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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7일 월요일

“민주화 뜻 거꾸로 이해하는 젊은이, 기성세대 책임”

이글은 경향신문 2013-05-26일자 기사 '“민주화 뜻 거꾸로 이해하는 젊은이, 기성세대 책임”'을 퍼왔습니다.

ㆍ‘분단고통과 통일…’ 출간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ㆍ“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제2 MB’ 되어선 안돼”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80)는 최근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선인)를 출간했다. 국토와 민족이 분단된 과정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통일을 전망하는 내용이다. ‘통일로 향하는 분단시대의 근현대사 이야기’가 부제인 책은 조선 8도 중 경기도만 조선 왕조 통치 아래 두고 남부 4개도는 일본의 지배, 북부 3개도는 청국의 지배로 두자는 청일전쟁(1894) 무렵 일본의 음모를 시작으로 한반도의 분단사를 상세히 파고든다. 

강 교수는 ‘책을 내면서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라고 붙인 책머리에 평화주의자로서, 열린 민족주의로서, 그리고 미래지향적 인간주의자로서 분단 문제에 접근했다고 밝혔다. 탈냉전시대라는 21세기에 남북한이 여전히 지난 20세기의 냉전주의적 생각에 묶여있는 것은 아닌가, 평화통일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냉철히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책을 냈다고도 했다. 

지난 2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만난 강 교수는 “우리 민족사회가 당면한 합리적 통일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 책을 썼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분단질곡이 역사상 어떤 연원과 조건에서 빚어진 것인가를 알고, 과거에 어떤 분단 위험이 있었고, 그 극복방편으로는 어떤 것이 제시되었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에 분단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24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제6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령자인 유경순 박사를 만나 격려하고 있다. 강 교수의 사재로 설립된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에서는 매년 근현대사 우수논문 을 선정해 해당 연구자에게 지원금을 수여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책머리에는 ‘또다시 우리 땅의 전쟁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2013년 4월4일에 강만길 씀’이라고 씌어 있다. 북한의 개성공단 출입 제한 조치가 이뤄진 지 이틀째 되던 날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최근 중국시진핑 주석을 만나 6자회담 복귀를 언급했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물론 남북대화 재개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강 교수는 최근 정세에 대해 “남북이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역지사지하고, 화해 분위기로 돌아서야 분단과 동북아 평화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정책, 통일 문제에서 제2의 이명박 정부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의미도 거론했다. “박정희 군사정부 때 미국과 소련, 미국과 중국의 데탕트에 영향을 받아 발표한 7·4남북공동성명은 남녘에서 박정희 종신 집권을 위한 ‘유신’의 ‘멍석 깔기’가 됐다”면서도 “통일을 평화적으로, 주체적으로 한다는 내용을 담은 7·4남북공동성명은 이후 평화통일론을 정착시키는 출발점이 됐다”고 했다. 강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그런 것을 잘 이어받아 (대북, 통일, 평화정책을) 잘하길 바란다”고 했다. 

강 교수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직후 항의집회 성명서 작성 등으로 해직됐다가 1983년에야 복직했다. 최근 5·18 왜곡과 폄훼 문제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꺼렸다. 논란이 된 한 아이돌 가수의 ‘민주화’ 발언을 두고는 “젊은이들이 본래 뜻을 모르고 거꾸로 이해하는 것은 역사가 역행한다는 이야기”라며 “시대 상황에 흔들려 본질을 잃은 교육 문제와 후진 세대를 옳게 가르쳐야 할 책무를 못 지킨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했다. 

24일은 강 교수가 설립한 ‘내일을 여는 역사’ 재단의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매년 그해 가장 우수한 근현대사 논문을 뽑아 주는 상으로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학술 활동을 통해 한국 역사 연구와 사회 진보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됐다. 지원금은 강 교수의 사재로 마련됐으며 선정된 우수연구자에게는 2000만원 이 지급된다. 

올해 수상자는 (1980년대 변혁적 노동운동의 형성과 분화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역사학연구소의 유경순 박사다. 학생운동가들이 왜 노동현장에 투신했는지, 변혁적 노동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지를 분석한 논문이다. 한국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된 민중민주주의와 ‘노동해방’ ‘평등사회’라는 대중적 주장을 평가하고, 사상적 기반과 주체역량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조직 건설 에 나선 ‘조급성과 관념성’, 상호 대립·갈등의 ‘내부 정치’의 한계, 조직 간 상호 배타의 ‘정치조직 간의 정치’ 문제를 지적한다. 심사위원장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사건인데도 자료 수집의 어려움 때문에 학문적 접근이 어려웠던 1980년대 ‘변혁적 노동운동사’를 풍부한 문헌 자료와 구술자료를 토대로 촘촘히 엮어내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구술을 해준 76명의 노동운동 관련자 분들께 감사의 말을 드린다”며 “큰 구도를 정리하는 데 급급해 치밀한 분석이 결여됐는데, 앞으로 더 나은 내용으로 보충,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와 유 박사는 이날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처음 만났다. 강 교수는 “첫해부터 논문 심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연구 지원이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는 자극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그만두던 2007년부터 강원도 양양 하조대에서 살고 있다.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하며 틈틈이 집필하고 있다. 그는 “우리 나이에 계획적인 일을 하기 어렵다. 정년하고 두 번째 쓴 책인데, 앞으로 뭘 쓸지 고민할 것”이라면서 “좌이대사(坐而待死·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림)할 수는 없잖으냐”며 웃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2013년 5월 25일 토요일

충격적인 고등학생들 "저도 민주화를 몰라요"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5-24일자 기사 '충격적인 고등학생들 "저도 민주화를 몰라요"'를 퍼왔습니다.
일베도 문제지만 고등학생들도 걱정입니다

# 장면1. "저도 민주화를 몰라요"

"야, 요즘 시크릿 전효성이 민주화시킨다는 발언을 해서 난리가 났잖아. 넌 민주화가 무슨 뜻인지 알지?"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고등학생) 한 명을 수업이 다 끝난 후 조용히 데려와 함께 수다를 떨다가 던진 질문이었다. 이 정도는 당연히 알겠지 기대했었다.

"아... 저도 잘 몰라요....""어, 그래? 그럼 요즘 5.18도 말이 많잖아. 5.18은 알지?""그거 알았었는데, 갑자기 물어보시니까 생각이 안 나요.""아....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5.18이 어디서 일어난 사건인지는 알지?""갑자기 물어보셔서 그것도 생각이 안 나네요."

유머 사이트에서 퍼온 농담도 아니고, 지어낸 이야기도 아니다. 학생과 대화를 나누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 장면2. 예능이 걱정하는 한국사 교육


▲ 묵직한 질문을 던진 무한도전의 한 장면 ⓒ MBC

지난 20일 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컬투의 베란다 쇼'에서 '역사교육의 현실' 편을 방송했다. 중간에 중학교 하나와 대학교 하나를 각각 방문해 학생들에게 다짜고짜 역사 퀴즈를 내는 장면이 있었다. "고려를 세운 사람은 누구인가?", "삼국시대부터 대한민국까지 역대 왕조를 써라" 등 초등학교 수준의 간단한 문제였다. 그런데, 꽤 여러 명의 학생들이 이 초등학교 수준의 문제에 정답을 말하지 못했다. MC와 게스트들은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며 걱정을 했다.

지난 18일,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한국사 특강을 했다. 멤버들이 전문가에게 배워 아이돌에게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사실 전달에 그칠 수밖에 없었고, 이미 한국사를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이 프로그램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 역사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심어주었다는 점에서였다. '무한도전' 측에서는 한국사를 제대로 알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것 같은데, 예능에서도 걱정할 만큼 젊은이들의 역사 지식이 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 장면3. 5.18에 북한군 개입? 

최근 TV조선과 채널A 등 일부 종편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고,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극우사이트에서  5.18은 폭동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극우 보수라고 평가를 받고 있는 조갑제씨가 북한군 개입설은 사실이 아니라며 비판하자, 이번에는 "조갑제도 좌파종북이다"라고 몰아붙이는 웃지못할 일도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 사이트가 10대, 20대 젊은이들도 많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사이트라는 점이다. 어떻게 이렇게 터무니없는 주장을 믿고 퍼 나르고 있는지 걱정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집중이수제의 허실... 중간고사 시험 범위, 구석기-강화도조약 


▲ 한국사 인물위주의 특강을 준비하고 있는 무한도전 멤버들(유재석,길,하하)과 설민석 강사 ⓒ MBC

장면 1, 2, 3은 모두 젊은 세대가 역사를 잘 몰라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젊은이들이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한국사도 제대로 안 가르치고 뭐했느냐는 비판 여론도 높아진다. 역사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잘못했다고 석고대죄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역사 교사들만 그 책임을 오롯이 뒤집어쓰기에는 억울한 구조가 있다. 

문제의 시작은 2009 개정교육과정의 집중이수제였다.  집중이수제란 생물, 한국사, 윤리, 경제 같은 교과를 1주일에 5시간씩 한 학기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한 후, 다 마쳤으므로 다시는 배우지 않는 제도를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우니 제대로 완전하게 이해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는 1학년 때 한국사를 배운다. 수업 시간은 1년간 일주일에 2시간이다. 작년까지는 집중이수제를 선택했지만, 문제가 많아서 올해는 집중이수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집중이수제를 시행했던 작년에는 한 학기 동안 1주일에 4시간 한국사를 가르쳐서 한 학기 내에 한국사 과정을 끝냈었다. 

1주일에 4시간이나 한국사 수업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주5일제 수업이기 때문에 하루를 빼고는 매일 한국사 수업이 들어야 한다. 어제 배운 내용도 아직 다 소화도 하지 못했는데, 오늘 또다시 방대한 내용의 한국사를 배워야 한다.

이제 막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얼떨떨한 기분으로 3월 첫 주에 조금 정신을 놓고 있으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를 거쳐 고조선 시대, 초기 국가 시대가 끝나버린다. 3월 둘째 주에 아차 싶어서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 삼국시대를 시작해서 끝나버린다. 3월 셋째 주가 시작되면 고려 시대를 시작한다. 

4월이 되면 이미 조선시대 중반을 지나 임진왜란을 배우고 있다. 이렇게 수업을 하면 1학기 중간고사의 한국사 시험 범위는 70만 년 전에 시작되는 구석기 시대부터 1876년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까지가 된다. 실제로 재작년 중간고사를 이렇게 치렀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고 있지만, 교사로서의 솔직한 심정은 이 엄청난 내용을 공부해서 시험 보는 학생들이 신기할 정도다. 그래서 아주 많은 학생들이 방대한 분량에 질려서 한국사 공부를 포기하고 한국사 시험을 포기해 버린다. 공부해야 한다고 애써 강조는 하고 있지만 포기하는 학생들을 뭐라고 다그치기 힘들다. 

1/3 토막이 난 수업 시수 vs. 변함없는 교과서 분량


▲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자료사진) ⓒ 김우진

집중이수제를 적용하지 않으면 1년동안 1주일에 2시간씩 한국사를 배우게 된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인 20년전 시절과 비교해 보아도, 수업 시간이 반토막이 난 것이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1학년 때 1주일에 2시간 씩 국사 상권을 배우고, 2학년 때 1주일에 2시간 씩 국사 하권을 배웠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의 수업 시수와 현재의 수업 시수를 비교해 보면 상황은 더 슬프다. 그 시절에는 국사를 1년 동안 1주일에 2~3시간, 한국근현대사를 1년 동안 1주일에 3~4시간에 걸쳐 배웠다. 그 때와 비교하면 현재의 한국사 수업 시수는 1/3 토막이 난 셈이다.

물론 시수가 이렇게 줄어든 만큼 교과서의 페이지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과서를 읽어보면 가르칠 분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과거 교과서에서 10줄에 걸쳐 자세하게 설명하던 것을 1~2줄에 압축해서 써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생들은 이 압축된 교과서 문장을 더 이해할 수가 없게 되고, 교사들은 그 압축파일 같은 교과서 문장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줘야 한다. 차라리 교과서 분량을 늘려서 자세하게 설명하기라도 했으면 수업하기 수월하련만, 분량을 줄이기 위해 많은 내용을 압축해 놓았으니, 책을 읽고 이해해야 할 학생들도, 가르쳐야 할 교사들도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많은 이들은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이야기하면서 외국처럼 학생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대화하며 수업을 해 보라고 한다. 교사인 나도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학생들이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화두를 던져주면서 수업을 해 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가르쳐야 할 많은 내용과 엄청나게 부족한 시간 때문에 내용을 체계적으로 요약해서 정리한 후 강의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나도 정말 수업다운 수업을 해보고 싶다. 

양날의 칼 서울대... 이과는 필요없는 한국사 

최근 수능 시험을 준비할 때 사회탐구영역 선택과목으로 한국사를 택해서 공부하는 학생이 드물다. 서울대에 진학할 생각이 있는 학생이거나 한국사를 매우 사랑하는 역사 마니아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는다. 

한국사를 선택하면 서울대에 진학할 생각으로 공부하는 우수한 학생들과 경쟁해서 등급을 받아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대는 한국사에 있어서 양날의 칼이다. 필수 선택으로 지정해 주어 고마운 면도 있지만,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한국사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방대한 분량과 부족한 수업 시간 때문에 한국사에 질려서 점점 멀어지는 이들은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대부분의 학생들이다. 그래서 이런 터무니없는 의심이 고개를 든다. 역사는 천하를 통치할 제왕들이 공부하는 학문이었으니, 서울대를 갈 학생들만 공부하라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나마도 모두 문과에 한정된 이야기다. 이과 학생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이과 학생들도 한국사를 1학년 때 배우기는 한다. 하지만, 수능을 볼 때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 왜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어떤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 이과 갈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사 들을 필요 없잖아요?"

1990년대 말, 이과 학생들도 수능에서 한국사를 필수로 시험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이과 학생 하나가 내게 한국사 문제를 물어보러 온 적이 있었다. 모든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던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그 학생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국사가 선택 과목이었다면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단 한국사뿐만이 아니다. 이과 학생들도 교양으로 사회 교과를 배우지만, 수능 시험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작년 겨울,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었다. 저자는 진화론을 전공한 생물학자라고 하는데, 생물학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책이 아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에 대한 저자의 해설, 성경에 대한 심오한 분석과 평가도 담겨 있었다. 서양에서는 이과생들에게도 심도 깊은 인문학적 내용을 가르치는 것일까? 

요즘 읽고 있는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도 그랬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생물학자인데, 사회학, 역사학, 인문학 등에도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과학자이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두루 섭렵했기에 요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전체를 아우르는 통섭의 개념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두 과학자가 쏟아내는 화려한 인문학적 지식의 향연을 바라보며, 그저 부럽다는 생각만 들었다. 우리나라의 이과 학생들도 20~30년 후 이런 통섭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황홀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혹시 우리나라는 이과 학생들에게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 교육을 소홀히 하여 결코 이런 저작을 쓸 수 있는 학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사 교육 강화, 가능할까 


▲ 할머니를 위한 시에 '눈물바다' 4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68차 수요집회'에서 한 시민이 할머니를 위한 시를 경청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일본 위안부 범죄의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 유성호

젊은 학생들이 역사에 무지한 것은 어찌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한국사 수업 시수를 늘리고, 수능 시험에서 문과와 이과 모두 필수로 한국사 시험을 치르게 하면 된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러려면 중요한 교과인 영어와 수학, 국어의 수업 시수를 줄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국, 영, 수 과목을 제외한 다른 교과는 이미 수업 시수를 줄일 만큼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독도 문제, 종군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신사 문제 등을 가지고 역사를 왜곡한다고 하니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자는 여론이 높아졌고, 정부도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다. 그런 발표가 처음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으로 국민 여론이 들끓고 있으니, 정부도 뭔가 하고 있다며 여론을 달래기 위해 한국사 교육 강화 발표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나가다가는 역사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는, 몇 년 전 수능에서 한국사 시험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 과목이 되었을 때,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역사 수업 시수가 확 줄었을 때, 이미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제야 현실로 드러난 것뿐이다. 우리 정부의 과거 행태를 통해 예측해 본 미래는 이렇다.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를 모른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여론이 안 좋아지면 정부는 또다시 한국사 교육 강화를 발표만 할 것이다. 그리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모두가 잊어버릴 것이다. 어쩌면 7차 교육과정(2009년 집중이수제 이전 과정)으로 한국사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아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김태희(ew4203)

2013년 5월 18일 토요일

'민주화'에 '운지'까지…십대 파고드는 '일베語'


이글은 노컷뉴스 2013-05-18일자 기사 ''민주화'에 '운지'까지…십대 파고드는 '일베語''를 퍼왔습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중심으로 한 극우적 역사관과 정치관이 인터넷을 통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특히 현실 세계에서도 어린 10대 학생들 사이에 이른바 '일베어(語)'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정규교육 과정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어서,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스 대신 '일베', 백과사전 대신 '위키' 보는데…



유명 아이돌 그룹 '시크릿'의 멤버인 가수 전효성(24ㆍ여)은 지난 1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일베에서 '민주화'라는 단어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소수를 집단으로 억압 또는 폭행하거나 언어폭력을 하는 행위'란 뜻으로 사용된다. '비추천' 같은 부정적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소속사는 즉각 "전 씨는 일베 이용자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굳이 일베를 찾지 않더라도 일베의 폭력적 언어에 물들 만큼 널리 퍼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CBS 취재진이 서울 시내 중고등학생들을 만나보니, 상당수가 일베 사이트의 폭력적 게시물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북구 한 중학교 2학년 정모(14) 군은 "하루에 두세 번씩은 일베에 들어간다"며 "다양한 정보 글이나 재미있는 자료가 많아서 접속한다"고 말했다.


정 군은 "복잡한 역사나 정치 게시물은 재미없어서 자주 보지는 않고, 주로 유머자료를 보러 간다"면서도 "운지 같은 말은 들어봤다"고 대답했다. 


'운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하는 '일베어'로, 학생들은 '아래로 떨어진다'거나 '상황이 나빠졌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베 몰라도 '일베어' 쓰는 10대 늘어



일베에 직접 들어가지 않는 학생들도 일베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1학년 곽모(16) 군은 "다들 운지라는 말을 자주 쓴다. '민주화'나 '김치년' 같은 말도 들어봤다"며 "그런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모(16) 군도 "애들끼리 웃고 떠들 때 '삼일한'이나 '통수' 같은 말을 들어봤다"고 했다.


'김치년'은 한국의 20대나 30대 젊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며, '삼일한'은 '여성은 삼일에 한 번씩 때려야 말을 듣는다'를 줄인 용어다. 또 '통수'는 뒤통수를 줄인 것으로, 전라도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일베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가면서 학생들도 거부할 틈조차 없이 '일베어'에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역사 왜곡 심각한데…정규교육 근현대사 비중은 갈수록 줄어


이처럼 왜곡된 역사관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선 학교에서 현대사 교육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지난 2011년부터 교과 과정이 개편되면서 근현대사 교육 시간은 더 줄어들었다. 그 전까지는 '국사'와 '한국근현대사', '세계사'가 각각 하나의 과목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새 교육 과정에서는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사'로 조정됐다.

이러다 보니 '위키피디아'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왜곡된 정보를 접하기 쉬운 요즘 학생들이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갖추는 것도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현직 중학교 교사인 전국역사교사모임 이성호 회장은 "학생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많이 얻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거나 왜곡된 내용을 사실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위키피디아 등에 잘못된 역사 지식을 유포하는 건 역사교육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단순한 우려 차원을 떠나,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숙명여대 법학과 홍성수 교수는 "역사 해석에는 판단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객관적으로 검증된 역사적 사실 자체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규제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이어 "가령 특정 지역 비하는 현실적인 해악"이라며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 되기 때문에 법적 규제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CBS 김민재 기자

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10년 전 노무현 지지했던 '그들', 왜 돌아섰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23일자 기사 '"10년 전 노무현 지지했던 '그들', 왜 돌아섰나?"'를 퍼왔습니다.
[토론] 참여연대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

'박근혜의 승리'로 끝난 지난 18대 대선은 개혁진보 진영에는 '엄중한 경고'였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남의 잘못에 편승해 지지를 얻으려 하지 말라"고 말했다. 보수층으로 돌아선 50대 유권자 표심을 다시 잡기 위해선 "생활 의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이틀 뒤인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 좌담회에서 개혁진보진영의 실책을 지적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연이어 나왔다. 패널로 참석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공통적으로 "'생활밀착형' 대안 마련 없인 진보진영의 집권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 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참여사회연구소 대선 평가 좌담회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에 참석한 패널들. ⓒ뉴시스

"민주화 이후, 진보는 어떤 상품을 내놓을 것인가"

강원택 교수는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 분노가 폭넓게 깔려있던 판"이었다며 "내 것을 스스로 보여주지 않은 채 남의 잘못 편승해서가는 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의미에서 진보진영의 집권능력의 한계와 의구심이 드러난 것"이라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세력으로서의 진보가 어떤 답을 줄 것인가 절박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현실 정치의 실패'를 보여주는 지표로 '50대'와 '수도권'의 득표율을 들었다. 그는 "많은 언론에서 '50대 유권자', '수도권' 이 두 변수가 선거 결과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생활과 관련된 불안감의 문제"라며 "전통적으로 진보가 강했던 이슈인데 결국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됐던 이슈인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후보 쪽에서 선점했다"고 말했다. 투표율이 90%에 육박한 50대에서 박근혜의 득표율은 62.5%, 문재인은 37.4%였다. 경기도의 득표율은 박근혜 50.4% 대 문재인 49.2%다. 경기도는 수치 상 막상막하로 보여도, 전통적인 야권성향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에는 뼈아픈 결과다.

강 교수는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는 적어도 절차적 의미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실현이 됐다"며 "그동안 진보진영이 주장했던 거대 담론 이후, 어떤 상품을 내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념 중심의 논쟁 구도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기존 진보가 갖고 있던 내용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북정책도 기존 메시지가 그냥 그대로 강조됐고, 성장과 복지도 자꾸 대립되는 기존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며 "안철수가 '나는 경제는 진보고 안보는 보수'라고했을 때 사람들이 환호했다. 과거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기존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틀의 재구성이 과제"라고 말했다.

"50대의 보수화, 20대보다 더 불안한 현실이 만든 선택" 

한귀영 위원은 우선 이번 선거의 패인을 '프레임 선정의 실패'에서 찾았다. "지난 총선 분석을 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보수가 총결집을 하면 이길 수가 없다"며 "그런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야권이) 단일화 프레임으로 가져왔고, 근데 그게 사람들 피로하게 했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진보진영의 프레임 선정의 실패로 이어진 결과가 "50대의 역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도 50대는 보수성향이었다, 새삼스럽게 이번에 보수화로 돌아선 것이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지금의 50대가 10년 전에는 40대였고, 당시 노무현 지지율이 이회창 지지율보다 높았는데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참여정부의 실패와 국정운영 불안이 50대에게 씻을 수 없는 불안감을 주지 않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0대는 70년대에 학교를 다니고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실질적으로 성장을 경험한 세대이고 본인들이 산업화시대의 수혜자다. 이 세대들한테 '20대 청년들을 위해 희생해달라'는 요구를 던졌는데 사실은 이들이 20대보다 더 불안한 세대다. 노후, 자녀, 하우스푸어. 그런데 야권에는 왜 야권에선 아무런 대응이 없었느냐"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5060이 보수라기 보다는, 5060이 유보했던 부분에 대한 부응이 안 돼서 나타난 절박함의 표시"라고 해석했다. 그는 "50대는 가장층이고, 실제로 50대 자살율이 증가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 제1공약이 가계부채였다"고 말했다.

▲ 박근혜 당선인 ⓒ프레시안

"박근혜, 굉장한 득표력 가진 후보"

김윤철 교수는 이어 "5060이 박근혜를 이해하는 방식과 진보진영이 박근혜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보고, 바로 그들이 사는 곳이 경기와 인천인데, 왜 이곳에서 손학규 등을 민주당이 활용을 하지 못했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결국 자기와 같은 세대인 4050하고도 괴리된 '친노 486' 정치인 주도 속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민주당의 실책을 꼬집었다.

이태호 처장 역시 "박근혜 후보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 박근혜 후보는 굉장한 득표력을 가진 후보다, 매 선거에서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파괴력 후보"라며 "'여성대통령 논쟁'에서 선거전략적 측면에서 냉소를 했겠지만, 이 메시지는 여러 가지로 통합력을 갖는 것이었다. (박근혜는) 강력한 가부장성도 대표하고. 여성성도 대표할 수 있는 호소력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처장은 이어 "많은 언론에서 박은 민생에 주력했고 야당은 이념공략을 했다고 하는데, 참여연대가 볼 때 여당에서 제기한건 호소력 있기보단 이미지를 (먼저) 가져간 것이고, 민생정책은 상대적으로 야당이 나았지만 이미지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그에 부합하는 캠페인은 별로 없었다"고 지적했다.

"의제투입의 정치가 아닌, 산출의 정치가 필요"

개혁진보진영 내에서의 성장과 복지의 관계 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 교수가 "성장과 복지를 대립 틀 속에서 보지 말자"는 주장한 데 대해 이 처장은 "성장담론은 여전히 동의하면서도, 사실 선거에서 무시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가 말한 '잘 살아보세'의 재현은 따뜻한 성장담론의 최종판"이라면서 "야권 혹은 진보, 지지자는 성장 말고 다른 프레임을 설정 했어야 한다. 성장담론을 대체하기 위해 여러 노동, 환경 등 따뜻한 연대 메시지를 충분히 소화해야 하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장, 복지 담론 사이에서 "의제투입의 정치가 아닌, 산출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정치 관점에서 봤을 때, 경제민주화는 부의 문제로만 보면 성장패러다임에 갇힌다"며 "부의 배분을 누가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로 결정하는 부분이 있어야 성장 패러다임 벗어나고 시민참여형 경제민주화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가 경제민주화 의제를 선점하며 진보의 독자성을 얘기하기 어려워졌다"며 "이제 의제투입의 정치가 끝났다 이제 산출이 필요하다. 그런데 산출이 있으려면 정치적 위상이 있어야 한다. 수권가능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정책적인 차별성과 실력이 없는 상황에서 퇴행적인 언어를 구사한 예가 이정희 후보, 홍성담 화백이었다"고 비판했다.

▲ 19일 18대 대선에서 사실상 패배가 확정된 뒤, 서울 구기동 자택을 떠나 영등포의 민주당사로 향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뉴시스

"안철수에게 '제3 정치세력' 뺏긴 진보진영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도 오갔다.

강 교수는 "정치개혁이라는 주제만이라도 확실하게 차별성을 갖고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민주당이 제도적인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겠다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것이 국민적인 호응을 받았으면 새누리당도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모두가 정치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개혁으로 유권자들을 조직할 것인가'라는 좌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안철수 현상'의 꼭짓점에 있는 안철수는 충분히 유능했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안철수 전 후보가) 정치개혁이라는 중요한 화두는 던졌지만 내용적으로는 다소 허섭한, 포퓰리즘적인 접근을 했다"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제도적 정치권에 들어가서 대표되지 못한 사람들을 대표하고 새로운 경쟁 틀을 만들어내서 기존 정당들을 자극하고 변화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서 전체적인 논쟁 자체가 힘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지지자의 1/3은 선거 이후에도 여전히 포용하지 못하는 제3의 세력으로 있을 것 같다"며 "(개혁진보 진영이)다음에 집권한다고 했을 때 이들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제 '제3 정치세력' 공간의 주인은 안철수 후보와 그 지지자들로 바뀌었다"면서 "민주진보진영이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시민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까지 진보가 선호 형성 정치를 해왔다면 4050의 선호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어리 기자

"10년 전 노무현 지지했던 '그들', 왜 돌아섰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23일자 기사 '"10년 전 노무현 지지했던 '그들', 왜 돌아섰나?"'를 퍼왔습니다.
[토론] 참여연대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

'박근혜의 승리'로 끝난 지난 18대 대선은 개혁진보 진영에는 '엄중한 경고'였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남의 잘못에 편승해 지지를 얻으려 하지 말라"고 말했다. 보수층으로 돌아선 50대 유권자 표심을 다시 잡기 위해선 "생활 의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이틀 뒤인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 좌담회에서 개혁진보진영의 실책을 지적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연이어 나왔다. 패널로 참석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공통적으로 "'생활밀착형' 대안 마련 없인 진보진영의 집권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 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참여사회연구소 대선 평가 좌담회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에 참석한 패널들. ⓒ뉴시스

"민주화 이후, 진보는 어떤 상품을 내놓을 것인가"

강원택 교수는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 분노가 폭넓게 깔려있던 판"이었다며 "내 것을 스스로 보여주지 않은 채 남의 잘못 편승해서가는 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의미에서 진보진영의 집권능력의 한계와 의구심이 드러난 것"이라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세력으로서의 진보가 어떤 답을 줄 것인가 절박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현실 정치의 실패'를 보여주는 지표로 '50대'와 '수도권'의 득표율을 들었다. 그는 "많은 언론에서 '50대 유권자', '수도권' 이 두 변수가 선거 결과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생활과 관련된 불안감의 문제"라며 "전통적으로 진보가 강했던 이슈인데 결국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됐던 이슈인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후보 쪽에서 선점했다"고 말했다. 투표율이 90%에 육박한 50대에서 박근혜의 득표율은 62.5%, 문재인은 37.4%였다. 경기도의 득표율은 박근혜 50.4% 대 문재인 49.2%다. 경기도는 수치 상 막상막하로 보여도, 전통적인 야권성향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에는 뼈아픈 결과다.

강 교수는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는 적어도 절차적 의미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실현이 됐다"며 "그동안 진보진영이 주장했던 거대 담론 이후, 어떤 상품을 내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념 중심의 논쟁 구도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기존 진보가 갖고 있던 내용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북정책도 기존 메시지가 그냥 그대로 강조됐고, 성장과 복지도 자꾸 대립되는 기존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며 "안철수가 '나는 경제는 진보고 안보는 보수'라고했을 때 사람들이 환호했다. 과거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기존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틀의 재구성이 과제"라고 말했다.

"50대의 보수화, 20대보다 더 불안한 현실이 만든 선택" 

한귀영 위원은 우선 이번 선거의 패인을 '프레임 선정의 실패'에서 찾았다. "지난 총선 분석을 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보수가 총결집을 하면 이길 수가 없다"며 "그런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야권이) 단일화 프레임으로 가져왔고, 근데 그게 사람들 피로하게 했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진보진영의 프레임 선정의 실패로 이어진 결과가 "50대의 역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도 50대는 보수성향이었다, 새삼스럽게 이번에 보수화로 돌아선 것이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지금의 50대가 10년 전에는 40대였고, 당시 노무현 지지율이 이회창 지지율보다 높았는데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참여정부의 실패와 국정운영 불안이 50대에게 씻을 수 없는 불안감을 주지 않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0대는 70년대에 학교를 다니고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실질적으로 성장을 경험한 세대이고 본인들이 산업화시대의 수혜자다. 이 세대들한테 '20대 청년들을 위해 희생해달라'는 요구를 던졌는데 사실은 이들이 20대보다 더 불안한 세대다. 노후, 자녀, 하우스푸어. 그런데 야권에는 왜 야권에선 아무런 대응이 없었느냐"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5060이 보수라기 보다는, 5060이 유보했던 부분에 대한 부응이 안 돼서 나타난 절박함의 표시"라고 해석했다. 그는 "50대는 가장층이고, 실제로 50대 자살율이 증가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 제1공약이 가계부채였다"고 말했다.

▲ 박근혜 당선인 ⓒ프레시안

"박근혜, 굉장한 득표력 가진 후보"

김윤철 교수는 이어 "5060이 박근혜를 이해하는 방식과 진보진영이 박근혜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보고, 바로 그들이 사는 곳이 경기와 인천인데, 왜 이곳에서 손학규 등을 민주당이 활용을 하지 못했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결국 자기와 같은 세대인 4050하고도 괴리된 '친노 486' 정치인 주도 속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민주당의 실책을 꼬집었다.

이태호 처장 역시 "박근혜 후보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 박근혜 후보는 굉장한 득표력을 가진 후보다, 매 선거에서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파괴력 후보"라며 "'여성대통령 논쟁'에서 선거전략적 측면에서 냉소를 했겠지만, 이 메시지는 여러 가지로 통합력을 갖는 것이었다. (박근혜는) 강력한 가부장성도 대표하고. 여성성도 대표할 수 있는 호소력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처장은 이어 "많은 언론에서 박은 민생에 주력했고 야당은 이념공략을 했다고 하는데, 참여연대가 볼 때 여당에서 제기한건 호소력 있기보단 이미지를 (먼저) 가져간 것이고, 민생정책은 상대적으로 야당이 나았지만 이미지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그에 부합하는 캠페인은 별로 없었다"고 지적했다.

"의제투입의 정치가 아닌, 산출의 정치가 필요"

개혁진보진영 내에서의 성장과 복지의 관계 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 교수가 "성장과 복지를 대립 틀 속에서 보지 말자"는 주장한 데 대해 이 처장은 "성장담론은 여전히 동의하면서도, 사실 선거에서 무시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가 말한 '잘 살아보세'의 재현은 따뜻한 성장담론의 최종판"이라면서 "야권 혹은 진보, 지지자는 성장 말고 다른 프레임을 설정 했어야 한다. 성장담론을 대체하기 위해 여러 노동, 환경 등 따뜻한 연대 메시지를 충분히 소화해야 하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장, 복지 담론 사이에서 "의제투입의 정치가 아닌, 산출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정치 관점에서 봤을 때, 경제민주화는 부의 문제로만 보면 성장패러다임에 갇힌다"며 "부의 배분을 누가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로 결정하는 부분이 있어야 성장 패러다임 벗어나고 시민참여형 경제민주화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가 경제민주화 의제를 선점하며 진보의 독자성을 얘기하기 어려워졌다"며 "이제 의제투입의 정치가 끝났다 이제 산출이 필요하다. 그런데 산출이 있으려면 정치적 위상이 있어야 한다. 수권가능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정책적인 차별성과 실력이 없는 상황에서 퇴행적인 언어를 구사한 예가 이정희 후보, 홍성담 화백이었다"고 비판했다.

▲ 19일 18대 대선에서 사실상 패배가 확정된 뒤, 서울 구기동 자택을 떠나 영등포의 민주당사로 향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뉴시스

"안철수에게 '제3 정치세력' 뺏긴 진보진영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도 오갔다.

강 교수는 "정치개혁이라는 주제만이라도 확실하게 차별성을 갖고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민주당이 제도적인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겠다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것이 국민적인 호응을 받았으면 새누리당도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모두가 정치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개혁으로 유권자들을 조직할 것인가'라는 좌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안철수 현상'의 꼭짓점에 있는 안철수는 충분히 유능했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안철수 전 후보가) 정치개혁이라는 중요한 화두는 던졌지만 내용적으로는 다소 허섭한, 포퓰리즘적인 접근을 했다"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제도적 정치권에 들어가서 대표되지 못한 사람들을 대표하고 새로운 경쟁 틀을 만들어내서 기존 정당들을 자극하고 변화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서 전체적인 논쟁 자체가 힘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지지자의 1/3은 선거 이후에도 여전히 포용하지 못하는 제3의 세력으로 있을 것 같다"며 "(개혁진보 진영이)다음에 집권한다고 했을 때 이들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제 '제3 정치세력' 공간의 주인은 안철수 후보와 그 지지자들로 바뀌었다"면서 "민주진보진영이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시민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까지 진보가 선호 형성 정치를 해왔다면 4050의 선호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어리 기자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베이비붐 세대…‘불안감’이 그들을 움직였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20일자 기사 '베이비붐 세대…‘불안감’이 그들을 움직였다'를 퍼왔습니다.

수도권 50대, 박근혜에 쏠린 이유
“경제·안보 위기감 가장 강해”
“집값하락이 민주화보다 절박”
50대 62.5% 지지가 ‘일등공신’

박근혜 당선인을 만든 일등 공신을 지역으로 따지자면 경기도와 인천, 세대로 따지자면 50대로 볼 수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로 살펴본 50대의 투표율은 89.9%였다. 50대의 62.5%가 박근혜를 선택했다. 우리나라 인구 구성에서도 50대는 10년 전인 2002년 12.9%에서 올해 19.2%로 비중이 7%포인트나 늘었다. 박근혜 당선인은 50대에서 문재인 후보에 비해 250만표를 더 얻었다.박 당선인은 인천에서 51.6%, 경기도에서 50.4%를 얻었다. 불과 2년 전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송영길 인천시장은 53.7%의 지지율로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후보(44.4%)를 꺾은 바 있다.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는 수도권에서 5%포인트 이상 격차를 벌려야 이긴다고 보고 있었다.수도권의 50대는 왜 박근혜를 선택했을까. 열쇳말은 불안감이었다. 인천 지역의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인천의 50대는 경제불안과 안보불안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이들인데, 우리는 한마디로 불안감을 해소해주지 못했다”고 짚었다. 경제불안의 중심에는 부동산, 특히 하우스푸어·렌트푸어 문제와 다가올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은 “50대 유권자의 상당수는 경제적 문제가 민주화보다 더 절박한 문제인데, 민주당에서는 부동산 문제, 특히 하우스푸어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2억원 넘는 대출을 받은 하우스푸어 김아무개(51·경기도)씨는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가장 타격을 입은 것이 바로 수도권 50대들인데, 문재인 후보가 되면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본 것 같다. 이들은 자신들이 고생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에서 집값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 때 집값이 폭등한 데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올해 전국의 57만가구로 추정되는 하우스푸어를 세대별로 보면 40~50대가 35만2000가구로 가장 많았고,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33만9000가구로 가장 많았다. 10년 전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박재우(55·경기도 분당·대기업 전무)씨는 이번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박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거들이 어깨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줄 것 같아서였는데, 막상 당선되니 정치 이야기만 하더라. 문 후보도 매번 정치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도저히 찍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흔히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로 불리는 50대는 보통 대학생이나 결혼할 자녀가 있고, 곧 정년을 맞거나 정년을 한 세대들이다. 트위터에선 “베이비붐 세대의 키워드: 은퇴, 아파트 한 채, 별도 저축 많지 않음, 부양능력 없는 무능한 자식, 고령화로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야, 앞으로 뭐 먹고 사나 등. 이것이 바로 박근혜 당선의 힘”이라는 글이 회자됐다.

“박이 민생정책 얘기할 때 문은 바른정치만 강조하니…

”하우스푸어 수도권만 33만가구
2억대출 김씨, 노무현 정부 비판
“문 되면 집값 더 떨어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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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문제 등 안보불안 심리 자극
안정희구 세대에 대안 제시 못해
강남 고씨 “문 지지서 마음 바꿔”

삶의 부담감과 고통이 가장 심한 것이 50대들인데, 문 후보가 이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춘열(54) 고양시민회 전 대표는 “선거공보만 봐도 박근혜 당선인은 민생을 파고드는 정책으로 포장했는데, 문재인 후보는 상식과 바른 정치만 강조했다. 민주당은 고달픈 삶으로 고통받는 서민층들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민주당 재선 의원도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50대 서민·중산층을 겨냥한 어떠한 공약도 없었다. 민주당이 중산층·서민들의 삶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보 문제도 불안감의 한 요소였다는 주장도 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는 “이슈 측면에서 보면 50대에게는 경제 분야와 북한 문제를 포함한 안보 분야가 굉장히 중요했다”고 평했다. 윤 교수는 “안보 분야에서는 실체적 진실과는 무관하게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큰 현안이 됐고,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후보가 안보 문제에 대한 의구심을 폭발시켰다. 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가 활약한 것이 젊은층에게는 속시원했는지 몰라도, 50대 이상 세대의 안보불안을 맹렬히 자극했다”고 말했다. 반면 박근혜 당선인은 50대의 ‘안정 희구 성향과 어느 정도의 변화 욕구’에 적절하게 맞는 메시지를 던지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분석이다. 치과의사 고영우(51·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강남구의 투표율이 서울에서 가장 낮다는 뉴스를 보고 오후 5시에 투표했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호감이 있었지만, 이정희 후보의 토론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이유는 민주당의 지난 5년에 대한 평가 측면도 있다.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 새누리당 조직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듣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민주당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지금의 50대 이후의 정서는 단순한 보수화가 아니라,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안정적인 집권세력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이번에 2040세대에게 전략을 집중해 성과를 거뒀지만 저소득·저학력층이 많은 50대 이후 세대와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2040세대를 든든한 지지층으로 만드는 동시에 50대 이후의 저소득·저학력층과 정치적으로 맺어질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희, 인천/김영환, 수원/홍용덕 기자 herm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