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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청년실업이 낳은 RPG 캐릭터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12-11일자 제51호 기사 '청년실업이 낳은 RPG 캐릭터'를 퍼왔습니다.
잉여가 본 잉여

 
<3083 26="26" p="p" v="v"> 2003-올리비에 코르페

언젠가부터 많은 청년들이 스스로를 '잉여'라 부르고 자신들의 일상을 '잉여짓'과 '잉여력'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잉여란 단어를 종종 듣기는 했는데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잉여들의 놀이터 중 하나인 트위터에서 '잉여'로 검색하면 잉여들의 끊임없는 잉여짓을 목격할 수 있다. 처음 잉여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이미 잉여에 대한 많은 글들이 있을 텐데 어쩌다 별것 없는 잉여인 나에게 이런 요청이 들어왔는지 의아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잉여의 시선으로 보는 잉여를 말하기엔 잉여인 내가 꽤 적합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본인을 소개하자면 나이 서른의 잉여다. 잉여력을 분출했던 대표적인 일은 잉여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를 만든 것이다. 어느 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이어서 수많은 청춘-멘토 기획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있었다.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기에 무슨 내용이 있나 슬쩍 들어봤더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조롱해보고자 다른 잉여들과 합심해 (잉여니까 청춘이다)라는 딱히 듣는 사람이 없는 방송을 만들었다. 이 잉여짓을 통해 수많은 유형의 잉여를 만나며 (잉여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던 나조차도) 애매했던 잉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이 글을 통해 잉여가 바라본 잉여는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머지 인간과 떨거지 인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 주인공 현수(권상우 분)의 아버지(천호진 분)가 현수에게 "너 대학 못 가면 뭔 줄 알아?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잉여인간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 거야, 이 새끼야!"라고 호통을 친다. 대학을 나와야 사회에서 인정받는 '산업역군'으로 자리잡을 수 있던 시기에 대학 진학은 '사람 인정'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이처럼 잉여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 대열에서 낙오 내지 탈락한 '나머지'들을 지칭하는 데 쓰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빗대자면 요즘의 잉여는 취업을 못 한 '인간 떨거지'라고 할 수 있다.
주체로서 잉여가 성립되고, 다양한 형태의 잉여가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공유되면, 거기에서 표출되는 잉여력과 잉여짓이 잉여 일반의 정체성에 추가된다. 흔히 볼 수 있는 잉여의 문법 중 하나는 "나는 잉여니까 오늘도 ( )한 잉여짓을 한다"인데, 잉여짓은 일상적 여가를 포함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행동을 거의 모두 포함한다. 남는 시간(잉여력)을 소득 창출 행위 및 기타 행위(잉여짓)에 쓰는 이들이 잉여다. 따라서 오늘날의 잉여는 "자본가와 안정된 임금노동자를 제외한 나머지로서 잉여짓을 일삼는 자"로 규정할 수 있겠다. 여기에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자조와 체념을 내면화한다.
잉여는 다시 매우 투박한 분류이지만 세분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경제적 안정도, 둘째 주체적인 선택 여부에 따라 잉여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부모의 후원을 받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잉여로운 시간을 잉여롭게 보낼 수 있다. 바로 잉여로울 수 있는 잉여다. 딱히 경제활동을 병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 현실에서 충당할 수 있는 경우다. 반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잉여는 잉여임에도 잉여롭지 못하다. 생존을 위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존재로서는 잉여지만 일상은 전혀 잉여롭지 못하다. 치솟을 대로 치솟은 등록금, 높은 물가가 감당이 안 되는 생활비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이들에게 잉여로울 수 있는 자유는 매우 제한된다. (비록 나의 경험 속에서 접한 적은 표본이지만) 이들의 경우 스스로를 잉여로 규정하는 비율은 그리 많지 않다.
자발성에 따라 구분을 해보면 잉여짓을 계속하고 싶은 잉여와 '탈잉여'를 꿈꾸는 잉여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는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며 이른바 '문화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의 경우 경제적 불안정을 각오하고 '평범한 삶'을 누리지 않더라도 스스로 선택해서 잉여가 됐다. 사실 이런 유형은 이미 과거부터 존재했으며 엄밀하게 말하면 새로이 등장한 잉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단지 잉여가 일종의 문화현상의 성격으로 나타나면서 자신을 잉여라고 부른다고 볼 수 있다. 후자는 고용 불안정의 시대에 취업을 못 하면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잉여가 된 이들이다. 이들은 언제나 탈잉여를 꿈꾼다. 스스로 잉여라고 자조하면서도 언제든 잉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여기서 나는 잉여의 개념을 좁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잉여의 개념이 너무 확장되어서 여기저기에서 잉여를 갖다 쓰고 있지만 잉여로 불리거나 혹은 자처하는 이들을 실제 구성하는 다수는 비교적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비자발적인 잉여에 가깝다. 잉여를 사회현상으로 주목한 이들 가운데 잉여는 스스로를 잉여라 지칭한다는 점을 강조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 외부에서 잉여라 지칭하는 계층은 이미 어떤 이름으로든 존재했고 정작 잉여라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층은 협소하다고 본다. 앞선 구분에 따라 내가 보는 잉여는 잉여로운 시간을 비교적 큰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중간계급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잉여는 중간계급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의 산물인 셈이다. 과거의 중간계급 자녀들과 다른 점은 전자는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었고(비교적 일자리가 많았고 그들의 부모 스스로 노후를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는) 후자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안온한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가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잉여는 한국 사회에서 중간계급의 몰락(하우스푸어와 같은 현상이 심화되고 있듯)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중간계급의 자녀들이 최소한 자신이 누렸던 물질적 풍요를 이어가고자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게임 속의 세상, 게임 속의 잉여

이 깨달음을 통해 잉여가 되는 과정 속에서 양산된 잉여들은 게임 속 캐릭터와 무척 닮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들의 삶은 RPG(롤플레잉게임)의 진행과 비슷하다. 게임 속에서 막과 장 사이에 던져진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한 단계씩 전진하는 방식이 그들의 삶과 크게 차이 나 보이진 않는다. 정형화된 게임 규칙 안에서 조금은 다른 방식의 공략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목적을 향한 최선의 방식은 존재한다. 게임에 빗대어 잉여의 인생 주기를 살펴보면 부모라는 '추종자'의 엄호 아래 비교적 쉬운 1막 '유년기'를 클리어하고 나면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그나마 1막은 다른 스테이지와 비교해 분홍빛이 감도는 편이다. 물론 분홍빛이 지속되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더욱더 과열되는 조기교육) 아직은 희망 속에서 '꿈'이란 걸 꿀 수 있으니까. 2막 '대입 돌파'는 학벌이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향후 인생의 방향을 상당 부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막이다. 2막에서 높은 업적을 달성하고 클리어한 경우 3막 '취업 전쟁'의 진행이 한결 수월해진다. 단적으로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채용 시 가장 많이 보는 비공개 커트라인으로 나이에 이어 학벌이 꼽힐 정도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진행 방식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비난의 목소리는 높지만 크게 봤을 때 변한 것은 없고, 결국 더 좋은 업적을 위한 유저와 그 서포터를 위해 기형적인 형태로 '대입판'이 변질되어온 실정이다.
현재 많은 잉여들이 3막 '취업 전쟁' 속 던전을 헤매고 있다. 엄청난 양의 잉여가 본격적으로 양산되는 지점이다. 2막과 달리 3막은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서 맵을 정확히 볼 수 없고 불확실한 정보만이 나돌고 있다. 예를 들면 기업 측의 정보에 따르면 "스펙보다 스토리"가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3막 유경험자들은 "스펙은 기본, 스토리는 필수"라고 말한다. 이런 불일치로 인한 혼란과 더불어 경기 침체라는 눈보라가 쏟아지는 상황은 유저들의 괴로움을 끌어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유저들이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다음 막으로 가기 위한 충분한 스펙을 쌓기 위해 '앵벌이'에 나선다.
어쩌면 게임이 인생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게임은 난이도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개 초·중·고급 정도로 나뉘는 게임의 레벨은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반면, 인생의 난이도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캐릭터 생성과 동시에 고정되곤 한다(예를 들면 부모의 재력과 같은 가정환경). 또한 게임은 이른바 '로드 신공'을 통해 세이브-로드를 무한 반복하며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인생에서 한번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는 실패에 대한 완충작용 역할을 해줄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패하면 끝인, 그야말로 '하드코어 모드'다. 그렇기에 잉여짓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자조와 체념을 받아들이지만 나머지의 도전은 불필요한 것이나 사치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잉여들이 게임 캐릭터처럼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신해철의 노랫말을 보자.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 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1990년대 X세대가 했던 고민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잉여들도 '자의건 타의건 간에 '왜'라는 물음이 거세된 채 맹목적으로 클리어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 끝에서 볼 엔딩은 어떤 것일까?', '과연 행복은 무엇일까?' 머리가 복잡해지는 고민들을 스스로 던져본다. 하지만 이런 물음도 이젠 조금은 지겨운 클리셰가 되어버렸다. 책에는 나오지만 시험에는 나오지 않는 문제라서 딱히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여기에 이른바 '꼰대'라 불리는 기성세대 중 일부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허망한 예상 답안을 던져주곤 한다. '게임'을 벗어나라는 주문이다. 시각을 조금만 바꿔도 세상은 크게 달라 보인다는 둥, 착실한 '게임 공략법'과 다르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적성을 찾고 그것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며 살아야 한다는 둥. 하지만 탈출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탈출한다고 해서 새로운 세상이 바로 열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임의 규칙이 변하길 기대하거나 자신만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족의 지원 혹은 개인의 특별한 능력과 운에 기댈 수밖에 없다. 결국 많은 잉여들에게 잉여롭지 않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정규직으로의 취업밖에 없다.

"잉여의 탈출구는 결국 취업뿐?"

이제 대다수 잉여들의 선택은 '탈잉여'로 귀결된다. 어쩌면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이 과정에서 잉여는 체제 순응적인 존재로 조각된다. 체제 순응적인 신입사원상일 때 탈잉여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가 요구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펙을 쌓고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있다. 과거 세대들이 요즘 잉여들을 질타할 때 '낭만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잉여들에게 낭만을 즐기는 것조차 탈잉여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잠깐 게임을 일탈하더라도 금세 게임 속으로 복귀한다. 여기에서 잉여라는 계층의 한계가 드러난다. 혹자는 잉여를 어떤 정치적 변혁의 가능성을 담지하는 계층으로 상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판타지에 가깝다. 잉여들은 금방이라도 '짱돌을 들고 거리로 나설' 것처럼 '88만원 세대'를 조망했던 이들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세태에 순응한 패배감 위에 잉여로서의 삶 속에서 얻은 무력감이 중첩되어 불만조차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한 번 실패하면 저만치 뒤로 처지게 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잉여들의 집합소인 취업 커뮤니티에 가보면 그들의 불안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불투명한 채용 속에서 서로가 가진 경험의 조각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며 탈잉여를 향한 전략을 세우다가 탈잉여를 한 이들을 보며 부러움과 패배감을 느낀다. 그러고는 익명 게시판에서 온갖 불만과 하소연을 쏟아내고 잉여짓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안정된 삶을 이어가려는 비자발적 잉여들은 이렇게 불확실함 속에서 오늘을 난다. 잉여들의 현실을 잘 대변해주는 가사로 마무리하겠다. "나는 오늘 가만 누워 TV를 보다가/ 이 세상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봤지/ 나와 함께 얘기를 해볼래?/ 진지하게 얘기를 해볼래?/ 이 세상은 지옥 지옥이다. 아!/ 이 세상은 지옥 지옥이다. 아!"(청년실업, [이 세상은 지옥이다])

 / 강동기 마포FM에서 청춘프로그램 (잉여니까 청춘이다) 팟캐스트를 제작했다.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민주화 25년, 한국사회는 지금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11일자 기사 '민주화 25년, 한국사회는 지금'을 퍼왔습니다.

ㆍ청년 실업·비정규직 가혹해진 민생
 ㆍ풀어야 할 정치권 복지는 없고 색깔론만

6월 민주화항쟁 25주년을 맞아 10일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어김없이 열렸다.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정부 주도로 열린 민주화 25주년 공식 기념식 이외에도 610시민합창단의 서울광장 공연, 성공회대성당·명동성당·조계사의 타종행사, 홍대 인디밴드들이 참여한 ‘금지곡 콘서트’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려 시민들은 모처럼 25년 전을 기억했다. 그날의 함성을 떠올리다보면 현재 한국 사회의 기막힌 현실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서울광장 맞은편 대한문 옆 쌍용자동차 노조원 사망자 분향소는 ‘해고=살인’이라는 공식을 증명해 준다. 대량 정리해고된 노조원들의 복직은 3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노조원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은 상위 소득자 1%가 전체 소득의 16.6%를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19개국 평균(9.7%)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19개국 중 한국보다 부의 쏠림이 심각한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1987년 6월 명동성당 1987년 6월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시민들이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2012년 6월 시청광장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6월항쟁 25주년 국민행사’에서 ‘610시민합창단’이 ‘아침이슬’ 등을 부르고 있다. 합창단 앞에서는 ‘정규직 전환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배스킨라빈스의 하청업체 서희산업 노동조합원들이 노래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집 하나 가진 빈털터리 ‘하우스푸어’, 경제력의 재벌 집중, 비정규직 증가, 아르바이트와 일용직으로 내몰리는 청년들…. 가혹해진 민생, 민주주의로 풀어야 할 문제는 갈수록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문제를 풀어야 할 민주·진보 진영은 ‘대북관’과 ‘사상검증’ 시비에 휘말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정치권이 유행처럼 되뇌었던 ‘복지’ 화두는 어디 가고 ‘색깔론’의 유령만 배회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주요 정당들이 10일 내놓은 민주화 25주년 논평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통합진보당은 “6월항쟁으로 무너진 군사독재정권의 주된 무기인 매카시즘을 휘두르며 헌법에 보장된 정당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정치세력이 여전히 권력의 중심부에 있다. 1987년 6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정부 들어 위축돼온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마침내 유신의 부활을 우려하게 하고 있다”며 “25살의 청년으로 성장했어야 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조로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민주화 25주년 논평을 내지 않았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화 15주년 때인 2002년 출간한 란 책을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흘렀다. 그때보다 한국 사회는 질적으로 나아졌는가.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2012년 4월 16일 월요일

MB정부 ‘사회경제고통지수’ 외환위기 이후 최고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15일자 기사 'MB정부 ‘사회경제고통지수’ 외환위기 이후 최고'를 퍼왔습니다.


[진단&전망] ‘삶의 질’ 지표 보니
경제고통지수에 범죄·자살률 등 사회지표 추가김대중때 0.6 노무현때 0.7…현정부 들어 3.2로
비정규직·청년 실업 등 급증에 양극화 커진 탓

불쾌지수란 온도와 습도에 따라 사람이 피부로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를 나타낸다. 경제에서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수치로 나타낸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가 있다. 미국 경제학자 오컨이 불쾌지수를 차용해 고안한 것으로 보통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산하여 계산한다. 2011년 우리나라의 경제고통지수는 7.0(소비자물가상승률 4.0%+실업률 3.0%)이었다. 이는 2010년의 6.4에 비해 0.6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우리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더 커진 것을 보여준다.
고통지수가 사상 최고치였던 때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으로 14.5를 기록했다. 당시 물가는 7.5%, 실업률은 7.0%였다. 경제고통지수를 외환위기 전후로 나누어 보면, 외환위기 이후인 1999~2011년 평균은 6.6으로 위기 이전인 1985~1997년의 8.1보다 오히려 1.5포인트 낮다. 경제고통지수가 우리 국민들이 삶으로부터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게 하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들의 고통이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높아졌다는 사회적 인식이 많다는 점을 반영한다면 기존의 경제고통지수를 좀더 현실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고통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 발전시킬 수 있는 단초는 영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의 (The New Science of Happiness)이라는 저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각국 국민들이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이 물질적 풍요 외에 사회심리나 사회통합 정도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겐 국민들의 행복을 위협하는 더 직접적이고 심각한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증가, 청년실업, 조기퇴직의 위협뿐 아니라 중산층의 붕괴,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취약계층의 증가, 그리고 자살과 범죄의 증가 등이다.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부터 받는 경제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갈등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삶의 고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경제고통지수의 범주를 사회적 영역으로까지 확대시킨 새로운 사회경제고통지수(Socio-economic Misery index)를 작성했다.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사회적 측면의 고통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는 레이어드 교수가 언급한 국민들의 의식, 가치관, 사회심리 등을 대표할 수 있는 지표로 범죄율과 자살률을 주목하였다. ‘범죄율’은 인구 10만명당 범죄발생 건수로,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로 정의된다. 국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강도를 좌우하는 대표적인 사회병리현상을 나타낼 뿐 아니라 사회심리와 사회통합 정도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들이다. 아울러 경제적 측면에서도 ‘물가’와 ‘실업’으로 구성되는 기존의 경제고통지수에 소득 양극화와 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소득배율(상위 20% 소득/하위 20% 소득)’을 추가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 실업률, 소득배율, 범죄율, 자살률 등 5가지 지표로 구성된 사회경제고통지수를 1993년부터 2011년까지 19년 동안 분석해 본 결과, 그림과 같이 사회경제고통지수가 추세적으로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지수가 가장 높았던 1998년 외환위기 당시(5.2)를 중심으로 그 이전은 평균인 ‘0’보다 낮은 음(-)의 값을, 그리고 그 이후는 평균보다 높은 양(+)의 값을 나타내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외환위기 이전(1993~1997년) 평균 -3.8에서 외환위기 이후(1999~2011년)에는 평균 1.1로 크게 높아진 것이다.
대통령 재임기간별로 보면, 김영삼 정부 집권 시기엔 -3.8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0.6, 노무현 정부 0.7로 높아지더니 이명박 정부에서는 3.2로 다른 기간에 비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2011년 사회경제고통지수도 2.7을 기록해 작년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고통수준이 분석기간 평균적인 고통수준(0)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사회경제고통지수가 추세적으로 높아진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양극화 지표(소득배율)가, 그리고 사회적 요인의 범죄율, 자살률과 같은 지표들이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의 심각성뿐 아니라 경제지표로는 설명하기 힘든 우리 사회 내 공동체로서의 안정화 기능 약화, 사회 구성원간의 유대감 상실 등이 반영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경제적인 측면 외에 사회적인 측면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정적인 경제성장 외에도 양극화 문제와 자살, 범죄 증가 등 사회문제도 함께 개선돼야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낮아질 수 있다.
작년 우리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섰고, 올해 들어 물가상승률이 둔화되고 고용 사정도 다소 나아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삶의 고통이 줄어들고, 좀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양극화 문제와 범죄, 자살 등 경제·사회의 구조적 문제 등을 개선시키기 위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점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송태정/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