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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5일 일요일

소버린 사태 10년, 재벌과 외국인 투자자의 은밀한 공생


이글은 한겨레21 2013-05-06일자 제959호 기사 '소버린 사태 10년, 재벌과 외국인 투자자의 은밀한 공생'을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2003년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외국자본의 손에 국내 우량 기업 넘길 수 있다는 경계론 나와… 이후 국내 기업 적대적 M&A는 더 이상 없어

» 2005년 3월11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주)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에게 공세를 펴는 소버린 쪽 인사들. 한겨레 자료


악재를 기회로 본 역발상 투자

당시 최태원 회장 등 SK그룹 경영진은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었다.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에서 1조5587억원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적발됐고, JP모건과 옵션 이면계약을 체결해 회사에 1112억원의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악재 탓에 1만~2만원대를 오가던 SK(주)의 주가는 5천원대까지 추락했다. 너도나도 SK(주) 주식을 팔아치우기 바쁠 때 소버린은 반대로 주식을 대량 매입해버렸다. 악재를 기회로 본 역발상 투자였다.
2003년 6월 최태원 회장은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이듬해 1월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1조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때부터 소버린은 최태원 회장과의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한다.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SK그룹과 독립적인 위치에서 SK(주)의 경영에 참여할 사외이사 5명을 추천하고 정관개정안을 제안한다. 제임스 피터 소버린 대표는 “주주들에게 사기를 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이사들이 여전히 이사회에 남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버지가 회사의 창립자인 최태원 회장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소버린 안은 사내·사외 이사의 자격 조건을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지 않은 자’로 통일하는 것으로, 사외이사에만 자격 조건을 두는 SK 안과 차이가 있었다. 주주총회에서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최태원 회장의 운명이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소버린의 완패였다. 이후 소버린은 임시주주총회를 신청했지만 법원이 기각해 무산됐고 이듬해 다시 경쟁을 펼쳤으나 패배했다. 소버린 지지 세력이 50%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SK(주)의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바꾼 소버린은 그해 7월18일 주식 전량을 처분했다. 이익은 주식 매매 차익과 배당금, 환차익을 합산해 9437억원에 이른다. 2년4개월 만에 투자금의 4배가 넘는 수익을 거둔 것이다.
‘먹튀’ 논란이 거셌다. 외국자본이 한국 주식시장을 휘저어놓더니 결국 SK(주)의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고, 이 과정에서 1조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으니까 말이다. 또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판치는 주주자본주의가 뿌리내려 외국자본의 손에 국내 우량 기업을 넘겨줄 위험이 있다며 ‘외국자본 경계론’도 나왔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었다.



투자자들이 달라졌다.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제시한 안건에 무조건 찬성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고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소액주주운동까지 ‘월가의 논리’ 비판

“헤지펀드가 시장을 교란한 후 차익을 챙기고 떠나면 국부 유출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 투자자들이 나중에 크게 당하게 되는데 그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진짜로 경영권을 탈취당한다면 이는 더욱 큰 문제다. 차등의결권, 의무공개매수제도, 포이즌 필, 황금주 등의 장치는 미국·일본·영국 등 상당수 국가가 채택한 제도다.”(2006년 3월8일 사설) ‘규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동일한 주장을 펼쳤다. “유럽연합(EU)은 공공질서 유지, 국민의 건강, 국제평화나 안보 등과 관련해 규제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특히 필요시 황금주 활용이나 정부의 직접 개입 사례도 있다.”(이승철 당시 전경련 전무)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2004년 8월 투기자본 국민대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국자본의 힘을 빌려 무엇인가를 이루려던 재벌은 오히려 자승자박의 형세가 됐다. 외국자본은 이제 금융기관을 비롯한 경제의 핵심 부분을 장악해가고 있고 불평등, 일자리 파괴, 성장률 하락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참여연대가 이끈 소액주주운동까지 ‘월가의 논리’라고 비판했다. “소액주주운동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란 수십만 명의 국내 주식투자자들과 1만~2만명의 영미계 투자펀드들을 위한 부의 재분배에 불과하다. 결국 기업 지배구조 개혁은 단지 주식투자자들에게만 좋을 뿐 사회와 국민경제(민족경제)에는 좋지 않다.”
하지만 소버린 사태가 한국 경제에 해만 끼친 건 아니다. 첫째, 직접적으로는 SK그룹이 이사회제도 등 지배구조를 개선했다. 사외이사 비율을 75%로 확대하고 투명경영위원회 등 하부 위원회를 설치했다. SK 사태 때 소액주주들이 소버린이 아니라 SK 경영진을 지지하도록 이런 조처를 단행한 것이다. 둘째, 투자자들이 달라졌다.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제시한 안건에 무조건 찬성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고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변호사는 “투자를 하면 목소리를 내는 게 당연하다. 국내자본이든 외국자본이든 마찬가지다. 조용한 투자란 없다. 그게 상식이고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재벌기업은 외국인 투자자를 정치권의 재벌기업 규제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고 주가 상승은 외국인 투자자의 이해에 부합해 공생관계가 가능하다.” -디스커버리 인베스트먼트 김승식 부사장


연평균 20조원 수익 외국자본에

소버린 사태가 처음 불거진 지 10년, 국내 증시의 외국인 시가총액 비중은 40% 안팎이며, 특히 이익 규모가 큰 재벌 대기업과 일부 시중은행 등 20~30개 우량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많게는 80%에 이른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가가 국내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왜 그럴까? 투자자문회사 디스커버리인베스트먼트 김승식 부사장은 (성공한 국가 불행한 국민)에서 ‘재벌과 외국인 투자 간의 공생관계’를 지적했다. “재벌기업은 주주자본주의를 내세운 외국인 투자자의 힘을 빌려 노동세력을 압박하고(인건비를 축소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리고 노조활동 압박) 하도급 관계의 중소 하청업체를 수탈하며 정치권의 재벌기업 규제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기업의 수익 확대에 따른 주가 상승은 주로 매매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이해에 부합해 이런 공생관계가 가능하다.” 실제로 1992년부터 2007년 9월까지 외국인 투자자에게 지급된 누적 배당 총액은 16조6천억원이며, 국내 주가 상승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의 평가차익은 306조6천억원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연평균 20조원 규모의 막대한 수익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셈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참고 문헌: 김승식 (성공한 국가 불행한 국민)(2013),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2011), 김위생·윤혜경·하준삼 (소버린의 진실)(2006), 이은정 ‘소버린의 SK 주식 매입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2005), 이찬근 외 (한국 경제가 사라진다)(2004)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쌍용차,MBC의 눈물,상생,공생,대통합,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2-20일자 사설 '[사설] 박 당선인, 쌍용차·MBC의 눈물부터 닦아야'를 퍼왓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발표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에서 “국민 한 분 한 분의 행복과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소망”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혼자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사는 상생과 공생의 정신”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첨예화한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루겠다는 다짐이다.하지만 대통합은 그저 말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마음으로 느끼고, 진심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상처를 보듬어 안고, 진정한 자세로 치유책을 찾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통합을 향한 박 당선인의 첫 발걸음이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문화방송(MBC) 등 언론사 파업 징계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 되기를 권한다.2009년에 2646명의 노동자가 해고된 뒤 쌍용차에선 노동자와 그 가족 등 2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돌연사하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비극의 행렬을 멈추게 해달라고 한상균 전 노조 지부장 등 3명이 평택공장 인근 송전탑에 올라 한달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봄철에 시작된 대한문 앞의 천막농성은 여름, 가을을 지나 한겨울까지 이어지고 있다.문화방송에선 공영방송의 공정성·독립성 보장과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다 올해에만 기자·피디 등 7명이 해고되고, 100여명이 정직·대기발령 등의 중징계를 당했다. 징계가 끝난 뒤에도 일터로 복귀하지 못하고 서울 신천역 근처의 엠비시아카데미에서 샌드위치 만들기 등의 강제교육을 받는 이들이 많다.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의 삼청교육대에 비길 만한 엽기적인 ‘신천교육대’다. 와이티엔 등 다른 언론사 해직자도 고통을 겪고 있다.쌍용차와 문화방송 사태의 해결은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대국민 약속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12월4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이후에 실효성 있는 국정조사를 실시해 쌍용차 문제를 풀겠다고 약속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국정조사 시기를 대선 이후 열리는 첫 국회로 구체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문화방송의 경우엔 박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에 “방송의 공공성을 구현하고, 공영방송 사장 선출도 투명하게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박 당선인이 적극적으로 나서 통합의 참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