제고통지수’ 외환위기 이후 최고'를 퍼왔습니다.


[진단&전망] ‘삶의 질’ 지표 보니
경제고통지수에 범죄·자살률 등 사회지표 추가김대중때 0.6 노무현때 0.7…현정부 들어 3.2로
비정규직·청년 실업 등 급증에 양극화 커진 탓

불쾌지수란 온도와 습도에 따라 사람이 피부로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를 나타낸다. 경제에서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수치로 나타낸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가 있다. 미국 경제학자 오컨이 불쾌지수를 차용해 고안한 것으로 보통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산하여 계산한다. 2011년 우리나라의 경제고통지수는 7.0(소비자물가상승률 4.0%+실업률 3.0%)이었다. 이는 2010년의 6.4에 비해 0.6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우리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더 커진 것을 보여준다.
고통지수가 사상 최고치였던 때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으로 14.5를 기록했다. 당시 물가는 7.5%, 실업률은 7.0%였다. 경제고통지수를 외환위기 전후로 나누어 보면, 외환위기 이후인 1999~2011년 평균은 6.6으로 위기 이전인 1985~1997년의 8.1보다 오히려 1.5포인트 낮다. 경제고통지수가 우리 국민들이 삶으로부터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게 하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들의 고통이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높아졌다는 사회적 인식이 많다는 점을 반영한다면 기존의 경제고통지수를 좀더 현실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고통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 발전시킬 수 있는 단초는 영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의 (The New Science of Happiness)이라는 저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각국 국민들이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이 물질적 풍요 외에 사회심리나 사회통합 정도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겐 국민들의 행복을 위협하는 더 직접적이고 심각한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증가, 청년실업, 조기퇴직의 위협뿐 아니라 중산층의 붕괴,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취약계층의 증가, 그리고 자살과 범죄의 증가 등이다.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부터 받는 경제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갈등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삶의 고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경제고통지수의 범주를 사회적 영역으로까지 확대시킨 새로운 사회경제고통지수(Socio-economic Misery index)를 작성했다.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사회적 측면의 고통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는 레이어드 교수가 언급한 국민들의 의식, 가치관, 사회심리 등을 대표할 수 있는 지표로 범죄율과 자살률을 주목하였다. ‘범죄율’은 인구 10만명당 범죄발생 건수로,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로 정의된다. 국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강도를 좌우하는 대표적인 사회병리현상을 나타낼 뿐 아니라 사회심리와 사회통합 정도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들이다. 아울러 경제적 측면에서도 ‘물가’와 ‘실업’으로 구성되는 기존의 경제고통지수에 소득 양극화와 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소득배율(상위 20% 소득/하위 20% 소득)’을 추가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 실업률, 소득배율, 범죄율, 자살률 등 5가지 지표로 구성된 사회경제고통지수를 1993년부터 2011년까지 19년 동안 분석해 본 결과, 그림과 같이 사회경제고통지수가 추세적으로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지수가 가장 높았던 1998년 외환위기 당시(5.2)를 중심으로 그 이전은 평균인 ‘0’보다 낮은 음(-)의 값을, 그리고 그 이후는 평균보다 높은 양(+)의 값을 나타내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외환위기 이전(1993~1997년) 평균 -3.8에서 외환위기 이후(1999~2011년)에는 평균 1.1로 크게 높아진 것이다.
대통령 재임기간별로 보면, 김영삼 정부 집권 시기엔 -3.8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0.6, 노무현 정부 0.7로 높아지더니 이명박 정부에서는 3.2로 다른 기간에 비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2011년 사회경제고통지수도 2.7을 기록해 작년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고통수준이 분석기간 평균적인 고통수준(0)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사회경제고통지수가 추세적으로 높아진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양극화 지표(소득배율)가, 그리고 사회적 요인의 범죄율, 자살률과 같은 지표들이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의 심각성뿐 아니라 경제지표로는 설명하기 힘든 우리 사회 내 공동체로서의 안정화 기능 약화, 사회 구성원간의 유대감 상실 등이 반영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경제적인 측면 외에 사회적인 측면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정적인 경제성장 외에도 양극화 문제와 자살, 범죄 증가 등 사회문제도 함께 개선돼야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낮아질 수 있다.
작년 우리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섰고, 올해 들어 물가상승률이 둔화되고 고용 사정도 다소 나아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삶의 고통이 줄어들고, 좀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양극화 문제와 범죄, 자살 등 경제·사회의 구조적 문제 등을 개선시키기 위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점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송태정/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

2012년 4월 3일 화요일

한미 FTA를 막아야 하는 열두 가지 이유


이글은 레프트21 2011-11-28일자 기사 '한미 FTA를 막아야 하는 열두 가지 이유'를 퍼왔습니다. 다시 한번 상기해드리고 싶어서...
우석균·송기호의 쉬운 한미FTA 반대 해설

원제: 한미 FTA를 막아야 하는 열두 가지 이유 - 우석균·송기호의 쉬운 한미FTA 반대 해설

이 글은 최근 우석균·송기호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정책자문위원이 대국민 홍보용으로 쓴 글이다.

한미FTA는 1퍼센트 부자와 재벌만을 위한 협정입니다. 약값과 의료비를 폭등시키고 건강보험제도를 위태롭게 만듭니다. 투자자 정부 중재제도(ISD)가 도입돼 기업의 탐욕을 막을 공공정책시행이 불가능해집니다. 또 공기업 민영화로 전기, 수도, 가스요금을 폭등시키는 협정입니다. 물가가  폭등해도 민영화된 기업을 다시는 공기업화할 수 없도록 만들고, 규제완화가 된 제도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협정입니다. 영세상인을 보호하는 제도는 한미FTA 위반이 되며 한국의 농업은 도탄에 빠지게 됩니다. 미국의 대기업과 한국의 재벌만을 위한 1퍼센트만을 위한 협정인 것입니다.
1. 약값 폭등, 의료비 폭등시키고 건강보험제도를 망칩니다.
한미FTA는 특허를 연장시켜 값싼 복제약품이 시판되는 것을 대폭 늦춥니다(허가-특허 연계). 또한 지금까지 한국의 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이 결정하던 약값을 다국적 제약회사가 거부할 수 있게 됩니다(독립적 검토기구). 환자들의 약값이 폭등하고 건강보험재정이 문제가 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미FTA가 비준되면 전국 20개 도시에 허용된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 허용 조처를 되돌릴 수 없게 해 놓았습니다. 영리병원의 의료비는 지금의 비영리병원보다 크게 올라갑니다. 의료비도 폭등합니다.
2. 공공정책과 복지정책이 투자자 정부 중재제도(ISD)의 대상이 되어 위태로워집니다. 
공공정책은 한미FTA의 예외라구요? 아닙니다. 한미FTA에서는 일단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기구에 회부하면 한국 정부는 꼼짝없이 끌려나가서 중재를 받아야 합니다. 자동동의 조항 때문에 그렇습니다. 캐나다 정부가 그린벨트를 지정해 환경폐기물을 못 버리게 하자 캐나다 정부가 회부당했습니다.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나 협동조합육성제도도 한미FTA 위반으로 강제 중재에 회부됩니다. 한국의 건강보험당연지정제에 해당하는, 캐나다 국민 모두에게 보편적이고 무상인 의료서비스 제공을 의무화 한 연방보건법도 영리병원에 손해가 된다고 중재에 회부됐습니다. 
투자자 정부 중재제도(ISD)는 보편적 규범이 아닙니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무역기구(WTO) 협상(DDA)에서도 그 채택을 거부했습니다. 투자자 정부 중재제도(ISD)가 FTA에 포함되면 한국 정부는 중재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역 보복을 당합니다. 기업에 대해 공익을 목적으로 규제를 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기업들에게는 천국이지만 한국 정부의 정책결정권은 크게 훼손됩니다. 
3. 민영화를 저지 못하고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 물가가 오릅니다.
볼리비아에서는 1999년 코차밤바시의 상수도가 민영화된 후 최저임금이 60달러인 나라에서 한 달 수도요금이 20달러가 될 정도까지 폭등했습니다. 코차밤바 주민들은 혹시 아이들이 수도꼭지를 틀까 봐 수도를 새끼줄로 묶고 빗물을 받아먹었습니다. 민영화 당사자인 벡텔은 빗물도 자기 것이라며 이를 금지하고 단속까지 했습니다. 볼리비아 정부는 이 와중에도 상수도를 다시 국유화하려 하지 않았는데 투자자 정부 중재제도(ISD)에 회부 당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제 철도도 가스도 민영화한다고 합니다. 철도요금과 가스요금이 폭등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미FTA가 되면 비준되면 투자자 정부 중재제도(ISD) 때문에 다시 이를 국유화하기 힘듭니다. 또 역진방지조항(래칫) 때문에 한번 민영화하면 요금이 아무리 올라도 이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금도 고물가로 서민생활은 파탄지경인데 수도, 전기, 철도, 가스요금이 오르게 됩니다.
4. 동네 통닭집, 피자집, 상점, 정육점, 채소가게가 어렵게 됩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들어서면 반경 1킬로미터 이내의 동네 일반상점은 물론이고 정육점, 채소가게까지 문을 닫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마트나 홈플러스에서 ‘통큰 통닭’, ‘통큰 피자’니 뭐니 해서 일단 값싸게 팔기 시작하면 주변의 동네 통닭집, 피자집은 다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런데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는 한EU FTA 때문에 현재도 어려워졌지만 한미FTA가 되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한미FTA 위반이기 때문입니다. 일자리를 잃거나 명퇴를 당하면 기댈 곳은 동네상점이나 통닭집인데 이제 서민들의 피난처까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마트나 홈플러스를 합작 운영하는 다국적기업과 재벌은 떼돈을 벌겠지만 서민들은 죽어 나가야 합니다. 한미FTA가 말하는 ‘경쟁력 강화’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5. 외환 위기 닥쳐도 외환통제가 곤란합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한국에 들어왔던 외국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이럴 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처는 일시적 외환 송금제한(금융세이프가드)입니다. 그런데 한미FTA에서는 이 금융세이프가드의 전제조건을 미국의 ‘상업적, 경제적 또는 재정상의 이익’에 손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해 놓았습니다. 한미FTA가 비준되면 금융 위기가 닥쳐도 외환 통제 조처를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또 한미FTA는 모든 금융서비스를 포괄적으로 개방했습니다(네가티브리스트). 금융상품에 대해 새로운 규제를 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2008년 경제 위기를 불러온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규제권이 제약을 받습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시기에 한국은 국제 투기자본의 농간에 대해 제대로 규제도 못 하고 가만히 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6. 무역 흑자가 줄고 적자가 됩니다.
한EU FTA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년도 대비 37억 불이나 무역흑자가 줄었습니다. 한미FTA를 하면 수출이 늘어난다구요? 미국은 지금 경제 위기 상황입니다. 집을 잃고 거리에 쫓겨난 사람이 수백만이 넘고 실업률이 10퍼센트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미국에 무슨 물건을 더 팔겠습니까? 미국이 지금 FTA를 하는 것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백 보를 양보해서 수출이 늘어난다고 서민생활이 얼마나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후 미국 무역흑자는 늘어났지만 미국의 일자리는 70만 개가 줄었습니다. 멕시코는 어땠습니까? 1993년 멕시코 정부는 NAFTA가 체결되면 외국인 투자가 확대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습니다 . NAFTA 체결 후 물론 멕시코의 수출액은 늘었습니다. 그러나 서민경제는 나빠지고 양극화가 심해져 멕시코 4천만 경제활동인구 중 정규직은 1천3백만 명에 불과하게 됐습니다. 재벌들은 돈을 벌지만 직장인들과 서민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것이 FTA입니다. 
7. 농업이 없는 한국을 물려주시겠습니까?
미국과 EU의 농산물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값이 쌉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미국 정부와 EU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농업보조금을 주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거대 농업기업에 주는 농업보조금은 연간 2백20억 달러(약 24조 9천억 원)로 우리 나라와 비교가 안 되게 많습니다. 농업생산액에 비한 농업보조금 비율은 EU는 22.3퍼센트, 미국은 14.6퍼센트인데 우리 나라는 4.6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막대한 정부보조금으로 가격을 낮춘 미국과 유럽의 농산물은 쌀 수밖에 없고 경쟁이 안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관세까지 낮추는 협정이 한미FTA입니다. 한국의 농업은 끝장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지금도 OECD 국가중 최하위로 28퍼센트밖에 안 되고 쌀을 빼면 5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세계 식량 위기가 닥치고 있고 농업이 미래 청정에너지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고 각국이 자국 농업 보호에 나서고 있습니다. 농업 없는 한국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시겠습니까?
8. 환경을 파괴하는 협정입니다.
한미FTA 체결을 위해 미국이 내건 4대 선결조건 중 하나가 자동차 배기량이 많으면 세금을 더 부과하는 제도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과 배기가스가 많은 자동차에게 세금을 부과해 환경을 지키는 정책이 사라졌습니다. 기후온난화라는 지구적 과제에 역행하는 것이 한미FTA 협정입니다. 유전자 조작식품에 대한 규제가 완화됐습니다. 환경정책은 ISD 예외라지만 사실상 한미FTA가 비준되면 한국의 환경규제조처는 단지 무역장벽으로 취급될 뿐입니다. 
9. 불평등한 협정입니다.
미국의 한미FTA 이행법 102조를 보면 협정과 미국 법령이 충돌할 경우 미국 법령이 우선한다고 돼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한미FTA 협정이 한국법에 우선하게 됩니다. 한미FTA는 미국에서는 국내법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국내법입니다. 미국의 이행법에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FTA 위반을 이유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할 수 없게 했습니다.   
10.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편입돼 동북아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한미FTA 협정은 단지 경제협정만이 아닙니다. 한국이 정치적ㆍ군사적으로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더욱 깊숙이 편입되는 협정입니다. 지금 동북아시아는 중국과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맞닥뜨리고 있는 곳이고 앞으로 갈등은 더 커질 것입니다. 지금 한국이 정치적ㆍ군사적 한미동맹을 무조건 강화하는 것이 과연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무비판적 한미동맹의 강화는 위험하며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에 해가 됩니다. 
11. 1퍼센트만을 위한 협정입니다.
미국의 기업만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협회인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 재벌들은 한미FTA 지지 광고로 언론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한국의 공공부문을 민영화하면 미국의 기업들과 합작해 한국 재벌들도 이익을 보기 때문입니다. 의료민영화가 되면 미국 보험회사만이 아니라 국내 보험회사도 민영 의료보험 장사로 큰돈을 벌 수있습니다. 그러나 서민과 직장인 들에게 무엇이 돌아옵니까? 가스, 전기, 철도요금 같은 공공요금이 오릅니다. 약값, 의료비가 올라 건강보험마저 위험합니다. 동네상점은 문을 닫게 생겼습니다. 비정규직은 더 늘어가게 됩니다. 친환경무상급식도 못 하게 됩니다. 한미FTA는 양극화를 심화시켜 1퍼센트는 이익을 보지만 99퍼센트에게는 재앙인 협정입니다.
12. 99퍼센트의 힘으로 한미FTA 협정 막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FTA를 밀어붙이면 다른 나라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남미) 전 지역을 대상으로 FTA를 추진했었습니다(FTAA). 그러나 남미 민중이 반대해 이 FTA는 폐기됐습니다. 미국이 추진한 FTA,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모든 지역에서 폐기되고 단 한 나라 즉 한국만 FTA를 추진 중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도 국민들이 촛불항쟁을 통해 결국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아냈습니다. 온 국민이 반대한다면 미국과의 FTA 막을 수 있습니다. 99퍼센트의 힘으로 1퍼센트만을 위한 한미FTA 막아낼 수 있습니다. 또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2012년 2월 28일 화요일

김대중 D, 노무현 C, 전두환 A…이것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28일자 기사 '김대중 D, 노무현 C, 전두환 A…이것은?'을 퍼왔습니다.
[시민정치시평] 재벌개혁과 한국경제 새판짜기…99% 연대의 길로

복지에 이어 경제민주화가, 그리하여 그 핵심 관문으로 재벌 개혁이 모두, 더불어 잘사는 나라로 가기 위한 중심 의제로 다시 떠올랐다. 대한민국이 가히 '재벌 동물원', 또는 '삼성공화국이' 꼴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재벌의 탐욕과 탐식, 독점과 독식이 도를 한참 넘은 현재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는 무너진 민생경제를 살리고 경제민주화 나아가 '제 2민주화'를 이루는 일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명박 정부 아래 오늘과 같은 재벌독식 정글 자본주의를 초래한 장본인인 한나라당까지 당명을 바꾸는 등 법석을 떨고 경제민주화 운운하는 걸 보면, '두 국민'으로 갈라진 채 다수 대중이 삶의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 사회의 위기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도 남는다. 집권 여당까지, 진지한 반성은 모르쇠로 버티고, 복지국가 건설과 경제민주화 시대정신에 편승하려고 변신하고 있는 걸 보면, 작년부터 유력 보수 언론이 주도했던 바, 복지국가 길과 재벌개혁은 회피하며 재벌의 자선에 호소했던 한국판 "자본주의 4.0" 기획도 허사가 된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정치란 이쪽과 저쪽, 또는 아방타방(我方他方)을 나누며 '우리'를 저변 넓게 구성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의제의 경우, '부자 증세'처럼 아방타방을 나누는 지점이 확실히 존재한다. 이전에 민주노동당이 내걸었던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과 같은 말은 그 지점을 잘 포착한 정말 멋있는 슬로건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이 슬로건을 높이 쳐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러나 복지국가 건설은 부자증세만으로는 어렵고 국민전반의 증세부담을 요청하기 때문에 대척점이 흐려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가, 제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축적하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다. 그것에 비해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의제는 대척점이 훨씬 명확하다. 현 상황에서 '우리'를 넓게 99%의 '경제민주화 동맹'으로 확대하고 저쪽을 한줌의 1%로 몰 수 있는 최상의 의제일지도 모른다. 이제 '99% 연대로 1% 재벌을 개혁하자'고 말해야 할 때다.

그런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견해도 다양하기 마련이다. 돈되는 건 다 먹어치우는 재벌의 탐욕을 규탄하며 개혁 대안을 찾는 토론의 장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그런 토론의 일환으로 얼마 전에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나도 토론자로 참여해 지난 시기 '삼성공화국' 국면이래 주장해온 '제 2라운드 개혁'론을 피력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청중이 많지는 않았지만 매우 유익한 토론이었다.

주발제자인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2007년 선거가 '성장과 경제자유화'라는 보수적 프레임으로 짜여졌던 반면에, 2012년 선거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 주도의 프레임이 짜여졌고 여기에 보수가 끌려 들어와 따라잡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덜 부각되어 있는 '노동 민주화' 의제를 강조하고, 재벌개혁 운동이 민생연대 나아가 '99%의 연대'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발제자와 유사하게 노동자 경영참가에 기반한 '산업경제의 민주주의' 실현에 방점을 찍으면서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개혁 패키지들을 풀어 놓았다. 곽정수 한겨레 기자는 한참동안 민주통합당 내부 '재벌개혁의 X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재미있게 듣고 웃고 했지만,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제법 떠들썩한 외양과는 다른 실상을 'X맨'이라는 말 한마디로 아주 잘 짚은 셈이다. 'X맨'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홍종학 교수가 또 지루한 토론회에 큰 웃음을 주었다. 그는 재벌은 킹콩같은 존재로, 이 킹콩이 선거 기간에는 잠을 잔다면서 이 때가 개혁의 호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벌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제재, 효과적인 규율수단 그리고 빠른 속도라고 하면서 계열사간 배당이나 거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재벌세'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주노총 토론회를 포함하여 여러 논의들에서 좋은 정책수단이 많이 나온 것 같다. 정책 수단을 잘 몰라서 재벌개혁을 못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수 있을까?

우선 지난날 재벌개혁이 실패한 경험을 반성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 실패했나?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먼저, 두말할 필요없이 재벌 권력의 힘이 너무 강대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한국의 개발 독재는 강력한 정치적 독재임과 동시에, 대재벌을 키우고 이와 공고히 동맹한 반면 노동을 배제적으로 동원한 아주 당파적인 계급 권력이기도 했다. 권위주의 산업화가 고도의 권력전략인 동시에 계급전략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그리하여 국가 권력과 재벌 권력이 결탁한 과두제(寡頭制)적 지배와 고도집중 체제를 물려 준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 정권은 물론 5공 신군부독재도 그러하다. 독재정권이 재벌에 퍼주기를 하면서 일정하게 규율을 부과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이 노동계급과 시민사회의 발언을 통제, 억압해 왔기 때문에, 민주화이후 오히려 자기 발로 서게 된 공룡 재벌의 고삐를 잡고 민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역사적 힘이 형성되기 어렵게 된다. 여기에 민주화 이후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어렵게 된 "민주화의 역설"이 나타난 조건을 찾을 수 있다. (☞ 바로가기 "강한 개발국가 복원?…장하준의 새로움과 구태의연함").

둘째, 개발독재 시기로 환원할 수 없는 민주화 시기의 실정(失政)문제가 있다. 한국의 민주화 시기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와 중첩되었으며 역대 정부는 경제적 자유화=규제 완화와 무분별한 개방의 물결에 휩쓸렸다. 민주화와 자유화와 같이 진행됐다. 그로 인해 재벌의 힘과 정부의 실정이 합작한 끝에 97년 '외환위기'가 도래했다. 이어 97년 이후 중도 자유주의 정부는 한편 외압에 순응하면서 다른 한편 그 칼을 빌려 재벌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는 단절과 연속의 기묘한 혼합물이었다. 불법적 경영권 세습 등에서 보듯이 오늘날 한국재벌의 전근대적 구태는 여전하다. 그러나 재벌 개혁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재벌들이 사라지고 쪼개졌으며, 살아남은 재벌도 크게 변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슈퍼 재벌'로의 초집중과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빈곤화였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역대정부의 재벌 정책에 대한 학점은, 전두환 정부 A, 노태우 정부 C, 김영삼 정부 D, 김대중 정부 D, 노무현 정부 C 로 평가되었다. 논란이 많겠지만, 충격적인 평가다. 이 평가의 타당성 문제는 제쳐 두고, 한국의 민주화이후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과실을 얻고 최대의 수혜자로 부상한 것은 소수 재벌이고, 노동자와 서민, 그리고 여러 중간 집단들조차 패배자의 처지로 떨어진 게 사실이라면 이는 정말 큰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역설이 재벌개혁의 부진뿐만 아니라 97년이래의 재벌개혁에도 크게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단지 재벌개혁이 아니라 '어떤 개혁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연합


셋째, 나아가 정부 정책만이 아니라 '범민주 진보' 진영 내부의 개혁 담론도 재벌 개혁이 실패하는 데 일조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는 주주 자본주의냐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냐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 그 우열을 판별하기 위한 기준을 찾는 노력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견해를 편 사람도 있다. 또 재벌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개혁틀안에 가두면서 경제민주화와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들은 재벌 개혁의 목적은 단지 공정 경쟁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참여와 공정한 협력은 배제해 버린다. 어떤 논자는 지난 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 즈음하여 사측의 해외공장 이전과 주식배당에 대해서는 은근히 두둔한 반면 정리해고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상한 논법을 제시한 적도 있다(김기원,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 , 2011/8/4). 그리고 IMF 이후 세계화가 반(反)노동적임과 동시에 반재벌적인 효과를 가졌고 그래서 재벌과 노동 모두 거기에 반대했다고, 문제의 한쪽 면만 보는 견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재벌과 세계화간의 불협화음만 볼 뿐, 양자의 교묘한 만남과 화해가 초래하는 반(反)민주적 효과를 간과하는 것이다.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문제를 보는 나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형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바, 재벌체제의 내부자(Insider)와 외부자(Outsider)로 분단된 이중화 양식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래 그림 참조). 내부자의 중핵은 재벌체제의 재생산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상위 계층들이다. 외부자는 비정규직, 취약한 정규직, 실업자, 자영업과 중소상인, 취약한 중간층, 중소기업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잘 살펴야 할 것은 소액주주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의 존재이다. 이들은 야누스적 얼굴을 갖고 있다. 재벌 총수의 횡포는 소액주주권을 침해한다. 그렇지만 재벌의 높은 실적과 주주가치 추구는 소액주주에게 이익도 가져다 준다. 소액주주중에는 소시민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제금융자본과국내 대금융자산가들도 대체로 소액주주며 이들이 소액주주의 '큰 손'으로 재벌체제의 최대 수혜자에 속한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 그 약체 부분은 기업주가 휘두르는 부당 정리해고 칼날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큰 부분은 기업별 노조에 갇힌 채 - 이는 신정완이 '박정희체제의 사후의 복수'라 부른 것이다- 비정규직과 연대는 외면하고 재벌과 이익을 함께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한국의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대안은 복지 의제처럼 스웨덴 모델을 준거로 삼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프레시안

이런 독특한 내부자-외부자의 이중화 상황에서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중심에 놓는 재벌개혁론은 다수 대중의 민생경제를 중심에 놓는 개혁론과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추상적으로 노동자 경영참여를 외치는 개혁론도 정규직이 비정규직, 실업자 등의 이익을 담아내는 보편적 ,포괄적 이해를 구성하지 않는 한 이중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 시작하는 제 2라운드의 개혁은 지난 1라운드의 한계 지점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 경쟁시장을 추구하는 질서자유주의적 개혁은 재벌개혁의 기본적 구성부분임이 분명하지만 이는 다수 피억압대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회민주적이고 참여민주적인 개혁과는 충돌하는 지점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개혁은 중도반절로 끝난 질서 자유주의적 개혁의 적극적 부분을 이어받되, 그 중심방향은 사회민주적이고 참여민주적인 개혁을 재창조하는 데 두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노동 부문이 이중화 구조를 넘어 노동 연대를 향해 필사적 노력을 다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늘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중심적 문제는 1997-8년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대다수 사람들이 거의 예상하지 못한 채 습격당한 정글자본주의 속에서, 재벌의 전방위적인 탐식과 약탈적 축적, 그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불공정하고 부당한 거래와 분배, 야만적인 노동 배제,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 등이 중심적 문제 또는 '주요 모순'이 되고 있다. 재벌과 외국자본의 지배동맹에 의한 독점 독식과 이중화 축적체제로 인해 배제되고 약탈당하고 있는 광범한 국민 대중의 삶의 불안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상태로는 민생은 물론 한국경제의 미래도 없다.

서두에서 정치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치는 다투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생 협력하며 이를 통해 더 높은 균형으로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재벌개혁이 재벌죽이기가 아니라 오히려 재벌살리기라고 말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재벌이 민주공화국을 길들이는 비정상상태로부터 이들이 민주공화국의 시민적 구성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 이를 통해 시민기업으로 재탄생한 재벌과 민생, 나라경제가 선순환하는 민주적 참여의 시장경제, 고진로(High Road)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재벌 개혁의 목표다. 그리하여 저변이 넓고 튼튼한 민생경제, 피라미드형의 강소(强小)하고 중견(中堅)한 살림의 경제, 공화국의 구성원이라면 동등한 '경제시민'으로서 노동하고 기업(企業)하는 사회경제적 권리지분(stakes)을 쥐어주면서 공정하게 협력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며 언제나 패자부활이 가능한 한국형 시민경제의 새판을 짜는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