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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9일 수요일

패인분석인가 마녀사냥인가?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1-08일자 기사 '패인분석인가 마녀사냥인가?'를 퍼왔습니다.

1.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패배한 후, 왜 졌는지를 나름대로 설명하려는 말들이 무성하다. 50대가 보수화되었다는 둥, '친노' 세력이 앞장을 서서 졌다는 둥, 안철수로 단일화되지 못해서라는 둥, 민주당의 좌클릭 때문이라는 둥, 얼핏 보면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진실의 과녁을 정곡으로 찌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사태의 진상에 관해서 과녁을 찌르기보다는 그 주변에서 대충 변죽 울리기로 만족하는 한편,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고자 하는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

2. 먼저, 안철수였다면 이겼으리라는 주장부터 따져보자. 안철수가 연합후보로 나섰다면 이겼을지 모른다는 말은 현재 시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연합후보로 나선 문재인이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철수였다면 이겼다”는 말은 헛소리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패인을 굳이 꼽아야 한다면, 도박꾼들의 관심이 상황을 지배했다는 데 있다. 안철수와 문재인 중에 누가 단일화 경쟁에서 승자로 떠오르느냐를 가지고 내기를 거는 방식으로 보도와 평론과 지지와 응원이 이뤄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가”에만 몰두하느라 “어떻게”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 결과 협상이 깨졌고 안철수가 일방적으로 사퇴한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누가”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했다. “감동을 주는” 단일화, “아름다운” 단일화,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 따위가 가능하려면, 쌍방이 어떻게든 단일화의 규칙에 합의하고, 그 규칙에 따라 두 세력을 하나로 합하는 역량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왜? “어떻게”보다 “누가”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막판에 안철수의 “가상대결” 요구를 과감하게 받아버렸어야 했다 (안철수의 요구가 일방적이었지만 그랬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먼저 안철수가 단일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만 했다. 출마 의사를 밝힌 시기도 훨씬 앞당겨야 했고, 출마 의사를 밝힌 이후에는 바로 단일화 규칙을 위한 협상에 나섰어야만 했다.
이제 와서 가정법으로 말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다. 무슨 일이든 결과가 나타난 다음에는 무책임한 말들이 무제한적으로 횡행한다. 이제 와서 “안철수였다면 이겼다”고 말한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어떻게”의 중요성은 보지 못하고 “누가”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증거다. “안철수였다면 이겼다”를 말하기 전에, 안철수가 왜 단일 후보로 되지 못했는지, 뭘 어떻게 했어야 감동적인 방식으로 단일 후보가 될 수 있었는지를 물어야 책임 있는 담론이 가능해진다.

3. 민주당이 좌클릭을 해서 중도표를 잃었다는 말도 유행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좌클릭했다고 할 때, “좌클릭”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가? 좌클릭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체제, 복지 강화 등을 주장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것 말고 어떤 “좌클릭”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일까?
진보세력과 연합이 오히려 중도층의 이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왕당파를 상대하기 위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이처럼 상반되는 일반명제들 가운데 어떤 것이 현재의 맥락에 적실한지를 가리려면, 연합의 이익과 손해를 맥락적으로 따져서 저울질해야 한다.
한국에서 청적(靑赤) 연대는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명백한 성과를 보여줬다. 그래서 그때는 “좌클릭”이 문제라는 소리는 나오지 못했다. 2012년 4월 총선,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결과가 기대치에 못 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좌클릭”이 문제였다는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이기리라는 “기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주관적인 낙관 말고 도대체 어떤 정세 분석에서 그런 “기대”가 나왔는가? 그런 “기대”가 도대체 어떻게, 누구 맘대로, “예상”으로 둔갑했을까? 낙관은 원래 근거가 없는 것이고, 근거 없는 낙관은 자유다. 단, 낙관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책임은 낙관에게 물어야지 엉뚱한 곳에서 분풀이 대상을 찾으면 마녀사냥이 된다. 그리고 이런 버릇을 못 고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좌우지간, 이번 선거에서 “좌클릭” 때문에 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왜 청적 연대가 성공했는지 답해야 한다.
결함은 좌클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호함에 있다. 민주당과 문재인 캠프는 중도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 생각 자체는 옳다) 매몰되어, 분명한 결기를 보여야 할 곳에서까지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NLL과 관련해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밝히자고 오히려 민주당이 주장했어야 하는 것이다. 정상회담 녹취록을 공개하면 국익에 위배된다는 걱정은 일차적으로 새누리당과 원세훈과 이명박의 몫이었다. 이걸 뒤집어 생각한 오류 때문에, 마치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녹취록 공개에 반대하는 듯한 이미지만 뒤집어쓰고 말았다.
“종북”, “좌익”, “빨갱이” 프레임 때문에 소위 “중도”라는 사람들이 민주당에 표를 주기 꺼려한다는 데까지는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프레임에 걸리지 않을까? “좌클릭”을 하지 않으면 될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먼저 왜 박근혜의 “좌클릭”은 득표에 도움이 되었는지부터 자문해 봐야 한다. 박근혜의 “좌클릭”은 국민대통합의 행보가 되는데 왜 민주당의 “좌클릭”은 소위 “중도층의 안보불안감”을 증폭하는 것인지를 캐물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이중기준이 프레임의 본질이다. 이 프레임을 그대로 두는 한, 민주당 및 한국의 개혁세력은 절대로 “종북”, “좌익”, “빨갱이”라는 낙인을 지울 수 없다. 즉, 조갑제에게 “종북”이라고 낙인이 찍히기만 하면 움찔 놀라 지지를 거두는 유권자에게 어떤 다른, 보다 “부드럽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서 표를 구걸하기 보다는, 조갑제가 찍은 “종북”의 낙인에 구애받지 않을 유권자들을 찾아내서 그들의 합리적인 자부심에 호소해야 한다. 이제 와서, 선거에서 지고 나서, “좌클릭 때문에” 중도표를 잃었다는 진단은 정확히 매카시즘에 인식론적으로 굴복했다는 표시에 불과하다.
비현실적인 정책,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과격한 변화를 추구한 면이 있었다면, 그런 면들은 사후에라도 가려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민주당이 내 건 정책 중에 비현실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은 2011년 말에 터져 나왔던 한미 FTA 당장 폐기론을 깔끔하게 해소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재협상을 주장한 일 정도다. 이 건에 관해 나는 “문제가 나타나면 그때 가서 생각한다”고 한 안철수의 입장이 맞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문재인이 표를 잃어서 선거에서 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례하게”, “공격적으로” 박근혜를 몰아붙인 이정희의 퍼포먼스 때문에 문재인이 졌다는 소리도 헛소리다. 문재인이 이길 선거였다는 근거 없는 전제를 깔고 생각하니까, 어디선가 이유를 만들어내야 하다 보니, 온갖 추측이 난무하게 된다. 이정희의 공격성이 박근혜의 가련한 이미지에 보탬을 줬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사후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조성된 가능성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문재인이 표를 잃었다고 말하려면, 이정희의 공격성 때문에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 곧 이정희의 공격성이 없었더라면 문재인을 찍었을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특성을 가지는 유권자들일지 대충이나마 추려낼 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108만표 가운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확인할 방법을 이론적인 가능성 수준에서나마 동시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이정희의 공격성 때문에 문재인이 표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데나 찔러 보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빠져나가는 뺑소니 어법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좌클릭을 해서 진 것이라기보다는, 좌클릭을 하기는 한 것인지에서부터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까닭에 마지막 2% 정도의 유권자를 잡지 못해 진 것이다. 중도층을 잡으려고, “종북” 프레임에 정면으로 돌직구를 날리기보다 “종북”이 아니라고 변명하기 위해, 모호함에 의존하다가 정작 그 때문에 중도층의 불안감을 불식하지 못한 것이다. 수많은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급조한 의제들이다 보니 잠재적 지지층이 될 수도 있었던 유권자 가운데 안정을 희구하면서 망설이고 주저하는 마지막 2%에게 침투하지 못해서 진 것이다. 간략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구호의 형태로 정책을 요약해서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문재인과 개혁의 이미지를 형상화해 내지 못해서 진 것이다. 선거법 상으로 문재인과 같은 신인에게 시간이 절대로 부족했는데, 캠프 안에서도 민주당 안에서도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간취하고 대책을 수립할 만한 전략적 안목이 없어서 진 것이다.

4. 친노니 비노니를 따지는 짓은 단순한 책임전가 및 내분 이상의 의미가 없다. 누군가 패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면, “친노” 따위 모호화법을 사용할 일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가 왜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꼬집어 말해야 한다. 모호화법에 의존하는 한, “친노책임론”은 민주당의 내분을 부추길 뿐인 프레임에 자발적으로 투신하는 꼴에 불과하다. 이 얘기를 나는 여러 달 전에 쓴 적이 있다 (관련기사 ☞ “담합과 동맹 사이에서”).

5. 마지막으로, 50대의 보수화 때문에 문재인이 졌을까? 108만표의 차이는 50대말고도 숱한 설명이 가능하다. 충청도와 강원도 표, 경남과 부산 표, 그리고 경기도 표 가운데 하나만 문재인 쪽으로 바뀌었어도 문재인이 이겼으리라는 산수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50대의 보수화에서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4지 선다형 문제에서 연필 굴리기로 답을 찍는 태도와 흡사하다.
경기도나 경남 등 지역으로 분류하든, 연령으로 분류하든, 특정 부류의 유권자들이 보수화해서 문재인이 졌다는 말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물어야 할 질문은 왜 그들이 문재인보다 박근혜를 찍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단순히 “박근혜를 찍었다”는 문구를 “보수화”로 바꾼 데 불과하다.
경기도든 경남이든 부산이든 강원도든, 50대든 60대든 40대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학력이 어떻든 소득이 어떻든, 108만 표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어떤 하나의 변수가 결정적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와 논객과 전략가들은 4지선다형 정답찍기식 시험에 길들여진 한국인답게 “하나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1577만 표와 1469만 표 사이의 차이를 “하나의” 인구통계학적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기적에 가깝도록 예외적인 사태일 것이다.
“왜 졌을까?”를 묻는 사람들은 문재인이 뭘 잘못했기 때문에 졌다는 전제를 깔고서 시작한다. “이겨야 할 선거였다”는 규범적 진술과 “질 리가 없는 선거였다”는 사실적 진술을 지속적으로 혼동한다. 이렇게 혼란스럽게 들뜬 눈으로 마녀사냥에 나선다. 그리하여 박근혜를 찍은 1577만 표 가운데 아무데서나 임의로 108만 표를 골라, 그 표 때문에 문재인이 졌다고 우겨댄다.
문재인이 이길 수도 있었던 선거였는데 졌다고 말하려면 승패를 가른 108만 표 가운데 적어도 55만 표는 원래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어떤 상황적인 요인 때문에 박근혜로 선택을 바꿨다는 진술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박근혜로 선택을 바꾼 사람들”의 집합은 일단 매우 추상적인 집합이다. 이들이 인구통계학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단, 특정 지역이나 특정 세대에 이들이 몰려 있으리라는 추정을 전제로 삼고 시작해서는 진상에 접근할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은 1577만 명이지만 이 가운데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 1577만 명이 누구였는지도 사실은 샅샅이 찾기는 불가능한데, 그 중에서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도대체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이에 답하려면 그 전에 방법론적 성찰을 하나 거쳐 가야 한다. 산술적으로 도식화한다면 1577만 명 가운데 문재인 쪽에 가장 가까운 순서로 최소한 55만 명을 추려낸다는 말이 되는 데, 애당초 “문재인 쪽에 가장 가까운 순서”라는 것을 도무지 어떤 척도로 잴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자문하면서 찬찬히 생각해보면, 1577만 명 가운데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확률이 가장 높았던 순서로 최소 55만 명을 추려낸다는 일은 곧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잠재적 지지층으로 잡아서 설득하고 호소해야 할지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과업과 분리될 수 없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민주당을 포함한 민주진보개혁 세력은 이와 같은 전략적 선택을 위해 지혜를 모았어야 했는데 이를 해내지 못했다. 앞으로 당장 4월에 재․보선이 있고,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국회의원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등등, 줄줄이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부동층 가운데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제를 가지고 호소해야 할지 기본적인 전략의 원칙을 고안해내야 한다. 아울러, 부동층 즉, 산토끼를 잡기 위해서 고정 지지층 즉, 집토끼를 소외시키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다음 두 가지는 분명해진다.

첫째, “종북” 프레임에 빠져 있는 유권자보다는 그런 프레임과 상관없이 자기 나름의 분별력을 갖춘 사람들을 과녁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친노” 프레임 역시 마찬가지다. 친노가 싫어서 박근혜를 찍은 사람이라면 애당초 노무현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을 찍을 확률이 낮았다고 봐야 한다. 아울러 노무현이 싫어서 박근혜를 찍을 정도라면 애당초 한국 사회에서 민주진보개혁의 필요를 별로 못 느끼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분명해지면 아울러 마지막 세번째 요점도 분명해진다.

셋째, 이번 선거를 주도한 실질적인 의제는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 그리고 복지사회건설을 통한 성장동력 확충이었다. 이 의제들의 파괴력은 4월 총선때부터 박근혜가 표절해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 정도였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의제들을 민주진보개혁 진영에서 부르짖고 박근혜는 단지 제목만 표절함으로써 내용을 희석시켰는데 왜 박근혜가 당선되었느냐는 대목이다.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박근혜를 선택한 사람들”은 바로 이 부근에 위치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 복지를 통한 성장 등의 의제에 주목하고, 이런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박근혜보다 문재인의 진정성이 높다는 사실도 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왜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찍을까?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뜻하는 대로 개혁을 성취할 힘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심적인 원인이고, 이것을 고치는 것이 곧 한국 사회의 민주화, 정상화, 공정화에 해당한다.
당장 국회 과반수가 새누리당인데다가, 언론, 관료제, 검찰, 학계, 그리고 자본 등, 구조적 권력이 일방적으로 문재인에게 불리하다. 노무현 정권 때 실제로 목격했듯이, 민주진보개혁 진영이라는 것은 합심해서 뭉쳐도 기득권에 대항하기가 버거운데,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을 서로 높여보려고 정신없이 물어뜯고 싸웠다. 민주니 진보니 개혁이니 떠들지만 결국 각자 사춘기 수준의 자기현시욕일 뿐이고, 그 때문에 기득권 구조의 타파는 고사하고 도리어 기득권의 강력한 장벽 앞에서 무너질 뿐이다. 이 구조를 고칠 힘이 민주당에게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이 무슨 그럴듯한 정책을 내놓아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직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민주당은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말로 떠들어댈 줄은 아는지 몰라도, 사회를 민주진보개혁적으로 바꿀 역량이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이것은 민주당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고, 소위 “원로 그룹”을 포함한 시민운동가 그룹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그래도 48%의 유권자는 문재인을 지지했다. 집권해서 변화를 추동해낼 역량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일단 기회를 줘볼 가치는 있다고 본 사람들이다.
그러나 1577만 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불쌍해서 표를 준 사람도 있고, 박정희가 위대하다고 생각해서 표를 준 사람도 있고, 박근혜로 대표되는 기득권에 자기가 속하기 때문에 표를 준 사람도 있고,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안보가 불안할까봐 표를 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1577만 명 가운데 이런 사람들은 앞으로도 민주진보개혁 진영에 표를 줄 확률이 별로 높지 않다.

경제민주화, 평화, 복지에 찬성하지만, 문재인은 기득권을 누를 힘이 없기 때문에 그 일을 해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가 물타기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박근혜는 공약을 지킨답시고 흉내라도 내는 척을 할 테고, 이에 대해 기득권이 대놓고 저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의 정책에 진정성이 있지만, 어차피 기득권의 저항 (그리고 민주진보진영 과격파의 불만) 때문에 박근혜가 시늉내는 정도의 성과도 없이 정치판이 싸움판으로 전락할 바에야 차라리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와 진보와 개혁을 입에 담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런 사람들을 주목하고 이런 사람들의 의견과 정서를 존중해야 한다. 

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이들이 의심하지 않을 정도의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 전에는 민주당 그리고 안철수까지 망라하더라도 범진보세력이 집권할 가망은 별로 없다. 
패인분석이라는 미명 아래 책임전가와 권력투쟁과 마녀사냥에 몰두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책임전가와 권력투쟁과 마녀사냥이라는 사실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권이 박정희와 전두환과 이건희를 숭배하는 폭력적 속물들의 집권에 비해서 왜 나은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선호할 이유를 심어줘야 하는 것이다.

박동천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webmaster@pressbyple.com

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MB표 성형수술...사진 보니 더 '끔찍'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2-14일자 기사 'MB표 성형수술...사진 보니 더 '끔찍''을 퍼왔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4대강 총정리①] MB와 새누리당이 파괴한 국토현장

▲ 강을 재탄생 시킨다며 4대강에 22조 원을 퍼부은 이명박 대통령. 과연 어떻게 재탄생되었을까요? 오늘은 MB표 재탄생 작업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4대강의 아름다움들을 총정리했습니다. ⓒ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이 단 2년 만에 강을 재탄생시키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두고 안창호 선생이 주창한 국토개조의 실현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대통령 혼자 힘으로 국토개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날치기로 예산을 통과시킨 새누리당의 전폭적인 지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 야당의 반대를 힘으로 제압하고 4대강 사업 예산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새누리당입니다. 새누리당은 4대강을 파괴한 일등공신입니다. ⓒ SBS뉴스 캡쳐

강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산을 휘감고 흐르는 맑은 물, 햇살에 반짝이는 금빛 모래, 경쾌한 여울, 여유롭게 오가는 물고기, 물을 박차며 뛰어오르는 철새들의 비상, 많은 생명을 품어주는 버드나무와 바람에 춤추는 갈대... 이렇게 강은 모든 것들의 총합입니다. 이 중 하나만 없어도 강은 허전합니다. 

국토파괴를 향한 MB와 새누리당의 집념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22조 원이나 퍼부어 강을 어떻게 재탄생시켰을까요? 날치기 등 새누리당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4대강 사업이 완공되었고, 드디어 그 위력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녹조라떼'를 넘어 오색 곤죽의 물빛과 물고기 떼죽음이라는 놀라운 장관이 연출됐습니다. MB표 재탄생 작업 결과, 4대강은 맑은 물과 금빛 모래, 여울과 철새들의 비상 등 거의 모든 게 사라지고 썩은 물 가득한 수로가 되었습니다. 

▲ 놀라운 MB표 4대강 재탄생 작업의 위력입니다. 오색 곤죽과 물고기 떼죽음이라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윤성효.정수근

이 대통령은 어떻게 강을 살렸기에 4대강이 물고기 떼죽음과 오색 곤죽 범벅이 되었을까요? 지난 2년 동안 이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혼신의 힘을 다해 국토개조한 현장을 사진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낙동강 700리 중 제1비경으로 소문난 경천대입니다. 맑은 물, 금빛 모래, 기암절벽이 어울린 절경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낙동강의 제1비경도 4대강 광란의 삽질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 낙동강 700리 제1비경 경천대가 처참히 파괴되었습니다. 누가 이를 강 살리기라고 말할까요? 4대강 사업은 국토파괴 범죄입니다. 새누리당은 국토파괴의 공범입니다. ⓒ 최병성

▲ 하늘이 빚은 이 아름다운 곳을 MB와 새누리당이 혈세 22조 원을 퍼부어 파괴하였습니다. 국토 파괴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합니다. ⓒ 경천대 홍보지.최병성

낙동강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곡 왜관철교가 있습니다. 드넓게 금빛 모래가 펼쳐지고 맑은 물이 흐르던 곳입니다. 그런데 4대강 사업 덕에 근대문화유산인 칠곡 왜관철교가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저는 이 다리가 무너졌다는 뉴스를 듣고 놀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2년 전에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다리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4대강 사업은 국토파괴요, 문화재 파괴의 범죄입니다. 

▲ 맑은 물과 금빛 모래 가득한 낙동강에 자리한 근대문화유산 칠곡 왜관철교였습니다. 그러나 모래 파먹는 귀신 4대강 사업 탓에 사진 속 칠곡 왜관철교가 와르르 붕괴되었습니다. (위의 사진 빨강 동그라미가 붕괴된 다리입니다) ⓒ 최병성.정수근

영산강에서 제일 아름답기로 소문난 동섬입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작은 섬에 피어난 유채꽃이 그림같습니다. 버드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모여들던 영산강 제1비경답습니다. 

그러나 영산강을 재탄생시킨다는 이 대통령의 삽질 탓에 제1비경도 처참히 망가졌습니다. 사진작가들도 더는 영산강 동섬을 찾지 않습니다. MB표 재탄생 작업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줍니다.  

▲ 아, 이토록 아름답던 영산강 동섬...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누가 파괴한 걸까요?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토파괴의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 최병성

또 놀라운 건 영산강에 대나무 숲을 복원한다고 홍보하고선 영산강변 최고의 담양 대나무습지를 깔끔히 베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이 대통령은 도대체 뭘 살리겠다고 한 걸까요?

▲ 영산강변에 대나무숲을 조성한다더니, 보호해야 할 대나무습지를 처참히 파괴하였습니다.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쟁이 대통령이라니! ⓒ 녹색연합

다 망가진 여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맑은 물이 흐르는 한강 가운데 모래자갈밭과 여울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여울에는 견지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일년 내내 끊이지 않았고, 여름에는 수많은 피서객들로 붐비던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더는 발을 담글 수 없습니다. 이포보라는 거대함 댐이 들어선 탓입니다. 어른과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던 곳인데, 4대강 사업 탓에 훈련 중이던 군인 4명이 물에 빠져 사망하고, 공사하던 노동자가 얼음물에 빠져 죽고, 바로 근처 여주보에서는 배가 뒤집혀 어부가 사망하는 '사람잡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그림처럼 펼쳐졌던 한강입니다. 그러나 MB표 재탄생 작업으로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이포댐이라는 괴물댐이 들어서 아무도 강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물놀이하던 강이 어른들도 빠져죽는 죽음의 수로가 됐습니다. ⓒ 최병성

한강에 '금모래 은모래'라는 특이한 동네 이름을 지닌 곳이 있습니다. 강변에 펼쳐진 모래밭이 아름다워 여름이면 수많은 피서객이 모이던 서울 근교 최고의 피서지였습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이후, 죽음의 수로로 변한 이곳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 이곳은 금모래 은모래로 유명한 서울 시민들의 여름 피서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발을 담글 수 없는 죽음의 수로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MB표 강 살리기 작업입니다. ⓒ 4대강반대범국민대책위원회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초록 빛깔의 논이 그림 같습니다. 이곳에서 금강을 보면 시 하나 절로 나올 듯합니다. 그러나 광란의 4대강 삽질 덕에 텅 빈 콘크리트 자전거도로만 놓였습니다.  

▲ 이토록 아름답던 초록 물결은 어디로 사라졌나요? 그림같던 강변 농경지가 사라지면 강이 맑아지나요? 4대강 사업 후에 녹조라떼가 만들어졌을 뿐입니다. 사람이 찾지 않는 썰렁한 자전거도로와 잡초 천국으로 변한 금강입니다. ⓒ 최병성

금빛 닮은 금강을 파헤치기 위한 이 대통령의 수고는 참으로 눈물겨웠습니다. 밤낮을 잊은 건 물론이고, 얼음 꽁꽁 어는 추운 겨울도 이 대통령의 삽질 본능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임기 안에 완공하려면 겨울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 꽁꽁 언 금강을 아낌없이 파헤치는 MB표 강 재탄생 작업입니다. 추운 겨울에 왜 그랬을까요? 이명박 대통령 임기 안에 공사를 마치기 위해선 추운 겨울에도 밤낮없이 파야했습니다. 그 덕에 수많은 인부들이 사망했습니다. 지금 4대강엔 사망한 인부들의 피울음이 흐릅니다. ⓒ 최병성

해마다 11월이면 흑두루미가 쉬어가던 낙동강 본포의 모래밭입니다. 새 꼬리처럼 길게 뻗은 모래밭은 제 가슴에 감동으로 밀려왔습니다. 아직도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답던 모래밭은 이 대통령의 삽질에 사라졌고, 지난 여름 이곳에서 '낙동강 녹조라떼'가 처음 시작됐습니다.   

▲ 그림처럼 아름다워 내 가슴에 감동으로 밀려오던 이 곳, 그러나 이젠 가슴 속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제 흑두리미는 어디에 앉을까요? 이렇게 모래 파내 낙동강이 살아났나요? 녹조라떼가 되었을 뿐입니다. ⓒ 최병성

이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합심하여 만든 4대강 사업의 결과는 왜 오색 곤죽과 물고기 떼죽음일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강의 수질을 정화해주던 모래를 다 파내고, 그것도 모자라 강변 생태계를 유지하는 습지마저 깡그리 없앴기 때문입니다. 

▲ 오, 놀라워라! 이명박 대통령을 4대강 이발소 주인으로 임명합니다. 버드나무 우거졌던 강을 깨끗이 밀어버렸습니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까요? 이명박 대통령과 국토파괴 공범 새누리당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 최병성

사람도 피눈물... 이젠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MB표 4대강 사업 탓에 강물만 피눈물 흘린 게 아닙니다. 4대강 사업으로 여의도 면적의 21배가 넘는 농경지가 사라졌습니다. 강변 농경지가 수질 오염의 주범이라며 강변에서 농사짓던 농민들을 몰아냈습니다. 그러나 4대강은 오히려 녹조라떼라는 엄청난 재앙으로 변했습니다. 4대강엔 하루 아침에 삶터에서 쫓겨난 농민들의 통곡과 피눈물이 흐릅니다.  

▲ 단 하나의 마늘이라도 건져보려는 농민이 4대강 삽질 아래서 망연자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라진 농토가 여의도 면적의 21배에 이릅니다. ⓒ 한겨레신문.정수근

▲ 5년 내내 서민을 위한 정부라고 말하던 이 대통령과 새누리당입니다. 하지만 서민들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가 이들의 피눈물을 멈추게 할까요? ⓒ KBS추적60분

산과 강이 만나 서로를 보듬고 흐르는 풍경은 하늘이 준 선물입니다. 강은 탐욕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건설업자들의 주머니만 채우는 4대강 개발 이윤보다, 잘 보존된 강은 다음 세대를 위한 더 큰 희망이요, 미래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세계 문화유산이 되는 세상에선, 흐르는 생명의 강이 큰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새 시대는 '개발'이 아닌 '보존'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합니다. '삽질 만능'의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새 시대를 열 수 없습니다. 자연이 살아 있던 4대강은 미래 세대에게 무한한 가능성이었습니다. 결국 생명의 강을 파괴한 4대강 사업은 국가적 손실이요,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간 잘못된 일입니다. 또 미래 세대의 희망을 파괴한 범죄입니다. 

제5공화국의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을 살생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생명의 강을 처참히 도륙했습니다. 

이제 4대강을 다시 흐르게 해야 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고, 모래 위에 건설한 댐에 가둔 물은 거대한 물폭탄이 되어 상상 못할 재앙으로 인간에게 돌아옵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국민들은 4대강의 수문을 열고, 4대강을 다시 흐르게 할 초록 대통령에게 소중한 한 표를 선물해야 합니다.   

▲ 여기 후보들 중 누가 4대강의 눈물을 닦아주고, 생명의 강을 다시 흐르게 할까요? 4대강을 다시 흐르게 할 초록 대통령을 찾습니다. ⓒ 최병성

덧붙이는 글 | MB표 4대강사업이 초래할 재앙과 거짓말에 대해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오월의 봄)에 상세히 밝혀놓았습니다. 4대강을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4대강 죽이기에 대해 보다 더 많은 진실을 알아야합니다.

최병성(cbs5012)

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2시간 넘게 기다려 한 표... 노량진 수험생들 투표소 집결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2-13일자 기사 '2시간 넘게 기다려 한 표... 노량진 수험생들 투표소 집결'을 퍼왔습니다.
[한컷뉴스] 뜨거운 부재자투표 열기... 선관위 직원 "밥 먹을 시간도 없다"

▲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첫날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청 지하1층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된 가운데, 대부분 20~30대인 젊은 유권자들이 구청 정문밖에까지 길게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 한 수험생이 '민사소송법령 해설집', 책받이, 실내화와 함께 투표에 필요한 부재자 투표용지와 신분증을 들고 줄을 서 있다. ⓒ 권우성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운 노량진 수험생들이 투표소에 집결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부재자투표가 시작된 13일 투표소가 마련된 서울 동작구청에는 지하 1층 투표소부터 계단, 복도, 주차장을 지나 정문 밖에까지 긴 줄이 만들어졌다. 특히, 한때는 2시간 넘게 기다려 투표를 해야 할 만큼 투표 열기가 뜨거웠다.

이날 현장에 온 유권자들은 20-30대로 특히 20대 수험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간혹 인근 부대 군인들과 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동작구선관위 탁덕균 사무국장은 "최근 총선 등 몇차례 선거때를 보면 투표소 앞 복도까지는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구청 밖에까지 줄을 설 정도로 많이 온 것은 처음 봤다" 며 놀라워했다. 

또다른 선거사무원은 "기표소를 4개에서 9개로 늘렸지만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는다, 밥 먹을 시간이 15분도 안됐다"며 기자에게 "지금도 밖에 사람들이 많냐?"며 되묻기도 했다.

부재자투표는 13일과 14일 이틀간 실시되며, 투표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첫날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청 지하1층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된 가운데, 대부분 20~30대인 젊은 유권자들이 구청 정문밖에까지 길게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 한 부재자 투표자가 투표용지가 든 봉투를 비춰보고 있다. 인터넷에는 부재자 투표용지 봉투를 밝은 빛에 비추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알 수 있다는 사진과 글이 올라오고 있다. ⓒ 권우성

▲ 지하1층 부재자투표소로 내려가는 계단도 유권자들로 가득하다. ⓒ 권우성

▲ 동작구청 지하 1층에 차려진 부재자 투표소 입구. ⓒ 권우성

▲ 젊은 유권자들이 기표소에서 나와 투표함에 봉인된 부재자투표 봉투를 넣고 있다. ⓒ 권우성

▲ 기표소를 4개에서 총 9개로 늘렸으나 구청 밖으로 이어진 유권자들의 대기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 권우성

▲ 한 할머니가 어린아이를 업고 기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권우성(kws21)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대통령선거,알권리,참정권 제한,


이글은 대자보 2012-12-05일자 기사 '이상한 대통령 선거'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국민의 알 권리와 참정권 제한해도 논란이 없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이상하다. 유신독재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의 지지층이 철옹성마냥 견고하다. 1년 전에만 해도 정치참여를 극구 거부하던 문재인이 야권의 단일후보로 대선가도를 질주한다. 정치혐오-불신이 만들어낸 증후군이 안철수를 현실정치의 무대에 올렸지만 그는 중도에 맥없이 내려왔다. 하지만 박-문 양진영은 여전히 그의 입을 바라보는 형국이다. 역대 대선에서 최대의 쟁점은 정권심판론이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아예 증발됐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고 정치권이 합창했는데 한 순간에 실종해 버렸다. 이 모두 이상하다.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란 후광이 그를 만들었다. 그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유신옹호론이 고개를 들었고 그는 5⁃16 쿠데타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했다. 그것은 40년만에 유신논쟁을 불붙었다. 정수장학회, 장준하 타살의혹, 인혁당 조작사건 등등 유신망령이 되살아나자 그도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유신체제를 완강하게 옹호했던 그가 마지못해 사과의 뜻을 말했다. 험난한 난관이 그를 기다릴 것 같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순에 사라졌다. 박근혜의 지지층이 신앙적인 응집력을 과시하는 까닭이다. 

노무현 정권의 2인자 문재인.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달라는 끈질긴 설득과 회유를 뿌리치던 그였다. 4-11 총선에서야 친노세력의 옹립으로 정치입문의 문을 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권에 도전할 의지가 확고한지 의문이었다. 친노세력이 민주통합당을 접수하자마자 정치 초년생인 그가 당내 경쟁자들을 가볍게 제치고 하루아침에 유력한 대선주자로 우뚝 섰다. 야권후보로서 그와 백중세를 이루던 안철수의 전격적인 출마포기로 단일후보의 자리를 굳혔다. 이제는 박근혜와 그야말로 자웅을 겨눈다. 이 모두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났다. 

안철수 증후군은 정치혐오가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이다.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이 이상적인 정치인상을 그렸고 안철수가 그 근사치로 포착됐다. 언론의 몫이 컸다. 언론은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앞 다퉈 그를 여론조사에 끌어내어 높은 지지율을 확인하곤 했다. 그는 남의 입을 빌리거나 애매한 표현으로 대권의 꿈을 말하곤 했다. 마침내 높은 지지율이 그를 현실정치로 끌어냈지만 그에게는 그 벽이 의외로 높았던 모양이다. 후보단일화 협상중도에 돌연 출마를 접고 표표히 떠났다. SNS에서 그에게 쏟아지는 욕설-비방을 뒤로 하고 말이다. 그에게 정치쇄신이란 희망을 걸었던 지지자들을 허망하게 만들고 말았다. 

경제민주화가 선거판세를 결정할 기세였다. 저마다 전문가-교수들을 영입하여 전담기구를 꾸리고 쟁점을 선점하려고 서둘렀다. 재벌규제방안 몇 가지를 들고 재벌개혁을 외치는가 싶더니 경제민주화가 한 순간에 자취를 감췄다. 사상최대의 빈부격차, 폭발위기의 가계부채, 비정규직 양산과 청년실업, 집값하락과 전세대란, 막중한 사교육비와 출산율 저하 등등 산적한 민생현안은 선거쟁점에서 밀려났다. 금년 경제성장률이 2%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에서 장기불황이 예고되고 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선거쟁점에서 밀려났다.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이 정동영을 532만 표차이로 압승했다. 노무현 심판론이 이명박의 그 숱한 허물을 덮어버리고 묻지마 투표가 이어졌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정치행태는 한마디로 구체제로의 복귀다. 촛불탄압, 방송장악, 민간사찰, 정치검찰, 악법 날치기, 남북대치, 전방위FTA 등등으로 표출된 강압통치-불통정치는 국민적 저항을 불렀다. ‘747공약’은 추락하고 미래의 성장동력을 키워야할 재원을 4대강 바닥에 낭비해 잠재성장력마저 약화시켰다. 고환율정책은 재벌을 더욱 살찌우고 서민대중에게는 생활고를 안겨줬다. 잇따른 친인척-측근비리에다 내곡동 땅, 맥쿼리 의혹, BBK 의혹 등등 비리의혹이 악취를 풍긴다. 하지만 이명박 심판론은 무풍지대에서 잠자는 형국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국민이 보이지 않는다. 마침 미국 대통령선거가 TV토론의 위력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할 양자토론을 볼 수 없다. 공식토론회도 3차례의 3자토론에다 반론을 금지한 문답방식이다. 양자토론을 거부하는 박근혜는 그래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사회구조의 복잡화로 투표시간 오전 6시~오후 6시에 근무하는 직종-직장이 많다. 대도시의 광역화로 출퇴근시간이 4시간 이상 소요되는 노동자들도 많다. 이런 사회변화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투표시간 연장을 반대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국민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데도 큰 논란이 없는 이상한 선거다.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법륜스님의 <쟁점을 파하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 2012-11-23일자 기사 '법륜스님의 (쟁점을 피하다)'를 퍼왔습니다.

법륜 스님 사진 류우종 기자

우리는 전쟁 중이다. 휴전선만이 아니다. 4대강에서도, 제주 해군기지 강정마을, 쌍용차 문제에서도. 이런 갈등 현장에 대해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지식인들조차 직시하기보다는 사팔뜨기 행세를 하는 동안 문제는 꼬여간다. 상처는 깊어지고 사람이 죽어간다. 그러나 ‘뜨거운 감자’에 손댔다간 멀쩡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수구꼴통’이나 ‘빨갱이’가 될 수 있다며 쉽사리 나서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법륜(59) 스님이 우리 사회의 환부를 수술대 위에 올렸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미래구상’이란 부제를 단 란 책에서다. (스님의 주례사)가 결혼을 앞둔 남녀의 궁금증에, 이 자녀 양육과 교육에 대한 엄마의 질문에 각각 응답해 개인적인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라면, 이 책은 ‘세상’에 대한 고민을 끌어내고 있다.

 법륜 스님은 붓다가 중생들의 질문에 답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문답식 강연을 되살려 ‘즉문즉설’ 열풍을 불러온 주인공이다. 즉문즉설에서 어떤 질문에도 답을 회피하지 않은 그답게 이 책에선 갈등 현장뿐 아니라 비정규직, 재벌세습, 성장과 분배, 교육, 남북문제 등 첨예한 사회 현안을 정면에서 다뤘다. 


지난 16일 인터뷰를 하러 그를 찾아간 곳은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20층이었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평화재단이 유력한 세 대선 후보 진영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을 부른 토론회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바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가 세 시간째 청중석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토론 뒤 마무리말을 했다. “40여년 전 한·일 국교정상화 때 반대가 많았다. 한국전쟁 때 북한을 도운 중국과 국교를 열 때도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면 아직까지 일본이나 중국과 국교도 열지 않았다면 어찌 됐겠는가. 남북문제도 그렇다. 북한에 악감정도 있고, 많은 문제도 있지만, 그렇다고 단절해 버린다면 우리 민족의 내일을 열 수 있을 것인가.”

 그 순간 200여명의 청중석에선 토론 때의 찬반 논쟁을 넘어서는 남다른 파장이 흘렀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 최선임을 충분히 감지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궁금증을 물어야 하는 건 기자의 숙명이다. ‘왜 스님이 세상 일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는 첫 질문에 그는 “왜 암탉이 설치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응수했다. 개인적 고민이건, 세상사에 대한 문제건 사람들의 고통에 응답해 해소해 주는 게 종교인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그의 답변은 정토회를 창립한 이후 지난 20여년간 구호단체 제이티에스와 좋은벗들 등을 통해 인도·필리핀·북한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쉬지 않고 도와온 활동이 뒷받침해 준다. 

 우선 쟁점에 대해 어떻게 깊이 있는 현안 파악이 가능했을지가 궁금해진다. ‘내 편, 네 편’ 이란 편견 없이 당사자들의 말을 허심탄회하게 경청하지 않고서는 얻기 어려운 이해력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문제를 푸는 접근 방식이다. 책 표지 바탕에 깔린 ‘화쟁(和諍)’이 바로 열쇠다. 화쟁은 삼국통일 뒤 신라에서 서로 부딪치게 된 쟁점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고승 원효가 주장했던 것이다.

 “서울로 가는 방향을 물을 때 인천 사람은 동쪽이라고 하고, 수원 사람은 북쪽이라고 한다. 표현이 다르다고,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가 선 위치와 관점에 따라 같은 사안도 다르게 볼 수 있다. 나와 다르다고 무조건 틀렸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출발하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해도 차이점을 인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으로 싸우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화쟁이 가능할까. “그렇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달라진다. 후보들은 모두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내놓은 평화·통일·경제민주화·공정·복지 등의 공약에서 공통점이 많다. 공통점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입법화·제도화해야 한다. 그러면 세 후보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인들에겐 ‘결과’만 관심거리지만, 그는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짓느냐 짓지 않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어떤 결정이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처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난 추석 다음날에도 강정마을에서 찬성파와 반대파를 한데 모아 그가 잔치를 벌여준 것도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승리가 아니라 ‘함께 사는 것’임을 깨우쳐주는 행보였다.

법륜스님이 지난 8월 22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내일을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마련한 초청강연에서 ‘시대정신과 대통령 선거’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창광 기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지난 8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북한 긴급 수해 지원 및 북한 어린이돕기 범국민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법륜 스님(평화재단 이사장, 앞줄 왼쪽 둘째)이 국민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이정아 기자

대선 정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시각도 남다르다. 한쪽에선 부자의 재산을 뺏거나 재벌을 해체하려 들고 재벌은 이에 극력 반발하는 대립 구도와는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불황이 오면 약자들이 가장 고통을 받기 때문에 여유 있는 이들이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 자기 권한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인도 세비를 깎으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세를 보여야 불황기의 한시적인 부자 증세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성장 동력도 떨어진다. 부자도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존경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부자들이 전체 이익을 위해 나설 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나라가 된다.”

 화쟁은 찬성과 반대의 중간이 아니다. 옳은 것을 지향한다. 그래서 스님은 누구나 알면서도 이해 당사자들의 옹호에 휘둘리는 쟁점에 대해선 날선 원칙론을 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북한 이탈주민들을 꾸준히 도와온 그가 그들을 이민자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의외다. 그는 “이민자와 다른 특별대우가 남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사회 적응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식도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시장에 혼란을 막도록 조율하지 않으면, 재벌은 적극적으로 통일을 원하고, 남한 노동자들은 목숨 걸고 통일에 반대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륜 스님이 보는 이 시대 화두는 “안으로는 양극화 해소, 밖으로는 통일”이다. 누구라도 시대 정신을 읽지 못하고선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으리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스님은 사람들의 내적 고통을 덜어주고 세상의 희망을 열기 위해 지난 1년 내내 ‘즉문즉설’을 해왔다. 모두 300회의 이 ‘희망 만들기 콘서트’는 △25일 오후 2시 부산 벡스코 △26일 오후 7시 대구 엑스코 △27일 오후 7시 창원 세코 △29일 오후 7시 경희대 편화의전당 등 이제 4회만 남겨두고 있다.

 그는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희망 만들기 콘서트’를 북한의 시·군·구에서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획을 바꿔 북한의 모든 시·군·구에 옥수수 100톤씩을 보내줄 작정이다. 북한동포들에겐 즉문즉설보다 먹을 것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프니 그가 아프다. 그래서 그는 늘 고통 받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고통스런 사람과 현장을 회피하고 고통을 줄여줄 수는 없다. 쟁점을 회피하고 쟁점을 타파할 수도 없다. 그가 우리의 용기를 이끌어낸다. ‘쟁점 속에 뛰어들어야만 생채기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법륜 지음/한겨레출판·1만1500원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2012년 4월 21일 토요일

박원순 "세상은 우리가 달라진 만큼만 변한다"


이글은 시사인 2012-04-21일자 기사 '박원순 "세상은 우리가 달라진 만큼만 변한다"'를 퍼왔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면 지원할 뜻이 분명히 있음을 피력했다.

박 시장은 이날 서울대에서 강연을 한 뒤 가진 학생들과의 대담에서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하면 응원하겠느냐'는 질문에 "안 원장님이 저를 확고히 도와 주셨으니까 저도 확고히 지원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서울시장이기 때문에 유세를 다니겠느냐"며 "지원의 방법은 제약돼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래도 당연히 고민해야 한다"며 "의리는 중요하다"고 말을 이었다.


특히 "저는 기술보다 사람의 비전과 원칙, 철학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런 면에서 안 원장은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충분히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자신이 대선에 나갈 계획은 없느냐'는 물음에는 "저는 정치인이 아니어도 할 일이 적지 않게 있고 이 영역에서 최선은 다하고 볼 일이지만 이런 것을 내팽개칠 생각은 없다"며 말을 돌렸다.

아들의 병역 문제를 제기했던 강용석 전 의원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박 시장은 "고마운 존재"라며 "제가 뭐라고 한 적 없었는데 혼자 얘기하고 혼자 나가 떨어지곤 저에게 스나이퍼라고 하고"라고 평했다.

시민운동가들이 현실정치에 뛰어드는 것을 두고 '소는 누가 키우느냐'며 던진 '애교' 섞인 물음에는 "빛도 이름도 없는 길이지만 가장 보람있는 길이라고 했으니 희망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민운동을 할 때와 시장이 된 후의 차이점에 대해선 "재야에서 움직이는 것은 느리지만 본질적인 것이고 공공에서는 제도적인 것을 빠르게 바꿀 수 있다"며 "제 작은 결정이 세상이 바꾼다"고 말했다.

9호선 요금 인상 파문과 관련해서는 "(서울시메트로9호선㈜가)쪽박을 쓰게 됐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 이유로는 "올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동의를 거쳐서 갔으면 이렇게 안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형 주택 비율 확보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개포재건축에 대해서는 "공공의 기여, 공공의 관점으로 봐야한다"며 의지를 분명히 했다. 

임기 중 꼭 해야겠다는게 있느냐는 물음엔 "지금은 이전 시장들이 한 것 치우기도 바쁘다"며 "요란하게 뭘 하기 보다는 서울시가 당면한 현안을 꼼꼼히 하고 싶다"고 답했다.

한편 박 시장은 이날 대담에 앞서 '공생과 상생의 가치'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세상은 우리가 달라진 만큼만 변화한다"며 "나를 위해서가 아닌 우리를 위해서 변화를 꿈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은 서울대 인근 인문사회과학전문서점 '그날이오면'과의 인연 덕에 성사됐다. 박 시장은 "'그날이오면'이 주최하는 강연에 서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려 강연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2012년 4월 7일 토요일

[사설]투표권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침해해서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2-04-06일자 사설 '[사설]투표권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침해해서야'를 퍼왔습니다.
근대 민주국가에서 시민들이 공직자를 뽑는 의사결정 절차인 선거는 민주정치, 나아가 민주주의 그 자체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나 총선이 있는 날은 법정공휴일로 지정하고, 각급 선거가 있을 때마다 선거관리위원회나 언론매체 등이 투표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시민의 투표권 행사를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경우가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 4·11총선을 맞아 민주노총이 접수하고 있는 투표권 침해 e메일 제보의 내용을 보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기업들이 선거일 정상근무 방침을 정했는가 하면,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서비스 업체들과 택배 등 운수업체 등도 선거 당일 출근 지시를 내림으로써 투표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공개한 제보는 “10년 동안 근무하면서 선거일에 쉬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개탄하는 것에서부터 “투표일 전일 근무시키는 나쁜 인간들” 등 사업주들을 비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고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들을 담고 있다. 

투표권을 침해하는 곳은 사업체들뿐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로 유명한 경북 포항의 ㄷ고교 2학년생 305명과 교사 10여명은 총선 당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가 하면 경기도지역 14개 초·중·고교도 선거일을 끼고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떠난다고 한다. 또 인천의 몇몇 학교는 교직원들과 전·현직 학교운영위원들이 야유회를 갖거나 학생들을 등교시켜 자율학습을 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사를 갖는 것은 교사들의 투표권을 박탈한다는 점 외에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즉 학생들에게 ‘선거일은 놀러가는 날’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참정권을 왜곡하고, 민주시민의 소양을 길러준다는 학교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선 사업장에서 투표권 침해가 근절되지 않는 까닭은 노동자들의 권리에 둔감한 사업주들의 전근대적인 의식과 감독관청의 안이한 자세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근로기준법 10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 선거권이나 그 밖의 공민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할 수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과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일단 출근한 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투표하고 올 테니 시간을 달라’고 하기는 어렵고, 그런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사업주를 고소·고발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따라서 사업체들은 가능한 한 선거일은 법정공휴일로 지정한 취지에 따라 휴무를 하고, 불가피하게 정상업무를 할 때는 종업원들의 투표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사업체는 당연히 법에 따라 조처해야 한다. 직장과 학교에서 투표권을 보장하는 것은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2012년 1월 5일 목요일

‘방송 장악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지상파방송 3사의 행태


이글은 미디어스 2012-01-04일자 기사 '‘방송 장악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지상파방송 3사의 행태'를 퍼왔습니다.
최근 목도하고 있는 지상파방송 3사의 행태는 여러 고민을 하게 한다. ‘이 정권 아래에서 이뤄진 방송 장악의 후유증이 이렇게까지 오는 구나’ 하며 이해해 보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방송 장악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방송 장악 이전부터 이들 지상파방송 3사 안에 면면히 흐르는 유전자가 작동한 것이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오는 1월15일에는 민주통합당 전당대회가 있다. 민주통합당의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행사다. 그때까지 여러 지역을 돌며 합동 연설회와 텔레비전 토론회가 열린다. 1월4일에는 광주에서 처음 열렸다. 이 행사들은 올해 4월과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제1야당의 지도부를 결정하는 자리다. 충분한 뉴스 가치가 있는 것은 물론, 정권교체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민주통합당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유권자들에게 제공하는 차원에서도 보도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난 1월3일부터 KBS, 서울MBC, SBS의 국회 출입기자 책임자들이 민주통합당의 이런 행사들을 중계하지 말자는 식의 작당과 모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처음 접한 순간, ‘쟤들이 조중동 하고 다를 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이해에 맞지 않는다고 국민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저들의 행태가 필자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전파를 사용한다는 저들 방송이 저렇게까지 막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KBS는 미디어렙법안에 엎어서 수신료 인상까지 처리해 달라고 생떼를 쓰기 위해서다. 서울MBC는 미디어렙법안 입법을 무산시켜 자신도 직접 광고영업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자회사 미디어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기 위해서다. SBS는 미디어렙법안 입법을 무산시켜 SBS미디어홀딩스가 지배하는 렙을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일 게다.
이런 참혹한 행태를 접하며 필자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품고 있던 의문에 대한 일정한 답을 얻는 소득이 있었다. 그 의문은 ‘어쩌면 저렇게 많은 지상파방송 구성원들이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는 말을 아무런 개념도 없이 저렇게 남용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었다. 직접수신률 10%도 채 안 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저렇게 버젓이 ‘지상파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불편해 하던 필자의 의문이 풀린 것이다. ‘그래 쟤들은 개념이 없고 오로지 눈앞의 이익만이 전부인 거야’라는 게 필자가 얻은 해답이다.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거기에 얼마나 많은 책임이 따를 것인지, 이를 위해 지상파방송 내부 구성원들의 상당한 희생을 수반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심각하게 말하면, 그저 지금까지 ‘배부른 돼지 ××들’의 꿀꿀 대는 소리만 있었을 뿐이라고 필자에게는 다가온다. 그들에게 ‘무료 보편적 서비스’는 옆집 동네 강아지 이름 정도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기가 소속된 방송사의 이해와 맞지 않다고 반드시 해야 할 보도를 하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방송사이기를 포기하는 행태다. 조폭 양아치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없다. 이쯤 되면 갈 데까지 간 것이다. 국회에서 하는 일이 방송사의 이해와 맞지 않을 때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을지 개탄스러울 뿐이다.
감히 단언하건대, 현재 지상파방송 3사의 카메라는 그것이 여러 대 등장하건 한 대도 안 등장하건 ‘사회적 흉기’로 변질됐다. 이런 공갈과 협박에 굴복하지 말아줄 것을 국회에 당부 드린다. 5일 문방위 전체회의와 10일 본회의에서 반드시 미디어렙법안을 입법해 주실 것을 요구한다. 단, 더 이상 법안을 훼손하지 말아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왜 법안을 만들려고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유가 있는 법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걸출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하며 18대 문방위 의원들에게 ‘그래 미디어렙이란 규제는 우리가 유지 존속시켰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유종지미’를 거둬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대의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열정이 우리를 정치가로 만들 수 있으려면, 그것은 헌신과 동시에 바로 이 대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열정이라야 하며, 더 나아가 이런 책임의식이 우리의 행동을 주도하도록 만드는 열정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균형 감각이며, 이것은 정치가의 매우 중요한 심리적 자질입니다. 균형 감각이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곧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입니다. ‘거리감의 상실’은 그것 자체로서 모든 정치가의 가장 큰 죄과 가운데 하나입니다.”(막스 베버, [작업으로서의정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