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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5일 금요일

삼성공화국, ‘노회찬’과 ‘황교안’ 운명 갈랐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2-14일자 기사 '삼성공화국, ‘노회찬’과 ‘황교안’ 운명 갈랐다'를 퍼왔습니다.
[기자칼럼] X파일 덮은 황교안 검사는 법무장관 영전…노회찬 “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황교안 검사는 당시 ‘안기부 X파일’ 수사 책임자로서 지난 2005년 ‘독수독과(증거 수집 방법이 위법이면 증거 능력을 상실한다)’를 적용해 뇌물 의혹에 휩싸인 사람들은 수사하지 않고 이를 알린 기자와 정치인을 기소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안기부 ‘X파일 사건’을 덮은 사람이 검찰개혁을 해야 할 법무부장관에 지명되고 같은 시각 나는 국회를 떠나게 됐지만 이것을 두고 불의가 정의를 이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이 14일 국회를 떠났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국회에 재입성 한지 불과 10개월여 만이다.
지난 1997년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 후보와 검찰 간부들에게 ‘떡값’을 돌렸다는 대화를 나눴고 이를 안기부가 도청했다. 그리고 8년 후 노회찬 의원이 이를 입수해 국회에서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실명을 폭로했고, 다시 8년 후 노회찬 의원은 유죄를 받았다.
이에 앞서 13일, 당시 ‘안기부 X파일’ 특별수사팀을 지휘한 황교안 전 검사가 박근혜 정권 초대 법무부장관에 지명됐다. 황교안 검사는 이 사건 수사 중 뇌물을 준 혐의가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서면조사 후 불기소 처분했고, 떡값을 받은 검사는 수사도 안했다. 그리고 오히려 이를 알린 이상호 MBC 기자와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삼성과 정계, 검찰 간의 부적절한 유착관계는 덮어지고, 오히려 이를 사회에 고발한 언론인과 정치인이 법의 철퇴를 맞은 것이다. 그리고 이 황당한 사건을 지휘한 검사는 오히려 법무부장관으로 ‘영전’했다. 이것이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 벌어진 일이다.

▲ 이른바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인 노회찬 의원이 14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노회찬 의원의 선고를 앞두고, 국회 여야 의원 152명이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에 동의했고 여야 의원 159명은 이 통비법이 개정된 후 노 의원의 선고를 내려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현행 통비법이 벌금형 없이 때문에 노 의원의 공익을 위한 의정활동이 의원직 사퇴라는 기형적인 결론으로 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통비법이 개정되기 전 기어이 노 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노회찬 의원은 14일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 개정 가능성이 높은 사항인데 왜 서둘러 선고했는지 모르겠다”며 “개정법에 의해 내가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을 대법원이 바라지 않는 듯하다”고 아쉬워했다.
결국 노회찬 의원은 국회를 떠났다. 재벌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는 검사는 조사도 받지 않았고, 같은 혐의가 있는 옛 대선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박 당선인을 지지하며 재기했다. 위장전입 등 법을 어긴 사람들은 고위 공직에서 잘 살아남고 있다. 오직 불법을 폭로한 정치인만이 국회를 떠났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한국사회가 '삼성공화국'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는 평가다. 삼성가를 불편하게 한 자 노회찬과 근심을 덜어준 자 황교안의 엇갈린 운명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엇갈린 운명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그 아무도 모른다. 안기부 X파일 사건이 이번 판결로 매듭될 지는 미지수다. 노회찬 의원이 폭로한 X파일의 내용은 안기부 도청팀이 압수당한 280여개의 테이프 중 불과 2~3개에 불과하다.
“280개의 테이프가 서울중앙지검에 그대로 보관돼 있습니다. 국회와 국민이 노력하면 테이프 공개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친일 문제도 새 법률로 진상을 규명했습니다. 역사에는 시효가 없습니다. 거대권력의 비리를 규명하고 처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아직 제 싸움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남기고, 노회찬 의원은 국회 밖으로 나섰다.  

정상근 기자 | dal@mediatoday.co.kr 

2013년 1월 11일 금요일

‘삼성공화국’ 언론의 낯 뜨거운 회장님 생일 보도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1-10일자 기사 '‘삼성공화국’ 언론의 낯 뜨거운 회장님 생일 보도'를 퍼왔습니다.
[비평] 실시간 중계급 기사에 드레스코드까지 보도… “가십거리 확대해 광고주에게 존재감 보인 보도”

이건희 회장 72세 생일 관련 기사는 9일 밤 11시 기준 200여 건이 넘었다. 언론은 마치 생중계하듯 분 단위로 현장 상황을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보도에 따르면, 30여 개 언론사가 현장을 취재했다. 이를 두고 일선 기자들과 언론운동단체에서는 ‘한국 최대 광고주 삼성에 대해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과도한 보도행태’라고 지적했다.
텍스트 기사 기준으로 일부 언론은 6건의 이건희 회장 생일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포털사이트에 ‘이건희’와 ‘생일’을 키워드로 넣어 검색하면 경제지와 인터넷언론을 중심으로 총 200여 건 이상의 기사가 검색된다. 마치 실시간 중계처럼 ‘○○분에 ○○○이 입장했다’는 내용은 물론 드레스코드를 소개한 기사도 눈에 띄었다.
헤럴드경제는 생일에 맞춰 이틀 동안 총 6건의 기사를 내보냈다. 특히 10일 (이건희 회장 생일에 등장한 아줌마 오빠부대...무슨일?)에서 이 매체는 이날 행사가 열린 신라호텔 주변에 40~50대 여성 대여섯이 이건희 회장을 기다렸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다른 기사에서 행사에 노래를 부른 걸그룹 시스타의 ‘소감’을 보도하기도 했다.
헤럴드경제는 앞서 9일 5.9매 분량 기사를 기자칼럼 형식으로 내보냈다. 이 매체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 72세 ‘청년 이건희’ 혁신의 끝은…) 제하 제목 기사에서 이건희 회장의 경영 마인드, 리더십을 소개하면서 “도전과 혁신의 72세 청년, 이 회장의 행보에 ‘기대감’이란 표현을 붙이는 것이 아깝지 않은 이유”라고 썼다.

▲ 헤럴드경제 누리집에서 '이건희'를 검색한 결과. 총 6개의 텍스트 기사가 검색된다. 헤럴드경제 누리집에서 갈무리.

민영통신사 뉴스1은 7.3매 분량 (‘오마주 투 유’ 이건희 회장 72주년 생일 축하연 마무리)로 이 소식을 내보냈다. 특히 뉴스1은 이건희 회장의 손주들의 꽃과 음성 선물에 대해서도 자세히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 회장은 소박하더라도 손주들의 정성이 들어있는 선물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아시아경제도 (이건희 회장 72세 생일 선물은? ‘1000년 가는 갤럭시S3’) 6.2매 분량 기사에서 손자들의 선물에 대해 “이 회장 역시 손자, 손녀들의 목소리가 꽃에서 나오자 웃음을 지으며 눈시울을 적셨다”며 자세히 보도했다. 이 매체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스탠드에도 이 기사를 노출했다.
뉴스핌의 경우, 분 단위로 현장 분위기를 자세히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건희 회장, 72회 생일 만찬…부사장 이상 300여명 참석) 제하 제목 5.1매 분량 기사에서 이 회장 일가의 드레스 코드는 물론 주요인사들의 도착 시간까지 보도했다. 아이뉴스24 6.5매 분량 (이건희 회장 생일 만찬에 350여명 참석) 제하 제목 기사 내용은 뉴스핌과 유사했다.

▲ 서울경제 1월 10일자 13면

관련 기사를 보도한 한 언론사의 산업부장은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 같은 ‘이건희 생일 보도’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기사 가치가 있지만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문들이 과도한 보도를 하는 것은 최대 광고주 삼성에게 존재감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공인에 대한 소식을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보도하는 것일 수 있지만 취재원에게 아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보도는 독자에 대한 예의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통화에서 “언론사에게는 새해 벽두부터 광고를 딸 수 있는 건수”라면서 “언론이 가십거리를 어마어마한 량으로 보도한 것은 그야말로 한국이 삼성공화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추혜선 총장은 이어 “광고주 삼성에게 구걸하는 행태로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서울경제는 13면에 (72세 이건희, 지칠줄 모르는 혁신경영)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건희 회장과 사돈관계인 홍석현 회장의 중앙일보는 10일자 인물면 (이건희 회장, 부사장급까지 초청 생일 만찬) 기사, 한국경제는 (이건희가 받은 생일선물은 ‘옻·자개로 장식한 갤S3’) 등 기사를 게재했다. 연합뉴스는 상대적으로 적은 원고지 3.6매 분량의 (이건희 회장, 72번째 생일 맞아 신라호텔에서 만찬) 제하 제목 기사를 내보냈다. 파이낸셜뉴스는 10일자 1면에 사진과 함께 이 소식을 전했다. 머니투데이와 매일경제는 10일자에 관련 사진기사를 게재했다.
삼성 홍보팀 정재웅 부장은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자들에게 ‘사내 행사이니 가급적 취재를 오지 말라’고 부탁했고, 보도자료를 내지도 않았지만 기자들이 70여 명 왔다”고 밝혔다.

▲ 중앙일보 1월 10일자 26면 인물면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2012년 7월 4일 수요일

'뛰는 언론 위에 나는 삼성공화국?'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7-03일자 기사''뛰는 언론 위에 나는 삼성공화국?''을 퍼왔습니다.
이건희 비난성 기사 축소…SNS "한겨레, 올해만 80억 받았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난한 기사가 삭제됐다는 소식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여론은 다시금 '언론 위의 삼성'이라면서 강하게 질타하고 나섰다.
3일자 (미디어 오늘) 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을 맹비난한 기사의 제목이 자체적으로 수정됐거나 삭제됐다고 전했다. 해당 언론사들은 자체적으로 삭제했다고 밝혔지만, (미디어 오늘)은 삼성측이 해당 언론사에 직접 전화해 기사 수정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이 회장을 상대로 낸 상속회복 청구소송 2차 재판에서 이 전 회장의 변호인이 이 회장 쪽 변호인을 겨냥해 "몰래 숨겨놓고 감추면 자신의 것이 된다는 논리는 시쳇말로 '도둑놈의 논리'"라면서 "도둑놈 심보로 (차명재산을) 은닉한 것이 아닌가"라고 힐난했다.
이에 (아시아경제), (국민일보), (이데일리), (한국일보) 등 은 이 전 회장의 변호인이 말한 "이건희, 도둑놈 심보", "도둑놈 논리" 등을 제목으로 뽑아 기사화했다.
그런데 이같은 기사들이 갑자기 제목이 바뀌거나 삭제됐다.
(미디어 오늘)은 (국민일보)의 경우 제목이 "삼성家 상속재산 분쟁 두번째 재판"에서 최종적으로는 "삼성家, 이번엔 '참칭 상속인' 공방"으로 지면보도 됐다고 보도했다. 부제목은 "이맹희측 '이건희, 도둑놈 심보'"에서 "맹희측 '돈 숨기면 자기것 되나'로 바뀌어 보도됐다.
(이데일리)의 경우 ""이건희, 도둑놈 심보" vs "이맹희도 알고 있었다"라는 제목에서 "삼성家 상속소송 2차 변론기일…날 선 공방 이어져"로 바뀌었고, (아시아경제)의 경우 "도둑놈 심보…과한 표현도 등장한 삼성家 소송"이라는 기사가 아예 삭제됐다.
(미디어 오늘)은 언론사별 해당 부서에 전화해 사실을 확인했지만, 해당 언론사는 "삼성측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한국일보)만 "(삼성에 전화가 왔지만) '도둑놈 심보'라는 말은 기사에 처음부터 들어가 최종판까지 수정없이 그대로 나갔다"며 요청을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김성홍 부장은 (미디어 오늘)과 인터뷰에서 "('도둑놈 심보') 발언은 법정에서 판사가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제지를 했고, CJ 변호인측도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철회한 내용"이라면서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 (이데일리)기자에게 전화해 선처를 부탁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은 앞서 언론에 영향력 행사로 의혹을 산 바 있다.
(한겨레 신문)은 지난 4월 삼성을 비판한 기사를 해당 기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데스크에서 수정하는 사태가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한편에서는 심지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여론조작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 갤럭시 S3가 폭발했다고 주장한 사진. 사진출처 : 트위터리안 Links_Arc, @Links_Arc
트위터리안 Link***(@Link***)는 최근 삼성전자에서 출품한 갤럭시S3 제품의 하단이 훼손된 사진을 올리고 "갤럭시S3 나오자마자 폭발!!! 하지만, 어떤 언론사도 이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네이버에선 검색도 안 됩니다"라는 멘션을 올렸다.
그런가 하면 트위터리안 소셜**(‏@soci***)는 "삼성 백혈병 노동자에 관한 책 과 에 대해 언론사들이 광고 게재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 이야기를 알게 되고, 마침내 이 책이 삼성 본가의 서재까지 들어가야 합니다"라는 멘션을 올리기도 했다.
일부 트위터리안들은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자유로우려면 광고만으로 유지하는 수입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겨레)의 경우 지난 2007년 삼성 비리와 관련해 폭로성 기사를 적극 보도하다가 한때 삼성 광고가 끊겼다가 2010년 정상화됐다. (한겨레)는 삼성의 최대광고주로 올해만 약 80억 가량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28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보도도 하지 않았고, 당일 보도한 지면 신문 중 (한겨레신문)만 ""이건희 쪽 말은 도둑놈 논리" 이맹희 쪽, 차명주식 맹비난"으로 제목을 뽑아 보도했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2월 28일 화요일

김대중 D, 노무현 C, 전두환 A…이것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28일자 기사 '김대중 D, 노무현 C, 전두환 A…이것은?'을 퍼왔습니다.
[시민정치시평] 재벌개혁과 한국경제 새판짜기…99% 연대의 길로

복지에 이어 경제민주화가, 그리하여 그 핵심 관문으로 재벌 개혁이 모두, 더불어 잘사는 나라로 가기 위한 중심 의제로 다시 떠올랐다. 대한민국이 가히 '재벌 동물원', 또는 '삼성공화국이' 꼴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재벌의 탐욕과 탐식, 독점과 독식이 도를 한참 넘은 현재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는 무너진 민생경제를 살리고 경제민주화 나아가 '제 2민주화'를 이루는 일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명박 정부 아래 오늘과 같은 재벌독식 정글 자본주의를 초래한 장본인인 한나라당까지 당명을 바꾸는 등 법석을 떨고 경제민주화 운운하는 걸 보면, '두 국민'으로 갈라진 채 다수 대중이 삶의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 사회의 위기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도 남는다. 집권 여당까지, 진지한 반성은 모르쇠로 버티고, 복지국가 건설과 경제민주화 시대정신에 편승하려고 변신하고 있는 걸 보면, 작년부터 유력 보수 언론이 주도했던 바, 복지국가 길과 재벌개혁은 회피하며 재벌의 자선에 호소했던 한국판 "자본주의 4.0" 기획도 허사가 된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정치란 이쪽과 저쪽, 또는 아방타방(我方他方)을 나누며 '우리'를 저변 넓게 구성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의제의 경우, '부자 증세'처럼 아방타방을 나누는 지점이 확실히 존재한다. 이전에 민주노동당이 내걸었던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과 같은 말은 그 지점을 잘 포착한 정말 멋있는 슬로건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이 슬로건을 높이 쳐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러나 복지국가 건설은 부자증세만으로는 어렵고 국민전반의 증세부담을 요청하기 때문에 대척점이 흐려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가, 제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축적하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다. 그것에 비해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의제는 대척점이 훨씬 명확하다. 현 상황에서 '우리'를 넓게 99%의 '경제민주화 동맹'으로 확대하고 저쪽을 한줌의 1%로 몰 수 있는 최상의 의제일지도 모른다. 이제 '99% 연대로 1% 재벌을 개혁하자'고 말해야 할 때다.

그런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견해도 다양하기 마련이다. 돈되는 건 다 먹어치우는 재벌의 탐욕을 규탄하며 개혁 대안을 찾는 토론의 장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그런 토론의 일환으로 얼마 전에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나도 토론자로 참여해 지난 시기 '삼성공화국' 국면이래 주장해온 '제 2라운드 개혁'론을 피력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청중이 많지는 않았지만 매우 유익한 토론이었다.

주발제자인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2007년 선거가 '성장과 경제자유화'라는 보수적 프레임으로 짜여졌던 반면에, 2012년 선거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 주도의 프레임이 짜여졌고 여기에 보수가 끌려 들어와 따라잡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덜 부각되어 있는 '노동 민주화' 의제를 강조하고, 재벌개혁 운동이 민생연대 나아가 '99%의 연대'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발제자와 유사하게 노동자 경영참가에 기반한 '산업경제의 민주주의' 실현에 방점을 찍으면서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개혁 패키지들을 풀어 놓았다. 곽정수 한겨레 기자는 한참동안 민주통합당 내부 '재벌개혁의 X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재미있게 듣고 웃고 했지만,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제법 떠들썩한 외양과는 다른 실상을 'X맨'이라는 말 한마디로 아주 잘 짚은 셈이다. 'X맨'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홍종학 교수가 또 지루한 토론회에 큰 웃음을 주었다. 그는 재벌은 킹콩같은 존재로, 이 킹콩이 선거 기간에는 잠을 잔다면서 이 때가 개혁의 호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벌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제재, 효과적인 규율수단 그리고 빠른 속도라고 하면서 계열사간 배당이나 거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재벌세'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주노총 토론회를 포함하여 여러 논의들에서 좋은 정책수단이 많이 나온 것 같다. 정책 수단을 잘 몰라서 재벌개혁을 못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수 있을까?

우선 지난날 재벌개혁이 실패한 경험을 반성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 실패했나?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먼저, 두말할 필요없이 재벌 권력의 힘이 너무 강대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한국의 개발 독재는 강력한 정치적 독재임과 동시에, 대재벌을 키우고 이와 공고히 동맹한 반면 노동을 배제적으로 동원한 아주 당파적인 계급 권력이기도 했다. 권위주의 산업화가 고도의 권력전략인 동시에 계급전략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그리하여 국가 권력과 재벌 권력이 결탁한 과두제(寡頭制)적 지배와 고도집중 체제를 물려 준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 정권은 물론 5공 신군부독재도 그러하다. 독재정권이 재벌에 퍼주기를 하면서 일정하게 규율을 부과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이 노동계급과 시민사회의 발언을 통제, 억압해 왔기 때문에, 민주화이후 오히려 자기 발로 서게 된 공룡 재벌의 고삐를 잡고 민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역사적 힘이 형성되기 어렵게 된다. 여기에 민주화 이후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어렵게 된 "민주화의 역설"이 나타난 조건을 찾을 수 있다. (☞ 바로가기 "강한 개발국가 복원?…장하준의 새로움과 구태의연함").

둘째, 개발독재 시기로 환원할 수 없는 민주화 시기의 실정(失政)문제가 있다. 한국의 민주화 시기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와 중첩되었으며 역대 정부는 경제적 자유화=규제 완화와 무분별한 개방의 물결에 휩쓸렸다. 민주화와 자유화와 같이 진행됐다. 그로 인해 재벌의 힘과 정부의 실정이 합작한 끝에 97년 '외환위기'가 도래했다. 이어 97년 이후 중도 자유주의 정부는 한편 외압에 순응하면서 다른 한편 그 칼을 빌려 재벌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는 단절과 연속의 기묘한 혼합물이었다. 불법적 경영권 세습 등에서 보듯이 오늘날 한국재벌의 전근대적 구태는 여전하다. 그러나 재벌 개혁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재벌들이 사라지고 쪼개졌으며, 살아남은 재벌도 크게 변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슈퍼 재벌'로의 초집중과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빈곤화였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역대정부의 재벌 정책에 대한 학점은, 전두환 정부 A, 노태우 정부 C, 김영삼 정부 D, 김대중 정부 D, 노무현 정부 C 로 평가되었다. 논란이 많겠지만, 충격적인 평가다. 이 평가의 타당성 문제는 제쳐 두고, 한국의 민주화이후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과실을 얻고 최대의 수혜자로 부상한 것은 소수 재벌이고, 노동자와 서민, 그리고 여러 중간 집단들조차 패배자의 처지로 떨어진 게 사실이라면 이는 정말 큰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역설이 재벌개혁의 부진뿐만 아니라 97년이래의 재벌개혁에도 크게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단지 재벌개혁이 아니라 '어떤 개혁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연합


셋째, 나아가 정부 정책만이 아니라 '범민주 진보' 진영 내부의 개혁 담론도 재벌 개혁이 실패하는 데 일조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는 주주 자본주의냐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냐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 그 우열을 판별하기 위한 기준을 찾는 노력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견해를 편 사람도 있다. 또 재벌개혁을 (구)자유주의적 개혁틀안에 가두면서 경제민주화와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들은 재벌 개혁의 목적은 단지 공정 경쟁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참여와 공정한 협력은 배제해 버린다. 어떤 논자는 지난 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 즈음하여 사측의 해외공장 이전과 주식배당에 대해서는 은근히 두둔한 반면 정리해고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상한 논법을 제시한 적도 있다(김기원,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 , 2011/8/4). 그리고 IMF 이후 세계화가 반(反)노동적임과 동시에 반재벌적인 효과를 가졌고 그래서 재벌과 노동 모두 거기에 반대했다고, 문제의 한쪽 면만 보는 견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재벌과 세계화간의 불협화음만 볼 뿐, 양자의 교묘한 만남과 화해가 초래하는 반(反)민주적 효과를 간과하는 것이다.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문제를 보는 나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형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바, 재벌체제의 내부자(Insider)와 외부자(Outsider)로 분단된 이중화 양식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래 그림 참조). 내부자의 중핵은 재벌체제의 재생산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상위 계층들이다. 외부자는 비정규직, 취약한 정규직, 실업자, 자영업과 중소상인, 취약한 중간층, 중소기업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잘 살펴야 할 것은 소액주주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의 존재이다. 이들은 야누스적 얼굴을 갖고 있다. 재벌 총수의 횡포는 소액주주권을 침해한다. 그렇지만 재벌의 높은 실적과 주주가치 추구는 소액주주에게 이익도 가져다 준다. 소액주주중에는 소시민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제금융자본과국내 대금융자산가들도 대체로 소액주주며 이들이 소액주주의 '큰 손'으로 재벌체제의 최대 수혜자에 속한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 그 약체 부분은 기업주가 휘두르는 부당 정리해고 칼날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큰 부분은 기업별 노조에 갇힌 채 - 이는 신정완이 '박정희체제의 사후의 복수'라 부른 것이다- 비정규직과 연대는 외면하고 재벌과 이익을 함께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한국의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대안은 복지 의제처럼 스웨덴 모델을 준거로 삼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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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독특한 내부자-외부자의 이중화 상황에서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중심에 놓는 재벌개혁론은 다수 대중의 민생경제를 중심에 놓는 개혁론과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추상적으로 노동자 경영참여를 외치는 개혁론도 정규직이 비정규직, 실업자 등의 이익을 담아내는 보편적 ,포괄적 이해를 구성하지 않는 한 이중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 시작하는 제 2라운드의 개혁은 지난 1라운드의 한계 지점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 경쟁시장을 추구하는 질서자유주의적 개혁은 재벌개혁의 기본적 구성부분임이 분명하지만 이는 다수 피억압대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회민주적이고 참여민주적인 개혁과는 충돌하는 지점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개혁은 중도반절로 끝난 질서 자유주의적 개혁의 적극적 부분을 이어받되, 그 중심방향은 사회민주적이고 참여민주적인 개혁을 재창조하는 데 두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노동 부문이 이중화 구조를 넘어 노동 연대를 향해 필사적 노력을 다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늘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중심적 문제는 1997-8년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대다수 사람들이 거의 예상하지 못한 채 습격당한 정글자본주의 속에서, 재벌의 전방위적인 탐식과 약탈적 축적, 그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불공정하고 부당한 거래와 분배, 야만적인 노동 배제,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 등이 중심적 문제 또는 '주요 모순'이 되고 있다. 재벌과 외국자본의 지배동맹에 의한 독점 독식과 이중화 축적체제로 인해 배제되고 약탈당하고 있는 광범한 국민 대중의 삶의 불안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상태로는 민생은 물론 한국경제의 미래도 없다.

서두에서 정치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치는 다투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생 협력하며 이를 통해 더 높은 균형으로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재벌개혁이 재벌죽이기가 아니라 오히려 재벌살리기라고 말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재벌이 민주공화국을 길들이는 비정상상태로부터 이들이 민주공화국의 시민적 구성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 이를 통해 시민기업으로 재탄생한 재벌과 민생, 나라경제가 선순환하는 민주적 참여의 시장경제, 고진로(High Road)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재벌 개혁의 목표다. 그리하여 저변이 넓고 튼튼한 민생경제, 피라미드형의 강소(强小)하고 중견(中堅)한 살림의 경제, 공화국의 구성원이라면 동등한 '경제시민'으로서 노동하고 기업(企業)하는 사회경제적 권리지분(stakes)을 쥐어주면서 공정하게 협력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며 언제나 패자부활이 가능한 한국형 시민경제의 새판을 짜는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