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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일 수요일

[김상조의 경제시평]롤러코스터 탄 경제민주화

이글은 경향신문 2013-04-30일자 기사 '[김상조의 경제시평]롤러코스터 탄 경제민주화'를 퍼왔습니다.

세상사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술술 풀리는 경우도 있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꼬여 버린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이 두 가지 모순된 상황이 거의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최근 법원이 재벌총수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바로 법정구속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 일가의 사익추구 행위에 대해 강력한 규제 방안들을 내놓았다. 감사원은 증여세 포괄주의 원칙을 방기한 기획재정부·국세청을 질타하는 감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인수위가 국정과제 보고서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자체를 날려버렸음에도,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공약의 실천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예정된 경로를 따라 경제민주화 과제가 착착 진행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였다. 이러다가 보수정권하에서 경제민주화, 특히 재벌개혁의 핵심 과제들이 상당부분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와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옥죄기가 아니다’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촉매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재계의 반격이 폭발했다. 여기에 보수언론이 기름을 부었다.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 현상으로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이 급전직하하고 있고, 대형 건설사들조차 과거 회계장부의 분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곤두박질친 실적을 내놓고 있으며,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현금을 쌓아두고서도 설비투자는 바닥을 기고 있다는 등의 ‘속 보이는 기사들’이 홍수를 이루었다. 그 와중에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 간 긴장관계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상호작용하고 있으니,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이 힘을 받는 것은 삼척동자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가 어떤 속도로 어느 수준까지 갈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두 달여의 짧은 기간에 경제민주화의 진로가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요동을 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간명한 대답은 ‘경제민주화의 후퇴’일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가 내용적으로 후퇴한 것은 없다. 지난해 11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의 갈등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박 대통령은 재벌의 소유구조나 경제력집중 구조에 직접 손을 댈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다만 재벌의 사익추구 및 불공정거래 행위를 엄격하게 사후 제재하겠다는 것만 공약했다. 잘못된 구조는 놔두고 잘못된 행위만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는 거기까지다.

문제는, 재벌의 잘못된 행위를 제재하는 데 필요한 정부·여당의 법개정안 수위, 그리고 감독기관의 법집행 강도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 어떤 시그널을 보내느냐에 따라 온탕과 냉탕의 양 극단을 오가는 상황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인수위의 국정과제 보고서가 경제민주화를 창조경제의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민주화를 창조경제와 동렬의 개념으로 복권시키는 표현을 끼워 넣어야 했다. ‘대기업 옥죄기 아니다’라는 발언 이후 속도조절론이 횡행하자 대통령은 공정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신의 경제민주화 원칙을 원론적인 수준에서 다시 부연설명해야 했다. 언제까지 이럴 건가. 구차하다. 그럼에도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건 경제민주화 공약을 폄하하지 않는다. 보수정당의 보수대통령이 재벌의 사익추구 행위와 불공정거래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것만 해도 한국 사회의 엄청난 발전이다. 박 대통령이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5년 후에 진보진영이 집권해서 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철저하게 실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보다 분명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고, 그 메시지가 대통령의 입에서만 맴돌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에 의해 혼선 없이 표현되도록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아무리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고 할지라도, 경제정책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며 하루아침에 달성될 일도 아니라는 건 원론 수준의 이야기다. 상황에 따라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걸 모를 사람은 없지만, 속도조절론의 탈을 쓴 개혁 저지 의도를 간파하지 못할 만큼 어리숙한 사람도 없다.재계와 보수언론이 경제민주화 저지 의도를 노골화한 현 상황에서 대통령이 뒤늦게 속도조절론을 주워 담는 구차한 모습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잘못된 행위를 엄정하게 제재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의도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경고해야 한다. 특히 정부·여당 내부의 잘못된 의도부터 단속해야 한다. 실패의 씨앗은 내부에서 자란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김상조의 경제시평]‘노회찬 사면 청원’ 삼성이 결자해지하라


이글은 경향신문 2013-02-19일자 기사 '[김상조의 경제시평]‘노회찬 사면 청원’ 삼성이 결자해지하라'를 퍼왔습니다.

지난 15일 어느 포럼 행사에서 노회찬 ‘전 의원’을 만났다. 이른바 삼성 X파일의 떡값검사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써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에 대해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진 바로 다음날이었다. 오래전에 기획된 이 행사에 그는 의연한 모습으로 참여해 예정된 일정을 다 소화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짧은 악수로 그의 순탄치 않을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빌었다.

이 글에서 통신비밀보호법 및 대법원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내 생각을 남에게 말할 만큼 잘 알고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대법원 선고 직후부터 조국 서울대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된 ‘노회찬 전 의원 특별사면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에 대해서도 언급하기 어렵다. 대의에 찬성하느냐와는 별개로, 특별사면 청원이라는 방법론과 그 시점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이견들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X파일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아쉬웠던 대목들을 돌이켜보면서, 이제 사법부의 판단 차원을 넘어버린 이 사건을 누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먼저, X파일 사건의 역설적 피해자로, 노회찬 전 의원 외에도, 이상호 MBC ‘해직기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상호 기자가 해직된 표면적 이유는 X파일 사건과 무관하나, 지금 MBC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 결코 무관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제권력의 문제에 침묵하는 언론은 결국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마저 상실하게 됨을 보여주는 실례가 아닌가 한다.

또한, ‘X파일 사건의 본질은 도청이지 그 안에 담긴 정경유착이 아니’라면서, ‘정경유착 등 포괄적 문제는 구조적 원인을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고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 사회가 무슨 역사적 교훈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억을 불식할 반성과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제시한 경제민주화 공약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은 모두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이라며 비자금의 원천과 사용처를 덮어버린 삼성특검의 부실수사 역시 최근 삼성가 형제들 간의 분쟁을 계기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더구나 떡값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은 무혐의 처분하고 그 사실을 폭로한 사람만 기소한 검사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등장한 현실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법치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회의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X파일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법부의 판단 절차는 끝났으되, 진상규명·책임추궁·피해보상·재발방지의 결론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97년에 일어났고 2005년에 폭로된 이 사건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역시 결자해지(結者解之)다. 삼성이 먼저, 이건희 회장이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

물론 삼성은 2006년 2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X파일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8000억원을 헌납했다. 또 삼성특검 수사결과 발표 직후인 2008년 4월에는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삼성의 엄청난 착각이다. 문제의 핵심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밀실에서 정치권과 사법부를 농락하던 과거의 삼성이 지금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건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변화의 증거를 느낄 수 없다면, X파일 사건은 끝날 수 없다.

경제 관련 시민단체의 책임자로서 나는 기업의 임원들을 자주 만나고, 그중에는 삼성의 임원들도 있다. 최근 들어 삼성이 뭔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기도 한다.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나 태안반도 기름유출 문제 등에서, 비록 더딘 속도이기는 하지만, 삼성이 피해 당사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는 것이 그 단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을 법적 차원에서만 따지던 경직된 틀을 벗어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은둔의 제왕’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 리더십 체제는 여전히 공고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3월 삼성전자 정기주총에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이 올라오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다. 의외이겠지만, 3세 승계에 대한 우려보다도, 리더십 교체를 위한 준비 과정에서 삼성이 보다 열린 조직문화로 전환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친정체제가 계속되는 한 삼성의 변화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증거로, 삼성이 노회찬 전 의원의 사면을 청원할 것을 기대한다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어쨌든 이 정도는 돼야 삼성의 변화를 인정할 수 있겠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2013년 1월 7일 월요일

[김상조의 경제시평]위기관리 ‘대통령 3.0’부터


이글은 경향신문 2013-01-07일자 기사 '[김상조의 경제시평]위기관리 ‘대통령 3.0’부터'를 퍼옸습니다.

선거가 끝나니 언론에 등장하는 용어부터 달라졌다. 개나 소나 떠들던 ‘경제민주화’가 싹 사라져버리고, ‘위기관리’가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위기? 한국경제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싶지만, 요즘처럼 서민들이 먹고살기 어려운 때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가 맞고, 새 정부가 집중해야 할 정책과제 중 하나가 위기관리인 것도 맞다. 그럼 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먼저, 위기의 배경을 보자. 유럽의 재정위기, 미국의 재정절벽, 중국의 성장 둔화 등 해외 불안요인들이 줄줄이 거론된다. 이 요인들이 해소될 날은 기약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외부 충격에 유달리 취약한 한국경제의 앞날도 험난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이들 해외 요인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연초 미국의 재정절벽 문제가 매우 불완전한 형태로 봉합되는 예에서 보듯이, 마지막 순간에 한걸음씩 나아가는 초읽기 바둑의 불안한 행보를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대충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말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나 2012년 초 그리스 사태 때와 같은 불확실성은 제거됐다는 말이다. 회복은 멀었지만, 당장 주저앉을 것 같지는 않다.

 
더 큰 문제는 국내 변수다. 최근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료 몇 가지가 발표됐다. 우선, 주요 국가들의 중견기업 현황을 비교분석한 코트라(KOTRA)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견기업 비중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숫자 비중으로는 0.04%, 고용 비중은 7.6%에 불과하다. 숫자 비중 11.8%, 고용 비중 46%를 차지하는 독일의 중견기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산업생태계가 망가졌고, 한국경제의 중간허리가 극히 부실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니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질 리 없다. 공식통계상 실업자는 70만명이지만, 취업준비생, 구직단념자, ‘쉬었음’, 주 18시간 미만 취업자 등을 포괄하는 사실상의 실업자는 390만명이나 된다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의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 연말 중소기업중앙회를 첫 방문한 자리에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근절하고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위기관리의 핵심 과제다. 이것이야말로 낙수효과에 의존한 재벌 중심의 성장모델, 즉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낡은 유산을 그 딸인 박근혜 당선인이 발전적으로 극복하는 길이다.

한편,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를 보면, 가계 부문의 신용위험이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최고치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의 신용위험도 2009년 2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당연히 금융기관들은 돈줄을 죌 것이고, 원리금 상환 압박이 가중될 것이다. 올해 최대 호황을 누릴 곳은 파산법원이라는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가계부채 문제 해결 등 박근혜 당선인의 민생 공약이 주목받는, 위기관리의 또 다른 핵심 과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위기관리,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위기론을 대량 살포하면서 ‘지키지 못할 포퓰리즘 공약은 일찌감치 폐기해야 한다’는 기득권 세력의 노골화된 저항을 돌파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 발전을 위한 ‘구조조정의 당위성’과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구제금융의 유혹’을 조화시키는 낙타의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요컨대, ‘일관되게 그리고 유연하게’라는 형용모순의 과정이 위기관리다.

박근혜 당선인이 위기관리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의 통치 스타일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한 가지 우려를 전달하고 싶다. 위기관리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의도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 이른바 ‘밀봉 깜깜이 인사’ 식의 권위주의적 의사결정 구조는 위기관리에 독이 될 수 있다. 정책 차원의 ‘정부 3.0’을 넘어 정치 차원의 ‘대통령 3.0’이 필요하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2012년 11월 17일 토요일

박근혜 후보의 변화, 그리고 두 가지 한계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16일자 기사 '박근혜 후보의 변화, 그리고 두 가지 한계'를 퍼왔습니다.
[김상조 칼럼] 경제민주화 공약, 중요한 변화 있지만 한계도 명백

16일 오전, 드디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였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의 갈등 속에 나온 공약인 만큼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평가가 없을 수 없다.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 기준부터 밝혀야겠다. 경제학의 한 분야인 산업조직론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구조(structure)-행위(behavior)-성과(performance)' 모형을 차용하기로 한다. 시장의 구조가 경제주체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시장의 성과를 결정한다는 논리다. 이를 정책 분야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순서를 거꾸로 가면 된다. 즉, 효율과 분배의 측면에서 시장의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먼저' 불법행위나 불공정거래행위 등을 규율하는 수단(행위 규율 수단)을 사용하고, 그래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구조 자체를 바꾸는 수단(구조 교정 수단)을 동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현실 상황 판단 - 행위 규율 수단 - 구조 교정 수단'이 얼마나 정합적 체계를 이루고 있느냐가 공약 평가의 기준이 될 터이다. 경제민주화 공약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상의 평가 기준을 강조하는 이유는, 요즘 모든 언론들이 쏟아내고 있는 공약 평가 방식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예컨대, 재벌개혁 공약 평가를 보면, 출총제 부활, 기존 순환출자 금지, 계열분리명령제 도입 여부 등의 구조 교정 수단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이런 것들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개혁 의지 여부'나 '반시장적 태도 여부'를 평가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 방식은 무의미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구조 교정 수단은 행위 규율 수단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동원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출총제 등의 구조 교정 수단만으로 재벌개혁을 완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구조 교정 수단이 없다고 재벌개혁이 바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관건은 이러한 정책 수단들의 체계적 정합성이다.

이제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평가해보자. 오늘 발표된 '35개의 실천 과제' 중에서 금산분리를 위해 일정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의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행위 규율 수단이다. 즉 박근혜 후보 공약은 행위 규율 수단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분야만큼은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의 공약에 뒤처지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박근혜 후보의 중요한 변화이자 명백한 한계다.

박근혜 후보가 (특히 재벌기업의) 불법행위와 불공정거래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새로운제도들을 도입하고 그 엄정한 집행을 약속한 것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변화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원하는 바는, 출총제 등의 구조 교정 수단이라기보다는,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규제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정당이 이 정도로나마 변화했다는 것이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구조 교정 수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박근혜 후보의 경제철학의 한계다. 공정경쟁을 왜곡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행위 규율 수단만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심화 및 이로 인한 시장구조와 민주질서의 왜곡이 행위 규율 수단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순진한 착각이다. 행위 규율 수단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구조 교정 수단이 예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김종인 위원장과 갈등을 빚게 된 근본 배경이다.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행사 금지 방안을 둘러싼 논란은 그 한 예일 뿐이다. 기존 순환출자 규제는 삼성⋅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 3개의 그룹에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제한된 의미의 구조 교정 수단이다. 이것이 재벌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아니다. 다만, 이 규제의 진정한 효과는, 해당 그룹들이 순환출자를 끊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예컨대, 3년의 유예기간 동안) 그룹 전체의 출자구조와 조직형태를 지금보다 합리적인 모습으로 재편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박근혜 후보는 이런 제한된 의미의 구조 교정 수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박근혜 후보의 또 다른 한계는, 그 행위 규율 수단이나마 제대로 집행할 거냐는 의문에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즉 진정성의 문제다. 박근혜 후보는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함으로써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의 투 트랙'으로 갈아탔는데, 이는 단순한 레토릭으로 해석할 수 없는 박근혜 후보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투 트랙'은 경제민주화가 경제성장과는 배치된다는, 즉 경제민주화는 분배 요구라는 기득권 세력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 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경제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민주화가 밥 먹여주냐'는 기득권 세력의 논리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김종인 위원장이 공약 발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데, 이를 단순히 공약 초안에서 몇 가지가 빠진 것에 대한 불만 표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투 트랙'론은 박근혜 후보가 여전히 박정희 개발모델의 낙수효과, 그리고 이를 세련되게 표현한 작금의 경제위기론에 갇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불만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김종인 위원장이 토사구팽 당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역할을 접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박근혜 후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후보는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은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했다. 내가 한국에서 기업집단법 관련 주장을 가장 많이 한 사람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코멘트도 빠뜨릴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집단법 하면 독일의 콘체른법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무지에서 비롯된 심각한 오해다. 독일 콘체른법의 핵심은, 기업집단 관련 규정을 하나의 법에 모두 포괄하느냐 아니면 여러 법에 나누어 담느냐라는 법 형식적인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 콘체른법은, 다수의 계열사로 이루어진 기업집단 자체를 하나의 법적 주체로 간주하는 단일체 접근법(single enterprise approach), 또는 지배-종속의 '상황'이 형성되면 지배회사 행위의 부당성과는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종속회사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의무를 부여하는 '상황에 기초한 접근법'(situation-based approach)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법적 전통과 관행이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어렵다. 유럽에서도 1990년대 이후에는 독일 콘체른법을 모델로 한 기업집단법 논의는 사라진 대신, 영국⋅프랑스의 법규와 판례에 기초한 다원적 접근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내가 제안한 것도 이 다원적 접근법이다. 즉 각 법 영역의 취지에 맞게 기업집단의 범위 및 그 권리⋅의무를 유연하게 조정하여 도입하자는 것이다. 모든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상법(회사편)에서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최소한의 규정으로, 대규모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공정거래법에서는 더 포괄적이고 엄격하게, 마지막으로 금융감독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하는 금융법에서는 가장 넓으면서 가장 강하게 규정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집단법이라는 표현의 사용 여부와는 무관하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기업집단에 대한 종합적 규율체계'의 확립을 10년 정도의 장기과제로 생각했다. 이게 선거 국면의 정치인들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나 보다. 더 선명한 걸 요구했다. 그래서 내가 '일단' 재벌 관련 규정들만을 하나의 법에 모은 '대규모 기업집단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제안했다. 어차피 단계적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 시급한 것부터 먼저 하자는 취지다.

사실 이게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의 '제3장. 경제력 집중 억제' 파트는 협의의 경쟁법과는 잘 안 맞는 부분이다. 전경련 등에서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을 한국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규제라고 비난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이나 EU의 경쟁법에는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게 없다. 그래서 이 공정거래법 제3장을 들어내서 별도의 법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러한 기존 논의에 기초하여, 공정거래법 제3장을 분리하고, 다른 법률들에 산재해 있는 재벌 관련 규정들을 옮기고, 최근 논의되는 새로운 규제 장치들을 추가하는 형태로 '대규모 기업집단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각 규제 장치들 간의 보완⋅대체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니까, '과잉규제'와 '규제공백' 위험을 극복한 정합적 규율 체계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후보가 대규모기업집단법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없지 않다. 특히 대규모기업집단법이 현행 법체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를 댄 것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경제력 집중 억제 수단들을 공정거래법에 둔 현행 체계가 더 심각한 충돌을 야기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벌개혁 논의가 공정위의 행정규율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그 결과 공정위의 자의적 재량권 행사가 언제나 논란이 되는 문제를 낳고 있다고 판단한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3장에 있는 장치들, 그리고 최근 논의되는 재벌규제 장치들은 사실은 회사법⋅금융법에 두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서두를 생각은 없다. 어차피 기업집단법 논의가 단기간 내에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다만, 선수는 기업집단인데 심판은 개별기업만 상대하는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나의 문제의식이 망각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연합뉴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2012년 11월 12일 월요일

세금을 세금이라 부르지 못하는 박근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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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칼럼] 감시 없이 세금 쓰겠다는 '꼼수'

어제(11월 11일) 박근혜 후보가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였다. 그 핵심은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설치하여 과다 부채와 고금리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18조원, 어마어마하다. 이것만으로도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가계부채 대책을 압도할 만하다. 그런데 이 엄청난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는데, "정부가 직접적인 재원 투입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가? 그 비밀을 밝혀보자.

18조원의 기금 조성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가 관리하는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 배당액 출자, 신용회복기금 잔여재원, 그리고 캠코 고유계정으로부터의 차입금 등을 통해 1조 8,700억원의 종자돈을 마련한 후, 이를 기초로 10배인 18조원의 채권을 발행한다는 것이다. 신용회복기금 역시 2008년 9월에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잉여금을 출연한 것이니, 결국 종자돈의 기원은 두 가지, 즉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과 캠코 고유계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성격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캠코 산하의 부실채권정리기금은 1997년 외환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조성한 공적자금의 하나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부실채권을 장부가격보다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하여 일정기간 관리 후 시장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에 부실채권정리기금은, 예금보험공사의 (구)예보보험기금과는 달리, 투입액보다 회수액이 더 많았다. 최근 자료를 보니, 부실채권정리기금은 투입액의 약 110%를 회수하였다.

그런데 2003년부터 시행된 공적자금 상환 계획에 따라 캠코(와 예보)가 발행했던 정부보증 채권은 만기가 돌아오면 모두 국채로 전환하여 25년간 나누어 상환하기로 했다. 즉 외환위기에 따른 공적자금 상환 부담은 모두 정부로 넘어갔다. 국민 세금으로 전가된 것이다. 그 결과 부실채권정리기금이 관리 중인 채권을 매각하여 추가로 회수한 돈이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으로 회계처리된 것이다.

원래 이 돈은 공적자금을 상환하는데 사용되어야 하는데, 공적자금 상환 주체가 캠코가 아닌 정부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마디로 '눈먼 돈'이 되었다. 박근혜 후보의 국민행복기금은 이 눈먼 돈을 가계부채 대책에 쓰겠다는 것이다. 좋다. 쓰는 건 좋은데, 이걸 국민 세금이 아니라고 우기면 안 된다. 이 눈먼 돈만큼 정부의 일반회계에서 세금이 더 나가기 때문이다.

둘째, 캠코의 고유계정 돈을 쓰는 것은 결국 미래의 세금 부담을 유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말에 부실 저축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총 1.7조원의 캠코 고유계정 돈을 끌어다 썼다. 당연히 캠코의 재무구조가 악화되었고, 결국 2009년 5월에 캠코는 6,000억원의 증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정부가 2,000억원을 추가로 출자하였고, 나머지는 수출입은행 등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출자토록 하였다.

캠코 고유계정 돈은 공적자금관리법상 공적자금이 아니고, 당장은 국민 세금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정부 일반회계로 증자하거나 아니면 금융기관의 팔을 비트는 관치를 할 수밖에 없다. 즉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연합뉴스

결론적으로,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을 설치하는데 정부 재원이 직접 투입되지는 않는다는 박근혜 후보의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사실상 국민 세금이거나 미래의 국민 세금이다. 물론 가계부채로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을 지원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지만, 중요한 일일수록 명실상부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사실상 세금인 것은 세금이라고 부르지 않고, 사실상 공적자금인 것을 공적자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본질을 은폐할수록 오히려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지게 되어 있다. 박근혜 후보의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 차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차입자의 도덕적 해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 캠코 또는 그 뒤에 숨어 있는 정부의 도덕적 해이다. 세금을 쓰는데, 감시 받지 않는 방식으로 세금을 쓰기 때문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국민행복기금의 채권 발행은 결국 캠코의 자체 신용으로 할 수밖에 없는데, 작년 말에 캠코가 발행한 공모사채의 연 이자율이 3.75%였다. 따라서 18조원의 채권을 발행하면 연 6,750억원의 이자가 나간다. 1조 8,700억원의 종자돈으로는 3년도 못 버티고, 결국 캠코는 조만간 증자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정부보증을 붙이는 것이 발행금리를 낮추어 국민세금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캠코가 자체 신용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보다 정부보증이 붙은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훨씬 금리가 쌀 테니 말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2012년 11월 6일 화요일

안철수 금융 개편안 귀결은 '모피아'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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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협회·사무금융노조 "신관치"…김상조 "양면성 고려해야"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금융 감독 체계 개편안이 논란이다. '모피아'의 힘을 더 키워줄 "신관치 금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과 "신관치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며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하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안 후보 캠프는 4일 금융 감독 기구 개편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금융위원회의 금융 산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금융 감독 업무를 금융감독원으로 넘기고 ▲금융 감독을 전담할 금융감독원을 금융건전성감독원(금융 기관의 건전성 감독)과 금융시장감독원(시장 규제, 금융 소비자 보호)으로 분리하며 ▲금융 감독 유관 기관(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인 금융안정위원회를 새로 만들어 시스템 리스크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민간 조직이던 금융감독원의 구성원을 별정직 공무원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안 후보의 방안은 이명박 정부와 함께 탄생한 금융위원회를 사실상 해체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원회를 합쳐 금융위원회를 만들고, 금융위원회로 하여금 금융 산업 정책과 금융 감독 정책을통합 관장하게 했다.

이에 대해 금융소비자협회 산하 기관인 금융정책연구원과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5일 안 후보의 방안을 비판하는 성명을 각각 발표했다. 두 기관은 한목소리로 안 후보의 방안을 "신관치 금융"이라고 비판했다.

금융정책연구원은 "안철수 후보의 금융 개편 방안은 (…) 사실상 모피아 영향력 확대 방안이며 신관치 금융 강화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주장했다.

금융정책연구원은 금융안정위원회에 대해 "관치 금융의 폐해가 많았던 금융 감독 기능만으로도 부족해 이제는 한국은행의 통화 신용 정책까지도 금융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금융 관료가 통제하고자 하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금융안정위원회 사무국을 공무원, 즉 '모피아'가 장악하고 이 기구를 통해 금융 감독, 통화 신용 정책, 재정 정책까지 모두 쥐락펴락할 것"이라는 우려다.

금융정책연구원은 소비자 보호를 실행해야 할 "금융시장감독원을 정부 기구화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금융 소비자의 피해가 '모피아' 때문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임에도,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해 공무원 위주의 그 나물에 그 밥식의 개혁안"이라는 판단이다.

이를 근거로 금융정책연구원은 "금융안정위원회는 '모피아'를 위한 관치금융위원회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고 정부 조직화는 모피아의 통제 하에 말 잘 듣는 꼭두각시를 두겠다는 발상"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안 후보의 방안을 "신관치 부활 음모"로 규정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이 결국 관치 금융의 폐해에 지나지 않음에도, 오히려 관치 금융을 강화하겠다는 억지를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금융감독원 조직 분리와 공무원화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안 후보가 이헌재 씨를 비롯한 '모피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국 금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엇갈리는 평가…"모피아 영향력 확대 방안"-"양면성 고려해야"

▲ 안철수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두 기관과 달리,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5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안 후보의 방안을 신관치로 규정하는 건 정확한 평가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금융안정위원회를 신설하고 금융 감독 기능을 둘로 나눈다는 안 후보의 방안을 "신관치로 평가할 소지도 있지만 양면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안정위원회와 관련, 김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추세 변화를 거론했다. 금융 감독 및 거시 경제 안전성은 어느 한 기관이 전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여러 유관 기관이 협조해야 시스템 위기를 방지할 수 있다는 합의가 확산됐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은밀하게 해오던 것을 전체가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금융안정위원회에 담긴 뜻이라고 풀이했다.

김 교수가 금융안정위원회 방안을 전면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중앙은행의 역할인 최종 대부자 기능을 수행할 때 한국은행이 금융안정위원회와 협의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금융안정위원회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해 한국은행의 반발을 살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 위기를 되짚어볼 때 중앙은행을 비롯한 어느 한 기관이 혼자서 시스템 위기 문제를 풀 수는 없다는 점에서 유관 기관들이 협의하는 통로가 필요하며, 안 후보의 방안은 "법적인 기구를 만들어 이를 투명하게 하자는 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이런 양면성을 감안할 때 김 교수는 안 후보의 안을 "신관치라고 단정하는 건 조금 오버"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금융 감독 분리 방안에도 양면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을 한 기관에서 담당할 때 후자가 소홀히 다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둘을 분리해 서로 견제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분리는 금융학계의 전반적인 컨센서스(consensus)"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험 요소도 있다. 핵심은 분리하는 취지가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 여부다. 둘을 분리한다고 했을 때 각 기구를 공무원 조직으로 할지, 아니면 민간 조직으로 할지 등에 따라 현실에서 다른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분리의 취지는 좋은데, 과연 현실에서 그 취지대로 견제와 균형이 잘될지는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안철수 캠프의 아이디어를 신관치라고 매도할 수는 없지만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안"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더해 김 교수는 "금융 감독 문제는 누구도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라고 말했다.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고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정부 조직 개편과 직결되고 기획재정부, 금감원, 금융 회사들, 금융 관련 소비자 단체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라는 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한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아직 금융 감독 기구 개편 방안을 발표하지 않았다. 박 후보는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국과 금융위원회를 합친 '금융부'(가칭)를 만들어 금융 산업 부분을 강화하고, 금융감독원 내부 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처를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분리·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 후보와 관련해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 체제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덕련 기자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모피아' 김석동, 역시 '관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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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칼럼] 웅진그룹 논란에 워크아웃 상설화 꼼수

추석 직전인 9월 26일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자회사인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이른바 부실기업주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다.

진짜 황당한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뒤통수를 맞은 채권단들이 난리법석을 떤 것까지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 지난 10월 5일(목) 금융위가 기업구조조정 제도 전반을 손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소지가 큰 법정관리 제도에서 채권단의 견제장치를 강화하는 동시에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법정관리, 무엇이 문제인가

법정관리는 뭐고 워크아웃은 또 뭔가? 부실기업의 회생을 지원하는 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합도산법에 따라 파산법원이 주도하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이고, 다른 하나는 법원 밖에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자율적으로 협의하여 처리하는 워크아웃이다.

두 방식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워크아웃이 채권금융기관의 채권만을 동결시키는 것인데 반해, 기업회생절차는 금융채권뿐만 아니라 일반 상거래 채권까지 동결시킨다. 이번 웅진그룹의 경우 기업회생절차 쪽으로 갔기 때문에 극동건설 협력업체의 상거래 채권 약 3,000억원이 묶여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둘째, 워크아웃에서는 재무개선약정의 체결과 이행점검 등을 통해 채권단이 계속 개입하는 반면, 기업회생절차는 파산법원이 관장하기 때문에 채권단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다. 특히 DIP(Debtor in Possession) 제도를 통해 기존 경영진이 사실상 계속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신용공여액 200억 원 이상의 142개사 중 120개사(84.5%)의 사례에서 기존 경영진이 관리인으로 선임되었다. 웅진그룹이 기업회생절차를 선택한 것도 결국 이 DIP 제도를 악용하여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럼 워크아웃이 대안인가

현행 기업회생절차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워크아웃이 더 효율적이고도공정한 기업구조조정 제도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 워크아웃 방식에서도 부실기업주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언제나 논란이 되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SK그룹의 최태원 회장, 대우건설 인수로 부실화되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 등이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경영에 복귀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또한, 워크아웃 기업들의 회생 비율이 높은 것은, 워크아웃 방식 자체의 효율성에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을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하고(이른바 selection bias) 여기에 공적자금을 기초로 한 채권금융기관의 지원이 뒤따랐기 때문임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들도 많다.

워크아웃 방식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관치금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신용공여액 500억 원 이상의 개별 대기업에 적용되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이하 기촉법)을 제외하면, 워크아웃 방식의 대부분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채권단의 자율협약에 의존하여 진행된다. 기촉법이든 자율협약이든, 워크아웃은 감독당국이 커튼 뒤에서 개입하는 관치금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으며, 그 결과 채권자⋅소액주주⋅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권익이 침해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들 이해관계자들이 가끔 나를 찾아와 하소연을 늘어놓는데, 요지는 왜 워크아웃에 들어갔는지, 진행 상황은 어떠한지, 누구에게 이의제기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감독당국은 워크아웃 방식의 강점을 강변하고 있으나, 그 강점은 어떤 정보도 공개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관치금융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감독당국은 기업집단⋅개별대기업⋅중소기업 등 '기업규모별'로, 그리고 건설⋅조선⋅해운 등 '업종별'로 채권단이 주도하는 워크아웃 방식을 통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긍정적 성과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주단 협정'이라는 채권단 자율협정을 통해 진행된 건설업 구조조정의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그 결과 부실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웅진그룹의 극동건설 사례가 보여주듯이, 최근 중견 건설회사 상당수가 심각한 부실에 직면했는데, 그 대부분이 '대주단 협정'에 따른 지원을 받은 회사들임을 감안하면, 워크아웃 방식에 내재된 관치금융의 폐해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부실은 숨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통합도산법상의 기업회생절차에 대한 비판은 부실기업주가 계속 경영권을 유지할 가능성, 즉 DIP 제도의 악용 가능성에 모아진다. DIP 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채무자 친화적(debtor-friendly)이라고 평가되는 미국 도산법(U.S.C. Chpter 11)에서 연유한다. 기존 경영진이 기업의 회생에 필요한 노하우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 도산법이 DIP 제도를 비롯한 채무자 친화적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부실기업주의 불법부당행위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보완적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 통합도산법상 기업회생절차의 본질적 문제점은 DIP 제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작용을 제어할 수 있는 보완적 제도와 관행의 결여에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번 웅진그룹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계열사 차입금을 먼저 상환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나라 통합도산법에도 이미 들어와 있는 부인권을 엄격 적용해서 원상회복하면 된다. 또한 법정관리 직전에 특수관계인이 미리 계열사 주식을 처분한 혐의에 대해서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 여부에 대해 엄격 조사해서 처벌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문제가 많은 기존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기업의 회생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면,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보완하여 기존 지배주주를 관리인에서 배제하거나 채권단이 추천하는 공동관리인을 선임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통합도산법상의 기업회생절차에 치유 불가능한 근본적 하자가 있는 것처럼 매도하면서,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워크아웃 방식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금융위의 태도에는 뭔가 불순한 저의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위의 꼼수

▲ 김석동 금융위원장. ⓒ뉴시스
내가 금융위를 불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기촉법은 2011년에 세 번째로 재입법된 것이다. 기촉법에 의한 워크아웃 제도는 태생적으로 위헌 소지 및 관치금융 논란을 안고 있기 때문에 한시법으로 만들어진 예외적인 것이다. 현행 3차 기촉법도 2013년 말에 일몰 폐지될 예정이다.

3차 기촉법은 과거의 1, 2차 기촉법과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특히 채무기업만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채권단이 워크아웃 신청부터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문제를 해소했고, 또 반대채권자의 채권을 찬성채권자들이 6개월 이내에 매입하도록 하는 등 이해관계자 권익 보호 측면에서도 일부 개선을 이루었다.

그런데 10월 5일자 보도자료를 보면, 금융위는 현행 3차 기촉법상의 워크아웃 제도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기촉법의 워크아웃 신청주체확대(현행의 기업만→채권단 추가), 상시법제화, 법 적용대상 신용공여 범위 확대 등에 대해 검토"(보도자료 4쪽)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워크아웃 신청주체 확대'와 '상시법제화'는 2011년 3차 재입법 당시 금융위가 국회에서 약속한 바를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며, '법 적용대상 신용공여 범위 확대'는 현재 채권단 자율협정으로 진행되는 여타 워크아웃 방식도 법적 근거를 갖추어 상설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국회를 기만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과도기적으로 워크아웃 방식을 당분간 더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 방향은 지금 금융위가 획책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가야 한다. 즉 워크아웃의 진행 과정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관계자가 법원 등 제3자의 판단을 구할 수 있는 절차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번 웅진그룹 케이스를 계기로 제기된 기업회생절차의 문제점이 곧바로 워크아웃 방식의 '과거 회귀'⋅'상설화'⋅'적용 확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는 모피아의 관치금융을 더욱 만연케 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럼 모피아는 왜 이런 꼼수를 부리는가? 짐작컨대, 2008년 이후 덮어놓았던 부실기업의 문제가 내년에 폭발적으로 표면화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감독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관치로 묻어두었던 문제를 또다시 관치로 덮으려고 하는 것이다. 동시에 모피아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정말로 '관치의 화신'답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8) 사회 정의 - 이상돈 중앙대 교수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20일자 기사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8) 사회 정의 - 이상돈 중앙대 교수'를 퍼왔습니다.

ㆍ“검찰 수사는 왜 정권 말기에만 가능한지… 많은 국민이 냉소”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이상돈 위원(중앙대 교수)은 “우리 사회는 법의 지배라는 사회 정의의 기본에서부터 문제가 있다”며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핵심인 절차적 정의를 무시했고 여론에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위원은 지난 6일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시대정신 대논쟁 대담-정의’에서 “과도한 분배적 정의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어서 상당히 경계한다”며 절차적 정당성과 기회 균등의 의미를 모두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논의되는 복지 공약에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공정사회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회의 균등을 넘어서 분배적 정의와 사회통합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치가 정치의 중심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의롭지 못한 한국 사회를 개혁하는 데 자유주의적 정의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영역을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와 새누리당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 김호기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 거리를 걸으며 사회 정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공정사회 실현 위해선 기회의 균등을 넘어 분배 정의와 통합 필요”

▲ 이상돈 교수“MB 정부는 4대강 사업 등 절차적 정의 깡그리 무시… 과도한 분배 정의는 경계”

▲ 김상조 교수“재벌 총수 사면 관행은 대중의 요구에 역주행… 법 통한 정의 구현 회의”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주목받는 이유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이며, 이것이 새삼 정의를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다. 상식과 공정이 부정돼왔는데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 이번 대선에서 ‘정의’가 시대정신이 될 수 있나. 

이상돈 위원(이하 이상돈) =과거 정권과 달리 이명박 정권은 여론에 ‘마이동풍’이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 여론과 민심을 이렇게 철저하게 도외시, 백안시하고 독주했나. 최소한 100이란 여론이 있으면 50은 듣는 척이라도 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런 대중의 분노를 인정하고 해소해야 중간층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지난 총선과 이번 대선에서도 정의에 대한 상당한 기대심리가 있다고 본다. 경제 영역에서는 경제민주화 담론으로 나타난 것이고, 정치·사회 분야에서도 대중이 정의를 분명히 원하고 있다고 본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하 김상조) =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사회, 특히 정치권에 대해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대표적인 것이 재벌 총수 사면이다.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은 정찰 가격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었다. 이런 것들이 계속 누적돼 정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보는 것 아닌가. 최근 김승연 한화 회장 판결(횡령·배임 혐의에 1심에서 실형 4년으로 법정구속)을 보면 조금은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상돈 = 과거에도 재벌 총수 사면을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했던 적은 없다. 법의 지배를 이전 정부도 잘 지키지 않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무시한 경우는 내 기억에는 별로 없다. 사회의 기본적인 정의가 깨지게 된 것이다. 

김상조 = 개혁의 수단으로서, 개혁의 성과물로서 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과연 법이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법은 정의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또 이 교수가 정치 참여를 하게 된 것은 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인가. 

이상돈 = 다스리는 사람들도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다. 우리나라에서 입법·행정·사법부 사람들이 법치 본연의 자세를 갖고 있느냐. 법을 필요에 따라 동원하는 것이 문제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법치주의가 크게 후퇴했다고 본다. 대표적인 경우가 MBC (PD수첩) 기소다. 누가 보더라도 무리한 기소였고, 결국 법원에서 완패했다. 나의 정치 참여는 법적 정의와 무관하다. 법을 통한 정의 구현은 정치 이전에 갖춰야 할 기초라고 본다. 한나라당이 지난해 가을에 무너지게 된 것도 결국 당과 구체제 집권세력이 법적 정의를 도외시했다가 좌초한 것 아니겠는가. 

김호기 = 사법적 정의 하면 먼저 검찰이 떠오른다. 김영삼 정권 말기의 김현철 사건, 김대중 정권 말기의 ‘삼홍 게이트(아들 셋이 모두 사법처리된 것)’, 노무현 정권 말기의 ‘BBK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범죄가 있었다면 검찰이 조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선 국면에서 검찰의 정치 수사는 의도하든 아니든 결국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보나. 

이상돈 = 문제는 이러한 수사가 왜 정권 말기에만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에 문제가 있고, 사법적 정의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이명박 대통령과 연관돼 터진 BBK와 도곡동 사건은 무혐의 결론이 나왔다. 과연 검찰과 특별검사가 소신껏 수사했는지 많은 사람이 의심하고 있다. 아직 끝난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과연 당당한가. 많은 국민이 이에 대해 냉소를 보내고 있다. 

김호기 = 검찰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이상돈 = 검찰 독립이 보장되면 법무부 장관은 한가한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운영이 문제다. 현 제도를 그대로 두고 검찰 신뢰를 구하는 것은 산에 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검찰권 오·남용을 예방하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직자비리수사처는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면 제2의 검찰이 될 수 있다. 공수처보다는 상설 특검이 좀 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상설 특검은 검찰과 갈등을 빚을 것이다. 이는 여론을 수용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궁여지책인 셈이다. 

김상조 = 최근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하나는 (이상호 기자 X파일)인데,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소는 정치권력이 아니라 삼성으로 대표되는 자본권력이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시장논리가 도덕의 영역에까지 침범한 것이 사회 규범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했다. 자본권력 또는 시장논리가 정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보는가. 

이상돈 =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경제적 집중도가 커졌다. 그러나 국민 기반이 있으면 아무리 강력한 자본권력이라도 제어할 수 있다. 그런 의지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자본권력이 정치권력을 눌렀다기보다 정치권력이 자본권력에 의존한 것 아닌가. 또 시장논리가 도덕 영역까지 침범했다는 부분에서 공리주의적인 것을 정의로 보느냐, 가치를 우위로 보느냐, 양면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의로운 기업으로 꼽히는 곳이 유한양행이고 가장 독과점을 일삼는 기업으로 삼성이 꼽힌다. 이 두 기업은 1960년대 매출이 같았다. 그러나 일자리와 국가경제 측면에서 유한양행은 중소기업으로 몰락했다. 양면성이 있다는 뜻이다.

김상조 = 경제 정의의 중요한 부분이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민주화 또는 재벌 개혁이 시대정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상돈 = 과거 여권을 대표하는 정당이 경제민주화를 고민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많이 변신한 것이라고 본다. 

김호기 = 정의와 연관돼 검토할 수 있는 개념이 ‘공정’이다. 공정은 소극적 의미에서 ‘기회의 균등’과 적극적 의미에서 ‘분배적 정의’와 ‘사회통합’이다. 어떤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하는가. 

이상돈 = 공정의 기회균등, 분배정의, 사회통합 의미에 동의한다. 그러나 소위 도덕적 해이를 신경써야 한다. 미국에 유학 가기 전 스웨덴의 복지국가 사회가 정답인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 유학 첫해, 뉴올리언스의 다운타운에 가기 전에 있는 공공주택 단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거대한 주택단지가 마약과 범죄 위험이 가득한 슬럼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최소한의 복지, 즉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도 생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집단적 타락이다. 

김호기 = 과도한 분배적 정의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단 말인가. 

이상돈 = 그렇다. 이를 상당히 경계해야 한다. 자꾸만 복지 분배가 생기고 그것만 강조하는 분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모든 것을 정부가 다 해결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이러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도덕적 파탄을 초래하게 되면 세금으로 사람을 망쳤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아직까지 그 정도까지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복지와 분배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계속되면 이런 점을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러한 것이 진정한 공정사회라고 볼 수는 없다. 사회 발전의 원동력은 개인이 혼자 서는 것이다. 개인이 독립돼 있고 기업이 자립하는 것이다. 기업 경영하다 망할 수도 있고, 개인도 실패할 수 있다는 긴장감이 있어야 사회가 성장한다고 본다. 

김상조 = 그렇다면 지금 여야가 내놓는 경제민주화, 복지 공약에 상당히 우려하는 부분이 있겠다. 

이상돈 =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 미국 주립대에서 학비를 거의 안 내고 다닌 사람은 애교심이 적은데 비싼 학비를 내는 사람은 애교심이 있다. 

김상조 =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에 대해 진보진영 못지않게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명박 정부가 보수정권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이 다시 집권해야 된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이상돈 =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서 제일 잘못한 점은 절차적 정의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법과 절차를 도외시했다. 절차적 정의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핵심이다. 이명박 정부가 보수정권이라고 했나. 그렇지 않다. 이념이 필요없다고 했다. 극단적인 연고주의, 패거리 정치를 보여줬다. 당시 보수는 오히려 박근혜 후보였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가치를 회복하고 국가와 사회, 개인을 건전하게 발전시키는 역할은 현재로선 박 후보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본다. 

김호기 = 이명박 정부는 공동체 보호라는 보수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정책을 펴왔다. 이번 대선에서 보수세력에 부여된 과제는 보수 정신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이상돈 = 보수 그 자체보다도 보수와 진보 공통적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 공통적인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김상조 =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고를 옥죄는 과대포장된 신화들을 깨뜨리는 작업이 필요한데, 가장 강력한 신화 중 하나가 박정희 신화다. 박정희 신화에서 무엇이 정당한 평가이고 무엇이 과대포장된 것인가. 

이상돈 =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그의 사후에 나왔다. 박 대통령이 총 18년간 집권했는데 처음 6년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2년 후 정직한 헌법을 만들고 굉장히 정직한 선거를 했다. 그 점은 인정해야 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더라도 나라가 잘됐을 것이라는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인권침해 등 문제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김호기 = 박근혜 후보에게 박정희 시대를 묻는 것은 연좌제를 적용하자는 맥락이 아니다. 통치를 맡을지도 모르는 지도자에 대한 검증이다. 5·16과 유신체제를 어떻게 보나. 두 사건에 대한 박 후보의 역사인식은 또 어떻게 봐야 하나. 

이상돈 = 5·16은 그 자체로서는 헌정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리고 유신은 평가할 필요도 없이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박 후보에게 부친을 객관화해서 보라고 하지만, 그 부분에서는 박 후보의 생각을 가슴으로 이해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단순히 딸이 아니라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호기 = 인혁당 사건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박 후보 인식에 문제가 있다. 2005년 판결은 32년 만에 재심을 통해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은 것이다. 

이상돈 = 이른바 인혁당 사건은 한국 사법사 최대의 치욕이다. 당시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기소를 거부하고 사퇴한 검사들이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절차적 정의를 완전히 무시한 비극적 사건이다. 법과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안이다. 박정희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 중앙정보부, 보안사 등 권력기관이 거대해져 누구도 제어할 수 없게 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박 대통령 자신도 그런 권력기관에 의해 결국 희생됐다. 인혁당 사건은 유신 시절에 있었던 최대의 비극이다. 그런 상징성이 있기에 박근혜 후보가 유족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 이상돈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사진 찍고 싶다”…보수적 자유주의자 평가

새누리당 이상돈 정치쇄신특별위원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건물 안에 있는 ‘디케의 상’ 앞에서 대담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보통 대담 사진 배경은 본지 사진기자가 정했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저울을 들고 있는 이 조각상은 사심에 치우치지 않고 정의 구현을 위해 ‘공정’과 ‘형평’을 상징한다. 

아쉽게도 사전에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디케의 상’ 앞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덕분에 더 많은 시간 동안 이 위원의 ‘정의’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위원은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이 대통령의 몇가지 정책에 반대해온 몇 안되는 보수 학자다. 특히 4대강 사업을 앞장서서 비판했다.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 때문이다. 김호기, 김상조 두 교수가 그를 “보수적 자유주의자”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그런 그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진영의 맨 앞줄에 섰다. 지난해 말 박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갈 때 비대위원으로 위촉한 게 계기가 됐다. 이후 박 후보 경선 캠프에서는 정치발전위원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새누리당 대선기구인 정치쇄신특위에서 박 후보를 돕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같은 가치를 회복하고 개인의 자기 결정권과 선의의 경쟁이라는 토대 위에서 국가와 사회, 개인이 건전하게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로서 그 역할은 박근혜 후보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위원은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길 원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 사람의 대담은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이뤄졌다. 

이 위원은 “안철수라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많길래 그의 책도 봤다”고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지 않나 싶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위원은 안 후보가 출마선언한 다음날인 20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막연하게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아닌가”라며 “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단일후보가 됐고, 당 지지 기반도 확실하기 때문에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 앞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상조 교수 후기 - 내가 본 이상돈

아뿔싸, 15분이나 늦었다. 이상돈 교수와는 첫 대면인데, 실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약속 장소인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가던 중에 어제 보낸 원고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급한 연락이 와서 중간에 차를 내려 마무리를 하다 보니 늦은 것이다. 분위기가 싸~했다. 이상돈 교수는 30분이나 일찍 도착해 있었는데, 경향신문 측이 디케(정의의 여신) 상이 있는 대법정 출입 허가를 미리 받아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터뷰어 중 한 사람이 늦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남에게도 엄격한 ‘보수적 자유주의자’의 체취를 한 순간에 느낄 수 있었다. 

대담 내용은 첫 인상 그대로였다.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누누이 역설하고, 따라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은 우리에게는 아직 사치스러운 이야기라고 판단하는 대목; 분배적 정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모든 걸 정부에 의존하려는 경향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의미에서 결코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리는 대목; 5·16은 그 자체로는 헌정을 무너뜨린 사건이며, 10월 유신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가슴으로 아파하는 박근혜 후보를 이해하면서도 ‘부친을 객관적으로 보라’고 조언하는 대목 등등은 ‘보수적 자유주의자’의 진면목을 드러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자유를 열망하지만, 자유가 유일한 가치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돈 교수 주장에 다 동의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상돈 교수의 주장에 공감하는 부분도 의외로 많다. 그래서 ‘보수적 자유주의자’인 이상돈 교수가 ‘한국 사회의 진보’에 기여할 것으로 희망한다. 그만큼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중층적이고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본 대법원의 디케 상은 서구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눈을 뜨고 있고, 앉아 있으며, 왼손에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짝퉁 디케’라고 부른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디케 상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게 만든 모양이다. 사법정의가 실현되어 디케 상에 대한 비호감을 불식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 김호기 교수 후기 - 내가 본 이상돈

이상돈 교수에 대해 글을 쓰려니 먼저 지난 해 여기 경향신문에서 함께 진행한 ‘대화’가 떠오른다. ‘대화’를 진행하기 전까지 이 교수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지는 못했다. 몇 해 전 문화방송 ‘백분토론’에서 패널로 만나고 경향신문 기획 ‘소통합시다!’에서 서로에 대해 글을 쓴 게 전부였다. 이른 봄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부터 초겨울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이르기까지 스물 네 사람과 대화를 함께 나누면서 나는 많을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이 교수는 굳이 이름 붙이자면 합리적 보수주의자, 보수적 자유주의자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 교수는 보수주의자지만, 개인의 자유와 합리적 의사결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자이자 합리주의자다. 보수 세력은 있되 보수 철학이 사실상 부재한 우리 현실에서 이 교수는 이채로우면서도 소중한 지식인이다. 보수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던 것은 이 교수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만나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은 다음 작은 카페에서 이 교수와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늘 그랬듯이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 교수의 주장은 분명하고 예리했다. 4대강 반대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교수는 보수적 가치보다 민주적·생명적 가치를 더 중시한다. 바로 이점이 생각은 다르더라도 내가 이 교수를 존경하는 이유다. 

지난 해 ‘대화’에서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은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이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우리는 여주 신륵사 주차장에서 만나 4대강 현장을 함께 돌아보면서 이명박 정부의 토건정책에 분노하고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그날 이 교수는 지역에서 묵묵히 환경운동에 헌신해 온 이항진 위원장에게 스웨터를 선물했다. 한 보수주의 법학자와 한 진보주의 운동가 사이의 살가운 우의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다소 냉정해 보이지만 마음은 더없이 따듯한 사람, 내가 본 이 교수는 그런 지식인이었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운영위원장)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