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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4일 금요일

'일베'의 공격성(攻擊性), 우리는 없는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24일자 기사 ''일베'의 공격성(攻擊性), 우리는 없는가?'를 퍼왔습니다.
[기고] 사회의 진보는 이성과 감성, 모두에서 함께 진행돼야

적대적 감정의 배설구, 일간베스트


진보세력을 '좌좀(좌익좀비)', 전라도를 '홍어', 한국여성을 '김치녀'라고 비하하면서 논란되었던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가,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합성사진 '인증샷'을 올려 물의를 빚었다.

아래는 '일베' 중독회원을 인터뷰한 지난 22일 자 (한겨레) 기사, '일베' 중독회원 만나보니 "'김치×'라고 쓰면 기분이 풀린다" 중 일부이다.

일베 중독회원 김 아무개(22) 씨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욕은 왜 하나=사람들이 유행어를 만드니까. 나도 따라 했다. 대통령 합성 사진 보면 재밌고.

-고등학교에서 현대사 배웠나=안 배웠다.

-광주민주화운동 알아?=광주폭동? 전두환이 탱크로 밀어버렸잖아. 일베에서 처음 알았다. 학교에서 배운 적 없다. '일베' 회원들이 일정한 대상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데에는, 어떤 객관적인 근거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 형태는 대단히 '폭력적'이고 그 감정적 기저는 '적대적'이며, 그리고 근본적인 동기는 '재미'이다.

-하는 일은?=취업준비 중고등학교 중퇴했다. 나쁜 짓 해서 소년원 들어갔다. 4개월. 누명 썼었다. 일베는, 인터넷에서 하는 거 보고 친구가 알려줘서 시작했다. 재밌다고. 여자를 비난하고. 욕하고 그런 이상한 글 쓰고 재밌다고.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진짜 재밌더라. 중독 돼서 하루 10시간씩도 하고. 욕도 마음껏 할 수 있다. 나는 여자를 싫어한다. 남자를 무시하는 거 같아서. 요샌 잘나가는 여자들이 많다. 그게 싫다. 김치×, 욕설을 쓰면 기분이 풀린다.

-직업은 왜 없나?=직업 갖기가 어렵다. 여자들이 얼굴 따지는 것도 싫고. 나는 여자 친구 한 번도 없어. 일베 해서 더 여자혐오증이 생기고 있다. 가끔 주말에 택배 아르바이트는 한다.

-사회 불만 뭐가 제일 큰가?=돈 많은 사람, 똑똑한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이 싫다. 공권력 갖고 무시하는 사람 싫다. 나는 그런 데 속하지 못하니까 불만이 있다. 근데 일베를 하다 보면 속이 풀린다. 여자 비난하고, 그러면 재밌는 사진 올라오면 가끔 새벽에 음란물도 올라오고, 해방감을 느낀다. 일베 회원들은 현재 우리 정치와 경제를 주도하는 '강남의 부유한 보수층'이 아니다. 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서민층의 일부분이다. 그들은 '일베'라는 공간에서 욕설을 함으로써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을 적대적으로 해소한다. '좌좀' '홍어' '김치녀' 등을 자신보다 '더 못한 대상'으로 설정하고, 그 대상을 집단적으로 학대(虐待)함으로써 우월감과 사디즘(sadism)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김치×, 욕설을 쓰면 기분이 풀린다"는 대답이 그것이다.

현재 '일베' 외에는 이러한 적대적 감정을 배설(排泄)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폭력적인 언어와 적대적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를 준 '일베'는 그들에게 친화적(親和的)인 감정으로 수용(受容)된다. 이러한 친화적 환경을 기반으로 변희재 씨와 같은 '일베'의 보수적 이론가(?)의 주장이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광주민주화운동 알아?=광주폭동? 전두환이 탱크로 밀어버렸잖아. 일베에서 처음 알았다. 학교에서 배운 적 없다.

-투표해본 적 있나?=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후보 뽑았다.

-문재인은?=그냥, 문재인은 싫다. 의자 비싼 거 사가지고 싫었다. 박근혜는, 일베에선 다 박근혜 뽑으라니까. 일베의 보수적 이론가들은 북한을 비판하면서, 새누리당 외의 모든 정치세력을 '종북좌파'로 매도한다. 북한의 비(非) 민주성과 낙후한 경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팩트(fact)이기 때문에, '종북좌파'를 비판하는 것은 일베 회원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용된다. 여기에 '노무현' 또는 '문재인'이 왜 북한과 연결되는지 어떤 논리적 증명이 없음에도, 일베 회원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노무현과 문재인을 부정한다.


▲ 23일 오후 8시 현재, '일간 베스트 저장소'에 접속한 '일베인'은 2만 458명이다. '일베' 운영진은 전날 공지를 통해 "특정 게시글·댓글 탓에 언론 매체 등의 주목을 받고 있고 이로 인해 수사기관의 게시자 정보 요청이 끊임없이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일베 홈페이지 캡처

인간은 이성적인가, 감정적인가

인간이 어떤 대상을 인지(認知)하고 사고를 전개하며 결론을 내리는 과정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될까, 아니면 감정에 의해 좌우될까?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등의 신경과학자들이 비슷한 의문을 던졌다. 위 질문을 거꾸로 만들면 오히려 답이 쉬워진다.

즉, 하나의 텍스트를 선입견이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독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게 하려면 종전의 선입견이나 감정에 충동되지 않으려고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해야 하고, 이러한 긴장의 과정을 상당한 횟수로 반복해서 훈련해야만 한다. 덧붙여 관련된 여러 정보들이 취합되어 최종적으로 정리될 때까지 확정적인 결론을 유보하는 중립적인 자세도 계속 견지하여야 한다. 때에 따라서 잠정적인 결론이 중간에 채택되었더라도 오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전제해야만 한다.

그런데 위와 같이 피로(疲勞)한 인지과정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선험적(先驗的)으로 어떤 결론을 잠정 채택하고, 거꾸로 그 결론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사후에 취사하는 역전(逆轉)된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선험적(先驗的) 결정은 당연히 종전에 가지고 있었던 프레임에 의해 조종되며, 한편 그 대상이 인지자에게 친화적 감정을 주는가, 적대적 감정을 주는가에 따라 그 결정 역시 달라진다. 즉 문재인 후보가 TV 정치광고를 하면서 앉았던 의자가 비싼 것이었다는 사실이 주는 적대적 감정은, 문재인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하기 이전에 그를 '적대적 대상'으로 결정해 버린다.

요컨대 일베 회원들에게 폭력적인 언어와 적대적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를 준 '일베'는 그들에게 친화적(親和的)인 감정으로 수용(受容)되어, '일베'의 보수적 이론가(?)의 주장이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국가와 민족'이라는 친숙한 개념도구와 '반북(反北)'이라는 배타적 프레임이 결합되면서 지금의 '일베'라는 괴물을 낳은 것이다.

김한길 대표의 멱살을 잡은 노사모 회원

그런데 이러한 '적대적 감정'과 '폭력적인 공격성'은 '우파'들, 즉 새누리당 지지자들만의 문제일까?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에서 한 노사모 회원이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멱살을 잡았다. 그는 왜 그랬던 것일까? 김한길이 노무현과 친노세력을 비판했기 때문인가? 도대체 '노무현'은 비판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인가? 설령 비판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비판은 토론의 과정에서 논쟁되어야 하지 멱살잡이로 해결할 문제일까?

지난 민주당 당대표 선거는 지금 우리의 정치수준이 얼마나 조잡하고 저열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였다. 물어보자. 계파정치가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의회가 여러 정당의 경쟁의 장(場)인 것처럼, 한 정당 내에서도 여러 계파가 경쟁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의 정파'만이 존재할 때에 나타나는 독선과 오류의 가능성, 그리고 부패의 가능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혁명적 봉기에 의해 사회를 변혁시킬 것인가 아니면 의회정치에 의해 변혁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살아 있었던 제1인터내셔널(International) 이래 100여 년이 넘게 논쟁 되었던 주제였다. 그러다가 소련과 동유럽체제가 무너지면서 이 문제는 너무도 어이없게 답을 찾았다. 설령 혁명을 통해서 노동계급과 농민을 대변한다고 자임하는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그 오류와 부패를 시정할 수 없다는 너무도 단순한 원리가 그 해답이다. 프랑스 68혁명으로 드골 정부가 의회를 해산한 이후 사회당이 선거참여를 선언한 것과 달리 공산당은 계속적인 총파업과 혁명적 봉기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시민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의회주의 체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혁명의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중국과 북한이다.

민주당의 문제점을 계파정치로 보고서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평론가가 있었다. 그러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모든 계파를 압도한 형태가 바로 한국 정치사에서 계속 지적되었던 '제왕적 총재'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오히려 지금은 독선으로 얼룩졌던 제왕적 총재 중심의 정당체제로부터 벗어나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문제점은 '계파정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계파가 아무런 정책적 비전 없이 단지 인맥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각 계파가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정책적 차별성을 제시하지 않고, '너희들 때문에 대선에서 졌다'는 투로 '패거리 싸움'만을 일삼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그 지지자들 역시 트위터에 '한길이는 안 돼' 혹은 '친노는 안 돼'라는 식으로 어떠한 합리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극한적인 감정대립에 합류하였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는 '친노' 때문도 '비노' 때문도 아니다. 민주당이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과 '정권심판론'이라는 네거티브 전략에 갇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은 '적대적 감정'에 기초해 있다. '폭력적 공격성'과 '적대적 감정'은 '일베'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의의 관념은 이성적인 주제인가, 아니면 감정적인 주제인가

'무엇이 옳은가'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또는 '공정(公正)한가 불공정(不公正)한가?'라는 관념은 이성적인 주제일까 아니면 감정적인 주제일까? 1982년 독일 훔볼트대의 베르너 구스 연구팀이 개발한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을 예로 들어보자.

여기에 100만 원이 있는데 A(제안자)는 분배할 권한을 가지고 B(반응자)는 수락할 권한만을 가지며, 합의되지 않으면 둘 다 한 푼도 가질 수 없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반응자는 제안자가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제시해 오면 0이 아닌 이상 거절하는 것보다 무조건 받는 것이 이득이다. 따라서 제안자는 9 : 1 혹은 9.9 : 1 등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여 반응자에게 최소한의 금액만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험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제안자는 5 : 5로 나누겠다는 비율이 가장 많았고, 6 : 4나 7 : 3으로 나누겠다는 제안자의 비율까지 합하면 거의 80%가 넘었다. 사람들은 9 : 1 또는 9.9 : 1로 나눠 자신이 대부분의 몫을 가져도 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왜 큰돈을 제시할까? 한편 반응자는 아무리 낮은 금액이라도 무조건 받는 것이 이득이지만 8 : 2나 9 : 1로 나누겠다는 제안을 받은 경우 제안을 거절한 사례가 67퍼센트나 되었다.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명백히 이익인 상황에서도 왜 거절해서 둘 다 받지 못하게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프린스턴대의 신경과학자 조너선 코언(Jonathan Cohen)은 이 게임을 하는 동안 반응자를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안에 넣어 두고 9 : 1이라는 매우 불공정한 제안에 대해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할 때 뇌 활동 패턴을 촬영했다. 그런데 반응자가 제안을 받을 때와 거절할 때의 뇌 활동 패턴이 매우 달랐다.

수락한 반응자의 뇌는 '전전두엽의 측배 쪽'(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이 매우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영역은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 영역으로 알려진 곳으로, 이 반응자는 제안이 불공정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라고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9 : 1의 제안을 거절한 대다수의 반응자는 측배 전전두엽이 그다지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슐라(Insula)와 전대상회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크게 활성화되었다. 인슐라는 '길을 가다가 바닥에 똥이 있을 때 또는 전봇대에 전날 술 취한 사람이 피자를 거하게 한 판 쏟아낸 걸 볼 때' 활성화되는 부위다. 다시 말해서 역겨움이나 인간관계에서 얻는 고통이 표상되는 곳이다. 그들이 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말 그대로 '더럽고 치사해서'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슐라의 활성화 패턴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네이버 블로그 Phillip & Company [DBR]최후통첩게임 참고 반응자는 제안자가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제시해 오면 무조건 받는 것이 이득임에도 9 : 1의 제안에 대해 대다수의 반응자가 거절을 했다. 이것은 '더럽고 치사해서'이다. 즉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의 결과이다. '무엇이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공평(公平) 또는 공정성(公正性)을 가장 우선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며, '정의(正義)'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아닌 바로 '공평하지 않다는 분노의 감정'에 기초해 있다.

그러한 연유로 모든 정치토론은 지극히 '이성적인 작업'일 거라는 예측을 깨트리고, 그 마지막에 항상 어김없이 상대방에게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의 기준에 상대방이 위반된다고 판단한 순간, 곧바로 '적대적 분노'로 귀결되는 것이다.

감정의 측면에서, 진보의 가치는 어떻게 구현되는가

현대의 민주정치는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투쟁이 아니다.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하는 서민과 진보적인 정당을 지지하는 서민, 즉 서민들끼리의 각축(角逐)인 것이다. 왜냐하면 부유한 자들의 표는 5퍼센트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수적인 정당은 본질적으로는 부자들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서민들을 포섭하는 유능함을 보이며, 진보적인 정당들은 서민들의 계급적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그들을 매료시키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인다. 단적으로 지난 대선에 나왔던 두 명의 노동자 후보는 단 1퍼센트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그들이 자신의 무능함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여하튼 위와 같은 이유로 현대의 민주정치를 투쟁과 대립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로지 '현재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하는 서민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가'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진보의 가치는 이성적인 주제로만 구성되는 것일까? 좀 더 정의로운 경제강령과 교육강령, 사회 ㆍ 문화강령만 갖추면 사회의 진보는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돌이켜 보라. 만약 지금 당신이 진보적인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면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이론적이고 이성적인 탐구의 결과인지 아니면 감정의 이끌림이었는지를. 돌이켜 보면, 주변에서 핍박받고 억울함을 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공감(共感), 그들의 시각으로 함께 아파했던 동료애의 감정이 그 출발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연대(連帶)의 감정으로 '진보의 가치'를 선택하고, 그러고 나서 그 가치가 정의로운 것이라는 이성적인 이유들을 취합해 온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인식론적 경로이다.

분명 정의의 관념에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불산 누출로 생명을 위협받는 노동자에 대한 공감은, '돈만 벌면 되지 않느냐'고 대답한 삼성계열사의 CEO에 대한 분노와 엉켜 있다. 그러함에도 불공정의 문제는 '좀 더 정의로운 법률'을 구축함으로써 제도적으로 해결하여야 하지, 단지 적대적 분노를 확산시키는 것은 아무런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보수당이 원하는 바로, 적대적 분노의 확산은 공포정치와 경찰국가의 명분이 될 뿐이다.

이 사회를 진보하게 하려면, 좀 더 정의로운 경제체제와 교육체제를 실현하는 것만큼이나, 통합과 화해의 감정, 연대와 동료애의 감정을 확산시켜야만 한다. 그래서 스스로 진보주의자를 자처한다면 적대적 감정에 치우친 대립을 피해야 하고, '폭력적인 공격성'을 지양해야 한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 역사를 퇴보시키는 반동적인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분노에 기초한 모든 변혁이론 역시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시작이 똘레랑스(tolérance)이다. 자신과 다른 정치적·종교적 입장에 대해 우선은 존중하고 용인해야 한다. 그 경계 내에서 감정적이지 않은-이성적인 토론을 통해서 합일점을 찾아 나가는 합리적인 과정을 정착시켜야 한다. '합리적인 토론문화'는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진보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일베'에 대해서도 똘레랑스의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똘레랑스의 관용(寬容)은 똘레랑스의 규칙을 준수한 자에 대해서만 허락되어야 한다.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동료애의 감정은 우월적 지위에서 아래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연민(憐愍)이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서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공감(共感)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따뜻한 감정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에게, 그러한 동료애의 감정이 당연한 것으로 익숙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2017년에 야당이 집권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김현철 변호사

2013년 5월 22일 수요일

30대 ‘일베’ 회원 인터뷰 “5·18 사실이나 의심 여지 남겨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3-05-22일자 기사 '30대 ‘일베’ 회원 인터뷰 “5·18 사실이나 의심 여지 남겨야”'를 퍼왔습니다.

ㆍ“항상 ‘적’ 만든 노무현에 회의… 진보, 광우병사태 때 집단폭력”ㆍ“요즘 일베엔 비논리적 글 넘쳐”

경향신문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극우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인 30대 초반의 ㄱ씨와 20일 인터뷰를 했다. ㄱ씨는 “한국 사회 진보세력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일베를 시작했고, 현재는 극단으로 치닫는 일베의 일부 이용자들 때문에 일베와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했다. 그는 “그해 6월 미군 장갑차에 중학생 2명이 깔려 숨진 사건이 있었고, 대학에 가면 이회창 후보를 미국에 아첨하는 간신으로 표현하는 글들이 많이 보였다”며 “미국에 반대하는 것이 좋았고,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승리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ㄱ씨는 그때는 진보에 가까웠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ㄱ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반감을 갖게 된 것은 2000년대 중반쯤이었다고 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ㄱ씨는 노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도 어려움을 겪어 집안형편이 나빠졌다. 노 전 대통령이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뒤 남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ㄱ씨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ㄱ씨는 “(노 전 대통령의) 정책은 늘 누군가를 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고, 정치적 통합도 이루지 못했다”며 “방송에서 대통령이 특정인을 대놓고 비판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베’ 규탄하는 고등학생 한 고등학생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인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 거리에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들을 규탄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ㄱ씨는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 때 ‘진보 혹은 좌파’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ㄱ씨는 디시인사이드와 개인 블로그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누리꾼이었다. ㄱ씨는 “인터넷에서는 광우병 위험성을 강조하는 여론만 가득했고, 이에 반대하는 의견들은 뭇매를 맞았다”며 “당시 한 블로거가 ‘이것이 너희가 말하는 민주화냐’라는 내용으로 쓴 글이 크게 와닿았다”고 말했다. ㄱ씨는 “현재 일베에서 사용되는 ‘민주화’의 개념도 당시 그 블로거의 글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용어를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잘못이지만, “좌파 혹은 진보라고 하는 세력들이 가진 폭력성이 당시에 반발심을 불러일으킨 원인”이라고 말했다.

2010년 일베가 디시인사이드에서 분리됐을 때 ㄱ씨도 일베에 가입했다. ㄱ씨는 초창기 회원으로 현재 ‘고정닉 5레벨’이라고 했다. 일베에서는 자신이 쓴 글이 추천(일베로)을 많이 받으면 경험치가 오르고, 비추천(민주화)을 받으면 경험치가 떨어지는 방식으로 등급을 부여한다. ㄱ씨는 “ ‘고정닉 5레벨’ 정도면 중독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활동을 하고 추천을 받는 회원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ㄱ씨는 노 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일베의 행동에 대해 진보세력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욕이나 사진 합성 등에 대해 진보라는 사람들이 ‘고인 사진에 어떻게 장난을 칠 수가 있느냐’고 하지만, 그들은 박정희·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든 박근혜 대통령이든 모두 사진 합성물이 있는데 유독 노 전 대통령에게만 민감한 것은 이중잣대”라고 말했다. ㄱ씨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매우 확고하게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북한군 개입설 등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남겨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ㄱ씨는 최근에는 게시물을 보기는 하지만 글을 쓰지는 않는다. “박 대통령 당선 이후 정치적 목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일베에 유입됐고, 이들이 정치적인 글만 쏟아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유머글이나 실용적인 글을 쓰던 이용자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ㄱ씨는 “일베에서 극단적인 비하글을 쓰는 일부 이용자들은 정신적으로 이상하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ㄱ씨는 “ ‘김치녀(한국 여성들을 비하하는 용어)는 3일에 한 번씩 패줘야 한다’는 등의 글이 올라오는 일련의 상황을 본 적이 있다. 이용자들의 글을 무작정 찬성하는 상황을 보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 일베의 한계를 절감했다. ㄱ씨는 “일베가 당시에 무리한 주장을 하다가 일부 일베를 지지하던 유명인들이 돌아서자 풀이 죽었다”며 “그때 벌어진 일들이 ‘인증 대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상정보를 가린 고학력자들의 졸업장과 학생증이 올라오고, 대학교수, 의사 등이 자신들의 직업을 인증하는 것을 보면서 일베 이용자들은 위안을 삼는 것처럼 보였다”며 “소수의 엘리트들이 다수의 패배자들을 선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무조건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글만 계속 올리는 이용자도 있고, 한 지역만 비하하는 이용자도 있다”며 “최근 일베에도 자성의 목소리 가 나올 정도로 논리성이 사라진 이상한 글들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2013년 5월 16일 목요일

‘진보’ 한겨레와 ‘보수’ 중앙, 협력기사 만든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15일자 기사 '‘진보’ 한겨레와 ‘보수’ 중앙, 협력기사 만든다'를 퍼왔습니다.
외부필진이 사설 비교·비평, 같은 날 각각 한 지면에 게재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가 서로의 사설을 비교·비평하는 지면을 기획하고 있어 언론계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는 한겨레신문의 지면개편시점인 오는 5월 20일에 맞춰 이 같은 기획지면을 선보일 예정이며 현재는 알림 문구 등 세부적인 논의를 막판 조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는 매주 한 차례 하나의 사안에 대한 자사의 사설을 상대사의 사설과 비교하며 입장이 극단적으로 갈리거나 미세하게 다를 경우 그 배경과 논점을 짚어내는 기사를 게재할 예정이다. 

필진은 자사 기자가 아닌 교사 등 교육·논술 분야 전문 필진을 섭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는 한겨레신문이 섭외하고, 다음 주는 중앙일보가 필진을 섭외하는 식이다. 해당 기사는 각 신문사에 같은 날 동시 게재된다. 날짜는 매주 화요일로 알려졌다.

한국 사회에서 각각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언론사 가운데 하나인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가 서로의 사설을 비교·평가하는 기사를 공동기획해 함께 게재하는 것은 지면에서 열린 시각을 보여주려는 취지로 보인다.


중앙일보와 한겨레 로고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3년 5월 9일 목요일

TV가 죽인 진보, 인터넷이 확인 사살?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09일자 기사 'TV가 죽인 진보, 인터넷이 확인 사살?'을 퍼왔습니다.

[장석준 칼럼] 협동조합 프레시안 생각


"나는 슈뢰더라 불리던 구두 수선공을 알게 되었다. (…) 나중에 그는 미국으로 갔는데 (…) 그는 나에게 읽어볼 만한 신문 몇 가지를 주었다. 따분했던 나는 그것을 약간 읽어보고 나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 신문에서는 노동자들의 참상에 대해 묘사해 놓았고 노동자들이 어떻게 자본가들과 지주들에게 종속되어 있는가를 너무나 생생하게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게 묘사했던 까닭에 나는 정말로 매료되었다. 나는 비로소 눈을 뜨게 된 것 같았다. 나의 모든 삶은 그날이 올 때를 기다리며 떨쳐 일어나게 되었다."

에릭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김동택 옮김, 한길사 펴냄, 1998년, 239쪽)에 인용된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어느 독일 노동자 이야기다. 신문이 평범한 한 노동자를 신념 있는사회주의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신문 하나가 사람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오늘의 경험으로 보면, 실감이 잘 안 난다.

21세기 한국에서 진보 정치 운동이 왜 이렇게 힘든지에 대해 여러 설명들이 있다. 이런 설명들은 대체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급성장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유럽과 현재 한국 상황을 서로 비교하여 그 차이점에 주목하곤 한다. 미디어 환경은 그러한 차이의 목록 중 중요한 한 항목이다. 100년 전 언론 생태계와 지금의 그것 사이의 차이가 한 세기 전 유럽 좌파의 약진과 오늘날 한국의 그 부진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위 인용문에 '신문'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신문'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신문들과는 많이 달랐다. 우리에게 신문이라면 대기업 규모의 전국 일간지다. 악명 높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그러하고, (경향신문), (한겨레)도 그 형태는 같다. 그러나 지난 세기 벽두 유럽에서 신문은 대개 작은 지방지들이었다. 기껏해야 수공업 작업장 규모의 인원이 만들었고, 작은 도시 안에서 주로 배포되었다. 위 인용문의 노동자가 본 것도 이런 형태의 신문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신문을 창간하고 운영하는 일은 오늘날보다는 훨씬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노동조합 운동가, 협동조합 운동가 등등 자본도 없고 탄압받기 일쑤인 사람들도 자신들의 활자 매체 하나쯤은 가질 수 있었다. 아니, 운동을 하려면 무엇보다 인쇄 매체를 창간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었다. 20세기 초까지 서구에서 운동가란 곧 언론인과 동의어였다.

프랑스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 피에르 르루부터가 그러했다. (레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전이 벌어지던 바로 그 무렵(1820~30년대) 르루는 [글로브(지구)]라는 신문을 창간하는 것으로 최초의 사회주의 선전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이것은 모든 좌파 투사들의 모델이 되었다. 우리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전국적 정치 신문"이라는 구호를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기실 100년 가까이 이미 지속된 전통을 러시아에서 뒤늦게 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전성기에 수도 베를린에서 발행된 [포어베르츠(전진)]를 비롯해 모두 50개 이상의 지역 신문들을 발간했다. 새로운 당 활동가들은 대개 노동조합이 아니면 이러한 당 언론을 통해 성장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역시 그러한 지방지 중 하나([라이프치히 인민 신문])의 편집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런 좌파 신문들 중 장 조레스가 1904년에 창간한 [뤼마니테(인류)]는 지금도 프랑스 공산당과 연계를 맺으며 발행되고 있다.

이런 언론 환경이 과거 좌파의 성장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면, 역으로 이런 환경의 변화는 좌파의 전진이 중단된 사정에 대해 또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텔레비전이 점차 보급되었고, 이와 함께 시각 매체가 문자 매체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방송은 태생적으로 독점이 지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불어 소규모 자생적 신문, 잡지가 만개하던 인쇄 매체 생태계도 전국 일간지를 내는 거대 기업이 지배하는 체제로 급변했다. 다양성의 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독점의 시대가 열렸다.

좌파든 우파든 모든 대중 정치 세력은 이런 미디어 환경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시각 매체가 요구하는 것은 연설문 투의 선동적 칼럼을 쓰는 데 능한 이념가가 아니라 매력적 외모의 스타 정치인이었다. 이 진화의 극단에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있다.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활동하다 체포된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매체 사상가 레지 드브레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사람들이 자기 방에 틀어박혀 텔레비전 브라운관에서 눈을 떼지 않게 된 때부터 좌파의 전성기는 끝났다고("Socialism : A Life-Cycle",New Left Review, no. 4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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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 정치 운동은 이미 이러한 시각 매체 중심의 언론 환경이 뿌리 내린 '이후에' 등장했다. 어쩌면 유럽보다도 더 방송국과 거대 전국 일간지가 확고히 지배하는 상황에서 첫 싹이 돋아 조금이라도 성장해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드브레 식 진단에 따른다면, 안 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타 정치인의 변절과 폐쇄적 이념 서클 회귀라는 양극단의 혼란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물론 "변화! 오직 끊임없는 변화!"라는 자본주의의 미덕(?) 덕분에 또 다른 변화의 가능성이 나타나고는 있다. 이미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다. 인터넷과 휴대 전화의 등장 그리고 이 둘의 결합 말이다. 이 새 미디어 환경은 텔레비전의 독재가 절정을 구가하던 시기에 비하면 분명 매체 수용자의 보다 능동적인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도 벌써 10년이 훨씬 넘는다. 최근에는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가 이러한 기대를 일정하게 실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여전히 가능성의 차원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내용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단위의 문제가 남아 있다. 인터넷이 아무리 개별 수용자들의 참여를 보장한다 해도 기본적인 내용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려면 어쨌든 정보와 의견의 공급자들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100년 전 유럽의 소규모 지방지들과 같은 역할을 할 집단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언론 집단의 생존력은 아직 검증 대상이다. 아니, 불길한 조짐이 더 많다. 포털 사이트의 위력에 인터넷 매체의 생존이 좌우되는 최근 상황은 위험한 적신호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독점이 충분히 가능하며, 어쩌면 벌써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프레시안이 협동조합 방식의 온라인 매체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 나온 모험의 한 수다. 그래서 임기응변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역사 속의 중요한 혁신들은 대개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 그 대응으로 등장하곤 했다. 우리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더 모이기만 한다면, 프레시안의 선택도 그러한 혁신의 성공 사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생산자와 수용자가 함께 참여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매체는 한 세기 전 유럽 인민들의 각성의 무대였던 소규모 자생적 언론의 21세기 판이 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기술 잠재력을 활용해 근대 민주주의 초기의 열정을 되살리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언론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이들의 미래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진보 정치 운동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보려는 이들의 미래 역시 걸려 있다. 협동조합 프레시안 운동의 주창자들에게 지금 내가 더 없이 절실한 동지애를 느끼며 진보 정치의 재건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관심과 동참을 호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석준 진보신당 부대표

2013년 5월 5일 일요일

소버린 사태 10년, 재벌과 외국인 투자자의 은밀한 공생


이글은 한겨레21 2013-05-06일자 제959호 기사 '소버린 사태 10년, 재벌과 외국인 투자자의 은밀한 공생'을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2003년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외국자본의 손에 국내 우량 기업 넘길 수 있다는 경계론 나와… 이후 국내 기업 적대적 M&A는 더 이상 없어

» 2005년 3월11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주)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에게 공세를 펴는 소버린 쪽 인사들. 한겨레 자료


악재를 기회로 본 역발상 투자

당시 최태원 회장 등 SK그룹 경영진은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었다.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에서 1조5587억원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적발됐고, JP모건과 옵션 이면계약을 체결해 회사에 1112억원의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악재 탓에 1만~2만원대를 오가던 SK(주)의 주가는 5천원대까지 추락했다. 너도나도 SK(주) 주식을 팔아치우기 바쁠 때 소버린은 반대로 주식을 대량 매입해버렸다. 악재를 기회로 본 역발상 투자였다.
2003년 6월 최태원 회장은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이듬해 1월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1조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때부터 소버린은 최태원 회장과의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한다.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SK그룹과 독립적인 위치에서 SK(주)의 경영에 참여할 사외이사 5명을 추천하고 정관개정안을 제안한다. 제임스 피터 소버린 대표는 “주주들에게 사기를 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이사들이 여전히 이사회에 남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버지가 회사의 창립자인 최태원 회장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소버린 안은 사내·사외 이사의 자격 조건을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지 않은 자’로 통일하는 것으로, 사외이사에만 자격 조건을 두는 SK 안과 차이가 있었다. 주주총회에서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최태원 회장의 운명이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소버린의 완패였다. 이후 소버린은 임시주주총회를 신청했지만 법원이 기각해 무산됐고 이듬해 다시 경쟁을 펼쳤으나 패배했다. 소버린 지지 세력이 50%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SK(주)의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바꾼 소버린은 그해 7월18일 주식 전량을 처분했다. 이익은 주식 매매 차익과 배당금, 환차익을 합산해 9437억원에 이른다. 2년4개월 만에 투자금의 4배가 넘는 수익을 거둔 것이다.
‘먹튀’ 논란이 거셌다. 외국자본이 한국 주식시장을 휘저어놓더니 결국 SK(주)의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고, 이 과정에서 1조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으니까 말이다. 또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판치는 주주자본주의가 뿌리내려 외국자본의 손에 국내 우량 기업을 넘겨줄 위험이 있다며 ‘외국자본 경계론’도 나왔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었다.



투자자들이 달라졌다.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제시한 안건에 무조건 찬성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고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소액주주운동까지 ‘월가의 논리’ 비판

“헤지펀드가 시장을 교란한 후 차익을 챙기고 떠나면 국부 유출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 투자자들이 나중에 크게 당하게 되는데 그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진짜로 경영권을 탈취당한다면 이는 더욱 큰 문제다. 차등의결권, 의무공개매수제도, 포이즌 필, 황금주 등의 장치는 미국·일본·영국 등 상당수 국가가 채택한 제도다.”(2006년 3월8일 사설) ‘규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동일한 주장을 펼쳤다. “유럽연합(EU)은 공공질서 유지, 국민의 건강, 국제평화나 안보 등과 관련해 규제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특히 필요시 황금주 활용이나 정부의 직접 개입 사례도 있다.”(이승철 당시 전경련 전무)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2004년 8월 투기자본 국민대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국자본의 힘을 빌려 무엇인가를 이루려던 재벌은 오히려 자승자박의 형세가 됐다. 외국자본은 이제 금융기관을 비롯한 경제의 핵심 부분을 장악해가고 있고 불평등, 일자리 파괴, 성장률 하락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참여연대가 이끈 소액주주운동까지 ‘월가의 논리’라고 비판했다. “소액주주운동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란 수십만 명의 국내 주식투자자들과 1만~2만명의 영미계 투자펀드들을 위한 부의 재분배에 불과하다. 결국 기업 지배구조 개혁은 단지 주식투자자들에게만 좋을 뿐 사회와 국민경제(민족경제)에는 좋지 않다.”
하지만 소버린 사태가 한국 경제에 해만 끼친 건 아니다. 첫째, 직접적으로는 SK그룹이 이사회제도 등 지배구조를 개선했다. 사외이사 비율을 75%로 확대하고 투명경영위원회 등 하부 위원회를 설치했다. SK 사태 때 소액주주들이 소버린이 아니라 SK 경영진을 지지하도록 이런 조처를 단행한 것이다. 둘째, 투자자들이 달라졌다.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제시한 안건에 무조건 찬성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고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변호사는 “투자를 하면 목소리를 내는 게 당연하다. 국내자본이든 외국자본이든 마찬가지다. 조용한 투자란 없다. 그게 상식이고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재벌기업은 외국인 투자자를 정치권의 재벌기업 규제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고 주가 상승은 외국인 투자자의 이해에 부합해 공생관계가 가능하다.” -디스커버리 인베스트먼트 김승식 부사장


연평균 20조원 수익 외국자본에

소버린 사태가 처음 불거진 지 10년, 국내 증시의 외국인 시가총액 비중은 40% 안팎이며, 특히 이익 규모가 큰 재벌 대기업과 일부 시중은행 등 20~30개 우량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많게는 80%에 이른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가가 국내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왜 그럴까? 투자자문회사 디스커버리인베스트먼트 김승식 부사장은 (성공한 국가 불행한 국민)에서 ‘재벌과 외국인 투자 간의 공생관계’를 지적했다. “재벌기업은 주주자본주의를 내세운 외국인 투자자의 힘을 빌려 노동세력을 압박하고(인건비를 축소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리고 노조활동 압박) 하도급 관계의 중소 하청업체를 수탈하며 정치권의 재벌기업 규제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기업의 수익 확대에 따른 주가 상승은 주로 매매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이해에 부합해 이런 공생관계가 가능하다.” 실제로 1992년부터 2007년 9월까지 외국인 투자자에게 지급된 누적 배당 총액은 16조6천억원이며, 국내 주가 상승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의 평가차익은 306조6천억원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연평균 20조원 규모의 막대한 수익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셈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참고 문헌: 김승식 (성공한 국가 불행한 국민)(2013),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2011), 김위생·윤혜경·하준삼 (소버린의 진실)(2006), 이은정 ‘소버린의 SK 주식 매입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2005), 이찬근 외 (한국 경제가 사라진다)(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