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회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회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12월 22일 토요일

[50대는 왜 투표장에 몰려갔나](1) “우린 전쟁 얘기 듣고 큰 세대… 진보세력에 대한 불안·회의 들었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12-21일자 기사 '[50대는 왜 투표장에 몰려갔나](1) “우린 전쟁 얘기 듣고 큰 세대… 진보세력에 대한 불안·회의 들었다”'를 퍼왔습니다.

지난 19일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데는 50대 유권자가 대거 투표에 참여해 박 당선인을 선택한 영향이 컸다. 이번 대선에서 50대 투표율(89.9%)은 어떤 연령층보다 높았다. 이들 중 박 당선인을 지지한 비율도 62.5%에 달했다. 

50대가 똘똘 뭉쳐 박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준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안보·경제에 대한 불안감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후보로 대표되는 진보세력과 젊은 세대에 대한 반발감이 꼽힌다.

▲ “대선 TV토론 때 이정희 보면서문 후보도 동색이라는 생각”
- 경기 고양 주부 55세 김모씨

▲ “외환위기 등 역경 헤쳐온 50대평가절하한 것에 대한 심판”
- 경북 구미 회사원 55세 장모씨

50대 유권자 중 상당수가 안보불안 때문에 박 당선인을 택했다고 답했다. ‘박정희 시대’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50대에게는 진보세력이 결합된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후보는 불안했다.

인천에 사는 주부 최모씨(59)는 “6·25전쟁 중 태어나 나도 전쟁에 대한 직접 경험은 없지만 부모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며 “북한은 믿어선 안되는 존재인데 문 전 후보 곁에는 종북세력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이사인 안모씨(56)는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 분명한데도 민주당은 너무 의심이 많았다”며 “잠잠해지려고 하면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면서 북한에 너무 동조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의 김모씨(51·농업)는 “문 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 퍼주기를 해 북한 정권을 유지시키고 미사일도 계속 발사해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정희 전 후보 등 진보세력과 문재인 전 후보를 지지하는 자신들의 자녀뻘인 20~30대에 대한 반발과 걱정 때문에 박 당선인을 찍었다는 50대도 많았다.

대전에서 직장에 다니는 황모씨(59)는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이 전 후보가 ‘박근혜를 떨어뜨리려고 나왔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너무 분노해 주변에 박 당선인을 찍어달라고 자원봉사까지 했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주부 김모씨(55)도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는 TV토론에서 이 전 후보가 지나치게 비이성적이고 전투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진보세력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며 “문 전 후보가 ‘이 전 후보와는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동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동에 사는 회사원 박모씨(55)는 “요즘 20~30대를 보면 어른에 대한 존중 등 전통적 미덕을 모두 팽개쳐 공동사회에서 같이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며 “이들이 아고라니, 트위터 등에서 선동하는 것에 부화뇌동하는 것을 참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북 구미시의 장동국씨(55·회사원)는 “진보세력과 젊은층이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 등 인생 험로를 온몸으로 헤쳐온 50대 이상을 평가절하하는 데 엄중한 심판을 내렸다”며 “야당도 젊은층 목소리만 귀기울이지 말고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 불안과 집값 하락에 대한 불만, 과도한 복지지출에 대한 반발도 50대가 박 당선인을 택한 이유 중 하나다.

50대 유권자 중 상당수가 자신의 집을 갖고는 있지만 노후에 대한 준비는 거의 안돼 있는 ‘하우스 푸어’라서 경제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서울 사당동에서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김모씨(59)는 “지금 살고 있는 148.5㎡(45평)짜리 아파트 값이 4년 전 7억여원에서 현재 6억원으로 1억원 넘게 떨어졌다”며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 등 집값 떨어뜨리기 정책을 과도하게 하다 보니 집 하나 갖고 있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열심히 일해서 부를 쌓은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며 “무조건 세금 때려 중산층을 무너뜨리는 과도한 정책을 내세워선 안된다”고 말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사업을 하는 이모씨(51)는 “내년에도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정권이 교체되면 경제는 더욱 혼란스럽고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대기업 이미지가 강한 후보를 찍는 것은 모험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공무원인 김모씨(52)는 “과거 진보 정권에서 진행된 각종 복지정책으로 전체 예산의 30% 정도를 복지 예산으로 쓰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편성에 큰 혼란을 초래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무상복지 확대 등 진보세력의 지나친 포퓰리즘이 우려돼 박 당선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상호·박태우·곽희양·이혜리 기자 shlee@kyunghyang.com

2012년 9월 14일 금요일

박정희, 장준하 사망 직후 보안사령관 독대…왜?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4일자 기사 '박정희, 장준하 사망 직후 보안사령관 독대…왜?'를 퍼왓습니다.
이후 법무-문공부 장관과 회의…중앙정보부장과 독대도

고 장준하 선생의 사망에 박정희 정권이 개입됐음을 의심할 만한 증거가 나와 주목된다.

장준하 선생의 사망 다음날 진종채 당시 보안사령관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47분간 독대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김현·백재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13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출받은 1975년 8월 18일, 19일, 21일의 '청와대 의전일지'를 공개했다.

이 일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장준하 선생 사망 다음날인 1975년 8월 18일 16시43분부터 17시30분까지 47분간 진종채 보안사령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16.43~17.30 : 陳鍾埰 保安司令官 公 書 齊 報告次).

▲1975년 8월18일 의전일지 ⓒ프레시안

김현·백재현 의원은 "청와대 의전일지를 분석한 결과 1975년 1월 1일 이후 단 한차례도 만난 적이 없던 보안사령관이 유독 장준하 선생 사망 직후 박정희 대통령과 서재에서 47분간 독대한 것으로 기록됐으며, 일지에는 '報告次(보고차)'로 기입돼 있다"면서 "이는 장준하 선생과 관련된 보고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통령 보고시 보안사는 관련 보고자료를 필히 작성했을 것이고 장준하 선생의 사망과 관련된 진실규명의 새로운 출발은 당시 작성됐을 보고자료를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의전일지에 따르면, 보안사령관과의 독대 다음날인 8월19일에도 정권 차원이 개입을 의심할 만한 일정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이날 오전 10시37분부터 11시55분(40분) 황산덕 법무부 장관과 이원경 문공부장관을 불러 들여 회의를 한 것.

또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두시간 동안 대책회의를, 이틀 뒤인 8월 21일 오후 2시부터 소접견실에서 두 시간 반 동안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기록돼 있다. 참석자는 기재돼있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21일 오후엔 신직수 중앙정보부장과 서종철 국방부장관의 보고를 받았다.

▲1975년 8월21일 의전일지 ⓒ프레시안

이같은 일정에 대해 두 의원은 "사체수습을 담당할 법무부장관과 언론통제를 담당할 문공부장관을 연이어 만났으며, 오후 2시부터는 참석자가 기록되지 않은 채 박정희 대통령 주재하에 2시간에 걸쳐 '대책회의'를 진행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8월21일 일정에 대해서도 "중앙정보부장과의 단독 면담 등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져 장준하 선생 사망과 관련하여 청와대에 의해 조정 및 통제됐다는 의구심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의전기록을 통해 장준하 선생의 사체수습 및 언론통제를 서둘렀던 박정희 정부의 행각도 유추할 수 있다"며 "당시 장준하 사건을 취재한 송석형 동아방송 기자는 상부의 압력으로 관련 취재를 중단(의문사위 자료)당했으며, 주변 지인들은 중앙정보부로 끌려갔을 뿐 아니라 장 선생 사후 상가방문객 명단 및 인적사항, 조의금품까지도 중앙정부부에 감시당하는 등 정권차원의 치밀한 공작이 있었다"고 말했다.

두 의원은 "이번에 발견된 청와대 의전일지 기록은 범국민적 조사위원회 설치와 특별법이 제정돼 사건을 재조사해야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될 것"이라며 특별법 제정 및 재조사를 촉구했다.

/전홍기혜 기자