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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일 월요일

통일을 부담으로만 보는 까닭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02일자 기사 '통일을 부담으로만 보는 까닭은…'을 퍼왔습니다.
[특별 기고] KDI의 통일비용 산출에 대해

지난 12월 1일, KDI가 통일비용과 관련된 보고서를 발간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북한경제 리뷰: 남북통일을 위한 재정조달'이라는 보고서라고 한다. 언론(연합뉴스 12월 1일자)이 보도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통일이 되면 북한주민들의 기초생활 보장 때문에 정부지출이 지금의 10배로 늘어나고, 북한주민 의료비 때문에도 GDP 2∼3%의 추가지출이 필요해진다. 결과적으로 정부부채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날 수 있다. 민간부문만으로는 통일재원을 모두 조달할 수 없기 때문에 증세가 불가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외 채권도 발행해야 한다."

연구보고서 내용이 언론이 보도한 대로라면, 우선 통일은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가지고서야 감히 통일을 꿈이라도 꿀 수 있겠는가? 이 기사를 읽으면서 김영삼 정부 시절 우리 사회가 '북한붕괴론 대두-흡수통일론 유행-경쟁적 통일비용 계산-통일공포증 만연'이라는 열병을 앓던 상황이 상기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30년 이상 통일문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몇 가지는 짚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풀려진 통일비용은 통일공포증, 통일기피증 심어준다

첫째, 통일비용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것이다. 통일비용, 이거 잘못된 전제 하에 잘못된 기준으로 계산하면 국민들에게 통일기피증, 통일공포증을 심어 준다. 연구자는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고 미리미리 대비하자는 취지에서 통일비용을 넉넉하게 계산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이 분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수가 있다. 분단이데올로기를 이론적으로 보강해준다는 뜻이다.

1990년대 초중반 난데없이 북한붕괴론이 나오고 흡수통일론이 유행을 하면서 학자들 사이에 통일비용 계산 경쟁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동독처럼 북한이 갑자기 붕괴한 뒤 통일을 위해서 '10년 동안 남한이 매년 얼마나 돈을 들여야 하느냐'라는 것이 당시 통일비용의 개념이었는데, 매년 GDP의 14∼15%를 북한에 투자해야 한다는 계산부터 그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계산도 나왔었다.

그 때 누가 이런 통일비용 계산의 군불을 지폈는가? 국내학자나 기관이 아니었다. 일본장기신용은행이었다. 그리고 GDP 14∼15%의 통일비용이 필요하리라는 것도 일본장기신용은행의 계산 결과였다. GDP 15%면 당시 우리나라 국가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친절하게도 한국의 경제능력으로는 힘이 부치기 때문에 일본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단서까지 달았었다.

여기에 뒤질세라 국내 학자들이 애국애족심을 발휘하다 보니 일본이 계산한 것보다 더 많은 통일비용이 언론에 경쟁적으로 보도된 적도 있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할 경우라는 전제하에 잘못된 기준을 적용하여 경쟁적으로 계산된 엄청난 규모의 통일비용은 그때부터 국민들에게 통일기피증, 통일공포증을 심어주면서 분단이데올로기 노릇을 했다.

이번 KDI의 연구보고서도 국민들에게 통일을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주기보다 통일공포증과 통일기피증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독자들도 보고서를 분석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통일비용에서 분단비용은 빼고, 통일편익은 보태야 한다

둘째, 통일비용 계산 방법에 관한 것이다. 과거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랬듯이, 통일 후 투자비용만 계산해놓고 그걸 통일비용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국민들은 통일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생각밖에 못하게 된다.

통일이 되면 분단상황에서는 지불하지 않던 추가비용이 당연히 나온다. 그런데 분단이 끝나서 그런 추가비용, '통일비용'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바로 그 순간부터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었던 비용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분단이 끝나면 '분단비용'이 안 나간다는 얘기다. 통일비용이 분단비용보다는 많을 수밖에 없지만, 분단비용을 통일비용으로 돌려 쓰면 '순(純)통일비용'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순통일비용이 진짜 통일비용이라고 해야 상식에 맞지 않겠는가?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데 있어서 통일비용과 분단비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통일편익이다. 우리는 지금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고 있다. 바꾸어 말해서, 통일된 국가였더라면 갖출 수 있는 위상과 국가경쟁력을 못 가지고 있다. 그런데 통일이 되면 누릴 수 있는 편익이 상당히 커질 것이다.

우선 인구가 7천만 이상이 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통해 통일한국의 국제경쟁력이 급상승할 것이다. 분단상황에서 분단비용을 지출해가면서 4천8,9백만의 인구로도 G-15반열에까지 올랐는데, 분단비용 더 이상 안 나가고 인구가 7천3,4백만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제경쟁력 있는 상품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수 있다. 더구나 TKR-TSR(시베리아횡단철도)과 TKR-TCR(중국횡단철도)을 통한 물류비 절감(시간상 선박의 3분의1 소요)으로 인한 수출품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북한의 지하자원과 노동력을 남한의 자본과 하이테크에다가 결합시키면 경쟁력 있는 상품이 추가로 개발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통일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두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 통일한국은 G-6, G-7반열로 올라갈 수도 있다.

앞으로 우리 학자들이나 기관이 통일비용을 계산하려면, 통일비용과 분단비용을 상계(相計)하는 것은 물론이고 통일편익도 계산해주면 좋겠다. 통일 후 실제로 지출되는 돈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모두 합산해서 제시하면 국민들이 통일을 두려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통일을 바랄 것이다. 왜? 지금까지 말한 방법대로 계산하면 '통일은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순통일비용과 통일편익은 각각 얼마나 되나

셋째, 수치로 보는 통일비용, 분단비용, 통일편익의 규모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통일비용 전문 경제학자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신창민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1990년대 초반부터 통일비용을 연구해온 분인데, 근년에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로부터 통일비용 연구 위촉을 받아 그 연구결과를 국회에 제출했다. 신 교수의 (통일비용과 통일편익)이라는 연구보고서의 핵심 수치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015년을 통일 시발점을로 삼고 그로부터 15년간 북한경제를 일으키면서 남북통합을 해나가려면 매년 GDP의 6.0∼6.9% 정도 비용이 투자되어야 한다. 한편 분단기간 중 지출되었던 GDP의 4.35∼4.65%에 해당하는 분단비용은 더 이상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분단비용을 통일비용으로 돌려 쓸 수 있기 때문에 순통일비용은 결국 년간 GDP의 1.65∼2.35% 정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통일 후 통일편익은 매우 클 것이다. 자본의 회임기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통일 직후부터 통일편익이 바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면 GDP가 년평균 11.25%씩 성장할 수 있다. 년 평균 GDP 성장률 11.25%에서 순통일비용인 GDP의 1.65∼2.35%를 빼면 년간 9% 전후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년 3∼4%대에 머물러 있던 점을 생각하면 통일의 편익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A) 통일비용 : 연간 GDP의 6.0~6.9%(B) 분단비용 : 연간 GDP의 4.35~4.65%(C) 순통일비용 : (A)-(B) = 연간 GDP의 1.35~2.55%(D) 통일편익 : 통일시 연 11.25% 성장(E) 순성장 : (D)-(C) = 8.7~9.9%*통일편익(D)에서 통일비용(A)만 빼는 방식으로 계산해도 (D)-(A) = 4.35~5.25% 성장 북한붕괴 쉽지 않고, 북한주민이 소비주체만은 아니다

끝으로, 통일비용을 계산할 때 범하기 쉬운 전제나 가정의 오류에 관한 것이다. 남북통일비용 계산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시작되었다. 사회주의 동독이 붕괴했다고 해서 북한도 붕괴할 거라고 전망하는 것은 일종의 '희망적 관측'이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오래 하다 보면 그렇게 될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북한붕괴론은 그와 유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외적으로, 북한에게는 동독의 후견국이던 소련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도 일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북한의 후견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은 날로 부국강병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 국가마다 체제붕괴 요인과 체제유지 요인이 함께 있는 법이다. 대내적으로, 북한에는 체제붕괴 요인도 있지만 체제유지 요인도 만만치 않게 강하다. 북한 붕괴를 쉽게 예단하는 건 정책적으로 현명치 않은 일이다.

통일비용 계산과정에서 통일 후 북한주민은 남쪽에 손만 벌릴 것처럼 전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잘못이다. 소비주체 중 상당수는 생산주체이기도 하다. 북한주민 전체를 통일한국 정부가 전적으로 먹여 살려야 한다고 전제하고 통일비용을 계산하면 되겠는가? 북한주민들의 노동력과 두뇌가 통일한국에 자산이 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통일 이후 통일비용을 사전에 줄여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길을 외면하고 엉뚱한 길로 돌아가려 하면서, 잘못된 전제와 잘못된 방법으로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프레시안

/정세현 원광대학교 총장, 전 통일부 장관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카드·집단대출 부실채권비율 최고치 찍었는데…‘아전인수’ 진단으로 느긋한 정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8-15일자 기사 '카드·집단대출 부실채권비율 최고치 찍었는데…‘아전인수’ 진단으로 느긋한 정부'를 퍼왔습니다.


가계빚 70% 고소득층·LTV도 50% 밑돌아 “위험 낮다"
KDI “취약가구 360만”…금융권도 “저신용자 489만명”
부채 상환 여력 계속 떨어져 ‘가계대출 부실화’ 심각

가계부채 문제는 한국 경제 내부의 가장 큰 악재다. 하지만 얼마나 심각한 악재인지, 또 해결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시각 차이가 크다.정부는 해결할 수 있다는 쪽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가계부채의 70% 이상은 고소득층 몫이고 가계의 자산이 부채보다 여전히 많으며, 담보인정비율(LTV)도 50%를 밑돌아 대규모 금융부실로 이어질 위험이 없다는 게 주요 근거다. 박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추가로 완화해도 가계부채는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며 “지난해부터 정부가 가계부채의 위험을 인식하고 상당히 통제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반면 학계와 금융시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빚을 진 가계의 원리금 상환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낙관과 우려의 엇갈림은 진단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최근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증가 원인과 지속가능성’이란 보고서를 냈다. 결론은 특별한 외부충격이 없으면 아직 크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한은의 이런 진단과 인식은 재정부와 거의 같다.한은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평균 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오이시디는 이미 2009년 기준으로도 한국의 가계부채가 회원국 평균을 훨씬 웃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뒤 3년 동안 한국의 부채 증가율이 30.1%로 세계 4위라는 보고서를 냈다. 또 2011년 기준 개인순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63.8%로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가계 쪽의 상환 여력은 계속 떨어져 대출 부실화가 빨라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15일 발표한 ‘국내은행의 6월말 부실채권 현황’을 보면, 가계대출 부실채권비율은 0.76%로 2006년 9월말 0.81% 이후 가장 높았다. 특히 집단대출의 부실채권비율은 1분기 전보다 0.16%포인트 증가한 1.37%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2010년 12월) 가장 높았다. 지난해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신용카드 부실채권비율도 1.61%로 200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돈을 꿔준 금융기관이 아니라 가계의 처지에서 살펴보면 가계부채의 위험은 더 심각하다.한은 보고서는 통계청의 2011년 ‘가계금융조사’를 근거로 부채상환능력이 없는 한계가구의 비중은 2.2%(38만 가구), 이들의 부채는 전체의 7.3%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했다. 한은은 ‘소득에서 부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40%를 넘고 동시에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경우를 한계가구로 분류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이런 기준의 한계가구 분류를 의아해한다. 은행의 경우 신용등급 6등급 이하면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큰 ‘부실가구’로 본다. 2011년 6월말 기준으로 6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는 489만명에 이른다.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전체 가계부채에서 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한 가구의 부채가 비교적 적더라도 부실 위험에 빠진 가구 자체가 많은 데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가계의 소비지출액보다 부채 원리금 상환액이 더 많으면 재무여력이 취약한 가구로 분류하면서, 이들을 전체 부채가구의 3분의 1 정도로 추정했다. 가구 수로는 약 360만이다. 대략 다섯집 가운데 한집꼴로 빚 부담 때문에 적자에 놓인 셈이다.더 심각한 문제는 저소득·저신용 계층일수록 시중금리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추정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전체 가계대출에서 은행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52.8%인데 가계의 이자 지출은 은행권(26조2000억원)보다 ‘기타 금융중개회사’(35조원) 몫이 더 많다. 그만큼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저소득·저신용 계층이 대부업체 등에 지불하는 이자 부담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가계부채 총량의 증가를 막는 동시에 저소득층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법은 내수경기 활성화와 가계의 소득기반 확장뿐이다.

박순빈 선임기자, 이재명 기자 sbpark@hani.co.kr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우리에겐 왜 그랜저검사·벤츠검사만 등장하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19일자 기사 '우리에겐 왜 그랜저검사·벤츠검사만 등장하나?'를 퍼왔습니다.
[기고] '검사장 직선제'를 주장하는 이유

최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검사장 직선제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부겸 최고위원도 당내 경선과정에서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최근 119특위를 통하여 재벌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유종일 KDI 교수 또한 검사장 직선제의 도입이 올바른 검찰개혁의 방향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법률소비자연맹의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국민지지율이 62%에 달한다. 필자 또한 이를 지지한다.

그렇다면 왜 '검사장 직선제'이어야 하는가?

먼저, 주장되는 '검사장 직선제'의 내용부터 말하자면, 전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 18석을 관할 주민의 직접 선출직으로 전환하며, 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검찰사무를 당해 선출직 지방검사장이 통할하게 하자는 것이 핵심골자이다. 이렇게 될 경우 중앙의 대검찰청은 지방검찰청 검사장 상호간 관할이 불투명하거나 경합이 있는 경우의 조정역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이 관할하기에 적합하지 않는 검찰사무(예컨대, 지검장관련 선거법위반사건이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회피하여야 할 사건)의 처리, 지방검찰청의 직무적정성에 대한 감찰사무 등으로 기능이 재조정될 수 밖에 없고, 존폐의 논란이 많은 중앙수사부도 자연 없어지게 될 것이다. 선출직 지방검사장은 그 보직과 임기가 보장되므로 대통령의인사권한에 예속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며, 나아가 관할청 소속의 검사들에 대하여 보직부여권 등 적정한 인사권을 가지게 되는 만큼 그 범위에서 개별 검사들 또한 대통령의 인사권으로부터 상당한 정도의 독립을 얻게 된다. 결국,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직접 책임을 지는 18개의 대등하고 독립한 검찰청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검사장 직선제'에 대하여 미국제도를 모방한 것이고, 이는 독일 등 대륙법체계에 따르는 우리나라의 시스템과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독일의 검찰조직을 보면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에 해당하는 16개의 주(州)별로 각각 독립하여 검찰이 조직되어 있는 한편 이들은 상호 대등한 관계에 있고, 이들 각 주(州) 검찰에 대하여 수상이나 검찰총장이 인사권이나 지휘권 등으로 관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검사장 직선제'의 도입을 통한 18개의 대등하고 독립한 검찰청에로의 변모야말로 우리 검찰시스템의 원형인 독일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영미법계이건, 대륙법계이건 보통의 민주국가에 있어서 감찰(監察)권력 내지 형벌법규의 집행을 위한 조사(調査)권력은 대통령이나 수상 등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다만 독립의 방법만이 각국의 역사적 전통에 따라 다를 뿐이다. 미국의 경우 지방검사장은 자신을 선출한 주민에 책임을 지며, 대통령이 간섭할 방법이 없다. 독일 이외의 또 다른 대륙법계 국가인 프랑스의 경우 수사권력은 '수사판사'에게 맡겨져 있다. 이들 '수사판사'들은 '판사'로서 본인의 동의가 없는 한 근무지 및 보직변경 등의 인사이동을 당하지 않는 한편, 그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정치권력에게 보고하거나 지휘를 받는 등의 간섭에서 자유롭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수사 및 기소권을 담당하고 있는 검사들이 행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사법부에 소속하며 철저한 신분보장을 받는다. 스페인 또한 수사권력은 법원에 속한 '수사판사'에 맡겨져 있으며, 스페인의 법제도를 따르는 남미(南美) 대부분의 국가 또한 마찬가지이다.

검찰이 관장하는 형벌법규의 집행권능은 법치국가의 원리와 결합하면서 공직자의 비위를 차단하고 단속하는 감찰(監察)권력의 기능도 수행한다. 하지만 우리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는 한 없이 작은 존재'라는 비판처럼 감찰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왔다. 이 또한 검찰이 정치권력에 예속되어 있는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현재 전체 1800여 명의 검사들을 대상으로 1년에 2회 정도 수백명씩 인사이동이 단행된다. 개개 검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2년에 1회 이상의 인사이동을 당하게 되는 셈이다. 당연히 승진이나 좋은 보직에로의 영전을 둘러싼 경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승진과 인사이동의 최종적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다. 대통령 앞에 한 없이 작아지는 검찰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봉건 왕조 시절에도 공직비리 억제를 위한 감찰권력은 왕권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 조선의 사헌부가 그러했고, 중국 황제체제 아래의 御使, 諫議大夫 또한 독립되어 있었다. 지금의 제도는 봉건시절 만큼도 못한 것이다. 감찰기능의 독립이 상실된 것은 일제지배의 산물이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효율적 지배만을 도모했고, 때문에 조선총독에게 입법, 행정, 사법의 전권을 관장하게 하였으며, 그 와중에 왕조시절의 감찰기능 독립도 사라졌다. 이런 의미에서 검찰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식민지 잔재의 청산이란 의미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의미에서 검찰 이외에 대통령 산하의 기구로 공직비리조사처를 두자는 방안 역시 그 독립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깊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상태에서 검찰을 대통령과 분리시키는 것은 방법도 마땅하지 않으려니와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하다. 일제식민지배 및 군부독재체제는 우리의 전 생활영역에 걸쳐서 검찰권력이 자의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형벌법규를 양산시켰고 지금도 엄존한다. 국가보안법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조합활동에 대한 업무방해죄, 진실한 사실의 표현에 대한 명예훼손죄, 애매모호한 기준의 배임죄 등 근대의 문명국가, 인권보장국가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무수한 형벌법규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이런 형벌법규의 집행권한을 아무런 민주적 정당성없는 검찰총장 1인 지배의 검찰청에 오롯이 맡기면서 오로지 독립만을 시켜준다면 이는 검찰지배의 비민주국가로 내달음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참여정부시절 인사권을 통한 검찰장악과 검찰의 정치적 이용의 중단을 선언하며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 주는 정도의 가벼운 독립권 부여만으로도 검찰은 호랑이 없는 굴에 왕노릇하는 여우로 변모되었던 것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 최근 영화 '부러진 화살'이 우리사회에 던진 사법권력의 불신문제도 '검사장 직선제'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 ⓒ프레시안

검찰권력을 축소시키고 국민에 의한 통제장치가 구축되는 전제 위에서야 비로소 대통령으로부터 검찰권력의 독립이 가능할 것이며, 이를 동시에 도모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주장되는 것이 '18개 지방검사장의 주민직선제'인 것이다. 주민직선의 18개 검사장은 상호 독립 및 견제하게 될 것인 한편, 더 이상 한 식구가 아닌 검찰총장의 엄격한 감찰과 선거를 통한 주민의 통제를 받는 한계 속에서 그 직무집행의 독립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검사장 직선제'는 책임지는 검찰의 구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MB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잃은 원인에 잘못된 검찰권 행사를 빼놓을 수 없다. 격분한 국민들은 'MB심판'을 외친다. 하지만 정작 잘못된 검찰권을 행사한 당사자인 검사 개개인에 대하여는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사건, 한명숙 사건, 정연주KBS사장 사건 등은 모두 일반의 상식에 어긋난 수사와 기소였고 법원도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 담당 검사들은 모두 고위직으로 영전되었다. 거꾸로 PD수첩 사건에서 불기소를 주장했던 검사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입었다. 일반 시민은 잘못된 고소를 하는 경우 무고죄로 처벌받는다. 봉건 왕조시절에도 잘못된 탄핵으로 귀결되는 경우 탄핵을 주장한 당사자는 그 직을 사임해야 하는 엄격한 책임이 뒤따랐다. 봉건 왕조시절 보다도 못한 것이며, 일반 시민과 비교하면 분명한 특권이다. '검사장 직선제'는 선거를 통하여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집권세력의 반대파가 정권을 획득하여 개개 검사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정치적 보복의 논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선출과정에서의 국민의 선택만이 보복논란없는 엄정한 책임추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최근 재벌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그 내용 중에 중요한 것이 총수 일가에 대한 부당한 일감몰아주기 근절, 하도급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거래행위 근절 등이 포함된다. 현행 법률상으로도 배임죄, 공정거래법위반 등에 해당하는 사안이어서 검찰권의 엄정한 행사로서 시정될 수 있는 것들이다. 결국 경제민주화의 달성에 있어서도 올바르게 작동하는 검찰권력의 존재가 필수적이란 것을 의미한다.

1992년 이탈리아에서는 피에트로 검사가 주도한 '깨끗한 손' 운동으로 부패한 정치권과 고위공무원에 대한 대대적인 숙정이 단행되었다. 뉴욕주 검사장 줄리아니는 월가의 거대 금융권력과 투쟁하여 투명한 금융의 실현에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런 검사는 나타나지 않고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벤츠 검사 등이 줄지어 등장하는가? 2009년 뉴욕주 맨하탄 지역검사장 선거에서 당선자 밴스(Cyrus R. Vance. Jr)는 금융위기를 낳은 월스트리트에 대한 경제정의 구현,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공적영역의 부패척결, 관할지역에서의 만생침해 범죄척결을 공약했고 주민의 선택을 받았다. 우리가 학수고대하는 검사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지 않는가! '검사장 직선제'의 도입을 주장하는이유이다.

'검사장 직선제'의 도입은 국민에게 친절한 검찰사무의 처리를 만들어 내는 계기로서도 기대된다. 수사행태와 관련하여 법조계에게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3조지'라는 저속한 비유가 있다. '경찰은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는 말이 그것이다. 수사과정에서의 고문, 폭행 등에 대하여는 인권문제로 되어 오랜 투쟁 끝에 어느 정도의 제동장치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은 무시된 채 반복되고 끊임없는 소환에 응하여야 하는 불편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문제제기 조차 없는 실정이다. 형사사건으로 고소라도 당하거나 목격자 기타 사유로 참고인으로 되는 경우 경찰에서 이미 조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로부터 재차 소환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 연유에는 경찰이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하는 것을 기피하는 관행과 경찰에서의 조사서류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등의 제도적인 이유도 있긴 하지만, 검사가 경찰서에 근무하는 등의 방법으로 1회 조사로서 종결되도록 하는 등의 실무운영 개선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현재와 같이 권력만 바라볼 뿐 국민의 입장과 고충을 헤아릴 아무런 유인동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이런 문제는 해결없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선거라는 과정을 통하여 국민에게 책임지도록 되는 경우에야 비로소 국민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는 것은 각급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제가 도입된 이후의 변화된 지방행정의 모습이 잘 웅변한다.

또한 '검사장 직선제'의 도입이 우리사회의 숙원인 지방분권 및 지역균형을 촉진하게 되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는 한편, 최근 영화 '부러진 화살'이 우리사회에 던진 사법권력의 불신문제 또한 선거과정에 동반될 수 밖에 없는 후보자와 유권자로서의 만남과 소통 속에서야 비로소 근본적 해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교육감을 통하여 우리 사회는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는 공간을 가지게 되었고,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계기도 얻었다. 대통령직선개헌, 지방자치선거, 교육감선거로 이어져 내려온 민주주의 확대와 국민주권의 실현의 거대한 흐름 위에서 '검사장 직선제' 또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큰 발전으로 평가될 것이다.



/김진욱 변호사, 참여연대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