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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5일 수요일

박근혜 청와대와 윤창중의 일베 전쟁 10


이글은 진실의길 2013-05-15일자 기사 '박근혜 청와대와 윤창중의 일베 전쟁 10'을 퍼왔습니다.
[집중 분석] 사건의 잉태. 대형사고, 그 수순

(매우 긴 글입니다. 예전의 월간 신동아 집중취재 기사를 읽는다는 심정으로 차분한 일독을 권합니다.-필자 말)

들어가며

윤창중 성추행 사건에 대해 박근혜가 비록 수석비서관 회의 발언 형식이라지만 기대(?)보다는 수위가 높은 사과를 했다. 이 사과가 나오기 전에 비서실장 허태열도 상당한 강도가 있는 사과를 했다. 또 허태열의 사과가 나오기 전에 민정수석실은 윤창중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힐 칼을 꽂았다. 이 수순이 정해지기 전에 했던 이남기의 해명과 사과는 번지수가 틀렸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함이다.
이런 수순은 윤창중이 누군가의 코치로 기자회견이란 걸 하면서 사태의 물줄기를 돌려보려 했던 시도 때문에 되려 박근혜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버려지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현재는 윤창중을 버린 이들이지만 사실은 윤창중을 처음부터 죽이려 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초 청와대와 권력은 윤창중을 범죄현장에서 빼돌리고 남은 이들이 현지에서 윤창중의 범죄행위를 없던 일로 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더구나 피해자가 한국에서 자랐고 한국에 부모가 있는 유학생이 아니라 재미교포이므로 미국에서 자랐으며 부모도 미국에 있는, 쉽게 말해 한국의 알량한 권력이 통하지 않는 아이였음에 그들의 이런 기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 기도가 실패로 돌아가므로 권력안에서 혼선이 도래했다. 그래서 쉽사리 운신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걸 보수언론들은 대통령 보좌진의 실수라고 한다. 하지만 만약 성공했다면? 힘 없는 여성 인턴은 여성성과 인권을 처참하게 유린당했음에도 ‘없던 일’로 치부되면서 ‘대통령 방미 대대적 성공’이란 화려한 잔치 뒤에서 통곡했을 것이다.
한편 현지 무마가 실패하더라도 다른 무기가 그들에겐 또 있었다. 자신들의 우군인 일명 우파논객들과 일베들이다. 즉 이들을 이용하여 ‘의병 윤창중이 종북이에게 당했다’는 논리로 한판 전쟁을 한다면 국내 여론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도 생각했음직 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일베들이 밀리면서 이런 판단도 확신을 가질 수 없도록 했다.
사건이 (미시USA)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 일베들의 작전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미국 내 교포들이 사건의 실체를 먼저 알고 국내로 확산시킨 때문인데 이들은 국내의 보수층이나 일베들에겐 그 자체로 버거운 상대였다는 것이다.
결국 권력과 우파진영은 이런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윤창중 구하기는 실패’라는 판단을 너무 늦게 했다. 이점이 그들에겐 너무 아픈 대목이다. 때문에 지금 그 늦은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청와대, 새누리당, 보수언론, 마지막으로 대통령까지 합세하여 ‘윤창중 매장’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비록 아직도 꿈속에 있는 지만원 정미홍 변희재 같은 이들과 치료가 불가능한 정신병적 우파꼴통 일베들이 지금도 ‘종북이들의 윤창중 죽이기’라며 (미시USA)라는 사이트까지 종북이라고 왈왈대고 있으나 판세를 정밀하게 읽는 보수 꾼들은 아니다. 이들은 이미 한국과 미국이라는 차이는 자신들도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다는 내밀한 판단을 했다. 그래서 ‘윤창중만 죽이면 돼’ 작전을 돌입한 것이다.
오늘도 이 사건과 관련된 보도는 여러 매체에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결정타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 우파 본진 언론들에서 더 많이 쏟아진다. 이들 언론의 보도들을 보면 권력 안의 더러운 속살이 우리 같은 범부들을 맨붕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를 해부하면 충격적인 것은 이 사건의 주인공은 ‘마초 윤창중’이 아니라 청와대였다는 것 쯤은 금방 알 수 있다. 사건의 주인공이 왜 청와대인가? 지금부터 그에 대한 ‘소설’을 한 편 쓴다. ‘소설’이나 팩트가 분명한 ‘넌픽션’으로 볼 수도 있겠다.

1. 사건의 잉태.

윤창중은 박근혜의 미국 방문에 매우 따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김행과의 힘겨루기도 불사하며 여론을 움직였고 결국 김행이 포기함으로 ‘단독수행’이란 열매를 땄다.
이남기 홍보수석이 수행단의 홍보 파트 대표이기는 하나, 윤창중은 애초 이남기를 직제상 상관일 뿐 자신이 이남기보다 더 높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인물이다.
지금까지 배설한 글들을 보면 윤창중은 애초 성격 자체가 ‘마초’였다. 이런 윤창중을 박근혜가 직접 찍어 1호로 픽업했으니 그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원래 안하무인성 마초기질의 윤창중 스스로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도록 했다.
특히 여러모로 힘에 버거웠던 이정현이 국내에 남는 다는 것은 윤창중에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즉 방미단 홍보 파트에서 윤창중의 콘트롤 타워는 사실상 박근혜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홍보파트에서 윤창중 콘트롤 타워가 없다는 거다. 윤창중 같은 이에게 콘트롤 타워마져 없다는 것, 대형 사고를 이미 잉태하고 있었던 셈이다.

2. 대형사고, 그 수순

(1) 대통령 일행의 미국 도착 첫날 뉴욕의 1박, 특별히 대변인이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황, 기자출신이라고는 하나 윤창중의 필드기자 경력은 사실 일천하다. 정치권 언저리에서 맴돌기만 했기 때문이다. 윤창중은 현역 기자생활 중 청와대 출입기자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하여 대통령의 순방외교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 깨달을 틈도 없었다는 말이다.
제어 할 권력자는 없고, 행사할 수 있는권력은 갖고 있으니 '마초 윤창중', 놀기 좋은 물이었다. “윤창중은 미국체류 3일 동안 매일 술에 취해 있었다”는 기사로 봐도 윤창중에게 얼마나 놀기 좋은 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거기다 대사관은 예쁜 인턴 여직원까지 수행비서로 붙여줬다.
윤창중은 그 스스로 말했듯 이들 비서역의 인턴들을 대통령 순방외교를 돕는 재원들로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가이드’로만 봤다. ‘이까짓 가이드 쯤’이라는 심리, 그래서 ‘대빵인 내가 술 먹는데 같이 한 잔해도 될 존재’ 정도로만 인식했다. 이 인식이 뉴욕에서부터 인턴에게 “술 좀 가져와라” “같이 술 한 잔 하자” 같은 막 대하는 행태로 나타난 것이다. 다행이 뉴욕 체류 시간은 짧았다. 더구나 뉴욕의 담당 인턴은 워싱턴 인턴보다 겁이 좀 더 많았던 듯싶다. 그래서 바로 주변에 상황을 알리는 기민함을 보여줬다. 때문에 더 이상 큰 사고를 칠 수 없었다.
(2) 다음 기착지는 워싱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일정대로 진행했다 윤창중은 대변인으로 이 정상회담을 브리핑했다.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딱 한 번 가진 기자 상대 브리핑이 바로 이 브리핑이다. 우리의 윤창중, 이제 수행 대변인으로서 할 것은 했다. 다시 밤이 되었다. 뉴욕에서부터 꿈꿨던 젊고 예쁜 ‘가이드’와 술자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시도했다. 뉴욕과는 다르게 이 예쁜 ‘가이드’가 동석에 동의했다. 이윽고 술자리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워싱턴 인턴이 좀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더구나 ‘청와대 대변인’ 정도 되는 고위 인사인데다 아버지뻘인 사람인데 뭐 별일이야 있겠는가 심정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호텔 와인바 정도 동석인데 뭐의 심리도 작용했다고 본다. 이런 인턴 여직원의 불운이라면 윤창중이 마초적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파악할 시간이 너무 없었다는 점이다.
이윽고 술이 한 잔 들어간 윤창중, 와인 2병을 마시며 자신의 성격대로 행동했다. 기자회견에서 그가 했던 ‘열심히 하고 미국에서 성공해라’는 어쩌면 그 술자리에서 했던 ‘작업멘트’였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여기 순방단 중 대통령 빼면 제일 센 사람이다. 내 말만 잘 들으면 넌 성공한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곧 내 말을 잘 듣는 것이다’같은 멘트와 함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와 같은 더듬이질을 했다. 이를 문화일보는 “VIP(박근혜 대통령)가 대단한 사람이고 성공한 한·미 정상회담”...“A 씨와 가족관계, 학교생활 등 개인적인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전해졌다”고 쓰고 있다. 그랬음에도 인턴 여학생은 꿈쩍도 안 했다. 작업 실패다.
(3) 와인 바에서 와인 2병을 마시며 작업을 했으나 작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미진한 윤창중은 밤 늦도록 호텔을 배회하면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 밤 시간 중 최대 5시간, 최소 3시간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즉 어디선가 술을 더 먹고 아주 취한 채 호텔을 돌아다니는 걸 기자들이 목격했을 정도다. 새벽에 방으로 들어왔으나 자꾸만 그 젊고 예쁜 인턴비서가 눈에 밟힌다. 목욕을 하고 ‘알몸 상태로’ 그녀를 호출한다.
다시 상관의 호출을 받은 비서는 영문도 모른 채 방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알몸인 상관이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한다. 황급히 도망치려 하자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은다. (일부 언론은 윤창중이 알몸 상태로 방 안에서 여학생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고 썼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강간미수 중범죄자’로 미국 경찰의 체포영장과 함께 범죄인 인도요청이 들어 올 사안이라고 쓰고 있다) 어떻든 도망치듯 자기 방으로 돌아 온 여직원은 울면서 룸메이트인 문화원 직원에게 상황을 얘기했다.
이 얘기를 들은 문화원 직원은 피해 당사자보다 더 흥분했다. 그래서 즉시 상관에게 상황을 얘기하면서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말했다.(언론들은 이를 화가 나서 소리치며 울부짖었다고 쓰고 있다) 문화원이 바빠졌다. 대사관에 보고하는 한편 이들의 경찰신고도 막아야 했다. 그래서 흥분한 여직원과 피해자를 달래 볼 요량으로 급거 피해자가 있는 호텔로 방문했다. 하지만 너무 충격을 받은 여직원과 피해자는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제 문화원 측과 대사관 측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만약 이 여성들이 즉시 경칠에 신고하고 경찰이 출동하여 피해상황을 접수하면 대통령이 워싱턴에 체류 중인 상태에서 대변인이 성범죄자로 체포되는 상황이 도래된다. 대사관으로선 이 일만은 막아야 했다. 황급히 청와대 홍보파트 수행단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추후 벌어질 수 있는 사태를 알렸다. 그리고 쌍방 협의 하에 윤창중 귀국행 비행기표를 미리 예약했다.
(4) 자신이 지난밤에 인턴 여직원에게 했던 일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 윤창중, 어떻든 남녀관계는 이뤄지지 않았으니 마초적인 그에게 지난 밤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날의 대통령 일정대로 경제인 간담회를 수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간담회에 참석, 이건희와 정몽구 등에게는 90도로 인사하는 등 눈도장도 확실히 받았다.
한편 대사관 보고를 통해 상황을 접수한 청와대 행정관은 미리 전화로 윤창중에게 지난밤 일을 확인하고는 여직원들의 얘기가 사실임을 간파했다. 서둘러 이남기 수석에게 보고했다. 보고 내용 및 조치는 대사관의 권유대로 윤창중을 귀국시키는 것이었다. 놀란 이남기는 대사관의 보고대로 귀국시키기로 하고 비행기를 예약하라고 한 뒤 윤창중을 불러 사실 확인을 했다.
하지만 윤창중은 ‘아니다’라고 딱 잡아뗀다. 이남기는 윤창중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경찰이 체포에 나설 수도 있으며 그리될 경우 대통령이 아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리 될 경우 당신이 부인해도 일은 무마되지 않는다. 일단 현장을 피해야 한다. 당신의 부인이 위급해서 급거 귀국했다고 할 거니까 지금 귀국해라. 다음 문제는 여기서 되도록 조용히 마무리 짓겠다. 조용히 마무리 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논리로 설득한다. 이 설득에 윤창중은 자신의 방에 다시 들르지도 못하고 그냥 공항으로 가서 귀국행 비행기를 탄다.
-여기까지가 미국의 상황이다-
(5) 귀국한 윤창중, 개인카드로 ‘거금 400만 원’을 주고 산 비행기 값이 아깝다. 착실하게 마일리지를 챙긴다. 그리고 유유히 숙소로 가려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전화가 온다. 얼떨결에 사실에 가깝게 고백한다.
왜? 자신을 빼돌릴 정도로 보호하겠다는 청와대인데, 즉 같은 편인데 뭐 어떠랴 싶었다. 통화 중에 느낀 감도 자신을 죽이려는 뜻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전화에서 민정수석실은 ‘집으로 가지 말고 조용해질 때까지 잠시 다른 곳에 피해있으라’고 착실히 코치한다. 이 코치대로 윤창중은 집이나 숙소로 가지 않고 잠적한다.
(6) 윤창중을 빼돌리고 LA로 날아간 방미단, 내부적으론 심도있는 논의를 했으나 대통령에게 알리는 문제는 미적거린다. 그 와중에 LA행 비행기에 대변인이 탑승하지 않은 사실로 기자단이 술렁인다. 이남기, “부인이 중병이 걸려 대통령께 보고하고 먼저 귀국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촉이 빠른 기자(노컷뉴스 소속이었다), 본사 데스크에 ‘방미단의 LA행 비행기에 윤창중이 탑승하지 않는 중대한 변수가 생겼는데 부인이 중병이라고 한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그 시간 대에 <미시USA>라는 사이트에 ‘윤창중이 수행단을 보조하는 인턴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글이 올라온다.
노컷뉴스 데스크, 재빨리 이 글을 접한 뒤 다시 미국의 수행기자에게 알리면서 ‘의혹’이란 제목으로 1보를 날린다. 국내 언론 속성상 이 급보는 제어 불능이다. 줄 잇는 의혹기사들이 거의 모든 매체를 통해 인터넷을 달군다. 소식 빠른 국내 트위터리안들, (그중 나도 한 명이다) 실시간 사건 추이를 트윗한다. 삽시간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윤창중 성추행’으로 뒤덥힌다.
(7) LA가 바빠졌다. 국내 청와대도 바빠졌다. LA와 국내에서 양날로 사실 확인에 대한 취재가 줄을 잇는다. 그리고 이어진 기사들은 더 어떤 변명도 불가능할 정도로 확실한 팩트가 들어 있다. 이남기, 더는 어쩔 수 없어 대통령께 보고한다. 대통령, 일단 경질을 지시한다. 사건의 전말이 희미하게나마 청와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윤창중이나 청와대 모두 사건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자기들에겐 강력한 무기 ‘일베’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변희재를 필두로 ‘종북이의 작전론’이 힘을 받는다. 이어서 ‘젖가슴도 아니고 엉덩이 정도’라는 강력한 지원포가 나른다. 한 술 더뜬 지만원은 이남기가 광주출신이고 주미대사인 최영진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큰 인물이므로 이 ‘종북들이’ 애국인사 윤창중을 죽여 박근혜에게 타격을 입히려 한다는 포탄까지 쏜다.
(8) 윤창중도 기를 받는다. 인턴 여학생을 ‘가이드’로 격하시키고 ‘시차 때문에 잠이 안 와서 가볍게 한 잔 했을 뿐이며’ ‘엉덩이를 움켜 쥔 것이 아니라 허리를 툭 쳤고’ ‘일을 잘 못해서 꾸중을 많이 한 고로 미안한 마음에 술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성공하라는 덕담만 건넸을 뿐 성추행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여기까지라면 일베들이 작전을 하기에 매우 좋았을 환경이다. 그러나 ‘필’을 받은 윤창중은 한 걸음 더 나가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윤창중의 급거 귀국을 두고 청와대가 범죄자를 빼돌렸다면서 그렇지 않았으면 뉴욕에서 체포된 IMF 전 총재 스트로스 칸과 마찬가지로 미국 경찰에 체포되어 구속되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던 터였다.
당연히 청와대는 그런 일 없다는 변명과 함께 윤창중이 스스로 판단해서 귀국했다고 했던 판인데, 윤창중은 자신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귀국할 의사도 없었으며 현지에서 해명하고 싶었지만 이남기가 귀국을 종용했고 비행기표도 이남기가 예약했다고 폭로해 버렸다. 여론은 급기야 ‘성추행’의 진위보다 ‘범죄자 도피’의 진위공방으로 흘렀다.
여기에 일베는 ‘그러면 그렇지 우리의 윤창중이 그럴리 없어. 성추행은 종북애들의 작전이고 이 작전에 멍청한 ’전라도 종북 이남기‘가 넘어가서 의병장을 종북애들에게 죽게 만들었어’로 도배되면서 청와대 죽이기로 기류가 변했다. 즉 애초 적군인 ‘진보애들’이야 힘을 모으면 제압할 수 있겠는데 강력한 우군인 일베가 진보애들보다 더 강한 적으로 돌아섰으니 박근혜로서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9) 박근혜의 청와대에 비상이 걸렸다. 이대로라면 위대한 대통령의 방미성과(?)가 묻히는 것은 물론, 그나마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던 대통령 지지율도 다시 바닥을 기게 생겼다. 지만원, 정미홍, 황장수, 변희재 같은 일당백(?)의 전사들이 이끄는 일베군이 적으로 돌아선다면 절대로 진보애들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조기진압이 필요했다. 이남기를 자르되 윤창중은 아주 죽여야 한다. 아직 우리에겐 10척의 배가 아니라 강력한 조중동문과 종편, 그리고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있다. 여기에 종일 뉴스만 하는 YTN과 뉴스Y도 있다. 이들을 징발해야 한다.
허태열이 나섰다. 우군들이 흡족할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고백도 했다. 그럼에도 빠지지 않는 것은 우리를 이렇게 만든 윤창중은 용서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오롯이 담았다. 이 시그널을 친박 언론들은 그대로 접수했다. 온 화력을 동원, 무차별 포화를 윤창중에게 날렸다.
(10) 결정타는 박근혜 몫이었다. ‘사과’는 폼이고 실제는 ‘전 병력 집결’에 대한 명령이었다. 이제 전선은 확고하다. 타킷은 윤창중이다. 그리고 오늘 포털의 정치뉴스 란에는 윤창중 사망소식으로 보기도 민망한 기사들이 도배되고 있다. ‘마초 윤창중’ 조용히 때를 기다리지 못해 죽음을 자초했다. 이 전쟁의 승패는 너무도 자명하다.
하지만 남은 것은 지만원 정미홍 변희재 황장수 일베들...이들은 지금도 ‘의병장 윤창중’을 이렇게 잃으면 안 된다고 울부짖는다. 그 울부짖음이 “성폭행으로 살인을 했느냐?”까지 나간다. ‘전라도놈’ 이남기가 잘리자 이제 ‘김대중 노무현이 키운 주미대사 최영진을 자르라'는 목소리도 높다. 의병장이 혼자서 죽으면 안 되므로 박근혜 정권에서 '전라도놈'이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밥 먹은 애들도 씨를 말려야 한단다.
마초 윤창중이 여성 대통령을 수행하고 외국을 방문해서도 ‘성욕’을 이기지 못해 만들어 낸 국기문란 사건, 하지만 이 사건은 어느덧 권력과 윤창중의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윤창중이 집중포화에서 살아남지 못하자 ‘전라도놈’과 김대중 노무현 정권 초토화 전쟁으로 진화되었다. 박근혜, 이걸 노린 것인가?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는 기자로서의 참 삶을 추구하다 영어의 몸이 될 위기 있다. 박근혜의 검찰이 하고 있는 짓이다. 대리점주 폭언사태까지 일으키며 갑의 횡포를 일삼던 남양유업 직원들은 검찰에서 “절대로 그런 일 없다”고 증언하고, 남양유업은 겉으론 사과했으나 뒤로는 지금도 갑의 횡포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CJ, 롯데, 지금 내면은 부글부글 끓고 있으나 끓는 솥뚜껑 열리지 못하게 단속하느라 바쁘다.
윤중천이란 건설업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평생 검사직을 하고서도 박근혜에게 법무차관직을 하사받았던 김학의에게 여대생 5명에게 최음제를 먹여 상납했다는 뉴스도 오늘 떴다. 국정원이 심리전단이란 조직까지 만들어 대선에 개입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에도 우리의 검찰은 이 사실을 야당에 일린 사람 색출하는데만 골몰한다는 뉴스도 오늘 떴다.
5.18이 나흘 남았다. 민주와 자유를 갈구하던 민중의 피로 쿠데타 권력을 공고히 했던 세력의 후예들인 박근혜 권력은 ‘님을 위한 행진곡’ 죽이기에 골몰하다 반대가 심하자 거기선 한 발 물러난 모양새다. 그럼에도 지만원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북쪽에서 만들어진 노래라며 ‘광주항쟁은 종북들의 반란’으로 몰고 간다. 기부천사 문근영을 ‘빨치산의 손자’라며 문근영의 기부행위까지 ‘전라도 종묵녀의 교묘한 종북질’로 매도하던 지만원이다.
박근혜, 위에서 열거한대로 윤창중과 일베들의 도전을 물리쳤는가? 그 도적을 물리친 것이 ‘전라도와 종북퇴치’를 위한 전초전인가? 나는 당신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당신이 비록 권력욕은 강고했으나 지만원 조갑제류와 동일한 유전인자를 소유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런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찍은 51%의 유권자가 내 동포들이기 때문이다. 이 51%의 동포들이 지만원과 조갑제류가 추구하는 대한민국을 추구한다고 믿고 싶지 않아서다.

나가며

그래서다. 윤창중 이남기가 아니라도 이미 당신이 짠 1기 내각은 실패했다. 윤창중 이남기 외에 또 누가 경질될 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을 대신한 인물도 당신이 뽑아야 한다. 제발, 당신을 찍은 유권자라도 흡족할 수 있는 인물을 뽑으므로 당신이 일베들의 대통령이 아님을 천명하기 바란다.


임두만 

2013년 5월 1일 수요일

전쟁이 걱정? 여기 더 공포스러운 게 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4-30일자 기사 '전쟁이 걱정? 여기 더 공포스러운 게 있다'를 퍼왔습니다.
[햇빛 서울 만들기①-1] 서울시에 천개의 해가 뜨면, 핵 발전소는 사라진다
최근 지역 환경단체들과 다양한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에너지 절약과 자립자치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서울 햇빛발전소협동조합'과 '환경정의' '오마이뉴스'는 [햇빛 서울만들기]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도시형 에너지 자립 모델의 하나인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사업의 의미를 짚어보고 성과와 한계를 진단합니다. 또, 시민들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자립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전면전 불사를 선언하며 핵전쟁 위협을 하고 있는 북한 전체주의 왕조정권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겁이 나기보다는 오히려 답답하기만 합니다. 장사포가 됐든 핵무기가 됐든 23기나 되는 한국의 원자력발전소에 폭탄이 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도 예외없이 한반도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하고 맙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거론할 것도 없이 한반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되고 맙니다.

오죽하면 한반도 전쟁 위기가 한창 고조돼 가고 있던 지난 4월 8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만약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잘 아는 체르노빌 참사는 그저 아이들 동화처럼 보일 것이라고 경고했을까 싶습니다.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에 참석하고 나서 메르켈 독일 수상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원자력발전소, 과연 안전한가 
▲ 4일 준공식을 여는 신고리 1·2호기 핵발전소. ⓒ 한국수력원자력


그런데 남북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핵전쟁과 똑같은 상황이 남한에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후쿠시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후쿠시마에서는 공중과 지하, 바다로 방사능 물질이 나옵니다. 더 위험한 것은 다시 지진이 나서 후쿠시마를 덮치면 아직 터지지 않은 4호기 수조 속의 약 1300여 개로 추산되는 폐연료봉과 4호기 옆의 수조 속에 보관된 1만여 개 이상의 폐연료봉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미국의 핵 전문가들이 지금 가장 우려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이 다름아닌 후쿠시마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북반구 전역이 초토화되고 맙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는 수명 연장 직후 폭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를 수명연장했습니다. 요즈음 저는 전쟁보다도 고리1호기가 사고로 폭발하는 악몽을 자주 꿉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악몽에 시달려야 할까요.

20세기의 가장 어마어마한 사기극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입니다. 안전한 원자력발전소는 결단코 없습니다.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은 보통 30년입니다. 10년 수명연장을 하고, 또 연장하더라도 100년 이상 수명을 연장하긴 불가능합니다. 더이상 연장이 안 되면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해야 합니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소는 폐쇄가 끝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게 되는 핵폐기물을 관리해야 합니다. 말이 핵폐기물이지 강력한 방사능을 내뿜는 위험물질입니다. 핵폐기물을 수조탱크에 저장하는데 그 물이 공급되지 않는 순간, 핵폐기물은 폭탄으로 변하고 마는 것 입니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고준위 핵폐기물인 플루토늄-239는 인간이 조우한 최악의 독극물로서 반감기가 무려 2.4만년이나 되고 1/1000로 줄어드는 데 24만년이 걸립니다. 24만년을 사람이 안전하게 관리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당연히 원자력발전소는 하루라도 빨리 폐쇄하는 게 정답입니다. 한반도 핵전쟁 위협을 없애기 위한 첫 걸음 또한 한반도 평화 체제 수립이겠지만, 그보다 앞서 원자력발전소를 먼저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한반도 비핵화와 핵없는 평화 체제 수립의 명분과 실리가 확보될 수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가 폐쇄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이 원자력발전소 폐쇄의 주체로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단순한 에너지 문제를 넘어서서 부국강병의 핵무장 국가주의 그 자체이며, 시민 주체의 탈핵운동이 강하게 전개되지 않으면 국가의 탈핵선언을 절대로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2011년 3·11 후쿠시마 사태 이후 수십만이 참여하는 탈핵시위와 지방선거에서의 녹색당 지지를 통해 연방정부의 탈핵선언을 이끌어낸 독일의 경우를 보면 이는 분명해집니다.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할 수 있는 3가지 방법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할 수 있는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전기 소비량 1/3 줄이기, 둘째, 재생에너지 발전소 확대, 세번째, 원자력발전소 폭파. 물론 세번째 경우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재앙입니다.

현재 한국의 원자력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는 전체의 약 30% 정도입니다. 전체 전기 소비를 1/3만 줄이면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해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화석연료와 원자력발전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에 앞서 먼저 실천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다름아닌 에너지 절약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현재의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는 없습니다. 햇빛발전소나 바람발전소도 수명이 30년 정도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적정기술 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지역별로 에너지 자립과 자치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에너지 소비를 혁명적으로 줄여야만 합니다. 에너지 주권자인 시민이 에너지 소비와 생산의 주역으로 나서지 않으면 에너지전환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전기에너지는 어마어마한 고급 에너지입니다. 1kWh의 전기에너지의 힘이 어떤 힘인지 아십니까? 알게 되면 아마 크게 놀랄 것입니다.

파리 에펠탑의 높이는 남산타워보다도 높은 320미터 정도입니다. 그 에펠탑 꼭대기에서 맨손으로 땅바닥에 있는 소형 경차를 꼭대기까지 끌어올리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다름아닌 1kWh의 에너지입니다. 이건 4인 가족 모두가 나서서 아무리 낑낑대고 끌어올리려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슈퍼맨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 달 전기료 몇 만원을 내고 슈퍼맨 수백명을 머슴으로 부리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정말 호화롭고도 풍요로운 생활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대량에너지 소비 생활은 결코 지속불가능합니다. 화석연료, 그 중에서도 석유는 조만간 고갈되기 때문입니다. 원자력발전소 원료인 우라늄도 대략 50년 정도면 고갈되고 맙니다. 에너지 절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 옥상에 설치된 5KW급 햇빛발전소 ⓒ 이윤기


원자력발전소 폐쇄의 두번째 방안이 햇빛발전, 바람발전, 소수력 발전, 바이오가스 발전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 확대입니다. 한국은 전세계적으로도 늦지 않은 2005년부터 발전차액지원제도라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정책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독일에서 제일 먼저 실시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인 발전차액지원 제도에 힘입어 그때부터 한국에서도 급속도로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햇빛발전 산업은 세계적인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히 미래의 산업이 새롭게 태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말기에 에너지시민단체의 강한 반대에도 발전차액지원제도는 폐기 방침이 정해지고 맙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에너지 정책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4대강 파괴 정권, 이명박 정권은 그나마 있던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마저 4대강과 원자력발전소에 퍼부으면서 아예 재생에너지 산업을 싹조차 잘라버리는 미래 파괴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태양광산업은 지금 빈사상태에서 신음하고 있는 중입니다.

2012년 1월 9일 박원순 서울 시장이 천명한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정책은 이런 흐름을 일거에 반전시키는 놀라운 새로운 에너지 혁명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어 2월 13일에는 전국 228개 지자체장의 21%인 45개 지자체장들이 탈핵-에너지전환 자치단체장 모임을 출범시키면서 탈핵 정책을 선언했습니다. 많은 방해공작과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이제 한국에서도 탈핵과 에너지전환의 거대한 방향전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시민이 나서면 바뀝니다 
▲ 서울 햇빛도시 협약에 서명한 서울시장, 서울교육감, 햇빛발전이사장 서울시내 학교 1000개교에 2014년까지 햇빛발전소를 세우고, 전기 절약 운동 등을 통하여 서울에서 '원전하나 줄이기'를 위하여 서울을 햇빛도시로 만들어 가자는 협약에 서명하고 시민들에게 들어 보이며 다짐하고 있다. ⓒ 김광철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기 위한 전기소비 절약과 햇빛발전소 확대가 결합된 사회운동이자 대안의 경제운동이 다름아닌 시민에너지 협동조합운동입니다. 시민들이 단순한 에너지 소비자에서 에너지 생산자가 되어야만 에너지 절약이 실천으로 연결되고 탈핵 시민운동 부대가 형성됩니다.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단순히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자본으로 끌어들여 이름만 시민 자가 붙은 시민햇빛발전소를 짓자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의 100kW짜리 시민햇빛발전소를 지으면서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전기에너지의 소중함을 인식할 것입니다. 조합원들은 탈핵 영상 자료도 함께 보고, 재밌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전기에너지 소비 절약의 전도사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집 에너지부터 절반 이하로 줄이는 햇빛 시민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우리집 에너지 절반 이하 줄이기는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 배우고 실천하면 의외로 간단합니다. 예컨대 150kW~250kW 정도의 미니햇빛발전소도 베란다에 설치하는 운동도 벌이고, 햇볕온풍기 설치 워크숍도 하고, 적은 비용으로 아이방부터 생태단열 황토방으로 꾸미는 워크숍도 할 것입니다.

조합원이 주인인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제 시작입니다. 협동조합은 인적 결사의 힘으로 사업을 하는 결사체이자 사업체입니다. 3인이 도원결의를 하면 한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수십만 명의 서울 시민들이 복사꽃뿐만 아니라 무궁화꽃과 원산지가 한국인 벚꽃과 개나리꽃 아래서 결사를 하고, 시민햇빛발전소를 1천개, 2천개 1만개를 짓게 되면 한국의 원자력발전소는 문을 닫게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 뜨는 수천 개의 햇빛발전소, 전쟁을 평화로 경쟁의 사막사회를 우애와 환대의 협동사회로 바꾸는 희망의 햇빛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박승옥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 입니다.


2013년 4월 19일 금요일

북한이 쥔 양날의 칼, 전쟁!


이글은 프레시안 2013-04-19일자 기사 '북한이 쥔 양날의 칼, 전쟁!'를 퍼왔습니다.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북한이 변화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전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하지만 전쟁이 과학기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1800년대 나폴레옹 전쟁 당시 처음으로 과학기술자들이 전쟁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인지되어 등용되기 시작하였고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과학기술력이 전쟁을 종결짓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전쟁을 수행하는 당시에는 물론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수많은 물자들이 소비되고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들이 죽게 되며 각종 생산시설을 비롯한 문명의 근간이 되는 시설들이 파괴된다. 전쟁을 수행하지 않을 때에도 전쟁을 대비해서 비축하는 물자들은 생산에 투자되지 않고 사람들이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매몰'되어 버린다. 이렇게 보면 전쟁은 경제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공포, 혹은 전쟁에 대한 기억은 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시 전쟁을 겪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그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강한 동기 부여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위정자 입장에서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활용하여 사회 구성원들을 쉽게 통제하기도 하였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원폭 장면. 당시 전쟁에서 핵기술을 이용한 무기가 처음 등장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그런데 전쟁이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된 현대에 와서는 간접적, 심리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차원에서 전쟁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전쟁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과학기술 연구에 투자를 많이 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마련된 새로운 기술들은 전쟁 수행 혹은 전쟁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게 된다. 그렇게 숙성된 기술은 이후 민간 영역으로 전이(spin-off)되어 새로운 생산력으로 발전하게 된다. 즉 전쟁은 과학기술을 매개로 하여 경제발전과 연결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의 변화를 잘 살펴보면 너무나 많다. 대표적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발달된 레이더기술을 들 수 있다. 강력한 전자기파가 물체 표면에서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성질을 이용한 레이더 기술은 전자레인지 기술로 전이되었다.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전자기파는 반사하지 않고 흡수되어 그 물체의 온도를 높여준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물 분자가 전자기파를 잘 흡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 전자레인지의 기본구조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레인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냉동식품의 유행과 함께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대폭 줄여주었다. 가사노동의 해방이라고도 불린 전자레인지의 보급은 부족해진 남성 노동자의 자리를 여성 노동자들이 채우게 해주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핵분열 현상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제를 발견하면서 만들게 된 '핵폭탄' 제조 기술이 원자력 발전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문자 발명과 인쇄술의 발명에 버금가는 정보혁명을 가져온 인터넷의 개발도 사실은 핵전쟁 이후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찾는 과정에서 착상된 것이다. 핵전쟁 이후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될 상황을 대비하여 정보를 분산 저장하고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네트워크망을 구성하다가 인터넷이 개발된 것이다. 또한 인터넷에서 전달되는 신호체계는 핵 관련 연구자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을 찾다가 마련된 것이다.

북한 경제에 미친 전쟁의 부정적 영향

전쟁 수행이나 전쟁 준비 과정은 북한 경제에도 일차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남북은 독자적으로 경제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북한은 1950년이 되어서야 겨우 전쟁 직전 상태의 경제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44년 북한 지역의 공업 총생산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 1946년에 26%까지 떨어졌다가 1949년에 95.5%까지 올라갔다. 처음으로 장기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2개년 계획(1949~1950)을 수행한 첫해에 달성한 결과인데 다음 해인 1950년에는 133.2%로 올릴 예정이었는데 한국전쟁의 발발로 이는 무산되었다.

전쟁의 피해는 참혹했다. 휴전 직후 평양 시내에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 단 2채뿐이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1951년 국영 및 협동단체 공업 총 생산액은 전쟁 전 수준의 반도 안 되었다고 한다. 특히 중공업 분야의 피해가 컸는데 연료공업은 8.7%, 야금공업은 8.4%, 화학공업은 7.7%로 감소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중공업 부문은 거의 정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본격적인 전후복구사업(3개년 계획, 1954~1956)을 시행한 북한 경제는 1956년에 대략 전쟁 직전 상태를 벗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가 집중되었고 막중했던 중공업 분야는 해방 직전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하였다. 발전공업은 1944년에 비해 86%, 연료공업은 80%, 화학공업은 93% 수준에 머물렀다고 한다. 결국 북한이 1944년 수준을 회복하는 데 10년 이상이 걸렸다는 뜻이다. 한 순간의 전쟁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가량의 시간을 날려버린 것이다.

전후복구 사업 직후 수행된 1차 5개년계획(1957~1960)이 예상보다 높은 성과를 거두면서 추진되었고 그 결과 원래 계획이 대폭 수정되었으며 계획 기간도 1년 단축되었다. 북한 역사에서 유례없는 일이었다. 당시 공업 생산액 성장률은 1958년 42%, 1959년 53%까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고도성장 추세가 꺾인 것도 전쟁 때문이다. 1962년부터 채택된 국방-경제 병진 노선으로 인해 전쟁 대비에 역량을 투입하는 바람에 경제 성장을 위한 여력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1961~1965년까지 성장률은 최고 20%였지만 대략 12%로 줄었다. 심지어 1965년 이후로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하였다.쿠바 사태로 촉발된 국방-경제 노선은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대폭 국방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1970년대로 넘어가면서 북한은 군수 경제와 민수 경제를 완전히 분리하기 시작하였다. 제2경제라는 이름으로 군수 관련 경제를 민수 경제와 분리하여 집중 육성하였던 것이다. 전쟁 수행이 아니라 준비 과정에서 경제발전이 지장을 받은 것이다.

북한 경제에 미친 전쟁의 긍정적 영향

한국전쟁은 북한 경제를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험이 북한 경제가 고도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57년부터 시작된 1차 5개년 계획은 사실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계획이었다. 계획 수행에 필수적인 지원이라 할 수 있었던 소련의 원조가 계획 수행 직전에 철회되었던 것이다. 단순한 물자 지원이 끊긴 것이 아니라 기술지원까지 대폭 줄어들었다. 하지만 계획 수행 첫해부터 예상치 못한 흐름이 생겼다. 일반 대중, 즉 기층의 노동자와 농민들의 참여를 적극 추동하자는 북한 지도부의전략이 들어맞아 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던 각종 예비들이 찾아졌고 새로운 혁신들이 각 처에서 수행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1958년에는 기존 계획을 완전히 뜯어고친 새로운 계획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사회적 소유관계를 바꾼 국영, 협동농장화 작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경험 때문에 적들에 대한 적개심이 높았는데 이를 계획수행을 위한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즉 이제 땅이나 공장 등이 우리 모두의 소유로 바뀌었으니 열심히 일해도 빼앗기지 않고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는 설득 논리가 마련된 것이다. 자신이 만든 결과를 부당하게 빼앗기고 차별받았던 식민지 지배 경험과 우리의 목숨과 재산을 노리는 적들의 침략을 겪었던 북한 주민들은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를 지키자는 설득과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우리 것이 커진다는 논리에 힘을 받았다. 즉 전쟁의 경험이 결집력을 높여주었던 것이다.

또한 1960년대 이후 국방, 군수 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1990년대 경제가 무너지고 사회 기강이 흐트러졌을 때에도 군대와 군수 부문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군대는 여전히 북한 지도부의 기대를 지키고 규율, 원칙을 지키는 모범이 되었다. 또한 민간 경제 가동률이 30% 밑으로 떨어졌을 때에도 군수 경제는 70% 이상을 유지했다고 한다.
▲ 북한이 지난해 12월 12일 광명성 3호 발사 성공 후 공개한 로켓 발사 통제소 내부 전경. 발사대는 평안북도 철산군에 위치해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더 결정적인 것은 국방 부문에서 개발, 발전시켰던 첨단 과학기술이 2000년대 이후 북한 경제발전의 원동력, 밑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무슨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이제는 인공위성 발사체 제작 기술과 핵무기 제작 기술, 그리고 각종 소프트웨어 제작 기술은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기계 장치 중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기계장치라 할 수 있는 인공위성 발사체를 자체적으로 제작한 실력은 여건만 갖추어진다면 각종 기계제품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낙후한 민간 부문의 생산 시설을 일거에 생산성이 높은 기계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따라서 국방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만 있으면 국방 과학기술을 민간으로 이전하여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기로에 선 북한의 미래


군수 경제가 민수 경제로 이전(spin-off)되기 위해서는 국방에 넣은 힘을 빼야 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한이 미국과 핵문제로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요구한 것이 바로 북미 관계 정상화이다. 이것이 해결되어야만 국방에 대한 부담이 줄어 국방에 투입된인력, 자금, 자원 등을 민수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서도 북미관계 정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북한은 미사일 기술과 핵무기 제조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켜 공개했다. 2006년 2009년 두 차례의 핵시험과 미사일/인공위성 발사시험을 거치면서 일정한 방위 전력을 갖추었다고 판단한 북한은CNC를 앞세워 국방 과학기술을 활용한 경제발전 전략을 본격화시키려 했다. 인공위성/미사일 제조에 필수적인 CNC기술을 민간 제조기술로 이전하기 위한 작업들이 급격하게 추진되었던 것이다. 군보다는 민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들이 취해졌다.

하지만 2013년 3월 이러한 변화 조짐은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오히려 군이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 정전협정 무용화 선언, 남북 불가침 조약 폐기, 전쟁 상태 선언 등이 이어지면서 북한 사회는 다시 전시 동원체제로 돌아서든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쟁 위협 속에서는 북한의 변화 여지는 적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변화를 위한 전제 조건은 전쟁의 위협이 감소되고 평화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전쟁에 준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데 북한이 변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듯하던 북미 사이의 대립 양상이 최근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북미, 남북 관계가 지속 가능한 평화상태로 바뀌어 북한 사회가 근본부터 바뀔 수 있기를 기원한다. 전쟁의 가능성조차 없는 사회가 되어야만 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이었다.

* 강호제 박사가 운영하는 북한 과학기술사 관련 홈페이지 바로가기
*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 홈페이지 바로가기  


/강호제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