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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7일 월요일

“민주화 뜻 거꾸로 이해하는 젊은이, 기성세대 책임”

이글은 경향신문 2013-05-26일자 기사 '“민주화 뜻 거꾸로 이해하는 젊은이, 기성세대 책임”'을 퍼왔습니다.

ㆍ‘분단고통과 통일…’ 출간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ㆍ“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제2 MB’ 되어선 안돼”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80)는 최근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선인)를 출간했다. 국토와 민족이 분단된 과정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통일을 전망하는 내용이다. ‘통일로 향하는 분단시대의 근현대사 이야기’가 부제인 책은 조선 8도 중 경기도만 조선 왕조 통치 아래 두고 남부 4개도는 일본의 지배, 북부 3개도는 청국의 지배로 두자는 청일전쟁(1894) 무렵 일본의 음모를 시작으로 한반도의 분단사를 상세히 파고든다. 

강 교수는 ‘책을 내면서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라고 붙인 책머리에 평화주의자로서, 열린 민족주의로서, 그리고 미래지향적 인간주의자로서 분단 문제에 접근했다고 밝혔다. 탈냉전시대라는 21세기에 남북한이 여전히 지난 20세기의 냉전주의적 생각에 묶여있는 것은 아닌가, 평화통일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냉철히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책을 냈다고도 했다. 

지난 2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만난 강 교수는 “우리 민족사회가 당면한 합리적 통일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 책을 썼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분단질곡이 역사상 어떤 연원과 조건에서 빚어진 것인가를 알고, 과거에 어떤 분단 위험이 있었고, 그 극복방편으로는 어떤 것이 제시되었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에 분단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24일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제6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령자인 유경순 박사를 만나 격려하고 있다. 강 교수의 사재로 설립된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에서는 매년 근현대사 우수논문 을 선정해 해당 연구자에게 지원금을 수여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책머리에는 ‘또다시 우리 땅의 전쟁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2013년 4월4일에 강만길 씀’이라고 씌어 있다. 북한의 개성공단 출입 제한 조치가 이뤄진 지 이틀째 되던 날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최근 중국시진핑 주석을 만나 6자회담 복귀를 언급했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물론 남북대화 재개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강 교수는 최근 정세에 대해 “남북이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역지사지하고, 화해 분위기로 돌아서야 분단과 동북아 평화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정책, 통일 문제에서 제2의 이명박 정부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의미도 거론했다. “박정희 군사정부 때 미국과 소련, 미국과 중국의 데탕트에 영향을 받아 발표한 7·4남북공동성명은 남녘에서 박정희 종신 집권을 위한 ‘유신’의 ‘멍석 깔기’가 됐다”면서도 “통일을 평화적으로, 주체적으로 한다는 내용을 담은 7·4남북공동성명은 이후 평화통일론을 정착시키는 출발점이 됐다”고 했다. 강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그런 것을 잘 이어받아 (대북, 통일, 평화정책을) 잘하길 바란다”고 했다. 

강 교수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직후 항의집회 성명서 작성 등으로 해직됐다가 1983년에야 복직했다. 최근 5·18 왜곡과 폄훼 문제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꺼렸다. 논란이 된 한 아이돌 가수의 ‘민주화’ 발언을 두고는 “젊은이들이 본래 뜻을 모르고 거꾸로 이해하는 것은 역사가 역행한다는 이야기”라며 “시대 상황에 흔들려 본질을 잃은 교육 문제와 후진 세대를 옳게 가르쳐야 할 책무를 못 지킨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했다. 

24일은 강 교수가 설립한 ‘내일을 여는 역사’ 재단의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매년 그해 가장 우수한 근현대사 논문을 뽑아 주는 상으로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학술 활동을 통해 한국 역사 연구와 사회 진보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됐다. 지원금은 강 교수의 사재로 마련됐으며 선정된 우수연구자에게는 2000만원 이 지급된다. 

올해 수상자는 (1980년대 변혁적 노동운동의 형성과 분화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역사학연구소의 유경순 박사다. 학생운동가들이 왜 노동현장에 투신했는지, 변혁적 노동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지를 분석한 논문이다. 한국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된 민중민주주의와 ‘노동해방’ ‘평등사회’라는 대중적 주장을 평가하고, 사상적 기반과 주체역량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조직 건설 에 나선 ‘조급성과 관념성’, 상호 대립·갈등의 ‘내부 정치’의 한계, 조직 간 상호 배타의 ‘정치조직 간의 정치’ 문제를 지적한다. 심사위원장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사건인데도 자료 수집의 어려움 때문에 학문적 접근이 어려웠던 1980년대 ‘변혁적 노동운동사’를 풍부한 문헌 자료와 구술자료를 토대로 촘촘히 엮어내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구술을 해준 76명의 노동운동 관련자 분들께 감사의 말을 드린다”며 “큰 구도를 정리하는 데 급급해 치밀한 분석이 결여됐는데, 앞으로 더 나은 내용으로 보충,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와 유 박사는 이날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처음 만났다. 강 교수는 “첫해부터 논문 심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연구 지원이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는 자극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그만두던 2007년부터 강원도 양양 하조대에서 살고 있다.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하며 틈틈이 집필하고 있다. 그는 “우리 나이에 계획적인 일을 하기 어렵다. 정년하고 두 번째 쓴 책인데, 앞으로 뭘 쓸지 고민할 것”이라면서 “좌이대사(坐而待死·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림)할 수는 없잖으냐”며 웃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2012년 12월 3일 월요일

통일을 부담으로만 보는 까닭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02일자 기사 '통일을 부담으로만 보는 까닭은…'을 퍼왔습니다.
[특별 기고] KDI의 통일비용 산출에 대해

지난 12월 1일, KDI가 통일비용과 관련된 보고서를 발간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북한경제 리뷰: 남북통일을 위한 재정조달'이라는 보고서라고 한다. 언론(연합뉴스 12월 1일자)이 보도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통일이 되면 북한주민들의 기초생활 보장 때문에 정부지출이 지금의 10배로 늘어나고, 북한주민 의료비 때문에도 GDP 2∼3%의 추가지출이 필요해진다. 결과적으로 정부부채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날 수 있다. 민간부문만으로는 통일재원을 모두 조달할 수 없기 때문에 증세가 불가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외 채권도 발행해야 한다."

연구보고서 내용이 언론이 보도한 대로라면, 우선 통일은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가지고서야 감히 통일을 꿈이라도 꿀 수 있겠는가? 이 기사를 읽으면서 김영삼 정부 시절 우리 사회가 '북한붕괴론 대두-흡수통일론 유행-경쟁적 통일비용 계산-통일공포증 만연'이라는 열병을 앓던 상황이 상기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30년 이상 통일문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몇 가지는 짚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풀려진 통일비용은 통일공포증, 통일기피증 심어준다

첫째, 통일비용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것이다. 통일비용, 이거 잘못된 전제 하에 잘못된 기준으로 계산하면 국민들에게 통일기피증, 통일공포증을 심어 준다. 연구자는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고 미리미리 대비하자는 취지에서 통일비용을 넉넉하게 계산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이 분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수가 있다. 분단이데올로기를 이론적으로 보강해준다는 뜻이다.

1990년대 초중반 난데없이 북한붕괴론이 나오고 흡수통일론이 유행을 하면서 학자들 사이에 통일비용 계산 경쟁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동독처럼 북한이 갑자기 붕괴한 뒤 통일을 위해서 '10년 동안 남한이 매년 얼마나 돈을 들여야 하느냐'라는 것이 당시 통일비용의 개념이었는데, 매년 GDP의 14∼15%를 북한에 투자해야 한다는 계산부터 그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계산도 나왔었다.

그 때 누가 이런 통일비용 계산의 군불을 지폈는가? 국내학자나 기관이 아니었다. 일본장기신용은행이었다. 그리고 GDP 14∼15%의 통일비용이 필요하리라는 것도 일본장기신용은행의 계산 결과였다. GDP 15%면 당시 우리나라 국가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친절하게도 한국의 경제능력으로는 힘이 부치기 때문에 일본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단서까지 달았었다.

여기에 뒤질세라 국내 학자들이 애국애족심을 발휘하다 보니 일본이 계산한 것보다 더 많은 통일비용이 언론에 경쟁적으로 보도된 적도 있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할 경우라는 전제하에 잘못된 기준을 적용하여 경쟁적으로 계산된 엄청난 규모의 통일비용은 그때부터 국민들에게 통일기피증, 통일공포증을 심어주면서 분단이데올로기 노릇을 했다.

이번 KDI의 연구보고서도 국민들에게 통일을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주기보다 통일공포증과 통일기피증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독자들도 보고서를 분석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통일비용에서 분단비용은 빼고, 통일편익은 보태야 한다

둘째, 통일비용 계산 방법에 관한 것이다. 과거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랬듯이, 통일 후 투자비용만 계산해놓고 그걸 통일비용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국민들은 통일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생각밖에 못하게 된다.

통일이 되면 분단상황에서는 지불하지 않던 추가비용이 당연히 나온다. 그런데 분단이 끝나서 그런 추가비용, '통일비용'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바로 그 순간부터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었던 비용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분단이 끝나면 '분단비용'이 안 나간다는 얘기다. 통일비용이 분단비용보다는 많을 수밖에 없지만, 분단비용을 통일비용으로 돌려 쓰면 '순(純)통일비용'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순통일비용이 진짜 통일비용이라고 해야 상식에 맞지 않겠는가?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데 있어서 통일비용과 분단비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통일편익이다. 우리는 지금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고 있다. 바꾸어 말해서, 통일된 국가였더라면 갖출 수 있는 위상과 국가경쟁력을 못 가지고 있다. 그런데 통일이 되면 누릴 수 있는 편익이 상당히 커질 것이다.

우선 인구가 7천만 이상이 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통해 통일한국의 국제경쟁력이 급상승할 것이다. 분단상황에서 분단비용을 지출해가면서 4천8,9백만의 인구로도 G-15반열에까지 올랐는데, 분단비용 더 이상 안 나가고 인구가 7천3,4백만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제경쟁력 있는 상품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수 있다. 더구나 TKR-TSR(시베리아횡단철도)과 TKR-TCR(중국횡단철도)을 통한 물류비 절감(시간상 선박의 3분의1 소요)으로 인한 수출품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북한의 지하자원과 노동력을 남한의 자본과 하이테크에다가 결합시키면 경쟁력 있는 상품이 추가로 개발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통일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두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 통일한국은 G-6, G-7반열로 올라갈 수도 있다.

앞으로 우리 학자들이나 기관이 통일비용을 계산하려면, 통일비용과 분단비용을 상계(相計)하는 것은 물론이고 통일편익도 계산해주면 좋겠다. 통일 후 실제로 지출되는 돈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모두 합산해서 제시하면 국민들이 통일을 두려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통일을 바랄 것이다. 왜? 지금까지 말한 방법대로 계산하면 '통일은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순통일비용과 통일편익은 각각 얼마나 되나

셋째, 수치로 보는 통일비용, 분단비용, 통일편익의 규모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통일비용 전문 경제학자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신창민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1990년대 초반부터 통일비용을 연구해온 분인데, 근년에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로부터 통일비용 연구 위촉을 받아 그 연구결과를 국회에 제출했다. 신 교수의 (통일비용과 통일편익)이라는 연구보고서의 핵심 수치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015년을 통일 시발점을로 삼고 그로부터 15년간 북한경제를 일으키면서 남북통합을 해나가려면 매년 GDP의 6.0∼6.9% 정도 비용이 투자되어야 한다. 한편 분단기간 중 지출되었던 GDP의 4.35∼4.65%에 해당하는 분단비용은 더 이상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분단비용을 통일비용으로 돌려 쓸 수 있기 때문에 순통일비용은 결국 년간 GDP의 1.65∼2.35% 정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통일 후 통일편익은 매우 클 것이다. 자본의 회임기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통일 직후부터 통일편익이 바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면 GDP가 년평균 11.25%씩 성장할 수 있다. 년 평균 GDP 성장률 11.25%에서 순통일비용인 GDP의 1.65∼2.35%를 빼면 년간 9% 전후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년 3∼4%대에 머물러 있던 점을 생각하면 통일의 편익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A) 통일비용 : 연간 GDP의 6.0~6.9%(B) 분단비용 : 연간 GDP의 4.35~4.65%(C) 순통일비용 : (A)-(B) = 연간 GDP의 1.35~2.55%(D) 통일편익 : 통일시 연 11.25% 성장(E) 순성장 : (D)-(C) = 8.7~9.9%*통일편익(D)에서 통일비용(A)만 빼는 방식으로 계산해도 (D)-(A) = 4.35~5.25% 성장 북한붕괴 쉽지 않고, 북한주민이 소비주체만은 아니다

끝으로, 통일비용을 계산할 때 범하기 쉬운 전제나 가정의 오류에 관한 것이다. 남북통일비용 계산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시작되었다. 사회주의 동독이 붕괴했다고 해서 북한도 붕괴할 거라고 전망하는 것은 일종의 '희망적 관측'이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오래 하다 보면 그렇게 될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북한붕괴론은 그와 유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외적으로, 북한에게는 동독의 후견국이던 소련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도 일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북한의 후견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은 날로 부국강병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 국가마다 체제붕괴 요인과 체제유지 요인이 함께 있는 법이다. 대내적으로, 북한에는 체제붕괴 요인도 있지만 체제유지 요인도 만만치 않게 강하다. 북한 붕괴를 쉽게 예단하는 건 정책적으로 현명치 않은 일이다.

통일비용 계산과정에서 통일 후 북한주민은 남쪽에 손만 벌릴 것처럼 전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잘못이다. 소비주체 중 상당수는 생산주체이기도 하다. 북한주민 전체를 통일한국 정부가 전적으로 먹여 살려야 한다고 전제하고 통일비용을 계산하면 되겠는가? 북한주민들의 노동력과 두뇌가 통일한국에 자산이 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통일 이후 통일비용을 사전에 줄여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길을 외면하고 엉뚱한 길로 돌아가려 하면서, 잘못된 전제와 잘못된 방법으로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프레시안

/정세현 원광대학교 총장, 전 통일부 장관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법륜스님의 <쟁점을 파하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 2012-11-23일자 기사 '법륜스님의 (쟁점을 피하다)'를 퍼왔습니다.

법륜 스님 사진 류우종 기자

우리는 전쟁 중이다. 휴전선만이 아니다. 4대강에서도, 제주 해군기지 강정마을, 쌍용차 문제에서도. 이런 갈등 현장에 대해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지식인들조차 직시하기보다는 사팔뜨기 행세를 하는 동안 문제는 꼬여간다. 상처는 깊어지고 사람이 죽어간다. 그러나 ‘뜨거운 감자’에 손댔다간 멀쩡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수구꼴통’이나 ‘빨갱이’가 될 수 있다며 쉽사리 나서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법륜(59) 스님이 우리 사회의 환부를 수술대 위에 올렸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미래구상’이란 부제를 단 란 책에서다. (스님의 주례사)가 결혼을 앞둔 남녀의 궁금증에, 이 자녀 양육과 교육에 대한 엄마의 질문에 각각 응답해 개인적인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라면, 이 책은 ‘세상’에 대한 고민을 끌어내고 있다.

 법륜 스님은 붓다가 중생들의 질문에 답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문답식 강연을 되살려 ‘즉문즉설’ 열풍을 불러온 주인공이다. 즉문즉설에서 어떤 질문에도 답을 회피하지 않은 그답게 이 책에선 갈등 현장뿐 아니라 비정규직, 재벌세습, 성장과 분배, 교육, 남북문제 등 첨예한 사회 현안을 정면에서 다뤘다. 


지난 16일 인터뷰를 하러 그를 찾아간 곳은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20층이었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평화재단이 유력한 세 대선 후보 진영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을 부른 토론회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바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가 세 시간째 청중석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토론 뒤 마무리말을 했다. “40여년 전 한·일 국교정상화 때 반대가 많았다. 한국전쟁 때 북한을 도운 중국과 국교를 열 때도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면 아직까지 일본이나 중국과 국교도 열지 않았다면 어찌 됐겠는가. 남북문제도 그렇다. 북한에 악감정도 있고, 많은 문제도 있지만, 그렇다고 단절해 버린다면 우리 민족의 내일을 열 수 있을 것인가.”

 그 순간 200여명의 청중석에선 토론 때의 찬반 논쟁을 넘어서는 남다른 파장이 흘렀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 최선임을 충분히 감지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궁금증을 물어야 하는 건 기자의 숙명이다. ‘왜 스님이 세상 일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는 첫 질문에 그는 “왜 암탉이 설치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응수했다. 개인적 고민이건, 세상사에 대한 문제건 사람들의 고통에 응답해 해소해 주는 게 종교인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그의 답변은 정토회를 창립한 이후 지난 20여년간 구호단체 제이티에스와 좋은벗들 등을 통해 인도·필리핀·북한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쉬지 않고 도와온 활동이 뒷받침해 준다. 

 우선 쟁점에 대해 어떻게 깊이 있는 현안 파악이 가능했을지가 궁금해진다. ‘내 편, 네 편’ 이란 편견 없이 당사자들의 말을 허심탄회하게 경청하지 않고서는 얻기 어려운 이해력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문제를 푸는 접근 방식이다. 책 표지 바탕에 깔린 ‘화쟁(和諍)’이 바로 열쇠다. 화쟁은 삼국통일 뒤 신라에서 서로 부딪치게 된 쟁점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고승 원효가 주장했던 것이다.

 “서울로 가는 방향을 물을 때 인천 사람은 동쪽이라고 하고, 수원 사람은 북쪽이라고 한다. 표현이 다르다고,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가 선 위치와 관점에 따라 같은 사안도 다르게 볼 수 있다. 나와 다르다고 무조건 틀렸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출발하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해도 차이점을 인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으로 싸우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화쟁이 가능할까. “그렇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달라진다. 후보들은 모두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내놓은 평화·통일·경제민주화·공정·복지 등의 공약에서 공통점이 많다. 공통점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입법화·제도화해야 한다. 그러면 세 후보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인들에겐 ‘결과’만 관심거리지만, 그는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짓느냐 짓지 않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어떤 결정이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처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난 추석 다음날에도 강정마을에서 찬성파와 반대파를 한데 모아 그가 잔치를 벌여준 것도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승리가 아니라 ‘함께 사는 것’임을 깨우쳐주는 행보였다.

법륜스님이 지난 8월 22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내일을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마련한 초청강연에서 ‘시대정신과 대통령 선거’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창광 기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지난 8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북한 긴급 수해 지원 및 북한 어린이돕기 범국민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법륜 스님(평화재단 이사장, 앞줄 왼쪽 둘째)이 국민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이정아 기자

대선 정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시각도 남다르다. 한쪽에선 부자의 재산을 뺏거나 재벌을 해체하려 들고 재벌은 이에 극력 반발하는 대립 구도와는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불황이 오면 약자들이 가장 고통을 받기 때문에 여유 있는 이들이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 자기 권한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인도 세비를 깎으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세를 보여야 불황기의 한시적인 부자 증세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성장 동력도 떨어진다. 부자도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존경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부자들이 전체 이익을 위해 나설 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나라가 된다.”

 화쟁은 찬성과 반대의 중간이 아니다. 옳은 것을 지향한다. 그래서 스님은 누구나 알면서도 이해 당사자들의 옹호에 휘둘리는 쟁점에 대해선 날선 원칙론을 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북한 이탈주민들을 꾸준히 도와온 그가 그들을 이민자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의외다. 그는 “이민자와 다른 특별대우가 남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사회 적응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식도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시장에 혼란을 막도록 조율하지 않으면, 재벌은 적극적으로 통일을 원하고, 남한 노동자들은 목숨 걸고 통일에 반대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륜 스님이 보는 이 시대 화두는 “안으로는 양극화 해소, 밖으로는 통일”이다. 누구라도 시대 정신을 읽지 못하고선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으리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스님은 사람들의 내적 고통을 덜어주고 세상의 희망을 열기 위해 지난 1년 내내 ‘즉문즉설’을 해왔다. 모두 300회의 이 ‘희망 만들기 콘서트’는 △25일 오후 2시 부산 벡스코 △26일 오후 7시 대구 엑스코 △27일 오후 7시 창원 세코 △29일 오후 7시 경희대 편화의전당 등 이제 4회만 남겨두고 있다.

 그는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희망 만들기 콘서트’를 북한의 시·군·구에서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획을 바꿔 북한의 모든 시·군·구에 옥수수 100톤씩을 보내줄 작정이다. 북한동포들에겐 즉문즉설보다 먹을 것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프니 그가 아프다. 그래서 그는 늘 고통 받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고통스런 사람과 현장을 회피하고 고통을 줄여줄 수는 없다. 쟁점을 회피하고 쟁점을 타파할 수도 없다. 그가 우리의 용기를 이끌어낸다. ‘쟁점 속에 뛰어들어야만 생채기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법륜 지음/한겨레출판·1만1500원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끊이지 않는 '빨갱이 타령', 통일은 멀어진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0-19일자 기사 '끊이지 않는 '빨갱이 타령', 통일은 멀어진다'를 퍼왔습니다.
[2013 남한에 바란다 ④] 겨레의 꿈, 이젠 이뤄내야 합니다

저는 모국의 분단·전쟁·대결에 깊이 관여해 온 미국에서 40여 년을 산 재미동포 정형외과 의사입니다. 1992년 처음 재미한인의사회 학술교류 차 북을 방문한 데 이어 조국의 남북을 드나들며 서로 아파하며 통일을 열망하는 동포들의 모습을 봐왔습니다. 의료계에 계속 종사하는 한편, 조국통일을 열망하며 분단 체제와 분단의 해소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했습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제3자적 입장에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 기자말

해방 15주년을 맞은 1960년, 북은 처음으로 남에 '평화협정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뒤 20년 동안 계속 남북평화협정을 제안했습니다. 1974년 남이 처음으로 불가침협정을 제안하자 북은 '군사통수권도 없는 남이 어떻게 협정을 보장하느냐'며 군사실권을 행사하는 미국과 평화협정 하자고 미국의회에 제안했습니다. 

그 뒤 20년 동안 북미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무시·불응해 오던 미국이 북의 핵무기 개발을 견제하기 위해 1994년 북미기본합의를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이 합의는 2002년 말, 미국이 파기했습니다. 그 뒤 미국과 엎치락뒤치락하던 끝에 북은 2011년 핵보유국임을 헌법 전문에 명시했습니다. 

북미평화가 선행됐더라면 북핵은 없었을 것입니다. 북에 핵무기가 없던 40년, 핵의혹만 있던 15년에도 평화협정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던 것이었을까요. 미국은 그럴 필요도, 의향도 없어서였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미국에 이익이 됐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국(남북)은 핵보유국인 중국·러시아·미국과 핵무장을 당장에라도 할 수 있다는 일본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러니 '핵을 가지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북은 한반도에서 비핵화를 주장해 왔습니다. 미국의 핵우산을 쓰고 있는 남이 북에게 선핵 폐기를 이야기한 들 무엇이 이뤄지겠습니까. 지난 3월, 북 외무성 리용호 부상이 미국에 왔을 때 '미국과 동맹을 하면 북은 핵을 폐기한다'고 했습니다. 남북은 연합방을 먼저 구성하고 조국의 한편에 있는 핵무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 '겨레의 만년 대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합니다. 

남북평화협정, 이젠 남측이 제안하자

▲ '통일보다 나은 분단은 없다'는 사실, '민족보다 나은 동맹은 없다'는 진리, '동맹은 한때고 민족은 영원하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때다. 사진은 지난 2007년 7월 27일 경남진보연합의 정전협정 54년 기자회견 당시 ⓒ 오마이뉴스 윤성효

하나 더 제안합니다. 북미평화를 기다리지 말고 이번에는 1960년에 화답하지 못했던 '남북평화협정'을 남에서 먼저 제안해야 합니다. 남이 미군을 업고 북을 위협하듯 북이 중국군을 안고 남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남은 남북평화를 선도하거나 화답해야 합니다. 남북은 각기의 가치관에 따라 분단 뒤 전쟁을 치르고 반목과 대결, 경쟁과 발전을 거듭하며 살아왔습니다. 또, 6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흡수통일도 적화통일도 해서는 안 되고, 또 할 수도 없음을 터득했습니다. 

그동안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당한 참담한 고통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굶어 죽어가는 북녘 동포의 기본 생명권마저 외면한 남녘은 설익은 북한 인권 타령일랑 접어두고 남북주민의 진정한 인권을 위해서라도 연합방을 이뤄주시기 바랍니다. 통일은 북미평화가 시켜주는 것이 아니고 남북평화가 해내는 것입니다. 남북통일을 주변국의 도움으로 하게 되면 일시적이 됩니다. 분단의 당사자인 남북이 해내야 영구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통일은 자신 있는 쪽이 선도하면 됩니다. 

'통일보다 나은 분단은 없다'는 사실, '민족보다 나은 동맹은 없다'는 진리, '동맹은 한때고 민족은 영원하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때입니다. 남북 모두 원론으로 돌아가 통일의 당위성을 더 이야기해야 합니다. 통일의 열매가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과도한 통합 비용이라고 잘못 알려진 허상을 바로 잡고, 분단 비용의 실상과 연합방이 가져올 이득에 대한 진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토론의 마당을 넓혀야 합니다. 

공평과 공정의 정의가 흐르는 연합방기에 협력 교류를 다지며 신뢰를 쌓고, 연방기에는 분단 시대 양측의 과오를 민족대사면헌장(정치불보복)으로 청산하고 법적통일(de jure unification)인 고리공화국(Corea Republic)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5·24 조치해제, 개성·금강산관광 재개, 개성공단 확대,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축, 10·4 선언에서 합의한 45개 사항을 어서 시행해야 합니다. 나아가 그 이상을 해야 합니다. 한 재외동포의 진언을 '한낱 실현성 없는 순진한 이상' 혹은 '감성적 발언'이라고 치부하지 마십시오. 인류의 모든 대업은 철학과 신념을 갖춘 지도자의 원대한 이상에서 이뤄졌습니다. 과감하게 제안하고, 감성적으로 소통하십시오. 남녘의 국민이 공감할 것이며 북 또한 화답할 것입니다. 

조국이 강대국인데 아직도 '주변 강대국' 타령?

저도 재외동포의 몫을 하렵니다. 21세기에 철 지난 '빨갱이 타령'하는 나라는 오직 조국의 반쪽 남녘입니다. 분단 조국 남녘의 지도자들이 분단의 종식과 통일에 대해 쌓아온 철학을 소신껏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북색깔론 따위에 짓눌린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겨레의 통합과 나라의 통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우리 조국이 주변국의 눈치를 보며 살던 때는 이제 지났습니다. '주변 강대국'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조국이 강대국입니다. 연합방을 구성하게 되면 일류국이 됩니다. 북은 어려움 속에서도 세계 어느 나라에게 굽혀본 적이 없는 정치 강국입니다. 또, 남은 경제발전 이뤄내고 세계 첨단전자지식산업을 이끌고 있는 과학기술강국입니다. 

이 겨레, 이 반쪽짜리 두 나라를 어찌할까요. 남북이 손잡고 연합방의 길로 나갈 것인가요 아니면 멍청한 분단 짓을 계속할 것인가요. 결정의 때가 왔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신뢰로 이뤄집니다. 남북 최고지도자는 어서 서로 만나자고 제안해야 합니다. 만나자고 화답하는 것은 남북 주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의 시작과 같습니다. 만나서 머리 맞대고 연합방을 합의하십시오. 그리고 남북은 통일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면 됩니다. 세계 누가 이 겨레의 길을 막을 수 있습니까. 민족사의 새 장정을 시작해주십시오. 

남북연합방 구성, 시기 놓치면 시련은 계속됩니다

▲ 2013년 초부터 새 정부를 꾸려나갈 남녘 지도자는 북의 김정은 제1비서와 대화·소통·합의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남북연합방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사진은 지난 2003년 8월 30일 오후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대구유니버시아드 여자축구 결승전 북한과 일본의 경기 당시. 북한 응원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응원하고 있다. ⓒ 권우성

12년 전, 김대중-김정일 두 지도자가 두 손 맞잡아 높이 들고 역사적인 6·15 선언을 했을 때 남북 주민들의 감격과 환호를 기억하십니까. 어느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위대한 지도자는 원대한 꿈을 실현합니다. 하여 2013년 초부터 새 정부를 꾸려나갈 남녘 지도자는 북의 김정은 제1비서와 대화·소통·합의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남북연합방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연합방의 경제는 서민 대중의 가정에게는 '저녁이 있는 삶의 여유', 기업가에게는 '거대한 새 사업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받아들여 겨레의 창창한 앞날이 눈앞에 보이는 Corea연합방의 길로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도 이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이 겨레는 다시 60년 동안 더 시련을 겪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남북의 선대 지도자가 이미 성공적인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 터전 위에서 남북은 통일의 길로 걸어가겠다고 만방에 고하십시오. 우리 모두 꿈을 안고 삽니다. 남북주민들은 '남 인공위성 북 은하로켓으로 올리자'는 꿈을, 저 역시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을 찾아오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겨레의 꿈을 이뤄냅시다!  남·북·재외 8천만 겨레의 꿈을.

[수필] 정 이월 다 가고 희망찬, 하지만 무거운 얘기를 했습니다. 마음 진정시켜 드릴 수필 한 편 첨부합니다. 2013년 '정 이월 다 가고' 3월이 오면 남북연합방의 새싹을 키워갈 남북지도자께서 수필 속의 날이 어서 오도록 힘써 주십시오. - 기자말

"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따앙에도..."

이 얼마 만에 듣는 노래인가. 관객들이 가득히 들어찬 축구장 넓은 잔디 위, 한복을 입은 한 중년 사내가 달랑 북 하나의 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있었다.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벌어진 남북통일 축구경기 TV중계 화면이다. 옛날부터 귀에 익었던 노래였다. 소리 빛깔과 가락은 낯설었지만 가슴 속 깊이 묻혀있던 한(恨)을 토해내듯 부르는 소리에 나는 그만, 깊숙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는 모국의 소리꾼 장사익이었다. 어렸을 때 동네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하며 부르던 이 노래를 왜 이제야 다시 듣게 됐는가. 일제 강점시절, 김형원의 시 (그리운 강남)에 1928년 미국 유학서 돌아온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안기영이 작곡한 노래다.

그렇다. 이 노래는 그냥 철없는 아이들만의 노래가 아니다. 매몰찬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의 봄을 그리워하던 우리 겨레의 한과 소망이 담긴 노래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총독부에 의해 금지됐던 또 하나의 울 밑에 선 (봉선화) 같은 노래였고. 해방 후 남북의 음악 교과서에도 실려 마을마다 골목마다 메아리쳤던 노래였다.

작곡가이며 성악가였던 안기영은 우리 민담설화 (콩쥐팥쥐) (견우직녀) 같은 향토가극(오페라)도 작곡하고 공연했다. 그 시절 창가 수준의 창작계를 한 차원 높여 우리나라 가곡의 효시라고도 평가받는다. 그는 연희전문학교에서 음악의 길을 모색하고 있던 때 3·1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이어 조선독립의 뜻을 품고 중국으로 건너가 무관학교를 다니다 독립운동가 여운형을 만나 상해 대학에 진학했다. 

4년 뒤 서울로 돌아와 이화여전 음악조교를 하던 그는 1925년, 미국 오레곤 주 엘리슨화이트 음대로 유학길에 오른다. 3년 뒤 귀국해서 이화여전 음악교수로 재직하던 중 지금의 교가도 작곡했다. 1945년 혼란스러운 해방정국에서 암살 당한 여운형 선생의 추도곡을 작곡하고 장례식에서 그 곡을 지휘하기도 했다. 좌우이념의 대립 속에 그는 좌익으로 인식돼 이승만 정부에서 음악활동마저 중지당하자 6·25전쟁 중에 월북을 택한다. 그의 음악은 그 후 남녘에서 사라졌다. 북녘에서 평양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1980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작품들은 남녘에 민주화 바람이 불어온 1988년 말에야 해금 됐다. 

시대를 앞섰던 그의 기여가 뒤늦게나마 남녘에서 조명됐다. 그리고 죽은 듯 땅속에 묻혔던 안기영 음악의 뿌리가 장사익에 의해 되살아나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 2008년, 로스앤젤레스 챈들러음악당 장사익 소리판 공연에서 열광하는 3000명 관중들과 나는 함께했다. 1부 공연에서는 (희망 한 단) (찔레꽃) 등 국악에 바탕을 둔 풋풋한 황톳빛 노래들을, 2부에서는 친근한 가요 (봄날은 간다) (동백아가씨) (님은 먼 곳에) 등을 탁하지만 가슴 시린 서정을 담아 온 몸으로 절규하는 듯 불렀다. 북과 장구의 국악기와 기타와 피아노가 어우러진 반주는 감동의 깊이를 더했고, 구슬픈 듯 아득한 해금의 음색도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 겨레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한과 끈끈한 정이 묻어나는 노래들을 그만의 독특한 소리판으로 이어갔다.

한 판 한 판 더해 가며 무대와 청중은 하나가 됐다. 마지막 판을 마친 그는 "용의 눈에 점을 찍은 이 공연에 와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미주순회 마지막 공연에 성황을 이뤄준 것에 대한 인사였다. 감동에 벅찬 관중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며 모두 일어섰다. 기어이 "한. 번. 더! 한. 곡. 더!" 등 열화와 같은 앙코르 요청을 보냈다. 그가 안기영의 곡을 엮은 (강남 아리랑)을 선창하자 객석에서 (아리랑)이 흘러나오더니 곧 무대 위 출연자들과 관객이 모두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또 다아시 보오옴이 오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 (아리랑)을 들으며 문득 한 일화가 생각났다. 분단 36년, 남녘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통일을 열망하는 재미동포 인문학 교수와 기독학자들이 처음으로 북녘 사람들과 만났다. 무서운 결의에 찬, 그러나 떨리는 만남이었다. 축배를 들고난 뒤에도 어색하고 긴장이 안 풀려 서로들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좌중의 한 부인이 조용히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입이 열려 따라 부르다가 합창이 되고 끝내 모두는 눈물을 머금으며 서로를 껴안았단다. 아리랑 음률에 남과 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아리랑 노랫말을 되뇌다 보면 우리의 목은 메인다. 만감으로 가득 찬 나의 가슴도 쉬이 풀리지 않았다. 그날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속으론 조용히 노래의 끝 소절을 '조국의 통일을 어서 이루세'로 바꿔 불러봤다. 

이 소박하고 더 없이 고운 (그리운 강남)을 읊은 김형원은 일제 강점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로 일했다. 신경향파문학의 선구자로 활동하며 저항적 참여시도 많이 썼다. 허나 일제강점말기에 그는 조선총독부 통치에 적극 협력했다. 해방 후 이승만 남녘 단독정부 수립 때에는 공보처 차장이 됐다. 뒤에 나온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도 올랐다. 그가 6·25 전쟁 때 납북된 것으로 짐작되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일제강점과 해방,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청춘을 산 우리 선대들의 삶이 파란만장하지 않았던 분이 몇이나 될까. 아직도 반목과 대결을 계속하고 있는 이 분단 조국의 어리석음과 허망함. 남북의 동포가 똑같이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이 (아리랑) 가락이 어찌 그리 아픈 굴곡의 역사를 겪어야 했나. 우리 겨레의 영혼에 들어와 어린 아이들마저 즐겨 부르던 노래를 왜 끊었다 이었다가, 버렸다 주었다 해야만 했는지! 겨레의 애틋한 소망을 담은 이 한 노래의 역사마저 우리의 가슴을 에인다. 떠난 자와 남은 자, 남았으면서도 갈라져 사는 가족의 아픈 사연과 수난들... 분단 조국의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랴.

사계절이 분명치 않은 이곳 남가주지만, 매해 3월이면 공기 맑은 해안도시 산후안 카피스트라노에서 제비축제가 열린다. 우리 겨레에게도 평화와 통일의 감람나무 잎새를 물고 올 제비가 기다려진다. 그 언제 남과 북의 동포들이 한 자리에 앉아 손 맞잡고 "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를 함께 다시 부를 날이 올까.(한국산문 2008년 6월호 게재)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오인동씨는 재미동포 정형외과 의사입니다. 저서로는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2010)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2010) (꼬레아, 코리아)(2008) 등이 있습니다. 이 글에 언급된 여러 화두에 관련한 글은 www.615west.org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오인동(drioh1119)

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아무도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29일자 기사 '아무도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를 퍼왔습니다.
[고승우 칼럼] 주변 4개국의 무관심, 지금이 '뼛속까지 친미'하고 있을 땐가

북한이 김정은 부위원장 체제로 출범하면서 주변 4개 국가의 한반도 정책이 관심을 모은다. 우선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비춰 한반도에서의 급격한 변화, 통일을 원치 않는다. 현재와 같은 분단 상태가 최선으로 여기면서 분단 고착 정책을 펴는데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꼴이다. 

중국은 북한의 안정이 군사적으로 동북 3성의 안보에 긴요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체제 유지에 적극적이다. 이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 사망이후 주변 국가에게 북한을 자극하지 말 것을 통보하기도 했다. 중국은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합 될 경우 불가피한 주한미군과 중국군이 대치하는 상황을 절대 원치 않는다. 

중국은 동북 3성의 지하자원이 고갈 상태여서 북한의 천연자원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북한의 지하자원은 약 7천 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양으로 남한의 24배에 달한다. 중국은 미국, 유럽의 금융위기와 경제난으로 자국의 경제가 향후 심각한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주산업에 적극 투자하면서 미국과 러시아를 제친 우주 강국을 꿈꾸고 있다. 이래저래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강력히 희망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데 주한미군이 안성맞춤으로 여긴다. 주한미군은 중국의 목을 겨눈 비수로 비유된다. 여차 하면 주한미군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적 위치다. 주한미군을 절대 철수시키지 않는 이유다.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명분의 하나는 남북간의 군사적 갈등에 대한 ‘관리’다. 국제 사회에 주한미군이 남북간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남북이 천안함, 연평도 문제로 갈등하는 것은 미국에게는 최상의 호재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9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전한 가운데 20일 서울역 대기실에서 시민들이 김정일 사망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주한미군 주둔비도 한국이 대부분을 부담하니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큰 득이 된다. 주한미군을 세계 분쟁지역에 투입할 수 있게 한국과 합의했으니 이 또한 미국에게는 엄청난 전략적 이득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도 지연시킨다. 정전협정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도 절대 불가다.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내심 원치 않는다.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 강력한 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현재 남한이 일본을 경제적으로 추월하는 것이 못마땅한데 통일 한반도가 풍부한 지하자원과 첨단 과학 기술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일본을 앞설 강대국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수십 년 간을 ‘투쟁’하는 것을 보고 그런 노하우가 통일 한반도에 계승될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최대한 저지하려 한다. 

일본은 납치문제에서, 북한이 보내온 일본인 유골의 DNA 검사를 소홀히 한 채 문제의 유골을 폐기 처분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만든 뒤 ‘북이 속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속내도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속셈의 결과로 읽힌다. 

러시아는 옛 소련의 전통 탓인지 대소 국제 문제에 미국에 대한 반감이 대단하다. 아직은 세계의 2대 강국이라는 향수에 젖어 매사에 미국과 각을 세운다. 한반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가 통일돼 러시아와 미군이 총부리를 맞겨눈다는 것도 피하고 싶은 항목 가운데 맨 앞에 속한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뒤 북한에 대한 지원을 크게 줄이면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쇠퇴했지만 최근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북한을 경유한 가스관 건설을 수단으로 남북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한다. 남북을 분단 상태에서 관리하겠다는 속셈으로 읽힌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한반도 주변 4개국은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최선으로 여긴다. 통일에 대해서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역행하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런 점을 살핀다면 한반도 통일이나 평화, 안전 등은 결국 당사국인 남북이 챙길 수 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처럼 ‘뼈 속까지 친미’와 같은 방식은 미국 등 4개국이 한 통속이 된 남북 분단 고착화 정책에 동조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