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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30일 화요일

'잉여'들이 행복해야 '국가 경쟁력'도 생긴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4-30일자 기사 ''잉여'들이 행복해야 '국가 경쟁력'도 생긴다'를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창조적 잉여'와 보편적 복지국가


사전에서 '잉여'를 찾아보면 '쓰고 난 나머지'라고 나온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잉여 인간은 '사회가 필요로 해 쓰고자 하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정부 발표대로 40.5%에 불과한 취업률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취업 준비생들은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하고 있다. 요행히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더라도 회사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발견할 수 없어 스스로를 '잉여'라 지칭하는 이도 있다. 많은 젊은이가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하는 시대임에도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전문지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직접 잉여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로 하고 (월간 잉여) 창간호를 냈다.

지난 2월, 잉여에 의한 잉여를 위한 잡지 (월간 잉여)가 창간 1주년을 맞았다. 1년 동안 잡지를 발행한 결과 지금 내게 남은 건 1년 동안 '버텨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25만 원 남짓으로 줄어버린 통장 잔고가 전부이다. 물론, 그동안 만난 '사람'도 남았다. 잡지를 만들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여러 인터뷰 대상자들, 원고료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기고해 주신 필자들, 그리고 재미나게 읽어 주신 독자들이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그리고 (월간 잉여)를 통해 출판을 비롯한 문화 산업의 육성 정책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소중한 성과로 남게 되었다.

예술을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 복지국가가 필요하다
▲ <월간 잉여> 3·4월호 ⓒhttp://monthlyingyeo.com/


(월간 잉여) 창간호를 내고, 그러한 사실이 (한겨레)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이 지지하고 지원해 주었다. 그러나 1년을 버텨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1인 출판을 한다는 것, 그중에서도 정기적인 월간지를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공익적인 목적으로만 낸다는 것은 헌신적인 희생이 있더라도 "기적"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물론 여러 사람이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노력할 가치가 있었다. 지지해주는 분들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좀 더 버텨볼까!"라고도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방법을 답습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변화가 필요했다. (월간 잉여)와 같은 돈이 안 되는 잡지라도, 출판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아니, 제작비라도 꾸준히 안정적으로 담보되면 잡지는 격월간으로 내고 남은 시간에 알바를 하며 버텨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지인은 공모하는 공공 프로그램에 도전해 지원금을 타면 인쇄비와 취재비가 해결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검색 신공을 발휘해서 여러 정보를 수집하면서 지원도 하기 전에 낙담해야만 했다. 이들 프로그램은 대개는 내가 지원할 자격도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3년 이상 된 출판사, 혹은 몇 명 이상이 함께 설립한 기업 등이 기본적인 지원요건에 해당했다. 설령 선정되어 지원을 받아도 각종 보고와 서류, 그리고 회계장부 작성 및 증빙 서류 제출 등 늘어날 잡무를 혼자서 담당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출판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문화가 제대로 육성되기 위해서는 복지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

상업성에 기반을 두지 않은, 문화적 자발성과 다양성에 기여하는 출판물이 계속 명맥을 이어가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다음의 역사적 사례에서 이러한 다양성의 중요성을 환기해보자.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 200여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는 식량 수탈에 시달린 끝에 다른 농작물의 재배를 포기하고 값싼 감자를 대량 재배하여 주식(主食)으로 삼았다. 그리고 단위 면적당 최대의 수확을 얻기 위해 점차 전체 농가가 소출이 가장 많은 하나의 감자 품종만 재배하게 되었다. 그런데 감자 마름병(potato late blight)이라는 곰팡이별이 작물을 덮쳤다. 이 감자 품종은 감자 마름병에 취약했다. 병이 창궐한 지 2개월 만에 아일랜드 감자는 씨가 말랐다. 아일랜드 전체가 황폐화되었고, 이 일은 많은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민을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단일 품목 생산 체제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다.

마찬가지로 문화도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상업성에만 맞추어 단일한 방향으로 문화가 창조되면 결국 이러한 문화는 오래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잃는다. 가 실시한 사생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그림의 작가인 황옥 씨는 본인의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향하는 그곳에 핵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곳으로 향했던 이들은 전멸할 것입니다. 그림의 아래쪽에 '잉여'로운 자세로 컴퓨터를 하고 있던 잉여가 살아남아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잉여들은 대체로 남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습니다. 못 가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기에, 인류 최후의 생존자가 될지도 모르는 겁니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한 방향을 향한다면, 모든 사람이 같은 길로만 간다면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모두 같이 타격을 입을 것이고, 그들이 구성하는 공동체 역시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일에 종사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한다면 공동체의 생명력은 더욱 길어지고 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돈 안 되는 분야에서 다양하게 자신이 가진 끼를 발휘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창조적 잉여짓'이 바로 문화의 다양성을 만들어 내고, 국가 경쟁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복지국가 방식의 출판 지원 정책이 중요한 이유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자신의 영역에서 필요한 일은 자신이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판이나 잡지업계에서도 당사자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격월간 잉여나 계간 잉여가 될 수도 있지만, 나의 (월간 잉여)도 앞으로 더 노력할 생각이다. 나는 (월간 잉여)를 통해 파편화되어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소속감과 연대의식을 부여하고, 그로 인해 영혼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싶다. (월간 잉여)를 통해 살아나가는 데 유용한 정보도 제공하고 싶다. 독자들이 편하게 (월간 잉여)를 접하도록 유통망도 확대하겠다. 하지만 좀 다른 상상도 해 본다. 나의 개인적인 노력만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에 의해 출판업과 인문학을 육성하는 방안은 없을까?

출판업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유통업체가 30% 전후의 수수료를 떼 가는 것이 관례다. 농산물은 농협이나 소비자 협동조합을 통해 직거래하여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이익을 보도록 하고, 중소기업 제품들이 제값을 받으며 팔릴 수 있도록 공공 홈쇼핑도 만든다고 하는데, 출판 분야에서는 그러한 방안이 없을까? 더 많은 도서관에서 를 구매해주고, 알라딘이나 예스24, 그리고 교보문고와 같은 거대 인터넷 서점을 통하지 않아도 공공 기관이 만든 공공 인터넷 서점을 통해 수수료가 없거나 적은 직거래 장터를 지금보다 더 많이 개최하는 것도 기대해본다.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나서서아마존 등 다국적 대형 인터넷 서점에 대항하는 프랑스인들을 위한 공공 인터넷 서점을 만든다고 한다.

지금처럼 몇몇 매체를 정부가 선정해서 제작 비용을 지원하는 식보다는 공공 도서관을 확충하거나 이들 도서관에 도서 구입비 지원을 늘려 독립 매체 및 인문학 매체를 구매하도록 하는 방법은 어떨까? 이러한 방법이 특정 매체를 선별해서 지원금을 주는 방향보다 더 근본적이고 공리적인 방식일 것이다. 특정 매체나 업체가 정부의 지원을 독식하는 것도 막을 수 있고, 그 단체가 지원비를 지원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쓸 위험도 방지할 수 있으며, 출판계가 좋은 책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도록 만드는 정책이 바로 보편적 복지국가 방식의 출판 지원 정책이 아닐까?

우선 현재 특정 매체를 선별하여 지원하는 정책의 예산을 전국 750곳 정도 되는 공공 도서관에서 도서 구입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당하면 어떨까?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도서관을 통한 인문학 육성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전국 1만1300개의 학교 도서관을 학과 시간 외에는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대신 사서 인건비와 도서 구입비를 지원해 전문 사서들이 (월간 잉여)를 포함한 다양한 잡지나 책을 구매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그렇게 하면 국민들은 일시에 동네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하나 이상의 공공 도서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도서관 이용객들도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들 도서관의 도서 구입을 통해 더 많은 출판업자와 작가 등 콘텐츠 생산자들이 두루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잉여 인간이 많을수록 국가에 기여하는 영역이 예술이다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출판계 전반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아동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는 조금 낫지만 인문사회 분야 책은 특히 안 팔린다. 마찬가지로 잡지의 미래도 비관적이다. 이 분야는 시장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한계에 이르렀고 사양 산업으로 '도태'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시장의 논리에 따르면, 그냥 망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출판을 포함한 인문과 예술 분야는 인류에게는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영역이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이미 고도화되었고, IMF 시기를 거치면서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1996년)을 통해 예견한 것처럼, 기계·전자·통신의 발달은 GDP는 팽창시켰으나 인간의 일자리는 계속 축소시키고 있다. 대형크레인과 덤프트럭이 건설 현장의 노동자를 대신하고, 현금 인출기와 전자 뱅킹 그리고 자판기가 사무원과 서비스직의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 물론, 기술 발전과 연구 개발의 성과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도 계속 생겨나겠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고용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수 경제도 활성화되기 어렵고, 복지에 대한 수요 증가, 범죄 증가 등 여러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이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복지 확대를 통한 사회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시민 사회, 종교, 예술 등 제3의 영역(the Third Sector)의 확대를 통해 일거리를 만드는 것이 요구되는 시기다. 제3의 영역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기계에 의해서 대체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인간관계, 동료 의식, 형제애, 봉사 정신 등에 그 존재적 기반이 있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술'과 '문화' 분야 역시 그러한 제3의 영역에 속한다. 이들 제3의 영역에서 시장으로부터 '팽(烹)' 당한 잉여들의 노동력을 흡수하고, 이들에게 기초적인 사회 서비스와 문화 생활을 보장하는 등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삶의 안정을 제공해야 한다. 즉, 현대 사회가 양산해 놓은 잉여들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제3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일하며,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여도 먹고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위대한 예술은 구름 잡는 이야기이기는커녕,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이다. 예술이 아무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 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나는 (월간 잉여)를 통해 자신이 잉여라고 밝힌 미술 작가, 소설가,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고단한지를 알 수 있었다. 나의 고민은 결국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의 확충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 이후 지속적으로 복지 정책을 추진했고, 심지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대처 정부에서도 복지 정책 자체는 축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3의 길'을 표방한 토니 블레어 정부도 다른 복지 분야에서는 구직하거나 취업하는 등 개인의 노력과 연동하여 복지를 지원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꾸었지만, 예술가의 경우에는 구직 노력이나 재교육 수강 여부와 상관없이 복지 지원을 계속 받도록 하였다.

예술인들은 직장에 취업하여 주어진 일을 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면서 여유를 가져야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논리로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계속 지원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복지 정책이 수십 년 계속되면서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조엔 롤링과 같은 사람이 미혼모 신분으로 아기를 키우면서도 전업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한편 당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뮤지컬이나 영화의 근본이 되는 컨텐츠의 창작이 복지 정책의 산물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한류가 국부 창출의 유망한 길이라고 국가적으로 장려되고, 한식을 세계화하기 위해 국고로 수십억 원의 예산이 지원되었지만, 정작 한류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은 아직도 요원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유망한 작가로 손꼽히던 최고은 씨가 굶어죽은 채 발견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예술인을 위한 제대로 된 지원 정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잉여들이 굶어 죽을 걱정 없이 다양한 창조적 활동을 하며 살 수 있도록 보다 촘촘한 사회 보장을 하는 복지 국가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꿈꾸며

현재의 한국 사회는 버려진 잉여는 많지만, 창조를 할 수 있는 '잉여'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전일제(full time) 근무를 해야 기본적인 삶을 지탱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한국 사회는 많은 이들이 잔업이나 주말 근무 등 다양한 형태의 추가 근무를 하며 건강을 해치고 자아를 잃어버리고 사는 '나쁜 사회'다. 대학생 시절부터 등록금생활비, 하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였기에 이제는 그것이 비정상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살고 있다. 구성원들이 행복하지 못한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자살률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저소득 취약계층 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함한 많은 이들이 삶의 불안감을 느끼는보육, 교육, 의료, 주거, 그리고 일자리와 노후 소득 보장 문제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담당해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창조적 잉여'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이지 않도록 보편적 복지 정책과 문화·예술 지원 정책을 시행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얼마나 다른 사회가 될까?

나는 복지국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감정을 어루만져주며, 국민 모두가 자존감과 행복을 느끼는 세상이 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창의적이며 자유로운 '잉여'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창작에 전념해도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 그리고 '잉여짓'을 통해 국가의 성장과 발전에도 기여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나라가 보편주의 원칙의 역동적 "복지국가"라고 생각한다. 우리 잉여들은 그러한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갈망하고 있다.

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청년실업이 낳은 RPG 캐릭터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12-11일자 제51호 기사 '청년실업이 낳은 RPG 캐릭터'를 퍼왔습니다.
잉여가 본 잉여

 
<3083 26="26" p="p" v="v"> 2003-올리비에 코르페

언젠가부터 많은 청년들이 스스로를 '잉여'라 부르고 자신들의 일상을 '잉여짓'과 '잉여력'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잉여란 단어를 종종 듣기는 했는데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잉여들의 놀이터 중 하나인 트위터에서 '잉여'로 검색하면 잉여들의 끊임없는 잉여짓을 목격할 수 있다. 처음 잉여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이미 잉여에 대한 많은 글들이 있을 텐데 어쩌다 별것 없는 잉여인 나에게 이런 요청이 들어왔는지 의아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잉여의 시선으로 보는 잉여를 말하기엔 잉여인 내가 꽤 적합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본인을 소개하자면 나이 서른의 잉여다. 잉여력을 분출했던 대표적인 일은 잉여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를 만든 것이다. 어느 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이어서 수많은 청춘-멘토 기획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있었다.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기에 무슨 내용이 있나 슬쩍 들어봤더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조롱해보고자 다른 잉여들과 합심해 (잉여니까 청춘이다)라는 딱히 듣는 사람이 없는 방송을 만들었다. 이 잉여짓을 통해 수많은 유형의 잉여를 만나며 (잉여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던 나조차도) 애매했던 잉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이 글을 통해 잉여가 바라본 잉여는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머지 인간과 떨거지 인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 주인공 현수(권상우 분)의 아버지(천호진 분)가 현수에게 "너 대학 못 가면 뭔 줄 알아?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잉여인간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 거야, 이 새끼야!"라고 호통을 친다. 대학을 나와야 사회에서 인정받는 '산업역군'으로 자리잡을 수 있던 시기에 대학 진학은 '사람 인정'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이처럼 잉여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 대열에서 낙오 내지 탈락한 '나머지'들을 지칭하는 데 쓰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빗대자면 요즘의 잉여는 취업을 못 한 '인간 떨거지'라고 할 수 있다.
주체로서 잉여가 성립되고, 다양한 형태의 잉여가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공유되면, 거기에서 표출되는 잉여력과 잉여짓이 잉여 일반의 정체성에 추가된다. 흔히 볼 수 있는 잉여의 문법 중 하나는 "나는 잉여니까 오늘도 ( )한 잉여짓을 한다"인데, 잉여짓은 일상적 여가를 포함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행동을 거의 모두 포함한다. 남는 시간(잉여력)을 소득 창출 행위 및 기타 행위(잉여짓)에 쓰는 이들이 잉여다. 따라서 오늘날의 잉여는 "자본가와 안정된 임금노동자를 제외한 나머지로서 잉여짓을 일삼는 자"로 규정할 수 있겠다. 여기에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자조와 체념을 내면화한다.
잉여는 다시 매우 투박한 분류이지만 세분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경제적 안정도, 둘째 주체적인 선택 여부에 따라 잉여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부모의 후원을 받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잉여로운 시간을 잉여롭게 보낼 수 있다. 바로 잉여로울 수 있는 잉여다. 딱히 경제활동을 병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 현실에서 충당할 수 있는 경우다. 반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잉여는 잉여임에도 잉여롭지 못하다. 생존을 위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존재로서는 잉여지만 일상은 전혀 잉여롭지 못하다. 치솟을 대로 치솟은 등록금, 높은 물가가 감당이 안 되는 생활비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이들에게 잉여로울 수 있는 자유는 매우 제한된다. (비록 나의 경험 속에서 접한 적은 표본이지만) 이들의 경우 스스로를 잉여로 규정하는 비율은 그리 많지 않다.
자발성에 따라 구분을 해보면 잉여짓을 계속하고 싶은 잉여와 '탈잉여'를 꿈꾸는 잉여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는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며 이른바 '문화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의 경우 경제적 불안정을 각오하고 '평범한 삶'을 누리지 않더라도 스스로 선택해서 잉여가 됐다. 사실 이런 유형은 이미 과거부터 존재했으며 엄밀하게 말하면 새로이 등장한 잉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단지 잉여가 일종의 문화현상의 성격으로 나타나면서 자신을 잉여라고 부른다고 볼 수 있다. 후자는 고용 불안정의 시대에 취업을 못 하면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잉여가 된 이들이다. 이들은 언제나 탈잉여를 꿈꾼다. 스스로 잉여라고 자조하면서도 언제든 잉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여기서 나는 잉여의 개념을 좁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잉여의 개념이 너무 확장되어서 여기저기에서 잉여를 갖다 쓰고 있지만 잉여로 불리거나 혹은 자처하는 이들을 실제 구성하는 다수는 비교적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비자발적인 잉여에 가깝다. 잉여를 사회현상으로 주목한 이들 가운데 잉여는 스스로를 잉여라 지칭한다는 점을 강조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 외부에서 잉여라 지칭하는 계층은 이미 어떤 이름으로든 존재했고 정작 잉여라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층은 협소하다고 본다. 앞선 구분에 따라 내가 보는 잉여는 잉여로운 시간을 비교적 큰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중간계급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잉여는 중간계급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의 산물인 셈이다. 과거의 중간계급 자녀들과 다른 점은 전자는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었고(비교적 일자리가 많았고 그들의 부모 스스로 노후를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는) 후자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안온한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가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잉여는 한국 사회에서 중간계급의 몰락(하우스푸어와 같은 현상이 심화되고 있듯)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중간계급의 자녀들이 최소한 자신이 누렸던 물질적 풍요를 이어가고자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게임 속의 세상, 게임 속의 잉여

이 깨달음을 통해 잉여가 되는 과정 속에서 양산된 잉여들은 게임 속 캐릭터와 무척 닮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들의 삶은 RPG(롤플레잉게임)의 진행과 비슷하다. 게임 속에서 막과 장 사이에 던져진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한 단계씩 전진하는 방식이 그들의 삶과 크게 차이 나 보이진 않는다. 정형화된 게임 규칙 안에서 조금은 다른 방식의 공략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목적을 향한 최선의 방식은 존재한다. 게임에 빗대어 잉여의 인생 주기를 살펴보면 부모라는 '추종자'의 엄호 아래 비교적 쉬운 1막 '유년기'를 클리어하고 나면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그나마 1막은 다른 스테이지와 비교해 분홍빛이 감도는 편이다. 물론 분홍빛이 지속되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더욱더 과열되는 조기교육) 아직은 희망 속에서 '꿈'이란 걸 꿀 수 있으니까. 2막 '대입 돌파'는 학벌이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향후 인생의 방향을 상당 부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막이다. 2막에서 높은 업적을 달성하고 클리어한 경우 3막 '취업 전쟁'의 진행이 한결 수월해진다. 단적으로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채용 시 가장 많이 보는 비공개 커트라인으로 나이에 이어 학벌이 꼽힐 정도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진행 방식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비난의 목소리는 높지만 크게 봤을 때 변한 것은 없고, 결국 더 좋은 업적을 위한 유저와 그 서포터를 위해 기형적인 형태로 '대입판'이 변질되어온 실정이다.
현재 많은 잉여들이 3막 '취업 전쟁' 속 던전을 헤매고 있다. 엄청난 양의 잉여가 본격적으로 양산되는 지점이다. 2막과 달리 3막은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서 맵을 정확히 볼 수 없고 불확실한 정보만이 나돌고 있다. 예를 들면 기업 측의 정보에 따르면 "스펙보다 스토리"가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3막 유경험자들은 "스펙은 기본, 스토리는 필수"라고 말한다. 이런 불일치로 인한 혼란과 더불어 경기 침체라는 눈보라가 쏟아지는 상황은 유저들의 괴로움을 끌어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유저들이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다음 막으로 가기 위한 충분한 스펙을 쌓기 위해 '앵벌이'에 나선다.
어쩌면 게임이 인생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게임은 난이도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개 초·중·고급 정도로 나뉘는 게임의 레벨은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반면, 인생의 난이도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캐릭터 생성과 동시에 고정되곤 한다(예를 들면 부모의 재력과 같은 가정환경). 또한 게임은 이른바 '로드 신공'을 통해 세이브-로드를 무한 반복하며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인생에서 한번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는 실패에 대한 완충작용 역할을 해줄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패하면 끝인, 그야말로 '하드코어 모드'다. 그렇기에 잉여짓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자조와 체념을 받아들이지만 나머지의 도전은 불필요한 것이나 사치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잉여들이 게임 캐릭터처럼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신해철의 노랫말을 보자.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 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1990년대 X세대가 했던 고민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잉여들도 '자의건 타의건 간에 '왜'라는 물음이 거세된 채 맹목적으로 클리어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 끝에서 볼 엔딩은 어떤 것일까?', '과연 행복은 무엇일까?' 머리가 복잡해지는 고민들을 스스로 던져본다. 하지만 이런 물음도 이젠 조금은 지겨운 클리셰가 되어버렸다. 책에는 나오지만 시험에는 나오지 않는 문제라서 딱히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여기에 이른바 '꼰대'라 불리는 기성세대 중 일부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허망한 예상 답안을 던져주곤 한다. '게임'을 벗어나라는 주문이다. 시각을 조금만 바꿔도 세상은 크게 달라 보인다는 둥, 착실한 '게임 공략법'과 다르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적성을 찾고 그것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며 살아야 한다는 둥. 하지만 탈출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탈출한다고 해서 새로운 세상이 바로 열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임의 규칙이 변하길 기대하거나 자신만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족의 지원 혹은 개인의 특별한 능력과 운에 기댈 수밖에 없다. 결국 많은 잉여들에게 잉여롭지 않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정규직으로의 취업밖에 없다.

"잉여의 탈출구는 결국 취업뿐?"

이제 대다수 잉여들의 선택은 '탈잉여'로 귀결된다. 어쩌면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이 과정에서 잉여는 체제 순응적인 존재로 조각된다. 체제 순응적인 신입사원상일 때 탈잉여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가 요구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펙을 쌓고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있다. 과거 세대들이 요즘 잉여들을 질타할 때 '낭만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잉여들에게 낭만을 즐기는 것조차 탈잉여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잠깐 게임을 일탈하더라도 금세 게임 속으로 복귀한다. 여기에서 잉여라는 계층의 한계가 드러난다. 혹자는 잉여를 어떤 정치적 변혁의 가능성을 담지하는 계층으로 상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판타지에 가깝다. 잉여들은 금방이라도 '짱돌을 들고 거리로 나설' 것처럼 '88만원 세대'를 조망했던 이들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세태에 순응한 패배감 위에 잉여로서의 삶 속에서 얻은 무력감이 중첩되어 불만조차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한 번 실패하면 저만치 뒤로 처지게 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잉여들의 집합소인 취업 커뮤니티에 가보면 그들의 불안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불투명한 채용 속에서 서로가 가진 경험의 조각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며 탈잉여를 향한 전략을 세우다가 탈잉여를 한 이들을 보며 부러움과 패배감을 느낀다. 그러고는 익명 게시판에서 온갖 불만과 하소연을 쏟아내고 잉여짓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안정된 삶을 이어가려는 비자발적 잉여들은 이렇게 불확실함 속에서 오늘을 난다. 잉여들의 현실을 잘 대변해주는 가사로 마무리하겠다. "나는 오늘 가만 누워 TV를 보다가/ 이 세상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봤지/ 나와 함께 얘기를 해볼래?/ 진지하게 얘기를 해볼래?/ 이 세상은 지옥 지옥이다. 아!/ 이 세상은 지옥 지옥이다. 아!"(청년실업, [이 세상은 지옥이다])

 / 강동기 마포FM에서 청춘프로그램 (잉여니까 청춘이다) 팟캐스트를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